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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2024. 3. 25. 07:31

- 살아 있는 예쁜꼬마선충은 불과 302개의 신경세포만으로 다 양한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일반화해 새로운 상황에도 적절히 대응하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자율주 행 분야의 연구자들이 예쁜꼬마선충의 이러한 능력에 주목하고 있다. 2021년, IST 오스트리아의 마티아스 레치너 Mathias Lechner 교수 연구팀은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 구조를 활용해 자율주 행 시스템을 위한 인공지능을 구현했다고 발표했다. 레치너 교 수의 연구에 따르면,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 구조를 모방해서 만든, 고작 19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된 인공신경망이 돌발 상황 에도 잘 대처하는 훌륭한 자율주행 성능을 보이는데, 이 인공신 경망 구조는 기존에 주로 사용되던 합성곱 신경망convolution neural network, CNN 구조보다 무려 63배나 간단한 구조다. 오랜 시간 가 장 효율적인 형태로 진화해 온 생명체의 커넥톰이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을 압도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 버스바이스나 레치너의 연구는 인간의 커넥톰을 컴퓨터 안에서 구현했을 때 인간과 유사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 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현재의 기술로는 302개의 신경세포와 7,000여 개의 시냅스를 가진 단 순한 선충조차 완벽하게 컴퓨터에 업로드할 수 없는 수준이니, 860억 개의 신경세포와 100조개에 달하는 시냅스로 구성된 인 간의 뇌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 인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인류가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과학사를 돌이켜 보면 단 1퍼센트의 가능성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일생을 바친 수많은 과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1997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캠퍼스의 신경생물학과에 부임한 양 댄Yang Dan 교수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으 로 일하는 동안 포유류의 뇌에서 시각 정보가 처리되는 원리에 대해 연구했다. 그녀가 특히 주목한 뇌 부위는 측면슬상핵 lateral geniculate nucleus, LGN이라는, 포유류의 뇌 중앙에 위치한 작은 시각 중추로서, 망막 시신경이 뇌로 보내는 전기신호가 가장 먼저 도 달하는 뇌 부위로 알려져 있다.
댄 교수는 뇌의 시각 정보 처리 과정에서 관찰되는 시각위상 visuotopy (혹은 망막위상retinotopy)이라고 불리는 특성에 주목했는데, 이는 눈앞에 펼쳐진 어떤 장면이 작은 화소pixel들로 구성되어 있 다고 가정할 때 화소 하나하나가 측면상에 있는 신경세포 하나하나에 대응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녀는 곧 측면슬상 에 위치한 신경세포들의 활동 신호를 읽어내면 눈앞에 있는 장면을 그림의 형태로 복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댄 교수는 자신의 박사후 연구원이었던 개럿 스탠리 Garrett B. Stanley 박사와 함께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시작했다.
댄 교수는 고양이의 측면상에 바늘 모양의 전극 177개를 꽂아 넣고 177개의 신경세포가 고양이 망막의 어느 위치에 대응 되는지를 알아냈다. 이를 위해 그녀는 고양이 눈앞의 여러 위치 에서 밝은 빛을 보여준 다음 어떤 신경세포가 반응하는지 관찰 했다. 이 과정이 마무리되고 나자, 그녀는 고양이 눈앞에 흑백 동 영상을 여러 개 보여주고 고양이의 측면상에서 측정되는 신 경신호를 이용해 영상을 복원했다.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고양 이에게 보여준 영상과 비슷한 윤곽의 영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 댄 교수의 연구 결과는 많은 뇌과학자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밀어 넣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시각중추, 예를 들어 대뇌의 시각 피질visual cortex에 전극을 조밀하게 삽입하고 신경세포의 활동을 기록하면 꿈을 저장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뜻 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물을 볼 때뿐만 아니라 꿈을 꿀 때, 심 지어는 상상을 할 때도 대뇌 시각피질을 사용한다. 따라서 대뇌 시각피질의 활동을 정밀하게 읽어낼 수만 있다면, 아침에 일어 나 밤새 꾸었던 꿈을 재생해 보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 니다.
