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속성

경제 2022. 12. 28. 19:19

- 노벨상 수상자들은 보통 한 가지 특정 이론이나 통찰 또는 일관성을 갖춘 여러 가지 통찰, 심지어 딱 하나의 특정한 논문으로 상을 받는다. 새뮤얼슨의 경우에는 수학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경제학을 다시 쓰는 일이 그의 공적 자체였고, 물리학자와 수학자가 개발해 놓은 생각을 빌려 올 때도 많았다. 예를 들어 금융 시장을 이해하는 방편으로 (물리 학에서 빌려 온) 브라운 운동이라는 개념을 도입했고, (19세기 화학자들이 개발한) 앙리 루이 르샤틀리에Henry Louis Le Chatelier 원리의 한 버전을 가져 와서 시장 균형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 물론 이러한 성격의 작업을 새뮤얼슨 혼자 다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핵심적인 공헌 중 다수를 그가 이룩했다.
또한 새뮤얼슨은 수학이 강제하는 규율 탓에 현실 세계의 문제를 이 해하는 경제학의 적합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의 교과서는 경제 모형과 그 맞은편의 현실을 잇는 교량 역할을 했고, 여러 세대에 걸쳐 대학 신입생들의 견해에 영향을 미쳤다. 재치 넘치는 그의 다음 발언도 유명하다. "나라의 법률이나 정교한 최신 국제 조약을 누가쓰는지는 관심이 없다. 나는 나라의 교과서만 쓰면 된다.”
- 많은 사람들이 새뮤얼슨의 성공에서 그의 천재성이 잘 드러난다고 여 긴다. 저널리스트 실비아 네이사sylvia Nasar는 《뉴욕타임스》에 실은 글에서 "새뮤얼슨은 30세의 나이에 벌써 자기 세대에서 가장 총명한 이론가라는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라고 썼다. 새뮤얼슨의 사망 기사에서 《뉴욕타임 스》는 그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학술 경제학자”라고 일컬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무렵에 경제학에서 수학 혁명이 일어날 때가 무르익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새뮤얼슨이 아니었다면 다른 누가, 아니면 여러 사람이 그 일을 했을 것이다(이것은 평범한 사람들은 애로와 드브뢰의 1954년 증명에서 한 문장의 절반 에 대해서조차 구문 분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묘사하는 시장 은 고도로 추상적이어서 솔직히 말해 '균형의 존재' 논문에서 묘사한 것 과 비슷한 시장이 한 번이라도 존재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않 았다. 애로와 드브뢰마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부분적으로 그 이유는 이 론이 현실과 딱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복잡하지 않고 명료한 일반 이론 을 구축하려는 욕망 때문이었다(아마 이것은 경제학자들이 품고 있던 물리 학에 대한 부러움의 한 편린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하면서 우아한 모형을 추구했던 좀 더 실제적인 목적 또 한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위해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포착하는 데 충분할 만큼만 복잡한(그러나 그 이상으로는 더 복잡하지는 않은) 모형을 원한다. 건축가는 결코 스트레스 시험을 하려고 고층 건물과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컴퓨터 모형을 먼저 만들어 보고 그다음에는 아마 180센티미터 높이의 실물 모형을 만들어 풍속 시험용 터널에 집어넣을 것이다. 그런 모형들은 진짜 고층 건물에 비하면 얼토당토않은 캐리커처지만, 고층 건물이 허리케인에 넘어질지 여부를 알아내는 데 유익한가 하는 점에서는 충분히 실물과 유사하다. 어떤 의미에서 애로와 드브뢰의 모형은 임의의 시장이 사회의 자원 과 욕망이 서로 정확히 일치하는 행복한 상태에 도달하도록 보장해 줄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시장의 스트레 스시험이었다.
- 이 모든 이야기에서 요점은 우리가 일반 균형 이론의 세세한 내용을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이 일반적인 주제는 그대로 유지 한 채 커다란 이행을 겪었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1950년대 말 확고하게 수학적인 것이 되었다. 그 후로 수학적 도구들은 세계를 더 정확하고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일뿐만 아니라,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취지에서도 유익한 것으로 드러났다.
-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으로부터 19세기 세속의 철학자들에 이르는 동안, 경제학자들은 세계의 사태에 대해 추론할 때 처음에는 말 (언어)을 사용했다. 그다음에는 말과 수학을 같이 사용하면서 명료하게 추론할 때도 있었고 논점을 모호하게 흐릴 때도 있었다. 이어서 그들은 20세기 중엽에 수학 혁명에 돌입했다. 이것이 경제학을 바꿔 놓았고, 그 로 말미암아 경제학이 우리 삶을 바꿔 놓을 조건들이 갖추어졌다.
- 버너스리는 지식을 서로 연결되는 네트워크라는 개념으로 이해했 다. 바로 이 특징 때문에 웹은 종국적으로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 연결 되는 커뮤니티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만일 웹이 이와 다른 구조로 설계되 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가령 정보를 주제나 논지별로 묶는 도서 관식 목록에 더 가깝도록 개념을 잡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와 달리 웹에서는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허브와 연결의 집합으로 정 보가 조직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웹 설계자들은 종국적으로 원자보다 작은 입자들에 관한 사실들이 놓일 자리에 시장 참여자들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웹의 초창기에 그것이 시장을 어떻게 바꿔 놓을 것인가를 내다본 선견지명이 하나 있었는데, 웹이 제품의 품질에 관해서 더 나은 정보를 소 비자들에게 전달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견해였다. 이러한 생각은 웹 이 정보 관리 시스템으로 탄생했다는 점에서 아마 놀라운 일은 아닐 것 이다. 이처럼 인터넷을 시장 조언자로 전망하는 논지는 정치학자 제 임스 스나이더James Snider와 과학 저술가 테라 지포린Terra Ziporyn 부부가 1992년에 저술한 《미래의 상점Future Shop》에 어느 정도 상세하게 설명되 어 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웹이 개인별 맞춤식 소비자 보고서consumer Report와 같은 목록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형성하는 광대한 그물망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가령 비디오카세트리코더나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을 사야 할 때, 그러한 목록들이 어떤 제품을 골라야 할지를 개인의 필요에 맞게 추천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웹 기반의 상거래가 도래할 것임을 예측했다 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시야는 제품 정보의 시장에 상당히 국한 되어 있었다. 제품에 관한 개인별 맞춤식 추천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들 이 출현할 것이고, 소비자들이 그들로부터 그러한 정보를 구매할 것이 라고 상상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한 서평자는 이 두 사람 의 논거를, 적어도 “약간은 과장된 말들이 있기는 하지만 "의도가 좋 고, 추론도 원만하며, 의도적으로 도발적"이라고 평했다. 좀 더 회의적 인 태도를 취한 학계 서평자는 두 사람이 제안하는 내용에 "심각한 오 류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래의 상점>이 인쇄되던 바로 그때, 이미 인터넷 사용자와 웹 페이지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좀 더 직접적인 판매 플랫폼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1992년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찰 스스택 Charles Stack이 최초의 온라인 소매업자로 나선 것이다. 인터넷 서 점 사업에서 아마존닷컴의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 Jeff Bezos보다 최소한 몇 해 더 이른 시점이었다. 도서관 서고를 뜻하는 본인의 이름 '스택stack'을 따서 적절히 작명한 그의 회사, 북 스택스 언리미티드Book Stacks Unlimited 는 대충 꾸며 놓은 아주 초보적인 온라인 도서 목록(가령 도서명 검색창 에 딱 하나의 검색어만 입력할 수 있었다)에다 신간 도서 수십만 권을 재고 로 갖춰 놓고 우편 주문 형태로 책을 팔았다. 그런데 중고 도서는 왜다 루지 않았을까? 인터넷 상거래가 전무하던 1992년 당시, 책의 실물을 확인하지 않고 중고 도서를 온라인으로 주문한다는 것은 제정신인 사 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주문 후에 받게 될 중고 도서가 어떤 상태일지 어떻게 알겠는가?
- 이제는 애컬로프의 개살구 모형을 기본 틀로 삼은 여러 세대의 모형 들이 나와 있다. 하지만 그의 영향은 훨씬 더 깊은 곳에까지 미치고 있 다. 기본적으로 애컬로프는 그의 접근법과 아주 비슷한 의도로 구축된 모형을 통해 시장과 경제를 이해하고자 하는 응용 이론을 경제학 내 별 개의 분야로 출범시켰다. 최근에 큰 영향을 미친 몇 가지 예만 들자면, 법률 회사는 왜 합자회사 partnership 형식으로 법인화되는지, 이미 병력이 있는 사람들은 왜 어떤 가격으로든 보험에 들 수 없는지, 정부 관료들은 왜 그토록 도움이 안 되고 완고할 때가 많은지를 모형을 활용해 설명하 는 응용 이론들이 나왔다(경제학 내에서 별개의 연구 분야를 만들어 낸다 른 대표적인 사례들을 책 뒷부분에서 더 다룬다).
- 이제는 애컬로프와 그를 따르는 경제학자들로부터 개념적 통찰을 얻고자 이베이와 아마존, 에어비앤비, 페이스북, 우버 같은 회사들이 경제학 박사들을 채용한다. 그러한 통찰을 좀 더 직접적으로 활용함으로 써 시장에서 더 효과적으로 경쟁하거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시장을 완전히 새롭게 상상하기 위한 실제적 지침을 얻으려는 것이다. (어떤 의 미에서 애컬로프 논문의 주된 통찰은 무엇보다 정보가 제일 중요한 모든 기업 에 대한 경고다. 판매자가 자신의 물건에 대해 구매자보다 더 많이 아는 상황 에서는 시장이 붕괴되기 쉬우니 말이다.)
- 개살구 문제가 어떻게 건강보험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면, 정치적 성향을 불문하고 왜 그토록 많은 경제학자가 모든 개인을 보험 에 들게끔 강제하는 의료 정책을 선호하는지가 잘 설명된다. 그것이 시 장의 탁월한 장점인 개인의 선택과 자율성을 박탈하는 것인데도 그러 하다. 건강한 사람들이 계속 건강보험에 들게끔 정부가 강제하면, 보험가입자 중 환자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보험료가 계속 높아지는 악순환의 격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이력서에 자격 하나를 보태거나 채용 면접에서 자신을 특정한 방식 으로 보여 주려면 비용을 많이 들여야 하는 지원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지원자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버드에 입학하고 졸업까지 해내기 위한 '비용'이 무한대에 달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적으로 그 일이 가능성 의 범위 안에 있지 않은 것이다. 반면에 수학 귀재나 음악 신동에게는 하버드에 입학해 무슨 교과목이든 수월하게 해내는 게 별로 어렵지 않 을 수 있다. 의욕적이고 성실하고 꽤 똑똑한 젊은이라면 또한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하버드급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지원 서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스펜스의 모형에서는 하버드대학교 학위 취득을 비교적 수월하게 만들어 주는 속성들(수학의 귀재라든가 의욕, 근면성)이 생산적인 피고용 자를 기약하는 특징들이기도 하다. 만일 사실이 그러하다면, 기업이 하 버드대 수학 전공자를 채용하는 것은 잘하는 일일 것이다. 비록 하버드 대수학 전공자가 실용적인 것을 전혀 배우지 않거나 심지어 수학조차 배우지 않더라도 말이다.
왜 그럴까? 하버드대 수학 학위는 기업에 '나는 똑똑하다'라고 말하 는 믿을 만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고용주에게 단지 말로만 '나는 똑똑하 다'라고 하는 것과는 달리, 하버드대 수학 학위는 능력이 떨어지는 구직 자가 모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모방하려고 생각할 만한 것도 아 니다. 고도의 분석적 역량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공부 시간과 정신적 고 통 면에서) 모방하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스펜스의 '신호 보내기' 모형을 본질적인 요소들로 분해했을 때, 모 형의 작동에 필요한 것은 생산적이고 정직하고 훌륭하다는 것(또는 뭐가 됐든 바람직한 무엇으로 적어도 구매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속성)이 무 언가를 하는 비용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 무언가는 정 말로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다.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그 무언가를 행하는 비용이 저렴함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기만 하면 된다. 가령 훌 륭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갖춘 사람이 물구나 무서기도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구글은 채용 면접에서 구직자들이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는지 여부로 당락을 결정할 수 있 을 것이다. 능력 있는 프로그래머만이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러한 맥락에서 건강보험이나 중고차 시장을 비롯해 시장의 양쪽 중 한쪽이 다른 쪽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시장에 참여하는 '참살구들' 은 그들 자신의 차이점을 보여 줄 방법을 찾아내려는 충분한 동기를 갖 는다. 그들은 자신이 건강하고 믿을 만하며 그 밖에도 개살구들이 너무 큰 비용 때문에 모방하지 못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신호를 만 들어 내려고 한다.
- 겉보기에는 자기 파괴적인 많은 행동이 이런 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감옥에 새로 들어온 수감자가 벽에 머리를 들이박거나 허벅지를 칼로 찌르는 행동이 미친 짓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맞붙어 싸울 때 자신은 칼자국이나 타박상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동료 수감자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감옥에 새로 들어와 기존 위계질서에서 자기 위치를 다지려면 말이나 행동을 '거칠게 하는 수감자보다 벽에 머리를 들이박는 수감자가 어떤 면에서는 더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그가 보내는 메시지는 믿을 만한 것이다.
- 범죄 조직 문신을 새긴 것이 단지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 탓일 수 있 듯이, 머리를 들이박는 새로운 수감자 또한 그냥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 다. 비용을 고려하는 것은 최소한 서너 달 이상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 가능한데, (특히 마약이나 범죄 조직에 찌든 동네에서 자란) 10대들은 장기 적인 미래를 고려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야 어쨌든 미 치광이를 가까이하려는 사람은 없다. 문신은 근시안 탓에 새겼든 아니 면 좀 더 철저한 의지로 새겼든 간에 조직 외부의 삶을 몹시 어렵게 만 든다. 그래서 조직을 이탈하지 못하게끔 효과적으로 발을 묶는 효력을 발휘한다. 조직을 벗어나서 사는 비용이 너무 비싼 것이다. 
- 많은 회사들이 현찰을 장작처럼 불사르는 광경이 눈에 띄지는 않 아도 경제학자들은 그와 똑같은 일을 더 확실하고 더 공개적으로 감행 하는 것이 바로 기업의 광고라고 주장해 왔다. 광고를 돈 불사르는 일 에 견준 고전적인 논문 <가격과 상품 품질의 광고 신호 price and Advertising Signals of Product Quality>에서 경제학자 폴 밀그럼Paul Milgrom과 존 로버츠John Roberts는 '다이어트 콜라'의 출시를 알리는 1983년 광고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커다란 공연장이 나오고, 긴 대열을 이 루어 다리를 쭉쭉 뻗어 올리는 댄서들이 나오고, 카메라가 비추는 곳마 다 (몸값 비싼) 인기인들이 수없이 나온다. 그리고 다이어트 콜라가 이 모든 걸 동원한 이유라는 것밖에는 다른 메시지가 없다. 광고가 의미없는 파괴라고 훨씬 더 직설적으로 주장하는 대목에서 두 경제학자가 예로 든 1984년 포드 레인저 픽업트럭 광고에서는 "트럭을 항공기 밖으로 떨어뜨리거나(뒤따라 스카이다이버 대여섯 명이 뛰어내린다), 높은 절벽 아래로 추락시킨다." 이 두 사례 모두에서 광고는 아무 의미 없이 고의로 실행되는 지나친 연출과 낭비, 즉 돈을 불사르는 일이다.
제품 출시 광고가 돈을 불사르는 행위라는 분석을 뒷받침하는 대목 에서 밀그럼과 로버츠는 이렇게 지적한다. "이 광고들이 담고 있는 직접적인 정보는 그저 해당 제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빼면 전무하거나 거의 없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제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라면 그 정보를 너무 지나치게 값비싼 방식으로 전송하는 광고들이다. 사실 이 광 고들이 전달하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우리는 이 광고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쓴다'라는 것이다." 그처럼 사치스럽게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가 그들의 광고에서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유일한 신호다.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경쟁은 해당 회사들에 해로울 뿐 아니라 심지 어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2000년 슈퍼볼 경기에 노출할 광 고 시간을 매입하느라 19개 인터넷 스타트업 회사들이 수백만 달러를 써 버렸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설명하는 데 경쟁적인 신호 보내 기가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 19개 회사 중 8개 회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 이렇게 신호를 보내는 온갖 행동이 트럭 신차 시장이나 소프트음료 시장의 소비자에게 의도했던 영향을 미칠지는 또 다른 문제다. 밀그럼 과 로버츠는, 소비자들이 입수하는 정보는 불완전할지언정 완벽하게 합 리적으로 행동하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품질 신호를 보내는 기업들의 상호작용을 묘사하는 체계적인 모형을 만들었다. 이러한 모형이 실제 로 효력을 내려면 한 단계가 더 필요하다. 아주 불완전하고 치우치는 판단을 자주 하는 단점은 있지만 적어도 충분히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고객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 전체적으로 보아, 이론상으로 '신호 보내기' 모형을 만들기는 쉽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모형으로 만들기는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 즉 판매자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신호를 개발하는 기발 함(환불 보장을 약속한다'로는 불충분하다)이 있어야 하고, 그것과 아울러 트럭 여러 대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포드 광고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 지를 알아듣는 고객이 있어야 한다.
- 비크리 경매의 활용이 부진한 것은 경제학자들에게 수수께끼 같은 일이었다. 전략 수립과 과다 지불을 고민하는 응찰자들의 고뇌를 마법처럼 해결해 주는 우아하고 단순한 메커니즘에 매료당한 경제 학자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어지럽고 복잡한 대다수 경매 상황을 비크리 경매의 단순한 메커니즘으로는 처리하기 어렵다는 점이 밝혀졌다. 비크리의 1961년 논문에 제시된 조건만 따지면 2차 가격 밀봉입찰 방식은 설계 할 수 있는 모든 경매 방식 중 최선의 것이었다. 하지만 좀 더 일반적인 조건에 적용하기에는 결점이 많다는 것이 경매 이론가 로런스 오스벨Lawrence Ausubel과 폴 밀그럼의 2006년 연구에서 밝혀졌다. 두 이론가의 말대로 비크리 경매는 "이론적인 미덕을 갖추고 있지만 "결정적인 약 점 또한 많이 안고 있다. "
예를 들어 비크리 모형에는 담합이 없으며 여러 사람의 신분을 위장 해 속임수 응찰을 하는 구매자들도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행태는 정부에 납품하는 도급 사업자들이 까마득한 옛날부터 사용해 온 익숙 한 전략이다. 경매 이론가들은 매물이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일 때 비크리 메커니즘을 사용하면 응찰자들이 경매 전 밀실 담합으로 득을 보기가 훨씬 더 수월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게다가 여러 번의 경매에서 판 매자가 얻는 평균적인 결과는 원만하다고 해도 어떤 조건들 아래서는 귀중한 정부 자산이 정확히 0의 가격에 매각되는 일이 전적으로 가능하 다는 것이 밝혀졌다. 혁신적인 경매 기법을 개발한 당신이 의회 청문회 의 의결권자들 앞에서 당신의 기발한 경매 메커니즘이 어째서 정부 재 산을 민간 기업에 무상으로 매각하는 결과를 빚었는지 해명하는 광경 을 한번 상상해 보라.
- 하지만 비크리 경매가 오늘날의 경매 시장에서 유별나게 드물다고 해서 그의 혁신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아이작 뉴 턴이 상대성 이론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가 물리학에 기여 한 것이 의미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첫째, 뉴턴의 물리학이 일정 영역의 상황들에서 충분히 효과적인 것으로 증명되는 것과 마찬 가지로, 오늘날 비크리의 본래 설계에서 파생된 경매 방식이 대단히 중 요한 시장들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검색 광고 '애드워즈'를 매각하는 구글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광고주 후보들에 게 다음과 같이 응찰하라고 안내한다. "당신의 광고를 클릭하는 매 건에 대해 당신이 지불하고자 하는 최대 금액을 응찰하십시오(그래도 당 신이 지불할 최종적인 클릭당 금액-당신이 실제로 지불하는 클릭당 비용 Cost- Per-Click, CPC-은 응찰가보다 낮아질 수 있습니다)." 광고주들에게 이렇게 조언하는 이유는 애드워즈가 기본적으로 비크리 경매이기 때문이다. 둘째, 어쨌든 애초에 비크리가 설계한 상태 그대로의 메커니즘은 잘 영글지 못했지만 그가 개척한 폭넓은 원리들은 잘 영글었다. 경매 설계 는 이제 경제학 내에서 독자적인 분야가 되었고 실용적으로 널리 활용 되고 있다. 여기서 경매 설계의 다양한 적용 사례를 다루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경매 설계자들이 깨닫게 된 것처럼 각각의 경매 시나리오(따 라서 그것들 각각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설계된 경매)가 그 나름의 방식으 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1957년 신용카드를 출범시킨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아멕스Amex)와 1980년대 중 반 디스커버 카드Discover card를 도입한 시어스Sears의 사례에서 보듯이, 심지어 같은 산업 안에서조차 플랫폼이 출발하도록 시동을 거는 방법 은 서로 아주 달라도 똑같이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관점들에서 나올 수 있다. 두 사례 모두 상인과 소비자를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그러느 라 2000만 달러씩이나 손실을 보지는 않았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1850년 뉴욕주 버펄로에서 속달 우편 서비 스로 시작했다. 1882년 우편환을 도입한 데 이어, 여름에 유럽 여행을 하다가 제때 현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던 최고경영자의 경험에서 통찰을 얻어 1891년에는 여행자 수표를 도입했다. 이 회사는 고객들을 잘 돌보는 일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는데, 초창기에 나라 전역에 걸쳐 신속 한 소포 배달을 확실하게 책임지고 해낸 것이 그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1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인들이 유럽에서 발이 묶였을 때 아멕스의 유 럽 거점들이 그들을 지원해 준 일도 있었다. 그 덕분에 아멕스의 명성은 격조 높으면서도 실용적으로 고객을 배려한다는 더 넓은 이미지를 획 득했다. 대륙 간 소포 특송을 필요로 하고 해외여행 중 제때 현금을 마 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당시 아멕스의 상당히 독점적인 고객 기반으 로, 다른 업체들의 부러움을 샀다.
1957년 아멕스는 고객 계정 25만 개로 지불카드 charge card 사업을 시작했다. 아멕스가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게 된 열쇠는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와 높은 표준을 시장의 양 측면을 끌어당기는 동력으로 활용하는 선택이었다. 모든 참여자들에게 무상으로 카드를 내주는 식과는 정반 대로, 아멕스는 각 계정을 개설하는 데 6달러를 부과했다(가장 가까운 경 쟁사인 다이너스 클럽Diners Club보다 1달러 더 높은 가격이었다). 상인들에게 도 더 높은 수수료를 매겼는데, 순자산이 많고 신용도가 높은 아멕스의 고객들에게 접근하려고 기꺼이 높은 수수료를 지불하고자 하는 상인들 이 많았다. 아멕스는 가입비 부과와 높은 수수료에 상응하는 유인과 서 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했고, 나중에는 서비스를 여러 등급으로 나누었 다. 1984년 '골드 카드'를 도입한 데 이어 '플래티넘 카드'와 또 다른 카드)를 도입하면서 각각 더 높은 연회비를 받는 대신 더 많은 특별 서비스를 제공했다. 소비자가 아멕스 카드를 꺼내면, 그 순간 품위의 상징이 되었다. 여행자 수표는 대중을 위한 것이었고, 지불카드는 특권적인 것 이었다. 그러나 둘 다 아멕스를 수용하는 상인들과 아멕스를 사용하는 고객들로 이루어진 공동의 플랫폼 위에 구축되었다.
시어스는 1985년 자사의 '디스커버 카드'에 대한 방침을 아멕스와는 정반대로 잡았다. 처음에 시어스는 자기네가 당시 미국 내 최대 소매업 자라는 점을 지렛대로 삼아 자사 매장들에서 디스커버 카드만 받는 방 법으로 고객들을 유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디스커버 카 드가 첫발을 떼도록 시동을 거는 데 충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어스는 사람들이 자사 카드를 발급받도록 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돈을 준 것이다.
- 디스커버 카드는 연회비를 받지 않았고, 카드 소지자들에게 캐시백 보너스를 제공했다. 카드를 얼마나 사용했느냐에 따라 지출 금액의 일 정 퍼센트를 카드 소지자에게 환급해 주는 이 서비스는 당시에는 새로 운 발상이었다. 시어스는 시어스에 득이 되는 일에 참여하기를 꺼렸을 유 통업계의) 다른 소매업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그들에게 부과되는 가맹점 수수료를 다른 경쟁사 카드보다 대폭 낮추었다. 디스커버 카드는 마침 내 상승세를 탔고 인기가 대단해서 다른 신용카드 플랫폼들도 뒤따라 비슷한 서비스를 준비하느라 서둘렀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시어스는 똑같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어들었다. 그 문제는 한쪽 측면으로는 특정 부류의 소비자들을, 다른 쪽 측면으로는 많은 수의 소매업자들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을 신용카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원하는 두 측면을 플랫폼에 올려놓기 위해 그들이 발견한 최종 해법은 서로 미 묘하게 다른 것이었다. 플랫폼을 구축할 때 어떤 규칙을 선택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하지만, 성공으로 가는 경로는 다양하다.
- 티롤이 상당수의 플랫폼 연구에서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양면 시장을 양 측면의 참여자들 사이에 위치하는 플랫폼이 없으면 그들이 아예 서로를 발견하지 못해 거래가 성사되지 못할 시장으로 정의한다는 점 이다. 만일 그들이 서로 만나 거래를 맺을 수 있다면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다양한 측면의 참여자들이 서로 합의하기 어려운 시장에서 한가운 데에 자리 잡는 시장조성자는 심판이나 중재인, 보증인 역할을 할 때가 많은데, 가끔은 경찰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시장 조성자가 그러한 역할 을 제대로 하면, 양 측면의 참여자들이 시장조성자가 없을 때보다 서로 어울려 일할 때가 훨씬 많아지고 효율도 높아진다. 예를 들어 샹파뉴의 감독자들은 프라토 상인이 판매 대금을 받도록 챙겨 주었다. 당연히 다 른 거래자들은 그 결과를 지켜보았고 샹파뉴 박람회는 번창했다. 마찬 가지로 이베이와 우버, 아마존 같은 성공적인 인터넷 플랫폼은 대부분의 거래가 매끄럽게 처리되게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고, 그렇지 못할 때는 중재자로 나섰다(우버의 경우에는 운전자와 고객을 연결하는 방 법을 주관하는 자사 소유의 알고리즘을 사용해 그러한 역할을 했다).
시장조성자가 바람직하지 못한 참여자들을 플랫폼의 각 측면에서 걸러 낼 수 있지만, 이베이와 우버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 일을 플랫폼 참여자 본인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즉 참여자(고객)들이 의견을 개 진할 수 있도록 플랫폼 관리자가 길을 열어 주면, 이론상으로 군중의 지 혜가 모여서 나머지 일들이 잘 처리될 것이고, 따라서 지난 1970년 조 지 애컬로프가 시장 기능의 적이라고 밝힌 정보 비대칭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해결책을 통해 인터넷 이전 시대에는 믿을 만한 공급자를 찾 기 어려웠던 물건이나 서비스 분야에서 공급자와 수요자를 짝지어 주 는 온갖 종류의 플랫폼들이 생겨났다.
- 플랫폼들이 가격을 매기는 방식은 그 논리를 이해하기 전에는 정상 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동네 술집들의 여성 무료 행사 ladies' night를 생각 해 보라. 여성에게 무료입장을 시켜 주거나 무료 음료를 제공하는 것은 차별적이다. 하지만 술집은 여성이 주변에 많이 있다는 사실을 남성들 이 훨씬 더 중시한다는 (반대로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냈다. 여성 무료 행사는 입장료를 기꺼이 지불하고 찾아올 남성 고객들을 유 인할 목적으로 술집들이 충분한 수의 여성 고객을 확보해 두는 방식이 다. 분명히 이러한 영업 관행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 겠지만(가격 차별은 안 된다!), 이처럼 이상해 보이는 가격 차별을 사용 하지 않으면 '싱글스 바singles bar'(독신 남녀가 데이트 상대를 찾아 모이는 술 집)들은 살아남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벤 에덜먼Ben Edelman 교수 말마따나, 고객이 아닌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지불하게 하는 정말 놀라운 솜씨를 발휘하는 플랫폼들마저 있다. 정확히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십중팔구 지난주에도 이미 열댓번은 이런 지불을 했을 것이다. 그 것은 바로 신용카드를 받는 가게에서 현금을 내는 것이다. 그런 가게에 서 현금을 지불할 때마다 우리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보 조금을 지급해 주는 셈이다. 대다수 소매업자들이 고객의 지불 수단이 무엇이든 모든 고객에게 같은 가격을 매기기 때문이다. 고객의 지불 수 단이 신용카드든, 직불카드나 현금이든, 아니면 아멕스 카드처럼 가맹 점 수수료가 높은 카드든 수수료가 낮은 비자나 마스터나 디스커버 카 드든 간에, 고객이 소매업자에게 지불하는 가격은 다 똑같다. 소매업자 들은 수수료가 비싼 카드로 결제되는 매출에 대해 3퍼센트 정도 더 비 싼 가격을 매기고 싶을지 모르지만 그러지 않는다. 그 대신 모든 고객을 상대로 '혼합한' 가격을 물린다 
- 시장조성자들은 일단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결정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로부터 이득을 보려고 하는 유혹을 거의 피하기 어렵다. 우버는 운전 자들을 신차에 투자하도록 설득하고 자기네 탑승 공유 플랫폼으로 유 인한 뒤 운전자들의 수입에서 더 많은 몫을 챙긴 일로 비난을 받았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을 몰아붙이기로 악명 높은 아마존은 어쩌다 대박 상품을 터트리는 제3자 판매상 중 일부의 수익을 가로챈다.
아마존의 이러한 행태는 하버드대학교의 펑 주 Feng Zhu와 오클라호 마대학교의 치훙 류 Qihong Liu 두 연구자가 아마존을 통해 팔린 최다 판 매 상품들을 분석한 결과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이 분석에서 그들은 최 다 판매 상품들 가운데 일부에서 아마존이 직접 해당 상품의 재고 확보에 돌입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제프 피터슨의 회사 컬렉터블 서플라이 스Collectible Supplies가 이런 일을 당했다. 피터슨의 회사는 미국 프로미식 축구 리그NFL의 마스코트들을 본떠서 만든 봉제 인형인 29.99달러짜리 베개 인형으로 아마존 골드 상품에 올랐다. 18 2011년 이 회사는 베개 인 형을 매일 100개씩 팔던 날들이 많았는데, 갑자기 연휴 쇼핑 시즌을 코 앞에 두고 하루 매출이 20개로 떨어졌다. 사정을 조사해 보니 금세 이유가 드러났다. 아마존이 스스로 컬렉터블 서플라이스보다 낮은 가격으로 성황리에 베개 인형을 팔고 있었다. 피터슨은 자사 제품의 가격 인하에 나섰지만, 피터슨의 판매 대행 업자이자 동시에 경쟁자가 돼 버린) 아 마존은 신속하게 같은 가격으로 내리거나 더 낮은 가격으로 팔았다.
이처럼 아마존이 제3자 판매상들과 경쟁을 벌이면, 판매상들은 보 통 무자비한 인터넷 강자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판매를 아마존에서 다 른 데로 돌리려고 한다고 펑 주와 치훙 류는 지적한다. 이렇게 행동하는 판매상들이 상당히 많아지면 인터넷 상거래를 움켜쥐고 있는 아마존의 장악력이 무너지기 시작할지 모른다. 부분적으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아 마존은 판매자들의 최다 판매 상품 중에서 약 3퍼센트만을 먹잇감으로 고른다는 것이 펑 주와 치훙 류의 계산에서 밝혀졌다. 이런 방식을 통해 아마 아마존 경영진은 한편으로는 플랫폼의 성공에 중요한 소규모 판 매상들을 붙들어 두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3자 판매상들의 창구 역할 을 넘어서는, 두 가지 행동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로 판단한 것 같다. 
- 어떤 의미에서 '시장 설계market design' 또는 '메커니즘 설계mechanism design' 분야는 백지에다 새로 그림을 그리는 경제학 분야다. 이 분야에서 는 특정한 과업을 성취하는 데 가격과 시장이 얼마나 효과적이거나 비 효과적일지(또한 전통적인 시장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어떻게 개입할 것인 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 대신 처음부터 어떤 과업 자체만을 놓고 그것 을 달성하는 최선의 방식을 찾는다.
시장 설계 분야는 경제학자로 하여금 상자(그것도 아주 작은 상자) 속 에서 사고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한다. 이것을 이런 식으로 생 각해 볼 수 있다. 가령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이스트리버를 건너 맨해튼 까지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출퇴근하는 방안을 찾고자 할 때, 전통적인 경제학은 교량이나 페리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가정하는 셈이다. 이 와 달리 시장 설계는 광범위한 가능성(케이블카, 투석기, 다인승 궤도 차량)을 열어 두고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것을 기술적인 용어로는 '제약 조건하의 최적화 또는 조건부 최적 화constrained optimization'라고 부르는데, 비크리가 컬럼비아대학교로 출근 하기 위한 최선책이 롤러스케이트라고 결정할 때 사용했던 그 기법이 다. 이러한 메커니즘 설계자들은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을 고려한다. 가령 법이라든가 인간 본성, 옳고 그름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뿐 아니라, 자원 배분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신장 환자, 입학 지원자 등)이 더 나은 자원(신 장, 교육)을 받기 위해 수립할 수 있는 전략이 그러한 제약 조건에 들어 간다. 그리고 그러한 제약 조건 내에서 사회의 필요와 욕구를 가장 잘 충족시키기 위한 메커니즘을 설계한다.
이러한 분석은 물리학에 비유할 수 있는 경제학이 아니라 공학이나 배관 작업에 비유할 수 있는 경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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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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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오는 경기 침체는 결코 피할 수 없다. 중앙은행은 경기가 나빠질 것 을 알면서도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를 올릴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소비 와 투자는 줄어들 것이다. 주식시장 은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에 있으며 부동산 거품은 붕괴의 초입 단계에 놓여 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미래 속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운 시기를 견뎌내야 할 것이다.
- 높은 물가 상승률 때문에 미 연준을 비롯한 중앙은행이 경쟁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금리가 상승하더라도 경기만 좋으면 자산 가격은 더 오를 수 있고 부채 문제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둔화하는 조짐이 2021년 하반기부터 나타나고 있 다. 세계 경기를 예측하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는 회원국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주요 신흥국의 경기 선행 지수를 작성하여 매 월 발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선행지수가 2021년 5월을 정 점으로 먼저 꺾였고 OECD 선행지수도 7월을 정점으로 8월부터 하 락 추세로 전환되었다.
과거 통계를 보면 대체로 한국의 선행 지수 저점과 정점이 OECD 전체 선행지수보다 앞섰다. 이런 의미에서 일부 경제학자들은 한국 경 제를 세계 경제의 풍향계라 한다. 특히 미국 예일대학 교수인 스티븐로치는 한국 경제를 '탄광 속 카나리아'라고 했다. 카나리아는 탄광에 서 유독 가스가 나오면 먼저 쓰러져 위험을 알린다는 새다.
2021년 하반기부터 물가를 오르고 있는데 경기 둔화 조짐이 OECD 선행지수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일시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그 이전에 존재했던 물가상승 압력을 더 높였고 경기 둔화 정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 1970년 이후 통계로 보면 마이너스 실질금리가 2년 이상 진행되는 경우는 없었다. 2020년에 실 질금리가 -0.3%였고 2021년에는 -3.3%로 확대되었다. 지난 사례 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2023년에는 실질금리가 플러스로 전환할 수 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머지않아 4%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의 미이다. 그러나 물가 상승률 하락은 그만큼 수요 특히 소비가 위축된 다는 뜻이다.
2008년과 2020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각 경제 주체의 부채가 급증했고, 자산가격에 거품이 발생했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 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채권, 주식, 주택 순서로 거품 이 붕괴하고 있다. 2023년에는 부채가 많은 각 경제 주체의 문제가 드 러나면서 경기 침체 정도가 깊어질 수 있다.
- 세계 경제 성장을 떠받쳤던 중국 경제가 과잉 투자의 후유증으로 비 틀거리고 있다.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정부가 또 다른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인데, 선진국 중심으로 정부 부채가 매우 높은 수준이므로 재정 정책의 여력이 크지 않다. 통화 정책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금 리를 내릴 여지도 크지 않고, 금리를 인하해도 부채가 많은 가계와 기 업이 소비와 투자를 크게 늘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경 제 침체는 2000년대의 두 번의 침체보다 더 깊고 더 오랫동안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 물가 상승률의 전개 속도는 감내하 기 힘든 수준까지 급등하고 대외적 인 경제적 제약들로 인해 소비·투자· 고용환경이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했 다. 이 과정에서 시중 유동자금 역시 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인 방식으로 급변했다. 이제 경제 상황은 코로나 19 이후 또 한 번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 한계 기업들의 비중이 확대될 경우 우리 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먼저 한계 기업은 자체 투자 여력이 없다. 그런데도 국가의 재정 지원 등을 통해 해당 업종에서 지속적으 로 활동할 경우, 여타 정상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저해하고 이 윤율을 떨어뜨린다. 정상 기업의 고용 증가율 및 투자율 또한 하락시 키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해당 분야에 신규 진입을 적극 희망 하는 스타트업과 기존 기업들의 혁신적인 노력을 저해한다. 결과적으 로 해당 업종 전체의 투자 활동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에 따르면, 한 산업의 한계 기업 자산 비중이 10.0%p 높아지면 해당 산업에 속한 정상 기업의 고용 증가율 및 투자율은 각각 0.53%p와 0.18%p가량 하락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반해 한계 기업 자산 비중을 10.0%p 하락시키면 정상 기업이 고 용을 11만 명 내외 증가시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실제 일본의 경우 1990년대 부실 기업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해당 산업의 생산성 저하, 구조조정 지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금융 지원으로 인한 직접 비 용을 초월한 바 있다.
한계 기업 문제는 금융 시스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와 같은 대외적인 충격이 발생할 경우 한계 기업에 대한 대출이 부실화되고 금융 기관의 자산건전성이 악화되면서 금융 시스템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국제 유가와 농산물 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 을 되찾자 우크라이나 전황에 대한 전 세계 언론의 보도는 대폭 줄어들 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에너지, 농산물로 인한 인플레이션 문제는 단기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종결된다고 해도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상당 기간 지속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러시아를 글로벌 경제에서 분리해낼 수 있다. 이미 진행 중인 탈세계화deglobalization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2개로 나뉘면서 인플레이션 은 세계 경제에 고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골드만삭스의 원자재 리서 치글로벌 헤드 제프 커리는 "세계 원자재 시장이 2개로 나뉘고 있다" 라며 "이 모든 것은 (진행되고 있는) 원자재 슈퍼 사이클을 강화할 것"이 라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 경영자 CEO는 2022년 3월 주주 연례 서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난 30년 동안의 세계화에 종지부를 찍었다"라고 밝혔다. 세계화는 1991년 소련이 무너지고,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본격화됐다. 세계적 경쟁은 많은 상품의 가격을 떨 어뜨렸다. 기업들은 제품을 생산할 가장 저렴한 장소와 노동력을 찾 아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했다. 글로벌 분업이 증가하면서 상품과 서비 스 모두에서 교역은 폭증했고, 기업들은 풍부한 자본 시장에 접근할 수 있었다. 부와 성장, 낮은 물가가 전 세계로 퍼졌다. 2000~2019년 20년 동안 미국의 상품 가격은 연평균 0.4% 상승하는 데 그쳤다. 서비스 가격은 매년 2.6% 올랐지만 상품 물가의 안정으로 에너지와 음식물을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은 연평균 1.7%에 그쳤다.
- 하지만 세계화는 '빈익빈 부익부'의 부작용을 가져왔다. 2016년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 등장,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반세계화 흐름에 탄력을 더했다. 그리고 2022년 러시아의 침공이 발생했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은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부분적 협력은 있어도 과거와 같은 파트너십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일부에선 세계 경 제의 블록화 가능성을 지목한다. 페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애덤 포젠 소장은 "세계 경제가 블록으로 분열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중국, 이란 등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 블록과 미국과 그 동맹국 블록으로 나뉠 것이란 얘기다.
-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인 핌코 등 월가의 일부 투자자는 인플레이 션 장기화에 베팅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연동 채권TIPS을 집중적으 로 사들이고, 원자재에 대한 노출을 늘리며 대신 채권 보유는 줄이고 있다. 핌코의 이코노미스트 티파니 와일딩은 “지난 20년간의 '물가 대 안정기 the great moderation'는 이미 지난 이야기"라며 "세계가 투입 비용 전 반이 올라 앞으로 수년간 가격 수준을 조정해나가야 하는 높은 인플 레이션 시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이 지금 의 높은 수준에서는 내려오겠지만 탈세계화 등으로 인해 과거의 낮은 물가로 되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란 판단이다. 세계화가 확대될 때는 낮 은 인건비와 값싼 상품이 물가를 억제했지만 그런 추세가 뒤집히기 시 작했다는 것이다.
서방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자 석유 가스 등 에너지 가격은 상승했다. 팬데믹으로 망가진 공급망을 재건하고 있는 기업들은 낮은 비용 보다 미·중 관계 등 정치적 긴장을 고려해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각 국의 빡빡한 노동 시장은 임금 상승을 부르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인 찰스 굿하트와 마농 프레단은 1990년대 이후의 낮은 인플레이션 은 중앙은행 정책보다는 인구 구조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와 동유럽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세계 공산품 가격을 억제했다는 것이 다. 그러나 이제 노동 과잉은 노동력 부족의 시대로 바뀌고 있고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것이라고 봤다. 

