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고장난 사람들

etc 2024. 4. 14. 07:39

- 사람이 잠들면 처음에는 졸음으로 알려진 1단계 수면으로 들어간다. 뇌에서 정상적인 각성 시의 전기 활성이 조용해지 면서 안구가 천천히 좌우로 돌아간다. 잠이 더 진행되면 얕은 잠 Light sleep 이라는 2단계 수면으로 들어간다. 이때는 뇌의 활동이 더 느려진다. 이 단계에서 뇌파를 기록하면 수면방추파sleep spindle와 K-복합파K-complex라는 특성이 보인다. 이는 배경 뇌파 리듬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변화로 각성 상태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잠자기 시작해 약 30분 안으로 나타나는 깊은 잠Deep sleep 인 3단계 수면에 도달할 즈음에는 뇌파가 상당히 느려지지만 진폭은 커진다. 그래서 이 단계를 서파수면이라고도 한다. 1~3단계 수면은 비렘수면으로 여기며, 잠자고 60분에서 75분 정도가 지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렘수면으로 들어간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렘수면에서는 안구가 좌우로 휙휙 돌아가고, 마치 깬 것처럼 뇌파가 매우 활성화되는 듯 보인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꿈을 가장 생생하게 꾼다. 성인이 되면 밤잠을 자는 동안 이 다양한 단계를 보통 너덧 번 정도의 주기로 거치며, 전반부에는 3단계 수면, 후반부에는 렘수면이 가장 큰 부분을 차 지한다
- 나이가 들면서 이런 단계의 비율에 변화가 생긴다. 신생아의 경우 렘수면이 잠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반면 성인이 되 면 15~25퍼센트 정도로 낮아지고, 노년에 가까워지면 비율이 더 낮아진다. 3단계 수면의 비율에도 변화가 생겨서 성인에서는 대략 15~25퍼센트 정도지만 노년에서는 그 비율이 조금 낮아지 면서 1~2단계 수면으로 바뀐다. 나이가 더 들면 한밤중에 깬 시 간의 양도 늘어난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뇌의 신경핵과 신경 로 그리고 신경전달물질로 이뤄진 복잡한 시스템이 이 생물학적 과정을 조절하며 잠의 개시와 종료를 조절하고, 비렘수면과 렘 수면을 오가는 스위치도 조절한다.

- 하루의 리듬은 당연히 사람의 뇌, 콩팥, 간, 호르몬 등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의 몸이 그 리듬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극단 적인 비유로 사람 몸에서 어떤 세포를 하나 떼다 관찰해도 어떤 형태로든 하루의 리듬을 보여 줄 것이다. 실제로 사람의 몸에서 단백질 정보를 담은 유전자 중 40퍼센트는 이 하루주기리듬 아 래 놓인다.
하지만 하루주기리듬은 그저 햇빛 노출만으로 설명되는 문제가 아니다. 즉, 태양이 해당 리듬을 유지하는 메트로놈 역할 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사람이 태양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 깜깜한 장소에서 지내도 하루주기리듬은 돌 아간다.
너새니얼 클라이트먼Nathaniel Kleitman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현대 수면 과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1930년대에 미국 켄터키주 매머드동굴 깊숙한 곳에서 자신과 다른 이들을 대상으 로 한 실험이 유명하다. 햇빛도 들지 않고 온도의 변화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긴 동굴 깊숙한 지하에서 그는 28시간 주기를 시 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햇빛의 유무를 알리는 실마리가 전혀 없음에도 체온이나 잠 그리고 다른 생리 지표가 24시간 주기를 지켰다는 소리다. 우리 몸 어딘가에 시계가 있고, 24시간을 잰다는 뜻이다.
24시간 주기는 사람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공통으로 가진 듯 보인다. 단세포 유기체인 박테리아부터 식물, 파 리, 물고기, 고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가 이른바 내인시계 Endogenous clock를 가진다.
- 그렇다면 지구 생명체는 왜 이런 시계를 가질까? 몇몇 생명체를 통해서는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박테리아는 왜 그 시간을 알아야 할까? 몇천 세대 동안 동굴에 살면서 시각이 퇴화된 물고기가 체내시계를 간직한 이유는 무엇일까? 식물은 또 어떻고? 식물은 햇빛이 언제 비추는지 알아야 이파리를 열어 광합성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체내시계가 햇빛이 비출 때를 안내할 필요는 없다. 단순한 빛 감지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구 생명체가 따르는 하루주기리듬은 '보편적 공통조상 Universal common ancestor', 즉 지구 모든 생명체의 공통적 뿌리가 되는 '가장 최근 유기체 이후의 진화압 Evolutionary pressure 과 자연선택이 줄곧 내인시계를 유지하는 쪽으로 작용한 결과물 이라 설명할 수 있다.
물론 박테리아와 조류의 경우 어떤 요소가 내인시계를 유지하는 압력으로 작용했을지 알아내긴 쉽지 않다. 자외선에 노출될 때 세포 복제를 피하려는 욕구에서 압력이 작용했을 거라 는 추론도 있는데, 자외선이 돌연변이를 유발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이보다 좀 더 널리 받아들여지는 추론도 있다. 하루주기 로 변동하는 산소 농도에 대응함으로써, 산소 문제로 인한 손상 을 피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주기리듬의 기원 은 약 24억 5,000만 년 전 일어난 산소대폭발Great oxygenation 일지 도 모른다. 이때는 남세균 Cyanobacteria 이라는 박테리아가 진화했 는데, 남세균은 지구 최초로 광합성을 시작한 미생물이다. 하지 만 남세균이 등장할 당시 지구는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낮았고, 대기 중에 분리된 산소는 다른 물질과 신속하게 결합해 버렸다. 하지만 남세균의 광합성으로 인해 대기 중에 분리된 산소가 급증 하면서 대기 중 산소 농도도 급격히 늘어났는데, 이게 바로 산소대폭발이다.