- 우리 뇌는 몸보다 더 빠르게 반응한다. 뇌파를 측정하 는 동안 팔을 움직이면, 우리 뇌에서는 실제 팔이 움직이기 수백 밀리초에서 1초 전에 '준비 전위readiness potential'라는 뇌파가 관 찰된다. 준비 전위는 그 이름처럼 우리의 뇌가 팔을 움직일 것이 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준비하는 과정이 뇌파에 반영되는 것이다. 만약 자동차 운전자의 뇌파를 계속해서 측정한다면, 준비 전 위로부터 핸들을 꺾어 방향을 바꾸거나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급정거하려는 의도도 미리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닛산의 시스 템은 이처럼 운전자의 뇌파로부터 급회전이나 급정거 의도를 미리 알아내, 보다 부드러운 주행을 가능하게 하거나 사고를 미 연에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크고 복잡한 뇌파 측정 장치다. 닛산의 시스템은 아직 실험실 안의 차량 시뮬레이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운전자 의 머리에는 뇌파 측정을 위한 전극 캡(모자)이 쓰여 있고, 수많 은 뇌파 전극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하지만 실제 운전자가 탑승할 때마다 이런 뇌파 측정 시스템을 머리에 뒤집어쓸리는 없지 않겠는가.
- 물론 최근에는 간편하게 착용 가능한, 헤드밴드headband 형태 나 이어버드ear-bud 형태의 뇌파 측정기도 출시되고 있다. 하지 만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마저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 운전자가 어떤 형태든 머리에 무언가를 착용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이 자동차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이 기술을 꼭 써야만 하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먼저 개발되어야 하지 않을까?
- "수업 시간에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모두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중고등학교 강연을 다니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이다. 그렇다.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물론 잊는 것이 약이라는 말도 있듯이, 때로는 괴로운 기억은 잊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기억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공부가 아주 쉬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망각이라는 것을 할까? 우리 뇌에 860억 개에 달하는 신경세포가 있는데도 말이다.
인간이 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억을 만들 때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장기 기억을 뇌에 각인할 때 단백질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뇌가 쓸 수 있는 에너 지와 영양분은 제한되어 있기에,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기억하고 어떤 것을 망각할 것 인지는 대체 무엇이 결정하는 것일까?
- 우리는 종종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손이 입이나 코를 만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챈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손을 움직여 입이나 코를 만진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처럼 행동이나 생각을 우리가 인지하는 것을 '의식'이라고 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무의 식'이라고 한다. 의식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인 'consciousness'는 무언가를 안다는 뜻을 지닌 어원 'sci'에서 유래했고, 과학을 의 미하는 'Science' 역시 여기서 유래했다.
그런데 우리가 의식적이라고 믿는 행동들도 사실 우리 뇌의 무의식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인간의 식 연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 교수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뇌과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실험 으로 꼽히는 '리벳 실험'을 고안했다. 우리 뇌에서는 신체 일부 를 움직이기 전에 준비 전위라는 뇌파가 발생한다. 움직임을 준비하는 뇌파인 셈이다. 그런데 리벳 교수가 의아하게 여긴 부분은 이 준비 전위가 팔을 움직이기 무려 1초 전에 발생한다는 점 이었다. 여러분이 실제로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면, 의식적인 생각과 거의 동시에 팔이 움직인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리벳 실험에서는 실험 참여자들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손을 움직이겠다고 마음먹은 시점, 준비 전위가 발생한 시점, 실제로 손을 움직인 시점을 정확하게 측정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손 을 움직이겠다고 마음먹은 시점보다도 준비 전위가 더 빨리 발 생한다는 결과가 관찰되었다. 우리의 의지에 앞서 뇌가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리벳 실험의 결과에 수많은 뇌과학자들이 충격을 금하지 못했다. 리벳 교수의 연구 결과가 사실이라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행한다고 믿은 많은 행동들이 실제로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 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 결과는 인간의 '자유의 지free will'를 부정하는 데 쓰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인간 이 저지르는 실수와 범죄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리벳 교수가 세상을 떠난 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존 딜 런 헤인즈John-Dylan Haynes 박사 등이 리벳 교수의 이론을 계승했다. 