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2'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4.03.12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7
  2. 2024.03.12 필링 굿 1
  3. 2024.03.12 20240312

-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큰 그림으로 삶을 이해하는 통찰을 회복하고 당신의 힘으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다. 전적 으로 매달리거나, 아니면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선택지도 있다. 바로 완벽주의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짜증스럽 게 굴 땐 거리를 두고, 삶을 풍요롭게 할 땐 즐겨라. 어느 한쪽으 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찾고 완벽주의가 삶에 어느 정도의 영 향력을 행사할지 결정해라. 이것은 긴 여정이다. 어쩌면 멀리 돌 아가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의미 있는 방 향으로 변화를 이루었다면, 그것은 분명한 발전이다.
- 오직 완벽만을 추구하는 전략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스트레스 : 스트레스는 근육 긴장, 두통, 불안, 짜증, 이상 식욕(끼니를 거르거나 폭식하는 것 등)으로 표출된다.
*걱정 : 걱정이 의식을 장악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끊이질 않는다.
*불안 : 불안이 하루 종일, 잠자리에 들 때까지 쫓아와 한밤중에 깨어 있게 만든다.
- 지금까지 이 전략을 고수했다는 것은 게임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고통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은연중에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반면 완벽주의와 맞서 싸우다가 탈진한 나 머지 경기장에 드러누워 패배를 인정할 수도 있다. 대학에서 쉬 운 전공과목만 선택하고, 승진시험을 미루고, 여행가방의 짐을 풀어 정리하는 대신 똑같은 드라마를 세 번씩 보고, 시한이 닥칠 때까지 일을 미룬다. 완벽주의가 당신의 행동에 그 어떤 트집도 잡을 수 없도록 최소한의 노력을 하며 최소한의 행동만 취하는 것이다. 이제 당신의 전략은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한 것도 아니 니까" 혹은 "어차피 완벽할 수도 없는데 뭐 하러 힘을 빼?"가 된다.

- *1년 전보다 삶에 더 만족하는가?
*삶이 원하는 방식대로 흘러가는가?
*불안, 스트레스, 걱정에 지배되는 삶은 추구할 가치가 있는가?
*만약 이 게임이 삶을 통제하도록 방치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시간을 갖고 답변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 답변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완벽주의를 치료하고자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결코 두려움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둔다. 완벽주의 게임을 하면서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면 당연 히 하던 대로 계속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삶이 지금 이대로 좋은지 솔직해지기 바란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웃고 있는지를 묻는 게 아 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거나 시련에 부딪쳤을 때조차도 가슴이 뿌듯하고 영혼이 충만하다고 느끼는지를 묻는 것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삶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릴 생각인가? 또 지금까지 얼마나 오래 기 다렸는가?
우리가 상담했던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추측해 보면 그 게임이 지속될수록 오히려 일에 뒤처져서 아예 포기하 게 되거나, 어느 순간 삶을 되돌아보니 대체로 불행했음을 깨닫 거나, 항상 최적의 조건을 갖추려 늘 무언가를 계획하느라 막상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하거나, 동료들보다 몇 배 더 일하다 탈진 하게 되거나, 의미 있는 일보다는 그저 쉽고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선택하거나,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건설적인 인간관계마저 일부러 파괴하게 된다고 한다.

- 완벽이라는 것은 좋아야 한다고 주입된 하나의 신기루일 뿐이며, 당신은 자꾸만 그것에 속아 결코 이길 수 없는 게임에 휘말리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 완벽주의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와 '부적응적' 완벽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자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유형을 말한다. 그들 의 성취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행복, 삶의 만족, 성실성과 같은 긍 정적인 결과물과 연결되어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자들은 고도로 생산적이면서도 탈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삶의 방식을 좋 아하고, 이 방식은 그들에게 자연스럽다.
반면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자기비판,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에 대한 집요한 추구,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의 고통, 도 달했을 때의 불만족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부적응적 완벽주 의에 우울, 강박장애, 섭식장애, 불안장애 같은 심리상태가 수반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외에도 일상적 스트레스와 부 정적인 기분과도 연관성을 보인다. 이러한 연관성은 어느 문화 권에서나 나타나며 부적응적 완벽주의가 문화를 초월하여 나타 나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모순적이게도 달성하고자 하는 바로 그 목표를 훼손한다. 성공일 수도 있고, 행 복일 수도 있으며, 생산성일 수도 있는 목표 말이다.
- 완벽주의적 지연을 유발하는 또 다른 원칙은 일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기 전에는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 역시 실제로 부딪쳐보지 않으면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방법 또한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답보 상태 로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무 엇이 제대로 된 선택인지 모르겠다는 혼란으로 눈앞의 상황들이 위압적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인지적, 정서적 걸림돌 때문에 시 한이 정해지지 않은 일을 몇 년씩 미루기도 한다. 벽지를 바르는 일일 수도 있고, 창고에 있는 고장 난 자전거를 수리하는 일일 수 도 있고, 새로 이사한 도시에서 새 주치의를 찾는 일일 수도 있다.