- 투자자들은 성공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 FED가 움직이는 증권 시장의 호흡과 매우 규칙적인 영혼의 박동 을 느껴야만 한다. 밀물인지 썰물인 지도 파악하지 못한 어부가 배를 띄 울 수 있겠는가. 지금은 들이마셔야 하는 숨일까? 내뱉어야 하는 숨일까? 그 방향이 파악될 때까지 조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 또 다른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필자는, FED 정책의 미래를 읽기 위해 실업률을 살펴보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다. 특히 고용지표 중에서 신규 고용보다는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를 제대로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1994년은 FED가 금리 인상을 하다가 경기가 갑자기 나빠지자 다 시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6년부터 1999년 닷컴 버블 이 깨질 때까지 다시 천천히 금리를 인상했다. 금리도 오르고 주가지 수도 오르는 시기였다. 지금도 FED가 긴축을 하다가 다시 금리를 내리기만 해주면 그때와 같은 상승장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 당시 FED가 완화 정책으로 입장 을 바꿀 때의 경제 지표와 지금의 경제 상황은 전혀 다르다. 우선 그때 는 6.4%의 실업률에서 미리 금리를 올리다가 갑작스럽게 경기가 나 빠져서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이고, 지금은 완전 고용 실업률 4%보다 더 좋은 3.7% 실업률 상황이다. 설령 지수가 조금 내리거나 경기가 약 간의 하락세에 들어간다고 해도 FED가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FED는 실업률을 지표로 의사 결정을 한다. 소비, 고용, 소득, 투자 등의 여러 지표 중에서 FED의 정책 변경의 핵심 열쇠는 고용지표였다. 지금 상황을 보면, 오히려 충분히 길고 강한 긴 축을 더 오래 지속한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FED를 무턱대고 믿거나 불신할 것이 아니라, FED가 비록 실수하 더라도 내 돈을 지키겠다는 그런 자주적인 마인드로 시장에 접근해야 지혜로운 선택이 아닐까? 경제 지표들은 FED의 정책이 당분간 변경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중이다.
- 리세션이 나쁘기만 한가? 준비된 투자자 입장에서 본다면, 반가운 일일 수 있다. "가치보다 싸고 좋은 자산들이 온 천지에 널려 있는 상태"를 리세션이라고 부른다. 부동산도 싸고 주식도 싸고 심지어 금까 지 싸진다. 이때를 준비한 투자자는 'Recession(리세션)'이라고 쓰고 'Eldorado (엘도라도)'라고 읽게 될 것이다. 레시피는 다 공개되어 있 다. 그런데 우리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투자 대가의 성공을 따 라 할 최적의 실습 기간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 나는 FED가 금리 인상을 하면, 리세션이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인가? 타고난 비관론자인가?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필자의 주장은 이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나 원자잿값 폭등 등의 이유가 아니라면 리세션은 대부분 FED의 긴축 정책으로 촉발되었다. FED가 긴축을 시작하면 그 끝에 는 항상 리세션이 있었다.
인플레이션만 잡히면, 우크라이나 전쟁만 끝나면, 금리 인상이 멈추 고 인하로 돌아설 것이고 그러면 지수는 올라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그런 반론이 생길 수 있다. 어렵게 살려 놓은 경제를 죽이면서까지 FED가 강한 긴축을 할까? FED가 적당한 시점에 정책을 변경하면 약세장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매우 상식적인 반론이다.
그런데 우선 역사적으로 FED가 긴축을 하고 리세션에 들어가지 않은 경우는 1994년, 2018년 두 경우밖에 없었다. 추후에 설명하겠 지만 지금과 그때는 매우 다르다.
경기 하강이나 침체보다 더 무서운 엄청난 인플레이션이라는 놈 때 문에 FED가 긴축을 강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긴축 을 굳이 하지 않아도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면 소비와 투자가 세금 폭탄을 맞은 것처럼 감소할 것이고, 실제로 실물 경제는 더 큰 침체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긴축을 시행하는 것이다.
-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을 차트에서 확인해야 한다. 수익률곡선의 역 전 현상이 나오다가 다시 정상화되기 시작하면서 증시는 어땠나? 다 음 그래프에서 옅은 갈색의 수익률곡선 갭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에 들어가는 구간을 보자.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니 갭이 플러스로 전환하면서 차트가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마이너스에 들어갔던 갭이 플러스로 바뀌면서 외려 지수는 폭락하기 시작한다. 그전까지의 하락 조정이 귀여울 정도다. 결국 금리를 인상하다가 인하로 바뀌는 순간 지수는 폭락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FED가 피벗을 하고 금리 인하로 돌아서는 것이 주식시장에 좋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옳 은 생각인가?
그러니까 1차로 유동성 하락에 따른 배수 조정이 있고, 그 이후 수 익률곡선 역전이 나온 후 경기가 안 좋아지는 국면에서 실적 조정으 로 지수는 크게 상승하지 못하다가 금리 인하로 들어가면서 아주 크 게 하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금리 인하는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률곡선이 역전되는 것은 유동성을 옥죄면 증시에서 자금이 1차적으로 빠져나가고, 1차 적인 고평가 국면이 해소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FED가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긴축을 지속하다 보면, 결국 실물 경제가 타격을 2차로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경기는 하강하게 되고 FED는 그것을 보고 일정 시점에 도달하면 긴축 정책을 멈추게 된다.
이후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하면 FED는 다시 유동성을 풀어 완화 정책으로 돌아서게 된다. 시장은 이것을 유동성 증가로 환호하기보다 는 FED가 경기가 침체로 들어섰다는 신호를 준 것으로 생각하고 주 식을 내다 팔아버리게 된다.
- '얼마나 경제가 어려우면, FED가 금리 인하 및 완화 정책을 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위험 자산을 다 처분하는 것이다. 안전한 채권 으로 수요가 몰려서 채권 금리는 내려가고 주가지수나 부동산도 급락 하게 된다. 그러면서 수익률곡선은 예전처럼 정상화되기 시작하는 것 이다.
실물 경제에 대한 데이터가 가장 많은 FED가 경제가 부러질 것을 먼저 감지하고 그것을 시장에 확언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 매도가 나오면 이때 바로 역실적 장세의 매도 클라이막스가 만들어지는 것이 다. 만약에 내가 장기 투자자이고 지수에 투자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면 이때 분할 매수에 들어가려 할 것이다.