헤인즈 박사는 2007년에 사람이 의식적인 선택을 내리기 10초 전부터 이미 뇌가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다소 파격적인 연구 결 과를 발표해 뇌과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인간이 자유의지 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는 아직 결론나지 않았지만, 인간 행동의 많은 부분이 무의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 어 보인다. 우리 뇌의 주인은 사실 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 사람의 감정을 실시간적으로 가장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뇌파를 이용하는 것이다. 뇌파에는 사람의 긍정/부 정상태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같은 감정 상태뿐만 아니라 집 중도나 지루함, 이해도 등과 같은 뇌의 다양한 상태 정보가 포함 되어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캐나다 뉴펀들랜드메모리얼대학 교의 마샤 바게리 Masha Bagheri 교수와 세라 파워Sarah Power 교수는 뇌파를 이용해 사용자의 인지 부하cognitive load *와 스트레스 정도 를 높은 정확도로 알아내는 기계학습 기술을 발표했다. 그녀들 은 피실험자 18명을 대상으로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도록 하면서 실시간으로 인지 부하와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했는데, 개인 의 주관적인 평가 결과와 80퍼센트 이상의 일치도를 보였다. 우 리 연구팀에서 같은 해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머리둘레를 따라 10여 곳에서 측정된 뇌파에 기계학습을 적용했을 때 긍정 또는 부정 감정을 90퍼센트 이상의 정확도로 분류해 낼 수 있었다. 이처럼 뇌파로부터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수동형 뇌-컴퓨 터 인터페이스 기술은 가상 비서 서비스와 결합되어 기존에 없 던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찜찜하게 남아 있는 문제가 있다. 뇌파를 측정하기 위해서 는 여전히 머리에 무언가를 뒤집어써야 한다는 것이다. 손목시 계조차도 거추장스럽다며 착용하지 않는 이들이 많은데, 과연 가상 비서에게 자신의 감정을 알려주기 위해 뇌파 측정 장치를 머리에 쓰고 다닐까? 이는 실용성과 관련된 어려운 문제다.
- 나를 비롯한 일부 뇌공학자들은 인공지능의 미래가 인공 감정artificial emotion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교류하 고 함께 살아가려면 인간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 만 아직 인간의 뇌에서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뇌과학의 발전이 지속되어 인간의 감정에 대 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그에 따라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 하는 인공지능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심지어 우리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 도대체 왜 건강식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작업기억 과제를 수행한 이후에 건강식을 선택하는 성향이 높아진 것일까? 우 리 연구팀은 이를 '점화 효과priming effect'로 설명했다. 점화 효과 란 심리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개념으로, 앞서 접한 정보가 이후 에 접하는 정보의 해석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빵'이라는 단어보다 '의사'라는 단어를 먼저 접하면 이후에 등 장하는 '간호사'라는 단어를 인식하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인간의 뇌에서도 이에 대응되는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배외측전전두피질은 우리 뇌에서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할 때 활동하는 영역으로, 하전두회는 인간의 행동을 억제하는 일 종의 브레이크 시스템의 일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뇌 영역들이 작업기억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활발히 활동하게 되 자 작업기억 과제 이후에 진행된 건강식 선택 과제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말하자면, 뇌 영역에서의 점화 효과인 셈이다. 라 면을 끓이기 위해 물을 데우면 금방 식지 않는 것처럼, 우리 인 간의 뇌도 한번 활발하게 활동한 영역은 관성에 의해 그 활동성 이 금방 줄어들지 않는다. 작업기억 과제 도중 활발했던 배외측 전전두피질과 하전두회 부위가 건강식 선택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점화 효과에 의해) 활성화 상태를 유지하면서, 순간적인 쾌락은 억제하는 한편 이성적인 의사결정은 더 잘 내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실험 결과를 설명할 때마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 다이어트를 하고 싶으면 입으로 먹지 말고 뇌로 마음 의 양식을 드세요." 실제로 마음의 양식인 책을 많이 읽으면 배 외측전전두피질을 포함한 전전두엽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이런 활동에 의한 점화 효과는 점차 길어지며 결국 전전두엽의 전반 적인 활동성을 높일 수 있다. 평소 책을 읽고 깊이 사색하는 습 관을 들이면 치매가 예방될 뿐만 아니라 정크 푸드에 대한 욕구 도 줄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양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실제로 이런 뇌의 점화 효과를 이용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도 있다. 바로 '뉴로피드백'이라고 불리는 자가 뇌 조절 기술로, 뇌의 특정 영역의 활동을 억제하거나 강화하는 훈 련을 지속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뇌의 상태나 기능을 변화시키는 훈련 방법이다. (특정 뇌 영역의 활동을 잘 조절하고 있는지를 다양 한 피드백을 통해 알려주기에 '뉴로피드백'이라고 부른다.) 뉴로피드 백에서 사용되는 관찰 방법으로는 뇌파, 근적외선분광법, 기능 적 자기공명영상 등이 있는데, 이들은 이미 국내 대형병원의 정 신건강의학과나 재활의학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의료기기이 기도 하다.
