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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5

Quote of the day 2024. 3. 15.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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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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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혁명

사회 2024. 3. 14. 07:03

- 우리 한가운데서 망령이 떠돌고 있다. 그리고 그 망령을 똑똑히 바라 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공산주의나 파시즘 같은 오래된 유령이 아니다. 컴퓨터의 지휘 아래 최대의 물질적 생산과 소비에 온 힘을 쏟아 붓는 완전 기계화 사회라는 새로운 망령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과정 속에서 인간 자신은 기계의 한 부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잘 먹고, 즐겁 게 대접받지만, 수동적이고, 활기 없고, 감정조차 거의 없는 존재로 말이 다. 새로운 사회가 승리를 거두면서 개인주의와 사생활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타인을 향한 감정은 심리적 조건화나 다른 장치, 혹은 약물을 통 해 조작될 것이고, 이것이 또한 새로운 종류의 자기성찰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정보 화사회 technetronic society에서는 매력과 흡인력을 갖춘 개인이 최신의 통신수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면 쉽게 수많은 사람의 감정을 조작하고, 이 성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직화하지 않은 수백만 시민의 개별적 지 지가 한데 모이는 방향으로 추세가 흐를 듯하다."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의 《1984 Nineteen Eighty-Four》와 올더스 헉슬리 Aldous Leonard Huxley의 《멋진 신 세계 Brave New World》 같은 소설에서 이런 새로운 형태의 사회상을 예측한 바 있다.
어쩌면 지금 가장 불길한 것은 우리가 시스템의 통제권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컴퓨터가 계산을 통해 우리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면 우리는 그저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길 뿐이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목적은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밖에 없다. 우리는 무엇도 하려 하지 않고, 하지 않으려고도 않는다. 우리는 핵무기로 멸종의 위협 을 받는 동시에, 책임지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위치에서 배제되어 수동적 인 존재가 되는 바람에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죽어갈 위협도 받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자연을 두고 승리의 정점에 서 있던 인간이 어 쩌다 자기 창조물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스스로 파괴할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됐을까?
과학적 진리를 찾으려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을 우연히 발견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기술과 물질 소비만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 및 생명과의 교감을 상실했다. 종교적 신념 그리고 그와 얽힌 인본주의적 가치 를 잃어버린 인간은 기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에만 집중해서 깊은 정서 적 경험을 하고, 거기에 따라오는 기쁨과 슬픔을 느낄 능력을 상실해버 렸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가 워낙 막강해지다 보니 기계가 자체적으로 자신의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고, 이제는 기계가 인간의 생각마저 결정하 게 됐다.
현재 우리의 시스템에서 가장 심각한 증상 중 하나는 우리의 경제가 무기 생산(거기에 더해서 전체 방위 시설의 유지)과 최대 소비의 원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자신을 물리적으로 파괴 하겠다고 위협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개개인을 완전히 수동적인 소비자 로 전락시켜 소리 없이 죽게 만들고, 개개인이 무력하다고 느끼게 하는 관료주의를 창조한 조건 아래서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해결 불가능한 비극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일까? 경제가 건강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병자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일 까? 아니면 물질 자원, 발명품, 컴퓨터가 인간의 목적에 복무하게 만들 수 있 을까? 제대로 기능하는 강력한 조직을 갖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반드시 수동 적이고, 의존적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 희망이란 존재의 상태다. 준비가 되어 있는 내면의 상태, 열정적이지 만 아직 쓰이지 않은 능동성 activeness*이다. '활동activity' 이라는 개념은 현 대 산업사회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인간의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 우 리 문화 전반은 활동에 맞춰져 있다. 활동은 바쁘다는 busy 의미이며, 바 쁘다는 것은 비지니스의 바쁨busyness(비즈니스business에 필요한 비지니 스busyness)을 의미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너무 '활동적이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멈춰 있을 수가 없다. 심지어 사람들은 소위 여가도 또 다른 형태의 활동으로 바꾸어놓는다. 돈 버는 활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드라이브를 즐기고, 골프를 치고, 무의미한 잡담을 나눈다. 사람들 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순간이다. 이런 종류 의 행위를 활동이라 부를지 여부는 용어 선택의 문제다. 진짜 문제는 자 기가 대단히 활동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이 그런 '비 지니스' 상태에 있는데도 대단히 수동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다는 점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잡담이든, 영화 관람이든, 여행이든, 소 비에서 오는 다른 형태의 짜릿한 쾌감이든 끊임없이 외부에서 자신을 자극해줄 것이 필요하다. 심지어 섹스 파트너로 삼을 새로운 남자나 여 자를 찾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을 '자극하고', 흥분시키고, 유혹해줄 대 상이 필요하다. 이들은 언제나 달리기만 할 뿐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이들은 항상 무언가에 빠져들 뿐, 거기서 결코 깨어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 자신과 직면했을 때 생겨날 불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 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을 뿐인데도 자신을 대단히 활동적인 사람이 라 상상한다.
- 양적 증가가 과연 좋은 것인지, 혹은 이 양적 증가가 대체 무엇에 좋은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더는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 는 사회에서는 이런 부분을 간과하는 모습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양 이라는 한 측면이 나머지 모든 측면의 목을 조르기 때문이다. '많을수록 좋다'라는 이 원칙이 지배하면 시스템 전체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는 것 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노력이 그저 무언가를 더 많이 하 는 쪽에 집중된다면 삶의 질은 그 중요성을 모두 상실하고, 한때는 수단 에 불과했던 활동이 목적이 되어버린다.
- 마르크스는 소비가 증가했을 때 생기는 영향을 가장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경제학 및 철학 원고 Economic and Philosophical Manuscripts》 (1844)에 나오는 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쓸모 있는 것을 너무 많이 만들어내면 쓸모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지는 결과를 낳는다."
"기계는 나약한 인간을 기계로 바꾸기 위해 인간의 나약함에 맞춰 조정되어 있다."
“(사유재산의 시스템 안에서)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필요를 불러일으켜 그를 새로운 제물로 삼고, 그에게 새로운 의존 성을 갖게 하고, 그를 새로운 종류의 쾌락으로 유혹해서 경제적으 로 망쳐놓을 궁리를 하게 된다. 따라서 사물이 많아짐에 따라 인간이 종속되는 낯선 존재의 영역도 함께 늘어난다. 새로 나오는 모든 생산품은 사기와 약탈의 잠재력을 새로이 갖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으로서 점점 가난해진다."
- 논리적 사고가 생명에 관한 관심을 지침으로 삼지 않고, 생명의 전체 적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부분과 모순되는 부분까지 모두 탐구하지 않 고 그저 논리만을 추구해서는 합리적일 수 없다. 반면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까지 더해지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 했다. "마음은 이성 reason이 알지 못하는 이유 reasons가 있다." 감정이 있는 삶에서 합리성이란 사람의 정신 구조를 지지하고 도와 조화로운 균형을 유지하게 하면서 동시에 그 성장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합리 적인 사랑이란 사람의 의존성을 강화하여 불안과 적대감을 키우는 사랑 이고, 합리적인 사랑은 사람과 사람을 긴밀하게 이어주면서 동시에 그 사람의 독립성과 진실성을 보존해주는 사랑을 말한다.
이성은 합리적인 사고와 감정의 조합에서 흘러나온다. 이 두 가지 기 능이 서로 분리되면 사고는 조현병 같은 지적 활동으로 악화하고 감정 은 신경증적으로 삶을 위험에 빠뜨리는 열정으로 악화한다.
- 사고와 감정의 분리는 가벼운 수준의 만성 조현병으로 이어진다. 기술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인간들이 앓기 시작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인간의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 이런 문제와 연관된 느낌에 대해서는 언 급하지 않는 것이 유행이 됐다. 마치 과학적 객관성을 위해서는 인간에 관한 사고나 이론에서 인간에 대한 모든 감정적 고려를 배제해야 하는 것처럼 가정한다
- 여러 세기 동안 확실성을 보장해준 것은 신이라는 개념이었다. 전지 전능한 신은 세상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의심할 여지가 없 는 행동의 원칙도 알려주었다. 교회는 이런 원칙을 구체적으로 '해석'했 고, 교회의 규칙을 따름으로써 교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안전하게 확보한 개인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신은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과학적 접근이 시작되고 종교적 확실성이 침식되면서 인간은 새로 운 확실성을 찾아 나서야 했다. 처음에는 과학이 확실성의 새로운 근거 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세기의 합리적 인간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삶이 인간적인 부분을 모두 상실하고 점점 복잡해지고, 개인은 점점 무기력과 고립감을 느끼게 되면서 과학 지향적인 인간은 이제 합 리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기를 멈추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할 용기, 삶 에 대한 온전한 지적, 감정적 책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용기도 잃어 버렸다. 그는 합리적인 생각으로 얻을 수 있는 '불확실한 확실성 Certainty'을 '절대적 확실성 absolute certainty',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하는 '과 학적 확실성이라 주장하는 것과 바꾸고 싶어 했다.
이런 확실성을 보장하는 존재는 인간의 믿지 못할 지식이나 감정이 아니라 예측을 가능하게 하여 확실성을 보증해주는 컴퓨터다. 대기업의 사업 계획을 예로 들어보자. 컴퓨터의 도움으로 기업은 여러 해 앞서서 사업 계획을 세울 수 있다(인간의 정신과 취향을 조작하는 것도 포함). 경 영인은 더는 개인적 판단에 의존할 필요 없이 컴퓨터가 말해주는 진실 을 따르면 된다. 경영인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그 의사결정 과정은 불신할 필요가 없다. 그 경영인은 컴퓨터의 예언을 자 유롭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독실 한 기독교도가 신의 의지에 반해서 행동할 자유가 없듯이 그 역시 사실 상 컴퓨터의 예언을 거부할 자유가 거의 없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위험을 감수할 리가 없다. 신, 혹은 컴퓨터가 제시한 해법보다 확실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확실성에 대한 이런 필요성 때문에 컴퓨터화된 계획 방식의 효율성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라 할 만한 것이 필요해진다. 그럼 경영인은 의심으 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 조직에 고용된 사람들도 자유로워진다. 컴퓨터 에 기반한 계획 수립이 신과 같은 지위를 갖게 된 것은 의사결정 과정에 인간의 판단이나 감정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 우리 시대는 신의 대체품을 찾아냈다. 인격이 배제된 계산이다. 이 새로운 신은 모든 인간이 희생해야 할 우상이 되었다. 신성함과 확실성의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계산 가능성 calculability, 개연성 probability, 사실성 Factuality이다.
이제 우리는 자신에게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우리가 컴 퓨터에 모든 사실을 제공해주면 컴퓨터가 미래의 행동에 대해 가능한 최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원칙이 뭐가 잘못일까?
사실이란 무엇일까? 사실 그 자체는 정확하고 개인적, 정치적 편견으 로 왜곡되지 않았더라도 그 안에 아무런 의미도 담기지 않을 수가 없다.
- 사실이라도 선택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주의를 정말 중요한 사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거나 사람의 생각을 흩어놓고 파 편화시켜서 더 많은 '정보'를 받고도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만 드는 것이다. 사실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평가와 선택을 암시한다. 사실 들을 합리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런 점을 반드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사실에 대해 중요한 말을 했다.
그는 이성의 기능 The Function of Reason》에서 이렇게 적었다.
"모든 권위의 밑바탕은 생각보다 사실이 우선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사실과 생각의 이런 대비가 잘못 인식될 수 있다. 사실을 경험할 때 생각 이 그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전의 사실은 부분적으로는 그 인식에 수반되는 생각의 사고력을 통해 사실이 된다."
- 모든 위대한 예술은 본질적으로 자기와 공존하는 사회와 충돌한다. 예술은 진실이 해당 사회의 생존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든, 방해하는 것 이든 따지지 않고 실존에 대한 진실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은 혁명적이다. 인간의 현실을 건드리고, 인간 사회의 다양한 과도 기적 형태의 현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반동분자인 예술가는 위대한 예술가이기만 하다면 자기네 사회의 특정한 형태만을 반영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socialist realism' 예술가보다 더 혁명적이다. 전체 역사에서 과거와 현재의 권력자들이 예술을 금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참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예술이 없다면 인간은 영적으로 굶주려 어쩌면 사회의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예술 가가 자신의 독특한 형식과 완벽함 때문에 '외부인'에 대항했고, 자극을 주고 생명을 부여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예술을 정치적 용어로 번역하지 않으니 위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외로도 예술은 보통 교육을 받거 나 정치적으로 덜 위험한 사회계층만 누리는 것이었다. 과거 역사에서 예술가는 궁정 어릿광대였다. 이들이 진실을 말하도록 허락받은 이유는 특별하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제약이 있는 예술 형태로 진실을 표현했 기 때문이다.
- 에고 대 자아, 소유 대 존재에 대한 강조가 커지면서 우리 언어의 발달에서도 화려한 표현들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관습이 되어가고 있다. "나 잠을 잘 못자 I cannot sleep" 대신 "나 불면증이 있어 I have insomnia", "나는 슬프고 혼란스러워 I feel sad, confused" 대신 "나 문 제를 갖고 있어 I have a problem", "내 아내와 나는 서로를 사랑해My wife and I love each other" 대신 "나는 행복한(때로는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갖고 있 어 I have a happy(successful) marriage"라고 말한다." 존재 과정에 해당했던 모 든 범주가 소유의 범주로 바뀌었다. 정적이며 움직이지 않는 에고는 대 상을 소유한다는 측면에서 세상과 관계를 맺지만, 자아는 참여하는 과 정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현대인은 자동차, 집, 일자리, '아이', 결 혼, 문제, 골칫거리, 만족 등 모든 것을 갖고 있다 have.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심리분석가도 갖고 있다I have my psychoanalyst'. 현대인은 '소유'할
뿐 '존재하지 않는다.
- 이제 2차 산업혁명에서 발달해 나온 산업사회를 인간화할 가능성을 살피려 한다면 경제적, 심리적 이유로 우리 사회를 완전히 붕괴시키지 않고는 제거할 수 없는 제도나 방법을 고려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1)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 기업, 대학, 병원 등에서 발달한 중앙집중 식 대규모 사업. 이런 중앙집중화 과정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머지않 아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주요 활동이 대규모로 진행될 것이다.
(2) 중앙집중화로 각각의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계획.
(3) 중요한 이론적, 실용적 제어 원리이며, 컴퓨터를 자동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두고 있는 사이버네이션, 즉 사이버네틱스와 자동화.
하지만 이 세 가지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시스템에서 등 장하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인간 시스템이다. 앞에서도 지적했지 만 인간의 본성이 유연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제한된 숫자의 잠 재적 구조만 허용하기 때문에 일부 확인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게 된 다는 뜻이다. 기술사회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대안은 인간이 수동적이 고, 지루하고, 감정이 없고, 일반적으로 지성에만 의지한다면 불안, 우울, 인격상실, 생명에 대한 무관심, 폭력 같은 병적인 증상들을 키울 것이다. 실제로 로버트 데이비스 Robert H. Davis는 한 날카로운 논문에서 이렇게 적 었다. "컴퓨터로 자동 제어되는 사이버네이션 세계가 정신 건강에 미칠 장기적 영향을 생각하면 심란해진다."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 관료들은 자신도 관료주의 기계의 일부라 느끼고, 대부분 책임을 지 려 하지 않는다. 즉 비판받을 수도 있는 결정을 자신이 내리려 하지 않는 다. 그는 규칙에서 명확하게 규정한 것이 아니면 자기가 결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다른 관료들에게 넘겨버린다. 그럼 그 관료도 똑같이 한다. 관료주의에 찌든 기관과 상대해본 사람은 이렇게 이 관료에서 저 관료로 넘어가고, 또 넘어가다가 아무도 자기 말 을 들어주지 않고 출발점으로 다시 왔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 말을 들어줄 때도 보면 상냥한 경우도 있고, 짜증을 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 만 이들의 태도를 보면 거의 항상 무기력, 무책임,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 을 향한 우월감 같은 것이 뒤섞여 있다. 우리의 관료주의적 방식은 개인 에게 관료주의적 기계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혁신하지도, 조직하지도 못할 거라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 결과 혁신은 마비되고, 깊은 무력감이 생겨난다.
- 인간이 생산과 조직화의 과정에서 수동적이 면 여가 시간에도 수동적으로 변한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다하여 참여하지 않고 물러난다면 인생의 다른 모든 측면에서도 수동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자기를 돌봐주는 사람에게 의존하게 될 것 이다. 이미 오늘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인간은 예전보다 여가 시간이 늘어났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여가 시간에 도 소외된 관료주의 방법으로 강제된 이런 수동성을 보인다. 여가 시간 은 대부분 관람이나 소비의 형태로 이루어질 뿐, 능동성의 발현인 경우 가 드물다.
- 19세기에 글을 썼던 초기 정치경제학자들도 점점 생산을 늘려가는 경 제적 과정은 목표를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님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단 물질적인 삶이 적당한 수준까지 올라오면 생산에 투입하던 에너지를 사회의 진정 인간적인 발전으로 전 용할 것을 그들도 예상하고, 또 바랐다. 더 많은 물질 재화의 생산을 최 종적인 목표로 삼는 것은 그들에게는 낯선 개념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 은 이렇게 적었다.
혼자 있다는 의미로서 고독은 어느 명상에서나 사람에게나 필수적 인 부분이다.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 속에서 맞이하는 고 독은 생각과 열망의 요람이며, 이것은 개인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사회도 이것이 없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활동을 자연에서 더는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만족감도 찾아 들지 않는다. 땅은 한 뼘도 남김없이 모두 인간의 식량을 재배할 경작 지로 변하고, 꽃을 피우는 불모지나 자연적인 목초지도 모두 밭으로 일구어버리고, 가축으로 길들일 수 없는 네발짐승과 새들은 모두 식 량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로 취급해서 몰살하고, 모든 생울타 리와 불필요한 나무는 뿌리째 뽑아내고, 야생의 관목이나 들꽃은 농 업 생산력 개선이라는 명목 아래 잡초 취급을 하며 모두 근절하여 그 들이 자랄 땅마저 남아나지 않는다면 무슨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저 더 많은 인구를 감당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부와 인구의 무제한적 증가로 사라질 것이 생기고, 또 거기에 빚을 지고 있던 지구의 쾌적함도 상당 부분 함께 잃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될 거라면 나는 후대를 생각해서라도 필 요 때문에 강요당하기 전에 정체하는 것에서 스스로 만족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본과 인구의 정체가 인간의 발전도 정체한다는 의미가 아님은 굳 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온갖 종류의 정신적 문화와 도덕적, 사 회적 진보에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삶의 기술 Art of Living을 정진할 여지도 커지고, 인간의 정신이 성공의 기술 에 더는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삶의 기술이 발전할 가능성도 더 높아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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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큰 그림으로 삶을 이해하는 통찰을 회복하고 당신의 힘으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다. 전적 으로 매달리거나, 아니면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선택지도 있다. 바로 완벽주의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짜증스럽 게 굴 땐 거리를 두고, 삶을 풍요롭게 할 땐 즐겨라. 어느 한쪽으 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찾고 완벽주의가 삶에 어느 정도의 영 향력을 행사할지 결정해라. 이것은 긴 여정이다. 어쩌면 멀리 돌 아가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의미 있는 방 향으로 변화를 이루었다면, 그것은 분명한 발전이다.
- 오직 완벽만을 추구하는 전략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스트레스 : 스트레스는 근육 긴장, 두통, 불안, 짜증, 이상 식욕(끼니를 거르거나 폭식하는 것 등)으로 표출된다.
*걱정 : 걱정이 의식을 장악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끊이질 않는다.
*불안 : 불안이 하루 종일, 잠자리에 들 때까지 쫓아와 한밤중에 깨어 있게 만든다.
- 지금까지 이 전략을 고수했다는 것은 게임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고통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은연중에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반면 완벽주의와 맞서 싸우다가 탈진한 나 머지 경기장에 드러누워 패배를 인정할 수도 있다. 대학에서 쉬 운 전공과목만 선택하고, 승진시험을 미루고, 여행가방의 짐을 풀어 정리하는 대신 똑같은 드라마를 세 번씩 보고, 시한이 닥칠 때까지 일을 미룬다. 완벽주의가 당신의 행동에 그 어떤 트집도 잡을 수 없도록 최소한의 노력을 하며 최소한의 행동만 취하는 것이다. 이제 당신의 전략은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한 것도 아니 니까" 혹은 "어차피 완벽할 수도 없는데 뭐 하러 힘을 빼?"가 된다.

- *1년 전보다 삶에 더 만족하는가?
*삶이 원하는 방식대로 흘러가는가?
*불안, 스트레스, 걱정에 지배되는 삶은 추구할 가치가 있는가?
*만약 이 게임이 삶을 통제하도록 방치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시간을 갖고 답변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 답변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완벽주의를 치료하고자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결코 두려움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둔다. 완벽주의 게임을 하면서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면 당연 히 하던 대로 계속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삶이 지금 이대로 좋은지 솔직해지기 바란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웃고 있는지를 묻는 게 아 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거나 시련에 부딪쳤을 때조차도 가슴이 뿌듯하고 영혼이 충만하다고 느끼는지를 묻는 것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삶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릴 생각인가? 또 지금까지 얼마나 오래 기 다렸는가?
우리가 상담했던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추측해 보면 그 게임이 지속될수록 오히려 일에 뒤처져서 아예 포기하 게 되거나, 어느 순간 삶을 되돌아보니 대체로 불행했음을 깨닫 거나, 항상 최적의 조건을 갖추려 늘 무언가를 계획하느라 막상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하거나, 동료들보다 몇 배 더 일하다 탈진 하게 되거나, 의미 있는 일보다는 그저 쉽고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선택하거나,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건설적인 인간관계마저 일부러 파괴하게 된다고 한다.

- 완벽이라는 것은 좋아야 한다고 주입된 하나의 신기루일 뿐이며, 당신은 자꾸만 그것에 속아 결코 이길 수 없는 게임에 휘말리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 완벽주의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와 '부적응적' 완벽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자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유형을 말한다. 그들 의 성취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행복, 삶의 만족, 성실성과 같은 긍 정적인 결과물과 연결되어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자들은 고도로 생산적이면서도 탈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삶의 방식을 좋 아하고, 이 방식은 그들에게 자연스럽다.
반면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자기비판,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에 대한 집요한 추구,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의 고통, 도 달했을 때의 불만족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부적응적 완벽주 의에 우울, 강박장애, 섭식장애, 불안장애 같은 심리상태가 수반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외에도 일상적 스트레스와 부 정적인 기분과도 연관성을 보인다. 이러한 연관성은 어느 문화 권에서나 나타나며 부적응적 완벽주의가 문화를 초월하여 나타 나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모순적이게도 달성하고자 하는 바로 그 목표를 훼손한다. 성공일 수도 있고, 행 복일 수도 있으며, 생산성일 수도 있는 목표 말이다.
- 완벽주의적 지연을 유발하는 또 다른 원칙은 일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기 전에는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 역시 실제로 부딪쳐보지 않으면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방법 또한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답보 상태 로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무 엇이 제대로 된 선택인지 모르겠다는 혼란으로 눈앞의 상황들이 위압적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인지적, 정서적 걸림돌 때문에 시 한이 정해지지 않은 일을 몇 년씩 미루기도 한다. 벽지를 바르는 일일 수도 있고, 창고에 있는 고장 난 자전거를 수리하는 일일 수 도 있고, 새로 이사한 도시에서 새 주치의를 찾는 일일 수도 있다.

- 누군가에게 "걱정 그만해”라고 말하는 것은 "샤워를 너무 오래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건 거의 비를 멈추는 것에 가깝다. 걱정은 완전히 당신의 통제권 안에 있 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당신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생각이라는 것 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생각들은 제멋대로 왔다 가 제멋대로 사라진다. "난 문제가 있어"라든가 "난 절대 잘할 수 없을 거야" 같은 생각들 말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아무리 많은 칭찬을 들어도 부정적인 생각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온갖 여행 블로그를 뒤지고, 웹 페이지를 검색하고, 배우자와 열 띤 토론을 벌인 뒤에도 여전히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인지 몰라 다가오는 휴가 장소를 결정하지 못한다. 좀처럼 떼어낼 수 없는 이 끈적거리는 생각들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떼어내려 해봐 야 소용없는 일일뿐더러 오히려 더 들러붙는다. 그런데도 계속 떼어내려 애쓴다.
당신이 이처럼 반응하는 이유는 그 생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대체로 생존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들이니 까. "빨간불이니 멈춰", "낭떠러지 가까이에 가지 마”, “채소를 좀 더 많이 먹어야지" 같은 생각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머릿 속의 생각들을 언제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원칙과 명령에 따라 삶을 설계하는 것에 익 숙해졌다면 그 생각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외식을 할 때마다 레스토랑 예절을 새로 배우 진 않는다. 그저 이미 알고 있는 레스토랑의 원칙을 따를 뿐이다. 물론 레스토랑 종업원들 앞에서 거들먹거리거나 팁을 박하게 줄 것을 요구하는 특이한 레스토랑에 갈 수도 있겠지만, 경험적으 로 터득한 것들을 활용하되 0.1퍼센트 확률로 틀리는 편이 매번 경험치가 틀릴 희박한 확률을 힘들여 분석하는 것보다 효율적이 기 때문이다.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대체로 도움이 되는 만 큼 역으로 완벽주의에 의해 그 점이 악용될 수도 있다.

