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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의 서

사회 2024. 3. 21. 07:22

- 평화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현실주의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홉스는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으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의 본질은 이기적이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홉스의 '세계는 경쟁의 축으로 돌아간다'라는 생각은 하나의 견해에 불과할 뿐이죠. 하지만 실증도 반증도 할 수 없기에 18세기경부터 많은 사람이 홉스의 견해를 받아들였 고, 이후 이 생각은 30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우리를 얽매 어 왔습니다.
이쯤에서 저는 강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현실 세계는 이미 홉스가 말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원래 인간은 자신만을 생 각하는 동물이다'라는 관점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현실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죠. 우리 마음속에 깃든 '생존 전쟁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강 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이 저주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원래 이기적인 인간은 내버려 두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그렇게 직감한 홉스 자신은 '공포와 쌍둥이'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공포와 함께 나를 낳았다'고 말했다.
그의 주문은 3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것 중 하나가 학교다. 그리고 그 학교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 "스스로 규율을 지키는 인간, 교도관이 없이도 명령을 따 르는 인간, 즉 '기계화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구조라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제러미 밴덤이 발명했지. 정말 완벽한 구조야."
그는 감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죄수를 감시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면서 가장 저렴하고 우 수한 교도소. 그게 바로 파놉티콘이지. 잘 들어, 학교도 마 찬가지야. 학교는 감시 · 상벌. 시험이라는 세 가지 메커니즘의 복합체야. 규율과 훈련으로 아이들을 질서에 끼워 맞추고 교묘하게 학생 스스로 복종하도록 만들지."
저는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자주성을 끌어낸다는 교육적 배려가 사실은 규율 과 훈련을 통해 스스로 복종하는 인간이 되게 하는 권력 메 커니즘의 일부일 뿐이야. 그렇게 형성한 권력으로 사람들의 손에서 교묘하게 자유를 빼앗아 가는 거지.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는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고 현 재 질서에 복종하는 존재이기도 해."

- 저는 일리치의 절제의 사회를 집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학교는 다음의 세 가지 목적이 결합한 장소입니다.
1. 제대로 먹고살 수 있는 노동자로 만들기 위한 기능 훈련
2. 사회의 일원으로서 규율을 지키는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한 훈육
3. 좋은 인격을 지닌 훌륭한 인간 만들기
- 우연히 시험 성적이 좋았다, 나빴다는 말이 어느 새 '성적이 우수한 사람은 나쁜 사람보다 훌륭하다'라는 상 하 관계를 만든 것입니다. 나쁜 성적을 받은 학생은 '학력이 낮다=머리가 나쁘다=낙오자' 취급을 당하고, 교칙을 어긴 학생에게 '규율을 지키지 않는다=태도가 나쁘다=반항적이 라는 불량학생 딱지를 붙이는 탓에 학생들은 학교를 어려워 하거나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학교가 세 가지 목적을 결합한 장소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생긴 이러한 생각이 사회 전체로 퍼진 결 과 '전문가가 아마추어보다 훌륭하다'는 상식이 굳어졌습니 다. 이반 일리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전문 가가 만든 제도에 완벽히 의존하게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 조교 제도는 당시 최첨단을 달리던 공장의 분업 시스템을 교육에 응용한 것으로 뛰어난 효율 덕분에 단번에 유럽 전역 으로 퍼졌습니다.
이후 영국의 교육자 사무엘 와일더스핀Samuel Wilderspin이 '갤 러리 방식'이라 불리는 새로운 교육법을 개발했습니다. 계단식 강의실에 수십 명의 학생이 앉아, 정면에 있는 교사에게 수업을 받는 방식입니다. 이로 인해 교사는 모든 학생을 볼 수 있고 학생도 다른 친구들의 행동을 보며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1862년 영국 정부는 이 두 개의 시스템을 결합했 습니다. 학생의 출석 일수와 학력에 따라 국가가 학교에 보 조금을 주는 제도가 생기자, 학생을 고르게 구성하는 편이 교육에 효율적이고 보조금을 받기도 쉬워 같은 나이의 아이 들로 학급을 꾸리는 '학년 제도grade system'가 탄생했습니다. 그 렇게 같은 학년의 아이들이 같은 교육과정을 함께 배우는 형 식이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21세기가 된 지금도 같은 형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 어떤 분야든 유일한 방법과 순서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보다 '인류의 지혜는 수많은 질문과 결론이 얽히고설킨 거대한 그물코 같다'는 표 현이 정확합니다.
어딘가로 도달하는 길은 무한히 존재합니다. 즉, 무엇이 기초이고 무엇이 응용인가의 경계는 없습니다. 요약하면 기초에서 응용 순서로 학습시키는 교육은 애초에 인류의 지혜 와 맞지 않습니다.
- '기초'라고 부르는 것은 기초라는 이유에서 불필요한 것들 은 빼고 핵심만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루하 고 따분한 훈련이 되기 쉽습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그 내용을 배우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초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재미없는 내용을 여러 번 반복시 키다 보니 겨우 관심이 생긴 사람까지 싫어하게 하는 문제를 일으킵니다.
다만 '기초연습'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본인이 기 초라고 여기는 부분을 습득하기 위한 연습'을 모두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기초 연습은 동기부여가 높은 중상급자가 기능을 철저하게 익히기 위해 자신이 기초라고 여기는 부분을 철저하게 공부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기초'라는 사고방식은 배움을 '형태'에 끼워 넣으면서 재미를 없앴고 결국에는 배움이 싫어지게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초가 중요하다는 그럴싸한 말에 생각을 멈춘다. 기초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배움은 더욱 자유로워야 하고 더욱 재밌어야 한다.