- 신경가소성은 뇌 질환을 치료하는 데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 다. 예를 들어, '중풍'이라고도 불리는 뇌졸중이 오른팔의 움직 임을 담당하는 왼쪽 운동영역에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뇌졸 중으로 오른팔을 움직이기가 어려워진 환자에게는 마비된 오른 팔을 계속해 움직여 주는 것만으로도 오른팔의 기능을 회복하 는 데 도움이 되는데, 오른팔의 움직임에 의해 고유수용감각이 느껴지면 뇌에서는 손상된 왼쪽 운동영역을 계속 호출하기 때 문이다. 왼쪽 운동영역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면, 왼쪽 운동영역의 기능이 다른 인접한 뇌 영역으로 옮겨 가 회복 가능성 을 높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재활 과정에서는 단순히 수동적 으로 로봇에게 팔을 맡기는 것을 넘어 오른팔을 움직이는 상상 을 함께 진행하면 재활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오른팔을 움직 인다고 상상할 때도 왼쪽 운동영역을 호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활 훈련을 장기간 하다 보면, 집중력과 의지가 점차 낮아지며 로봇에게 다시 수동적으로 몸을 맡기게 될 수 있다. 하 지만 이때 왼쪽 운동영역에서 발생하는 뇌파나 근적외선분광 신호를 측정해 재활 훈련 중인 환자에게 막대그래프로 보여준다면? 환자는 막대그래프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왼쪽 운동영역의 활동을 높이기 위해 다시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와 비슷한 방식으로, 초기 치매 환자의 인지재활 훈련 과정에서 환자들이 인지재활 훈련에 얼마나 집중해 참여하고 있는지 모 니터링하고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에 는 감정과 관련된 정서 질환의 치료 과정에서 치료 대상의 감정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피드백을 제공하기 위해 뉴로피드백 기술 이 활용된다. 가까운 미래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웨어러블 뇌파 기술의 도움으로 뉴로피드백을 통한 뇌 질환 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 미니어처 뇌, 뇌 오가노이드
1920년대 초, 독일의 동물학자인 한스 슈페만Hans Spemann은 발 생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이자 그에게 노벨 생리의학 상을 안겨준 위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슈페만은 도롱뇽의 알이 분화하는 과정에서 원래 뇌가 되어야 하는 부분의 세포를 잘라 다른 부위에 붙여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세포를 붙인 부위 에 새로운 신경관이 만들어지더니, 머리가 둘 달린 '괴물 도롱 뇽'이 탄생했다. 중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이 유명한 실험은 세포의 발생 과정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도롱뇽 알의 경우와 비슷하게, 우리 인간의 수 정란에서 생겨나는 배아줄기세포도 주변 환경을 적절하게 조절 해 원하는 형태의 세포로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줄기세포로부터 특정 신체 기관을 유도하는 연구는 200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신체 기 관은 '유사 장기' 또는 '오가노이드organoid'라고 불린다. 2000년 대 후반, 생물학자들은 소장이나 신장의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인체에서 가장 복잡한 기관인 뇌 오가노이드는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래서 2010년대 초까지도 수많은 뇌과학 자들이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과 학의 역사에서 숱한 발견들이 그러했듯이, 뇌 오가노이드도 아 주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졌다.
2013년,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MBA에서 박사후연 구원으로 일하던 젊은 여성 뇌과학자 메들린 랭커스터 Madeline Lancaster 박사는 쥐의 줄기세포로부터 신경세포를 발생시키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실험 도중 자신이 관리하던 배양접시에 지름이 2밀리미터 정도인 희고 둥근 물체가 둥둥 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도 처음에는 그 물체가 무엇인지 전 혀 짐작하지 못했고, 배양접시가 오염된 것으로 여기고 접시째 버리려고 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물체를 한번 잘 라보았는데, 놀랍게도 그 물체 안에는 수많은 신경세포들이 뭉 쳐진 뇌 조직이 들어 있었다! 랭커스터 박사는 이 결과를 즉시 <네이처에 발표했고, 곧 뇌과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뇌과학자가 되었다.
