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니는 훗날 대학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말할 때, 저 말이 과연 사실일까 자문하지 말 아요. 그보다는 그 말이 어느 경우에 해당할까 자문하세요." 그것은 그 의 지적 본능이고, 정신의 고리로 진입하는 자연스러운 첫 단계였다. 어떤 사람이 방금 무슨 말을 했든 그 말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체하 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이스라엘군이 그에게 던진, 군의 이런저 런 역할에 어떤 성격이 가장 잘 맞겠는가, 하는 질문은 사실 터무니없 었다. 그래서 대니는 좀 더 생산적인 질문을 던졌다. 면접관이 직관으 로 신병을 평가하다가 평가를 망치는 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 그는 이스라엘 청년들의 성격을 점쳐달라는 요청을 받은 셈이었 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의 성격을 점치려는 사람들과 관련해 새로 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감을 버리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는 구체적인 문제를 의뢰받았다가 포괄적인 진실을 발견한 것이다.
- 심리학에서 유사성을 판단하는 방법과 관련한 대표적인 몇 가지 이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물리적 거리에 기초한다는 점 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생각이든 감정이든 두 가지 대상을 비교할 때, 우리는 둘이 얼마나 가까운지 묻는다.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그 둘 이 머릿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은 마치 두 점이 일정한 관계를 맺고 지 도에, 격자에, 또는 다른 물리적 공간에 존재하는 것과 비슷했다. 아모 스는 그 점이 궁금했다. 그는 버클리대학 심리학자 엘리너 로시 Eleanor Rosch가 쓴 논문을 읽었다. 로시는 1960년대 초에 사람들이 대상을 분 류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탁자를 탁자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색깔을 그 고유의 색깔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논문에 따르면, 로시는 사람들에게 색깔들을 비교하여 서로 얼마나 비슷한지 판단하라고 했다.
- 사람들의 판단은 이상했다. 예를 들어, 마젠타가 빨강과 비슷하다고 해놓고 빨강은 마젠타와 비슷하지 않다고 했다. 아모스는 그 모 순에 주목해, 그것을 일반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북한이 중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그렇다고 했 다. 그런데 중공이 북한과 비슷하냐고 묻자,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은 텔아비브를 뉴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뉴욕은 텔아비브와 비 슷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103은 100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100은 103과 비슷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장난감 기차는 진짜 기차와 아주 비 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기차는 장난감 기차와 비슷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종종 아들이 그 아버지와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아 버지가 그 아들과 닮았냐고 물으면 질문한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쳐 다봤다. 아모스는 이렇게 썼다. "유사성 관계의 방향성과 비대칭성은 직유와 은유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우리는 '칠면조가 호랑이처럼 싸운 다'고 말해도 '호랑이가 칠면조처럼 싸운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호 랑이는 투지로 유명해서, 직유에서 표현 대상인 원관념보다 그것을 설 명해주는 보조관념으로 사용된다. 시인은 '내 사랑은 바다처럼 깊다' 고 말하지 '바다는 내 사랑처럼 깊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다는 깊이를 나타내는 전형이기 때문이다."
- 결정을 내릴 때 실제 대상과 원하는 이상을 놓고 유사성을 비교해 판단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발상이다. 이때 구체적인 비교 방법은 눈에 띄는 특징을 세는 것이다. 그리고 특징이 얼마나 두드러져 보이느냐는 그 특징이 부각되는 방식에 따라 조작될 수 있어서, 두 대상의 유사성 감지 역시 조작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두 사람이 서로 닮았다고 느끼기를 바란다면, 그 둘을 공통점이 강조되는 맥락에 놓아둘 수 있다. 미국 대학생 두 사람이 미국에서는 서로를 아주 낯선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둘이 2학년 때 토고로 해외 연수를 떠 나 거기서 만난다면 서로를 놀랍도록 비슷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둘 다 미국인이라니!
- 둘이 비교되는 맥락을 바꾸면 특정한 특징을 누르고 다른 특징 을 표면에 띄울 수도 있다. 아모스는 "흔히들 분류는 여러 대상 사이 에서 유사성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반대 시각도 제시했다. "유사성은 대상을 분류하는 방식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이처럼 유사성 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원인적 측면과 파생적 측면이다. 유사성 은 대상을 분류하는 기초도 되지만, 적용된 분류에 영향을 받기도 한 다." 바나나와 사과는 우리가 그 둘을 과일이라 부르기로 합의한 탓에 더 닮아 보인다. 즉 어떤 대상이 일정한 근거로 같은 부류로 묶인 뒤에 는 같은 부류라서 서로 더 닮아 보인다. 이처럼 어떤 대상을 분류하기 만 해도 전형성이 강화된다. 따라서 전형성을 약화시키고 싶다면, 분류를 없앨 것!