- 누군가에게 "걱정 그만해”라고 말하는 것은 "샤워를 너무 오래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건 거의 비를 멈추는 것에 가깝다. 걱정은 완전히 당신의 통제권 안에 있 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당신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생각이라는 것 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생각들은 제멋대로 왔다 가 제멋대로 사라진다. "난 문제가 있어"라든가 "난 절대 잘할 수 없을 거야" 같은 생각들 말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아무리 많은 칭찬을 들어도 부정적인 생각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온갖 여행 블로그를 뒤지고, 웹 페이지를 검색하고, 배우자와 열 띤 토론을 벌인 뒤에도 여전히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인지 몰라 다가오는 휴가 장소를 결정하지 못한다. 좀처럼 떼어낼 수 없는 이 끈적거리는 생각들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떼어내려 해봐 야 소용없는 일일뿐더러 오히려 더 들러붙는다. 그런데도 계속 떼어내려 애쓴다.
당신이 이처럼 반응하는 이유는 그 생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대체로 생존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들이니 까. "빨간불이니 멈춰", "낭떠러지 가까이에 가지 마”, “채소를 좀 더 많이 먹어야지" 같은 생각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머릿 속의 생각들을 언제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원칙과 명령에 따라 삶을 설계하는 것에 익 숙해졌다면 그 생각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외식을 할 때마다 레스토랑 예절을 새로 배우 진 않는다. 그저 이미 알고 있는 레스토랑의 원칙을 따를 뿐이다. 물론 레스토랑 종업원들 앞에서 거들먹거리거나 팁을 박하게 줄 것을 요구하는 특이한 레스토랑에 갈 수도 있겠지만, 경험적으 로 터득한 것들을 활용하되 0.1퍼센트 확률로 틀리는 편이 매번 경험치가 틀릴 희박한 확률을 힘들여 분석하는 것보다 효율적이 기 때문이다.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대체로 도움이 되는 만 큼 역으로 완벽주의에 의해 그 점이 악용될 수도 있다.

- 인간은 본래 일관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논리로 원칙을 강화하는 방식이 통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이유 를 갖고 싶어 한다. 논리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싶어 하고 모순 없 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당신이 이야기의 공백을 메우려 할 때마 다(“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행동의 근거를 대려 할 때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뭐냐면..."), 혹은 당신이 따르는 원칙 들이 왜 합리적인지 설명할 때마다 "절대 실수를 해선 안 되는 이유 가 뭐냐면...”) 당신은 아이들이 하는 사이먼 가라사대 게임처럼 '완벽주의 가라사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명령을 내리 는 주체가 완벽주의인 것만 다르다. 완벽주의 가라사대 게임에 서 모든 것은 반드시 이치에 맞아야 하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원칙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건지 궁금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원칙들과 논리들이 정확히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에 대 한 대답은 명쾌하지 않다. 

- 논리의 한계
완벽주의 가라사대 게임의 실체가 드러나면 당신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원칙과 이유에 의존하고 있는지에 따라 삶에 일종의 진공상태가 발생한다. 갑자기 당신을 이끌어주던 동력이 사라진다. "성공하고 싶어서" 혹은 "일을 망치기 싫어서" 해왔던 일들을 중단한다면 이제 무엇에 의지해 다음 행동을 결정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주입했던 이야기들은 해체되고(어떤 실수도 용 납되지 않는다,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야 안 하는 게 낫다, 성공이 아닌 것 은 다 실패다) 방향을 잃는다.
당연히 우리 마음은 절박한 심정으로 일관성을 복원하 려 한다. 근사하고 완벽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퍼즐 조각들을 재배열하려 애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납득할 수 있는 설 명을 좋아하고 또 갈구한다. 논리를 동원하기 좋아하고, 문제해 결 능력을 발휘하기 좋아한다. 터치스크린, 우주여행, 인공지능, 스마트 가전제품 같은 것들을 만들어낸 바로 그 능력으로 일관성 없는 이야기를 수정하고 싶어 한다. 넷플릭스의 '인트로 건너뛰기' 버튼을 만든 것이 인간의 논리적 능력이라면 논리로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논리에는 한계가 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처럼 보편적인 법칙이라고 해도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 있다. 중 력의 경우 양자영역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논리적인 문제해결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의 영역에서 적용되지 않는다.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분홍색 거북이'를 생각하지 마라. 절대로 분 홍색 거북이를 떠올리지 마라. 떠올리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끊 임없이 평가하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해보아라. 어머니의 생일을 잊어도 속상해하지 말고,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자책하지도 마라. 만약 논리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추울 때 난방장치를 켜거나 배고플 때 음식을 먹는 것처럼 하나 도 힘들이지 않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 깝게도 당신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어도 생각과 느낌에서 벗어 날 방법은 없다.
- 논리 혹은 일관성의 대안은 바로 '기능'이다. 그 생각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집중하고 그 점을 바탕으로 생각에 귀를 기울일지 결정하는 것이다. 생각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그것이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라. 모든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실용성보다 정확성을 반사적으로 우선시하는 경향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도 움이 되는 생각은 야유하는 팬들이 아닌 치어리더와 비슷하다. 그들은 당신이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도록 돕는다. 프레젠테 이션을 하기 전에 "난 잘할 거야”라고 혼자 되된다면 그 말이 진 실인지는 몰라도 도움은 될 것이다. 진실이어도 도움이 되지 않 을 수도 있고("사람들이 내 셔츠의 땀자국을 다 보겠지"), 도움이 된다 고 해서 항상 진실인 것은 아니다("아무도 내 셔츠의 땀자국을 보고 있지 않아"). 아무 조건 없이 오직 당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생각들 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오직 옳은 것에만 관심 있는 생각들에 귀 를 기울이겠는가? 크게 보았을 때 옳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 이런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면 생각들을 호의적인 낯선 사람이라고 상상해보아라. 당신이 중요한 약속에 늦었는데 열차가 고장이 나 멈춘 상황이다. 낯선 사람이 당신에게 "큰일 났네요. 지난 2주간 약속에 늦은 게 벌써 세 번째잖아요"라 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실이냐고? 아마 진실일 것이다. 도움이 되 냐고?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낯선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 들인다면 당신은 정지한 열차 안에서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하 지만 낯선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저런, 하필 이런 상황에서 사고가 나서 속상하시겠어요. 안 그래도 그동안 스트레 스 받는 일들이 많았는데 말이에요." 이 말이 더 도움이 될 것이 다. 우리의 이성이 항상 침착하고 안정을 주는 타당한 말만 한다 면 참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은 일이 틀어졌을 때 문제를 해결 해서 당신의 생명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 그것도 최대한 빨 리. 그것이 바로 생각들이 당신을 압박하고 독촉하는 것처럼 느 껴지는 이유이고, 본능적으로 그 생각들에 끌렸던 이유이다.

