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에 해당되는 글 5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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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4.03.25 플라스틱 테러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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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24.03.24 20240324
  5. 2024.03.23 20240323
  6. 2024.03.22 20240322
  7. 2024.03.21 모험의 서 1
  8. 2024.03.21 한국요약금지
  9. 2024.03.21 20240321
  10. 2024.03.20 20240320

반기술 혁명

사회 2024. 3. 25. 07:30

- “선을 계획하면 악이 방해한다. 선은 비효과적이지만, 악은 효과적이고 완강하다.” (디에고 우르타도 데 멘도사 Diego Hurtado de Mendoza, 1503~1575)
- “과거와 현재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역사가 인간의 계획을 얼마나 손쉽게 따돌리는지 감탄하게 된다." (타키투스 Tacitus)

- 기원전 2세기 초반, 로마는 사회적 타락을 막으려고 과도한 소비를 금지하는 사치 금지법을 통과시켰으나 의도했던 효과를 얻지 못했으 며 로마인들은 계속해서 타락해갔다. 기원전 1세기 초반, 로마가 정치적 으로 불안정해지자 루시우스 코넬리우스 술라Lucius Cornelius Sulla는 자신 의 군대를 이용해 수도를 점령하고, 반대파들을 처형하고, 안정적인 정부 를 복구하고자 개혁 정책들을 펼쳤다. 하지만 술라가 “합법적인 정부를 수호하던 사람들을 죽이고, "귀족정을 꽃피우게 했던 공공 봉사 정신과 는 정반대 성향의 무책임한 사람들로 원로원을 채워 넣었기 때문에 상 황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로마의 정치 체제는 계속해서 망가져 갔으며, 기원전 1세기 중반에 이르러 로마의 공화정 전통은 사실상 무너졌다.
- 1953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국제기구를 통해 전 세계에 원자력에 관련 지식과 물자를 나누어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평화를 위한 원자력 Atoms for Peace" 정책을 추진했다. 1957년, 평화적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증진하기 위해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가 설립되었고, 1968년 UN총회는 “핵확산 방지" 조약에 서명해 핵무기 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국가들에 원자력 기술을 전수해주는 것을 승인했다.22 이 정책 관계자들이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해봤다면, 국가 들은 대개 조약이 자신에게 단기적으로 이익이 될 때만 조약을 지키며 그 마저도 금방 어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을 추 진한 사람들은 국가들이 원자력 기술을 전수받으면 너무나도 고마운 나 머지 원자력 기술을 평화적 용도로만 사용할 것이며, 역사적으로 파괴적 인 무기 개발의 원동력이었던 권력에의 욕망과 치열한 경쟁을 영원히 중 단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 따라서 인류가 역사를 통해 얻은 경험과 인간 사회의 복잡성, 혼돈이론, 논리적 역설들을 고려하면 인간 사회는 절대 자기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므로 어떤 형태의 사회도 자신의 미래를 장기적으로 계획 할 수 없다.
이 결론은 특이하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다. 지식인 들은 옛날부터 인간 사회가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스턴Robert W. Thurston은 이렇게 적었다. "어떤 정부도 국가를 물 리적으로 완벽하게 관리할 수 없었으며 중앙 정부가 내린 결정에 따르 는 부작용들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었다."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실패한 노력과, 실현되지 않은 열망과, 실현되었으나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던 소망들의 이야기이다."
노버트 엘리어스 Norbert Elias는 이렇게 적었다. "전체로서의 실제 역사의 경로는... 누구의 의도도, 계획도 아니다. ... 문명은... 맹목적인 움직임이며, 관계망의 역학의 자율성에 따라 움직인다. 
- "우리가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이상'이 무엇인지 누가 정하는가?"라 는 질문에 인류가 보편적 합의를 얻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890년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역사의 최종 결과는 언제나 수많은 의지들의 투쟁 결과로서 결정된다. 각 각의 의지는 삶을 결정하는 수많은 조건을 통해 형성된다. 세상에는 무수 히 많은 힘이 교차하고 평행하며 여기서 역사적 사건이 태어난다. 다른 측 면에서 보면, 전체로서는 무의식적이고 누구의 의지도 따르지 않는 하나 의 힘으로 볼 수 있다. 각각의 개인은 다른 모든 이들의 의지에 반해 움직 이며, 그 결과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 등장한다.
- 노버트 엘리어스는 맑스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엥겔스와 대단히 유 사한 주장을 했다.
서로 협력하거나 반목하는 무수히 많은 개인들의 이익과 의도가 엮어진 결과, 누구도 계획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무언가가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모두의 의도와 행동으로부터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모두가 특정 정책에 동의해도 "공유지의 문제" 때문에 정책 을 효과적으로 실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공유지의 문제”는 모두가 따르면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각각의 개인에게 있어서는 따르지 않는 게 이익일 때 벌어진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에서는 모두가 세금을 내면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으나 개인에게는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이 익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금을 자진해서 내거나 초과해서 내는 사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예상되는 반론은,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 체제가 존재 한다는 것이다.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결정들은 수많은 의지들 의 투쟁 결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거 등의 방법을 통해 공적으로 권 력을 부여받은 소수의 정치지도자들이 개인들에게 전체의 복지를 위한 행동을 강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내려진다. 소수의 정치지도 자들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공유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정치지도자들의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지도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으므로 사회 발전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
- 미국 대통령 중 가장 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Franklin D. Roosevelt는 이렇게 불평했다.
재무부는 너무나 방만하고 관습에 젖어있어서, 재무부를 움직여 내가 원 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재 무부는 국무부에 비하면 양반이다. 무엇 하나라도 바꾸기 위해서는 외교 전문가들을 하나하나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재무부와 국무부를 다 합쳐 도 해군에 비하면 양반이다. 제독들을 상대하는 것이 이토록 힘들다는 것 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해군을 바꾸는 것은 마치 깃털 침대에 주먹을 휘 두르는 것과 같다. 왼쪽 주먹과 오른쪽 주먹을 번갈아 가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휘둘러도, 그 빌어먹을 침대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 닫게 된다.
- 루즈벨트의 후임자, 해리 S. 트루먼 Harry S. Truman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권력이 얼마나 강한지, 최고통수권자가 얼마나 강하 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떠든다. 경험자로서 말해주겠다. 미국 헌 법과 미국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은 강한 권력을 가질 수도 있 다. 하지만 대통령의 핵심 권력은 사람들을 모아두고 원래 설득하지 않았 어도 해야 했을 일을 하게끔 설득하는 것이다. 나는 대부분 시간을 그렇게 보낸다. 그게 바로 대통령의 권력이다.

- 그래도 태양 에너지는 괜찮겠죠? 그렇죠? 글쎄, 아닌 것 같다. 태양광 패널은 생명체들에게서 햇빛을 차단한다. 앞서 지적했던 바, 기술 체제는 언제나 가용 에너지가 다 떨어질때까지 확장하고서는, 더 많은 에너지를 달라고 요구한다. 만약 화석 연료와 원자력 에너지가75 기술 체제의 무한한 에너지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없으면, 햇빛이 닿는 모든 장소에 태양광 패널들이 설치될 것이다. 태양광 패널들이 점차 자연 서식지들을 파괴할 것이고, 햇빛을 차단하고, 대부분의 생명체들을 죽일 것이다. 지 금도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멸종 위기 동식물들 의 주요 서식지였던"76 미국 서부 사막에 “대규모 태양 에너지 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77 2011년 Western Lands Project의 상임이사쟈닌 밸로 치Janine Blaeloch는 이렇게 말했다. "태양 발전소는 공유지, 서식지를 심하 게 훼손할 것입니다." 밸로치의 예측은 사실로 밝혀졌다.그리고 기술 체제의 에너지 욕구는 무한대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기술 체제는 농경지 를 제외한 모든 지표면에 태양광 패널들을 설치할 것이며 결국 지표면의 자연 서식지들을 모조리 파괴할 것이다.
- 현재 파트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술적 세계체제가 그 논리 적 귀결점에 도달하도록 내버려두면, 지구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 등 생명체들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필자의 개인 적 의견에 불과하며 이를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여기서 제 시한 사실과 주장들은 충분히 설득력 있으며, 충분한 근거 없이 우리가 마주한 종말이 지구 역사에 수차례 있었던 과거의 대멸종들보다 더 심각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태도야말로 경솔한 것이다.
기술 체제의 발전이 그 논리적 귀결점에 도달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생물권은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며, 지금 진행 중인 여섯번째 대멸종이 공룡을 절멸시킨 백악기 멸종보다 심각하지 않다면 그것만큼 좋은 소식이 또 없을 것이다. 여섯번째 대멸종과 함께 기술 체제는 당연히 무너질 것 이며 인류가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 숫자는 대단히 작을 것이다.
하지만 앞선 진술의 유보조항, “기술 체제의 발전이 그 논리적 귀 결점에 도달하도록 내버려 둔다면"에 주목하라. 필자는 가끔 이런 질문 을 받는다. “기술 체제가 어차피 스스로 무너진다면, 뭐하러 무너뜨리나 요?" 당연히 기술 체제를 지금 제거하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 문이다. 기술 체제가 발전할수록, 생물권과 인류는 더 큰 피해를 입을 것 이고, 지구가 죽음의 행성이 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 "두 개 이상의 모순이 존재하는 복잡 과정을 연구할 때는, 가장 주된 모순을 최선을 다해 찾아내야 한다. 일단 주된 모순이 해결되면, 모든 문제들이 동시에 해결된다.” (마오쩌둥)
“목표가 단순해야 인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언제나 명쾌한 거짓말이 불분명진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것이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

