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파민은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아드 레날린 전 단계 물질이고 흥분을 일으킨다. 즉 도파민은 최 고의 행복 호르몬으로, 우리가 보상을 기대할 때 분비된다. 이를테면 어떤 일을 감행한 뒤 즐거움을 느끼거나, 등반할 때의 두려움이 순수한 쾌감으로 바뀌는 것은 도파민 때문이 다. 그리고 나쁜 예로는 도박이 있다. 그땐 이길 가능성이 있 다는 기대만으로도 흥분이 되고, 이 기대 때문에 카드를 계 속 뽑아들게 된다. 사람들이 중독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돈 을 딸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우리도 쇼핑하러 갈 때 보상을 기대하거나 스스로에게 보 상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구입 가능한 세일 상품, 즉 보상을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이것은 쇼핑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킥에 중독될 수 있다. 도파민은 최고의 행 복 호르몬으로, 규칙적인 성생활을 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 도파민 체계는 우리가 돈을 절약하려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이 뇌의 교활한 점이다. 예를 들어 특정 신발을 살까 말 까 고민할 때 우리는 지금 구입하는 것이 이성적인 행동인지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 반면 무의식은 훨씬 전부터 준비 태세를 갖추고, 그 신발을 신을 때 어떤 기분이 될지를 미리 느낀다. 트래킹화를 신고 돌로미트에 가서 해돋 이를 보며 감탄하는 모습이나, 섹시한 하이힐을 신고 캔들라 이트 디너에 앉아 있는 모습을(그곳에서는 일어설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아, 하이힐!) 상상한다. 만약 기분이 좋다면 도파민 이 야기한 행복감은 상식과 절제와 통장 잔고를 이기고, 결 국 우리는 그 신발을 사게 된다. 우리는 그 순간에 느끼는 기 분에 따라 물건을 구입하며, 그럼으로써 그 기분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려고 한다.
- 말하자면 이러한 킥은 이미 쇼핑 전부터 자동적으로 시 작되고 재현된다. 연구자들은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인 간의 뇌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쇼핑을 할 때 (카운터에서 돈을 지불할 때가 아닌 상점에서 구경할 때부터 이미) 대뇌 변연계의 측좌핵이 매우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 다. 그곳은 우리의 보상 체계를 담당하는 뇌 영역으로, 중 독일 때도 마찬가지로 활성화된다. 연구자들은 이런 사실 을 이미 1950년대에 발견했다. 그들은 쥐의 뇌에 전극을 이식한 후 단추를 누를 때 보상 중추가 자극받을 수 있게 했다. 그다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쥐들은 단추를 누를 때마다 최상의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배웠고, 이후 중독되 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쓸데없는 물건을 사게 되는 원인은 이러한 직접적인 충족감 때문이다.
- 나는 우리를 쇼핑으로 이끄는 생화학적 과정을 추적하던 중 흥미로운 것을 하나 더 발견했다. 신경과학자 브라이언 넛 슨(Brian Knutson)'은 한 실험에서 어떻게 구매 결정이 이루 어지는지를 연구했다. 참가자들이 제품 사진을 보고, 이어서 가격을 보는 동안 뇌파가 측정되었다. 그런 다음 그 제품을 살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했다. 이 실험에서 제품을 볼 때는 뇌의 보상 센터가, 가격을 볼 땐 뇌의 전혀 다른 영역인 뇌섬(insula, 뇌섬엽)이 자극을 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뇌 섬은 몸에 통증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곳으로, '아프다'는 신 호를 보낸다. 실험 참가자들의 구매 결정은 행복과 고통 사이 의 균형 잡기였다. 만약 제품을 볼 때 느끼는 행복이 가격을 보았을 때 느끼는 고통보다 크다면 우리는 그것을 산다.
