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니그의 반대가 시작된 것은 2010년이 되어서부터였고 이것은 연준이 미국의 화폐 공급을 앞으로도 제로 바운드에서 유지할 방침 으로 보였을 때부터였다. 2010년의 FOMC 회의들에서 호니그가 한 발언(연준 회의록은 5년 뒤에 공개된다)과 그 시기에 호니그가 했던 연 설, 강의, 인터뷰 등을 보면 그가 인플레이션은 거의 언급한 적이 없 음을 알 수 있다. 그가 경고한 것은 인플레이션과는 꽤 다른 것이었 고 선견지명이 있는 경고였다. 하지만 화폐 정책의 제반 내용에 꾸 준하고 면밀하게 관심을 가져온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가 굉장 히 어려운 내용이었다. 이를테면 호니그는 금리를 제로 바운드에서 더 오래 유지하는 것이 일으킬지 모를 '배분 효과allocative effect' 를 자주 언급했다.
- '배분 효과'는 사람들이 이발소에서 이야기하는 화젯거리가 아니 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호니그가 말한 배분은 화폐 의 배분이었다. 즉 그는 연준이 화폐를 경제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 분으로 옮겨놓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호니그가 보기에 연준의 정책은 경제 전반적으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었다. 연 준의 정책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서 돈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연준의 정책은 월가의 투기처럼 금융 붕괴를 가져올지 모르는 행동을 촉진할 수도 있었고 그러한 행동을 하 지 않도록 유도할 수도 있었다. 연준과 관련해 제기될 수 있는 이 모 든 논의는 매파 대 비둘기파라는 단순한 구도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호니그가 지적한 우려는 연준이 물가 인플레이션과는 상관없는 종 류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호니그는 FOMC 회의실의 닫힌 공간에서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2010년 5월에 자신의 견해와 자신이 반대하는 이유를 <월스트 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통화정책은 단지 인플레이션 목표를 설정하는 것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보 다 훨씬 더 강력한 수단입니다. 통화정책은 우리가 이제 잘 알게 되 었듯이 배분적 정책이기도 합니다."
- '배분 효과'라는 말로 호니그가 설명하고자 한 것은 제로금리가 어떻게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냈는지였다." 금리가 제로에 도달하고 돈이 싸지면 은행들이 더 위험한 대출을 하도록 내몰리게 된다. 돈 을 안전한 데 저축해서는 수익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금리가 더 높은 시절이었다면, 가령 금리가 4%인 세계였다면, 은행은 미국채 같은 지극히 안전한 곳에 투자해도 꽤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 을 것이다. 하지만 제로금리의 세계에서는 상황이 달라서 아주 안전 한 채권에 돈을 넣어서는 거의 수익을 올리지 못했으며, 이는 은행 들이 더 위험한 황야로 수익률을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 더 위험한 대출을 하면 더 높은 금리, 즉 더 높은 '수익률yield' 을 얻을 수 있을 지 모른다. 수익률을 사냥하는 수렵 활동에 나서기 시작하면 은행들 은 '수익률 곡선'에서 점점 더 먼 쪽으로, 즉 점점 더 위험한 쪽으로 돈을 움직이게 된다.
제로 바운드에서의 삶은 은행들을 수익률 곡선에서 먼 쪽으로 밀 어붙인다. 은행이 잃을 게 무엇인가? 위험한 베팅이라도 아무것도 못 얻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것은 단지 제로금리를 유지하는 데 부수적으로 따라온 부작용이 아니었다. 훗날 호니그는 '그것이 바로 제로금리의 핵심이었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사람들이 더 위 험한 것을 기꺼이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경제가 다시 시동 을 걸게 하려고요. 하지만 이것은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기도 합니 다. 그 돈이 어디로 갈지를 배분하게 되는 것입니다."
- 호니그는 연준이 안전한 투자처에 있던 모든 돈을 위험한 투자 쪽 으로 밀어내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를 우려했다. 돈이 수익률 곡선 의 바깥쪽으로 점점 더 이동하면 호니그가 2010년에 경고한 두 번 째의 커다란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다. 바로 자산버블이다. 2008년 에 붕괴한 주택 시장이 자산버블이었다. 2000년에 폭락한 닷컴 주 식도 자산버블이었다. 버블이 터지면 대중은 재앙의 현장에 있는 사 람들을 비난하기 마련이고, 그들은 으레 탐욕스러운 월가의 사람들 이었다. 주식시장에서 단기적 이익을 위해 자꾸만 가격을 높여 거래 한 중개인이나 주택 버블에 기름을 부은 부정직한 모기지 브로커 같 은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이 두 번의 자산버블과 뒤이은 붕괴의 시 기에 호니그는 FOMC에 있으면서 그 버블들을 일으키는 데 연준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직접 목격했다. 2010년 11월의 그날 호니 그는 연준이 그 실수를 되풀이할까봐 우려하고 있었다. 
- 벤 버냉키는 2015년에 출간한 회고록의 제목을 《행동하는 용기 The Courage to Act>라고 지었다.18 버냉키주의를 실로 잘 나타낸 표현 이었다. 이 제목은 연준의 통화 개입이 필요한 일이고 용기 있는 일 이며 나아가 고귀한 일이라고 말한다.
2008년 이후 연준이 본원통화를 전에 없던 수준으로 늘리고, 금 리를 제로로 낮추고, 금리가 앞으로도 계속 제로에 머물 것이라고 약속하는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로 은행과 투자자들이 위험을 더 많이 지도록 유도하는 등의 전례 없는 일들에 나서도록 밀어붙인 사람이 바로 버냉키다. 이토록 공격적인 조치는 버냉키의 품행이나 태도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는 말투가 부드럽 고 친절하며 다가가기 쉬운 사람이었다. 깔끔한 외양과 회색 수염이 삼촌 같은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그린스펀이 오래도록 의장으로 재 직한 뒤 그 자리를 이어받은 버냉키는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으면서 신중하고 조용하게 통화정책의 레버를 당기는 관리자형 의장이 되 는 데 충분히 만족하는 듯했다. 하지만 2008년 위기는 버냉키를 미 국 재무장관 행크 폴슨Hank Paulson, 뉴욕 연은 행장 티모시 가이트 너Timothy Geithner와 더불어 전지구적 유명인이 되게 만들었다. 이들 이 거대 보험회사 AIG를 구제하고, 리먼브라더스를 파산하게 두고, 7,000억 달러 규모의 은행 구제금융을 밀어붙이는 등의 그 모든 일 에서 핵심 삼인방이었다. 버냉키는 미국 경제를 구하기 위한 노력의 얼굴 같은 존재가 되었다.
- 양적완화의 목적과 메커니즘은 사실 꽤 간단하다. 양적완화는 은행들이 돈을 안전한 곳에 저축할 인센티브가 없는 상황에서 수조 달러를 새로 만들어 은행 시스템에 주입하는 프로그램이며, 연준은 이를 위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강력한 도구를 사용할 것이었다. 그 도구는 뉴욕 연은의 트레이더들이다. 뉴욕 연은의 트레이더들은 '프라이머리 딜러'라고 불리는 약 스물네 곳의 금융기관과 늘 금융 거래를 한다. 프라이머리 딜러 등 은행들은 연준에 금고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지급준비금 계좌(지준 계좌)'라고 부른다(물론 현대에 이 계좌는 물리적 금고가 아니라 디지털 장부상의 디지털 계좌다). 양적완화 를 실행하려면, 뉴욕 연은의 트레이더가 프라이머리 딜러 중 하나, 가령 JP모건 체이스에 전화를 해서 그곳이 보유한 국채 80억 달러어 치를 사겠다고 제안한다. JP모건 체이스가 국채를 팔기로 하면 연은 트레이더는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고서 JP모건 체이스에 지급준비 금 계좌를 확인해보라고 말한다. 짜잔, 연준은 80억 달러를 즉각 만 들어서 JP모건 체이스의 지급준비금 계좌에 넣어주었고 거래는 완료되었다. 이제 JP모건 체이스는 이 돈을 더 큰 시장에 가서 자산을 구매하는 데 쓸 수 있다. 이것이 연준이 돈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프 라이머리 딜러로부터 금융 자산을 사들이고 그쪽 계좌에 새로 만든 돈을 넣어주는 것이다.
