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의 경제 EXIT

경제 2023. 12. 7. 11:45

- 일본 정부는 1998년 60세 정년을 의무화한 후, 2006년부터 단 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하여 2013년 65세로 높였다. 일본 기업은 정년 연장, 계속고용제도, 또는 정년폐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60세 퇴직 이후 계약직 등으로 더 낮은 임금을 주며 계속고용제도를 채택한 기 업이 약 80퍼센트다. 이제 70세 정년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정년 연장은 별다른 사회적 갈등을 낳지 않았다. 일손부족 문제도 심각했 지만, 정부가 오랫동안 준비를 했고 노사의 이해가 커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2013년 이후 아베노믹스(양적완화, 재정지출 확대, 성장전 략 등으로 장기침체를 극복하고자 한 일본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를 배경으로 경기가 회복되어 청년실업률이 뚝 떨어진 것도 도움이 되었다
일본과 정책은 비슷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정년연장에 대 해 기업계는 비용 부담을 들어 반발했지만, 가장 큰 우려는 정년연장이 실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의 정규직 등 일부 노동자들에게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일본과 달리 한 국은 직장에서 수십 년을 일하고 정년을 맞는 노동자들이 적다. 전체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약 6년으로 일본의 절반에 불과하며 중소 기업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낮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청년들이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중년 노동자들에게 정년연장은 신규고용을 줄 여 오히려 나쁜 소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노동시장에는 임금의 연공성(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구조)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 문제다.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한국에서 30년 이상 근속한 노동자들의 연봉은 입사 때와 비교할 때 3.3배로 높아지는데, 일본은 2.5배, 유럽은 1.7배로 낮다. 연공 급(근로자의 근속 기간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임금체계)이 강력하니 근속 연수가 높을수록 임금이 생산성에 비해 더 빨리 기업들은 노동자들 이 50대가 되기도 전에 퇴직의 압력을 넣고, 정년연장의 부담도 더욱 커진다. 연공급의 원조인 일본은 오랫동안 임금체계를 개편해왔고 2000년대 후에는 일본식 직무급인 역할급(조직에서 직원의 역할에 따라 역할등급과 임금을 정하고, 그 이행 정도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제도)이 확 산되었다.
- 한국의 정년연장이 기득권층에게만 이득이 되지 않으려면 연공급 의 개혁 혹은 임금피크제 실시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정년이 보장되 면서도 처우가 좋은 공공부문의 솔선수범이 요구되고 있다. 예를 들 어 일반공무원 하급직은 그리 높지 않지만, 2018년 전체 공무원의 평 균연봉은 약 6300만 원이었고 공기업 전체의 평균연봉은 7843만원 에 이르렀다. 반면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전체 노동자들의 평균연봉은 3634만 원이었고 상위 10 퍼센트의 경계는 6950만 원이었다.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엄청나다고 하지만 청년들 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셈이다.
-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 Capital et idéologie》에서 사회는 저마 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며 모든 사회의 역 사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역사라고 썼다. 그는 또한 불평등 변화의 주 된 원인이 정치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바야흐로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에서 세금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지형이 급격히 변화했 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물론 부자증세와 포스트코로나 시대 경제 의 미래는 결국 정치에 달려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바이든 정부는 정치 적 반대와 난항 속에서 계획만큼 현실에서 계획했던 증세를 실현하 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 이익 이 10억 달러 이상인 대기업에 대해 실효법인세율을 최소 15퍼센트 적용하고 탈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정반대 방향으 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에 필요한 것은 역시 새로운 세금의 경제학과 증세를 위한 정치적 노력일 것이다.
- 따라서 불평등이 심각한 현실에서 공정한 경쟁이란 허구에 가깝 다. 날 때부터 출발선이 다르고 또 누군가는 경기장에 서기도 힘든 상 황에서 형식적 공정만 밀어붙이면 결과의 불평등이 더 심각해질 가 능성이 크다. 게다가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능력주의 신화는 불평등을 정당화할 것이다. 결국 경쟁지상주의와 시험에만 기초한 능력주의는 불평등의 세습과 기회 격차를 강화해 실질적 공 정을 해칠 수 있다. 평등 없는 공정의 한계다. 진보가 공정 개념에서 도 약자에 대한 배려와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는 이유다.
