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조작의 비밀

심리 2023. 8. 25. 17:17

-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는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들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빈곤층보다 유복하고 혜택 받은 엘리트 계층 출신 에 많았으며, 그들은 대부분 고학력에 의사나 엔지니어 등 전문직 종사자였다. 물론 사회의 소수파에 속해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가혹한 박해를 받거나 굴욕적인 체 험을 해서 복수를 다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특징은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을 저지른 옴진리 교의 테러범들과도 일맥상통한다. 교조 아사하라 쇼코는 시각 장애인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일반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탓에 자신이 불우하다는 느낌과 열등감을 안고 있었지만, 교단 간부 대부분은 일류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로 굴욕적인 체험을 맛보고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또한 테러리스트들은 고독하거나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지도 않 았다. 알카에다의 테러리스트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 중 4 분의 3은 배우자가 있었고, 3분의 2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꼭두각시 인형처럼 세뇌된 상태가 아니었다. 테러에 실패해서 살아남은 사람을 면담한 조사에 의하면 그들 대부분은 이성적인 사람이었으며 테러 행위를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논리 정연하게 설명했고, 스스로 납득한 상태에서 테러를 결행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컬트 교단이나 정치적 종파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권유를 받아 가입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살 폭 탄 테러리스트는 테러 조직의 권유로 테러리스트가 된 것이 아니 며 대부분 스스로 조직에 접근했다. 테러리스트는 누구라도 원하 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명예였다. 엄격한 심사와 테스트 기간을 거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테러리스 트가 될 자격이 주어졌다. 이런 배타적인 동료 의식이 테러리스트 의 결속을 강화시키고 쉽게 적발되지 않게 했다.
- 미시건 대학의 스콧 애트런 Scott Atran은 9.11 테러 사건의 범인 중 살아남은 자나 알카에다의 멤버를 만나 조사했다. 그들이 자란 세 계에서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는 순교자로서 축구 스타처럼 동경 의 대상이며, 따라서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에게 권유를 받았다 해 도 그것은 하나의 계기에 불과하다. 그들은 신이 자신을 선택하고 기회를 준 것으로 여기고 그 순간이 찾아오기까지 준비하며 기다 리고 있던 것이다.
- 맨 처음 접근해서 손금을 보는 이유는 신체 접촉을 통해 애착이나 신뢰가 싹트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손금에 새겨져 있는 내면, 성격, 운명 등을 보는 위치에 서게 됨으로써 주도권을 쥐게 된다.
요컨대 이 판매 방법에 따르면, 손금을 보고 성명 판단을 한 단 계에서 거의 승부가 난다. 손금이나 이름을 살펴보면서 상대방이 어떤 고민이나 불만, 콤플렉스를 안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심리적 상황을 알 수 있다. 거기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손금을 봐달라는 것은 지푸라기 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즉 판매자는 손금이나 이름을 보게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상대가 넘어올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으니, 사실 이 기술은 효율적으로 '호구'를 찾아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손금을 보여주거나 이름을 알려주는 사람 은 그다지 경계심이 크지 않고, 상대의 요구에 응하기 쉬운 의존 성 인격장애 경향이 높은 사람임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은 속이기 쉬운 유형이며 손금이나 이름에 새겨진 '비밀'을 털어놓은 상대에 게 쉽게 의존하게 된다.
뒤에서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의존성 인격장애를 지닌 사람 은 스스로 인생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도 개척해가지도 못한다. 누 군가가 뭔가 좋은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인생까지도 타인에게 맡겨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순순히 그 말에 따르게 된다.
경계심이 강하고 자아가 안정되어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확실 한 사람이라면 손금이나 이름과 같은 개인 정보를 상대에게 가르 쳐주지 않으며, 감정 받기를 원하지 않게 마련이다. 하물며 만난 지 얼마 안 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인생의 문제나 고민을 털어놓 지는 않는다.
판매를 권유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손금을 보자고 했을 때 거절 당하면 바로 물러나서 어수룩한 사람을 찾아 판매하면 되므로 시 간을 낭비할 일이 없다.
