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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4.10 마음의 지혜 1
  2. 2024.03.31 사람을 안다는 것
  3. 2024.03.18 물욕의 세계 1
  4. 2024.03.12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7
  5. 2024.03.12 필링 굿 1
  6. 2024.02.01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2
  7. 2024.01.17 느끼고 아는 존재 1
  8. 2024.01.11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2
  9. 2024.01.04 집단착각 2
  10. 2023.12.31 노래하는 뇌 3

마음의 지혜

심리 2024. 4. 10. 08:02

- 내향적인 사람이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낯을 가린다는 건 분명 한 오해입니다. 내향성이냐 외향성이냐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 의 자원이 허락하는 선 안에서는 타인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싶어 합니다. 단지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 외부에 쓸사 회적 자원이 적을 뿐입니다. 대신 내면에 충분하게 집중할 수 있지 요. 그래서 자기 시간을 갖는 동안 스스로를 성찰하고 세계를 통 찰합니다.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집중력을 얻으면 다시 세상에 나 와 열심히 일할 수 있고요. 아마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 중에는 내 향적인 성격이 많을 거예요. 기업의 입사 시험을 치르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홀로 있는 시간의 집중력을 이용하여 그처럼 높은 장애물을 잘 넘어서는 것 또한 내향적인 사람들의 장점이니까요.
부족한 사회적 자원을 잘 배분하여 사용하는 법은 경험을 통해 충분히 익힐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명한 개그맨들 중에 내향적 성격의 소유자가 꽤 많답니다. 말을 잘하고 장난을 잘 치니 가까운 동료들도 외향성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요. 국 민 MC라 불리는 유재석 씨만 하더라도 방송에서 스스로 분명한 내향성임을 언급한 적도 있고요.

-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왜 남편은 끊임없이 부인의 외모를 폄하하는가'라는 주제로 재미있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기혼 자라면 꽤 공감하시는 주제일 겁니다. 꽤나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보통의 남편들도 부인의 외모를 폄하하는 경우는 많으니까요.
데이비드 버스는 상대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심연의 두려 움이 외모 폄하로 이어진다고 밝혔습니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 어나면 아내는 자녀에게 무한한 애정을 갖게 되지요. 남편은 상대 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고 무의식 중에 자신이 버려질 수도 있다는 불안을 갖게 됩니다. 그 불안의 마음이 '당신은 밖에 나가봤자 더 이상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다'라는 왜곡된 언어로 표출 되는 것이죠.

- 누구에게나 행복의 순간들은 존재합니다. 소소하지만 기분 좋고, 배가 간질거리며 미소가 절로 나는 바로 그런 순간 말이지요. 의미, 인정, 애착, 연대감, 공감 등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상황은 모 두 다르지만 분명한 건 행복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하나도 없고, 삶의 만족도가 평균 이상이어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정의 내릴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의외로 행복의 순간은 완벽한 세팅과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나쁜 게 완전히 사라진 순간도 아니었어요.
큰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아이를 안고 있 으면 충만해지고, 쏟아지는 일을 쳐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동 료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에 눈물이 핑 돌며, 오늘 있었던 화나는 일에 분개하다가도 술잔을 기울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데에 가슴이 찡해집니다. 그렇게 좋은 순간은 어느 곳에나 있고 우리는 날마다 행복을 경험합니다.
행복에 대한 정의도 어렵고,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행복은 '나쁜 게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 '좋은 게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 심리학은 오래전부터 '행복'이라는 주제를 탐구해 왔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행복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 으로 접근했어요. 행복을 인간이 이루어야 하는 인생의 미덕이나 숭고한 가치로 여긴 것이지요. 그런데 최근 10여 년 사이에 굉장히 많이 달라졌습니다. 행복을 인간이 목표로 삼아야 할 가치로 보지 않고 삶에 필요한 사건이나 경험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거 의 학문적인 개념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경우는 많지만 행복 과 관련된 빠른 변화는 아주 이례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길어진 인간의 수명을 꼽는답니다.
-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만날 때마다 500원씩, 500원씩, 열 번을 주고 스무 번을 주고 100번을 주어봤자 조카의 얼굴에서 짜증을 걷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조카의 머릿 속엔 이런 생각이 강하게 잡혀 있을 테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만 원은 되어야 용돈으로 쳐주는 거 아닌가?'
여기서 '준다'는 것을 '부킹 프라이스booking price'라고 합니다. 사실 이 말은 인지심리학자나 행동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학 술 용어는 아닙니다. 학자들에게 통하는 일종의 은어인 셈이죠. 부 킹이란 말은 자주 들어보셨지요? 주로 골프장이나 무도회장에서 즉석 만남을 할 때 많이들 쓰셨을 텐데 여기서 부킹은 '장부에 기입 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킹 프라이스란 조카가 자신의 마음속 장부에 '이모 에게 용돈 1회 받았음'이라고 기입할 만한 최소 금액을 뜻해요. 만 원보다 적다면 아예 받지 않은 것으로 친다는 말입니다.
이 부킹 프라이스는 사람마다 달라요. 그러니 상대의 부킹 프라 이스를 잘 알고 있다면 어느 정도 유리하게 적용할 수 있겠지요?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즐기지 않습니다. 뛰어난 농구 선수였던 서장훈 씨도 어느 방송에서 분명히 말했지요. 훈련은 고통스럽다고요. 농구 선수로서의 인생이 즐겁고 기분 좋지 않았으며 하루 하루 너무나 힘들었다고 말이에요.
저도 동의합니다. 프로의 일상은 고통스럽습니다. 실제로 노동 자가 일하는 순간, 학생이 공부를 하는 순간, 주부가 가사 일을 하 는 순간, 연구자가 논문을 쓰는 순간의 뇌를 찍어보면 어느 부분에 서도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물론 일을 끝낸 직후의 상태는 다릅니다. 결과에 대한 보람과 의미가 보상처럼 주어지니까요. 연구자는 논문이 잘 나와서 기분 이 좋고, 직장인은 프로젝트 결과를 보고 뿌듯해하며 운동선수는 경기에 이긴 성취감에 다시 훈련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 나 우리가 일로써 행복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 인 데다가 프로이기까지 한 사람이 습관처럼 '난 내 일이 너무 재밌 어'라고 말한다면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합니다. 솔직하지 못한 자기 위선일 수도 있으니까요.
- 일이 정말 즐거운 때도 있습니다. 커리어 초반에는 누구나 그랬 지요. 소위 거지같이 일을 해놓고도 흐뭇하게 바라보며 '오, 그럴 듯한데?' 하며 자신감 뿜뿜 올라갔던 기억,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자다가 이불을 발로 차고 싶지만 그 시절 우리는 알 수 없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 '뿜뿜'의 이름은 행복의 한 종류인 성장감입니다. 신입사원, 신입생, 초임교사..........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배워가던 초창기, 우리는 이 성장감이라는 행복으로 수많은 시련을 버텨냈어요. 커리어 초반부에만 느낄 수 있는 특별 한 행복이지요.
만약 지금 하는 일에 익숙해진 나머지 성장감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성장감을 꿔와야 한다고 말하 곤 합니다. 내 일이 아닌 다른 곳에서요.

- 번아웃burn out 증후군은 일을 많이 해서 오는 게 아닙니다. 오 로지 그 일만 해서 오는 거예요. 직장인만 번아웃에 시달리는 게 아닙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전업주부도 학생도 번아웃 증후군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럼 성장감을 느끼기 위해 기꺼이 초보자가 되 어볼까요?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 런데 여기서 또 고민이 생깁니다. 문화나 예술은 진입장벽이 높고 취미나 레저를 하자니 돈이 좀 듭니다. 저렴하면서도 효과가 큰방 법이 있습니다. 바로 공부입니다. 단, 내 직업이나 생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공부를 시작하는 거예요. 엔지니어라면 역사 공부를, 심 리학자라면 동식물 공부를 해보는 거지요. 이렇게 하다 보면 성장 감이 가파르게 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 주변에는 다른 사람보다 많은 일을 처리하는데도 지치지 않고 언제나 활기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마치 스위치를 켜고 끄듯 일의 종류를 자주자주 바꿀 줄 안다는 것 입니다. 인지심리학자들은 그 능력을 'voluntary switch', 즉 자발 적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자발적 전환에 능한 사람은 번아웃과 관 련된 무기력에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반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 지한 가지 일만 꾸준하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멀리서 지켜볼 땐 마치 꽤나 심지가 굳은 인물 같아 보여요. 그러나 심리학자인 저는 그의 상태가 걱정됩니다. 그가 일하는 시간은 고통을 누르는 과정일 테니까요.
매일 저녁, 일이 끝나면 물에 젖은 솜처럼 몸과 마음이 지쳐버 리나요? 그땐 내가 일을 대하는 방식을 고민해 보세요. 한 우물만 파는 게 늘 좋은 건 아닙니다. 가끔은 자발적으로 스위치를 켜고 끄는 지혜도 알아야 하니까요.

- 관계가 오래되면 될수록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의미는 달 라집니다. 그 사람 덕분에 이런 일만큼은 확실히 일어나지 않는다, 혼자라면 감당하기 어려울 불안과 공포, 물질적인 어려움을 상대 로 인해 막아낸다는 마음이 확실해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신하 며 더욱 의미 있는 관계로 깊어지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로 인해 즐겁고 행복한 마음만을 사랑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얼굴은 다양하고 만남의 종류 나 관계의 지속성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꾸곤 해요. 접근 동기에만 의존하여 정의내리는 사랑은 주로 젊은 시절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지요.

- 누군가가 정의하는 사랑은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나와 다른 상대의 취향을 인정하고 참아주는 것일 수도 있습 니다. '내가 그의 걱정을 줄여주고, 그가 나의 불안을 줄여주는 것' 이 사랑일 수도 있고요. 아마 나이가 든 분일수록 후자 쪽에 공감 할 것 같아요.
이런 관계는 비단 부부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비즈니스 에서도 마찬가지거든요. 한 기업이 다른 기업과 처음 거래를 시작 하는 단계에서는 접근 동기가 작용합니다. 이곳과 함께 협업하면 이런저런 좋은 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지요. 반면 오랜 시간이 지나 꾸준히 관계를 유지한 거래처와의 관계는 회피동기가 더 크게 작용됩니다. "이 업체와 함께 일하면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돼!"라는 믿음이 형성되기 때문이에요.

- 청년 헤겔 철학에서 출발해서 악셀 호네트에 의해 구체화된 개념 중에 '인정 투쟁'이라는 용어가 있어요. 사람의 정체성은 인정을 받으면서 형성되는데,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오로지 인정을 받을 때만 정체성이 성립되고, 그것을 얻기 위해 투쟁한다는 말이에요. 부러움 어린 시선, 좋은 평판 등 타인의 평가를 통해 자아를 충족 시키는 삶이지요. 비슷한 이야기로 자크 라캉의 "타자의 욕망을욕 망한다"가 있습니다. 철학 용어들이 조금 생소하고 어렵지요? 이 골치 아픈 개념들을 김정운 선배는 한마디로 명쾌하게 표현했습니다.
- 일단, 일만 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감탄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실하고 능력 있고, 착하기까지 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일이 저절로 따라붙지요. 이런 사람들은 전형적으로 일을 아주 많이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매일 같은 일을 하며 같 은 사람만 만나면 위험에 취약해집니다.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조금씩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내가 작은 친절을 받으면 고맙다는 인사가 되돌아옵니다. 그 감사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감탄하는 데 도움을 주지요. 그 감탄이 나를 안전하게 해주고요.
내가 같은 행동을 해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상대의 반응을 통해 주변의 사람들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

- 부부가 정치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건 상당히 골치가 아픈 상황입니다. 미국 심리학자들은 지지하는 정당의 성향이 정 반대라면 결혼하지 말라고 아예 대놓고 말하곤 해요. 정치관은 선 거 날 누구에게 표를 찍느냐의 문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 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거든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은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 에 분노합니다. 보수적인 사람은 잘 지켜져야 하는 미풍양속이나 전통이 흐트러지는 것에 분노하지요. 분노의 코드가 정반대인 사 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힘들어요. 아무리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이 같아도, 아무리 즐기는 취미가 비슷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정치 성향으로 예를 들었지만 이것은 성격의 5대 특성에서 개 방성'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외향성, 우호성, 성실성, 신경성 같 은 나머지 네 가지 성격 특성들은 정반대라고 해도 상호 보완이 가 능합니다. 하지만 개방적인 사람과 보수적인 사람이 오랜 시간 좋 은 관계를 유지하기란 힘들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보편적인 의견입 니다.
- 그러니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보다는 나에게 좋은 사람을 찾는게 더 맞는 말이겠지요? 그 사람이 아무리 훌륭해도 보수적인 나에
비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면, 혹은 그 반대라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다행히 나와 비슷한 수준의 개방성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고 칩 시다. 개방성은 두 사람을 빠른 속도로 친밀하게 해주지요. 세계를 보는 눈이 비슷하니 코드도 잘 맞고 동지의식도 생겼을 것입니다. 이때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이 '정직'이에요.
같은 개방성과 보수성을 가지고 있어 친해졌는데, 한쪽이 부정 직하거나 혹은 선택적으로 정직한 모습을 보이면 그 관계는 최악 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 인간이 돈을 발명한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습니 다. 어떤 전통의 기원을 찾아 과거 문건을 열심히 뒤져보아도 확실 한 근원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어요. 돈이 대표적이지요. 대체 인간이 왜 돈을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미지수입니다. 오죽하 면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가 돈을 일컬어 '인류 최대의 사 기극'이라고 표현했을까요? 먹지도 못하는 종이 쪼가리나 금속 조 각 몇 개를 생선이나 쌀과 맞바꾸다니요. 이건 엄청난 사기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종이와 금속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요?
현대를 사는 우리는 누구 하나 돈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지 않습 니다. 인류는 돈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징체계를 믿게 하기 위해 결국 사회를 바꾸어놓았으니까요. 농업혁명을 일으키고 종교나 국가 시스템을 만들고, 문자와 각종 기술을 발전시켜 온 모든 역사 는 어쩌면 돈이라는 것의 가치를 설득시키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 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돈이란 인류 최대의 사기극인 동시에 인류 최대의 신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 불안은 참 신기한 심리예요. 불안할 때 맞으면 진짜 아픕니다. 불안할 때 외로우면 지구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고요. 불안할 때 화가 나면 걷잡을 수도 없고, 불안할 때 배고프면 당장이라도 아사할 것 같지요. 이처럼 불안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나쁜 감정 을 극대화시킵니다.
실제로 대학원 수업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해요. 인간에게 불안이라는 심리가 사라진다면 우리 심리학자들 중 절반 은 당장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나머지 절반은 내일모레쯤 내려놔야 한다고요. 심리학은 불안을 먹고사는 학문이니까요.
- 불안에 관련된 연구는 상당히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불안을 확장시키는지도 쉽게 알 수 있어요. 불안은 불확실 할수록 더 커집니다. 인간이 불확실한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가치 의 불확실을 견디지 못해 돈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었을 정도입니 다. 덕분에 인간의 원초적인 불안이 상당히 줄긴 했어요. 우리도 수중에 어느 정도의 돈이 있으면 급격하게 불안이 감소되는 걸 느 낄 수 있잖아요. 하지만 개인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정 도로 돈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땐 다시 불안해지는 게 인간의 심리랍니다.

- 우리 뇌에서 분비되는 여러 신경 전달 물질중에 '아난다마이드anandamide'라는 화학 물질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행복'이란 뜻으로, 인간에게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유독 이 행복에 관련된 화학 물질이 많이 나오는 민족들이 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나 남아메 리카 사람들이에요. 이 나라 국민들은 정치적, 경제적 환경이 열악 해도 환하게 웃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요. 적게 소유해도 행복 해하고, 소박한 일상에서도 기쁨을 느낍니다. 어떤 슬픔이 닥쳐도 낙천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은 참 근사한 민족성이라는 생각 도 듭니다.
그런가 하면, 아난다마이드가 유독 적게 나오는 민족도 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인이 대표적입니다. 아예 하드웨어부터 가 쉽게 행복해지지 않는 뇌를 가지고 있다니, 우리 민족이 그토록 근면 성실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이 갑니다. 쉽게 만족이 되지 않으니 더 행복하고 좋은 미래를 위해 끝없이 일하고, 공부하고 발전해 온 게 아니겠어요?
유대인들의 성실함도 한민족 못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들 역시 아난다마이드가 적게 나오기로 유명한 민족 이라네요. 다시 말하자면, 한국인이나 유대인은 부킹 프라이스 자 체가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뜻이겠지요. 결국 쉽게 행복해지지 않 는 뇌를 가진 우리들이 돈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1) 만족할 때까지 큰 금액을 쓴다
2)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소비의 빈도를 높인다
여기서 위시리스트를 촘촘하게 쪼개는 행위는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작고 소중한 소망이 없다면 큰돈을 벌고, 비싼 소비를 해야만 비로소 만족감을 느낄 것입니다. 몸은 상하고 관계도 망가지고 매일 전쟁 같은 경쟁 속에서 더 많은 돈을 추구하지만 결국 뇌를 만족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런 결말을 위해 힘들게 돈을 버는 건 아니잖아요.
- 우리 한국인이 브라질이나 나이지리아 사람처럼 기질적으로 낙 천적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면서도 일 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요. 바로 부킹 프라이스 를 낮추는 거예요. 내 위시리스트에 7000원짜리 설렁탕 한 그릇', '15000원짜리 통닭', '4000원짜리 커피가 있다면 하나하나 맛보고, 감상하고, 느낄 때마다 행복해질 것입니다. 잘만 먹으면 하루에 세 번이나 행복해질 수 있겠네요. '천만 원짜리 명품가방'이라는 하나 의 위시리스트보다 훨씬 이득 아닐까요?
행복을 느끼는 주체는 나고, 행복한 삶을 설계하는 것 또한 나 자신입니다. 지혜롭고 꼼꼼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고 말겠지요. 자본주의 사회는 부킹 프라이스를 막연하게 높이라고 요구합니다. 휘말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기쁨을 찾기 위해 더더욱 필요한 것이 바로 위시리스트랍니다.

- 기업이 스스로 부를 축적하는 방식이 윤리적이고 선하다는 것을 알렸을 때 직원들에게 좋은 변화가 나타난 다는 연구 결과도 있거든요. 착한 회사의 직원들은 심지어 물자와 전기까지 아껴 쓴다는 거예요. 우리들의 회사의 자원 또한 소중하 게 여기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걸까요?
반대로 기업의 비윤리적인 행적이 기사에 노출될 때마다 직원 들이 물자를 낭비하는 횟수가 늘어난다는 연구도 존재합니다. 그 러고 보면 우리 뇌는 돈의 양만 문제 삼지 않는 것 같아요. 돈을 버 는 방식이나 윤리성 또한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돈을 벌거나 쓸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돈에 집착한다거나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찜찜하다면 그 돈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부터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 자살을 선택한 분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유형의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소위 잘 참는 것이 특기인 분들이지요. 난봉꾼이 자살하는 건 본 적이 없어요. 참아내고, 참아내고, 또 참아냈으나 더 이상 못 참는 지경에 이르 렀을 때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어느 날 문득 삶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느낌. 그것은 '힘들다'와 는 다른 감정입니다. 힘들다는 건 무언가 많이 하고 있다는 뜻이거 든요.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참아왔으나 더 이상 견디 기 어려운 상태까지 왔을 때, 사람들은 죽음을 결심합니다. 그러니 무작정 '참아야 하느니라'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시겠지요? 지나친 인내는 실제로 생명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 그저 눌러 참기만 하면 여러 가지 안 좋은 것들이 저절로 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첫 번째로 오는 것은 '우울'입니다. 우울은 내가 못나서 느끼는 감정이 절대 아닙니다. 우울은 지적 능력이 높은 존재만이 느낄 수 있거든요. 나의 통제 능력이 떨어지는데 참 아야만 할 때, 불편함이 환기되지 않고 가득 차 있을 때 뇌가 보내 는 신호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자동차에 주유를 하면 오일게 이지가 올라가고, 기름이 떨어지면 오일게이지는 내려갑니다. 그 시그널을 무시하면 차는 별안간 멈춰버립니다. 우울이라는 심리 는 그 위험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 우리는 자살의 원인이 절망이라고 많이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면 절망은 자살과 그다지 가까운 심리는 아닙니다. 절망은 '희망이 꺾인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무망은 '다른 희망을 만들어낼 동력이 없 는 상태예요. 언론에서는 "기초 수급 연금이 끊긴 후 절망하여 자 살하였습니다"라는 표현이 종종 나오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지요. 제대로 심리를 분석하면 절망이 아니라 무망이거든요. 절망은 좋 은 걸 가지고 싶은데 그 욕구가 끊긴 상태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아내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무망은 나쁜 걸 막 아내려는 욕구, 좋은 걸 가지고 싶은 욕구, 두 가지 모두 없는 상태 입니다. 만약 두 욕구 중 어느 한 욕구라도 강하게 있다면 자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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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사람을 안다는 것

심리 2024. 3. 31. 09:30

우리는 누구나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지식이나 사회경험이 많다면 현명해지기 쉬울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여는 일은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학교에서는 입시와 취업을 위한 기술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삶의 가장 중요한 활동을 수행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졌고, 깊은 우정의 결핍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서서히 비인간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사회적 기술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관계의 기술말이다. 우리가 일상의 미세한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를 얼마나 잘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이 크게 좌우된다. 이런 사회적 기술의 기본은 다른 사람이 지금 겪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을 온전한 못ㅂ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일종의 기량이고, 구체적인 기술의 총합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우리는 이것을 눈치라고 부르며, 독일사람은 헤르젠스빌둥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는 다른 사람의 온전한 인간성을 바라보도록 마음을 훈련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알기 위한 탐구를 시작했다면,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혹은 이 사람의 이력서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 그는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 그는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 그는 자기의 현실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이런 질문이야말로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을 때 알고 싶어하는 궁금한 것들이다.

어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일반적인 대화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대화를 정말 잘하기는 어렵다. 다음은 좋은 대화를 나누는 기술이다.
- 주의를 100% 기울여 집중해라
- 능동적으로 대꾸해라
- 친숙한 화제를 꺼내라
- 상대방을 관객이 아닌 작가로 만들어라
- 대화가 끊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상대의 말이 끝난 것을 충분히 기다린 후 대꾸하는 것이 좋다.)
- 루핑(상대가 한 말을 반복하면서 의미를 재확인)해라
- 조산사가 되라
- 보석진술(의견이 다른 두 사람이 공통으로 갖는 의견)로 돌아가라
- 드러나지 않은 차이를 찾아라
- 상대방의 말에 숟가락을 얹지 마라

사람들은 깊이 있는 대화가 사람을 고통스럽거나 취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럴까? 깊이 있는 질문은 사람들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 당신이 변화에 적응했던 시기는 언제인가?
- 당신이 인생에서 정말 잘 되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 가장 자신있는 것은 무엇인가?
- 오감 중에서 어느 감각이 가장 강력한가?
- 외롭게 지내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적이 있는가?
- 나이가 들면서 한층 분명해진 게 무엇인가?

자기와 인생경험이 다른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개개인마다 겪는 수많은 인생경험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개인에게는 신비로운 깊이가 있다. 서로 다른 문화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므로, 낯선 문화 앞에서는 존중하는 마음과 경외감을 품어야 한다. 그럼에도 타인을 바라보고 타인의 말을 듣는 능력을 높이는 기술을 연마하는 데 힘쓰면 타인의 관점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사람을안다는것 #데이비드브룩스 #인간관계 #인생책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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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스턴 처칠을 낳기 전의 제니 제롬Jennie Jerome 이야기도 유명하다. 젊은 시절의 제니는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글래드스턴 William Gladstone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가 영국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글래드스턴의 경쟁자인 벤저민 디즈레일 리Benjamin Disraeli와 저녁 식사를 한 뒤에 제니는 자기 자신이 영국에 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래드스턴 같은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디즈레일리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좋다는 이야기다.
-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망상 하나는 모든 사람을 특정한 유형 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친절한 사람, 사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열정이 넘치는 사람, 주변에 무관심한 사람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물론 어떤 사람을 두고 잔인하기보다는 친 절하다거나 어리석기보다는 현명하다거나 무관심하기보다는 열정 이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반대로도 말할 수 있고....... 그러나 어 떤 사람을 친절하거나 현명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 악하거나 어리석거나 둘 중 하나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 은 늘 인간을 이런 식으로 분류한다. 이는 잘못이다. 사람은 강과 같다. 물은 늘 똑같다. 그러나 모든 강은 어떤 데서는 폭이 좁고 물살이 빠르 다. 또 어떤 데서는 폭이 넓고 수면이 잔잔하다. 맑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고 진흙탕이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도 똑같다. 모든 사람 은 모든 성품으로 성장할 싹을 가지고 있다. 그런 싹을 언제는 하나만 드러내고 언제는 두 개 드러낸다. 어떤 사람이 어떤 때는 전혀 그 사람 같지 않을 때가 자주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동일한 사람이다.' (톨스토이)
- 뇌 과학을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개인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축 과정이 얼마나 근본적인지 보여주겠다. 어떤 방을 둘러보는 것과 같은 아주 간단한 행동을 예로 들어보자. 이 행동은 자기가 무 언가를 창조한다는 느낌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듯 느낄 뿐이다. 자, 이번에는 눈을 뜬다. 빛의 파 도가 밀려온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본 것을 기록한다. 의자가 있고, 그림이 있고, 바닥에 먼지 뭉치 하나가 굴러다닌다. 마치 옛날식 카 메라 같다. 즉 카메라 셔터가 열리고 빛이 밀려 들어와서 필름에 영상이 기록된다.
그러나 이는 인지 과정이 실제로 진행되는 방식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두개골이라는 뼈로 만들어진 어두운 금고 안에 갇혀 있다.
- 뇌가 하는 일은 망막과 시신경을 거쳐서 시각 피질의 통합층에 다 다른 매우 제한된 양의 정보를 가지고 세상을 최대한 이해하는 것 이다. 한 사람의 감각이 세상의 한 장면을 찍은 저해상도 스냅 사진 을 제공하고, 이 사람의 뇌는 그 허접한 사진 한 장으로 고화질의 장편영화를 만든다.
이를 위해서 시각계는 그 사람이 이미 아는 것을 그 앞에 놓인 장 면에 적용하는 식으로 세상을 구축한다. 즉 이 사람은 '이것이 무엇 과 비슷할까?'나 '지난번에 내가 이것과 똑같은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다음에 내가 무엇을 보았지?'와 같은 질문을 쉬지 않고 던지고 또 자기가 바라보기를 기대하는 일련의 모델들을 투사한다. 그 런 다음에 눈은 마음이 기대한 바를 제대로 바라보는지 확인하고 그다음에 그 내용을 보고한다. 요컨대 사람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행동은 데이터를 받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예측하고 수정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라는 말이다.
신경 과학자인 아닐세스Anil Seth는, 인지는 "생성적이고 창의적인 행위"이며 "객관적인 외부 현실을 수동적으로 등록하는 것이 아 니라 행동 지향적으로 구축해나가는 것"이라고 썼다. 또 다른 신경 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이 언급했듯이 "과학적인 증거에 따르면,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는 것들은 대체로 세상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지 세상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소수의 신경 과학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 모든 과정이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뇌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썼음직한 방대하고 복잡한 소설을 쓰는데, 우리는 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 아서 밸푸어 Arthur Balfour는 영국의 정치가로 밸푸어선언 Balfour Declaration으로 유명하다. 밸푸어의 친구 존버컨John Buchan은 밸푸어 를 두고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망설이지 않고 지목할 수 있 는사람"이라고 했다. 밸푸어의 특별한 화술은 멋진 문구나 경구를 줄줄이 읊는 게 아니다. 그는 “토론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타 인에게서 잠재력을 발견해 대화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칭찬은 계 속 이어진다.
밸푸어는 수줍은 사람이 머뭇거리며 뱉은 말에서도 예상치 못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파고들어서 자기가 인류의 지혜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느끼게 했다. 전쟁이 끝나던 해에 나는 가끔 미국인 방문객을 칼튼가든으로 데리고 가서 밸푸어가 주최하는 점심 식사에 함께했는데, 그즈음의 일을 지금도 감탄하며 기억한다. 그는 손님이 하는 말의 뜻 을 헤아리고, 손님이 우연히 뱉은 단어의 중요한 의미를 포착했으며, 손님이 최선으로 발언하게끔 격려했다. 그렇게 해서 손님의 발언은 주최자의 도움으로 무한하게 확장되었다. 그렇게 손님들은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은 신체적인 존재감을 제공할 수 있다. 컬럼 비아대학교의 의사이자 연구원인 마사 웰치 Martha Welch는 나와 대 화를 나누던 중에 '협력적 조절co-regulation'의 힘을 강조했다. 두 사 람이 신체적으로 가까이 있고 또 서로를 믿을 때, 그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가볍게 껴안았을 뿐인데도 서로의 몸과 몸 사이에 무언가가 전달된다. 몸속 내장기관들이 진정되고 심박수 가 조절되며, 웰치가 높은 수준의 미주신경 긴장도higher vagal tone '라 고 부르는 상태가 된다. 이는 내장이 안정적일 때 나타나는 자연스 러운 현상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높은 수준의 미주신경 긴장도를 즐기는 사람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구성하게 된다. 은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그렇다. 신경 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How Emotions Are Made』에 썼다.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는 것이 당신이 느끼는 것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 반대다. 당신이 느끼는 것이 보고 듣는 것을 바꾼다.'
똑같은 장면이라도 잔뜩 겁을 집어먹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 람은 장면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우리의 귀는, 인간의 목소리를 포 함하는 중간 범위의 진동수가 아니라, 진동이 높거나 낮은 음, 즉 날 카로운 비명이나 낮은 으르렁거림에 즉각적으로 초점을 맞추도록 조정돼 있다. 불안은 주의력을 특정한 영역으로 좁히고 시야의 폭 도 줄인다. 이와 다르게 행복한 감정은 시야를 넓혀준다. 그렇기에 타인을 신뢰하고 공감할 만한 존재로 보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세상을 한층 개방적이며 행복한 곳으로 바라본다."
효과적으로 공감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이 해와 신뢰를 얻었다. 극작가 손턴 와일더 Thornton Wilder는 이런 사람 이 세상에 드러내는 강렬한 존재감을 묘사한 바 있다.
예전에 받은 고통의 상처가 없다면 당신의 힘이 지금 어떻게 존재 하겠는가? 당신의 낮은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진 심으로 떨리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당신이 느낀 회한이다. 아무리 많 은 천사라도 지상에서 비참하게 실수하는 아이들을 설득하는 데는 인 생의 시련으로 단련된 지상의 한 명 인간보다 못하다. 사랑의 봉사는 오직 부상당한 병사만이 할 수 있다.
- 작가 C.S. 루이스는 "슬픔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했다. 슬픔은 기나긴 계곡을 흐르는 강이며, 한 번씩 굽이칠 때마다 늘 새 로운 풍경을 드러내는데, 이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슬픔과 고통의 시기에는 우리가 알던 가설이 통하지 않는다. 자기가 누구이 며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정한 가설들이 산산조각 나고 만다. 우리는 세상이 자비롭다고, 인생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또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므 로 좋은 일만 일어날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통과 상실 은 이 모든 믿음을 박살 낸다. 이와 관련해서 작가 스티븐 조지프 Stephen Joseph는 저서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 What Don't Kill Us』에서 말한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의미 체계에 맞선다. 트라우마는 이 체계와 모순되는 삶에 대한 실존적 진실을 증거로 우리에게 맞선다. 우리가 설정한 가정적인 세계를 붙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진실을 더욱더 부정하게 된다."
트라우마로 영구 손상을 입은 사람은 이미 일어난 일을 자기가 가진 심리 모델에 동화시키려고 한다. 반면 성장하는 사람은 새로 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이미 일어난 일을 수용하려고 한다.' 동화 시키는 사람은 뇌암을 이겨냈으니 앞으로도 건강하게 살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수용하는 사람은, 그 일이 자기를 바꾸어놓았다고, 즉 자기는 이제 암 생존자라는 새로운 지위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 런 변화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식까지 바꾸어놓을 것이다. 자기가 가졌던 심리 모델을 재구성할 때는 아래의 질문들을 떠올려야 한다.
*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 안전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안전하지 않은가?
*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나는 누구인가?
* 세상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 내가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 어떤 신이 이런 일을 허락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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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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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욕의 세계