- 인간은 본래 일관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논리로 원칙을 강화하는 방식이 통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이유 를 갖고 싶어 한다. 논리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싶어 하고 모순 없 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당신이 이야기의 공백을 메우려 할 때마 다(“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행동의 근거를 대려 할 때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뭐냐면..."), 혹은 당신이 따르는 원칙 들이 왜 합리적인지 설명할 때마다 "절대 실수를 해선 안 되는 이유 가 뭐냐면...”) 당신은 아이들이 하는 사이먼 가라사대 게임처럼 '완벽주의 가라사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명령을 내리 는 주체가 완벽주의인 것만 다르다. 완벽주의 가라사대 게임에 서 모든 것은 반드시 이치에 맞아야 하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원칙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건지 궁금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원칙들과 논리들이 정확히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에 대 한 대답은 명쾌하지 않다. 

- 논리의 한계
완벽주의 가라사대 게임의 실체가 드러나면 당신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원칙과 이유에 의존하고 있는지에 따라 삶에 일종의 진공상태가 발생한다. 갑자기 당신을 이끌어주던 동력이 사라진다. "성공하고 싶어서" 혹은 "일을 망치기 싫어서" 해왔던 일들을 중단한다면 이제 무엇에 의지해 다음 행동을 결정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주입했던 이야기들은 해체되고(어떤 실수도 용 납되지 않는다,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야 안 하는 게 낫다, 성공이 아닌 것 은 다 실패다) 방향을 잃는다.
당연히 우리 마음은 절박한 심정으로 일관성을 복원하 려 한다. 근사하고 완벽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퍼즐 조각들을 재배열하려 애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납득할 수 있는 설 명을 좋아하고 또 갈구한다. 논리를 동원하기 좋아하고, 문제해 결 능력을 발휘하기 좋아한다. 터치스크린, 우주여행, 인공지능, 스마트 가전제품 같은 것들을 만들어낸 바로 그 능력으로 일관성 없는 이야기를 수정하고 싶어 한다. 넷플릭스의 '인트로 건너뛰기' 버튼을 만든 것이 인간의 논리적 능력이라면 논리로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논리에는 한계가 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처럼 보편적인 법칙이라고 해도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 있다. 중 력의 경우 양자영역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논리적인 문제해결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의 영역에서 적용되지 않는다.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분홍색 거북이'를 생각하지 마라. 절대로 분 홍색 거북이를 떠올리지 마라. 떠올리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끊 임없이 평가하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해보아라. 어머니의 생일을 잊어도 속상해하지 말고,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자책하지도 마라. 만약 논리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추울 때 난방장치를 켜거나 배고플 때 음식을 먹는 것처럼 하나 도 힘들이지 않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 깝게도 당신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어도 생각과 느낌에서 벗어 날 방법은 없다.
- 논리 혹은 일관성의 대안은 바로 '기능'이다. 그 생각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집중하고 그 점을 바탕으로 생각에 귀를 기울일지 결정하는 것이다. 생각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그것이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라. 모든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실용성보다 정확성을 반사적으로 우선시하는 경향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도 움이 되는 생각은 야유하는 팬들이 아닌 치어리더와 비슷하다. 그들은 당신이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도록 돕는다. 프레젠테 이션을 하기 전에 "난 잘할 거야”라고 혼자 되된다면 그 말이 진 실인지는 몰라도 도움은 될 것이다. 진실이어도 도움이 되지 않 을 수도 있고("사람들이 내 셔츠의 땀자국을 다 보겠지"), 도움이 된다 고 해서 항상 진실인 것은 아니다("아무도 내 셔츠의 땀자국을 보고 있지 않아"). 아무 조건 없이 오직 당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생각들 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오직 옳은 것에만 관심 있는 생각들에 귀 를 기울이겠는가? 크게 보았을 때 옳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 이런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면 생각들을 호의적인 낯선 사람이라고 상상해보아라. 당신이 중요한 약속에 늦었는데 열차가 고장이 나 멈춘 상황이다. 낯선 사람이 당신에게 "큰일 났네요. 지난 2주간 약속에 늦은 게 벌써 세 번째잖아요"라 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실이냐고? 아마 진실일 것이다. 도움이 되 냐고?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낯선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 들인다면 당신은 정지한 열차 안에서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하 지만 낯선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저런, 하필 이런 상황에서 사고가 나서 속상하시겠어요. 안 그래도 그동안 스트레 스 받는 일들이 많았는데 말이에요." 이 말이 더 도움이 될 것이 다. 우리의 이성이 항상 침착하고 안정을 주는 타당한 말만 한다 면 참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은 일이 틀어졌을 때 문제를 해결 해서 당신의 생명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 그것도 최대한 빨 리. 그것이 바로 생각들이 당신을 압박하고 독촉하는 것처럼 느 껴지는 이유이고, 본능적으로 그 생각들에 끌렸던 이유이다.

- 완벽주의적 생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과 같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무 의미 없는 논쟁에 휘말려 있다. 그 논쟁에 당신의 에너 지를 쏟아붓는 게 맞는지부터 생각해보아라. 언어적 미끼를 물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는 있다. '기후변화', '과잉진압', '백신 반 대운동', '보편적 의료보장', '실패자', '완벽', 그리고 '성공'. 그 미끼 를 물지 마라. 미끼 너머 당신의 목표와 가치를 보아라. 주어진 시 간과 에너지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당신의 정신적, 감정적 자원 을 논쟁보다 더 좋은 곳에 쓰고 싶다면 다른 일을 하라.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방의 의견을 인정한 다음 대화에서 빠져나 와라. 당신의 생각들에게도 똑같이 하라. 인정해주고("아, 네가 소 리를 내고 있는 건 알겠어")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가치 있는 일에 쓰도록 주의를 돌려라.
- 생각들을 고려해보려면 먼저 생각들이 시키 는 대로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생각들은 당신의 삶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조언하려 드는 숙모와 같다. 숙모의 조 언은 대체로 도움이 되지만 당신이 처한 상황에는 딱히 맞지 않 을 수도 있다. 숙모의 조언을 무작정 따르는 것은 숙모가 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지 당신이 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들이 현재의 곤경을 헤쳐 나갈 지혜를 주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럴 땐 그 생각들에 귀를 기울이는 게 좋다.
- 완벽주의는 원칙과 논리를 이용하여 행동에 힘을 행사한다. 완벽주의는 무얼 해야만 하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 알 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실제로 당 신이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 수는 없다. 아무리 강력한 말이어도 아무리 소리가 커도. 따라서 B학점을 받거나 오랫동안 사귀던 사 람과 헤어지면 인생이 끝장날 거라고 완벽주의가 협박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마라.
대신 우리는 다음 세 가지를 권한다. 
첫째, 생각을 생각 으로 여겨라. 생각은 생각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둘째, 사고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라.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 건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셋째, 생각들이 하는 말을 고 려하되 도움이 되는 것은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라. 논리에 맞 고 진실처럼 보이는 것(일관성)보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 이 되는지(기능)에 집중하면 완벽주의의 덫을 피할 수 있다.
-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마음을 여는 연습을 하기에 앞서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불편한 느낌을 없애버리면 될 것 을 왜 굳이 그 느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할까? 첫 번째 이 유는 명백하다. 불편한 느낌을 없애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사항 이 아니고 당신은 경험을 통해 이미 그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 이다. 두 번째 이유는 불완전함을 밀어내는 것, 훌륭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고, 대수롭지 않은 실수에도 스스로 를 비난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은 피곤할 뿐 아니라 자기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 는 고통은 당신이 진정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거절당해 상처받았다면 그 고통은 당신이 관계를 소 중히 여기는 사람임을 말해준다. 구조적 불평등에 분노를 느꼈 다면 사회적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무관 심한 것들로부터 상처받을 순 없고, 관심을 끄지 않는 한 상처받 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달갑지 않은 느낌을 위해서 공간을 만드는 시도는 고통 을 느끼는 작업에 능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당신은 느 낌을 지니고 있는 것에 서툴 수도 있다. 늘 어떤 감정들로부터 도 망치려 했다면 회피하는 연습은 부단히 해온 반면, 느낌을 지니 고 있는 연습은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고통을 느끼는 것에 노 련해진 스스로를 상상해보라. 그것은 고통이 삶에 파고들 때 그것을 느끼되 휘둘리지 않고 있던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수용acceptance'이다. 수용은 너무도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어온 데다 '체념'과도 비슷하게 쓰여서 다소 모 호한 용어가 되었다. 우리는 패배와 상실을 수용한다. 처벌을 수 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용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낯 선 이의 친절과 호의를 받아들인다. 사람들의 덕담과 선물을 받 아들인다. 마찬가지로 불안, 스트레스, 걱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메일로도 할 수 있는 얘기를 직접 하려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 처럼 달갑지 않은 생각과 느낌을 수용할 공간도 낼 수 있다. 수용을 연습하려면 먼저 받아들이는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엇을 받아들일지 명확히 해라. 실패를, 혹은 비참한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들과는 달리 당신은 결과에 대한 통제권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스티븐 헤이 즈 박사는 그 점을 멋지게 표현했다. “당신의 상황이나 행동을 받 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과거와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받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과정중심치료의 한 형태로서 수용전념치료' 라는 제목의 2020년 워크샵에서 그가 한 말이다.) 다시 말해, 살아오면 서 축적한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놀랍 도록 다양한 감정들을 체험하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인간의 특별 한 능력을 받아들이고 또 경탄하라는 것이다. 비록 사소한 차이일지라도 당신이 쓸쓸한 기분과 비참한 기분을 구분할 줄 알고, 짜증 나는 것과 화가 나는 것을 구분할 줄 안다는 건 놀라운 일이 다. 당신에겐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고(물론 그 힘의 범 위는 당신이 처한 상황의 특수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른 행동을 선택 할 힘이 있다. 그러나 당신의 과거와 느낌들은 그저 그 자체로만 존재할 뿐이다.
- 다양한 받아들이기 기술을 시도하다 보면 낯선 곳에 도달하게 된다. 그 깨달음의 순간을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지만 어 느 순간 느낌과 싸우고 있지 않으며, 편안히 숨 쉴 수 있고, 느낌 을 아무 조건 없이 그대로 놓아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소 낯 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조금 홀가분한 기분이 들고, 그 상태에 잠시 머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수용의 기술을 습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운동이나 학문적 기술과 달리 수용의 기술은 무슨 일을 하고 있건 연습할 수 있다. 어떤 감정이든 느껴질 때, 연습해라. 유쾌한 감정으로 연습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건 이미 잘할 것이다. 우리는 좋은 느낌에는 기꺼이 마음을 열면서도 '나쁜' 것 이라고 이름 붙인 느낌에는 그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신호등의 빨간불이 유독 길게 느껴질 때 연습해라. 세 번째로 시 한을 어긴 동료에게 화가 나는가? 연습해라. 6분 전에 받은 상사 의 메일에 아직 답장을 하지 못해서 조급한가? 연습해라. 주말에 끝내야 하는 집안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가? 그 느낌을 위한 공 간을 만들고 목표에 부합되는 행동을 시작해라.
- 느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안달하는 대신 느낌이 존재할 공간을 주고 그동안 다른 중요한 일 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연습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고통 을 위한 고통은 좋아하지 않는다. 힘든 일을 하려면 목적이 있어 야 한다. 따라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만약 불편한 느 낌이 나타날지, 그 느낌이 얼마나 오래 갈지, 어떤 강도일지 더 이 상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은가?"
- 느낌은 삶의 한 부분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느낌이 그토록 집요한 이유는 인류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느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늘 우리에 게 이로웠다. 그러나 오늘날의 다양한 상황에서 동일한 가정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 따라서 느낌이 항상 유효하고 때로는 도움 이 된다고 해도 언제 느낌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언제 뒷마당에서 떼를 쓰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는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 이상의 관심을 주지 않고 호들갑을 떨도록 느낌을 내 버려두는 것, 그것이 바로 수용 연습이다.
수용의 대상은 느낌이지 행동이나 상황이 아니다. 수용 하려면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화를 볼 때처럼 느낌을 바라봐 야 한다. 불쾌한 느낌이라면 더더욱 연습해야 한다. 불쾌한 느낌 을 위한 공간을 만들 때 교묘히 회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 견한다면 다시 관찰 단계로 돌아가라. 관찰이 지속 가능한 상태 에 접어들면 수용에 가까워진 것이다.
- 자기친절은 거창한 무언가일 필요가 없다. 아침식사를 먹는 것일 수도 있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일 수도 있고, 자정이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일 수도 있다. 자기친절은 간 헐적으로 실행할 때보다 꾸준히 규칙적으로 실행할 때 더 도움 이 된다. 자기친절의 장점은 걱정하느라 혹은 지나간 일을 곱씹 느라 허비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고(완벽주 의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생산성이겠지만), 진정성 있게 사람 들과 교류할 수 있다. 자기친절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 는 사람 대하듯 바라보라.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여부 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 당신이 야외활동에 가치를 두거나 모험 을 떠나는 것에 가치를 둘 수 있다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자기 친절에 가치를 둘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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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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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 굿

심리 2024. 3. 12. 07:08

- 우울장애는 질병이며, 건강한 삶에 불필요한 요소 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분이 좋아지는 몇 가지 간단한 방법만 알 고 있어도 우울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의과대학의 정신의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기분장애affective disorder의 치료와 예방에 중요한 돌파구가 될 내용을 보고했다. 이 들은 전통적인 우울장애 치료법이 효과가 없거나 느리다는 데 불 만을 느끼고 우울장애를 비롯한 기분장애를 치료할 완전히 새롭 고 아주 뛰어난 접근법을 개발해 체계적으로 검증했다. 최근 속속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치료법은 그동안의 심리요법이나 약물요법보다 우울 증상을 훨씬 빠르게 개선한다는 사실이 확인 되었다. 이 혁명적 치료법의 이름은 '인지치료'다.
- 그렇다면 현재 우울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 인지치료를 받으 면 우울장애를 전혀 경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마치 매일 조깅으로 몸을 단련한다고 해서 앞으로 절대 숨차는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간이기에 가끔 감정의 동요를 경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단언컨대 여러분은 영원히 변치 않는 행복을 느끼는 상태에는 결코 이를 수 없다! 이는 자신의 기분을 능수능란하게 다스리려면, 효과적인 기 법을 계속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분이 나아지는 것'과 '상태가 나아지는 것'은 다르다. '기분이 나아지는 것'은 저절 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상태가 나아지는 것'은 필요할 때마다 기 분을 개선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실행하고 또 실행함으로써 가 능하다.

- 조증mania도 알아두어야 할 기분장애의 특별한 유형이다. 조증은 우울증과는 정반대다. 이때는 곧장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리튬을 처방받아야 한다. 리튬은 기분이 극단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증상을 안정시 키고 환자가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조증은 치 료받기 전에 정서 파탄을 일으킬 수 있다. 약물이나 알코올 때문 이 아닌데 이틀 이상 기분이 심하게 들떠 있거나 짜증이 계속되는 경우 조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판단력이 떨어졌음을 보여주는(예 컨대 무모하고 과도한 소비 같은) 충동적 행동과 거창하고 허황된 자 신감은 조증 환자들이 보이는 행동의 특징이다. 성적인 행동이 과 해지거나 공격적인 행동이 늘어나고, 쉼 없이 몸을 움직이거나 머 릿속으로 생각이 폭주하며, 흥분한 상태에서 쉬지 않고 말을 하거 나, 자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 증상도 보인다. 조증을 앓는 사람 들은 흔히 자신이 누구보다 힘 있고 똑똑하다는 망상을 품으며, 철 학이나 과학에서 엄청난 업적을 이루거나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기 직전이라고 주장한다. 창의적 업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 중에도 이 질병을 앓고 리튬 처방으로 병을 다스린 사람이 많다. 이 병은 기분을 좋게 하기 때문에 처음 발병했을 때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초기 증상의 도취감이 워 낙 강해서 환자들은 갑자기 찾아온 자신감과 황홀감이 실제로는 자신을 파괴하는 질병이 시작된 징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이 행복감은 통제할 수 없는 정신 착란 상태로 악화되어 강제로 입원해야 할 정도가 되거나, 정반대 로 무기력하게 우울해지면서 눈에 띄게 행동이 둔하고 무감각해 진다. 여러분은 이런 조증 증상을 잘 알아두어야 한다. 진짜 우울장애를 겪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런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며칠이나 몇 주사 이에 인격에 심각한 변화가 생긴다. 심리치료와 자가치료 프로그 램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의사의 감독 아래 리튬 처방을 병행하 는 것이 가장 좋다. 이렇게 치료하면 조증의 회복 가능성은 매우 높다.

-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의 감정은 정상이다. 그러나 뒤틀리고 왜곡된 방식으로 지각하고 있다면 그 감정은 비정상이다. 우울장애는 후자에 해당한다. 우울장애는 항상 정신적 '잡음', 즉 왜곡의 결과다. 우울한 기분은 방송 주파수 를 정확히 맞추지 않았을 때 음악에 지직거리는 소리가 섞이는 것 과 같다. 이 문제는 라디오의 진공관이나 트랜지스터에 결함이 있 거나 나쁜 날씨 탓에 무선 수신되는 방송 신호가 왜곡되어서 생기 는 것이 아니다. 다이얼만 다시 조정하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정신을 조율하는 방법을 배워놓으면 음악은 다시 맑 게 흘러나오고 우울장애는 사라질 것이다.

- 인지치료의 가장 중요한 특징 하나를 꼽는다면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끝까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료 과정에서 나는 환자들에게 부정적 자기 이미지를 체계적으로 재평가하도록 이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똑같이 몇 번씩 던진다. "자신에게 원래 패배자인 면이 있다고 계속 주장하시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자신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다. 자신 이 쓸모없다는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내세우는 증거는 대체로 이 치에 맞지 않는다.
- 부정적 생각에 대한 이성적 대응을 매일 써보는 간단한 훈련이야말로 인지치료의 핵심이다. 이것은 우 리의 사고를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 다. 핵심은 자동적 사고와 이성적 대응을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는 것이다. 이 과정을 머릿속으로만 하면 안 된다. 생각에 대한 대 응을 머릿속에서만 맴돌게 하기보다는 직접 써보는 것이 객관성 을 더욱 높여준다. 또 직접 써보면 우울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의 오 류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세 칸 기법은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 라는 무력감은 물론 왜곡된 생각이 핵심 원인인 광범위한 기분장 애에도 적용된다. 그리하여 파산이나 이혼 또는 심각한 정신질환 등 흔히 완전히 '현실적인 것'이라고 여기기 쉬운 문제에서도 고통 이나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이 책 4부우 울장애 예방과 인격 성장에서 자동적 사고 기법을 약간 변형한 방 법을 이용해 감정 기복의 원인이 잠복해 있는 정신 부위를 꿰뚫어 보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 가령 기분이 고양되고 행복하다면 그것은 자신이 위대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일까, 아니면 그저 기분이 좋다는 뜻일까?
감정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듯 생각이나 행동 역시 우리 의 가치를 결정하지 못한다. 그중에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건 전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 밖에 비합리 적이고 자기기만적이며 부적절한 생각이나 행동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고칠 수 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런 것들이 곧 그 사람이 쓸모없는 존재임을 뜻하지도, 뜻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키울 수 있나요?" 하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답은 이렇다. 일부러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자존감을 만 들어내거나 얻겠다며 굳이 그럴 법한 뭔가를 할 필요는 없다. 우리 가 할 일은 비판하고 선동하는 내면의 목소리의 스위치를 끄는 것뿐이다. 어째서? 우리 안의 비판하는 목소리야말로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내면 의 자기학대는 불합리하고 왜곡된 생각에서 솟아난다.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은 진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우울장애의 핵심에 도사리고 있는 종기일 뿐이다.
따라서 감정이 동요할 때는 다음 세 가지 핵심 단계를 명심하자.
1. 자동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에 관심을 집중하고 기록한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윙윙거리지 못하게 종이 속에 가둬놓는다!
2. 열 가지 인지왜곡 유형을 되풀이해서 읽는다. 이것들이 어떻게 사물을 왜곡하고 과장하는지 꼼꼼히 익혀둔다.
3. 자신을 경멸하게 만드는 생각을 그런 생각이 거짓임을 보여 주는 더 객관적인 생각으로 대체한다. 이렇게 하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다. 자존감이 커지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그리고 당연히 우울장애도) 사라질 것이다.

- 우리는 생각을 바꾸면 기분도 변화할 수 있음을 배웠 다. 이제 기분을 개선하는 데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는 두 번째 접 근법을 알아보자.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행동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면 감정을 느끼는 방 식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 에는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울장애에 빠지면 움 직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울장애의 가장 파괴적인 면 중 하나는 의지력을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가벼운 상태라면 하기 싫은 일을 뒤로 미루는 정도이지 만 의욕 상실이 심해지면 사실상 거의 모든 활동이 어렵게 느껴져 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충동에 휩싸인다. 해내는 일이 거의 없 고 감정도 점점 악화된다. 자극과 즐거움을 주는 일상의 원천을 멀 리할 뿐 아니라 생산성의 감퇴로 자기혐오가 심해지고 그 결과 고 립감과 무력감도 더욱 커진다.

- 틱톡 기법
어떤 일을 손대지 못한 채 미루기만 하고 있다면 그 사실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해둔다. 이런 생각을 '과제 방해 인지task- interfering cognition' 또는 '틱TIC'이라고 한다. 이 생각들을 기록한 후 더 적절한 '과제 지향 인지task-oriented cognition' 또는 '톡TOC’으로 대체해 두 칸으로 된 표에 나란히 적기만 해도 과제 방해 인지는 크게 힘을 잃는다. (표 5-8)은 그 여러 가지 예다. 이 틱톡 표를 작 성할 때는 자신을 좌절시키는 틱 속에 어떤 왜곡이 포함되어 있는 지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이 나 긍정적인 것 인정하지 않기가 가장 큰 적임을 깨달을 수도 있 고, 자기 멋대로 부정적 예측을 하는 나쁜 습관이 있음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일단 우리를 좌절에 빠뜨리는 가장 흔한 왜곡의 유형을 알아차리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할 일을 미루 는 버릇과 시간 낭비도 행동과 창의성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 마차를 말 앞에 맬 수는 없다!
의욕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틀림 없이 있을 것이다. 의욕과 행동 중 무엇이 먼저일까?
의욕이 먼저라고 답한다면, 훌륭하고 논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틀렸다. 의욕이 아니라 행동이 먼저다!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마중물을 부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의욕이 생기고, 물이 즉시 올라온다.
할 일을 자꾸 뒤로 미루는 사람은 흔히 의욕과 행동을 혼동한다.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 어리석게 기다리기만 한 다.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자동으로 미루고 만다.
이런 사람의 오류는 의욕이 먼저 생겨야 행동을 하고 성공에 이 를 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 그러나 보통은 그 반대다. 행동이 먼저 이고, 의욕은 그 후에 생긴다.

- 비난받을 때 우리의 내면을 파탄시키는 덫에서 벗어나는 방법 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왜 사람마다 비난과 비판에 반응하는 정도 가 다른지 살펴보자. 우선 우리의 기분이 상하는 것은 남들 때문도 그들의 따가운 비판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다른 사람의 비판적 언사가 우리의 감정을 손톱만큼이라도 상하게 하는 일은 일생에 단 한 번도 없다. 남이 얼마나 간악하고 무정하 고 잔혹한 말을 내뱉든, 그런 말에는 우리를 괴롭히거나 불편하게 만들 티끌만한 힘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내가 제정신이 아니거나, 완전히 잘못 알고 있거나, 심각하게 비현실적이거나, 아니면 이 모두에 해당하 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장담한 다. 자신을 무시하고, 깔아뭉개고,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바로 자기 자신밖에 없다!

- 람 있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타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 을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비판이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 남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므로, 정작 자신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쏟을 에너지가 별로 남지 않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이 렇듯 남을 만족시키려고 애쓰는 이들보다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많은 사람이 더 매력을 느끼고, 그러 한 태도를 바람직하게 여긴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는 앞 장에서 소개한 인지 기법들에 관 한 일종의 개관이다. 문제의 핵심은 오직 우리의 생각만이 우리를 속상하게 만들 수 있으며, 만일 더 현실성 있게 생각하는 법을 익 힌다면 훨씬 덜 속상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비 판할 때 곧바로 우리의 머릿속에 흔히 떠오르는 부정적 생각을 적 어보자. 이어서 거기에 어떤 왜곡이 있는지 밝혀낸 뒤 더 객관적이 고 이성적인 대응으로 바꾸어보자. 분노와 두려움이 한결 줄어들 것이다.
- 누군가가 여러분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때 그 사람의 행동은 여러 분을 돕거나 해치려는 동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비판자가 하는 말 은 틀리거나 옳거나 또는 그 사이 어디쯤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여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그 대신 비판 자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려는지 파악하기 위해 구체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던져본다. 질문할 때는 판단하거나 방어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계속 더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비판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비판자가 근거가 모호한 모욕적 인 말로 공격하면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서 그 사람이 나의 어떤 면을 싫 어하는지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이 초기 대응 전략은 비판자가 남의 허물 찾기를 그만두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공격과 방어 관 계를 협력과 상호존중의 관계로 변화시킬 수 있다.
- 누군가 우리에게 비난을 퍼부을 때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 를 선택할 수 있다. 첫째, 피하지 않고 비난에 반격한다. 이 방법은 대개 싸움으로 발전해 서로를 파탄낸다. 둘째, 그 자리에서 달아나 거나 피한다. 이 방법은 흔히 수치심을 낳고 자아존중감을 잃는 결 과를 가져온다. 셋째,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상대방을 솜씨 있게 무장해제한다. 이 가운데 가장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세 번째 방법이다. 상대방을 맥 빠지게 만들면 결국 자신이 승자가 될 것이 며, 상대방 역시 대체로 승자라고 느끼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비결은 간단하다. 상대방의 비판이 옳든 그르든 처음에는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치는 방법을 찾아낸다. 