산소대폭발로 인해 지구에는 역사상 가장 큰 대멸종이 일 어났다. 이 과정에서 산소가 독으로 작용하는 생명체는 지구에 서 멸종했다. 여기서 살아남은 생명체라도 산소로부터 보호할 메커니즘을 개발해야 했다. 그로 인해 레독스 단백질 Redox protein 의 진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즉, 레독스 단백질의 역할은 산소 가 관여하는 화학반응에서 나온 유독성 산물 제거다. 산소대폭 발 기반 추론은 생명체가 햇빛이 언제 드는지를 바탕으로 산소농도가 언제 올라갈지를 예측한 다음, 하루 중 적절한 시간에 레독스 단백질을 생산해 산소의 독성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할 수 있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추론에서도 하루주기리듬의 기원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아무리 정확한 시계라도 예외 없이 시간 조정 혹은 초기화 가 필요하다. 특히나 더 복잡한 형태의 생명체의 시계라면, 계절 변화에 따라 하루주기리듬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20년 간은 어떻게 그 조정이나 초기화가 진행되는지에 대해 더욱 많은 게 알려진 시간이었다. 이제 우리는 하루주기리듬을 앞뒤로 조금씩 움직이는 영향력에 대해 인지할 수 있다. 이 영향력을 차이트게버라 한다. 독일어로 '시간을 주는 자'라는 뜻이다.
만약 차이트게버가 없었다면 우리의 체내시계는 세상 시 계와의 오차가 벌어졌을 것이다. 우리의 체내시계는 온도, 신체 활동, 식사 등의 차이트게버에도 반응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 장 강력한 차이트게버는 빛이다. 특히 햇빛처럼 스펙트럼에서 파란색 계열에 속하는 빛이 더욱 그렇다. 우리의 하루주기는 태양과 독립적이지만, 그럼에도 태양은 우리의 체내시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 아주 최근의 한 연구에서는 사흘 교대 근무를 모의실험했는데 근무 후에 뇌와 다른 기관의 하루주기 시계가 어긋나는 것 으로 드러났다. 즉, 시신경교차위핵에 있는 뇌의 하루주기 시계 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지만 음식의 대사산물 수치에는 극 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뇌의 리듬과 다른 체내 24시간 주기는 대 부분 치밀하게 조절되지만, 이 주기가 어긋나면 음식 대사산물 의 처리 방식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니 당뇨, 비만, 기타 의학 적 문제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 몸에서 생 기는 다양한 생리학적 과정의 리듬이 충돌하면 정상적인 세포복제와 DNA 손상 복구 과정이 늦어지니 결국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질지도 모른다.
이렇듯 하루주기리듬 교란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메 커니즘은 아직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밝혀진 여 러 상관관계는 분명 우리에게 광범위한 암시를 제시한다. 그렇 다면 우리는 지금도 매우 밝은 실내조명에 노출되고, 밤늦도록 가전제품을 즐기는 '장기적인 자해를 하는 것일까?

- 실제로 돌고래, 물개, 새 같은 동물이 잠잘 때, 뇌의 반쪽만 잠잘 수 있어 자면서 헤엄치거나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은 몇 년 전부터 알려졌다. 용어로는 단일반구수면Unihemispheric sleep이 라 한다. 단일반구수면이라는 묘책을 진화시킨 덕분에 자는 중 에도 필수적인 기능이 동작하므로 질식해 죽지 않는다.
단일반구수면은 진화적 관점에서 깊은 잠이 얼마나 중요 한지 알려준다. 깊은 잠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런 수 면이 가능하도록 진화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 게는 단일반구수면이 없다.
예전에는 사람의 뇌에 대해 '켜짐' 혹은 '꺼짐' 상태만 있다고 생각했다. 깨거나 잠자거나 두 단계뿐 그 중간은 없다고 말 이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틀린 소리가 됐다. 깊은 잠과 완전 한 각성은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해당할 뿐, 사람도 자는 동시에 각성 상태에 있는 게 가능하다.
수면 관련 환자가 수면검사를 할 때처럼, 머리에 전극을 붙여 뇌파를 감시하면 깊은 비렘수면에서는 뇌 전체의 전기 활 성이 동기화되는 전형적 특징이 나타난다. 진폭이 크고 느린 이 뇌파를 델타파Delta wave라 한다. 하지만 몽유병을 앓는 중엔 다 른 그림이 나올 수 있다. 델타파와 함께 완전히 깬 뇌의 활성과 매우 비슷한 뇌파가 뒤섞여 나오는 식이다. 즉, 수면-각성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뜻이다.
물론 전극을 이용해 뇌 속에서 생기는 일을 알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비유하면, 열쇠 구멍을 통해 방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전극을 통해서는 표면 근처에서 생기는 일에 대한 정보만 나올 뿐, 뇌 중심부에서 생기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뇌를 살펴보는 다른 방법도 있다. 2000년에 스위스의 연 구자들은 단일광자단층촬영SPECT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몽유병 이 생긴 동안의 뇌 활성을 포착했다. 화학물질인 방사성 핵종 Radionuclide을 이용하는 방식인데, 이를 몸 안에 주사하면 색을 띄기에 기관의 활성을 볼 수 있다. 방사성핵종은 혈류가 최대인 영역에 집중되는데, 대사 활성이 가장 높은, 그러니 산소 수요가 가장 큰 영역에 집중된다는 뜻이다.

- 몽유병에 걸린 뇌에서 생기는 일
비렘사건수면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 하나인 몽유병은 뇌 의 다양한 부분에서 생기는 수면-각성 사이의 싸움으로 설명 가 능하다. 이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잠꼬대나 단순한 형태의 몽 유병, 수면섹스장애 (10장 참고)가 있다. 이쪽에서는 아무런 각성 이나 감정도 발생하지 않지만 완전한 문장을 구성해 말하거나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있다. 보기, 움직이기, 말하기를 가능하게 하는 뇌 영역만 깬 것일 수 있다. 대신 합리적인 사고나 기억을 맡는 뇌 영역은 잠든 상태다.