- “동독 출신의 한 할머니가 이야기하기 를, 옛날 구동독에서 셀룰라이트는 전혀 이야깃거리도 아니 었다고 했다. 여성은 누구나 셀룰라이트가 있고, 추하거나 예쁘다기보다는 단순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러다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사정은 달라졌다. 안티셀룰라이트 크림 광고가 동독 땅에 들어오자 지금까지 자신의 정상적 상태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여성들이 대부 분 자기 허벅지를 결점으로 보기 시작했다(그리고 당연한 말이 지만 수많은 여성이 그 크림을 샀다). 즉 광고를 통해 셀룰라이 트의 존재가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것을 약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 사사키 후미오는 자신의 저서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2015)에서 비싼 물건이 더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 점을 매우 근사하게 기술했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100유로의 반지를 사든, 500유로 혹은 3,000유로의 반지를 사든 상관없다. 행복의 크기는 매번 똑같다. 500유 로 하는 반지가 이보다 싼 반지보다 다섯 배 더 행복하게 만 들어주진 않는다. 우리는 다섯 배 더 많이 웃지 않고, 다섯 배 더 오래 행복하지 않다. 사치품의 가격에는 상한선이 없 지만 행복감은 한계가 있다. 만약 500유로 반지가 100유로 반지보다 다섯 배 더 행복하게 해준다면, 행복에 이르는 길 은 돈과 소유를 통해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부자가 되고 아무리 많은 물건을 쌓아놓고 있더라도 당신의 소유물이 당신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는 못할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쁨에는 한계가 있다."
- 불안 광고는 1920년대에 '발명'되었다. 기민한 광고업자들은 구매 전에 불안을 조장하는 말을 들려주면 물 건이 훨씬 더 잘 팔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여성들 에게 가장 쉽게 불안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 은 바로 나이들어 가며 추해지고 매력을 잃는 자신의 모습이 다(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외모와 더불어 여성에게 관심이 있 는 것이 대체 뭘까?). 여성들은 얼굴에 생긴 주름, 뱃살 그리고 셀룰라이트가 모든 불행의 시작이라는 말을 들었다. 안티링 클 크림과 수상한 체중 감량 제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소비를 이 렇게 핵심적으로 요약했다. “소비는 고도의 외로운 활동으 로, 지속적인 유대감을 형성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장 외 로울지도 모를 활동을 통해 소속감을 구입한다. 아이폰이나 브랜드 청바지, 프라이탁 가방도 우리의 내적 공허와 친밀 감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바 우만은 관계 자체도 점점 교환이 가능하고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말했다(데이팅 앱 '틴더'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유감스럽게도 이 철학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 다). 2017년 작고한 바우만은 냉정하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소비주의 문화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부수적 인 피해는 바로 사회적 연대다."
- 슈퍼마켓 실험
*모든 것은 매장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고객이 구입할 물 건을 담는 쇼핑카트와 장바구니의 크기는 지난 몇 년 사이 계속 커졌다. 여기엔 심리학적 트릭이 숨어 있다. 단지 두세 가지만을 사는 고객의 쇼핑카트는 텅 빈 것처럼 보이고, 이 렇게 빈 공간은 아직 사야 할 것이 더 남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을 마케팅 전문가 마틴 린드스트롬도 책 『바이올 로지(Buyology)』에서 언급했는데, 쇼핑카트를 두 배 더 크게 만든 후에 조사한 슈퍼마켓의 매출액은 19퍼센트나 증가했다
*슈퍼마켓 입구에는 소위 '스토퍼(stopper)'가 놓여 있는 경우 가 흔하다. 매장 입구에 세워둔 탁자나 선반을 가리키는데, 이 때문에 걸음 속도를 늦추고 거기 진열된 상품들을 둘러 보게 된다. 도시의 소형 매장의 경우, 손님들은 가게 안쪽까 지 잘 들어가지 않고 늘 가던 방향으로 가서 물건을 산다. 하지만 보행 속도가 느려질 때 상품에 대한 주의력은 높아 진다.