- 버냉키는 연준이 자산을 총 6,000억 달러어치 사들일 때까지 이 와 같은 거래를 계속할 계획이었다. 다른 말로, 연준은 새로운 돈 6,000억 달러가 월가의 지급준비금 계좌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돈 을 만들어 금융 자산을 사들일 계획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것을 몇 개월 만에 할 계획이었다. 금융위기 전에는 이 정도 규모로 본원통화가 증가하는 데 60년쯤 걸렸다.
양적완화가 매우 이례적이고 강력한 정책인 이유가 하나 더 있었 다. 버냉키는 이 프로그램에서 10년 만기 미국채 같은 장기 국채를 사들일 계획이었다. 언뜻 들리는 것과 달리 이것은 매우 중대한 결 정이다. 연준이 사들이는 것은 늘 단기 채권이었다. 연준의 일이 단 기 금리를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연준은 한 가지 전략적 이유에서 장기 채권을 매입하려 하고 있었다. 월가에서 장기 채권은 예금 계좌나 마찬가지다. 즉 투자자가 의지할 만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돈을 안전하게 묻어둘 수 있는 장소다. 그런데 연준은 양적완화로 그 안전한 장소를 없애려 하고 있었다. 연준이 장기 국 채를 대량 매입하면 시장에서 장기 국채의 공급량이 줄게 된다. 그러면 연준이 새로이 창출한 돈은 안전한 장기 국채로 들어갈 수 없 으니 막대한 압력에 놓이게 되고, 이 모든 새로운 돈이 수익률 곡선 에서 더 먼 쪽으로, 즉 위험한 투자 쪽으로 몰리게 된다. 양적완화의 논리에 따르면 은행들은 이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돈으로 [기업 등 에] 대출을 해줄 수밖에 없다. 요컨대, 양적완화는 시스템에서 안전 하게 돈을 보관할 수 있는 은신처를 크게 줄인 다음에 그 시스템에 막대한 돈을 풀어놓는다는 계획이었다. 2010년에 경제성장이 취약 했다면, 양적완화가 더 많은 돈과 값싼 대출과 쉬운 신용을 살포함 으로써 은행들이 예전 같으면 자금을 대지 않았을 비즈니스에까지 자금을 대도록 유도할 수 있을 터였다.
- FOMC 위원들은 양적완화가 불분명한 이득과 위험을 지닌 대규 모 실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FOMC 회의에서 이에 대해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당시에 FOMC 위원들 사 이에서는 양적완화에 대해 반대가 많았다. 호니그만 강하게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지역 연은 행장 중 찰스 플로서와 리처드 피셔, 그리 고 리치몬드 연은 행장 제프리 래커 Jeffrey Lacker도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버냉키는 양적완화가 급진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비상한 시기에는 급진적인 조치가 요구되는 법이라고 반박했다.
- FOMC 9월 회의에서 호니그는 연준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가 장 밀도 있고 직설적인 비판을 했다.24 그는 미국 경제의 깊은 병폐 가 은행들이 대출을 적게 해주어서 생긴 게 아님을 지적했다. 은행 들은 빌려줄 돈이 이미 아주 많았다. 진짜 문제는 은행 시스템 밖에 있었다. 깊은 문제들이 곪고 있는 곳은 실물 영역이었고 연준은 그 것을 고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금리를 제로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 그리고 투기와 위험한 대출 외에는 갈 곳이 없는 6,000억 달러를 은 행 시스템에 새로 주입하는 것은 미국 경제의 근본적인 역기능을 해 결하지 못할 터였다.
"저는 고금리를 주장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랬던 적도 없고 요. 제 주장은 제로에서 벗어나자는 것이고 1조 달러를 또 쏟아부으 면 모든 게 좋아지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모든 게 좋아지지 않을 테니까요."
- 미국 헌법에는 중앙은행의 설립을 정한 부분이 없고 중앙은행 설 립을 요구한 부분조차 없다. 하지만 근대국가가 중앙은행 없이 생 존하기는 불가능하며, 미국이 그 증거다. 미국은 한 세기 동안이나 어떻게 해서든 중앙은행 없이, 즉 정부가 운영하는 은행을 설립해 통화를 통제하지 않고 가보려고 했다. 1776년부터 1912년 사이에 중앙은행을 두 번 설립했지만 두 번 다 기한을 연장하지 않고 설립 특허장에 명시된 기한이 만료되었을 때 소멸시켰다. 너무 많은 권력 을 소수의 손에 집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소수에게 집중된 권력은 미국의 건국이라는 프로젝트 자체를 훼손할 수 있었다. 이상적으로 말해서 미국의 건국이라는 프로젝트는 정부에 대한 통제력을 시민들의 손에 주자내는 것이 아닌가. 1836년에 앤드루 잭슨Andrew adune 은 중앙은행의 두 번째 설립 특허장을 철회하면서 국 가 중앙은행이 국민의 자유에 위협이 된다'고 언급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 은행이 전체 금융 시스템을 관장하고 있고 그 은행을 이끄는 사람들이 누가 대출을 얻고 누가 못 얻을지 결정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들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사 람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반미국적이었다.
- 은행 패닉 외에 중앙은행이 필요한 이유가 또 있었다. 통화 공급량 자체를 전반적으로 관리할 곳이 필요했다. 통화에 대한 수요는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데 통화 공급량이 저절로 그에 맞춰서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해마다 가을이면 농민들은 수확을 하기 위해 지역 은행에 서 돈을 인출해 일꾼을 고용했는데, 이는 중서부 지역 은행들의 제 한된 현금 준비금에 압박을 가했다. 농촌 지역의 은행들은 농민들의 인출 요구에 응하는 데 필요한 현금이 부족해질 것 같으면 시카고 같은 도시의 큰 은행에 가서 현금을 빌렸다. 다시 이들 도시 은행은 뉴욕에 있는 은행들에 의존했고 뉴욕의 은행들은 유럽의 큰 은행들 에 의존했다. 이는 모두가 재앙에 빠지는 패닉으로 전환될 수 있었 다. 1873년의 은행 패닉은 6년이나 지속된 불황으로 이어졌다.
- 연준이 열두 개 지역 연은의 연방체로서 '미국적'으로 보이게 구 성되기는 했지만 의회에서 연준 설립 특허장의 개정안이 통과될 때 마다 연준의 지배 구조는 점점 더 워싱턴으로 집중되었다. 현재 연 준의 권력은 대체로 워싱턴의 연준 이사회에 속해 있다. 이곳에는 일곱 명의 이사가 있는데 대통령이 지명하고 의회의 인준을 받는 공 직자다. 연준 이사들과 지역 연은 행장들 사이의 긴장은 FOMC에 서 가장 첨예하게 나타난다. 이사들이 과반을 차지하기 때문에 거의 이들이 의제를 설정한다. 그리고 비상 시기 때는 이사회의 권력이 더 강해진다. 연준이 최종대부자가 되어야 할 상황이면 연준 이사들 은 FOMC 전체의 승인 없이도 행동을 개시할 수 있다.