- 야유 받아넘기기
여기서 다룰 내용은 강연이나 강의를 하는 사람에게 특히 유용하다. 나는 대학이나 전문가 단체에서 우울장애 연구 현황을 강의하기 시작할 때부터 '야유 받아넘기기' 기법을 개발했다. 강의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좋았지만 야유를 보내는 사람이 한 명은 꼭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보내는 야유에는 대체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아주 신랄하지만 부정확하며 주제와 관련성도 없다. 둘째, 야유를 보내는 사람은 흔히 동료에게 별로 인정이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셋째, 이들은 장황한 독설을 퍼붓는다.
다른 청중에게도 질문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나는 이런 사람들 을 마음 상하지 않게 조용히 시키는 '야유 받아넘기기' 기법을 개 발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방법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첫째, 지적 해주어서 고맙다는 답변을 즉각 해준다. 둘째, 지적한 문제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셋째, 지적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더 알아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비판자에게 이 주제에 관 해 의미 있는 연구와 조사를 해보라고 격려한다. 넷째, 강의가 끝 난 뒤 이 문제에 관해 더 많은 의견을 나누면 좋겠다고 말한다.
말로 하는 기법이 반드시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위와 같은 낙관적 방법을 이용했을 때 거의 만 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실제로 야유를 던지는 사람들 중 많은 수 가 강연이 끝난 뒤 찾아와 칭찬을 하면서 친절하게 답변해주어 고 맙다고 말했다. 때로는 이런 야유자들이 내 강연에 가장 큰 애정을 보내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한다!

- 이제 생산적 분노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이 기준에 의거해 우리는 지금까지 배운 것을 종합해서 분노에 대해 뜻깊은 철학을 얻을 수 있다.
1. 나의 분노는, 다 알면서도 고의로 불필요하게 나에게 해를 입히려고 행동하는 사람을 향한 것인가?
2. 나의 분노는 유익한 것인가? 바람직한 목표를 이루도록 도울 까, 아니면 단지 나를 좌절시킬까?
예를 들어보자. 여러분이 농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편 선수 한 명이 팔꿈치로 여러분의 배를 고의로 가격한다. 여러분의 화를 돋우어 경기를 망치게 하려는 목적에서다. 그럴 때 여러분은 더 열심 히 뛰어 승리할 수 있도록 분노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분출할 수도 있다. 이 때의 분노는 상황에 적합하다. 물론 경기가 끝나면 더 이상 분노는 필 요하지 않다. 이제 분노는 상황에 부적합하다. 
세 살 난 아들이 위험하게 거리를 마구 뛰어다니고 있다고 하자. 아이가 일부러 위험을 자초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 서는 화를 내는 것이 적합하다. 감정이 격앙된 목소리로 사태가 심 각하다는 경보 메시지를 아이에게 전달해야 한다. 무덤덤하고 아 주 이성적인 태도로 아이를 대한다면 이런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위의 두 사례에서 우리는 화내기를 '선택'한 것이고, 감 정의 정도와 표현 여부를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 분노의 시의적절 한 효과와 긍정적 효과는 적대감과 다르다. 적대감은 충동적이고 통 제 불가능하며 공격적인 행동을 낳는다.
무자비한 폭력을 다룬 신문기사를 읽고 분노가 일었다고 해보 자. 신문에 실린 폭력적인 행동은 분명히 해롭고 비도덕적이다. 그 렇지만 이에 대응할 계획이 없다면 우리의 분노는 상황에 적합하 지 않다. 반대로 만일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희생자를 돕거나 범죄 와 맞서 싸우는 운동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우리의 분노는 상황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 정확한 감정이입
감정이입은 최고의 분노 해독제다. 감정이입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기법 중 가장 효과가 좋은 마법 같은 방법으로, 마법의 거울 따위는 필요도 없다.
우선 감정이입의 정의부터 내리자. 감정이입은 상대방과 같은 방식으로 느끼는 능력이 아니다. 그런 능력은 '공감'이라고 한다. 공감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기는 하지만, 나는 이것이 약간은 과 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감정이입은 상냥하거나 이해심 있 는 태도도 아니다. 그런 것은 감정이입이 아니라 '지지'라고 한다. 지지의 가치도 과대평가되고 있다.
- 그렇다면 감정이입이란 무엇일까? 감정이입이란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의 동기를 정확히 읽고 파악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능력을 기르면 다른 사람의 행동이 자신의 취향과 다르다 해도 분노하지 않고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바로 나의 생각이 실제 분노를 만들 어낸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놀랍게도 다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 하는지 이해하는 순간, 분노를 일으킨 우리 자신의 생각도 거짓임 을 깨닫게 된다.

- 우리가 실수를 했을 때 필요한 것은 인식, 배움, 변화의 과정이다. 이때 죄의식은 이 가운데 어떤 것에 도움이 될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죄의식은 실수를 인식하도록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실수를 덮어버리게 한다. 어떤 비판에도 귀를 닫고 싶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끼는 것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에 잘못을 질렀다는 사실 자체를 견디지 못한다. 죄의식이 비생산적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우리는 당근이나 채찍의 방법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 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나는 이걸 해야 해' '저걸 하지 말아 야 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만 한다면 평생 '해야 한다' 식 사고 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이미 그 귀결이 무엇인지는 알고 계실 겁니다. 정서적 변비에 걸리고 마는 거죠. 정말 상황 을 개선하고 싶다면 벌보다는 상으로 의욕을 고취하라고 권하 고 싶습니다. 이 방법이 훨씬 효과가 있을 겁니다.
- 사실 불평꾼이 계속 똑같은 반응을 보이게 만드는 것은 이들을 돕겠다는 우리의 충동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들의 비 관적 푸념에 맞장구를 쳐주면 그들은 순식간에 김이 빠져버린다. 약간 설명을 덧붙이면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사람들은 푸념이나 불평을 할 때 대개 짜증, 기죽음, 불안감을 느낀다. 우리가 돕겠다 고 하면 그들은 자신이 일을 잘못 처리하고 있다고 비난당하는 것 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막상 맞장구를 쳐주고 칭찬을 해주면, 그 들은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긴장이 풀리며 안정 을 찾는다.

- 다음은 많은 사람이 효과를 본 몇 가지 생각이다. 자신의 목록을 작성할 때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1. 누군가 우리에게 부정적 반응을 보일 때, 그 비난의 핵심에는 그 사람의 비합리적인 생각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설사 비판이 타당하다고 해도, 그 비판이 우리를 파멸로 몰 아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실수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를 하 나씩 고쳐나갈 수 있다. 그렇게 실수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 울 수 있다. 실수를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인간이라면 당 연히 이따금 실수할 수밖에 없다.
3. 일을 망쳤다고 해서 타고난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항 상 또는 거의 항상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해온 수많은 옳은 일을 생각해보자! 더구나 인간은 변하고 성장한다.
4. 다른 사람은 우리의 인간적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그들은 다만 우리의 특정 행동이나 말의 타당성이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5. 우리의 행동이 훌륭하든 아니든,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 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비난은 들불처럼 순식간에 번질 수 없으며, 한 사람의 거부반응이 다른 사람의 거부반응으로 끝 없이 이어질 수도 없다. 그러므로 심지어 상황이 더 악화되 고 누군가에게 거부당한다고 해도 완전히 외톨이가 되는 것 은 아니다.
6. 인정받지 못하거나 비판받는 일은 대개 불편하다. 그러나 불 편함은 언젠가 사라지게 마련이다. 울적해하지 말자. 예전에 즐기던 활동이 있다면, 당장은 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고 여 겨지더라도 적극적으로 시도해보자.
7. 비난과 비판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만큼만 우리의 감정을 동요시킬 수 있다.
8.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거의 오래가지 못한다. 비판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과 우리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 니다. 논쟁은 삶의 일부이며, 대개 나중에는 서로 이해하게 된다.
9.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한다 해도 그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이 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를 판단할 힘과 권 리를 남에게 주려 하는가? 우리는 모두 인간일 뿐 대법원 판 사가 아니다. 남의 권능을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지 말자.

- 인정받지 못하거나 거부당한 상처에서 회복하기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는데도 사실상 인정받지 못하 거나 거부당했다고 해보자. 이때 일어나는 감정 동요를 어떻게 하 면 가장 빨리 극복할 수 있을까? 먼저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 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실망스러운 작은 일 하나로 우리의 행복을 영원히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거부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했을 때 우리의 기 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생각이다. 그러니 이런 생각과 맞서 싸우고 왜곡된 자기학대에 굴복하기를 완강히 거부한다면 감정 동요는 사라질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 오랫동안 슬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 이 돼온 방법이 이 경우에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 가족과 사별했을 때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고통스러운 기억과 세상을 떠난 이와의 추억에 잠기면 슬픔을 더 빨리 극복하고 끝마칠 수 있다. 이 방법은 혼자 할 때 가장 효과가 좋다. 다른 사람의 동정은 오히 려 역효과가 난다. 몇몇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동정은 오히려 슬픔에 잠겨 힘겨워하는 기간을 늘린다고 한다.
거부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했을 때 이 '슬퍼하기' 방법을 써보자. 매일 한두 번씩 시간을 정해서(한 번에 5~10분) 슬프고 화나고 절 망스러운 온갖 생각을 마음껏 하는 것이다. 슬픔을 느끼면 소리 내어 운다. 미칠 것 같으면 베개를 두드려 팬다. 정해둔 시간 내내 고통스러운 기억과 생각에 푹 잠겨 있도록 한다. 

-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현명해질 수 있는 문이 두 개 있다. 하 나에는 '완벽함'이라 쓰여 있고, 다른 하나에는 '평범함'이라 쓰여 있다. 완벽함의 문은 화려하고 고급스럽고 우리를 현혹한다. 우리 는 이 문을 통과하고 싶다. 평범함의 문은 칙칙하고 단조롭다. 누 가 이런 문을 원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완벽함의 문을 통과하려고 애쓰는데, 그러다 문 너머에 있는 단단한 장벽을 발견한다. 이 벽을 깨려고 시도하면 코 피가 흐르고 두통이 생긴다. 이와는 반대로 평범함의 문 너머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 하지만 이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는가? 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분이 반드시 내 말을 믿을 필요는 없다. 여러분은 회의적인 장을 계속 유지해나가기 바란다. 그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다만 내가 말하는 내용을 잘 검토해보기 바란다. 살면서 단 하루만이라 도 평범함의 문을 통과해보자. 틀림없이 깜짝 놀랄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완벽함'은 모든 사람이 꿈꾸는 궁극의 환상이 다. 완벽함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함은 사실 세상에서 가 장 거창한 사기 행각으로, 부를 약속하지만 불행만 가져다준다. 완벽을 추 구하면 할수록 실망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완벽함이란 단지 추상적 개념,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 개념을 깊 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면 모든 것이 더 좋아질 수 있다. 모든 사 람, 모든 발상, 모든 예술작품, 모든 경험을 개선할 수 있다. 

- 현재 처방하는 대부분의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노르 에피네프린, 도파민의 활동에 영향을 끼친다. 항우울제 가운데 어 떤 것은 하나의 신경전달물질만 선택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항우울 제는 많은 전달물질에 작용한다. 하지만 현재 처방하고 있는 항우 울제가 이 세 가지 물질에 끼치는 효과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 어떤지를 설명해주는 아주 일관되거나 설득력 있는 증거는 아직 없다. 예를 들어 어떤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농도를 자극하고, 어떤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수용체를 차단하며, 어떤 것은 세로토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나름대로 좋은 효과가 있다. 
- 우울하다면, 뇌에 '화학적 불균형'이 생겼다는 뜻일까?
뇌의 화학적 불균형이나 호르몬의 불균형이 우울장애를 일으킨다 는 미신에 가까운 믿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믿음 은 증명되지 않았으며 사실이 아니다. 17장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아직도 우울장애의 원인을 알지 못하며 항우울제가 어떻게, 왜 작 용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우울장애가 화학적 불균형 때문에 생긴다는 이론을 2천 년 전부터 주장해왔지만 아직 증명되지 않았 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확실히 아는 게 없다. 게다가 특정 환자 나 환자 집단이 우울장애를 앓는 원인이 '화학적 불균형'이라는 점 을 증명해줄 수 있는 실험이나 임상증상도 전혀 없다.
- 두 가지 약물이 상호작용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네 가지 방식이 있 다. 첫 번째로, 하나의 약물이 혈액 속에 있는 다른 약물의 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두 가지 약을 '정량만 복용했는데도 때때로 경 고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 혈액 속 약물 농도가 갑자기 증가하 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우선 부작용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부 작용은 대개 복용량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많은 정신과 약물 은 복용량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으면 약효가 떨어진다. 끝으로 어 떤 약물의 혈액 내 농도가 너무 높으면 중독되거나 치명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 약물 상호작용의 두 번째 유형은 첫 번째와 정반대다. 하나의 약 물이 혈액 속에 있는 다른 약물의 농도를 끌어내릴 수 있다. 그러 면 정량대로 복용하더라도 두 번째 약은 효과가 없을 수 있다. 그 런데 환자나 의사가 이 사실을 착각해 약 자체가 효과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정작 문제는 환자의 혈액 속 약물 농도가 너 무 낮다는 것인데 말이다.
- 상호작용의 세 번째 유형은, 두 가지 약물이 각각 비슷한 효과나 부작용이 있어서 서로를 강화해주는 경우다. 예를 들어 고혈압 때 문에 치료받고 있는데, 혈압을 내리는 부작용이 있는 정신과 약물 을 복용한다고 해보자. 혈압이 순식간에 뚝 떨어져서, 갑자기 자리 에서 일어서다 기절할지도 모른다.
약물의 상호작용 가운데 네 번째 유형이자 가장 불길한 유형은, 혈액 속 약물 농도를 바꾸지는 않지만 특정한 약물 결합의 효과 때문에 중독되는 경우다. 다시 말해 따로따로 복용하면 안전한 두 가지 약물도 함께 복용하면 위험한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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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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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코스 세계지리

etc 2024. 3. 11. 12:22

- 남극 대륙은 수천만 년 동안 쌓인 얼음의 무게 때문에 대부분이 해수면 아래에 잠 겨있다. 실제로 빙상을 제외한 남극 대륙의 평균 고도는 해저 150m로, 땅이 얼음의 무게에 눌려 600m 정도는 내려앉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만약에 남극 대륙에 있는 얼음이 모두 녹는다면 어떨까? 땅이 융기해서 크고 작은 섬들이 생기며 평균 고도 700~800m의 고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부분은 아무리 얼음이 쌓여있다 해도 남극은 대륙이라는 점이다. 그 커 다란 얼음 밑에는 산이 있고 계곡이 있고 호수도 있고 심지어는 화산까지 있단다. 보 스토크호라고 이름 붙여진 한 호수는 1.4만km2라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경기도의 면적보다도 크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4,000m가 넘는 얼음 밑에 파묻혀 있 는데도, 호수물이 얼지 않고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
남극의 신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남극반도 끝에는 칼데라형 화산섬인 디셉션섬 이 있는데, 1967년에 실제로 화산이 폭발했다. 그 후 지금까지도 온천수가 샘솟아 남 극에서 온천욕 하기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관광코스로 개발되기도 했 다니, 버킷리스트에 '남극에서 온천욕하기'를 올릴 사람은 한번 넣어 보자.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씨앗을 찾아가보면 2014년의 크림 위기 사태로 돌아 가 볼 수 있다. 크림반도는 흑해에 있는 반도로 얄타회담이 열렸던 장소로도 유명하 고,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도시 소치와도 가깝다. 크림반도는 과거 러시아의 남하 정 책으로 러시아에게 정복된 뒤, 오랜 기간 러시아에 속해 있다가 1954년 우크라이나 로 편입되었다. 이때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나 전부 소련의 영토였기 때문에 문제될 점이 없었다. 문제는 소련 붕괴 1991년 후였다.
우크라이나는 동부와 서부의 차이가 크다. 서구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부와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동부는, 문화도 종교도 언어도 이질적이다. 특히 크림반 도 지역은 오랜 시간 동안 러시아인들이 러시아어를 쓰면서 살고 있던 지역이었다. 2014년의 크림 위기는 소치 올림픽 기간에 일어나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크림반도에서는 러시아와 합병할 것인가에 대한 주민 투표가 이루어졌는데, 96%가 러시아와의 합병에 찬성하는 결과가 나왔다. 러시아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파견했고, 크림반도 반환을 요구했다. 이때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실효지배 아래 들어갔고,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으며 국제사회 에서도 아직까지 우크라이나의 편을 들어주는 상황이다. 당시에도 전쟁이 코앞까지 다가올 뻔 했으나 그때는 전쟁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자, 지역 주민의 투표로 나라가 바뀌었다니 어찌 보면 굉장히 민주적인 절차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숨겨진 사정이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정권이 무너 지고 친서방 중심의 임시정권이 들어서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서구 유럽과 가까 워지는 것에 대한 어마어마한 견제에 들어갔다. 러시아는 가뜩이나 소련 붕괴 후, 한 때는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했던 지역들이 하나 둘씩 서유럽 공동체 쪽으로 향하는 것이 불안했다. 우크라이나는 최종적으로 러시아가 서유럽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가 는 것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크림 위기 때만 해도 그 누구도 푸틴 대통령의 행보를 예상하지 못 했다. 많은 이들이 러시아가 미국과 서유럽을 향해 경고성 도발을 할 뿐이라 여겼지 과연 전쟁을 일으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러시아는 소련 시기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었고, 국민들은 현재 약해진 러시아의 입지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 푸틴 대통령은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더 이상 미국과 서유럽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고 말한다. 푸틴 대통령의 인기 요인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되며 국내에 서의 반전 여론도 커지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푸틴 대통령이 종신집권을 위해 무리 한 정치적 전술을 펼치고 있다는 의견이다. 결국 푸틴의 행보가 러시아를 국제적으 로 고립시키는데 더욱 일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 열대 기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 년 중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이 18°C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일 년 내내 여름인 셈이어서 계절의 변화가 미미하다.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어 연교차보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지역이다.
연교차보다 일교차가 크다 하여 일교차가 진짜 큰 것도 아니다. 사계절마다 옷장 을 새로 정리해야 하고, 황사와 장마 대비까지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선 그들의 삶이 조금 부럽기도 하다. 얼어 죽을 일도 없고 맛있는 열대과일까지 있으니 말이다. 다만 비가 자주 와서 일 년 내내 후덥지근하다.

- 방글라데시 인근에 있는 인도 메갈라야지 방의 작은 마을 체라푼지는 세계에서 연간 강수량이 가장 많은 마을로 꼽히는데, 최 대연 강수량이 26,471mm, 최대 월 강수량은 9,300mm라는 믿기 힘든 기록을 가지 고 있다. 이쯤 되면 홍수를 넘어 대재앙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만 보면 열대몬순 지역은 저주받은 기후가 아니냐 싶겠지만, 원래 축복과 재앙은 동시에 온다. 벼농사를 짓기에 최적의 기후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 부지방에서나 겨우 2기작을 했는데, 열대몬순 지역에서는 3기작 아니, 4기작까지도 가능하다. 게다가 고지대가 만드는 일교차에 풍부한 일조량과 습도까지 더해져 질 좋은 차가 재배되기에 적격이다.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차 산업이 굉장히 발달했고, 세계적인 명품 홍차 브랜드인 다르질링과 아삼은 모두 인도 벵골만에서 재배되며, 실론티로 유명한 스리랑카 중부고원 또한 열대몬순의 영향을 받는 곳이다.

- 냉대 기후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일 년 중 가장 더운 달의 평균기온이 10°C 이상이어야 하고,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이 -3°C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최한월의 평균기온을 -3°C가 아닌 0°C 이하로 잡는 기준도 있다. 0°C를 기준으로 적용했을 때만 한반도 중부 지역이 냉 대 기후에 포함된다.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이 -2.4°C로 -3°C에는 조금 덜 미치기 때 문이다. 엄밀히 -3°C 기준을 적용한다면 한반도 중부는 온대 기후에 들어가는 셈이 다. 우리나라는 냉대와 온대의 한계에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냉대 기후를 항상 추운 지역이라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세계 기후 중 연교차가 가장 큰 기후이기 때문이다. 겨울철에 -40°C까지도 거뜬히 내려가는 시베리아가 한 대 기후가 아닌 냉대 기후인 이유는? 여름철 평균 기온이 10°C 이상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연교차 기록을 세웠다는 러시아 베르호얀스크는 1월 평균기온이 -45.4°C 이고, 7월 평균 기온이 16.5°C다. 연교차 평균이 61.9°C까지나 벌어지는 셈이다. 연교 차가 28.1 °C인 서울도 세계적으로 연교차가 큰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데, 베르호얀 스크의 연교차는 어마어마한 기록이 아닐 수가 없다.
냉대기후가 펼쳐진 지역을 한 번 살펴보자. 옆의 지도를 보고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북반구엔 냉대 기후 지역이 저렇게나 넓은데, 남 반구에서는 냉대 기후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왜일까? 생각보다 답은 간단하다. 냉 대 기후는 고위도의 넓은 대륙에서 볼 수 있는데, 남반구에는 냉대 기후가 만들어질 만한 위도에 거대한 대륙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  한대기후가 냉대 기후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일 년 내내 기온이 낮아 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보통 그 기준점을 '최난월 평균기온 10°C'로 잡는다. 나무가 없다고 식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름을 맞아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는 순간, 수많은 이끼들 이 빼꼼 고개를 내미니까. 하지만 이조차도 한대 기후 중에서 툰드라 기후에만 한정 된 이야기다. 식물이 살 수 없는 빙설기후도 있으니 말이다.

- '사하라'라는 이름은 아랍어로 '사막'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하라사막'을 풀이하면 '사막사막'이 되니 '역전앞' 같은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사하라는 무려 250만 년 전에 생 겨났다. 거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편견 중 하나가 '사하라는 모래사막'이라는 얘기다. 당연 히 아니다. 사하라의 단 20%만 모래사막이며, 아무리 사하라라도 나머지는 암석사막으 로 이루어져 있다.
아프리카 대륙은 광활한 사하라의 존재 덕에, 사하라 지역과 사하라 이남의 문화가 완전 히 다르다. 사하라 지대는 아랍 국가이며 이슬람을 믿는 데다가 백인이 거주한다. 하지 만 사하라 이남은 흑인이 거주하며 주로 토착 종교와 가톨릭을 믿는다. 아프리카의 다양 한 문화를 '아프리카'라는 단어 하나로 퉁치는 것은 매우 나쁜 편견이다. 서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가 매우 다른 것처럼, 북아프리카와 중남부 아프리카는 외양도 문화도 매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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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이 중요하다

etc 2024. 3. 11. 12:21

- 지리적 렌즈를 통해 문제를 살펴보고 통찰력을 발휘하는 지리학의 탐구 대상은 다양합니다. 1979~1980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전문 가는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직 동료 중 한 명의 회상에 따르면, 언론과 정책 토론에서는 소련 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동기를 주로 두 가지 측면으로 초 점을 맞추었습니다. 하나는 이 침략이 오랫동안 러시아가 추구해온 부동항 확보를 위해 인도양으로 나아가려는 첫걸음이었다는 분석입니다(아프가니스탄은 내륙에 고립되어 있기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인구밀도가 낮은 파키스탄 의 남서쪽이 다음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 침략이 오랫동안 진행된 러시아 영토 확장 정 책의 연장선이며, 아프가니스탄을 소비에트연방에 편입 시키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당시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었으며, 두 분석 모두 정책 당국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시청자에게 이런 피상적인 설명이 그럴듯하게 들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기초적인 지리 지식을 갖추 고 지리적 사고력을 적용하면 각 주장의 결정적인 오류 가 금방 드러납니다. 우선 파키스탄의 지도를 보면 남서 해안에 큰 항구가 없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륙이 너무 얕아 대형 선박이 해안에 쉽게 접근할 수 없고(향후 직면할 국제분쟁을 고려한다면 이곳을 얻 기 위해 싸울 만한 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될 경우 소속될 1800만 명에 달하는 무슬림 또한 소련 당국에는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우리는 지리적 분석을 통해 소비에트연방의 실제 의도는 물론 실패로 끝났지만 동유럽 국가들처럼 아프가니스탄을 통제하면서 연방 남쪽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었음을 자 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 사례를 통해 보듯이 기본적인 지리적 사실과 지리적 사고력을 갖추면 날카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부 기관, 유력한 인물 또는 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맞추 기보다 지리적 렌즈를 통해 문제를 바라보면 기본적인 공 간 유형, 환경과 상황, 위치적 특성이 끼치는 영향 등에 주 목하게 됩니다.