그 반대쪽 끝에는 알렉스가 앓는 야경증이 있다. 이때는 감정적 자극이 너무 강렬해 거의 완전한 각성 상태에 놓여 뇌의 대부분 영역이 각성 상태다. 그중에 합리적 사고를 맡는 일부분 만 각성 상태가 아닐 것이다. 어린이의 경우에는 이런 야경증이 일반적으로 자신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
- 그럼 자면서 모터바이크를 타는 재키의 케이스는 어디에 해당할까? 분명한 것은 모터바이크를 타는 그때만큼은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이 깨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자다가 옷도 차려 입고, 헬멧도 쓰고, 열쇠를 쥐고, 변속을 하고, 충돌을 피해 모터바이크를 타다 집에 온 다음 다시 옷을 벗고 침대에 들어간 다. 여기서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뇌 영역 중 하나는 기억에 관여 하는 영역이다. 모터바이크를 타는 행동에 자각이 없으니 말이다.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또 다른 영역은 합리적 사고에 관 여하는 뇌 영역이다. 쉽게 말해 한밤중에 일어나 정처 없이 모터 바이크를 타고 다니다가 다시 돌아와 잠자리에 드는 건 절대 비 합리적인 행동이니까. 그렇다면 재키와 같은 종류의 행동은 '진 짜로 잠자지만 부분적으로 깬 것일까? 아니면 뇌 영역의 작은 일부만 잠잤을 뿐 '본질적으로는 깬 것일까?
- 몽유병을 앓을 때 일어나는 행동에는 이론적으로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는 몽유병에 유전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잠에서 깨는 경우다. 남들보 다 덜 깊게, 덜 안정적으로 잔다는 소리다. 실제로 나는 침대의 삐걱대는 소리,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 멀리서 대형 트럭의 엔진 소리 등으로 몽유병을 겪는 환자를 본 적이 있다.
낮에 받은 스트레스도 잠을 방해할 수 있다. 흔히들 알코 올에 진정 효과가 있다고 여기지만 그 정반대일 수도 있다. 실제 로 음주 후 자면 중간에 자주 깨고, 소변이 마려워 잠을 깰 수도 있다. 과음으로 수면무호흡이 심해질 때도 그렇다.
알코올과 마찬가지로 낮에 받은 스트레스 역시 잠에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자주 잠을 설친다. 일부 사람의 경우에는 각성을 일으키거나 잠에서 조금이라도 빠져나오게 만드 는 요소로 인해 몽유병 증상이 더 쉽게 나타날지도 모른다.
앞의 이유와 거의 정반대의 케이스도 있다. 무슨 소리냐 면 몽유병 환자는 다른 이들보다 더 곤히 잠자므로, 잠에서 깰 일이 생겨도 뇌가 부분적으로만 깨는 바람에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면박탈은 더 깊은 잠을 유발하는 강력한 방법이 며 수면보조제로 처방되는 약 중에는 몽유병 증상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몽유병 증상이 없었던 이들에게 몽유병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 사람의 코안Nasal passage (비강)이 좁아지거나 부분적으로 막히면 구강 뒤쪽에서 공기 흐름이 방해를 받는다. 그러면서 목 구멍의 물렁입천장Soft palate, 편도선(이하 뇌 부위의 편도는 편도체, 목 안쪽의 편도는 편도선으로 칭한다_옮긴이), 아데노이드Adenoid, 목 젖 같은 연조직이 떨린다. 우리가 숨을 들이쉬면 난류가 생겨 해 당 부분이 떨리는데, 나지막한 갸릉갸릉 소리부터 덤프트럭 엔 진 같은 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폐쇄성수면무호흡Obstructive sleep apnea은 수면무 호흡과는 차원이 다르다. 소리 크기가 아니라 그 영향에서 말이다. 사람이 잠들면 기도의 벽을 팽팽히 당기는 수많은 근육이 일시적으로 느슨해진다. 그런데 잠든 사이 기도가 좁아지거나 헐 렁해지면 부분적 혹은 전체적으로 막힐 수 있다. 이렇게 기도가 좁아지면 산소 수치가 떨어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니 결론적으로는 잠에 방해가 된다.
물론 잠이 깊어졌다 얕아졌다 하는 과정에서 기도의 근긴 장도Muscle tone가 잠시 돌아오면 다시 숨을 잘 쉴 수 있는데, 이 주기는 밤새 이어질 수 있다. 시간당 10번, 20번, 여기에 드물지 만 심지어 100번까지도 나타날 수 있다. 아침에 깰 때 피곤한 이 유를 백번 설명하고도 남는다.
- 우리 모두는 수면무호흡 대유행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이다. 스위스의 한 조사에 따르면 남성 두 명 중 한 명, 여성 네 명 중 한 명꼴로 잠잘 때 호흡에 큰 문제를 겪는다고 한다. 수면무호 흡의 발병률은 허리둘레와 목둘레에 비례한다. 즉, 몸집이 크고 무거울수록 수면무호흡이 흔해진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 영 국의 성인 중 62퍼센트가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추정된다. 10년 전만 해도 53퍼센트였었는데 말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런 몸무게 증가가 일어난다. 미국 역시 비만도 그래프를 그려 보면 그야말로 거침없는 우상향을 볼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로 그 현상이 두드러진다.
- 늘늘어난 몸무게는 몇 가지 방식으로 수면무호흡을 촉발하거나 악화시킨다. 목 주위에 쌓인 지방은 기도를 좁혀 막히기 쉽 게 하며, 가슴에 쌓인 지방은 호흡에 더 큰 노력이 들게 하고, 가 슴을 짓눌러 허파의 용적을 줄이고 몸의 대사 요구량을 높인다. 역으로 수면무호흡 치료엔 몸무게를 줄이는 게 효과적이다.