- 연준이 대인플레이션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한 가장 상세한 설명은 2,100쪽이나 되는 세 권짜리 대작 《연준의 역사The History of the Federal Reserve》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의 읽기가 불가능할 정도 로 밀도 있고 상세한 이 저술에서 경제학자 앨런 멜처Allan Meltzer는 FOMC 회의록 및 공개된 여타의 자료, 경제 분석, 경제 데이터 등 을 사용해 1970년대에 연준이 내린 의사결정을 추적했다. 그리고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놀라운 유죄 판결을 내 렸다. 이 문제의 주된 원인이 연준의 통화정책이었다는 것이다. "대 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을 막거나 줄이는 것보다 완전고용 혹은 높은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는 데 훨씬 더 방점을 둔 정책적 선택으 로 야기되었다. 이 시기의 대부분 동안 이러한 선택은 정치적 압력 과 여론조사로 드러나는 대중의 견해 모두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었다. "
이는 (연준의 역사에 대한 논의가 그럴 수 있는 한에서) 공격적이고 발화성 있는 언명이었다. 멜처는 기본적으로 연준이 1970년대에 자신 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마도 더 치명적으로, 연준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 같은 독립적인 기구가 아니 라고 말하고 있었다. FOMC 위원들은 전문적인 경제 이론에만 의 거해 화폐 공급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똑똑한 전문 관료들이 아 니라 여느 사람들처럼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정치적 압력에 흔들 리기 쉬운 사람들이었다. 멜처에 따르면, 연준이 계속 돈을 찍어내 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고투를 벌인 것은 경제 방정식에 따라서 가 아니라 대중과 정치인들이 연준에 원한 게 그것이기 때문이었다. FOMC는 실업률이 4% 근처까지 내려가야 한다고 보았는데 1975 년에서 1977년 사이에 실업률은 6%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1978 년에도 6% 근처였다. 그래서 연준은 계속 돈을 찍었고, 그러면서 자 산 가격 버블과 인플레이션을 일으켰으며, 이는 결국 1980년대 초 에 10%라는 높은 실업률을 일으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 2001년 9월 11일, 테러리스트가 비행기를 공중 납치해 미국을 공 격했다. 3,000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경제는 대혼란에 빠 졌다. 안 그래도 비상 상황이던 경제에 덮친 또 하나의 위기였다. 연 준은 타격을 완화하기 위해 금리를 더 내렸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 았다.
하지만 12월에 호니그는 그해의 두 번째 반대표를 던졌다. FOMC 회의에서 발언 차례가 오자 호니그는 '길고 가변적인 시차' 를 염두에 두면서 신중하고 제한적으로 접근할 것을 다시 한번 주장 했다. 그는 금리가 불과 1년 전에 6%가 넘던 데서 이미 2% 수준으 로 낮아졌음을 지적했다. "의장님, 저는 정말로 우리가 여기에서 잠 시 멈추고 숨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방기금 금리가 2%라는 것은 경기 진작적인 수준입니다. 우리는 경기가 나아지는 징후들 을 보고 있고 경기 진작은 아직 다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인플레이 션이 당장은 문제가 아니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 가 조금 더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호니그는 이번에도 졌고(이번에도 그가 유일한 반대표였다) 연준은 금 리를 낮췄다. 그리고 한 달 뒤에 호니그는 의결권을 갖는 순번이 아 니게 되었다.
이후 2년에 걸쳐 원래 긴급조치였던 것이 거의 영구적인 것이 되 었다. 2001년에 내린 금리는 그 수준에서 계속 유지되었고 2004년 중반까지 단기 대출 금리가 2% 아래였다. 이 시기는 연준의 통화정 책이 경제 붕괴로 이어지는 길을 닦았던 1960년대와 비견할 만한 시기가 되었다. 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물가 인플레이션은 통제하되 자산버블은 무시하기로 하는 그린스펀의 정책은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며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펼쳐지게 된다. 그리고 연준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위기로 이어질 커다란 자산버블에 불을 때는 데 결정적 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다시 한번 호니그는 그 과정의 모든 단계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그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FOMC에서 던진 표결에 대해 거의 후회하지 않았지만, 주택 버블이 생기던 시기에 대해서는 후회했다. 호니그도 그 버블을 불러오는 데 일조했다.
- 호니그는 2004년에 금리를 너무 낮게 유지해 주택 버블에 불을 지핀 기억이 여전히 괴로웠다. 그리고 2010년에 연준은 금리를 제 로에서 계속 유지했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제로에 머물 것이라고 은 행들이 확신하도록 포워드 가이던스를 주었다. 그러면 은행들은 더 확신을 가지고 투기적인 베팅을 하게 될 터였다. 제로금리는 은행들이 수익률 추구에 나서고 위험한 대출을 하도록 유인을 제공했다.
또다시 연준은 자산버블을 일으켜 경제성장을 촉진하려 하면서 나 중에 버블이 붕괴하면 그 혼란을 연준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으리라 는 데 도박을 걸고 있었다.
8월에 버냉키는 연준의 노력을 한층 더 밀어붙이려는 계획을 발 표했다. 경제가 회복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도 양적완화로 은 행에 6,000억 달러를 더 투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업률이 여전히 높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2010년 말까지 계속 높으리라는 것은 이미 경제학자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연준의 고위층은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경제가 회복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통화를 한층 더 완화함으로써 회복 속도를 높일 수 있으리라 희망한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것이 일종의 보험 같은 정책이며 필 요하면 언제든 철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흔히 FOMC가 단기 금리를 설정한다'고 이야기한다. 더 정확하 게 말하면, FOMC는 단기 금리의 목표치를 설정하고 뉴욕 연은의 트레이더들이 그 목표를 현실로 만든다. 수십 년 동안 뉴욕 연은의 트레이더들은 증권을 사고팔아서 돈의 비용이 FOMC가 원하는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게 만들었다. FOMC가 금리를 내리기를 원하 면 뉴욕 연은의 트레이더들은 새로 만든 달러를 가지고 국채를 매 입한다. 그러면 국채가 연준으로 흡수되고 새로 찍은 달러가 시중 에 풀리는 효과가 난다. 더 많은 달러가 유통되게 되었으므로 돈을 빌리는 값이 낮아지고, 이는 단기 금리가 낮아졌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FOMC가 금리를 올리기를 원하면 뉴욕 연은의 트레이더들은 국채를 매각하고 시중에서 돈을 흡수한다. 그러면 돈이 더 귀해지므 로 빌리는 비용이 더 높아진다. 즉 금리가 오른다. 뉴욕 연은 트레이 더들은 피아노 조율사 같은 전문성과 기술로 이 일을 수행하면서 화 폐 공급이 FOMC가 요구한 금리 수준에 정확히 일치하도록 조절한 다. 낙후한 많은 인프라와 달리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연준의 시스템은 새것처럼 잘 돌아가고 매우 열심히 유지·관리되며 이것의 권한과 범위는 어마어마하다.
- 11월부터 연은 트레이더들은 월가 금융기관들의 준비금 계좌에 수천억 달러가 들어갈 때까지 이 거래를 계속 반복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프라 이머리 딜러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만 파는 것이 아니었다. 보유하고 있는 것만 팔아야 했다면 연준이 새로 창출할 수 있는 돈 의 양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프라이머리 딜러라고 해도 직접 보 유하고 있는 채권의 양은 유한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연준은 프라 이머리 딜러들이 중간상인 역할을 하는 공정을 만들었다. 이 공정은 연준 밖에서, 헤지펀드 같은 곳에서 시작한다. 헤지펀드 회사는 프라이머리 딜러가 아니지만 큰 은행에서 돈을 빌려 국채를 매입한 뒤 프라이머리 딜러에게 그 국채를 연준에 팔게 할 수 있다. 그러면 연 준은 새로 창출한 돈으로 대금을 치른다. 헤지펀드는 빌린 돈으로 수십억 달러어치 채권을 매입해 마진을 남기고 연준에 되팔아서 수 익을 올릴 수 있다. 이 공정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마법처럼 채권을 흡수하고 돈을 내어놓는다. 그리고 이 돈은 지급준비금 계좌에 안전 하고 건전하게 머물러 있지 않고 더 수익성 높은 새 거처를 찾아 은 행 시스템으로 흘러들어간다.