- 아모스의 이론은 유사성 판단과 관련한 기존의 대화에 영향을 미친 정도가 아니라 대화를 완전히 장악했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은 죄다 아모스 주위에서 그의 말을 경청할 뿐이었다. 리치 곤살레스 가 말했다. "아모스가 과학에 접근하는 방식은 점진적 방식이 아니었 어요. 껑충껑충 뛰어가는 도약이었죠. 우선 이미 존재하는 패러다임을 찾아요. 그리고 그 패러다임의 보편적 명제를 찾죠. 그런 다음 그걸 무 너뜨려버려요. 아모스는 기존 것을 부정하는 식으로 과학을 했어요. 그러면서 부정적negative 이란 말을 많이 썼죠. 나중에 보니 그 방식은 사 회과학에 매우 효과적이었어요." 아모스는 그런 식으로 시작했다. 타 인의 실수를 수정하거나 되돌리는 식으로. 그런데 알고 보니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실린 심리학자 에크하르트 헤스 Eckhard Hess의 글이 대니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그의 눈길 을 사로잡지 않는 글이 있을까마는). 온갖 종류의 자극에 동공이 팽창 또는 수 축한 실험 결과를 설명한 글이었다. 이를테면 남자에게 옷을 대충만 입은 여자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동공이 팽창했다. 여자에게 잘생긴 남 자 사진을 보여줘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반대로 상어 사진을 보여 주면 동공이 수축했다(희한하게도 추상미술 역시 같은 효과를 냈다). 맛있는 음료를 주면 동공이 팽창했고, 레몬주스나 퀴닌이 들어간 음료처럼 내키지 않는 음료를 주면 동공이 수축했다. 그리고 맛이 미세하게 다른 오 렌지 탄산음료 다섯 가지를 주면, 각 음료에서 느끼는 만족의 정도가 동공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음료를 가장 좋아하는지 의식 적으로 정확히 파악하기도 전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반응했 다. 헤스는 이렇게 썼다. "맛의 차이가 워낙 미미해서 사람들이 의식적 으로 정확히 가리지 못할 때도 동공 반응을 관찰하면 정확한 선호도 를 알아낼 수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인 셈이다. 대니는 블룸 밑에서 일하던 심리학자 잭슨 비티 Jackson Beatty를 블룸의 최면 실험실에서 빼내, 그와 함께 사람 들에게 숫자 여러 개를 기억하라든가 서로 다른 음높이를 구별하라든 가하는 다양한 정신 작업을 수행하게 한 뒤 동공 반응을 관찰하는 실 험을 시작했다. 그들은 눈이 머리를 속이는지, 나아가 머리도 눈을 속 이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다시 말해 "강도 높은 정신 활동이 어떻게 지 각을 방해하는지" 궁금했다. 실험 결과, 동공 크기를 변화시키는 것은 감정 흥분만이 아니었다. 정신노동도 같은 효과를 냈다. 그들 말대로 “ 생각과 지각은 서로 적대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 1969년 가을에는 아모스와 대니가 모두 히브리대학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들은 둘이 모두 깨어 있는 시간에는 보통 함께 있었다. 대니 는 아침형이라 그를 따로 만나려면 점심시간 전에 만나야 했다. 반면 에 아모스와 시간을 보내려면 늦은 밤에나 가능했다. 그 중간에는 둘 이 세미나실로 사라져버려, 만나기 힘들었다. 두 사람은 세미나실을 전 세 낸 듯 이용했다. 세미나실 밖으로 더러는 서로에게 고함치는 소리 가 들려왔지만 보통은 크게 웃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추측만 할 뿐이지만, 대단히 웃긴 이야기인 것만은 틀림없었 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든 간에 극도로 은밀한 이야기인 것도 같았다. 다른 사람은 그들 대화에 절대 초대받지 못했다. 문에 귀를 대보면 히 브리어와 영어를 동시에 쓴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둘은 두 언 어를 섞어 썼는데, 특히 아모스는 영어를 쓰다가도 감정이 격해지면 늘 히브리어로 돌아갔다.