- 1949년 3월, 중국 공산당이 승리를 앞두고 있을 때 마오쩌둥은 경고했다.
승리와 함께, 오만함, 영웅심리, 타성, 무사태평함이 당 내부에 자라고 있다. 동지들은 반드시 겸손하고 신중하게 남아있어야 하며, 오만함과 경 솔함을 경계해야 한다. 동지들은 반드시 검소하고 투쟁적 삶을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마오쩌둥의 경고는 무의미했다. 이미 1957년 그는 불평했다.
최근 우리 동지들 사이에 인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하지 않고,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려는 위험한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오늘날 중국 공산당 정권은 그 부패로 악명높다. 당원들과 관료들은 공산주의 이상보다는 그들의 경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중국 정부 내 부는 노골적인 부정행위로 가득차 있다.
- 미국 독립 전쟁이 끝나기 직전, 토마스 제퍼슨은 이렇게 적었다.
모든 법률적 기본권들을 수정할 최적의 시간은 우리 지도자들이 정직하 고 우리가 단결하고 있는 지금이라는 사실을 몇번이고 지적해도 지나치 지 않다. 일단 이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실제로 전쟁이 끝나자 마자 13개 주 사이에서 신생국가가 분열될 정 도의 불화와 다툼이 터져나왔다. 1787년 헌법 제정을 통해 미국 혁명가 들은 연방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으나 1798년 반자유주의적 법률 이민- 소요죄법 Alien and Sedition Acts  제정은 기존 혁명가들도 혁명적 이상을 잃 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존 혁명가 대부분이 죽고난 후 미국 정치에 는 일말의 이상도, 진실성도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수십 년 후 기술 진보로 인해 인간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어 선진국들이 심각하고 만성적인 실업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고 가정해보 자. 46만성적 실업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할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반드시 기술 체제의 존속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위기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분노한 사람들이 2011년~2012년 스페인과 그 리스에서 발생한 것과 유사한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으나, 이것은 비조직 적인 절망감 분출에 불과했으며 거의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비효과적이었던 스페인, 그리스 폭동을 2011년 이집트의 “아랍의 봄”과 비교해보자. 아랍의 봄은 지적인 지도자들이 대중의 분노를 활용 해 권력구조로부터 중대한 양보를 얻어냈다. 결과적으로 이집트 혁명은 실패했으나 지금의 논점과는 무관하며, 요점은 유능한 혁명가들이 대중의 분노와 절망을 이용해 유익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기술 혁명가들은 권력구조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것에서 만족해서는 안되며, 권력구조를 무너뜨려야 한다. 위에서 가정한 것처럼, 기술적으로 진보한 국가들이 만성적인 실업문제에 시달리게 된다면 여 전히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일자리를 잃을까봐 겁에 질려있 을 것이며 기술 체제에 대한 존중을 상실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직업 을 최대한 오래 붙잡을 궁리만 할 것이며, 실업자들은 냉소에 빠지거나, 분노하거나, 절망할 것이다. 광범위한 폭동이 발생한다면 권력구조는 압박을 받겠지만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잘 준비된 혁명가들은 분노하고 절망한 사람들을 조직하고 지도해서 단순 폭력 사태를 넘어 유의미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유의미한 행동은 추측의 영역일 수밖에 없지만, 한번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반기술 혁명가들이 이집트인들처럼 권력구조에게서 양보를 받아낼 수도 있을텐데, 이집트와의 차이점은 그 양보가 너무나 중대해서 권력구조가 큰 수치심을 느끼리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권력구조 구성 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권력구조 내부에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유발 시킬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일단 이 단계에 도달하면, 권력구조를 붕괴 시킬 전망은 밝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시나리오는 설명을 위해 제시한 가상의 사례임을 명심하자. 현실의 혁명은 전혀 다른 노선을 걷게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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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플라스틱 테러범

사회 2024. 3. 25. 07:29

- 플라스틱 오염과 벌이는 전쟁, 그리고 생산량을 두 배로 늘 리려는 막대한 투자. 이런 불편한 모순에서 관심을 돌리려면 교 란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 40년 동안 재활용이라는 최후의 교 활한 계략을 내놓았다. 일부 미국 산업체 경영진은 재활용을 촉 진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죄의식을 덜어 주고 소비에만 집중하도 록 장려하기 위해 그들이 고안해 낸 전략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 했다. 실제로, 발표된 기적은 신기루에 가까웠다. 1950년 이후 생 성된 플라스틱 쓰레기 가운데 단지 9퍼센트만이 재활용되었으 며, 12퍼센트는 소각되었고,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자연 속에 버 려졌다. 제조업체는 재활용을 열렬히 옹호하고, 다수의 비정부기 구NGO는 완전히 혼란에 빠진 소비자에게 재활용은 성공할 수 없 다는 걸 설명하려고 애쓰는 전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 석유 산업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산업도 의혹을 바꾸고 조작하는 데 능숙하다. 의혹을 방어하려고 이 분야에서 펼치는 로비는 꽤나 강력하다. 플라스틱은 새로운 담배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석면이 될 것인가? 담배가 20세 기에만 1억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동안 반세기에 걸쳐 담배 회사 는 담배의 유해성을 부정하고, 이 산업이 계속 번창할 수 있도록 담배와 폐암의 연관성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전략을 펼쳤다. 19세 기 후반에 널리 사용되었던 석면을 생산한 업계도 길을 열었다. 1930년에 영국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석면 먼지와 폐 질환 사이의 <반박할 수 없는 연관성>이 드러났다. 업계는 알고 있었지 만 직원들에게 계속 이 사실을 숨겼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그 속임수를 폭로하기 위해 미국에서 소송이 제기되었다. 플라스틱 테러범들은 그 피고석에 앉게 될까?

- 수천 가지의 폴리머가 발명되었지만, 단지 여섯 가지가 시장의 90퍼센트가량을 차지한다. 그것들은 모두 열가소성 플라스틱으로, 새로운 용도를 위해 다시 녹일 수 있다.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 렌, 폴리스티렌, PVC,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직물에 사 용되는 합성 섬유(나일론, 폴리에스테르 등등)가 그것이다. 그러 나 각각의 물질은 추가하는 첨가제에 따라 수천 가지의 제형을 생성한다. 폴리에틸렌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폴리에틸렌이 있다. 일곱 번째 폴리머는 폴리우레탄인데 이것도 비교적 널리 보급되어 있다. 제조업계에서 많이 사용하며 신발 밑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6종의 플라스 틱과는 달리 폴리우레탄은 열경화성 수지라는 다른 범주에 속한다. 

- 플라스틱 제조업계가 그렇게 투자를 한다는 건 시장이 있다는 이야기다. 기후 보호가 비상사태가 되고 열을 동력으로 하는 자동차가 사라지려는 세상에서 그들은 화석 연료가 반드시 새로 운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맹신 하는 재료가 계속 세상을 뒤덮고 자신들의 미래를 보장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계산은 단순하고 정확하다. 더 많은 사람 과 더 많은 수입은 곧 더 많은 플라스틱을 의미하는데, 특히 동남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그렇다. 10년 전부터 연간 4퍼센트씩 성 장해 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면 향후 30년 동안 2~4퍼센트 성 장이 가능하다.
미국 화학협회가 의뢰한 연구는 포장재를 많이 소비하는 온라인 상거래와 음식 배달의 지속적인 증가, 플라스틱이 편재하는 (변기, 파이프 등) 분야에 해당하는 개발도상국의 <화장실 혁명>, 주택 단열재, 전자 장비나 태양 전지판처럼 에너지 전환에 필수 불가결한 플라스틱 재료 등을 통해 그런 예측이 타당하다는 걸 증명했다. 영국의 시장 조사 회사 IHS마킷IHS Markit의 연구 사무 소는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중산층이 증가하면서 스포츠와 여 가활동에 비용 부담이 줄어들어 기능성, 충격 내성, 중량감소가 가능해진 플라스틱 소재의 다양한 제품에 대한 소비로 이어질 것 이다. 말하자면 카약, 헬멧, 운동장, 경기장 좌석 같은 스포츠 장 비, 보호 장비, 지원 플랫폼과 설비 등 몇 가지 실례를 들 수 있 다.>" 플라스틱 제조업자들은 자사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동남아 시아, 그리고 특히 인도와 아프리카에 주력하여 가장 많이 투자 하고 있다. 이 지역들은 신흥 중산층이 <생활 수준의 향상>을 추 구하며 점점 더 도시화가 진전되고 있는 곳이다.