- '어디where'라는 단어는 지리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 입니다. 어떤 현상이 지구 위의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부 터 지리학의 모든 논의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리학은 단순히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에 그치지 않습 니다. 그러한 현상이 '왜 그곳에서 why there' 발생했고, 그것 이 '어떤 의미 so what'를 지니는지 계속 질문하는 게 중요 합니다. 나아가 어떤 공간적 배치 spatial arrangements와 변이 variations의 과정을 거쳐 상호 연결성 interconnections을 갖게 되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지도는 의도적이든 암묵적이 든 우선순위와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반영합니다. 어떤 투 영법(평면 지도에 지구의 곡면을 나타내기 위해 채택된 방법)을 사용하여 지도를 제작할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평면에 둥 근 행성의 특징을 왜곡 없이 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지도의 투영법을 선택하면서 필연적으로 특정한 주제를 다른 주제보다 더 정확하게 표 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확인하게 되죠. 수 세기 동안 북미와 유럽에서 제작된 세계지도는 메르카토르 도법을 채택 했습니다. 지도 중앙에 대서양이 위치하는 이 지도는 항 해에는 유용했지만, 육지 면적이 지나치게 왜곡되는 (극 지역은 크게 확대되고 적도 부근은 축소되는) 문제가 있었습니 다. 그린란드가 아프리카보다 더 커 보이거나 동아시아는 주변으로 내몰리는 대서양 중심 세계지도가 전 세계로 보 급되면서 서구중심주의가 강화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즉, 대서양 중심의 메르카토르 지도의 광범위한 사용 에 따른 영향을 정확하게 계산할 방법은 없지만, 아프리 카와 동아시아를 소외시키고 북미와 유럽의 관점을 강조 되는 경향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특정한 정치적 목적하에서 지도가 제작되고 편향된 정 치적 의도가 지도를 통해 전파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 를 들어, 한국과 일본 사이의 동해와 독도의 명칭을 둘러 싼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도는 분쟁 지역에서 한나라 또는 다른 나라의 영토 주장을 보여주는 수단입니다. 또한 특정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거나 특정 활 동의 환경적 결과를 강조하는 데에도 지도도 활용되고 있 습니다. 지도 제작과 정치의 연결 고리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는 냉전 시대에서 찾을 수 있는데, 냉전 시대 소련 의 위협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강조하기 위해 미국은 <그림 2_10>과 같은 극지방 중심의 투영법에 기초해 지 도를 만들고 널리 보급했습니다. 나아가 미국은 이 지도 를 통해 미국에 대한 소련의 잠재적 위협을 강조하는 효 과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장소를 정체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우리가 '민족 국가nation-states'에서 살고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의심 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민족nation'이라는 단어는 영어 에서 혼란스러운 단어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 는 양립할 수 없는, 여러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민 족이 때로는 독립 국가(인도네시아, UN)와 동의어로 사용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원주민 공동체의 집합(퍼스트네이 션First Nations)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독립을 쟁취하 고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데 기반이 되는 실질적 민족 공 동체(쿠르드족 또는 팔레스타인령 등)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 기도 하니까요.

- '민족국가'라는 개념은 각자 별개의 영역에서 각자가 처한 상황을 관리하고 통제하고 역사와 문화, 나아가 정 체성에 대한 상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는 어원에 뿌리 를 둡니다.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역사를 보유한 민족(즉, 용어의 원래 뜻은 세계 국가)에게 자신만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부추겼 습니다. 프랑스라는 국가는 프랑스 국민에 의해 수립되었 고, 19세기와 20세기 초 다른 유럽 국가들은 민족주의 운 동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독일인을 위한 독일, 이탈리아인을 위한 이탈리아, 루마니아인을 위한 루마니아 등이 사례인데, 지리적 관점에서 이러한 국가명은 정확한 의미 의 민족국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각 국가에서 자신을 프랑스인, 독일인, 루마니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배 타적으로 영토를 다 차지하지 못한 것은 그 땅에는 오랫 동안 여러 다양한 민족이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민족과 국가 간 관계의 복잡성을 상세히 탐구하는 것은 이 짧은 책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하지만 명심할 사항은 '민족국가' 개념이 처음부터 일종의 허구였다는 점입니 다. 특히 유럽 열강의 식민제국이 해체되고 각 국가에서 새로운 정치 지도가 등장하면서 민족국가' 개념은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세계 정치 지도에 표기된 국명처럼 민족국가로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일 수 있지만, 오 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다양한 문화역사 공동체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민족국가' 개념과 실제 현실 간의 차이와 그 의미를 제 대로 이해하려면 정체성과 정치적으로 조직된 영토(공식 지역)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지리적 사고가 필수 입니다. 지리적 사고력을 적용해 살펴본 '민족국가' 개념 에는, 특정 국가에 소속된 시민은 국가 자체를 헌신적인 공동체로 생각할 것이라는 강렬한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 좀 더 큰 규모에서 '이슬람 세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 념을 한번 비판적으로 성찰해봅시다. '이슬람 세계'를 확 실한 지정학적 실체로 단정하거나 별 생각 없이 일반명사 처럼 사용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슬람 세계'라는 명칭은 단순히 이슬람이 주요한 종교인 지역을 의미하지는 않습 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지도의 면이 아니라 현존하거나 또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지정학적 노드'로 보아야 합니 다.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 Samuel Huntington 은 1990년대 '문명의 충돌'과 관련된 영향력 있는 책들을 출간해, 세계를 단순하게 보는 고정관념을 확산시켰습니다. 헌팅턴은 20세기의 중요한 지정학적 단층선을 기본적으로는 정치 이데올로기 (공산주의/독재대 자본주의/민주 주의)로 나누고, 이러한 단층선이 서구의 유대-기독교 문 명과 이에 대항하는 이슬람 세계와 같은 문화적·종교적 특성을 따라 분열되는 중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최근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민족 간의 갈등은 이슬람 세계를 매우 동질적인 지정학적 행위자로 보는 헌팅턴의 관점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헌팅턴의 주장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 받고 있고,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al-Qaeda가 감행한 미국 본토 공격으로 그의 영향력은 확실히 입증되었습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Saddam Hussein과 알카에다는 원 래부터 대립하는 관계였고 이라크는 알카에다와 별 상관 이 없음에도 이라크는 미국의 주요한 보복 대상이 되었습 니다. 불과 10여 년 전에 이란과 이라크는 서로 8년 동안 유혈 전쟁을 벌인 사이였지만 미국은 터무니없게도 두 국 가를 '악의 축'이라고 묶어버렸습니다. 미국이 이라크에 개입한 명분 중 하나는 "스페인부터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급진 이슬람 제국의 수립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미 국의 이와 같은 황당한 목표는 사회적·문화적으로 너무 나 다양한 국가로 구성된 이 지역에서 통일된 이슬람 제국의 출현이 가능할 정도의 공통점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엉터리 가정에 기초했습니다.

- 세계의 특정 지역에서 성공한 도시화 방식이 다른 도시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지리학에서 장려하는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지 않 고 다른 지역의 도시 개발 방식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은 지역의 이익에 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세계의 빈곤 지역에서 사회경제적 발 전과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실패로 끝 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지역의 특수한 상황을 간과한 채 좋은 의도를 갖고 접근하면 모든 문제가 쉽게 풀릴 거 라는 단순한 생각과 안이한 자세 때문입니다. 널리 알려진 실패 사례는 경제학자인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컬럼 비아대학 교수가 주도한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입니 다. 케냐의 더투Dertu에 현금과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투 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로 이 때문에 현지 전 통이 파괴되고 지역의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인근 마을 에서 많은 이주민이 더투로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유목민 이 거쳐가는 교통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죠. 《이상주의자들: 제프리 삭스와 빈곤 퇴치를 위한 모험 The Idealist: Jeffrey Sachs and the Quest to End Poverty》의 저자인 니나 멍크Nina Munk는 지역의 특성을 무시한 프로젝트의 끔찍 한 부작용에 대해 인터뷰했습니다.
- 제프리 삭스가 주도한 프로젝트로 인해 주민들은 아주 지저분한 환경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곳을 처음 방문했 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죠. 빽빽하게 들어선 오두막집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끔찍한 폴리우레탄 비닐 봉지로 채워져 있었고요. (중략) 오두막 사이로 흘러내리는 비탈의 화장실은 배설물로 넘쳐나고 막혀서 물이 내려가지 도 않았습니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누구의 의 무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랑에는 쓰레기가 산더미처 럼 쌓여 있었죠. 재앙과도 같은 이러한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나니 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 지리학은 높은 산에 올라 계곡을 내려다보고 아름다 운 풍경에 감탄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계곡이 어떻 게 형성되었는지 관찰하고, 산마다 식생과 계곡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아가 특정한 계곡의 자연환경 이 인간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주민의 이주를 촉진하거나 방해했을 입지적 특성을 추정하는 것이 바로 지리적 사고력입니다. 이렇게 지리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주변을 탐색하는 과정을 거치면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리를 배우면 호기심 이 확장됩니다. 나아가 지적 자극을 계속 받으면서 새로 운 대안을 모색하고 실행하는 힘이 생기고, 사려 깊고 책 임감 있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죠. 교양교육의 주요한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는 지리학에 입문한다는 것은 평생 학습의 초대장을 받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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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사라져 가는 음식들

etc 2024. 3. 11. 12:20

- "자연은 지형에 크나큰 다양성을 부여했지만 인간은 그것을 단순화시키는 데 열성을 쏟았다.” (레이철 카슨)
- "전통은 재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불을 지키는 것이다." (구스타프 말러의 말이라 전해짐)