- 절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 그것이 가장 편하다고 지어낸 말을 믿어서입 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이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진실인지를 판단하는 일조차 귀찮아 단순히 지금까지 그렇 게 해왔으니까라는 습관과 규칙에 몸을 맡겨서 그렇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따르는 것은 사고를 정지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강하게 자각해야 합니다. 또한 '해야 하는' 일과 동시에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사회에 많습니다. 실패가 빤히 보이는 일을 하려고 하면 선생 과 부모, 선배, 친구들이 "안 돼, 하지 마, 실패할 게 뻔해!", "아니야, 이렇게 하는 게 좋아!"처럼 충고하거나 나무라며 자신들의 의견을 밀어붙입니다.
그들은 실패하면 안 되니까, 그 사람을 위해 조언할 뿐 나 쁜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실패를 사전에 막았으니, 고마워해 주길 바라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쓸 데없는 참견입니다. 더 나아가 방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이 실패에서 배울 권리를 빼앗았으니까요.
- 세상에서 말하는 '규칙'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강제하는 것이자, 사람들로부터 중요한 권리를 빼앗는 구조입니다.
원래 규칙이란 선인들이 맛본 다양한 실패를 바탕으로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이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 유비무환의 마음 으로 알려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말은 얼핏 들으면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사고를 정지시키고 인간의 성 장에서 중요한 실패를 경험하지 못하게 하며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두렵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 이와 관련해서 실패할 권리를 완벽하게 존중하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선교의 수행입니다. 선의 수행은 기간 중 전원 이 실패하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밥을 지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장작을 사용해 내일부터 밥을 지으 라며 쌀 다섯 되(약 8킬로그램)를 줍니다. 하지만 그렇게 밥을 지어본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반드시 실패하고 꾸중을 듣게 됩니다.
밥 짓기뿐만 아니라 지도와 가르침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수행을 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원이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렇게 설계된 수행에 대해 선종의 승려 마쓰야마 다이고松山는 다음과 같이 말 했습니다.
이것은 (정답을 알려주면 맹목적으로 그것만 하게 되 기 때문입니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되죠. 무조건 실패하게 만들면, 거꾸로 말해 시행착오를 겪게 하면 제아무리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성공할 수 있습니 다. 모두 실패하게 해, 모두 성공하게 합니다. 그래서 선은 천 년을 이어오고 있는 거죠.
규칙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실패에서 배우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실제로 천 년 전부터 증명되었습니다.