- 배럴당 10~80퍼센트를 플라스틱 생산에
결론을 말하자면, 정유 업체들은 대개 원유 배럴당 10퍼센트 미 만에 해당하는 양을 우선 플라스틱 생산을 위한 화학 유도체로 전환했지만, 현재는 40~80퍼센트 수준으로 추출할 수 있는 새로 운 공정을 실험하고 있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시장 조사 업체 IHS마킷은 이것을 배럴당 수익성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혁신 적인 기술>로 보고 있다. 엑손모빌이 운영하는 이런 종류의 정유 소중 하나는 이미 싱가포르에서 가동되고 있다. 인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최대 다섯 배 크기의 정유소가 건설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 대기업 사우디아람코는 이런 새로운 기회를 개발하려고 향후 10년에 걸쳐 1000억 달러를 투자할 계 획을 세웠다. <화학 제품의 놀라운 성장은 우리에게 근사한 기회 의 창을 제공한다. 그러나 당연히 그런 창구는 신속하게 행동하 는 사람들에게만 최고의 혜택을 줄 것"이라고 사우디 아람코는 내다보았고, 행동으로 옮겨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의 미래를 보 장받기 몇 달 전, 2018년에 플라스틱 챔피언인 동료 기업 사빅을 장악했다.
- 모래와 화학 물질이 담긴 물을 땅속에 주입하여 천연가스를 추출 하는 수압 파쇄법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이 기술을 사용하면 극 도로 심각한 오염을 일으킬 뿐 아니라 심각한 메탄 누출이 일어 난다. 메탄은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메탄이 대기에 유출된 후 첫 20년 동안 온난화를 발생시키는 능 력은 이산화탄소의 그것에 비해 80배에 달한다. 그리고 2008년 이후 대기의 메탄 농도가 급증했는데, 북아메리카의 셰일가스 추 출과 함께 등장한 현상이다. 미국 코넬 대학교의 생태학자 로버 트 하워스Robert Howarth에게 이 현상은 우연이 아니었다. 2019년 그는 메탄가스의 급격한 증가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소의 사 육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캐나다와 미국에서의 셰일가스 생산이 원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하워스에 따르면 메탄 의 대기 유출이 셰일가스 생산량의 3.2~6.4퍼센트를 차지하며, 지난 10년 동안 기록된 새로운 전 세계 메탄 배출량의 35퍼센트 에 기여했을 수 있다. 유독성을 띠는 데다 지진 발생의 원인이기 도 한 파쇄법은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사용이 금지되거나 중지되었다. 

- 상징적인 물건이 되어 버린 비닐봉지는 화석 에너지로부터 비롯된 기적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간혹 폴리프로필렌으로 만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폴리에틸렌으로 만든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급되는 폴리머인 폴리에틸렌은 뜻하지 않은 실수로 발명 되었다. 1933년, 영국의 화학자들이 조작을 잘못하는 바람에 흰 색의 밀랍 같은 잔여물을 얻게 되었는데, 이 물질의 성질이 아주 주목할 만한 것으로 드러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은 통신 케이블을 강화하려고 비밀리에 폴리에틸렌을 사용했고, 그 결과 독일보다 한발 앞선 위치를 점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첫 번째 성공은 훌라후프다. 1958년, 폴리에틸렌은 소녀들의 허리주변을 열광적으로 도는 유색의 원형 틀을 만드는 데 쓰였다. 훌 라후프의 열광적인 인기는 이후에 재미는 덜하지만 돈벌이는 훨 씬 더 잘되는 비닐봉지로 이어진다. 1950년대부터 몇몇 기업이 이런 유형의 포장재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1965년에 스웨덴 회사 셀로플라스트Celloplast가 멜빵 형태의 손잡이 두 개가 달린 일체형 주머니의 특허권을 소유하게 된다.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 해진 그 비닐봉지다. 이 신제품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 다. 비닐봉지는 불과 몇 년 만에, 한 세기가 넘게 훌륭하고 충실한 임무를 수행한 자신의 조상 종이봉투의 자리를 빼앗고, 재사용이 가능한 가방도 퇴장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유럽이 이 유행을 창출했으며, 1970년대 후반에는 이를 미국으로 전파 했다. 어디서나 플라스틱은 계산대에 등장한다. 무료로 끊임없이 말이다. 20년 동안 소비자와 비닐봉지 사이의 러브 스토리에는 거의 불화가 없었다.

- <생분해성> 봉지의 유혹에 대해 경고한다. <생분해성>이라는 용 어는 예를 들어 가정에서 퇴비를 만드는 것처럼, 자연 환경 속에 서 저절로 빠르게 분해되는 봉지를 지칭해야 할 것이다. 유엔은 <실제로 대부분의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매우 높은 온도에서만 분 해가 된다>고 경고한다. 달리 말하면 여러분의 정원이나 발코니 가 아니라 소각로에서나 분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옥수수 전분, 카사바 뿌리, 사탕수수, 지질이나 당분의 미생물 발 효물질(PHA)처럼 재생 가능한 소재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도 환경 속에서 저절로 분해되지 않으며, 특히 바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석유에서 추출한 기존 비닐봉지를 바이오 성분 의 비닐봉지로 대체한다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닐 수 있다. 유 엔에 따르면, 이는 <식량작물 생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기근으로 이어지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플라스틱 업계가 대 안을 늘리면서 소비자에게는 혼란만 일으킨다. 소비자는 결국 재 활용이 가능하지도 않고 실제로 생분해되지도 않는 봉지를 빈번 하게 분리배출장으로 보내게 된다.
- 플라스틱이 가볍다는 장점으로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한다면, 물질의 독성과 플라스틱의 환경 유출에 관한 질문은 생략하고 몇 가지 질문만 하면 되는 것이다. 플라스틱 업계가 그렇게 한다. 그러면 평가는 매우 과학적 관점에 따른 근거를 제시해 줄 것이다. 「수명 주기 평가, 이건 깜깜이 블랙박스입니다. 즉 자신에게 맞는 대로 자신 이 원하는 모든 것을 넣을 수 있습니다. 연구의 진정성으로 평판 이 높은 영국 환경 단체, 켐 트러스트CHEM Trust의 이사이자 생화 학자 마이클 워허스트 Michael Warhurst는 이렇게 확신한다.
- 이런 평가 분석을 우리가 사용하는 비닐봉지에 적용해 보면, 비닐봉지가 면으로 만든 재사용 가방보다 탄소의 영향이 적다고 나온다." 제작과 운송에 에너지가 적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 만 환경 공학자이자 환경 디자인 전문 조직인 쉐이핑 인바이런먼 털 액션Shaping Environmental Action의 설립자 율리엔 부셔 Julien Boucher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결정짓는 것은 그 재료보다는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입니다. 면으로 만든 가방은 10년 동안 1,000번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설정이라면, 당연히 일회용 비닐봉지보다 영향을 덜 미치게 되겠죠.」 업계에서 떠벌리는 비닐봉지의 축소된 영향은 오로지 <쓰레기들 이 완전히 수거되고 재활용되거나 소각되어 에너지를 생산하 라는 이상적인 시스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생산 규모를 축소 하면 기후 정책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하는 플라스틱 업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유엔조차도 이 분석에 대해 경계할 것을 요구하며, 결국에는 <환 경에 가장 영향을 덜 주는 쇼핑백은 소비자들이 이미 집에 가지 고 있는 장바구니다>라고 결론짓는다. 이런 사실을 인지한 뉴저 지주는 2020년 가을, 플라스틱이든 종이든 모든 일회용 봉지를 금지하는 조치를 표결에 붙여, 이 방면으로는 가장 야심찬 법안 가운데 하나를 채택했다. 3회 위반하면 벌금이 약 4,800달러 정 도 부과된다.

- PVC 같은 폴리머에는, 종종 첨가제가 플라스틱보다 더 많이 들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아 눈에 띄지 않지만, 첨가물의 세계 시장 매출 규모는 600억 달러 이상이다.
플라스틱의 경우 다양한 구성에서 독성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모노머: 그 자체로 폴리머를 구성한다. 폴리카보네이 트 조성에 들어가는 비스페놀A 즉 BPA가 이에 해당한다. 
*첨가물: 플라스틱에 주입하여 플라스틱을 유연하게 하고, 착색과 착향을 가능하게 하며, 열, 물, 기름 등에 내구성을 갖도록 그 성질을 변화시킨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들로는 프탈레이트, 과불화 화합물, 브롬화 난연제가 있다.
*NIAS: Non-intentionally added substances에서 나온, 전혀 끌리지 않는 이 약자는, 의도적으로 첨가된 물 질들이 아닌, 불순물 또는 제조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산물을 말한다.
*마지막으로는 그 표면인데, 플라스틱 표면은 화학 물질과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세균들을 옮길 수 있다. 해양학자들은 플라스틱을 바이러스와 세균을 수천 킬로미터까지 운송하는 뗏목이라고 말하곤 한다.