물론 비만이 수면무호흡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몸무게 는 정상인데 수면무호흡이 엄청나게 심한 케이스가 분명 있다. 마리아 역시 과체중이기는 해도 비만까지는 아니었다. 이 케이 스에는 다른 요인이 작용한다. 가족력 때문일 수도 있고 기도 형 태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또한 혀의 기저부 Tongue base가 크거나 아래턱이 뒤쪽으로 물러난 경우 기도가 상대적으로 좁아진다. 편도선이 아주 커도 그럴 수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수면무호흡은 특히 동남아시아 혈통에게 더 흔하다고 한다. 어쩌면 두상 모양으로 인한 기도 형태와 관련 있는지도 모르겠다.

- 한 시간에 몇 번씩 잠을 방해받으면, 당연히 낮에 과도한 졸음이 몰려오고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과도한 졸 음과 개운치 않은 느낌은 당연히 건강에 나쁘다. 실제로 수면무 호흡을 앓으면 교통사고 위험이 두세 배 정도 높아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할 부분이 졸음만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수면박탈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영향에 대해 잘 안다. 밤사이 잠깐잠깐 깨는 것 역시 수면박탈이다. 하지만 반 복적으로 '질식'에 시달린다면 잠을 망치는 것 이상의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기도가 막힐 때마다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 (노 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 폭발적으로 분비되면서 심박수와 혈압, 가슴의 압력이 올라가며 동맥이 뻣뻣해지며 산소 수치는 떨어진다. 
우리는 수면박탈에 대한 영향에 대해 잘 알지만, 밤마다 수백 번씩 일어나는 생리학적 변화가 얼마나 폭넓은 중요성을 가지는지는 뒤늦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호흡이 멈출 때 마다 심장으로 되돌아가는 혈류가 변화해 심방Atrium에서 분비되 는 심방나트륨이뇨펩티드ANP라는 호르몬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게 밤사이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소변을 본다. 당연히 밤에 자주 깬다.
- 이제는 수면무호흡이 심장질환, 뇌졸중 등 고혈압으로 인한 문제와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이 잘 알려졌다. 사람이 잠을 반 복적으로 방해받으면 그 자체로 산소 수치 저하와는 상관없이 혈압이 치솟는다. 간헐적인 산소 수치 저하 역시 부가적으로 영 향을 미친다. 수면의 방해와 산소 수치 저하까지 결합되면 몸은 낮에 혈압을 더 높일 준비에 들어간다. 이 과정은 교감신경계 (아 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을 이용해 놀람-투쟁-도피 반응을 중개하 는 신경 메커니즘)와 콩팥 호르몬의 변화를 통해 일어난다. 콩팥 호르몬 역시 혈압을 조절한다.
고혈압은 그 자체로 심혈관질환과 뇌졸중의 가장 큰 위험 인자이지만 수면무호흡까지 앓는다면 추가적으로 영향을 끼친 다. 혈관 안쪽을 둘러싸는 내피 Endothelium에 대해 살펴보자. 내피 는 혈류의 변화를 감지해 혈관 직경을 조절하는 물질을 분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혈압이 높으면 내피의 혈관 직경 조절 기 능이 방해를 받는다. 이 기능의 장애가 심혈관질환의 초기 단계 다. 간헐적 저산소증(산소 수치의 반복적 저하)을 실험한 결과, 산 소 수치의 급격한 변화가 혈관 직경 조절 기능의 장애로 이어진 다고 한다. 즉, 동맥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간헐적 저산소증은 혈관 이외에도 악영향을 끼친 다. 우리 몸의 세포에는 산소 대사에서 생기는 독성 부산물, 즉 반응산소종 Reactive oxygen species (활성산소종)으로부터 몸을 보호 하기 위한 항산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간헐적 저산소증은 이 항산화 메커니즘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산소 수치가 다시 올라감과 동시에 세포는 반응산소종에 손상받을 위험이 높아진다.
- 수면무호흡의 악영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수면무호흡이 비만과 상관관계가 제일 크다는 것은 이미 밝혀졌지만, 역으 로 수면무호흡이 몸무게 증가와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다. 수면무호흡의 대표적 특성인 간헐적 저산소증이 인슐린 효 과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연구로 입증됐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인슐린은 포도당의 분해와 저장을 통제 하는 호르몬으로 당뇨 예방에 매우 중요하다. 수면무호흡은 인 슐린에 대한 몸의 반응을 약화시켜 인슐린저항성 Insulin resistance 을 초래한다. 인슐린저항성은 당뇨병 발생의 첫 번째 단계로, 체 내 혈당을 올리게 한다. 또한 수면무호흡은 식욕과 대사의 조절에서 중요한 렙틴Leptin 과 그렐린Ghrelin이라는 두 가지 호르몬 수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수면무호흡은 그 자체로 칼로리 섭취를 늘리고, 그늘 어난 칼로리를 처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 몸무게 증가 성향 을 키울지도 모른다. 또한 간헐적 저산소증은 지방 그 자체에도 크고 깊은 영향을 미쳐 지방조직에 염증을 일으킨다. 당연히 비 만 관련 위험이 높아진다.
한마디로 수면무호흡은 겹악재다. 병리학적으로 볼 때 당 뇨, 고혈압 그리고 혈관의 염증과 손상, 과체중 등 온갖 악재를 한꺼번에 불러들이는 질환이니 말이다. 그리고 과체중은 당뇨, 고혈압 그리고 혈관의 염증과 손상을 더욱 악화시킨다.
- 수면무호흡과 질병의 상관관계 중 가장 공포스러우면서도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는 경우는 바로 알츠하이머다. 실제로 수 면무호흡이 주의력, 경계심, 언어적·시각적 장기 기억, 추론, 문제 해결 등 인지의 여러 측면에 영향을 미치지만, 알츠하이머 발생에 도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지 모른다. 실제로 수면무호흡은 인지장 애와 알츠하이머의 발생을 촉진하는 것으로 보이며, 알츠하이머 환자의 수면무호흡을 치료하면 대개 인지능력이 회복된다.