*매장에서 풍기는 냄새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업체도 점점 늘고 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얼마나 더 매출을 늘리고 다른 품목의 매출까지 증가시키는지를 실험한 연구들이 있다. 냄 새는 식욕을 돋우고 침샘을 자극한다. 이는 왜 호퍼(Hofer)36 가 지난 몇 년간 새로 빵 코너를 설치해 매장에서 직접 빵을 굽고 있는지의 확실한 이유가 된다(냉동 생지든 매장에서 직접 만든 빵이든 별 상관없다. 일반 사람들은 냄새로 구분하지 못한다). 가 고플 때 쇼핑하는 사람은 더 많이 사게 되고, 무엇보다 더 충동구매를 한다. 슈퍼마켓은 고객들이 "머리가 아닌 배 로 쇼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마케팅 연구자 파코 언더 힐(Paco Underhill)은 그의 책 쇼핑의 과학(Why We Buy)』(2021) 에서 매우 멋지게 표현했다.
*무료 시식은 판매율을 높인다. 현장에서 시식을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맛본 상품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와인이나 냉동식품 같은 제품에서 특히 성공적이다.
*수많은 슈퍼마켓에는 음악이 흐른다. 심지어 오스트리아에 는 오직 대형 유통업체 레베(Rewe) 그룹의 자회사 이를테 면 메르쿠르(Merkur), 빌라(Billa), 페니(Penny), 비파(Bipa)- 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자체적인 라디오 방송이 있다. 또 슈퍼 마켓 체인 슈파(Spar) 역시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게 편성한 자체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혼잡한 시간대, 즉 아주 많 은 손님이 일시에 몰려드는 시간대에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오전과 이른 오후에는 느린 음악이 매장에 흐른다. 여기엔 다 이유가 있다. 대개 보행 속도는 음악을 따라간다. 빠른 음악이 나오면 발걸음도 빨라지고, 느린 음악 을 들으면 매장 입구의 스토퍼와 동일한 효과가 발생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좀 더 느리게 걸으며 29퍼센트 이상 더 구매한다.
*슈퍼마켓의 선반 높이는 그 자체로 과학이다. 상품 배치도 그렇다. 눈높이에 진열된 상품들이 가장 잘 팔린다(제조업체 들은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돈을 더 낸다). 가장 안 좋은 자리는 머리 위쪽이다. 고객들은 대부분 진열대 위쪽에 놓인 제품 에 손이 닿을 정도로 키가 크지 않다. 어린 꼬마 고객은 엄 두조차 못 낼 것이다. 진열대 높은 곳에 있는 상품은 마진이 별로 크지 않다. 사고 위험을 막기 위해 중량이 가벼운 상품 들이 그곳에 배치된다. 가장 주목을 받는 품목은 언제나 눈 높이 선반에 안착된다. 낮은 선반에 진열된 상품보다 사람 들의 관심을 35퍼센트 이상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또 당연한 말이지만 슈퍼마켓에 커다란 마진을 가져다주는 제품도 그곳에 자리잡는다. 세일 상품을 찾는 고객이라면 시선을 아래에 두는 것이 좋다. 종종 그곳엔 저렴한 상품들이 진열 돼 있고, 이는 꼬마 손님들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상품 배치도 우연이 아니다. 몇몇 제품은 의식적이든 무의식 적이든 서로 연상된다. (바질로 만든) 페스토 소스와 스파게티 소스는 항상 누들 선반 바로 옆에 있고, 치약 옆자리는 늘 칫솔이 자리잡고 있다. 나는 최상의 결합을 어느 이탈리아 슈퍼마켓에서 보았다. 그곳엔 수많은 종류의 다이어트 제 품이 다양한 초콜릿너트 크림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이것 이 의도한 게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다. 하지만 의도한 것이라면 존경을 보낸다!). 마찬가지로 나는 늘 비파(Bipa) 에서 오로팍스 귀마개 옆에 매달려 있는 콘돔을 보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 역시 비파는 이웃들도 생각한다.
*이에 반해 정말로 중요한 품목, 다시 말해 가장 잘 팔리는 상품들은 나란히 배치하지 않고 매장 곳곳에 진열해놓는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흔히 누들에서 맥주 코너로(수요가 많은 이 두 제품은 식료품 카테고리에 같이 모여 있다) 이동하려면 온 매장을 가로질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냉장 장치는 대개 매장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업체는 고객들이 되도록 매장 구석구 석을 돌아다니며 가능한 한 많은 제품을 볼 수 있게 배치한 다. 이렇게 하면 경우에 따라 더 많은 충동구매를 하게 된다.