- 1980년대 이후 주류가 되었던 보수적인 경제 학, 즉 감세와 규제완화로 기업과 부자들의 소득이 증가하면 성장이 촉진되고 그 이득이 모두에게 퍼져나갈 것이라는 낙수효과 주장은 이제 힘을 잃고 말았다. 실제로 지난 50년 동안의 선진국들의 주요 감세정책을 연구한 한 실증연구는 감세가 불평등을 심화시키지만 성 장을 촉진하는 증거가 없다고 보고한다. 사실 보수적인 경제정책이 득세하던 시기에 심화된 자본과 노동 그리고 부자와 빈자 사이의 불 균형이 총수요를 억제하고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미쳐 경제의 장기정체를 불러온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제 경제학도 정책결정자도 과거에 대한 반성에 기초해 이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여 각국은 엄청난 재정확장 을 실시했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소득과 일자리를 잃고 불평등이 심 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었다. 팬데믹 경제위기는 특히 케인스 주의적인 큰 정부가 귀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제학계에서는 글로 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긴축을 지지하는 목소 리가 컸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며 긴축의 재앙적 결과가 뚜 렷해졌고 불황기 재정확장을 강조하는 주장이 경제학에서 대세가 되 었다.
- 팬데믹은 현실에서 이러한 주장을 실현하는 무대가 되었다. 실제 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 덕분에 전염병과 봉쇄로 인한 경제위 기의 충격이 완화될 수 있었다. 특히 시장소득의 불평등은 악화되었 지만, 한국도 그랬듯이 여러 국가에서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소득분 배가 개선되기도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2022년 한국의 대선에서 불평등 문제가 쟁점이 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방역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에 대한 재정 지원이 많이 모자랐는데도 국가부채비율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컸다. 새 대통령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이야기했지만, 빈 곤층에 대한 몇몇 지원 확대 외에는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새 정부가 고장난 레코드판과 같은 낡은 경제정책으로 회귀하여 불평등이 더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는 세계적인 변화와도 배치되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바이든 정 부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강화하는 법안과 함께, '더 나은 재건'이라 는 구호 아래 어린이의 무상교육을 포함하는 1.8조 달러 규모의 사회 복지 공공투자계획을 추진했다. 이와 동시에 1억 달러 이상 거대부 자들에게 미실현 투자이익을 포함한 모든 소득에 대해 최소 20퍼센 트의 소득세를 물리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의 기시다 정부도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우며 취약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하청 기업의 단가인상을 대기업이 수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과연 지금 한국에는 불평등과 싸우는 경제학과 정치가 어디에 있는지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이다.
- 실제로 공식적인 물가상승률 수치보다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가 더 빨리 뛰어 소득계층에 따라 효과가 다른 '인플레이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 이는 부자들에 비해 저소득 층의 예산에서 생필품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예 를 들어 미국에서 팬데믹 이후 저소득층의 예산에서 비중이 큰 가솔 린이나 식료품 가격이 급등한 반면, 고소득층의 예산에서 비중이 높 은 서비스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아지지 않았다. 또한 이렇게 인플레 이션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효과는 불황기에 더욱 커진다고 보고된 다. 게다가 명목임금의 상승이 급속한 물가상승을 따라가지 못해서 전반적으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면 소득분배와 불평등이 악화될 가능성 이 크고, 치솟는 물가를 잡지 못하면 시민들의 정치적 불만도 커질 것 이다. 
- 적극적으로 확장적 통화정책을 펴고 돈을 뿌려서라도 경 제의 붕괴를 막지 않으면 심각한 불황으로 인해 저소득층 노동자들 의 형편이 더욱 어려워지고 소득분배가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중앙은행은 불황을 막고 경제를 살리는 과정에서 자산불평등이 높아지는 것과 불황이 심화되어 소득불평등이 악화되는 것 사이의 딜레마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통화정책은 불평등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경제학자들은 실증연구를 통해 어렵지만 중요한 이 질문에 대 답을 제시한다. 장기적인 자료를 사용한 연구들은 전반적으로 긴축 적 통화정책이 경기를 악화시키고 임금상승을 둔화시켜 소득불평등 을 심화시켰다고 보고한다. 하지만 유럽 국가의 상세한 행정자료를 사용한 최근 연구들은 확장적 통화정책이 저소득층의 노동소득과 함 께 부자들의 자본소득을 크게 높였다고 보고한다. 특히 양적완화나 초저금리와 같은 정책은 심각한 경제위기와 불황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와 동시에 부의 불평등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가들의 연설에서 불평등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이는 한 편으로 심화되는 불평등에 대한 비판을 중앙은행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저금리와 저인플레가 지속되어 인 플레에 대한 중앙은행의 우려가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야 흐로 상황은 크게 변했고 인플레의 급등에 직면하여 불평등에 관한 중앙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과연 긴축적 통화정책이 현재 의 인플레이션 억제에 얼마나 효과적일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불평등에 대응하기에는 무딘 수단이며 소득분 배 문제에는 재정정책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법인세 인하가 현실에서 성장률을 높이지 못한다면 세수감소를 낳아 서민에게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내세워 지출을 통제하고 서민을 위한 예산을 크게 늘 리지 않은 중요한 이유로 부자감세가 지적되었다. 예산정책처에 따 르면 이명박 정부 시기의 감세로 인해 2010~2012년 3년간 약 17조 5000억 원의 세수가 줄어들었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도 마찬가지다. 2022년 11월 국회예산정책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퍼센트에서
22퍼센트로 낮추기로 한 정부의 원래 법인세 인하계획으로 세수가 2023~2027년 누적 약 33조원 감소할 것이라 보고했다. 
