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향적인 사람이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낯을 가린다는 건 분명 한 오해입니다. 내향성이냐 외향성이냐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 의 자원이 허락하는 선 안에서는 타인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싶어 합니다. 단지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 외부에 쓸사 회적 자원이 적을 뿐입니다. 대신 내면에 충분하게 집중할 수 있지 요. 그래서 자기 시간을 갖는 동안 스스로를 성찰하고 세계를 통 찰합니다.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집중력을 얻으면 다시 세상에 나 와 열심히 일할 수 있고요. 아마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 중에는 내 향적인 성격이 많을 거예요. 기업의 입사 시험을 치르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홀로 있는 시간의 집중력을 이용하여 그처럼 높은 장애물을 잘 넘어서는 것 또한 내향적인 사람들의 장점이니까요.
부족한 사회적 자원을 잘 배분하여 사용하는 법은 경험을 통해 충분히 익힐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명한 개그맨들 중에 내향적 성격의 소유자가 꽤 많답니다. 말을 잘하고 장난을 잘 치니 가까운 동료들도 외향성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요. 국 민 MC라 불리는 유재석 씨만 하더라도 방송에서 스스로 분명한 내향성임을 언급한 적도 있고요.
-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왜 남편은 끊임없이 부인의 외모를 폄하하는가'라는 주제로 재미있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기혼 자라면 꽤 공감하시는 주제일 겁니다. 꽤나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보통의 남편들도 부인의 외모를 폄하하는 경우는 많으니까요.
데이비드 버스는 상대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심연의 두려 움이 외모 폄하로 이어진다고 밝혔습니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 어나면 아내는 자녀에게 무한한 애정을 갖게 되지요. 남편은 상대 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고 무의식 중에 자신이 버려질 수도 있다는 불안을 갖게 됩니다. 그 불안의 마음이 '당신은 밖에 나가봤자 더 이상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다'라는 왜곡된 언어로 표출 되는 것이죠.
- 누구에게나 행복의 순간들은 존재합니다. 소소하지만 기분 좋고, 배가 간질거리며 미소가 절로 나는 바로 그런 순간 말이지요. 의미, 인정, 애착, 연대감, 공감 등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상황은 모 두 다르지만 분명한 건 행복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하나도 없고, 삶의 만족도가 평균 이상이어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정의 내릴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의외로 행복의 순간은 완벽한 세팅과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나쁜 게 완전히 사라진 순간도 아니었어요.
큰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아이를 안고 있 으면 충만해지고, 쏟아지는 일을 쳐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동 료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에 눈물이 핑 돌며, 오늘 있었던 화나는 일에 분개하다가도 술잔을 기울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데에 가슴이 찡해집니다. 그렇게 좋은 순간은 어느 곳에나 있고 우리는 날마다 행복을 경험합니다.
행복에 대한 정의도 어렵고,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행복은 '나쁜 게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 '좋은 게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 심리학은 오래전부터 '행복'이라는 주제를 탐구해 왔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행복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 으로 접근했어요. 행복을 인간이 이루어야 하는 인생의 미덕이나 숭고한 가치로 여긴 것이지요. 그런데 최근 10여 년 사이에 굉장히 많이 달라졌습니다. 행복을 인간이 목표로 삼아야 할 가치로 보지 않고 삶에 필요한 사건이나 경험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거 의 학문적인 개념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경우는 많지만 행복 과 관련된 빠른 변화는 아주 이례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길어진 인간의 수명을 꼽는답니다.
-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만날 때마다 500원씩, 500원씩, 열 번을 주고 스무 번을 주고 100번을 주어봤자 조카의 얼굴에서 짜증을 걷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조카의 머릿 속엔 이런 생각이 강하게 잡혀 있을 테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만 원은 되어야 용돈으로 쳐주는 거 아닌가?'
여기서 '준다'는 것을 '부킹 프라이스booking price'라고 합니다. 사실 이 말은 인지심리학자나 행동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학 술 용어는 아닙니다. 학자들에게 통하는 일종의 은어인 셈이죠. 부 킹이란 말은 자주 들어보셨지요? 주로 골프장이나 무도회장에서 즉석 만남을 할 때 많이들 쓰셨을 텐데 여기서 부킹은 '장부에 기입 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킹 프라이스란 조카가 자신의 마음속 장부에 '이모 에게 용돈 1회 받았음'이라고 기입할 만한 최소 금액을 뜻해요. 만 원보다 적다면 아예 받지 않은 것으로 친다는 말입니다.