- 완벽주의적 생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과 같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무 의미 없는 논쟁에 휘말려 있다. 그 논쟁에 당신의 에너 지를 쏟아붓는 게 맞는지부터 생각해보아라. 언어적 미끼를 물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는 있다. '기후변화', '과잉진압', '백신 반 대운동', '보편적 의료보장', '실패자', '완벽', 그리고 '성공'. 그 미끼 를 물지 마라. 미끼 너머 당신의 목표와 가치를 보아라. 주어진 시 간과 에너지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당신의 정신적, 감정적 자원 을 논쟁보다 더 좋은 곳에 쓰고 싶다면 다른 일을 하라.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방의 의견을 인정한 다음 대화에서 빠져나 와라. 당신의 생각들에게도 똑같이 하라. 인정해주고("아, 네가 소 리를 내고 있는 건 알겠어")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가치 있는 일에 쓰도록 주의를 돌려라.
- 생각들을 고려해보려면 먼저 생각들이 시키 는 대로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생각들은 당신의 삶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조언하려 드는 숙모와 같다. 숙모의 조 언은 대체로 도움이 되지만 당신이 처한 상황에는 딱히 맞지 않 을 수도 있다. 숙모의 조언을 무작정 따르는 것은 숙모가 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지 당신이 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들이 현재의 곤경을 헤쳐 나갈 지혜를 주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럴 땐 그 생각들에 귀를 기울이는 게 좋다.
- 완벽주의는 원칙과 논리를 이용하여 행동에 힘을 행사한다. 완벽주의는 무얼 해야만 하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 알 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실제로 당 신이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 수는 없다. 아무리 강력한 말이어도 아무리 소리가 커도. 따라서 B학점을 받거나 오랫동안 사귀던 사 람과 헤어지면 인생이 끝장날 거라고 완벽주의가 협박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마라.
대신 우리는 다음 세 가지를 권한다. 
첫째, 생각을 생각 으로 여겨라. 생각은 생각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둘째, 사고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라.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 건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셋째, 생각들이 하는 말을 고 려하되 도움이 되는 것은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라. 논리에 맞 고 진실처럼 보이는 것(일관성)보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 이 되는지(기능)에 집중하면 완벽주의의 덫을 피할 수 있다.
-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마음을 여는 연습을 하기에 앞서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불편한 느낌을 없애버리면 될 것 을 왜 굳이 그 느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할까? 첫 번째 이 유는 명백하다. 불편한 느낌을 없애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사항 이 아니고 당신은 경험을 통해 이미 그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 이다. 두 번째 이유는 불완전함을 밀어내는 것, 훌륭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고, 대수롭지 않은 실수에도 스스로 를 비난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은 피곤할 뿐 아니라 자기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 는 고통은 당신이 진정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거절당해 상처받았다면 그 고통은 당신이 관계를 소 중히 여기는 사람임을 말해준다. 구조적 불평등에 분노를 느꼈 다면 사회적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무관 심한 것들로부터 상처받을 순 없고, 관심을 끄지 않는 한 상처받 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달갑지 않은 느낌을 위해서 공간을 만드는 시도는 고통 을 느끼는 작업에 능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당신은 느 낌을 지니고 있는 것에 서툴 수도 있다. 늘 어떤 감정들로부터 도 망치려 했다면 회피하는 연습은 부단히 해온 반면, 느낌을 지니 고 있는 연습은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고통을 느끼는 것에 노 련해진 스스로를 상상해보라. 그것은 고통이 삶에 파고들 때 그것을 느끼되 휘둘리지 않고 있던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수용acceptance'이다. 수용은 너무도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어온 데다 '체념'과도 비슷하게 쓰여서 다소 모 호한 용어가 되었다. 우리는 패배와 상실을 수용한다. 처벌을 수 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용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낯 선 이의 친절과 호의를 받아들인다. 사람들의 덕담과 선물을 받 아들인다. 마찬가지로 불안, 스트레스, 걱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메일로도 할 수 있는 얘기를 직접 하려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 처럼 달갑지 않은 생각과 느낌을 수용할 공간도 낼 수 있다. 수용을 연습하려면 먼저 받아들이는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엇을 받아들일지 명확히 해라. 실패를, 혹은 비참한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들과는 달리 당신은 결과에 대한 통제권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스티븐 헤이 즈 박사는 그 점을 멋지게 표현했다. “당신의 상황이나 행동을 받 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과거와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받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과정중심치료의 한 형태로서 수용전념치료' 라는 제목의 2020년 워크샵에서 그가 한 말이다.) 다시 말해, 살아오면 서 축적한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놀랍 도록 다양한 감정들을 체험하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인간의 특별 한 능력을 받아들이고 또 경탄하라는 것이다. 비록 사소한 차이일지라도 당신이 쓸쓸한 기분과 비참한 기분을 구분할 줄 알고, 짜증 나는 것과 화가 나는 것을 구분할 줄 안다는 건 놀라운 일이 다. 당신에겐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고(물론 그 힘의 범 위는 당신이 처한 상황의 특수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른 행동을 선택 할 힘이 있다. 그러나 당신의 과거와 느낌들은 그저 그 자체로만 존재할 뿐이다.
- 다양한 받아들이기 기술을 시도하다 보면 낯선 곳에 도달하게 된다. 그 깨달음의 순간을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지만 어 느 순간 느낌과 싸우고 있지 않으며, 편안히 숨 쉴 수 있고, 느낌 을 아무 조건 없이 그대로 놓아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소 낯 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조금 홀가분한 기분이 들고, 그 상태에 잠시 머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수용의 기술을 습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운동이나 학문적 기술과 달리 수용의 기술은 무슨 일을 하고 있건 연습할 수 있다. 어떤 감정이든 느껴질 때, 연습해라. 유쾌한 감정으로 연습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건 이미 잘할 것이다. 우리는 좋은 느낌에는 기꺼이 마음을 열면서도 '나쁜' 것 이라고 이름 붙인 느낌에는 그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신호등의 빨간불이 유독 길게 느껴질 때 연습해라. 세 번째로 시 한을 어긴 동료에게 화가 나는가? 연습해라. 6분 전에 받은 상사 의 메일에 아직 답장을 하지 못해서 조급한가? 연습해라. 주말에 끝내야 하는 집안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가? 그 느낌을 위한 공 간을 만들고 목표에 부합되는 행동을 시작해라.
- 느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안달하는 대신 느낌이 존재할 공간을 주고 그동안 다른 중요한 일 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연습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고통 을 위한 고통은 좋아하지 않는다. 힘든 일을 하려면 목적이 있어 야 한다. 따라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만약 불편한 느 낌이 나타날지, 그 느낌이 얼마나 오래 갈지, 어떤 강도일지 더 이 상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은가?"
- 느낌은 삶의 한 부분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느낌이 그토록 집요한 이유는 인류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느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늘 우리에 게 이로웠다. 그러나 오늘날의 다양한 상황에서 동일한 가정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 따라서 느낌이 항상 유효하고 때로는 도움 이 된다고 해도 언제 느낌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언제 뒷마당에서 떼를 쓰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는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 이상의 관심을 주지 않고 호들갑을 떨도록 느낌을 내 버려두는 것, 그것이 바로 수용 연습이다.
수용의 대상은 느낌이지 행동이나 상황이 아니다. 수용 하려면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화를 볼 때처럼 느낌을 바라봐 야 한다. 불쾌한 느낌이라면 더더욱 연습해야 한다. 불쾌한 느낌 을 위한 공간을 만들 때 교묘히 회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 견한다면 다시 관찰 단계로 돌아가라. 관찰이 지속 가능한 상태 에 접어들면 수용에 가까워진 것이다.
- 자기친절은 거창한 무언가일 필요가 없다. 아침식사를 먹는 것일 수도 있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일 수도 있고, 자정이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일 수도 있다. 자기친절은 간 헐적으로 실행할 때보다 꾸준히 규칙적으로 실행할 때 더 도움 이 된다. 자기친절의 장점은 걱정하느라 혹은 지나간 일을 곱씹 느라 허비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고(완벽주 의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생산성이겠지만), 진정성 있게 사람 들과 교류할 수 있다. 자기친절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 는 사람 대하듯 바라보라.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여부 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 당신이 야외활동에 가치를 두거나 모험 을 떠나는 것에 가치를 둘 수 있다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자기 친절에 가치를 둘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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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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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 굿

