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저온살균처리를 거친 우유는 식중독을 일으킬 확률이 1퍼센 트 미만인 매우 안전한 식품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요즘 저온살균처 리가 되지 않은 우유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우유로 인한 질 병의 비율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2007년과 2009년 사이 미국에서는 살 균을 거치지 않은 우유를 마시고 박테리아 캄필로박터균Campylobacter, 살모넬라균salmonella 및 대장균E.coli과 관련된 질병에 감염된 사례가 30건이나 발생했다. 2010년과 2012년 사이에 그 숫자는 51건으로 증가 했다. 사람들이 생우유를 찾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이들은 생우 유가 살균된 우유보다 맛이 좋고, 영양가가 높으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람의 몸은 생우유를 마시도록 되어 있고, 소비자는 우유의 살균 여부 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온살균을 거부하고 더 자연적인 생우유를 택하는 사람들은 저온살균처리법이 개발되기 이전 수천 명의 사람이 우유로 인해 장기 부전, 유산, 실명, 마비를 겪고 결국 사망에 이 르렀다는 사실을 아마도 모르는 것 같다.
저온살균처리를 거부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 완전히 이해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저온 살균은 직관에 반한다. 세균이 반직관적이기 때문에 저온살균 또한 반직관적일 수밖에 없다. 세균이란 눈으로 볼 수 없는 생물들이다. 그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우리가 알 수 없게 전달되며, 그 결과 우리는 감 염되고 나서 몇 시간 또는 며칠 후에야 몸이 아프다는 걸 느끼게 된다. 또 다른 반직관적인 개념은 음식물을 질병의 근원으로 변화시키는 세균 이 열에 의해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균을 죽이기 위해 음식을 가 열하는 것은 식품산업에서 아주 널리 퍼진 방법이다. 우유뿐만 아니라 맥주, 와인, 주스, 과일 통조림, 야채 통조림 등 여러 종류의 음식이 가열 로 살균처리를 거쳐 생산된다. 살균되지 않은 우유를 고집하는 사람들 이 살균처리된 맥주 또는 복숭아 통조림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 데 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저온살균 우유에는 타당성이 없지 만, 다른 식품에는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더 가능성이 있는 이유로 저온살균이 무엇인지, 왜 식중독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저온살균에는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있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이 그 과학적 근거를 거부하고 있다. 사실 그들은 저온살균에 대한 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면역학에서부터 지질학, 유전학도 거부한다. 최근 에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간이 오랜 시간 에 거쳐 진화했다고 믿는 사람은 65퍼센트에 불과했다. 반면에 세계 최 대 과학 단체인 미국과학진흥협회 AAAS: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 ment of Science 회원들은 98퍼센트가 진화가 사실임에 동의한다. 또한 지 구 온난화가 대부분 인간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 국 성인의 50퍼센트에 불과한 반면 AAAS 회원은 87퍼센트다. 그리고 미국 성인의 37퍼센트만이 유전자 변형 식품이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 하지만, AAAS 회원은 88퍼센트다.

- 직관적 이론은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따로 배우지 않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터득한 설명이다. 스스로 관찰했던 모든 사건에 대 해 나름대로 짐작한 이유, 그리고 그 일에 우리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 는지에 대한 추측들이다. 직관적 이론은 중력에서 지질학, 질병에서 진 화적 적응까지 모든 종류의 현상을 포함하며, 영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줄곧 작동한다. 다만 문제는 그 직관들이 종종 틀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질병에 대한 우리의 직관적 이론은 미생물에 대한 사실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근거 한다. 따라서 우유를 그냥 마시는 것은 위험하지만 가열하면 안전하다 는 이야기나, 백신 접종과 같이 죽은 바이러스를 우리 몸에 주입하면 질 병에 면역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믿기 힘들 수밖에 없어진다. 마찬가지 로 지질학에 대한 우리의 직관적 이론에서는 지구를 동적계가 아니라 정적인 계로 간주하기 때문에, 우리는 수압파괴법hydraulic fracking으로 지진을 일으킨다거나 탄소 배출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된다는 등 인간 이 지구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직관적 이론은 양날의 검이다. 세상에 대한 직관적 이론은 우리가 여 러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또한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기 때문에 그 어떤 이론도 가지지 않은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직관적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들에는 우리 의 마음을 닫아버리게 함으로써, 그 현상들에 대한 진정한 설명과 이치 를 깨닫는 데 장애물이 된다. 