이 돈은 세계를 바꾸어놓았고, 주로 이 변화는 전에도 돈이 많았 던 사람과 기관의 행동을 바꿈으로써 일어났다. 양적완화로 창출된 새 달러는 물이 넘치는 수영장에 물을 더 부은 것처럼 기존에 있던 달러에 압력을 가했다. 이 압력은 연준이 이미 단기 금리를 제로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강해졌다. 본질적으로, 연준은 헤 지펀드, 은행, 사모펀드가 부채를 일으키도록, 그것도 더 위험한 방 식으로 일으키도록 부추겼다. 말하자면, 이 전략은 협공 작전이었 다. 한쪽에서는 새로 만든 돈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돈을 저축하려 는 사람은 모두 처벌하는 낮은 금리로 공격한 것이다. 월가는 이전 략에 대해 제로금리 정책, 줄여서 ZIRPzero interest rate policy라는 이름 을 붙였다. 경제학자들은 ZIRP를 금리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월가에서는 새로 창출되어 쏟아진 돈과 저금리의 결 합이 갖게 될 강력한 힘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헤지펀드와 투자자들은 이것이 세계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 는데, 바로 이들이 ZIRP 체제의 지시대로 세계를 재구성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 ZIRP의 영향을 이해하는 데는 ZIRP가 만든 세상에서 고수익에 목마른 헤지펀드 경영자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유용하다. 이 헤지펀드 경영자는 채권을 흡수하고 돈을 내놓는 공정에 참여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국채를 연준에 팔아 100만 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고 해보자(100만 달러는 헤지펀드로는 비현실적으로 작은 수익이지만 계산의 편의를 위해 이렇게 가정하자). 100만 달러가 들어왔을 때 이 헤지펀드 경영자가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현재의 금리다. 금리는 이들이 모든 것을 보는 렌즈다. 100만 달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내어줄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를 금리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장기 국채 금리가 4%인 세상에서는 그 돈을 국채에 가만히 넣어두 었을 때 매년 4만 달러를 벌 수 있고 여기에 리스크는 기본적으로 제로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헤지펀드 경영자를 찾아와서 돈을 국채에 묻 어두지 말고 자기가 밀고 있는 사업에 투자하라고 설득한다. 투자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매우 다양하다. 한심할 정도로 낙관적인 텍사스주 석유회사 경영자는 셰일가스를 채굴하기 위해 수압파쇄식 유정을 뚫으려고 한다. 마이애미주의 부동산 개발업자는 초호화 아파트를 지으려고 한다. '다각화'라는 말을 마법의 주문인 양 내내 이야기 하는 주식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와 파워포인트로 발표를 해가며 헤지펀드 경영자를 설득한다. 이들 의 머리 위에서는 4% 금리라는 칼이 늘 흔들리고 있다. 이들 모두 자신의 프로젝트가 10년 만기 국채에 안전하게 돈을 묻어두었을 때 의 수익률 4%보다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일은 이렇게 돌아갔다. 그런데 2010년부터는 일이 이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단기 금리가 너무 오랫동안 제로에 머물러 있었다는 말은 다른 금 리들도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양 적완화는 이 효과를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강화했다. 양적완화의 주된 목적은 돈을 안전하게 저축할 때 얻을 수 있는 장기적 이득이 매달 점점 더 낮아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뉴욕 연은 트레이더들은 이를 위해 특정한 국채를 매입했는데, 10년 만기 미국채 같은 장기 국채였다. 이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원래 연준은 단기 채권 거래 로만 통화 공급을 조절했다. 그런데 이번에 장기 채권을 사들인 이 유는 그렇게 하면 월가 투자자들이 돈을 안전하게 묻어둘 수 있었던 금고 하나를 닫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금융 붕괴가 시작되기 전인 2007년에는 돈을 10년 만기 국채에 저축할 때 5% 수익을 올릴 수 있었는데 2011년 가을에는 이것이 2% 수준으로 떨어졌고 여기 에 연준이 일조했다.
ZIRP의 전반적인 영향은 현금을 파도처럼 쏟아내고서 그 현금이 새로운 투자처를 맹렬히 찾아 나서게 만든 것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동태적 과정을 '수익률 추구'라고 부른다. 한때는 모호한 개념이었는데 이제는 미국 경제를 묘사하는 핵심 개념이 되었다. 돈을 가진 사람들, 그러니까 투자할 돈 수십억 달러를 가진 사람들은 제 로보다 높은 수익이라면 무엇이라도 잡기 위해 새로운 투자처를 찾으러 나섰다.
이제 한심하게 낙관적인 수압파쇄 만능주의자가 헤지펀드를 찾 아오면 전보다 훨씬 귀담아듣는 태도를 접하게 된다. 그들의 파워포인트 자료에는 뚫으려는 유정의 생산성이 위험하게 부풀려져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헤지펀드 매니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의향이 전보다 훨씬 더 크다. 안 될 게 무언가? 제로보다는 나은데. 마이 애미주의 호화 아파트 개발업자는 아파트의 수요를 엉성하게 예측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로보다는 나으니 기회를 주어보는 게 어 떻겠는가? 말쑥한 차림의 주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그의 포트폴리 오에 포함된 회사들이 실제 영업 성과에 비해 주가가 너무 고평가된 듯 보이지만, 제로 수익률보다는 낫지 않은가?
수익률 추구 압력은 높은 위험이라도 기꺼이 추구하며 고수익을 좇는 헤지펀드 매니저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연금기금 이나 보험회사처럼 투자 성향이 가장 보수적인 기관들도 수익률 추 구의 압력에 처했다. 이러한 기관들은 방대한 운용 자금을 보유하고 있고 이 자금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이 재무 건전성 유지에 핵심이었 다. 이자율이 4%인 세계에서는 가령 연금기금이 1,000만 달러만 국 채에 저축해도 모든 연금 청구액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4%씩 이자가 꼬박꼬박 들어왔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금리가 제로 가까이 로 떨어지면 이 연금기금은 갑자기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고, 따라서 수익률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제 연금기금 같은 보수적인 기관마저 수압파쇄식 유정과 호화 아파트 개발 프로젝트를 귀담아듣는다.
이것이 ZIRP가 자산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이유다. 사람들이 수 익률을 찾아 나설 때 그들은 자산을 구매한다. 이는 자산 수요를 증 가시켜 회사채, 주식, 부동산, 심지어는 미술품에 대한 가격까지 밀 어올린다.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은 양적완화의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양적완화의 목적이었고, 자산 가격이 높아지 면 '자산 효과wealth effect'를 일으키고 이 이득이 더 폭넓은 경제로 확산되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지리라는 기대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이러한 자산 효과가 일어나려면 제로금리가 우선 미국에서 가장 부 유한 사람들부터 이득을 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연준의 고위 의사결 정자들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미국의 자산 소유가 폭넓은 사람들 에게 분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준 자체의 분석으로도 그렇 다. 2012년 초에 미국의 가장 부유한 1%가 전체 자산의 25%를 소 유했고 하위 50%가 소유한 비중은 6.5%에 불과했다. 연준이 자산 가격에 불을 땠을 때,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별다른 기별이 없이 상층의 매우 소수에게만 이득을 주었다.
- 처음에는 ZIRP가 경제 전반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 고무 적인 징후가 있었다. 양적완화가 끝나고 몇 달 동안 실업률이 느리 지만 꾸준하게 떨어졌다. 하지만 버냉키 등이 희망했던 더 폭넓은 이득은 흐지부지 사라졌다. 11월에 양적완화가 시작되었을 때 실업 률은 9.8%였는데 2011년 여름에 양적완화가 끝났을 때도 실업률은 여전히 9%였다. 경제성장은 연준 자체의 추산으로도 여전히 미약하 고 불확실했다. 연준은 이러한 작은 이득을 위해 금융 시스템을 되 돌리기 어렵게 왜곡했다.
- 버냉키는 외곬이 되어 연준의 개입을 더더욱 강화하는 쪽으로만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번의 양적완화가 약간밖에 효과가 없었다면, 더 큰 양적완화를 하면 효과가 커지지 않을까? 은행들이 ZIRP의 압력으로 연준이 기대한 것만큼 돈을 많이 대출하지 않았다면, ZIRP 를 한층 더 강화하면 되지 않을까? 바로 이것이 2012년 여름에 버 냉키가 제안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2010년보다 더 큰 반대에 직면했다. 2012년 여름의 FOMC 회의에서 위원 12명 중 6명이 양적완화를 한 차례 더 하는 안에 의구심을 표했다. 이 중 세 명 만 반대표를 던져도 연준이 자신이 하려는 실험을 확신하지 못한다 는 것이 외부 세계에 드러나게 될 터였다. 버냉키는 이런 일이 일어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연준의 개입 강도를 높 이려는 계획에 대해 FOMC 내부적으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정치 적 작업에 들어갔다.