심리 2024. 3. 12. 07:08

- 우울장애는 질병이며, 건강한 삶에 불필요한 요소 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분이 좋아지는 몇 가지 간단한 방법만 알 고 있어도 우울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의과대학의 정신의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기분장애affective disorder의 치료와 예방에 중요한 돌파구가 될 내용을 보고했다. 이 들은 전통적인 우울장애 치료법이 효과가 없거나 느리다는 데 불 만을 느끼고 우울장애를 비롯한 기분장애를 치료할 완전히 새롭 고 아주 뛰어난 접근법을 개발해 체계적으로 검증했다. 최근 속속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치료법은 그동안의 심리요법이나 약물요법보다 우울 증상을 훨씬 빠르게 개선한다는 사실이 확인 되었다. 이 혁명적 치료법의 이름은 '인지치료'다.
- 그렇다면 현재 우울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 인지치료를 받으 면 우울장애를 전혀 경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마치 매일 조깅으로 몸을 단련한다고 해서 앞으로 절대 숨차는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간이기에 가끔 감정의 동요를 경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단언컨대 여러분은 영원히 변치 않는 행복을 느끼는 상태에는 결코 이를 수 없다! 이는 자신의 기분을 능수능란하게 다스리려면, 효과적인 기 법을 계속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분이 나아지는 것'과 '상태가 나아지는 것'은 다르다. '기분이 나아지는 것'은 저절 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상태가 나아지는 것'은 필요할 때마다 기 분을 개선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실행하고 또 실행함으로써 가 능하다.

- 조증mania도 알아두어야 할 기분장애의 특별한 유형이다. 조증은 우울증과는 정반대다. 이때는 곧장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리튬을 처방받아야 한다. 리튬은 기분이 극단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증상을 안정시 키고 환자가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조증은 치 료받기 전에 정서 파탄을 일으킬 수 있다. 약물이나 알코올 때문 이 아닌데 이틀 이상 기분이 심하게 들떠 있거나 짜증이 계속되는 경우 조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판단력이 떨어졌음을 보여주는(예 컨대 무모하고 과도한 소비 같은) 충동적 행동과 거창하고 허황된 자 신감은 조증 환자들이 보이는 행동의 특징이다. 성적인 행동이 과 해지거나 공격적인 행동이 늘어나고, 쉼 없이 몸을 움직이거나 머 릿속으로 생각이 폭주하며, 흥분한 상태에서 쉬지 않고 말을 하거 나, 자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 증상도 보인다. 조증을 앓는 사람 들은 흔히 자신이 누구보다 힘 있고 똑똑하다는 망상을 품으며, 철 학이나 과학에서 엄청난 업적을 이루거나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기 직전이라고 주장한다. 창의적 업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 중에도 이 질병을 앓고 리튬 처방으로 병을 다스린 사람이 많다. 이 병은 기분을 좋게 하기 때문에 처음 발병했을 때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초기 증상의 도취감이 워 낙 강해서 환자들은 갑자기 찾아온 자신감과 황홀감이 실제로는 자신을 파괴하는 질병이 시작된 징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이 행복감은 통제할 수 없는 정신 착란 상태로 악화되어 강제로 입원해야 할 정도가 되거나, 정반대 로 무기력하게 우울해지면서 눈에 띄게 행동이 둔하고 무감각해 진다. 여러분은 이런 조증 증상을 잘 알아두어야 한다. 진짜 우울장애를 겪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런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며칠이나 몇 주사 이에 인격에 심각한 변화가 생긴다. 심리치료와 자가치료 프로그 램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의사의 감독 아래 리튬 처방을 병행하 는 것이 가장 좋다. 이렇게 치료하면 조증의 회복 가능성은 매우 높다.