- 환경 단체 티어펀드TearFund의 조사에 따르면, 개발 도상국에서는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질병으로 30초마다 한 명이 숨진다고 한다. 또한 유엔에 의하면, 사업장에 서 유독성 제품에 노출되어 15초마다 근로자 한 명이 사망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보건 기구WHO는 연간 인류 사망자 수의 4분의 1, 즉 1300만 명의 죽음이 환경과 관련 있다고 추정한다. 플라스틱에서 방출되는 내분비 교란물질을 포함한 독성 화학물 질이 이 사망률에 일조한다. 그럼 플라스틱으로 인한 전체 사망 자수는 얼마나 되는 걸까? 정확히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 법정에 선 과불화 화합물
사실, 이미 터졌다............. 그것은 바로 미국 파커스버그에서 판결이 난 과불화 화합물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6년에 「뉴욕타임스」 에서 냉담한 어조의 기사로 다루었고, 2019년에는 영화 「다크 워터스Dark Waters」에 등장했다. 폴리 및 퍼플루오로알킬Poly-and perfluoroalky|이란 물질은 1940년대부터 제조되었고, 영어 약자인 PFAS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물질은 과불화 화합물이라는 용 어로 분류되는데, 방수성을 가진 데다가 오염과 기름기에 강하고 눌어붙지 않는 등 기적적인 특성을 지닌 4,700개 이상의 분 자들이 그룹을 이루고 있다. 이동성이 매우 뛰어나며 거의 파괴 되지 않는 과불화 화합물은 80년 동안 환경과 먹이 사슬 도처로 퍼져 나갔다. 브레스트에 살든 보고타에 살든 그 어디에 살든 간에, 우리는 이를 수돗물로 마시고, 먹고, 들이마신다. 그리고 이 물질들은 우리 신체 기관에 축적되어 몇 년 동안 머무르게 된다. 지금은 <불멸의 화학 물질Forever chemicals>이라는 별명을 달고 과 학 문헌에 등장하기까지 할 정도다. 가장 잘 알려진 것들은 PFOA 와 PFOS로, 좀 더 난해한 말로는 퍼플루오로옥탄산 및 퍼플루오 로옥탄술폰산이다. 2015년에 200명의 과학자들은 대안으로 제 시되었던 <짧은 사슬> PFAS의 위험성을 세심히 경고하면서, <이 물질들의 생산과 사용을 제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과불화 화합물 제조업자들을 대변하는 미국 화학 협회 산하 지부인 불소 협회FluoroCouncil는 곧바로 반박했다. 대안 물질에 관해 표명된 우 려가 충분히 <강력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비행기, 자동차, 스마트폰>은 이런 물질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물질들이 <현대 생활에 필수가 된 것뿐이라고 한다. 현대 생활에는 그럴 수도 있겠으나, 삶에서는 아닐 수 있다. PFAS는 고환암, 신 장암, 간 기능 장애, 면역 체계 약화, 생식력 감퇴 등과 연결되어 뒤죽박죽 엉켜 있다.
요약하자면, 파커스버그 사건은 미국 기업 듀폰이 코팅제인 테플론, PFOA가 함유된 대표 프라이팬 제품을 제조하는 과정에 서 나온 잔류 물질을 자연환경에 방출하자, 이로 인해 40년간 7만 명의 웨스트버지니아 주민들이 어떻게 독성에 노출되었는지 밝 혀 가는 내용이다. 또한 200년 된 기업이 <그런 방법이 위험하다 는 것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출해 버렸다>는 사실을 입증해 내는 데 성공한 로버트 빌롯Robert Bilott이라는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듀폰 그룹은 희생자들과 암, 간질환, 심장에 문제가 생긴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수억 달러를 쏟아부어야 했다. 분위기가 좀 누그러지자, 듀폰은 2015년에 <케무어스>라고 이름 을 붙인 새로운 독립 법인에 논란의 대상인 제품의 생산을 위탁 하는 것으로 이 문제에서 적당히 빠져나왔다. 케무어스는 PFAS 오염과 관련된 30여 개의 소송을 수습했다. 인간과 동물 건강 보 호를 목표로 하는 영국 환경 단체, 켐 트러스트의 이사 마이클 워 허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런던에서 로버트 빌롯과 마주쳤을 때, 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듀폰에 파커스버그 오 염 문제에 대해 문의하면 이를 케무어스의 책임으로 돌리고, 케 무어스는 또다시 듀폰에 떠넘겨 버립니다. 참 편리하죠. 믿기 힘 들지만 이런 방식으로 기업들은 언제나 모든 책임에서 성공적으 로 빠져나가곤 합니다.」