- 사에키는 《인지과학 혁명 「」探究》 (2004)에서 "배움이 재미없어진 배경에는 놀지 못하게 삼중으로 둘 러싼 구조가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첫 번째는 사회에서 '놀이'와 '일'을 구별해서입니다. 사회 의 공업화가 진행되자 사람들이 노동자로 고용되고, 손님과 거래처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것만이 일이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들 먹고살기에 급급해 놀 여력조차 없어진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학교에서 '놀이'와 '배움'을 구별해서입니다. 약 100년 전부터 학교는 전문교육 시설로 발달했으며, 그 목적 은 아이들의 공부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루한 공부만 하다 보면 금세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중간에 쉬는 시간을 넣고, 쉬는 시간만큼은 놀아도 된다는 규칙이 만들어지게 되 었지요.
- 일본의 근세사학자 시바타준의 <일본유아사 日本幼兒史》(2013)에 따르면 고대부터 에도시대 중기에 이르기 까지 사람들은 아이를 보호하거나 교육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길가에 아이가 버려져 울고 있어도 특별히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많은 아이 가 죽었다고요.
하지만 근대에 들어 아이의 교육과 복지에 관심이 높아지 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7세 미만의 아이는 '신'이며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는 '일곱 전까지는 신의 영역 55'이라는 말이 정착되었습니다. 일본인의 아이에 대한 특 별한 애정도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이죠.
어쨌든 아이와 어른을 구별하고, 놀이와 배움과 일을 구별 해 법률 등의 제도로 고정하면서 우리 사회가 메말라 갔습니 다. 이 사실을 꼭 알아야 합니다.

- 현대로 이어지는 고유의 교육 사상은 로크가 만들었습니 다. 로크는 인간을 새로운 타불라 라사라고 생각하며 "아이 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배우는 습관을 만들어줄 것, 그것이 교육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 다. 이 생각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면서 아이를 특별한 존 재'로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루소는 “자연인으로 태어난 아이를 문명사회 속 에서 삐뚤어지지 않게 키우는 것이 교육이다”라고 말했습니 다. 그 결과 아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이론화했고, 아이와 어른을 완전히 구별했습니다.
이후 로크와 루소의 영향을 받은 오언은 '어릴 때부터 좋 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좋은 인격이 형성된다'는 생각을 바 탕으로 세계 최초로 유아학교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이어지 고 있는 학교의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보호한 다는 명분 아래 아이들을 학교에 가두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 했습니다.
확실히 그들은 엄청난 혁신가였습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거지?'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혁신적인 생각이 안타깝게도 아이를 '어린 애 취급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순수하고 사랑 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훌륭한 어른으로 키우 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말은 '아이는 미숙하고 여리기 때문에 어른이 교육하고 이끌어줄 필요가 있다'고 얕 보는 것과 같습니다. 즉, 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시각이 매우 거만했던 것이죠.
- 어린애 취급을 한 결과 '아동의 노동은 없어야 한다'라는 대의명분 아래, 아이는 어른이 될 때까지 사회와 관련된 일 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학교 운영 에 참여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권리가 있나요?", "아이에게 도시를 조성하는 행정에 관여할 권리가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네”라고 딱 잘라 대답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 산업사회는 사람들에게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를 요구하며 무엇이든 세분 화했습니다. 그러한 성질이 선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일이 분업화되면서 사람들은 노동자로서 전문적인 지식 과 기능을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에 생산성과 효율을 따지게 되었고, 돈을 벌기 위해 재미없는 일만 하며 미 래에 불안을 느낍니다. 이 냉엄한 실력주의가 학교에 번지면 서 서서히 '배움'에서 '놀이'를 지워버린 것입니다.
로크와 루소, 오언이 그 시대에 떠올린 생각은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이고 의미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늘어 나고 있습니다. 결코 그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 원인은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깊이 이해하지 않고 비판하려는 자 세도 갖지 않으면서 그저 사상만 따라가려는 우리의 사고정지 에 있습니다.