- 다음의 사실을 고려해보라. 전 세계 음식 대부분의 근원, 즉 씨앗이 고작 네 기업의 손에 장악되어 있고, 세계 치즈 생산의 절반 이 회사 한 곳에서 제조한 박테리아와 효소로 생산되고 있으며, 세 계에서 마시는 맥주의 4분의 1이 양조장 한 곳에서 생산된다는 것 을. 미국에서 중국에 이르는 전 세계의 돼지고기 생산은 단 한 품 종breed의 돼지 유전자를 근거로 이루어진다. 가장 유명한 사실을 보자. 바나나에는 1500가지 이상의 품종이 있지만 전 세계의 거래 는 단 하나, 캐번디시Cavendish 품종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는 비행기나 위성이 아니면 그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단일경작 농장에서 기르는 복제된 과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곡물인 밀과 쌀, 옥수수의 유전자 부터 그것을 재료로 만든 음식에 이르기까지 이런 수준의 획일성은 전례 없이 심해졌다. 인간의 식단은 지난 150년 동안(대략 6세대) 에 그 이전의 100만 년 동안(대략 4만 세대) 일어난 것보다 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지난 반세기 동안 무역, 기술, 기업의 권력 층은 이런 식단의 변화를 세계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우리는 전례 없이 큰 실험 과정 속에서 먹고 살아간다.
- 자연이 제공하고 인간의 손이 인도한 넘치도록 풍부한 다양성은 그저 음식과 농경의 역사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특징 가운데 하나 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다양성을 육성한 이유는 그것이 필 요했으며, 또 요리법의 창조와 문화의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 성을 찬양해왔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동부 뷰육차트마 마을의 농부 들은 수천 년 동안 카발자 밀을 심어왔는데, 이는 어느 곳에서도 찾 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거칠고 습하고 추운 그곳 기후에서 다른 작 물은 그만큼 많은 소출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 은 요리사가 그 곡물로 실험해보고, 특별한 질감과 맛을 이용해요 리법을 만들어내어 오늘날 음식 문화라 부르는 것을 창조해냈다. 인류 역사의 어느 부분을 들춰보든 간에 모든 지역사회는 자신들만 의 카발자를 갖고 있다. 그것은 중앙아메리카에서 신으로 믿는 옥 수수나 남아시아에서 악령을 쫓는다고 믿는 오렌지처럼, 한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거나 제의와 종교에 영감을 준 생명을 주는 음식 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이런 것은 고유한 유전적 연원에서 나온 것이며, 모두 세계 내 자신들의 장소에 적응했다. 
- 우리의 음식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더 다 양한 음식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오로지 유전자변이와 유 전자편집gene-editing 같은 생명공학을 토대로 하는 제2차 녹색혁 명에 착수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15 하지만 그런 방 법조차 소멸 위기의 식품을 지켜야만 가능할 것이다. 작물 육종가와 그 밖의 음식 과학자들은 사라지는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경주에 참 가했다. 위기의 식물과 동물들(그중 많은 것이 이 책에 실려 있다)이 기근과 질병을 상대하고, 기후변화에 맞서며, 우리 식단의 품질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 도구 상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이런 식품이 사라지게 내버려 둘 여유는 없다.
- 3만 년 전쯤 사람들은 동물 가죽으로 담을 것을 만들어 식품을 운반하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식물섬유로 짠 광주리도 사 용했다. 농경이 탄생하기 한참 전인 2만 년쯤 전 중국에서는 새로운 요리 기술이 등장했다. 항아리를 사용해 야생의 쌀을 끓이고 찐 것 이다. 그 무렵 인간 무리는 이런 기술 대부분을 지니고 아시아 북동 부에서 아메리카로 긴 여정을 떠났다.
그러다가 호모사피엔스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이 당도했다. 바로 농경의 탄생이다. 현대의 요르단인 검은 사막에서 나투프 수 렵채집인이 야생 풀 씨앗을 갈아 거친 가루로 만들고 야생식물의 뿌리를 간 것과 섞어 반죽한 다음 불에 구웠다. 이 납작 빵' 의 초기 형태를 재현한 21세기 과학자들은 그 맛을 "풍미가 있고 약간 쌉쌀하다”라고 묘사했다. 여러 다른 성분의 이 혼합물이 요리법cuisine의 최초 증거다.
1만 3000년 전에 그 빵을 만든 나투프인은 수백만 년 전의 수렵채 집인과 농부를 연결하는 고리다. 이라크, 남동부 튀르키예,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을 포괄하는 휘어진 형태의 땅을 가리키 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필수 야생식물, 기후와 상상력이 합쳐 져 인류를 정착 농경의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 뒤 몇천 년 동안 무의 식적인 결정과 우연한 발견 그리고 행운이 겹쳐 일부 인간은 자신 이 주변에서 발견한 식물을 변형시켜 가장 크고 수확하기 편한 씨 앗과 곡물을 선별해 길들이고 재배했다. 이 시기에 농경이 생산한 엄청난 분량의 전분을 처리할 수 있도록 우리 입맛과 장내미생물이 진화하는 동안 인체생물학은 다시 변했다. 채집에서 농경으로 넘 어가는 이 이행기 초기에 고대 이집트인은 한 가지 유형의 밀을 가 장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 초기 밀의 몇 안 되 는 품종 가운데 하나가 카발자다.
물론 밀 하나만 길들인 것은 아니다. 신석기시대에 비옥한 초승 달 지역민이 먹던 음식 중에는 병아리콩과 렌틸콩이 있었고, 무화 과와 대추야자가 그 뒤를 이었다. 세계의 다른 지역 내 수렵채집인 은 각자의 생태계에서 자라는 야생식물을 길들였다. 중국의 양쯔강 과 황하 유역의 대지에서는 쌀과 기장을 길렀고, 남동부 멕시코에 서는 옥수수와 호박과 콩, 안데스 산지의 티티카카호수 주변에서는 감자와 퀴노아', 인도에서는 녹두와 기장,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는 수수와 동부콩cowpea, 파푸아뉴기니에서는 바나나와 사탕수수를 길렀다. 야생의 식물이 재배작물로 변신하는 데는 수천 년이 걸렸고,
150세대 이상의 농부가 활약했다. 이 고대 농부들은 식물 외에 오 늘날 가축으로 길러지는 소, 양, 돼지, 염소, 낙타, 라마, 야크 등 모든 동물종도 길들였다. 이는 또 다른 생물학적 변화를 낳아 세계 일부 지역에 사는 성인 인간은 우유를 더 잘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3500년쯤 전, 야생 식품에 대한 인간의 의존이 재배된 식품에 대 한 의존으로 옮겨가는 놀라운 변화가 거의 완결되었다. 그 이후로 는 인간의 식사에서 중요시되는 식물이나 동물이 새로 길드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왜 그런가? 그 무렵이면 농경에 가장 적합한 식물 을 인간이 이미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 중 하나다. 길들임은 느리고 지루한 일이다. 상업과 이주로 다른 문명이 변형시킨 새로운 식물을 접할 길이 열렸는데, 왜 굳이 그 느리고 지루한 일을 하겠는가? 고의 세계화는 길들임의 노력을 종결하는 데 기여했다.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농부들의 이동과 함께 길든 식물과 동 물의 조합이 전 세계로 퍼져나감에 따라 그것들은 진화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말을 다르게 표현하자 면, 그것들은 “폭풍을 잡아먹었고”, 토양과 기후와 고도(그리고 인 간들의 성향)에 적응했으며, "그런 것들을 가지런히 접어 유전자를 형성했다." 그토록 많은 옥수수와 벼, 밀, 또 다른 모든 식용 곡물 의 품종이 생긴 것은 이렇게 해서다.
- 인간은 혁신과 실험을 거쳐 음식을 더 복잡미묘한 방식으로 변형 했다. 중부 유럽 사람들은 수분을 줄이고 지방과 단백질을 응고시 키는 방법으로 우유를 보존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여 치즈를 만 들었다. 코카서스에서는 포도를 으깨어 포도주로 만들었다. 중국에 서 요리사들은 경이적인 처리법을 써서 먹지 못하는 대두를 희고 부드러운 두부로 만들었다. 아마존 수림에 사는 사람들은 독이 있 는 덩이뿌리인 카사바를 박테리아와 이스트로 발효해 안전하고 맛 있는 음식으로 변신시켰다." 또 남부 멕시코 농부들은 옥수수에 유 독성 광물질인 석회를 넣어 곡물에서 더 많은 영양분을 뽑아내고 부드러운 토르티야 반죽을 만들어냈다.
- 아메리카 토착민에게서 공통으로 내려오는 전설 가운데 그 뿌리와 곰의 관계 이야기가 처음으로 시험된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 다. 젊은 하버드 대학생 숀 시그스테트Shawn Sigstedt (현재 콜로라 도 대학 생물학 교수)는 애리조나의 나바호족 공동체에 들어가 살 면서 전통 의학을 연구했다. 그곳에서 그는 베어 루트 또는 그들의 호칭으로는 오샤를 알게 되었다. 나바호족 치유사들은 그에게 먼 옛날 사냥꾼들은 동면에서 깨어난 곰이 그 식물을 찾아다니고 뿌리 를 파내 씹어서 죽처럼 만든 다음, 앞발로 온몸에 비비는 것을 보고 그 힘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시그스테트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 는 한 동물원에 가서 포획된 검은 곰 두 마리한테 오샤 조각을 먹이 기 시작했다. 그 뿌리에 보인 곰의 반응은 놀라웠다. 이들은 나바호 족이 묘사한 것과 똑같이 행동했다. 다만 식물을 씹어서 곤죽이 된 뿌리를 앞발로 비비는 것 외에도 머리를 흔들어 입에 머금은 오샤 를 사방에 뿌려, 시그스테트의 표현에 따르면 에어로졸을 뿌린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시그스테트는 곰의 행동을 오랫동안 연구해 그 뿌리의 항균·항바이러스·항진균 성질을 분석했다. 거기에는 진통성분의 화학물질과 강력한 살충성분도 들어 있었다. 시그스테트가 1970년대에 나바호족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라 과학적 으로 정확한 관찰이었다. 아주 작은 베어 루트 조각의 냄새만 맡아 도 확연히 의약품 같은 냄새가 난다. 멘톨 효과가 강해서 얼얼하고 소독하는 느낌을 준다.
- 특정한 장소에서만 자라는 베어 루트와 달리 우리가 먹는 많은 식물은 멀리 넓게 퍼졌으며, 지금은 전 세계에서 재배된다. 이들 작물의 첫 발생지가 어딘지 아는 것은 우리 식품의 미래에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의 가로 힐스에 자 라는 야생 감귤류를 지켜내는 일은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감귤류의 미래에 결정적인 일이 될 수 있다.
지구 전역에서 재배되는 감귤류 나무는 10억 그루쯤 된다. 이탈 리아, 아이티, 베트남, 세네갈 등 수많은 나라에서 자란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 과일에 속하는 것으로는 오렌지, 레몬, 라임, 자 몽이 있다. 그에 비해 그것들의 생식 생활이 지극히 복잡하며, 계보 가 복잡하고 헷갈린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사실 이런 과일은 유전적 혼란의 산물이라 할 수도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세계에서 상업적으로 팔리는 감귤류 과일의 조상은 대체로 세 종류, 그러니까 만다린학명 Citrus reticulata과 포멜로학명 Citrus grandis, 시트론학명 Citrus medica으로 귀결된다. 이 감귤류 선조들 은 모두 다른 품종의 꽃가루로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 감귤류의 진화 과정에서 이들 식물이 유전자를 서로 맞바꾸면서 오렌지(만다 린과 포멜로의 교잡종 hybrid), 레몬(시트론과 신Bitter 오렌지의 교 잡종), 라임(시트론과 만다린의 이종교배종 cross), 그리고 가장 최 근에는 자몽이 만들어졌다. 자몽은 바베이도스에서 대략 300년 전 에 일어난 교잡의 결과물이다. 이 경우는 스위트 오렌지와 포멜로 가부모였다.
감귤류는 또 쉽게 변이한다. 이 가계도의 방계 몇 군데를 조사해 보면 단 한 번의 우연한 파종만으로도 새로운 과일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령 19세기에 알제리의 한 농부가 만다린나무의 가지에 조금 다른 것이 자라고 있음을 발견했는데, 유전자변이의 결과물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과일이 클레멘타인clementine이다. 여러 세대의 농부들이 이런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바람직한 변 형을 선택하는 것이 과일 교잡의 역사다.
2018년에 과학자들이 그 과일의 수수께끼를 좀 더 풀어내 감귤 류의 기원을 한층 명료하게 밝혔다. 그들은 감귤류의 게놈을 순차 적으로 정리하고, DNA에 대한 탐정 작업을 거친 끝에 수백만 년간 의 진화 역사를 짜 맞추었다. 이 연구에서 더 오래전의 선조 열 가 지, 그리고 그보다 더 전인 800만 년쯤 전에 전 세계 모든 감귤류의 진정한 고대 선조인 야생 과일 하나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 이야기 에도 아직 메꾸어야 할 공백이 있지만, 연구자들이 확신하는 한 가 지는 최초의 선조를 포함한 고대의 모든 감귤류종이 북동부 인도와 남서부 중국, 미얀마의 경계 지역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지역은 생물다양성의 열점hot spot이다. 원시적 과일 DNA의 파편들이 그곳의 고고학적 기록에 등장하며, 800만 년 전의 감귤 류 잎사귀가 발굴된 곳도 중국 남서부의 윈난이었다. 당시는 기후 가 급격히 변하던 시기였다. 격렬하던 몬순기후가 완화되어 지형이 건조해졌고, 식물이 살기에 더 좋은 여건으로 바뀌었다. 이런 여건 덕분에 감귤류의 선조들이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로 다른 종들이 뒤섞이 고 교잡되었으며, 자발적인 변이 과정에서 저마다 다른 형태와 크 기, 색깔, 향취, 맛이 만들어졌다. 수백만 년 뒤 인간은 이런 과일을 야생에서 골라내 길들였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먹는 감귤류다.
- 감귤류가 특별해지는 것은 상이한 감귤류 과일들 사이의 생식적 공존 가능성과 변이 능력 그리고 무한한 다양성 창출 성향 때문이 다. 그렇지만 생길 수 있는 수천 가지 변형 가운데 결국 우리는 단 몇 가지만 재배하고, 이런 것들을 복제해 오늘날의 전 세계적 작물을 만들었다. 발렌시아와 네이블 오렌지, 리스본 레몬, 페르시아 라임 이 전 세계의 감귤류 숲과 우리가 먹는 과일 그릇을 지배한다. 그러 나 아직도 고대 감귤류의 야생 친척과 함께 살아가는 토착민이 있 다. 혹시 그것이 가장 오래전의 선조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 이 보호하고 있는 것은 귀중하다.
- 1960년대 후반에 미국 식물학자 잭 할란은 잃어버린 음식의 역 사를 약간이라도 체험해보기로 했다. 재배의 위험지구 가운데 한 곳인 남동부 튀르키예의 카라카닥산맥에서 그는 수렵채집인이 되 어보았다. 먼저 아무 도구도 쓰지 않고 산기슭에서 자라는 야생 밀 이삭을 손으로 훑어낸 다음, 수석 칼날을 써서 알곡을 수확해보았 다. 할란은 한 가족이 카라카닥 지역에서 3주간 수확하면 "너무 많 이 일하지 않고도 한 해에 소비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알곡을 얻을 수 있었다"라고 결론지었다.
1만 2000년 전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일부 수렵채집인이 야 생 풀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로 환경이 더 건조해졌고, 육 류 등의 다른 식품을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따라서 곡물의 매 력이 더 커졌다. 고대의 농부들은 두 종류의 야생 밀에 집중했다. 작고 단단하고 검박한 아인콘 einkorn, 학명 Triticum monococcum(아 인콘은 독일어로 '알갱이 하나'라는 뜻이다)과 에머 밀학명 Triticum diococcon이 그것이다. 에머 밀은 수염 하나에 달린 알곡의 수가 두 배다. 아인콘과 에머 밀은 길든 시기는 다르지만, 결국은 둘 다 비옥 한 초승달 전역에 보급되었다. 우리는 수렵채집인이 도구 제작에 쓸 흑요석 같은 재료를 교역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씨앗도 교역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삭이 쉽게 부서지지 않는 성질의 유전적변 이 역시 확산되었다. 다만 그 성질이 안정되어 이런 밀에 '고착되기' 까지는 적어도 2000 년이 더 지나야 했지만 말이다.
비옥한 초승달의 동쪽 지역, 지금의 파키스탄인 곳에서 기원전 6000년쯤에 에머 밀과 아인콘이 자랐다. 그것은 기원전 3000년쯤 에는 북서부 인도의 라자스탄과 하리아나에 당도했다. 남쪽으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거쳐 확산되었으며, 이집트에는 기원전 4500년쯤에 당도했다. 서쪽으로는 그리스와 발칸반도를 거쳐 다뉴 브강 유역을 따라 남부 유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기원전 3000년 쯤에는 아인콘과 에머 밀이 오만과 예멘에서도 자라고 있었고, 홍 해를 건너 에티오피아와 거래되었다. 이 두 가지 곡물의 성공은 부 분적으로는 뷰육차트마의 방앗간 주인이 흡족해했던 단단한 겉껍 질(또는 깍지husk) 덕분이기도 하다. 이 보호 표피는 진균류 감염을 막고 미생물에 저항할 뿐 아니라 춥고 습한 여건과 벌레나 새로부 터 알곡을 보호하는 물질적 방어막이 되어줘 더 오래 저장할 수 있 게 했다. 아인콘이 더 튼튼했지만 알곡 수가 두 배인 에머 밀이 우세 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밀이 되었다. 수천 년 동안 이런 상황이 유지되었다.
- 한편 그 뒤에서 진화하고 있던 것은 에머 밀 주변에 등장한 잡초 였다. 이 잡초는 재배된 에머 밀과 '염소 얼굴을 가진' 야생 풀의 우 연한 교잡종이었다. 이 교잡종이 기원전 7000년쯤에 아인콘, 에머 밀과 함께 자랐으며 신석기시대 농부들에게 선택되기 시작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늘날 이 '잡초'는 빵 밀bread wheat이라 불리며 학명은 트리티쿰 아이스티붐Triticum aestivum이다. 이 품종이 전 세계 밀 작물의 95퍼센트 이상을 차지해 지구상 대부분 사람의 식 량이 되어준다. 고대 세계에서는 이 식물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 다. 알곡이 작고, 단단한 보호 껍질도 없었다. 빵 밀이 결국 에머 밀 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인간이 보호해줄 수 있 는 더 발전한 곡창지대가 형성된 뒤의 일이었다. 이 품종의 장점은 알곡이 왕겨에서 더 쉽게 떨어져나오고, 표피가 종이처럼 얇아서 제분하기 전에 겉껍질을 제거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었다. 이 '벌거 벗은' 밀은 화학적으로도 달랐다. 글루텐 단백질은 끈기가 강해서 반죽하면 탄력성이 더 커졌고, 더욱 가벼운 빵을 만들 수 있었다. 기능도 더 다양했다.
- 서북부 유럽 전역에서 전통적인 제빵 문화를 살펴본다면, 기후가 음식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볼(그리고 맛볼 수 있다. 유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빵이 더 납작해진다는 것이 한 가지 일반적인 공통점이다. 햇볕이 충분하고 여름이 덥고 긴 곳에서는 단백질 글루텐 함 량이 높은 빵 밀 같은 곡물을 기를 수 있다. 이런 화학적 특성은 반죽 에 탄력성을 더해주므로 빵을 구우면 반죽 속에 공기 거품이 갇혀 푹신푹신한 덩어리로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더 추운 북쪽 기후에 서는 태양광이 적으므로 보리와 호밀, 귀리가 선호된다. 이들 곡물 은 화학적 구조가 다르고 글루텐 함량이 낮다. 따라서 그런 곡물이 전통적으로 길러지는 곳에서는 부풀어 오른 빵 덩이가 아니라 납작 한 빵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남부 스웨덴에는 밀 문화와 푹신푹 신한 빵이 더 많지만, 보리가 재배되는 북부 스웨덴의 제빵사는 납 작 빵과 크네케브뢰드knäckebröd(구운 크래커)를 만든다. 오크니 에서는 베어 보리의 질감과 맛이 전통적 요리와 조리법을 결정했 다. 여기서 중요한 음식은 배넉bannock이다. 이것은 불 위에서 구운 부드럽고 둥근 비스킷 같은 납작 빵이다.
- 유럽 전역에서 나타나는 이런 제빵의 풍부한 다양성은 19세기 말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거의 모든 곡물은 여전히 맷돌로 제분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밀의 배아와 지방분이 밀가루에 남는 다(그 부분이 알곡에서 영양분이 가장 많으며, 단백질과 비타민, 광 물 성분을 함유한다). 오늘날 우리가 구입하는 밀가루와 달리 이것 은 신선 식품에 더 가깝다. 제분된 지 두어 주일 이내, 즉 기름 성분 이 산패해 가루가 덩어리지기 전에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이런 상황 은 롤러 제분기가 도입됨으로써 변했다. 그 기계는 강철 실린더를 사용해 알곡을 으깨고, 배아를 제거할 수 있게 했다. 이 과정에서 알 곡의 가장 영양분 많은 부분이 제거되지만, 그렇게 얻은 정제된 흰 밀가루는 훨씬 더 오래 저장하고 더 먼 거리까지 운반할 수 있다. 나중에 녹색혁명이 일어나고 비료와 화학약품을 먹고 자란 현대 밀이 도입된 뒤에는 전통적으로 보리만 자라던 곳에서도 밀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작물 재배 및 제분 기술의 변화와 함께 유럽에 남 아 있던 납작 빵 문화는 거의 사라졌고, 여러 재래 품종 보리도 사라 졌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길러지는 보리 가운데 인간이 먹는 것은 고 작 2퍼센트뿐이다. 그 대부분인 60퍼센트가량은 동물 먹이로, 나머 지는 몰트(맥주를 만들고 위스키를 증류하는 재료)를 만드는 데 쓰 고, 극히 일부분은 발효시켜 간장과 된장을 만든다. 에머 밀과 아인 콘처럼 보리를 음식으로 먹는 곳은 대개 먼 오지이거나 살기 어려 운 지역이다. 에티오피아의 고원지대에서는 볶은 보리로 만든 보리 차가 전통 음료로 남아 있고, 티베트인은 여전히 고지대의 에너지 원으로서 보릿가루를 차로 반죽한 참파tsampa를 주식으로 삼는다
- 벼의 길들임은 밀만큼이나 경이적이다. 남중국의 수렵채집인이 양쯔강 유역에서 벼 씨앗과 완두콩, 강낭콩, 나무 열매, 땅콩, 도토리 등의 야생종 씨앗도 채집했다. 그러다가 기원전 1만 3000년쯤, 기 후가 온난해지기 시작해 빙하가 녹았다. 물이 흥건한 지역에서 야생 벼가 자라면서 이 식물은 번성하여 더 습한 기후에서 양쯔강 계곡 전역으로 광범위하게 퍼졌다. 야생 곡물의 공급이 늘어나자 수렵채 집인의 인구도 늘었다. 7000년쯤 전 그들은 자연에만 의존하지 않고 습지를 개간했다. 타원형으로 구덩이를 파고(고고학적 자료에 따르면 작은 식탁 넓이) 그 안에 물을 채워 벼를 키웠다. 그렇게 하여 논이 탄생했다.
- 원시 농부들은 습지의 가장자리, 계절이 바뀌면서 물기가 마르곤 하는 땅에서 자라는 식물이 가장 생산성이 높고 씨앗을 많이 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가끔 논에서 물을 빼는 방법으로 이 패 턴을 모방했다. 특정 시기에 식물에서 물을 빼앗으면 식물은 스트 레스를 받고 생존 모드로 변한다. 그리고 번식 기회를 늘리기 위해 최대한 많은 씨앗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논은 이런 꼼꼼한 관찰에 서 탄생한 것으로, 이제껏 고안된 것 중 가장 생산성 높은 식량 시스 템이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벼 그 자체가 매우 특별하기 때문에 가능했 다. 벼는 잎을 통해 산소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수면 아래로 끌어내 려 물에 잠긴 뿌리에 전달한다. 다른 식물들은 수면 아래의 혐기성 여건에서는 살아남지 못하므로 논은 일종의 잡초 통제 역할도 한다. 그리고 산성이나 알칼리성이 너무 강해 다른 작물을 기르지 못 하는 토양에서도 논 안에서는 모든 것의 균형이 잡힌다. 괴어 있는 물이 pH 7 정도를 꾸준히 유지하기 때문이다. 논은 자체적으로 비 료도 만들어낸다. 시들어가는 식물과 동물 배설물이 물에서 분해되 어 작물에 양분이 되는 질소를 생산하는 것이다. 논이라는 시스템 은 생산성이 워낙 높아, 인간 역사 전체로 볼 때 세계에서 인구밀도 가 가장 높은 지역은 벼 재배 문화권이었다. 그렇게 발생한 잉여식 품 덕분에 사람들은 미래를 구상할 수 있었다. 앞서서 계획하고 노 동을 분화해 일부 사람들은 기예를 다듬고, 예술을 창조하고, 각자 의 소유물을 만들고, 특권을 획득할 자유를 누렸다. 농부들은 벼를 길들이면서 문명을 형성했다.
- 우리가 오늘날 잘 알고 있는 벼는 세 차례에 걸친 각기 다른 길들 임의 물결의 산물이다. 먼저 양쯔강 분지에서 짧고 둥근 알곡을 맺 는 자포니카 japonica종(초밥에 사용하는 품종)이 나왔다. 그 이후 자포니카종은 북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퍼졌고 그곳에서 더 다양해 졌다. 두 번째 물결은 더 남쪽인 인도 북동부, 라오스, 베트남, 타이 에서 발생했다. 이곳에서 진화한 쌀은 인디카 indica종으로, 길고 가 느다란 알곡을 맺는다(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기르는 벼가 이 품종이다). 한편 방글라데시 삼각주에서는 아우스aus라는 세 번째 야생 품종을 길들였는데, 그 품종은 더 작고 가느다란 알곡을 맺는 다.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교역하는 과정에서 이 서로 다른 품종의 유전자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2000년쯤 전, 히말라야 산기슭 어 딘가에서 아우스와 자포니카이 교잡되어 오늘날 우리가 가장 높 이 평가하는 품종 몇 가지가 만들어졌다. 그것이 향내 나는 품종인 바스마티basmati와 재스민jasmine이다.
- 이런 주요 벼 무리 외에도 다양한 조리법이 다른 차원에서 진화 했다. 벼가 길들기 오래전에 수렵채집인은 몇몇 식물이 맺은 알곡 을 조리했을 때 다른 알곡보다 더 찰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중국 에서 최초로 발견된 조리용 솥은 1만 8000년 전의 것이다). 이 '찰 짐'은 유전적 변이의 결과물이며, 이 변이를 함유한 곡물이 식단에 포함되었고 사람들이 즐겨 먹었기 때문에 나중에 찰진 쌀이 길들일 품종으로 선택되었다. 오늘날 찰진 쌀에 대한 강한 문화적 선호성 은 아시아의 특정 지역에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중국 남서부의 윈 난 지방에서는 찰진 쌀을 온갖 요리에 주재료로 쓴다. 그러나 이 지 역 밖에서는 이 품종을 대개 딤섬과 달콤한 요리용으로 쓴다.
- 옥수수 연구자 개리슨 윌크스Garrison Wilkes는 밀파 시스템을 "인간이 이제껏 만들어낸 것 중 가장 성공적인 발명품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12 외부인이 보면 밀파는 그저 서로 경쟁하는 식물들이 아 무렇게나 번잡스럽게 심어진 밭이다. 그러나 이 다양성의 잡탕은 사 실 식물학뿐 아니라 영양학적으로도 균형을 창출하는 복잡한 시스 템이다. 밀파시스템에서 옥수수는 동반자인 강낭콩, 호박과 나란히 심어져 강낭콩이 옥수수 줄기를 지주대 삼아 타고 올라가며, 호박의 넓은 잎은 땅바닥을 뒤덮어 토양 속 습기를 보존하고 잡초를 억제한 다. 그러나 밀파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하에서 벌어지는 일 이다. 강낭콩의 콩 뿌리는 질소를 토양에 고정해주고 다른 작물을 비 옥하게 해주는 미생물의 숙주다. 또한 함께 요리하면 이런 식물은 영 양학적으로 완전한 음식을 만든다. 옥수수는 탄수화물을, 강낭콩은 라이신과 트립토판 같은 필수 아미노산을(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단 백질합성을 하지 못한다) 제공하며, 호박에는 비타민이 풍부하다. 수확이 끝나면 토착민 농부들은 닉스타말화nixtamalization라는 독창적인 처리법으로 옥수수를 가공한다. 그 용어 자체는 나와틀Nahuatl어 (고대 아즈텍어)의 두 단어에서 유래한다. 재를 뜻하는 넥스틀리nextli와 옥수수 반죽을 뜻하는 타말리 tamalli를 합친 것이다. 닉스타말화를 하려면 먼저 옥수수 알맹이를 잿물이나 석회 광물(수 산화칼슘)로 만든 화학 용제에 푹 담가서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겉 층을 깨부순다. 이렇게 하면 알곡이 부드러워져서 마사 반죽으로 토 르티야를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알맹이 속에 갇혀 있던 영양분이 풀려나올 수 있다. 닉스타말화가 행해진 증거는 3500년 전부터 발 견된다. 옥수수를 처음 가져간 북아메리카인과 유럽인은 옥수수와 함께 진화해온 식량과 농사 지식을 무시했다. 밀파 시스템으로 옥수 수를 키우거나 닉스타말화 처리법을 채택하지 않은 탓에 (원시적이 라고 무시했음) 그들은 막중한 대가를 치렀다. 그들이 새로 고안한 옥수수투성이의 식단에는 필수 영양분이 빠져 있었고, 많은 사람이 비타민 니아신의 결핍으로 초래되는, 몹시 쇠약해지고 고통스러운 질병인 펠라그라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 위대한 요리 문화에서는 모두 곡물과 콩류가 복합적으로 쓰인다. 인도의 달밧'은 수수와 렌틸콩을 함께 쓴다. 일본의 미소는 대두와 보리를 합한 것이다. 토스카나의 스튜인 미네스트 라 디파로는 밀(에머 밀)과 카넬리니콩cannellini beans이 어우러진다. 팔레스타인의 마프톨은 불거 밀bulgur wheat과 병아리콩을 섞는다. 멕시코에는
콩과 함께 먹는 프리홀레스 콘 토르티야가 있으며, 서아프리카의 와키는 쌀과 콩을 섞은 음식이다. 현대 영국식 버전도 있다. 베이크 드빈을 얹은 토스트다.
- 수렵채집인은 다른 식물을 휘감고 빙빙 돌면서 자라는 실 같은 덤불에서 야생 렌틸콩을 채집했다. 야생에서 콩과식물의 씨앗 주 머니는 공기 중에서 폭탄처럼 터져 씨앗을 멀리까지 날려 보낸다( 몇몇 콩과나무의 더 큰 씨앗 주머니가 터질 때는 불꽃놀이 같은 소 리가 난다). 렌틸 몇 종에게서 유전자변이가 일어나 씨앗이 씨앗 주 머니에 박히게 되면서(알곡이 부서지지 않는 품종으로 이어지는 밀의 변이와 대등한 변이), 수확하기에 더 편리해졌다. 이 변화는 1960년대에 남부 그리스의 프랑크티 동굴에서 발굴한 내용물에서 볼 수 있다. 그 동굴 근처의 밭은 3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집단 이 오가면서 다양한 농사와 식량을 만들어냈다. 바위 아래에 주거 를 정한 최초의 사람들은 수렵채집인이었다. 그들이 남긴 고고학적 흔적 중에는 야생 돼지와 영양의 뼈도 있었다. 1만 3000년쯤 전에 야생 아몬드, 피스타치오와 함께 야생 렌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7000년 전, 동굴 입구 가까운 곳에 만들어진 계단식 대지 에 농사를 지어 귀리와 밀을 (그때쯤이면) 길든 렌틸과 섞어 심었다 는 증거가 있다. 렌틸은 식재료인 동시에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수 단으로서 유럽 전역에 퍼졌다. 수천 가지 재래 품종이 진화했고, 그 중에 슈바벤의 알브린제도 있었다.
- 로리타노는 칼라와야Kallawaya다. 칼라와야란 안데스 지역에서 2000년 동안 전통 의술을 시행해온 샤먼 집단으로, 수가 점점 줄어 들고 있다. 그들은 원래 티티카카호수 북쪽 연안을 차지하고 있던 별도의 민족 집단이었으며 고유한 언어도 있었는데(지금은 사라졌 다), 오늘날에는 안데스 지역 전역의 여러 마을로 흩어졌다. 치유사 로서 그들의 역할은 계속 이어졌고, 여러 세기 동안 칼라와야가 쓰 던 식물은 서구 의학에 흡수되었다. 코카도 그중 하나다. 칼라와야 는 이 식물 잎으로 설사와 두통을 치료했지만 19세기의 유럽 의사 들은 거기서 알칼로이드, 즉 코카인을 추출해 마취제를 만들었다. 널리 활용되던 또 다른 약물은 싱코나cinchona 나무껍질을 말린 것 이었다. 칼라와야는 천 년이 넘도록 그 말린 나무껍질을 말라리아 치료제로 썼으며, 대영제국 전역에서도 같은 용도로 사용했다(키니 네quinine는 이 껍질에서 발견한 복합 성분이다). 1890년대에 파나 마운하 공사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말라리아와 황열병으로 죽 어가고 있을 때 칼라와야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그곳까지 치료제 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1930년대에 서구에서 의사들이 들어오자 칼라와야는 '주술사' 취급을 받았다.
- 일반 뿌리의 기능이 식물을 흙 속에 고정하고 영양소와 물을 공 급하는 것인 반면, 덩이뿌리는 지하의 에너지 저장고와 더 비슷하 다. 이런 저장 기관의 내용물은 기온이 낮아지고 비가 오지 않아 스 트레스가 심한 기간에 동원된다. 식물이 살아남기 위해 탄수화물과 칼슘과 비타민 C의 덩어리로 진화한 것이 거꾸로 인간의 생존 수단 이 되었다. 흙 속에서 보호된 덩이뿌리는 다른 작물들이 실패했을 때 식량을 제공할 수 있다. 또 살아 있는 식품 저장고로서, 일 년이 상 지하에 그대로 방치했다가 필요할 때 캐낼 수 있다. 갈등이 생겨 지상의 곡물 저장고가 적들에게 노획될 위험이 생겨도 덩이뿌리는 안전하게 숨겨진다. 하드자족은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캐어 먹던 덩이뿌리인 에크와ekwa와 도아이코do'aiko가 없었더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식민지 이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애버리진과 머농 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 콜럼버스 이후 교역이 시작되자 감자는 구세계로 전해졌다. 그것 은 밀이나 보리보다 약 4000제곱미터당 네 배나 많은 칼로리를 제 공함으로써 수백만 명의 유럽인을 먹여 살렸다. 감자가 없었더라면 구대륙에서 산업화나 제국의 팽창이 가능했을지 의문스럽다.
세계를 바꾼 이 덩이뿌리는 7000년 전에 안데스 지역에서 길들 여졌다. 이곳은 감자 다양성의 중심지, 말하자면 탄생지다. 감자 외 에 다른 덩이뿌리 (마슈아 mashwa, 파팔리사 papalisa, 오카 등)의 탄 생지이기도 하다. 안데스 지역처럼 다양한 덩이뿌리가 있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감자만 보더라도 안데스 지역의 품종은 4000종에 이르며 강낭콩, 옥수수와 교대로 심는다. 이런 다양성은 안데스 전 지역에 있는 소규모 정착촌에서 창출되었다. 
- 아메리카 대륙에서 재배되는 대두는 소수의 유전적으로 단일한 품종을 토대로 하고 있고, 모두 단일경작으로 길 러져 해충과 질병에 취약했다. 그 해결책은 유전자 변형genetically modified(GM) 대두였다. 1996년에 몬산토는 라운드업 레디 대두 Roundup Ready soy를 출시했는데, 이것은 글리포세이트glyphosate 를 기반으로 하는 같은 이름의 제초제(잡초제거제)에 저항력이 있 다. 이 제품은 우연한 발견으로 개발되었다. 몬산토의 쓰레기 구덩 이 한 곳에서 자라고 있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라운드업 이라는 제초제에 저항력이 있음이 밝혀졌다. 바로 이 박테리아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새로운 대두 품종에 삽입했다. 신젠타도 자체 신품 종인 브이맥스VMAX를 출시했다. 그리고 바이엘도 뒤처지지 않으 려고 리버티 링크Liberty Link라는 신품종을 내놓았다. 2014년이 되 자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재배되는 모든 대두의 90퍼센트 이상이 GM품종이었다."
- 녹색혁명처럼 기억에 남을 만한 호칭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만큼 획기적인 변화가 닭에도 일어났으며 발생 시기는 대략 같은 시기였다. 그 변화가 완료되었을 무렵에는 역사상 다른 어떤 동물도 닭만큼 근본적이고 급속한 생물학적 변화를 겪은 것은 없었다. 닭의 수명은 심하면 35일로 줄어들었으며(집파리 수 명보다 며칠 더 긴) 신체 부피가 너무 빨리 증가해, 만일 인간이 같 은 비율로 자란다면 두 살짜리 인간의 체중이 150킬로그램에 달할 것이다. 식량 생산의 이야기로서는 놀라운 성공이다. 하지만 이런 변형에는 불길한 조짐이 따른다. 고작 20~30년 만에 세계는 거대 한 규모와 더 균일한 방식으로 생산되는 균질한 조류에 점점 더 의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인간이 처음에 어떻게 닭과 만나게 되었는지는 수수께끼다. 하지 만 2020년에 발표된 닭 게놈의 자세한 분석에 따라 적어도 길들임 과정이 시작된 시간과 장소에 대한 정보는 알려졌다. 20년이 넘도 록 진화생물학자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특산인 1000여 종에 달하는 닭과 그들의 공통 선조인 적색야계red jungle fowl의 DNA를 수 집했다. 그들은 현대 닭의 기원이 남서부 중국, 북부 타이, 동부 미얀 마를 포함하는 지역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기원전 7500년 이후, 이 곳 사람들은 야생 조류를 길들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이런 조류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새들이 인간에게 와서 발견되었다고 주장하 는 이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소, 돼지, 양, 염소를 길들인 지 한참 뒤에 나무 위에 사는 이 우둔한 조류가 아시아의 이 지역 농부들에 게 관심을 보였다. 벼 재배가 확산했고, 논은 이런 야생조류에게 잡 초와 씨앗과 곤충을 잡을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벼농사에 이 끌려온 이 닭의 조상은 인간과 꾸준히 접촉하게 되었고, 의존성이 커지면서 길들었다. 농부들에게도 혜택이 있었다. 새들은 해충을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비료를 생산하기도 했다. 물론 먹을 수 있는 알도 낳았다. 아마 인간이 이 새를 물리치지 않은 심미적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적색계는 오늘날의 길들인 닭보다 몸집이 작지만 녹색과 붉은색과 금속성의 광택이 감도는 깃털은 훨씬 보기 좋다. 어떤 고대 문화에서는 깃털 모자나 케이프 같은 의상을 입는 것이 신들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여겼다. 하와이에서 이런 제의적 물건은 성공적인 수확이나 전투를 앞두고 더 큰 능력이 필요할 때 족장에게 초자연적 권능을 부여한다고 믿어졌다. 
깃털 제공자인 조류 자체는 천상과 지구 사이를 오가는 영적인 전령, 신성한 현시로 여겨졌다. 닭은 숭배의 대상이면서 제물이었 다. 메갈라야의 감귤류 지역에 사는 카시족은 닭이 모든 인간의 죄를 담고 있는 살아 있는 그릇이라고 믿었으므로, 정화의 의미로 닭 을 제물로 바쳤다. 또 다른 곳에서는 전통적 치유사와 샤먼이 닭의 다양한 부위를 치료 용도로 썼다. 살, 뼈, 내장, 깃털, 볏, 알 등. 닭은 두통과 간질, 천식, 불면증 등 다양한 질병에 대한 치료 능력이 있는 걸어 다니는 약사 역할도 했다. 고기와 알은 닭이 가진 여러 매력 가운데 두 가지다. 어떤 문화에서 닭은 투계라는 오락도 제공하 는 한편 다른 곳에서는 새의 행동을 지켜보고 점을 치기도 했다. 특 정 품종은 우는 재능 덕분에 귀한 대접을 받았는데, 어떤 수탉은 너 무 크고 오래 울어서 인도양을 항해할 때 배에 태워 다른 배들이 다 가오지 못하게 막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 연산오계의 몸 형태는 적색계와 비슷하며, 그 야생 선조처럼 숙련된 비행사이기 때문에 나뭇가지로 날아올라 잎사귀를 쪼아 곤 충을 잡아먹을 수 있다. 이런 행동은 야생 조류와 똑같으며, 땅을 파 엎고 흙에 몸을 문지르고 알곡보다 풀을 더 좋아하는 입맛 역시 마 찬가지다. 더 빨리 자라고 생산성 높은 현대의 사촌 품종과 달리 오 계는 알을 사흘이나 나흘에 하나씩 낳는다. 이 놀랄 만큼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생김새의 생물은 현대의 가금 산업에서 볼 때는 시대착 오적이다. 한국이 일본에 강점되어 있던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더 빨리 자라고 몸집 큰 닭이 도입되었는데, 그때부터 다른 전통적 품종과 함께 오계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승숙은 마지막 남은 순종 연산오계를 보호하는 사람으로, 그녀의 일가는 다섯 세대에 걸쳐 이 품종을 길러왔다. 그들의 농장은 서울에서 남서쪽으로 160킬로미터 떨어진 계룡산 기슭의 연산 마 을에 있다. 그 산의 이름은 닭과 용의 산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이 승숙의 고조부가 오계를 병이 든 한 왕족에게 진상했다. 그 닭죽을 먹은 조선의 25대 왕 철종은 몸을 회복한 뒤 오계를 생명을 구해주 는 특별한 동물로 지정했다.
의학적이고 건강을 지켜주는 새라는 그 지위는 21세기까지도 이 어진다. 이승숙이 말한다. "오계의 뼈는 단단하고 몸은 근육질입니 다. 따라서 내장을 들어낸 뒤 통째로 서서히 끓여 진하고 영양가 높 은 국물을 만듭니다.” 그녀가 연산오계를 멸종 위기에서 지켜내는 데 헌신한 다른 이유도 있다. "그건 살아 숨 쉬는 한국 역사의 한 부 분입니다. 이 닭은 이 땅에서 우리 선조들과 적어도 700년 이상 함 께 살아왔어요. 연산오계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우리 영혼의 한 부분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도도새처럼 과거의 전설적인 동물이 된 다면, 사진이나 박제된 표본으로만 볼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비극 일거예요."
- 돼지는 길들일 동물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양, 소, 염소는 그럴 수 있었다. 인간은 풀을 소화할 수 없지만 이런 동물은 할 수 있고 젖과 고기와 그 밖의 것을 우리에게 주었 으니까. 이와 달리 돼지는 인간의 경쟁자처럼 보였다. 그들의 이빨, 턱, 소화기관은 반추동물보다는 우리 것과 더 비슷하고, 기회만 있 으면 밭의 작물을 망치고 곡물 저장소를 집어삼킬 수 있다. 하지만 8000년쯤 전 돼지는 농부에게 꼭 있어야 하는 동물이 되었다. 농업 과 정착생활에서는 잉여 식량과 쓰레기가 발생한다. 알곡 껍질이나 인간의 배설물 등 유기물 쓰레기 말이다. 돼지는 기꺼이 그런 것을 모두 먹고 지방과 근육으로 바꾸었으며, 인간을 위한 살아 있는 식 품 저장고가 되어주었다. 양과 닭처럼 돼지를 고기 용도로 죽이는 것은 최대한 늦추어졌다. 살려둔 상태로 그들은 훨씬 더 가치 있는 어떤 것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돼지는 작물에 뿌릴 거름을 생산했다. 길들인 돼지는 장거리 이주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런 살아 있는 지방 공급원이 있으니 사람들은 미지의 장소로 갈 수 있었고, 도착하면 번식할 수 있는 동물들과 함께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태평양상의 먼 섬에 정착한 최초의 인간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들이 돼지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돼지가 인간의 정착지에 도입되기 전에 수렵채집인은 멧돼지를 쫓아가서 죽여 고기를 얻었다. 돼지를 길들이려는 최초의 조심스러 운 단계는 아마도 개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먹이를 찾아 인간이 사는 곳에 가까이 온 멧돼지 가운데 너무 공격적인 것 은 죽임을 당했고, 너무 온순하고 겁이 많은 것은 먹이 가까이 접근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상대하기 시작한 멧돼지는 인간과 함께 있 어도 편안해하는 수동적인 멧돼지였다. 
- 중국어에서 '가족', '집' 또는 '가옥'을 뜻하는 '家'라는 단어는 수천 년 전에 (지붕을 뜻하는) 하나의 상징 위에 (돼지를 가리키는) 또 다른 상징을 추가해 구상되었다. 고기를 뜻하는 '肉'이라는 단어 는 오로지 돼지고기만 가리킨다. 다른 모든 동물의 고기는 종에 따 라 적시되어야 한다. 가령 소고기牛肉, 양고기처럼 말이다.
돼지가 생태 시스템의 핵심 부분으로 자리 잡으면서 농부들은 특 정한 환경에 적합한 품종을 만들어냈다. 대개 둥글고 창백하고 다 리가 짧고 배가 나온 돼지인데, 가장 오래된 품종으로 메이샨Meis- han이 있다.3 메이샨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길들인 것은 아니지만 오래된 품종 중 하나다. 이 온순한 동물은 제한된 공간에서 인간과 함께 비좁게 사는 데 적응했고, 다양한 식단으로도 잘 살아갔다. 중 국 전역에는 100개 이상의 돼지 품종이 있다. 마오쩌둥 치하의 공 산당 시대에 이르도록 그들의 주된 역할은 네발로 걸어 다니는 비 료 공장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돼지는 위기가 닥치거나 축하할 일 이 있을 때만 도축되었고 그 고기는 자주 맛보기 어려운 사치였다. 페로제도의 양처럼 동물이 결국 도축되면 모든 부위가 이용된다. 중국에서는 돼지머리를 통째로 진미로 대접하며, 요리된 돼지 뇌수 는 중국 요리 전문가 푸샤 던롭Fuchsia Dunlop의 표현에 따르면 “커 스터드처럼 부드럽고 위험할 정도로 진하다." 돼지 위장, 내장, 꼬 리, 귀, 엉긴 피 역시 즐겨 먹는다. 돼지의 유전자와 돼지가 먹는 먹 이 때문에 이런 오래된 품종의 고기에는 지방분이 많다. 그런 성질 이 갓을 넣어 찐 돼지 뱃살(메이차이커우러우梅菜抑肉)이나 돼지기 름으로 볶은 채소의 진한 맛 같은 중국 요리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을 형성했다.
- 과학저술가 데이비드 쿼먼David Quammen의 표 현에 따르면 우리가 생태계를 파괴할 때 바이러스의 천연 숙주로부 터 바이러스가 해방된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바이러스는 새 숙주 가 필요합니다. 인간이 그 숙주가 될 때가 많지요.” 그리하여 야생 동물로부터 흘러나온 바이러스가 인간으로 넘어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아마 더 큰 재앙의 경보였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생물다양 성을 지켜내야 하는 가장 이기적인 이유가 생겼다. 우리 자신의 안 녕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