*색깔은 우리의 구매 행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자세히 들 여다보면 상품의 세일, 품절 표지판이라든가 특별 세일을 알 리는 광고는 모두 빨간색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붉은빛을 볼 때 좀 더 빠르고 활기차게 반응 하기 때문이다. 태고 이래로 색은 우리에게 경고 신호로 자 리잡았고, 우리의 주의력을 높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 도 흥미진진한 것은, 파란색이 믿음과 신뢰를 주는 색으로 간 주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행은 이 컬러를 자주 사용한다. 초록색은 좀 의외로, '친환경과 건강'을 연상시키는 색이다.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 사회(throwaway society)는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포장 상품은 지난 몇 년 새 엄청나게 증가했다. 정육점 판매원이 소시지를 직접 기계로 정교하고 깔끔하게 썰어주는 것보다, 마트 냉장고에서 플라스틱 용 기에 포장된 소시지를 사는 것이 더 위생적이라는 느낌이 든 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위생적이지 않고 오히려 반대다. 플라스틱 포장의 경우, 저온 유통이 중단되면 기름과 외부 열의 노출로 인해 우리 몸의 호르몬 체계를 교란하는 화학 물질(연화제)이 용기에서 분해되어 나와 포장 음식에 들어간 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재활용 포장 상자도 사정은 다르 지 않은데, 이 역시 포장재에 함유된 인쇄용 잉크에서 나온 미네랄 오일이 음식물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심을 받는다. 포장은 여러 이유에서 도입되었다. 그중에 몇몇은 관련이 있고(예를 들어 식품 보존상), 그외 다른 이유는 대부분 적절치 않은 것들이다(이를테면 내용물은 적게, 포장은 크게 하는 과대 포장이 그렇다. 나는 새로 산 티백 상자 안이 반이나 비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놀란다)
*조명은 구매 행동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드럭스토어 매장 안은 매우 밝은데, 조명은 최대한 일광과 비슷해야 한다. 이와 달리 슈퍼마켓에선, 특히 과일과 채소 같은 신선식품 코너의 경우 부드러운 노란색 조명을 설치하는데, 색온도와 컬러 필터가 과일과 채소를 더 싱싱하고 신선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반면 육류 진열대는 붉은색 비율이 높은 필터가 삽입된 조명을 쓰고, 생선은 오히려 냉백색 조명을 사용한다. 특히 뉴욕의 고급 슈퍼마켓들은 과일과 채소 를 마치 무대 조명처럼 눈부시게 밝은 빛 아래 진열해놓고 그 주위는 살짝 어둡게 조절한다. 나도 이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틸로 보데(Thilo Bode)는 소비자의 권리와 식품의 질을 둘러 싼 문제를 다루는 비정부기구(NGO) 푸드워치(foodwatch)의 설립자로, 2009년 출간한 책에서 대부분의 슈퍼마켓은 진열 대를 주기적으로 재정비하는 것을 지침으로 하고 있다고 밝 혔다. 그 이유는 "고객이 구매하려는 것뿐 아니라 다른 제품들도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구매 행동을 통해 자신의 현재 사회적 위치와, 자신이 속하고 싶은 사회 집단을 드러낸다. 독일 경제학자 니코 패히 (Nico Paech)도 이렇게 말했다. "인 간으로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이 되고 싶고, 또 어 떻게 인정받고 싶은지를 표현하기 위해 소비를 필요로 한 다. 물질적 형태의 모든 기본 욕구들은 이미 수없이 충족되 었기에, 물질적 과잉이 지배적인 세계에서는 상징적 표현을 위해 물건을 산다."
-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는 1970년대 말에 프랑스인들의 정치 성향과 예술 취향을 포함한)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했다. 이 경험적 연구 결과는 그리 놀 랍지 않다. 자본의 다양한 형태, 즉 경제, 사회, 문화 자본은 개인이 속한 사회 계급을 정의한다. 부르디외는, 취향은 개 인적이며 개인이 활동하는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개인이 속한 계급은 그가 어떤 교육 과정을 밟았고, 어떤 문 화적 경험을 했고 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결정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무엇에 돈을 지출하는지 또한 결정한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무척 흥미를 느낀 지 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사는 것을 통해 어떤 사 회 계급에 속하는지 그 신호를 남들에게 보낸다.
