- 불행하게도 직감을 따를 경우 대개 재앙적 결과와 마 주한다. 결혼한 부부의 40퍼센트 이상이 3년 안에 이혼 한다는 통계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첫인상은 자주 틀린다는 관련 연구가 지적하듯, 첫 만남에서 가슴 설레 게 하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높은 이혼율 의 주된 원인이다. 친구들과의 불필요한 싸움으로 감정 을 다치거나 우정이 깨지는 경우를 흔히 오해나 의사소 통의 실패 탓으로 돌리지만, 이 역시 직감과 관련 있다. 서로 공유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직감적 반응이 오해와 의사소통의 실패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 직감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경우 사업상의 관계는 어 려워지며 차별적 고용이 만연하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종교에 대해 암묵적으로 부정적 견해를 가진 면접관은 종교를 가진 응시자에게 면접 기회를 적게 주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위험회피 성향이 강한 고용주일수록 동성애에 대해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후보의 직무 적합도나 정책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함께 맥주 마시고 싶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더 우선시된 선거결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행동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관계 혹은 삶의 다른 영역에서 나타나는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판단 오류를 '인지편향'이라고 부른다.
- 학자들은 자동항법 시스템을 코끼리에 비유한다. 두 사고 시스템 중 더 강력하고 훨씬 지배적이다. 감정은 종 종 인간의 이성을 압도한다. 더 나아가 직감과 습관은 삶 의 대부분을 장악할 수 있다. 나쁜 결과를 야기하지 않 는다면 우리는 일상 대부분을 자동항법 시스템에 맡겨 놓는다. 매일의 행동과 판단을 일일이 의도적으로 하려 면 정신적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다.
의도적 시스템은 코끼리 등에 올라탄 탑승객에 비유 될 수 있다. 탑승객이 실제 목표와 부합하는 방향으로 코끼리를 움직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뇌에서 코끼리의 영역은 아주 거대하며 다루기가 까 다롭다. 변화에 느리지만 위협에 번개처럼 움직인다. 코 끼리가 가진 힘은 한 번에 우리 신체를 장악할 수 있으며 이때 탑승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 코끼리를 잠재우고 모든 것을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생각해서 움직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이라면 코끼리를 훈련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탑 승객이 조련사가 되어 코끼리와의 소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즉각적 반응, 자동적 사고, 반사적 행동을 의도적 시스템의 영역 안에서 다루는 것이 가능해진다. 난폭 한 코끼리를 온순한 코끼리로 만드는 것이다.
- 판단을 유보하고 늦게 반응하기는 기본적 귀인 오류 를 막을 수 있는 결정적 도구다. 즉각적인 판단은 신뢰할 수 없기로 악명이 높다. 예전과는 달리 우리는 생존과 직 결되는 판단을 할 필요가 없음으로,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이 형성되는 그 순간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고 패턴을, 판단에서 호기심으로 옮겨야 한다. 무례 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고 불한당이라고 여기지 않고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불한당이 아니라 다른 사 정이 있는 건 아닐까?' 전화로 고함을 지르는 데이트 상대에게서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감정을 놔두 고 왜 그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먼저 호기심을 갖는 것이 다.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면 중요 한 결정을 내리기 전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남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저런 유형의 사람이 있지'라 고 성급히 판단하지 않고 스스로 변화될 가능성은 없을까?', '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바뀔 수 있지 않을까?'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관계에 큰 도움이 된다.
- 우월감 환상은 직장 생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다. 보고서 몇 개만 읽고 시장의 흐름을 통찰한 것처럼 떠들어대는 척척박사는 누구에게나 눈총을 받는다. 이 런 사람이 상급자라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불행하게도 대개의 기업이 심사숙고 없이 직감이나 감각에 의지해 순식간에 판단을 내리는 상급자들에게 보상을 한다. 경 영진의 성급한 판단이 비즈니스상의 재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참사를 일으켰던 기업들은 하나 같이 우월감 환상에 젖은 경영진과 리더의 판단을 맹신하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었다.