이러한 세수감소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와도 반대되며 특히 다른 증세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사회복지 지출을 제약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새 정부의 원래 법인세 인하계획의 혜택을 보는 기업은 신고기업의 약 0.01퍼센트인 103개의 극소수 대기업이었다. 거센 비판을 배경으로 결국 국회에서 여야는 2022년 12월에 2023년 법인세를 모든 구간에서 1퍼센트포인트씩 낮 추기로 합의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한국의 법인세가 높다 는 것을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는 이유로 들었다. 실제로 중앙정부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G7 국가 중 프랑스 다음으로 높고 OECD 국가 중에서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지방세까지 포함한 법인세율은 한국이 G7 국가 평균과 비슷하며 독일이나 일본이 한국보다 높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실 기업에 중요한 것은 명목세율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과 비교 하여 법인세를 얼마나 내는지를 보여주는 실효세율이다. 법인세 실 효세율은 각종 세금공제로 인해서 명목세율보다 낮은데 국제적으로 비교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버클리대학교 주크만Gabriel Zucman 교수 등은 최근 150개국의 자본과 노동에 대한 실효세율 장기데이터 를 발표했다. 31 이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자본에 대한 실효세율은 역시 G7 국가 중 중간 수준이었다. 법인세가 조금 높다 해도 다른 국 가로 기업이 쉽게 옮겨가지 않겠지만, 법인세 부담이 국제적으로 크 다는 것도 분명 사실이 아니다.
- 낙수효과라는 말은 미국의 코미디언 윌 로저스Will Rogers가 1932년 대선에서 루스벨트에게 패배한 공화당의 후버 대통령을 비 판하는 칼럼에서 처음 썼다. 대공황 시기 공화당 정부는 돈이 아래로 흘러가길 바라며 부자들에게 소득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는 기술 자였던 후버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은 알지만 돈은 사실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것을 모른다고 꼬집었다. 1980년대에 되살아났지만 실 패하고 말았던 이 낡은 아이디어가 한국의 새 정부에서 다시 등장한 것은 보수의 사상과 정책의 빈곤을 보여주는 듯하다. 대통령은 법인 세 감세에 관해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그럼 하지 말까?"라고 반문했 다고 한다. "하지 마시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대량실업을 가져오지 않는다 해도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은 크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새로 일자리를 찾아도 전보다 임금이 낮을 가능성이 크고, 자동화가 노 동자들의 몫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MIT 아세모글루 Kamer Acemoglu 교수의 연구는 최근 불평등 심화의 주요한 원인으로 자동화를 지목한다. 그는 미국에서 로봇에 노출된 산업 비중이 큰지 역에서 고용률과 임금상승률이 낮았다고 보고했다. 또한 다른 연구 에 따르면 자동화 진전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한 산업에서 저학 력 노동자와 같이 루틴 일자리에 많이 노출된 노동자 집단일수록 지 난 40년 동안 임금상승률이 낮았다. 이 연구는 자동화로 인한 직무 대체가 임금불평등 변화의 약 절반을 설명한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 아세모글루 교수와 존슨Simon Johnson 교수의 저서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는 오랜 역사를 돌아보며 기술혁신으로 모두가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정부의 진보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노동을 대체하는 과도한 자동화로 이어질 수 있는 최근의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방향에도 우려를 표명한다.
오래 전 마르크스는 기계 자체보다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이 문 제라고 비판한 바 있다. 급속한 인공지능의 발전 앞에서 우리가 던져 야 할 질문은 어떻게 실업이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가능성을 최소 화하는 방향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할 것인가다.