- 토양은 해양보다 4배에서 23배까지 더 오염됐을 수 있 다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앤더슨 아벨 지소자 마샤두Anderson Abel de Souza Machado는 <이 분야에 관해서는 거의 연구가 행해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얻은 결과만으로도 걱정스럽다. 플라스틱 조 각들은 실제로 세계 도처에 존재하며, 수많은 해로운 결과를 유 발할 수 있다>라고 정리한다. 주요 원인은...... 하수구에서 찾을 수 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폐수에 존재하는 미세 플라스틱, 특 히 세탁기에서 나온 직물 섬유의 80~90퍼센트는 하수 처리장의 필터를 통과해 폐수 찌꺼기에 남는다. 폐수 찌꺼기들은 종종 비 료로 들판에 흘려보내지는데, 그 속에 든 수천 톤의 미세 플라스 틱도 함께 끌려가는 것이다. 여기에다 농업에 사용되는 플라스틱도 더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중 하나는 비료인데, 매 우 작은 플라스틱 껍질 속에 비료를 캡슐화하는 것은 높이 평가 받는 기술이다. 이는 비료를 토양에 서서히 퍼트리는 장점을 가 진 반면, 미세 플라스틱을 토양 속에 잔류시키고 농축시키는 단 점이 있다. 또 다른 것은 습도 유지와 잡초 방지를 위해 경작지에 덮는 비닐 덮개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폴 리에틸렌으로 된 이 비닐을 재활용하지만, 유럽 전체에서 그러지 는 않으며, 나머지 지역들에서는 더욱 그러지 않는다. 종종 방수 포는 거둬지지 않고 방치되어, 결국 토양과 섞여 버리게 된다. 일 부 파급 효과들이 이미 관찰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렁이들은 토양에 미세 플라스틱이 있을 때 땅굴을 다르게 판다. 지렁이의 생태 특성과 토양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라고 독일의 연구는 지적한다. 다른 연구들에서는 이 입자들이 식물 자체에 미치는 영향을 증명한다. 그 예로 중미 합작 연구팀은 나노 플라 스틱이 식물 내에 축적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결과는 식 물들의 발육 상태가 나빠지고 뿌리가 짧아진 것이다. 이는 식물 의 영양가치 하락과 전 세계적인 식량 안전에 대한 위협이다. 이 후, 이탈리아 카타니아 대학교 연구원들은 플라스틱 미세먼지들 이 현재도 과일과 채소 속으로 침투해 사과, 당근, 상추 등을 오염 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다. ''
- 우리는 자주 로비 황금률인 <3D> 원칙을 언급한다. 영어로 <Deny, Delay, Deflect>, 즉 <부인하라, 지연시키라, 주의를 돌리 라〉다. 담배, 석면, 화석 연료 회사이건 오늘날 플라스틱 회사이 건 간에, 이 원칙을 쓰면 이미 이긴 게임이며, 더욱이 몇 년간의 수익을 절대적으로 보장한다.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산업계가 이 원칙을 적용했기에, 이제 3D 원칙은 꽤 많이 노출되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은 여전히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다. 왜냐 하면 원칙이 절대로 저지받을 위험 없이, 무한히 반복될 수 있도 록 규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비스트들은 기계에 기름칠을 하고, 글자 그대로 로드맵을 따르는 일상을 수행하는 정비사들인 것이다. 3D 원칙 첫째, 부인하라. 보건 위협을 부인하 고, 과학자들을 분열시키고, 진실한 연구원들에 대한 신뢰를 훼 손하고, 안심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 돈으로 산 진짜 내 편인 -사이비 전문가들을 동원해 연구를 완성한다. 둘째, 지 연시키라. 모든 수단을 써서 규제와 금지 조치를 지연시킨다. 끝 없이 긴 법적 절차를 진행하며, 해당 물질이 현대적 생활에 필수 적이라는 걸 주장하며, 보건 의료 기관에 잠입하고, 요청받은 자료를 제출하는 데 늑장을 부리며, 이런 자료들은 기밀이며, 경제 가 무너지고 일자리가 없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영업 기밀 에 대한 존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며 지연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 주의를 돌리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아직 존재하 지는 않지만 장차 우리 모두를 구하게 될 해결책에 대해 떠벌리 며, 언론에 거짓을 말하고, 대중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게 변하고 있다는 암시를 주기 위해, 이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자발적 약속을 하며, 의혹, 또 의혹, 계속해서 의혹을 만들어 가며 주의를 분산시킨다. 이런 애매모호한 불확실성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그동 안 기업은 대체 물질, 아마도 전과 마찬가지로 위험성을 띨 물질 을 개발하고, 그럼 다시 순환의 원점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과 화학적으로 묶여 있지 않아서 쉽게 스며 나와, 환경과 인체에 침투할 수 있다. 이 분자들은 빠져나 오면서, 일부 플라스틱에서 나는 새 제품 냄새에 일조한다. 소변, 혈액, 모유,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이 합성물은 엄청난 단점을 지 니고 있는데, 그 일부가 내분비 교란 물질이라는 점이다. 내분비 교란물질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성장에도 필수적 호르몬인 테 스토스테론 생산을 방해한다. 남성 생식력이 이례적으로 감소한 현상의 주요 원인일 수 있다. 전염병학자 샤나 스완Shanna Swan 이 2017년 발표한 연구는 많은 독자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서양 남성들의 정액 속 정자 수가 불과 40년 만에 60퍼센트가 줄 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 연구자는 2021년 2월에 이 민감한 주제와 인류를 짓누르는 위협을 다룬, 『정자 0 카운트다운 Count Down』이라는 매우 기대되는 책으로 돌 아올 예정이었다. 이 흥을 깨지 않으려는 건지, 프탈레이트는 암 (특히 간암과 고환암), 비만, 당뇨, 천식의 발병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의심된다. 유럽연합은 1999년부터 DEHP와 그 동종 일부 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고, 미국과 캐나다는 2008년 이후로, 특히 장난감과 유아들이 입으로 가져가기 쉬운 물건들에 사용을 제한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발암 가능 물질>로 간주되는 DEHP는 2008년 유럽에서는 <생식에 유해한 물질>로도 분류되었다.
- 그런데 어떻게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일회용 마스크가 팬데 믹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을까? 제네바 대학교의 과학사 학자 두 명이 던지는 질문이다. 마스크 품귀 현상 속에서, 브루 노슈트라서 Bruno Strasser와 토마스 슐리히Thomas Schlich는 세계 교 역의 실패보다는, 사회 다른 분야처럼 1950년대부터 소비 문화 에 사로잡힌 <현대 의학의 취약점>을 읽는다. 의료진들이 세균에 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마스크를 착용한 것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 1918년에,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당시 미국 샌 프란시스코에서 대중이 마스크를 사용했다. 1930년대까지 모든 마스크는 천으로 만들어져서 재사용이 가능했다. 이후 일회용 종 이 마스크로 대체됐으며, 1960년대에 들어서 합성 섬유로 된 마 스크가 등장했는데, 살균 과정에서 천이 손상되기 때문에 일회용 으로 제작됐다. 슈트라서와 슐리히는 이렇게 분석한다. 일회용 마스크로 옮겨 간 것은 위생을 고려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건비를 절약하고, 공급 관리가 쉬우며, 너무나 편리한 일회용 마스크에 매료된 의료 종사자들을 향한 공격적 마케팅이 빚어낸 일회용품 의 수요 증가와 그에 부응하기 위한 업계의 열망> 때문이라고 설 명된다.
두 역사학자는 합성 섬유로 된 마스크가 전통적인 면 마스크 보다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는 당시의 연구들은 <업계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고 폭로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재사용 가능 마스 크는 <비교 연구에서 가장 많이 누락>되었다. 1975년, 산업적으 로 생산된 면 마스크가 포함된 마지막 테스트 중 하나에서, 실험 자는 구조만 잘 설계된다면, <4겹의 면 모슬린으로 된 재사용 가능 마스크가 일회용 종이 마스크나 합성 섬유로 만든 새로운 마 스크보다 우수하다>고 결론지었다. 일부 연구는 재활용 가능 마 스크를 세척하면 섬유를 수축시켜서 세균을 거르는 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고 제안하기까지 한다. 안타깝게도, <한때 의료 장비의 핵심 부분이었던>, 신중하게 제작되고 테스트를 거친 재사용 가 능 마스크는 1970년대 이후 사라졌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마스크에 대하여 1918년에 의료 연구원들이 써놓은 것, 《마스크는 여러 번 세탁해도 되고 영구히 사용할 수 있다》를 언젠 가 다시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라고 두 학자는 말을 맺는다.
- Tatiana Santos도 이에 동의한다. 「플라스틱 대부분은 재활용되어 서는 안 되고, 독성 폐기물로 분류되어야 합니다.」 브뤼셀에 기반 을 둔 유럽 환경국의 관점에서는, <진정한 순환 경제를 원한다면, 플라스틱은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 유리나 강철 같은 금속은 더할 나위 없는 대상이지만 플라스틱은 아니다. 왜냐하면 설계 부터가 유해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석유로부터 추출되고, 불안정 하며, 수천 가지의 첨가제를 함유하고 있다.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특히 이것과 접촉한 식품을 섭취하거나 아이들이 흔히 장난감을 입에 넣어 오물거리며 씹을 때 위험 하다. 이는 국제오염물질제거네트워크IPEN가 연구에서 내렸던 결론이다. 연구원들은 전자 장비를 재활용해 만든 장난감에 높 은 수치의 다이옥신과 브롬화 난연제가 함유된 걸 확인했다. 전 화기와 컴퓨터의 인화성을 낮추기 위해 사용하는 난연제는 <잔류 성 유기 오염 물질> 혹은 <POP>라고 부르는 물질에 속한다.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인 POP는 2004년 스톡 홀름협약Stockholm Convention on Persistent Organic Pollutants에 등재되었 다. 협약 채택 당시, 목록에 기재된 초기 12가지 물질에 <12개 악 당들Dirty Doze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이후로, 5개 물질이 목록에 추가되었다. 이 목록에 올라가기 위해 물질이 갖춰야 할 조 건으로는, 인간이나 환경에 유해하고, 오랜 시간 잔류해야 하며, 쉽게 옮겨 가고 먹이 사슬을 따라 살아 있는 유기체 안에 축적되 어야 한다. 이 혼합물들은 암을 유발할 뿐 아니라 신경계와 호르 몬에 연관한 문제도 일으키는 것으로 의심된다.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던 프랑스 정부도 <POP의 잔류성과 독성은 그 배출원에 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확산되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지 않는 지 역까지 포함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보건과 환경에 위협이 된다> 라고 인정한다.
대다수 플라스틱은 재활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지만, 무슨 상 관이겠는가. 이는 플라스틱 산업계가 계속해서 플라스틱을 팔려 고 한다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다. 게다가, 제재 를 피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기업들은 잘 알고 있다.
- 플라스틱의 화학적 재활용은 아직 실제하지도 않는데도, 이미 전쟁에 돌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좌측에는 산업계가, 우측에는 비 정부기구가 진을 치고 있으며, 이 전쟁은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 인다. 양 진영에서는 저마다 주장에 날을 세운다. 무기를 들기 전 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은 명확히 확인하고 시작해보자. 재 활용을 떠올릴 때, 우리는 직관적으로 기계적 재활용, 예를 들면 하 나의 병을 다른 하나의 병으로 재활용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렇 지만 현재, 업계는 완전히 다른 방식인 화학적 재활용에 대해 떠 벌린다. 플라스틱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포장재들을 분류, 세척, 분쇄, 용해한 뒤 재사용하는 기계적 재활용과 달리, 화학적 재활 용은 폴리머를 분해하는데, 좀 더 짧은 분자 상태로 변형시켜 모 노머로 되돌리는 것이다. 열과 화학 용매를 이용하는 이 방식은 더 많은 종류의 플라스틱, 심지어 오염되거나 혼합된 것까지도 재활용할 수 있고 새 플라스틱만큼이나 질이 좋은 폴리머를 생산 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술은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 즉 PET(오래전부터 기계적 재활용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에 적용 이 가능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PET 내부의 모노머들을 연결하는 화학적 결합이 대체로 깔끔하게 분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 만 이건 예외적 경우이고, 〈PVC, 폴리스티렌, 폴리프로필렌과 같이 그 구조가 훨씬 《가단성>이 적은 다른 폴리머들의 경우는 훨 씬 위험할 수 있다>. 환경단체 네트워크 유럽 환경국의 화학자 장뤼크 비토르 Jean-Luc Wietor는 이렇게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2017년 이후로 이 프로젝트는 속도를 내고 있는 것 같다. 세 계 곳곳에서, 특히 유럽에서는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과 시범 공 장시설의 건설이 발표되고 있다.
- 미국에 이어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두 번째로 많은 일본 의 예를 들어 보자. 이 섬나라는 연간 약 900만 톤의 플라스틱 쓰 레기를 배출하는데, 그중에서 40퍼센트 이상이 일회용 식품용기 와 포장재다. 80퍼센트에 근접하는 높은 재활용률로, 좋은 사례 로 자주 인용되는 일본은 훌륭한 재활용 수거 시스템과 국민의 철저한 준수 정신으로 평판이 높다. 그러나 소각되는 플라스틱을 제외하면, 재활용률은 실제로 2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네덜 란드의 체인징 마켓 재단은 조사 보고서에 이렇게 서술한다. 〈그 런데 이 수치도 문제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중국, 말레이 시아, 태국과 같은 국가로 수출되는 플라스틱 폐기물 14퍼센트가 -매립하거나 소각하거나 자연에 버려지는 게 아닌 - 재활용 이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예는 <플라 스틱의 진정한 운명을 밝히기 위해서는 공개된 통계 수치 너머의 현실을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효과적으로 재활용이나 재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전혀 없이 포장재를 대량수거해, 결국은 소각, 가스화, 쓰레기 수출과 같은 해결책을 쓰면서 문제를 소비자들에게 숨기면, 이후 소비자는 기업과 공권력의 변화에 대한 요구를 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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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의 서