기존에 있는 직관들은 현실을 잘못 이해하 도록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직관에 반하는 사실들을 무시하게 함으로써 진실에 대한 우리의 눈을 멀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쓰는 나의 목표는, 독자들에게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직관적 이론들에 대해 알리 고, 그 직관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가 생각의 길을 잃게 만드는 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 직관적 이론은 과거에 과학적 지식이 충분치 않았을 때 어쩔 수 없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전적으로 과학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미래에 세상 모두가 과학적 정보 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때가 오면 직관적 이론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과학에 대해 많이 알게 된다 해도 직 관적 이론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직관적 이론은 인간 인지 능 력의 한 부분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직관은 어린아이 시기에 형성되며, 아이들은 과학적 정보의 유용성이나 접근성 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아이들이 어른들 보다 집중력이 부족하거나 자연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가르친다 해도 아이들은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 개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열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들은 물체의 온기, 즉 물체가 얼마나 효율 적으로 열을 전달하는지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열에너지 자체는 인식 하지 못한다. 분자들의 움직임을 직접 지각할 수 있는 감각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열의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 질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론을 터득해야 한 다." 물론 아이들도 물질에 대한 원자론을 배우긴 하지만 그것은 대부 분 중학교 때고, 그때는 이미 열을 과정이 아닌 물질로 취급하는 직관적 이론(제2장 참고)이 자리 잡힌 후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조기 교 육에 원자론을 도입하여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올바른 원리를 가르칠 수 도 있겠지만, 원자론 자체가 반직관적인 것이 문제다. 어떻게 유치원생 에게 분자를, 또는 전자 및 화학적 결합을 설명할까? 어떻게 아이들이 열에 관련된 단어들('열', '뜨거움', '냉기', '시원함'을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개념들('물질', '막음', '흐름'과 연관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 많은 사람들이 시각은 외부에 있는 빛이 눈으로 들어와 이루어진다는 '유입설intromissionist'적인 설명과 눈에서 나온 광선이 외부 사물에 반사 되어 다시 되돌아온다는 '유출'적인 설명 중에서 후자를 강하게 확신 한다." 예를 들어, 눈이 그려진 그림을 주고 시각정보의 흐름을 나타내 는 화살표를 그리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사람들은 안구에서 나오는 방 향으로 화살표를 그린다. 또한 전구와 같은 발광물체를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면 사람들은 전구에서 나온 빛이 우리 눈에 닿는다고 하지만, 발광물체가 아닌 꺼진 전구와 같은) 사물들에 대 해 같은 질문을 하면 다른 답을 한다. 이 결과는 사람들이 발광물체에서 나오는 빛은 우리 눈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알지만, 빛 자체가 모든 시각 의 근원이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최근 연구에서는 과학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와 과학자만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를 제시하고, 이 문 제들을 푸는 동안 참가자들의 두뇌를 fMRI로 촬영했다. 첫 번째 유형의 문제에서는 과학자와 일반인이 모두 유사한 신경 활동 패턴을 보이지 만두 번째 유형의 문제에서는 과학자들의 뇌에서 통제 및 갈등 감시와 관련된 뇌 영역인 전전두엽 피질과 전측 대상피질의 혈류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과학자들은 전문 지식을 이용해 어려운 과학문제를 풀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 과학지식과 충돌하는 개념들을 통제해야 한 다. 즉 자기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틀린 직관들을 억제해야 하는 것 이다.

- 하나의 개념을 수정하기 위해서 동시에 다른 개념들도 수정해야 하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철학자 오토 노이라트Otto Neurath는 이 문제를 바다 한가운데서 배를 만드는 것에 비유했다.  "우리는 빈 서판tabula rasa에서 시작할 수 없다. 우리의 생각이 시작될 때 떠오르는 단 어와 개념에 의존해야만 한다. 우리의 일은 바다 한가운데서 배를 처음 부터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구축하는 것이다. 대들보 하나를 제거 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대들보를 세워 넣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배 자체가 지지대가 되 주어야 한다. 이처럼 배의 오래된 대들보를 유목들 로 대체한다면 배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가 되겠지만, 그 과정은 점진적 인 재구축일 것이다."
노이라트는 심리학자가 아닌 철학자였지만 그의 은유는 과학 개념을 배우는 과정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할 때도 유효하다. 우리 는 그런 개념들에 대한 틀을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이를 습득하는 과정 도 느리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실제 현상에 대한 하나의 근사 적 해석(예: "바닥과 접촉하지 않으면 물체는 떨어진다.")을 다른 근사적 해석 (예: "질량중심 아래에서 바닥과 접촉하지 않으면 물체는 떨어진다.")으로 반복적 으로 교체해야 한다. 그러한 수정을 수없이 거치고 난 이후 우리가 얻게 된 새로운 이론은 예전의 오래된 이론과는 완전히 달라지겠지만, 그것 이 어디서부터 기원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천문학자는 한 때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살 수 없다고 믿는 어린아이였고, 모든 물 리학자 또한 한때 튜브를 따라 내려가는 공을 추적할 수 없었던 어린아 이였다. 우리는 그런 초라한 소형선에서 얼마나 위대한 대형선박을 만 들어내는가!

- 지구가 구체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우주와 그 속에 있는 우리의 위치 를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에 불과하다. 다른 우주 현상들 - 낮과 밤의 반복, 계절의 변화, 밀물과 썰물, 별자리의 움직임, 그리고 달의 위상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이러한 현상들을 목격 해왔지만, 지구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마찬가지로 이 현상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또한 본질적으로 편향되어 있다. 
-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이 대답했다.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보이려면 어 떤 상황이 돼야 하는 것일까? 