버냉키의 계획에 가장 강하게 반대한 사람은 연준 이사 세 명이었 는데, 이들은 버냉키의 계획을 늦추거나 막기 위해 공조하기 시작한 터였다.10 한 명은 ZIRP의 강력한 비판자로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적어도 FOMC의 닫힌 회의실에서는 그랬다). 그의 이름은 제롬 H. 파월 이었다. 2012년에 버락 오바마에 의해 임명된 파월은 FOMC에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 파월도 호니그가 제기한 것과 같은 우려를 많이 제기했다. 하지 만 파월이 그러한 우려에 도달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경로는 호니그와 달랐다. 그는 사모펀드의 세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위험한 부 채를 만들고 파는 것을 도우면서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연준에 합 류한 뒤에는 이러한 부채가 경제 전체에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호니그의 말과 달리 제롬 파월의 말은 사람들이 귀담아들었다. 사실 나중에 그는 연준 권력 서열의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그사이의 시기에 그는 양적완화의 잠재적 위험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경고를 표명한 사람이었다.
- 이번의 테이퍼 탠트럼은 ZIRP와 QE가 금융 시스템에 심어놓은 근본적 취약성을 드러내게 될 여러 차례의 시장 충격 중 첫 번째였 다. 금융 시스템을 시소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시소 한쪽에 는 주식이나 회사채 같은 위험한 투자처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10 년 만기 미국채 같은 매우 안전한 투자처가 있다. 돈은 대담한 투자 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양쪽을 왔다 갔다 한다. 2010년 이래로 연준은 돈이 10년 만기 미국채가 앉아 있는 안전한 쪽에서 점점 더 멀리 이동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QE의 핵심이었다. 즉 투자 자들이 시소의 더 위험한 쪽으로 돈을 옮기게 하는 것이 QE의 핵심 이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연준이 10년 만기 국채를 사들여서 그 것의 금리를 낮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냉키가 10년 만기 국채매입을 줄일 것이라는 암시를 주자 돈이 위험한 쪽에서 멀어져 안전한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시소 방향이 바뀌는 시점이 며, 연준의 개입이 더 극단적이었을수록 시소의 방향이 바뀌는 속도 가 더 급격할 것이다.
테이퍼 탠트럼의 가장 가시적 징후는 주식 가치의 갑작스러운 하 락이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연준 의장의 발언 직후 1.35% 가량 떨어졌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사실 부수적인 쇼에 불과했다. 진짜 위험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토대라 할 10년 만기 국채시장에 서 나타났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버냉키의 발언 이후 0.126%p 상승했다. 큰 상승 같아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초안전한 채권 치 고는 어마어마한 상승이고 매우 교란적인 움직임이었다. 이 금리는 몇 주 사이에 0.5%p가 더 상승해 버냉키의 기자회견 전날 2.2%였 던 데서 2.73%가 되었다. 대부분의 미국인에게는 이 움직임이 금융 위기나 시장 붕괴로 여겨지지 않았겠지만 월가에서는 위기의 시작 으로 여겨졌다. 돈이 안전한 쪽으로 움직여 위험한 투자를 했던 사 람들이 더 적은 돈으로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 질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위험의 균형은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국채 수익률이 오르면서 월가에 돈을 안전하게 묻어둘 수 있는 금고가 다시 생겼고 투자자들이 수익률 곡선의 저 멀리 위험한 쪽에 돈을 놓아둘 필요가 없어졌다.
- 이러한 사실이 명백해지자, 투자자들은 레버리지론이나 기업 정크본드 등 자신이 매입했던 위험한 자산들을 다시 점검했다. 이제는 그것들을 팔고 돈을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했다. 6 월 말과 7월 초에 그러한 일이 벌어졌고, 주로 QE로 풀린 돈이 홀 러 들어갔던 불가해한 시장들에서 벌어졌다. 부동산투자신 탁REIT: Real Estate Investment Trust 회사들은 모기지 금리가 조정되면서 보유 자산을 투매하기 시작했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돈이 빠져나왔 고, 빚을 진 기업들은 더 높은 금리에 직면했다.
- 기자회견을 하고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벳시 듀크는 집무실의 텔 레비전과 실시간 블룸버그 통신 터미널에서 테이퍼 탠트럼이 펼쳐 지는 것을 보았다." 국채 금리가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듀크는 가슴 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것은 연준이 한 일 전부를 한꺼번에 쓸어 없 애고 있었다. 연준이 쏟아부은 수천억 달러가 국채 금리를 낮추려는 것이었는데 그 금리 하락이 사라지고 있었다. 듀크는 이렇게 설명했 다. "그 시점에, 상황은 연준이 양적완화를 오히려 한층 더 강하게 지속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매입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시점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냥 계속해야 했고, 계속할 것이라고 시장을 안심시켜야 했습니다."
테이퍼링을 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 연준은 자산 매입에 꼼짝없이 묶여 있었고 양적완화는 미국의 기업 세계에서 새로운 수준의 부채를 일으키면서 자산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었다. 이것은 QE의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니었다. 이것 자체가 QE의 목적이었다.
연준 경제분석가 데이비드 라이프슈나이더 David Reifschneider는 2012년의 한 FOMC 회의에서 ZIRP가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채널 이 자본 비용, 자산 효과, 환율 이렇게 세 가지라고 명확하게 설명한 바 있다. 20 해석하면, QE가 부채 조달 비용을 낮추고, 자산 가격을 올리며, 달러 가치를 절하(그러면 수출이 증가한다)하리라는 것이었다.
- 성인이 된 제이 파월은 무언가의 중심부에서 작동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미국 권력의 장 중에서도 정부 영역과 민간 금융 영역이 딱 만나는 핵심 지점에서 경력 전체를 보냈다. 그가 거친 일 자리들은 워싱턴의 세계와 월가의 세계를 연결하는 자리였다. 그는 거대 자본과 거대 정부 사이에 일이 부드럽게 돌아가게 도와주는 해결사였다. 이 지극히 소수만이 아는 세계에서 그는 평판이 아주 좋 았다. 파월은 신중하고 판단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단단하고 듬직했다. 하지만 권력의 회랑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CEO나 선출직 공직자 등은 해본 적이 없다. 그는 그의 일을 흠 없이 해냈다.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사람들 사이에서 깊이 존중받았다. 파월이 2018년에 연준 의장으로 지명되었을 때 거의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있었다. 2017년에 <워싱턴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투자 매니저 마이클 파Michael Farr는 파월에 대해 '매도 비둘기도 아니다' 라고 말했다. 매와 비둘기라는 표현은 연준 내부에서 입장차를 지칭 하는 표현이다. 그 시점에 파월은 5년째 연준 이사로 일하고 있었고 연준의 정책과 관련해 매우 첨예하고 복잡한 논쟁에 관여했는데도, 마이클 파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파월을 고정된 신념에 집착하지 않 으며 일이 되게 만드는 데만 집중하는 사람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 는 실용주의자입니다. 경제적으로 좋은 것을 추구할 뿐 정치적인 것 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실 파월은 정치적인 것에 늘 귀를 기울였다. 그의 귀는 민감했 고 판단은 예리했다. 그가 밟아간 경로는 모든 단계에서 꼼꼼하게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를 배우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사람의 경로 였다. 로스쿨을 나왔기 때문에 '변호사'라고 불리긴 했지만 그의 경 력은 '변호사'라고 칭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로웠다.
1971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파월은 프린스턴대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의회의 전문위원이 되었다. 그다음에 조지타운대학교 로스쿨을 나와 뉴욕 연방 항소법원에서 로클럭을 했다. 그리고 아버 지의 발자취를 따라 기업 전문 변호사가 되기로 하고 '데이비스 포 크 앤 워드웰'이라는 로펌에 들어갔다. 하지만 서른한 살이 된 1984 년에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데, 법의 세계를 떠나 투자은행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파월은 딜런 리드 앤 컴퍼니'라는 회사에 들어갔고, 이로써 그가 기업 부채의 세계에서 막대한 부를 얻게 될 긴 경로가 시작되었다.
-  2012년 5월에 포프는 은퇴 자금을 CLO에 투자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문서를 하나 작성했다. 이 문서는 '백서'라고 불렸고 크레디 트스위스의 '크레디트투자그룹Credit Investment Group'에 의해 발간되 었다.