심리 2024. 3. 18. 07:12

- 도파민은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아드 레날린 전 단계 물질이고 흥분을 일으킨다. 즉 도파민은 최 고의 행복 호르몬으로, 우리가 보상을 기대할 때 분비된다. 이를테면 어떤 일을 감행한 뒤 즐거움을 느끼거나, 등반할 때의 두려움이 순수한 쾌감으로 바뀌는 것은 도파민 때문이 다. 그리고 나쁜 예로는 도박이 있다. 그땐 이길 가능성이 있 다는 기대만으로도 흥분이 되고, 이 기대 때문에 카드를 계 속 뽑아들게 된다. 사람들이 중독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돈 을 딸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우리도 쇼핑하러 갈 때 보상을 기대하거나 스스로에게 보 상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구입 가능한 세일 상품, 즉 보상을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이것은 쇼핑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킥에 중독될 수 있다. 도파민은 최고의 행 복 호르몬으로, 규칙적인 성생활을 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 도파민 체계는 우리가 돈을 절약하려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이 뇌의 교활한 점이다. 예를 들어 특정 신발을 살까 말 까 고민할 때 우리는 지금 구입하는 것이 이성적인 행동인지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 반면 무의식은 훨씬 전부터 준비 태세를 갖추고, 그 신발을 신을 때 어떤 기분이 될지를 미리 느낀다. 트래킹화를 신고 돌로미트에 가서 해돋 이를 보며 감탄하는 모습이나, 섹시한 하이힐을 신고 캔들라 이트 디너에 앉아 있는 모습을(그곳에서는 일어설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아, 하이힐!) 상상한다. 만약 기분이 좋다면 도파민 이 야기한 행복감은 상식과 절제와 통장 잔고를 이기고, 결 국 우리는 그 신발을 사게 된다. 우리는 그 순간에 느끼는 기 분에 따라 물건을 구입하며, 그럼으로써 그 기분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려고 한다.
- 말하자면 이러한 킥은 이미 쇼핑 전부터 자동적으로 시 작되고 재현된다. 연구자들은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인 간의 뇌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쇼핑을 할 때 (카운터에서 돈을 지불할 때가 아닌 상점에서 구경할 때부터 이미) 대뇌 변연계의 측좌핵이 매우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 다. 그곳은 우리의 보상 체계를 담당하는 뇌 영역으로, 중 독일 때도 마찬가지로 활성화된다. 연구자들은 이런 사실 을 이미 1950년대에 발견했다. 그들은 쥐의 뇌에 전극을 이식한 후 단추를 누를 때 보상 중추가 자극받을 수 있게 했다. 그다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쥐들은 단추를 누를 때마다 최상의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배웠고, 이후 중독되 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쓸데없는 물건을 사게 되는 원인은 이러한 직접적인 충족감 때문이다. 
- 나는 우리를 쇼핑으로 이끄는 생화학적 과정을 추적하던 중 흥미로운 것을 하나 더 발견했다. 신경과학자 브라이언 넛 슨(Brian Knutson)'은 한 실험에서 어떻게 구매 결정이 이루 어지는지를 연구했다. 참가자들이 제품 사진을 보고, 이어서 가격을 보는 동안 뇌파가 측정되었다. 그런 다음 그 제품을 살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했다. 이 실험에서 제품을 볼 때는 뇌의 보상 센터가, 가격을 볼 땐 뇌의 전혀 다른 영역인 뇌섬(insula, 뇌섬엽)이 자극을 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뇌 섬은 몸에 통증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곳으로, '아프다'는 신 호를 보낸다. 실험 참가자들의 구매 결정은 행복과 고통 사이 의 균형 잡기였다. 만약 제품을 볼 때 느끼는 행복이 가격을 보았을 때 느끼는 고통보다 크다면 우리는 그것을 산다.
- “동독 출신의 한 할머니가 이야기하기 를, 옛날 구동독에서 셀룰라이트는 전혀 이야깃거리도 아니 었다고 했다. 여성은 누구나 셀룰라이트가 있고, 추하거나 예쁘다기보다는 단순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러다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사정은 달라졌다. 안티셀룰라이트 크림 광고가 동독 땅에 들어오자 지금까지 자신의 정상적 상태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여성들이 대부 분 자기 허벅지를 결점으로 보기 시작했다(그리고 당연한 말이 지만 수많은 여성이 그 크림을 샀다).  즉 광고를 통해 셀룰라이 트의 존재가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것을 약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 사사키 후미오는 자신의 저서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2015)에서 비싼 물건이 더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 점을 매우 근사하게 기술했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100유로의 반지를 사든, 500유로 혹은 3,000유로의 반지를 사든 상관없다. 행복의 크기는 매번 똑같다. 500유 로 하는 반지가 이보다 싼 반지보다 다섯 배 더 행복하게 만 들어주진 않는다. 우리는 다섯 배 더 많이 웃지 않고, 다섯 배 더 오래 행복하지 않다. 사치품의 가격에는 상한선이 없 지만 행복감은 한계가 있다. 만약 500유로 반지가 100유로 반지보다 다섯 배 더 행복하게 해준다면, 행복에 이르는 길 은 돈과 소유를 통해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부자가 되고 아무리 많은 물건을 쌓아놓고 있더라도 당신의 소유물이 당신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는 못할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쁨에는 한계가 있다."
- 불안 광고는 1920년대에 '발명'되었다. 기민한 광고업자들은 구매 전에 불안을 조장하는 말을 들려주면 물 건이 훨씬 더 잘 팔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여성들 에게 가장 쉽게 불안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 은 바로 나이들어 가며 추해지고 매력을 잃는 자신의 모습이 다(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외모와 더불어 여성에게 관심이 있 는 것이 대체 뭘까?). 여성들은 얼굴에 생긴 주름, 뱃살 그리고 셀룰라이트가 모든 불행의 시작이라는 말을 들었다. 안티링 클 크림과 수상한 체중 감량 제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소비를 이 렇게 핵심적으로 요약했다. “소비는 고도의 외로운 활동으 로, 지속적인 유대감을 형성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장 외 로울지도 모를 활동을 통해 소속감을 구입한다. 아이폰이나 브랜드 청바지, 프라이탁 가방도 우리의 내적 공허와 친밀 감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바 우만은 관계 자체도 점점 교환이 가능하고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말했다(데이팅 앱 '틴더'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유감스럽게도 이 철학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 다). 2017년 작고한 바우만은 냉정하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소비주의 문화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부수적 인 피해는 바로 사회적 연대다."

- 슈퍼마켓 실험
*모든 것은 매장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고객이 구입할 물 건을 담는 쇼핑카트와 장바구니의 크기는 지난 몇 년 사이 계속 커졌다. 여기엔 심리학적 트릭이 숨어 있다. 단지 두세 가지만을 사는 고객의 쇼핑카트는 텅 빈 것처럼 보이고, 이 렇게 빈 공간은 아직 사야 할 것이 더 남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을 마케팅 전문가 마틴 린드스트롬도 책 『바이올 로지(Buyology)』에서 언급했는데, 쇼핑카트를 두 배 더 크게 만든 후에 조사한 슈퍼마켓의 매출액은 19퍼센트나 증가했다
*슈퍼마켓 입구에는 소위 '스토퍼(stopper)'가 놓여 있는 경우 가 흔하다. 매장 입구에 세워둔 탁자나 선반을 가리키는데, 이 때문에 걸음 속도를 늦추고 거기 진열된 상품들을 둘러 보게 된다. 도시의 소형 매장의 경우, 손님들은 가게 안쪽까 지 잘 들어가지 않고 늘 가던 방향으로 가서 물건을 산다. 하지만 보행 속도가 느려질 때 상품에 대한 주의력은 높아 진다.
*매장에서 풍기는 냄새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업체도 점점 늘고 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얼마나 더 매출을 늘리고 다른 품목의 매출까지 증가시키는지를 실험한 연구들이 있다. 냄 새는 식욕을 돋우고 침샘을 자극한다. 이는 왜 호퍼(Hofer)36 가 지난 몇 년간 새로 빵 코너를 설치해 매장에서 직접 빵을 굽고 있는지의 확실한 이유가 된다(냉동 생지든 매장에서 직접 만든 빵이든 별 상관없다. 일반 사람들은 냄새로 구분하지 못한다). 가 고플 때 쇼핑하는 사람은 더 많이 사게 되고, 무엇보다 더 충동구매를 한다. 슈퍼마켓은 고객들이 "머리가 아닌 배 로 쇼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마케팅 연구자 파코 언더 힐(Paco Underhill)은 그의 책 쇼핑의 과학(Why We Buy)』(2021) 에서 매우 멋지게 표현했다.
*무료 시식은 판매율을 높인다. 현장에서 시식을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맛본 상품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와인이나 냉동식품 같은 제품에서 특히 성공적이다.
*수많은 슈퍼마켓에는 음악이 흐른다. 심지어 오스트리아에 는 오직 대형 유통업체 레베(Rewe) 그룹의 자회사 이를테 면 메르쿠르(Merkur), 빌라(Billa), 페니(Penny), 비파(Bipa)- 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자체적인 라디오 방송이 있다. 또 슈퍼 마켓 체인 슈파(Spar) 역시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게 편성한 자체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혼잡한 시간대, 즉 아주 많 은 손님이 일시에 몰려드는 시간대에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오전과 이른 오후에는 느린 음악이 매장에 흐른다. 여기엔 다 이유가 있다. 대개 보행 속도는 음악을 따라간다. 빠른 음악이 나오면 발걸음도 빨라지고, 느린 음악 을 들으면 매장 입구의 스토퍼와 동일한 효과가 발생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좀 더 느리게 걸으며 29퍼센트 이상 더 구매한다.
*슈퍼마켓의 선반 높이는 그 자체로 과학이다. 상품 배치도 그렇다. 눈높이에 진열된 상품들이 가장 잘 팔린다(제조업체 들은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돈을 더 낸다). 가장 안 좋은 자리는 머리 위쪽이다. 고객들은 대부분 진열대 위쪽에 놓인 제품 에 손이 닿을 정도로 키가 크지 않다. 어린 꼬마 고객은 엄 두조차 못 낼 것이다. 진열대 높은 곳에 있는 상품은 마진이 별로 크지 않다. 사고 위험을 막기 위해 중량이 가벼운 상품 들이 그곳에 배치된다. 가장 주목을 받는 품목은 언제나 눈 높이 선반에 안착된다. 낮은 선반에 진열된 상품보다 사람 들의 관심을 35퍼센트 이상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또 당연한 말이지만 슈퍼마켓에 커다란 마진을 가져다주는 제품도 그곳에 자리잡는다. 세일 상품을 찾는 고객이라면 시선을 아래에 두는 것이 좋다. 종종 그곳엔 저렴한 상품들이 진열 돼 있고, 이는 꼬마 손님들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상품 배치도 우연이 아니다. 몇몇 제품은 의식적이든 무의식 적이든 서로 연상된다. (바질로 만든) 페스토 소스와 스파게티 소스는 항상 누들 선반 바로 옆에 있고, 치약 옆자리는 늘 칫솔이 자리잡고 있다. 나는 최상의 결합을 어느 이탈리아 슈퍼마켓에서 보았다. 그곳엔 수많은 종류의 다이어트 제 품이 다양한 초콜릿너트 크림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이것 이 의도한 게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다. 하지만 의도한 것이라면 존경을 보낸다!). 마찬가지로 나는 늘 비파(Bipa) 에서 오로팍스 귀마개 옆에 매달려 있는 콘돔을 보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 역시 비파는 이웃들도 생각한다.
*이에 반해 정말로 중요한 품목, 다시 말해 가장 잘 팔리는 상품들은 나란히 배치하지 않고 매장 곳곳에 진열해놓는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흔히 누들에서 맥주 코너로(수요가 많은 이 두 제품은 식료품 카테고리에 같이 모여 있다) 이동하려면 온 매장을 가로질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냉장 장치는 대개 매장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업체는 고객들이 되도록 매장 구석구 석을 돌아다니며 가능한 한 많은 제품을 볼 수 있게 배치한 다. 이렇게 하면 경우에 따라 더 많은 충동구매를 하게 된다.
*색깔은 우리의 구매 행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자세히 들 여다보면 상품의 세일, 품절 표지판이라든가 특별 세일을 알 리는 광고는 모두 빨간색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붉은빛을 볼 때 좀 더 빠르고 활기차게 반응 하기 때문이다. 태고 이래로 색은 우리에게 경고 신호로 자 리잡았고, 우리의 주의력을 높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 도 흥미진진한 것은, 파란색이 믿음과 신뢰를 주는 색으로 간 주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행은 이 컬러를 자주 사용한다. 초록색은 좀 의외로, '친환경과 건강'을 연상시키는 색이다.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 사회(throwaway society)는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포장 상품은 지난 몇 년 새 엄청나게 증가했다. 정육점 판매원이 소시지를 직접 기계로 정교하고 깔끔하게 썰어주는 것보다, 마트 냉장고에서 플라스틱 용 기에 포장된 소시지를 사는 것이 더 위생적이라는 느낌이 든 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위생적이지 않고 오히려 반대다. 플라스틱 포장의 경우, 저온 유통이 중단되면 기름과 외부 열의 노출로 인해 우리 몸의 호르몬 체계를 교란하는 화학 물질(연화제)이 용기에서 분해되어 나와 포장 음식에 들어간 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재활용 포장 상자도 사정은 다르 지 않은데, 이 역시 포장재에 함유된 인쇄용 잉크에서 나온 미네랄 오일이 음식물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심을 받는다.  포장은 여러 이유에서 도입되었다. 그중에 몇몇은 관련이 있고(예를 들어 식품 보존상), 그외 다른 이유는 대부분 적절치 않은 것들이다(이를테면 내용물은 적게, 포장은 크게 하는 과대 포장이 그렇다. 나는 새로 산 티백 상자 안이 반이나 비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놀란다)
*조명은 구매 행동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드럭스토어 매장 안은 매우 밝은데, 조명은 최대한 일광과 비슷해야 한다. 이와 달리 슈퍼마켓에선, 특히 과일과 채소 같은 신선식품 코너의 경우 부드러운 노란색 조명을 설치하는데, 색온도와 컬러 필터가 과일과 채소를 더 싱싱하고 신선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반면 육류 진열대는 붉은색 비율이 높은 필터가 삽입된 조명을 쓰고, 생선은 오히려 냉백색 조명을 사용한다.  특히 뉴욕의 고급 슈퍼마켓들은 과일과 채소 를 마치 무대 조명처럼 눈부시게 밝은 빛 아래 진열해놓고 그 주위는 살짝 어둡게 조절한다. 나도 이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틸로 보데(Thilo Bode)는 소비자의 권리와 식품의 질을 둘러 싼 문제를 다루는 비정부기구(NGO) 푸드워치(foodwatch)의 설립자로, 2009년 출간한 책에서 대부분의 슈퍼마켓은 진열 대를 주기적으로 재정비하는 것을 지침으로 하고 있다고 밝 혔다. 그 이유는 "고객이 구매하려는 것뿐 아니라 다른 제품들도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구매 행동을 통해 자신의 현재 사회적 위치와, 자신이 속하고 싶은 사회 집단을 드러낸다. 독일 경제학자 니코 패히 (Nico Paech)도 이렇게 말했다. "인 간으로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이 되고 싶고, 또 어 떻게 인정받고 싶은지를 표현하기 위해 소비를 필요로 한 다. 물질적 형태의 모든 기본 욕구들은 이미 수없이 충족되 었기에, 물질적 과잉이 지배적인 세계에서는 상징적 표현을 위해 물건을 산다."
-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는 1970년대 말에 프랑스인들의 정치 성향과 예술 취향을 포함한)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했다. 이 경험적 연구 결과는 그리 놀 랍지 않다. 자본의 다양한 형태, 즉 경제, 사회, 문화 자본은 개인이 속한 사회 계급을 정의한다. 부르디외는, 취향은 개 인적이며 개인이 활동하는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개인이 속한 계급은 그가 어떤 교육 과정을 밟았고, 어떤 문 화적 경험을 했고 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결정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무엇에 돈을 지출하는지 또한 결정한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무척 흥미를 느낀 지 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사는 것을 통해 어떤 사 회 계급에 속하는지 그 신호를 남들에게 보낸다.
- 면화 재배는 까다롭다. 목화는 매우 예민한 식물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필요할 때도 있고 한 방울도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추정상 99.5퍼센트가 유전자 조작 종자이며 한 해살이 식물이다. 즉 해마다 농부들은 새로운 씨앗을 사야 한다. 95 전 세계 살충제 생산량의 30퍼센트는 목화 재배에 사용된다. 이렇게 해서 목화는 수확 전에 바싹 마르고 섬유 질 많은 꽃봉오리는 더 쉽게 분리될 수 있다. 또 다량의 글 리포세이트glyphosate, 제초제의 주성분를 함유할 수밖에 없다. 심 지어 탐폰에서 글리포세이트가 검출된 일도 있다.
연구자들은 살충제 사용량이 총생산량(살균제와 제초제 포함) 의 20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목화 재배 면적은 농 업에 사용되는 총면적의 약 2.5퍼센트에 달하는데, 여기에 전 세계에서 생산된 살충제의 20퍼센트가 살포된다. 이러니 면 제품은 얼마나 깨끗할까!
- 옷을 버리는 대신 기부하는 것도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 이 유는 첫째, 기부 장소는 옷들로 넘친다. 둘째, 활용자 수가 지나치게 많다. 그들은 유럽에서 더 이상 팔기 어려운 옷들 을 묶어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팔고, 그곳 사람들은 옷 꾸 러미들을 열어보지도 않은 채 닥치는 대로 중고 시장에 내 다 판다. 그 후폭풍은 이렇다. 한때 크게 번창하던 동아프 리카의 섬유 산업은 곤두박질쳤다. 엄청난 양의 기부 옷(마 찬가지로 점점 늘고 있는 중국에서 수입된 매우 값싼 옷들)과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마음챙김 운동은 이미 트렌드가 되 고 있다. 당신이 충분히 마음챙김을 연습하고 당신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알아차린다면, 그리고 사물과 세계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 라고 말한다. 성공적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문제에 대해 서는 전적으로 개인의 성격적 특성에 달려 있다고 여긴다. (중략) 실제로 사람들도 그것을 경영인 혹은 성공한 엘리트 들이 찾고 실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극단적인 예로 '사람들을 해고하고 양심의 가책과 많은 어려움을 겪은 뒤 마음챙김을 수행하고 훨씬 편안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즉 사람들이 보는 것은 마음챙김 논리의 기능화다. " 우리는 이 모든 마음챙김 소란 덕에 인간 상호 간의 책임감 있는 교제를 윤리적으로 잊어버렸다.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 경영학 교수인 로 널드 퍼서(Ronald Purser)는 더 극단적으로 본다. 그는 저서 『마음챙김의 배신 (McMindfulness)』 115의 서두에서 바로 설 명하고 있다. "나는 회의적이다. 우리가 사는 불공평한 사회 에서 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 없이 성공을 보여주는 것은 혁명적이지 않다. 단지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게만 유익할 뿐이다. 하지만 이는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 경제적 기본 조건에 과감한 조치를 요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 퍼서 교수는 이렇게도 말한다. "사 람들은 마음챙김을 그만둬선 안 되고, 이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모두 세속을 벗어났다고 말할 수도 없다. 물론 목표는 언제나 개인의 스트레스나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또 마 음챙김과 요가를 통해 이를 달성하는 것도 좋다.” 훌륭한 말 이다! 다만 개인의 스트레스는 대개 사회적 원인에서 비롯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회와 정치 시스템에서도 시작되어 야 한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한다.
산업이 마음의 평안을 원하는 인간의 바람을 이용하는 것 은 마땅히 비난받을 만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은 부 조리하다. 우리가 쇼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며, 자신을 증 명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임금은 점점 줄어들어 우 리는 일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서는 점점 이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진실은, 우리 모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업계에서는 그것이 오롯이 우리 책임이며 완전히 혼자 힘으로 비참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설득한다. 이를 위해 향 혼합물을 사서 피우고 복식호흡을 해서 해결할 수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간단할까? 마음챙김의 방법들은 대 부분 불교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지금은 불교 승려들조차 매우 언짢게 생각한다. 미국 승려 빅쿠 보디 (Bhikkhu Bodhi) 는 불교가 의심 없이 소비주의를 받아들였다며 이렇게 경고 했다. "날카로운 사회 비판 없이 이루어지는 불교 수행은 현재 상태를 정당화하고 안정화시키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이 렇게 해서 손쉽게 소비자본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 
나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진정 우리가 모두 잘 살기 위해 서는 이제 '나'만의 관점에서 빠져나와 공동체를 생각하고, 좀 더 인도적이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을 위해 노력해야 하 지 않을까?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정치학자 웬디 브 라운(Wendy Brown)은, 연대감 없는 개인화로 인해 정치적 통합은 더 이상 없고 오직 “개인 사업가와 소비자 집단”만  존재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꼬집었다.
- 설문지에서 늘 발견하는 것은, 사람들이 공정한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을 사기 위해 몇 퍼센트 더 비싼 가격을 치를 수 있다는 응답이다. 또 내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패스 트 패션 소비가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에 있는 동일한 연령 의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할 때에도 반 응은 언제나 똑같다. 그들은 다시는 패스트 패션을 사지 않 겠다고 말한다. 또 탄소발자국과 관련해, 몰디브행 비행기를 딱 한 번 타는 것만으로 평생 해온 쓰레기 분리 배출이며 자전거 타기, 비건 식사 등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이 환경에 그렇게 나 쁜지 몰랐다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러면서도 주말을 이용 해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간다.  사람들이 양심과 윤리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소비를 할 것이라고, 또 실제로 실행한 다고 확실하게 증명한 연구는 지금까지 하나도 없다. 130
이런 모순과 인지부조화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 답은 다 시 뇌의 생화학 작용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본래 기분 좋은 것을 찾는다. 그리하여 소위 '가치 행동 격차 (value- action gap)'라는 것이 발생한다. 우리는 빈병 보증금 반환 제도가 환경을 위해 매우 좋다고 생각하지만, 계산대 앞에 있는 500밀리리터짜리 플라스틱 병에 든 물을 산다. 빨리 갈 증을 해소해줘서 간편하기도 하고, 마신 후 처리를 크게 신 경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건을 사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기분을, 도파민 킥을 주기 때문이다.
방금 언급한 모순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예가 있다. 1월에 마트 과일 코너에서 볼 수 있는 그 유명한 딸기가 그것이다. 딸기는 멀리, 사람들이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남아메리카 의 어느 나라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딸기를 1월에 멀리 떨 어진 나라에서 사가지고 오는 것을 정신 나간 일이라고 여기 는 사람도 많다. 여름이면 이 땅에서 수확할 수 있는데, 굳이 플라스틱 용기에 셀로판지에 둘둘 말아서까지 들여와야 하 냐며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마트에 나온 딸기를 보자마자 입 안 가득 풍미를 맛보고 싶어지고 한겨울에 여름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겨울에 운전자 들이 추위 때문에 정차 중 자동차 엔진을 끄지 않는 것을 보고 화를 내는 사람일 수도 있다.
- 인지부조화는 매일 일어난다. 사람들은 대부분 끊임없이 해명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납득시키기 위해 내적으 로 다그친다. 두 가지 행동이 서로 모순이라는 것을 인정하 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말한다. '딸기를 산 것은 예외다, 단지 여름을 느껴보고 싶어서다, 어찌됐든 딸기는 사라고 있는 것이니 상하기 전에 사야 하지 않느냐'라고 해명한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그 자리를 합리화가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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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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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큰 그림으로 삶을 이해하는 통찰을 회복하고 당신의 힘으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다. 전적 으로 매달리거나, 아니면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선택지도 있다. 바로 완벽주의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짜증스럽 게 굴 땐 거리를 두고, 삶을 풍요롭게 할 땐 즐겨라. 어느 한쪽으 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찾고 완벽주의가 삶에 어느 정도의 영 향력을 행사할지 결정해라. 이것은 긴 여정이다. 어쩌면 멀리 돌 아가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의미 있는 방 향으로 변화를 이루었다면, 그것은 분명한 발전이다.
- 오직 완벽만을 추구하는 전략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스트레스 : 스트레스는 근육 긴장, 두통, 불안, 짜증, 이상 식욕(끼니를 거르거나 폭식하는 것 등)으로 표출된다.
*걱정 : 걱정이 의식을 장악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끊이질 않는다.
*불안 : 불안이 하루 종일, 잠자리에 들 때까지 쫓아와 한밤중에 깨어 있게 만든다.
- 지금까지 이 전략을 고수했다는 것은 게임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고통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은연중에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반면 완벽주의와 맞서 싸우다가 탈진한 나 머지 경기장에 드러누워 패배를 인정할 수도 있다. 대학에서 쉬 운 전공과목만 선택하고, 승진시험을 미루고, 여행가방의 짐을 풀어 정리하는 대신 똑같은 드라마를 세 번씩 보고, 시한이 닥칠 때까지 일을 미룬다. 완벽주의가 당신의 행동에 그 어떤 트집도 잡을 수 없도록 최소한의 노력을 하며 최소한의 행동만 취하는 것이다. 이제 당신의 전략은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한 것도 아니 니까" 혹은 "어차피 완벽할 수도 없는데 뭐 하러 힘을 빼?"가 된다.

- *1년 전보다 삶에 더 만족하는가?
*삶이 원하는 방식대로 흘러가는가?
*불안, 스트레스, 걱정에 지배되는 삶은 추구할 가치가 있는가?
*만약 이 게임이 삶을 통제하도록 방치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시간을 갖고 답변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 답변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완벽주의를 치료하고자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결코 두려움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둔다. 완벽주의 게임을 하면서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면 당연 히 하던 대로 계속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삶이 지금 이대로 좋은지 솔직해지기 바란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웃고 있는지를 묻는 게 아 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거나 시련에 부딪쳤을 때조차도 가슴이 뿌듯하고 영혼이 충만하다고 느끼는지를 묻는 것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삶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릴 생각인가? 또 지금까지 얼마나 오래 기 다렸는가?
우리가 상담했던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추측해 보면 그 게임이 지속될수록 오히려 일에 뒤처져서 아예 포기하 게 되거나, 어느 순간 삶을 되돌아보니 대체로 불행했음을 깨닫 거나, 항상 최적의 조건을 갖추려 늘 무언가를 계획하느라 막상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하거나, 동료들보다 몇 배 더 일하다 탈진 하게 되거나, 의미 있는 일보다는 그저 쉽고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선택하거나,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건설적인 인간관계마저 일부러 파괴하게 된다고 한다.

- 완벽이라는 것은 좋아야 한다고 주입된 하나의 신기루일 뿐이며, 당신은 자꾸만 그것에 속아 결코 이길 수 없는 게임에 휘말리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 완벽주의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와 '부적응적' 완벽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자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유형을 말한다. 그들 의 성취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행복, 삶의 만족, 성실성과 같은 긍 정적인 결과물과 연결되어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자들은 고도로 생산적이면서도 탈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삶의 방식을 좋 아하고, 이 방식은 그들에게 자연스럽다.
반면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자기비판,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에 대한 집요한 추구,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의 고통, 도 달했을 때의 불만족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부적응적 완벽주 의에 우울, 강박장애, 섭식장애, 불안장애 같은 심리상태가 수반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외에도 일상적 스트레스와 부 정적인 기분과도 연관성을 보인다. 이러한 연관성은 어느 문화 권에서나 나타나며 부적응적 완벽주의가 문화를 초월하여 나타 나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모순적이게도 달성하고자 하는 바로 그 목표를 훼손한다. 성공일 수도 있고, 행 복일 수도 있으며, 생산성일 수도 있는 목표 말이다.
- 완벽주의적 지연을 유발하는 또 다른 원칙은 일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기 전에는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 역시 실제로 부딪쳐보지 않으면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방법 또한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답보 상태 로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무 엇이 제대로 된 선택인지 모르겠다는 혼란으로 눈앞의 상황들이 위압적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인지적, 정서적 걸림돌 때문에 시 한이 정해지지 않은 일을 몇 년씩 미루기도 한다. 벽지를 바르는 일일 수도 있고, 창고에 있는 고장 난 자전거를 수리하는 일일 수 도 있고, 새로 이사한 도시에서 새 주치의를 찾는 일일 수도 있다.

- 누군가에게 "걱정 그만해”라고 말하는 것은 "샤워를 너무 오래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건 거의 비를 멈추는 것에 가깝다. 걱정은 완전히 당신의 통제권 안에 있 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당신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생각이라는 것 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생각들은 제멋대로 왔다 가 제멋대로 사라진다. "난 문제가 있어"라든가 "난 절대 잘할 수 없을 거야" 같은 생각들 말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아무리 많은 칭찬을 들어도 부정적인 생각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온갖 여행 블로그를 뒤지고, 웹 페이지를 검색하고, 배우자와 열 띤 토론을 벌인 뒤에도 여전히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인지 몰라 다가오는 휴가 장소를 결정하지 못한다. 좀처럼 떼어낼 수 없는 이 끈적거리는 생각들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떼어내려 해봐 야 소용없는 일일뿐더러 오히려 더 들러붙는다. 그런데도 계속 떼어내려 애쓴다.
당신이 이처럼 반응하는 이유는 그 생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대체로 생존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들이니 까. "빨간불이니 멈춰", "낭떠러지 가까이에 가지 마”, “채소를 좀 더 많이 먹어야지" 같은 생각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머릿 속의 생각들을 언제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원칙과 명령에 따라 삶을 설계하는 것에 익 숙해졌다면 그 생각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외식을 할 때마다 레스토랑 예절을 새로 배우 진 않는다. 그저 이미 알고 있는 레스토랑의 원칙을 따를 뿐이다. 물론 레스토랑 종업원들 앞에서 거들먹거리거나 팁을 박하게 줄 것을 요구하는 특이한 레스토랑에 갈 수도 있겠지만, 경험적으 로 터득한 것들을 활용하되 0.1퍼센트 확률로 틀리는 편이 매번 경험치가 틀릴 희박한 확률을 힘들여 분석하는 것보다 효율적이 기 때문이다.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대체로 도움이 되는 만 큼 역으로 완벽주의에 의해 그 점이 악용될 수도 있다.

- 인간은 본래 일관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논리로 원칙을 강화하는 방식이 통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이유 를 갖고 싶어 한다. 논리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싶어 하고 모순 없 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당신이 이야기의 공백을 메우려 할 때마 다(“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행동의 근거를 대려 할 때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뭐냐면..."), 혹은 당신이 따르는 원칙 들이 왜 합리적인지 설명할 때마다 "절대 실수를 해선 안 되는 이유 가 뭐냐면...”) 당신은 아이들이 하는 사이먼 가라사대 게임처럼 '완벽주의 가라사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명령을 내리 는 주체가 완벽주의인 것만 다르다. 완벽주의 가라사대 게임에 서 모든 것은 반드시 이치에 맞아야 하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원칙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건지 궁금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원칙들과 논리들이 정확히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에 대 한 대답은 명쾌하지 않다. 