낮과 밤의 주기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그 해석은 지 구의 형태에 대한 심성 모델에 의해 제한된다. 예를 들어, 중공 구형 모 델을 가진 어린이는 해와 달이 하늘 돔 안에 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렇 기 때문에 달이 구름이나 산과 같이 돔 내부의 무언가에 의해 가려져 있 을 때가 낮이고, 태양이 그 물체들에 의해 가려지면 밤이 된다고 생각한 다. 반면, 편평한 원형 모델을 가진 어린이는 지구를 해와 달과 별개로 해석하므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편평한 평면 위에 태양이 떠오르면 낮 이 되고, 달이 떠오르면 밤이 된다고 믿는다. 구형 지구 모델에서는 지 구가 태양을 돈다고 하든,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하든 상관없이 낮과 밤 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다. 그리고 그 도는 동 작은 지구 자체의 자전일 수도 있고 태양을 중심으로 한 공전일 수도 있 고, 심지어 진동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불분명한 점이 많다.

- 우리는 지진, 화산, 쓰나미, 간헐천과 같은 지질학적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저 호기심의 대상에 그치지 않는다. 극적이고 간 혹 치명적이기도 한 이런 현상들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왜 발생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일련의 인과적 상호작용들이 이 현상에 관여되어 있으며, 그중 많은 작 용이 시공간적으로 이 현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화산의 분출에는 적어도 여덟 가지 단계가 포함된다. (1) 지각판이 움직인다 (2) 움직이는 판이 아래에 있는 다른 판을 밀게 된다 (3) 충돌하는 지각판들 사이에서 마찰과 압력이 축적된다; (4) 지각판 사이에 있는 암석이 녹기 시작한다; (5) 용융된 암석(즉, 마그마)은 주변 암석보다 밀도가 낮아 지각 안에서 상승한다: (6) 상승하는 마그마가 지 하 공간에 축적된다; (7) 이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암석이 약해지고 균 열이 생긴다; (8) 마그마가 있는 공간에 압력이 축적되면서 마그마는 균 열된 틈을 통해 대기로 분출된다. 이 일련의 사건을 완전한 인과관계 순 서로 통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지구물리학 시스템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측면은 여기에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관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해변에서 바위 를 보고 그 바위들이 풍파를 겪어 결국에는 모래로 변할 것임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본능적으로 이러한 결말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질학자들은 우리가 경험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구별하기 위해 지 질학적 사건에 내포되어 있는 시간을 '아득한 시간deep time'이라고 부른 다. 아득한 시간과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은하와 원자만큼이나 다르 지만, 우리는 종종 그 차이를 깨닫지 못하곤 한다.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공룡시대의 흙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흙 과 같은 것인가? 설마! 당신은 단박에 말도 안 된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아마도 다음 질문에는 주춤할 것이다. 만약 우리의 흙이 공룡시대의 흙과 같지 않다면, 공룡시대의 흙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우리의 흙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 놀랍게도, 흙은 영원히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과 비에 의해 침식되고, 홍수로 씻겨 나가며, 빙하에 긁히기도 하고, 무기물질(토사, 재, 먼지) 또는 유기물질(부패되는 동물, 썩어가는 식물)에 덮여 있기도 하며, 지진 때문에 지각 위로 노출되기도 하고, 산사태에 묻히기도 하고, 지구 자체 로 다시 재활용되기도 한다. 공룡은 6억 5천만 년 전에 멸종되었는데, 이는 흙이 변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의 눈앞에서 그러 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기는 어렵다. 인간의 수명은 대부분의 지질 학적 사건보다 기하급수적으로 짧기 때문에, 우리는 흙, 산, 섬, 계곡과 같은 지질학적 특징을 그것들을 생기게 한 역사적 과정과 연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 환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활동은 기후 변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쓰레기 줍기, 살충제 사용 또는 에어로졸 캔 사용 과 같은 일부 활동은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다. 실제로 기후 변 화와 관련된 활동들 가운데 일부는 다른 활동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가 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 차이점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예 를 들어, 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탄소는 전체 탄소 배출량의 14퍼센트 를 차지하는 반면 쓰레기는 4퍼센트를 차지한다. 이처럼 쓰레기 문제는 교통 문제보다 기후 변화에 대한 영향력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통 문제(대중교통 이용 또는 항공여행 최소화)를 해결하는 것보다, 쓰레기 문제(소비 절감 또는 재활용 확대)를 해결하는 데 더 신경 쓴다. 
교통 습관을 변화시킬 때 수반되는 희생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휴지통에서 재활용품을 분리하면 지구를 구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구 온난화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행동의 변화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 았을 때 생기는 결과만큼이나 우리들의 삶을 크게 바꿀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암묵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명시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 고, 기후 변화가 심각하다는 것, 심지어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조차 부정하기도 한다.
- 요약하자면, 우리는 다음의 물리적 이론을 다루었다.
1. 물질에 대한 직관적 이론에서는 물질을 미립자로 구성되어 나눠질 수 있다고 여기기보다는 다른 물질과 구분되는 하나의 전체로서 여긴다.
2.에너지에 대한 직관적 이론에서는 열, 빛, 그리고 소리를 물리적 시 스템의 미세 구성요소들의 창발적 특질로 여기기보다는 단순한 물 질로 취급한다.
3. 중력에 대한 직관적 이론에서는 무게를 질량 및 중력장과 연관시키기보다는 물체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본다.