이 부킹 프라이스는 사람마다 달라요. 그러니 상대의 부킹 프라 이스를 잘 알고 있다면 어느 정도 유리하게 적용할 수 있겠지요?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즐기지 않습니다. 뛰어난 농구 선수였던 서장훈 씨도 어느 방송에서 분명히 말했지요. 훈련은 고통스럽다고요. 농구 선수로서의 인생이 즐겁고 기분 좋지 않았으며 하루 하루 너무나 힘들었다고 말이에요.
저도 동의합니다. 프로의 일상은 고통스럽습니다. 실제로 노동 자가 일하는 순간, 학생이 공부를 하는 순간, 주부가 가사 일을 하 는 순간, 연구자가 논문을 쓰는 순간의 뇌를 찍어보면 어느 부분에 서도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물론 일을 끝낸 직후의 상태는 다릅니다. 결과에 대한 보람과 의미가 보상처럼 주어지니까요. 연구자는 논문이 잘 나와서 기분 이 좋고, 직장인은 프로젝트 결과를 보고 뿌듯해하며 운동선수는 경기에 이긴 성취감에 다시 훈련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 나 우리가 일로써 행복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 인 데다가 프로이기까지 한 사람이 습관처럼 '난 내 일이 너무 재밌 어'라고 말한다면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합니다. 솔직하지 못한 자기 위선일 수도 있으니까요.
- 일이 정말 즐거운 때도 있습니다. 커리어 초반에는 누구나 그랬 지요. 소위 거지같이 일을 해놓고도 흐뭇하게 바라보며 '오, 그럴 듯한데?' 하며 자신감 뿜뿜 올라갔던 기억,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자다가 이불을 발로 차고 싶지만 그 시절 우리는 알 수 없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 '뿜뿜'의 이름은 행복의 한 종류인 성장감입니다. 신입사원, 신입생, 초임교사..........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배워가던 초창기, 우리는 이 성장감이라는 행복으로 수많은 시련을 버텨냈어요. 커리어 초반부에만 느낄 수 있는 특별 한 행복이지요.
만약 지금 하는 일에 익숙해진 나머지 성장감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성장감을 꿔와야 한다고 말하 곤 합니다. 내 일이 아닌 다른 곳에서요.
- 번아웃burn out 증후군은 일을 많이 해서 오는 게 아닙니다. 오 로지 그 일만 해서 오는 거예요. 직장인만 번아웃에 시달리는 게 아닙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전업주부도 학생도 번아웃 증후군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럼 성장감을 느끼기 위해 기꺼이 초보자가 되 어볼까요?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 런데 여기서 또 고민이 생깁니다. 문화나 예술은 진입장벽이 높고 취미나 레저를 하자니 돈이 좀 듭니다. 저렴하면서도 효과가 큰방 법이 있습니다. 바로 공부입니다. 단, 내 직업이나 생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공부를 시작하는 거예요. 엔지니어라면 역사 공부를, 심 리학자라면 동식물 공부를 해보는 거지요. 이렇게 하다 보면 성장 감이 가파르게 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 주변에는 다른 사람보다 많은 일을 처리하는데도 지치지 않고 언제나 활기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마치 스위치를 켜고 끄듯 일의 종류를 자주자주 바꿀 줄 안다는 것 입니다. 인지심리학자들은 그 능력을 'voluntary switch', 즉 자발 적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자발적 전환에 능한 사람은 번아웃과 관 련된 무기력에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반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 지한 가지 일만 꾸준하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멀리서 지켜볼 땐 마치 꽤나 심지가 굳은 인물 같아 보여요. 그러나 심리학자인 저는 그의 상태가 걱정됩니다. 그가 일하는 시간은 고통을 누르는 과정일 테니까요.
매일 저녁, 일이 끝나면 물에 젖은 솜처럼 몸과 마음이 지쳐버 리나요? 그땐 내가 일을 대하는 방식을 고민해 보세요. 한 우물만 파는 게 늘 좋은 건 아닙니다. 가끔은 자발적으로 스위치를 켜고 끄는 지혜도 알아야 하니까요.