- 영감상법이 이와 같이 사람들을 홀딱 빠지게 하고 많은 돈을 선뜻 내놓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몇 가지 심리 조작의 원리를 찾 아낼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비밀이나 고민, 과거를 말하는 것이 심리 조작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고민을 털어놓으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상대방의 가장 큰 약점을 알게 된다. 남에게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밝힘으로써 이제 특별한 관계가 성립한다. 가슴속에 숨겨놓았던 사실을 털어놓는 행위에는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무의식의 심리가 반영되기 때 문이다. 도움을 요청하면 상대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
- 영감상법에서 찾은 심리 조작의 원리
*비밀이나 고민, 과거를 말하는 것은 심리 조작으로 연결된다.
*상대에 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해서 약점을 파고든다.
*무슨 말에는 '예스'라고 대답하도록 질문을 유도한다. (예스 세트)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선량하고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 의존성 인격장애를 만드는 주된 가정 환경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인 경우
*어머니의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한 경우
*어머니가 우울증이나 불안정한 인격장애를 지니고 있는 경우
*부모가 과보호로 자식을 기르는 경우

- 한편, 가혹한 환경에 격리되어 고문을 받고 사상 개조나 세뇌를 받는 경우에도 신념을 관철시켜 심리 조작이 먹히지 않는 사람들 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확실한 소속 의식을 지니고 있거나 흔 들리지 않는 신앙이나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독 한 상황에 놓여 있었고 도와주는 손길조차 없었으며 고문이나 기 아의 고통에 시달렸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들을 소속된 가 족이나 공동체와 연결시켜주었던 것은 주로 기도라는 행위였다고 한다. 기도는 신이란 절대자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행위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의사 빅토르 프랑클은 자신이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게 된 요인 중 하나로 끊임없이 마음 속으로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던 것을 들고 있다. 혹한 속에서 몇 시간동안 서있으면서도 그는 그런 혹독한 상황을 아내에게 농담섞어 말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진작에 죽고 없었다. 프랑클이 이 사실을 안 것은 그가 해방되고 집에 돌아오고 나서였다. 아내는 물론 부 모도 이미 죽고 이 세상에 없었다. 그가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 었던 아내는 이미 그의 마음 속에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프랑클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 다. 사랑하는 존재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 그를 절망과 죽음으로부터 지켜주었던 것이다.
- 또 하나 오래전부터 사용된 심리 조작 기법 중 하나는 '~인척 하는' 것이다. 이 기법의 중요성을 맨 처음 지적한 이는 《군주론> 을 쓴 마키아벨리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신의 성실을 정말로 갖추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갖추고 있는 척을 해서 그렇게 여기 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 척 해서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어떤 시대에도 사용되는 상투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척하는 능력은 사회적 지능의 근간을 이 룬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지능이 마키아벨리적 지능이라고 불리 는 까닭이다. 사회적 지능이 뛰어난 사람은 교묘하게 태도를 꾸며 서 상대의 마음을 허물고,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살펴보겠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사랑을 받기보다 두려운 존재가 되는 것이 지배력이 강해진다고 강조했다. 그 사례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 발을 들고 있다. 한니발의 군사가 항상 일사불란하게 통제되어 있 던 까닭은 그가 규칙을 위반한 군사에게 냉혹하고 엄격하게 대했 고, 군사들이 그를 우러러보기보다는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고 말했다. 공포에 의한 지배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용되는 심리 조작 기술이다.

- 조사 결과 환자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던 인물에 대한 감정을 치료자에게로 돌림으로써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이 현상을 '전이라고 불렀다.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고 이상화하며 호의를 품는 경우를 양성전이, 반대로 화나 증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품게 되는 경우를 음성전이라고 한다.
더욱 골치 아픈 문제는 전이 감정을 갖게 되면 치료자에게도 그 에 호응하는 감정이 생긴다는 것인데, 바로 '역전이逆轉라고 불 리는 현상이다. 환자가 치료자를 이상화하거나 연애 감정을 갖게 되면 치료자도 거기에 휘말리기 쉽다. 반발이나 적의를 품게 되면 어느새 치료자도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고, 그 환자를 싫어하게 된 다. 환자가 투영한 존재, 가령 '환자가 싫어하던 아버지'라는 역할 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 프로이트는 이 전이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가가 치료의 성 패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컨대 정신분석 치료 과 정에서는 증상(신경증)이 좋아지는 한편 전이에 동반되는 상태(전 이신경증)가 출현한다. 그러면 전이 감정을 다루면서 그것이 중요 한 인물에 대한 감정을 투영시킨 결과라는 사실을 자각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회복되는 치료 이론이 확립되었다.