- 논리의 한계
완벽주의 가라사대 게임의 실체가 드러나면 당신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원칙과 이유에 의존하고 있는지에 따라 삶에 일종의 진공상태가 발생한다. 갑자기 당신을 이끌어주던 동력이 사라진다. "성공하고 싶어서" 혹은 "일을 망치기 싫어서" 해왔던 일들을 중단한다면 이제 무엇에 의지해 다음 행동을 결정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주입했던 이야기들은 해체되고(어떤 실수도 용 납되지 않는다,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야 안 하는 게 낫다, 성공이 아닌 것 은 다 실패다) 방향을 잃는다.
당연히 우리 마음은 절박한 심정으로 일관성을 복원하 려 한다. 근사하고 완벽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퍼즐 조각들을 재배열하려 애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납득할 수 있는 설 명을 좋아하고 또 갈구한다. 논리를 동원하기 좋아하고, 문제해 결 능력을 발휘하기 좋아한다. 터치스크린, 우주여행, 인공지능, 스마트 가전제품 같은 것들을 만들어낸 바로 그 능력으로 일관성 없는 이야기를 수정하고 싶어 한다. 넷플릭스의 '인트로 건너뛰기' 버튼을 만든 것이 인간의 논리적 능력이라면 논리로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논리에는 한계가 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처럼 보편적인 법칙이라고 해도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 있다. 중 력의 경우 양자영역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논리적인 문제해결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의 영역에서 적용되지 않는다.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분홍색 거북이'를 생각하지 마라. 절대로 분 홍색 거북이를 떠올리지 마라. 떠올리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끊 임없이 평가하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해보아라. 어머니의 생일을 잊어도 속상해하지 말고,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자책하지도 마라. 만약 논리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추울 때 난방장치를 켜거나 배고플 때 음식을 먹는 것처럼 하나 도 힘들이지 않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 깝게도 당신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어도 생각과 느낌에서 벗어 날 방법은 없다.
- 논리 혹은 일관성의 대안은 바로 '기능'이다. 그 생각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집중하고 그 점을 바탕으로 생각에 귀를 기울일지 결정하는 것이다. 생각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그것이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라. 모든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실용성보다 정확성을 반사적으로 우선시하는 경향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도 움이 되는 생각은 야유하는 팬들이 아닌 치어리더와 비슷하다. 그들은 당신이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도록 돕는다. 프레젠테 이션을 하기 전에 "난 잘할 거야”라고 혼자 되된다면 그 말이 진 실인지는 몰라도 도움은 될 것이다. 진실이어도 도움이 되지 않 을 수도 있고("사람들이 내 셔츠의 땀자국을 다 보겠지"), 도움이 된다 고 해서 항상 진실인 것은 아니다("아무도 내 셔츠의 땀자국을 보고 있지 않아"). 아무 조건 없이 오직 당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생각들 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오직 옳은 것에만 관심 있는 생각들에 귀 를 기울이겠는가? 크게 보았을 때 옳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 이런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면 생각들을 호의적인 낯선 사람이라고 상상해보아라. 당신이 중요한 약속에 늦었는데 열차가 고장이 나 멈춘 상황이다. 낯선 사람이 당신에게 "큰일 났네요. 지난 2주간 약속에 늦은 게 벌써 세 번째잖아요"라 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실이냐고? 아마 진실일 것이다. 도움이 되 냐고?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낯선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 들인다면 당신은 정지한 열차 안에서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하 지만 낯선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저런, 하필 이런 상황에서 사고가 나서 속상하시겠어요. 안 그래도 그동안 스트레 스 받는 일들이 많았는데 말이에요." 이 말이 더 도움이 될 것이 다. 우리의 이성이 항상 침착하고 안정을 주는 타당한 말만 한다 면 참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은 일이 틀어졌을 때 문제를 해결 해서 당신의 생명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 그것도 최대한 빨 리. 그것이 바로 생각들이 당신을 압박하고 독촉하는 것처럼 느 껴지는 이유이고, 본능적으로 그 생각들에 끌렸던 이유이다.

- 완벽주의적 생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과 같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무 의미 없는 논쟁에 휘말려 있다. 그 논쟁에 당신의 에너 지를 쏟아붓는 게 맞는지부터 생각해보아라. 언어적 미끼를 물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는 있다. '기후변화', '과잉진압', '백신 반 대운동', '보편적 의료보장', '실패자', '완벽', 그리고 '성공'. 그 미끼 를 물지 마라. 미끼 너머 당신의 목표와 가치를 보아라. 주어진 시 간과 에너지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당신의 정신적, 감정적 자원 을 논쟁보다 더 좋은 곳에 쓰고 싶다면 다른 일을 하라.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방의 의견을 인정한 다음 대화에서 빠져나 와라. 당신의 생각들에게도 똑같이 하라. 인정해주고("아, 네가 소 리를 내고 있는 건 알겠어")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가치 있는 일에 쓰도록 주의를 돌려라.
- 생각들을 고려해보려면 먼저 생각들이 시키 는 대로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생각들은 당신의 삶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조언하려 드는 숙모와 같다. 숙모의 조 언은 대체로 도움이 되지만 당신이 처한 상황에는 딱히 맞지 않 을 수도 있다. 숙모의 조언을 무작정 따르는 것은 숙모가 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지 당신이 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들이 현재의 곤경을 헤쳐 나갈 지혜를 주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럴 땐 그 생각들에 귀를 기울이는 게 좋다.
- 완벽주의는 원칙과 논리를 이용하여 행동에 힘을 행사한다. 완벽주의는 무얼 해야만 하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 알 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실제로 당 신이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 수는 없다. 아무리 강력한 말이어도 아무리 소리가 커도. 따라서 B학점을 받거나 오랫동안 사귀던 사 람과 헤어지면 인생이 끝장날 거라고 완벽주의가 협박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마라.
대신 우리는 다음 세 가지를 권한다. 
첫째, 생각을 생각 으로 여겨라. 생각은 생각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둘째, 사고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라.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 건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셋째, 생각들이 하는 말을 고 려하되 도움이 되는 것은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라. 논리에 맞 고 진실처럼 보이는 것(일관성)보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 이 되는지(기능)에 집중하면 완벽주의의 덫을 피할 수 있다.
-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마음을 여는 연습을 하기에 앞서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불편한 느낌을 없애버리면 될 것 을 왜 굳이 그 느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할까? 첫 번째 이 유는 명백하다. 불편한 느낌을 없애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사항 이 아니고 당신은 경험을 통해 이미 그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 이다. 두 번째 이유는 불완전함을 밀어내는 것, 훌륭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고, 대수롭지 않은 실수에도 스스로 를 비난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은 피곤할 뿐 아니라 자기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 는 고통은 당신이 진정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거절당해 상처받았다면 그 고통은 당신이 관계를 소 중히 여기는 사람임을 말해준다. 구조적 불평등에 분노를 느꼈 다면 사회적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무관 심한 것들로부터 상처받을 순 없고, 관심을 끄지 않는 한 상처받 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달갑지 않은 느낌을 위해서 공간을 만드는 시도는 고통 을 느끼는 작업에 능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당신은 느 낌을 지니고 있는 것에 서툴 수도 있다. 늘 어떤 감정들로부터 도 망치려 했다면 회피하는 연습은 부단히 해온 반면, 느낌을 지니 고 있는 연습은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고통을 느끼는 것에 노 련해진 스스로를 상상해보라. 그것은 고통이 삶에 파고들 때 그것을 느끼되 휘둘리지 않고 있던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수용acceptance'이다. 수용은 너무도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어온 데다 '체념'과도 비슷하게 쓰여서 다소 모 호한 용어가 되었다. 우리는 패배와 상실을 수용한다. 처벌을 수 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용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낯 선 이의 친절과 호의를 받아들인다. 사람들의 덕담과 선물을 받 아들인다. 마찬가지로 불안, 스트레스, 걱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메일로도 할 수 있는 얘기를 직접 하려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 처럼 달갑지 않은 생각과 느낌을 수용할 공간도 낼 수 있다. 수용을 연습하려면 먼저 받아들이는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엇을 받아들일지 명확히 해라. 실패를, 혹은 비참한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들과는 달리 당신은 결과에 대한 통제권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스티븐 헤이 즈 박사는 그 점을 멋지게 표현했다. “당신의 상황이나 행동을 받 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과거와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받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과정중심치료의 한 형태로서 수용전념치료' 라는 제목의 2020년 워크샵에서 그가 한 말이다.) 다시 말해, 살아오면 서 축적한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놀랍 도록 다양한 감정들을 체험하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인간의 특별 한 능력을 받아들이고 또 경탄하라는 것이다. 비록 사소한 차이일지라도 당신이 쓸쓸한 기분과 비참한 기분을 구분할 줄 알고, 짜증 나는 것과 화가 나는 것을 구분할 줄 안다는 건 놀라운 일이 다. 당신에겐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고(물론 그 힘의 범 위는 당신이 처한 상황의 특수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른 행동을 선택 할 힘이 있다. 그러나 당신의 과거와 느낌들은 그저 그 자체로만 존재할 뿐이다.
- 다양한 받아들이기 기술을 시도하다 보면 낯선 곳에 도달하게 된다. 그 깨달음의 순간을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지만 어 느 순간 느낌과 싸우고 있지 않으며, 편안히 숨 쉴 수 있고, 느낌 을 아무 조건 없이 그대로 놓아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소 낯 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조금 홀가분한 기분이 들고, 그 상태에 잠시 머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수용의 기술을 습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운동이나 학문적 기술과 달리 수용의 기술은 무슨 일을 하고 있건 연습할 수 있다. 어떤 감정이든 느껴질 때, 연습해라. 유쾌한 감정으로 연습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건 이미 잘할 것이다. 우리는 좋은 느낌에는 기꺼이 마음을 열면서도 '나쁜' 것 이라고 이름 붙인 느낌에는 그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신호등의 빨간불이 유독 길게 느껴질 때 연습해라. 세 번째로 시 한을 어긴 동료에게 화가 나는가? 연습해라. 6분 전에 받은 상사 의 메일에 아직 답장을 하지 못해서 조급한가? 연습해라. 주말에 끝내야 하는 집안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가? 그 느낌을 위한 공 간을 만들고 목표에 부합되는 행동을 시작해라.
- 느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안달하는 대신 느낌이 존재할 공간을 주고 그동안 다른 중요한 일 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연습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고통 을 위한 고통은 좋아하지 않는다. 힘든 일을 하려면 목적이 있어 야 한다. 따라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만약 불편한 느 낌이 나타날지, 그 느낌이 얼마나 오래 갈지, 어떤 강도일지 더 이 상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은가?"
- 느낌은 삶의 한 부분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느낌이 그토록 집요한 이유는 인류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느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늘 우리에 게 이로웠다. 그러나 오늘날의 다양한 상황에서 동일한 가정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 따라서 느낌이 항상 유효하고 때로는 도움 이 된다고 해도 언제 느낌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언제 뒷마당에서 떼를 쓰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는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 이상의 관심을 주지 않고 호들갑을 떨도록 느낌을 내 버려두는 것, 그것이 바로 수용 연습이다.
수용의 대상은 느낌이지 행동이나 상황이 아니다. 수용 하려면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화를 볼 때처럼 느낌을 바라봐 야 한다. 불쾌한 느낌이라면 더더욱 연습해야 한다. 불쾌한 느낌 을 위한 공간을 만들 때 교묘히 회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 견한다면 다시 관찰 단계로 돌아가라. 관찰이 지속 가능한 상태 에 접어들면 수용에 가까워진 것이다.
- 자기친절은 거창한 무언가일 필요가 없다. 아침식사를 먹는 것일 수도 있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일 수도 있고, 자정이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일 수도 있다. 자기친절은 간 헐적으로 실행할 때보다 꾸준히 규칙적으로 실행할 때 더 도움 이 된다. 자기친절의 장점은 걱정하느라 혹은 지나간 일을 곱씹 느라 허비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고(완벽주 의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생산성이겠지만), 진정성 있게 사람 들과 교류할 수 있다. 자기친절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 는 사람 대하듯 바라보라.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여부 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 당신이 야외활동에 가치를 두거나 모험 을 떠나는 것에 가치를 둘 수 있다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자기 친절에 가치를 둘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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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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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 굿

심리 2024. 3. 12. 07:08

- 우울장애는 질병이며, 건강한 삶에 불필요한 요소 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분이 좋아지는 몇 가지 간단한 방법만 알 고 있어도 우울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의과대학의 정신의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기분장애affective disorder의 치료와 예방에 중요한 돌파구가 될 내용을 보고했다. 이 들은 전통적인 우울장애 치료법이 효과가 없거나 느리다는 데 불 만을 느끼고 우울장애를 비롯한 기분장애를 치료할 완전히 새롭 고 아주 뛰어난 접근법을 개발해 체계적으로 검증했다. 최근 속속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치료법은 그동안의 심리요법이나 약물요법보다 우울 증상을 훨씬 빠르게 개선한다는 사실이 확인 되었다. 이 혁명적 치료법의 이름은 '인지치료'다.
- 그렇다면 현재 우울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 인지치료를 받으 면 우울장애를 전혀 경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마치 매일 조깅으로 몸을 단련한다고 해서 앞으로 절대 숨차는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간이기에 가끔 감정의 동요를 경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단언컨대 여러분은 영원히 변치 않는 행복을 느끼는 상태에는 결코 이를 수 없다! 이는 자신의 기분을 능수능란하게 다스리려면, 효과적인 기 법을 계속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분이 나아지는 것'과 '상태가 나아지는 것'은 다르다. '기분이 나아지는 것'은 저절 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상태가 나아지는 것'은 필요할 때마다 기 분을 개선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실행하고 또 실행함으로써 가 능하다.

- 조증mania도 알아두어야 할 기분장애의 특별한 유형이다. 조증은 우울증과는 정반대다. 이때는 곧장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리튬을 처방받아야 한다. 리튬은 기분이 극단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증상을 안정시 키고 환자가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조증은 치 료받기 전에 정서 파탄을 일으킬 수 있다. 약물이나 알코올 때문 이 아닌데 이틀 이상 기분이 심하게 들떠 있거나 짜증이 계속되는 경우 조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판단력이 떨어졌음을 보여주는(예 컨대 무모하고 과도한 소비 같은) 충동적 행동과 거창하고 허황된 자 신감은 조증 환자들이 보이는 행동의 특징이다. 성적인 행동이 과 해지거나 공격적인 행동이 늘어나고, 쉼 없이 몸을 움직이거나 머 릿속으로 생각이 폭주하며, 흥분한 상태에서 쉬지 않고 말을 하거 나, 자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 증상도 보인다. 조증을 앓는 사람 들은 흔히 자신이 누구보다 힘 있고 똑똑하다는 망상을 품으며, 철 학이나 과학에서 엄청난 업적을 이루거나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기 직전이라고 주장한다. 창의적 업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 중에도 이 질병을 앓고 리튬 처방으로 병을 다스린 사람이 많다. 이 병은 기분을 좋게 하기 때문에 처음 발병했을 때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초기 증상의 도취감이 워 낙 강해서 환자들은 갑자기 찾아온 자신감과 황홀감이 실제로는 자신을 파괴하는 질병이 시작된 징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이 행복감은 통제할 수 없는 정신 착란 상태로 악화되어 강제로 입원해야 할 정도가 되거나, 정반대 로 무기력하게 우울해지면서 눈에 띄게 행동이 둔하고 무감각해 진다. 여러분은 이런 조증 증상을 잘 알아두어야 한다. 진짜 우울장애를 겪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런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며칠이나 몇 주사 이에 인격에 심각한 변화가 생긴다. 심리치료와 자가치료 프로그 램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의사의 감독 아래 리튬 처방을 병행하 는 것이 가장 좋다. 이렇게 치료하면 조증의 회복 가능성은 매우 높다.

-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의 감정은 정상이다. 그러나 뒤틀리고 왜곡된 방식으로 지각하고 있다면 그 감정은 비정상이다. 우울장애는 후자에 해당한다. 우울장애는 항상 정신적 '잡음', 즉 왜곡의 결과다. 우울한 기분은 방송 주파수 를 정확히 맞추지 않았을 때 음악에 지직거리는 소리가 섞이는 것 과 같다. 이 문제는 라디오의 진공관이나 트랜지스터에 결함이 있 거나 나쁜 날씨 탓에 무선 수신되는 방송 신호가 왜곡되어서 생기 는 것이 아니다. 다이얼만 다시 조정하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정신을 조율하는 방법을 배워놓으면 음악은 다시 맑 게 흘러나오고 우울장애는 사라질 것이다.

- 인지치료의 가장 중요한 특징 하나를 꼽는다면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끝까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료 과정에서 나는 환자들에게 부정적 자기 이미지를 체계적으로 재평가하도록 이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똑같이 몇 번씩 던진다. "자신에게 원래 패배자인 면이 있다고 계속 주장하시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자신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다. 자신 이 쓸모없다는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내세우는 증거는 대체로 이 치에 맞지 않는다.
- 부정적 생각에 대한 이성적 대응을 매일 써보는 간단한 훈련이야말로 인지치료의 핵심이다. 이것은 우 리의 사고를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 다. 핵심은 자동적 사고와 이성적 대응을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는 것이다. 이 과정을 머릿속으로만 하면 안 된다. 생각에 대한 대 응을 머릿속에서만 맴돌게 하기보다는 직접 써보는 것이 객관성 을 더욱 높여준다. 또 직접 써보면 우울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의 오 류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세 칸 기법은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 라는 무력감은 물론 왜곡된 생각이 핵심 원인인 광범위한 기분장 애에도 적용된다. 그리하여 파산이나 이혼 또는 심각한 정신질환 등 흔히 완전히 '현실적인 것'이라고 여기기 쉬운 문제에서도 고통 이나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이 책 4부우 울장애 예방과 인격 성장에서 자동적 사고 기법을 약간 변형한 방 법을 이용해 감정 기복의 원인이 잠복해 있는 정신 부위를 꿰뚫어 보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 가령 기분이 고양되고 행복하다면 그것은 자신이 위대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일까, 아니면 그저 기분이 좋다는 뜻일까?
감정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듯 생각이나 행동 역시 우리 의 가치를 결정하지 못한다. 그중에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건 전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 밖에 비합리 적이고 자기기만적이며 부적절한 생각이나 행동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고칠 수 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런 것들이 곧 그 사람이 쓸모없는 존재임을 뜻하지도, 뜻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키울 수 있나요?" 하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답은 이렇다. 일부러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자존감을 만 들어내거나 얻겠다며 굳이 그럴 법한 뭔가를 할 필요는 없다. 우리 가 할 일은 비판하고 선동하는 내면의 목소리의 스위치를 끄는 것뿐이다. 어째서? 우리 안의 비판하는 목소리야말로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내면 의 자기학대는 불합리하고 왜곡된 생각에서 솟아난다.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은 진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우울장애의 핵심에 도사리고 있는 종기일 뿐이다.
따라서 감정이 동요할 때는 다음 세 가지 핵심 단계를 명심하자.
1. 자동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에 관심을 집중하고 기록한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윙윙거리지 못하게 종이 속에 가둬놓는다!
2. 열 가지 인지왜곡 유형을 되풀이해서 읽는다. 이것들이 어떻게 사물을 왜곡하고 과장하는지 꼼꼼히 익혀둔다.
3. 자신을 경멸하게 만드는 생각을 그런 생각이 거짓임을 보여 주는 더 객관적인 생각으로 대체한다. 이렇게 하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다. 자존감이 커지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그리고 당연히 우울장애도) 사라질 것이다.

- 우리는 생각을 바꾸면 기분도 변화할 수 있음을 배웠 다. 이제 기분을 개선하는 데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는 두 번째 접 근법을 알아보자.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행동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면 감정을 느끼는 방 식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 에는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울장애에 빠지면 움 직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울장애의 가장 파괴적인 면 중 하나는 의지력을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가벼운 상태라면 하기 싫은 일을 뒤로 미루는 정도이지 만 의욕 상실이 심해지면 사실상 거의 모든 활동이 어렵게 느껴져 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충동에 휩싸인다. 해내는 일이 거의 없 고 감정도 점점 악화된다. 자극과 즐거움을 주는 일상의 원천을 멀 리할 뿐 아니라 생산성의 감퇴로 자기혐오가 심해지고 그 결과 고 립감과 무력감도 더욱 커진다.

- 틱톡 기법
어떤 일을 손대지 못한 채 미루기만 하고 있다면 그 사실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해둔다. 이런 생각을 '과제 방해 인지task- interfering cognition' 또는 '틱TIC'이라고 한다. 이 생각들을 기록한 후 더 적절한 '과제 지향 인지task-oriented cognition' 또는 '톡TOC’으로 대체해 두 칸으로 된 표에 나란히 적기만 해도 과제 방해 인지는 크게 힘을 잃는다. (표 5-8)은 그 여러 가지 예다. 이 틱톡 표를 작 성할 때는 자신을 좌절시키는 틱 속에 어떤 왜곡이 포함되어 있는 지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이 나 긍정적인 것 인정하지 않기가 가장 큰 적임을 깨달을 수도 있 고, 자기 멋대로 부정적 예측을 하는 나쁜 습관이 있음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일단 우리를 좌절에 빠뜨리는 가장 흔한 왜곡의 유형을 알아차리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할 일을 미루 는 버릇과 시간 낭비도 행동과 창의성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 마차를 말 앞에 맬 수는 없다!
의욕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틀림 없이 있을 것이다. 의욕과 행동 중 무엇이 먼저일까?
의욕이 먼저라고 답한다면, 훌륭하고 논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틀렸다. 의욕이 아니라 행동이 먼저다!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마중물을 부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의욕이 생기고, 물이 즉시 올라온다.
할 일을 자꾸 뒤로 미루는 사람은 흔히 의욕과 행동을 혼동한다.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 어리석게 기다리기만 한 다.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자동으로 미루고 만다.
이런 사람의 오류는 의욕이 먼저 생겨야 행동을 하고 성공에 이 를 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 그러나 보통은 그 반대다. 행동이 먼저 이고, 의욕은 그 후에 생긴다.

- 비난받을 때 우리의 내면을 파탄시키는 덫에서 벗어나는 방법 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왜 사람마다 비난과 비판에 반응하는 정도 가 다른지 살펴보자. 우선 우리의 기분이 상하는 것은 남들 때문도 그들의 따가운 비판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다른 사람의 비판적 언사가 우리의 감정을 손톱만큼이라도 상하게 하는 일은 일생에 단 한 번도 없다. 남이 얼마나 간악하고 무정하 고 잔혹한 말을 내뱉든, 그런 말에는 우리를 괴롭히거나 불편하게 만들 티끌만한 힘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내가 제정신이 아니거나, 완전히 잘못 알고 있거나, 심각하게 비현실적이거나, 아니면 이 모두에 해당하 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장담한 다. 자신을 무시하고, 깔아뭉개고,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바로 자기 자신밖에 없다!

- 람 있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타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 을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비판이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 남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므로, 정작 자신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쏟을 에너지가 별로 남지 않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이 렇듯 남을 만족시키려고 애쓰는 이들보다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많은 사람이 더 매력을 느끼고, 그러 한 태도를 바람직하게 여긴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는 앞 장에서 소개한 인지 기법들에 관 한 일종의 개관이다. 문제의 핵심은 오직 우리의 생각만이 우리를 속상하게 만들 수 있으며, 만일 더 현실성 있게 생각하는 법을 익 힌다면 훨씬 덜 속상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비 판할 때 곧바로 우리의 머릿속에 흔히 떠오르는 부정적 생각을 적 어보자. 이어서 거기에 어떤 왜곡이 있는지 밝혀낸 뒤 더 객관적이 고 이성적인 대응으로 바꾸어보자. 분노와 두려움이 한결 줄어들 것이다.
- 누군가가 여러분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때 그 사람의 행동은 여러 분을 돕거나 해치려는 동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비판자가 하는 말 은 틀리거나 옳거나 또는 그 사이 어디쯤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여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그 대신 비판 자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려는지 파악하기 위해 구체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던져본다. 질문할 때는 판단하거나 방어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계속 더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비판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비판자가 근거가 모호한 모욕적 인 말로 공격하면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서 그 사람이 나의 어떤 면을 싫 어하는지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이 초기 대응 전략은 비판자가 남의 허물 찾기를 그만두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공격과 방어 관 계를 협력과 상호존중의 관계로 변화시킬 수 있다.
- 누군가 우리에게 비난을 퍼부을 때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 를 선택할 수 있다. 첫째, 피하지 않고 비난에 반격한다. 이 방법은 대개 싸움으로 발전해 서로를 파탄낸다. 둘째, 그 자리에서 달아나 거나 피한다. 이 방법은 흔히 수치심을 낳고 자아존중감을 잃는 결 과를 가져온다. 셋째,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상대방을 솜씨 있게 무장해제한다. 이 가운데 가장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세 번째 방법이다. 상대방을 맥 빠지게 만들면 결국 자신이 승자가 될 것이 며, 상대방 역시 대체로 승자라고 느끼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비결은 간단하다. 상대방의 비판이 옳든 그르든 처음에는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치는 방법을 찾아낸다. 

- 야유 받아넘기기
여기서 다룰 내용은 강연이나 강의를 하는 사람에게 특히 유용하다. 나는 대학이나 전문가 단체에서 우울장애 연구 현황을 강의하기 시작할 때부터 '야유 받아넘기기' 기법을 개발했다. 강의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좋았지만 야유를 보내는 사람이 한 명은 꼭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보내는 야유에는 대체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아주 신랄하지만 부정확하며 주제와 관련성도 없다. 둘째, 야유를 보내는 사람은 흔히 동료에게 별로 인정이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셋째, 이들은 장황한 독설을 퍼붓는다.
다른 청중에게도 질문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나는 이런 사람들 을 마음 상하지 않게 조용히 시키는 '야유 받아넘기기' 기법을 개 발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방법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첫째, 지적 해주어서 고맙다는 답변을 즉각 해준다. 둘째, 지적한 문제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셋째, 지적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더 알아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비판자에게 이 주제에 관 해 의미 있는 연구와 조사를 해보라고 격려한다. 넷째, 강의가 끝 난 뒤 이 문제에 관해 더 많은 의견을 나누면 좋겠다고 말한다.
말로 하는 기법이 반드시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위와 같은 낙관적 방법을 이용했을 때 거의 만 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실제로 야유를 던지는 사람들 중 많은 수 가 강연이 끝난 뒤 찾아와 칭찬을 하면서 친절하게 답변해주어 고 맙다고 말했다. 때로는 이런 야유자들이 내 강연에 가장 큰 애정을 보내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한다!

- 이제 생산적 분노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이 기준에 의거해 우리는 지금까지 배운 것을 종합해서 분노에 대해 뜻깊은 철학을 얻을 수 있다.
1. 나의 분노는, 다 알면서도 고의로 불필요하게 나에게 해를 입히려고 행동하는 사람을 향한 것인가?
2. 나의 분노는 유익한 것인가? 바람직한 목표를 이루도록 도울 까, 아니면 단지 나를 좌절시킬까?
예를 들어보자. 여러분이 농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편 선수 한 명이 팔꿈치로 여러분의 배를 고의로 가격한다. 여러분의 화를 돋우어 경기를 망치게 하려는 목적에서다. 그럴 때 여러분은 더 열심 히 뛰어 승리할 수 있도록 분노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분출할 수도 있다. 이 때의 분노는 상황에 적합하다. 물론 경기가 끝나면 더 이상 분노는 필 요하지 않다. 이제 분노는 상황에 부적합하다. 
세 살 난 아들이 위험하게 거리를 마구 뛰어다니고 있다고 하자. 아이가 일부러 위험을 자초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 서는 화를 내는 것이 적합하다. 감정이 격앙된 목소리로 사태가 심 각하다는 경보 메시지를 아이에게 전달해야 한다. 무덤덤하고 아 주 이성적인 태도로 아이를 대한다면 이런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위의 두 사례에서 우리는 화내기를 '선택'한 것이고, 감 정의 정도와 표현 여부를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 분노의 시의적절 한 효과와 긍정적 효과는 적대감과 다르다. 적대감은 충동적이고 통 제 불가능하며 공격적인 행동을 낳는다.
무자비한 폭력을 다룬 신문기사를 읽고 분노가 일었다고 해보 자. 신문에 실린 폭력적인 행동은 분명히 해롭고 비도덕적이다. 그 렇지만 이에 대응할 계획이 없다면 우리의 분노는 상황에 적합하 지 않다. 반대로 만일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희생자를 돕거나 범죄 와 맞서 싸우는 운동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우리의 분노는 상황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 정확한 감정이입
감정이입은 최고의 분노 해독제다. 감정이입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기법 중 가장 효과가 좋은 마법 같은 방법으로, 마법의 거울 따위는 필요도 없다.
우선 감정이입의 정의부터 내리자. 감정이입은 상대방과 같은 방식으로 느끼는 능력이 아니다. 그런 능력은 '공감'이라고 한다. 공감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기는 하지만, 나는 이것이 약간은 과 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감정이입은 상냥하거나 이해심 있 는 태도도 아니다. 그런 것은 감정이입이 아니라 '지지'라고 한다. 지지의 가치도 과대평가되고 있다.
- 그렇다면 감정이입이란 무엇일까? 감정이입이란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의 동기를 정확히 읽고 파악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능력을 기르면 다른 사람의 행동이 자신의 취향과 다르다 해도 분노하지 않고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바로 나의 생각이 실제 분노를 만들 어낸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놀랍게도 다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 하는지 이해하는 순간, 분노를 일으킨 우리 자신의 생각도 거짓임 을 깨닫게 된다.

- 우리가 실수를 했을 때 필요한 것은 인식, 배움, 변화의 과정이다. 이때 죄의식은 이 가운데 어떤 것에 도움이 될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죄의식은 실수를 인식하도록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실수를 덮어버리게 한다. 어떤 비판에도 귀를 닫고 싶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끼는 것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에 잘못을 질렀다는 사실 자체를 견디지 못한다. 죄의식이 비생산적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우리는 당근이나 채찍의 방법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 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나는 이걸 해야 해' '저걸 하지 말아 야 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만 한다면 평생 '해야 한다' 식 사고 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이미 그 귀결이 무엇인지는 알고 계실 겁니다. 정서적 변비에 걸리고 마는 거죠. 정말 상황 을 개선하고 싶다면 벌보다는 상으로 의욕을 고취하라고 권하 고 싶습니다. 이 방법이 훨씬 효과가 있을 겁니다.
- 사실 불평꾼이 계속 똑같은 반응을 보이게 만드는 것은 이들을 돕겠다는 우리의 충동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들의 비 관적 푸념에 맞장구를 쳐주면 그들은 순식간에 김이 빠져버린다. 약간 설명을 덧붙이면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사람들은 푸념이나 불평을 할 때 대개 짜증, 기죽음, 불안감을 느낀다. 우리가 돕겠다 고 하면 그들은 자신이 일을 잘못 처리하고 있다고 비난당하는 것 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막상 맞장구를 쳐주고 칭찬을 해주면, 그 들은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긴장이 풀리며 안정 을 찾는다.

- 다음은 많은 사람이 효과를 본 몇 가지 생각이다. 자신의 목록을 작성할 때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1. 누군가 우리에게 부정적 반응을 보일 때, 그 비난의 핵심에는 그 사람의 비합리적인 생각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설사 비판이 타당하다고 해도, 그 비판이 우리를 파멸로 몰 아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실수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를 하 나씩 고쳐나갈 수 있다. 그렇게 실수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 울 수 있다. 실수를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인간이라면 당 연히 이따금 실수할 수밖에 없다.
3. 일을 망쳤다고 해서 타고난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항 상 또는 거의 항상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해온 수많은 옳은 일을 생각해보자! 더구나 인간은 변하고 성장한다.
4. 다른 사람은 우리의 인간적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그들은 다만 우리의 특정 행동이나 말의 타당성이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5. 우리의 행동이 훌륭하든 아니든,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 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비난은 들불처럼 순식간에 번질 수 없으며, 한 사람의 거부반응이 다른 사람의 거부반응으로 끝 없이 이어질 수도 없다. 그러므로 심지어 상황이 더 악화되 고 누군가에게 거부당한다고 해도 완전히 외톨이가 되는 것 은 아니다.
6. 인정받지 못하거나 비판받는 일은 대개 불편하다. 그러나 불 편함은 언젠가 사라지게 마련이다. 울적해하지 말자. 예전에 즐기던 활동이 있다면, 당장은 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고 여 겨지더라도 적극적으로 시도해보자.
7. 비난과 비판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만큼만 우리의 감정을 동요시킬 수 있다.
8.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거의 오래가지 못한다. 비판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과 우리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 니다. 논쟁은 삶의 일부이며, 대개 나중에는 서로 이해하게 된다.
9.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한다 해도 그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이 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를 판단할 힘과 권 리를 남에게 주려 하는가? 우리는 모두 인간일 뿐 대법원 판 사가 아니다. 남의 권능을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지 말자.

- 인정받지 못하거나 거부당한 상처에서 회복하기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는데도 사실상 인정받지 못하 거나 거부당했다고 해보자. 이때 일어나는 감정 동요를 어떻게 하 면 가장 빨리 극복할 수 있을까? 먼저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 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실망스러운 작은 일 하나로 우리의 행복을 영원히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거부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했을 때 우리의 기 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생각이다. 그러니 이런 생각과 맞서 싸우고 왜곡된 자기학대에 굴복하기를 완강히 거부한다면 감정 동요는 사라질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 오랫동안 슬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 이 돼온 방법이 이 경우에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 가족과 사별했을 때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고통스러운 기억과 세상을 떠난 이와의 추억에 잠기면 슬픔을 더 빨리 극복하고 끝마칠 수 있다. 이 방법은 혼자 할 때 가장 효과가 좋다. 다른 사람의 동정은 오히 려 역효과가 난다. 몇몇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동정은 오히려 슬픔에 잠겨 힘겨워하는 기간을 늘린다고 한다.
거부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했을 때 이 '슬퍼하기' 방법을 써보자. 매일 한두 번씩 시간을 정해서(한 번에 5~10분) 슬프고 화나고 절 망스러운 온갖 생각을 마음껏 하는 것이다. 슬픔을 느끼면 소리 내어 운다. 미칠 것 같으면 베개를 두드려 팬다. 정해둔 시간 내내 고통스러운 기억과 생각에 푹 잠겨 있도록 한다. 