- 기면병의 여러 증상에 어떤 요인이 있는지 통찰을 준 계기는 1950년대에 이뤄진 아세린스키와 클라이트먼의 렘수면 발 견이었다(3장 참고). 앞에서 봤듯이 정상적인 렘수면(스토리가 있 는 꿈을 꾸는 수면 단계)에서는 거의 모든 근육이 마비된다. 뇌는 활발히 작동하지만 몸은 그 작동과 단절된다. 일반적으로 렘수 면은 잠자고 60~75분 정도 지난 후의 단계다. 짧은 낮잠 때나 잠 들면서 꿈을 꾸는 경우가 드문 이유다.
하지만 기면병에서는 렘수면으로의 흐름이 달라진다. 잠을 자자마자 바로 렘수면에 들어가지 않게 막는 신경학적 메커니즘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즉, 기면병 환자라면 밤에 아주 이른 시간부터 렘수면에 들어가거나, 각성 상태에서 렘수면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생긴다. 평균입면시간검사에서 20분간 낮잠 을 자면서도 여러 번 렘수면에 빠지는 게 기면병의 전형적 특징이다.
각성 상태에서 렘수면으로 직행하면 어떤 상황일까? '누 운 상태에서 주변 모습이 보이거나 소음이 들리는 상황'과 같다. 여기서 렘수면에 동반되는 근육마비가 발생하면 '몸이 마비된 느낌'이 더해진다. 두 증상이 겹치면 '방에 누워 있고, 눈과 귀는 열렸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불쾌감을 느끼는 셈이다.
- 예를 들어 보겠다. 우리 몸 안에 시소 두 개가 있다. 시소하나는 수면-각성 사이를 오가고, 나머지 하나는 렘수면-비렘수 면 사이를 오간다. 여기서 하이포크레틴은 두 시소에서 각성과 비렘수면 쪽에 앉은 사람과 같다. 그런데 기면병 환자는 하이포 크레틴이 결핍된 상태니 두 시소가 마구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 는 셈이다.
수면-각성과 렘수면-비렘수면이 균형을 잃으면, 낮에 갑 자기 대책 없이 졸리거나 저항할 수 없는 수면발작과 수면마비, 입면환각이 나타난다. 이에 더해 밤새 렘수면을 오가면서 꿈을 '극단적으로 생생하게 기억한다. 대개 생생하게 꿈을 기억하는 경우는 렘수면 도중에 깼을 때만 가능하니 그 일이 밤새 여러 번 일어나는 셈이다.
기면병이라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잠자는 모습을 떠올리기 쉬우니, 잠을 굉장히 오래 자는 병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렇게 오래 자는 것도 아니다. 낮에야 잠을 더 많이 자겠지만 밤잠 이 수시로 끊기니 그만큼 잠의 질은 떨어진다.
- 사람이 웃을 때면 근육에 긴장이 풀린다. '웃으면 힘이 빠진다Weak with laughter'라는 표현이 있는 이유다(펍메드에 검색하면 나온다). 사람 근육의 전기 활성을 관찰하는 연구에서는 웃음이 H-반사H-reflex를 억제한다는 결과가 있다. H-반사는 전기적으 로 생기는 신경반사신호인데 무릎을 검사용 망치로 두드릴 때 나오는 반사(무릎반사) 등으로 관찰한다. 탈력발작을 겪을 때는 무릎반사 혹은 다른 반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이 강력한 감정을 경험하면 하이포크레틴 생산 뉴런 의 활성이 매우 높아짐은 실험으로 검증됐다.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지만, 하이포크레틴은 강력한 감정으로 인한 '약해짐'을 억 제하는 기능을 하는 셈이다. 즉, 해당 뉴런의 활성이 떨어진다면 근긴장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진 않는다.
편도체 역시 감정과 탈력발작의 관계와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편도체는 뇌의 양쪽 관자엽 속에 존재하며 감정적 자극 처리에 중요한 기능을 맡는다. 편도체에서 뇌전증발작이 생기면 갑작스럽고도 압도적인 공포감 등 강력한 감정이 발생한다.
기면병 관련 실험에서 재미있는 사진을 보는 사람을 관찰 한 경우 편도체 활성에 변화가 나타났으며, 기면병이 있는 개에 서는 탈력발작과 함께 편도체 전기 활성에 변화가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편도체의 신경회로가 근육 활성 유지에 관여하는 뇌줄 기 영역에 투사된다는 이론이 나왔다. 기면병 환자의 경우 하이 포크레틴이 결핍돼 (근긴장 조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편도체 활성이 높아져 근육의 힘이 빠진다는 소리다.
- 읽고 나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강력한 감정과 근육의 약화는 딱히 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진화적 관점에 서도 앞뒤가 안 맞아 보인다. 호랑이나 사자와 마주쳤는데 다리 에 힘이 풀리면 빠르게 도망가지 못할 텐데 말이다. 그런데 왜 사 람의 몸은 감정의 주춧돌인 편도체와 근육 이완을 일으키는 뇌 줄기 핵이 이어졌을까? 웃을 때 왜 근육에 힘이 빠질까? 그리고 그것으로 얻는 이점은 무엇일까?
탈력발작에 대해 흥미롭긴 하나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 하 나 있다. 바로 긴장성 부동Tonic immobility 이라는 현상과 탈력발작 이 관련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공격자 앞에서 죽은 척 연기하는 상태를 말한다. 긴장성 부동에선 특정 자세를 유지하는 케이스도 있지만 근육이 축 처지는 케이스가 더 많다.
사람의 긴장성 부동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지 만 '무서워서 몸이 얼어붙었다'라는 식의 관용적 표현이 있는 걸 보면, 사람에게도 그와 비슷한 현상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즉, 긴장성 부동과 탈력발작에는 비슷한 점이 있고, 이를 통해 편도 체와 뇌줄기의 연결을 진화의 산물로 설명하는 셈이다.