한때 히브리대학의 두 스타가 왜 거리를 두고 있을까 의아해하던 학생들이 지금은 성격이 극과 극인 두 사람이 서로 공통점을 발견 한 것도 모자라 어떻게 정신적 단짝이 되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두 사람의 연구에 모두 참여했던 대학원생 디사 카프리 Ditsa Kaffrey는 이 렇게 말했다. "두 분이 죽이 잘 맞으리라고는 정말 상상하기 힘들어 요." 대니는 어렸을 때 홀로코스트를 겪었고, 아모스는 거드름을 피우 기 좋아하는 이스라엘 토박이였다. 대니는 항상 자기가 틀리다고 확신 하는 사람이었고, 아모스는 항상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었다. 아모스는 가는 파티마다 생기를 불어넣었지만, 대니는 파티에는 가지 않았다. 아모스는 자유롭고 격식이 없었지만, 대니는 격식에서 벗어나 려고 노력할 때조차 자신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려온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모스를 만날 때면 그를 마지막으로 본 지가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바로 전에 만난 시점부터 이야기를 이어가면 그만이었다. 대니를 만날 때면 어제 그를 만났어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느 낌이 들었다. 아모스는 음치였지만 히브리 전통 노래를 신나게 부르곤 했다. 대니는 노래하면 감미로운 목소리가 나올 텐데도 그런 목소리를 발견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았다. 아모스는 비논리적 주장에 철퇴 를 가하는 사람이고, 대니는 비논리적 주장을 들으면 '거기에서 어떤 진실이 있을까?' 묻는 사람이었다. 대니는 비관적이었다. 아모스는 낙 천적일 뿐 아니라 낙천적이 되려고 무척 노력했다. 비관주의는 어리석 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즐겨 하던 말이 있다. "비관적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면, 나쁜 일을 두 번 겪게 된다. 걱정할 때 한 번, 실 제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한 번." 히브리대학 동료 교수 한 사람은 이 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정말 달랐어요. 대니는 항상 상대에게 호감을 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죠. 본인은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면서도 그 랬어요. 그런데 아모스는 왜 호감을 사고 싶어 안달인지 이해하지 못 했어요. 예의는 지켜야겠지만, 호감을 사고 싶다고? 왜?" 대니는 매사 에 아주 진지했고, 아모스는 틈만 나면 농담을 던졌다. 히브리대학이 아모스에게 박사 학위 심사를 맡겼을 때 아모스는 인문학에서 소위 논 문이란 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는 논문을 정식으로 퇴짜 놓기보다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가 이 분야에서 괜찮은 논문이라면, 나도 상관 하지 않겠어. 이 학생이 분수 나눗셈만 할 수 있다면!"
이 외에도 아모스는 많은 사람에게 그들이 만난 가장 무서운 사 람이었다. 어떤 지인은 "사람들은 아모스 앞에서 토론하기를 겁낸다" 고 했다. 자기들이 어렴풋이 감지했을 뿐인 단점을 아모스가 콕 짚을 것 같아서다. 아모스의 대학원생 제자인 루마 포크 Ruma Falk는 자기 차로 아모스를 집까지 태워줄 때 아모스가 운전을 트집 잡을까봐 너무 겁이 나서 아모스더러 직접 운전하라고 우겼다. 그런 그가 이제는, 내용을 오해한 학생이 던진 비판 한마디에 길고 어두운 자기 의심의 수렁에 빠질 정도로 비판에 민감한 대니와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마 치비단구렁이를 가둔 우리에 흰쥐를 떨어뜨려놓고 한참 뒤에 와보니, 쥐는 말을 하고 뱀은 구석에 똬리를 튼 채 넋을 놓고 있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대니와 아모스의 공통점을 보여주는 사례도 많았다. 우 선, 둘 다 동유럽 출신 랍비의 손자였다. 둘은 사람들이 감정에 휩쓸리 지 않은 '정상' 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큰 관심을 보였다. 둘 다 과학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단순하면서 막강한 진실을 찾고 싶었 다. 대니는 복잡한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단일 질문으로 알아보는 심리'를 하고 싶었고, 아모스도 연구는 복잡해 보여도 타고난 소 질은 어떤 문제든 끝없는 헛소리를 깨부수고 단순한 핵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정신세계가 놀랄 정도로 비옥한 축복받은 사람 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이었지만 하느님을 믿지 않았 다. 그런데도 사람들 눈에는 둘의 차이점만 보였다.
- 두 사람의 근본적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난 사례는 연구실이다. 대니의 조교였던 다니엘라 고든은 이렇게 기억했다. "대니 교수님 연구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한두 문장 휘갈겨놓 은 메모지며, 이런저런 서류며, 책이 도처에 널렸죠. 책은 전에 읽던 곳 이 그대로 펼쳐져 있어요. 한번은 제석사 논문이 13쪽에서 펼쳐진 채 로 있더군요. 거기까지 읽으신 모양이에요. 그곳에서 복도를 따라 연 구실을 서너 개 지나면 아모스 교수님 연구실이 나오는데, 그곳은 텅 비었죠. 책상에 놓인 연필 한 자루가 전부예요. 대니 교수님 방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어요. 너무 어지러워서요. 아모스 교수님 방에 서도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어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주변 사람들 은 한결같이 의아해했다. 어떻게 두 사람이 그렇게 잘 어울려 다닐까? 어떤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대니는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하는 사람이 에요. 아모스는 절대 그럴 일이 없는 사람이고요. 그런데도 대니와 아 주 잘 지내죠. 그게 정말 놀라워요.'