-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현명해질 수 있는 문이 두 개 있다. 하 나에는 '완벽함'이라 쓰여 있고, 다른 하나에는 '평범함'이라 쓰여 있다. 완벽함의 문은 화려하고 고급스럽고 우리를 현혹한다. 우리 는 이 문을 통과하고 싶다. 평범함의 문은 칙칙하고 단조롭다. 누 가 이런 문을 원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완벽함의 문을 통과하려고 애쓰는데, 그러다 문 너머에 있는 단단한 장벽을 발견한다. 이 벽을 깨려고 시도하면 코 피가 흐르고 두통이 생긴다. 이와는 반대로 평범함의 문 너머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 하지만 이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는가? 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분이 반드시 내 말을 믿을 필요는 없다. 여러분은 회의적인 장을 계속 유지해나가기 바란다. 그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다만 내가 말하는 내용을 잘 검토해보기 바란다. 살면서 단 하루만이라 도 평범함의 문을 통과해보자. 틀림없이 깜짝 놀랄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완벽함'은 모든 사람이 꿈꾸는 궁극의 환상이 다. 완벽함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함은 사실 세상에서 가 장 거창한 사기 행각으로, 부를 약속하지만 불행만 가져다준다. 완벽을 추 구하면 할수록 실망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완벽함이란 단지 추상적 개념,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 개념을 깊 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면 모든 것이 더 좋아질 수 있다. 모든 사 람, 모든 발상, 모든 예술작품, 모든 경험을 개선할 수 있다. 

- 현재 처방하는 대부분의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노르 에피네프린, 도파민의 활동에 영향을 끼친다. 항우울제 가운데 어 떤 것은 하나의 신경전달물질만 선택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항우울 제는 많은 전달물질에 작용한다. 하지만 현재 처방하고 있는 항우 울제가 이 세 가지 물질에 끼치는 효과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 어떤지를 설명해주는 아주 일관되거나 설득력 있는 증거는 아직 없다. 예를 들어 어떤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농도를 자극하고, 어떤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수용체를 차단하며, 어떤 것은 세로토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나름대로 좋은 효과가 있다. 
- 우울하다면, 뇌에 '화학적 불균형'이 생겼다는 뜻일까?
뇌의 화학적 불균형이나 호르몬의 불균형이 우울장애를 일으킨다 는 미신에 가까운 믿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믿음 은 증명되지 않았으며 사실이 아니다. 17장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아직도 우울장애의 원인을 알지 못하며 항우울제가 어떻게, 왜 작 용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우울장애가 화학적 불균형 때문에 생긴다는 이론을 2천 년 전부터 주장해왔지만 아직 증명되지 않았 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확실히 아는 게 없다. 게다가 특정 환자 나 환자 집단이 우울장애를 앓는 원인이 '화학적 불균형'이라는 점 을 증명해줄 수 있는 실험이나 임상증상도 전혀 없다.
- 두 가지 약물이 상호작용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네 가지 방식이 있 다. 첫 번째로, 하나의 약물이 혈액 속에 있는 다른 약물의 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두 가지 약을 '정량만 복용했는데도 때때로 경 고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 혈액 속 약물 농도가 갑자기 증가하 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우선 부작용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부 작용은 대개 복용량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많은 정신과 약물 은 복용량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으면 약효가 떨어진다. 끝으로 어 떤 약물의 혈액 내 농도가 너무 높으면 중독되거나 치명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 약물 상호작용의 두 번째 유형은 첫 번째와 정반대다. 하나의 약 물이 혈액 속에 있는 다른 약물의 농도를 끌어내릴 수 있다. 그러 면 정량대로 복용하더라도 두 번째 약은 효과가 없을 수 있다. 그 런데 환자나 의사가 이 사실을 착각해 약 자체가 효과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정작 문제는 환자의 혈액 속 약물 농도가 너 무 낮다는 것인데 말이다.
- 상호작용의 세 번째 유형은, 두 가지 약물이 각각 비슷한 효과나 부작용이 있어서 서로를 강화해주는 경우다. 예를 들어 고혈압 때 문에 치료받고 있는데, 혈압을 내리는 부작용이 있는 정신과 약물 을 복용한다고 해보자. 혈압이 순식간에 뚝 떨어져서, 갑자기 자리 에서 일어서다 기절할지도 모른다.
약물의 상호작용 가운데 네 번째 유형이자 가장 불길한 유형은, 혈액 속 약물 농도를 바꾸지는 않지만 특정한 약물 결합의 효과 때문에 중독되는 경우다. 다시 말해 따로따로 복용하면 안전한 두 가지 약물도 함께 복용하면 위험한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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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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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행복을 질투하는 감정, 즉 '르상티망(ressentiment)'이 깔려 있다.(니체(Nietzsche))
- 인간이 인간을 과도한 이물질(異物質)로 인식하고 심리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는 증상. 나는 그것을 '인간 알레르기'라고 명명 한다.
사람들과 화합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더라도, 경제적으로나 정 서적으로나 완벽한 배우자와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 더라도, 인간 알레르기는 우리 삶을 고달프게 만드는 크나큰 저 해 요인이다. 그런데 의외로 지금까지는 인간 알레르기에 대해서 언급하는 학자도 없었으며, 체계적인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몸의 알레르기 반응에 관한 연구는 이미 활발히 진행되어 상 당 부분이 해명된 반면, 마음의 알레르기 반응에 대해서는 연구 의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매우 빈약하다.
- 어떤 사람이 싫어지는 것은 그 사람이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는 시각이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인간 알레르기 이론을 중심으로 해석해보면 그 양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27년에 걸친 내 임상 경 험에 비춰보건대 어떤 한 사람에게 인간 알레르기를 일으키기 쉬운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즉 상대를 아무 리 바꿔도, 회사를 아무리 옮겨도 또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주변 사람을 바꿔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정말로 개선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이 품고 있는 인간 알레르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인간이 고뇌하는 이유는 대부분 인간 알레르기 때문이며, 그것과 싸우는 데 많은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고통이나 고독, 그리고 마음을 심란 하게 하는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인 간 알레르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위화감이나 고 통을 느끼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반드시 인간 알레르기를 이해해야 한다.
- 마음에도 면역 체계가 있다
인간의 마음에도 면역에 해당하는 시스템이 있다. 그리고 마음의 면역 반응에도 이물질을 공격, 제거하는 시스템과 함께 과거에 침입했던 이물질을 기억하는 시스템이 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 때문에 공포나 고통을 맛보았다면 그 사 람뿐 아니라 그 장면과 관계된 사실 또한 기억에 각인된다. 그리 고 그 사람과 맞닥뜨린 경우뿐 아니라 그 장면이 연상되는 상황 에 처하기만 해도 마음속에 경보음이 울려 회피나 전투 준비를 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강력하고도 철저하기 때문에 이성으로 제어하는 게 쉽지 않다. 인간 알레르기가 발현되면 그리 유해하 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런 마음의 면역 체계가 작동한다. 이전까 지는 두려워하고 거부할 필요가 없었던 존재일지라도 회피하거 나 공격, 제거하려 한다. 일단 인간 알레르기가 생기면 동료나 배 우자, 가족조차도 이물질로 인식하므로, 그들도 회피나 공격, 제 거 대상이 된다. 때로는 특정 인물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이물 질로 인식하여 제거 리스트에 올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면 타인과 사이좋게 지내고, 원만한 관계를 맺고 싶다고 생각 해도 충돌이나 오해를 피할 수가 없다.

- 다양한 방어 메커니즘
마음의 면역 체계는 지금까지 '방어 반응'이나 '방어 메커니즘'이 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구조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폭넓고 다 양하다.
스트레스나 불쾌한 사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태에 직면해도 정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은 다양한 방어 반응을 일으 킨다. 이를테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잊어버리려 한다. 이것은 '억압(壓)'이라는 방어 메커니즘 이다.
- 수면과 꿈도 역시 마음의 정화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꿈속에서 우리가 누차 벌이는 일은 현실의 상황을 좀 더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상황으로 바꾸는 것인데, 이를 '치환)'이라고 한다. 자 신을 공격하는 존재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마음의 균형을 유지 하려는 경우도 있다. 학대당한 아이는 늘 그런 방어 메커니즘을 준비해둠으로써 부모를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반동형성(形 成)'에 의해 오히려 부모를 이상화화고 과도하리만치 효도를 하 기도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더욱 차원 높은 것으로 바꿔서 받아 들이거나 극복하려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승화(昇華)'라고 부 른다. 학대당하며 자란 사람이 똑같은 처지의 아이를 도와주는 일에 종사하는 데에도 그런 마음의 메커니즘이 작용한 것이다.
욕구를 충동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화'는 마음의 방어 반 응이 실패한 결과로 볼 수 있는데, 실제로는 중요한 마음의 면역 반응이다. 공격을 받으면 반박하고 그 상대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기분을 풀려고 하는 것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 우 공격을 가한 당사자가 아닌 의존하는 대상이나 약한 대상에 게 공격의 화살을 겨눈다는 것이 문제다. 가정 폭력이나 집단 따 돌림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가 없다.
가눌 수 없을 만큼 힘든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완전히 망 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긴급히 작동하는 것이 해리(解離)이다. 의식이나 기억의 고리를 일단 차단하는 구조이다. 도마뱀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것과 같다. 또 이때 는 '격리' 반응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건이나 감정을 잘라냄으로 써 고통에서 도망치려는 방어 반응이다. 사건은 기억하되 감정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잘라낸 감정은 엉뚱한 것으로 모습을 바꾸어 전혀 상관없는 장면에 나타나기도 한다. 충동적인 살인이나 이해 하기 어려운 폭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에 생긴 트라우마가 망령처럼 떠돌다 뜻밖의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인간 알레르기 상태에서 이물질로 인식한 존재에게는 더욱 심 하게 공격을 가하고 제거해버린다. '행동화'와 함께 앞 장에서 말한 '투영', '조적 방어', '자기애' 같은 더욱 자기방어적이고 자기변명적인 방어 메커니즘이 나타난다. 그와 동시에 자폐 성향을 보이며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친밀한 관계를 '회피'함으로써 자 신을 지키려는 경우도 많다.
-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다고 느끼면 고통은 반이 되고 기쁨은 배가 된다. 마음을 공유하게 된 존재를 애착 이론에서는 '안전 기지'라고 부른다. 그것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가족이며, 이물질과 는 정반대의 존재이다.
인간은 상대방이 안전 기지인지 아닌지를 자신도 모르게 가르 고 있다. 상대가 만약 안전 기지라면 기분 좋은 안도감에 휩싸여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놓게 된다. 이야기하는 동안 자연 스럽게 마음이 정리되어 어느샌가 답을 찾기도 하고 힘과 용기 가 솟기도 한다.
- 하지만 애당초 마음을 털어놓기에 가장 좋은 부모나 파트너라 해도 안전 기지가 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 았는데, 노력이 부족하다고 질책하거나 충고와 설교를 늘어놓는 경우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눈엣가시가 되 어거부 반응만 일어나게 한다.
'안전 기지'가 되지 못하는 전형적인 유형은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이야기를 제대로 듣 지도 않고 이래라저래라 쓸데없는 참견이나 충고를 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해버린다. 상대방은 그런 걸 원한게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공유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 자녀에 대한 애정, 파트너에 대한 애정처럼 특정 존재에게 지속적인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옥시토신의 작용으로 애착이 생 겨났기 때문이다. 일단 애착이 생기면 상대방은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녀에게, 커플이 서로에게 한창 열중할 때도 거기에는 생물학적인 구조를 뛰어넘은 고차원적인 정신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이 정신 작용이 두 사람 간의 애정 자체에 문제가 생겨도 관계를 유지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예의 바르고 의무감 이 강해서 누군가를 함부로 내치지 못하는 성격, 혹은 혼자서는 불안하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만 하는 성격이 있다고 치자. 전자는 강박성 인격 장애, 후자는 의존성 인격 장애 로 알려져 있는데 둘 다 악연을 유지하는 데 공헌하고 있다.
또 타인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큰 영향이 미치는 정신 작용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심리적 동일시'와 '자기애 전이'다.

-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신은 죽었다'고 갈파했으며, 아버지가 돌 아가신 후에는 강한 성격의 어머니에게 공부만을 강요당했던 신경 질적이고 진지한 우등생 타입의 니체. 한편 자신의 진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성장했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 았으며, 사람 좋은 왕을 속여 거금을 바치게 하고, 악단 지휘자의 아내와 간통하여 자식을 낳아놓고도 당당하기만 했던 자기애의 화 신 바그너. 두 사람은 삶의 가치관이 완전히 달랐다. 바그너의 세계 속에는 '천재 바그너와 나머지 사람들밖에 없었고, 나머지 사람들’ 은 자신을 예찬하고 봉사하면 그만이었다. 그에 비하면 니체의 세 계관은 기독교적인 도덕관의 범주 안에 들어 있었다. 자신의 착각 을 깨닫고 바그너에 대한 열광이 갑자기 식어버리자 일찍부터 니체 의 마음속에 있던 위화감이 강한 거부감과 증오로 변했다. 그때까 지 바그너에게 바쳤던 숭배조차도 감쪽같이 이용당했다는 생각에 그는 용서하기 힘든 분노에 시달렸다.

- 자기 자신에 대한 인간 알레르기
보통 신체 면역계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제와 공격이 일어 나지 않도록 통제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라 해도 거기에 이물 질이 들러붙거나 이물질과 유사하면 착각을 일으켜 공격 대상으 로 여길 때가 있다. 자기 자신의 일부를 이물질(항원)로 인식하여 자가 항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관절이 굳고 아픈 만성 관절 류 머티즘이나 침과 눈물 분비가 감소하는 쇼그렌 증후군(Sjögren's syndrome, 코와 목이 마르고 침과 눈물이 잘 안 나오며 관절통까지 동반 되는 병- 옮긴이) 같은 자가면역질환은 면역관용의 시스템이 망가 져 자가항체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고 파괴함으로써 생긴다.
마음의 면역에서도 똑같은 상태가 나타난다. 자신이 가장 믿어 도 되는 존재를 더 이상 믿지 못하고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다. 가정 폭력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혐오 감을 느끼거나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다.

- [고독한 천재, 니체]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성장 과정이나 증상을 살펴본 결과 철 학자 니체는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장애(Asperger's syndrome) 였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세 살이 되어도 말 한 마디 못했는 데 네 살 때는 독서를 시작했다. 음성언어의 미발달과 문자 언어의 자연스러운 습득이라는 간극은 아스퍼거 장애의 특징 중 하나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철들기 시작할 무렵 그가 본 것은 목사였던 아버지가 망가지는 모습이었다. 신경 질환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경 련과 안면 마비 증상부터 의식을 잃는 발작과 실어증, 실명, 착란, 심한 격통까지 겪는다. 아마 아버지도 니체가 천형처럼 짊어지게 된 병, 신경매독이었을 것이다. 그 공포스러운 기억은 오랫동안 그 를 괴롭히며 마음의 안정을 위협했다. 그러지 않아도 니체는 신경과민에 불안이 강한 아이였다. 기숙학교의 기록에 따르면 끊임없는 두통과 위염 같은 심신 미약으로 종종 수업에 빠졌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환청을 듣고 악몽도 꿨다. 그는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인 형이나 주석 병정, 도자기로 만든 동물들로 이루어진 세계는 '다람 쥐 왕'이 질서 있게 통치했다. 니체는 아홉 살이 돼서도 인형 놀이 를 계속 반복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과민한 반면 성적은 아주 우수했다. 게다가 시나 음악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목사들은 그를 '천재'라 고 여겼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자유롭고 무질서한 학 교보다는 답답한 구석은 있지만 군대 같은 스파르타식 학교가 더 나은 면도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니체에게 다행히도 어머니는 늘 그의 비호자가 되어주었다. 슬하에 딸이 있었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은 매우 각별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보고 아들만을 희망으로 삼으며 인생을 보냈다.
어머니는 아직 젊었기 때문에 친정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 지만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시어머니, 시누이와 함께 좁은 집에서 사는 길을 선택했다. 모자가 살았던 곳은 북향의 작은 방이었다. 그 곳에서 어머니는 거의 아들 옆에 붙어 공부를 가르쳤다고 한다. 늘 가혹하리만치 빽빽한 일과를 정해주고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엄격하게 질책했다. 이런 지나친 기대가 과민한 소년을 꽁꽁 얽어매어 더욱 괴로운 삶을 살게 한 측면도 있다.
니체는 고전어를 전공했는데, 곧바로 그 재능을 교수에게 인정받 았다. 하지만 이 '천재'의 내면에는 불안정과 위화감, 그리고 지나치 게 강한 자존심과 과민함이 동시에 존재하여 그의 사고와 행동 사 이에는 끊임없이 간극이 생겨났다. 스물다섯 살에 바젤 대학의 교 수라는 이례적인 출세를 이루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곧바로 '니체 교수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보통 사람과는 다른 구석이 있다'고 생 각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이 연극 같다거나 딱딱한 구석이 있다고도 평가했다. 또 어떤 여자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에 당황스러워했다. 니체가 만찬회 자리에서 자신이 두꺼비를 먹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거북스러워한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학생 시절에는 바이런에 열중했던 것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좀 더 자유분방하고 영웅적인 삶을 동경했다. 바그너의 오페라에도 감 동하여 한때 심취했다. 하지만 니체는 바이런이나 바그너처럼 살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열광했던 또 한 사람, 비관론자이자 철학자 인 쇼펜하우어와는 고독하다는 점과 인간관계에 서툴다는 점이 매 우 유사했다.
니체는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됐지만 서서히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마침내 대학을 그만두고 은둔 생활을 하며 집필에만 몰두한다. 그가 집필만으로 근근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대학에서 조금이나마 연금이 나왔기 때문이다.

- [어른이 되어 슬픈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야간비행』 같은 명작으로 유명한 생텍쥐페리 (Saint-Exupéry, 1900~1944)는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ADHD의 특성을 강하게 드러낸 인물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잠시 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녔기 때문에 누구도 통제하 기 힘든 난폭한 아이였다. 방을 잔뜩 어질러놓고 만지는 것마다 모 두 망가뜨리거나 더럽히는 악동이었다. 그는 다섯 형제 중 셋째에, 아버지를 세 살 때 여의어 어머니가 응석을 모두 받아주었던 만큼 통제가 힘든 아이로 자랐다.
규율이 엄격한 예수회 계통의 학교에 들어갔지만 주의가 산만하 고 정리 정돈을 못했다. 일처리가 서툰데다 차분하지도 않고, 성적도 뛰어나지 않았던 그는 급기야 문제아 취급을 받으며 더욱 반항 적인 아이가 되었다. 훗날 비행기를 몰게 되기는 했지만 평소 운동 신경이 둔하여 자전거조차 쉽게 타지 못했다.
학교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어떻게든 해보고픈 마음에 어머니는 스위스에 있는 자유로운 교풍의 학교로 전학을 보낸다. 생텍쥐페리는 그곳에서 살아났다. 성적도 올랐고, 문학에 눈을 뜨 더니 시와 데생에 재능을 보였다. 과목 중에서는 국어인 프랑스어 를 제일 잘했지만 그래도 훗날의 세계적 작가가 쓴 문장은 오자투 성이였다.
열두 살 때 그는 인생을 결정짓는 중대한 체험을 한다. 당시 주목받기 시작한 비행기에 매료되어 격납고를 드나들다가 실제로 탑 승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얼마 전으로, 당시 비행기는 시험 삼아 세대를 만들면 두 대는 머지않아 추락할 운명이어서 도저히 안전한 이동수단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 다. 하지만 그는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공군 학교에 지원했으 나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스물한 살 때 항공대에 지원하여 입 대했지만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은 당시에도 쉬운 일이 아니었 다. 그는 어머니에게 돈을 타내 고액의 훈련비를 내고 민간 항공회사에서 훈련을 받았다. 비행기 조종사 자격을 따자 그는 비행기를 몰고 싶다는 일념으로 기회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하지만 애당초 주의가 산만하고 조종에 서툴렀던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 고 이륙 직후 90미터 높이에서 추락했다. 그 당시 비행기는 산산이 부서지고 자신은 전신타박상을 입었지만 그 후에도 아랑곳없이 조 종사 일을 찾아 전 세계를 방황했다. 그가 주로 조종했던 것은 우편 비행기였다. 북아프리카의 사막이나 대서양, 남미 안데스 상공을 고독하게 비행하는 것이 파리의 사교계나 도시의 쾌적한 생활보다 훨씬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에서 딱 한 번 안타까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ADHD 유형의 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언제까지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욕심 많은 어른들의 세 계는 그리 살고 싶은 곳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생텍쥐페리는 이성 운이 없었다. 처음에 결혼을 약속한 루이즈 드 빌모랭에게는 파혼을 당했고, 아내가 된 콘수엘로는 낭비벽이 심하고 그리 성실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는 서서히 아내에게 무관 심해졌고, 사고의 후유증으로 생긴 목, 허리, 어깨 등 전신 통증에서 도망치기 위해 점점 알코올에 의존했다. 만년에는 조국을 위해 죽 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다시 한 번 비행기에 타는 것을 유일 한 희망으로 간직하며 살았다. 그는 어쩌면 인간 알레르기에서 도 망치려고 푸른 하늘을 동경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생텍쥐페리는 몇 번이나 목숨을 건질 정도로 운이 좋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에 지중해 상공에서 교신이 끊긴 채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 [어머니를 증오한 쇼펜하우어]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어머니를 평생 동안 증오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여류 작가로 활동했던 어머 니는 사교와 예술에는 관심이 있어도 양육에는 무관심하여 아들을 자주 방치했다. 쇼펜하우어가 어린 시절부터 늘 우울하고 신경질적 인 성격을 보였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는 어머니를 바라는 마 음이 강했고, 청년이 되고 나서도 그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하 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자신보다 어머니 스스로의 즐거움을 우선하는 모습만 확인하곤 했다. 아들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애인과의 관계 때문에 우울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쇼펜하우 어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아버지가 자살한 건 모두 당신 때문이야!"
그걸로 모든 것은 끝났다. 어머니는 아들과 인연을 끊겠다며 자 신의 집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그 후 두 사람이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 딱 한 번 어머니가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도와달라고 한 적 이 있었는데, 쇼펜하우어는 이때다 싶었는지 매몰차게 거절했다.

- 면역을 억제하는 장치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게 제어성 T 세포이다. 어린 시절 접촉한 이물질에 대해서는 제어성 T세포가 증가한다. 그런데 이 세포는 재미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평화 국가의 군대처럼 싸우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싸우 지 않음으로써 쓸데없는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알레르기가 일어나기 쉬운 체질은 제어성 T세포가 감소한 상 태이다. 이렇게 제어성 세포가 부족한 경우에는 이물질이 아닌 자기 자신의 세포에 대해서도 공격을 퍼붓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가면역질환이다.
- 유소년기에 세균에 감염되는 일이 없으면 제어성 T세포가 충 분히 증가하지 못하므로 면역을 억제하는 장치도 발달하지 못한 다. 요컨대 너무나 위생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지나치게 보호받으 며 자라면 무해한 이물질에 대해서도 과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는 곧 스트레스가 너무 적은 과잉보호 환경에서 자라면 인간 알레르기가 쉽게 생긴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심리적인 무균 환경에서 자라면 대개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것 외에는 전혀 받 아들이지 못하는 결벽증 성향을 갖게 된다.
가족이 한 방에 모여 잠자는 게 당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과, 어려서부터 자기 방에 격리되어 다른 아이와 싸우거나 친해질 기회도 없이, 무엇이든 리모컨 하나로 조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타인을 이물질로 받아들이는 감도(感)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 '마음속 깊은 곳까지 상대를 다 알고, 그래도 더 알기 위해 힘껏 다가가려 한다. 하지만 조금씩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무 리 열의를 담아 상대를 사랑하려고 해도, 아무리 친밀하게 상대와 관계하려 해도 어차피 상대는 낯선 타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게 된다. 가장 헌신적인 남편과 아내조차 서로를 알지 못한다. 그렇 기 때문에 자신의 껍데기 안에 틀어박혀 침묵한 채 누구에게도, 제 일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보여줄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게 된다.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 몸의 경우도 그렇지만 인간 알레르기를 안고 있는 사람은 하 나같이 연애에 서툴고, 그 결과 이성 운이 없다. 그 사람 내면의 편견이나 완고함이 균형감 있는 관계를 가로막기 때문에 어울리 는 사람과 만나 행복한 연애를 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몸처럼 깊은 상처를 간직한 채 타인을 믿지 못하는 사 람조차 누군가를 믿고 싶어 한다. 아직 젊어서 사람을 사랑하고, 갈망하려는 에너지로 가득할 때 인간은 한 줄기 가능성에 기대 어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걸 믿고 또 그것을 회복하려 한다. 그것 역시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 과민 반응을 막으려면?
1) 사실과 추측을 구별한다
인간이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까닭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 인 양 비약적으로 추측하기 때문이다. 인간 알레르기인 사람은 사소한 신호나 조짐을 모두 안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사실과는 동떨어진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낸다.
2) 확대해석을 멈춘다
잘못된 판단으로 확대해석을 하면 인간 알레르기는 더욱 기승 을 부린다. 전혀 관계가 없는 일도 제멋대로 연관 지어 악의적인 감정까지 덧붙이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까지 불태우는 사 태에 이르기도 하는데, 이런 사례는 매우 빈번하다.
이런 생각에 빠지다 보면 모두가 의도적으로 접근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으려 한다고 느낀다. 고작 한두 번밖에 일어나지 않은 일을 늘 일어나는 일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그러다가 자신 에게는 영원히 안 좋은 일이 계속될 것이라며 신세를 한탄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우연에 불과한 일을 확대해석하게 되면 이렇듯 큰 불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3)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타인을 이물질로 인식하는 요인 중 하나는 '신경과민'이다. 많 은 사람들에게 별로 불쾌하지 않은 자극도 고통스럽게 받아들이 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쉽게 상처를 받고 타인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나 피로의 원인이 되므로 어느샌가 그것을 고통 으로 느껴 인간 알레르기에 이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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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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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고 아는 존재

심리 2024. 1. 17. 20:08

- 다마지오의 뇌과학은 느낌으로 시작하여 앎으로 향하고 있다. 다마지오는 안와전두엽에 종양이 생긴 환자를 관찰 하면서 감정이 거의 사라진 사람은 생존에 중요한 판단력이 흐려짐을 알게 된다. 올바른 선택을 하는 판단력은 이성이 아 니라 감정에서 생긴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신체와 정신을 분 리하여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다마지오는 《데카르트의 오류》라는 책에서 감정과 느낌은 신체 상태 정보를 신경시스템이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며 항상성 정보의 핵심임을 설명한다. 다마지오가 뇌의 작용을 보는 관점은 항상성이라는 단어의 정의 속에 모두 담 겨 있다.
항상성은 생물이 생존 가능한 영역에 머물도록 해주는 생 물의 능력이다. 항상성이 유지되는 동안만 생물의 생명현상 이 작동될 수 있다. 생명 현상에서 출현한 항상성은 자동적 항상성과 확장된 항상성 두 가지가 있다. 자동적 항상성은 세 포 수준의 대사작용, 면역반응, 조건반사의 세 가지 작용에서 시작한다. 박테리아와 진핵세포에서 항상성 작용은 생화학 분자 작용에서 쾌감과 통증을 일으켜 접근과 회피반응이 가 능해진다. 접근과 회피반응이 다세포 생물에서는 충동과 동 기를 유발하여 동물의 반사적 동작이 나온다. 충동과 동기는 1차 의식이 출현하는 포유동물에서 초기 감정상태를 만든다. 다마지오는 동물과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신체상태에 관 한 배경정서, 사회적 관계에서 출현하는 사회적 정서 그리고 거친 1차 감정으로 구분한다. 동물적 1차 감정은 몸과 내부장기의 신체상태 정보가 비의식상태 처리 과정인 정동에서 생 겨난다. 쾌감과 불쾌감의 1차 감정이 대뇌피질의 인지적 해 석을 통해서 느낌상태를 만든다. 통증과 쾌감의 정동적 신체 반응이 사회적 개념으로 해석되어 감정이 된다. 반사적 속성 의 거친 감정들이 대뇌피질에서 기억과 인식작용에 의해 재 인식되면서 느낌이 생성된다.
다마지오는 느낌이 생성되는 과정을 《느낌의 진화》라는 책 에서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느낌, 의식, 자아를 이 미지의 생성과 처리 과정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생성하는 내 부장기 이미지, 몸 이미지, 외부 이미지의 세 가지이다. 오래된 내부장기는 내분비 시스템의 화학분자들을 분비하여 몸 전체의 항상성을 유지한다. 내부장기의 통합적 항상성 체계 인 내분비계, 순환계, 면역계의 작용이 가장 오래된 생존 작 용으로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담는 내부 이미지를 생성한다. 내부장기의 내부 이미지 정보는 정동에서 감정 그리고 최종 적으로 느낌을 만든다. 몸 이미지는 척추동물 움직임에서 진 화한 근육과 골격 움직임의 이미지이며 피부 촉각이 몸 이미 지의 경계를 구성한다. 외부세계의 이미지는 감각입력의 시 각, 청각, 촉각이 대뇌피질에서 신경회로의 패턴인 지도를 만 들고 시각의 형태, 색깔, 움직임이 개별 지도들이 결합하여 시각 이미지가 생성된다.
시각과 청각이 이미지가 결합하여 외부 세계의 사물과 사 건의 감각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외부 세계의 이미지 대뇌 후 두엽의 감각 연합피질에서 생성된다. 내부장기의 내부 이미 지정보가 혈액을 통해서 시상하부로 입력되어 대뇌피질의 외부 대상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 내부 이미지에서 시작하는 느낌이 외부세계 이미지와 결합하게 된다. 외부 세계 이미지 와 자신의 내부에서 생성된 느낌이 결합하여 의식이 출현하 며 몸 이미지와 내부 이미지가 외부 이미지와 결합하여 자아 의식이 생겨난다.

- 그렇다면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비교해보자. 바이러스에는 에너지 대사 과정이 없는 반면, 박테리아에는 있다. 바이러 스는 에너지나 폐기물을 생산하지 않지만, 박테리아는 생산 한다. 바이러스는 운동을 일으킬 수 없다. 바이러스는 DNA 나 RNA 같은 핵산과 특정 단백질의 혼합물에 불과하기 때문 이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번식할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에 침투해 그 생명체의 생명시스템을 장악하고 증식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바이러스는 살아 있지 않지만, 살아 있는 생명 체에 기생해 '유사' 생명을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 는 자신의 모호한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생명체를 파괴하고, '자신의' 핵산을 만들어 퍼뜨린다. 이쯤 되면, 살아 있는 생명 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에게는 박테리아를 포함한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에 생기를 부여하는 비명시적 지능의 일부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는 자신이 활동하 기에 적합한 생명체에 침투했을 때만 숨겨진 능력이 나타나 는 존재인 것이다.
- 생명체의 역사는 40억 년 전에 시작됐으며, 다양한 경로를 거쳐왔다. 나는 우리를 여기까지 이끈 생명의 역사가 서로 확 연히 구분되면서도 연속적인 세 가지 단계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싶다. 첫 번째 단계는 '존재being'의 단계다. 두 번째 단 계는 '느낌feeling'의 단계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앎knowing'의 단계다. 신기하게도, 현존하는 인간 개개인들의 발달 과정에서도 이와 똑같은 3단계가 나타나며, 단계들이 나타나는 순서도 동일하다. 존재, 느낌, 앎의 단계는 인간 개개인 안에 공존하는 분리 가능한 해부학적·기능적 시 스템들에 대응하며, 이 단계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필요에 따 라 서로 맞물리게 된다.'
- 외부 세계의 사물과 행동에 대한 지각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에 의해 이미지로 변환되며, 이 이미지는 마음의 상태를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 이미 지들 대부분은 뇌가 외부 세계를 지각함으로써 생성되는 것 이 아니라, 뇌가 우리 몸 안에서 외부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 작하고 혼합함으로써 생성된다. 망치질을 하다가 우연히 못 이 아니라 손가락을 쳤을 때 느끼는 고통을 예로 들어보자. 이런 복잡한 이미지들 또한 마음의 흐름에 편입되면서 우리 의 심적 과정을 지배한다.
우리 내부의 이미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비전형적이다. 이런 이미지들을 만드는 장치들은 우리 몸 안 내부 기관들의 상태를 묘사할 뿐만 아니라, 그 내부 기관들과 연결돼 있다.
- 이 장치들은 화학적 방식으로 내부 기관들과 매우 정교하게 양방향으로 상호작용한다. 우리가 느낌이라고 부르는 혼합물 hybrid은 바로 이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정상적인 마음은 외 부 세계에서 비롯한 전통적인(직접적인) 이미지와 몸 내부의 특별하고 혼합적인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는 다른 종류의 이미지들도 개입한다. 사 물과 행동으로 우리가 만든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과 그 기억 에 수반됐던 느낌을 다시 만들어내는 과정 모두 이미지의 형 태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기억을 만든다는 것은 나중에 원 래의 어떤 것과 비슷한 무언가를 복원해내기 위해 암호화된
- 형태로 이미지를 기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물과 행동 그리고 느낌을 우리가 아는 언어(주로 음성언어지만, 수학 이나 음악의 언어인 경우도 있다)로 번역하는 과정도 이미지 형 태로 나타난다.
마음속에서 이미지들을 연결하고 결합할 때, 우리의 창의 적인 상상 속에서 그 이미지들을 변환할 때, 우리는 아이디어 를 나타내는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인 이미지와 상징들을 새로 만들어내며 그렇게 만들어낸 이미지들의 대부분을 기억에 저 장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 마음의 내용물을 저장해 미래의 언젠가 추출할 수 있는 보관소의 크기를 확장한다.