-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의 감정은 정상이다. 그러나 뒤틀리고 왜곡된 방식으로 지각하고 있다면 그 감정은 비정상이다. 우울장애는 후자에 해당한다. 우울장애는 항상 정신적 '잡음', 즉 왜곡의 결과다. 우울한 기분은 방송 주파수 를 정확히 맞추지 않았을 때 음악에 지직거리는 소리가 섞이는 것 과 같다. 이 문제는 라디오의 진공관이나 트랜지스터에 결함이 있 거나 나쁜 날씨 탓에 무선 수신되는 방송 신호가 왜곡되어서 생기 는 것이 아니다. 다이얼만 다시 조정하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정신을 조율하는 방법을 배워놓으면 음악은 다시 맑 게 흘러나오고 우울장애는 사라질 것이다.

- 인지치료의 가장 중요한 특징 하나를 꼽는다면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끝까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료 과정에서 나는 환자들에게 부정적 자기 이미지를 체계적으로 재평가하도록 이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똑같이 몇 번씩 던진다. "자신에게 원래 패배자인 면이 있다고 계속 주장하시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자신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다. 자신 이 쓸모없다는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내세우는 증거는 대체로 이 치에 맞지 않는다.
- 부정적 생각에 대한 이성적 대응을 매일 써보는 간단한 훈련이야말로 인지치료의 핵심이다. 이것은 우 리의 사고를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 다. 핵심은 자동적 사고와 이성적 대응을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는 것이다. 이 과정을 머릿속으로만 하면 안 된다. 생각에 대한 대 응을 머릿속에서만 맴돌게 하기보다는 직접 써보는 것이 객관성 을 더욱 높여준다. 또 직접 써보면 우울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의 오 류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세 칸 기법은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 라는 무력감은 물론 왜곡된 생각이 핵심 원인인 광범위한 기분장 애에도 적용된다. 그리하여 파산이나 이혼 또는 심각한 정신질환 등 흔히 완전히 '현실적인 것'이라고 여기기 쉬운 문제에서도 고통 이나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이 책 4부우 울장애 예방과 인격 성장에서 자동적 사고 기법을 약간 변형한 방 법을 이용해 감정 기복의 원인이 잠복해 있는 정신 부위를 꿰뚫어 보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 가령 기분이 고양되고 행복하다면 그것은 자신이 위대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일까, 아니면 그저 기분이 좋다는 뜻일까?
감정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듯 생각이나 행동 역시 우리 의 가치를 결정하지 못한다. 그중에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건 전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 밖에 비합리 적이고 자기기만적이며 부적절한 생각이나 행동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고칠 수 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런 것들이 곧 그 사람이 쓸모없는 존재임을 뜻하지도, 뜻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키울 수 있나요?" 하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답은 이렇다. 일부러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자존감을 만 들어내거나 얻겠다며 굳이 그럴 법한 뭔가를 할 필요는 없다. 우리 가 할 일은 비판하고 선동하는 내면의 목소리의 스위치를 끄는 것뿐이다. 어째서? 우리 안의 비판하는 목소리야말로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내면 의 자기학대는 불합리하고 왜곡된 생각에서 솟아난다.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은 진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우울장애의 핵심에 도사리고 있는 종기일 뿐이다.
따라서 감정이 동요할 때는 다음 세 가지 핵심 단계를 명심하자.
1. 자동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에 관심을 집중하고 기록한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윙윙거리지 못하게 종이 속에 가둬놓는다!
2. 열 가지 인지왜곡 유형을 되풀이해서 읽는다. 이것들이 어떻게 사물을 왜곡하고 과장하는지 꼼꼼히 익혀둔다.
3. 자신을 경멸하게 만드는 생각을 그런 생각이 거짓임을 보여 주는 더 객관적인 생각으로 대체한다. 이렇게 하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다. 자존감이 커지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그리고 당연히 우울장애도) 사라질 것이다.

- 우리는 생각을 바꾸면 기분도 변화할 수 있음을 배웠 다. 이제 기분을 개선하는 데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는 두 번째 접 근법을 알아보자.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행동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면 감정을 느끼는 방 식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 에는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울장애에 빠지면 움 직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울장애의 가장 파괴적인 면 중 하나는 의지력을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가벼운 상태라면 하기 싫은 일을 뒤로 미루는 정도이지 만 의욕 상실이 심해지면 사실상 거의 모든 활동이 어렵게 느껴져 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충동에 휩싸인다. 해내는 일이 거의 없 고 감정도 점점 악화된다. 자극과 즐거움을 주는 일상의 원천을 멀 리할 뿐 아니라 생산성의 감퇴로 자기혐오가 심해지고 그 결과 고 립감과 무력감도 더욱 커진다.

- 틱톡 기법
어떤 일을 손대지 못한 채 미루기만 하고 있다면 그 사실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해둔다. 이런 생각을 '과제 방해 인지task- interfering cognition' 또는 '틱TIC'이라고 한다. 이 생각들을 기록한 후 더 적절한 '과제 지향 인지task-oriented cognition' 또는 '톡TOC’으로 대체해 두 칸으로 된 표에 나란히 적기만 해도 과제 방해 인지는 크게 힘을 잃는다. (표 5-8)은 그 여러 가지 예다. 이 틱톡 표를 작 성할 때는 자신을 좌절시키는 틱 속에 어떤 왜곡이 포함되어 있는 지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이 나 긍정적인 것 인정하지 않기가 가장 큰 적임을 깨달을 수도 있 고, 자기 멋대로 부정적 예측을 하는 나쁜 습관이 있음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일단 우리를 좌절에 빠뜨리는 가장 흔한 왜곡의 유형을 알아차리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할 일을 미루 는 버릇과 시간 낭비도 행동과 창의성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 마차를 말 앞에 맬 수는 없다!
의욕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틀림 없이 있을 것이다. 의욕과 행동 중 무엇이 먼저일까?
의욕이 먼저라고 답한다면, 훌륭하고 논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틀렸다. 의욕이 아니라 행동이 먼저다!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마중물을 부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의욕이 생기고, 물이 즉시 올라온다.
할 일을 자꾸 뒤로 미루는 사람은 흔히 의욕과 행동을 혼동한다.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 어리석게 기다리기만 한 다.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자동으로 미루고 만다.
이런 사람의 오류는 의욕이 먼저 생겨야 행동을 하고 성공에 이 를 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 그러나 보통은 그 반대다. 행동이 먼저 이고, 의욕은 그 후에 생긴다.