- 전문가로서 정신분석이나 심리 요법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 람조차 전이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환자에게 연애 감정을 품게 되고 성적 관계를 맺거나 함께 생활하거나 때로는 결혼까지 한다. 치료자로서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경우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전형적인 사례가 카를 융이다. 그는 환자였던 여러 여성들과 도 를 넘어선 관계를 가졌고, 그중에 몇 사람과는 애인사이로 발전했다. 프로이트의 입장에서 보면 융은 전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로가 된 셈이다.
- 한층 냉정한 눈으로 보면 융은 치료자로서 유리한 입장을 이용 해서 젊고 아름다운 여성 환자의 심리를 조작해 상대를 손에 넣었 다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융은 겉모습은 매력적인 인물이었지 만 내면은 매우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거나 따르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컬트 교단의 구루와 비슷한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프로이트의 치료는 환자 스스로 주체적인 인식을 통해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 과정에서 전이에 사로잡힌다면 주체성을 잃고 단지 다른 존재에 의존하여 자신을 지탱하게 될 것이었다. 전이를 치료하기는커녕 오히려 전 이를 악용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런 위험이 따른다.

- 에릭슨이 사용한 기법 중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 중 하 나가 더블 바인드다. 상대가 무언가 해주기를 바랄 때, 그 일을 할 생각이냐 아니냐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선택지를 준비해 질문하는 방법이다. 복수의 선택지가 제시되지 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결국 같은 결과로 유도된다.
이 기법은 영업이나 판매 등에서 응용되고 있다. 자동차를 살까 말까 갈등하는 고객에게 "이 장치를 달아놓을까요?" 아니면 "자 동차 색깔은 흰색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검은색을 좋아하세요?" 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법이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다음 선택 사항으로 고 객의 관심이 향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살까 말까 고민하던 것을 
멈추고 세세한 취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어느새 구매는 기정 사실이 되고 만다.
이 기법은 강력해서 이전에 몇 번이고 당했어도 매번 또 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더블 바인드 기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이 런 세일즈 토크에 쉽게 걸려들지 않는다. 상대의 수를 알게 되면 방어력을 지니게 되는 법이다.
더블 바인드는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다. 가령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고 싶을 때 노골적으로 공부하라고 독촉하면 그다지 효과가 크지 않다.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저 항하게 마련이다. 이럴 때 더블 바인드 기법을 사용해서, "국어와 산수 중 어느 쪽부터 할까?", "숙제를 엄마와 함께 할래? 아니면 혼자서 할래?"라고 물으면 아이는 대개 어느 쪽인가를 선택하고 순순히 책상 앞에 앉는다.
- 강하게 저항하리라고 예상되는 경우에는 "숙제를 간식 먹기 전 에 할래? 아니면 먹고 나서 할래?"와 같은 식으로 한 발 물러난 제안을 하여 하나를 선택하게 하거나, 반대로 "숙제를 할래? 목욕 탕 청소를 할래?"와 같은 식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함께 넣어 서 선택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여하튼 "~하겠다"고 대답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스스로 '하 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면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더블 바인드는 '함의 implication'라고 불리는 기법 중 하나다. 인간의 마음은 불가사의해서 직접적으로 뭔가를 하라는 말을 들으면, 명령받았다고 받아들여 마음속에서 저항이 생긴다. 하지만 간접 적으로 넌지시 말하거나, 하는 것을 전제로 놓고 말하면 저항감이 생기기 어렵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아들이 공부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다고 하자. 그럴 때 아무리 공부를 하라고 독촉해도 소용없다. 하지만 "내년 이맘때에는 이렇게 가족이 모두 모여 한 가롭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없겠네. 대학교는 1학년 때가 가장 바쁘다고 하니 말이야."와 같이 말해보자.
이 말은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비난도 명령도 아니기에 마음에 저항이 생기기 어렵고, 그대로 마 음에 와 닿기 쉽다. 이 말 한마디로 아들은 자신이 대학생이 되어 있는 상황을 순간적으로 떠올릴 터이다. 그와 동시에 마주 보기를 피하던, 대학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든지 모의시험이 코앞에 닥쳤 다든지 하는 불안감이나 미지의 대학 생활에 대한 걱정과 기대 등 이 뒤섞여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게 된다.
또한 "이런 식으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낸다", "대학교는 1학년 이 가장 바쁘다"와 같은 말이 뇌리에 박혀 자신이 한가하게 있는 모습에 초조함을 느끼고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될 터 이다.