- 우리는 바다가 무한한 식품 공급처라고 믿었고, 지금까지 그것을 뽑아쓰는 데 지나치게 유능했다. 1880년대에 범선 어선 외에 증기 로 움직이는 트롤어선이 새로 등장했으며, 1900년대 초반에는 디 젤 동력선으로 더 멀리 나가서 더 깊은 바다에서 어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20년대에 발명된 나일론은 우리의 옷 입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어로활동 방식도 바꾸어놓았다. 몇 킬 로미터씩 이어질 수 있는 고기잡이 그물과 낚싯줄이 생산된 것이 다. 아울러 선상에서 고기를 급속 냉동할 수 있게 되어, 어선들이 바 다 위에 더 오랜 기간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잠 수함 탐지를 위해 설계된 음파 탐지 기술이 어군의 탐지에 응용되 자, 마치 물 밑에서 야생의 생명체를 상대로 새로운 전쟁이 벌어지 는 것과도 같았다. 1954년에 세계 최초의 공장을 갖춘 트롤어선 페 어트리Fairtry호가 진수되어, 하루에 600톤의 생선을 처리할 수 있 게 되었다. 그것은 떠다니는 금광이 되었고, 다른 어선들도 곧 따라 했다. 오늘날 세계에는 어선 460만 척이 있고, 중국만도 심해어선 1만 7000척을 포함한 80만 척의 어선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많은 수는 페어트리호가 치어로 보일 정도로 큰 어선이다. 물고기가 숨을 수 있는 장소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어떤 트롤어선은 대양 깊은 곳에서도 잠깐 전류 파동을 발사해 물고기 근육을 경직시켜 움직이 지 못하게 하는데, 그렇게 하면 그물로 잡기가 쉽다.
순수하게 이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바다를 인간 식량의 원천으 로 생각할 때) 이것은 문제다. 33억 명의 인간은 바다에 의지해 단 백질을 얻는다. 전 세계에서 1인당 생선 소비량은 1990년 이후 평 균 두 배 늘었으며, 그 비율은 계속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행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바다에서 그처럼 많은 분량의 생명을 뽑 아오는 것은 재앙이다. 그토록 많은 성어를 포획 대상으로 삼음으 로써 우리는 바다에서 다른 생물종들을 위한 알과 치어와 식량을 고갈시켰다. 양어장에서 기르는 연어와 농어와 잉어를 먹이려고 잡 아들이는 작은 물고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전체 생태계는 와해하고 있으며 완결된 식량의 연속성은 철폐되었다. 해양의 삶이 이처 럼 쇠락하면서 우리 존재 자체에 근본적인 어떤 것 역시 사라진다. 
- 원양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국제 어로 작업은 각국 정부가 주는 보조금 354억 달러로 조선부터 연료, 냉동, 노동력 가격 등 모 든 것을 충당하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중국이 지 급하는 보조금은 매년 그중 가장 거액인 72억 6000만 달러에 달한 다. 이런 재정 지원이 없으면 그 어선 군단은 본국에서 수천 킬로미 터 떨어진 페루나 아르헨티나 수역에서 조업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러므로 아프리카 어부들은 보조금을 받는 산업 함대와 모리타니 해안을 벗어난 곳에서 경쟁할 방법이 없고, 자신들의 수역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
- 서아프리카 연안에서 조업하는 대형 트롤어선들이 잡은 물고기 는 대부분 전 세계로 거래되지만, 그중 일부는 모리타니에 들어가 서 처리한다. 외국인 소유의 가공 공장은 더 작은 물고기를 양어장 의 물고기 밥과 가축 산업의 사료로 만든다. 모리타니에 있는 그런 공장은 대부분 중국인 소유이며, 거의 모든 물고기밥(그리고 어유 油)은 중국으로 향한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지구상에서 가장 큰 양식 어류의 생산자였다. 그 생산물은 이제 나머지 세계의 양식업이 만들어내는 분량의 총합보다 더 많다.
- 시오카쓰오의 변형이자 일본 요리에서 더 잘 알려지고 어디에나 쓰이는 것이 가쓰오부시다. 돌처럼 단단하게 저장된 이 물고기 의 전통적 버전은 6개월이나 걸려 만들어지고 그 과정은 30단계를 거친다. 시오카쓰오처럼 가쓰오부시도 가다랑어로 만들지만 처리 과정이 더 복잡다단하다. 먼저 물고기를 훈제해 탈수하고 살을 단 단하게 한 다음 아스페르질루스 글라우쿠스aspergillus glaucus라는 곰팡이 포자가 얇게 덮이게 한다. 물고기를 일주일가량 발효시킨 다음 햇볕에 말리고 곰팡이를 긁어낸다(말리고 긁어내는 단계를 여 러 번 되풀이할 수 있다). 그러면 손바닥 크기의 엷은 갈색으로 휘어 진 물건이 남는다. 그것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음식일 것이 다. 그것을 대패로 얇게 썰어 다시마(해초)와 같이 끓여 육수를 내 면, 시오카쓰오 가루를 뿌릴 때처럼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맛이 폭발하고 효소, 아미노산, 젖산, 펩타이드, 뉴클레오티드와 관련된 화학적 반응으로 감칠맛이 몰려든다. 그 모두가 저장 과정에서 물 고기 속에 갇혀 있다가 이제 다시 풀려난 것이다.
- 시오카쓰오가 쇠퇴하게 된 씨앗은 1853년 7월 8일에 심어졌다. 미국 해군 제독인 매슈 페리Matthew Perry가 에도(현재의 도쿄) 항 구에 접근해서 220년간 지속한 일본의 자체적 고립 상태를 끝내라 고 요구했다. 그때까지 일본의 해외무역은 최소한으로 유지되고,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사람들은 해외여행 허가를 받지 못했고, 심 지어 해외여행이 가능한 배를 건조하지도 못했다. 일본은 대체로 자급자족적 사회였으며, 불교와 신도神道에 따라 대부분 채식주의자 였다. 위장을 채우는 것은 쌀이었고, 맛은 채소와 피클, 국물로 냈으 며, 시오카쓰오 같은 요소를 추가하여 맛을 강화했다. 동물성단백 질의 공급원은 주로 바다였다.
1850년대 말쯤 페리가 미국의 요구를 밝힌 뒤 변화가 진행되었 다. 일본은 다시 교역을 시작했으며, 비단과 차를 수출하고 총과 면화를 수입했다. 일본 지식인들은 서구는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아 시아 국가들은 정체되어 쇠퇴의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또 한 서구의 힘은 고기와 낙농제품의 식단이라는 연료에서 나오는데, 일본은 채식주의 문화 때문에 지체되고 있다고 짐작했다. 따라서 일본이 경쟁하려면 입맛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872년에 정부는 지금 보면 동물성단백질 광고처럼 들리는 말투로 새로 즉위 한 황제가 육식가가 되었음을 공적으로 발표했다. 군인들의 식사 배급에 고기가 들어가기 시작했고, 요소쿠야食屋라는 새로운 스타 일의 레스토랑이 문을 열어 소고기와 돼지고기, 맥주를 내놓았다. 영국에서 돼지를 수입해 일본 도시에 들여보냈고, 거기서 도시의 잔반을 먹고 길러져 육류 공급을 늘리는 데 기여했다. 고베 항구는 미국 소고기의 수입항이 되어 정육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그것은 지금도 이어진다.
- 이는 모두 일본 음식 문화에 극심한 변화를 일으켰다. 예전에는 닭고기를 먹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어느 농촌에서나 소는 한가족 으로 대접받았으며, 죽으면 묻어주기까지 했다. 고기를 파는 가게 는 흔히 사회적 낙오자들의 장소로 여겨졌고, "잔뜩 문신한 불한당 이나 서구 영향을 받은 학생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약용으로만 드물게 고기를 먹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의 몇십 년 동안 고기를 꺼리는 사람은 일본의 급속한 변화에 뒤떨어진 나이 든 세대뿐이었다.
음식 문화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한 뒤, 미국 점령군 이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계획을 시행함으로써 또 다 른 큰 변화를 겪었다. 점령군은 밀, 분유, 통조림 햄을 수입했다(오키나와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러자 쌀 소비가 줄어들기 시작 했다. 1962년에는 한 사람당 일 년에 170킬로그램이 소비되었지 만, 1986년에는 절반 이하로 줄어 고작 71킬로그램만 소비되었다. 그와 반대로 일상의 고기 소비는 한 사람당 30그램이던 것이 80그 램으로 늘었다. 참다랑어 (지금은 멸종 위기에 처한 어종)를 먹는 것 이 일본의 전통이 된게 이때였다. 이 어종은 지금 일본인이 가장 좋 아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인데, 다들 그것이 분명 일본 요리의 오래 된 특징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세기 전의 일본 인은 참다랑어가 기름기와 피가 많고 뚱뚱하고 하급의 생선이라 여 겼고, 스시 재료로 가장 인기 높은 것은 가자미나 감성돔 같은 흰살생선 그리고 대합과 오징어 등의 해산물이었다. 일본 음식 역사 의 전문가인 트레버 코슨Trevor Corson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참다랑어를 내놓는 요리사를 멸시했습니다. 그건 그냥 내다 버리는 생선이었어요." 그 지위를 바꾼 것은 전쟁이 끝난 뒤 붉은 살코기가 들어오게 되면서였다. 참다랑어는 가장 부드러운 소고기와 외형과 질감이 같았고, 1970년대 일본인의 입맛이 이런 색다른 맛과 질감 을 찾는 쪽으로 옮겨가면서 점점 더 인기를 끌었다.
- 당시 일본은 기술의 붐을 누렸고 카메라, 전자기구, 광학렌즈 등 의 화물이 비행기에 실려 북아메리카로 판매되던 시기였다. 일본항 공의 한 물류팀은 이런 값비싼 비행기가 짐을 부린 뒤 빈 채로 귀국 하는 대신에 국내로 들여와서 팔 만한 제품을 찾아보았다. 팀원이던 아키라 오카자키Akira Okazaki는 북대서양 연안의 취미 낚시꾼들이 참다랑어를 잡았다가 그냥 내버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공사는 냉장 시스템을 갖추고 이 엄청나게 큰 물고기를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 공급망은 참다랑어가 사람들이 최고로 원하는 음식인 동시에 바 다에서 가장 위기에 처한 물고기가 되는 데 일조했다. 새롭고 맛이 더 진한 고기 음식 쪽으로 입맛이 바뀌고 있으니, 시오카쓰오와 그 것으로 맛을 돋우는 소박한 나물 요리를 누가 원하겠는가?

- 굴을 먹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들의 운명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 것은 핵심종이며, 바다에 사는 다른 생명들을 지원한다. 굴 한 마리는 매일 바닷물 200리터를 여과하고 정화하며, 숫자가 늘어나면 다른 해양 동물을 위한 안전한 피신처가 되어줄 수 있다. 굴밭에는 100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생물종이 살 수 있다. 굴의 수가 수백만 마리까지(심지어 수십억 마리까지) 늘어나면 굴은 완충지대를 구 축하여 해안선을 침식에서 막아줄 수 있다. 굴은 행성에서 가장 맛 있고 건강한 식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사키Saki'의 단편에 나 오는 한 인물이 이야기하는 "굴의 공감적 비이기성"은 전적으로 옳다.
음식으로서 굴은 먹는 사람을 특정한 장소와 시간으로 데려갈 놀라운 힘을 지녔다. 굴은 산 채로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물 가운데 하나이며, 어느 한 부위도 버리지 않고 먹는(껍데기만 제외하고) 아주 드문 사례다. 굴의 살, 배, 소화 기관, 심장, 아가미, 피까지 모두 먹는다. 그 모든 것이 한입에 들어 간다. 살은 쫄깃하고 달콤하지만, 배에는 굴이 먹고 산 식물의 맛이 남아 있다. 어떤 굴은 기름진 맛이 날 수 있고, 또 어떤 굴은 올리브 나 익힌 채소 맛이 날 수 있다. 굴의 '피'(또는 적어도 그 순환기를 이 루는 액체)는 대부분 바닷물인데, 그것이 굴 맛에 영향을 주는 또 다 른 큰 변수다. 어떤 굴은 아주 짠 해수에서 살고, 또 어떤 굴은 민물 강이 바다와 만나는 심심한 물에서 살기 때문에 짠맛이 덜하다.
굴이 잡히는 시기도 중요하다. 한겨울이 되기 전, 동면 상태로 들 어갈 때 굴은 먹이를 잔뜩 먹고 살을 찌운다. 굴이 가장 통통하고 단 맛이 나는 때다. 봄에 바다가 되살아나고 굴이 다시 먹이를 먹기 시 작하면 맛이 또 한 번 변한다. 그러나 여름은 굴의 번식기이므로, 굴 에 알과 정액이 가득 차서 쓴맛이 난다. 8월이 되어 알을 낳았을 무렵이면 굴은 축적했던 자원을 다 써서 가장 홀쭉해진다(영어로 R이 있는 달에만 굴을 먹으라는 말은 이 때문이다). 5 굴을 먹을 때는 다 른 변수도 있다. 굴이 잡혔을 때 날씨가 따뜻했는가, 추웠는가? 비 오는 날이었는가? 바다로 흘러드는 개울물에 영양분이 많은가? 굴 한 마리는 시간, 장소, 기후, 유전학의 반영이 될 수 있다. 어떤 전문 미식가는 굴 껍데기를 쳐서 열고 살을 씹어보고 짠 즙액을 마시면 그 굴이 해안 어느 지역에서 수확되었는지 맞힐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맛을 보면 굴은 바다가 줄 수 있는 것 중에서 와인에 가 장 가깝다.
-18세기 프랑스에서 굴 양식은 번성하는 산업이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 사업이 식량을 제공하고 프랑스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 굴 양식을 권장했다. 그래서 퇴역 군인들에게 굴밭 을 선물로 주어 굴 양식업자가 무더기로 생겨났다. 토착종인 납작 굴이 이미 공급 부족 상태였기에 이런 양식장에는 다른 품종의 굴 이 도입되었다.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포르투갈 굴학명 Crassostrea angulata이었다. 1860년대에 이 굴을 잔뜩 싣고 보르도 근처의 아르 카만으로 향하던 배 한 척이 폭풍우를 만나 가까운 강 하구에 화 물을 내려야 했다. 그 굴이 살아남아서 해안을 따라 자리 잡았고, 나 중에는 프랑스 현대 굴 산업의 자원이 되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 에는 포르투갈 굴이 병으로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 때문에 지금은 흔해진 태평양 굴, 크라소스트레아 기가스Crassostrea gigas ('거인' 이라는 의미)가 1966년에 도입되었다. 오늘날 유럽에서, 아니 세계 어디에서든 먹는 굴은 십중팔구 아마 이 종류의 굴일 것이다. 이 품 종은 1900년대 초반에 상업적 용도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수출되었 으며, 개체수가 급속히 늘어 올림피아나 올리학명 Ostrea conchaphi- la 같은 토착 굴을 따라잡았다.
태평양 굴은 여러 세기 동안 아시아에서 길러졌다. 납작 굴보다 빨리 자라고, 더 크고 튼튼하며, 질병에도 덜 걸린다. 부드럽고 납작 하고 자갈처럼 생긴 유럽 토착종과 달리 태평양 굴의 껍질은 날카 롭고 삐죽삐죽하고 겹치는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그래서 '바위굴 rock oyster'이라고도 부른다). 20세기에 이 품종은 전 세계로 퍼졌 다. 납작 굴이 빅토리아시대 노점 음식이었다면 태평양 굴은 맥도널드다. 