- 비난받을 때 우리의 내면을 파탄시키는 덫에서 벗어나는 방법 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왜 사람마다 비난과 비판에 반응하는 정도 가 다른지 살펴보자. 우선 우리의 기분이 상하는 것은 남들 때문도 그들의 따가운 비판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다른 사람의 비판적 언사가 우리의 감정을 손톱만큼이라도 상하게 하는 일은 일생에 단 한 번도 없다. 남이 얼마나 간악하고 무정하 고 잔혹한 말을 내뱉든, 그런 말에는 우리를 괴롭히거나 불편하게 만들 티끌만한 힘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내가 제정신이 아니거나, 완전히 잘못 알고 있거나, 심각하게 비현실적이거나, 아니면 이 모두에 해당하 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장담한 다. 자신을 무시하고, 깔아뭉개고,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바로 자기 자신밖에 없다!

- 람 있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타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 을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비판이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 남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므로, 정작 자신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쏟을 에너지가 별로 남지 않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이 렇듯 남을 만족시키려고 애쓰는 이들보다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많은 사람이 더 매력을 느끼고, 그러 한 태도를 바람직하게 여긴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는 앞 장에서 소개한 인지 기법들에 관 한 일종의 개관이다. 문제의 핵심은 오직 우리의 생각만이 우리를 속상하게 만들 수 있으며, 만일 더 현실성 있게 생각하는 법을 익 힌다면 훨씬 덜 속상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비 판할 때 곧바로 우리의 머릿속에 흔히 떠오르는 부정적 생각을 적 어보자. 이어서 거기에 어떤 왜곡이 있는지 밝혀낸 뒤 더 객관적이 고 이성적인 대응으로 바꾸어보자. 분노와 두려움이 한결 줄어들 것이다.
- 누군가가 여러분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때 그 사람의 행동은 여러 분을 돕거나 해치려는 동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비판자가 하는 말 은 틀리거나 옳거나 또는 그 사이 어디쯤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여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그 대신 비판 자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려는지 파악하기 위해 구체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던져본다. 질문할 때는 판단하거나 방어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계속 더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비판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비판자가 근거가 모호한 모욕적 인 말로 공격하면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서 그 사람이 나의 어떤 면을 싫 어하는지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이 초기 대응 전략은 비판자가 남의 허물 찾기를 그만두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공격과 방어 관 계를 협력과 상호존중의 관계로 변화시킬 수 있다.
- 누군가 우리에게 비난을 퍼부을 때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 를 선택할 수 있다. 첫째, 피하지 않고 비난에 반격한다. 이 방법은 대개 싸움으로 발전해 서로를 파탄낸다. 둘째, 그 자리에서 달아나 거나 피한다. 이 방법은 흔히 수치심을 낳고 자아존중감을 잃는 결 과를 가져온다. 셋째,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상대방을 솜씨 있게 무장해제한다. 이 가운데 가장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세 번째 방법이다. 상대방을 맥 빠지게 만들면 결국 자신이 승자가 될 것이 며, 상대방 역시 대체로 승자라고 느끼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비결은 간단하다. 상대방의 비판이 옳든 그르든 처음에는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치는 방법을 찾아낸다. 

- 야유 받아넘기기
여기서 다룰 내용은 강연이나 강의를 하는 사람에게 특히 유용하다. 나는 대학이나 전문가 단체에서 우울장애 연구 현황을 강의하기 시작할 때부터 '야유 받아넘기기' 기법을 개발했다. 강의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좋았지만 야유를 보내는 사람이 한 명은 꼭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보내는 야유에는 대체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아주 신랄하지만 부정확하며 주제와 관련성도 없다. 둘째, 야유를 보내는 사람은 흔히 동료에게 별로 인정이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셋째, 이들은 장황한 독설을 퍼붓는다.
다른 청중에게도 질문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나는 이런 사람들 을 마음 상하지 않게 조용히 시키는 '야유 받아넘기기' 기법을 개 발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방법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첫째, 지적 해주어서 고맙다는 답변을 즉각 해준다. 둘째, 지적한 문제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셋째, 지적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더 알아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비판자에게 이 주제에 관 해 의미 있는 연구와 조사를 해보라고 격려한다. 넷째, 강의가 끝 난 뒤 이 문제에 관해 더 많은 의견을 나누면 좋겠다고 말한다.
말로 하는 기법이 반드시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위와 같은 낙관적 방법을 이용했을 때 거의 만 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실제로 야유를 던지는 사람들 중 많은 수 가 강연이 끝난 뒤 찾아와 칭찬을 하면서 친절하게 답변해주어 고 맙다고 말했다. 때로는 이런 야유자들이 내 강연에 가장 큰 애정을 보내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한다!