잠재의식은 연상 작용의 소굴과 같은 것이다. 별다른 뜻이 없는 사소한 말이라도 은근히 그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그냥 놔둬도 저절로 파문이 퍼져간다. 이것이 행동에 변화를 낳게 된다.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
-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을 한층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에서 아무리 조언을 해도, 본인이 강요받는다고 생각해서 귓등으로 듣는다면 말짱 헛수고에 불과하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엇보다도 저항하는 상대와 정면으로 부딪쳐서는 안 된다. 설 득하려고 하면 할수록 완고하게 반발하여 결국에는 감정적으로 다투게 되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된다.
에릭슨의 기법은 가능한 한 이런 저항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더블 바인드도 저항을 누그러지게 하고 제거하는 기법 중 하나로 서 만들었다. 저항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단정 표현을 사용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에릭슨은 최면을 사용할 때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눈꺼 풀이 무거워집니다"와 같은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다. "당신 은 트랜스 상태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라든지, "점점 깊이 들어 가게 되겠지요"와 같은 식으로 다른 가능성도 허용하는 표현을 즐 겨 사용했다. "~할 수도 있다", "~할 것이다", "~할지도 모른 다", "~할 것 같다"와 같은 표현이 그 예다. 실제 사용해보면 알 겠지만, 단정적인 표현보다 받아들이기 쉽고 영향력도 크다.
- 의지가 약하고 의존적인 사람에게는 강하게 단정하는 말이 믿 음직스럽게 느껴지고 영향력을 갖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확실한 사람에게 단정적으로 말하면 강한 저항을 만나게 될 뿐이다. 돌려 말하는 방식이 감정적인 저항이 생기지 않는 방 법이며, 마음에 와 닿기 쉽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돼"와 같이 단정적으 로 말하면, 대개 강한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며 행동을 변화시 키지도 못한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후회 할지도 모르는데"와 같이 결론을 내리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는 편이 저항이 적고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힘을 갖게 된다.
가령 "공부하지 않으면 대학에 떨어진다"라고 위협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면 A대학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이 조심스럽 게 중얼거리는 편이 말 자체에 대한 저항이나 반발이 훨씬 적다. 소극적인 표현이지만 오히려 감정적인 반감이 일어나지 않기 때 문에 마음에 쉽게 파고들어가게 된다. 게다가 이 말은 지금의 상 태로는 A대학에 합격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런 간접적이고 애매모호한 표현이 무의식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딱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듯이 보여도 그 아이는 차츰차츰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된다. 서서히 행동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의식에 작용을 가하는 원리다.
- 중립적인 선의의 제3자로서 상담을 하는 중에 상대의 니즈를 완전하게 파악할 뿐 아니라 신뢰도 획득하는 방법은, 상대를 강인하게 조종하려고 하거나 무리하게 설득하려고 하는 방법보다 훨씬 성공률이 높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타자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고, 타자의 강요 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개인주의 시대에는 강하게 설득하려고 하는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
영업의 최종 목적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라면, 상품을 사달라 고 한마디도 권유하지 않고 고객에게서 꼭 팔아달라는 말이 나오 도록 하는 것이 성공적으로 고객의 행동을 이끌어온 것이 된다.
- 사람의 심리를 조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의도한 대로 행동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이것은 한층 고도의 심리 조작 기술을 구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충실하게 지키고 실천하면, 가장 안전하고 자연스 럽게 상대에게 접근하여 상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목적한 바대로 행동하게 할 뿐 아니라 니즈를 확실하게 충족시켜줌으로써 그 뒤에도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관계를 발전시킬 수가 있다.

- 조건형성도 심리 조작의 중요한 기술이지만 파블로프는 세뇌와 관련된 더욱 중요한 발견을 했다. 벨 소리와 개에 관한 실험을 한 파블로프는 그다음 단계의 실험도 했다.
개는 벨 소리를 들으면 먹이를 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침을 흘 리는데, 파블로프는 이 단계를 '등가적 단계'라고 불렀다.
하지만 일단 조건형성이 성립된 뒤라도, 벨을 울리고 먹이를 주 지 않는 등 일관성 없이 대응하면 점차 침을 흘리는 반응도 제멋 대로 변하고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즉 벨 소리를 들었을 때 반응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게 된다. 게다가 작은 벨 소리에는 크게 반응하면서 큰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는 등 반응이 거꾸로 나타나는 경향도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파블로프는 이 단계를 '역설적 단계'라고 불렀다.