- 저는 능력신앙이 어떻게 태어나,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찾 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직접적인 기원을 알아냈습니다.
바로 1905년 프랑스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 박사와 테오도르 시몬Théodore Simon 박사가 개발한 '지능지수 IQ=Intelligence Quotient' 테스트입니다. 이 테스트에서 '지능'이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이 테스트는 지적장애 아동을 분별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심리학자 로 버트 여키스Robert Mearns Yerkes 박사가 개발한 '아미 알파/베타 Army Alpha/Beta'를 175만 명의 미군 병사 배속에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의 우생학자 칼 브리검Carl C. Brigham 박사가 만든 대학입학시험용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 등에 응용되면서 기업 과 학교 등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통계적 숫자일 뿐인 능력을 사람마다 타고난 특수 한 것', '노력할수록 더욱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능력이 실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이를 섬기는 능력신앙이 탄생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믿음이 자라 났습니다.
능력이 실체로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끝나지 않고 '신앙’으로 섬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산업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 산업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분업'입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업무를 세분화하고 철저한 전문성을 추구합니다. 실제 로 공업 생산은 분업과 기계화 덕분에 눈부신 성장을 이뤘습 니다. 그로 인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전문적인 지식과 지능을 높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 람은 높은 급여를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낮은 급여를 받 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능력이 만능 통화utility가 되면서 사람들은 능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자가 떵떵거리며 살듯 '능력자'가 되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죠.

- 일본의 사회심리학자 고자카이 도시아키小坂晶를 만났습니 다. 그의 저서 <책임이라는 허구任5虛構》(2008)를 읽고 그의 강연을 들으며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뚫렸습니다. 그 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행 학교 교육은 격차의 원인이 우연히 결정됐음에도 평 등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데다 순위로 노력의 결과(책임)를 떠넘깁니다. 능력 격차는 대개 우연으로 결정되지만, 이와 달리 학교는 자기책임론적 격차 정당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즉, 학교는 '모든 건 자기 책임'이라는 격차사회를 만드는 데 한몫했습니다. 로크와 루소에서 시작한 '모든 아이에게 자유 롭고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드높은 이념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혹한 책임을 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격차와 불평등이 생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사람들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몰리면서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탐 구할 기회를 전부 빼앗기게 되는 결과에 이른 것입니다.
- 이처럼 재능은 능력과 마찬가지로 편견에 의해 내려진 외부인의 얄팍한 평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재능이 능력보다 질이 나쁜 이유는 여기에 결정론적 생각이 숨어 있기 때문입 니다.
결정론determinism이란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것 이 전부 자연법칙과 운명 등 무언가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 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능력신앙은 '노력을 거듭하면 반드시 능력이 높아진다'라 는 신념을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결정론보다 낫습니다. 하지만, 재능은 '노력해도 재능이 없으면 능력은 높아지지 않는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 라며 포기하게 하므로 매우 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평가'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성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장 가능성을 낮춥니다. 평가가 인간의 배움을 어렵 게 만들고 그것이 재능이라는 미신을 낳아 사람들로부터 자 신감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능력이 낮은 사람을 '게으 름뱅이', '낙오자' 취급하며 불행에 빠뜨렸습니다. 그래서 보 통 평가는 '본인에게 의욕과 격려를 북돋아 줄 정도가 적당 하며 그 이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합니다.
- '테스트'의 어원은 연금술사가 광석의 성분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했던 흙 항아리를 나타내는 라틴어 'testum'에 있습니 다. 이 말이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테스트를 의미하게 되 었습니다. 단어의 유래만 보더라도 말 그대로 '인간은 공업제품과 같다'라는 사고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테스트는 지금까지 크게 유행하고 있으며 이 순간에도 다 양한 곳에서 까다로운 테스트가 생겨나고 있지만 저는 이것 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계속 참아가며 한들, 테스트 성적이 나쁘다는 말을 들으며 노력한다 한들,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더 능력이 뛰어 난 시대에 억지로 외운 내용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재미있어서 질릴 틈이 없는' 인생이 훨씬 더 즐겁 습니다. 남보다 뒤처진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꾸준히 즐기는 인생이 더욱 풍요로우니까요. 무언가를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결코 '우열'이 아닌 '개성' 이므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 니다.
- 하나의 기준으로 결과를 평가하는 대신 발상 자체나 창조 과정 전체를 응원하는 칭찬이 있으면 좋다. 이러한 자세는 성과에 대한 존경은 물론이고 행동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낳는다. 칭찬이 격려가 되고, 새로운 도전이 더욱 큰 칭찬을 낳는다. 그 끝에 다양한 장점을 인정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배움의 장소는 평가로 자신감을 빼앗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다양한 칭찬으로 용기를 채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 스스로 '우수한 기계'가 되려는 인간은 머지않아 '능력주의의 최종병기'인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만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하기보다 인공지능을 인간이 기계로 일하는 것에서 해방시켜 준 '능력주의의 해방자'라고 생각하자. 이것이 내가 인공지능을 보는 견해다. 그리고 이는 학교에서 배우는 방식에도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 제가 능력신앙과 능력주의를 비판하고 능력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다음의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배움'에서 '놀이'가 분리되면서 모두 재미없어지게 된 것
2. '능력'과 '재능'이라는 개념이 의욕과 자신감을 빼앗은 것
3. 능력신앙과 능력주의가 쉽게 낙오자를 만드는 원인이 된 것
4. 불필요한 비관주의에 빠진 불행한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는 것
5. 마지막으로 대다수 사람의 일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는 것