- 콩팥 산통은 느낌이 정교한 생리학적 메커니 즘에 의해 만들어짐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이 생리학적 작용은 유기체가 보거나 듣기 위해 이용하는 생리학적 메커 니즘과는 확연히 다르다. 느낌은 특정한 모양이나 소리 같은 특정한 외부 요소를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기술한다기보다는 일정한 범위의 가능성들에 대응한다. 느낌은 일정한 범위 내 에 있는 특징들quality과 경향과 강도 면에서의 변이 variation를 묘사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느낌은 외부의 사물 또는 사건을 간단하게 스냅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나 사건과 관 계된 쇼 전체와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활동을 동영상으로 촬 영한다고 할 수 있다. 느낌은 표면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밑에 있는 것들도 같이 묘사한다.
느낌은 쌍방향 지각interactive perception이다. 지각의 전형적 인 예인 시각 지각과 비교할 때 느낌은 전통적이지 않은 지각 이다. 느낌은 유기체 주변뿐만 아니라 '유기체 내부'와 심지 어는 '유기체 내부에 위치한 사물들의 내부에서 느낀 신호들 을 수집한다. 느낌은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행동들과 그 행 동들의 결과를 묘사하며, 이런 행동들과 관계된 내부 기관들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이유로 느낌은 우리에게 강력하고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몸의 내부 기관과 내부 시스템의 작동은 신경계 안에 서 단계적으로 표상된다. 처음에는 말초신경계 요소들에서, 다음으로 (뇌간 같은) 중추신경계의 핵들에서, 그 후에는 대뇌 피질에서 표상된다. 하지만 몸의 부분들과 신경계 요소들 사 이에서는 집중적인 협력이 일어난다. 몸과 신경계는 서로 분 리된 '모델'과 '화가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파트너 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완전히 신경 계의 작용에 의한 것도 아니고, 완전히 몸의 작용에 의한 것도 아니다. 이미지는 몸의 화학작용과 신경계의 생물전기적 활동 사이의 활발한 상호작용, 즉 대화로부터 만들어진다. 여 기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공포나 기쁨 같 은 정서 반응이다. 이는 모든 순간 내부 기관 일부에서 추가 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그 결과, 새로운 내부 기관의 상태와 몸-뇌 파트너십이 형성된다(내부 기관은 정서 과정에서 가장 중 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정서 반응은 유기체를 변화시키고, 결 과적으로 몸-뇌 파트너십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변화시 킨다. 이 모든 과정은 새로운 느낌들과(이 단계에서 느낌들은 완 전혀 '항상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정서적인' 상태가 된 다) 새로운 정동 상태들을 발생시킨다. 기분은 오랜 시간 동 안 지속되는 이런 역학 관계의 결과물이다. 기분은 매일 아침 우리가 일어날 때 느끼는 '열정' 또는 '무기력함'의 근원이다. 흥분/각성, 둔함/졸음의 정도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도 바 로 이 기분 때문이다.
- 정서 emotion
지각 사건에 의해 촉발돼 함께 일어나는 비자의적인 내부 행동들(평활근[가로무늬가 없는 근육. 내장이나 혈관 따위의 벽을 이룬다. '민무늬근'이라고도 한다-옮긴이] 수축, 심장박동, 호흡, 호르몬 분비, 얼굴 표정, 자세의 변화 등)의 집합. 일반적으로 정서 행동은 (공포나 분노로) 위협에 대처하거나 기쁨으로) 좋은 상 태에 대한 신호를 발생시키는 방식 등으로 항상성 유지에 도 움을 준다. 우리가 기억으로부터 어떤 사건들을 소환할 때도 정서가 만들어진다.
- 느낌 feeling
유기체에서 원초적인 상태(배고픔, 목마름, 고통, 쾌락 같은 항 상성 느낌)나 정서에 의해 촉발되는 상태(공포, 분노, 기쁨 같은 정서적 느낌) 등 다양한 항상성 상태들 다음에 발생하거나 그 와 동시에 발생하는 마음속 경험."
- 그렇다면 느낌이 자연의 역사에서 어떻게 생명을 부분적 이지만 적절하게 통제하게 됐는지 살펴보자. 어떻게 이런 일 이 일어났을까? 처음에 어떤 물리적·화학적 요소는 효율적 인 생존과 연관됐고, 또 다른 어떤 물리적·화학적 요소는 기 능장애와 죽음과 연관됐을 것이다.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 form of the good' (모든 실재의 원천인 이데아들의 이데아, 곧 최고의 궁 극적 실재)라는 개념은 생명현상의 기저가 되는 물리학적 현 상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선택, 즉 고통 과 괴로움이 아닌 생명을 위한 선택이 현저하게 확산된 것은 의식의 등장으로 출현이 가능해진 느낌 덕분이다. 모든 느낌은 의식의 일부다. 또한 불쾌한 느낌은 생명을 위협하고 방해 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반면, 즐거운 느낌은 생명이 번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상황을 나타낸다. 느낌의식이 없었다면 번 성과 관련된 메커니즘이 압도적으로 선호되지는 않았을 것 이다.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은 의식의 존재 때문이다. 의식의 일부인 느낌만큼 선호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는 없 었다.
항상성, 효율성, 다양한 종류의 행복감 사이의 연결 관계는 자연에 의해 느낌의 언어로 구축됐으며, 자연선택에 의해 확 산됐다. 신경계는 그 관계를 주관하는 역할을 맡았다.
- 간단히 말하면, 자연은 우리에게 느낌이라는 화재경보기, 소방차, 의료시설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이 지금까지 이 전략을 완성해오고 있다는 증거는 중추신경계가 면역 반 응을 조절한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중추신 경계의 이런 면역 조절은 시상하부에서 이루어진다. 시상하 부는 대뇌피질과 뇌간, 척수 사이에 위치한 중추신경계 영역 인 간뇌의 일부로 우리 몸 전체에서 대부분의 호르몬 분비를 담당하는 내분비계를 통제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상하부는 특정 감염원에 대처하는 항체를 생성하도록 지라 (척추동물의 림프 계통 기관. 위의 왼쪽 혹은 뒤쪽에 있으며, 오래된 적혈구나 혈소판을 파괴하거나 림프구를 만들어내는 작용을 한다-옮긴이)에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바꿔 말하면, 면역계는 우 리의 운명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복잡한 신경계와 협력해 항상성을 증진시킨다.
이 사실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은 느낌이 발생하는 과정의 x과 위점막 stomach mucosa최상위에 위치한 뇌 피질insular cortex과 위 점막내 신경 분포와의 연관관계다. 우리는 위궤양을 일으키는 직 접적인 요인이 특정한 박테리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 만 그 박테리아가 우리에게 위궤양을 일으키도록 허용하는 과정에는 우리의 정서가 하나의 요소로 작용한다.
- 항상성 명령에 따른 느낌들이 모두 나쁜 소식을 전하거나 위험을 경고하는 것은 아니다. 유기체가 잘 작동하는 데 필요 한 것과 유기체가 실제로 얻는 것 사이에 균형을 잘 유지하면 서 유기체가 기능할 때, 기후 면에서 환경이 적당할 때, 우리 가 속한 사회적 환경과 갈등이 없을 때 우리는 다양한 형태와 강도의 행복감을 느낀다. 이 행복감은 즐거움의 경험에 이를 정도로 매우 풍부하고 집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부정적인 항상성 느낌도 이와 비슷하다. 불쾌감도 고통의 경험에 이를 정 도로 집중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항상성 명령에 의한 고통의 느낌은 우리에게 자동적인 진 단을 제공한다. 살아 있는 조직의 특정 영역에 이미 발생한 피해 또는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곧 일어날 피해를 이 느낌이 진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단된 피해 요인들은 제 거되거나 약화되어야 한다. P물질은 이런 고통의 느낌을 느 끼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코르티솔과 코르티코 스테론corticosterone이 분비되는 것은 고통을 유발하는 피해요 인들에 대응하는 과정의 일부다."
- '의식'이라는 말은 명확한 정의 없이 수많은 의미를 가진 일종의 언어학적 악몽 같은 말이다. 의식을 가리키는 영단어 'consciousness'는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말이며, 로망스어군(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등)에서는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단어조차 없다. 따라서 이 언 어들의 화자는 'conscience'(양심) 같은 말을 대신 사용하면 서 문맥을 통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 '양심'이라는 말 의 의미를 드러낸다.
'의식'이라는 말이 가진 다양한 의미들의 일부는 관찰자/ 화자의 관점과 관련된다. 철학자, 심리학자, 생물학자, 사회 학자 같은 사람들은 의식에 대해 분명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 특정한 문제가 '자신들의 의식 속에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는 보통 사람들, 의식이 깨어 있거 나 주의를 집중하거나 단순히 마음이 갖는 상태를 묘사하는 유식한 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 역시 의식에 대 한 분명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적 인 요소들을 거둬내면, '의식'이라는 말에는 핵심적인 의미가 존재한다. 신경과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 철학자들이 다양 한 방법으로 의식에 접근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의식을 설 명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적인 하나의 인식이 존재한 다. 대체로 이들은 '의식'이 마음속 경험과 같은 말이라고 생 각한다.
- 그렇다면 마음속 경험은 무엇일까? 마음속 경험은 서로 연 관된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첫 번째 특징은 마음이 드러내는 마음의 내용물들이 느껴진 다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이 마음의 내용물들은 단일한 관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더 자세하게 분석해보면, 이 단일한 관점은 마음을 가진 특정한 유기체의 관점이라는 것이 드러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기체의 관점', '자아', '주체' 같은 개념들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제대로 읽은 것이다. 또한 '자아', '주체', '유기체의 관점이 매우 실체적인 어떤 것, 즉 '소유자'라는 실체에 대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생각도 틀리지 않은 생각이다. '유기체는 특정한 마음을 소유한다.' 즉, 마음은 특정한 유기체에 속해 있다. 나나 당신을 포함한 의식을 가진 모든 실체는 의식이 있는 마음에 의 해 움직이는 유기체를 소유한다.
- 결론적으로 말하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남으로써 의식 생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느낌은 두 가지 원천에서 비롯된다. 첫 번째 원천은 몸 안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생명 활동이다. 이 생명 활동은 행복감, 불쾌감, 호흡곤란과 배고 픔, 목마름, 고통, 욕구, 즐거움을 당연히 반영한다. 앞에서 살 펴본 것처럼, 이런 느낌은 모두 '항상성 명령에 의한 느낌'이 다. 두 번째 원천은 마음의 내용물이 촉발하는 공포, 기쁨, 짜 증 같은 강하거나 약한 일상적인 정서 반응들이다. 이런 마음 의 표현은 '정서적 느낌'이라고도 부르며, 몸 안의 이야기들 을 구성하는 멀티미디어 영화의 일부다. 또한 이 두 원천에 의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느낌은 몸 안 이야기들의 일부가 되 지만, 느낌 자체가 의식 과정을 생성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느낌은 다양한 마음속 사건들이 일정한 역할을 하는 생물학적 과정의 결과로 발생하는 특정한 마음 상태라 고 할 수 있다. 내수용감각 신경계를 통해 신호를 전달하는 몸 내부의 활동은 느낌의 일부분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반 면, 중추신경계 내부의 활동은 유기체 주변의 세계와 유기체 의 근골격계를 기술하는 이미지들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이렇게 기여된 것들은 매우 정교한 방식으로 융합돼 매우 복잡 하지만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어떤 것, 즉 순간순간 유기체 내 부의 세계와 유기체 외부의 세계를 파악하는 살아 있는 유기 체의 마음속 경험들의 합을 만들어낸다. 의식 과정은 유기체 내부의 마음을 생명으로 인식하며, 이렇게 생명으로 인식한 마음이 유기체의 물리적 경계 안쪽에 위치하도록 만든다. 마 음과 몸은 이 과정의 결과물을 얻으며, 이렇게 얻은 결과물을 두고 잠이 들기 전까지 끊임없이 감사하거나 원망하기를 계 속한다.
- '나에게 의식이 있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간단하게 생 각해본다면, 이 말은 내가 나 자신에게 의식이 있다고 말하 는 특정한 순간에 내 마음이 나를 그 마음의 주인으로 즉각 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지식을 소유한다는 말이다. 기본적 으로 이 지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 자신을 인식하게 만든다. 첫째, 느낌을 통해서다. 느낌은 내 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끊임없이 나에게 제공한다. 둘째, 내가 기억으로부터 소환해 낸 사실, 지각의 순간과 관련될 수 있으며(또는 관련되지 않을 수 있으며, 나 자신의 핵심이기도 한 사실들을 통해서다. 마음 에 의식을 발생시키는 지식이라는 파티의 범위는 얼마나 많 은 손님들이 참석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손님들은 의 무적으로 참석하기도 한다. 이 파티에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손님들이 누군지 살펴보자. 첫 번째 의무적 참석자는 내 몸의 현재 활동에 대한 지식 중 일부다. 두 번째 의무적 참석자는 기억에서 소환된 지식 중 일부다. 이 지식은 현재 내가 누구 인지,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가 누구였는지에 관한 지식, 최근과 오래전의 나에 관한 지식이다.
하지만 의식은 지금 내가 말한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실 제로 의식은 매우 복잡하다. 수많은 뉴런들의 활동과 뉴런들 의 연결 관계가 만들어내는 복잡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 지만 이렇게 의식이 복잡하다고 해도, 마음과 관련해 의식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알아내는 일이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나는 살아 있는 유기체들이 느낌과 개인적 성찰 능력이 있 는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경의를 표한다. 여기서 유기체란 우리가 신경 조직으로 부르는 부분과 '몸의 나머지 부분'으로 생각해서 대개는 무시하는 부분을 아울러 말한다. 하지만 나는 신비함 때문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아니다. 신비 하다는 생각과 생물학적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의문에는 반드시 답이 있고, 수수께끼는 풀릴 수 있다. 내가 경외감을 가지는 것은 지금까지 비교적 명료하 게 밝혀진 기능들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 기능들에 대한 지식을 조합해 결과적으로 우리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 인간 뇌의 전형적인 병변에 관한 연구들에 따르 면, 전전두피질이 손상되거나 수술로 절제돼도 의식 있는 마 음이 생성되는 과정의 기초는 와해되지 않는다. 전전두피질 은 이미지 조작과 관련되며, 후두 감각피질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들의 활성화, 정렬, 공간적 위치 부여를 촉진한다. 즉, 전전두피질은 후두 감각피질과 후내측 피질의 일부 영역들 도 하는 역할들을 조율한다. 또한 전전두피질은 의식 과정을 환하게 밝혀주고 우리의 것이라고 확인시켜주는 마음속의 광 대한 파노라마들을 조합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전두 영역은 지적인 마음의 작용, 즉 추론, 의사결정, 창의 적인 해석 등에 상당히 큰 기여를 하지만, 기본적인 의식이 의존하는 역할, 즉 지식을 풍성하게 하는 핵심적인 역할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두 영역은 마음의 소유주를 확인해 주지 않으며, 그 소유주에게 마음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하지 는 않지만, 인간 능력의 최고치를 드러내주는 매우 규모가 큰 확장된 마음의 생성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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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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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는 훗날 대학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말할 때, 저 말이 과연 사실일까 자문하지 말 아요. 그보다는 그 말이 어느 경우에 해당할까 자문하세요." 그것은 그 의 지적 본능이고, 정신의 고리로 진입하는 자연스러운 첫 단계였다. 어떤 사람이 방금 무슨 말을 했든 그 말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체하 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이스라엘군이 그에게 던진, 군의 이런저 런 역할에 어떤 성격이 가장 잘 맞겠는가, 하는 질문은 사실 터무니없 었다. 그래서 대니는 좀 더 생산적인 질문을 던졌다. 면접관이 직관으 로 신병을 평가하다가 평가를 망치는 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 그는 이스라엘 청년들의 성격을 점쳐달라는 요청을 받은 셈이었 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의 성격을 점치려는 사람들과 관련해 새로 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감을 버리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는 구체적인 문제를 의뢰받았다가 포괄적인 진실을 발견한 것이다.
- 심리학에서 유사성을 판단하는 방법과 관련한 대표적인 몇 가지 이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물리적 거리에 기초한다는 점 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생각이든 감정이든 두 가지 대상을 비교할 때, 우리는 둘이 얼마나 가까운지 묻는다.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그 둘 이 머릿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은 마치 두 점이 일정한 관계를 맺고 지 도에, 격자에, 또는 다른 물리적 공간에 존재하는 것과 비슷했다. 아모 스는 그 점이 궁금했다. 그는 버클리대학 심리학자 엘리너 로시 Eleanor Rosch가 쓴 논문을 읽었다. 로시는 1960년대 초에 사람들이 대상을 분 류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탁자를 탁자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색깔을 그 고유의 색깔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논문에 따르면, 로시는 사람들에게 색깔들을 비교하여 서로 얼마나 비슷한지 판단하라고 했다.
- 사람들의 판단은 이상했다. 예를 들어, 마젠타가 빨강과 비슷하다고 해놓고 빨강은 마젠타와 비슷하지 않다고 했다. 아모스는 그 모 순에 주목해, 그것을 일반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북한이 중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그렇다고 했 다. 그런데 중공이 북한과 비슷하냐고 묻자,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은 텔아비브를 뉴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뉴욕은 텔아비브와 비 슷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103은 100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100은 103과 비슷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장난감 기차는 진짜 기차와 아주 비 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기차는 장난감 기차와 비슷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종종 아들이 그 아버지와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아 버지가 그 아들과 닮았냐고 물으면 질문한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쳐 다봤다. 아모스는 이렇게 썼다. "유사성 관계의 방향성과 비대칭성은 직유와 은유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우리는 '칠면조가 호랑이처럼 싸운 다'고 말해도 '호랑이가 칠면조처럼 싸운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호 랑이는 투지로 유명해서, 직유에서 표현 대상인 원관념보다 그것을 설 명해주는 보조관념으로 사용된다. 시인은 '내 사랑은 바다처럼 깊다' 고 말하지 '바다는 내 사랑처럼 깊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다는 깊이를 나타내는 전형이기 때문이다."
- 결정을 내릴 때 실제 대상과 원하는 이상을 놓고 유사성을 비교해 판단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발상이다. 이때 구체적인 비교 방법은 눈에 띄는 특징을 세는 것이다. 그리고 특징이 얼마나 두드러져 보이느냐는 그 특징이 부각되는 방식에 따라 조작될 수 있어서, 두 대상의 유사성 감지 역시 조작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두 사람이 서로 닮았다고 느끼기를 바란다면, 그 둘을 공통점이 강조되는 맥락에 놓아둘 수 있다. 미국 대학생 두 사람이 미국에서는 서로를 아주 낯선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둘이 2학년 때 토고로 해외 연수를 떠 나 거기서 만난다면 서로를 놀랍도록 비슷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둘 다 미국인이라니!
- 둘이 비교되는 맥락을 바꾸면 특정한 특징을 누르고 다른 특징 을 표면에 띄울 수도 있다. 아모스는 "흔히들 분류는 여러 대상 사이 에서 유사성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반대 시각도 제시했다. "유사성은 대상을 분류하는 방식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이처럼 유사성 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원인적 측면과 파생적 측면이다. 유사성 은 대상을 분류하는 기초도 되지만, 적용된 분류에 영향을 받기도 한 다." 바나나와 사과는 우리가 그 둘을 과일이라 부르기로 합의한 탓에 더 닮아 보인다. 즉 어떤 대상이 일정한 근거로 같은 부류로 묶인 뒤에 는 같은 부류라서 서로 더 닮아 보인다. 이처럼 어떤 대상을 분류하기 만 해도 전형성이 강화된다. 따라서 전형성을 약화시키고 싶다면, 분류를 없앨 것!
- 아모스의 이론은 유사성 판단과 관련한 기존의 대화에 영향을 미친 정도가 아니라 대화를 완전히 장악했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은 죄다 아모스 주위에서 그의 말을 경청할 뿐이었다. 리치 곤살레스 가 말했다. "아모스가 과학에 접근하는 방식은 점진적 방식이 아니었 어요. 껑충껑충 뛰어가는 도약이었죠. 우선 이미 존재하는 패러다임을 찾아요. 그리고 그 패러다임의 보편적 명제를 찾죠. 그런 다음 그걸 무 너뜨려버려요. 아모스는 기존 것을 부정하는 식으로 과학을 했어요. 그러면서 부정적negative 이란 말을 많이 썼죠. 나중에 보니 그 방식은 사 회과학에 매우 효과적이었어요." 아모스는 그런 식으로 시작했다. 타 인의 실수를 수정하거나 되돌리는 식으로. 그런데 알고 보니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실린 심리학자 에크하르트 헤스 Eckhard Hess의 글이 대니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그의 눈길 을 사로잡지 않는 글이 있을까마는). 온갖 종류의 자극에 동공이 팽창 또는 수 축한 실험 결과를 설명한 글이었다. 이를테면 남자에게 옷을 대충만 입은 여자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동공이 팽창했다. 여자에게 잘생긴 남 자 사진을 보여줘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반대로 상어 사진을 보여 주면 동공이 수축했다(희한하게도 추상미술 역시 같은 효과를 냈다). 맛있는 음료를 주면 동공이 팽창했고, 레몬주스나 퀴닌이 들어간 음료처럼 내키지 않는 음료를 주면 동공이 수축했다. 그리고 맛이 미세하게 다른 오 렌지 탄산음료 다섯 가지를 주면, 각 음료에서 느끼는 만족의 정도가 동공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음료를 가장 좋아하는지 의식 적으로 정확히 파악하기도 전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반응했 다. 헤스는 이렇게 썼다. "맛의 차이가 워낙 미미해서 사람들이 의식적 으로 정확히 가리지 못할 때도 동공 반응을 관찰하면 정확한 선호도 를 알아낼 수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인 셈이다. 대니는 블룸 밑에서 일하던 심리학자 잭슨 비티 Jackson Beatty를 블룸의 최면 실험실에서 빼내, 그와 함께 사람 들에게 숫자 여러 개를 기억하라든가 서로 다른 음높이를 구별하라든 가하는 다양한 정신 작업을 수행하게 한 뒤 동공 반응을 관찰하는 실 험을 시작했다. 그들은 눈이 머리를 속이는지, 나아가 머리도 눈을 속 이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다시 말해 "강도 높은 정신 활동이 어떻게 지 각을 방해하는지" 궁금했다. 실험 결과, 동공 크기를 변화시키는 것은 감정 흥분만이 아니었다. 정신노동도 같은 효과를 냈다. 그들 말대로 “ 생각과 지각은 서로 적대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 1969년 가을에는 아모스와 대니가 모두 히브리대학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들은 둘이 모두 깨어 있는 시간에는 보통 함께 있었다. 대니 는 아침형이라 그를 따로 만나려면 점심시간 전에 만나야 했다. 반면 에 아모스와 시간을 보내려면 늦은 밤에나 가능했다. 그 중간에는 둘 이 세미나실로 사라져버려, 만나기 힘들었다. 두 사람은 세미나실을 전 세 낸 듯 이용했다. 세미나실 밖으로 더러는 서로에게 고함치는 소리 가 들려왔지만 보통은 크게 웃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추측만 할 뿐이지만, 대단히 웃긴 이야기인 것만은 틀림없었 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든 간에 극도로 은밀한 이야기인 것도 같았다. 다른 사람은 그들 대화에 절대 초대받지 못했다. 문에 귀를 대보면 히 브리어와 영어를 동시에 쓴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둘은 두 언 어를 섞어 썼는데, 특히 아모스는 영어를 쓰다가도 감정이 격해지면 늘 히브리어로 돌아갔다.
한때 히브리대학의 두 스타가 왜 거리를 두고 있을까 의아해하던 학생들이 지금은 성격이 극과 극인 두 사람이 서로 공통점을 발견 한 것도 모자라 어떻게 정신적 단짝이 되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두 사람의 연구에 모두 참여했던 대학원생 디사 카프리 Ditsa Kaffrey는 이 렇게 말했다. "두 분이 죽이 잘 맞으리라고는 정말 상상하기 힘들어 요." 대니는 어렸을 때 홀로코스트를 겪었고, 아모스는 거드름을 피우 기 좋아하는 이스라엘 토박이였다. 대니는 항상 자기가 틀리다고 확신 하는 사람이었고, 아모스는 항상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었다. 아모스는 가는 파티마다 생기를 불어넣었지만, 대니는 파티에는 가지 않았다. 아모스는 자유롭고 격식이 없었지만, 대니는 격식에서 벗어나 려고 노력할 때조차 자신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려온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모스를 만날 때면 그를 마지막으로 본 지가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바로 전에 만난 시점부터 이야기를 이어가면 그만이었다. 대니를 만날 때면 어제 그를 만났어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느 낌이 들었다. 아모스는 음치였지만 히브리 전통 노래를 신나게 부르곤 했다. 대니는 노래하면 감미로운 목소리가 나올 텐데도 그런 목소리를 발견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았다. 아모스는 비논리적 주장에 철퇴 를 가하는 사람이고, 대니는 비논리적 주장을 들으면 '거기에서 어떤 진실이 있을까?' 묻는 사람이었다. 대니는 비관적이었다. 아모스는 낙 천적일 뿐 아니라 낙천적이 되려고 무척 노력했다. 비관주의는 어리석 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즐겨 하던 말이 있다. "비관적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면, 나쁜 일을 두 번 겪게 된다. 걱정할 때 한 번, 실 제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한 번." 히브리대학 동료 교수 한 사람은 이 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정말 달랐어요. 대니는 항상 상대에게 호감을 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죠. 본인은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면서도 그 랬어요. 그런데 아모스는 왜 호감을 사고 싶어 안달인지 이해하지 못 했어요. 예의는 지켜야겠지만, 호감을 사고 싶다고? 왜?" 대니는 매사 에 아주 진지했고, 아모스는 틈만 나면 농담을 던졌다. 히브리대학이 아모스에게 박사 학위 심사를 맡겼을 때 아모스는 인문학에서 소위 논 문이란 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는 논문을 정식으로 퇴짜 놓기보다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가 이 분야에서 괜찮은 논문이라면, 나도 상관 하지 않겠어. 이 학생이 분수 나눗셈만 할 수 있다면!"
이 외에도 아모스는 많은 사람에게 그들이 만난 가장 무서운 사 람이었다. 어떤 지인은 "사람들은 아모스 앞에서 토론하기를 겁낸다" 고 했다. 자기들이 어렴풋이 감지했을 뿐인 단점을 아모스가 콕 짚을 것 같아서다. 아모스의 대학원생 제자인 루마 포크 Ruma Falk는 자기 차로 아모스를 집까지 태워줄 때 아모스가 운전을 트집 잡을까봐 너무 겁이 나서 아모스더러 직접 운전하라고 우겼다. 그런 그가 이제는, 내용을 오해한 학생이 던진 비판 한마디에 길고 어두운 자기 의심의 수렁에 빠질 정도로 비판에 민감한 대니와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마 치비단구렁이를 가둔 우리에 흰쥐를 떨어뜨려놓고 한참 뒤에 와보니, 쥐는 말을 하고 뱀은 구석에 똬리를 튼 채 넋을 놓고 있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대니와 아모스의 공통점을 보여주는 사례도 많았다. 우 선, 둘 다 동유럽 출신 랍비의 손자였다. 둘은 사람들이 감정에 휩쓸리 지 않은 '정상' 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큰 관심을 보였다. 둘 다 과학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단순하면서 막강한 진실을 찾고 싶었 다. 대니는 복잡한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단일 질문으로 알아보는 심리'를 하고 싶었고, 아모스도 연구는 복잡해 보여도 타고난 소 질은 어떤 문제든 끝없는 헛소리를 깨부수고 단순한 핵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정신세계가 놀랄 정도로 비옥한 축복받은 사람 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이었지만 하느님을 믿지 않았 다. 그런데도 사람들 눈에는 둘의 차이점만 보였다.
- 두 사람의 근본적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난 사례는 연구실이다. 대니의 조교였던 다니엘라 고든은 이렇게 기억했다. "대니 교수님 연구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한두 문장 휘갈겨놓 은 메모지며, 이런저런 서류며, 책이 도처에 널렸죠. 책은 전에 읽던 곳 이 그대로 펼쳐져 있어요. 한번은 제석사 논문이 13쪽에서 펼쳐진 채 로 있더군요. 거기까지 읽으신 모양이에요. 그곳에서 복도를 따라 연 구실을 서너 개 지나면 아모스 교수님 연구실이 나오는데, 그곳은 텅 비었죠. 책상에 놓인 연필 한 자루가 전부예요. 대니 교수님 방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어요. 너무 어지러워서요. 아모스 교수님 방에 서도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어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주변 사람들 은 한결같이 의아해했다. 어떻게 두 사람이 그렇게 잘 어울려 다닐까? 어떤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대니는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하는 사람이 에요. 아모스는 절대 그럴 일이 없는 사람이고요. 그런데도 대니와 아 주 잘 지내죠. 그게 정말 놀라워요.'
-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지 한참 되었을 때, 한번은 대 니가 우울증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의기소침해 길을 걸으며 말했다. "아이디어가 바닥났어." 아모스는 그 순간도 재미있어 했다. 둘의 친구 인 아비샤이 마갈릿이 그때를 회상했다. "대니가 '난 끝났어, 아이디 어가 바닥났어' 하니까 아모스가 막 웃으면서 그러더라고요. '100명이 100년 동안 내놓는 아이디어보다 자네가 1분 동안 내놓는 아이디어 가 더 많아." 같이 앉아서 글을 쓸 때면 둘은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다 시피 해서, 어쩌다 둘을 흘끗 본 사람이라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미 시간대학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이렇게 말했다. “둘은 타자기 앞 에 붙어 앉아 글을 썼어요. 상상이 안 가요. 다른 사람이 내 이를 닦아 주는 느낌이랄까요." 대니의 말을 빌리면 이랬다. "우리는 머리를 같 이 쓰고 있었어."
- 두 사람은 여전히 학계에 농담을 던지듯 첫 번째 논문인 <소수법칙에 대한 믿음>을 쓰면서, 통계상 정답이 있는 문제를 마주한 사람 들이 통계 전문가처럼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통 계 전문가도 통계 전문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통계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보고도 통계적 사 고를 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논리적 사고를 하는 걸까? 살면서 마 주하는 많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블랙잭 카드 카운팅을 하듯 생각하 지 않는다면,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두 사람은 다음 논문에서 이 질문에 부분적인 답을 제시했다. 그 논문의 제목을 말할 것 같으 면............, 아모스는 제목에 대해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그는 논문을 시 작하기 전에 제목부터 정하는 성격이었다. 제목을 정해야 논문에 무엇을 쓸지 감이 잡혔다.
그런데 그와 대니가 정한 제목은 난해했다. 이들은 적어도 처음에 는 학계의 게임 규칙을 따라야 했는데, 그 게임에서는 너무 쉽게 이해 되면 우습게 보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판단 과정을 설명하 는 자기들의 첫 번째 시도에 '주관적 확률: 대표성 판단 Subjective Probability: A Judgment of Representativeness'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주관적 확률이 무슨 뜻 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주어진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을 개인이 직접 추측한 확률이다. 한밤중에 10대 아들이 손을 흔들며 대문으로 들 어서는 모습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혼잣말로 '저 녀석이 술을 마셨을 확 률은 75프로'라고 한다면, 그것도 주관적 확률이다. 그런데 '대표성 판단'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두 사람은 이런 말로 시작했다. "주 관적 확률은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 우리가 도달하는 결론, 우리가 제시하는 설명은 새 직장에서의 성공 여부, 선 거 결과, 시장 상황 등 불확실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 판단에 기초한 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그리고 이 외에 많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간은 정확한 확률을 계산하도록 타고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체 우 리 머리는 무엇을 한 걸까?
두 사람이 제시한 답은 이렇다. 우리 머리는 확률 법칙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짐작 법칙으로 대체한다. 대니와 아모스는 이를 '어림짐작heuristic'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들이 탐구하고 싶은 첫 번째 어림짐작에 '대표성representativeness'이란 이름을 붙였다.
사람들은 판단을 할 때, 판단 대상을 머릿속에 있는 어떤 모델과 비교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저 구름은 내 머릿속에 있는 다가올 폭풍 모델과 얼마나 닮았는가? 이 궤양은 내 머릿속에 있는 악성종양 모델과 얼마나 가까운가? 제러미 린은 내 머릿속에 있는 미래의 NBA 선수 그림에 잘 들어맞는가? 호전적인 저 독일 정치 지도자는 내 머릿 속에 있는 집단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 사람과 닮았는가? 세계는 단지 무대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는 카지노이며, 우리 삶은 확률 게임이다. 그리고 삶의 여러 상황에서 확률을 계산할 때면 곧잘 유사성, 즉 대표 성을 판단한다. 사람들 머릿속에는 '먹구름', '위궤양', '집단 학살을 자 행하는 독재자', 'NBA 농구선수' 같은 모집단마다 그것과 관련한 대 표적 이미지나 느낌 등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구체적 사례를 그 런 모집단과 비교한다.
- 아모스가 즐겨 하던 말이 있다. 무엇을 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러 니까 파티에 와달라거나 연설을 해달라거나 하다못해 손가락이라도 좀 움직여달라거나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기꺼이 그럴 마음이 있어도 절대로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말라. 아모스는 하루만 두고 보라고 했 다. 어제 승낙했을 부탁이나 제안 중에 하루만 더 고민했더라면 거절 했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시간을 빼앗는 일을 다루는 그의 규칙은 빠져나오고 싶은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기 도 했다. 어쩌다 지루한 회의나 칵테일파티에 갇힌 사람이 도망갈 구 실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모임에서 빠져나오고 싶을 때 아모스가 사 용하는 규칙은 한마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기였다. 아모스는 일단 걸어보라면서, 그러면 내가 얼마나 창조적이 될 수 있는지, 얼마나 빨 리 핑계를 찾아낼 수 있는지 깜짝 놀랄 것이라고 조언했다. 번잡한 일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사회적 요구에 대처하는 그의 전략과 거의 같았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은 무언가를 괜히 버렸다고 자책하지 않는 다면, 아직 버릴 게 남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아모스는 명백히 중요해 보이는 일이 아니라면 내팽개쳤고, 그렇게 냉정한솎아내기를 거쳐 남 은 대상에만 관심을 쏟았다. 이때 뜻밖에 버리지 않고 놔둔 게 있는데, 유진에 머물던 거의 끝 무렵인 1972년 봄에 대니와 대화를 나누며 단 어 몇 개를 대충 타이핑해놓은 종이였다. 아모스는 무슨 이유에선지 이 종이를 보관해두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지어내 앞날을 예측한다.
사람들은 예측은 아주 조금만 하고 해명은 빠짐없이 한다. 사람들은 좋든 싫든 불확실한 상황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사실에 들어맞는 해명은 전부 받아들인다.
불길한 조짐은 벽에 빤히 쓰여 있다. 다만 잉크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미 가진 정보를 얻으려고 애쓰면서 새로운 지식은 피한다.
인간은 확률론적 우주에 내던져진 결정론적 장치다.
이런 조합에서는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미 일어난 모든 일은 불가피한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 우리는 사적으로도, 일과 관련해서도, 언뜻 보기에 당혹스러운 상 황과 곧잘 마주칩니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고, 실험 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건을 이해할 만한 사건으로, 또는 그럴 법한 사건으 로, 또는 자연스러운 사건으로 만들어주는 설명이나 가설 또는 해석 을 보통은 아주 짧은 시간에 생각해냅니다. 무언가를 지각할 때도 이 와 똑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심지어 무작위로 뽑은 자료에서도 사 람들은 일정한 유형이나 경향을 찾아내는 데 선수예요. 그런데 이처 럼 시나리오, 해명, 해석을 만들어내는 데는 탁월한 반면에,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가늠하거나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은 심각하게 떨어집니다. 일단 특정한 가설이나 해석을 갖다 붙이면, 그가 설이 실현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과장하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가 아주 힘들어지죠.
아모스는 점잖게 이야기했다. 평소처럼 "역사책에 꾸며낸 이야 기가 한둘이 아닐 텐데도 책이 그렇게 지루하다니 정말 기가 막히지"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강의는 당시 청중에게 어쩌면 그 보다 더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사학자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모 스와 대니가 설명한 인지 편향에 쉽게 빠졌다. 아모스는 "역사적 판단 은 데이터를 직관적으로 해석하는 더욱 광범위한 부류에 속한다"고 했다. 역사적 판단은 편향되기 쉽다. 아모스는 당시 히브리대학에서 그 가지도하던 대학원생 바루크 피시호프가 실시한 연구를 예로 들었다. 리처드 닉슨이 중국과 소련을 방문하겠다는 놀라운 발표를 했을 때, 피시호프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가능한 결과를 주고 확률을 부여해 보라고 했다. 이를테면 닉슨이 마오쩌둥 중국 주석을 적어도 한 번 만 날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공동 우주 탐사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 소 련에 있는 유대인 집단이 닉슨과 대화를 시도하다 체포될 것이다 등 등. 그리고 닉슨이 귀국한 뒤에 피시호프는 똑같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항목을 다시 제시하고, 예전에 각 항목에 확률을 어떻게 부여했었는지 기억해보라고 했다. 이들의 기억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이들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실제로 부여했던 확률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을 부여했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일단 결과를 알고 나면, 처음에 예측할 때보다 그 결과의 예측 가능성을 훨씬 높게 생각한 다는 뜻이다. 아모스가 버펄로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몇 해가 지나, 피 시호프는 이 현상에 '사후 판단 편향hindsight bia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모스는 역사학자들 앞에서 그들이 하는 일의 위험성을 설명했 다. 역사학자는 (관찰하지 않았거나 관찰할 수 없는 많은 사실을 무시한 채) 관찰 한 사실은 무엇이든 받아들여, 확신 있게 들리는 이야기에 끼워 맞추 는 성향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지 못하는데도, 막상 일이 일어 난 뒤에는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그 일을 설명하는 때가 너무나 많 습니다. 추가로 나온 정보도 없는데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설 명하는 이런 '능력'을 보면, 우리의 논리적 추론에는 비록 쉽게 감지 할 수 없지만 중요한 허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 리는 실제보다 덜 불확실한 세계가 있다고 믿고, 자신을 실제보다 덜 똑똑하다고 생각하게 되죠. 왜냐하면 오늘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어 떤 추가 정보 없이 결과만 알게 된 내일 설명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미리 결정된 게 분명하고, 따라서 미리 예측할 수 있었어야 했으니까 요. 그런데 예측하지 못했으니, 세상이 불확실해서라기보다 우리 지적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라고 보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나중에 불가피해 보이면, 그 일을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자책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죠. 불길한 일이라면 애초부터 벽에 쓰여 있었을 테니 까요[성경에서, 벨사살 왕이 잔치를 베풀었을 때 사람 손이 나타나 벽에 불길한 일을 암시하는 글을 쓴 일을 빗댄 말 - 옮긴이]. 문제는 그 잉크가 눈에 보 이냐 하는 것입니다.
- 비단 스포츠 아나운서나 소위 정치 전문가만이 자기가 한 이야기를 대대적으로 수정하거나, 초점을 옮겨서 자기 말이 경기 결과나 선거 결과와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 자도, 아마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채, 임의의 사건에 엉터리 질서를 부 여했다. 아모스는 이를 '잠행적 결정론 creeping determinism'이라 불렀다. 그 는 이런 성향 때문에 치러야 하는 많은 대가 중 하나를 이렇게 적었다. "과거를 당연하다는 듯이 보는 사람이라면 미래는 온통 깜짝 놀랄 일 뿐일 것이다."
- 과거에 일어난 일을 엉터리로 바라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내다보기 어렵다. 그의 강의를 듣던 역사학자들은 물론 지난 현실의 파 편으로 사건을 설명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 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과거를 돌아보면, 지난 사건들이 예 상 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지금의 역사학자 가 볼 수 있는 것을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왜 보지 못했을 까? 비더만은 "아모스 강의에 참석했던 역사학자들이 하나같이 얼굴 이 하얗게 질려 돌아갔다"고 회상했다.
- 트라우마센터의 요청으로 레델마이어가 수술실에 들어온 직후, 의료진은 심장 문제를 자체적으로 진단했다. 적어도 진단했다고 생각 했다. 이 젊은 여성은 의식이 있어서, 과거에 갑상선이 과도하게 활발 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갑상선 활동이 과도해지면 심장박 동이 불규칙해질 수 있다. 그래서 레델마이어가 들어왔을 때, 다른 의 료진은 그에게 불규칙한 심장박동의 원인을 조사해보라고 말할 필요 를 느끼지 못한 채 치료로 넘어갔다. 따라서 레델마이어가 단지 갑상 선기능항진증 약을 투여했어도 수술실의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 았을 것이다. 그런데 레델마이어가 사람들을 제지했다. 잠깐! 잠깐 기 다려보라. 생각을 점검해보자. 혹시 몇 가지 사실만으로 쉽고 그럴듯 한,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엉터리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 닌지 확인해보자.
-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그는 나중에 “갑상선기능항진증은 불규칙한 심장박동의 전형적 원인이지만, 불규칙한 심장박동의 드문 원인" 이라고 했다. 그 젊은 여성이 과도한 갑상선호르몬 분비의 이력이 있 다는 말을 들은 응급실 의료진은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만으로, 갑상 선이 과도하게 활발해져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졌다고 속단했다. 그러 면서 통계적으로 불규칙한 심장박동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다른 요 인들은 따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레델마이어의 경험으로 보면, 의사들 은 통계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의 80퍼센트가 자기 환자에게 도 확률이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결혼하는 사람들의 95퍼센트가 50퍼센트의 이혼율이 자기에게도 해당한다고 믿지 않고, 음주운전자의 95퍼센트가 술에 취해 운전하면 정신이 온전한 상태로 운전할 때보다 사망 확률이 훨씬 높다는 통계가 자기에게도 적용된다고 믿지 않듯이 말이죠."
레델마이어는 응급실 의료진에게 이 여성의 불규칙한 심장박동 의 원인 가운데 통계적으로 더 타당한 것을 찾아보라고 했다. 바로 이 때 폐가 망가진 걸 알아냈다. 갈비뼈 골절과 마찬가지로 망가진 폐도 엑스레이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갈비뼈 골절과 달리 폐가 망가지 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레델마이어는 갑상선은 무시하고 망가 진 폐를 치료했다. 그러자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정식으로 갑상선을 검사했다. 갑상선호르몬 분비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이 여성은 갑상선이 문제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레델마이어가 말했 다. "대표성 어림짐작의 전형적인 경우였죠. 모든 것을 한 번에 깔끔하 게 설명해주는 단순한 한 가지 진단이 머릿속에 퍼뜩 떠오를 때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그때 잠깐 멈춰서 그 생각이 옳은지 따져봐야 해요."
머릿속에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항상 틀리다는 뜻이 아니다. 머 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필요 이상으 로 강하게 든다는 뜻이다. “제정신이 아닌 남자가 응급실에 들어왔는 데 오랜 알코올중독 이력이 있을 때, 조심하세요. '취했군' 하면서 경막하혈종을 놓칠 수 있으니까요." 
- 내가 치료한 뒤로 환자가 좋아졌다는 이유만으로 내 치료 덕에 환자가 좋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게 레델마이어의 생각이다. "많은 질병이 스 스로 억제되는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저절로 치료가 됩니다. 사람들 은 몸이 힘들면 치료를 받으러 오죠. 그러면 의사는 뭔가 해야 한다는 기분이 들어요. 환자에게 거머리를 올려놓았더니, 상태가 좋아져요. 그 러면 거머리를 계속 쓰겠죠. 항생제도 계속 과잉 처방해요. 귀에 염증 이 있는 사람에게 편도선 수술을 하죠. 다음 날 상태가 좋아지고, 치료 법이 대단해 보입니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면 우울하던 기분이 좋아 져요. 그러면 정신 치료가 정말 효과가 좋다고 확신하죠."
레델마이어는 다른 문제에도 주목했다. 이를테면 그가 다니던 의대의 교수들은 데이터를 자세히 살피지 않고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였다. 폐렴을 앓는 노인이 병원을 찾아오면 심박 수를 측정해, 분 당 75회이니 지극히 정상이군, 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폐렴 이 많은 노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이유는 전염력 탓이다. 면역 체계가 그에 반응하다 보면 고열, 기침, 오한, 가래가 발생하고 더불어 심장박 동이 빨라진다. 몸이 병균과 싸우려면 심장에서 혈액을 평소보다 빠르 게 펌프질해야 하기 때문이다. "폐렴에 걸린 노인의 심박수가 평상시 수준이면 안 돼요! 치솟아야 맞아요!" 레델마이어의 말이다. 폐렴에 걸 린 노인이 심박 수가 평상시 수준이라면 심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심박수 측정기를 별생각 없이 읽으면, 모든 게 정상이 라고 오판하기 쉽다. 의학 전문의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때도 바로 모든 것이 평상시처럼 보일 때다.
- 공교롭게도 '증거 기반 의학'이라 불리는 움직임이 바로 이때 토론토에서 본격화했다. 증거 기반 의학의 핵심은 의학 전문의의 직관을, 그러니까 명백한 데이터를 대하는 의사의 사고방식을 점검하는 것이 었다. 소위 의학 상식 중에는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놀랄 정도로 엉터 리도 있었다. 예를 들면, 레델마이어가 의대에 입학한 1980년에는 심 장마비 환자에게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는 부정맥이 나타나면, 통상 적으로 부정맥 억제제를 처방했다. 그런데 7년 뒤 레델마이어가 의학 과정을 마칠 무렵에는 심장마비 환자 중에 부정맥을 억제한 환자는 그 렇지 않은 환자보다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누 구도 의사들이 여러 해 동안 조직적으로 환자를 죽음으로 이끈 처방 을 택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증거 기반 의학 지지자들이 카 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가 그 답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의 연구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나 의사의 직관적 판단에 심각한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이 의학 실험의 증거는 이제 무 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레델마이어도 그 증거에 주목하기 시 작했다. "묻혀 있던 그 분석을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 전문가 의견으 로 많은 확률이 조작되고 있다는 분석이었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에는 오류가 있었는데, 그것이 환자에게도 적용됐어요. 그리고 사람들 은 자기가 저지르는 실수를 인식하지 못했죠. 모든 게 근본부터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언짢고, 조금 실망스럽고 그렇더군요."
- 레델마이어는 아모스와 첫 공동 논문을 낸 뒤에 다른 아이디어가 더 떠올랐다. 곧이어 두 사람은 오후에 아모스의 연구실이 아니라 밤에 아모스의 집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아모스와 함께 일하면, 일이 일이 아니었다. 레델마이어가 말했다.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어요. 그냥 노는 거예요." 레델마이어는 가슴 깊은 곳에서, 내 삶을 바꿀 사람 과 함께 있다고 직감했다. 아모스의 입에서 수많은 문장이 튀어나왔고, 레델마이어는 그 문장들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훌륭한 과학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을 보되, 누구도 말한 적 없는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다.
아주 똑똑한사람과 아주 어리석은 사람은 한 끗 차이일 때가 많다. 순종해야 할 때 순종하지 않으면, 창조력을 발휘해야 할 때 창조력 을 발휘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일어난다.
- 좋은 연구를 하는 비결은 항상 힘을 좀 남겨두는 것이다. 몇 시간 낭비할 줄 모르면 몇 년을 낭비한다.
더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다고 증명하기보다 더 쉽다.