-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지 한참 되었을 때, 한번은 대 니가 우울증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의기소침해 길을 걸으며 말했다. "아이디어가 바닥났어." 아모스는 그 순간도 재미있어 했다. 둘의 친구 인 아비샤이 마갈릿이 그때를 회상했다. "대니가 '난 끝났어, 아이디 어가 바닥났어' 하니까 아모스가 막 웃으면서 그러더라고요. '100명이 100년 동안 내놓는 아이디어보다 자네가 1분 동안 내놓는 아이디어 가 더 많아." 같이 앉아서 글을 쓸 때면 둘은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다 시피 해서, 어쩌다 둘을 흘끗 본 사람이라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미 시간대학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이렇게 말했다. “둘은 타자기 앞 에 붙어 앉아 글을 썼어요. 상상이 안 가요. 다른 사람이 내 이를 닦아 주는 느낌이랄까요." 대니의 말을 빌리면 이랬다. "우리는 머리를 같 이 쓰고 있었어."
- 두 사람은 여전히 학계에 농담을 던지듯 첫 번째 논문인 <소수법칙에 대한 믿음>을 쓰면서, 통계상 정답이 있는 문제를 마주한 사람 들이 통계 전문가처럼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통 계 전문가도 통계 전문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통계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보고도 통계적 사 고를 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논리적 사고를 하는 걸까? 살면서 마 주하는 많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블랙잭 카드 카운팅을 하듯 생각하 지 않는다면,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두 사람은 다음 논문에서 이 질문에 부분적인 답을 제시했다. 그 논문의 제목을 말할 것 같으 면............, 아모스는 제목에 대해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그는 논문을 시 작하기 전에 제목부터 정하는 성격이었다. 제목을 정해야 논문에 무엇을 쓸지 감이 잡혔다.
그런데 그와 대니가 정한 제목은 난해했다. 이들은 적어도 처음에 는 학계의 게임 규칙을 따라야 했는데, 그 게임에서는 너무 쉽게 이해 되면 우습게 보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판단 과정을 설명하 는 자기들의 첫 번째 시도에 '주관적 확률: 대표성 판단 Subjective Probability: A Judgment of Representativeness'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주관적 확률이 무슨 뜻 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주어진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을 개인이 직접 추측한 확률이다. 한밤중에 10대 아들이 손을 흔들며 대문으로 들 어서는 모습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혼잣말로 '저 녀석이 술을 마셨을 확 률은 75프로'라고 한다면, 그것도 주관적 확률이다. 그런데 '대표성 판단'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두 사람은 이런 말로 시작했다. "주 관적 확률은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 우리가 도달하는 결론, 우리가 제시하는 설명은 새 직장에서의 성공 여부, 선 거 결과, 시장 상황 등 불확실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 판단에 기초한 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그리고 이 외에 많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간은 정확한 확률을 계산하도록 타고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체 우 리 머리는 무엇을 한 걸까?
두 사람이 제시한 답은 이렇다. 우리 머리는 확률 법칙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짐작 법칙으로 대체한다. 대니와 아모스는 이를 '어림짐작heuristic'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들이 탐구하고 싶은 첫 번째 어림짐작에 '대표성representativeness'이란 이름을 붙였다.
사람들은 판단을 할 때, 판단 대상을 머릿속에 있는 어떤 모델과 비교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저 구름은 내 머릿속에 있는 다가올 폭풍 모델과 얼마나 닮았는가? 이 궤양은 내 머릿속에 있는 악성종양 모델과 얼마나 가까운가? 제러미 린은 내 머릿속에 있는 미래의 NBA 선수 그림에 잘 들어맞는가? 호전적인 저 독일 정치 지도자는 내 머릿 속에 있는 집단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 사람과 닮았는가? 세계는 단지 무대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는 카지노이며, 우리 삶은 확률 게임이다. 그리고 삶의 여러 상황에서 확률을 계산할 때면 곧잘 유사성, 즉 대표 성을 판단한다. 사람들 머릿속에는 '먹구름', '위궤양', '집단 학살을 자 행하는 독재자', 'NBA 농구선수' 같은 모집단마다 그것과 관련한 대 표적 이미지나 느낌 등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구체적 사례를 그 런 모집단과 비교한다.