4. 움직임에 대한 직관적 이론에서는 힘을 물체의 움직임을 변화시키는 외부적인 요인이라기보다는 물체 간에 전달되어 움직임을 일어나게 하는 것으로 본다.
5. 우주에 대한 직관적 이론에서는 지구를 태양 주위의 궤도를 도는 구체가 아니라 오히려 태양이 그 주위를 회전하는 움직이지 않는 평면이라 본다.
6. 지구에 대한 직관적 이론에서는 대륙과 산 같은 지질학적 특징들을 일시적이고 역동적이라기보다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으로 본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 적합한 방식으로 환경을 인식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직관적 이론들을 만들게 되었지만, 이 방식들은 자연의 진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우리는 물질들을 무 게와 크기가 아니라 묵직함과 큼직함으로 인식하고, 열에너지를 열과 온도가 아닌 따뜻함과 차가움으로 인식하며, 중력을 지구를 향해 끌어 당기는 힘이 아니라 그저 아래로 당기는 힘으로 인식한다. 또한 우리는 속력을 관성의 형태가 아닌 힘의 산물로 인식하고, 지구를 거대한 구체 가 아닌 편평한 평면으로 인식하며, 지질학적 시스템을 연속적인 과정 이 아닌 서로 구분되는 사건들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편향된 인식들은 우리가 자연현상들의 원인에 대한 이론들을 만들 때 과학적으 로 의미가 없는 개념들을 만들어내게 하는 반면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 는 개념들은 간과하게 만듦으로써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된다. 오직 과학적 이론만이 올바른 개념들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오직 과학적 이론만이 일관되고 정확한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설 명들과 예측들을 우리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다.

- 잠을 자는 것은 움직임이나 감각이 없는 상태라는 점에서 죽음과 비 슷하고, 여행은 우리의 삶에서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점에서 죽음과 비슷하다. 더군다나 어른들이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마치 잠을 자는 듯 "영원히 잠에 들다eternal slumber", "물고기들과 잠을 잔다sleeping with the fishes", "흙 속의 낮잠dirt nap", "편히 쉬다rest in peace"라는 표현을 쓴다거나 마치 여행하는 듯 "떠났다moved on", "떠나갔다passed away", "더 좋은 곳으 로 갔다 gone to a better place", "이 세상을 떠났다departed this world"라고 표현함 으로써 죽음의 음침한 현실을 가리기도 한다. 우리 또한 죽음을 이런 식 으로 표현하는데 죽음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를 어찌 탓할 수 있으랴. 때로는 죽음에 관한 은유적인 표현 속에 가려진 죽음의 진정한 모습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미라를 만나는 경험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 생물학적인 움직임에 대한 본능적인 관심은 어린아이들이 살아 있다 는 말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하게끔 한다. 유 치원생들은 새, 포유류, 물고기는 살아 있다고 말하지만 꽃, 버섯, 또는 나무는 자기 스스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살아 있지 않다고 말한다. 유 치원생들은 때로는 스스로 움직이지만 생물체가 아닌 것들(구름, 강, 연 기, 해)도 살아 있다고 여긴다. 이렇게 사고하는 것은 서양과 동양, 선진국 및 개발 도상국의 어린이들 모두에게서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전세계의 네 살짜리 어린아이는 일반적으로 해는 살아 있지만 해바라기는 살아 있지 않다고 말한다.
네 살짜리 아이들은 이 세상의 어떤 개체들이 먹고, 숨쉬고, 성장하고, 번식하는 생물학적 활동들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인 간이 이러한 활동들을 한다는 것은 알지만 종종 다른 유기체들은 그렇 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의 일부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유기체들이 매우 다른 형태로 생물학적 활동들을 영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생물학적 활동들을 다른 유기체에 적용시킬 만한 어떠한 원리도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살아 있는 것을 스스로 움 직일 수 있는가를 바탕으로 이해하며, 생물학적 과정에 대해서도 심리 작용에 근거해 이해한다.

-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이해는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해를 미치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이 결과는 죽음을 경험하고 슬퍼하는 아이들을 상담하는 의사들이 직접적인 상담 경험을 통해 오랫동안 믿어 왔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의사들은 대부분 부모들에게 죽음에 대해서 피하거나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명료하고 구체적인 표현을 통해 죽음을 정면으로 이야기해주기를 권한다. 죽음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은 아이들에게 당혹스러울지 모르겠으나, 그런 당혹스러운 설명이 어떤 설 명도 해주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죽음을 이해하기 한참 전부터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다. 처 음에는 죽음을 삶의 변형된 형태로 여긴다. 계속해서 음식과 물을 필요 로 하는 사람을 땅에 묻는다거나, 여전히 생각하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 을 화장한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소름 끼치는 짓이겠는가. 사 랑하는 사람이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죽음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고릴라는 전혀 겪지 않겠지만) 아이들이 겪게 되는 이러한 근거 없는 두려움을 잠재 울 수 있다.