- 행복한 사람이 불행을 상상하는 방식은 불행한 사람이 어떻게 달리 행동했으면 행복할 수 있었는지를 상상하는 방식과 다르다. 후회 를 피하려는 욕구는 다른 감정을 피하려는 욕구보다 강하다.
사람들은 결정을 내릴 때, 효용을 극대화하기보다 후회를 극소화하려 했 다. 이 사실에서 출발해 새로운 이론을 찾는다면, 뭔가 나올 것 같았다. 아모스는 어떤 식으로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 느낄 후회를 상상한 뒤에 후회가 가장 적을 것 을 선택하는 전략을 쓴다고 말하곤 했다. 
- 아모스와 대니는 후회를 연구하면서, 확실한 결과가 제시된 도박에서 사람들은 그 확실 성에 꽤 큰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목격했었다. 그런데 이제, 불확실성 의 정도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새롭게 목격했다. 어 떤 결과가 나올 확률이 90퍼센트인 내기와 10퍼센트인 내기를 제시 하자, 사람들은 전자가 후자보다 그 결과가 나올 확률이 9배인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이들은 내부 조정을 거쳐, 90퍼센트 확률이 실제로 는 90퍼센트보다 약간 낮은 것처럼, 그리고 10퍼센트 확률은 10퍼센트보다 약간 높은 것처럼 행동했다.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확률에 대응한 것이다.
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가능성이 희박할수록 감정은 더 강해졌다. 한 뭉치 돈을 따거나 잃을 확률이 10억 분의 1이라고 하 면, 사람들은 그 확률이 1만 분의 1인 것처럼 행동했다. 돈을 잃을 확률 이 10억 분의 1일 때는 필요 이상으로 걱정을 하고, 돈을 딸 확률이 10 억 분의 1일 때는 필요 이상으로 희망을 품었다. 극히 낮은 확률에 이 런 감정을 보이다 보니 위험을 대하는 평소의 감각이 뒤바뀌어, 가망 없는 이익을 추구하느라 위험을 추구하고 손실이 생길 확률이 극히 낮 은데도 위험을 회피했다(복권과 보험이 팔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니가 말했 다. "일단 그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부풀려져. 딸아이가 늦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걱정뿐이잖 아." 그리고 그 걱정을 없애느라 필요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곤 한다.
- 사람들은 발생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모두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취급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 하는 이론을 만들려면, 현실에서처럼 각 확률에 감정 '가중치를 부여 해야 했다. 그렇게 하면 보험과 복권이 팔리는 이유뿐 아니라 알레의 역설까지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대니와 아모스는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발견 했다. 이들의 이론은 기대효용이론이 설명하지 못한 것을 모두 설명 한 반면에, 효용이론이 전혀 예상치 못한 점 즉 위험 감수 유도가 위험 회피 유도만큼이나 쉽다는 점을 암시했다. 이를 위해서는 선택에 손실 을 포함시키면 그만이었다. 베르누이가 이 토론을 시작한 이래로 200년이 넘도록 지식인들은 위험 추구를 호기심으로 간주했었다. 대니와 아모스의 이론이 암시하듯이 위험 추구가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다면, 왜 진작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아모스와 대니는 이제 그 이유를 인간의 결정을 연구하는 지식 인들이 엉뚱한 곳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지식인들은 주 로 경제학자였고, 경제학자는 돈과 관련한 결정에 집중했다. 아모스와 대니는 논문 초고에 이렇게 적었다. "(보험을 제외하고) 그런 맥락에서 내 린 결정은 거의 다 주로 긍정적 전망을 수반하는 것이 생태적 사실이다." 경제학자들이 연구한 도박은 대부분의 저축이나 투자 결정처럼, 서로 다른 이익을 놓고 선택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익과 관련해서는 위험 회피 성향을 보여, 도박보다는 확실한 이익을 택했다. 대니와 아모스는 그 이론가들이 돈 이외에 정치와 전쟁, 나아가 결혼을 연구했다면 인간 본성에 대해 다른 결론을 내놓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정치와 전쟁에서 마주치는 선택은 골치 아픈 인간관계에서 그렇듯이 대개는 달갑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대니와 아모스는 이렇게 썼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 정치적 영역, 전략적 영역에서 내린 결정의 결과를 금전적 이익과 손실처럼 쉽게 측정할 수 있었다면, 의 사결정자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매우 다른 시각이 생겼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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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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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착각