- 역설적 단계는 혼란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전의 규칙이나 틀을 믿을 수 없게 되며, 진행해야 할 방향이나 믿어야 할 기준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즉 기존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뒤흔드 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예측된 사건이 안정제로서 작용하는 것과 는 반대로 예상치 못한 사건은 불안감을 높인다. 실제 세뇌에서는 일단 안정제로 의존하게 만들어놓고, 그것을 갑자기 부여하지 않 음으로써 불안감에 휩싸이게 한다.
갑자기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되면 본인은 혼란스럽고,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자신을 돌이켜보며 자책하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위해 두려움에 떨며 안색을 살피게 된다.
그런 심리 상태에 놓이게 해서 긴장이 높아졌을 때 무엇이 마음 에 들지 않는지를 넌지시 알려준다. 불안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 었기에 불안한 상태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타협하고 상대 가 말하는 대로 따라하게 된다.
이것은 변덕스럽고 지배적인 인물이 의존적인 사람을 조종하는 전형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에는 지배하는 사람의 긍정 적인 반응이 안정제로 작용한다. 그리고 지배받는 사람은 어느 샌 가 이 안정제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 해서 안쓰러울 정도로 노력하고 상대에게 헌신하게 된다.
역설적 단계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을 이해하거나 타 인의 행동을 조작할 때 유용하다. 하지만 세뇌를 하기 위해서는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 파블로프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건으로 놀랄 만한 발견을 하 게 되었다. 이것은 다행스런 우연이라기보다 불행한 재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24년 레닌그라드에 대홍수가 덮쳐 파블로프의 실 험실도 피해를 입었다. 많은 물이 흘러들어와 기자재나 우리가 물 에 잠겼고, 실험용 개들은 도망치지도 못한 채 허우적거리며 물에 빠져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때 조수 한 사람이 간신히 실험실에 도착해서 개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
홍수 피해를 수습하고 실험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연구자 들은 기묘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벨 소 리를 들어도 개들이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몇 번을 해도 마찬 가지였다. 믿을 수 없게도 몸에 배어 있던 조건반사가 없어진 것 이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충격적인 사건이 조건반사를 없애버렸 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파블로프는 또 한 번 조건형성을 조작해서 조건반사가 일 어나게 했다. 그러고 나서 똑같이 우리에 물을 흘려보내 개들을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하자 역시 조건반사가 없어졌다.
학습시킨 조건반사가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개의 성격이 정반대로 바뀌곤 했다. 얌전하던 개가 난폭해져 사람을 물거나, 반대로 난폭하던 개가 얌전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이 심적 외상 체험으로 이전의 조건형성이 사라졌을 뿐 만 아니라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상태가 일어나는 현상을 파블로 프는 '초역설적 단계라고 불렀다.
파블로프의 연구가 소련의 세뇌 기술 발전에 기여한 역할을 연 구한 정신과 의사 윌리엄 사잔트William W. sargant에 의하면, 생존과 관 련된 외상 체험에 의해 그 전까지 믿어왔던 행동양식이나 가치관 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태에 직면하면 그것이 완전히 바뀌는 반응이 유발된다고 한다.

- 파블로프의 연구는 미국으로 건너가 행동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심리학 영역을 발전시켰다. 행동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존 왓 슨 John B. Watson이나 그 후계자 버러스 스키너Burrhus F. Skinner가 한 시대 를 풍미하였다. 그들은 파블로프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조작적 조건형성이라고 불리는 방법을 확립했다. 스키너는 자신의 방법을 사용하면 어떤 반응이라도 자유자재로 만들어낼 수 있으며, 행 동이나 인격조차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고 호언했다.
조작적 조건형성의 원리는 단순하다. 바람직한 행동을 하면 칭 찬(기분 좋은 자극)을 해서 긍정적으로 강화시키고, 잘못된 행동을 할 때는 벌(불쾌한 자극을 주어 부정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 런 간단한 방법을 수미일관되게 실행하면 바람직한 행동이 증가 하고 잘못된 행동이 감소한다.
조작적 조건형성은 조작적 학습이나 강화 학습이라고 불리듯이 학습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환경에 적합한 행동을 학습함으로 써 행동이 변화하는 것이다.

