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리학자들은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를 메시야 콤플렉스, 즉 구원자를 자처하는 심리라고 함. 극단적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해결자로 나선다.
이렇듯 자신을 구원자로 여기면, 적어도 고통을당하는 사람에게만큼은 자신이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게 됨. 그래서 자신을 원하는 사람에게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자신을 기꺼이 내어준다. 하지만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은 과거에 그런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동하는 것.
메시아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은 동정심이 많으며, 기어이 나서서 대화하고 치유하려 애쓴다. 특히 그런 일련의 관계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받고 싶어한다. 주위에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못할수록 더욱더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는 경우가 흔하다.
- 라틴어 알테르 에고는 또 다른 자아를 의미. 흔히 분신, 또 다른 나, 제2의 자아 등으로 번역됨. 심리학에서 알테르 에고는 숨겨두거나 억압해온 욕망이나 감정을 표현할 뿐 아니라 위험한 행동을 거침없이 하도록 한다. 만일 자신에게 알테르 에고가 있다면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능력이나 성격적 특성의 반영일 수도 있지만, 억압하고 있는 자신의 욕망일 수도 있다. 알테르 에고를 이해한다면 자신의 부족한 면을 인식하고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된다.
- 프로이트는 성인의 인격구조와 신경증 유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적절한 해결여부와 이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 이는 인간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이슈로, 이것을 해결함으로써 개인이 보다 더 건강하고 안정적 인격구조를 형성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책임감 있는 규범과 요구를 받아들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과정은 자아발달에 필수적 요소다. 이는 아버지를 본으로 삼고 본받는 동일시 과정이 자아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된다. 결론적으로 아버지의 역할은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며, 이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중요. 고흐의 여러 정신적 불안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잘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흐가 진정한 삶의 기쁨이자 아버지에게 원했던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제폼의 포로를 보며 고흐가 늘 말했던 진정한 자유였다. 자녀양육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의 자녀들을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받아들이며 자유로움을 최대한 보장할 이유가 여기 있다. 또 다시 불행한 고흐를 탄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파리에서 고흐는 자신의 화풍을 내려놓고 동료들의 화풍을 모방하고 흉내내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승화시킴. 그동안 어둡고 무겁게, 덫칠로 표현했던 그의 화풍이 밝고 가볍고, 빠른 붓질로 변했다. 하지만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동일한 느낌을 전하는 대신, 고흐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고흐는 자신의 작품과 삶에 대해 새로운 전환을 경험했다. 이전에는 나르시시스트적 태도와 강박적 성향으로 주변환경을 조절하려 했지만, 이제는 타인을 존중하고 그들의 역할을 인정하였따. 자신이 사실주의,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점묘파 등 모든 영역에서 인정받는 관종이 되기를 포기했다.
그랬더니 자신에 대한 강박과 집착이 줄어들면서, 고흐의 그림은 거북함과 폭렬적 강렬함이 사라졌다.
- 향수는 지난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를 그리워하는 정서적 상태. 문득 어릴 때 먹던 음식에 식욕이 당기거나, 여름 휴가지를 꼬마 친구들과 물장구쳤더 냇가로 정하거나, 어른들이 불렀던 가락을 흥얼거린다면, 일단 향수에 취한 것이다. 뇌과학에 다르면 과거의 기쁨으로 가득한 순간을 떠올릴 때 도파민이 분비되어 우리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향수는 뇌의 보상시스템과 관련이 깊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리의 뇌는 행복했던 과거를 추억하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현재의 도전에 대해 이미 맛본 감각의 강한 끌림이 불안한 현실에 안정감을 제공하기 때문.
- 편집증은 불안이 원인이 되어 자신의 생각이나 상상에 부합하는 해석을 하려고 하며, 이는 종종 현실을 왜곡하는 경향을 보임. 과도한 의심과 불신, 그리고 타인의 행동에 대한 비이성적 해석이 특징이다. 편집증 증세가 심한 고흐는 고갱과 테오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병세가 깊어진 고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성탄절 기간이면 매년 찾아오는 무서운 형상들로 괴로움을 겪었다. 하지만 두려움 속에서 이런 환상은 대수롭지 않다고 애써 자신을 세뇌시켰다.
- 십 대 시절에 영웅으로 삼았던 찰스 디킨스는 지금 고흐가 본 저 별속에서 "모든 위대함과 사소함을 지닌 하나의 온전한 세계"가 보인다고 했었다. 고흐은 머리에 가득한 별빛이 궁극의 평온함으로 자신을 이끄는 것 같았다. 저 별빛의 무한한 가능성과 꺼지지 않는 광채를 화폭에 담고 싶었다. 고흐는 가로질러 놓은 손바닥만한 창틀 너머로 바라본 달과 별들을 스케치했다.