심리 2024. 1. 4. 11:59

- 진정한 질문은 더 밝은 미래가 언제나 정말 그토록 멀리만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정반대로 그 미래는 이미 여기에 오래전에 와 있었는데, 우리가 나약한 채 눈뜨지 못하고 있어서 우리 주변과 우리의 안 에 있는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있자면, 그래서 그 미래로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츨라프 하벨)
- 집단 착각 이란 한 마디로 사회적 거짓말이다. 어떤 집단의 구성원 중 다수 가 특정한 의견을 거부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런 판단을 내리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하고 있을 것이라고(부정확하게) 넘겨짚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가 바로 집단 착각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다들 원한다고 착각하는 답을 따르기만 할 경우, 결국 모든 이가 아무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향할 수도 있다. 집단 착 각이 만들어내는 흑마술인 셈이다.
- '편견 Stereotype'은 집단 착각에 의해 엄청나게 부풀려지는 경향 이 있는데, 이 또한 나쁜 소식이다. 그런 이유로 중국인들은 다 른 중국인들이 일본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지녔다고 여기는데, 이는 물론 그들이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감정보다 훨씬 부정적 인 것이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반일 감정을 더욱 공 격적으로 드러낸다. 일본의 경우, 대부분의 남자들이 출산 휴가 를 쓰고 싶어 하지만, 사회적으로 대부분의 일본 남자들이 출산 휴가 사용을 원치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실제로 훨씬 적은 숫 자만이 출산 휴가를 이용한다. 10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지지자들이 서로 상대방이 실제보다 훨씬 극단적 인 입장을 지니고 있다고 단정 지으면서, 정치를 양극화하며 갈 등을 더욱 키워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부분의 미국 학 생운동선수들은 높은 성적을 받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학생 선수들은 성적에 개의치 않고 운동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공부를 등한시하고 성적을 망친다. 이런 식으로 집단 착각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 사회학자 윌리엄 아이작 토머스 William Isaac Thomas와 그의 부인인 도로시가 1928년 제시한 이른바 '토머스 정리 Thomas Theorem'는 다음과 같다. "만약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현실로 정의한다면, 결과적으로 현실이 된다."21 다시 말해, 주근 깨가 났고 한쪽 발로 콩콩거리며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우리가 마녀라고 믿는다면, 혹은 코로나19로 인해 화장실 휴지가 남아 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우리가 믿는다면, 그러한 믿음에 실질적 인 근거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그러한 믿음에 따른 결과만큼은 현실화될 수 있다.
- 일단 순응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남들처럼 하고 나면, 모든 섬세한 신경과 영혼의 요소들이 무기력에 잠식당한다. 그녀는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만 남은 채 내면은 텅비고 마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
- 생수는 한때 우물물 오염 문제의 해법으 로 동원된 한시적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엄청난 사업으 로 급성장해 2026년이면 총 4천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이룰 것 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과연 생수가 정말로 더 깨끗하고 안전한 물이 맞긴 한 걸까? 물론 그렇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미시건 주 플린트에, 2015년 수돗물 오염 파동을 겪었던 그곳에 살고 있다면. 하지만 플린트처럼 극히 예외적인 곳을 제외하고 나면 수돗물은 양호 하다. 미국의 경우 99퍼센트의 수돗물은 음용 가능할 뿐 아니라,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생수라고 생각하며 마시는 물은 수돗물이다.  병입되어 판매되는 물 중 절반 이상이 약간의 처리 과정을 거친 수돗물이며, 양대 생수 브랜드인 아쿠아피나Aguafina와 다사 니Dasani는 (참고로 이들은 펩시와 코카콜라의 상품인데), 그저 디트로이 트시가 제공하는 물을 한번 걸러서 플라스틱 병에 담아 넓은 시 장에 판매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병에 들어 있는 물을 생수 라고 마실 때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기극에 속는 동시에 거 들고 있는 셈이다.
-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2019년, 미국인들은 1,900억 리터의 생수를 마셨는데, 이는 탄산음료의 전체 소비량을 능가하는 것이다.  주유소에 딸린 슈퍼마켓이 나 상점에서 생수를 구입하면 4.5리터짜리 한 병에 평균적으로 1.5달러를 내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같은 양의 수돗물을 사용할 때 내는 돈의 2천배에 육박한다. 가장 저렴하게 구입할 때가 그렇고, 생수의 가격은 그 후로 더 올라갈 뿐이다. 화산 활동으 로 만들어진 현무암 지반으로 걸러졌다는 둥, 구름까지 뚫고 올 라가는 일본의 명산에서 채취했다는 둥, 숫제 천사의 눈물을 받 아왔다는 둥, 온갖 이유를 붙인 고급 생수들은 고작 세 컵 분량 에 5달러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캐나다의 아쿠아 데코 생수는 한병에 12달러다. 하와이안 코나 니가리 생수의 신선한 맛을 보 고자 한다면 402달러를 내야 한다. 진짜 물맛을 아는 사람이라 면 순금병에 담긴 아쿠아 디 크리탈로 트리부토 아 모디기리아 니 생수를 마시기 위해 6만 달러를 지불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우리는 명예를 잃거나 얻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권위에 굴 복하는데, 그럴 때 우리는 한쪽의 이야기를 충직하게 따르면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전문가의 권위 로 인한 연쇄작용은 되돌리기 어렵게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가 동참하고 있는 이야기가 참인지 거짓인지 여부 따위는 전혀 중 요하지 않다. 이렇게 함께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잘못될 리 없다 는 생각에 다들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견고해 보이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연쇄 작용은 한쪽 구석이 허술해진 젠가 블록 무더기처럼 운 좋게 버티고 있 을 뿐이다. 만약 중요한 블록 하나가 빠지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허물어져 버린다.
-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우리의 뇌에서는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가족으로부터 출발하는 수많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켜주는 호르몬이다. 또한 옥시토신은 나 자신보다 공동체와 구성원들의 이익을 앞세우도록 해줄 뿐 아니라, 만약 필요하다면 다른 이들로부터 우리 집단을 보호하 도록 이끌어준다. 2015년 수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옥시토신을 투여한 실험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소속 집단 구 성원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납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 다. 연구 수행자들은 옥시토신 투여의 효과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옥시토신은 귀속집단을 향한 편애주의 Favoritism, 같 은 편을 위한 거짓말, 귀속집단의 복리를 위한 값비싼 헌신과 기 여, 귀속집단의 선호를 향한 순응, 외부자가 가하는 위협에 대한 공격적 보호 기제 등을 촉진한다. "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옥시토신은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선 호하지 않는 입장에 순응할 가능성을 높이거나 적어도 일시적으 로 따르게끔 한다. 옥시토신이라는 행복 호르몬을 보상으로 얻 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관계에 도움이 되는 행동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설령 근거가 매우 희박하거나 사소하 다 해도 공감대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혹은 우리가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그 따스한 기분 때문만으로도 우리는 공동체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마는 것이다.
- 인지부조화가 불러온 잘못된 선택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 상응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균형을 잃은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 거 Leon Festinger는 이러한 현상을 '인지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라 불렀다. 인지부조화는 불쾌한 상황이기에 믿음과 행동을 일치 시키고자 하는 동기가 생긴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바꾸 거나 정당화할 수 있는데, 대체로는 후자의 길을 택한다.
페스팅거의 연구에 나오는 한 사례를 들어보자.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거짓말시키는 경우다. 피험자는 길고 지루한 실험이 끝난 후 대학원생으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다. 이 실험이 얼마나 짜릿하게 재미있는지 거짓말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 대가로 주 어지는 돈은 1달러부터 20달러까지 다양했다. 실험이 끝난 후 피험자들의 생각에 대해 개별적인 인터뷰를 해보니 놀라운 현상 이 발견되었다. 피험자들뿐 아니라 거짓말을 했던 통제 집단에서 20달러를 받은 사람들은 그 실험이 지겨웠다고 생각하는 반면, 1달러를 받은 이들은 그 실험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기억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페스팅거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달러를 받은 이들은 자기가 돈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었다. 반면 같은 거짓말을 하고 1달러만 받은 이들 은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거가 더 필 요했다. 그렇게 인지 부조화 상태에 놓인 이들은 부족한 정당화를 채워 넣기 위해 본인의 개인적 의견을 바꾸게 된 것이다. 내 가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한 것이지 그 외에 무슨 이유가 또 있단 말인가? 그래서 실은 그 실험이 지루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피험자들은 자신들이 내뱉어놓은 거짓말에 현실을 끼워 맞췄다. 
우리의 개인적 믿음에 대해 거짓말을 할 때 발생하는 첫 번째 위험이 바로 이것이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의 거짓말을 믿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 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 다른 이들이 그걸 알아챌지 모 른다는 찝찝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이 내 가 거짓말을 한다는 걸 몰라도 우리는 그런 기분을 느낀다.  이러한 현상의 연구에 있어서 선구자 격인 코넬 대학의 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 Thomas Gilovich는 이것을 '투명성의 환상 Illusion Of Transparence'이라 부른다.  이런 환상으로 인해 우리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를 끔찍하게 거짓말을 못하는 거 짓말쟁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선물 준 사람이 속상할까봐 선물이 마음에 드는 척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친절한 말을 들으면 친절 한 말을 돌려주는 것은 사회적 상식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사고 방식 때문에 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많은 거짓말을 하게 되며, 그런 거짓말이 드러나지는 않을지 걱정에 사로잡히고 만 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 이렇듯 사회적 정체성의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것은 우리 가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정체성 복잡도를 높이는 것은 우리가 속한 집단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마치 다양 한 미생물과 접촉함으로써 면역력을 높이듯, 우리가 속하는 집 단 역시 변화를 받아들일 때에만 생존하고 번창할 수 있다. 이해 의 지평을 넓히고 생각의 다양성을 늘리는 것은 우리 모두를 튼 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에서 벌어지는 의사소통 가운데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사람 대 봇에서 오가는 것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 19퍼센트다. 그리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 않은 소름 끼치는 현실 이다. 소셜 미디어의 통계적 모델링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전 체계정 중 5~10퍼센트 정도의 봇을 확보하고 있기만 하면 자 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다수 의견을 형성하고 주무를 수 있다. 그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입장을 지배적인 것으로 만들어, 결국 모 든 참여자들 중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엘름 홀로우의 솔트 여사처럼, 실은 다수의 의견이 아니지만 다수 의견을 대변하는 것처럼 주장하며 권력을 행사하 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수의 무지에 힘입어, 혹은 어느 방 향이 대세가 될지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이 들을 적절히 길들인다. 사회적인 에너지를 왜곡된 방향으로 순 식간에 강화하고 고착시키는 것이다. 실제로는 소수의 지지를 받고 있을 뿐이지만 마치 다수가 된 것처럼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런 의견은 집단 착각으로 이어진다. 결국 우리는 입에 재갈을 문 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침묵의 나선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 침묵을 깨고 입을 여는 전환의 시점이 언제인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게 어느 때가 됐든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발언 하는 대신 입을 다물어 버리겠노라 마음먹는 순간 우리는 침묵 의 나선으로 다른 이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침묵의 나선은 천천히 만들어진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끌어당기다가 점점 더 많 은 이들이 말끝을 흐리며 핑계를 대도록 만든다. 비윤리적인 행 동이나 명백한 억압, 불공정한 관행과 규칙 따위에 보이지 않는 찬성표를 던지고 마는 것이다. 침묵의 나선은 이렇게 커진다. 이 렇듯 구조화된 현실 부정은 결국 너무도 일반화된 나머지 사회 의 규범이 되어버리고 만다. 불의가 용납되는 세상이 되는 것 이다. 그러니 침묵하는 우리는 모두 적극적 공범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수천 개의 끈으로 이어져 있으며, 그 공감의 선을 따라 원인이 되는 우리의 행동이 나가고 결과가 되는 무엇이 되돌아온다. (허먼 멜빌)
- 우리는 순응으로 인해 반쯤 망가지지만, 순응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망가지고 만다. (찰스 더들리 워너)
- 먼 훗날인 2005년 에모리 대학의 심리상담사 겸 신경과학자 인 그레고리 번스Gregory Berns는 애쉬의 실험을 재현했다. 번스에 게는 애쉬가 활동하던 시절까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던 새로운 도구가 쥐어져 있었다. fMRI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번스는 피험자가 결정을 내릴 때 그들의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 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번스는 피험자들이 집단에 순응할 때마 다 확신과 보상에 관련된 뇌의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 했다. 반면 피험자들이 집단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면, 불쾌한 감정과 연관되어 있는 뇌의 영역인 소뇌 편도가 피험자에게 '오류 신호를 보냈고 그로 인해 피험자들은 불편함을 느끼게 되 었다. 더 흥미로운 점도 있었다. 집단의 의견에 순응한 사람들의 뇌의 시각 시스템에 실제로 물리적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 는 그 사람들이 실제로 보고 있는 내용 자체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니 집단에 순응한 사람들 중 일부는 그들 눈에 보 이는 그대로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던 셈이다. 일부 전문가들 이 통제된 환각Controlled Hallucination'이라 부르는 그런 착시를 경 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쉬와 번스가 모두 확인했다시피, 우리 인간은 집단과 달라붙어 있도록 생물학적 차원에서 결정된 존재다. 우리가 순응의 함정에 빠져드는 이유도 바로 그렇게 설명된다. 우리가 아는 한, 우리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 가장 사회적인 동물이다. 이 독 특한 사회적 성향 덕분에 우리 인류는 다른 그 어떤 종과도 비교 불가한 수준의 협력을 해내며 번창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외톨이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증거마저 믿지 않을 정도로 사회적인 동물인 것이다. 우리는 심지어 스스로 원치 않더라도 자신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그들처럼 행동하 도록 생물학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 다. 우리가 집단 착각에 극히 취약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므로 순 응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자 않다면, 순응의 함정의 바닥에 깔린 사회적 본능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 거울뉴런은 모방에만 관여 하는 신경 회로가 아니다. 다른 이들의 경험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에도 거울 뉴런이 관여한다.  즉 거울뉴런은 본래 우리가 보 고 들은 것을 흉내 내는 것을 본래 기능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는 우리가 관찰한 것을 수용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어떤 동작을 관찰하면 우리의 두뇌는 자동적으로 근육을 움직여 방금 본 것을 모방하고자 한다. 이렇게 우리는 다른 이들을 통해 빠른 속도로 배워나가게 되는데, 이 모든 과정은 전적으로 무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모방 충동은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는 역할도 한다. 누군가를 따라한다는 건 결국 그에게 찬사를 보내 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선택한 브랜드에 돈을 쓸 때 마다 우리 뇌의 보상 체계는 작지만 즐거운 함성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런 값비싼 운동화를 신으면 마치 우리도 마이클 조던이 된 것처럼 좀 더 빨리 달 리고 좀 더 높이 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지라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목격하면, 심지 어 실은 자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을 때조차 다른 사람과 같은 것 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뇌는 자동적 으로 상상의 경쟁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서 그 상상의 경쟁자는 점점 현실이 되어 간다.
- 모방 욕망이 낳을 수 있는 결과는 두 가지, 하나는 좋은 것이 고 하나는 나쁜 것이다. 집단 구성원끼리 보다 나은 연결감을 얻 을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다. 목적물이 공유 가능하여 경 쟁하지 않고도 두 사람이 같은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면, 그들이 가진 공통의 욕망은 확산 가능하다.20 특히 종교적 신앙심 같은 특정 사례는 바로 이런 공유된 욕망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 위에 서 공통의 이해와 안정감이 나온다.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노래 를 즐거운 마음으로 부르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옥시토신이 분 비되고, 사랑과 공감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욕 망에 주목하게 된다. 다양한 관점을 지닌 이들에게도 같은 공감 을 느껴서 그들의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을 것 이다. 
- 하지만 모방 욕망은 훨씬 어두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공 유할 수 없는 것을 사람들이 함께 원하면 경쟁은 치열해지고 대 립 구도가 형성되며 폭력이 분출되기도 한다. 모세가 받아온 십 계명에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써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서구 문명은 출발부터 이러한 욕망을 금기시해 왔 다. 다른 사례도 마찬가지다. 두 아기가 장난감 하나를 두고 싸 우고 있다거나, 이혼한 부부가 자녀의 양육권 혹은 개를 누가 기 를지 여부를 두고 싸운다거나, 이웃끼리 땅을 놓고 분쟁을 벌이거나, 누가 집권할지를 두고 두 정당이 서로를 악마화하는 경우 등을 떠올려 보자. 두 나라가 제한된 자원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경우도 가능하다. 즉 우리는 원하는 것의 공급이 충분치 않을 때 면 서로를 바라보고 대립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욕망의 대상이 희소하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경쟁 본능이 더욱 치열해지는 경우도 있다. 가령 미국인들은 일자리와 재화가 한정되어 있으 며 제로섬 게임 (Zero-sum Game, 참가자가 선택하는 행동이 무엇이든지 이 득과 손실의 총합이 제로가 되는 게임)의 경쟁을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난 민과 이주민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곤 하는 것이다
- 지라르는 인류의 역사 전체를 놓고 이러한 경쟁 본능을 고찰 했다. 그가 볼 때 경쟁을 향한 본능은 그저 다른 사람이 무언가 를 원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촉발되는 것이었다. 태어날 때 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사회적 본능으로 인해 다른 이를 모방 하고 유대감을 느끼며 다른 이들과 스스로를 비교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믿음이나 생각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맞춰 스스로를 교정해나가는 스 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비교 본능은 특히 보상과 처벌의 신호에 민감하게 만든다. 바 로 그 점이 우리를 퍽 위험하고어두운 곳으로 인도하곤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상대적으로 잘 한다고 느낄 때, 우리 뇌의 보상 과 관련된 부분에 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의 뇌에는 도파민 과 옥시토신이 쏟아지는 것이다. 가령 페이스북의 '좋아요' 기능 이나 다른 소셜 미디어들은 이런 보상 기제를 활용한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좋아요' 숫자를 헤아리며 따 봉을 받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 는 모두 도파민 중독자인 셈이다.
반면 우리가 상대적으로 열등하다고 느낄 때 우리의 두뇌는 우리를 물리적 고통으로부터 보호할 때와 똑같은 성분의 마약성 화학 물질을 분비한다.  여기서 우리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만 한다. 자칫하면 어둠에 잡아먹힐 수도 있는 이야기가 시작되 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상대적으로 나은 기분을 느끼고자 다른 이들을 끌어내리거나 심지어 상처 입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자아상이 공격받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가 열등하다고 여 기는 존재들보다 스스로를 더 우위에 놓고자 하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이는 단지 우월감만을 충족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 고, 같은 신경 보상 시스템으로 인해 우리는 마치 도박에서 돈을 따거나 경기에서 이긴 것과 같은 흥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사회적 공감에 대한 생물학적 편향을 지니고 있다. 그 런데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그 편향에는 큰 비극이 내포되 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남보다 나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타인에게 해가 될 수도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사회적 본능은 그런 최악의 이기적 성향에 군불을 지핀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남부 출신으로 특히 인종차별 문제와 관련해서 이 사악한 잠재 력을 잘 알고 그 작용 방식까지도 꿰고 있었다. 1963년, 당시 존 슨 밑에서 일하던 젊은 직원이었던 빌 마이어스의 회고를 살펴 보자.
우리는 테네시에 있었다. 모터케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존슨은 흉 측한 인종차별 문구가 도로 표지판에 못으로 걸려 있는 것을 발견 했다. 지역의 고관대작들이 모여 버번 위스키와 물을 섞어 마셔가 며 마지막 병을 비우고 털고 일어나려던 늦은 밤, 존슨은 그 표지 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인종차별의 바닥에 깔린 게 뭔 지 알고 싶나? 내가 말해 주지. 밑바닥에 있는 백인들한테 단지 본 인이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훌륭한 흑인보다 나은 사람이라 고 느끼게 만들어준다면, 그 백인들은 정치인들이 아무리 호주머 니를 털어가도 알아채지 못한다네. 빌어먹을, 알겠나? 사람들한테 얕잡아볼 수 있는 만만한 대상을 제공하면, 사람들은 알아서 있는것 없는 것 다 갖다 바친단 말이야."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우리 각각의 모습을 다 른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를 추상적인 집단과 견준다. 집단 착각이 우리를 쉽게도 꿀꺽 삼 켜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식사 예절들을 살펴보자. 우리는 거기 에 어떤 목적이 있다고 가정하고 의례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 다. 하지만 식탁 예절은 개인적인 차원의 위생, 음식의 조리나 서빙, 맛과 풍미를 돋우기 위한 행위 등과 전혀 상관이 없다. 복 잡한 식탁 예절이 존재하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런 예절을 지키는 상류 사회 계급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뿐이다.
에밀리포스트닷컴 Emily Post. Com에 실린 한 편의 글이 이런 맥락 을 잘 보여준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잠재적 실수와 망신의 지뢰밭을 뚫고 가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나 직장 동료, 상사, 혹은 고객과 같이 식사를 할 계획이라면 식탁 예절을 완전히 장착하고 가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업무의 연장인 저녁식사나 미팅을 겸한 점심식사는 수많은 중요 결정이 내려지는 자리이며, 사람들은 그런 사회적인 식사 자리에서 관 계를 다진다.” 한마디로 '글러먹은' 자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정중한 식사 예법은 왕정 시대만큼이나 오늘날까지도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이며 특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핵심적 요소로 남아 있는 것이다."
-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검증하거나 질문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잘못된 말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
- 생각의 함정
우리의 뇌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가령 우리의 뇌 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는 1초당 11메가바이트에 달할 정도지만, 우리가 정말 '보는' 것은 고작 1초당 60비트 정도에 지나지 않으 며, 오직 그 정도의 분량만이 우리의 뇌로 '업로드된다. 이것은 마치 프랑스 파리의 모든 사람들을 다 살펴보면서 그중 고작 여 덟 명만을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뇌는 두 가지 역할을 수 행한다. 
첫째, 어떤 정보를 업로드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면 뇌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 뭐 새로운 게 있나? 뭔가 바뀌었나? 만약 바뀐 게 있다면, 중요한 건가? 그렇지 않다 면 나는 에너지 절약 모드로 들어갈 거야. 이미 알고 있고 이해 하고 있는 규범과 패턴에 의존할 거라는 거지."
둘째, 뇌는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예측을 한다. 기존의 지식과 경험에 기반을 두고 빠진 정보를 채워 넣는데, 그러한 과정은 우 리의 의식적 사고 행위보다 더 빨리 수행된다. 우리의 뇌는 정보 가 부족한 자리에 무엇이 올지 신속하게 해석하고 개입하는 그 런 일을 썩 잘 해내는 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객관적 컴퓨터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100퍼센트 정확하게 이 해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시도는 실로 인지적 에너지의 낭비로 이 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뇌는 입력된 정보 가운데 중요하지 않 은 디테일은 재빨리 넘겨버리고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에 집착한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 하며, 변화를 감지하고, 할 수 있는 대응을 하는 것이다.
- 가장 나쁜 건 인터넷 봇과 트롤들이 지속적인 감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설령 여론이 봇과 트롤에 의해 만들어진 것 임이 밝혀지고 소셜 미디어 계정이 차단되거나 삭제된다 해도, 사람들이 갖게 된 감정은 그대로 남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험이라고 워런은 주장했다. 인터넷 조작의 영향이 마치 병에 걸린 것처럼 남기 때문이다. “인터넷 여론 조작은 소셜 미디어 생태계를 타고 퍼진다. 병에 나은 다음에도 후유증이 지속되듯, 조작 행위를 제거하고 난 후에도 그 영향은 남는다." 그리하여 병에 걸리는 것은 단지 트위터 사용자만이 아니다. 미국 사회와 민주주의가 모두 병에 걸리고 말았다. 미국 상원 정보 특별위원 회가 지적했듯, 러시아 트롤의 목적은 '분노를 자극하고, 저항과 시위를 촉발하며, 미국인들을 서로 멀어지게 만들고, 공적 제도 에 대한 불신을 퍼뜨리는 것'이었다.
-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와 우리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 면 그렇다. 사실 '성공'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따르는 것과 전 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매우 깊숙한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다. 우리의 연구는 5천명 이상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개인적 성공의 의미에 대해 두 사람 이상이 같은 답을 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 었다.  실제로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 는 요소는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지문처럼 개별적이고 고유한 속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완성된 성취감을 얻는 실질적이고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이, 본인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일을 잘 해나가는 것, 말하자면 조화로 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더욱 조화로운 존재가 되는 것은 우리를 성공으 로 인도하는 검증된 방식이지만, 그 외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 더욱 믿음직한 사람이 되고,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더 큰 삶의 만족도를 누리게 함으로써 조화로운 삶은 우리가 더욱 행복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도움을 준다.  정원 가꾸기, 반려동물과 시간 보내기, 노래를 만들거나 연주하기, 자식이나 손주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다른 사람들이 선호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대신 내가 좋아하는 초코 아이스크림 먹기 등 뭐가 됐든 개인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일에 20퍼센트 이상의 시간 을 더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포퓰레이스의 연구 결과, 마치 수입이 50퍼센트 늘어난 것처럼 인생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잠깐 책 읽기를 멈추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
- 진실성을 이상적인 가치로 바라보는 관점은 곧 빛을 잃고 말았다. 비아냥과 조롱, 아이러니 같은 훨씬 자극적인 취향 에 밀려나고 만 것이다. 문화평론가 로라 키프니스Laura Kipnis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표현을 빌자면, 진실성은 '그 왕관 이 진흙탕으로 떨어지기 전부터 정점에서 밀려났고 들판으로 쫓겨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진실성 대신 도덕적인 느낌이 덜한 '진정성'이라 는 표현을 사용한다. 거짓과 반대되는 의미로 진짜라는 의미를 지니는 단어다. 진정성은 좋은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속에 는 윤리적 실천의 요구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비즈니 스 업계에서 칭송받는 진정성 있는 리더란 성실하고, 자기 절제력을 갖추고 있으며, 자기 인식이 있고,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런데 진정성은 미덕과 상관이 없다. 진정 성 있는 사람은 진정성 있게 선한 인물일 수도 악한 인물일 수도 있으며, 좋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지만 나쁜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의 주인공 스크루 지 영감에게 세 망령이 찾아왔을 때, 스크루지는 스스로를 ‘두 주 먹을 꽉 쥐고 숫돌에 벼려진 부싯돌처럼 단단하고 예리한 사람' 이라고 묘사하고 있었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찰스 디 킨스가 잘 보여주고 있다시피, 스크루지가 지니고 있던 돈에 대 한 이 불굴의 집착 역시도 진정성 있는 것이었다. 스크루지의 현 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진정성이 스크루지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진실함이 이토록 허무하게 져버리고 진정성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 테일러는 주장했다. 테일러 본인이 남긴 표현에서 우리는 노동 자를 그가 얼마나 경멸어린 투로 평가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 다. "주철 작업을 주업으로 삼는 것에 적합한 이가 가져야 할 최 우선 자질은 대단히 멍청하고 우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정 신세계는 다른 그 어떤 동물보다 황소를 연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너무도 멍청하기에 '퍼센트' 같은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자는, 그래서 그보다 더 지적인 사람에게 과학 법칙에 입 각하여 지속적인 직업 훈련을 받아야 하며 그래야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다."
- 동물과 다를 바 없는 공장 노동자들은 본질적으로 무가치한 존재이며, 그들은 엄격하게 통제될 때에만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고 믿었던 테일러는 노동자들을 가능한 한 기계처럼 조직화할 수 있는 체계를 고안해냈다. 노동자들의 모든 동작을 '과학적' 계 산에 입각해 제한한 것이다. 공장 관리자들은 최대한의 생산을 위해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전략적으로 조절했다. 노동자들이 가장 일하기 좋거나 노동자들의 몸에 적합한지 여부 등은 고려 의 대상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측정 대상이었고 모든 행위의 시간을 시시콜콜하게 측정했다.
- 하향식 테일러주의는 너무 광범위하게 퍼진 탓에, 마치 물고 기가 물을 알아채지 못하듯 우리는 그 존재를 인식하지도 못할 지경이다. 100년 하고 조금 더 옛날, 찰스 테일러라는 사람이 우 리의 일터와 생활뿐 아니라 우리가 다른 이들을 대하는 관점에 '과학적' 접근법을 도입한 후, 그러한 사고방식은 마치 중력의 법 칙처럼 의심받지 않는 자명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조지메이슨대학교의 경제학 교수 알렉스 타바로크 Alex Tabarrok 는 테일러주의의 부정적 후폭풍에 대해 연구했다. 테일러리즘은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적 불신도 낳았다. 가부장 주의는 보다 더 부패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 다. 게다가 가부장주의는 사람들을 잘못된 제로섬 게임의 사고방식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다(가령 이런 식이다. “파이는 단 하나뿐. 내가 더 갖는다면 네 몫은 줄어든다"). 이렇게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이기적 이며 남들과 공유하기 어려운 분야에 투자를 하는 경향을 보이 게 된다. 사람들은 부의 재분배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앞 세우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인구 대다수에게서 신뢰를 떨어 뜨리고 경제 전반에 피해를 끼친다. 15 타바로크는 이러한 현상을 '불신의 덫 Distrust Trap'이라 이름 지었는데, 하버드대학교의 연구 자들에 따르면 이 덫에 빠진 공무원과 사업가들이 사람들을 험 하게 대하면서 문제가 점점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테일러의 영향을 받은 조직의 수장들은 우리에게 '나는 당신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는 그 영향을 받아 스스로를 믿지 못할 존재로 여기게 된다. 이런 가부장적인 거 짓말에 굴종하면서 불신과 편견은 눈덩이처럼 커져 간다. 우리 가 스스로를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면서 우리는 다른 사 람들을 바라볼 때에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그들을 믿지 않으려 든다. 그들이 신뢰할만한 이들로 보이려 하는지부터 의 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상대방 역시 같은 식으로 우 리를 불신한다는 말과 같다. 이렇게 상호간에 신경을 곤두세우 면서 우리 사회에는 자기 파괴적이고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버 린 불신이 마치 독처럼 퍼져나간다.
개인적 차원으로 내려와 보면, 이러한 불신 편향은 자아의 분열을 가속화한다. 타인을 향한 의심으로 가득한 우리는 모방, 소속, 침묵의 함정에 보다 쉽게 빠져들게 된다. 우리는 집단 압력과 음모론적 사고에 더욱 취약해지며 조화를 이루는 일은 극히 어려워진다. 불신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망가지며 불안과 스트레 스가 높아진다. 명료하게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우리는 보 다 긴장하고 뻣뻣한 상태로 분노를 쉽게 느끼게 된다." 사회 전 체에 불신이 가득한 가운데 개인의 내면마저 불신에 사로잡히면 그 결과는 실로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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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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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뇌