- '혁신은 사전에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역사를 되돌아 보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기술 발명도 좋은 사례입니다. 그가 발명한 인쇄기 덕분에 독서라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와 동시에 많 은 사람이 자신이 원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안경이 발명되었습니다. 안경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렌즈 를 생산하거나 렌즈를 사용해 실험하는 사람이 늘었고, 그것 이 현미경의 발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신 의 몸이 아주 작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 었습니다.
즉,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현미경과 세포생물학을 만들 었습니다. 활판인쇄기술과 우리의 시야가 세포 수준까지 넓 어진 것이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왜일까?'라는 소박한 의문에서 흥미롭게 시작한 것이 뜻 밖에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탄생시킬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 는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이해하기 어려워도, 재미있고 편리 하면 조금씩 전 세계로 확산됩니다. 이것이 전체에 보급되면 사회가 변합니다. 사회가 변하면 그동안 문제로 여겨왔던 일 들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즉, 문제가 해결됩니다.
- 따라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려운 문제만 가득한 앞으 로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논리적으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 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라며 실 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이른바 논리적 사고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 는 점에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던지고 자유롭게 행동 하기를 권하기는커녕 '하면 안 된다'고 제한하는 경우가 많 습니다. 거기에 불만을 제기한 사람이 학교를 자퇴하거나 퇴학을 당한 후, 자신이 원하는 탐구 여행을 떠나 획기적인 발견과 발명을 한 사례가 많습니다.
요컨대 '어떠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하는 자세의 문제입니다.
세상을 변화시켜 후대에 조금이라도 나아진 형태로 바통 을 건네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저만의 탐구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주체가 된 학문은 매우 즐겁고, 설레고, 무척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 니다.
- 대답하지 마. 오히려 질문해. 본질적으로 계속 질문하고, 그 질문에 깊이를 더하는 행동을 하는 사이에 문제가 해결될 때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혁신이라고 부른다. 혁신을 일으키고 세상을 좋아지게 해 미래 세대에게 바통을 넘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배움을 이어간다.

- 작은 '질문'으로 시작해 '만들어' 보고 '알게' 된다, 동시에 '모르는 것'이 수없이 생기고 거기에서 또 '물음'이 생긴다. 이를 반복하는 사이에 무언가 '형태'가 탄생한다. 무언가를 해결하면 '혁신'이라 부르고, 전에 없던 인류에 새로운 지식 을 연다면 '발명'이라 하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예술'이 라 부른다.
이는 창조의 풍부한 버라이어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창조는 '칭찬'이 뒷받침되어 더욱 훌륭한 것으로 성장 합니다.