- 인간이 만들어 낸 이런 미니어처 뇌, 뇌 오가노이드는 생물학적 신경망과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연구에도 쓰일 수 있 다. 그 가능성을 가장 먼저 보여준 연구는 2022년에 발표되었 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있는 뇌과학 스타트업, 코르티컬 랩스Cortical Labs의 공동창업자인 브렛 케이건Brett Kagan 박사는 영 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의 칼 프리스턴Karl Friston 교수 연구팀 과 함께 생물학적 신경망을 컴퓨터와 연결해 간단한 게임을 수 행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케이건 박사 연구팀은 먼저 신경세포의 활동을 정밀하게 읽어 들일 수 있는 2차원 고밀도 마이크로 전극 배열 위에 신경세포를 배양했다. 이때 신경세포 는 전극 배열 위에서 이웃한 신경세포와 새로운 시냅스 연결들을 만들어 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우 복잡한 생물학적 신경망 구조를 형성한다. 이런 배양법은 오가노이드 제작 기술이 발 표되기 전부터 생물학적 신경망을 관찰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 방식인데, 반도체 칩 위에 신경세포를 배양한다고 해서 '뉴런 온 어칩 neuron-on-a-chip'이라고도 불린다. 마이크로 전극 배열은 신 경망을 구성하는 개별 신경세포의 활동을 정밀하게 측정할 뿐 만 아니라 특정한 신경세포에 전기 자극을 가함으로써 활동을 유도할 수도 있다.
- 해마 칩처럼 머릿속에 삽입하는 브레인 칩을 구현할 때 가장 큰 이슈는 배터리다. 커넬은 사람의 두개골 자리에 배터리와 신 호 측정, 신호 변환, 전기 자극이 모두 가능한 전자회로를 삽입 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뉴럴링크가 만든 '링크'와 비슷한 방식 이다. 하지만 뉴럴링크가 개발 중인 신경 인터페이스와는 달리 커넬의 해마 칩은 깨어 있는 동안 연속적으로 전기 자극을 해야 하기에 배터리 소모량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대용량 배터리를 삽입하는 수술은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향후에는 브레인 칩에 자체적으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 기술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하는 연구자가 많다.
에너지 하베스팅이란 문자 그대로 에너지를 수확한다는 뜻이 다. 사람이 움직일 때의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거나, 두피 표면에 태양전지를 부착해 수집한 전기에너지를 배터 리에 전달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 로는 에너지를 상시로 수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항상 일정한 전기에너지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는 생체연료전지biofuel cell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인간의 뇌와 두개골 사이를 채우고 있는 액체인 뇌척수액에 는, 다시 인체로 재흡수되지 않고 배출되는 글루코스가 다량 존 재한다. 글루코스는 세포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아데노신 3인 ATP)를 생산하는 포도당을 의미한다. 글루코스는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는데, 체내의 글루코스로부터 전기를 생산하는 '글루코스 연료전지 기술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연구된 글루코스 연료전지는 해를 거 듭할수록 작은 크기와 높은 효율을 경신해 가고 있다. 2022년 미국 MIT와 독일의 뮌헨공과대학교의 공동 연구팀이 발표한 글루코스 연료전지는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 수준인 400나노미터의 두께로, 제곱센티미터당 43마이크로와트의 전 기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인체에 삽입되는 임 플란트가 소모하는 전력량이 수백 밀리와트 수준이므로, 연료 전지의 면적은 최소 100제곱센티미터는 되어야 한다. 정사각형 형태로 제작한다고 가정하면 한 변이 10센티미터는 되어야 한 다는 것인데, 이는 아직 뇌에 삽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 렇지만 현재 기술로도 충전식 배터리와 동시에 사용할 경우 배터리의 크기를 줄이거나 충전 시간을 단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연료전지의 효율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 기 때문에, 머지않아 외부에서 배터리를 충전할 필요 없이 인체 내에서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브레인 칩이 개발될지도 모른다.