이 백서는 보수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기관투자자들이 직면한 난 제를 다루고 있었다. 연준이 금리를 제로에 고정한 상황에서 그들이 가진 현금으로 어떻게 수익을 올릴 것인가? 연기금과 보험회사로서 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지난 수십 년간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이 자 수입에 의존해 매년 지급해야 할 보험금과 연금을 지급하던 이들 기관은 제로금리 때문에 갑자기 자금 압박에 처하게 되었다. 포프는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쓴 백서는 애절하게 들리는 단순한 질문 하나로 시작했다. "10년 만기 국채의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 일 때 투자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다행히 포프는 이 딜레마에 해법이 있었다. 그의 백서는 기관 투자자들에게 한때는 너무 난해하 고 모호하다고 여겨져 기피했던 레버리지론에 투자를 고려해보라고 예의 바르게 제안했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할 의사가 있다면 기업 부 채 시장에서 중순위 기업 채권을 활용해 약 4.4%의 이자 수익을 대할 수 있었다. 가장 안전한 선순위 기업 채권은 수익률이 1.2% 밖 에 안 되는 것과 비교해보라. 가장 위험한 후순위 기업 채권에 투자 하면 수익률이 5.6%까지도 될 수 있었다.
이제까지 연기금은 안전한 회사채의 낮은 수익률에 만족했다. 그러한 채권은 마치 포드자동차의 '모델'처럼 표준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채권은 SEC가 감독했고 공개된 시장에서 거래되었 다. 요컨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레버리지론 계약은 매우 복잡했고 각기 매우 다른 조건과 조항이 들어가 있었으 며 규제 당국이 주식이나 회사채만큼 강하게 감독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CLO였다. 레버리지론을 표준화해서 연기금 이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든 것이다.
CLO의 핵심적 혁신은 그 꾸러미 안에 포함된 레버리지론을 표준 화한 방식과 관련이 있었다. 하나의 CLO 꾸러미는 리스크에 따라 다시 세 덩어리로 나뉜다. 여기에서 리스크는 그 꾸러미에 포함된 레버리지론으로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매달 이자를 상환할 때 이자 를 받는 줄에서 투자자가 어디쯤 서 있게 될지를 의미한다. 
- 몇 년이 지나고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위험한 기업 부채의 탑을 쌓았다고 월가의 트레이더들을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들 은 연준이 인센티브를 준 대로 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현상 중 어 느 것도 연준의 의사결정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어야 한다. FOMC가 가장 큰 규모의 양적완화를 진행하던 2013년에 댈러스 연 은행장 리처드 피셔는 명시적으로 이 정책이 주로 사모펀드에만 득 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이 파월이 있었던 칼라일그룹 같은 곳 말이다. 피셔는 높은 자산 가격이 버냉키가 기대한 방식대로 '자산 효과'를 일으켜 즉 주식, 주택 등 자산 소유자들이 부가 증가했다고 느끼게 되면 이들 의 소비가 촉진되어] 이것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높은 임 금으로도 이어지리라는 전망에 의문을 제기했다. 12
피셔는 그때 FOMC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 자 산 효과가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부자들과 시장을 잘 읽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버핏이나 KKR이나 칼라일이나 골드만삭스나 파월 같은 사람들에게만 그 효과가 있었 습니다. 아마 피셔 같은 사람들도요. 이들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돈을 빌려서 채권과 주식과 자산의 가격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수익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피셔는 이것이 연준이 바라 는 정도로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신나고 흥분되는 기회는 호황을 구가하던 주식시장에 있었다. ZIRP 시대의 희한한 현실 중 하나는 전체적인 경제성장은 비실비 실해도 자산 가격은 놀랍도록 높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애 덤스 같은 경영자들이 한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금융 기법을 활용 해 주가 인플레이션에서 돈을 벌 기회를 제공했다. 이 기법은 '자사 주 매입'이라고 불린다. 이것이 렉스노드가 추구하기 시작한 전략이 었고 그밖의 미국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사주 매입은 1982년에 합법화되었고, 말 그대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 가 현금을 써서 자신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득이 된다. 주식이 매 입되면 그만큼이 시장에서 빠지니까 남아 있는 주식의 가격이 올라 간다. 또한 많은 경우에 자사주 매입은 CEO 보수와도 관련이 크다. '주당순이익'을 기준으로 CEO 성과를 측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이다. 주당순이익은 기업이 한 주당 얼마를 벌었는지를 나타내는데, 자사주 매입으로 주식수가 줄면 주당순이익이 올라간다. 이런 식으로, 자사주 매입은 새로운 고객을 얻거나 제품을 혁신하거나 운영을 개혁하지 않고도 주당순이익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자사주 매입이 이미 그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할 때, 여기에는 그 회사의 경영진도 포함된다.
경영자와 주주에게 이렇게 득이 되는데도 자사주 매입은 1990년 대의 상당 기간 비교적 드물었다. 하지 않는 게 좋을 이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은 반드시 부채 비율을 증가시키게 되어 재무 건전성 지표를 악화시킨다. 가지고 있던 돈이 아니라 빌린 돈으로 자사주 매입을 하면 부채 비율은 더 높아진다. 하지만 돈을 빌리는 비용이 너무 싸고 주가가 너무 빠르게 오르고 있다면 이 전략은 쓰 지 않기가 어려워진다.
- 세상에서 제일 지루하게 들리는 기업들이 첨단 금융공학에 나서 서 돈을 빌리고 그 돈으로 자신의 주식을 사들여 주가를 밀어 올렸 고 종종 경영진의 더 높은 보수를 정당화했다. 경영진에게 회사의 실제 사업은 점점 덜 중요해졌다. 중요한 것은 부채 시장에 접근하 는 것과 상승하는 주가였다. 예를 들어, <포브스>에 따르면 맥도날 드는 2014년과 2019년 사이에 210억 달러를 채권으로 빌렸는데, 이 돈을 350억 달러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주주에게 190억 달러의 배당금을 지급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사용했다. 이 회사의 수 익은 310억 달러밖에 안 되었는데 같은 기간에 주주를 위해 500억 이상이 지출되었다. 
- 예보 부의장 시절 호니그의 일은 이러한 종류의 싸움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는 은행의 영업 범위가 제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은행이 더 많은 자본을 쌓아야 한다고 요구했으며 납세자의 돈으로 유지되는 안전망에 지나치게 의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호니그 는 좌파 쪽의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과 우파 쪽의 <월스트리트저 널> 사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지지를 받았지만, 워싱턴에서 실질적인 추진력을 얻지는 못했다.
전방의 싸움에서 고전하는 와중에, 호니그는 후방에서도 승산 없 어 보이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예보가 은행의 권력을 제한하려고 애쓰던 동안 연준이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2007년 에서 2017년 사이에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거의 다섯 배로 늘었다." 그 10년 사이에 연준이 설립 후 첫 100년 동안 찍어낸 돈의 다섯 배 가 될 정도로 돈을 많이 찍어냈다는 뜻이다. 이 모든 달러가 저축하 면 벌받는 제로금리의 세계로 들어갔다. QE로 풀린 3조 5,000억 달 러 각각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하기는 불가능하다. 이 돈은 수영장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즉각 더 큰 전체로 합쳐졌다. 하지만 수영장
물의 수위는 측정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 McKinsey Global Institute'는 연준의 정책이 기업 부채 시장에 돈이 쏟 아져 들어가게 함으로써 2007~2012년 동안에만도 기업들이 3,100 억 달러에 해당하는 이득을 얻었다고 추산했다. 같은 기간 동안 돈 을 저축한 가계는 이자를 얻지 못해 3,600억 달러에 해당하는 손해 를 보았고 연금기금과 보험회사도 2,700억 달러에 해당하는 손해를 본 것으로 추산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ZIRP 시대의 초기에 불과 했다.
돈이 시스템으로 밀려들어 오면서 모든 주요 금융기관이 수익률 추구에 나서도록 내몰렸다. 많은 월가 트레이더가 무슨 일이 벌어지 는지 명백히 알고 있었고 여기에 다음과 같은 별명을 붙였다. "모든 것이 버블 everything bubble."
연준의 정책은 너무나 강도 높고 광범위한 수익률 사냥 활동을 불러일으켰고 이로 인해 모든 곳에서 리스크가 누증되고 있었다.