- 결론적으로 향후 몇 년간은 부동산 시장에 큰 조정장이 올 것이 확실한 상황으로 보인다. 정부의 현재 공급 계획이 지연되지 않는 한 시장은 약 30% 전후의 가격 조정이 있을 것으 로 예측된다. 무주택자, 유주택자, 다주택자 모두 자산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다.

-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하더라도 미·중 간 격차는 크지 않은 채 지속될 것이며, 미국이 재차 중국 GDP를 추 월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미·중 경쟁은 향후 30~50년 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같은 매우 불리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는 저주와도 같은 얘기다.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나토의 동진으로 인해 자국의 안보가 위협당하고 있다는 러시아의 위기감으로 발생한 것이겠지만, 푸틴 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결국 미국의 힘이 이전과 는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패권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글로벌 패권 에 대해 국제사회로부터 비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미국 내 다양한 현실주의 학자들은 이제 미국의 국력이 과거와 달리 줄어든 상황에서 미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들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즉 과거 미국이 누리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미국의 패권국 지위보다 미국의 협 소한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 중심으로 유지되던 국제적 규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즉 미국이라는 패권국 중심으로 유지되던 국가 주권 개념이 이 제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불참은 패권 쇠퇴로 인해 미국의 국방 전략이 변했기 때문이다. 조지 부시 정부 당시 미국의 국방 전략은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당시 미국은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후 2008년 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행정부 당시 미국의 국방 전략은 한 개의 전쟁 수행과 다른 한 곳의 분쟁에서 억지력 투입이었다. 미국은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방비를 줄여나가야 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 전략은 단 한 개의 전쟁만을 수행한 다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중국과의 전쟁을 의미하며, 대만해협 에서의 무력 충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현 국방 전략으로 볼 때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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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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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세계질서

경제 2022. 12. 19. 20:15

- 질서가 파괴되었다가 재건되는 기간은 약자를 황폐화시키고, 진정한 강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한다. 그리고 혁명적인 새로운 접근 방법(즉 새 로운 질서)이 수립되어 번영의 시대가 도래한다. 그러나 번영의 시기가 오래되면 빈부 격차가 더 커져 부채로 인한 버블이 발생하여 다시 스트 레스 테스트의 시간을 거쳐 파괴와 재건(즉 전쟁)이 반복되고 여기서 다 시 새로운 질서가 창조돼 강자가 승리하는 사이클이 반복된다.
어려운 시기를 겪은 사람들이 이러한 질서의 파괴와 재건을 어떻게 생각할까? 독자들은 이런 시기를 겪어본 적이 없고 당시의 이야기는 무시무시하므로 실제 그런 상황에 처하는 상상만 해도 매우 불안해질 것이다. 이 시기에는 재정적인 고통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도 발생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이 더 심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누 구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가감 없이 말하면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사람은 고용을 유지했고 전쟁의 피해를 겪지 않았으며 자연재해를 극복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어려운 시기가 사람들을 더욱 단결시키고 강인한 성 격을 갖도록 했으며 기본적인 것에 감사하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톰 브로카우 Tom Brokaw는 1930년부터 1945년 사이의 어려운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 강인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보았으며, 그들을 '위대한 세대 The Great Generation'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공황과 제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부모님과 부모님의 형제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서 각자 이 시기를 겪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니 모두 같은 의견을 가지 고 있었다. 불황과 전쟁은 대개 오래가지 않는다. 길어야 2년에서 3년이 다. 그리고 가뭄, 홍수, 전염병 같은 자연재해도 기간이나 강도가 다르기 는 하지만 복구가 이루어지면서 고통이 감소된다. 또한 불황, 혁명/전쟁, 자연재해 등 이 3가지 어려운 위기가 동시에 닥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혁명/전쟁 같은 고난이 고통을 주기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에게는 잘 헤쳐나갈 능력이 있으며, 이를 극복해 서 보다 높은 수준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닥친 모든 비참한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 는 안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인류의 적응력과 창조력을 믿고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미래에 당신과 나, 그리고 세계 질서 는 커다란 도전과 변화에 직면하겠지만 인류는 보다 영리해지고 강인해져 어려운 시간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번영으로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 역사를 보면  그 어떤 정부도 개인을 재정적으로 보호해준 적이 없다. 당 신이 그 입장이 되어도 마찬가지겠지만 대부분의 정부는 통화와 신용의 창출자로서 자신들의 특권을 남용해왔다. 그 이유는 어떤 정부도 사이 클 전체를 책임질 정도로 길게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각 정부는 사이 클의 한 시점에 출범해서 주어진 여건하에서 가장 정부에 이익이 되며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정책을 편다(이 정책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위도 포함된다. 물론 이로 인해 전체 사이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는 하겠지만),
사이클의 초기에는 그 어떤 주체보다 정부에 많은 자금이 필요한데 정부는 신뢰할 만하므로 대량의 부채를 발생시켜도 큰 문제가 없다. 그 런데 사이클 후반기에 집권한 새로운 지도자와 중앙은행은 부채를 상환해야 하지만 주사액이 별로 남아 있지 않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설 상가상으로, 만일 파산하면 체제에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는 대기업까 지('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믿음이 무너지면 안 되니) 지원해야 한다. 그 결 과 정부는 개인, 기업 등 다른 경제 주체들보다 훨씬 더 심각한 현금 흐 름상의 문제에 봉착한다.
사실상 모든 경우에 있어 정부는 자신이 최대 채무자가 됨으로써 부 채가 쌓이는 원인을 제공한다. 부채 버블이 터지면 자산을 사들이고 화 폐를 찍어내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정부와 다른 경제 주체들을 위기에 서 구제한다. 부채 위기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런 경향을 보인다. 바람직 하지는 않지만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는 있다. 돈과 신용 을 창출하고 분배해서 모든 사람이 만족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표적인 재정 정책이다. 역사적으로 지도자들은 자신의 통치 기간이 끝나고 한참 뒤에야 상환 기간이 만 료되는 부채를 발생시켜 다음 지도자에게 짐을 떠안겼다.
정부가 돈을 찍어내 금융자산(대부분 채권)을 구입하면 금리가 낮게 형성되어 대출과 구매 활동이 활발해지고 정부는 적극적으로 투자자들 로부터 채권을 구입한다. 금리가 낮으니 투자자, 기업, 개인은 대출을 받 아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해서 이자를 지불하고도 수익을 얻는다. 이렇게 되면 중앙은행은 더욱 많은 양의 화폐를 발행해서 채권 및 다른 금융자산을 매입한다. 자산 가격은 올라가지만 정말 필요한 사람의 수중에 현금, 신용, 구매력이 돌아가지는 못한다. 이런 현상은 2008년 금융 위기 때 발생했고, 그 뒤로 코로나19 위기가 닥친 오늘날에도 발생 하고 있다. 돈을 찍어내 금융자산을 매입했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현금 과 신용이 돌아가지 않으면 정부는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필요한 곳에 사용한다. 미국 연준이 2020년 4월 9일에 이런 계획을 발표했다. 화폐를 찍어내 부채를 구입(부채의 화폐화)하는 방식은 돈을 가진 사람 으로부터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전하는 효과적인 조치로, 정치가들은 국민의 분노를 자극하는 세금 부과보다 이 방법을 더 선호한다. 이것이 중앙은행이 항상 화폐를 찍어내 가치를 떨어뜨리는 이유다.
- 암 치료와 마찬가지로 제일 좋은 치료는 진행을 중지시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한 결과 질서에서 혼란으 로 변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역순도 마찬가지).
1단계는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고 참신한 지도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며......
2단계는 자원 배분 체계와 정부의 관료 제도가 수립되고 치밀해진다. 이 단계가 잘 진행되면...
3단계인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는 단계를 거쳐..
4단계가 되면 지출과 부채가 과다해지고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며...
5단계에는 금융상황이 악화되고 갈등이 심화되어...
6단계에는 혁명과 내전이 발생한 후...
1단계로 돌아가 전체 사이클이 다시 시작된다.

- 혼란이 만연하고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강인한 성격의 지도자가 나타나 엘리트주의를 혁파하고 보통 사람들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사람들을 포퓰리스트라고 한다. 포퓰리즘은 정치적·사회적 현상으 로, 최상류층이 자신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믿는 서 민들에게 인기가 있다. 이는 주로 빈부와 기회의 격차가 심할 때 나타나 서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문화적 위협으로 간주되며, 권력을 쥐 고 있는 '엘리트 기득권층 Establishment elites'이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을 때 더욱 인기를 얻는다. 국민의 분노가 축적되어 누군가 자신들의 입장을 정치적으로 대변해주기를 바랄 때 포퓰리스트들이 권력 을 잡는다. 이 지도자는 좌파일 수도 있고 우파일 수도 있지만, 중도파라기보다는 극단주의적 성향이 강하며 국민의 감정에 호소한다. 또한 이들은 협조적이지 않고 대립을 추구하며 포용하기보다는 배척하려 한다. 이 때문에 우파 포퓰리스트와 좌파 포퓰리스트 간에는 타협할 수 없는 차이로 잦은 다툼이 발생한다. 극단으로 치달아 혁명이 발생할 때는 좌 냐 우냐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1930년대 좌파의 포퓰 리즘은 공산주의의 형태로 나타났고, 우파의 포퓰리즘은 파시즘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미국과 영국에서는 평화적인 혁명으로 변화가 발생했다. 최근의 사례로 2016년에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우파 포퓰리즘의 표출이며, 반면에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의 득세는 좌파 포퓰리즘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국가에서 점점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조 바이든Joe Biden 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극단주의를 경계하고 온건을 추구하는 시류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포퓰리즘이 나타나면 신호로 생각하고 주의하라. 포퓰리즘과 양극화 가 심할수록 5단계가 많이 진행되었으며 혁명과 내전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라. 5단계에는 그래도 중도파가 조금 남아 있지만 6단계로 넘어 가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 내전과 혁명의 전형적인 형태는 좌파 세력이 우파 세력으로부터 권 력을 탈취하는 것이지만, 좌파의 부와 권력이 우파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드물거니와 발생 배경도 다르다. 주로 기존 질 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무정부 상태에 빠져 대다수의 국민이 강력 한 지도자가 나타나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를 바랄 때 발생한다. 좌파 정부로부터 우파 정부로의 혁명이 발생했던 사 례는 1930년대의 독일, 스페인, 일본, 이탈리아, 그리고 해체가 진행된 1980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소비에트연방, 이사벨 페론Isabel Perón 으로부터 군사정권으로 권력이 넘어간 1976년 아르헨티나의 쿠데타, 프랑스 제2제정을 세운 1851년 프랑스의 쿠데타 등이다. 내가 연구한 모든 사례에 있어 성공이냐 실패냐는 한 가지 이유로 결정되었다. 좌파의 혁명과 마찬가지로 우파의 혁명도 광범위하게 경제적 성공이 이루어지 면 성공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다. 이런 이유로 인해 장기적으로 보면 전체적인 부가 늘어나고 분배가 잘 이루어지는 사회로 나아간다(즉 보통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복지가 향상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빅 사이클 안에서 이를 경험하는 사람은 큰 그림을 볼 수 없다.
내전과 혁명을 이끄는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 층 출신들이 많았다(지금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프랑스혁명의 삼거 두는 부르주아 계급의 가정에서 자란 변호사 조르주 자크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부르주아 가문 출신의 의사, 과학자 겸 언론인이었던 장폴 마라Jean-Paul Marat, 그리고 역시 부르주아 출신의 변호사겸 정치인인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Maximilian Robespierre였다. 혁명의 초창기에는 라파예트 후작Marquis de La fayette처럼 온건한 부유층 가정에서 자란 진보적인 귀족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마찬가지로 러시아혁명의 주도자인 블라 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은 법을 공부한 사람이었고, 레온 트로츠키 Leon Trotsky는 교육받은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국공내전을 이 끈 마오쩌둥은 온건한 부유층 출신이며 법학, 경제학, 정치 이론 등 다 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저우언라이 역시 공무원 집안의 중산층 출 신이다. 이 지도자들은 카리스마가 있었으며(오늘날의 지도자도 마찬가지 다),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협력하는 능력으로 거대 조직을 운영하여 혁 명을 가능하게 했다. 미래의 혁명가를 알고 싶다면 이런 자질을 가진 사 람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보다 공정한 세 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상주의자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하 려는 잔혹한 혁명가로 변한다.
- 현명하게 힘을 사용할 때는 언제 협상하고 언제 밀어붙일지를 명확 히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어 떻게 힘이 변화할 것인지를 예상해야 한다. 가장 힘이 막강할 때 협상을 하거나 타협을 강요하거나 또는 전쟁을 해야 한다. 이는 힘이 약해지기 시작할 때는 미리 싸워야 하고 힘이 상승하기 시작할 때는 최대한 나중 에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국가와 공멸하는 관계에 빠졌을 때는 어떻게든 그 상태를 벗어 나야 한다. 관계를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잘 안 되면 전쟁이라도 해야 한다. 힘을 현명하게 사용하려면 가급적 힘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 안 그러면 다른 국가들이 위협을 느껴 힘을 키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서로에게 위태로운 상호 확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 칼집 속의 칼처 럼 힘은 필요할 때만 꺼내어 휘두르는 것이 좋다. 그러나 때로는 힘을 보여주고 이를 사용하겠다고 협박하는 것도 협상력을 높여 전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대방에게 무엇이 제일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특히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지, 무엇을 위해 싸우지 않을 것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면 양측이 공정한 해결 방식이라고 생각하 는 균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힘을 보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불필요한 힘을 갖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힘을 유지하려면 자원, 특히 시간과 돈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권력이 없는 사람이 권력이 있는 사람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 1945년 이전 35년간 사실상 모든 부는 파괴되거나 국가에 압수되었다. 몇몇 국가에서는 자본시장과 자본주의가 기존 질서와 융합하지 못 하는 부분 때문에 발생한 분노로 인해 자본가들이 살해당하거나 투옥되 기도 했다. 우리가 시야를 몇 세기 전까지 확대시켜 보면 극단적인 호황 과 불황이 규칙적으로 반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의 2차 산업혁명이나 도금시대처럼) 자본이 넘치고 자본주의 가 꽃피는 호황기에 이어 (1900~1910년에 부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국 내 봉기와 국제적 갈등이 발생한 시기 같은) 과도기를 거친 후 (1910년부터 1945년 사이에 발생한 것처럼) 전쟁과 불황이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사이 클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불황과 호황을 발생하게 하는 인과 관계로 보면 현재는 사이클 초기의 호황기가 아니라 불황과 구조조정으 로 대표되는 말기에 와있음을 알 수 있다.
- 신용을 창출한다는 의미는 돈을 갚겠다는 약속을 하고 구매력을 창출하는 것이므로 단기적으로는 경기부양 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불황을 낳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사이클이 생기는 것이다. 과거부터 돈을 빌리거나 주식 발행으로 자금을 확보 하려는 노력과 돈을 빌려주거나 주식을 구입해서 이익을 보려는 욕망은 공생하는 관계였다. 이런 식으로 구매력이 상승했고 결국 상환 가능액 이상의 대출로 위기가 발생해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금융위기와 주식 시장의 붕괴가 발생했다.
이 시기에는 비유적이건 실제건 은행가와 자본가들의 목이 달아났고, 엄청난 재산과 많은 사람의 생명이 사라졌으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법정통화(내재가치 없이 인쇄하는 화폐)를 발행한다.

- 항상 그렇듯 네덜란드도 매우 부유해지면서 경쟁력을 상실한 다. 그들의 임금은 전반적으로 유럽 다른 지역보다 높았으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역시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예를 들면 차 같은 새로운 인기 품목을 제대로 취급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저조한 네덜 란드의 경제 성장 때문에 거대한 제국을 유지하기 힘들어졌고 여러 곳 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로 해외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부를 지킬 여력 이 없어졌다.
이렇듯 1725년부터 1800년 사이에 전형적인 방식으로 네덜란드의 금융은 몰락했다. 다음 표는 암스테르담은행의 성장과 몰락을 잘 보여 준다.
늘 그렇듯 다른 분야에서는 네덜란드의 지위가 약해져도 길더화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는 여전히 유지되었다. 그 이유는 국제적인 기업 간의 신용거래에서 환어음을 압도적으로 많이 이용하므로 네덜란드와 거래를 하고 싶은 기업은 암스테르담은행에 계좌를 개설해야 했고, 전세계 무역의 40퍼센트는 암스테르담은행을 통해 길더화로 결제가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무역과 금융 거래에서 네덜란드의 중요성, 길더화를 유 용한 교환 수단 및 부의 축적 수단으로 만든 암스테르담은행의 정책, 네 덜란드 기업과 은행이 길더화를 고집한다는 사실, 이 3가지 이유로 인해 길더화는 최초의 기축통화 지위를 굳건히 유지했다. 이로 인해 네덜란 드는 더 많은 부채를 질 수 있는 '예외적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 영국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하려면 1600년대 말 영국과 유럽 의 전반적인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7세기 초, 영국과 유럽에서 벌어진 대규모 분쟁은 이전의 모든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뒤집 어 놓았다. 9장에서 설명했듯 30년 전쟁으로 초토화된 유럽에서는 대대 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30년 전쟁은 이념, 종교, 경제 계급 간에 벌어진 전쟁이었고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새로운 유럽 질서를 세우는 토대를 마련했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국가들이 탄생 했고, 각국이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하면서 유럽은 분열했다. 영국제국은 부와 권력을 둘러싸고 여러 형태의 갈등을 겪었다. 계급 간 투쟁으로 볼 수 있는 잉글랜드 내전이 수 세기에 걸쳐 잔인하고 격렬하게 이어졌고, 네덜란드 통령을 지낸 빌렘 3세(영국의 윌리엄 3세)를 유혈 사태 없이 영국의 국왕으로 추대하는 명예혁명이 일어났다. 이러한 내부 갈등은 공통적으로 군주제를 약화시키고 의회의 권력을 강화했으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 세 왕국의 관계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냈다. 특히 잉글랜드 내전을 계기로 왕(찰스 1세Charles 1)은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반란을 주도한 지휘관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의 통치 아래 군주제가 폐지되고 잉글랜드 연방commonwealth of England 이 수립되었다.
영국은 이러한 분쟁을 거치며 군주제에서 벗어나 법치주의를 확립했으며 왕과 의회 사이에 새로운 권력 균형을 이루어 훗날 제국으로 올라서는 토대를 마련했다. 영국 의회는 강력한 권력을 앞세워 실력 중심으 로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체제를 적절하게 허용했고, 총리는 왕실이 아닌 의회의 신임을 받아야 했다. 윌리엄 피트William Pitt Elder와 그의 아들 월 피트Will Pitt Younger, 로버트 필 Robert Peel, 윌리엄 글래드스턴, 벤저민 디 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등 많은 정치인이 뒤를 이어 영국의 부상과 전성 기를 이끌며 국가 기틀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모두 지주 귀족 이 아닌 상인 가문 출신이었다.
의회의 이러한 혁명적 강화는 1600년대 후반부터 유럽 전역에 퍼졌 던, 누가 어떤 권한을 가져야 하는지, 정부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계몽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것은 영국인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의 초기 과학 사상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 새로운 인 간 중심 철학의 핵심은 사회가 이성과 과학에 근거해야 하며 정부의 권력은 신이 아닌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사고방식에 있다.
- 이 시기에는 토론과 회의가 권장되었다. 기초 교육이 개선되고(문맹률 이 감소했다), 인쇄물을 통해 사상이 보급되고(당시 최초의 백과사전과 사 전이 대량으로 인쇄되어 배포되었다), 국경을 초월한 엘리트 계층(외국과 교류하며 교양을 쌓은 지식인)이 늘어나면서 정치·사회 사상을 논할 수 있는 새롭고 폭넓은 '공론장Public sphere'이 마련되었다. 당시 주요 사상가들은 서구권에서 오늘날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주요 사상과 개념을 만들어냈다.
계몽주의 사상은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Catherine the Great와 같은 독 재 군주부터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채택한 대의 정부Representative gov- ernment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국가에 영향을 끼쳤다. 영국은 특히 계몽주의의 강력한 정치 제도와 법치주의가 제공하는 이점을 누리는 동시에 계몽주의가 강조하는 과학과 그에 근거한 주요 발견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강점은 즉각적으로 번영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점차 법치주의를 존중하는 영국의 체제가 강력한 교육과 결합하면서 영국은 상업과 혁신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기반을 다질 수 있었고, 이는 영국제국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영국은 중앙 집권화된 강력한 재정 당국을 설립하여 재정적 으로 탄탄해졌고, 덕분에 경쟁국보다 훨씬 더 많은 세수를 거둘 수 있 었다. 18세기까지 영국의 세금 부담은 프랑스의 거의 2배에 달했다. 1694년에 설립된 영란은행은 영국 정부 부채의 유동성을 표준화하고 규모를 늘려 차입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개혁 조치와 더불어 국채 수익률은 1700년대 초반에 다른 국가들보다 급격하게 하락했다.