심리 2023. 12. 31. 17:04

- 언어나 음악이 어느 혁신적인 한사람에 의해 혹은 어느 한곳, 어느 한때에 발명되었을 거라 보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세계 곳곳 에서 수많은 사람에 의해 거듭 다듬어져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우 리가 이미 갖고 있던 신체 구조와 능력, 즉 우리가 원인ᄉ과 선조 동물로부 터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구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인간의 언어가 그 어떤 동물의 언어와도 질적으로 다른 것은 사실이다. 인간의 언어는 생성 적generative (요소들을 다양하게 조합해서 무한히 많은 발성을 생성할 수 있는 성질), 자기지시적 self-referential (언어를 이용해서 언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이라 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나는 아마도 앞이마겉질prefrontal cortex에서 일어났을 단일 뇌 메커니즘의 진화가 언어와 예술 모두의 발달을 가능케 한 공통의 사 고양식을 만들어냈을거라 믿고 있다.
이 새로운 신경 메커니즘이 우리에게 음악적 뇌를 특징짓는 세 가지 인지능력을 선물해주었다. 첫 번째 능력은 '조망수용perspective-taking' 14이다. 이는 자기 생각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와는 다른 생각이나 신념을 가 질 수도 있음을 깨닫는 능력이다. 두 번째는 '표상representation'이다. 이는 당장 눈앞에 있지 않은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을 말한다. 세 번째는 '재배치 rearrangement'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요소들에 위계질서를 부여하고, 그것 을 새로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세 가지 능력의 결합으로 초기 인 류는 그림, 조각 등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됐 다. 이런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소한 세부 사항은 생략하더라도 사물의 본 질적 특성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 세 가지 능력은 단독으로 혹은 서로 결합해 서 언어와 예술의 공통 토대를 이룬다. 언어와 예술은 모두 세상을 우리에게 표상하는 역할을 한다. 그 표상이 세상 그 자체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그 덕에 우리는 그 본질적 특성을 머릿속에 보존하고, 인지한 내용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 다른 사람도 모두 나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자각이 타 인과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고 싶은 욕망과 결합하면서 언어, 예술, 시, 그림, 춤, 조각 ・・・ 그리고 음악을 탄생시켰다.
- 예술을 창조하려는 욕구가 어찌나 강력한지 우리는 정말 큰 역경 속에서도 예술을 할 방법을 기어코 찾아내고 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강제수 용소에서는 많은 포로가 자발적으로 시를 쓰고, 노래를 작곡하고, 그림을 그 렸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말로는 이런 활동들이 비참하게 그곳에 묻힌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었다고 한다. 프랭클이나 다른 사람들은 그런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은 보통 자신의 세계관이나 삶을 예술 을 통해 개선해보겠다는 의식적인 결정으로 나타나는 결과가 아니라고 지적 했다. 반대로 이런 활동들은 먹고 자고 싶은 욕망만큼이나 본질적인 생물학 적인 욕구로 나타났다. 실제로 작업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먹고 자는 일에 대 해 잠시 까맣게 잊어버리는 예술가도 많다.
- 비틀스는 가수가 자기 곡을 직접 쓰는 시대를 열었다. 척 베리도 자신의 곡 을 쓰고 엘비스 프레슬리도 몇 곡은 공동으로 썼지만, 비틀스가 등장해서 상 업적으로 엄청나게 성공하고, 뒤이어 밥 딜런과 비치보이스가 곡을 써서 성 공을 거둔 후에야 팬들은 가수들이 직접 곡을 써서 부르기를 기대하기 시작 했다. 비틀스는 청중들과의 이런 개인적 유대를 더 부추기기도 했다. 폴 매카 트니가 말하기를 초기 노래에서는 그와 존 레논은 일부러 가사와 노래 제목 에 인칭대명사를 최대한 많이 넣었다고 한다. 이들은 팬들과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는 일에 진지하게 임했다. '그녀는 당신을 사랑해 She Loves You',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요! Want to Hold Your Hand', '추신: 당신을 사랑해요! S. I Love You', '날 사랑해줘 Love Me Do', '제발 나를 기쁘게 해주세요 Please Please Me', '나에게서 그대에게 From Me to You' 등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사는 대체로 무시하고 리듬과 멜로디에 주로 끌리는 사람도 있음 을 알아야 한다. 오페라의 스토리라인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많지만, 줄거 리는 따라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화려한 무대와 아름다운 목소리만 즐긴 다는 사람도 그만큼이나 많다. 심지어 팝송, 재즈, 힙합, 록 음악에서도 가사 는 멜로디를 입히기 위해 딸려오는 부록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무척 많다. 많 은 사람이 이렇게 묻는다. "음악에서 가사가 해야 할 일이 뭘까요? 가사는 그 냥 가수가 멜로디 내내 '랄랄라' 이 소리만 내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존재에 불과해요." 그리고 그냥 '랄랄라' 소리면 족하다는 사람도 많다.
- 역사적으로 부족들은 상대가 잠들어 있는 한밤을 틈타 몰래 공격하는 경우 가 많았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무작위 돌연변이 덕분에 이웃들보다 조금 더 뛰어난 인지능력을 갖게 된 똑똑한 부족 사람들은 북소리가 적을 무력화 시키는 힘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북소리는 적의 투지를 약화시키면서 동시에 자기 전사들의 피는 끓어오르게 만든다. 북은 나무 그루터기에 가죽 을 씌워 만들고, 북마다 살짝 다르게 조율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뭇가지나 바 위로 두드리거나, 조개껍데기나 구슬로 치거나, 긁거나, 흔들어서 소리를 냈 다. 잘 조직되고, 잘 훈련된 사람들이 마치 한 사람처럼 짜임새 있는 소리를 냈다. 만약 이 침입자들이 북치기 같이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에서도 이렇게 잘 조직되어 있다면, 본격적인 살육은 더욱 조직적으로 인정사정없이 이루어 질 터이니 아무리 저항해본들 그 앞에선 소용이 없을 것이다.
- 메크라노티족은 포식자나 공격해 들어온 이웃 부족을 물리치기 위해 사람 들이 노래를 부르는 여러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것은 일종의 상호보완 적인 행동으로, 공격자들이 사용하는 음악과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라 생각 할 수도 있다. 1번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선사시대 공격자들처럼 북미 원주민 들은 공격을 준비하면서 노래하고 춤출 때가 많았다. 이렇게 준비하면서 노 래를 부르면 감정적으로, 신경화학적으로 흥분됐기 때문에 공격 감행에 필요 한 투지와 체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광란의 상황에서 마구잡이 로 노래를 부르고 북을 두드리며 적을 몰아 부치는 무의식적 행동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승자가 그런 효과를 두 눈으로 목격한 이후로는 하나의 전략으 로 자리 잡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휴런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전쟁의 춤은 적들 에게 공격이 임박했음을 경고해줄 위험을 안고 있었지만, 공격자들을 각성시 키고 동조하는 데 따르는 이득이 기습 효과 상실의 단점을 보상하고도 남았 는지도 모른다. 노래하고, 춤추고, 행군하는 모습은 그 장관을 목격하는 사람 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가기 때문에 전장에서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 한다. 19세기와 20세기 독일군이 가장 두려워한 상대는 스코틀랜드 군대였 다. 사람의 마음을 위축시키는 백파이프와 거대한 북소리와 더불어 치마를 입은 겁 없는 병사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어 오는 장관이 독일군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이 얼굴에 문신을 하고, 입을 벌려 혀를 내미는 것처럼 음악도 적에게 소리를 질러 겁을 주는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 노래 부르기의 생리학은 그냥 말을 하는 경우와는 다르기 때문에 집단이 더 오랜 시간 동안 큰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다. 노래를 부를 때는 말할 때와 는 다른 목청과 횡경막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화음을 넣어서 노 래할 경우 메크라노티족은 자신들의 숫자가 실제보다 더 많은 듯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일치단결된 소리로 노래함으로써 자신들이 각기 따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자신 이 집단의 서로 다른 구성원들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예민하 게 반응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실제로 싸움에 불려 나갔을 때 군사적 으로 정말 중요한 보호막이 되어줄수 있다.
- 전 세계에 걸쳐 있는 이질적인 문화권에서 인간의 노래는 크게 두 가지 스 타일 혹은 형태로 존재한다. 엄격한 동시성 strict synchrony과 교대로 부르기 alternation다. 엄격한 동시성의 경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해피 버스데이'나 국가를 부르는 경우처럼 자신의 발성을 다른 사람들과 맞춰 부른다. 이렇게 하려면 노래에서 다음에 나올 것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 고(해마에서의 기억 인지 작용과 이마엽의 예측 능력의 결합), 그다음에는 신경과학자들이 운동실행계획 motor action plan이라 부르는 것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어 야 한다. 운동실행계획이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맞추어 노래하고, 북을 치고,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운동겉질로 내려보내는 구체적인 지시를 말한다. 우 리가 집단사람들에 맞추어 노래, 박수, 기타 음악적 동작을 동기화할 때 예측 과정이 관여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사람이 동기화를 시도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시간 오차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음악적 행동에 타이밍을 맞출 때 빨 라지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이는 우리가 다음 박자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박자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보다는 다음 박이 언제 나올지 예상하고 그 전에 미리 반응을 준비한다는 의미다. 이 세뇌 영역(해마, 운동겉 질, 이마엽의 예측 중추)에서 일어나는 활성을 조정하는 역할은 인간에게서 더 크게 진화한 앞이마겉질이 담당한다.
번갈아 부르기는 집단의 일부 구성원이 의도적으로 다른사람과 노래를 동기화하지 않고 돌림노래로 부르거나(동요 '도~도~도자로 끝나는 말은 Row Row Row Your Boat'을 부를 때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타이밍에 노래를 시작하는 경우), '부르고 화답하기 call and response' 패턴으로 노래하는 경우다. 부르고 화답하기 는 미국의 복음성가에서 자주 보이고, 고대 아프리카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 고 있다. 실제로 특히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문화권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음악이 민주적인 음악 참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부르고 화답하기는 인도 전통 음악(북인도 고전음악에서는 주갈반디jugalbandi나 사자바브sawaal-javaab라고 부른다), 라틴아메리카 음악(코로프레곤coropregon), 유럽 고전 음악(교창antiphony) 에서도 보인다. 특히나 교대로 부르기는 조망수용perspective taking (음악적 뇌의 3대 요소 중 첫 번째)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좀 더 실용적인 다른 협력 활 동을 위한 연습 혹은 그 선행 형태로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타인의 행동을 더 잘 예측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 집단 안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 마약이 뇌에 어떤 효과를 나타내든지 간에 분명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개 개인의 신경생화학적 차이와도 상호작용한다. 뇌는 사람마다 아주 큰 차이가 있어서 구성(즉 물리적 크기와 핵심 구조물들의 배치), 가용한 신경로, 그리고 뉴 런들이 상호소통을 통해 생각, 느낌, 희망, 욕망, 신념들을 형성할 수 있게 해 주는 다양한 화학물질의 기저 수준 등이 각기 다르다. 나는 신경과학자로서 백 명이 넘는 LSD 사용자와 알고 지내는데, 이 마약의 영향이 각기 개인의 정 신적 구성에 들어 있는 관찰 불가능한 요인에 크게 좌우된다고 믿게 됐다. 어 떤 사람은 LSD에 의한 환각 체험을 수백 번 하고도 해로운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반면 어떤 사람은 불과 서너 번의 경험만으로도 절대 예전의 모습으 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LSD 사용으로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뇌가 손상된 사 람 중 다수가 캘리포니아 해안에 정착했고, 나는 샌타크루즈와 샌타바버라 같은 도시에서 그들을 만나보았는데 그들의 뇌에 적절한 기능을 유지해줄 수 없었다.
음악과 마리화나의 조합은 희열을 주면서 그와 함께 음악 및 음악가와 연결된 느낌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마리화나의 유효성분인 △9-테트라하이드 로칸나비놀49-THC은 뇌의 쾌락중추를 자극하는 동시에 단기기억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기기억이 방해받으면 음악 청취자는 펼쳐지는 음악을 순간순간으로 접하게 된다. 방금 어떤 음악이 연주되었는지도 분명히 기억하 지 못하고, 앞으로 어떤 음악이 연주될지 미리 예측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마 리화나에 취한 사람들에게는 음악이 음 단위로 들린다. 무의식 속에서는 기 대 형성 expectation formation의 일반적 과정이 여전히 모두 일어나고 있지만(이 부분은 내 책 《뇌의 왈츠》에서 설명하고 있다), 의식에서는 음악이 시간정지 현상 time-standing-still phenomenon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들은 음 하나하나 의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는 상태가 된다.
LSD, 페요테, 메스칼린 같은 환각제들은 각각 고유의 효과가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 이렇게 시간이 멈추는 성질에 더해서 감각이 뒤섞이는 공감각적 경험 synaesthetic experience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감각수용기에서 들어 오는 입력이 뒤섞이면 소리에서 맛을 느끼고, 냄새에서 촉각을 느끼는 등의 현상이 일어난다. 아직 그 이유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마약들은 뇌 의 세로토닌계serotonergic system에 작용해서 주변의 사람과 사물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도 만들어낸다(세로토닌은 수면, 꿈, 기분 등의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프로작이 이 세로토닌계에 작용한다). 이렇게 하나 된 느낌은 음악가들 이 함께 환각제를 복용해서 함께 환각 체험을 하고, 함께 연주하고, 함께 황홀 경을 경험할 때 정점을 찍게 된다. 이런 공통의 신경화학적, 영적 체험이 수 세기 동안 북미와 남미 원주민들의 의식에서 성스러운 토대였다. 
- 하지만 소리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한 음악이 대체 왜 뇌의 이 모든 화합물 과 활동 중추를 동원하는 것일까? 그에 따르는 진화적 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음악-춤과 관련된 질문의 틀을 새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음악 과 춤을 그저 우리가 만들고 인지하는 소리의 모음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동작, 동시성, 소리, 지각 조직화perceptual organization (정보가 기억 속에 자리 잡을 때 학습자는 학습상황에서 부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각 부분의 상호관계 맥락 속에서 전체를 지각하는데, 이런 조직화 과정에서 상황의 어떤 질서를 찾는 경향 - 옮긴이) 등 여러 양식에 걸쳐 있는 통합적 경험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역 시 음악과 춤은 진화적 시간 척도에서 사실상 분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음악적인 뇌는 다른 정신적·신체적 속성과 따로 진화하지 않았다. 바 꿔 말하면 초기 인류 혹은 원인은 어느날 갑자기 다른 인지 능력은 없이 음악과 춤만 갖게 된 것이 아니다. 음악적인 뇌는 그와 함께 인간의 의식 자체 가가진 온갖 측면도 함께 가지고 왔다. 사회적 유대와 아울러 초기 인류의 경 험에서 근본적이었던 부분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타인에게 소통하는 것, 즉 음악과 춤을 통한 기쁨의 표현이었다.
-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는 보통 긍정적인 관점이 따라온다.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긍정적 관점을 가진 사람이 패배주의적 태도를 가진 사 람보다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더 크다. 물론 여기에는 정교한 균형이 존재한 다. 버락 오바마는 2008년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 이렇게 말했다(그는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의 말을 인용했다. 몰트만의 말은 가톨릭교 회의 공식 문서에도 사용된 바 있다). "희망은 맹목적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과 도하게 낙관적인 사람은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많은 에너지를 쏟 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경우가 많다. 반면 패배주의자(혹은 비관주의자)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가능성이 큰 활동을 지레 겁먹고 포기해버리게 될 것이다. 사냥하고, 먹을 것을 채집하고, 짝을 찾을 때 최고의 전략은 중간 지 점에서 현실보다 살짝 낙관적인(즐거운) 쪽으로 치우친 태도를 갖는 것임이 밝혀졌다. 음악은 여기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즐 거운 음악은 우리를 더 기분 좋게 만들고, 활력을 불어넣고, 침울한 마음을 벗 어던지게 해준다. 둘째, 즐거운 음악은 본보기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는 음악 창작자를 하나의 정신적 영감으로 생각해서 그 사람을 닮으려 노력 하게 된다.
- 낙관주의의 진화적 장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경우는 방금 혈거인 여 성으로부터 받은 눈빛이 어서 이리로 오라는 뜨거운 유혹이었는지, 어서 꺼 지라는 냉담한 표정이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혈거인 남성의 사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 표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적어도 확인해볼 가치는 있겠다 싶었 던 라이벌은 그나마 기회라도 있지만, 아니겠지 싶어 발걸음을 돌린 혈거인 남성은 기회조차 잃게 된다. 인간이라는 종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에 대 해서는 건강한 불신을 진화시켰다. 망상에 빠진 미치광이일 수도 있기 때문 이다. 우리는 자신감이 넘치고 낙관적인 사람에게 적당한 매력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그런 사람은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 사람 한테는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 사람을 따르는 것이 좋겠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낙관주의자는 갈등의 조짐이 보이면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비관주의자는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거로 생각하고, 그런 생각이 스스로 파멸을 불러올 수도 있다. 우리 뇌는 즐거운 음악을 만드는 것에 반응하도록 진화했다. 기쁨이야말로 그 사람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보여주는 믿을 만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 일반적으로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는 긴장이 점점 쌓이며 절정에 도달했다 가 그 후에는 보통 빠른 속도로 긴장이 해소되며 가라앉는다." 보통 음악의 내뱉게 된다. 클래식 음악이 음악의 표준이었던 시기의 교향곡은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다른 음악적 형태보다 이런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런 교향곡은 역동적으로 긴장을 쌓아나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그 긴장을 해소하여 보답하는 형식 으로 특별히 구성되어 있다. 인도의 고전 음악에서는 연주자가 고정된 음의 바로 위아래로 맴돌면서 긴장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며 사람의 애를 태운다.  그러다 그 긴장을 터트려 해소하면 음악을 듣던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 이며 탄식을 내뱉는다. 인생처럼 음악도 속도가 빨라졌다가 느려지고,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고, 감정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가 바닥으로 꺼뜨리기도 하 면서 우리를 쥐락펴락한다.
- 어느 문화권이든 엄마들은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먼 옛날부터 줄곧 그래왔다. 노래는 다른 행위로는 흉내 낼 수 없는 방식 으로 아기들을 달래고 위로해줄 수 있다. 여기에는 청각자극이 다른 감각과 다르다는 점도 한몫한다. 소리는 어둠 속에서도 전달된다. 그래서 아기가 눈 이 감겨 있는 동안에도 들을 수 있다. 바깥세상에서 오는 것처럼 보이는 시각 신호와 달리 청각 신호는 마치 자기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 기의 시각 기관이 완전히 형성되어 엄마와 다른 어른들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기 전에도 청각계는 엄마의 목소리에 들어 있는 일관된 음색을 알아들을 수 있다. 어째서 엄마들은 말을 하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어째 서 아기들은 노래에서 특별히 더 위로를 느낄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 을 갖고 있지 않지만 신경생물학은 음악이 말과 달리 사람의 뇌에서 아주 오 래된 영역들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소뇌, 뇌줄기 brain stem 다리뇌pons를 비롯해 우리가 모든 포유류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신경구조 물들이다. 음악은 리듬, 멜로디 모티프 등 그 자체에 반복적인 구조가 내장되어 있다. 이런 반복 구조가 말에는 결여된 예측 가능한 요소를 노래에 부여한다. 그리고 이런 예측가능성이 마음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
자장가는 전형적인 위로의 노래다. 
- 슬플 때는 많은 사람이 슬픈 음악을 듣는다. 왜 그럴까? 언뜻 생각하면 슬 픈 사람은 행복한 음악을 들어야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연 구를 보면 그렇지 않았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호르몬인 프로락틴은 슬플 때 분비된다. 슬픔의 감정이 존재하는 데는 진화적인 이유가 있다. 슬픔은 에너 지를 보존하고 정신적 상처를 준 사건 이후로 일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할 수 있게 도와준다. 눈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니 프로락틴이 눈물 속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눈동자를 윤활하기 위한 눈물이나 눈이 자극받을 때 나오는 눈물 혹은 기뻐서 흘리는 눈물에서는 프로락틴이 분비되지 않는 다. 오직 슬픔의 눈물에서만 분비된다. 데이비드 휴런은 슬픈 음악은 뇌를 속 여서 음악에 의해 유도되는 안전한 슬픔 혹은 가상의 슬픔에 반응해서 프로 락틴을 분비하게 만들고, 이 프로락틴이 우리의 기분을 전환해주는 것이라 제안한다.
- 신경화학적 이야기가 아니어도 우리가 슬픈 음악에서 위안을 얻는 이유에 대해서는 심리적, 행동학적 설명도 많이 나와 있다. 사람들은 슬픔을 느끼거 나 임상적 우울증으로 고통받을 때 외롭고 다른 사람들과 단절된 기분을 느 낄 때가 많다. 마치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 행복한 음악은 오히려 짜증을 유발할 수 있다. 자기만 외롭고 이해받지 못하 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삼보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내 상사 빅터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아마도 임상적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무력감을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분풀이했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 있던 그가 토니 올란도 앤드 돈의 경쾌하고 행복한 노래를 듣고 꼭지가 돌아 버린 것이다. 우리는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들으면 보통 위로를 받는다. 케임브 리지대학교의 음악교수 이안 크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슬픈 노래를 들으면 이제 벼랑 끝에는 두 명의 내가 함께 존재하게 됩니다. 나를 이해하고,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아는 또 다른 내가 옆에 있는 것이죠." 심지어 모르는 사람과 도 연결되는 듯한 이 기분은 회복 과정을 도와준다. 기분이 좋아지는 데는 자 신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크게 한몫하기 때문이다. 대화치료가 우울증에 대단히 효과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이렇게 추론한다. 이 사람은 내가 겪은 일을 겪고도 그것을 이기고 지금 여기 살아 있 고, 이제 완전히 회복해서 그 일에 대해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 인쇄 기술의 발명과 함께 지식의 노래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기 시작했 다. 문자 사용 이전의 사회에서는 지식의 노래가 문화적 지식, 역사, 일상생활 의 절차를 기록할 유일한 보관소였다. 정보 전달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요즘에는 지식의 노래가 다른 형태를 띤다.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것 으로는 알파벳송이 있다. 서구 문화권의 아이들은 빠짐없이 이 노래를 배운 다. ('9월 30일까지 Thirty days has September'는 각운에 음악적 요소를 갖고 있지만 보통 노래로 불리기보다는 암송될 때가 많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의 노래들이 항상 작 곡되어 나오고 있다. 1990년대 아동용 텔레비전 프로그램 '애니매니악스 Animaniacs'에서 선보인 노래들은 한 세대의 아이들에게 미국의 주와 주도 이 름('터키 인더스트로 Turkey in the Straw'의 멜로디에 실어), 그리고 전 세계 국가의 이 름('멕시칸 햇 댄스 Mexican Hat Dance'에 각운을 맞춰) 등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다.
- 글을 기억하는 능력은 일반적으로 뒤떨어지는데 이와 대조적으로 노래 가 사는 보통 아주 잘 기억한다. 내가 지식의 노래라 부르고 있는 장편 서사민요 와 정보에 음악을 입힌 곡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이 경우도 역시 노래가 형식 과 구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형식과 구조는 공동으로 작동해서 가사에 들어올 수 있는 단어를 고정하고 제약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뇌의 기억저 장장치에 가사를 단어별로 하나하나 저장할 필요가 없다. 단어는 일부만 저 장하고, 전체적인 줄거리와 노래의 구조에 대한 지식만 알고 있으면 된다. 구조에 관한 지식은 각운 패턴 같은 것이 포함될 수 있다(예를 들면 첫째, 둘째, 셋째 줄은 모두 각운이 맞는데, 넷째 줄은 그렇지 않다거나 첫째 줄은 셋째 줄과 각운이 맞아떨어지고, 둘째 줄은 네 번째 줄과 각운이 맞아떨어진다는 식으로).
이 모든 설명이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다. 그것은 이런 과정이 무의식에서 자동으로 일어나서 그 속을 들여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과정은 신경해부학적 혹은 인지과학적으로 환원해서 설명하면 억 지스러워 보인다. 이것은 진화가 생각과 관련해서 착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 다. 이것은 적응에 도움을 주기 위해 생긴 착각이다. 진화가 우리에게 부여한 가장 정교하고 큰 착각은 의식 그 자체에 관한 것이다. 이 부분은 7장에서 다 시 설명하겠다. 자기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뇌에서 잊어버린 단어를 기억하기 위해 거기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각운을 다 만들어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하 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그것도 500밀리초 안에 우리 뇌는 무의식적으로 수십 가지 대안을 다 고려해본 다음 인지적 제약이라는 체로 쳐서 그럴듯한 것을 골라낸다.
- 월리스와 루빈이 집중적으로 연구한 노래인 '올드 97의 열차 사고 The Wreck of the Old 97'에서는 민요의 양식이 확실하게 기억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 다. 두 사람은 이렇게 적고 있다. "가사와 음악은 서로 뒤엉켜 있다. 가사는 운 율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반드시 리듬 패턴, 비트구조, 음악의 박자표와 맞 아떨어져야 한다. . 이 민요에서는 운율이 강세가 없는 음절 두 개와 그 뒤에 따라오는 강세가 실린 음절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강세가 없는 음절은 강세가 실린 음절보다 길이가 짧다. ・・・ 강세가 실린 음절의 수가 음악의 비트 수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운율과 리듬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 따라서 음악과 가사는 서로를 제약하고 있다."
- 만약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는 여러 가지 구조적 제약이 노래 가사를 기억 하는 데 그토록 중요한 요소라면 그런 구조적 제약이 별로 없는 노래는 가사 를 기억할 때 오류가 더 많이 나올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윌리스와 루빈은 기발한 실험을 통해 그런 상황을 만들어냈다. '올드 97의 열차 사고'에서 24 단어를 바꿔서 모음운, 두운, 운을 없애 버린 것이다. 18 구체적으로 보면 이 들이 가사의 시적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를 주었음에 주목하자. 이것은 내가 위에 나열한 구조적 제약 중 가장 약한 부분이다. (각운은 바꾸지 않았고, 각각의 단어에 들어가는 음절 수도 바꾸지 않고, 강세 패턴은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 고 이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바꾸지 않은 버전과 새로 고 친 버전의 노래를 가르쳤다. 변화를 주었던 단어들을 분석한 윌리스와 루빈 은 시적 요소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변화된 버전)보다 그런 요소를 갖고 있는 경우(원래 버전)가 단어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비율이 2배 이상 높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상대적으로 약한 시적 요소라도 상당히 큰 제약을 가한다는 (혹은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그리스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2,500년 된 《일리아드liad》와 《오디세 이 Odyssey》는 암기에 관한 한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음악 은 없었지만 명확하게 시적이고 리드미컬한 제약들이 큰 몫을 해서 뇌의 부 담을 줄여주고 있다. 이들의 운율은 아주 긴밀하게 제약되어 있다. 한가지 예 만들자면 해당 음절의 수가 거의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고 한 행에서 마 지막 다섯 음절은 거의 장음-단음-단음에 이어 장음-단이 등장하고 있다. 장음과 단음의 순서, 그리고 단어 끊기의 위치가 정형화되어 있어 아무 단어 나 이 규칙에 들어맞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장음-단음-장음이나 단음-단 음-단음 음절 구조는 호머의 서사시에서는 아예 사용이 불가능하다.  분명 이런 형식적 규칙을 알고 나면 잘못된 단어를 끼워 넣을 가능성이 극히 낮아 진다.
- 유대 전통에 따르면 모세는 토라 전체(구약성경의 첫 다섯 권)를 완전히 암기 하고 있었고, 이것을 시나이 사막 히브리 민족의 장자와 지도자들에게 가르 쳐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 사람들이 그것을 기원전 1500년 즈음 출 애굽Exodus의 일부로 이집트를 떠난 백만 명 정도의 사람에게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히브리인들이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십계명이 석 판에 문자로 적혔다) 모세의 엄격한 지도에 따라 토라의 단어 하나도 글로 옮겨서는 안 됐고,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식, 종교적 풍습, 관습이 오직 구전만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구전에 의한 전달의 모든 형태는 바로 노래였다고 한다.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은 말하는 자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도 말소 리 자체가 신의 호의를 불러올 것이라 믿었다. 그와 유사하게 조로아스터교 의 전통에서도 29 아베스타 만트라Avesta Manthras를 암송할 때 나오는 특유의 진동을 통해 영혼 Urvaan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영혼과의 '조율 attenment'을 위해서는 기도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그 소리도 중요하다. 조로아 스터교에서 스타오타 야스나Staota Yasna는 청각 진동의 이론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사어死인 아베스타 언어를 이용해 암송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 나는 예술과 과학이 연속적 스펙트럼의 양단을 차지하고 있고, 이 스펙트 럼은 다시 원처럼 둥글게 말려 있기 때문에 두 개가 한 공통 지점에서 만난다 고 이해하게 됐다. 예술과 과학 모두 조망수용-perspective-taking, 표상representation 재배치 rearrangement의 요소가 수반된다. 이것은 음악적인 뇌의 세 가지 근본 요소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결합해서 비유한 대상이나 개념으로 다 른 대상이나 개념을 대신 상징하는 것)와 추상(위계상에서 더 큰 개념으로 그 하위 요 소를 상징하게 하는 것)을 얻는다. 예술과 과학은 모두 비유와 추상에 의존한다. 감각적, 지각적 관찰을 가져다가 증류하여 본질을 뽑아내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정보를 가공하지 않은 형태로 가져왔을 때보다 한 조각의 정보에서 더 많은 의미를 얻어낼 수 있다. 예술과 과학은 결국 더 이해하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형태로 세상의 지식을 추출하고 추상화하는 것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전체를 내려다보며, 주제를 하나로 통일하고, 세상의 여러 사실 중 어느 것이 중요하고, 어느 것이 중요하지 않은지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예술과 과학이 세상 모든 것을 표상할 수는 없다. 대신 예술과 과학은 그중 어느 것이 가장중요한지를 두고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 지식은 감정이다. 어떤 사람은 과학은 그냥 과학일 뿐이라 말한다. 그저 감 정과 보살핌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사실과 측정치의 집합체일 뿐이라고 말 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기억하고 기록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사 실이 수백만, 아니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중에 무엇을 중요하게 여 겨 기록할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판단에는 감정이 개입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보살펴야겠다는 동기가 생기지만, 어떤 사람에 대해서 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이 감정과 동기부여는 동일한 신경화 학 동전의 양면이다. 2+2 = 4이고, 수소는 우리가 아는 가장 가벼운 원소라 는 사실에는 감정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사실 을 알고 있고, 이것을 배우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사실 속에는 우리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무엇을 우선시하고, 무엇에 동기를 느낄 것인가 하는 측면들 이 반영되어 있다. 한마디로 감정이 반영되어 있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강렬한 호기심, 그리고 더 높은 진리로 실재를 해석하 고 표상하려는 열망, 관찰된 내용을 가지고 그것을 포괄하는 일관된 이론을 정립하려는 열망이다. 물론 예술가들도 똑같은 일을 한다. 그들도 자신이 관찰한 것을 가지고 그림, 교향곡, 노래, 조각, 발레 등의 일관된 전체를 만들어 내려 한다. 어쩌면 지식의 노래는 예술, 과학, 문화, 정신의 정점일지도 모르 겠다. 인간 뇌의 구조와 기능에 안성맞춤인 예술 형태 속에 중요한 인생의 교 훈을 담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그것을 노 래로 표현해야 직성이 풀린다.
- 음악과 마찬가지로 종교도 모든 인간사회에서 발견된다(그리고 양쪽 모두 그것의 기반이 진화적인 것이냐 초자연적인 것이냐를 두고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린 다). 신념과 관습, 지리적 위치에서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인간의 문화 중에서 종교가 없는 경우는 없다. 이것은 종교가 문화를 통해 사람에게 전달되는 정보인 밈meme 이상의 것이며 진화적 기반을 갖고 있을 지 모른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사회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에밀 뒤르 켐Émile Durkheim이 한 세기 전에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무엇이든 인간의 문화 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류의 생존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현대의 생물학자들은 이 개념을 동물의 행동으로 확장해서 뇌 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러 종에 걸친 보편적 연결고리를 찾아 내려 하고 있다. 진정 인간만의 것이라 여기는 행동도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동물에서 보이는 것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따라서 동물의 생존에도 기여할 것으로 추측되는) 행동들이 포함된 연속 스펙트럼 위에 분포하 는 것이다. 의례를 종교로부터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구분보다는 의례와 종교가 서로 어떻게 연속적으로 이어 져 있으며, 애초에 의례들이 어떻게 합쳐져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이 해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 라파포트는 종교를 "집단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진 일련의 신성한 신념 그리고 이런 신념과 관련해서 수행하는 표준의 행위(의례)들"이라고 정의 했다. 그는 신성함을 일반적인 물리적 수단이나 오감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신념 혹은 형체를 가진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인생 행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신념이나 믿음이라 정의하고 있다.
종교적 의례나 관습에는 일곱 번 머리를 숙이거나, 십자가를 그리거나, 특 정 방식으로 손을 접었다 펴는 등 거의 항상 의례행위ritual behavior, 반복적인 운동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종교적 관습에서 문화, 시 간, 장소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특성들을 밝혀냈다.
1. 행위가 평소의 목적과 거리가 있다. 우리는 이미 깨끗한 상태인 신체 일부를 씻기도 하고, 분명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둥글게 모 여 손에서 손으로 과일을 전하기도 하고(이런 행동의 목적은 과일을 누군가에 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달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다), 돌 주위를 정확 히 네 바퀴 돌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특별한 목표가 없는 행위를 수행하기도 한다.
2. 더 많은 비가 내리기를 바라고, 더 많이 수확하기를 바라고, 아픈 아이가 낫기 를 바라고, 성난 신을 달래기를 바라는 등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얻을 목적으로 행위가 이루어진다.
3. 보통 관습을 의무적인 것으로 여긴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이런 관습을 이행 하지 않는 것을 안전하지 않거나 어리석은 혹은 부적절한 일로 여긴다. 
4. 행위의 형태에 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을 때가 많다. 즉 의례의 목적은 모 든 참가자가 이해하고 있더라도(즉 신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함) 이런 특정 행 위가 어떻게 바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는 경우가 보통이다.
5. 참가자들이 일상생활에서보다 더 질서정연하고, 정기적이고, 획일적으로 행 동에 참여한다.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내키는 대로 걷거나 서 있지 않고 줄을 지어 정렬하고, 그냥 이동하는 대신 춤을 추고, 특별한 신호, 몸짓, 말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 비슷하거나 특별한 의상을 입거나 화장을 한다.
6. 주변 환경으로부터 물체를 가져와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 물체들 을 포개놓거나, 가지런히 나열하거나, 쌓아올리거나, 배열해놓을 때도 있다. 
7. 환경을 재구성하거나 범위를 정한다. 성스러운 원을 그리거나, 가지 말아야 할 영역을 정하거나, 나이 든 사람이나 순수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장 소를 정한다.
8. 행위를 수행하려는 강력한 감정적 욕구가 존재하고 그것을 수행하지 않으면 (혹은 참가자가 자신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느낄 때는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행위를 잘 마무리하고 나면 개인은 안도감을 느낀다.
9. 행위, 몸짓, 말을 세 번에서 열 번 혹은 그 이상 반복한다. 의식을 적절히 준수 하기 위해서는 반복 횟수가 정확해야 한다. 횟수를 틀리면 그 행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10. 의식을 특정한 방식으로 수행하려는 강력한 감정적 욕구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엄격하게 해석되고, 정의된다. 공동체 안에 각각의 행위를 가장 잘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존재하고(보통 연장자),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을 본보기로 따라하려고 한다.
11. 의식에는 거의 항상 음악 혹은 리드미컬하게 읊조리는 기도가 수반된다.
- 의례행위는 분명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대부분의 아동은 만 2세쯤부터 의례행위를 나타내는 발달 단계에 들어가 만 8세 정도에 정점에 도달한다. 이 기간에 나타나는 의례행위는 완벽주의, 수집, 좋아하는 물건에 대한 애착, 행동의 반복, 물건을 순서대로 정돈하는 것에 대한 집착 등이다! 이는 '그건 이런 식으로 해야 해'의 단계로 이때가 되면 아이들은 장난감을 줄지어 정렬하거나 주변 환경을 특정 방식으로 정돈한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진짜 친구나 가상의 친구들을 위해 다과회를 연다. 그리고 탁자도 꼭 다과회 처럼 세팅하고 손님들도 정해진 장소에 가서 앉아야 한다. 물건들이 어지럽 혀져 있거나 의례가 자기가 속으로 생각하는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다과 회를 연 주최자는 짜증이 날 수 있다. "넌 여기 앉아. 너는 여기 앉고 안 돼. 차 는 토끼가 제일 먼저 마셔야 해!"
누군가 지시한 것도 아니고 다른사람한테 들은 것도 아닌 데도 많은 아이 가 자기가 급조한 의례를 초자연적인 힘이나 마법과 자발적으로 연결 지어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의례가 날씨에서 염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결과에 영 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상상한다.
- 아동에서는 의례가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 미지의 상태, 낯선 이나 동물에 의한 공격, 오염 가능성 등 불안상태와 연관된 경향이 있다. 이것이 잠자리에 들 때면 괴물이 살고 있지 않나 침대 밑을 확인하고, 침대밑에서 보호자가 책 을 읽어주기 바라고, 자기만의 특별한 파란색 솜털 담요를 끌어안는 등의 취 침 의례로 이어진다. 이런 의례는 질서, 일관성, 익숙함 등의 느낌을 보태준 다. 심리학자는 이런 느낌이 미지의 위험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상쇄 해준다고 믿는다. 오르가슴을 느끼거나 함께 노래를 부를 때 분비되어 신뢰 를 유도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은 의례 수행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 다. 이는 의례가 위로를 주는 이유에 신경화학적 메커니즘이 깔려 있음을 암시한다.
- 음악적인 뇌는 음과 화음 진행을 일일이 다 기억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음과 화음 진행이 만들어지는 규칙을 학습한다(보통 주어진 문화권 안에서의 규 칙을 학습한다). 이런 규칙을 위반하는 것은 놀라운 사건으로 부호화되고, 따 라서 도식schema을 파괴하는 예외로 기억된다. 우리는 친구가 전화번호를 알 려줄 때마다 그 숫자는 일곱 자릿수에 지역번호가 덧붙여져 있으리라는 사실 을 다시 배울 필요가 없다. 이 정보는 도식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정 의례에서 촛불을 켤 때 부르는 노래가 어떤 패턴에서 어떤 음만 사용한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없다. 음의 선택이 우리 문화권 음악의 양식에 의해 제약되 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을 일일이 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외와 규칙을 배운다.
따라서 음악은 기억과 정보를 전달하는 대단히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우리 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음악을 잘 활 용했던 초기 인류가 살아남아 자손을 남기는 데 가장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음악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이다. 
- '솔로몬의 노래 Song of Solomon'에서 헨델의 '메시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음악 중에는 종교 음악 이 많다. 과학자와 종교회의론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종교인들을 조롱할 때가 많다. '신이 우주 전체를 창조할 정도로 위대한 존재라면 우리가 그를 찬 양하는지, 마는지 따위의 사소한 일에 왜 그리 신경을 쓰나? 그렇게 막강한 존재가 뭐가 그리 심리적으로 궁핍해서 우리가 자기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기 를 바라?' 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 현대의 종교 사상가들은 여기에 반박 불 가능한 주장을 제시한다. 노래를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신을 위한 것이 아니 라 노래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랍비 하임 카솔라는 이렇게 말한 다. "신은 우리의 찬양이 필요하지 않아요. 신은 허영심이 없기 때문에 우리 가 자기를 위대하다고 칭송해주기를 바라지 않죠. 하지만 신이 우리를 창조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죠?" 그는 우리에게 종교의 노래와 신념의 노래를 부르도록 명령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억을 돕고, 우리에게 동기를 불어넣고, 우리를 신에게 더 가까이 이끈다는 것을 알 기 때문이죠. 신은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 뇌가 음악과 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음악적 요소와 언어적 요소가 결합되는 방식에 대한 규칙을 습득하도록 구성됐기 때문이다. 앞이마겉질에 있는 뇌의 계산 회로는 위계적 조직에 대한 규칙을 알고 있고 초기 발달 기간에 음악적 입력과 언어적 입력을 받아들이도록 길들어 있다. 특정 연령(만8세와 12세 사 이 어디쯤으로 믿고 있다)까지 음악이나 언어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던 아동이 정상적인 음악 능력이나 언어 능력을 습득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지치기 과정이 이미 시작되어 음악이나 언어에 의해 활성화되기를 기다리 고 있던 신경회로들이 모두 제거되어버리는 것이다. 음악에 보편성이 존재한 다는 것은 뇌의 선천적 구조 자체에 음악의 표상 방식에 대한 느슨한 제약이 포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제약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옥타브가 존재한 다는 사실(모든 음악이 불연속적인 음들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보편 적으로 리듬의 비율이 단순하다는 사실(음악의 스타일과 문화권은 이질적이어도 음표의 길이는 17:11 같은 복잡한 비율이 아니라 2:1, 3:1, 4:1 같은 단순한 비율로 나 타나는 경향이 있다) 등을 꼽을 수 있다.
- 사랑의 노래가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려면 진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첫째,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감각 중에서 왜 하필 소리가 우리의 감정에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됐을까(혹은 바꿔 말하면 듣기와 음악의 진화적 기원은 무엇인가? 둘째, 우리에게 음악적인 뇌 를 가져다준 진화적 변화가 어떻게 다시 우리에게 노래를 작곡하고, 예술과 과학을 창조하고, 사회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의식을 가져다주었는가?
우리 귀에 있는 유모세포 hair cell는 어류를 비롯해 모든 척추동물에게 있고, 많은 곤충의 다리와 몸통에서 발견되는 것(곤충의 것은 감각센털sensilla이라고 한다)과 구조나 기능면에서 유사하다. 메뚜기가 다리를 움직이면 그 안에 든 유모세포가 늘어나면서 다리의 자세와 위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세포는 공기나 물 혹은 다른 성분의 흐름에도 민감해서 다른 무언가가 다가 오는 것을 감지하는 것도 도와준다. 이는 유모세포가 계통발생적으로 이른 시기부터 사용된 것이 압력 변화 감지(이것이 포유류와 어류의 청각으로 이어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세의 변화(이것이 우리의 균형감각을 담당하는 전정 계로 이어짐)도 감지하기 위함이었음을 말해준다. 유모세포는 엄청나게 민감 해서 100피코미터만 늘어나거나 움직여도 흥분한다. 100피코미터면 1/100,000,000밀리미터 혹은 염색체의 1/100,000, 수소 원자 반지름의 1/10보다 작은 길이다.
고막은 귀 내부에 팽팽하게 펼쳐져 있는 얇은 막이다. 공기든, 물이든, 다른 매질이든 압력이 변하면 이 고막이 안팎으로 떨린다. 이런 떨림 패턴이 결국 속귀inner ear의 달팽이관cochlea이라는 기관으로 신호를 보낸다. 달팽이관의 내 면은 곤충의 감각센털처럼 유모세포로 덮여 있다. 인간의 달팽이관은 극도로 민감해서 원자의 직경(0.3나노미터)만큼 작은 진동도 감지할 수 있고, 10마이 크로초의 시간간격도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당신과 3미터 떨어진 음원이 한쪽으로 2.5인치(6.35센티미터)만 움직여도 양쪽 귀에 도착하는 소리 의 시간차로 그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귀는 광자 하나의 에너지보다 백배 작은 에너지 수준도 감지할 수 있다. 청각은 정말로 민감해서 어떤 좋은 자기 가 잡아먹으려 하는 곤충의 발자국 소리도 들을 수 있다.
2장에서도 말했지만 청각이 시각 같은 다른 감각보다 유리한 점은 소리는 어둠 속에서도 전달되고, 모퉁이를 돌아갈 수도 있고, 듣고 싶은 음원과 자신 사이에 시각적 장애물이 있어도 전달된다는 점이다. 소리는 무언가 자신을 향해 접근할 때 효과적인 조기 경보 시스템 역할을 한다. 바위가 걷잡을 수 없 이 언덕 아래로 굴러 내리거나, 우리가 사는 동굴 밖에서 포식자가 잔가지를 밟았을 때도 우리는 소리로 알아차릴 수 있다. 조기 경보 시스템의 일부로 작 동하는 청각은 놀람반응startle response과도 신경학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환경에서 들리는 배경 잡음에 아주 미묘한 변화만 있어도 감지한다.
- 유전학자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포유류는 비타민 C를 몸속에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지만 인간은 그런 능력을 잃어버렸다.18 인간과 다른 영장류에서는 8번 염색체에 있는 GULOL-gulonolactone oxidase 전자에 결함이 있어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4천만 년 전에 우리가 과 일을 먹는 종이 되면서 생긴 결과로 여겨진다. 과일을 먹으면 비타민C를 외 부에서 섭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와 영장류들은 더 이상 비타민C를 만들 어낼 필요가 없었고, 유전자 부동genetic drift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대립유전자 가 유전되는 빈도에서 생기는 무작위적 변화 - 옮긴이)을 통해 그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것은 테런스 디컨의 '절약' 개념에 해당하는 또 다른 사례다. 진화 는 게놈이 보관하고 있던 지시 사항이나 생존 계획을 환경으로 떠넘길 때가 많다.
- 예술 창조를 위해서는 몇 가지 별개의 인지 작업이 필수적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1) 창조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심상mental image을 형성할 수 있어 야 하고, (2) 심상을 머릿속에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3) 심상을 따라 실제 세 상에서 대상을 조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4) 실 제 세상에서 모양을 갖추어 가는 대상과 심상을 실시간으로 비교할 수 있어 야 하며, (5) 물리적 대상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어려 움이나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계획을 갱신할 수 있어야 한다. 옛말에도 이르듯이 곰을 조각하려면 바윗덩어리에서 시작해서 곰처럼 보이 지 않는 것은 모두 깎아내야 한다.
하지만 당연히 이것들은 하찮은 능력이 아니다. 우리 혈거인 선조는 숯 조각을 가지고 동굴 벽에 곰을 그려보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우선 그는 그림 이 그 그림이 표상하고자 하는 것과 결코 똑같을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 림은 실제 대상을 추상화한 버전이고, 심상에 대한 불완전한 근사치이기 때 문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려면 객관적인 조망수용이 필요하다. 즉 자신의 생각과정, 자신의 한계, 자신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 이 필요하다. 이 예술가는 어떻게 하면 대상을 알아볼 수 있는 본질적인 세부 사항을 보존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판단해야 했다. 이런 선택 과정에는 추상적 혹은 상징적 사고 능력이 필요하다. 줄을 몇 개 그린 다음에는 그 창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아야 했을 것이다. 이 그림이 내가 이 그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생각했던 것하고 비슷하게 생겼나? 이렇게 하려면 심상에 맞추어 물리적 그림의 일부 측면을 변화시키는 반복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봐도 이것이 곰이란 것을 알 수 있을까? 이것 역시 객관적인 조망수용능력이 필요 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지식, 생각, 신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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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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