- 이제 생산적 분노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이 기준에 의거해 우리는 지금까지 배운 것을 종합해서 분노에 대해 뜻깊은 철학을 얻을 수 있다.
1. 나의 분노는, 다 알면서도 고의로 불필요하게 나에게 해를 입히려고 행동하는 사람을 향한 것인가?
2. 나의 분노는 유익한 것인가? 바람직한 목표를 이루도록 도울 까, 아니면 단지 나를 좌절시킬까?
예를 들어보자. 여러분이 농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편 선수 한 명이 팔꿈치로 여러분의 배를 고의로 가격한다. 여러분의 화를 돋우어 경기를 망치게 하려는 목적에서다. 그럴 때 여러분은 더 열심 히 뛰어 승리할 수 있도록 분노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분출할 수도 있다. 이 때의 분노는 상황에 적합하다. 물론 경기가 끝나면 더 이상 분노는 필 요하지 않다. 이제 분노는 상황에 부적합하다. 
세 살 난 아들이 위험하게 거리를 마구 뛰어다니고 있다고 하자. 아이가 일부러 위험을 자초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 서는 화를 내는 것이 적합하다. 감정이 격앙된 목소리로 사태가 심 각하다는 경보 메시지를 아이에게 전달해야 한다. 무덤덤하고 아 주 이성적인 태도로 아이를 대한다면 이런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위의 두 사례에서 우리는 화내기를 '선택'한 것이고, 감 정의 정도와 표현 여부를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 분노의 시의적절 한 효과와 긍정적 효과는 적대감과 다르다. 적대감은 충동적이고 통 제 불가능하며 공격적인 행동을 낳는다.
무자비한 폭력을 다룬 신문기사를 읽고 분노가 일었다고 해보 자. 신문에 실린 폭력적인 행동은 분명히 해롭고 비도덕적이다. 그 렇지만 이에 대응할 계획이 없다면 우리의 분노는 상황에 적합하 지 않다. 반대로 만일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희생자를 돕거나 범죄 와 맞서 싸우는 운동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우리의 분노는 상황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 정확한 감정이입
감정이입은 최고의 분노 해독제다. 감정이입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기법 중 가장 효과가 좋은 마법 같은 방법으로, 마법의 거울 따위는 필요도 없다.
우선 감정이입의 정의부터 내리자. 감정이입은 상대방과 같은 방식으로 느끼는 능력이 아니다. 그런 능력은 '공감'이라고 한다. 공감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기는 하지만, 나는 이것이 약간은 과 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감정이입은 상냥하거나 이해심 있 는 태도도 아니다. 그런 것은 감정이입이 아니라 '지지'라고 한다. 지지의 가치도 과대평가되고 있다.
- 그렇다면 감정이입이란 무엇일까? 감정이입이란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의 동기를 정확히 읽고 파악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능력을 기르면 다른 사람의 행동이 자신의 취향과 다르다 해도 분노하지 않고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바로 나의 생각이 실제 분노를 만들 어낸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놀랍게도 다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 하는지 이해하는 순간, 분노를 일으킨 우리 자신의 생각도 거짓임 을 깨닫게 된다.

- 우리가 실수를 했을 때 필요한 것은 인식, 배움, 변화의 과정이다. 이때 죄의식은 이 가운데 어떤 것에 도움이 될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죄의식은 실수를 인식하도록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실수를 덮어버리게 한다. 어떤 비판에도 귀를 닫고 싶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끼는 것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에 잘못을 질렀다는 사실 자체를 견디지 못한다. 죄의식이 비생산적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우리는 당근이나 채찍의 방법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 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나는 이걸 해야 해' '저걸 하지 말아 야 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만 한다면 평생 '해야 한다' 식 사고 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이미 그 귀결이 무엇인지는 알고 계실 겁니다. 정서적 변비에 걸리고 마는 거죠. 정말 상황 을 개선하고 싶다면 벌보다는 상으로 의욕을 고취하라고 권하 고 싶습니다. 이 방법이 훨씬 효과가 있을 겁니다.
- 사실 불평꾼이 계속 똑같은 반응을 보이게 만드는 것은 이들을 돕겠다는 우리의 충동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들의 비 관적 푸념에 맞장구를 쳐주면 그들은 순식간에 김이 빠져버린다. 약간 설명을 덧붙이면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사람들은 푸념이나 불평을 할 때 대개 짜증, 기죽음, 불안감을 느낀다. 우리가 돕겠다 고 하면 그들은 자신이 일을 잘못 처리하고 있다고 비난당하는 것 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막상 맞장구를 쳐주고 칭찬을 해주면, 그 들은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긴장이 풀리며 안정 을 찾는다.

- 다음은 많은 사람이 효과를 본 몇 가지 생각이다. 자신의 목록을 작성할 때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1. 누군가 우리에게 부정적 반응을 보일 때, 그 비난의 핵심에는 그 사람의 비합리적인 생각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설사 비판이 타당하다고 해도, 그 비판이 우리를 파멸로 몰 아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실수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를 하 나씩 고쳐나갈 수 있다. 그렇게 실수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 울 수 있다. 실수를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인간이라면 당 연히 이따금 실수할 수밖에 없다.
3. 일을 망쳤다고 해서 타고난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항 상 또는 거의 항상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해온 수많은 옳은 일을 생각해보자! 더구나 인간은 변하고 성장한다.
4. 다른 사람은 우리의 인간적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그들은 다만 우리의 특정 행동이나 말의 타당성이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5. 우리의 행동이 훌륭하든 아니든,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 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비난은 들불처럼 순식간에 번질 수 없으며, 한 사람의 거부반응이 다른 사람의 거부반응으로 끝 없이 이어질 수도 없다. 그러므로 심지어 상황이 더 악화되 고 누군가에게 거부당한다고 해도 완전히 외톨이가 되는 것 은 아니다.
6. 인정받지 못하거나 비판받는 일은 대개 불편하다. 그러나 불 편함은 언젠가 사라지게 마련이다. 울적해하지 말자. 예전에 즐기던 활동이 있다면, 당장은 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고 여 겨지더라도 적극적으로 시도해보자.
7. 비난과 비판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만큼만 우리의 감정을 동요시킬 수 있다.
8.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거의 오래가지 못한다. 비판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과 우리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 니다. 논쟁은 삶의 일부이며, 대개 나중에는 서로 이해하게 된다.
9.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한다 해도 그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이 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를 판단할 힘과 권 리를 남에게 주려 하는가? 우리는 모두 인간일 뿐 대법원 판 사가 아니다. 남의 권능을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지 말자.