- 헤브 박사의 실험은 감각 차단 상태에서 자극을 주면, 평소와는 전혀 다를 정도로 인간의 정신이나 뇌에 엄청나게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그것은 동시에 이 기술을 악용하면 사람의 사상이나 생각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뜻했다. 헤브 박사는 3년 반 뒤에 이 실험을 중지했다. 그 뒤 그와 같은 감각 차단 실험을 더욱 진행시킨 사람은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 자잭 버넌 Jack Vernon이었다. 버넌은 헤브 박사와 마찬가지로 챔버 를 사용해서 똑같은 실험을 했는데, 그의 실험 목적은 세뇌에 있 었다. 피험자에게 기독교에 관한 지루한 내용이 담긴 30분 분량의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을 것인지, 이슬람교에 흥미를 갖게 하는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시리즈로 연달아 들을 것인지를 선택하게 했다. 대다수 피험자가 이슬람교의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선택했다. 그리고 챔버에서 나왔을 때는 이슬람교에 대해 아주 호의적인 견 해를 갖게 되었다.
이런 실험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우리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 기 위해서는 적당한 양의 자극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극은 바꿔 말해 정보라고도 할 수 있다. 입력 정보가 지나치게 부족하면 뇌 는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입력 정보가 극도로 부족한 상태에 놓이면, 뇌는 어떤 정보라도 받아들이고 흡수하려고 한다. 그 전까지 믿고 있던 신념과 다른 내용의 정보라도 별 다른 저항 없이 흡수하려고 한다. 그 결과 그 정보가 강하게 침투하여 신념이 바뀌는 일이 일어난다. 이것이 그 야말로 세뇌의 원리다.
세뇌를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원리로는 정반대의 방법도 있다. 정보 차단이나 감각 차단과는 반대로 정보나 자극을 과잉으로 제 공받는 상태에 마냥 있게 두는 것이다.
정보 과부하 상태가 계속되어도 뇌는 차츰 주체적인 사고력이나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처음에는 강한 반발과 저항감을 불러 일으키는 생각이라도 계속해서 듣게 되면, 차츰 그것이 올바른지 잘못되었는지 판단하지 않게 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고독한 삶이 당연한 시대가 되고 밤낮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대 량의 정보를 받아들이며 생활하는 현대인은 감각 차단과 정보과부하라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 심리 조작의 역사를 살펴볼 때 서브리미널 subliminal 효과를 발견하고 실용화한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
지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순간적인 자극이 인간의 판단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서는 19세기부터 일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왔다.
하지만 이 연구가 널리 일반의 흥미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57년 부터이다. 그 해에 제임스 비커리James Vicary라는 마케팅 컨설턴트가 50명의 기자를 초대해서 대대적인 회견을 열어, '서브리미널' 영 상을 삽입한 영화를 보여주면서 그 효과에 대해 발표했다.
비커리는 <피크닉>이란 영화의 영상에 '팝콘을 먹어라'나 '콜라 를 마셔라'라는 문자을 순간적으로 비치게 하고 그 효과를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팝콘은 57.7%, 콜라는 18.1% 매출이 신장되었다고 한다. 비커리는 처음으로 '서브리미널'이라는 말을 사용해 기법을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잠재의식에 미치는 자극은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성으로도 판단할 수 없지만, 본능적인 욕구를 자극할 수는 있다고 보았다.
때마침 같은 해 미국에서는 사회학자인 밴스 패커드vance Packard 가 광고업자들이 상품을 사게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 는 실태를 폭로한 《은폐된 설득자들》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10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며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비커리는 시기적절한 때에 발표를 했다. 영상 매체를 이용한 심리 조작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으며 서브리미널 효과가 일반인들 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MK 울트라 계획으로 대표되듯이 종래의 심리 조작 기술은 최 면, 전기 충격, 조건형성 조작, 약물 모두에 공통적인 한계점이 있 었다. 격리나 구속을 하고 노골적으로 인권을 침해하고 다양한 조 작을 강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나중에 물의를 일으 키게 되고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규탄을 받게 되었다.
이에 반해 서브리미널 효과를 이용한 방법은 두 가지 면에서 혁 신적이었다. 사람들이 눈치 채기 어렵고, 한 번에 수많은 사람에 게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바야흐로 새로운 심리 조작 기 법이 등장한 것이었다.
서브리미널 효과를 노골적으로 이용한 기법은 그 뒤 사회의 경계심이 강화되면서 규제 대상이 되었지만, 부드럽게 암시 효과와 조합되어 잠재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기법은 현재도 널리 이용되 고 있다.