- 텔레비전의 등장으 로 후보자들의 키를 비교할 수 있게 된 1960년대 이후, 180cm가 넘지 않는 역대 미국 대통령은 지미 카터(177cm)한 명뿐이었다. 때문에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프로필상의 키를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힐러리는 국무장관 시절 공식적으로 167cm였다. 하지만 대선에선 174cm로 소개되었다. 남자 키로 환산하면 188cm이다. 상대 후보였던 트럼프의 키가 190cm였기 때문이다. 코미디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 아직 동성결혼 문제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섭 리나 종교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 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던 1912년, 3등 칸에 있던 여자들은 숙녀로 대우 받지 못하던 천민들이었다. 따라서 영국의 신사들은 이 들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었다. 그 결과 3등 칸에 있 었던 여성 인원의 45퍼센트만이 구명보트에 오를 수 있 었다. 보트에는 이들 모두를 수용할 공간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이 사회적 합의로 빚어진 참사가 오늘날의 기준 으로는 정당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 부모들은 자녀들이 십 대에 접어들게 되면 이 투명성 의 착각을 경험하게 된다. 부모가 모든 지혜의 원천이었 던 꼬맹이들이 아주 짧은 순간에 논쟁적으로 바뀌고 집 밖에 더 머물고 싶어 하며 친구를 더 신뢰하는 모습으로 변한다. 십 대 자녀를 둔 대다수의 부모들은 이때 자녀의 말과 행동 속에 숨겨진 의미를 놓친다. 반항 속에는 어른 의 세계로 입장하기 위한 자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욕구 가 숨어 있다. 마찬가지로 십 대가 놓치는 것도 있다. 부 모의 간섭에는 자녀를 보호하고 싶은 욕망과 부모 자신 들이 성장하면서 경험했던 문제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주 고 싶은 의지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등이 폭발하게 되면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그럴 의도로 한 말 이 아니었어. 그건 오해야.”
정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만이 투명성의 착각으로 발생하는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공감 적 질문을 사용하면 부모는 자녀들의 정서와 욕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아이들의 성숙도와 자립성을 파악 하기도 쉽다. 예컨대 부모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다 컸다고 생각해서 늦게 들어오겠다는 거니?” 이런 질문은 대화의 방향을 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십 대의 독립성과 부모의 규제 사이의 균형이 무엇인지로 끌고 가기가 쉽다. 이와 달리 공감적 질문은 부모가 십 대의 감 정을 공유하고 있음을 전달하고 부모의 감정을 자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하는 방법이다. “잔소리해서 미안 하지만 늦게 들어오겠다니 신경이 쓰이는구나, 걱정되어 서 하는 말인데 그렇게 대꾸하는 것에 마음도 상하고." 이와 같은 대화는 부모를 사랑과 권위의 원천으로 여기 는 일차원적 시각에서 벗어나 부모 또한 감정의 복합체 라는 사실을 십 대에게 전달한다.
- 미래에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 는 사고의 오류를 낙관편향 optimism bias'이라고 한다. 진화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밝은 미래에 대해 과도한 자신감 을 갖는 구성원이 많은 종족에겐 분명한 혜택이 있다. 기 꺼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구성원이 새로운 자원을 탐 사하기 때문이다. 낙관편향은 자원 경쟁이 벌어졌을 때 다른 부족들과 경쟁을 벌이도록 수컷들을 격려한다. 경 쟁에서 자신의 승리를 낙관하지 않는 전사들은 전투에 뛰어들 수 없으며 그것은 곧 부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 나아가 낙관편향이 강한 구성원은 부족 내에서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경쟁에 서 이기면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줄 가능성도 덩달아 커 진다. 낙관주의자들은 비관주의자들보다 위험한 일에 더 많이 뛰어들며 결과적으로 실패를 경험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 고대 아프리카 사바나 환경에서 이는 종종 죽 음을 뜻했다. 하지만 성공했을 때는 비관주의자들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릴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아진 다. 모든 자원이 그들의 것이다.