- 양적완화는 주식시장에 인플레를 일으킬 목적으로 고안되고 실 행되었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다. 2010년 이후 10년 사이에 주가가 크게 올랐다. 연준이 개입 근거로 들었던 것처럼 전반적인 경제성장 은 약세였고 임금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정체되어 있었으며 해외에 심각한 위기 요인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2010년에서 2016년 사이에 77%나 상승했다. 천성이 다소 신랄한 어느 헤지펀드 트레이더는 실속 없이 부풀어 오르던 2016년의 주식 시장을 타이타닉호가 가라앉기 직전에 갑판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온 상황에 빗댔다. 갑판에 사람들이 몰린 것은 갑판이 너무 좋은 곳이어서가 아니라 거기 말고는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양적완화로 투입된 달러의 흐름을 추적 했을 때 수십억 달러가 멕시코, 폴란드, 튀르키예 같은 개도국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 국가는 미국보다 신용 위험이 더 크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돈을 빌려줄 사람을 유혹하려면 더 높은 이자를 제시해야 했다. 튀르키예는 2009년과 2012년 사이에 2005년과 2008년 사이에 빌렸던 것보다 여섯 배나 많은 돈을 채권 을 발행해 빌렸다. 튀르키예 대통령 레젭 타입 에르도간Recep Tayyip Erdogan은 빌린 돈으로 건설 붐을 일으켰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했 으며 2018년 경제성장률을 7%로 밀어 올렸다. 빌린 돈은 이스탄불 의 옛 쇼핑몰 옆에 새로운 쇼핑몰이 지어지는 데 일조했다. 새 아파 트, 새 교량, 그리고 사파이어라고 불리는 새 고층건물이 들어섰다. 건설 분야는 외화표시채권 덕분에 거의 560억 달러를 조달할 수 있었다.
지어진 쇼핑몰은 거의 빈 채로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지어졌다. 빌린 돈으로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차입은 부채 시장 에서 어떤 변화라도 생길 경우 그 나라 금융이 극도로 취약해지게 만들었다. 버냉키가 2013년에 연준이 양적완화를 테이퍼링할 수도 있다고 발표하자 시장은 즉각 조정에 들어갔고 투자자들은 위험한 국가의 채권에서 돈을 빼기 시작했다. 이후 3개월 사이에 튀르키예 의 채권 42억 달러어치가 매각되었다. 폴란드에서는 24억 달러어치 가 빠져나갔다. 외국 투자자들이 채권을 투매하면서 이들 국가의 화폐 가치가 떨어졌다. 튀르키예, 브라질, 멕시코, 폴란드의 화폐 가치 는 2013년의 테이퍼 탠트럼 동안 4~5% 가량 낮아졌다. 화폐 가치 는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지만(튀르키예와 브라질은 이미 평가절하가 진행 중이었다) 연준의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연준이 경 로를 되돌려 테이퍼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리라나 페소 같은 통화의 가치가 2% 뛰었다. 개도국 채권 수요가 다시 강해졌고 대출 시장이 되살아났다.
- 마이너스 금리의 논리는 양적완화와 동일하다. 투자자들이 위험 한 수익률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만, 그렇게 하는 것에 유인을 제공하기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 벌을 주는 방식을 사용 한다. 즉 돈을 저축할 때 말 그대로 벌을 받는 것이다. 마이너스 금 리 채권은 빠르게 효과를 낸 뒤 없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그다음에 매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투자자들이 이러한 채 권을 사겠다고 줄줄이 몰려든 것이다. 2016년에 마이너스 금리 채 권은 전 세계 총부채의 29%를 차지했고 7조 달러어치의 채권이 마 이너스 금리로 발행되었다.
- 연준의 조치와 시장의 요동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가려지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불안정을 설명 할 그날의 뉴스가 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기술주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뉴스는 페이스북과 구 글 같은 테크 기업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에 대한 정치계의 관심을 이 유로 들었다. 맞긴 맞았다. 테크 기업을 규제하려는 강력한 움직임이 실제로 세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주식시장 하락의 배경에 있는 더 큰 요인은 연준의 정상화 조치였다. 연준이 돈이 주식으로 몰려가게 하는 압력을 줄이자 투자자들은 가치가 가장 과대평가되어 있던 데 서부터 돈을 빼기 시작했고 여기에는 기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ZIRP 시절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너무나 많이 쏠린 영역이었기 때문 이다.
세계 경제가 둔화되기 시작하자 언론의 헤드라인은 트럼프 대통 령이 중국과 시작한 무역 및 관세 전쟁을 보도했다. 이것도 맞긴 맞 았다. 트럼프의 움직임은 전례가 없었고 시장에 충격을 주었으며 세 계 무역을 둔화시켜 투자자들이 공급망을 다시 검토하거나 재조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연준의 정상화 조치가 더 큰 요인 이었다. 연준에 더해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는 점도 중요했다. 2018년 12월에 유럽중앙은행은 자신의 양적완화 를 중단했다. 이렇게 금융 여건이 경색되자 글로벌 부채 시장에 형 성되었던 병폐가 드러났다. 중국이 이를 특히 잘 보여주는 사례였 다. 중국은 부채 위기와 오랫동안 중국 정부와 중국 중앙은행이 생 성에 일조했던 일련의 자산버블을 겪고 있었다. 연준은 2018년의 한 보고서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설명했다. "중국의 경제 성장 속도가 최근 둔화되고 있으며 지난 몇 년간의 빠른 신용 팽창 이 최근의 경제 둔화에서 대부자들이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중국의 민간 영역 부채는 2008년 이래 두 배가 되 어서 중국 연간 GDP의 두 배가 넘었다. 이렇게 막대한 수준의 부채 는 '역기능적인 움직임을 추동할 수 있었다. 돈을 빌린 사람들이 경 기 둔화 국면에서 상환불능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국과의 무역 전쟁은 중국 경제의 더 근본적인 문제가 값싼 돈 및 부 풀어 오른 자산 가격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려버렸다.
- 레포 금리가 9%를 돌파했을 때, 이것은 무섭기는 해도 추상적인 숫자로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숫자이기만 한 게 아니었고 여 기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 숫자는 실제 사람들 사이에 벌어 지고 있는 고투를 반영하고 있었다. 이 고투의 한쪽에는 JP모건같이 돈을 빌려주는 쪽, 레포 대출을 해주는 쪽이 있었다. 다른 쪽에는 영 업을 이어가려면 절박하게 레포 대출이 필요한 쪽이 있었다. 이들의 고투가 심화되면서 레포 금리가 점점 높아졌다. 금리가 9%를 쳤을 때, 이것은 누군가가 너무나 절박해서 전적으로 안전한 담보가 있는 초단기 대출에 대해 원래는 2% 정도인 금리를 놀랍게도 8%까지도 내겠다고 했는데, 더욱 놀랍게도 돈을 빌려주는 쪽이 그 전적으로 안전한 레포 대출을 8% 이자를 받고도 해줄 의향이 없어서 더 높은 9%를 원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이것은 빌려주는 쪽이 빌리는 쪽에 대해 매우 의구심을 가지고 있 었다는 뜻이었다. 은행들이 준비금이 고갈되었다고 인식한 것은 그 우려가 드러난 징후였지 그 우려를 만든 원인이 아니었다.
ZIRP 시대에 레포시장은 완전히 변모했다. 금융위기 전에는 주로 은행들이 이 시장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제는 현금이 너무 많아서 레 포시장을 전처럼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일군의 새로운 금융 플레이어들이 레포시장으로 들어왔다. 바로 헤지펀드였다. 헤지 펀드 등 비은행 행위자의 오버나이트 레포 론 거래 규모는 2008년에 서 2019년 사이에 두 배로, 금액으로는 1조 달러 규모이던 데서 2조 달러 규모로 늘었다. 2조 달러라는 숫자도 레포시장이 헤지펀드에 얼마나 중요한 것이 되었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헤지펀드는 레포 부채를 훨씬 더 큰 부채 구조를 만드는 토대로 사용했다. 레포시장에서 돈을 빌린 뒤 그 돈으로 시장에서 더 큰 베 팅을 하는 자금으로 사용한 것이다. 월가는 이 기법을 '레버리지 업' 이라고 부르는데, 가령 1달러를 빌려 10달러짜리 도박에 돈을 지불 한다는 뜻이었다. 헤지펀드는 오버나이트 레포론으로 빌린 2조 달 러를 사용해 시장에서 그 레포론 자체보다 훨씬 더 큰 포지션을 쌓았다.