- 우리는 뼈는 그저 뼈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그것이 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즉 우리의 신체가 기능을 다한 후에도 그것을 초월하는 우리의 어떤 일부분이라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모든 인간 활동, 특히 심리적 활동에 마침표를 찍는다 고 완전히 믿지 않는다." 이를 반박할 만한 어떠한 직접적인 증거도 갖 고 있지 않음에도 말이다. 우리가 죽음을 생물학적인 종결로 받아들이 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보통 "존재하지 않음"이라는 개념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반응에서 비롯되지만, 삶과 죽음 자체에 대한 혼동에서 비롯되 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이러한 혼동을 바로 드 러내지는 않지만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식물이 살아 있는지에 대해 어른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가장 좁은 의미로 생물을 정의한다 해도 식물은 분명 생물이다. (바 이러스나 신체 내부 기관들을 생물로 볼 수 있는지는 생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생 각할 때 그것을 살아 있는 것처럼 여기지 않는다. 동물에 대한 대화와 견주어 볼 때, 식물에 대한 대화 중에 우리는 "삶"이나 "살아 있다"라는 용어를 오 분의 일 정도만 사용한다." 이 비율은 아이들보다 높은 게아 니다. 우리는 동물에 비해 식물에 대해 훨씬 더 적게 알고 있다. 우리는 수백 가지의 포유동물의 이름을 손쉽게 열거할 수 있지만 기억할 수 있 는 나무의 이름은 소수에 불과하다. 식물의 특성들에 대해서 물어보면 식물이 주변 환경을 감지한다든가,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든가, 또는 스스로 움직이는 등의 어떤 의도가 있는 행동들을 보인다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곤 한다.
- 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생명력이란 결국 에너지의 생화학적인 공급 일 뿐이므로 활력론은 신진대사 기능을 칭하는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을 지 모른다. 그러나 활력론은 신진대사 기능을 담당하는 신체 조직이나 신체 기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이해 가능하다. 생물학의 역사에 있어서 활력론은 물질론materialistic (또는 기계론mechanistic)에 비해 수천 년 앞서서 등장한다' 다른 문화권에서 생명력이라는 개념은 생의 약동élan vital, 영적 동물spiritus animus, 차크라, 영혼, 기chi, 체액humors 등의 다른 이 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런 개념들의 목적은 매한가지다. 쉽사리 설명 이 되지 않는 건강, 운동, 지향, 지각, 성장, 그리고 발달의 과정들을 설 명하기 위함이다.
가장 강한 의미에서의 활력론에서는 생명을 물질 이상의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생화학적 접근에 부합하지 못한다. 하지만 약 한 의미에서의 활력론에서는 일종의 내부에너지에 의해 외부 활동이 일 어난다고 여기기 때문에 생명의 생화학적 관점에 부합한다. 활력론은 생명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대략의 개요를 제공한다면, 생화학 적 관점은 그 자세한 내용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발달학적 관점에서 볼 때, 활력론은 제7장에서 다룬 기계론적인 개념 들과 마찬가지로 조금 더 복잡한 생물학 개념으로 넘어가는 디딤돌이 된다. 아이들은 생물학적인 현상들에 대한 기계론적 설명을 받아들이기 한참 전부터 활력론을 받아들인다. 우리가 왜 먹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 어서 활력론에 근거한 설명("왜냐하면 우리의 위장은 음식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과 기계론에 입각한 설명("음식이 위장에서 변환되어 몸속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사이에서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은 전자 를 더 선호한다.
이는 다른 신체적 기능에 관해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왜 심장을 갖 고 있는가에 대해서 어린아이들은 "심장은 피를 통해 에너지를 내보내 는 일을 하기 때문에"라는 활력론의 설명을 "펌프처럼 작동하며 피를 순 환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에"라는 기계론적 설명보다 선호한다. 왜 우리 는 공기를 마시는가에 대해서는, "우리의 가슴은 공기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활력론적 설명을, "우리의 폐가 산소를 받아들 여 이를 이산화탄소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라는 기계론적 설명보다 선호 한다. 반면,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은 활력론적 설명보다 기계론적 설명을 선호한다. 우리에게 활력론적 설명들은 이해가 얕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 식품 산업에서도 활력론에 입각한 논리가 광고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인식한 듯하다. 이들은 성인 대상의 건강식품을 선전할 때 영양소에 대한 정보를 더욱 강조한다. 어른들도 채소가 정크푸드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것을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긴 하지만, '홀푸드Whole Foods'와 '트 레이더조Trader Joe's'와 같은 회사들은 그들이 판매하는 식품이 건강에 어 떤 효과를 지니는지 짚어주는 것이 광고 전략으로서 매우 효과적이고 수익성도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에 따라 케일, 미역, 그리고 아사이베 리가 맛없는 식물에서 '슈퍼푸드super food'로 급부상했다. 반면에, 초코 바, 햄버거, 오렌지 탄산음료는 맛있는 군것질거리에서 '침묵의 살인자' 로 전락하고 말았다.
- 아이들은 아직 노화와 성장을 연결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노화에 대한 아이들의 혼동은 일반적인 생물학적 과정에 대한 혼동과 함께 나타난다. 학교에 들어간 후 저학년 시기 동안 아이들은 노화와 성장을 연결시킬 수 있게 되는데, 이 연관이 주는 파급 현상들을 평생 완벽하게 이 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일어나 는 불가피한 육체적 변화(흰 머리, 처진 피부, 늘어나는 허리둘레 등)와 심리 적 변화(새로운 태도,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관심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 다. 20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특히나 후자에 대해 망각하고 산다는 것을 발견했다.