- 관계가 오래되면 될수록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의미는 달 라집니다. 그 사람 덕분에 이런 일만큼은 확실히 일어나지 않는다, 혼자라면 감당하기 어려울 불안과 공포, 물질적인 어려움을 상대 로 인해 막아낸다는 마음이 확실해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신하 며 더욱 의미 있는 관계로 깊어지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로 인해 즐겁고 행복한 마음만을 사랑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얼굴은 다양하고 만남의 종류 나 관계의 지속성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꾸곤 해요. 접근 동기에만 의존하여 정의내리는 사랑은 주로 젊은 시절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지요.
- 누군가가 정의하는 사랑은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나와 다른 상대의 취향을 인정하고 참아주는 것일 수도 있습 니다. '내가 그의 걱정을 줄여주고, 그가 나의 불안을 줄여주는 것' 이 사랑일 수도 있고요. 아마 나이가 든 분일수록 후자 쪽에 공감 할 것 같아요.
이런 관계는 비단 부부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비즈니스 에서도 마찬가지거든요. 한 기업이 다른 기업과 처음 거래를 시작 하는 단계에서는 접근 동기가 작용합니다. 이곳과 함께 협업하면 이런저런 좋은 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지요. 반면 오랜 시간이 지나 꾸준히 관계를 유지한 거래처와의 관계는 회피동기가 더 크게 작용됩니다. "이 업체와 함께 일하면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돼!"라는 믿음이 형성되기 때문이에요.
- 청년 헤겔 철학에서 출발해서 악셀 호네트에 의해 구체화된 개념 중에 '인정 투쟁'이라는 용어가 있어요. 사람의 정체성은 인정을 받으면서 형성되는데,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오로지 인정을 받을 때만 정체성이 성립되고, 그것을 얻기 위해 투쟁한다는 말이에요. 부러움 어린 시선, 좋은 평판 등 타인의 평가를 통해 자아를 충족 시키는 삶이지요. 비슷한 이야기로 자크 라캉의 "타자의 욕망을욕 망한다"가 있습니다. 철학 용어들이 조금 생소하고 어렵지요? 이 골치 아픈 개념들을 김정운 선배는 한마디로 명쾌하게 표현했습니다.
- 일단, 일만 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감탄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실하고 능력 있고, 착하기까지 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일이 저절로 따라붙지요. 이런 사람들은 전형적으로 일을 아주 많이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매일 같은 일을 하며 같 은 사람만 만나면 위험에 취약해집니다.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조금씩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내가 작은 친절을 받으면 고맙다는 인사가 되돌아옵니다. 그 감사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감탄하는 데 도움을 주지요. 그 감탄이 나를 안전하게 해주고요.
내가 같은 행동을 해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상대의 반응을 통해 주변의 사람들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
- 부부가 정치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건 상당히 골치가 아픈 상황입니다. 미국 심리학자들은 지지하는 정당의 성향이 정 반대라면 결혼하지 말라고 아예 대놓고 말하곤 해요. 정치관은 선 거 날 누구에게 표를 찍느냐의 문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 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거든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은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 에 분노합니다. 보수적인 사람은 잘 지켜져야 하는 미풍양속이나 전통이 흐트러지는 것에 분노하지요. 분노의 코드가 정반대인 사 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힘들어요. 아무리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이 같아도, 아무리 즐기는 취미가 비슷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정치 성향으로 예를 들었지만 이것은 성격의 5대 특성에서 개 방성'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외향성, 우호성, 성실성, 신경성 같 은 나머지 네 가지 성격 특성들은 정반대라고 해도 상호 보완이 가 능합니다. 하지만 개방적인 사람과 보수적인 사람이 오랜 시간 좋 은 관계를 유지하기란 힘들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보편적인 의견입 니다.
- 그러니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보다는 나에게 좋은 사람을 찾는게 더 맞는 말이겠지요? 그 사람이 아무리 훌륭해도 보수적인 나에
비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면, 혹은 그 반대라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다행히 나와 비슷한 수준의 개방성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고 칩 시다. 개방성은 두 사람을 빠른 속도로 친밀하게 해주지요. 세계를 보는 눈이 비슷하니 코드도 잘 맞고 동지의식도 생겼을 것입니다. 이때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이 '정직'이에요.