- 세간에서는 '평가'와 '사정'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사용합니다.
능력주의가 사회에 침투하면서 사람들은 돈과 시간 등 예 산에는 한계가 있으니 누구에게 얼마만큼 나눠줄지 실적 검 정과 실력 평가로 결정하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사회를 힘들게 합니다.
사정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기준으로 활동을 수치화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면 모두 같 은 일을 해야만 합니다. 돌발행동을 하면 곤란해집니다. 즉, 평가와 사정은 '남과 다른 일을 하지 마라'라는 '또래압력 peer pressure'을 강화시킵니다.
또래압력이 강한 사회는 살아가기가 무척 힘듭니다. 남들 과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비난을 받으면 자 책을 하므로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며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합니다. 
-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해 왔 듯이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아야 합니다. 칭찬을 받든, 욕을 먹든 무시하면 됩니다.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욕을 먹어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 습니다. 또래압력은 신경을 쓰면 쓸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에 주변에 압력을 가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평가는 신경 쓰지 말고 오히려 무시해야 합니다.

- 어떤 분야든 광대한 지식의 세계가 펼쳐지며, 배움에는 끝 이 없습니다. 전문가는 내용을 깊이 있게 알고, 무언가를 주 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 에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사이비 전 문가는 '무언가를 이야기하는데 이 이상은 필요 없다'며 지 식의 체계를 과소평가하고, '나는 뭐 거의 다 알고 있어'라며 자신을 과대평가합니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만 단정 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자신은 뛰어나다'며 스스로 를 과대평가하고, 잘 아는 사람일수록 '저는 잘 몰라요'라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이를 발견한 두 심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합니다.
- 진짜 전문가는 의견을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일 반인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라며 답답해하기 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결론 이 아닙니다. 그보다 '지금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알 고 있지 않은가)'입니다. 그걸 알면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인류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 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미개척 분 야에서 전문가와 아마추어는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가치판단은 전문 분야를 뛰어넘어 모든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하기에 전문가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 매 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수한 전문가의 훌륭한 점은 바로 그것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즉, 우리는 전문가에게 "지식의 미개척 분야가 어디에 있 는가?", "상식과 다른 견해는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전문가에게 묻고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생각의 범위가 좁혀 져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고, 자신들만으로는 생 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전문가와 우리의 이상적인 관계입니다.

- 사물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내가 하지 못한 생각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관점이 생기는 것은 '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똑똑한 사람이 한 말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다.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서는 맞았던 말이 다른 곳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서 온몸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 기브 앤 테이크와 같은 등가교환의 사고방식은 언뜻 보기에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은 세계를 굉장히 차갑게 한다.
그 세계관이 '자립'이라는 사고방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무연사회를 초래할 뿐이었다. 자립해서 자유를 손에 넣는다. 이런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은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되었다.

- 세상은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이 메시지 자체도 중요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학교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인간을 키운다' 를 사명으로 여긴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만 한다.
거기에 학교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힌트가 숨겨져 있다.

- 바꾼 마하트마 간디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향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자신을 바꿀 수 있으면 세상도 바뀐다. 자신의 근성을 바꾼 인간에게는 세상도 태도를 바꾼다. 이것이야말 로 가르침의 비법이다. 이보다 훌륭한 것은 없다. 행복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 프레이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과 대립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세상에서 일어 나는 일에 귀 기울이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세상에서 표면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의 껍질을 벗겨내기를 두려 워하지 말기. 사람과 만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대화 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대화를 통해 서로가 더욱 성 장하기. 자신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생각하거나 인간 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혹은 반대의 의미로 자신이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해방자가 될 수 있 다고 생각하지 말기. 역사 속에 있음을 느끼고 서로 연결되어 함께 싸우기. 그런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 프레이리는 읽고 쓰지 못하는 빈곤층에게 그들이 직접 느낄 수 있는 토론을 시작으로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한편, 그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도와 세상을 바꿨다.
그것은 사막에 물을 채워 숲을 만들 만큼의 엄청난 일이었다. 결국 그는 이론과 실천, 두 가지 측면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프레이리는 마지막까지 대화의 힘을 믿었다.
대화를 통해 자신을 바꾸면 상대가 바뀌고 사회가 바뀐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마법이라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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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요약금지