이 가설에도 구멍은 있다. 웃음이나 즐거움 같은 긍정적 인 감정과 근육 이완의 관계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친구들과 있을 때나 긴장이 풀렸을 때 탈력발작이 일어날 가능 성이 더 높은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 실제로 병원에 오는 환자 들은 기본적으로 긴장 상태에 놓이지만 병원 내에서 탈력발작을 일으키는 환자는 보기 드물다.
- 대개 탈력발작엔 항우울제를 처방한다. 항우울제는 세로토닌serotonin, 노르아드레날린, 도파민Dopamine의 가용성을 높이 는 등 뇌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데 몇몇 종류는 아세틸콜린 Acetylcholine을 감소시키기도 한다. 항우울제가 탈력발작에 작용 하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확실치 않지만, 노르아드레날린 강화 시 청반이라는 뇌줄기 속 한 신경핵의 활성이 높아진다. 그 신경핵은 근긴장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필의 탈력발작은 항우울제로 다스리기엔 워낙 심 각했다. 그래서 그의 주치의가 소듐옥시베이트Sodium oxybate 처방을 위해 재정 지원까지 따냈다. 이 약은 일명 '길거리 마약'으로 불리는데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다. 매우 짠맛이 특징인 이 약은 밤에 두 번 마시는 식으로 처방되는데, 마취제처럼 작용한다. 때 로 잠이 아주 깊게 들어 요실금이나 야뇨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소듐옥시베이트는 밤에 잠을 잘 못 자거나 낮에 심하게 졸린 경우 그리고 기면병 환자의 탈력발작 등에 아주 효과적이 다. 약의 정확한 메커니즘은 불분명하지만 GABA라는 신경전달 물질의 수용체와 결합한다는 것은 알려졌다. 앞에서 말한 청반 역시 이 물질의 영향력 아래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즉, 소듐옥시 베이트가 편도체로부터 오는 입력으로부터 청반을 '둔감'하게 만들어 감정적 촉발 요인에 대한 반응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 하지불안증후군이 훨씬 흔하게 나타나는 인구 집단은 분명 존재한다. 철분 결핍인 경우 하지불안증후군의 발생 가능성 이 더 높다. 고대 중국의 의학 문헌인 《황제내경》에도 그 내용이 있다. 하지불안증후군과 아주 비슷한 병이 있는 환자에게 철가 루를 먹여 치료했다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처음으로 하지불안증후군에 대해 현대적 기록을 남긴 에 크봄도 철분의 존재를 알았다. 실제로 그는 헌혈을 하면 증상이 촉발되고, 철분 제제를 먹으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에 크봄과 동시대인이었던 닐스 노드란더Nils Nordlander는 철분을 정 맥에 투여해 하지불안증후군을 치료했다고 1953년에 처음 보고했다.
최근 연구도 마찬가지다. 영상 촬영을 통해 뇌의 여러 영역 중 특히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는 흑색질의 철분 수치가 공통적으로 낮았다. 흑색질은 뇌의 심부에 있는 영역인데, 피부색을 만드는 멜라닌의 일종인 신경세포로 인해 색이 어둡다. 여기서의 신경세포는 도파민의 전구물질 (화학반응에 참여하는 물질_옮긴이) 이다. 이 신경세포가 도파민을 생산하는 뉴런이란 뜻이다. 흑색질 의 사후분석에서 철분 결핍이 확인됐으니, 혈중 철분 농도가 정상 인데 하지불안증후군이 생기는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실제로 하지불안증후군 환자 중 일부는 뇌로 철분을 이동시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뇌전증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뇌 속의 전기 활성은 매우 정교하게 조절되는 현상이다. 즉, 사람의 말하기나 시 각, 이해, 운동, 의식 등 모든 신경학적 기능은 다양한 뉴런 간의 정교하면서도 미묘한 교감의 결과다. 이런 전기 활성에 대한 통 제력이 없어지는 게 바로 뇌전증이다.
전기 활성을 통제하는 힘이 약해지면 뇌 표면을 감싼 회 색질인 대뇌겉질 영역이 통제 불가능하게 흥분한다. 뇌전증이 생기면 뉴런이 모두 동기화되고 동시 흥분까지 하면서 뇌의 활 동이 방해받는다.
좀 더 쉽게 비유를 들어 보겠다. 어떤 배의 갑판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상 황이 있다. 그러다가 사람들 모두 이쪽저쪽으로 동시에 달리면 어떻게 될까? 배가 좌우로 흔들리다 결국에는 뒤집힐 것이다. 이런 식으로 넓은 영역에 걸쳐 동기화한 전기 활성이 뇌 전체로 퍼지면 모든 근육이 활성화되고, 운동이나 방광에 대한 통제력, 의식까지 잃고 경기를 일으킨다.
하지만 발작이 뇌 전체로 퍼지지 않는 케이스도 있다. 발 작이 뇌의 한 부분에서 시작되고 범위가 제한된 경우다. 이런 경 우를 초점발작Focal seizure 이라 하는데, 발작이 전체적으로 나타 나지 않고 해당 뇌 영역이 어디인지에 따라 나타난다.
또한 모든 발작이 경련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초점발작의 대부분은 관자엽에서 일어난다. 관자엽에는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 (삶에 대한 개인적 기억_옮긴이), 언어, 후각, 감정 등에 관여하는 영역이 있다. 관자엽에 발작이 오면 갑작스 럽게 강한 냄새를 느낀다든지, 파멸이 닥친 듯한 기분 혹은 말하 는 데 장애를 경험한다.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이 영향을 받으면 우리 모두가 종종 경험하는 데자뷔Déjà vu나, 그와 반대로 익숙한 환경이 낯설게 느 껴지는 자메뷔Jamais vu(미시감)를 느낄 수 있다. 발작이 더 넓게 퍼지면 운동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쳐 갑작스러운 움직임, 정신착 란, 자각상실 Loss of awareness 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의식상실 Loss of consciousness은 일어나지 않는다.