- 면화 재배는 까다롭다. 목화는 매우 예민한 식물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필요할 때도 있고 한 방울도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추정상 99.5퍼센트가 유전자 조작 종자이며 한 해살이 식물이다. 즉 해마다 농부들은 새로운 씨앗을 사야 한다. 95 전 세계 살충제 생산량의 30퍼센트는 목화 재배에 사용된다. 이렇게 해서 목화는 수확 전에 바싹 마르고 섬유 질 많은 꽃봉오리는 더 쉽게 분리될 수 있다. 또 다량의 글 리포세이트glyphosate, 제초제의 주성분를 함유할 수밖에 없다. 심 지어 탐폰에서 글리포세이트가 검출된 일도 있다.
연구자들은 살충제 사용량이 총생산량(살균제와 제초제 포함) 의 20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목화 재배 면적은 농 업에 사용되는 총면적의 약 2.5퍼센트에 달하는데, 여기에 전 세계에서 생산된 살충제의 20퍼센트가 살포된다. 이러니 면 제품은 얼마나 깨끗할까!
- 옷을 버리는 대신 기부하는 것도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 이 유는 첫째, 기부 장소는 옷들로 넘친다. 둘째, 활용자 수가 지나치게 많다. 그들은 유럽에서 더 이상 팔기 어려운 옷들 을 묶어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팔고, 그곳 사람들은 옷 꾸 러미들을 열어보지도 않은 채 닥치는 대로 중고 시장에 내 다 판다. 그 후폭풍은 이렇다. 한때 크게 번창하던 동아프 리카의 섬유 산업은 곤두박질쳤다. 엄청난 양의 기부 옷(마 찬가지로 점점 늘고 있는 중국에서 수입된 매우 값싼 옷들)과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마음챙김 운동은 이미 트렌드가 되 고 있다. 당신이 충분히 마음챙김을 연습하고 당신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알아차린다면, 그리고 사물과 세계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 라고 말한다. 성공적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문제에 대해 서는 전적으로 개인의 성격적 특성에 달려 있다고 여긴다. (중략) 실제로 사람들도 그것을 경영인 혹은 성공한 엘리트 들이 찾고 실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극단적인 예로 '사람들을 해고하고 양심의 가책과 많은 어려움을 겪은 뒤 마음챙김을 수행하고 훨씬 편안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즉 사람들이 보는 것은 마음챙김 논리의 기능화다. " 우리는 이 모든 마음챙김 소란 덕에 인간 상호 간의 책임감 있는 교제를 윤리적으로 잊어버렸다.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 경영학 교수인 로 널드 퍼서(Ronald Purser)는 더 극단적으로 본다. 그는 저서 『마음챙김의 배신 (McMindfulness)』 115의 서두에서 바로 설 명하고 있다. "나는 회의적이다. 우리가 사는 불공평한 사회 에서 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 없이 성공을 보여주는 것은 혁명적이지 않다. 단지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게만 유익할 뿐이다. 하지만 이는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 경제적 기본 조건에 과감한 조치를 요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 퍼서 교수는 이렇게도 말한다. "사 람들은 마음챙김을 그만둬선 안 되고, 이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모두 세속을 벗어났다고 말할 수도 없다. 물론 목표는 언제나 개인의 스트레스나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또 마 음챙김과 요가를 통해 이를 달성하는 것도 좋다.” 훌륭한 말 이다! 다만 개인의 스트레스는 대개 사회적 원인에서 비롯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회와 정치 시스템에서도 시작되어 야 한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한다.