같은 개방성과 보수성을 가지고 있어 친해졌는데, 한쪽이 부정 직하거나 혹은 선택적으로 정직한 모습을 보이면 그 관계는 최악 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 인간이 돈을 발명한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습니 다. 어떤 전통의 기원을 찾아 과거 문건을 열심히 뒤져보아도 확실 한 근원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어요. 돈이 대표적이지요. 대체 인간이 왜 돈을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미지수입니다. 오죽하 면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가 돈을 일컬어 '인류 최대의 사 기극'이라고 표현했을까요? 먹지도 못하는 종이 쪼가리나 금속 조 각 몇 개를 생선이나 쌀과 맞바꾸다니요. 이건 엄청난 사기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종이와 금속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요?
현대를 사는 우리는 누구 하나 돈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지 않습 니다. 인류는 돈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징체계를 믿게 하기 위해 결국 사회를 바꾸어놓았으니까요. 농업혁명을 일으키고 종교나 국가 시스템을 만들고, 문자와 각종 기술을 발전시켜 온 모든 역사 는 어쩌면 돈이라는 것의 가치를 설득시키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 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돈이란 인류 최대의 사기극인 동시에 인류 최대의 신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 불안은 참 신기한 심리예요. 불안할 때 맞으면 진짜 아픕니다. 불안할 때 외로우면 지구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고요. 불안할 때 화가 나면 걷잡을 수도 없고, 불안할 때 배고프면 당장이라도 아사할 것 같지요. 이처럼 불안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나쁜 감정 을 극대화시킵니다.
실제로 대학원 수업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해요. 인간에게 불안이라는 심리가 사라진다면 우리 심리학자들 중 절반 은 당장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나머지 절반은 내일모레쯤 내려놔야 한다고요. 심리학은 불안을 먹고사는 학문이니까요.
- 불안에 관련된 연구는 상당히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불안을 확장시키는지도 쉽게 알 수 있어요. 불안은 불확실 할수록 더 커집니다. 인간이 불확실한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가치 의 불확실을 견디지 못해 돈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었을 정도입니 다. 덕분에 인간의 원초적인 불안이 상당히 줄긴 했어요. 우리도 수중에 어느 정도의 돈이 있으면 급격하게 불안이 감소되는 걸 느 낄 수 있잖아요. 하지만 개인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정 도로 돈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땐 다시 불안해지는 게 인간의 심리랍니다.
- 우리 뇌에서 분비되는 여러 신경 전달 물질중에 '아난다마이드anandamide'라는 화학 물질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행복'이란 뜻으로, 인간에게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유독 이 행복에 관련된 화학 물질이 많이 나오는 민족들이 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나 남아메 리카 사람들이에요. 이 나라 국민들은 정치적, 경제적 환경이 열악 해도 환하게 웃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요. 적게 소유해도 행복 해하고, 소박한 일상에서도 기쁨을 느낍니다. 어떤 슬픔이 닥쳐도 낙천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은 참 근사한 민족성이라는 생각 도 듭니다.
그런가 하면, 아난다마이드가 유독 적게 나오는 민족도 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인이 대표적입니다. 아예 하드웨어부터 가 쉽게 행복해지지 않는 뇌를 가지고 있다니, 우리 민족이 그토록 근면 성실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이 갑니다. 쉽게 만족이 되지 않으니 더 행복하고 좋은 미래를 위해 끝없이 일하고, 공부하고 발전해 온 게 아니겠어요?
유대인들의 성실함도 한민족 못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들 역시 아난다마이드가 적게 나오기로 유명한 민족 이라네요. 다시 말하자면, 한국인이나 유대인은 부킹 프라이스 자 체가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뜻이겠지요. 결국 쉽게 행복해지지 않 는 뇌를 가진 우리들이 돈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1) 만족할 때까지 큰 금액을 쓴다
2)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소비의 빈도를 높인다
여기서 위시리스트를 촘촘하게 쪼개는 행위는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작고 소중한 소망이 없다면 큰돈을 벌고, 비싼 소비를 해야만 비로소 만족감을 느낄 것입니다. 몸은 상하고 관계도 망가지고 매일 전쟁 같은 경쟁 속에서 더 많은 돈을 추구하지만 결국 뇌를 만족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런 결말을 위해 힘들게 돈을 버는 건 아니잖아요.