- 아모스가 즐겨 하던 말이 있다. 무엇을 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러 니까 파티에 와달라거나 연설을 해달라거나 하다못해 손가락이라도 좀 움직여달라거나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기꺼이 그럴 마음이 있어도 절대로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말라. 아모스는 하루만 두고 보라고 했 다. 어제 승낙했을 부탁이나 제안 중에 하루만 더 고민했더라면 거절 했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시간을 빼앗는 일을 다루는 그의 규칙은 빠져나오고 싶은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기 도 했다. 어쩌다 지루한 회의나 칵테일파티에 갇힌 사람이 도망갈 구 실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모임에서 빠져나오고 싶을 때 아모스가 사 용하는 규칙은 한마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기였다. 아모스는 일단 걸어보라면서, 그러면 내가 얼마나 창조적이 될 수 있는지, 얼마나 빨 리 핑계를 찾아낼 수 있는지 깜짝 놀랄 것이라고 조언했다. 번잡한 일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사회적 요구에 대처하는 그의 전략과 거의 같았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은 무언가를 괜히 버렸다고 자책하지 않는 다면, 아직 버릴 게 남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아모스는 명백히 중요해 보이는 일이 아니라면 내팽개쳤고, 그렇게 냉정한솎아내기를 거쳐 남 은 대상에만 관심을 쏟았다. 이때 뜻밖에 버리지 않고 놔둔 게 있는데, 유진에 머물던 거의 끝 무렵인 1972년 봄에 대니와 대화를 나누며 단 어 몇 개를 대충 타이핑해놓은 종이였다. 아모스는 무슨 이유에선지 이 종이를 보관해두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지어내 앞날을 예측한다.
사람들은 예측은 아주 조금만 하고 해명은 빠짐없이 한다. 사람들은 좋든 싫든 불확실한 상황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사실에 들어맞는 해명은 전부 받아들인다.
불길한 조짐은 벽에 빤히 쓰여 있다. 다만 잉크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미 가진 정보를 얻으려고 애쓰면서 새로운 지식은 피한다.
인간은 확률론적 우주에 내던져진 결정론적 장치다.
이런 조합에서는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미 일어난 모든 일은 불가피한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 우리는 사적으로도, 일과 관련해서도, 언뜻 보기에 당혹스러운 상 황과 곧잘 마주칩니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고, 실험 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건을 이해할 만한 사건으로, 또는 그럴 법한 사건으 로, 또는 자연스러운 사건으로 만들어주는 설명이나 가설 또는 해석 을 보통은 아주 짧은 시간에 생각해냅니다. 무언가를 지각할 때도 이 와 똑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심지어 무작위로 뽑은 자료에서도 사 람들은 일정한 유형이나 경향을 찾아내는 데 선수예요. 그런데 이처 럼 시나리오, 해명, 해석을 만들어내는 데는 탁월한 반면에,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가늠하거나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은 심각하게 떨어집니다. 일단 특정한 가설이나 해석을 갖다 붙이면, 그가 설이 실현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과장하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가 아주 힘들어지죠.
아모스는 점잖게 이야기했다. 평소처럼 "역사책에 꾸며낸 이야 기가 한둘이 아닐 텐데도 책이 그렇게 지루하다니 정말 기가 막히지"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강의는 당시 청중에게 어쩌면 그 보다 더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사학자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모 스와 대니가 설명한 인지 편향에 쉽게 빠졌다. 아모스는 "역사적 판단 은 데이터를 직관적으로 해석하는 더욱 광범위한 부류에 속한다"고 했다. 역사적 판단은 편향되기 쉽다. 아모스는 당시 히브리대학에서 그 가지도하던 대학원생 바루크 피시호프가 실시한 연구를 예로 들었다. 리처드 닉슨이 중국과 소련을 방문하겠다는 놀라운 발표를 했을 때, 피시호프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가능한 결과를 주고 확률을 부여해 보라고 했다. 이를테면 닉슨이 마오쩌둥 중국 주석을 적어도 한 번 만 날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공동 우주 탐사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 소 련에 있는 유대인 집단이 닉슨과 대화를 시도하다 체포될 것이다 등 등. 그리고 닉슨이 귀국한 뒤에 피시호프는 똑같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항목을 다시 제시하고, 예전에 각 항목에 확률을 어떻게 부여했었는지 기억해보라고 했다. 이들의 기억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이들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실제로 부여했던 확률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을 부여했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일단 결과를 알고 나면, 처음에 예측할 때보다 그 결과의 예측 가능성을 훨씬 높게 생각한 다는 뜻이다. 아모스가 버펄로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몇 해가 지나, 피 시호프는 이 현상에 '사후 판단 편향hindsight bia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모스는 역사학자들 앞에서 그들이 하는 일의 위험성을 설명했 다. 역사학자는 (관찰하지 않았거나 관찰할 수 없는 많은 사실을 무시한 채) 관찰 한 사실은 무엇이든 받아들여, 확신 있게 들리는 이야기에 끼워 맞추 는 성향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지 못하는데도, 막상 일이 일어 난 뒤에는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그 일을 설명하는 때가 너무나 많 습니다. 추가로 나온 정보도 없는데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설 명하는 이런 '능력'을 보면, 우리의 논리적 추론에는 비록 쉽게 감지 할 수 없지만 중요한 허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 리는 실제보다 덜 불확실한 세계가 있다고 믿고, 자신을 실제보다 덜 똑똑하다고 생각하게 되죠. 왜냐하면 오늘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어 떤 추가 정보 없이 결과만 알게 된 내일 설명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미리 결정된 게 분명하고, 따라서 미리 예측할 수 있었어야 했으니까 요. 그런데 예측하지 못했으니, 세상이 불확실해서라기보다 우리 지적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라고 보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나중에 불가피해 보이면, 그 일을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자책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죠. 불길한 일이라면 애초부터 벽에 쓰여 있었을 테니 까요[성경에서, 벨사살 왕이 잔치를 베풀었을 때 사람 손이 나타나 벽에 불길한 일을 암시하는 글을 쓴 일을 빗댄 말 - 옮긴이]. 문제는 그 잉크가 눈에 보 이냐 하는 것입니다.