- 과일 재배는 곡물이나 콩 농사를 짓는 것과는 전제가 다르다. 가 지치기를 해주어야 하고, 가지와 덩굴을 다듬어 수확하기 쉽게 만들 어야 하며, 특정한 품종을 유지하려면 접목과 효율적인 복제 (한나 무에서 봉오리나 작은 가지를 잘라 다른 나무의 뿌리나 둥치에 붙 이는 것이 한 가지 예이다)를 해주어야 한다. 저장 역시 곡물 저장보 다 훨씬 더 까다롭다. 과일은 딴 직후부터 빠르게 시들고 썩는 과정 이 시작된다. 보존 기술은 한계가 있다. 살구와 사과를 햇볕에 말리 고 포도로 와인을 담그고 사과로 사이더를 만들지만, 어느 것도 밀 이나 옥수수 알갱이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쓰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같은 규모로 이루어질 수도 없다. 어떤 과일 재배자들 은 동굴 같은 천연의 서늘한 환경을 이용했다(중부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 같은 곳에서는 지금도 수확한 레몬을 항상 섭씨 12.8도로보관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과일 문화에서, 또 과일을 재배해온 거의 모든 역사에서 과일은 길러낸 장소에서 소비되었다. 서로 다른 과일 품종이 수없이 만들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 다른 작물들처럼 우연한 유전적 변이와 인간의 선택이 더해져 엄청난 다양성이 창출 되었다. 몇몇 과일 품종은 운명 같은 우연적 발견의 산물이었다. 예 를 들어 사과의 그래니 스미스와 골든 딜리셔스 품종은 우연히 씨가 뿌려졌다가 눈에 띄었다. 어느 눈썰미 좋은 재배자가 이 두 품종이 한 나무에서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이, 클레 멘타인은 19세기 알제리에서 자라던 한 변이 만다린을 통해 세계에 왔다. 총괄적으로 볼 때 식물학자들은 배품종 variety (또는 재배품 종 cultivar) 3000종, 감귤류와 바나나 각 1000종 이상, 사과의 경우 7000종이라는 놀라운 숫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기 록에 남은 품종들이다. 이 정도의 다양성은 우리 중 거의 아무도 겪 지 못할 테지만, 그 이유는 과일 때문이 아니라 공급 체계가 변했기 때문이다.
- 냉장 체인이 끊어지지 않고 작동할 경우, 세계 한편에서 길러진 신선한 과일이 이제 지구 반대편에서 소비될 수 있다. 과일(및 다른 음식) 소비에서 계절적 요소의 영향은 줄어들었고, 적어도 잠재적 으로는 식단이 다양해졌다. 그러나 모든 과일이 새로운 전 세계 공 급망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균일화가 비집고 들 어왔다. 국제무역의 엄격성을 감당할 수 있는 과일 품종이 거대한 단일경작 체제로 재배되었다. 20세기 후반에는 소수의 과일 품종만 이 세계의 대농장, 과수원, 과일 그릇을 지배하게 되었다. 사과를 예 로 들면 레드 딜리셔스이고, 배라면 바틀릿이 그런 품종이다. 바나 나의 경우 캐번디시였다. 감귤류는 발렌시아와 네이블 오렌지였다. 이 시기에 과일 육종을 관리하는 회사는 점점 줄어들었다. 20세 기가 끝날 무렵 이 관리권은 대개 정부가 자금을 대고 대학이 지원 하는 공공기업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나 갈수록 점점 그것은 이제 민영화해 '마케팅 그룹'과 '클럽'이 주도하게 되었다.  그들은 전세계 과일 시장에서 최고위 품종들을 개발하고 소유하고 있다. 재즈사과, 드리스컬 딸기, 슈퍼스위트 파인애플, 코튼캔디 포도가 모두 이런 사례다.
신품종의 과일을 육종하는 일은 여러 해 걸리고, 수십 억의 투자 금을 쏟아부어야 슈퍼마켓에 진열된 만한 과일을 얻을 수 있다. 우 연에 맡길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신품종은 수익을 내려면 대규모 로 재배해야 한다. 전 세계 고객에게 닿으려면 시장 판매대에 오래 올려져 있어야 하며, 냉장 체인이 제시한 조건뿐 아니라 슈퍼마켓 이 내건 구체적 요구(과일 크기와 색깔에서 당도와 수분 정도까지) 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균일성이 승자가 되고 다양성이 쇠락한 이유는 여기 있다. 하지만 다음에 나올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이런 시스템은 변하고 있다. 그럴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 지금 전 세계의 대부분 국가에 있는 것은 아주 특정한 성질의 사과 품종들이다. 사과는 달콤하고 아삭아삭해야 하며, 오래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준에 맞는 품종들이 전 세계 슈퍼마켓의 선 반을 재빠르게 점령했다. 레드 딜리셔스(1870년대에 아이오와의 한 농부가 발견한 품종)는 한 세기 동안 미국 내 최고 인기 사과 품 종의 지위를 누렸으며, 최근에야 그 지위를 갈라에 넘겨주었다. 미 국사과조합의 마크 시틴Mark Seetin이 말한다. “사람들은 더 달콤하 고 더 아삭한 사과를 원합니다. 산업계는 갈라를 아주 좋아해요. 질 소 저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아홉 달 뒤에 꺼내도 여전히 나무에서 갓 따온 것 같은 맛이 납니다."
갈라는 영국에서도 대표적 판매 품종이 되었고, 그 뒤를 따라오 는 것이 골든 딜리셔스, 그래니 스미스, 브레번 등이다. 더 최근에는 핑크레이디, 재즈, 후지가 추가되었다. 이 세 품종 모두 20세기 육 종 프로그램(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일본)의 산물이다. 그리고 모두 소규모의 '엘리트' 품종을 부모로 한다. 육종은 길고 복잡하고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므로, 그 산업은 가장 성공적인 사과를 접붙 이기해 안전하게 진행하려는 경향을 띤다. 예를 들어 골든 딜리셔 스는 교차 교배해 갈라를 만들었고, 갈라는 또 브레번과 교차 교배 해 재즈 사과를 만들었다. 레드 딜리셔스는 교차 교배해 후지를 만 들어냈다. 이것들은 모두 육종되어 빨리 딸 수 있고 수익성 높은 품 종을 만들어냈으며, 장기간 저장되고 여러 나라에서 길러질 수 있 다. 12 슈퍼마켓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눈에 잘 띄어야 하 고 품질이 꾸준히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사과를 살 때 그것이 어떤 맛이 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어떤 계절이건, 혹 은 어떤 세상에서 사과를 먹게 되건 간에 맛에서든 질감에서든 예 상치 못한 놀라움이나 예외는 없다. 그런데 타닌이 풍부한 브라운리스 러싯과 포트와인 같은 블레넘 오렌지는 더 복잡한 맛을 낸다. 이런 상업적 신품종을 만들어내는 것은 큰 사업이며 재즈나 핑크 레이디 같은 품종은 '마케팅 클럽marketing. clubs' 소속 회사들의 배 타적 자산으로 라이선스를 받는 품목이다. 육종가, 과일 재배자, 수 출업자 들의 공급망 전체가 클럽에 한데 묶여 있다. 이런 클럽이 어 떤 특정 브랜드의 사과 품종을 세계 각지의 어디에서 기르고 분배 하고 홍보할지를 결정한다. 슈퍼마켓에는 이런 시스템이 효율적이 다. 13 소수의 공급자만 상대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케팅 클럽 시스템에 최근 추가된 것이 2019년 12월에 출시한 코스믹 크리스프다. 평균보다 살짝 더 크고, 깨알만 한 점들이 빨간 색 껍질 전체에 별처럼 퍼져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깨물 때 나 는 소리가 다른 경쟁 품종들보다 훨씬 더 아삭하게 들린다고 한다.
- 판매대에 올려진 사과를 보면서 그것이 만들어진 사연까지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과는 수천만 달러의 투자, 20년간의 기획과 육종 과정, 실험용 나무 수백 그루에서 따온 과일 들의 선별과 맛보기 과정이 투입된 사업의 산물이다. 사과 산업에 관한 한 필수적인 품질 하나는 냉장 저장된 상태로 일 년 이상 버텨 줘야 한다는 것이다. 코스믹 크리스프의 특허권은 워싱턴주 소유이 므로, 농부들은 사과나무를 사올 때 한 그루당 또는 사과를 팔 때 한 상자당 로열티를 지불하는 데 동의했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투자가 이루어졌고, 145억 달러를 들여 새 나무 1300만 그루가 심어졌다. 코스믹 크리스프라는 품종은 너무 거대해져서 실패할 리가 없는 존 재일 수도 있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그 품종이 사과 판매를 오랫동 안, 아마도 앞으로 몇십 년간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 아시아의 토착 품종 사과가 많은데도 중국 소비자는 미국산 레 드 딜리셔스 품종을 점점 더 많이 구입한다. 중국의 신흥 부자 중산 층에게 이 사과는 선망의 대상인 서구 음식이다. 중국 또한 나라 동 부에 갈라와 후지 품종의 나무 수백만 그루를 심었다. 후지 품종은 1930년대에 일본의 육종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사과다. 반면에 이 와 완전히 다른 종류의 다양성이 미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 전적으로 변형된 북극 사과가 가공되어 '갈색으로 변하지 않는' 사 과가 되었다. 그래서 껍질을 깎고 잘라서 비닐로 포장해 판매하는 용도에 적합하다. 21세기의 사과 세계에는 온갖 종류의 다양성이 있다.

- 캐번디시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단일경작의 슈퍼스타가 된 것 은 그 바나나 하나하나가 복제물이기 때문이다. 이 식물은 스스로 씨앗에서 번식하지 못한다(야생 바나나와 달리). 캐번디시는 땅속 에서 자라는 흡근sucker 하나를 본 줄기에서 잘라 그것을 다시 심는 다(식물학적으로 말하면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라 거대한 풀이다).2 이 방법을 쓰면 바나나의 수익성은 높아지지만 복제 식물로서의 단 점이 있다. 캐번디시는 더 이상 진화할 길이 없고 면역 시스템은 새 로운 위협에 적응할 능력이 없다. 유전적으로 똑같은 바나나로 가 득 찬 대농장에서 병균 하나가 한 식물에 들어가면 그 병균은 농장 전부에 들어갈 수 있다. 정확하게 이것이 현재 상황이다.
여러 대륙에서 캐번디시는 죽어가고 있다. 대농장 전체가 치유 할 수 없는 질병인 트로피컬 레이스 4 tropical race 4 (TR4, 파나마 병 또는 시들음병Fusarium wilt이라고도 알려진)'로 죽어간다. 현재 전 세계의 식량 시스템이 워낙 심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그 병은 세계 반대편의 농장에도 퍼졌다.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아프 리카, 아시아 모두가 병에 걸렸고, 중국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바 나나 재배의 최대 지역인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처음으로 발견되었 다. 식물이나 삽, 작업자의 옷에 묻어 운반된 포자 몇 개만으로도 대 농장 전부를 오염시키며, 한번 흙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하면 그 땅 에선 더는 캐번디시를 기를 수 없다. 가장 많이 영향받은 것은 캐번 디시 품종을 기르는 방대한 단일경작 농장이지만, 워낙 공격성이 강 한 질병이어서 이런 농장에서 퍼져나가 소규모 농부들이 기르는 다른 품종에도 감염된다. TR4가 계속 퍼지면 서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의 공급에도 심한 타격을 받지만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 카에 사는 50억 인구가 입는 피해는 훨씬 더 심각하다. 이런 지역에 서 바나나는 칼로리의 주공급원이며, 식량안보의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며, 엄청나게 많은 문화적 의미가 담긴 음식이다.
캐번디시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는 알아둘 가치가 있다. 거대한 규모로 실행되는 음식 식민주의의 특별한 사례일 뿐 아니라 우리가 전 세계의 음식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그리 고한 번 할 수 있었다면 다시 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계 속의 캐번디시 이야기는 1826년에 아일랜드 식물학자인 찰스텔페어Charles Telfair가 중국 남부에서 한 가족이 텃밭에서 기르 던 바나나나무를 보게 된 데서 시작한다. 자신이 본 광경과 맛본 열 매에 감명받은 그는 모리셔스로 향하던 여행길에 그 식물을 가져갔 다. 그곳에서 바나나는 영국 최고의 열대식물 수집가인 제6대 데번 셔 공작 윌리엄 캐번디시William Cavendish의 관심을 끌었다. 공작 은 더비셔에 있던 자신의 채츠워스 영지 온실에 그것을 심었다('캐 번디시'라 알려진 그 품종은 지금도 그곳에서 자란다). "중국이 원 산지인 ... 이 아주 흥미롭고 지극히 귀중한 식물"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그리고 영국의 선교사 존 윌리엄스 John Williams가 1830년대에 남태평양의 섬들을 여행했을 때 채츠워스의 바나나 식물을 몇 그루 가져갔고, 그것의 새 이름인 캐번디시도 따라갔다. 여행길에서 살아남은 바나나는 한 그루뿐이었는데, 그 바나나의 흡 근이 그 뒤 100년간 사모아와 통가, 피지, 타히티에서 자라는 모든 바나나의 모체가 되었다.
- 바나나의 기원 중심지인 동남아시아 정글에서 야생 바나나는 (TR4의 고대 선조도 포함한) 곰팡이 질병과 같이 진화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질병은 변하고 식물도 변했다. 숙주(바나나)와 병균(곰팡 이)이 서로를 압도하려는 과정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번식력이 없 고 복제된 바나나(그로 미셸과 나중의 캐번디시 같은)는 적응하고 변화할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이 진화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 는 곧 질병(진화를 계속한)이 결국은 승리한다는 의미다. 바나나가 작고 고립된 농지에서 자랄 때는 이런 문제를 쉽게 처리할 수 있지만, 19세기 말 최초의 대규모 단일경작 농장이 만들어지자 이런 곰팡이 질병에 참화를 유발할 능력이 생겼다. 수백만 그루의 식물이 감염되어 사업 전체가 소멸해버린 것이다.
초기의 대농장주들은 감염된 농장을 폐쇄하고 깨끗한 감염되지 않은) 땅에서 새로 시작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과일 회사들이 라 틴아메리카에 그토록 매력을 느낀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 었다. 전 세계에 퍼지게 된 최초의 치명적인 붉은곰팡이병은 레이 스race 1호였다. 이것에 감염되면 잎사귀가 누렇게 변하고 반점이 생기며, 식물이 속에서부터 썩기 시작한다. 1950년대, 레이스 1호 는 그로 미셸을 심은 수많은 대농장에 퍼졌고, 그 품종의 재배는 경 제성을 잃었다. 이 질병에 저항력이 있는 대체 품종이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빅 마이크', 즉 그로 미셸을 중심으로 구축된 세계적 공 급망에 편입될 수 있는 품종이어야 했다. 여기에 캐번디시가 들어 와서 그로 미셸이 떠난 빈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내 내 캐번디시를 기르고 그것을 전 세계의 최고 바나나로 삼는 작전 은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레이스 1호처럼 TR4가 전 세계 바나나 농장에 퍼지기 시작했는데, 캐번디시는 이 질병에 저항력이 없었다. 최초의 대규모 발병은 1990년대에 중국 에서 일어났고, 그다음에 전 세계로 퍼졌다. 그것에 맞서 방어하기 위해 엄격한 생물학적 안전성 기준이 라틴아메리카에 설정되었고, 대농장에는 외부인이 출입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 다. 2019년 8월, 콜롬비아의 농업 당국인 ICA는 자국 바나나 농장 에서 TR4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이 사태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기다리는 중이다.
- 치즈는 세계를 변화시켰고, 인간의 활동 범위를 넓혀 산악 지역 이나 고원지대 같은 지구상에서 무척 살기 힘든 장소에도 정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유가 치즈로 전환됨으로써 생명을 주는 태양 에너지를 포착하고 저장할 수 있었다. 봄에서 여름 사이에 자라는 풀과 야생화의 자양분이 한겨울에 먹는 음식으로 변형되었다.
세계 각지의 인간들은 우유라는 재료 하나로 셀 수 없이 많은 독 특한 치즈를 만들어냈다. 어디서 만들어지든 어떤 모양인지, 또 어 떤 맛인지는 전적으로 그것이 만들어지는 환경에 달려 있다. 토양 과 초지의 종류, 사육되는 동물의 종species과 품종breeds, 소금이나 장작 등 사용하는 자원, 결정적으로는 우유와 공기 중에 존재하는 미생물(박테리아, 곰팡이, 이스트)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 다른 어 떤 음식보다 치즈는 특정한 장소와 계절에 더 밀접하게 연관된다.