스무 살 된 청년들에게 지난 십 년간 그들이 선호하던 것들(예: 음악, 음 식, 취미, 그리고 친구 등)이 얼마나 변했는지 물어보면 그들은 그들의 선호 사항들이 엄청나게 바뀌었다고 말할 것이다(평균 40퍼센트). 그런 다음, 이들에게 다음 십 년간 현재의 선호하는 것들이 얼마만큼 바뀔지 예상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이들이 별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한 다(평균 25퍼센트). 즉, 그들은 테일러 스위프트를 다른 가수보다 초밥을 다른 음식보다, 그리고 요가를 다른 취미보다 늘 선호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 십 년간 계속에서 테일러 스위프트, 초밥, 그리 고 요가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무 살 청년들이 지금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앞으로도 계속 좋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옳은지도 모르겠다. 청소년기는 매 우 빠른 성장시기고 그 시기가 끝날 무렵에 생기는 취향들은 그 이전의 것들보다 더 안정적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 같은 해석의 허점은 서른 살 먹은 사람들도 스무 살 청년들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사십 살이 되어도, 오십 살이 되어도 같은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은 현재 좋아하는 것들이 과거에 좋아 했던 것들에 비해 더 변함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십 년간 의 삶이 앞으로의 십 년간의 삶보다 우리의 정체성 성격(예: 개방적인, 양심적인, 외향적인, 상냥한, 그리고 신경이 예민한)과 핵심 가치관 (예: 성취, 쾌락, 자기주도성, 자비, 전통, 순응, 안정 그리고 권력에 우리가 부여하는 가치)의 형성에 더 크게 기여한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어른들조차도 개인의 정체성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 하는지에 대해 그릇된 이해를 갖고 있다. 우리 어른들은 그러한 변화를 직접적으로 자주 접해왔으나, 여전히 미래에 일어나게 될 변화에 대해 서는 평가절하한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마지막 지점, 즉 우리의 인성 발달에 있어서의 정점에 도달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들보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육체적 변화의 가능성을 인지하는 데는 더 나을지는 모르나,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정신적 변화의 가능성을 인지하는 데는 딱히 더 뛰어나지 않다. 현재의 나 자신은 항상 "진짜 나이고, 그것은 과거의 그리고 미래의 나의 정체성이다.

- 유전자는 변한다. 즉, 암을 일으키는 물질이 있거나 복제에 문제가 있 으면 유전자 변이가 발생한다. 유전자는 균일하지 않다. 즉, 유전자는 여 러 종류의 다양한 형질이 발현하는 과정에 관여한다. 유전자는 서로 구 분되지 않는다. 즉, 유전자는 다른 몇몇의 유전자와 더불어 활동한다. 그 리고 유전자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유전자는 그것이 어떻게 메틸화 되며(즉, 화학적으로 변형되며)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있어서 유기체의 일생 에 걸쳐 변화한다.
유전자와 본질을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태도와 행동 들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유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여기 는 특성들(예: 지능, 충동성, 정신병에 유전자가 기여하는 정도를 과대평가 하여, 이러한 형질들이 변하지 않고 결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구 분(예: 인종, 성별, 성적 성향)이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여길 때 우리 는 각각의 사회적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의 차이점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된다. 우리는 범죄적 행동들이 유전적이라고 여길 때(예: 약물 남용, 가정 폭력, 강간), 이러한 범죄에 가담한 개인들의 도덕적 책임을 최소화시킨 다. 그리고 우리는 유전자 변형한 종의 유전체에서 다른 종의 유전체 로의 유전자 이식을 통해 생산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을 꺼린다' 이 음식들을 먹어도 안전하다고 이미 입증되었음에도 말이다.
유전에 대한 정보를 본질론적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도, 그렇다고 생산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유전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 은 보편적으로 본질론에서 출발하므로, 우리가 이러한 정보들을 해석하 는 데 있어서 본질론은 계속해서 장애물이 된다. 유전공학자들조차도 한때는 생물학적 세계를 구분 가능한, 불변의 본질로 이해하고자 했던 유치원생들이었으니 말이다.

- 니콜 셰이Nicole Shea라는 교육학 연구원은 그 기사들이 어떤 종류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지 분석한 결과, 유전자 관련 기사를 이해하려면 독자들은 몇 가지의 생화학적 사실들을 꼭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1. 유전자는 단백질을 생성하는 데 필요한 설명서를 담고 있으며 이 설명서는 모든 생물체에 있어서 똑같은 분자들만의 언어로 쓰여져 있다.
2. 단백질은 분자들을 운반하거나 화학적 반응을 조절하는 것과 같은 세포 기능을 수행하고, 이 기능들은 단백질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3. DNA의 염기 서열은 종마다 (또는 개인마다 다르고, 이러한 다양성 은 서로 다른 유전적 구조가 어떻게 서로 다른 형태 구조를 이루게 되는지를 알려준다.
4. 환경적 요인들은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며 유전자 발현도 바꿀 수 있다.