- 우리 한국인이 브라질이나 나이지리아 사람처럼 기질적으로 낙 천적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면서도 일 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요. 바로 부킹 프라이스 를 낮추는 거예요. 내 위시리스트에 7000원짜리 설렁탕 한 그릇', '15000원짜리 통닭', '4000원짜리 커피가 있다면 하나하나 맛보고, 감상하고, 느낄 때마다 행복해질 것입니다. 잘만 먹으면 하루에 세 번이나 행복해질 수 있겠네요. '천만 원짜리 명품가방'이라는 하나 의 위시리스트보다 훨씬 이득 아닐까요?
행복을 느끼는 주체는 나고, 행복한 삶을 설계하는 것 또한 나 자신입니다. 지혜롭고 꼼꼼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고 말겠지요. 자본주의 사회는 부킹 프라이스를 막연하게 높이라고 요구합니다. 휘말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기쁨을 찾기 위해 더더욱 필요한 것이 바로 위시리스트랍니다.
- 기업이 스스로 부를 축적하는 방식이 윤리적이고 선하다는 것을 알렸을 때 직원들에게 좋은 변화가 나타난 다는 연구 결과도 있거든요. 착한 회사의 직원들은 심지어 물자와 전기까지 아껴 쓴다는 거예요. 우리들의 회사의 자원 또한 소중하 게 여기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걸까요?
반대로 기업의 비윤리적인 행적이 기사에 노출될 때마다 직원 들이 물자를 낭비하는 횟수가 늘어난다는 연구도 존재합니다. 그 러고 보면 우리 뇌는 돈의 양만 문제 삼지 않는 것 같아요. 돈을 버 는 방식이나 윤리성 또한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돈을 벌거나 쓸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돈에 집착한다거나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찜찜하다면 그 돈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부터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 자살을 선택한 분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유형의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소위 잘 참는 것이 특기인 분들이지요. 난봉꾼이 자살하는 건 본 적이 없어요. 참아내고, 참아내고, 또 참아냈으나 더 이상 못 참는 지경에 이르 렀을 때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어느 날 문득 삶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느낌. 그것은 '힘들다'와 는 다른 감정입니다. 힘들다는 건 무언가 많이 하고 있다는 뜻이거 든요.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참아왔으나 더 이상 견디 기 어려운 상태까지 왔을 때, 사람들은 죽음을 결심합니다. 그러니 무작정 '참아야 하느니라'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시겠지요? 지나친 인내는 실제로 생명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 그저 눌러 참기만 하면 여러 가지 안 좋은 것들이 저절로 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첫 번째로 오는 것은 '우울'입니다. 우울은 내가 못나서 느끼는 감정이 절대 아닙니다. 우울은 지적 능력이 높은 존재만이 느낄 수 있거든요. 나의 통제 능력이 떨어지는데 참 아야만 할 때, 불편함이 환기되지 않고 가득 차 있을 때 뇌가 보내 는 신호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자동차에 주유를 하면 오일게 이지가 올라가고, 기름이 떨어지면 오일게이지는 내려갑니다. 그 시그널을 무시하면 차는 별안간 멈춰버립니다. 우울이라는 심리 는 그 위험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 우리는 자살의 원인이 절망이라고 많이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면 절망은 자살과 그다지 가까운 심리는 아닙니다. 절망은 '희망이 꺾인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무망은 '다른 희망을 만들어낼 동력이 없 는 상태예요. 언론에서는 "기초 수급 연금이 끊긴 후 절망하여 자 살하였습니다"라는 표현이 종종 나오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지요. 제대로 심리를 분석하면 절망이 아니라 무망이거든요. 절망은 좋 은 걸 가지고 싶은데 그 욕구가 끊긴 상태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아내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무망은 나쁜 걸 막 아내려는 욕구, 좋은 걸 가지고 싶은 욕구, 두 가지 모두 없는 상태 입니다. 만약 두 욕구 중 어느 한 욕구라도 강하게 있다면 자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