- 비단 스포츠 아나운서나 소위 정치 전문가만이 자기가 한 이야기를 대대적으로 수정하거나, 초점을 옮겨서 자기 말이 경기 결과나 선거 결과와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 자도, 아마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채, 임의의 사건에 엉터리 질서를 부 여했다. 아모스는 이를 '잠행적 결정론 creeping determinism'이라 불렀다. 그 는 이런 성향 때문에 치러야 하는 많은 대가 중 하나를 이렇게 적었다. "과거를 당연하다는 듯이 보는 사람이라면 미래는 온통 깜짝 놀랄 일 뿐일 것이다."
- 과거에 일어난 일을 엉터리로 바라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내다보기 어렵다. 그의 강의를 듣던 역사학자들은 물론 지난 현실의 파 편으로 사건을 설명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 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과거를 돌아보면, 지난 사건들이 예 상 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지금의 역사학자 가 볼 수 있는 것을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왜 보지 못했을 까? 비더만은 "아모스 강의에 참석했던 역사학자들이 하나같이 얼굴 이 하얗게 질려 돌아갔다"고 회상했다.
- 트라우마센터의 요청으로 레델마이어가 수술실에 들어온 직후, 의료진은 심장 문제를 자체적으로 진단했다. 적어도 진단했다고 생각 했다. 이 젊은 여성은 의식이 있어서, 과거에 갑상선이 과도하게 활발 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갑상선 활동이 과도해지면 심장박 동이 불규칙해질 수 있다. 그래서 레델마이어가 들어왔을 때, 다른 의 료진은 그에게 불규칙한 심장박동의 원인을 조사해보라고 말할 필요 를 느끼지 못한 채 치료로 넘어갔다. 따라서 레델마이어가 단지 갑상 선기능항진증 약을 투여했어도 수술실의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 았을 것이다. 그런데 레델마이어가 사람들을 제지했다. 잠깐! 잠깐 기 다려보라. 생각을 점검해보자. 혹시 몇 가지 사실만으로 쉽고 그럴듯 한,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엉터리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 닌지 확인해보자.
-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그는 나중에 “갑상선기능항진증은 불규칙한 심장박동의 전형적 원인이지만, 불규칙한 심장박동의 드문 원인" 이라고 했다. 그 젊은 여성이 과도한 갑상선호르몬 분비의 이력이 있 다는 말을 들은 응급실 의료진은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만으로, 갑상 선이 과도하게 활발해져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졌다고 속단했다. 그러 면서 통계적으로 불규칙한 심장박동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다른 요 인들은 따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레델마이어의 경험으로 보면, 의사들 은 통계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의 80퍼센트가 자기 환자에게 도 확률이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결혼하는 사람들의 95퍼센트가 50퍼센트의 이혼율이 자기에게도 해당한다고 믿지 않고, 음주운전자의 95퍼센트가 술에 취해 운전하면 정신이 온전한 상태로 운전할 때보다 사망 확률이 훨씬 높다는 통계가 자기에게도 적용된다고 믿지 않듯이 말이죠."
레델마이어는 응급실 의료진에게 이 여성의 불규칙한 심장박동 의 원인 가운데 통계적으로 더 타당한 것을 찾아보라고 했다. 바로 이 때 폐가 망가진 걸 알아냈다. 갈비뼈 골절과 마찬가지로 망가진 폐도 엑스레이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갈비뼈 골절과 달리 폐가 망가지 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레델마이어는 갑상선은 무시하고 망가 진 폐를 치료했다. 그러자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정식으로 갑상선을 검사했다. 갑상선호르몬 분비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이 여성은 갑상선이 문제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레델마이어가 말했 다. "대표성 어림짐작의 전형적인 경우였죠. 모든 것을 한 번에 깔끔하 게 설명해주는 단순한 한 가지 진단이 머릿속에 퍼뜩 떠오를 때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그때 잠깐 멈춰서 그 생각이 옳은지 따져봐야 해요."