- 예컨대 인도 북부와 중국 서부에 서식하고 있는 랑구 르원숭이는 같은 종이다. 단지 인도 북부의 원숭이는 위 험회피 성향이 강하고 중국 서부의 원숭이는 위험을 선 호한다. 더 충동적이고 겁이 없으며 더 과격하다. 이 둘 사이에 히말라야산맥이 있다. 눈 덮인 산맥을 넘어갈 생 각을 했던 미친 원숭이 무리의 후손이 바로 중국 서부에 있는 원숭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운명을 낙 관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유럽으로 진출했으며 다시 아시아로, 아메리카로 퍼져나갔다. 분자유전학에 따르면, 25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약 1만 8천 명의 비교적 아주 작은 집단으로 시작했다.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는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과 섬에 고루 분포하는 성공한 종이다. 바로 그것이 인종과 민족, 성에 상관없이 80퍼센 트의 사람에게 낙관편향이 나타나는 이유다.
하지만 낙관주의적 기질이 과도하게 퍼진 이유는 이것 만이 아니다. 낙관편향에는 많은 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우울이나 불안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건강을 유지하고 장수하는 데 유리하다. 오래 사는 만큼 번식의 기회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 미래의 위험 요소를 과대평가하는 판단 오류를 비관 편향ressimism bias'이라고 한다. 이는 낙관편향에 비해 일반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이런 편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게 되면 보물처럼 귀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이들은 미래 를 회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 미래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득 인 것과 마찬가지로 비관주의적 경향 역시 이점이 있다. 위험회피 성향이 다분한 구성원들은 낙관주의자들이 위 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자원을 찾아 모험을 떠날 때 집단 내에 머무르려고 한다. 이들은 새로운 자원을 찾지 않는 대신, 있는 자원을 아낀다. 그래서 힘든 시기가 올 때 비관주의자들은 집단에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대조 적으로 낙관주의자들은 일이 잘 풀렸을 때 종족의 생존 에 도움을 준다. 사람들은 비관주의를 낙관주의에 비해 건강하지 못 한 삶의 태도로 여긴다. 비관주의자들이 우울증으로 더 많이 고통받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육체적인 건강 또한 나빠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나아가 비관주의자들은 종 종 괄시를 당한다. 반대론자, 불평분자 혹은 투덜이라는 딱지가 붙으며 건강한 사회 결속을 해치는 존재로 여겨진다.
- 명백한 사실에 근거했는데도 누군가가 이를 거부하고 있다면 정서적 장벽이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모 든 테러리스트가 무슬림이라는 정치적 신념, 백신이 자 폐증을 유발한다는 의학 상식에서부터 회사 실적에 관 련된 불편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비즈니스 리더들, 눈이 나빠서 운전하면 안 된다는데도 고집스레 운전대 를 잡으려는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사회, 문화, 일상 속에 서 뻔히 보이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은 모 두 정서적 장벽 탓이다.
- 이 책을 읽은 여러분들이 한 가지만을 기억해야 한다면 이것이다.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히려 인 간관계에 가장 나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락함, 편리함, 익숙함은 모두 자동항법 시스템에 의해 살고 있을 때 느 껴지는 것들이다. 이 시스템은 고대 아프리카 사바나 환경에서부터 인간의 생존을 돕던 본능이지만 이젠 다르 다. 현대는 그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며 기술 발달 이 가져올 복잡한 미래는 점점 더 과거와 달라질 것이다. 날로 진화되는 테크놀로지가 뜻하는 바는 하나다. 본능적인 반응은 미래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 자동항법 시스 템은 우리를 갈등과 파괴로 안내한다. 그래서 당신에게 권유하고 싶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 해서가 아니라 풍요로워지기 위해 불편하고 반직관적이 지만 의도적 시스템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우리 모두는 체계적이며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오류를 범한다. 의도 적 시스템만이 그 실수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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