사회 2024. 3. 21. 07:22

- 평화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현실주의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홉스는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으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의 본질은 이기적이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홉스의 '세계는 경쟁의 축으로 돌아간다'라는 생각은 하나의 견해에 불과할 뿐이죠. 하지만 실증도 반증도 할 수 없기에 18세기경부터 많은 사람이 홉스의 견해를 받아들였 고, 이후 이 생각은 30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우리를 얽매 어 왔습니다.
이쯤에서 저는 강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현실 세계는 이미 홉스가 말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원래 인간은 자신만을 생 각하는 동물이다'라는 관점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현실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죠. 우리 마음속에 깃든 '생존 전쟁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강 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이 저주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원래 이기적인 인간은 내버려 두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그렇게 직감한 홉스 자신은 '공포와 쌍둥이'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공포와 함께 나를 낳았다'고 말했다.
그의 주문은 3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것 중 하나가 학교다. 그리고 그 학교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 "스스로 규율을 지키는 인간, 교도관이 없이도 명령을 따 르는 인간, 즉 '기계화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구조라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제러미 밴덤이 발명했지. 정말 완벽한 구조야."
그는 감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죄수를 감시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면서 가장 저렴하고 우 수한 교도소. 그게 바로 파놉티콘이지. 잘 들어, 학교도 마 찬가지야. 학교는 감시 · 상벌. 시험이라는 세 가지 메커니즘의 복합체야. 규율과 훈련으로 아이들을 질서에 끼워 맞추고 교묘하게 학생 스스로 복종하도록 만들지."
저는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자주성을 끌어낸다는 교육적 배려가 사실은 규율 과 훈련을 통해 스스로 복종하는 인간이 되게 하는 권력 메 커니즘의 일부일 뿐이야. 그렇게 형성한 권력으로 사람들의 손에서 교묘하게 자유를 빼앗아 가는 거지.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는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고 현 재 질서에 복종하는 존재이기도 해."

- 저는 일리치의 절제의 사회를 집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학교는 다음의 세 가지 목적이 결합한 장소입니다.
1. 제대로 먹고살 수 있는 노동자로 만들기 위한 기능 훈련
2. 사회의 일원으로서 규율을 지키는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한 훈육
3. 좋은 인격을 지닌 훌륭한 인간 만들기
- 우연히 시험 성적이 좋았다, 나빴다는 말이 어느 새 '성적이 우수한 사람은 나쁜 사람보다 훌륭하다'라는 상 하 관계를 만든 것입니다. 나쁜 성적을 받은 학생은 '학력이 낮다=머리가 나쁘다=낙오자' 취급을 당하고, 교칙을 어긴 학생에게 '규율을 지키지 않는다=태도가 나쁘다=반항적이 라는 불량학생 딱지를 붙이는 탓에 학생들은 학교를 어려워 하거나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학교가 세 가지 목적을 결합한 장소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생긴 이러한 생각이 사회 전체로 퍼진 결 과 '전문가가 아마추어보다 훌륭하다'는 상식이 굳어졌습니 다. 이반 일리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전문 가가 만든 제도에 완벽히 의존하게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 조교 제도는 당시 최첨단을 달리던 공장의 분업 시스템을 교육에 응용한 것으로 뛰어난 효율 덕분에 단번에 유럽 전역 으로 퍼졌습니다.
이후 영국의 교육자 사무엘 와일더스핀Samuel Wilderspin이 '갤 러리 방식'이라 불리는 새로운 교육법을 개발했습니다. 계단식 강의실에 수십 명의 학생이 앉아, 정면에 있는 교사에게 수업을 받는 방식입니다. 이로 인해 교사는 모든 학생을 볼 수 있고 학생도 다른 친구들의 행동을 보며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1862년 영국 정부는 이 두 개의 시스템을 결합했 습니다. 학생의 출석 일수와 학력에 따라 국가가 학교에 보 조금을 주는 제도가 생기자, 학생을 고르게 구성하는 편이 교육에 효율적이고 보조금을 받기도 쉬워 같은 나이의 아이 들로 학급을 꾸리는 '학년 제도grade system'가 탄생했습니다. 그 렇게 같은 학년의 아이들이 같은 교육과정을 함께 배우는 형 식이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21세기가 된 지금도 같은 형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 어떤 분야든 유일한 방법과 순서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보다 '인류의 지혜는 수많은 질문과 결론이 얽히고설킨 거대한 그물코 같다'는 표 현이 정확합니다.
어딘가로 도달하는 길은 무한히 존재합니다. 즉, 무엇이 기초이고 무엇이 응용인가의 경계는 없습니다. 요약하면 기초에서 응용 순서로 학습시키는 교육은 애초에 인류의 지혜 와 맞지 않습니다.
- '기초'라고 부르는 것은 기초라는 이유에서 불필요한 것들 은 빼고 핵심만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루하 고 따분한 훈련이 되기 쉽습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그 내용을 배우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초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재미없는 내용을 여러 번 반복시 키다 보니 겨우 관심이 생긴 사람까지 싫어하게 하는 문제를 일으킵니다.
다만 '기초연습'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본인이 기 초라고 여기는 부분을 습득하기 위한 연습'을 모두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기초 연습은 동기부여가 높은 중상급자가 기능을 철저하게 익히기 위해 자신이 기초라고 여기는 부분을 철저하게 공부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기초'라는 사고방식은 배움을 '형태'에 끼워 넣으면서 재미를 없앴고 결국에는 배움이 싫어지게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초가 중요하다는 그럴싸한 말에 생각을 멈춘다. 기초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배움은 더욱 자유로워야 하고 더욱 재밌어야 한다.

- 절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 그것이 가장 편하다고 지어낸 말을 믿어서입 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이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진실인지를 판단하는 일조차 귀찮아 단순히 지금까지 그렇 게 해왔으니까라는 습관과 규칙에 몸을 맡겨서 그렇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따르는 것은 사고를 정지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강하게 자각해야 합니다. 또한 '해야 하는' 일과 동시에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사회에 많습니다. 실패가 빤히 보이는 일을 하려고 하면 선생 과 부모, 선배, 친구들이 "안 돼, 하지 마, 실패할 게 뻔해!", "아니야, 이렇게 하는 게 좋아!"처럼 충고하거나 나무라며 자신들의 의견을 밀어붙입니다.
그들은 실패하면 안 되니까, 그 사람을 위해 조언할 뿐 나 쁜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실패를 사전에 막았으니, 고마워해 주길 바라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쓸 데없는 참견입니다. 더 나아가 방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이 실패에서 배울 권리를 빼앗았으니까요.
- 세상에서 말하는 '규칙'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강제하는 것이자, 사람들로부터 중요한 권리를 빼앗는 구조입니다.
원래 규칙이란 선인들이 맛본 다양한 실패를 바탕으로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이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 유비무환의 마음 으로 알려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말은 얼핏 들으면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사고를 정지시키고 인간의 성 장에서 중요한 실패를 경험하지 못하게 하며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두렵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 이와 관련해서 실패할 권리를 완벽하게 존중하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선교의 수행입니다. 선의 수행은 기간 중 전원 이 실패하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밥을 지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장작을 사용해 내일부터 밥을 지으 라며 쌀 다섯 되(약 8킬로그램)를 줍니다. 하지만 그렇게 밥을 지어본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반드시 실패하고 꾸중을 듣게 됩니다.
밥 짓기뿐만 아니라 지도와 가르침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수행을 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원이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렇게 설계된 수행에 대해 선종의 승려 마쓰야마 다이고松山는 다음과 같이 말 했습니다.
이것은 (정답을 알려주면 맹목적으로 그것만 하게 되 기 때문입니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되죠. 무조건 실패하게 만들면, 거꾸로 말해 시행착오를 겪게 하면 제아무리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성공할 수 있습니 다. 모두 실패하게 해, 모두 성공하게 합니다. 그래서 선은 천 년을 이어오고 있는 거죠.
규칙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실패에서 배우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실제로 천 년 전부터 증명되었습니다.

- 사에키는 《인지과학 혁명 「」探究》 (2004)에서 "배움이 재미없어진 배경에는 놀지 못하게 삼중으로 둘 러싼 구조가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첫 번째는 사회에서 '놀이'와 '일'을 구별해서입니다. 사회 의 공업화가 진행되자 사람들이 노동자로 고용되고, 손님과 거래처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것만이 일이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들 먹고살기에 급급해 놀 여력조차 없어진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학교에서 '놀이'와 '배움'을 구별해서입니다. 약 100년 전부터 학교는 전문교육 시설로 발달했으며, 그 목적 은 아이들의 공부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루한 공부만 하다 보면 금세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중간에 쉬는 시간을 넣고, 쉬는 시간만큼은 놀아도 된다는 규칙이 만들어지게 되 었지요.
- 일본의 근세사학자 시바타준의 <일본유아사 日本幼兒史》(2013)에 따르면 고대부터 에도시대 중기에 이르기 까지 사람들은 아이를 보호하거나 교육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길가에 아이가 버려져 울고 있어도 특별히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많은 아이 가 죽었다고요.
하지만 근대에 들어 아이의 교육과 복지에 관심이 높아지 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7세 미만의 아이는 '신'이며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는 '일곱 전까지는 신의 영역 55'이라는 말이 정착되었습니다. 일본인의 아이에 대한 특 별한 애정도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이죠.
어쨌든 아이와 어른을 구별하고, 놀이와 배움과 일을 구별 해 법률 등의 제도로 고정하면서 우리 사회가 메말라 갔습니 다. 이 사실을 꼭 알아야 합니다.