- 월경주기를 거치면서 뇌전증에 극적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는 이 미 잘 알려졌다. 대표적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Estrogen과 프로게 스테론Progesterone은 실제로 뇌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에스트로겐 에는 발작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프로게스테론에는 발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월경이 시작되기 며칠 전에는 에스트로 겐의 비율이 가장 높다. 즉, 그때가 한 달 중 발작이 일어날 위험 이 가장 높은 때다. 극단적으로 석 달 연속 경구피임약을 처방해 발작의 여지를 아예 없애기도 한다.

- 편두통은 신경계의 기능 이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 그 기능 이상이 시각에 나타나는 경우를 시각조짐이라 하는데, 이 경우 시각을 처리하는 뇌 뒤쪽 영역에서 비정상적인 전기 활성 파동이 대뇌겉질을 따라 천천히 퍼져 나간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물론 전조가 시각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어서 다른 신경 기능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전조에 의한 기능 이상이 언어나 감각 영역으로 퍼져 나 가는 경우, 편두통 환자는 적당한 단어를 찾기 어려워하거나 얼 굴이나 팔다리에서 얼얼한 느낌을 호소한다. 뇌졸중 환자가 왔다는 콜을 받고 응급실로 달려가 확인해 보니 편마비편두통 Hemiplegic migraine인 경우도 많다. 편마비편두통은 뇌의 운동 담 당 영역에서 기능 이상이 생기는 경우다. 심지어 환자에게 혈전 용해제 Clot busting medication까지 썼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환 자가 편두통 발작이었던 거 같다고 뒤늦게 고백하는 동료도 있었다.
일부 편두통 환자의 발작은 그 전조가 어지러움, 균형 감 각 이상, 조화운동못함증 등 뇌줄기와 관련 있는 증상으로 이뤄 진다. 뇌줄기는 수면 조절과 의식 유지에서 큰 역할을 한다. 그러 다 보니 편두통 발작으로 혼수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 사람이 주변을 이해하는 건 시각적 정보, 느낌, 소리, 운동, 경험 등을 어떻게 해석하냐에 달렸다. 뇌가 이런 정보를 받아들 여 뜻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대한 모형이 필요하다. 그 모 형, 기본적 회로는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주어진다. 한마디로 선 천적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홉슨의 말이다.
“뇌는 외부 자극에 그냥 반응하지 않습니다. 일련의 강력 한 기대를 가지지요. 그 기대는 학습된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 만, 프리스턴과 저는 그것이 학습 이전에 학습됐다고 봅니다. 유 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됐다는 뜻이죠."
그렇게 사람이 선천적인 모형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모 형은 평생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게 발전시킨 모형이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할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존 컨스 터블John Constable 중 누구 그림을 좋아할지, 아내 혹은 남편과 말 싸움을 할 때 상대를 어떻게 제압할지 결정한다.
홉슨은 설명을 이어 나간다.
"뇌의 임무는 현실 예측입니다. 그런데 이건 수동적으로 할 수 없어요. 능동적으로 하죠. 일련의 추정을 바탕으로 외부 데 이터에 따라 추정을 조정해요. 우리 모두는 각자 생각하는 방식 도 경험도 다르잖아요. 하지만 각자의 뇌 자체는 그리 다르지 않 을 겁니다. 세상에 대해 가진 각자의 모형은 상당히 다르지만요."
모형마다 의식을 제각기 정의하지만, 이 모형을 고쳐야 할 때는 그 작동이 멈춰야 한다. 바깥 세계와 차단되고, 움직일 수 없고, 주변 세상으로부터 조각조각 흩어지고, 심지어 체온을 조절하는 과정으로부터도 단절돼야만 고치는 시간이 생긴다.
홉슨과 프리스턴은 바로 렘수면 때 뇌가 그간의 경험을 합쳐 다듬으며, 꿈이란 그 합쳐 다듬는 일이 생기는 가상현실 환 경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정리하면 꿈이란 경험의 혼합물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진행된 예행연습으로 만들어진 세상의 모형이다. 그 모형은 각자 개인의 세계를 이해하고, 개별 의식을 결정하 기 위해 만들어진다. 다음은 홉슨의 말이다.
“꿈은 그 모형을 운영하는 데 따르는 주관적 경험입니다. 이것이 우리 연구를 정신분석과 묶어 주는 부분으로 작용하죠. 어떤 꿈을 해석하는 작업은 그 꿈을 꾼 사람이 세상에 대해 가진 모형을 이해하는 방법인 셈입니다. 우리 각자가 세상에 대해 가 진 모형은 부분적으로 분명 과거 경험과 함수관계를 가져요."
어찌 보면 홉슨과 프린스턴의 가설은 꿈이 과거의 경험과 연결된다는 프로이트의 관점까지 아우른다. 물론 홉슨은 모든 경험을 섹스와 연결 지은 건 프로이트의 실수라고 말한다.

- 한마디로 불면증과 심리적·정신과적 문제 간의 관계는 엄청나게 복잡하다. 심각한 불면증에서 흔히 보이는 과다각성에는 어떤 형태의 불안증이 깔렸을 수 있다. 짧게 잠자는 불면증 환자 의 경우 기분이 가라앉고, 피곤함을 느끼며 건강을 염려하는 등 의 특정 심리 성향을 가진 경우가 있다.