-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도시 주민은 어렵지 않게 신선한 우유를 마시게 되었다. 철도망이 깔려 농촌에서 액체를 신선하게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 내의 낙농업 역시 번성했다. 이런 우유와 그것을 더 산업화한 제품과 대량소비는 질병, 특히 소 결핵의 증가 를 촉발했다. 18
이에 맞서기 위해 20세기 초반, 저온살균법pasteurisation (우유 를 잠깐 끓어 넘칠 정도로 가열해 살균하는 방법)이 거의 모든 유 럽과 북아메리카에서 법적 필수 요건으로 정해졌다. 이 방법은 우 유속 박테리아를 모두 죽여 없앨 수 있었다. 하지만 치즈를 만드 는 데 필요한 미생물(유산을 만드는 박테리아)도 사라졌으므로, 이 를 대체하기 위해 미세 유기물 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배양 균 cultures'을 개발했다. 자연, 지리, 기후는 더 이상 치즈의 성격을 결정하지 못하고 과학이 그런 결정 요소가 되었다. 당신이 세계 어디에 있든, 어떤 계절이든 체더, 카망베르, 고르곤졸라 치즈를 만들 수 있다. 그저 카탈로그를 보고 알맞은 유산균 한 봉지를 주문하면 된다. 장소와 산물 사이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깨졌고 초지와 동물, 농장에서 가져온 미생물들의 복잡한 배열(과거에는 치즈 제조의 핵 심 구성 요소이던 것들)은 점점 더 수상한 취급을 받았다. 지금에서 야 우리는 장내미생물의 과학을 더 잘 파악하고 있는 만큼 이런 미 생물을 배제하면 흥미로운 맛이 사라질 뿐 아니라 우리 건강에도 해로울 수 있음을 깨닫고 있다.
- 왜 오베르뉴 같은 산악 초지에서 만들어진 치즈가 그토록 독특한 지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젖 짜는 동물이 먹고사는 초지의 생물 다양성 정도가 클수록 그 젖에는 테르펜terpenes (식물의 방어 시스 템의 일부분)이라는 향기 복합물이 더 많이 함유된다.5 초지에서 풀 을 뜯는 동물은 이런 복합물을 섭취하고 그것이 우유로 옮겨진다(테 르펜은 상업 사료를 먹은 소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치즈가 숙성 하면서 테르펜이 진가를 발휘해 여러 층위의 맛을 창출하는 데 도움 을 준다. 여름에는 대수롭지 않은 맛이던 치즈가 진정으로 기억에 남 을 만한 것으로 변한다. 하지만 살레 치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일련의 특징이 드러날 기회가 있다. 젖을 짠 뒤 따뜻한 우유를 허리 높이의 제를gerles이라는 나무통에 쏟아붓는다. 우유가 나무와 접촉할 때 치즈는 이미 만들어지기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흰 벽으로 둘러싸인 낙농장 안에 임상 장비가 있는 것을 보는 데 익숙한 위생 조사관들에게는 이런 시설이 기겁할 만한 광경일지도 모른다. 수십 년은 묵었을 통은 화학 세제로 씻은 적이 한 번도 없었 다. 다만 치즈 제조 과정에서 남은 액체로 헹굴 뿐이다. 이는 살레 치즈 제조자는 그저 우유를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을 기르고 있기 때문이다. 목제 제를의 안팎에 사는 박테리아는 매우 다양 하고 활력이 넘쳐서, 다른 대부분 치즈와 달리 우유를 시큼하게 하 고 발효를 시작하게 만드는 종균배양액이 필요 없다. 나무통 안에 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분석한 미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제를 속으 로 우유가 쏟아진 뒤 몇 초 이내에 막대한 분량의 이로운 박테리아 가 우유에 접종한다. 유산균 농도가 너무 높아서 이런 여건에서는 위험한 병균이 살아남을 수 없다. 살아남은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건강한(바람직한) 미생물이 그것을 압도하며, 과학에서는 이 현상 을 '경쟁적 배제 competitive exclusion'라 부른다. 치즈가 숙성되는 동 안 유산균은 계속 원치 않는 미생물의 위협을 저지한다. 미생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좋은 박테리아에 최선의 집을 만들어주는 것이 치즈 제조자가 할 일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병균 박테리아인 리스테리아 모노사이토게네스Listeria monocytogenes를 잔뜩 집어넣은 제를로 실험해보았다. 몇 주일 뒤, 이 오염된 나무통 으로 만들어진 치즈를 검사했더니 병균이 사라졌다. 제를은 유해한 잠재력이 있는 해충에는 매우 적대적인 여건이었다.
일 년간 숙성한 살레 치즈 원판 하나를 잘라보면 알갱이와 반점 이 있는 진한 노란색 반죽이 보인다. 원판 하나마다 고유의 독특한 맛이 있다. 최고의 맛을 내는 살레는 고기 같고 육수 같고 버터 같고 풀 같은 맛이 난다. 산지 농부들의 작업을 지켜본 치즈 전문가 브론 웬 퍼시벌Bronwen Percival의 표현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는 "야생적 이고 뻔뻔한 맛을 낸다. 이것은 분명 다양성의 장점 가운데 하나다. 복합적인 음식, 약간은 예측 불가능하며, 분명히 지루하지는 않은 음식이다.
- 전 세계의 수많은 치즈와 요구르트에 쓰이는 종균을 배양하는 공장 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소박한 교외에 있다. 공장이라는 단어는 잘 못된 인상을 준다. 그곳은 SF영화에 나오는 거대한 화학실험실과 더 비슷하다. 내부는 밝고 긴 복도를 따라 '연구 구역'과 탈오염 구 역이 연결되어 있는데, 창문을 통해 로봇 팔들이 철저하게 소독된 방 안에서 액체와 가루를 운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장 안이 워 낙 넓다 보니 근무자 4000명은 전동 스쿠터를 타고 휭휭 돌아다닌 다. 크리스티안한센Chr. Hansen은 세계 최대의 유산균 생산업체다. 이곳에서 박테리아 배양액이 냉동 알갱이나 작은 병에 담긴 형태로 전 세계의 치즈 제조자에게 보내진다.
숙성한 맛을 내는 체더나 몬터레이잭을 만들고 싶은가? 크리스 티안한센은 그런 유형의 치즈를 만들 수 있는 종균배양액 목록을 갖고 있다. 아니면 에멘탈처럼 구멍이 숭숭 난 알파인 치즈를 만들고 싶은가? 그걸 만들게 해주는 배양액도 주문할 수 있다. 카망베 르, 모차렐라, 페코리노, 페타 스타일 등 온갖 다른 치즈도 마찬가지 다. 그 회사는 낙농 세계에서 가장 넓은 범위의 배양액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기성품 미생물이 있으면 식품 생산자는 세계 어떤 치즈 든 모두 얻을 수 있다. 그저 그 회사의 카탈로그에서 치즈 유형과 맛 의 특성을 선택하고 주문을 넣으면 된다. 이 인상적인 과정을 구축 하는 데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 미생물이 지휘하는 변형 과정인 발효는 치즈뿐 아니라 알코올을 만 드는 데서도 필수다. 그러나 치즈는 유산균으로 발효되지만 알코올 은 이스트로 발효된 산물이다. 진균류fungus family에 속하는 이 단 세포 생물은 현미경으로만 보이므로 맨눈으론 보이지 않지만 어디 에나 있다. 공기 중에 떠다니고, 식물의 표면을 덮고 있으며, 작은 흙 덩이에도 있다. 자연에서 이스트는 익은 과일과 접하면 당분 분자 를 분해해 에탄올이라는 알코올을 분비한다. 이 과정은 과일을 다 른 박테리아로부터 보호해 부패 과정을 느리게 하고, 병균을 막아 준다. 또한 곤충과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게 먹을 것이 여기 있 으니 찾아오라는 신호로 작용하는 향기 흔적도 남긴다. 그래서 마침내 그 과일의 씨앗을 퍼뜨리게 한다. 식물, 인간, 이스트 사이의 상 호 연관성은 알코올 마시기가 왜 그토록 많은 전 세계 문화의 특징 이 되었는지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이다. 이것은 '술 취한 원숭이 가 설이라는 근사한 이름의 이론을 낳기도 했다. 이 이론을 들고나온 사람은 생물학자 로버트 더들리 Robert Dudley인데, 그는 선조들이 자연 속에서 저농도 알코올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음주에 이 끌린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하나의 종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먹으면 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 과일은 고대 인간에게 있던 중요한 영양학적 격차를 메워주었지 만, 충분한 양을 소비하려면 신체가 에탄올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 다. 에탄올은 독성 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독성이 있으며, 모든 영장류가 그 화학물질을 처리할 능력이 있지는 않다. 과거에 일어 난 어떤 유전자변이가 인간에게 우유를 소화할 능력이 생기는 방향 으로 진화한 것처럼 알코올 대사 능력도 늘렸다. 이는 인간이 숲의 바닥과 사바나의 나무에서 떨어져 발효한 과일을 채집해 많은 양을 먹고도 몸이 아프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과일 속 에탄올은 심 지어 고대 인간의 과일 섭취량도 늘렸다. 바로 '식전주 효과'이다. 알 코올은 우리 기분을 더 좋게 해줄 뿐 아니라 식욕도 자극해, 술을 마 시면 더 많은 음식을 먹고 더 많은 에너지를 더욱 빨리 흡입하게 된 다. 영양가 있는 익은 과일이 있는 곳으로 이끄는 향기의 흔적을 따 라온 고대 인간이 다른 동물이 오기 전에 많은 양의 과일을 서둘러 먹을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 이 이론이 옳다면 음주는 우리 DNA에 고정으로 설정된 특징이 다. 알코올을 대사하기 쉽게 해주는 변이가 우리에게 남았고, 몇백 만년 뒤 우리 선조는 더 높은 도수의 알코올을 지닌 음료를 제조하 는 독창적인 방법을 발견했다. 곡물과 과일을 재배하기 시작하고, 그것으로 알코올을 만들게 된 농부들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스트 균주도 길들이게 되었다. 양조의 경우, 이 길들임은 그 이전 의 양조에서 남겨진 이스트가 새 양조에 쓰였기 때문에 발생했다. 진화적 기준에서 이는 인위적 선택이라 부른다. 19세기에 루이 파 스퇴르가 특정한 이스트를 추출하는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양조가 더 정밀한 과학으로 바뀌게 되었다. 어떤 형태를 취하든, 수천 년 세 월 동안 알코올은 인간의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우리 종의 역사는 알코올과 뒤엉켜 있다. 
- 알코올성 음료는 치즈만큼이나 지리적인 산물이다. 햇볕이 풍부 하게 내리쬐는 지역에서는 발효 가능한 설탕을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가 과일인데, 현대 조지아의 코카서스와 이란의 자그로스 산지에 와인 문화가 등장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 덥고 건조한 지역 에선 물이 부족할 때가 많지만, 뿌리가 깊이 뻗는 야생 포도 덩굴은 지하수에 닿을 수 있다.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로 와인을 빚는 작업 은 물을 뽑아내는 품위 있는 방식이며, 포도 껍질에서 이스트가 자 연적으로 생기듯 알코올의 생산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북유럽 처럼 더 서늘한 지역에서는 밀과 보리 경작이 성행했으므로, 양조 문화가 발전했다. 양조 과정에서는 발효뿐 아니라 끓이기도 해야 하므로 물보다 더 안전하고 에너지와 미세 영양소, 이로운 미생물로 충만한 음료를 만들어냈다. 허브, 향신료, 호프가 추가되어 맛과 보존 효과를 더했다. 맥주는 '액체 빵'이었다(아마 제빵의 부산물이 었을 수도 있다). 중국에서는 점성 쌀을 발효해 미지우酒, mijiu 같 은 알코올성 음료를 만들었고, 일본에서는 사케sake를 제조했다. 에 티오피아의 꿀 채집자들은 테지tej (또는 꿀술mead)를 만들고, 앞서 보았듯이 중앙아프리카에서는 바나나로 맥주를 만들었다. 남아메 리카 여러 지역에서는 옥수수와 감자로 맥주와 증류주를 만들었고,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는 쿠미크족Kumyk이 발효된 마유乳 로 알코올성 음료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다.
알코올에는 정신을 변화시키는 성질이 있어 종교와 서로 뒤얽 히고 신앙 체계에 뿌리를 내리는 일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독 교에서 성변화transubstantiation란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 신사에서는 사케를 신들에게 바친다. 또한 안 데스 지역에서 보았듯이, 샤먼들은 감자 증류주를 지모신인 파차마 마에게 봉헌하기 위해 신성한 돌 위에 붓는다. 지난 몇천 년간 개발 된 맥주 양조 기술의 대부분은 수도사들의 공적이다. 코란은 음주 를 금지하지만 9세기에 증류라는 근대 과학을 익힌 것은 아랍의 화 학자들이었다. 의학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을 넘어 그 기술은 나중에 아쿠아 비타이 aqua vitae, 즉 위스키와 보드카, 버번, 브랜디 등의 원 액이 되는 '생명의 물'을 생산할 수 있게 했다.
- 유라시아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위치 때문에 조지아는 침공받은 역사가 길다. 이교도의 왕들은 몽골, 페르시아, 기독교 개종자에 폐 위되었고, 그들은 또다시 무슬림 오스만제국에 정복되었다. 그 뒤 에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병합되었고, 집단화와 냉전이 뒤따랐 다. 이 질풍노도의 시기 내내 와인은 변하지 않고 남아 있던 몇 안 되 는 존재였다. 조지아 전사는 자신들의 포도원에서 잘라온 작은 가 지를 갑옷 밑에 품고 전쟁터에 나갔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을 상징 하건 이런 행동에는 실질적인 동기가 있다. 이들이 집에 돌아갔을 때 자기 마을이 파괴되고 농장이 불에 타 없어지거나 점령당했다 면 자신이 품고 다니던 포도 가지를 땅에 심어 다시 키우려는 것이었다. 그 가지는 이제껏 조지아에서 확인된 500종가량의 토착 품종 중 하나일 수 있다. 그 품종 컬렉션은 전 세계의 포도 다양성 전체에 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다른 곳에선 발견되지 않는 품종도 있다. 이 야생 유전자와 재배된 유전자풀이 없다면 피노 누아르, 네비올로, 시라 같은 와인은 절대 존재하지 못했으리라고 바빌로프는 주장했 을 것이다.
조지아의 음주 의례는 그 나라의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반영한 다. 잔들이 쟁그랑 부딪치면 '그대의 승리에게!'라는 뜻의 “가우마르 조스Gaumarjos"라는 건배사가 울려 퍼진다. 와인 제조자도 자신들 의 작업에 정신적 차원을 부여한다. 그들은 와인이 액체가 된 햇빛 이며, 음주는 신과 소통하는 방식이라고 여긴다. 그 나라의 농촌 지역에서 거의 모든 집은 포도밭과 지하실과 크베브리를 둘러싸고 지 어지지만, 어느 것도 판매용으로 병에 담지 않는다. 동물 가죽에 담 겨 운반되어 항아리에 부어진 와인은 가정의 식탁을 위해 만들어진 음료였다(라마즈 니콜라제는 삼십 대 후반까지는 와인을 병에 담 지 않았다). 이 문화에서 일련의 가치가 생겨났다. 이는 와인이 무엇 인가 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이 와인이 아닌지를 말하는 가치이기 도 하다. 이 세계의 에토스ethos에 따르면 당신은 아이를 기르듯 와 인을 기른다. 와인 제조자라는 단어도 탐탁잖게 받아들여진다. 와 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손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다. 제조자는 야생 이스트를 만나서 와인으로 발효될 운명을 미리 타고난 포도를 위한 안내자일 뿐이다. 포도를 크베브리 안에 넣는 것은 와인이 발달하고 스스로의 발로 서게 해주는 낮은 정도의 개 입 방식이다. 조지아인은 땅에 묻힌 크베브리 안에 있는 와인을 어머니 품속에 안긴 것으로 묘사한다. 대지가 어머니다. 농부가 포도 밭에서 일을 제대로 해내고 튼튼한 포도를 생산하면 크베브리 안에 서 다른 것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존 우더먼John Wurdeman은 "나쁜 농사와 빈약한 와인 제조는 마치 거짓말을 한 아이와도 같다"라고 말했다. 동부 조지아에 터전을 잡은 미국 태생의 와인 제조자인 존 의 말은 자연에 대한 이런 믿음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첫 번 째 거짓말을 숨기려고 점점 더 많은 거짓말을 하게 되며, 계속 그렇 게 이어진다." 그러므로 토양이 건강하면 많은 비료가 필요하지 않 다. 식물이 건강하고 다양하면 살충제를 뒤집어쓰지 않아도 될 것 이다. 와이너리에서도 와인을 교정하기 위해 산업적 처리가 필요하 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고대적 와인 제조 방식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은 20세기에 조지아 북쪽에 있는 거인 이웃인 러시아의 지시 아래 변하게 된다.
- 조지아의 와인 전통이 공산주의에 와해되던 시기에 10 다른 곳에 서는 자본주의가 와인 제조를 변형시키고 있었다. 1950년대까지 는 유럽 포도밭 대부분이 아직 소규모였고, 수작업으로 진행했으 며, 광범위한 토착 포도 품종의 고향이었다. 와인 품질은 여전히 자 연에 막중한 영향을 받았다. 포도밭의 토양과 기후가 빈티지 여부 를 결정하는 중심 요소였다. 1960년대에는 이 모든 것이 변하게 된 다. 볼로그와 다른 과학자들이 밀과 쌀을 변형한 것과 똑같이, 그리 고 식품 시스템이 더 산업화하는 것처럼 와인 제조도 그 자체의 혁 명을 겪는다.
- 이 와인 혁명의 핵심 인물은 에밀 페이노Émile Peynaud였다. 보 르도의 양조학연구소Institut d'Oenologie에 자리 잡은 이 독창적인 과학자이자 와인 제조자인 교수는 프랑스 와인의 품질을 개선하려 고 나섰다. 페이노가 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우연에 내맡겨 있었 다. 너무 많은 와인이 농도가 옅고 시큼했으며 상한 과일로 오염되 었다. 그는 와인 제조의 변덕스러움을 엄정한 과학으로 대체하기를 원했다. 이렇게 하면 프랑스가 더 많은 와인뿐 아니라 더 좋은 와인 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제안한 개선책 가운데 몇 가지는 알 기 쉬웠다. 최상의 과일만 따고 나머지는 버린다. 더 잘 익은 포도를 따서 타닌 맛을 순화한다. 위생에 더 신경 쓴다. 더러운 술통을 버린 다. 하지만 페이노는 실험실과 지하실 사이의 간격도 이어주었다. 와인의 pH 농도, 당도, 알코올 농도를 시험하는 방법이 도입되었다. 이는 와인 제조자들이 그때까지는 좋으면 본능적 관행이고 나쁘면 수수께끼로 치부하던 것에서 더 많은 통제력을 쥐게 해주었다. 생 산자들이 페이노의 지침에 따라 목표로 삼을 더 특정한 매개변수가 생김에 따라 프랑스 와인은 일관성이 유지되었다. 더 적은 수의 이 스트 균주를 선별하고 제조하는 데서도 발전이 있었다. 그렇게 하 면 포도주 양조에서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것들이 합쳐진 효과로 1970년대 말 프랑스의 와인 수출량 은 열 배로 늘었고, 생산량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 생산량의 총합보다 많아졌다." 페이노는 이제 현대 와인 제조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그는 다양성을 귀중하게 여기고 위대한 와인을 만드는 단일한 공식이란 없다고 믿었지만, 보르도의 '페이노화Peynaudisa- tion'가 일어난 뒤 와인 제조의 더 균질적인 접근법이 전 세계로 퍼 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정말로 위대한 와인은 어떤 맛이 나야 하 는지 더 세계적인 합의가 형성되었다.
페이노의 성공과 프랑스의 수출 증가를 토대로, (페이노에게서 배운) 한 세대의 컨설턴트들이 세계로 퍼져 보르도가 이룬 성공의 비밀을 나눠주었다. 가장 인기를 끄는 와인 컨설턴트인 미셸 롤랑 Michel Rolland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롤랑은 1970년대 초반 에 페이노에게서 배웠고, 1980년대에 오대륙의 와이너리에 조언 을 해주었다. 롤랑을 비롯해 컨설턴트들은 시장에서의 성공을 불러 왔다. 영향력이 큰 와인 평론가들도 시장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데, 그중 으뜸이 캘리포니아의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였다. 100점을 기준으로 파커가 매긴 점수는 와인 하나를 성공시킬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이 조합, 즉 와인 제조에서의 더 큰 기술적 통 제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컨설턴트 그리고 영향력 큰 평론가가 국제적으로 애호되는 스타일을 창출했다. 예를 들어 붉은 포도주를 더 대담하고, 더 농익고, 참나무 향이 강한 방향으로 유도하며 알코 올 도수를 높였다. 파커는 특정한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부 인하며, 롤랑은 위대한 와인의 제조법이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많은 와인 전문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병에 붙이는 라벨의 변화는 주류 스타일의 등장을 지원했다. 이 시점까지 와인은 부르고뉴, 바롤로, 리오하 등 지역명으로 표기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포도 품종을 표기하는(카베르네 소비 뇽, 샤르도네, 메를로 같은 것으로 시작하는) 라벨이 많아졌다. 프랭 크 스쿤메이커Frank Schoonmaker라는 와인 상인이 시작한 이 추세 는 신세계에서 확립되었지만, 캘리포니아의 와인 제조자 로버트 몬 다비Robert Mondavi 의 독창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주류가 되었다(몬 다비 와인은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 순위 5위 내에 든다). 이 전략의 목적은 와인을 소비자가 더 접하기 쉽게 하는 데 있었는데, 결과적 으로는 몇 안 되는 포도 품종을 슈퍼스타로 만들었다(카베르네 소 비뇽, 샤르도네, 메를로 외에 슈냉 블랑, 피노 누아, 리슬링, 소비뇽 블랑, 세미용, 시라가 있다).
전 세계에서 이런 성공에 동참하고 싶은 와인 제조자 수천 명이 자신들의 포도원에 이런 유명한 품종을 새로 심었다. 보르도의 소 비뇽과 메를로가 세계로 퍼졌다. 아르헨티나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된 포도밭에 심는 품종이 더 유행을 따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탈리아의 토착 포도 숫자는 1970년대에 절반 으로 줄어들었고, 포르투갈의 도루 지역을 보면 무엇을 잃어버리 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그곳 포도밭에는 여러 포도가 뒤섞여 심어졌다(어떤 곳에서는 100종의 다른 품종이 자라기도 했 다). 이것이 '필드 블렌드field blend'라 부르는 식재 유형이었다. 다양한 재래 품종 밀밭이 농부에게 위험 부담을 줄여주는 것처럼, 이런 필드 블렌드는 재난에 대한 방어력이 있다. 몇 가지 포도가 한 시즌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포도는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1970년 대에 그 지역은 지각변동을 겪고 있던 국제시장에서 더 큰 몫을 차 지하려는 전략의 하나로 다섯 가지 주력 품종에만 집중하기로 결정 했다.
- 새로운 운송 방법 덕분에 더 많은 분량의 와인을 전 세계로 실어 나를 수 있었다. 수만 리터를 거대한 저장 용기에 담아 배에 실을 수 있었고, 플라스틱제 플렉시탱크(흔히 방광이라고 한다)가 발명되 어 한 칸에 3만 병 분량의 와인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산업적으로 생산된 와인은 2000~3000달러를 들이면 대륙을 건너 목적지에서 병에 담기고 라벨을 붙일 수 있었다. 그것은 대부분 점점 커지는 슈 퍼마켓의 와인 판매대에 내놓을 것들이었다. 대량 시장 와인 제조 자들은 또 새로운 주류 스타일과 맛의 성공을 좇았다. 그리하여 파 커 효과가 전 세계에 흘러넘쳤다.
포도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모든 와인은 기술 덕분에 높은 점수를 받은 스타일을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생산자들은 착 색제, 감미료, 효소, 타닌 분말을 추가해 와인의 외형과 입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쉽게 바꾸었다. 또한 나노 필터, 마이크로 필터, 울트라 필터, 역삼투압 같은 또 다른 혁신적 방법으로 와인의 미세한 입자 를 제거해 맑고 반짝이게 할 수 있었다. 맛이 지나치게 도전적이면 마이크로 산화 기법을 써서 완화했다. 이런 대량 시장용 와인이 처 음에는 어떤 장소에 연관된 감각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병에 담 길 때쯤에는 그 관계성이 끊어졌다. 하지만 모든 행동에는 반작용 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기술에 집착해 와인을 다루는 접근법은 프랑스에서 저항운동을 유발했다.
- 이 운동의 멤버 중에 쥘 쇼베Jules Chauvet가 있었다. 그는 주로 보 졸레를 생산하며, 화학을 전공했고, 발효 전문가로 유명했다. 쇼베 는 포도밭이 하나의 복합적인 생태계로서 그 안에는 와인 산업에 서 심하게 과소평가된 종이 살고 있다는 생각에 매달렸다. 그가 말 하는 것은 포도 위에서, 그리고 포도 주변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야 생 이스트다. 그는 상업용 이스트를 써야 훌륭한 와인을 만들 수 있 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또한 와인 제조 과정에 아황산염을 다량 넣 는 방법은 피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물질이 와인 제조자들이 오히 려 권장해야 하는 미생물을 죽여 없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쇼베의 접근법이 상황을 우연에 내맡기는 것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생우유 치즈 제조자들처럼 그는 자연적인 방법에는 대단한 기술과 우수한 과학이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다. 와인의 경우, 이 과학은 포 도밭에서 시작한다. 그는 살충제 없이 자란 강하고 건강한 포도는 바람직한 이스트를 양성하고, 그것은 또 굉장한 와인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추론했다. 포도주의 양조 과정은 느리고 부드럽게 진행해 야 하고, 오염을 피해야 할 뿐 아니라 포도밭이 주는 선물인 미생물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꼼꼼해야 한다. 에밀 페이노가 현대 와인 제조의 아버지라면 쇼베는 내추럴 와인의 아버지다. 그의 생 각이 세계 각지 와인 재배 지역의 생산자들을 고취했다.
2020년에 프랑스의 와인 명칭을 관장하는 유력 단체인 국립원 산지품질연구소Institut National de l'Origine et de la Qualité (INAO) 가 내추럴 와인의 공식적 정의를 발표했다. 가령 그 표준에 따르면 포도는 손으로 따야 하고 이스트는 포도밭이나 와이너리의 환경에 서만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식이다. 14 '내추럴 포도주Vin Méthode Nature'의 정의는 내추럴 와인 제조자가 스스로 요청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와인이 점점 크게 성공을 거두자 대형 생산자들이 따라서 이 분야에 뛰어들어 그들의 와인을 '천연'이라고 선전할까 봐 걱정 한 것이다.

- 툴리누스Piptoporus betulinus를 달여 마신다. 인간은 음료에서 많은 것을 알아냈다. 신체적 정력의 고양, 정신적 민첩성의 개선, 식욕 억 제, 진통 효과, 피로 감소, 황홀경의 증가 등. 그러나 그 모든 후보 가 운데 지구상의 인간이 거주하는 모든 대륙에서 인간을 자극하게 된 식물은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 (차)와 코페아 아라비 카Coffea arabica(커피)뿐이다. 이 음료에 빠진 초기의 신도들은 두 음료에 신성한 지위를 부여했다. 중국의 불교도는 명상을 더 잘하 기 위해 차를 마셨고, 아라비아반도의 수피 수도사는 집중도를 높 이고 더 강한 기도로 이끌도록 커피를 마셨다. 커피와 차는 모두 쓴 알칼로이드인 향정신성 약물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연의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 가운데 하나다. 두 식물의 잎사귀에 주 로 저장된 카페인 성분은 천연 살충제로서 곤충과 배고픈 초식동물 을 물리칠 수 있다. 차나 커피 식물의 잎이 땅에 떨어지면 함유하고 있던 카페인이 토양에 흡수되어 제초제로 작용하며, 경쟁하는 다른 식물들도 막는다. 카페인을 즐기는 것은 인간만의 특징도 아니다. 카페인과 섞인 넥타르는 수분하는 곤충들을 고무해 그 식물로 돌아 오게 하고, 벌은 화분을 퍼뜨리는 대가로 카페인 성분 음료를 얻기 도 한다.
야생의 차와 커피가 시작된 곳(차는 중국 남서부, 커피는 동부아 프리카)에서 수렵채집인은 이런 식물이 자극성이 있음을 깨닫고, 처음에는 잎사귀를 씹었다가 (커피의 경우) 씨앗을 씹어먹었다. 발효와 다른 공정 기술은 나중에 이루어졌는데, 이는 식물 재료를 보 존하는 수단뿐 아니라 그 식물의 힘을 더 많이 활용하는 기술이었 다. 도자기는 2만 년쯤 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그 뒤 언제쯤인 지(정확한 시기는 알지 못한다) 건조되고 발효된 잎사귀와 씨앗을 우려내어brewed 음료로 만들었다. 차와 커피는 발원지에서 전 세 계로 퍼져나갔고, 당도하는 곳마다 사람들을 사랑에 빠뜨렸다. 아 니, 차라리 중독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1610년에 네덜란드령 동인 도회사는 차를 최초로 유럽에 수송했다. 1615년에 커피가 그 뒤를 따랐는데, 이때는 베네치아 상인들이 담당했다. 카페인은 전 세계 가 가장 애호하는 약물이 되는 길에 올라섰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 15분 이내에 카페인 효과가 우리의 중추신경계를 타고 달려가서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고, 신경을 활성화하고, 도파민 분비를 촉발한 다. 대부분 사람은 한 잔만으로는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런 음료에 의존하며 그것이 우리 삶의 일부, 수많은 일상적 제의에 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 두 가지 식물 카멜리아 시넨시스와 코페아 아라비카는 경제 전체를 변형시켰다(커피 수출 만으로도 브라질은 한 해에 거의 50억 달러를 얻으며, 인도에서는 120만 명이 차 산업에 고용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토록 널리 마시 고 있는데, 왜 차와 커피가 소멸 위기의 음식 책에 올라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두 음료의 발원지에 놓여 있다. 우리가 집중 할 부분은 초점은 야생 차와 야생 커피다. 두 가지 모두 열대 삼림에 서 발원한 것이며,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의 희생자다. 즉 기후변화, 삼림파괴, 생물다양성의 상실 말이다. 차와 커피는 우리 행성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렌즈가 되어준다.
- 커피의 과거가 해결책을 얻을 지침을 줄지도 모르지만, 그것 또 한 문제의 일부다. 커피는 남회귀선과 북회귀선 사이에서 전 세계 를 감고 있는 상상 속의 커피 벨트에서 자란다. 그 벨트는 중앙아메 리카의 코스타리카와 니카라과, 더 남쪽으로는 볼리비아와 브라질, 사하라사막 남쪽의 아프리카(서쪽으로 카메룬과 동쪽으로 소말리 아 사이 지역), 남아시아(남부 인도), 동남아시아(베트남, 인도네 시아, 파푸아뉴기니) 그리고 카리브해의 자메이카와 도미니카공화 국을 포함한다. 이 벨트는 동남아시아의 각 지역과 다른 열대 지역 에 대농장이 세워짐으로써 19세기가 되어서야 완성되었지만, 그 안 에서 자라는 커피의 연원은 모두 남부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 있는 야생 숲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커피가 어떻게 동아프리카 밖으로 나와서 그 벨트를 형성하게 되었는지는 왜 커피가 위협받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 위협이라 로야뿐만이 아닌지를 이해하는 데 핵심인 부분이다. 이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길러지는 거의 모든 커 피가 18세기에 전 세계로 퍼진 몇 그루 안 되는 식물의 후손이기 때 문이다.
길게 잡으면 100만 년 전, 남서부 에티오피아의 서늘한 고지대 숲에서 보기 드문 생물학적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두 가지 커피 식 물인 코페아 카네포라 Coffea canephora와 코페아 에우게니오이데 스Coffea eugenioides가 이종교배 되어 새로운 종을 하나 만들어낸 것이다. 그 이종교배는 성공적이었고, 우리에게도 다행스럽게 안정 화되었다. 이것이 세계 커피 대부분의 근원인 아라비카 Coffea ara- bica가 존재하게 된 사연이다. 커피 벨트 지역에서 자라는 다른 종은 아라비카의 부모 중 하나인 코페아 카네포라인데, 일반적으로 로부 스타robusta로 알려졌다. 아라비카는 둘 중에서 더 고급이며, 세계 커피 음용 역사의 대부분을 채우는 종이다. 로부스타는 대부분 인 스턴트커피에 사용되며, 19세기 말에 과학 세계에 알려졌다. 그리 고 상업용 커피로 중요하게 여긴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그러 나 커피가 음용되기 오래전에 그것은 음식이었다.
커피의 생물학적 중심지인 에티오피아의 수렵채집인이 처음 야 생아라비카 식물을 접한 것은 그 열매의 달콤한 과육을 먹기 위해 서였다. 씨앗을 뱉어내기도 했고, 또 생원두를 씹어 먹기도 했다. 오늘날 남부 에티오피아의 오로모족Oromo은 익은 커피 열매를 야생 나무에서 따서 돌절구로 간 다음, 으깨진 씨앗을 버터와 섞어 작은 환으로 만들어 긴 여행길에 먹을 에너지바 같은 용도로 갖고 다닌다. 어떤 시점에서 사람들이 커피 열매를 햇볕에 말리고 볶은 다 음 우려내어 마시기 시작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 우리는 세계의 음식과 전 세계 식단의 균질화 정도가 코카 식민 화Coca-Colonisation (1950년대에 프랑스에서 처음 쓰인 용어) 수 준을 훨씬 넘어섰음을 알고 있다. 우리가 먹는 빵의 재료인 밀, 우리가 먹는 닭의 먹이에 들어가는 콩, 전 세계 종자산업을 떠받치는 유전학이 모두 그렇다. 그렇지만 코카콜라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전 세계가 어떻게 균질화되었는지를 간단명료하게 알려주는 유용한 수단이다. 우리 식단뿐 아니라 입맛도 균질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크바스kvass를 예로 들어보자. 갈증을 가라앉혀 주는 발효 음료, 발포성이고 신맛이 매우 강한 그 음료는 러시아 전역의 수많은 가정에서 묵은 빵과 물을 섞어, 발효할 때까지 며칠간 내버 려 두는 방법으로 만들어지곤 했다. 이렇게 하면 물은 천연 탄산수 가 되면서 짜릿해지고 산성화한다(슬라브어로 크바스는 '시다'라는 뜻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꿀, 건포도, 나무 열매 등을 추가해 맛을 더하고 발효 속도도 높인다. 러시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우크 라이나 등지에서 온갖 다른 버전의 크바스가 존재하는 것은 이 때 문이다. "우리는 크바스가 있고 빵이 있지. 그거면 충분해"라는 러시 아 속담이 있다. 신맛 역시 해로운 미생물이 사라졌다는 신호다. 그 래서 크바스는 물을 대신할 귀중한 대안이었다. 서유럽에서 맥주와 같은 역할이다. 또 다른 속담이 생겼다. “나쁜 크바스가 좋은 물보다 좋다."
- 코카콜라가 러시아에 처음 들어온 것은 냉전시대였지만, 광고가 푸시킨 광장에 걸린 것은 소련이 무너진 뒤였다. 1995년에 코카콜 라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바빌로프 연구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병입 bottling 회사를 세웠다. 하지만 그 음료는 러시아에서 다른 나 라에서만큼 쉽게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크바스에 대한 애국적 광고 캠페인이 러시아의 텔레비전에서 "콜라 식민화Cola-nisation를 거부하라. 국민의 건강 을 위해 크바스를 마시자”라는 문구와 함께 방영되었다. 암갈색을 띤 크바스는 심지어 1리터짜리 콜라와도 비슷해 보인다. 이것을 '나 이콜라Ni-Kola'라고 불렀다(러시아어로 하면 'Not cola'와 비슷하게 들린다). 그렇기는 해도 달콤한 서구의 경쟁을 물리치기 위해 공장제 크바스는 갈수록 단맛이 강해졌다. 코카콜라나 다른 서구적 브랜드들이 지점을 내면서 러시아의 미각은 단맛에 압도당했다.
민족의 입맛이 신맛에서 단맛으로 변하자 크바스의 몇몇 유형은 거의 사라졌다. 흰 크바스 또는 키슬리예 시치kislie shchi (대략 '신 수프'로 번역되는), 검은 크바스의 더 우아한 버전인 꿀 빛깔의 크바 스도 그런 경우다. 키슬리예 시치는 묵은 빵이 아니라 발효된 맥아 밀과 호밀 알곡으로 만든다. 며칠 이내에 그것은 발포성의 흰색 음 료로 변하며, 갈증을 해소하는 용도뿐 아니라 닭 육수에 신맛을 살짝 더해주는 발포성 국물로도 쓰인다. 흰색 크바스에 쓰이는 종균 은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대대로 전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 정에서 크바스를 더는 만들지 않게 되었고, 특히 흰 크바스는 기억 으로만 남았다.
2013년에 러시아의 한 음료 제조자인 스베틀라나 골루베바 Svetlana Golubeva는 크바스 문화를(또는 크바스 종균을 이 단어의 두 가지 의미 모두를) 복원하기로 작정했다. 골루베바의 생각은 오 래된 가족 레시피에 따라 흰 크바스를 만들어 병에 담은 다음 모스 크바에서 팔겠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할 일은 오직 올바른 레시피 를 얻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2400킬로미터에 걸쳐 탐보프, 랴잔, 보로네시 등 남부 러시아의 먼 오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되도록 연로한 주민이 사는 집 문을 두드렸다.
골루베바는 단 한 곳에서 흰 크바스를 만드는 것을 발견해 그것 을 만들 종균을 얻었다. 이제 그녀는 몇 가지 지시 사항만 배우면 된 다. “흰 크바스는 얼마나 오래 발효해야 할까요?” 그녀가 물었다. "준비될 때까지”라는 답이 돌아왔다.3
골루베바가 키슬리예 시치의 인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그 럴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달콤한 균질성의 강물이 세계를 적시고 러시아로 흘러들어 오는 동안 골루베바는 감히 그 흐름을 거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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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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