- 미국인들은 우주 프로그램, 빈곤과의 전쟁, 베트남 전쟁에 비용이 얼마나 들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미국이 매우 부유하다고 느꼈고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안전해 보였기 때문에 '총과 버터' 재정 정책, 즉 국방과 민생을 모두 챙기는 재정 정책을 무기한 감당할 수 있을 것이 라고 여겼다. 1960년대가 저물 무렵, 실질 GDP 성장률은 0퍼센트에 근 접했고, 인플레이션은 약 6퍼센트, 단기 정부 금리는 약 8퍼센트, 실업 률은 약 4퍼센트에 육박했다. 1960년대 미국 주식은 연 8퍼센트의 수익 률을 기록했고, 채권은 하락했으며, 주식 변동성과 연동된 채권은 연간 -3퍼센트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공식적인 금 가격은 달러 기준으로 계속 고정되었지만 1960년대 후반에는 시세가 소폭 상승했고, 원자재 가격은 계속 약세를 보이며 연 1퍼센트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 나는 당시의 인플레이션 심리를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 돈을 빌리거나 급여를 받는 즉시 물건을 구 매하여 '인플레이션을 앞지르려 했다. 사람들은 금이나 해변에 자리한 부동산처럼 생산이 제한된 재화를 사들였다. 달러 채권에서 비롯된 공 포는 금리 상승으로 이어졌고, 금 가격은 1944년에 고정되어 공식적으 로 1971년까지 유지되었던 35달러에서 1980년에는 850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통화와 신용의 역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높은 인플레이션과 금리를 경험하며 그것이 주는 고통을 처 절하게 느꼈다. 따라서 통화와 신용은 오랫동안 정치 문제로 남았고,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많은 갈등과 저항이 생겨났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 했고, 석유파동은 높은 유가 상승과 배급으로 이어졌으며, 기업과 노조는 임금과 복지를 놓고 투쟁했고,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져 닉슨 대통령은 탄핵될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정치·사회 문제가 절정에 이른 건 1970년대 후반 이란 테헤란에 있던 미국 대사관에서 52명의 미국인이 444일 동안 인질로 잡힌 사건이 벌어진 때였다. 미국인들은 나라가 무 너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당시 공산주의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훨씬 안 좋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1976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내 분이 일어났던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죽고 덩샤오핑이 정권을 잡았다. 덩샤오핑의 시장 개혁을 계기로, 중국의 경제 정책은 기업의 민영화, 채 권과 주식시장의 발전, 기업가적인 기술/상업 혁신, 심지어 억만장자 자 본가의 융성 같은 자본주의적 요소를 허용하며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물론 모든 자본주의적 요소는 중국 공산당의 엄격한 통제 아래 이루어 졌다. 이러한 지도부와 접근 방식의 변화는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을지라도 21세기를 형성하는 커다란 하나의 힘으로 작용했다.
- 통화와 신용이 크게 증가하면 통화와 신용의 가치가 떨어지고 다른 투자자산의 가치가 오른다.
2020년 연준의 통화 발행과 채권 매입은 1933년 3월 루스벨트, 1971년 8월 닉슨, 1982년 8월 볼커, 2008년 11월 벤 버냉키 Ben Bernanke, 2012년 7월 마리오 드라기가 취한 조치와 매우 흡사했다. 이제 일반적인 운영 규정으로 자리 잡은 이러한 통화 정책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 현재 빅 사이클 내 미국의 위치
내가 만든 모형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빅 사이클에서 대략 70퍼 센트, ±10퍼센트 위치에 도달한 상태다. 미국은 아직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는 6단계의 내전과 혁명으로 넘어가지 않았지만, 현재 내부 갈등 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치러진 선거는 국가가 얼마나 분열되어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재 미국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듯 경계선을 긋고 거의 50:50으로 분열된 상태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a) 문제를 해결할 혁신적인 변화의 기회를 줄이는 정치적 교착 상태가 나타날 위험이 커지거나, b) 어떤 형태로든 내전과 혁명이 발 생할 수 있음을 지난 역사는 보여주었다.
5장에서는 빅 사이클이 5단계에서 6단계로 확대될 확률을 암시하는 전통적인 징후를 살펴보았다. 현재 내가 지켜보는 가장 중요한 3가지 징후는 1) 규칙이 무시되고, 2) 양측이 서로 감정적으로 공격하고, 3) 유혈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 1. 마오쩌둥의 시대(1949~1976년)
2. 덩샤오핑과 후임자들의 시대(1978~2012년)
3. 시진핑의 시대(2012년~현재)
각 시기에 중국은 이전 단계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성 장그래프를 따라 움직였다.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건들이 일 어났다.
마오쩌둥은 1949년부터 사망한 해인 1976년까지 (다른 여러 장관과 특히 종신 총리였던 저우언라이와 함께) 권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기관과 통치 체 제, 사회기반시설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공산당의 황제로서 중국을 다스렸 다. 중국은 나머지 세계와 관계를 단절한 채 정부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엄 격한 관료적 통제를 유지하는 엄격한 공산주의 체제를 따랐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사망한 직후인 1976~1978년, 강경파 4인방과 개혁파 사이에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마침내 덩샤오핑과 개혁파가 1978년에 권력을 장악하자 두 번째 시대가 열렸다.
덩샤오핑은 1997년에 사망할 때까지 그를 지지하던 장관들과 함께 중국을 직간접적으로 통치했다. 이 시기에 중국은 좀 더 집단 지도 체제로 전환하 고, 개방 정책을 펼치며 외부 세계와 접촉하고, 시장/자본주의 관행을 도입 하고 개발했으며, 재정적으로 훨씬 탄탄해졌다. 그 외 영역에서도 강력했으 나, 미국이나 다른 국가에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수준까지였다. 당시 미 국이 중국에서 매력적인 가격에 판매되는 품목을 사들이면서 미국과 중국 은 공생 관계로 간주되었고, 중국은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달러표시 부채를 지고, 중국은 달러 표시 자산을 확보하게 되었다. 덩샤오핑이 사망한 후에도 그의 후임자인 장쩌민과 후진타오锦(그리고 이들과 함께 중국을 이끈 지도자들)는 같은 방향으로 국가 운영을 계속 이어갔기 때문에 중국의 부와 권력은 근본적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건전한 방식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자 미국과 여러 선진국에서 자산 가격에 대한 긴장이 고조되었고, 제조업 일자리가 중국에 쏠리는 현상에 대한 불평이 쏟아졌으며,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 서 부채 조달을 통한 성장이 증가했다.
2012년 시진핑이 집권했을 때 중국은 더욱 부유하고 강력해졌지만,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었고 지나치게 부패했으며 미국과 점점 대립각을 세우고 있 었다. 시진핑은 경제 개혁을 가속화하고 부채 증가를 억제하는 동시에 경제를 공격적으로 개혁하는 도전을 감행했으며, 선도 기술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지원하고 좀 더 포괄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중국의 교육 격차와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며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는 데 더욱 적극적 으로 나섰다. 중국의 국력이 증강하고 시진핑의 대담한 목표(예: 일대일로- 帶一路 구상, 중국 제조 2025 계획)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중국에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빼앗기는 상황을 저지하겠다는 공약을 내 세운 포퓰리스트이자 민족주의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미·중 분쟁은 고조 되었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중국은 지배적인 강대국에 도전할 만큼 빠르게 힘을 기른 강국이 되었다.
-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78~2008년 중국의 고속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1) 전 세계가 여전히 빅 사이클의 평화와 번영 국면에 있었고, 세계화와 자본주의가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널리 받아 들여졌다(당시에는 재화와 서비스를 비용 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곳에서 생산 하고, 국적에 대한 편견 없이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교류해야 하며, 민 족주의는 나쁘고 전 세계의 균등한 기회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선한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했다). 동시에 2) 덩샤오핑이 끔찍한 결과를 낳은 공 산주의와 고립주의 정책에서 훨씬 효과적인 시장/국가자본주의와 개방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계기로 중국은 외부 세계로부터 많은 것을 습득하고 막대한 외국 자본을 유치했으며, 거대 한 수출국이자 채권국이 되었다.

- 전통적으로 무역/경제 전쟁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는 어떤 국가가 다른 국가에 꼭 필요한 수입을 차단할 때 발생한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이끈 미국과 일본의 연구 사례(6장 참조)는 현재 미·중 관계의 지리적 상황과 쟁점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유용한 참고 사례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석유를 비롯한 필수 원자재와 기술, 필수 수입품 등을 미국이나 다른 국가에서 수입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의 수입을 차단 하면 전쟁이 확대될 것이라는 명백한 신호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 국은 제너럴 모터스(미국보다 중국에서 더 많은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다), 애플 같은 미국 기업을 차단하거나 많은 최첨단 제품, 자동차 엔진, 방어체계 생산에 필요한 미국산 희토류 원소 등을 수입하는 것을 차단함으 로써 전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움직임이 나 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양국에서 필수 수입품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의 단계적 확대 신호가 되어 훨씬 심각한 갈등을 초래 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발전 은 정상적인 과정으로 진행될 것이고, 주로 각 국가의 진화하는 경쟁력 을 기반으로 국제수지가 개선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양국은 국내 생산을 늘리며 '디커플링 decoupling (탈脫동 조화)'으로 전환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시진핑 주석이 말했듯이, 세계는 "지난 10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변화를 겪고 있으며 “보호무역주의가 늘어나고, 세계 경기 침체가 지속 되고, 국제 시장이 축소되는 외부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중국은 지난 40년에 걸쳐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능력을 키워왔다. 앞으로 5년 동안 미국과 중국은 서로 독립적인 행보를 보이게 될 것이다. 향후 5~10년 동안 차 단 위험이 있는 수입 의존도를 줄이는 속도는 미국보다 중국에서 훨씬 빠르게 나타날 것이다.
- 미국이 기축통화국으로서 이러한 지배적인 지위를 잃을 위기에 처한이유는 다음과 같다.
* 중앙은행 외환 보유고와 국부펀드 등 외국의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달러 표시 채권 금액은 여러 기준에 따라 책정된 적정 기축통화 보유 규모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많다.
*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달러 표시 채권과 통화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어 연준에서 상당 부분을 화폐화하지 않고서는 미국 채권을 향한 적 절한 수요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미국 정부가 무시해도 될 정도의 매우 낮은 명목 수익률과 마이너스 실질수익률을 지불하고 있으므로, 미국 달러 표시 채권을 보유할 만한 금전적 인센티브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 전쟁 중에 교환 수단이나 부의 저장 수단으로 채권을 보유하는 것은 평상시 보다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채권 가치(법정통화로 지불받는 약속)와 법정통화의 가치는 다른 자산에 비해 하락할 것이다. 현 재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지만, 전쟁이 격화되면 문제가 될 것이다.
* 중국이 보유한 1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채권은 전체 채권 발행 잔액인 약28조 달러(2021년 5월 기준)의 4퍼센트에 불과한 금액이므로 관리하기 힘 든 위험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은 미국이 중국에 가한 조치가 그들 에게도 가해질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보유한 달러 자산에 대한 조치는 해당 자산을 보유한 다른 국가들이 인식하는 달러 채권 자산의 보유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고, 이는 해당 자산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킬 것 이다. 지금은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향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역할은 주로 국가 간 자유로운 교환에 달려 있다. 따 라서 미래에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의 이익에 반하는 방식으로 달러 흐름을 통제하거나 통화 정책을 시행한다면 달러는 이전만큼 세계를 주도하는 기축통화로 선호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이클의 다음 단계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외환 통제 가능성이 제기되면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 미국의 제재로 피해를 본 국가들은 제재를 피하거나 제재를 가하는 미국의 세력을 약화시킬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 의 제재를 받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제재에 직면할 위험에 처해 있다. 두 국가는 이를 대체할 결제 체계를 개발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으며, 중국의 중앙은행은 미국 제재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 디지털 통화를 만들었다.
- 요컨대 컴퓨터 분석 결과와 마찬가지로, 나는 가까운 미래에 중국과 미국이 서로 용납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힐 만큼 강력해질 것이기에 위험 한 소규모 충돌은 벌어지더라도 상호 확증 파괴에 대한 기대 심리가 군 사 전쟁을 저지할 것이라고 본다. 양자 컴퓨팅 등 예상치 못한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여 미국이나 중국에 비대칭적인 이점을 제공하고 상 호 확증 파괴가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교착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도로 상호 연결된 이 세계에서 미국인과 중국인의 건전한 연결과 교류는 중요도에서 떨어질지 몰라도 확실히 전쟁의 걸림돌로 작 용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위험은 증가할 것이다. 미국이 계속 쇠퇴하고 중국이 계속 성장한다면, 이제 중요한 문제는 각국이 품위를 지키며 계속 나아갈 수 있는지의 여부다. 실질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차이가 존 재하고 갈등을 해소할 상호 합의된 중재자나 절차가 없으면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중대한 위험이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듯이, 미국과 중국이 타협할 수 없는 가장 큰 차이는 대만에서 찾을 수 있으 며, 나는 대만의 상황을 매우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중국이 '하나의 중 국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권을 놓고 싸 워야 하는 특별한 지역이 바로 대만이다. 대만은 중요한 지역이지만, 과연 미국이 방어해야 할 만큼 주요 접전지로서 가치가 있다고 여길지는 의문이다. 이것은 향후 10년 내 두 강대국 사이에 군사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분석을 종합해보면 중국이 경쟁력을 갖추고 점점 더 세계화 됨에 따라 무역/경제 전쟁, 기술 전쟁, 자본 전쟁, 지정학적 전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레이엄 앨리슨이 그의 훌륭한 저서 《예정된 전 쟁》에서 설명했듯이, 지난 500년에 걸쳐 거의 동등한 두 강대국이 타협 할 수 없는 차이를 경험했고, 16개 사례 중 12개는 군사 전쟁이었으며, 80~90퍼센트는 주요 전쟁과 관련하여 대규모 군사력 증강이 이루어졌 다. 나는 이러한 역사적 통찰과 전쟁 가능성을 낮추는 상호 확증 파괴 논리를 비교 평가했는데, 향후 10년 동안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약 35퍼센트에 달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위험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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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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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머니