상업광고에서는 판매하고 싶은 상품과 긍정적인 이미지를 연결 지어 반복해서 내보낸다. 경쟁 후보를 공격하는 네거티브 선거에 서는 사악하고 불쾌한 영상이나 음악을 이용하여 적대하는 후보 와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결시킨다.
직접적으로 경쟁 후보를 사악한 사람이라고 공격하지 않아도 그런 이미지와 연결시킴으로써 사람들의 뇌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력하게 심어놓을 수 있다. 이런 효과도 이성이라는 여과기를 빠 져나가 직접적으로 감정의 중추에 이르는 것이기에 서브리미널 효과라고 말할 수 있다.

- 교육 효과를 높이고 능력을 계발시킬 때도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면, 정보나 자극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뇌를 지루한 상태에 놓이게 해야 한다. 일정한 기간 동안 단조로운 생활을 하게 해서 자극이나 정보에 굶주리게 하면 약간 의 지식만 가르쳐줘도 마른 모래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흡수하게 된다.
평소라면 지루하기 그지없는 단조로운 자극조차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예전부터 학문이나 기예를 배울 때 기숙사에 살게 하거나 합숙을 시켰던 까닭은 집단생활을 익히게 하고 경쟁을 시킨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것이 외부와의 접촉을 줄여 쓸데없는 정보를 차단하는 방법이라는 이유가 더 컸다. 일종의 터널을 만들어 한 점의 빛만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정보 입력이 지나치게 많으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의욕이 저하되기 쉽다. 정보 입력을 줄이면 스스로 정보를 요구하 고 신속히 흡수하게 된다.
감각 차단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은 신경계를 혼란시키기에 바 람직하지 않지만, 적당하게 자극을 낮추면 의욕이나 관심을 높이 는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특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유 지하는 데는 정보 입력을 줄이는 방법이 유용하다.
정보가 많이 들어오지 않으면 사람은 적은 양의 정보만으로 생각하게 된다. 공백 부분을 생각하거나 상상해서 채우려고 한다. 감각 차단과 같은 극도의 결핍 상태에 놓이면, 공백 부분을 메우 기 위해 생각이나 상상이 폭주해서 환각이나 망상에까지 이르게 되지만, 적당하게 정보 입력을 줄이면 오히려 차분히 생각하고 사 물을 돌이켜볼 수가 있다.
아이를 교육시킬 때나 재능을 키울 때도 정보 입력의 원리는 매 우 중요하다. 성과를 빨리 내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주면,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은 흥미와 의욕을 잃어버린다. 그보다 더 나 쁜 일은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상대의 주체성을 빼앗아 꼭두각시나 로봇으로 만들고 싶으면 항상 정보 과잉 상태에 있게 하고, 뇌를 정보 처리로 허덕이게 해서 아무것도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으면 된다.
실제 세뇌에는 이런 방법이 곧잘 사용된다. 끊임없이 음악이 나 녹음테이프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방에 있게 하고, 이른 아침부 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통을 주고 불안감을 조성해 서 한시도 편안하게 있지 못하게 하여 뇌를 지치게 만들고 집중력 을 빼앗는다. 그리고 지칠 대로 지쳐 처리 능력이 저하된 시점에 사정없이 대량의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면 뇌는 용량 초과 상태에 놓여 주체적으로 정보를 선택할 수 없게 되고, 생각하는 힘과 저항하는 힘을 잃게 된다.
- 이런 상황은 방대한 정보에 노출된 상태에서 지친 몸으로 살아 가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겹친다. 성장하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 다. TV, 인터넷, 게임, 만화, 휴대전화.... 아이들은 지금 홍수 처럼 넘쳐나는 정보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자라고 있다. 아이들의 주체성이나 창조성, 생각하는 힘이 약해지고 있는 데는 이런 환경 의 영향도 부정할 수 없다.
과잉된 정보에 노출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고 항 상 무언가를 해야 된다면 좀비와 같은 아이들이 되기 쉽다. 현대 사회에서는 싫든 좋든 이런 환경이 실현되고 있다.
스튜던트 애퍼시student apathy(오랜 수험 공부에서 해방된 학생에게 보이는 무기력증) 가 등장한 1970년대 이후로 젊은 사람들은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다. 이것이 강제수용소를 체험한 사람들의 증상과 비슷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집에서 생활하면서도 뇌가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다.