- 인정받지 못하거나 거부당한 상처에서 회복하기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는데도 사실상 인정받지 못하 거나 거부당했다고 해보자. 이때 일어나는 감정 동요를 어떻게 하 면 가장 빨리 극복할 수 있을까? 먼저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 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실망스러운 작은 일 하나로 우리의 행복을 영원히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거부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했을 때 우리의 기 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생각이다. 그러니 이런 생각과 맞서 싸우고 왜곡된 자기학대에 굴복하기를 완강히 거부한다면 감정 동요는 사라질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 오랫동안 슬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 이 돼온 방법이 이 경우에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 가족과 사별했을 때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고통스러운 기억과 세상을 떠난 이와의 추억에 잠기면 슬픔을 더 빨리 극복하고 끝마칠 수 있다. 이 방법은 혼자 할 때 가장 효과가 좋다. 다른 사람의 동정은 오히 려 역효과가 난다. 몇몇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동정은 오히려 슬픔에 잠겨 힘겨워하는 기간을 늘린다고 한다.
거부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했을 때 이 '슬퍼하기' 방법을 써보자. 매일 한두 번씩 시간을 정해서(한 번에 5~10분) 슬프고 화나고 절 망스러운 온갖 생각을 마음껏 하는 것이다. 슬픔을 느끼면 소리 내어 운다. 미칠 것 같으면 베개를 두드려 팬다. 정해둔 시간 내내 고통스러운 기억과 생각에 푹 잠겨 있도록 한다. 

-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현명해질 수 있는 문이 두 개 있다. 하 나에는 '완벽함'이라 쓰여 있고, 다른 하나에는 '평범함'이라 쓰여 있다. 완벽함의 문은 화려하고 고급스럽고 우리를 현혹한다. 우리 는 이 문을 통과하고 싶다. 평범함의 문은 칙칙하고 단조롭다. 누 가 이런 문을 원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완벽함의 문을 통과하려고 애쓰는데, 그러다 문 너머에 있는 단단한 장벽을 발견한다. 이 벽을 깨려고 시도하면 코 피가 흐르고 두통이 생긴다. 이와는 반대로 평범함의 문 너머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 하지만 이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는가? 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분이 반드시 내 말을 믿을 필요는 없다. 여러분은 회의적인 장을 계속 유지해나가기 바란다. 그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다만 내가 말하는 내용을 잘 검토해보기 바란다. 살면서 단 하루만이라 도 평범함의 문을 통과해보자. 틀림없이 깜짝 놀랄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완벽함'은 모든 사람이 꿈꾸는 궁극의 환상이 다. 완벽함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함은 사실 세상에서 가 장 거창한 사기 행각으로, 부를 약속하지만 불행만 가져다준다. 완벽을 추 구하면 할수록 실망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완벽함이란 단지 추상적 개념,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 개념을 깊 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면 모든 것이 더 좋아질 수 있다. 모든 사 람, 모든 발상, 모든 예술작품, 모든 경험을 개선할 수 있다. 

- 현재 처방하는 대부분의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노르 에피네프린, 도파민의 활동에 영향을 끼친다. 항우울제 가운데 어 떤 것은 하나의 신경전달물질만 선택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항우울 제는 많은 전달물질에 작용한다. 하지만 현재 처방하고 있는 항우 울제가 이 세 가지 물질에 끼치는 효과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 어떤지를 설명해주는 아주 일관되거나 설득력 있는 증거는 아직 없다. 예를 들어 어떤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농도를 자극하고, 어떤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수용체를 차단하며, 어떤 것은 세로토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나름대로 좋은 효과가 있다. 
- 우울하다면, 뇌에 '화학적 불균형'이 생겼다는 뜻일까?
뇌의 화학적 불균형이나 호르몬의 불균형이 우울장애를 일으킨다 는 미신에 가까운 믿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믿음 은 증명되지 않았으며 사실이 아니다. 17장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아직도 우울장애의 원인을 알지 못하며 항우울제가 어떻게, 왜 작 용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우울장애가 화학적 불균형 때문에 생긴다는 이론을 2천 년 전부터 주장해왔지만 아직 증명되지 않았 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확실히 아는 게 없다. 게다가 특정 환자 나 환자 집단이 우울장애를 앓는 원인이 '화학적 불균형'이라는 점 을 증명해줄 수 있는 실험이나 임상증상도 전혀 없다.
- 두 가지 약물이 상호작용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네 가지 방식이 있 다. 첫 번째로, 하나의 약물이 혈액 속에 있는 다른 약물의 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두 가지 약을 '정량만 복용했는데도 때때로 경 고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 혈액 속 약물 농도가 갑자기 증가하 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우선 부작용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부 작용은 대개 복용량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많은 정신과 약물 은 복용량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으면 약효가 떨어진다. 끝으로 어 떤 약물의 혈액 내 농도가 너무 높으면 중독되거나 치명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 약물 상호작용의 두 번째 유형은 첫 번째와 정반대다. 하나의 약 물이 혈액 속에 있는 다른 약물의 농도를 끌어내릴 수 있다. 그러 면 정량대로 복용하더라도 두 번째 약은 효과가 없을 수 있다. 그 런데 환자나 의사가 이 사실을 착각해 약 자체가 효과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정작 문제는 환자의 혈액 속 약물 농도가 너 무 낮다는 것인데 말이다.
- 상호작용의 세 번째 유형은, 두 가지 약물이 각각 비슷한 효과나 부작용이 있어서 서로를 강화해주는 경우다. 예를 들어 고혈압 때 문에 치료받고 있는데, 혈압을 내리는 부작용이 있는 정신과 약물 을 복용한다고 해보자. 혈압이 순식간에 뚝 떨어져서, 갑자기 자리 에서 일어서다 기절할지도 모른다.
약물의 상호작용 가운데 네 번째 유형이자 가장 불길한 유형은, 혈액 속 약물 농도를 바꾸지는 않지만 특정한 약물 결합의 효과 때문에 중독되는 경우다. 다시 말해 따로따로 복용하면 안전한 두 가지 약물도 함께 복용하면 위험한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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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of the day 2024. 3.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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