경제 2022. 12. 18. 15:39

- 기술은 양면성을 지닌다. 기술은 우리의 힘을 강화하지만, 동시에 의존도를 높인다. 이제 인간활동을 지원하는 외적 도구들이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형성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처음에는 새로운 선택지였던 혁신적 도구들이 이제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필수 품이 됐다. 대도시 사람들은 스마트폰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 사용 여부'를 선택할 수는 없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 으면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주변의 사회경제적 네트워 크에서 쉽게 배제되고 말 것이다.
모순은 우리가 그 강력한 기술을 직접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 심화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구글맵은 사실상 내가 사용하 는 스마트폰에 설치된 것이 아니며, 일상어로는 '클라우드'라고 불 리는, 내가 보통 스마트폰을 통해 접속하는 디지털데이터센터에 존 재한다. 말하자면, 구글맵은 우리의 방향타를 저 멀리 떨어진 거대 한 외부 존재로부터 그때그때 빌려다 쓰는 방식의 서비스다.
- 머니패서들이 결제시스템에 깊이 자리한다면, 시장에서 일어나 는 모든 상호작용이 그들을 거치게 될 것이다. 구매자와 판매자를 중개하는 머니패서의 등장이 지난 몇 세기 동안 시장에서 발생한 가장 중대한 변화 중 하나이다. 결제중개력은 은행업계의 입지를 단단히 굳힐 뿐만 아니라 다음의 3가지도 가능하게 한다. 첫째, 거 래 감시다. 머니패서는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민감한 데이터를 수집 하기 위해서 개인의 금융거래를 모니터할 수 있다. 둘째, 거래 검열 이다. 머니패서는 자신이 원치 않는 거래를 차단할 수 있고, 개인이 직접 돈을 운용하지 않기 때문에 돈의 흐름을 동결하고 무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셋째, 대량 자동화가 기업 독점력의 강화로 이어진 다. 원격 디지털대기업은 원격 디지털화폐가 필요하다.
- 은행업계가 지탱하는 디지털화폐는 미국과 중국이 지배하는 감 시자본주의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중국 정부는 금융시장에 미국 정부보다 더 깊이 개입하지만, 미국 정부와 똑같이 자국의 대형 기술기업의 외연 확대 기회를 모색한다). 디지털결제업계는 금융 디지털화가 안고 있는 위험을 절대 강조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대면 상거래에 진입하기 위해서 산업을 지탱하는 복잡한 내부구조 로 사람들의 주목을 요청하는 대신에, 세련됨이나 편의성 등 디지털 결제의 '느낌'만 대충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
- 반면에 디지털결제가 널리 보급되면 은행에 이롭다. 주요 은행의 주된 수입원은 이자와 수수료다. 신용카드는 이자와 수수료를 발생 시키고, 현금카드는 수수료만 발생시킨다. 은행의 디지털결제 담당 부서는 수익을 발생시키는 이익 중심점이다. 연차보고서에서도 이 것이 확인됐다. 은행은 연차보고서에 디지털결제 담당부서를 강화 하고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영업지점과 ATM 운영을 줄일 계 획을 담는다. 은행은 영업지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디지털채널로 유도하면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디지털채널은 알고리즘과 고 객서비스 봇으로 원격 조정이 가능하다. 게다가 디지털결제는 고객 행동에 관한 데이터도 발생시킨다. 은행은 디지털채널을 통해 수집 한 데이터로 고객 프로파일을 작성할 수 있다. 고객 프로파일로 예 금주의 행동을 예측하고 상품을 교차 판매할 수도 있다.
- 현금 편에 서서 함께 싸워주는 기관은 거의 없다. 현금으로 수익 을 내는 벤처캐피탈은 없다. 그래서 많은 벤처캐피탈이 언론에 현 금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를 쏟아부을수록 회사 이익에는 도움이 되는 민간 결제회사에 투자한다. 중앙은행은 현금을 발행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편향됐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줄까 두려워서 현금사용을 통일된 공식 메시지로 장려하길 주저하는 눈치다. 중앙 은행이 중립을 지키는 동안에, 은행 뒤에 버티고 있는 디지털결제 산업이 현금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
이 전쟁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참관인은 중앙은행의 공 식적인 중립 입장이 서서히 현금시스템을 없애기 위한 은밀한 계략 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뭔가 의도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당국은 은행의 ATM 폐쇄 조치 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적 영역이 아니라 사적 영역이 기에 자신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고 말한다. 많은 나라의 중앙은행 이 그저 뒷짐만 진채 상황을 관망하고, 디지털결제산업이 사나운 사냥개마냥 현금시스템을 공격하도록 내버려 둔다.
디지털결제회사와 금융회사는 십자군 원정에 임하듯 현금과 전 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에 대한 정부 지원은 위태롭기만 하다. 정부 도 디지털결제회사와 맺은 동맹관계에 갈수록 불안해하고 있다. 보 안 전문가들이 사이버공격 · 결제인프라실패, 심지어 한 나라의 경 제를 마비시킬 수 있는 디지털결제시스템에 대한 테러 등을 염려하 기 시작했다. 재정안정성의 문제도 있다. 현금 없는 사회에서 은행위기가 닥치면 어떻게 될까? ATM이 없다면, 사람들이 망한 뱅킹시스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수년 동안 현금이 자국에서 무참히 짓밟히도록 내버려 뒀던 스웨 덴과 네덜란드의 중앙은행이 이제 현금소멸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26 2018년 스웨덴 당국은 심지어 위기나 전쟁이 발생한다면' 이란 제목의 팸플릿을 제작해서 배포했다.27 팸플릿에는 러시아와 의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약간의 현금을 보유하라는 내 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솝우화에서처럼 우리는 현금과의 전쟁에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는지 모른다. 현금과의 전쟁을 둘러싼 정치적 역학관계를 이해하려면, 통화시스템의 핵심부를 파고들어야 한다. 현금의 본질은 무엇이고, 현금과 디지털화폐는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물음, 돈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할까?
- 자신이 어떻게 거대한 인적망을 형성했는지 잊게 된다. 어린아이 는 처음에 돈을 신비한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주면, 자신이 원 하는 물건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돈을 요 구하는 것은 가게 주인이 손님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과 거의 유사 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인식의 오류다. 국가가 당신 의 돈을 갈구한다는 믿음은 심리적인 결함이다. 이것은 다람쥐가 떡 갈나무가 도토리를 갈구한다고 믿는 것과 다를 바 없다(다람쥐는 떡 갈나무가 도토리를 원하기에 나무에 도토리가 열린다고 믿는다). 국가는 그 저 당신이 자신의 돈을 가져가길 원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시장 통화량 을 팽팽하게 유지해야 할 기술적인 이유가 없다면, 국가는 당신에 게서 돈을 되돌려 받는 것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 태양이 떠오른다고 착각 하기 쉬운 것처럼 우리는 국가(정부)에 돈(세금)을 줘야 국가가 '돈을 쓸 수 있다'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국가는 '돈을 써서 돈을 만들고, 다른 곳에 돈을 재발행하기 위해서 또는 시 장에 유통되는 돈의 화폐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돈을 회수한다. 국가는 과도하게 화폐를 발행해서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망을 파괴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통화정책'의 흑마술은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이 망을 팽팽하게 당겨 긴장감을 유지하는 동시에 그것이 팽창하고 변형될 수 있도록 신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 처음 은행계좌를 개설하면 은행계좌에는 숫자 '0'이 찍힌 다. 이것은 '우리, 은행은 당신에게 디지털칩을 단 1개도 발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의 친구, 로버트가 은행직원에게 현금으로 100파운드를 건네면, 은행이 로버트의 현금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 받는다. 이것은 은행의 국가화폐 보유량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그 러고 나면 은행은 로버트에게 100개의 디지털칩을 발급해줄 것이 고, 로버트의 은행계좌에 숫자 '100'이 찍힐 것이다. 여기서 디지털 칩은 국가화폐에 대한 약속이다. 로버트는 디지털칩을 자신이 소유 하는 자산으로 받아들이지만, 은행은 갚아야 할 빚으로 본다. 결과 적으로 로버트는 은행이 발행한 디지털칩을, 은행은 국가가 발행한 화폐를 갖게 됐다.
- ATM에 가는 것은 '카지노를 떠나는 것'이다. 은행은 로버트에게 디지털칩을 회수하고 국가화폐를 되돌려준다. 이로써 은행이 로버 트에게 했던 약속은 상쇄된다. 이것은 3장에서 살펴본 과정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은행은 인출을 예상하고 디지털지급준비금의 일정 량을 '실물화하여 현금으로 확보해둔다. 이는 국가화폐주기에서 음 영이 진 부분이다.
카지노에서 카지노가 발행한 칩과 로버트가 건네는 국가가 발행 한 화폐를 구분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은행에서 은행이 발행한 디지털칩과 국가가 발행한 화폐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일상적인 용어로 둘 다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용어로 둘은 명확히 구분된다. 국가화폐는 본원통화라고 한다(또는 협의통화·고성능통화·MO 라고도 불린다). 반면에 은행이 발행한 디지털칩인 뱅크칩은 은행통 화·장부통화·광의통화라고 불린다.
뱅크칩은 은행 예치금을 뜻한다. 이 단어 때문에 혼란이 생긴다. 은행 예치금은 영어로 'bank deposits'다. 'deposit'은 동사와 명사 로 모두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홍수는 강에 모래를 '퇴적시 키고(deposit)', 강에는 '모래 퇴적물(a sand deposit)'이 생긴다. 그런 데 'deposit'이 은행과 연관되면 우리는 혼란스럽다. 우리는 '무언가 를 쌓아두는 행위'를 나타낼 때 동사로서 'deposit을 사용한다(I deposited cash'는 '나는 은행에 현금을 예치했다'는 뜻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나는 은행에 현금을 쌓아뒀다'는 의미다). 그런데 'deposit'은 '쌓인 것'을 의미하는 명사로도 사용된다(I have cash deposits in the bank’는 ‘나 는 은행에 현금예금이 있다'는 뜻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나는 은행에 쌓아 둔 현금이 있다'는 뜻이다). 현실에서 은행 예치금은 은행에 쌓여 있는 돈 이 아니라, 은행이 예금주에게 하는 약속이다. 회계에 관한 지식이 있 는 사람은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를 분명히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객 예치금'은 부채로 대차대조표의 대변(은행 이 고객들에게 한 약속이 기록되는 변)에 기록된다. 간단하게 '은행 예금'은 은행이 고객에게 발행한 디지털칩인 뱅크칩이라고 기억해두면 된다.
- 결론을 말하자면,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은행은 대출 신청자에게 '국가화폐를 빌려주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외투 보관소 비유보다 좀 더 정확한 카지노 비유로 되돌아가자. 은행은 대출을 신청한 사 람들에게 국가화폐가 아닌 카지노의 칩 같은 뱅크칩을 발행해주고 그들로부터 대출약정서에 돈을 갚겠다는 서명을 받을 뿐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은행은 고객들이 단기로 맡긴 돈을 계속 예금으로 끌어모아서 보다 더 긴 만기의 장기 대출을 판매하는 과 정에서 예대마진을 가져오는 구조로 운영된다. 은행은 그 과정에서 대출해준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위험과 어느 날 갑자기 예금자들이 은행으로 몰려와 예금을 인출하는 환매 위험을 갖게 되는데, 이 두 가지 위험을 잘 관리하기만 하면 은행은 국가화폐를 계속 빨아들이 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적인 수익모델을 갖게 된다. 이로써 은 행은 주주들을 위한 수익을 낼 수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 주라고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은 예금자인 당신의 역할이 아니다. 은행이 '뱅크칩'을 발행할 수 있도록 지급준비금을 높여주는 것이 바로 당신의 역할이다.'
이것이 바로 '은행화폐의 신용창조'다.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기 위해서 뱅크칩을 발행하는 은행의 행위는 통화공급량을 확대한다. 영국에서 통화공급량의 90% 이상이 뱅크칩 형태이다. 전체 디지털 화폐시스템은 이런 뱅크칩을 개인들에게 나눠주거나 수거하는 식 으로 재할당. 재배치하면서 작동된다. 디지털화폐와 관련해서 삶을 감시하는 도구라든가 서민들을 배제하는 위험한 수단이라든가 하는 다양한 논란은 우리 삶에서 은행이 발행한 뱅크칩이 매우 중요해졌다는 사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온갖 금융기관이 우리의 일상적인 거래에 개입한다는 뜻이다. 
- 해외 송금을 위해서는, 그 과정에 개입하는 은행들이 서로 면밀 하게 소통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수천 개의 은행이 존재하기에 해 외 송금은 대단히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위 '전 세계에 안전 한 금융메시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스위프트가 설립됐다. '메 시징'이란 단어 때문에 스위프트를 왓츠앱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 관처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스위프트는 통신 허브지만, 영양가 없 는 잡담이나 주고받는 곳이 아니다. 디지털화폐시스템에서는 오직 결제메시지만이 움직인다. 각각의 스위프트 메시지는 계좌를 수정하라는 굉장히 진지한 합법적 명령이다. 은행은 스위프트의 데이터센터를 통해서 은행식별코드BIC를 사용하여 정해진 양식에 따라서 해외 송금을 진행한다.
물론 은행은 해외 송금에 관한 지급 명령을 스위프트가 아닌 다 른 메시징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1만 1,000개의 은행이 이미 스위프트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시스템을 사용하도록 그들을 일일이 설득하는 일은 어려울 것 이다(아마도 새로운 메시징플랫폼으로 동시에 갈아타도록 친구들을 설득하 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국제금융제재를 받은 (예를 들어 이란 은행과 같은) 은행들을 통해서 확인했듯이, 스위프트 네트워크에서 배제되면 해외 송금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스위프트가 지정학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으로 사용되는 이유이다.
- 현대의 신용카드는 작은 컴퓨터와 같다. 쉽게 말해서 지갑에 넣 고 다닐 수 있는 아주 얇은 랩톱이다. 신용카드는 포스단말기를 통 해서 결제요청을 금융기관에 전달한다. 존의 포스단말기로 옮겨진 나의 결제요청은 비자넷으로 보내진다. 비자넷은 비자가 보유한 거 대한 글로벌 결제시스템이다. 비자넷에는 1만 5,000개의 가맹은행 과 포스단말기가 연결되어 있고, 초당 5,000건의 결제요청이 동시 에 생성되어 전송된다. 나의 결제요청도 그중의 하나다. 비자넷은 초당 3만 건의 결제요청을 처리할 수 있다. 비자는 비자넷 데이터센 터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결코 밝히지 않는다. 그저 '동쪽 해안선' 어딘가에 있다고 말할 뿐이다. 비자넷 데이터센터는 전략적으로 대 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비자는 비자넷 데이터센터에 9일 동안 전기 를 공급할 수 있는 비상발전시설과 보안정책을 마련해두었다. <네 트워크 컴퓨팅> 매거진은 비자넷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지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유압식 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이 설 치되어 있다. 그것들은 시속 80km/h로 주행하는 차량을 멈춰 세 울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반응한다(도로는 굴곡이 심해서 고속주행은 불가능하다). 방문자는 반드시 보안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보안팀을 통과해야 하고, 단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생체정보를 확인받아야 한다.
- 이 데이터 요새는 나의 결제요청을 내 거래은행으로 보낸다. 예 를 들면 '브렛은 접골사에게 돈을 지불하길 원한다. 그에게 뱅크칩 이 충분히 남아 있나?"라는 메시지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받은 나 의 거래은행은 내게 뱅크칩이 충분한지를 확인하고, 결제요청이 들 어온 같은 통로를 이용해서 지불승인을 해준다. 존의 포스단말기 가 삐 소리를 내고 '결제승인'이란 메시지가 나타난다. 나는 신용카 드를 챙겨서 자리를 떠나고, 나의 거래은행과 존의 거래은행이 결 제 과정을 개시한다.
디지털결제의 기본 원칙은 간단명료하다. 결제를 원하는 은행이 있고, 그들 사이를 연결하는 메시징플랫폼과 고객이 사용할 수 있는 메시징 장치가 있다. 여기서부터 대부분의 결제 '혁신'이 이해될 것이다. 기존 시스템 위에 또 다른 시스템을 쌓아 올리거나 카드 네 트워크를 우회하거나 늘리기 위해서 은행에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을 고안해낸다. 예를 들어서 애플페이와 구글페이는 기 존 금융시스템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냈을 뿐 이다. 그들은 그저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폰을 신용카드로 바꿔놓았 을 뿐이다(여기에는 구글에 나의 결제내역에 관한 데이터가 계속해서 쌓인 다는 부작용도 있다).
- 페이팔은 2016년 런던 지하철을 중심으로 '새로운 화폐' 캠페인을 시작했다. 페이팔은 런던 지하철의 광고판을 중산층 의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의 이미지로 도배했다. 페이팔은 사람들을 수령인이라고 불렀다. 고대하던 기술을 곧 수령하게 될 주체 말이 다. '새로운 화폐가 도착했다'는 페이팔의 슬로건은 주문한 물건을 배송하러 온 배달원이 하는 말처럼 들렸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 이 기법을 호명이라 고 칭했다. 사람들이 이미 새로운 아이디어에 동의하고 있다고 가 정하고 사람들을 호명하여 아이디어를 주입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 어서 '사이버 먼데이'는 그저 전미소매협회가 매출 인상을 위해서 그 누구의 동의도 없이 새롭게 만들어낸 날이다.  전미소매협회는 '사이버 먼데이가 올해 최대 온라인쇼핑 시즌이 될 것'이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사이버 먼데이가 왔다'. '사 이버 먼데이를 맞이할 준비가 됐나?' 등과 같은 슬로건이 등장했다. 소비자들은 이런 슬로건을 보고 사이버 먼데이가 원래 있던 날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사이버 먼데이가 실제로 존재하는 날이라고 믿는 수백만 명이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 을 떠올린다. 페이팔과 같은 디지털결제회사들도 이와 유사한 기법 을 사용한다. 그들은 실제로 저명한 사람들이 '새로운 화폐'의 등장 을 학수고대하면서 그 흐름을 이끌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기업들이 만들어낸 거짓 메시지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기업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상업 적인 메시지는 거의 포화상태이다. 그래서 상업적인 메시지의 비판 자는 자신이 마치 재원이 풍부한 종교를 비판하는 불가지론자신과 같은 존재는 분명 있지만, 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종교적 인식을 가진 사람)가 된 것처럼 느낀다. '현금은 반드시 보호해야 할 공공재다'라 는 내용의 광고판은 없다. 왜냐하면 그 메시지를 널리 퍼트릴 현금 친화적인 기업이 현금에겐 없기 때문이다. 현금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로 공격당하고 있다.
-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현금은 '말이 끄는 수레'이니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믿게 된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현금을 마차보다 '자전거' 에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여전히 위와 같은 이야기에 불편함 을 느낀다. 자전거는 자동차처럼 아주 빠르지 않지만 잠깐 밖에 나 갔다 올 때 굉장히 용이한 이동수단이다. 그리고 관리하는 데 손이 훨씬 덜 가고, 따로 비용을 들일 일이 없으며, 다른 수송체계가 혼 잡할 때 유용하다. 현금 또한 그렇다. 디지털 은행계좌는 '금융시스 템'에 접속해야만 쓸 수 있고, 그 시스템을 잘 관리하고 유지해야 문 제없이 디지털은행거래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시스템을 신뢰할 준비가 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 솔직해지자. 현금은 뒷길에서 일가족이 경영하는 소규모 사업체로 구성된 자본주의가 뿌리내릴 기회를 제공한다. 대기업들은 경제 네트워크에서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전쟁을 벌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금이 이끄는 비공식 자본주의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힘을 합친다. 그들은 구멍가게들을 집어삼켜 하나로 통합하고 유명한 브랜드로 만들어 거대한 체인점을 탄생시키려고 한다. 또는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대형 슈퍼마켓으로 재래시장을 대 체하려고 든다. 현금은 이런 기업자본주의의 정신과 잠재적 행보에 동시에 저항하고 있는 듯하다.
- 빅브라더가 수집한 데이터는 2개의 새로운 전형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첫 번째는 빅바운서 Big Bouncer다. 빅바운서는 데이터 를 사용해서 무언가에 대한 접근 여부를 결정하는 기업이다. 예를 들어서 자동적으로 신용등급을 산출하고 신용사기를 감지하는 시 스템은 대상이 된 사람들을 특정 기업에 접근시킬지 말지를 결정한 다. 두 번째는 빅버틀러Big Butter다. 빅버틀러는 데이터를 사용해서 기업들이 접근하고자 하는 고객들의 신상을 파악하는 기업이다. 빅 버틀러는 스스로를 도움이 되는 하인이라고 칭한다. 그는 개인의 과거 금융거래이력을 내밀하게 분석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려주거나 개인의 관심사와 '무관한 정보를 걸러내도록 도움을 준 다. 빅버틀러는 사람들의 행동을 조정하거나 유도하는 데 전문가다. 빅바운서와 빅버틀러에 대해서 또 얘기하겠지만, 전 세계에 그들은 폭발적으로 등장하고 있고 주로 빅브라더와 협력한다. 미국의 벤처캐피탈들은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민주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빈말일 뿐이다. 그들은 수익 창출이라 는 미명하에 전 세계적으로 사생활 침해를 서슴지 않는 미국의 대 형 기술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각종 자원을 쏟아붓는다. 이와 동 시에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해외로 외연 확장을 도모하는 자국 기 술기업들에게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기술기업 중에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있다. 그들은 모바일결제 시스템을 담당하는 대형 조직을 두고 있는데, 각각 알리페이(앤트파 이낸셜)과 위챗페이다. 
- 술 소비를 금하는 신정국가나 금융활동에 제약을 가해서 정적을 벌하는 독재국가를 상상해보자. 혹자는 그런 국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 이미 시범 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예를 들어서 호주의 '현금 없는 복지카드'를 쓰는 복지수급권자는 허가받지 않는 상품을 허가받지 않는 상점에 서 구매할 수 없다. 이것은 디지털결제를 통해서 자행되는 사회 통 제의 완벽한 사례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민주주의 지수 에 따르면 전 세계 절반에 이르는 국가에 권위주의적 성향을 보이 면서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정권이 들어섰다. 호주의 시민권 운동가 들은 현금 없는 복지카드에 저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러한 비판조차 허용되지 않는 국가도 많다.
- 사람들은 경제가 끝없이 팽창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미 너무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진부한 표 현에서 이 논리는 빤히 드러난다. 물론 이것은 정치인들과 CEO들 이 좋아하는 표현이다(“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반드시 ... 해 야 합니다."). 이 문장은 '앞장서거나', '계속 나아가거나', '적응하도록' 사람들을 자극할 때 사용된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러닝머신 을 뛰다가 힘들어서 속도를 살짝 줄였는데 바닥으로 꼬꾸라지고 마 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 사람들이 새로운 디지털결제시스템을 갈구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대체로 이러한 요점이 빠져있다. 경제 러닝머신 위에서 빨리 달리 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은 마지못해 속도를 내서 달려야만 한다. 개개인은 강력한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작은 마디에 불과하다. 시스템은 수많은 작은 마디 들을 초월한다. 사람들이 기업자본주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경제시스템은 시스템을 따르기 버거워하는 구성원을 위해 기존 궤 도를 바꾸는 관대함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팽창해야 하는 시스템에 속해있다. 우리는 항상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해야 한다. 이것은 느리거나 너무 현실적이거나 자동화되지 않거나 독립적인 것들은 모두 배제되어야 한다는 뜻이 다. 기업자본주의에 따르면 이는 낡은 허물을 벗는 것과 같다. 이런 맥락에서 현금은 현재의 경제시스템이 계속 팽창하고 빠르게 성장 도록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제약이다. 현금은 경제 러닝머신이 최고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제동을 건다. 산업 미래주의자들이 '소비자들 이 스스로 디지털결제를 선택한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상 사람들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힘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다.
- 많은 경제학 논평가가 시장의 능동적 선택이라는 측면에 주목하지 만, 시장의 수동적 측면에 주목하는 편이 경제 네트워크를 이해하 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구부정한 자세가 이 모호성을 설명하는 데 좋은 비유가 될 수 있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면 능동적인 선택 이 요구된다. 반면에 구부정한 자세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도 유 지할 수 있다. 그것은 중력이 몸을 장악해 끌어당기게 내버려두었기에 발생하는 수동적인 결과다. 스톡홀름과 같은 곳에서 디지털결제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받는 느낌은 전자보다 후자에 훨씬 더 가깝다.
우리를 끌어당기는 디지털결제의 '중력'은 빠르게 세지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금융기관으로 끌려들지 않으려는 의지를 잃어가고 있다. 상호의존적인 경제 네트워크의 보이지 않는 종속 사슬이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경제시스템을 뒤덮고 있다. 이 새로운 상황이 모든 시스템에서 기본값으로 자리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갑자기 현금으로 주차요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현금을 사용하려 는 시도는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는 것과 같은 아주 능동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현금사용자는 변화의 조류에 맞서야 한다. 그래서 자신 이 갈수록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현금을 사용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고, 현금을 포기하고 시대 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편이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이는 분명 수동 적인 과정이지만, 능동적인 소비자 선택으로 보도될 것이다.
- 여러 시대에 걸쳐서 은행원은 돈에 관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거래를 하면서 부를 축적해왔다. 이것은 오랫동안 도덕적 공황의 원천이었다. 1416년 피렌체 메디치 가문 사람이 은행원이 되고자 한다면 계약을 보증거하나 손실을 보상할 자본금 과 계약서를 작성할 깃털 펜만 있으면 됐다. 은행업무를 처리하는 데 그렇게 많은 체력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금융거래상의 가 능성을 고려해야 했기에 상당한 정신력이 필요했고, 위험을 감수하 는데 강한 감정적 강인함이 필요했다. 당시에 육체노동에 익숙한 사람에게 이러한 은행업무는 미스터리했고 심지어 사악하게까지 보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들이 얼마나 사악해 보이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초기 은행원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눈에 보이는 존재였다. 중세 교토의 대금업자들은 사케 양조장에 둥지를 틀었고, 런던의 스퀘어 마일Square Mile의 17세기 금융가들은 커피숍에 느긋하게 앉아서 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지에서 활동하던 금융가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더 큰 연합체를 만들었고, 다른 지역에 지점을 열어서 지점망을 형성했다.
예를 들어서 영국의 바클레이즈 은행은 퀘이커 교도들이 만든 17세기 파트너십에서 출발했고, 소규모 퀘이커 지역은행들을 합병 하면서 19세기에 빠르게 성장했다. 바클레이즈 은행은 근대 기업의 형태를 갖추었고 의사결정이 중앙(본사)에서 이뤄졌지만, 영업지점 들은 현지에서 분산화 양상을 그대로 유지했다. 1880년대 농촌에 들어선 바클레이즈 은행의 영업지점은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은행지점장이 관리했다. 그리고 은행지점장은 런던 본사에 보고해야 했다(런던 본사는 더 넓은 지점망을 관리하고, 위험을 통합하고 자금조달을 주도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은행 본사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고객의 신용을 평가해서 대출을 승인하고 계 약을 맺고 악수할 은행원은 진짜 사람이었다.
지금 금융가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과 악수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이제 우리가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것은 디지털금융 앱의 인터페이스가 전부다. 
- 세계적인 대형 은행들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고, 지점망을 폐쇄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 큰 에너지를 쏟을 수 는 없다. 경영진은 회의 시간에 다른 안건들도 의논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그들은 불확실한 환경 아래 수십억 달러의 주택담보대출을 관리하는 방법이나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가진 지정학적 위험을 해소하는 방법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들은 곡예하듯이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하고, 대를 잇는 고 객만 해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 그래서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천천히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느릿한 행보는 새로운 계급의 기업가들이 은행을 앞지를 시간을 줬다. 은행들이 수십 년 동안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동안, 2000년대에 '핀테크'라는 새로운 용어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곧 대 세가 됐다. 핀테크는 금융권이 대대로 해왔던 사업을 저해하지 않 고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인터페이스를 금융에 접목하려고 시도하 는 기업을 지칭한다. 핀테크 종사자들은 작지만 전문적이다. 그리 고 그들은 회의 시간에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개발하는 프로젝트 를 안건으로 다루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금융가가 아니기 때 문이다. 그들은 '디지털점포'를 설계하고 만드는 이들이었다.
- 핀테크시스템이 기본적으로 금융시스템에 대한 자동접속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이고, 금융시스템은 금융거래를 처리하고, 통화시스템은 은행 과점 에 기대서 작동한다면, 핀테크기업이 어떤 시스템을 개발하든지 이 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은행과 손을 잡아야 한다. 이것이 유럽의 몬 조·엔26 · 레볼루트 · 피도르 등 많은 디지털네오뱅크가 기존의 뱅킹 시스템 위에 내려앉은 인터페이스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 이유다. 때문에 네오뱅크는 은행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허가증을 발급받지 않는다. 전통적인 은행들은 처음부터 실제 은행업무를 처리하기 위 해서 설립됐고, 이후에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 인터페이스를 개발 했다. 하지만 네오뱅크는 처음부터 금융인터페이스였다.
- 사람들은 빅파이낸스와 빅테크가 만든 시스템에 계정을 개설하 면서 시스템에 묶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 계정들을 잇는 것이 두 세 계의 융합의 첫 단계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나의 아마존 계정과 은행계좌를 연결한다면, 이것은 내가 아마존과 나의 거래은 행이 서로 파트너십을 맺는 것을 허락한다는 뜻이 된다. 옛날에는 변두리 구멍가게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아도 지폐로 필 요한 물건을 샀다. 이제는 휴대폰 화면의 점포(온라인 쇼핑몰)에서 필 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클릭 한 번으로 은행계좌에서 물건 대금을 점포로 이체한다. 여기서 아마존이 현금결제를 의무화하는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해서 치열한 로비활동을 벌였던 이유를 이해 할 수 있다. 현금은 기술과 금융의 융합을 막는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려면 '구매' 버튼을 클릭해야 하지만, 자동 결제를 도입한 기업들도 있다. 예를 들어서 우버 택시에서 하차하면 우버의 데이터센터는 비자나 마스터카드의 데이터센터를 통해 서 하차한 승객의 거래은행 데이터센터에 자동으로 접속하여 결제 를 진행시킨다. 이처럼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시스템이 통합되어 하 나의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원래 여러 업계에서 다단계로 진행되던 과정이 이 클러스터에서 클릭 한 번으로 일괄로 처리된다.
금융시스템과 기술시스템의 통합은 우리가 보지도 만지지도 못 할 아득한 곳에서 다방면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모든 주요 기술기 업은 공공연하게 금융산업에 진출할 계획을 밝혔다. 많은 기술기업 이 주요 클라우드머니업체들과의 파트너십을 채결하며 이를 도모 하고 있다. 누구의 시스템이 결제에 사용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 예를 들어서 우버는 우버 캐시를 선언했다. 우버 캐시는 대표적 인 선불카드회사인 그린닷과 손을 잡았다. 그린닷의 시스템은 뱅킹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다. 알렉사는 은행과 손을 잡은 아마존페이와 통합됐다. 애플은 골드만삭스와 손을 잡고 애플 카드를 출시했다. 구글은 시티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구글 캐시를 출시한다고 선언 했고, 페이스북은 다양한 결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페이스북 의 결제 프로젝트는 뒤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J. P. 모건은 에 어비앤비 ·아마존과 손을 잡았고, 두 기술기업이 뱅킹시스템에 접 근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제공한다. 인도의 페이티엠은 전자상 거래업체와 결제시스템을 통합했고, 중국의 위챗과 알리바바도 같 은 행보를 보였다.
- 은행들은 은행원을 디지털시스템으로 대체하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늘려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 · 처리하는 편이 수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앞다퉈서 조 직 내부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AI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캐나다 왕 립은행의 경우 이미 AI시스템을 연구할 박사 100명을 고용했다." 대형 투자은행들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핵심 인력을 알고리즘으 로 대체해왔다. 실제로 2019년 런던에서 열린 AI 컨퍼런스에서 골 드만삭스의 최고 기술 책임자를 봤을 때, 그녀는 "골드만삭스에는 1만 1,000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있다. 그중에서 4,000명 은 수십 년 동안 머신러닝을 연구해왔다. 내가 20년 전에 골드만 삭스에 입사했을 때, 나스닥에서 선물거래를 전담하는 트레이더는 2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우 3명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진화다"라고 말했다."
- 기업조직과 손을 잡은 국가조직은 모두 개인과 개인이 형성하는 비공식적인 관계를 끊어내는 데 관심 있고, 그 목 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때때로 입법활동에도 관여한다. 예를 들어 서 현지 이슬람 상인들은 하왈라hawala 시스템을 통해서 국제 송금 업무를 처리한다. 그것은 구두로 형성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운 영되는 일종의 비공식적 국제 결제시스템이다. 영국 런던에 거주하 는 소말리아 사람들은 스트레텀의 하왈라 브로커에게 현금을 보내고, 돈을 받은 하왈라 중개인은 케냐 몸바사에 있는 제휴 사업자에 게 전화를 걸어 그곳의 수취인에게 실링으로 현금을 전달해달라고 요청한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송금방식은 사법체계가 아닌 명예법으로 관리됐다. 하지만 지금 하왈라시스템은 미국 애국자법과 같은 법률의 압박을 받고 있다. 하왈라시스템을 불법화하거나, 하왈라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공식적인 은행시스템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벌어진다.
대기업은 해외시장 진출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국가와 손을 잡지만 그들도 국가와의 연대를 상실할 수도 있다. 그래서 늙은 리바이 어던과 어린 '테크노 리바이어던' 사이에는 복잡한 긴장관계가 형 성된다. 막스 베버는 늙은 리바이어던을 대변하는 칙칙한 사무실 이 즐비한 낡은 정부 건물과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캐비닛이 배치 된 대기업을 넌지시 언급하며 관료제의 강철 우리'란 용어를 사용 했다. 하지만 21세기의 리바이어던은 강철 우리의 봉을 멋진 초국 가적 디지털망으로 바꾸길 바란다. 우리는 지금 소름 끼치는 자동 감시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러한 변화를 몸소 경험하고 있 다. 이러한 변화는 장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도시 에서는 '스마트시티', 가정에서는 '스마트홈', 신체의 차원에서는 '자 가 측정, 개발도상국에서는 '디지털포용'이라 불린다.
- 무정부자본주의는 보수적인 자유지상주의의 극단적인 형태로, 주류 정치적 보수주의의 성질 급한 어린 남동생이라 할 수 있다. 그 것은 시끄럽고 구제불능이다. 그리고 더 극단적인 반국가적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재산을 보호하는 최소한 의 국가권력이 존재하는 자유시장을 원한다. 골수 무정부자본주의 자들은 대규모 자본주의시장은 경찰과 법원과 같은 국가조직으로 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철학들에서 사이퍼 펑크 운동과 공통된 대의명분을 찾아볼 수 있다. 모두 사이버공간 에서 '자유의 땅'을 만들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 사이퍼펑크운동은 정치적 이념이 뒤섞여 있지만 기술적으로 선구적이다. 결국에 디지캐시와 같은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데이비드 차움과 같은 사람들이 개척해낸 다양한 요소기술들은 일 종의 퍼즐 조각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 퍼즐조각들을 제대로 맞 출 수만 있다면, 강력한 무언가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누군가가 2008년에 등장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그들은 사이퍼펑크 메일링 리스트에 PDF파일 하나를 올렸다. 당시는 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가 수많은 대형 은행을 뿌리째 뒤 흔들던 시기였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올린 문서는 짧고 명료했다.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다 맞추고 나면 간단한 그림이 나오는 퍼즐처럼, 거기에는 수십 년의 기술적 혁신들이 하나의 방안에 따라서 결합되어 있었다. 그 문서의 제목은 <비트코인: P2P 전자화폐시 스템>이었다. 이후로 그 문서는 간단하게 비트코인 백서로 알려지게 된다. 그것은 블록체인 기술의 기본서가 됐다. 블록체인운동은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졌다. 기업에서는 블록체인시스템을 사용할 때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오픈 블록체인시스템의 다양한 특징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여러 특징이 사라진 블록체인시 스템은 '분산원장기술'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주류 핀테크 세계에서 유행어가 됐다. 우리는 앞에서 은행창구에서 고객을 상대 하는 직원들이 어떻게 디지털앱으로 대체됐는지를 살펴봤다. 그리 고 고객을 상대하지 않는 금융인들이 어떻게 AI로 대체되거나 보강 되는지도 살펴봤다.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는 분산원장 기술이 은행 간 시장의 거래직무를 자동화하는 데 사용된다. 금융 기관 입장에서 은행 간 시장 거래업무만 처리하는 직원은 이윤 없이 비용만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분산원장기술은 은행업계가 자동화를 확산하기 위해서 밟게 되는 다음 단계다. 이 단계에서 은행들은 은행 간 협업 프로세스를 자 동화하는 데 관심이 있다. 금융산업 내부자들은 금융증권화부터 신 디케이트론까지 은행 간 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블록체인' 솔 루션을 고안하려 한다(신디케이트론은 다수의 은행으로 구성된 차관단이 공통의 조건으로 일정 금액을 융자해주는 것이다)." 몇몇 은행들은 이러 한 인프라를 마련하기 위해서 R3라는 이니셔티브를 지지했다. 하지 만 대다수는 하이퍼레저와 같은 공동 프로젝트를 따랐다. J. P. 모 건 출신 트레이더인 블라이스 마스터스Blythe Masters가 하이퍼레저 프로젝트를 이끈다. 그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증폭시킨) 신용부도 스와프시장의 개척자로 악명이 높다. J. P. 모건은 이더리움 소스코드를 바탕으로 쿼럼이라는 독자적인 분산원장시스템을 개발했다.
-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보증을 받는다는 이미지를 지닌 암호화폐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로 쇄신될 수 있다. 많은 대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이미지를 개발하여 수많은 가상화폐를 출시했다. '시저스 팰리스 카지노'라는 카지노 칩은 달러의 지급보증을 받는 일종의 이미지를 쇄신한 암호 화폐다. 머지않아 당신이 미국 달러를 아마존 계좌로 송금하면, 그 대가로 아마존 코인을 받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마존 코인 은 디지털화폐 교환권처럼 아마존플랫폼에서 사용된다. 보다 진보 한 기술은 다수의 기저통화를 받고 디지털화폐로 교환권을 발행하 는 것이다. 아마존이 10개의 국가에서 10개의 아마존 은행계좌로 10개의 통화를 10명의 사람으로부터 송금받고, 이들에게 각자의 몫에 합당한 교환권을 디지털화폐로 발행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교환권은 10개의 통화로부터 지급보증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 통화의 지급보증을 받는 디지털화폐라고 설명하는 대신에 아마존은 그것을 '글로벌도미네이션코인'이라고 명명해서 독립된 통화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아마존이 아직 벌이지 않은 이 일을 페이스북은 시도했다. 2019년 페이스북은 DECODE 프로젝트에 공습을 개시했다. DE- CODE 프로젝트는 유럽연합이 자금을 조달하는 이니셔티브로 대 형 기술회사에 대한 대안으로 시민이 소유한 디지털플랫폼을 만들 고자 시작된 프로젝트였고, 나 역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심지 어 페이스북은 DECODE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기술팀 중 하나를 고용해서 '리브라Libra'를 설계했다. 리브라는 페이스북이 설계한 스테이블코인이다. 페이스북은 리브라를 세상을 구할 세계적인 암호화폐'로 선전했다.
리브라는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트렌드를 집대성한 암호화폐다. 페이스북은 노골적으로 현금과의 전쟁에 참전했다. 실제 세상에 통 용되는 명목화폐를 진보를 막는 시대에 뒤처진 악마적 유물로 그렸 고, 금용포용이라는 메시지를 적극 활용하면서 자신들이 내놓은 새 로운 시스템(리브라)이 전 세계적으로 은행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핀테크산업처럼 페이스북은 자 동화를 낭만적으로 묘사했지만, 동시에 리브라가 '암호화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암호화폐운동의 세련된 해적 미학에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페이스북의 리브라는 전 용분산원장기술시스템이었다. 그것은 스위스의 비영리 단체를 통 해서 운영됐다. 대기업들의 신디케이트가 통제하는 이 단체는 다양 한 통화가 예치된 다양한 은행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사람 들은 돈을 송금할 때 그에 상응하는 액수의 리브라를 대기업 회원 이 통제하는 전용 컨소시엄 블록체인에 기록할 수 있다. 리브라는 다양한 세계의 뱅크칩들이 지급보증을 하는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이었다.
- 현금이라 불리는 것은 국가가 발행하는 익명성이 보장된 물리적 인 법정통화다. 이것은 국가기관들이 현금의 디지털버전을 발행하 는 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3장에서 은행에 는 일종의 디지털국가통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은행들은 모여서 (미국 재무부와 같은) 국가기관들과 함께 그것을 중앙은행에서 사용한다. 이러한 국가통화의 디지털버전(지급준비금)은 회원제 전 용 클럽 안에서 사용되는 통화와 비슷하다. 클럽의 회원이 아닌 우 리는 공공에서 통용되는 현금을 사용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회원제 전용 클럽을 개방한다면 어떤 일이 벌 어질까? 누구나 영국 중앙은행인 런던의 잉글랜드은행, 미국중앙 은행인 뉴욕의 준비제도위원회, 독일 중앙은행인 프랑크푸르트의 ECB 또는 중국 중앙은행인 베이징의 중국인민은행으로 걸어 들어 가서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중앙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뒤에 은행처럼 중앙은행의 인터넷뱅킹플랫폼과 모바일결제 앱을 설치했다고 상상해보자. 이런 상상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중앙은행들이 이것의 현실화 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원제 민간클럽과 유사하게 운영되는 디지털국가통화는 지급 준비금으로 불리지만, 공공클럽처럼 일반 대중에게 개방되면 중앙 은행이 일반 대중들에게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는 '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중앙은행 디지털화폐)'로 불리게 된다. 각국의 중앙은행 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배경에는 현금과의 전쟁이 있 다. 예를 들어서 스웨덴 정부는 지나치게 디지털화된 자국의 통화 시스템의 회복탄력성에 대해 우려했고, '전자 크로나e-Krona'란 이름 의 CBDC 발행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현금이 사라진다면 많 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윤 추구를 중 요하게 생각하는 은행부문이 가난한 사회구성원들에게 적절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주장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비트코인의 현실과 그것을 둘러싼 산업의 마케팅 서사 사이에는 계속 충돌이 발생한다. 암호화폐산업은 비트코인을 기존 통화시스 템과 경쟁할 새로운 통화시스템으로 포장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 로는 비트코인이 달러로 얼마로 표시되는지에 집착한다. 인지부조 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암호화폐산업의 '치어리더'들은 비트코인값 이 미래 변곡점에서 정점에 이르고, 통화시스템이 완전히 뒤집히면 모든 것들의 가격이 비트코인으로 매겨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 만 이것은 일종의 범주 오류다. 그 누구도 땅값. 아마존 주식·희귀 우표, 심지어 금값이 오른다고 그것들로 다른 물건이나 서비스의 값을 책정하거나 지불하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무 언가의 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오히려 미래 수익을 기대하여 그것을 꼭 쥐고 놓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돈 자체로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를 '돈'으로 광고하는 관행은 지금도 여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줘서 길을 잃게 만든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이런 헛된 희망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혜안을 제공하는 인류학적 연구가 있는데, 카니발에 대한 조사다. 인류학자들은 고대와 현대의 카니 발이 사람들을 일시적인 환상 속으로 초대하고 억눌렀던 울분의 감 정을 표출할 해방구를 제공하면서 어떻게 일시적인 사회 질서의 격 변을 만들어냈는지 연구해왔다. 그런데 비트코인 투기현상은 카니 발과 유사하다. 기업자본주의에 수반되는 존재론적 공허감은 가난 한 현실에서 탈출하여 빨리 부자가 되고픈 갈망과 기업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심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비트코인은 사람들을 이러한 갈 망에 따라서 행동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통해서 경제 질서를 뒤엎는 자신을 상상하는 동시에, 비트코인에 투자해서 막대 한 수익을 얻기를 바란다.
-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현금을 사용할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현금사용을 정치적인 행위로 정의 할 권리 역시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핀테크산업은 현금사용을 금 융 발전을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태도라 여긴다. 하지만 나는 그것 을 기업자본주의와는 함께 가지 않겠다는 고집스러운 거부라고 생 각한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가 구성원들에게 무관심한 시스 템의 팽창논리로 움직이는 아바타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현금을 보호해야 한다. 현금친화적인 운동은 잠식적인 중추 디지털금융시스템에 맞서 기존의 말초 현금시스템 을 유지하고자 하는 간단한 목적을 지닌다. 현금사용은 우리를 유토피아로 이끌진 않겠지만, 적어도 디스토피아와 같은 사회의 등장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현금을 보호하기 위해서 내가 펼쳤던 주장들은 실용적이고 정치 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나는 개인적인 것과 싸 우고 있었다. 바로 (현금처럼) 때론 더럽기도 한 실체를 가질 권리 말 이다. 우리는 AI 클라우드센터에 접속된 뇌를 지닌 초인적인 불멸 존재가 아니다. 이런 존재가 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엉망진창이고 모순덩어리다. 돈의 실제적인 화신인 현금이 이런 우리의 정신을 더 잘 보호한다.
현금은 대형 기관들이 탄생시킨 몸체가 있는 신용통화이고, 그 저 사람이 좋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친구처럼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현금은 자본주의의 팽창을 막는 동시에 자본주의적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현금은 혼합주의적인 존재다. 현금을 사용하려 는 사람은 그것의 더딤과 모순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 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양극화된 세계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명상에 잠기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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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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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위의 경제학자들