- 정보와 감각이 차단되고 정신적인 소모가 심해지면 뇌는 극한 상태에 놓이게 되고 유입되는 정보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게다 가 애착 불안이나 의존적인 경향이 강하고, 스트레스나 트라우마 를 안고 있고, 사회에서 고립되고 적응하지 못하던 사람은 더욱더 강한 확신을 지닌 존재에 매달리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지배받는 것에 오히려 안심하게 된다. 격리나 정보 차단은 그런 경향에 박 차를 가하고 강력한 의존과 지배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컬트 교단이나 사상개조소에서 흔히 시행되는 자아비판이나 상 호비판은 애착 불안을 자극해서 자기애를 철저하게 상처 입히고 자기 부정을 강화시킨다. 이런 과정이 심어주려는 근본적인 스키마 schema (인식 체계)는 자신에게는 아무 가치도 없지만 위대한 지도자나 이념에 따르면 멋진 의미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산도 육체도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완전한 심리 조작이 성 립하게 된다.
테러리스트나 스파이의 마음을 돌려서 협력자로 길들이는 경우 에도 종종 이와 같은 원리가 이용된다. 이대로는 절망과 고통과 죽음밖에 없는 엄격한 현실을 충분히 알게 한 뒤 마음만 먹으면 살아남아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구원을 약속하는 것이다. 상대를 몰아붙일 수 있을 만큼 몰아붙이고, 절망의 바닥에 내동댕 이친 다음에 갑자기 태도를 부드럽게 해서 따뜻한 손을 내밀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 신앙을 지닌 사람이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어떤 때라도 희망이 약속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것이다.
암시요법의 효과가 치료자에 대한 일종의 '신앙'에서 생겨나듯 이, 믿음은 강력한 암시 효과에 의해 '기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 다. 객관적인 소견보다 "넌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돼", "당신은 좋 아질 것 같은데", "벌써 병이 낫기 시작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와 같은 말이 때때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이것은 의사나 교사라면 종종 경험하는 일이다. 뛰어난 임상가나 교육자일수록 이 원리를 능숙하게 활용해서 희망을 약속하고 실제 그것을 현실로 만든다.

- 테러리스트나 전쟁 포로, 중대사건의 용 의자를 신문할 때도 이제는 힘으로 굴복시키는 방법이 통용되지 않게 되었고 새로운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상대가 적의와 불신에 가득 차있더라도 오히려 공감과 나름의 경의를 갖고 접근해 신뢰 관계를 쌓음으로써 마음을 열게 하는 수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오 랫동안 격리되고 고독과 불안에 시달렸던 사람은 부드럽고 친밀 한 감정에 굶주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다운 대우를 받게 되 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마음을 터놓게 되고, 라포가 성립되고, 속 마음까지 터놓는 사이가 되면 서서히 마음을 흔드는 작업을 시작 한다. 맨 처음 마음이 닫혀있을 때는 어떤 면에서 보면 마음의 준 비가 단단히 되어 있기 때문에 분노를 표출하고 공격을 가해도 움 쩍달싹하지 않지만, 마음을 허락한 상태에서 갑자기 치고 들어오 면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다. 질문하고 대답하라며 재촉해서 상대가 말을 얼버무리고 주저하면, 격앙된 목소리로 몰아세운다. 이는 모두 계산된 행동이지만 상대는 갑자기 허를 찔려 어안이 벙벙해 져 어쩔 줄 몰라 한다. 때로는 상대를 화나게 했다는 것에 동요하 고, 신문관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쥐꼬리만 한 정보를 넘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노린 것이며 일단 신문관에게 양보를 하게 되면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 심리 조작이란 주제는 현대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 하려는 주체성이 있는가를 묻고 있다.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현실 감이 희박한 불균형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과연 스스 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외부에서 들 어오는 정보나 공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 리로 생각하고, 체험만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에 비춰보아서 판단하고, 냉철하게 행동할 수 있는가? 요즘 들어 이런 물음이 한층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개인이 주체적으로 책임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더욱더 어려워 지는 시대가 되었다. 범람하는 정보의 바다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서는 항상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고, 더불어 자신에 게 안전 기지가 되는 존재들을 소중히 할 필요가 있다. 방어를 단 단히 하고 경계태세를 강화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환상의 적과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불안에 쫓겨 과잉반응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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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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