- 일본 남성은 50세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생애미혼율이 2015년 약 23퍼센트나 되었는데 저소득층의 미혼율이 훨씬 더 높았다. 한국 도 일본을 급속히 쫓아가고 있어서 2025년에는 전체 남성의 약 5분 의 1이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할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힘겹게 결혼 을 해도 가난을 물려주기 싫고 아이가 자라서 나만큼의 삶도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이를 가질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 다. 통계청의 사회조사를 보면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 질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이 2009년 48.3퍼센트 에서 2019년 28.9퍼센트로 감소했다. 국민건강보험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12년 동안 분만 건수는 감소했지만 그중 저소득층의 비 중이 뚜렷이 줄어든 반면, 상위 30퍼센트 이상 고소득층의 비중이 증 가했다. 이제 결혼도 출산도 고소득층이 누리기 쉬운 사치품에 가까 워지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세대와 여성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저출산대책을 전환했는데 이는 바람직한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러나 결혼과 출산을 높이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부와 소득의 불평 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또한 청년의 일자리를 위한 공공투자와 교육을 확충하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사회안전 망도 강화해야 한다. 흔히들 부의 대물림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 러나 가난은 대물림조차 되지 않는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2022년 6월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은 역시 그와는 반대 방향이었다. 정부는 민간주도 경제성장을 강조하며 법인세 최 고세율 인하 등의 감세를 제시했다. 이는 기업과 부자에 대한 감세가 고용과 성장을 촉진하여 그 이득이 서민에게도 돌아갈 것이라는 '낙 수효과' 경제학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학 연구와 역사적 경 험은 그것이 환상임을 보여준다. 이 흘러간 주장이 2020년대에 되살 아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게다가 경제부총리는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며 임금인상을 억제하라고 이야기하여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사업체노동 력조사에 따르면 2022년 4월 전체 근로자의 임금총액이 전년 동월 비 2.7퍼센트 상승하여 1분기보다 크게 낮아졌고 소비자물가상승률 4.8퍼센트에 비해도 낮았다. 결국 실질임금은 하락했고 일각에서 우 려하는 임금-물가상승 악순환의 가능성도 크지 않았다.
- 밀려오는 충격에 대응해서 다른 선진국들은 재정확장을 통해 거 시경제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시민들의 삶을 지원하며 증세를 추진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은 공공투자와 증세를 위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고 일본도 에너지요금 보조와 임금인상을 지원하 기 위해 대규모의 인플레이션 종합대책을 도입했다. 독일은 수차례 에 걸쳐 에너지보조금을 도입하고 전기와 가스가격 상한제를 실시하 며 12월에는 가구의 에너지요금을 정부가 대신 내주기로 했다. 프랑 스와 이탈리아 등도 에너지가격 급등에 대응해 재정을 통해 시민들 을 지원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높은 수익을 올 린 에너지기업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하여 재원을 마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긴축적인 통화정책과 함께 확장적인 재정정책 이 함께 도입되는 이러한 현실을 "거시경제정책의 레짐체인지 Regime Change"라고 불렀다. 이는 과거 보수적인 입장이 득세했지만 최근 크게 변화한 거시경제학의 흐름을 반영한다.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 처해 불황의 상처가 깊으면 장기적으로 생산성 상승과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거시경제학의 새로운 연구에 기초하여 큰 정부가 귀환한 것이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재정지출 규모도 다른 선진국들보다 훨씬 작았고 2023년의 재 정정책도 긴축적이었다. 경기변동으로 인한 효과를 통제해 재정정책 이 확장적인지 아닌지 잘 보여주는 구조적 재정수지를 보면 한국은 2023년에도 구조적재정수지가 GDP 대비 0.3퍼센트 흑자로 전망되 었다. 2023년 큰 세수감소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0.2퍼센트 흑자 로 전망되어 확장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들은 대폭 적자 가전망되어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하게 안 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 Mark Twain의 말이다. 경제학에서 그런 생각 중 대표적인 것은 긴축정책일 것이다. 오랫동안 거시경제학의 합의 는 경기변동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재정정책은 효과적이지 않고 과도 한 정부부채는 경제에 나쁘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은 경제회복을 위한 적 극적인 재정확장에 실패했다. 2010년 때마침 발표된 하버드대학교의 라인하트 Carmen Reinhart 와 로고프 교수의 연구는 '선진국의 정부부채 가 GDP의 90퍼센트를 넘으면 성장률이 크게 하락한다'고 보고해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엑셀 실수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고, 불황으로 정부부채비율은 높아질 수 있으니 인과관계 또한 뚜렷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정건전성'과 '긴축'이라는 보수적 교리는 강력했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이러한 교리를 따라 긴축을 수용한 그리스의 경우, 경제가 붕괴하고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2012년 국제통화기금의 연구는 유럽의 교훈으로부터 긴축이 가져다주는 심각한 악영향을 인정했다. 또한 제로금리 수준으로 금리가 낮아진 현실에서 위기에 대응하는 통화정책의 한계가 뚜렷해 지자 재정정책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긴축의 논리가 약해졌다. 이제 거시경제학계에도 경제침체기에 재정확장이 효과적이며 경제성장 률이 국채금리보다 높다면 일시적 정부부채 증가를 크게 우려할 필 요가 없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 경쟁의 약화는 또한 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을 하락시켜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2000년대 이후 미국경제의 노동소 득분배율은 빠르게 하락했는데 여러 실증연구는 이러한 변화가 소위 슈퍼스타기업에서 뚜렷하며 산업의 독점 심화와 관련이 크다고 보고 한다. 미국 노동시장에서 수요독점의 심화도 임금상승이 정체되고