경제 2022. 11. 30. 20:53

- 케인즈는 에세이에서 인간의 욕망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는 기본 의식주를 충족하고자 하는 절대적 욕구와 남 들보다 우월해 보이고 싶어 하는 상대적 욕구가 있다. 인간이 상 대적 욕구를 지나치게 탐닉할 때 자본주의 체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공간이다. 인간에게는 남보다 우월해지고 싶고 남들과 비 교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사회 체제가 공정하지 않으면 사회 는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로 가득 찬다. 그런 사회로 가면 우리는 더욱 불안정해진다."

- 센은 정부나 개발 관련 종사자들이 빈곤층 모두를 한 집단으로 보고 정책을 수립한 게 문제라고 믿었다. 어떤 위기냐에 따라 빈곤 층도 각기 상황에 맞게 분류해 그에 맞는 각기 다른 정책을 수립해 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나라의 전체 소득이 높다고 해도 일부 국민 은 기근에 시달리거나 기대수명이 낮을 수 있다. 반면 어떤 나라의 전체 소득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아도 상대적으로 국민들은 기대수 명이 높고 기근에 덜 시달릴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기근에 대해 논할 때 좀 더 포괄적인 시각으로 정밀진단을 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그는 누구보다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학자였지만, 경제가 성장하 더라도 빈곤이 줄어들지 않을 수 있고, 분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경제' 하면 사람들은 대개 윤리나 양심과는 거리가 멀고 피도 눈물도 없다고 여기기 마련인데, 빈곤과 불평등, 기아 문제에 일생 을 바친 센에게서는 '가슴 따뜻한 양심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센 에 의하면 자유는 우리에게 궁극적인 목표다. 사회의 각 부분에서 충분한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우리는 더 높은 수준의 자유에 도달한 다. 그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존중하고 애덤 스미 스를 사랑한다. 다만 시장 메커니즘 그 자체만으로 경제적인 자유 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각 참여자에게 평등하고 충분한 자유가 보장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 "소득이나 부를 키울 수 있는 데까지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짚었듯이 이런 것은 '단 지 쓸모 있는 연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경제성 장을 경제학의 지고지순한 목적으로 다룰 수 없다고 봅니다. 경 제발전이란 우리 삶과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키우는 것으로 이 어져야만 합니다. 자유란 우리 삶을 더욱 넉넉하고 너그럽게 만 들어 장애를 줄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품은 뜻을 이루게 하고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힘입니다."

- 계량경제학으로 초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된 얀 틴베르헌은 양치기 소년의 이런 어정쩡한 양다리 걸치기를 싫어한다. 그는 '목표는 분명하고 실현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서 '올곧 은 사랑의 향기'가 나는 것은 그의 삶의 목표와 이를 달성하고자 하 는 수단이 바르기 때문이 아닐까? 틴베르헌은 정부가 보유한 정책 수단이 정책 목표보다 많거나 같을 때만 경제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그의 이름을 따서 '틴베르의 법 칙'으로 오늘날에도 회자되고 있다. 그는 1개의 정책 목표를 위해서 는 정책 수단이 2개 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표보다 수단이 적으면 여러 개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 경제정책 수행에 있어서 목표와 수단은 대단히 중요하다. 경제 성장, 물가 안정, 국제수지 균형, 고용 안정, 양극화 감소는 경제정 책 목표이고 재정 확대나 금리 인하는 경제정책 수단이다. 이들 간 에는 상충이나 갈등이 존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설픈 일석이조 는 왜곡을 부른다. 틴베르헌의 법칙을 쉽게 설명하는 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을 들 수 있겠다. 단기 필립스 곡선 은 물가 안정과 실업률 간 역(易)의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중앙은행 은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단기 필립스 곡선을 활용한다. 당장의 가 시적인 물가 상승이 없더라도, 실업률이 하락해 물가 상승 가능성 이 있다면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것이다. 그 결과 물가는 잡을 수 있을지 모르나 실업률은 늘어날 수 있다.
-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 교수의 이름을 딴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가 있다. 금본위제가 폐 지된 이후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축통화는 신뢰할 수 있고 공급도 충분해야 하는데 현실에서 이 두 가지 목표 는 상충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 무역적자를 내야만 기축통화인 달 러가 충분히 공급된다. 그런데 미국이 지속적으로 무역적자를 내면 미국 경제에 대한 회의가 커지면서 달러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기 축통화의 지위가 흔들린다. 반대로 미국이 무역흑자를 낸다면 다른 나라들이 무역적자에 대한 부담을 져야 하고, 세계경제는 달러 부 족으로 자금이 돌지 않게 되어 불황이 될 수 있다.
이 딜레마가 심화되면 위기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거시경제학에 '삼위일체 불가능이론(Impossible Trinity)'이라는 것이 있다. 이론적으 로 어떤 나라에서도 자유로운 자본 이동, 환율 안정성, 독립적인 금 융정책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 히려 이들 사이에는 갈등 관계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자유로운 자 본 이동이 보장된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금리를 올려보자. 그러면 금리 인상으로 자본이 유입되면서 환율이 절상되고 환율 안정성 이 훼손된다. 환율의 안정 유지를 원한다면 자본 통제(Capital Control) 정책을 써야 하는데 이는 자유로운 자본 이동의 목표를 훼손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환율 안정을 중시하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그전에는 금기시되던 자본 유출입 관리 조치(Capital Flow Management Measures)를 IMF도 인정하게 되었다. 많은 신흥국들은 단기성 투기자본이 밀물처럼 들어와서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훼손하고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 그 결과 브라질의 경우 단기 자본 유입에 대하여 세 금(일명 토빈세, 현재는 폐지됨)을 물리기까지 했다. '불가능한 삼위일체' 의 목표 중 하나를 희생하고자 한 것이다. 이후 미국 경제 호조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자 신흥국에서는 자본 유출이라는 문제가 생 겨났다.
역사는 재현되는가. 2022년, 미국에서 41년 만에 최악의 물가상 승이 발생했다. 코로나19로 늘어난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미국은 2022년 연이은 금리 인상을 차례로 단행했다. IMF는 미국의 금리 인상은 결국 환율의 흐름과 연동되기 때문에 신흥국은 자본 유출과 하락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경기와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녹록하지 않다. 서민 생 활을 위협하는 물가부터 잡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 미국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풀고 흡수할까?
세계는 항상 연준 의장의 입을 쳐다본다. 각 나라 통화의 미래를 두고 많은 이가 다양한 추측을 하는 가운데 달러 가치의 향방이 늘 열쇠를 쥐고 있어서다. 달러라는 화폐는 하나의 상품으로 세계를 떠돌면서 그 가치의 향방을 신경 쓰게 만드는 요물이다. 연준은 국 채를 담보로 달러라는 상품을 빌려주고, 미국 정부는 그 대가로 연 준에서 정한 이자를 지불한다. 사실 미국 국채는 미국 국민의 담세 능력을 담보로 발행된 것이다. 결국 달러는 미국 국민의 채무이고, 달러가 발행될 때마다 미국 국민은 연준에 이자를 지불할 의무를 지게 된다.
미 달러화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것은 미국 정부가 진 많은 부채 를 미국 국민이 갚을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는 것과 같다. 많은 나라 가 채무에 찌들어 고통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국채 투자자로서 자국 정부나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의심할 수 있다. 내가 들고 있는 국채가 상환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투자자로서 당연한 것이다.
- 세계은행과 IMF는 「글로벌 모니터링 리포트: 인구 변화 시기의 개발 목표」 보고서에서 세계적인 노령화 추세를 경고하며 난민이나 이민 인구를 받아들일 것을 권고한다. 2050년 세계 전체 인구에서 저소득 국가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현재 9%에서 14%로 증가 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저소득 국가에서 선진국으로 이 주하는 이민자 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민자 혹은 난민 수용이 저성장 침체기를 걷고 있는 주요 선진국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세계은행은 동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선진화된 한국과 일본이 노동시장을 개방하고 아시아의 젊은 이민자를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이민청을 설립하자는 주장이 있는 반면, 청년실업 문제, 외국인 노동자 범죄, 순혈주의를 내세우는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누군가 미국과 일본의 경기부양 효과의 차이가 왜 나는지를 진지하게 물었다고 하 자. 미국의 경기부양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 그런데 왜 일본 의 경기부양 정책은 효과가 미진한 것일까?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 겠지만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는 그 원인을 인구에서 찾고 있다. 그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지속되는 한 경기부양책은 한계가 있 으며, 그것이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이라고 말한다. 중국 경제의 최대 위험 요소는 6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출생률로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가능케 했던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은 옛말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인구가 풍요로움을 당기는 부의 지도를 바꾼다 는 주장이 그래서 가능한가 보다.

- 파생상품은 시간을 먹고 산다. 1초마다 희비가 엇갈린다. 인간이 그 1초를 정확하 게 파악할 수 있을까? 시간은 인간에게 무지를 경고한다. '과거에 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위험이 미래에도 없을 것이 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말이다. 투자의 세계에 서 리스크의 가장 큰 원천은 시간이다. 시간은 항상 그것이 지닌 가 치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도록 만든다. 미미하게 평가된 리스크도 레버리지가 커지면 엄청난 손실로 다가올 수 있다. 위험이 낮은 실 물은 계속 보유하면 그만이지만 시간이 정해져 있고 과도한 차입 을 한 상품은 어쩔 수 없이 팔도록 강제되기도 한다. 우리는 경제에 서나 인생에서나 '시간과 차입'이라는 리스크를 발생시키는 요인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무엇보다 중시해야 한다.
- 머튼은 이제 이론과 모델을 절대적으로 신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모델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강변한 다. 그에게 모델은 투자의 참고 사항일 뿐이다. 실패를 겪은 뒤 천재 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확실히 변했다. 수익률이 아무리 좋은 상 품이라도 과거의 좋은 수익률이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보장이 없 다. 같은 항로를 오가는 비행기라도 조종사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안전한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불편한 여행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펀드를 살 때도 그저 기존의 모범 사례들을 참고할 뿐이다. 고령화 시대의 최대 위험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건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돈 없이 오래 사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장수하고 싶어 하지만, 자기가 보유한 자산이 많지 않은 경우에는 오히려 오래 사는 게 두렵다. 은퇴 후의 자금 설계가 그래서 중요하다. 백전노장 머튼에게 은퇴 후의 자금 설계를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한다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목표를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 투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 는 기본이다. 그것이 '목표에 기초한 투자'의 개념이다. 퇴직연금 을 예로 들어보자. 개인의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회사들은 마치 퇴직연금의 목표를 일정한 부를 축적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아 니다. 연금의 최우선 목표는 은퇴 이후에 고정 수입을 올려 일정 한 현금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다. 목표를 어떻게 정하는가가 투 자를 결정한다. 현재 연소득이 7000만 원이고 은퇴 후 희망 소득 이 현재의 70% 수준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퇴직 후 필요한 연금 은 연 4900만 원이다.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으로 일정액을 충 당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투자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 당신은 이 제 그 목표를 위해 얼마를 저축할 것인지, 위험자산인 주식 투자 비중은 얼마나 늘릴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는 주관과 객관이 혼재해 있다. 비관론자와 낙관론자가 공존하기 때문에 세상은 늘 다양한 목소리를 낸다. 누군가 중산층은 살기 힘들어졌지만 고소득층은 갈수록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항변한다. 세계적으로 중산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 진다면 세상은 긍정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현실이 어 렵다고 해서 마음까지 그래서야 되겠나? 타고난 것보다 노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경제의 성장 동력도 커질 것이다. 희망과 열정을 가져야 할 젊은 세대들이 '희망은 없다'며 스스로를 한계 짓고 있는 상황이 가장 두려운 일인 것 같다. 사회 전체적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이 더욱 중요해 진다. 세상에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나를 아껴주는 많은 사람이 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다른 사람과 더불어 묵묵히 걸어가 보는 것, 그것이 한 번뿐인 인생을 보다 가치 있게 살아내는 길이 아닐까?