사회 2024. 3. 21. 07:21

- 물리적인 변화에만 치중한 현대화 작업은 많은 문제를 야기 했다. 독재자 박정희와 김현옥 서울시장(낡은 동네를 허물고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지어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었다)과 같은 20세기 국 가 건설자들의 감독 아래에서 서울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비교적 조용했던 도시에서 산업 도시로 빠르게 변모했다. "이 체 제에 대한 비판은 인건비 상승에 따른 서울의 제조업 쇠퇴와 맞 물려 있다”고 윤지희라는 말한다. "제조업 공장들은 인건비가 훨씬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서울은 산업 도시로서 성공의 정점에 도달할 때 이미 쇠퇴의 길을 걷는 중이었다." 산업화 이후 시대에 걸맞은 서울을 만들기 위해 정부는 많은 연구를 의뢰했다. 초창기인 2002년에 나온 연구 중 하나는 교차 하는 도로와 회색 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도시 공간 전 반"이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윤지희 라는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그 장소만의 매력적이고 독특한 이 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서울, 아니 한국은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며 사라 질 뻔한 기존의 전통을 보존하는 동시에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 발견 · 재도입 · 재창조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전통 한옥과 같은 옛 서울의 일부 흔적은 현재 주로 관광 명소나 부동산 투자 대 상으로만 남아 있다).
이는 2011년 취임 이후 DDP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과시적이고 낭비적이라고 비판했던 박원순 전 서울 시장의 인식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그는 무상 급식과 학교 텃밭 가꾸기, 보행 자전용거리, 기존 건축물의 철거가 아닌 재사용 등을 지지했다. 당시 서울은 멕시코시티에서 몬트리올, 브루클린에서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소규모 도시 개발 방식 을 활용했다. 빵집, 부티크, 독립 서점, 레코드 가게, 스페셜티 커 피로스터, 도시 정원 등 21세기 도시 거주자들이 즐길 수 있는 풍요로운 공간이 전통적이고 소박한 국수 가게와 거대한 시장 옆에 나란히 등장했다.
사실 서울은 이미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고 서울 시민들조차 글로벌 브랜드로서 서울의 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 넷플릭스, 무인양품과 같은 브랜드를 면밀히 분석하는 한국 간 행물인 <매거진 B>는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에 대한 특집호를 발 행한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들이 수없이 변화해온 브랜딩의 역 사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소프트 시티', '디자인 수도', '글 로벌 도시' 등 기존 모델에 기반한 정체성을 위에서 아래로 강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도시 속 마을이, 심지어 시 민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직접 찾을 수 있도록 필요한 여건과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21세기 서울은 정체성을 어디선가 찾아내기보다는 많은 이들이 함께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만약 서울 이 계속해서 영문브랜드를 사용해야 한다면 “함께 만드는 서울, 함께 누리는 서울"이라는 오래된 한글 슬로건을 번역해 사용하는건 어떨까?

- "법과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132쪽)
흥미로운 이 질문은 《82년생 김지영》의 핵심 주제 중 하나지 만 아주 깊이 있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좌절에 빠진 많은 한국 인은 문화, 법, 생물학 사이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기보다 손쉽고 간단한 해결책으로 한국을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어린 시절부 터 '익숙한 미국, 일본, 중국 등'이 아닌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 가고 싶다고 말해온 지영의 솔직한 언니 은영의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왜 그런 곳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은영은 "한국 사람이 적을 것 같아서"(73쪽)라고 답한다. 외형적으로나마 평등해 보이는 사회 에서 한국인들과 떨어져 억압과 기대에서 벗어난 자유를 누리 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한국인이 은영이 처음도 아니며, 아마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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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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