불평등이 심화된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이제 독점에 대한 비판이 정치의 좌우를 막론하고 거세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미 2019년 9월 자본 주의의 리셋이 필요하다고 선언하고 독점에 기초한 지대자본주의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국제비교 연구에 따르면 재벌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한국 의 마크업은 1980년에서 2016년 사이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크게 높 아졌고, 그 정도가 미국과 비슷할 정도로 높았다. 112 몇년 전부터 한 국에서는 '카카오'와 '네이버' 그리고 배달업체 등 플랫폼 기업의 시 장지배와 노동억압에 대한 우려가 커져왔다. 제대로 된 역동적인 자 본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경제에도 독점을 깨 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 글로벌 금융위기와 팬데믹으로부터 거시경제학이 얻은 분명한 교훈은 긴축과 불평등이 경제에 나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기에 2022년 3월 대통령선거를 맞은 한국에서 후보들은 어떻게 불평등을 개선하고 어떤 재정정책을 펼 것인지 비전을 제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이 현실에서 어떻게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을지, 윤석열 후보는 소득분배 개선을 위해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뚜렷하지 않았다. 심상정 후보는 시민최저소득과 전국 민 소득보험을 제시했는데, 여러 공약에 대한 검증과 논쟁은 제대로 발전되지 못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한 지출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적었고, 정부부채비율 상승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가계부채비 율은 크게 높아졌다. 여야가 모두 손실보상을 이야기했지만 말만 무 성했다. 202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새로운 미래와 재정의 역할에 관해 후보들의 격론을 기대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실망스러웠다. 한 국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은 아직 갈 길이 멀고도 멀다.
- 인플레이션의 책임을 기업에 묻는 주장은 인플레이션에 관한 전통적 관점과는 크게 다르다. 주류경제학계와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과도한 재정확장과 같은 총수요 확대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 며 임금-물가 악순환을 우려해 노동시장을 식히기 위해 금리를 인상 해왔다. 그러나 임금상승이 최근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는 않았으며 현재는 임금-물가 악순환의 근거도 희박하다. 실제로 여러 선진국에 서 팬데믹 이전의 추세와 비교할 때 현재 이윤은 더 높아졌지만 임금 은 하락했다.
- 이윤주도 인플레이션을 주장하는 이들은 특히 공급망 충격과 이윤 상승으로 인한 최근 인플레이션에 금리인상으로 대응하는 것은 효과 적이지 않으며 경기침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부를 것이라고 비판한 다. 대신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시행되었던 전략적 가격통제와 같은 시 장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나 가격인상에 대한 소비자들의 저항이 필 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이에 회의적이다. 그 러나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통제를 도입했고 영국도 빵 과 우유 같은 필수품 가격을 통제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해외의 진보파가 보기에는 정부의 말 한마디에 라면 가격이 하락하는 한국의 현실이 부러울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경우 기업들의 이윤마진이나 마크업 변화 등 최근 인플레이션에 기업이윤 증가가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 상세한 분석이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임금상승을 억제하는 식으로 인플레이션의 부담을 노동 자에게만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기업에도 따져 묻는 일이 필 요하다는 것이다.
- 결국 일본에서는 생산성 상승의 과실이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못 해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했고, 아베노믹스 이후에도 임금상승이 부 진해 노동자의 몫은 2017년까지 더욱 줄어들었다. 이는 노조조직률 이 하락하고 구조조정이 확대된 노동시장의 변화와 관련이 크다. 일 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1990년 약 20퍼센트에서 2018년 약 38퍼센트 로 계속 높아졌고 임금불평등도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소비를 억누르고 총수요를 둔화시켜 경제 회복과 성장을 가로막은 한 요인 이었다. 그러고 보면 일본경제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거 시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일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성장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한국도 일본 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피할 수 없는 흐름인 고령화 의 악영향을 과도하게 겁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험은 일본화라는 유령을 피하기 위해 분배의 개선과 총수 요 확대, 생산성 상승을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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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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