- 카너먼은 두 개의 자아인 '경험의 자아'와 '기억의 자아'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험의 자아는 내가 경험하는 것을 느끼는 자아로 순 간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자아는 지금 벌어지는 기쁜 일을 즐기 고 고통이나 괴로움을 피하려고 한다. 반면 '기억의 자아'는 지나간 경험을 회상하고 평가하는 자아로 훗날에 느낄 감정과 관련된다. 두 자아의 판단은 일치하지 않는 것이 허다한데, 미래 예측과 의사 결정은 통상적으로 기억의 자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과거 당시에 는 손해 보는 것 같고 어려운 일이었는데 훗날 그것이 의미 있는 기 억으로 남는다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나의 '경험의 자아'뿐 만 아니라 '기억의 자아'로 세상사를 다각도로 분석해 손실을 최소 화하는 것이 인생의 지혜가 될 수 있다.

- 사실 헤크먼의 이론은 불평등 해소와 관련이 있다. 국가가 자원 을 고등학교와 대학 교육에 투자하는 것보다 가난한 가정의 0~5세 영유아를 교육하는 데 쓰는 것이 빈곤의 대물림을 막는 데 효과적 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교육 과잉으로 사교육비가 치솟아 있는 우 리나라에서 헤크먼의 말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피로감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영유아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수익률이 높 다는 그의 주장은 좀 더 해부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유전인자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데 반기를 들고, 소 외된 계층의 아이들에게 조기교육을 시키는 것이 국가 재정을 튼튼 히 하고 아이들의 IQ와 사회 유대감을 높여 미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임을 증명하려고 했다. 실험에 의하면 IQ는 21세까지 충 분히 증가할 수 있다. 그는 중산층 가정에 비해 빈곤한 가정이 아이 양육에 소홀한 점에 착안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국가 재 정을 사용할 때 개인과 사회 전체적으로 어떤 혜택이 오는지를 보 여준 학자다. 헤크먼은 3~4세 흑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일명 페리 유치원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인 1962년생 빈곤가정 흑 인 아이 123명 가운데 58명은 소수 인원으로 구성된,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실험 대상이 되었고 나머지는 일반 교육을 받는 비교 대상으로 두고 40년 넘게 추적 조사했다. 수십 년이 흐른 결과, 유치원 교육의 효과가 지속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고용과 연소득은 물론 범죄율에서도 두 집단은 큰 차이를 보였다.
헤크먼은 그 결과를 예산 당국과 정치인들에게 들이밀었다. 이 후 그의 설득으로 주와 국가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그 는 청년 배당은 일시적인 소비 증가로 분배를 개선할지는 몰라도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소외받는 가 난한 유아에 대한 무상교육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미래에 더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강력한 투자라는 논리를 실증했다.

- 중국과 영국의 운명을 가른 제도의 힘
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잠시 생각해 보 자. 1748년, 세계경제의 중심지였던 중국에서는 왜 산업혁명이 발 생하지 않았을까? 유럽은 16세기부터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나섰 고, 자국에 없는 자원과 노동력을 식민지에서 조달했다. 중국은 대 륙인지라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고 종속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았는 데, 이는 유럽의 수탈과는 거리가 멀다. 유교를 근본이념으로 둔 중 국은 '발전'보다는 '체제 유지'에 의미를 두었지만, 유럽은 많은 것 이 부족한 환경에서 벗어나서 보다 풍요롭게 살고자 했다. 유럽의 그러한 '욕망'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국가보다 더 발전하게 된 첫 번째 중요한 원인이다. 식민지 경영으로 유럽 상인계급의 힘은 자연스럽게 증대했고, 이들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사회적으로 상인 들의 목소리는 커졌다. 그 결과 정치제도는 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 나 공화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반면 중국은 막대한 인구로 엄청난 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으나 동시에 싼 노동력이 많아 기계 투자에 무심했다. 명나라 시대에 상 업은 저조했고, 무역은 제한되었으며, 모두 국가의 손아귀에 있었 다. 가장 많은 돈을 국가가 쥐고 있어 상업 발달을 주도할 부르주아 도, 이들의 구미를 맞출 수공업자도 성장이 지지부진했다. 중국이 막대한 인구, 자본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을 일으키지 못한 이유는 새로운 변화를 유도할 제도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혁명으로 개인의 재산과 자유를 보장해주는 제도가 자리 잡은 유럽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중앙집권적인 전제군주제로 인해 경제적 자유와 재산권 보장이 제도적으로 덜 발달했던 중국은 유럽 의 경제성장을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과학기술이 발달한 중국보다 상인(부르주아) 세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춘 유럽이 중국을 앞서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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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의 시대

경제 2022. 10. 27. 20:43

- 개도국과 선진국 모두 충격 이후 회복을 하고는 있다. 그런데 선진국 들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향해서,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까지 회복세를 보이는 반면에 개도국들은 기존의 경로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평행선을 그리다 못해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이 후 세계 경제의 성장세는 뚜렷한 회복세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것은 사실 선진국들에 한할 뿐 개도국들은 전혀 그 회복세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였던 길이 두 갈래로 나뉘고 다시 네 갈래로 나뉘는 모습, 각국의 경제가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이다. 보통은 세계 경제가 '커플링(coupling)' 한다고 해서, 각국의 경제가 같이 꺼졌다가 같이 회복되는 경향이 뚜렷한데, 지금의 세계 경제는 이처럼 불균형 회복을 하고 있다.
- IMF에서는 이런 불균형 회복을 영어로 'divergent recoveries (나뉘는 회복)'이라고 표현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 증 가 속도보다 백신 접종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나라마다 다양한 경 로로 경기 흐름이 진전된다는 의미다. 이후에 IMF는 단층선 확대 (fault lines widen)'라는 표현도 했다. 단층선(fault line)은 원래 지구과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단층이 벌어지듯 선진국과 개도국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음을 경고하는 표현이다.
세계은행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쓰는 말 그대로 'imbalance recoveries(불균형 회복)'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OECD는 'uneven economies(불균형 경제)'라고 했다. 용어는 약간씩 다르지만 세계 3대 경제 관련 기구들이 똑같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것이 2022년 지금의 경제 모습이며, 2023년까지도 이 흐름은 이어질 것이다.
- 2020년이 경제의 '대전환점'이라면 2022년의 경제는 '회귀점'이 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까지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경제라는 큰 관점에서는 제자리로 돌아올지 모르지만, 우리 앞에 놓인 과제라는 측면에서는 좀 다르다.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망은 차단됐으니 당연히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2021년에는 다양한 공급망 병목 현상이 나타났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로 세계 자동차 공장이 멈춰 섰다. 현대기아차, 쌍용차, 르노삼성자동차도 생산에 차질을 빚고, 조업을 단축하거나 휴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주요 부품 부족 사태로 인해 공장 가동 정상화가 지연됐다. 미국 컨설팅 기업 알릭스파트 너스(AlixPartners)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로 인해 2021년 전 세계 자동차 매출이 약 247조 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세계 자동차 생산량 역시 770만 대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한 대에 통상 약 2만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고 한다면, 1개의 부품에 수급 차질이 생기면 1대의 완제품 생산에만 차질을 주는 게 아니라 나머지 부품을 공급하는 공급업체들에도 상당한 충격을 주게 된다.
한편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미국산 냉동 감자 수급에 차질이 생 겼다. 경기가 급격히 회복되면서 해운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선박 부족과 해상운임 상승으로 이어졌다. 소비자들은 감자 튀김 대신 치킨너겟을 받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맥도날드 햄버거에 양상추가 빠지는가 하면, 햄버거 세트에 감자튀김이 빠지기도 했다. 국내에도 때 이른 한파가 찾아오면서 양상추 출하가 줄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글로벌 물류 대란으로 양상추 수입도 어려웠다. 이처럼 물류비 상승은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공급 대란을 초래할 수 있는 요인이다.
- 옥수수는 2020년 저점에서 161.8%나 올랐고, 대두나 소맥도 각각 101.5%, 131.4% 상승했다(2022년 5월 6일 기준). 더군다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원자재 가격이 더 치솟고 있으니, 가계소득이 정체된 상황에서 서민에게 얼마나 큰 부담으로 작용할지, 우려를 감추기 어렵다.
2023년에는 식료품 원자재의 슈퍼 스파이크(super spike)가 세계경제를 위협할 전망이다. 슈퍼 스파이크란 골드만삭스가 2005년 말 글로벌 투자 보고서』에서 원자재 가격 추이를 분석하면서 처음 사용한 말로, 원자재 가격이 4~5년간 급등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원자재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는 데 반해 공급이 이를 따라가 지 못하여 생기는 현상이다.
골드만삭스 산하 세계투자연구센터(GIR)는 2005년 말과 2006년 초 두 차례에 걸쳐 발간한 보고서에서 슈퍼 스파이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 보고서에서 골드만삭스는 1970년대 발생한 1, 2차 오일쇼크와 같은 유가가 급등 배럴당 105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 2008년 5월 골드만삭스는 원유 소비 급증, 원유의 공급 부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낮은 증산량, 주요 산유국들에 대한 외국 투자 제한 등의 요인으로 전체적인 원유 공급은 수요를 쫓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 향후 2년 안에 200달러까지 유가 급등 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슈퍼 스파이크는 원자재 가격이 4~5년간 급격히 상승하는 단계 를 가리키므로, 통상적으로 20년 이상의 장기적인 가격 상승 추세를 뜻하는 원자재 슈퍼 사이클(commodities super-cycle)과는 차이가 있다. 원자재 전반에 걸쳐 장기 상승세를 이어가는 슈퍼 사이클을 전망할 단서를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2020년 4월 원자재 지수(CRB index)가 저점을 기록한 이후 현재까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고, 2023~2024년까지도 식료품 원자재 가격만큼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요인이 상당히 많은 상황이다.
- 원자재 슈퍼 사이클
역대 원자재 슈퍼 사이클들은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에 의해서 발생했 다. 1차 슈퍼 사이클(1906~1920)은 1917년을 고점으로 발생했고, 미국 경제 가 부상하면서 원자재 수요가 확대되었다. 2차 슈퍼 사이클(1932~1947)은 1941년을 고점으로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에 따른 원자재 소비 와 전쟁 후 사회간접자본 재건과 같은 구조적 원인이다. 1973년을 고점으로 한 3차 슈퍼 사이클(1972~1980)은 12차 오일쇼크에 따라 원유 공급이 급격히 부족해졌고, 대체재 수요가 증폭하면서 발생했다. 2000년대에 있었던 4차 슈퍼 사이클(2001~2016)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2000년대 들어 중국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socialist market economy)를 도 입하기에 이른다.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고, 국유기업의 민영 화를 추진했다. 환율제도를 개편하면서 해외직접투자가 중국으로 집중되는 등 대외거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중국이 두 자릿수로 성장하면서 세계 주 요 원자재를 흡입하다시피 했다. 중국은 세계 에너지의 20%, 철강의 43%, 알루미늄의 41%를 소비했다(2012년 기준). 한편,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의 신흥국들이 도시화를 진전시키고, 제조업을 일으키며 사회기반시설을 확충 하면서 다양한 원자재 소비가 늘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흥국들의 국민소득 이 증대되고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곡물 소비가 증가하고, 커피나 코코아 등과 같은 기호성 농산물 소비도 크게 늘었다.
- 만일 부모가 자녀한테 용돈을 주다가 갑자기 용돈을 안 준다고 해보자. 중학교 2학년인 아이가 일주일 용돈을 10만 원씩 받다가 갑자기 용돈을 하나도 못 받게 된다면? 가만히 있을 아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는 크게 반발할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그런 현상을 '긴축발작'이라고 한다. 이제 여건이 달라졌으니 통화정책을 전환할 수는 있다. 금리를 인상하고, 공급 했던 유동성을 다시 거둬들인다. 그런데 이 전환을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하면 발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화정책을 전환할 때는 천천히 바꿔야 한다. 이것을 '베이비 스텝 룰(baby step rule)'이라고 한다.
-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으로 정의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앞서 말한 대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물가 상승 압력 만 잡으면 된다. 금리를 올려도 경기가 알아서 잘 굴러가고 있으니까, 선순환하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므로 미국은 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할 것이다.
그러나 스태그플레이션에서는 성장과 물가가 따로 움직이므로 통화정책을 결정하기도 굉장히 어렵다. 우리 경제는 지금 당장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정의 내리기 어렵지만 스태그플레이션 바로 전초 현상이랄까,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미국처럼 금리를 인상할 수 없다.
- 테킬라 위기란 한 국가의 경제 위기가 주변국으로 번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데킬라는 멕시코 특산의 다육식물인 용설란의 수액을 채취한 즙을 증류시켜 만든 멕시코의 전통술을 가리킨다. 독한 멕시코 테킬라에 이웃 나라들이 모두 취한 것처럼 경제 위기가 파 급된 데서 나온 말이다. 1994년 12월 외환 사정 악화로 멕시코는 금융 위기에 처했다. 이에 따라 멕시코 페소화 가치가 급락하자,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국가들로 위기가 확산한 바 있다. 이러한 현상을 테킬라 효과(tequila effect)라고 한다.
유사한 개념으로 바트 효과(baht effect)가 있다. 1997년 태국 중앙은행에서 변동환율제를 도입하고, 태국의 공식 화폐인 바트화가 폭락하면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7월에 태국의 바트화가 폭락하면서 아시아 주변국으로 외환 위기가 번진 일이 있다. 필리핀 페소, 말레이시아 링깃,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등 주변 국가들의 화폐 가치가 동반 폭락하면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태국 바트화의 가치 폭락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비유해서 '바트 효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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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이후 전세계적으로 풀린 유동성 때문에 실제 경제상황과는 무관하게 증시는 역대최고수치를 기록해 나갔다. 파티는 계속되지 않았고,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미국을 중심으로 금리인상, 유동성 축소등의 정책으로 증시는 다시 바닥을 향해 내려가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동학개미, 서학개미 등으로 불리우며 자신의 자금을 본인의 투자판단에 따라 투자자산, 투자국가를 달리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여러가지 서적, 세미나, 동호회 활동 등을 통해 여러가지 투자기법을 배우고, 공유하고 있다. 저PER주식 매입, 자산주, 배당주, 가치주 등 여러가지 기법을 실전에서 활용해 본다. 대세 상승기에 적당한 산업섹터안에서 적당한 기업을 선택한다면 두 배 정도의 수익을 얻는 것은 어렵지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성숙한 산업에서 5배, 10배의 수익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시간이 걸리더라도 높은 수익을 얻는 방법은 성장하는 산업에서 가치주를 찾는 것이다. 

초보자들이 많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매매를 너무 자주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투자철학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자칭 고수라고 하는 사람들의 투자권유에 휩싸여 주식을 사고 판다. 월가의 영웅 피터 린치는 투자에 앞서 먼저 직감을 무시하는 법을 단련하라고 조언한다. 매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해당 기업의 재무제표를 꼼꼼하게 따지고 성장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자신의 생각을 검증해야 한다. 이 절차를 마친 다음에는 우리는 여러가지 정보로부터 스스로 고립시켜야 한다. 우리가 취사선택해야 할 정보는 우리가 설계한 시나리오대로 기업이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뿐이다. 시나리오의 최소기간은 6개월이다. 

주가는 결국 기업의 실적에 수렴한다. 이것이 가치투자자의 근본적 믿음이다. 가치투자라고 해서 반드시 성장하는 신생기업에 투자하는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기업이란 결국 이익을 내는 조직이며 미래를 포함한 사업의 전 생애주기 동안 창출될 이익을 근거로 가치가 평가되어야 한다. 주식투자는 명백히 미래의 실적을 예측하는 싸움이다. 그래서 기어이 미래에 창출할 영업이익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이것과 현재 주가의 괴리가 큰 종목을 발굴하고, 그 미래가 현실이 될 때까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차분히 인내해야 주식투자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부의 도약을 위한 성장주를 찾는 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산업적으로는 드라마 제작, 웹툰, 패션, 플랫폼 자회사 보유기업, 미용기기의 다섯가지 사업영역을 중심으로 12개 대상 기업에 대해 성장 스토리를 구상하고 분석하고 있다. 