- 유전자가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보다 유전자에 대한 믿음이 우 리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이를테면 수학 성취도의 경우, 선 천적인 성별에 따라 수학 성취도에 차이가 생긴다는 증거는 약하나, 사 회적으로 부과되는 성별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는 증거는 강하다." 과학 자들은 유전자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것도 밝혀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전의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는 인식 자체가 우리를 운명론자로 이끈다. 우리의 유전자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지 않으나, 유전자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이를 허용한다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 자연 현상에 대한 지식 중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얻게 된 선천적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질병에 대한 지식일 것이다. 병균과 기생충은 생존과 번 식을 위협하기 때문에 병을 피하는 것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명히 이 로운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전 세계 공통적으로 인류는 병균과 기생충 을 포함하고 있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가진다. 신체 분비물(토사물, 배설 물), 신체 분비액(침, 땀), 신체를 감싸는 표면의 침입(신체의 훼손과 피), 눈 에 띄는 감염의 증상살이 붓고, 색이 변하는 것), 기생충(진드기, 구더기), 그 리고 부패한 유기물(썩은 고기, 상한 우유)이 그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접했을 때 우리가 짓는 표정은 전 세계 누구든 그것이 혐오감을 나타내는 표정임을 알아볼 수 있다. 이 표정은 찌푸린 코와 쑥 내민 혀가 특징인데, 그 두 가지 특징은 실제로 도움이 된다. 찌푸린 코 는 오염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을 제한하며, 내민 혀는 입으로부터 오 염된 물질을 뱉어내게 한다.

- 균과 병의 관계는 어른들에게도 분명하지 않다. 흔히들 추위에 노출되 면 감기에 걸린다고 생각한다. 동서양 문화권을 막론하고 어른들은 이 러한 생각을 갖고 있어서, 감기를 쫓는 방법으로 무거운 외투, 두꺼운 목도리, 그리고 따뜻한 양말을 처방하곤 한다. 그러나 단순히 추위에 노 출되는 것만으로 감기에 걸리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면역학 자들은 한 세기에 걸친 여러 연구들을 통해 추위와 감기는 상관성이 없 다고 밝혔다." 추위로 인해 감기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 저 할머니들이 하는 이야기, 또는 심리학자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민간 신앙 folk belief'에 지나지 않는다.
병에 대한 민간신앙은 질병의 전염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요하지 않 으면서도 예방책을 제공하기 때문에 호소력이 있다. 병이 균으로 인해 생긴다고 믿든지 또는 4체액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생각하든지 상관없 이, 누구든 몸을 따뜻하게 하고, 공기를 건조하게 유지하라는 조언을 따 를 수 있다. 그러나 민간신앙은 틀릴 때가 많으며, 따라서 그에 따른 처 방법 또한 종종 부적절하다. 병의 인과 관계에 대한 지식만이 건강을 지 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 테리 오의 연구들에서, 감기와 독감의 미생물적인 특성에 대해 배운 아 이들은 더이상 전염병의 원인으로 추운 날씨와 습한 기후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전염병의 원인에 대한 또 다른 '민간신앙'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초자연적인 특성의 민간신앙이었다. 여기서 질병 은 속세의 영역을 넘어서 신, 천사, 조상, 그리고 영혼과 관련된 문제로 여겨진다.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에게 병으로부터의 해방은 그들이 신에게 올리는 가장 흔한 기도 중 하나다." 이들은 폐렴이나 간염과 같은 전염병 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도 신의 도움을 구한다. 이는 그들이 세균에 의 해 전염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신과 세균을 상호 보완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의 건강을 관장하는 원 격적 행위자이고 세균은 근접적 행위자다. 다시 말하면, 신은 왜 우리가 병에 걸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고, 균은 우리가 어떻게 병에 걸리 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서구인들은 병에서 낫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은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지만, 결핵이 마법에 의한 것이라는 미국 남부 크리 올Creole 사람들의 믿음, 간질이 귀신에 씌어서 생기는 것이라는 먀오족 의 믿음, 에이즈AIDS가 주술에 의해 걸리는 병이라는 아프리카인들의 믿음 등 다른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믿음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믿음들이 신이 인간의 건강에 관여한다는 유대-기독교 믿음과 같은 형태를 지니고 같은 역할을 한다 는 것을 발견했다.

- 진화론이 제공하는 가장 심오한 통찰 중 하나는 모든 삶의 형태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는 공통조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유인원 및 원숭이뿐만 아니라 참새, 개구리, 해파 리, 그리고 해조류와도 공통된 조상을 갖고 있다. 인간과 해조류의 공통 조상은 아주 오래전, 수십억 년 전에 살고 있었으며 인간보다는 해조류 와 분명 더 많이 닮아 있었다. 아무도 이 조상의 표본을 발견하지 못했 으나, 인간과 해조류가 세포 단계에서 너무나 흡사한 이유를 설명할 다 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공통의 조상이 존재했다고 확신한다. 인 간과 해조류는 유전적 정보를 전달하는 메커니즘(DNA와 RNA)은 물론, 염색체, 리보솜, 미토콘드리아, 그리고 소포체를 공유한다.