수면상태오인에도 어느 정도 성향이 존재하는데, 전체적 으로 기분이 가라앉으며 불안증 증세를 보이지만, 침투적 사고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원치 않는 생각, 이미지, 충동 등이 반복되는 것_ 옮긴이)에 더해서 생각했던 것을 더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그것이다. 사람마다 심리적 상황에서 보이는 미묘한 차이 그 리고 그와 관련된 호르몬과 심혈관 측정치 교란을 통해, 일부 연 구자들은 짧게 잠자는 불면증과 수면상태오인이 있는 불면증은 성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수면상태오인이 있는 불면증 케이스에서는 과다각성의 신체적 특성이 보이지 않아 장기간 나타나는 문제가 거의 보이 지 않으며, 치료도 더 잘 받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신체적 과다 각성이 나타나는 (짧게 잠자는) 케이스는 심리 성향이 다르고, 불 면증과 관련된 건강상 문제가 생길 위험도 높으며 치료까지 어 려운 경우가 많다. 즉, 정신과적 문제가 불면증을 일으킬 수 있다 는 점은 분명해진다.
대개 임상우울증Clinical depression이 있는 사람 중 90퍼센 트는 불면증을 앓는다. 내가 학부생 때도 우울증의 전형적인 특 징 중 하나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라 배웠다. 물론 잠자기가 어렵거나, 잠을 유지하기 어려운 다른 케이스의 불면증도 흔하 다. 조현병 환자가 끔찍한 불면증을 겪는 경우도 많고, 잠자기가 어려워지는 게 정신질환의 전조일 때가 많다. 잠과 정신질환 사이의 관계는 역으로도 성립한다. 불면증 자체가 정신질환 발생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거나 치료를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불면증은 다른 모든 요인과 독립적으로 우울증 발생 위험 을 크게 높인다. 짧게 잠자는 불면증일 경우는 특히 그렇다. 우울 증이 있는 경우 불면증을 앓는다면 자살 충동이 높아지고 우울증 의 재발 가능성이 높아짐을 뜻한다. 우울증이 있는 환자가 불면 증 때문에 상황이 복잡해지면 치료에 더 반응을 안 하기도 하고.
다만 우리의 과학은 이 방면에선 아직 유아기 단계다. 즉, 잠과 정신 건강 사이의 복잡한 관계, 그 밑바탕에 깔린 원리를 아직 완벽히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불면증과 정신질환 모두 뇌 의 회로와 생화학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잠 이나 정신 건강에 생긴 변화가 서로 연쇄적인 결과를 불러일으 킨다고 봐도 틀린 건 아니다. 그러니까 닭과 달걀의 관계 정도로 비유하면 적절하다.
그런데 불면증과 정신과적 문제를 불러오는 유전적 요인 이 있을지도 모른다. 연구가 더욱 복잡해진다는 뜻이다. 정신의 학자와 수면 전문의는 자신의 분야와 장기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전체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의 분 야가 오히려 시야를 좁힐 수 있다. 그리고 환자에게 접근할 때 의 사는 그야말로 '눈가리개를 벗어던져야 한다.

- 전통적으로 불면증은 약물요법에 초점을 뒀다. 1960년대 출시된, 그 유명한 벤조디아제핀은 불면증 및 불안 치료에 재빠르 게 처방됐다. 이 약이 대세가 되는 바람에 오락성 약물을 즐기는 데 주저함이 없던 록밴드 롤링스톤스는 '마더스 리틀 헬퍼 Mother's Little Helper(엄마의 작은 도우미)'라는 제목으로 바륨이란 약을 칭 송하는 노래까지 썼다(바륨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이다).
그러나 문제도 있었다. 지난 10~20년간 벤조디아제핀계열 약이나 졸피뎀Zolpidem, 조피클론Zopiclone 등의 약은 과한 진정효과 그리고 교통사고 및 낙상·고관절 골절 위험 증가, 몽유병 이나 다른 비렘사건수면 촉발 등의 부작용이 드러났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금단 효과와 의존증이다. 똑같은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점점 용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멜라토 닌, 항히스타민제, 진정성 항우울제 같은 대체 처방이 생긴 이유 다. 물론 모든 약엔 부작용, 마모 현상(장기 복용으로 약효가 줄어드 는 현상_옮긴이)이 있지만 증상과 환자에 따라 다양히 나타난다.
불면증 약물요법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수면제, 특 히 벤조디아제핀과 그 관련 약물이 훗날 치매를 일으킬 위험을 높인다는 증거가 점점 쌓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잠과 관련된 수 많은 질문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상황이 복잡하다.

- 앞에서 말했던 글림프 시스템을 다시 살펴보자. 글림프 시스템은 뇌에서 폐기물 청소를 맡은 관의 연결망으로, 몸의 나 머지 부분에서 작동하는 림프계와 역할이 비슷하다. 우리가 깊 잠들 때는 해당 관이 60퍼센트까지 열려 알츠하이머와 관련 해 의심되는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 같은 잠재적 독성 물질을 뇌에서 치운다. 깊은 잠이 뇌의 살림을 돕는 셈이다.
그런데 불면증 때문이든 다른 이유 때문이든 깊은 잠을 잘 수 없다면? 그만큼 뇌가 독성 물질을 청소하는 데 문제가 된 다. 쉽게 말하면 관 속 체액에 베타아밀로이드 수치가 올라간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베타아밀로이드나 다른 독소를 없애는 뇌척수액 활동이 약해진다는 뜻이다. 결론은 불면증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높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퇴행성뇌질환 중 상당수는 증상이 명확하게 드러 나기 수년, 심지어는 수십 년 전부터 미묘한 변화를 보인다. 우리 가 앞에서 본, 꿈을 실행에 옮겼던 존의 행동을 생각해 보자. 그 의 행동은 파킨슨병 그리고 이 병과 관련된 불안증이 발병하기 여러 해 전에 나타나는 전구증상(잠복 증세가 일어나기 전에 나타나 는 증상_옮긴이)일 때가 많다.
어쩌면 알츠하이머로 인한 기억력 감퇴가 일어나기 몇 년 전에 뇌에서 생기는 생화학 경로의 변화가 수면 악화나 불안증 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불면증은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아니라 극초기 단계 알츠하이머의 결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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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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