- 현대로 이어지는 고유의 교육 사상은 로크가 만들었습니 다. 로크는 인간을 새로운 타불라 라사라고 생각하며 "아이 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배우는 습관을 만들어줄 것, 그것이 교육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 다. 이 생각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면서 아이를 특별한 존 재'로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루소는 “자연인으로 태어난 아이를 문명사회 속 에서 삐뚤어지지 않게 키우는 것이 교육이다”라고 말했습니 다. 그 결과 아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이론화했고, 아이와 어른을 완전히 구별했습니다.
이후 로크와 루소의 영향을 받은 오언은 '어릴 때부터 좋 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좋은 인격이 형성된다'는 생각을 바 탕으로 세계 최초로 유아학교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이어지 고 있는 학교의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보호한 다는 명분 아래 아이들을 학교에 가두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 했습니다.
확실히 그들은 엄청난 혁신가였습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거지?'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혁신적인 생각이 안타깝게도 아이를 '어린 애 취급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순수하고 사랑 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훌륭한 어른으로 키우 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말은 '아이는 미숙하고 여리기 때문에 어른이 교육하고 이끌어줄 필요가 있다'고 얕 보는 것과 같습니다. 즉, 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시각이 매우 거만했던 것이죠.
- 어린애 취급을 한 결과 '아동의 노동은 없어야 한다'라는 대의명분 아래, 아이는 어른이 될 때까지 사회와 관련된 일 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학교 운영 에 참여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권리가 있나요?", "아이에게 도시를 조성하는 행정에 관여할 권리가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네”라고 딱 잘라 대답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 산업사회는 사람들에게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를 요구하며 무엇이든 세분 화했습니다. 그러한 성질이 선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일이 분업화되면서 사람들은 노동자로서 전문적인 지식 과 기능을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에 생산성과 효율을 따지게 되었고, 돈을 벌기 위해 재미없는 일만 하며 미 래에 불안을 느낍니다. 이 냉엄한 실력주의가 학교에 번지면 서 서서히 '배움'에서 '놀이'를 지워버린 것입니다.
로크와 루소, 오언이 그 시대에 떠올린 생각은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이고 의미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늘어 나고 있습니다. 결코 그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 원인은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깊이 이해하지 않고 비판하려는 자 세도 갖지 않으면서 그저 사상만 따라가려는 우리의 사고정지 에 있습니다.

- 저는 능력신앙이 어떻게 태어나,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찾 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직접적인 기원을 알아냈습니다.
바로 1905년 프랑스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 박사와 테오도르 시몬Théodore Simon 박사가 개발한 '지능지수 IQ=Intelligence Quotient' 테스트입니다. 이 테스트에서 '지능'이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이 테스트는 지적장애 아동을 분별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심리학자 로 버트 여키스Robert Mearns Yerkes 박사가 개발한 '아미 알파/베타 Army Alpha/Beta'를 175만 명의 미군 병사 배속에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의 우생학자 칼 브리검Carl C. Brigham 박사가 만든 대학입학시험용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 등에 응용되면서 기업 과 학교 등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통계적 숫자일 뿐인 능력을 사람마다 타고난 특수 한 것', '노력할수록 더욱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능력이 실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이를 섬기는 능력신앙이 탄생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믿음이 자라 났습니다.
능력이 실체로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끝나지 않고 '신앙’으로 섬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산업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 산업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분업'입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업무를 세분화하고 철저한 전문성을 추구합니다. 실제 로 공업 생산은 분업과 기계화 덕분에 눈부신 성장을 이뤘습 니다. 그로 인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전문적인 지식과 지능을 높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 람은 높은 급여를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낮은 급여를 받 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능력이 만능 통화utility가 되면서 사람들은 능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자가 떵떵거리며 살듯 '능력자'가 되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죠.

- 일본의 사회심리학자 고자카이 도시아키小坂晶를 만났습니 다. 그의 저서 <책임이라는 허구任5虛構》(2008)를 읽고 그의 강연을 들으며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뚫렸습니다. 그 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행 학교 교육은 격차의 원인이 우연히 결정됐음에도 평 등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데다 순위로 노력의 결과(책임)를 떠넘깁니다. 능력 격차는 대개 우연으로 결정되지만, 이와 달리 학교는 자기책임론적 격차 정당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즉, 학교는 '모든 건 자기 책임'이라는 격차사회를 만드는 데 한몫했습니다. 로크와 루소에서 시작한 '모든 아이에게 자유 롭고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드높은 이념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혹한 책임을 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격차와 불평등이 생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사람들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몰리면서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탐 구할 기회를 전부 빼앗기게 되는 결과에 이른 것입니다.
- 이처럼 재능은 능력과 마찬가지로 편견에 의해 내려진 외부인의 얄팍한 평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재능이 능력보다 질이 나쁜 이유는 여기에 결정론적 생각이 숨어 있기 때문입 니다.
결정론determinism이란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것 이 전부 자연법칙과 운명 등 무언가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 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능력신앙은 '노력을 거듭하면 반드시 능력이 높아진다'라 는 신념을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결정론보다 낫습니다. 하지만, 재능은 '노력해도 재능이 없으면 능력은 높아지지 않는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 라며 포기하게 하므로 매우 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평가'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성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장 가능성을 낮춥니다. 평가가 인간의 배움을 어렵 게 만들고 그것이 재능이라는 미신을 낳아 사람들로부터 자 신감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능력이 낮은 사람을 '게으 름뱅이', '낙오자' 취급하며 불행에 빠뜨렸습니다. 그래서 보 통 평가는 '본인에게 의욕과 격려를 북돋아 줄 정도가 적당 하며 그 이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합니다.
- '테스트'의 어원은 연금술사가 광석의 성분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했던 흙 항아리를 나타내는 라틴어 'testum'에 있습니 다. 이 말이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테스트를 의미하게 되 었습니다. 단어의 유래만 보더라도 말 그대로 '인간은 공업제품과 같다'라는 사고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테스트는 지금까지 크게 유행하고 있으며 이 순간에도 다 양한 곳에서 까다로운 테스트가 생겨나고 있지만 저는 이것 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계속 참아가며 한들, 테스트 성적이 나쁘다는 말을 들으며 노력한다 한들,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더 능력이 뛰어 난 시대에 억지로 외운 내용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재미있어서 질릴 틈이 없는' 인생이 훨씬 더 즐겁 습니다. 남보다 뒤처진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꾸준히 즐기는 인생이 더욱 풍요로우니까요. 무언가를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결코 '우열'이 아닌 '개성' 이므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 니다.
- 하나의 기준으로 결과를 평가하는 대신 발상 자체나 창조 과정 전체를 응원하는 칭찬이 있으면 좋다. 이러한 자세는 성과에 대한 존경은 물론이고 행동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낳는다. 칭찬이 격려가 되고, 새로운 도전이 더욱 큰 칭찬을 낳는다. 그 끝에 다양한 장점을 인정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배움의 장소는 평가로 자신감을 빼앗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다양한 칭찬으로 용기를 채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 스스로 '우수한 기계'가 되려는 인간은 머지않아 '능력주의의 최종병기'인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만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하기보다 인공지능을 인간이 기계로 일하는 것에서 해방시켜 준 '능력주의의 해방자'라고 생각하자. 이것이 내가 인공지능을 보는 견해다. 그리고 이는 학교에서 배우는 방식에도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 제가 능력신앙과 능력주의를 비판하고 능력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다음의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배움'에서 '놀이'가 분리되면서 모두 재미없어지게 된 것
2. '능력'과 '재능'이라는 개념이 의욕과 자신감을 빼앗은 것
3. 능력신앙과 능력주의가 쉽게 낙오자를 만드는 원인이 된 것
4. 불필요한 비관주의에 빠진 불행한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는 것
5. 마지막으로 대다수 사람의 일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는 것

- '혁신은 사전에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역사를 되돌아 보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기술 발명도 좋은 사례입니다. 그가 발명한 인쇄기 덕분에 독서라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와 동시에 많 은 사람이 자신이 원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안경이 발명되었습니다. 안경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렌즈 를 생산하거나 렌즈를 사용해 실험하는 사람이 늘었고, 그것 이 현미경의 발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신 의 몸이 아주 작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 었습니다.
즉,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현미경과 세포생물학을 만들 었습니다. 활판인쇄기술과 우리의 시야가 세포 수준까지 넓 어진 것이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왜일까?'라는 소박한 의문에서 흥미롭게 시작한 것이 뜻 밖에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탄생시킬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 는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이해하기 어려워도, 재미있고 편리 하면 조금씩 전 세계로 확산됩니다. 이것이 전체에 보급되면 사회가 변합니다. 사회가 변하면 그동안 문제로 여겨왔던 일 들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즉, 문제가 해결됩니다.
- 따라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려운 문제만 가득한 앞으 로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논리적으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 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라며 실 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이른바 논리적 사고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 는 점에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던지고 자유롭게 행동 하기를 권하기는커녕 '하면 안 된다'고 제한하는 경우가 많 습니다. 거기에 불만을 제기한 사람이 학교를 자퇴하거나 퇴학을 당한 후, 자신이 원하는 탐구 여행을 떠나 획기적인 발견과 발명을 한 사례가 많습니다.
요컨대 '어떠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하는 자세의 문제입니다.
세상을 변화시켜 후대에 조금이라도 나아진 형태로 바통 을 건네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저만의 탐구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주체가 된 학문은 매우 즐겁고, 설레고, 무척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 니다.
- 대답하지 마. 오히려 질문해. 본질적으로 계속 질문하고, 그 질문에 깊이를 더하는 행동을 하는 사이에 문제가 해결될 때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혁신이라고 부른다. 혁신을 일으키고 세상을 좋아지게 해 미래 세대에게 바통을 넘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배움을 이어간다.