증세가 호전되면서 결국 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중경에는 상상력을 동원해 별빛 아래로 잠든 마을 풍경과 산꼭대기의 능선을 덧붙였다. "어떤 평온이나 행복을 더해주는" 묘하고 이상한 느낌을 붓놀림으로 만들었다. 사이프러스 나무에까지 그 소용될이를 그려 넣어 광대무변한 빛과 에너지를 유지했다. 평범한 시선으로 본 어떤 세계와도 다른 고흐만의 밤하늘을 상상과 현실을 결합하여 만들어냈다. 맥동하는 불빛과 소용돌이치는 별, 빛을 내뿜는 구름, 태양만큼이나 환하게 빛나는 달로 어우러진 장관이었다.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를 힘들게 했던 경쟁사회와 동떨어진,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고흐는 밤마다 별빛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 귀를 일부 절단하고 자해한 사건은 그의 예술성에 있어서 중대한 분수령이 된다. 이후 생레미 병원에서의 하루하루는 여전한 고독과 번민으로 가득했고 눈감으면 끔찍한 악몽에 시달림. 과도한 스트레스와 빈약한 식사, 비타민 결핍 등으로 고흐는 더 예민해져서 종종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외출하는 것이 두려워 죽을 것처럼 외로웠지만 별이 빛나는 밤이 그려지면서 그는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묵묵히 감당해 나갔다.
고흐의 증세를 연구한 기록에 따르면 이 증세는 어느정도 견딜수는 있어도 완전한 회복은 쉽지 않다고 함. 그래서 그의 치료과정에서 탄생한 별이 빛나는 밤은 당대 정신의학과 예술에 대한 통찰을 지금까지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이런 의의를 떠나서 꼭 짚어보고 싶은 게 있다. 다시 서두에 인용한 말의 전문을 보자.
"형은 가끔 정상처럼 보이지만 이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혔다. 너무 고통스러워 도울 방법이 없어 보였다. 마음을 터놓을 만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를의 병원에서 정작 이 말을 했던 테오는 도울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의지하려는 형이 너무 버거웠던 것인지 고흐 곁에 머물지 않았따. 아픈 형의 곁에 단지 두시간만 있었을 뿐 고갱과 함께 파리로 돌아갔다.
- 올리브나무를 그리면서 고흐가 품었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신약에 따르면 예수는 처형되기 전달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렸는데, 그곳은 올리브나무가 무성한 곳이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고흐는 담 너머에 있는 올리브나무 숲을 겟세마네 동산과 같은 고뇌의 장소로 여겼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나의 소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기도를 했듯이, 고흐 또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래서 이 그림들은 고흐가 겪던 정신적 고통과 다가올 증상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화가의 길을 가겠다는 그의 결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올리브나무 그림을 해바라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대표적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올리브나무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그의 내면적 강인함과 예술적 의지를 다시 세운 상징적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고흐가 굳건히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더 이상 사람을 모델로 삼지 않고 그 대신 아몬드나무나 올리브 나무 같은 자연을 그리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 주의 회복 이론은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자연의 역할에 대해 설명. 이 이론에 따르면, 산만하게 흩어졌던 주의를 다시 집중하려면 네가지 요소가 중요함. 그것은 탈주, 확장, 끌림, 융합이다.
첫째, 탈주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둘째, 확장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더 멀리 더 높게 보는 것,
셋째, 끌림은 억지로 집중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는 것,
넷째, 융합은 자신의 취향과 적합하게 연결시키는 것을 말함.
고흐는 요양원을 벗어나(탈주), 자신의 시야를 숲과 하늘로 넓히고(확장), 나무와 꽃, 하늘에 매혹되었으며(끌림) 거기서 자신의 예술적 의지를 결합할(융합) 수 있었다. 그 결과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죽음 본능을 프로이트는 타나토스라 했다. 타나토스는 그리스어로 죽음을 의미. 모든 인간은 삶의 본능인 에로스와 함께 파괴와 죽음을 향한 본능인 타나토스를 갖고 있다. 특히 프로이트는 말년이 되어 타나토스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생명체가 자신의 근원인 흙과 같은 무생물의 상태가 되고 싶은 욕구라고 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여한도 없이 정해진 수명만큼을 받아들이고 '흙이나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인간본능을 말한다.
- 고흐는 밀밭을 그리려고 가로 길이가 세로길이의 두배에 달하는 긴 캔버스를 들고 언덕으로 향했다. 밀밭과 하늘의 경계를 길게 가로질러 거친 붓질로 표현했고, 주변에는 나무 한그루도 없고 집 한채도 찾아볼 수 없으며 교회의 첨탑 하나조차 눈에 띄지 않는 황량한 벌판만 두었다. 밀밭 가운데로 사람의 흔적이라곤 전혀 없는 외길만 이어져서 땅과 하늘의 경계선과 맞닿아 있다.
그림을 보면 가로로 길게 놓인 경계선과 세로로 굽은 길이 맞닿은 교점이 어느 순간 떠오르면서 마치 그 공간으로 까마귀떼가 모여드는 착시를 경험한다. 어두운 밤하늘과 거친 밀밭, 까마귀께다 고흐를 불길한 어디론가 몰아가려는 듯하다. 그곳은 자연의 광대함 속에서 느껴지는 극단적 고독의 장소인 것 같다. 고흐는 편지로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남겼다. "삶의 뿌리가 위협받는다. 내 발걸음은 불안정하다."
- 고흐의 죽음이 자살인가 타살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가 사용한 총이 지역 소년 르네 세크레탕의 것이었으며, 사고 또는 타인의 가담 가능성도 제기됨. 짓궂은 소년 르네는 무모한 장난으로 고흐를 자극하며 갈등을 빚곤 했었다. 고흐의 삶은 동네 아이들에게까지 조롱과 괴롭힘을 당하는 쉬지 않은 삶의 연속이었다. 이들 사이의 관계가 그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여전히 연구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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