공통조상은 생물계와 그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이해함에 있어서 심 오한 함의를 지닌다. 생물학자들은 수십 년간 이러한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생물학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은 종들은 아 주 극소하게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의미들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본질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다른 영장류들과 근본적인 본질을 공유한다는 것은 있을 법한 얘기로 들리지만, 인간이 해파리나 해조류와 근본적인 본질을 공유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 창조론적 설명은 인간 역사상 줄곧 각광받아 왔고, 여기에는 그럴 만 한 이유가 있다. 창조는 진화보다 훨씬 더 단순하기 때문이다. 창조는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인 반면, 진화는 더디고 복잡하다. 창조는 우리에게 익숙한 의도적 설계 과정을 거쳐 일어나지만, 이에 반해 진화는 변이와 선택이라는 그다지 잘 이해되지 않는 과정을 거쳐 일어난다. 창조는 완 벽한 형태를 낳는 반면에, 진화는 생존에 적합한 형태를 낳는다. 그리고 창조는 종이 영원하다는 것을 함의하는 반면, 진화는 종이 상당 부분 예 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변화해왔고 그리고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는 사실 을 함의한다.
창조는 진화보다 간단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종의 기원에 대한 설명 으로 창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유치원생이나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어디서 도마뱀이 처음 생겨났는지, 또는 어디서 곰이 처음 생겨났는지 물어보면, 대체로 창조-신에 의한 창조("신이 동물을 만들었다."), 혹은 그 보다 덜 구체적인 형태의 창조("무언가가 만들었다." "누군가가 만들었다." "어 느 날 그냥 나타났다."를 언급한다." 이것은 진화가 하나의 선택 답변으 로 제시되었을 때 "신이 만들었을까, 아니면 다른 형태의 동물로부터 변화되었 을까?")도 마찬가지다. 가장 놀라운 것은,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들의 믿 음(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과 상관없이 창조적 설명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부모가 같은 질문에 대해 진화를 언급한다 할지라도 아이들은 창조를 언급한다.
창조론에 대한 어린이들의 선호는 이후 신학적으로 더욱 정교한 믿음 체계(예: 창세기에 묘사되는 창조에 걸린 7일)로 이어진다. 이러한 믿음들은 결국 아이들이 자라서 진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차단시키는 식으로 영향 을 준다. 몇몇의 연구'에 따르면 진화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가장 잘 예 측하는 지표는 종교적 믿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는 나이, 성별, 교육 수준, 정치적 견해, 유전학에 대한 지식, 분석적인 사고력, 그리고 과학 에 대한 태도보다도 진화에 대한 태도를 더 잘 예측한다.
-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한 진화적 해석은 종교적 관점에서는 불 쾌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세속의 관점에서 볼 때 오히려 삶에 대한 의욕 을 고취시킬 수 있다. 인간이 생명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수백만 가지 중 하나의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자연에 대한 일체감을 주고 자 연 보존을 위한 행동을 촉구할 수 있다. 인간이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생 각은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돕고, 자아이해와 자아 실현을 촉구할 수 있다. 또한 삶이 본질적으로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광 범위한 차별 행위를 자각하게 하고, 사회 정의를 위한 행동에 나서게 할 수 있다.
진화론자들은 악인 중에서도 가장 악한 사람"혐오스러운, 추악한, 똥 무더기"-으로 책망받았다. 그러나 진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잔 인함, 이기심, 또는 방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반대로, 인간의 존 재를 소중하고 경이로운 선물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이 선물을 최대한 알차게 활용하는 쪽으로 이끈다.
- 보통 사람들은 전혀 조심스러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지 개나 다른 자연 현상들(예: 지진, 혜성, 조류)에 대한 그들 자신의 이해력을 평가해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간 정도의" 이해력(4 정도)으 로 평가한다. 그런 후, 사람들에게 이 현상들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하면 (예: "자 그럼, 무지개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스스로의 이해 력에 대한 자신감이 4에서 3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들이 가진 지식의 수준을 진단하기 위한 질문을 하면 "왜 무지개는 일직선이 아니라 아치형일까 요? 왜 무지개의 색들은 항상 같은 순서로 나타날까요?", 그들의 자신감은 3에 서 2로 떨어진다.
자연 현상에 대한 스스로의 이해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은 '설명적 깊 이에 대한 착각illusion of explanatory depth'이라고 불린다. 이는 직관적 이론 에 바탕을 둔 우리의 설명적 지식이 실제 그런 것보다 더 깊다고 여기는 착각이다. 이 착각은 4살부터 40살에 이르는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 에게서 나타나며, 과학을 그다지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부터 대학 원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까지, 다양한 교육 수준의 사람들에게서 나 타난다. 관련 영역에 관해 상당한 수준의 직접적 경험을 쌓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예: 사이클링 선수에게 자전거의 역학을 설명해보라고 했을 때)? 나 는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 분야의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심리학 주제들에 대해 새로운 강의를 준비할 때마다 어김없이 설명적 깊이의 착각에 빠진다. 한 시간 분량의 수업을 꽉 채울 만큼 수업 주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강의 준비를 시작하지만, 금세 내가 가 진 지식이 5분 분량의 강의를 할 만큼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다. 내가 처음 교수로 부임하고 1년간은 설명적 깊이의 착각으로의 힘 들고도 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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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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