- 작은 '질문'으로 시작해 '만들어' 보고 '알게' 된다, 동시에 '모르는 것'이 수없이 생기고 거기에서 또 '물음'이 생긴다. 이를 반복하는 사이에 무언가 '형태'가 탄생한다. 무언가를 해결하면 '혁신'이라 부르고, 전에 없던 인류에 새로운 지식 을 연다면 '발명'이라 하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예술'이 라 부른다.
이는 창조의 풍부한 버라이어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창조는 '칭찬'이 뒷받침되어 더욱 훌륭한 것으로 성장 합니다.

- 세간에서는 '평가'와 '사정'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사용합니다.
능력주의가 사회에 침투하면서 사람들은 돈과 시간 등 예 산에는 한계가 있으니 누구에게 얼마만큼 나눠줄지 실적 검 정과 실력 평가로 결정하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사회를 힘들게 합니다.
사정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기준으로 활동을 수치화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면 모두 같 은 일을 해야만 합니다. 돌발행동을 하면 곤란해집니다. 즉, 평가와 사정은 '남과 다른 일을 하지 마라'라는 '또래압력 peer pressure'을 강화시킵니다.
또래압력이 강한 사회는 살아가기가 무척 힘듭니다. 남들 과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비난을 받으면 자 책을 하므로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며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합니다. 
-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해 왔 듯이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아야 합니다. 칭찬을 받든, 욕을 먹든 무시하면 됩니다.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욕을 먹어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 습니다. 또래압력은 신경을 쓰면 쓸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에 주변에 압력을 가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평가는 신경 쓰지 말고 오히려 무시해야 합니다.

- 어떤 분야든 광대한 지식의 세계가 펼쳐지며, 배움에는 끝 이 없습니다. 전문가는 내용을 깊이 있게 알고, 무언가를 주 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 에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사이비 전 문가는 '무언가를 이야기하는데 이 이상은 필요 없다'며 지 식의 체계를 과소평가하고, '나는 뭐 거의 다 알고 있어'라며 자신을 과대평가합니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만 단정 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자신은 뛰어나다'며 스스로 를 과대평가하고, 잘 아는 사람일수록 '저는 잘 몰라요'라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이를 발견한 두 심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합니다.
- 진짜 전문가는 의견을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일 반인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라며 답답해하기 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결론 이 아닙니다. 그보다 '지금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알 고 있지 않은가)'입니다. 그걸 알면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인류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 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미개척 분 야에서 전문가와 아마추어는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가치판단은 전문 분야를 뛰어넘어 모든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하기에 전문가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 매 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수한 전문가의 훌륭한 점은 바로 그것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즉, 우리는 전문가에게 "지식의 미개척 분야가 어디에 있 는가?", "상식과 다른 견해는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전문가에게 묻고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생각의 범위가 좁혀 져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고, 자신들만으로는 생 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전문가와 우리의 이상적인 관계입니다.

- 사물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내가 하지 못한 생각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관점이 생기는 것은 '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똑똑한 사람이 한 말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다.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서는 맞았던 말이 다른 곳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서 온몸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 기브 앤 테이크와 같은 등가교환의 사고방식은 언뜻 보기에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은 세계를 굉장히 차갑게 한다.
그 세계관이 '자립'이라는 사고방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무연사회를 초래할 뿐이었다. 자립해서 자유를 손에 넣는다. 이런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은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되었다.

- 세상은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이 메시지 자체도 중요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학교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인간을 키운다' 를 사명으로 여긴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만 한다.
거기에 학교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힌트가 숨겨져 있다.

- 바꾼 마하트마 간디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향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자신을 바꿀 수 있으면 세상도 바뀐다. 자신의 근성을 바꾼 인간에게는 세상도 태도를 바꾼다. 이것이야말 로 가르침의 비법이다. 이보다 훌륭한 것은 없다. 행복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 프레이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과 대립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세상에서 일어 나는 일에 귀 기울이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세상에서 표면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의 껍질을 벗겨내기를 두려 워하지 말기. 사람과 만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대화 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대화를 통해 서로가 더욱 성 장하기. 자신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생각하거나 인간 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혹은 반대의 의미로 자신이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해방자가 될 수 있 다고 생각하지 말기. 역사 속에 있음을 느끼고 서로 연결되어 함께 싸우기. 그런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 프레이리는 읽고 쓰지 못하는 빈곤층에게 그들이 직접 느낄 수 있는 토론을 시작으로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한편, 그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도와 세상을 바꿨다.
그것은 사막에 물을 채워 숲을 만들 만큼의 엄청난 일이었다. 결국 그는 이론과 실천, 두 가지 측면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프레이리는 마지막까지 대화의 힘을 믿었다.
대화를 통해 자신을 바꾸면 상대가 바뀌고 사회가 바뀐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마법이라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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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요약금지

사회 2024. 3. 21. 07:21

- 물리적인 변화에만 치중한 현대화 작업은 많은 문제를 야기 했다. 독재자 박정희와 김현옥 서울시장(낡은 동네를 허물고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지어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었다)과 같은 20세기 국 가 건설자들의 감독 아래에서 서울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비교적 조용했던 도시에서 산업 도시로 빠르게 변모했다. "이 체 제에 대한 비판은 인건비 상승에 따른 서울의 제조업 쇠퇴와 맞 물려 있다”고 윤지희라는 말한다. "제조업 공장들은 인건비가 훨씬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서울은 산업 도시로서 성공의 정점에 도달할 때 이미 쇠퇴의 길을 걷는 중이었다." 산업화 이후 시대에 걸맞은 서울을 만들기 위해 정부는 많은 연구를 의뢰했다. 초창기인 2002년에 나온 연구 중 하나는 교차 하는 도로와 회색 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도시 공간 전 반"이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윤지희 라는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그 장소만의 매력적이고 독특한 이 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서울, 아니 한국은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며 사라 질 뻔한 기존의 전통을 보존하는 동시에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 발견 · 재도입 · 재창조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전통 한옥과 같은 옛 서울의 일부 흔적은 현재 주로 관광 명소나 부동산 투자 대 상으로만 남아 있다).
이는 2011년 취임 이후 DDP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과시적이고 낭비적이라고 비판했던 박원순 전 서울 시장의 인식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그는 무상 급식과 학교 텃밭 가꾸기, 보행 자전용거리, 기존 건축물의 철거가 아닌 재사용 등을 지지했다. 당시 서울은 멕시코시티에서 몬트리올, 브루클린에서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소규모 도시 개발 방식 을 활용했다. 빵집, 부티크, 독립 서점, 레코드 가게, 스페셜티 커 피로스터, 도시 정원 등 21세기 도시 거주자들이 즐길 수 있는 풍요로운 공간이 전통적이고 소박한 국수 가게와 거대한 시장 옆에 나란히 등장했다.
사실 서울은 이미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고 서울 시민들조차 글로벌 브랜드로서 서울의 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 넷플릭스, 무인양품과 같은 브랜드를 면밀히 분석하는 한국 간 행물인 <매거진 B>는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에 대한 특집호를 발 행한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들이 수없이 변화해온 브랜딩의 역 사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소프트 시티', '디자인 수도', '글 로벌 도시' 등 기존 모델에 기반한 정체성을 위에서 아래로 강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도시 속 마을이, 심지어 시 민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직접 찾을 수 있도록 필요한 여건과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21세기 서울은 정체성을 어디선가 찾아내기보다는 많은 이들이 함께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만약 서울 이 계속해서 영문브랜드를 사용해야 한다면 “함께 만드는 서울, 함께 누리는 서울"이라는 오래된 한글 슬로건을 번역해 사용하는건 어떨까?

- "법과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132쪽)
흥미로운 이 질문은 《82년생 김지영》의 핵심 주제 중 하나지 만 아주 깊이 있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좌절에 빠진 많은 한국 인은 문화, 법, 생물학 사이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기보다 손쉽고 간단한 해결책으로 한국을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어린 시절부 터 '익숙한 미국, 일본, 중국 등'이 아닌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 가고 싶다고 말해온 지영의 솔직한 언니 은영의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왜 그런 곳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은영은 "한국 사람이 적을 것 같아서"(73쪽)라고 답한다. 외형적으로나마 평등해 보이는 사회 에서 한국인들과 떨어져 억압과 기대에서 벗어난 자유를 누리 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한국인이 은영이 처음도 아니며, 아마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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