- 연준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헤지펀드가 레포 대출을 전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는 것은 명백했지 만 그 이유는 명백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에 자금을 대기 위해 이 돈을 빌리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이것은 알 수 없었다. 헤지펀드가 은행만큼 강하게 감독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헤지펀드는 그림자 은행 시스템의 일부여서 예보나 도드-프랭크법 의 감독을 받지 않았다. 이러한 약한 규제의 근거는 헤지펀드는 충 분히 전문적인 내용을 잘 아는 투자자이므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 기 책임하에 자기 능력대로 거두는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2019년에 레포시장이 붕괴하고 몇 달이 지나서도 재무부는 헤지 펀드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완전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폭발 이후 잔해를 발굴하는 법의학 분석가처럼 실마리를 발견했다.
헤지펀드는 '베이시스 거래'라고 불리는 매우 특수한 거래를 늘리 고 있었다. 베이시스 거래는 연준이 수년 동안 양적완화와 ZIRP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시장 안정성 덕분에 가능해진 기법이었다. 베 이시스 거래는 인위적으로 강제된 안정성의 환경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 즉 격한 시장 요동이 발생하면 연준이 들어와 개입해줄 것이 라고 트레이더들이 믿을 때만 작동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이 만족 되면, 시장의 요동이 없는 한 헤지펀드는 수천억 달러를 빌려서 리 스크가 사실상 제로인 거래를 할 수 있다.
- 설계는 간단하다. 헤지펀드 트레이더는 금융시장에서 거의 언제 나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인, 약간의 거래 차익을 올릴 만한 구 석을 찾아낸다. 이 경우에는 미국채 현물 가격과 선물 가격 사이의 아주 미세한 차이다. 미국채를 오늘 사는 가격과 그것의 선물 가격 사이의 차이를 '베이시스'라고 한다. 헤지펀드는 국채 현물을 매수 하고 동시에 같은 양의 국채 선물에 대해 매도] 포지션을 취해서 베이시스만큼의 매우 작은 차익을 얻을 수 있다. 그 국채를 보유했 다가 만기가 되면 인도하고 베이시스만큼의 수익을 올린다.
이 대목에서 레포시장이 등장한다. 베이시스 거래의 마진은 본질 적으로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액수가 극히 작다. 수익성이 있으려면 헤지펀드는 이 거래를 수천 번쯤 되풀이해야 한다. 헤지펀드들 은 바로 이 반복 거래를 위해 레포시장을 이용했다. 매수한 국채를 담보로 레포시장에서 현금을 빌려 선물 거래 포지션을 한껏 쌓아올 리는 데 사용한 것이다. 어떤 헤지펀드는 50대 1의 비율로까지 레 버리지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진 돈 1달러당 50달러를 빌려 거래에 필요한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뜻이다. 헤지펀드는 미국채, 레 포대출, 미국채 선물의 상호 강화적인 세 축으로 위험의 삼각대를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1원짜리 동전을 수백만 개 주워 모으는 것처럼 쉬운 돈이었다. 헤지펀드는 이러한 거래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지 당국에 보고할 의무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에 재무부가 진행한 조사에서 그 규모를 추산해볼 수는 있었는데, 2014년에서 2019년 사이에 미국채 선물 시장에서 헤지펀드가 보유한 '숏 포지션의 가치가 2,000억 달러에서 거의 9,000 억 달러로 늘었다. 선물 시장에서의 숏 포지션은 이러한 베이시스 거래의 작동에서 핵심이었다. 그리고 베이시스 거래 시장은 '상대가 치형 relative-value' 헤지펀드라고 불리는 펀드들이 거의 장악했던 것으 로 보이는데, LMR 파트너스, 블루크레스트캐피털 매니지먼트 같은 생소한 이름을 가진 곳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레포 대출의 가격이 낮고 안정적인 동안에는 베이시스 거래가 잘 돌아갔다. 하지만 레포 대출의 가격이 올라가자 베이시스 거래의 수익성이 즉각 무너졌다. 헤지펀드는 선물 거래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레포 대출을 롤오버하는 비용이 높아진 상황에 처했다.
- 연준은 혁신적이거나 새로운 것 은 하나도 하고 있지 않았다. 연준은 금융 세계의 어느 곳이 화염에 휩싸였는지 보고서 새로 찍어낸 돈을 그쪽으로 보내 불을 끄는 일 을 하고 있었다.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동안 개척한 몇 가지 법적 도구들을 다시 사용하려 했다. 그중 하나가 특수목적회사SPV: special purpose vehicle다. 기본적으로 SPV는 연준이 재무부를 파트너로 삼아 연준에 부과된 대출 영역 제한을 피해갈 수 있게 해주는 페이퍼 컴 퍼니다. 3월에 있었던 전화 통화의 상당수는 새로운 SPV를 설립하 기 위한 워싱턴의 연준 변호사들과 뉴욕의 연준 금융팀 사이의 통화 였다. 기본적으로 각각의 SPV는 연준과 재무부의 합자회사와 비슷 하다. 이 회사는 10달러 정도의 비용으로 델라웨어에 법인 등록을 한다. 각각의 SPV에 재무부가 납세자의 돈으로 출자를 하고 연 준이 그 돈을 종잣돈으로 삼아 기업에 대출을 해준다. 재무부가 출 자한 1달러당 10달러까지 대출할 수 있다. 연준이 SPV에 직접 자금 을 대고 기업 부채를 매입하는 것과 같다. 바로 여기에 출자된 납세 자의 돈이, 연준이 제약을 벗어나 위험한 부채를 사들이면서 전에는 직접 대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영역에 대출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요소다. 손실이 발생하면 우선 이 납세자의 돈으로 메워지므로 연준이 자신이 사실은 위험한 대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법리 를 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파월은 이를 이 프로그램을 정당화 하는 근거로 제시할 것이었다. 
- 2차 대전 이래 미국이 공적 자원을 가장 많이 지출한 2020년의 구제금융은 그 이전 10년간 대체로 연준에 의해 조용하고 꾸준하게 형성되어왔던 경제 체제를 강화하고 고착했다. 구제 금융은 ZIRP와 QE 정책에 의해 크고 강력해진 곳들에 주로 들어갔다. 빌린 돈으로 경쟁사를 사들인 거대 기업들에, 미국 전체 자산 중 방대한 부분을 소유한 매우 부유한 사람들에게 빌린 돈으로 글로벌 마켓에서 위태 로운 포지션을 취하는 월가의 가장 위험한 금융 투기 세력에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크다고 다들 믿게 된 미국의 거대 은행들에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현대 역사의 어느 순간보다도 미국인들이 혼 란에 빠지고 사면초가에 몰리고 재정적으로 고통을 겪던 시기에 일 어났다. 이제껏 벌어진 일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이해하 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그 영향은 수개월, 수년, 아마도 수십 년에 걸쳐 스스로를 드러낼 터였다.
- 많은 중요한 면에서 2008년의 금융위기는 결코 끝난 적이 없었 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오랫동안 경제에 탈구를 일으킨 '긴 붕괴' 였다. 금융위기를 야기했던 문제들은 거의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 고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 금융 붕괴는 미국의 민주적 기관들이 가 진 역량의 긴 붕괴로 한층 더 다루기가 어려워졌다. 미국이 경제 문제의 해결을 연준에 의존했을 때, 이는 근본적으로 오류가 있는 수 단에 문제 해결을 의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준의 돈은 승자와 패자 사이의 거리를 더 넓혔고 더 큰 불안정성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취약해진 금융 시스템에 팬데믹의 타격이 닥쳤고 연준 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더 많은 돈을 새로 찍어내 이전의 왜곡을 증 폭했다.
2008년의 긴 붕괴는 2020년의 긴 붕괴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아직 다 치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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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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