머릿속에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항상 틀리다는 뜻이 아니다. 머 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필요 이상으 로 강하게 든다는 뜻이다. “제정신이 아닌 남자가 응급실에 들어왔는 데 오랜 알코올중독 이력이 있을 때, 조심하세요. '취했군' 하면서 경막하혈종을 놓칠 수 있으니까요." 
- 내가 치료한 뒤로 환자가 좋아졌다는 이유만으로 내 치료 덕에 환자가 좋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게 레델마이어의 생각이다. "많은 질병이 스 스로 억제되는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저절로 치료가 됩니다. 사람들 은 몸이 힘들면 치료를 받으러 오죠. 그러면 의사는 뭔가 해야 한다는 기분이 들어요. 환자에게 거머리를 올려놓았더니, 상태가 좋아져요. 그 러면 거머리를 계속 쓰겠죠. 항생제도 계속 과잉 처방해요. 귀에 염증 이 있는 사람에게 편도선 수술을 하죠. 다음 날 상태가 좋아지고, 치료 법이 대단해 보입니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면 우울하던 기분이 좋아 져요. 그러면 정신 치료가 정말 효과가 좋다고 확신하죠."
레델마이어는 다른 문제에도 주목했다. 이를테면 그가 다니던 의대의 교수들은 데이터를 자세히 살피지 않고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였다. 폐렴을 앓는 노인이 병원을 찾아오면 심박 수를 측정해, 분 당 75회이니 지극히 정상이군, 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폐렴 이 많은 노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이유는 전염력 탓이다. 면역 체계가 그에 반응하다 보면 고열, 기침, 오한, 가래가 발생하고 더불어 심장박 동이 빨라진다. 몸이 병균과 싸우려면 심장에서 혈액을 평소보다 빠르 게 펌프질해야 하기 때문이다. "폐렴에 걸린 노인의 심박수가 평상시 수준이면 안 돼요! 치솟아야 맞아요!" 레델마이어의 말이다. 폐렴에 걸 린 노인이 심박 수가 평상시 수준이라면 심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심박수 측정기를 별생각 없이 읽으면, 모든 게 정상이 라고 오판하기 쉽다. 의학 전문의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때도 바로 모든 것이 평상시처럼 보일 때다.
- 공교롭게도 '증거 기반 의학'이라 불리는 움직임이 바로 이때 토론토에서 본격화했다. 증거 기반 의학의 핵심은 의학 전문의의 직관을, 그러니까 명백한 데이터를 대하는 의사의 사고방식을 점검하는 것이 었다. 소위 의학 상식 중에는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놀랄 정도로 엉터 리도 있었다. 예를 들면, 레델마이어가 의대에 입학한 1980년에는 심 장마비 환자에게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는 부정맥이 나타나면, 통상 적으로 부정맥 억제제를 처방했다. 그런데 7년 뒤 레델마이어가 의학 과정을 마칠 무렵에는 심장마비 환자 중에 부정맥을 억제한 환자는 그 렇지 않은 환자보다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누 구도 의사들이 여러 해 동안 조직적으로 환자를 죽음으로 이끈 처방 을 택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증거 기반 의학 지지자들이 카 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가 그 답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의 연구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나 의사의 직관적 판단에 심각한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이 의학 실험의 증거는 이제 무 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레델마이어도 그 증거에 주목하기 시 작했다. "묻혀 있던 그 분석을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 전문가 의견으 로 많은 확률이 조작되고 있다는 분석이었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에는 오류가 있었는데, 그것이 환자에게도 적용됐어요. 그리고 사람들 은 자기가 저지르는 실수를 인식하지 못했죠. 모든 게 근본부터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언짢고, 조금 실망스럽고 그렇더군요."
- 레델마이어는 아모스와 첫 공동 논문을 낸 뒤에 다른 아이디어가 더 떠올랐다. 곧이어 두 사람은 오후에 아모스의 연구실이 아니라 밤에 아모스의 집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아모스와 함께 일하면, 일이 일이 아니었다. 레델마이어가 말했다.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어요. 그냥 노는 거예요." 레델마이어는 가슴 깊은 곳에서, 내 삶을 바꿀 사람 과 함께 있다고 직감했다. 아모스의 입에서 수많은 문장이 튀어나왔고, 레델마이어는 그 문장들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훌륭한 과학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을 보되, 누구도 말한 적 없는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다.