- 우리 뇌에 질환이 생기면 대체로 수술이나 약물로 치료한다. 그런데 퇴행성 뇌 질환의 일종인 파킨슨병 환자들 중에는 약물 로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환자를 대상으로 '심부뇌자극deep brain stimulation, DBS'이라고 불리는 장치가 머릿속 에 이식되고 있다. 이 장치는 뇌의 깊은 곳에 가늘고 긴 바늘을 찔러 넣고 펄스 형태의 전류를 흘려보내 뇌 활동을 조절한다. 이 미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고 사람의 뇌에 이식되 기 시작한 지도 30년이 넘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의료 기기 다. 뇌 속에 전자 장치를 삽입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의외로 많은 환자들이 심부뇌자극 장치를 머릿속에 삽 입하는 수술을 받는다. 심부뇌자극 장치는 전 세계적으로 10만명이 넘는 이들의 머릿속에 이식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적지 않은 이식 수술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파킨슨병의 경우에 는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동안 손의 떨림이 멈추고 걸음걸이 도 정상으로 돌아오는 극적인 효과가 관찰되기도 한다.
파킨슨병은 뇌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흑질substantia nigra 이라는 영역의 도파민 뉴런이 손상되어 도파민이 잘 분비되지 않는 장애와 관련 있다. 심부뇌자극 장치는 이 부위에 전기 자극 을 가해 인위적으로 도파민 생성을 유도한다. 그런데 이 긴 바늘 처럼 생긴 전극을 자극하고자 하는 뇌의 위치에 정확하게 집어 넣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전극을 몇 번이나 머릿속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데 신기하게도 우리 몸의 모든 감각 정보를 수용하는 뇌 자체에 는 정작 통각수용기가 없어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대부분의 뇌 수술이 국소마취만 한 상태에서도 진행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뇌 수술을 하는 도중 언어 영역이나 운동영역과 같은 중요 영역을 잘못 건드릴 수도 있는데, 이런 뇌 부위를 아주 조 심스럽게 자극하면서 언어 기능이나 운동 기능이 달라지는지를 관찰하기도 한다.
이렇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뇌 수술이 가능하기에, 긴 바늘 형태의 전극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여러 전기 자극을 가해보면 서 파킨슨 환자의 증상이 좋아지는 자극 깊이나 위치를 찾아낼 수도 있다. 초기 심부뇌자극 수술을 시행하던 신경외과 의사들 은 이 과정에서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는데, 흑질 부근의 특정한 뇌 영역을 자극했을 때 환자들이 갑작스레 이유 없이 행 복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어떤 환자는 심지어 소리 내어 웃음 을 터뜨리기도 했다. 자신의 머리를 열고 뇌 수술이 진행되는 동 안에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특정한 뇌 영역이 다름 아닌 보상중추의 핵심 부위인 측좌핵이었다.

- 2012년,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저명한 정신과학자 토머스 슐래 퍼Thomas Schlaepfer 박사는 우울증 환자들의 측좌핵에 심부뇌자극을 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영역을 자극할 때 자극 전류 의 강도를 점차 높여가면서 자극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에 서 시작한 만족감이 나중에는 행복감을 넘어 쾌락에 가까운 감 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뇌를 직접 자극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중독 대상에 노출되거나 중독 관련 행동을 할 때 측좌핵이 활동하고 많은 양의 도파민이 분비 되는데, 이는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쇼핑 중독 등 중독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외부 자극 없이도 심부뇌자극을 통해 이 영역에 직접 전류를 흘려 뇌 를 자극해 주면 마치 중독 대상이 주어진 것처럼 도파민이 분비 되고 쾌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토머스 슐래퍼 박사 연구팀은 한 신경과학 학술지에 '얼마나 행복한 것이 아주 행복한 것인가? 행복감, 신경윤리, 그리고 측좌핵의 심부뇌자극How Happy Is Too Happy? Euphoria, Neuroethics, and Deep Brain Stimulation of the Nucleus Accumbens'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 다.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중요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행복 이라는 것이 버튼을 한번 누르는 것만으로도 쉽게 얻어진다면 이는 과연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또한 “행복감을 만들어 내는 심부뇌자극 기술이 정신질환 환자가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쓰인다면 예상치 못한 사회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저자들은 사람들이 그저 순수하게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이 기 술을 사용하는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고 예측했다. 그들은 뇌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행복감을 높이는 것이 비윤리적이지 는 않다고 주장했다. 다만 행복의 '적절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 지, 그리고 행복의 수준을 너무 높일 경우 어떤 위험이 따를지는 한번 따져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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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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