산업이 마음의 평안을 원하는 인간의 바람을 이용하는 것 은 마땅히 비난받을 만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은 부 조리하다. 우리가 쇼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며, 자신을 증 명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임금은 점점 줄어들어 우 리는 일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서는 점점 이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진실은, 우리 모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업계에서는 그것이 오롯이 우리 책임이며 완전히 혼자 힘으로 비참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설득한다. 이를 위해 향 혼합물을 사서 피우고 복식호흡을 해서 해결할 수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간단할까? 마음챙김의 방법들은 대 부분 불교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지금은 불교 승려들조차 매우 언짢게 생각한다. 미국 승려 빅쿠 보디 (Bhikkhu Bodhi) 는 불교가 의심 없이 소비주의를 받아들였다며 이렇게 경고 했다. "날카로운 사회 비판 없이 이루어지는 불교 수행은 현재 상태를 정당화하고 안정화시키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이 렇게 해서 손쉽게 소비자본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
나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진정 우리가 모두 잘 살기 위해 서는 이제 '나'만의 관점에서 빠져나와 공동체를 생각하고, 좀 더 인도적이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을 위해 노력해야 하 지 않을까?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정치학자 웬디 브 라운(Wendy Brown)은, 연대감 없는 개인화로 인해 정치적 통합은 더 이상 없고 오직 “개인 사업가와 소비자 집단”만 존재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꼬집었다.
- 설문지에서 늘 발견하는 것은, 사람들이 공정한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을 사기 위해 몇 퍼센트 더 비싼 가격을 치를 수 있다는 응답이다. 또 내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패스 트 패션 소비가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에 있는 동일한 연령 의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할 때에도 반 응은 언제나 똑같다. 그들은 다시는 패스트 패션을 사지 않 겠다고 말한다. 또 탄소발자국과 관련해, 몰디브행 비행기를 딱 한 번 타는 것만으로 평생 해온 쓰레기 분리 배출이며 자전거 타기, 비건 식사 등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이 환경에 그렇게 나 쁜지 몰랐다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러면서도 주말을 이용 해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간다. 사람들이 양심과 윤리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소비를 할 것이라고, 또 실제로 실행한 다고 확실하게 증명한 연구는 지금까지 하나도 없다. 130
이런 모순과 인지부조화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 답은 다 시 뇌의 생화학 작용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본래 기분 좋은 것을 찾는다. 그리하여 소위 '가치 행동 격차 (value- action gap)'라는 것이 발생한다. 우리는 빈병 보증금 반환 제도가 환경을 위해 매우 좋다고 생각하지만, 계산대 앞에 있는 500밀리리터짜리 플라스틱 병에 든 물을 산다. 빨리 갈 증을 해소해줘서 간편하기도 하고, 마신 후 처리를 크게 신 경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건을 사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기분을, 도파민 킥을 주기 때문이다.
방금 언급한 모순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예가 있다. 1월에 마트 과일 코너에서 볼 수 있는 그 유명한 딸기가 그것이다. 딸기는 멀리, 사람들이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남아메리카 의 어느 나라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딸기를 1월에 멀리 떨 어진 나라에서 사가지고 오는 것을 정신 나간 일이라고 여기 는 사람도 많다. 여름이면 이 땅에서 수확할 수 있는데, 굳이 플라스틱 용기에 셀로판지에 둘둘 말아서까지 들여와야 하 냐며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마트에 나온 딸기를 보자마자 입 안 가득 풍미를 맛보고 싶어지고 한겨울에 여름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겨울에 운전자 들이 추위 때문에 정차 중 자동차 엔진을 끄지 않는 것을 보고 화를 내는 사람일 수도 있다.
- 인지부조화는 매일 일어난다. 사람들은 대부분 끊임없이 해명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납득시키기 위해 내적으 로 다그친다. 두 가지 행동이 서로 모순이라는 것을 인정하 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말한다. '딸기를 산 것은 예외다, 단지 여름을 느껴보고 싶어서다, 어찌됐든 딸기는 사라고 있는 것이니 상하기 전에 사야 하지 않느냐'라고 해명한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그 자리를 합리화가 차지한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의 지혜 (1) | 2024.04.10 |
---|---|
사람을 안다는 것 (0) | 2024.03.31 |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7) | 2024.03.12 |
필링 굿 (1) | 2024.03.12 |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2) | 2024.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