아주 똑똑한사람과 아주 어리석은 사람은 한 끗 차이일 때가 많다. 순종해야 할 때 순종하지 않으면, 창조력을 발휘해야 할 때 창조력 을 발휘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일어난다.
- 좋은 연구를 하는 비결은 항상 힘을 좀 남겨두는 것이다. 몇 시간 낭비할 줄 모르면 몇 년을 낭비한다.
더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다고 증명하기보다 더 쉽다.

- 행복한 사람이 불행을 상상하는 방식은 불행한 사람이 어떻게 달리 행동했으면 행복할 수 있었는지를 상상하는 방식과 다르다. 후회 를 피하려는 욕구는 다른 감정을 피하려는 욕구보다 강하다.
사람들은 결정을 내릴 때, 효용을 극대화하기보다 후회를 극소화하려 했 다. 이 사실에서 출발해 새로운 이론을 찾는다면, 뭔가 나올 것 같았다. 아모스는 어떤 식으로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 느낄 후회를 상상한 뒤에 후회가 가장 적을 것 을 선택하는 전략을 쓴다고 말하곤 했다. 
- 아모스와 대니는 후회를 연구하면서, 확실한 결과가 제시된 도박에서 사람들은 그 확실 성에 꽤 큰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목격했었다. 그런데 이제, 불확실성 의 정도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새롭게 목격했다. 어 떤 결과가 나올 확률이 90퍼센트인 내기와 10퍼센트인 내기를 제시 하자, 사람들은 전자가 후자보다 그 결과가 나올 확률이 9배인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이들은 내부 조정을 거쳐, 90퍼센트 확률이 실제로 는 90퍼센트보다 약간 낮은 것처럼, 그리고 10퍼센트 확률은 10퍼센트보다 약간 높은 것처럼 행동했다.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확률에 대응한 것이다.
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가능성이 희박할수록 감정은 더 강해졌다. 한 뭉치 돈을 따거나 잃을 확률이 10억 분의 1이라고 하 면, 사람들은 그 확률이 1만 분의 1인 것처럼 행동했다. 돈을 잃을 확률 이 10억 분의 1일 때는 필요 이상으로 걱정을 하고, 돈을 딸 확률이 10 억 분의 1일 때는 필요 이상으로 희망을 품었다. 극히 낮은 확률에 이 런 감정을 보이다 보니 위험을 대하는 평소의 감각이 뒤바뀌어, 가망 없는 이익을 추구하느라 위험을 추구하고 손실이 생길 확률이 극히 낮 은데도 위험을 회피했다(복권과 보험이 팔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니가 말했 다. "일단 그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부풀려져. 딸아이가 늦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걱정뿐이잖 아." 그리고 그 걱정을 없애느라 필요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곤 한다.
- 사람들은 발생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모두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취급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 하는 이론을 만들려면, 현실에서처럼 각 확률에 감정 '가중치를 부여 해야 했다. 그렇게 하면 보험과 복권이 팔리는 이유뿐 아니라 알레의 역설까지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대니와 아모스는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발견 했다. 이들의 이론은 기대효용이론이 설명하지 못한 것을 모두 설명 한 반면에, 효용이론이 전혀 예상치 못한 점 즉 위험 감수 유도가 위험 회피 유도만큼이나 쉽다는 점을 암시했다. 이를 위해서는 선택에 손실 을 포함시키면 그만이었다. 베르누이가 이 토론을 시작한 이래로 200년이 넘도록 지식인들은 위험 추구를 호기심으로 간주했었다. 대니와 아모스의 이론이 암시하듯이 위험 추구가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다면, 왜 진작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아모스와 대니는 이제 그 이유를 인간의 결정을 연구하는 지식 인들이 엉뚱한 곳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지식인들은 주 로 경제학자였고, 경제학자는 돈과 관련한 결정에 집중했다. 아모스와 대니는 논문 초고에 이렇게 적었다. "(보험을 제외하고) 그런 맥락에서 내 린 결정은 거의 다 주로 긍정적 전망을 수반하는 것이 생태적 사실이다." 경제학자들이 연구한 도박은 대부분의 저축이나 투자 결정처럼, 서로 다른 이익을 놓고 선택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익과 관련해서는 위험 회피 성향을 보여, 도박보다는 확실한 이익을 택했다. 대니와 아모스는 그 이론가들이 돈 이외에 정치와 전쟁, 나아가 결혼을 연구했다면 인간 본성에 대해 다른 결론을 내놓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정치와 전쟁에서 마주치는 선택은 골치 아픈 인간관계에서 그렇듯이 대개는 달갑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대니와 아모스는 이렇게 썼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 정치적 영역, 전략적 영역에서 내린 결정의 결과를 금전적 이익과 손실처럼 쉽게 측정할 수 있었다면, 의 사결정자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매우 다른 시각이 생겼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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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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