요즘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안감으로 기존 성장주들의 주가 하락폭이 상당하다. 현재 성장주의 눌림목 구간이 심화될지 아니면 빨리 해소될지에 관해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적이 뒷받침된 성장주의 경우 이미 한껏 압축된 상황이기 때문에 갑작스런 변화에도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기순환 사이클이 단축되고 시장의 변동성이 극심한 지금 인내하는 투자자는 과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초보 투자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정량적 재무정보는 배제하고 간단한 투자 아이디어를 통해 해당 기업의 성장 시나리오를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의 투자사고력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으로 씌여진 책이다. 정교한 투자 프로그램이 없어도 가치투자는 가능하다. 투자결정 이전에는 기업을 분석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결정을 내린 이후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가치투자의 본질에 대해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성장주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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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폐에 대한 경제학 이론에 있어서는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경제학의 거장 나라야나 코철라코타(Narayana Kocherlakota) 가 1998년 발표한 〈돈은 기억이다 (Money is Memory)〉라는 논문을 통 해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코철라코타는 이 논문에서 만약 한 경 제체제 내의 모든 경제활동이 하나의 단일한 원장에 기록될 수 있다. 면 이 기록의 상계처리를 통해 모든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 에 화폐가 필요하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원장이 존재하지 않 기에 경제체제 내에서 각 개인의 경제활동을 기록하는 하나의 기억 (Memory)'으로 화폐가 사용되며, 이러한 의미에서 '돈은 기억이다'라고 논증하고 있습니다.
- 로마제국 멸망 이후의 유럽과 대비되는 동북아시아,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 화폐제도의 특징은 중앙정부가 화폐를 발행하고 통제했으며, 금으로 대표되는 귀금속이 아니라 비교적 흔한 동으로 주화를 만들거나 지폐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통해 이 지역에서는 화폐를 구성하는 귀금속의 가치가 곧 화폐의 가치가 되는 상품화폐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화폐제도가 작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송, 원, 그리고 조선의 화폐제도처럼 화폐를 구성하는 상품의 가치와 상관없이 화폐가 명목상의 액면가치로 유통되고 사용될 수 있는 화 폐를 명목화폐라고 합니다. 귀금속과 상관없이 화폐를 발행하는 정 부의 권위와 정부가 화폐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 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행정력과 이익이 일정 수준 이상 되 어야 명목화폐는 유지가 가능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등 화폐가치와 관련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 명목화폐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되는 화폐가 법정화폐입니다. 법 정화폐는 화폐에 함유된 귀금속의 함량이나 상품의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법정화폐는 화폐의 형태와도 상관이 없습니 다. 즉 지폐일 수도 있고 동전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가상자산처럼 인터넷에 저장된 데이터의 형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법정화폐는 화 폐의 형태나 화폐를 만드는 원재료와는 상관 없이 화폐를 발행하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정하는 액면가격에 해당하는 가치를 갖는 화폐입 니다. 즉 우리가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1만 원권 지폐나 5만 원권 지 폐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 액면가격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는 재화나 서비스로 교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정부가 그 가치를 보 증하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법정화 폐는 화폐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능 력에 대한 시장 참여자의 신뢰에 의해 유지되며, 이러한 맥락에서 법 정화폐를 신탁화폐 (Fiduciary Currency, 신뢰에 의해 가치가 유지되는 화폐) 라고도 합니다. 현재 언론을 통해 종종 이야기되는 중앙은행 발행 디 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역시 법정화폐입니다. 화폐의 형태와 상관없이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그 가치를 중앙은행이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 1944년 결정되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시작된 브레튼우즈체제는 20여 년 동안 순조롭게 작동되었습니 다. 이 체제하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전쟁으로 인한 손실 을 복구하고 다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순 조로운 작동의 이면에는 브레튼우즈체제가 지속될 수 없는 문제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국가 경제가 피폐해진 상황에서 유럽 각국의 최우선 목표 는 전후 재건 사업이었습니다. 미국은 유럽에 마셜플랜을 통해 막대 한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이러한 재건과 경제성장을 도왔습니다. 이 기간에는 전후 재건이 우선이었기에 유럽 각국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국가에 상관없이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후 복구가 마무리되고 경제성장이 궤도에 올라서면서 유럽 각국 정부는 독자적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 규모 와 국가별 상황에 따라 기준금리가 상이해졌고, 재정정책 역시 정부 의 목적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이러한 국가별 독립된 정책의 운용 은 브레튼우즈체제에서 정한 환율의 안정적 변동폭인 1%를 초과하게 되고 각국 환율이 변동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브레튼우즈체제의 핵심은 미국 달러의 가치를 금 1트로이온스당 35달러로 고정한 상태에서 다른 국가의 통화는 달러에 대해 기준 환 율의 1% 안팎의 변화만을 허용함으로써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책적 기조가 급속한 전후 재건 기간에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이 거시경제 안정화 정책이 아니라 경 제성장의 지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은 특히 각국이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산업적 기반이 비슷한 까닭에 경제성장 과정 역시 비슷 했습니다. 따라서 급속한 전후 재건 동안 유럽 각국은 인플레이션율 과 이자율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전후 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하자 유럽 각국은 거시경제 안정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치게 되 었습니다. 이에 일관성 있게 유지되던 환율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국가별로 다른 통화가치의 변화는 달러가치를 금 1트로이온스에 고정시키고 다른 나라의 화폐를 달러에 안정적인 환율로 고정하도록 하는 브레튼우즈체제를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기축통화로서 달러 자체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국제경
제학에는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미
국 예일대학교 경제학과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 교수가 발견한 개념으로 국제경제에서 기축통화국과 기축통화가 처한 모순적인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세계에 달러를 충분 히 공급하기 위해 달러를 많이 발행하면 달러의 가치가 허락해 기축 통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고, 반대로 달러가치를 유지 하기 위해 달러를 적게 발행하면 국제 결제에서 달러가 부족하게 되어 역시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 는데, 이것이 바로 트리핀 딜레마입니다.
- 이러한 트리핀 딜레마와 함께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의 또 다른 문제는 경상수지 적자입니다. 미국은 1940년대까지는 무역수지 흑자국 이었으나, 1950년대 이후 유럽과 일본이 전후 복구를 마치고 본격적 으로 경제성장을 하면서 미국에 대한 수출이 증가해 미국의 무역수 지는 적자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외국의 달러 보유량은 증가 했지만, 미국이 보유한 금은 지속적으로 유출되어 달러의 가치 또한 하락하게 된 것이죠. 여기에 더해 1960년대 이후 존슨 행정부의 ‘위대 한 사회 계획'이라는 대규모 복지 프로그램과 베트남 전쟁 전비로 정부 지출이 폭증했고 이는 경상수지 적자를 심화시켰습니다. 사실 이러한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적자는 기축통화국에 있어 필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기축통화국이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지 않을 경우 기축통화의 조건인 일반적 통용성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기축통화국은 무역수지 적자로 자국 화폐가 외국에 유출된 상황에서 국채를 발행히 자본수지를 흑자로 유지함으로써, 즉 미국이 발행한 국채를 무역스지 흑자를 통해 달러를 축적한 다른 나라가 구입해 다시 달러를 미국으로 유입시킴으로써 국제수지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습 니다. 문제는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되어 미국 달러가 지속적으로 다른 나라로 우입되면, 트리핀 딜레마처럼 금의 보유량이 제한된 상황 에서 미국의 달러가치가 하락해 기축통화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 비트코인과 달리 이더리움은 일종의 플랫폼입니다. 비트코인은 그 것을 기반으로 비트코인 위에서 작동하는 디앱(DApp, Decentralized Application)을 만들거나 배포할 수 없지만 이더리움은 디앱을 만들거 나 배포할 수 있습니다. 디앱은 풀어 쓴 명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탈중앙화 분산 응용 프로그램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이 더리움은 윈도 같은 일종의 운영체제(OS)라고 할 수 있고, 디앱은 그 운영체제에서 작동하는 엑셀과 파워포인트 같은 응용 프로그램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이더리움이 이렇게 자신 위에서 작동하는 디앱을 만들거나 배포할 수 있는 이유는 이더리움이 단순한 블록체인 네트 워크가 아니라 분산 컴퓨팅 플랫폼이기 때문입니다.
- 분산 컴퓨팅 플랫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암호화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비트코인에 대해 살 펴보면서 사토시 나카모토가 C++로 만들어진 소스코드(컴퓨터 소프트웨어 제작에 사용되는 일종의 설계 파일)를 백서와 함께 배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비트코인이 최초의 암호화폐인데다 소스코드가 배포되었 기 때문에 이후에 만들어진 모든 암호화폐는 기본적으로 비트코인의 소스코드를 바탕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비트코인의 소스코드를 바탕으로 다른 암호화폐가 만들어졌다면 결 국 이 모든 암호화폐는 기본 설계도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하지만 새 암호화폐를 만들 때마다 매번 비트코인의 소스코드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프로그램 소스코드를 만들게 되면 이건 일종의 시간과 노동의 낭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조금 더 편하고 간단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이더 리움입니다. 이더리움은 여러 암호화페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특성만 모아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떤 개발자가 이를 이용해 암호화폐를 만든다고 가정할 경우,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 필요 없이 이더리움의 소스코드에서 필요한 부분만 새롭게 변경해 만들면 됩니다.
-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가장 큰 차이는 블록체인 위의 블록에 데이 터만 기록할 수 있는지 아니면 계약을 실행시킬 수 있는 코드인 조건 문(if)이나 반복구문(loop)을 추가할 수 있는지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비트코인에서 살펴보았듯이 비트코인은 블록에 거래 정보만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이 거래에 대한 정보를 암호화하는 것이 바로 해시 함 수임을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이더리움은 이러한 거래 정보에 더해 그 거래를 실제로 실행시킬 수 있는 코드를 블록에 기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더리움은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블록에 기록할 뿐 만 아니라 그 거래의 계약서와 계약 조건도 기록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어서 스마트 계약의 적용이 가능한 것이죠.
블록체인과 달리 이더리움이 이렇게 복잡한 계약을 기록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더리움과 관련해 첫 번째로 살펴본 분산 컴퓨팅 플 랫폼과 다시 연결됩니다.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은 이더리 움 가상머신(EVM, Ethereum Virtual Machine)이라는 기술을 도입했습니 다. 이더리움 가상머신은 블록체인으로 구성된 하나의 컴퓨팅 플랫 폼입니다. 이더리움은 이더리움 가상머신을 통해 사용자에게 사전에 정의된 프로그램이 아닌, 자신의 목적에 맞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 다시 말해 비트코인은 사전에 정의된 프로그램인 거래내역만 블록체 인에 기록할 수 있지만, 이더리움은 사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목적에 맞는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도면, 즉 이더리움의 소 스코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 도면을 활용해 자신이 원하는 작업 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이더리움 가상머신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덕분에 스마트 계약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이더리움은 어떻게 비트코인에서는 불가능했던 이러한 작업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이더리움이 솔리디티(Solidity) 라는 프로그램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솔리디티는 다른 프로 그래밍 언어인 C++, 파이썬, 자바스크립트의 영향을 받은 언어로, 이 더리움 플랫폼인 가상머신 위에서 작동하는 언어입니다. 솔리디티의 특징은 튜링 완전(Turing Complete) 언어라는 점인데요. 이더리움은 튜링 완전 언어인 솔리디티를 이용해 현실에서 가능한 모든 계약 상황을 구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참여자(노드)는 새로운 블록이 생성되었을 때, 즉 새로운 계약이나 거래가 체결되었을 때 그에 대한 검증을 위해 이더리움 가상머신을 실행합니다. 이더리움 가상머신의 실행을 통해 네트워크의 모든 노드는 동일 한 계산을 수행해 같은 결과값을 저장하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해 노드 는 하나의 상태(계약이나 거래의 체결 및 그 조건)에 합의하게 됩니다. 이 러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이더리움 가상머신과 스마트 계약은 서 로 밀접하게 연결되고, 이 둘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솔리디티와 다른 언어의 차이
사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프로그래밍 언어는 가상 머신과 연결됩니다. 프로그래밍 언어에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컴퓨터는 이해하기 쉬운 기계어와 컴퓨터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람은 이해하기 쉬운 프로그래밍 언어가 있습니다. 컴퓨터 도입 초기에는 대부분의 프로그래밍 언어가 기계어였지만, 컴퓨터 기술이 발전 하면서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프로그래밍 언어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언어가 대부분이 되었다고 해서 컴 퓨터가 이해하는 언어 체계까지 바뀐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프로그 래밍 언어를 기계어로 바꿔주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역할을 수행하 는 것이 바로 가상머신입니다. 예를 들면 C++나 자바로 프로그램을 작성할 경우 이 프로그램 언어를 기계어로 변환하는 과정이 필요한 데, 이 역할을 수행하는 가상머신이 C++나 자바에 내장되어 있습니 다. 따라서 가상머신 자체도 이더리움만이 가진 독창적인 특징은 아 닌 셈이 됩니다. 그렇다면 굳이 이더리움에 솔리디티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그 이유는 굉장히 간단합니다. 다른 언어와 달리 솔리디티는 그 자체가 이더리움에 최적화되어 디자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 로 이더리움은 암호화폐이고, 암호화폐의 가장 기본적인 생성 이유 중 하나는 비트코인 백서에도 있는 것처럼 개인과 개인 간 금융중개 기관의 개입 없는 자유로운 금융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금융거래를 위해서는 암호화폐를 주고받는 상대방의 지갑 주소와 공개키 등이 필요합니다. 솔리디티는 기본 코드에 이러 한 거래를 위한 문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 기존 프로그래밍 언 어는 이런 문법이 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암호화폐 관련 프로그 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모두 백지상태에서 다시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암호화폐를 주고받는 거래를 할 경우, 솔 리디티는 이미 만들어진 문법을 이용해 지갑 주소를 확인하고 그 지 갑 안에 잔액이 얼마나 있는지를 살펴본 후 다른 사람에게 정해진 금 액만큼 보내도록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는 이 와 관련된 문법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이 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디앱 개발자에게 있어 이미 만들어진 문법 을 사용하는 것과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작업의 효율 성과 개발 기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그 래서 이더리움은 솔리디티를 사용해 이더리움의 스마트 거래를 편리 하게 만들 수 있도록 했고, 이더리움 위에서 작동하는 디앱 역시 솔리디티를 이용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이더리움과의 호환성을 증대시 킬 수 있습니다.
- 비트코인은 개인과 개인 간 자유로운 금융거래를 위해, 이더리움은 스마트 계약 및 디앱의 플랫폼으로 기능하기 위해, 이오스는 이더리움의 느린 거래속도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데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리플은 해외송 금에 특화된 가상자산이기 때문에 네트워크 참여자 역시 해외송금 업무와 관련된 개인 혹은 회사로 제한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리플 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될 수 있었고,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도 충 분히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 테라와 루나: 시장을 간과한 알고리즘의 끝
앞에서 우리는 가치안정 코인의 세 유형 중 법정화폐 담보 방식과 가상자산 담보 방식의 작동 알고리즘과 그에서 파생되 는 문제점을 살펴보았습니다. 법정화폐 담보 방식은 코인 발행사 및 발행사의 재무제표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가상자산 담보 방식은 다른 가상자산의 담보 가치에 그 가치가 의존 합니다. 따라서 이 두 유형의 가치안정 코인 모두 코인 발행사의 분식 회계 혹은 가상자산시장 자체의 가격 하락 같은 시스템 위기(Systemic Risk)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가치안정 코인의 마지막 유형인 알고리 즘 가치안정 코인과 그 문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앞서 두 유형의 가치안정 코인은 모두 담보, 즉 기초자산에 의해 가치 가 유지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정화폐 담보 가 치안정 코인은 양도성예금증서와 유사하고, 가상자산 담보 가치안정 코인은 선물이나 옵션 같은 파생금융상품과 유사한 성격을 갖습니 다. 기초자산에 의해 가치가 유지되는 이 두 유형과 달리 테라(Terra) 와 루나(Luna)는 알고리즘에 의해 안정된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기반 가치안정 코인입니다. 그렇다면 테라와 루나는 어떤 알고리즘으로 법정화폐에 고정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걸까요??
테라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테라폼랩스는 각국의 법정화폐에 가치가 고정된 여러 종류의 가치안정 코인을 발행합니다. 만약 우리나라 원 화에 가치가 고정된 가상자산이면 테라KRW가 되고, 일본 엔화에 가 치가 고정된 가상자산이면 테라JPY, 미국 달러화에 가치가 고정된 테 라는 테라USD(UST)가 됩니다. IUST는 1달러와 동일한 가치를 갖도 록 발행되고 유지되는데, 그 방식이 앞에서 살펴본 법정화폐 담보 방 식이나 가상자산 담보 방식처럼 담보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테라와 루나의 교환 알고리즘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 최초 발행 시점에서 1테라가 1달러와 동일한 가치를 갖고, 1테라가 1루나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고 가정할 경우 1달러=1테라 1 루나' 가 됩니다. 그런데 이 가치가 유지되지 않고 변동되면 테라를 발행하 는 회사인 테라폼랩스는 테라 투자자가 보유한 테라를 테라폼랩스 에 맡기면 언제나 1테라를 1달러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 루나로 교환해줍니다. 만약 테라 가격이 하락하여 테라 보유자가 테라를 맡기고 루나로 교환하는 시점의 루나 가격이 1달러가 된다면 테라 보유자는 1테라로 1루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루나 가격이 0. 1달러가된다면 테라 보유자는 1테라를 10루나로 교환하게 됩니다. 즉 루나의 시장가격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이 테라 보유자는 전용 플랫폼에서 1테라를 1달러에 상응하는 가치를 갖는 루나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 이러한 테라와 루나의 교환 알고리즘은 테라 보유자로 하여금 무위 험 차익거래(Arbitrage Trading)를 할 유인을 제공하고, 이러한 차익거 래를 통해 시장에서 테라의 가치는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만약 테라 의 가격이 1달러 아래, 즉 0.6달러로 하락한 경우 거래자는 시장에서 테라를 구입하고 테라폼랩스를 통해 루나로 교환합니다. 이러한 방 식을 이용해 거래자는 0.6달러로 1달러 상당의 루나를 얻을 수 있어 0.4달러의 차익을 얻게 됩니다. 차익을 얻기 위해 시장에서 테라를 구입하려는 사람이 증가하고, 그러면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테라 의 가격은 상승하여 다시 1달러로 조정됩니다.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 지입니다. 이러한 테라와 루나의 이중 코인 시스템으로 인해 투자자 는 무위험 차익거래를 할 유인을 갖게 되고 차익거래를 통해 테라의 가격은 1달러로 수렴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테라와 루나는 차익거래 알고리즘을 통해 담보자산의 존재 없이도 테라의 가격을 1달러로 안 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테라를 매매하는 사람은 차익거래를 통해 이익을 취할 수 있는데 시장에서 루나를 매매하는 사 람은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만약 루나를 매매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인센티브가 없다면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는 아무도 루나를 구입하 려 하지 않을 테고, 그렇게 되면 결국 테라의 고정된 가치도 무너지게 될 테니까요.
- 테라를 발행하고 그 가치 유지를 책임지는 테라폼랩스는 루나 투자 자로 하여금 루나를 매수하고 보유할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위해 테라 기반의 탈중앙화 금융(De-Fi, Decentalized Finance) 플랫폼인 앵커 프로토콜(Anchor Protocol)을 제공합니다. 앵커 프로토콜은 앞에서 살펴본 메이커다오와 유사한 담보대출 알고리즘입니다. 시장에서 루나를 매수한 투자자는 앵커 프로토콜에 루나를 담보로 하여 테라를 빌 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빌린 테라를 다시 앵커 프로토콜에 예치하거나 시장에서 매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루나를 담보로 테라를 빌려 이를 다시 앵커 프로토콜에 예치할 경우, 테라폼랩스는 1년에 20%의 이자를 보장하여 투자자로 하여금 장기 투자를 유도합니다. 이런 알고리즘은 루나의 가치가 불안정하다고 믿는 투자자에게는 루나를 테라로 교환하여 이자 수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루나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차익거래를 하려는 사람은 보유량의 일부만 예치하거나 혹은 전부를 루나와 테라의 차익거래에 사용하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 정리하면 루나의 매도를 통해 테라폼랩스가 벌어들인 수익은 언제든 루나를 다시 매도하려는 투자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대차대조표상의 부채가 됩니다. 따라서 테라폼랩스는 이 부채에 상응하는 법정화폐 혹은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테라폼랩스는 대차대조표 상 보유해야 하는 자산을 테라를 발행해 판매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주조차익(Seigniorage, 시뇨리지)을 통해 충당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 문제는 테라의 가치를 떠받치는 루나의 시가총액이 테라의 시가총액 아래로 추락할 경우 실질적으로 아무런 가치 유지 수단이 없다는 것 인데, 테라폼랩스는 이에 대해 비트코인을 테라 발행량에 상응하도록 보유하여 담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러한 알고리즘과 메커니즘만 살펴보면, 알고리즘 가치안정 코인 테라와 루나는 테더나 메이커다오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논리적인 가상자산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논리가 모래 위에 지어진 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폭락이 지난 2022년 5월 9일부터 5월 13일까지 발생했습니다.
- 그렇다면 테라와 루나는 가격을 1달러에 고정할 수 있는 알고리즘 메 커니즘에도 불구하고 왜 가격이 폭락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공황매도와 뱅크런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테라의 가치는 법정화폐나 다른 담보자산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테 라와 루나를 교환하는 알고리즘에 의해 유지됩니다. 다시 말해 언제 든 테라의 가격이 변동하면 루나를 이용해 차익거래를 할 수 있는 메 커니즘에 의해 테라의 가치는 1달러에 고정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차익거래 메커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무너지거나 혹은 자신의 자산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수의 투자자가 자신이 투자한 돈을 찾기 위해 시장에서 자산을 매도하게 될 경우 테라와 루나의 가치는 동반 하락하여 시장이 붕괴하게 됩니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뱅크런이라고 합니다. 뱅크런이 발생하면 은행에 돈을 예금한 고객이 은행이 망하면 자신의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은행으로 몰려가서 예금을 인출하려 하고,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은행은 지급준비제도(Reserve Requirement System)로 인한 유동성 부족으로 고객의 예금을 돌려주지 못해 파산하게 됩니다.

- 메이커다오와 가상자산담보대출
2018년 가상자산담보대출을 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 메이커다오(MakerDAO)가 시작되었습니다. 메이커다오는 달러에 가 치가 고정된 가치안정 코인인 다이(DAI)와 수수료를 지불하는 코인인 메이커 (Maker)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이더리움을 담보 로 어떻게 다이를 발행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다 이의 발행 메커니즘과 반대로, 다이를 보유한 사람은 이 다이를 담보 로 이더리움을 대출받을 수 있으며, 만기 혹은 만기 이전에 이더리움을 상환하면 자신이 담보로 맡긴 다이를 다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수료로 메이커를 지불하는 것이고요. 우리가 주식담 보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주식이나 주택을 담보로 은행으 로부터 돈을 빌리고 원금과 이자를 갚는다면, 메이커다오는 다이를 담보로 이더리움을 빌리고 이자로 메이커를 지불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상자산담보대출은 비록 그 범위가 메이커다오로 제한되지만, 실제 은행에서의 담보대출과 비슷한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탈중앙화 금융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러한 탈중앙화 금융은 분명 제대로 된 금융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에서는 허가 받지 않은 다른 기업이나 개인이 이자 혹은 수익의 분배를 목적으로 자금을 모집하는 거래를 할 경우 유사수신 행위로 처벌 을 받기 때문입니다. 금융감독원에서는 이러한 유사수신의 예로 가상화폐 혹은 크라우드 펀딩을 사칭하는 예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 리가 앞에서 살펴본 테라의 앵커 프로토콜 역시 이러한 유사수신의 로 인한 문제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현재 미국은 충분히 큰 내수시장과 전 세계를 선도하는 첨단산업 및 금융산업을 통해 이러한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달러가치를 유지하여 기축통화로서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달러가 아닌 비트코인 이나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가 기축통화가 된다면 이 딜레마를 해 결할 수 있을까요?
많은 경제학자는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공개시 장의원회의 기준금리 결정에 전 세계 경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유는 그만큼 달러와 연방준비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입 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 수행을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에는 수많 은 훌륭한 경제학자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미국 연방준비제 도이기 때문에 시장이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에서 내 로라하는 경제학자가 연방준비제도와 함께, 혹은 연방준비제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신뢰하고 따른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가상자산은 금처럼 이렇게 안
전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안전자산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 상황 혹은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주가가 하락하고 환율이 상승하는(원화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의 가격이 큰 변동 없이 유지되거나 아니면 금처럼 그 가격이 상승해야 합니다. 그래야 위기 상황에서 안전자산으로서의 가치를 갖기 때문입 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기준금리 인상 상황에서 가상자산은 주 가와 마찬가지로 하락을 거듭했습니다. 가상자산의 이러한 가격 움 직임은 가상자산이 위험에 대비하는 안전자산이 아니라, 오히려 위 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위험자산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상자산은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위험자산의 한 종류로 기능할 수는 있지만 안전자산으로 기능할 수는 없습니다.
- 세 가지 경제학 이론 (선행현금제약조건이론, 세대중첩이 론, '돈은 기억이다' 이론)을 종합해 살펴보면, 화폐의 기원 혹은 무엇이 화폐이고 아닌가를 결정하는 데에는 정부나 중앙은행의 존재가 필수 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화폐의 기능은 정부나 중앙은행에 의해 결 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개인의 합의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나 중앙은행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 은 상태에서 화폐의 존재와 사용을 도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마지막 '돈은 기억이다'의 경우 하나의 원장을 가정하여 얼핏 보면 정 부나 중앙은행의 존재를 가정한 듯하지만, 신용카드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나 중앙은행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원장에 거래내역을 기록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 앞에서 우리가 제도경제학 측면에서 살펴본 암호화폐 혹은 가상자산의 문제는 반대로 금융경제학 이론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금융경제학 이론에서 화폐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존재는 필수적인 요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파레토 개선 거래를 가능하게 하여 사회전체적인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다면 화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비롯한 가상자산이 화폐가 될 수 있을기 없을기는 선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든, 비트코인이든 아니면 제3의 다른 수단이든 거래를 가능하게 하고 사회 건제적인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다면 모두 화폐가 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화폐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규 범적인 측면에서만 화폐를 규정하는, 경제학적 측면에서 보면 다소 바람직하지 않은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퍼블릭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네트워크로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거래 내역을 보유하고 있어 위조나 변조가 어려운 장점이 있지만 거래 속 도가 느리고 네트워크 참여자에 대한 보상을 위해 반드시 블록체인 토큰을 발행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반대로 프라이빗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퍼블릭 블록체인과 달리 미리 허가를 받은 개인이나 조 직만 참여할 수 있는 폐쇄형 블록체인 네트워크입니다. 프라이빗 블 록체인 네트워크에서는 거래내역 역시 이 네트워크에 참여한 노드만 보관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네트워크의 유지, 보수, 참가자 의 승인 등을 책임지는 중앙관리 주체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쿠브가 대표적인 프라이빗 블록체인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동산 계약이나 보험 계약 등에 대해서도 프라이빗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만들고 관리하면 기존보다 거래비용을 전한 수 있는 계약 시스템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습니다.
- 경제학자 더글러스 노스(Douglass C. North)는 자신의 책 《경제사에 있어 구조와 변화(Structure and Change in Economic History)》에서 인류 역 사의 발전 과정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인류 역사의 발전은 거래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봉건제에서 중앙집권제로의 변화는 조세의 수취와 국방 에 대한 거래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노력이며, 군주정에서 민주정으 로의 이행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거래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노력 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계약 시 스템에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계약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역시 이러한 발전의 한 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달러가 붕괴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본시장이 점점 통합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물시장보다 금융시장의 규모가 훨씬 크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각국이 미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을 하나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세계 경제는 물론 세계 자본시장은 빠르게 통합되었습니다. 이러한 자본시장의 통합으로 달러는 대체할 수 있는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 기축통화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투자를 진행할 수 있고, 미국 역시 다른 나라에 투자하고 대외 적자를 결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금융시장 규모가 실물시장보다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2020년 기준 미국의 모든 금융기관이 보유한 금융자산의 규모는 명목 GDP의 50배가 넘는 1,231조 달러를 기록했 는데, 이 수치는 미국의 총 공적 채무(Public Debt) 27.7조 달러의 40배 가 넘는 규모입니다. 또한 2020년 한 해 동안 미국으로 유입된 외국 인 투자는 약 19조 달러인데, 이 수치는 미국을 제외한 모든 OECD 회원국의 경상수지 흑자 합계인 약 1. 2조 달러를 훨씬 초월하는 금액 입니다.
- 글로벌 불균형이 분명 심각한 문제이지만, 현재 상황은 전 세계적으 로 실물시장보다 금융시장의 규모가 훨씬 크고, 이 금융시장이 미국을 중심으로 점점 더 밀접하게 통합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실물거래와 금융거래 모두에 있어 중요하게 기능하는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약해지거나 흔들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 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시대, 혹은 달러의 시대는 곧 금융의 시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의 경우는 리브라와 조금 다릅니다. 비트코인 이 법정화폐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백서에서 서술한 내용이 아니라 비트코인의 가격이 상승하자 투자자 사이에서 나온 주장이었습니다. 이더리움은 아예 처음부터 다른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디앱으로 작동하고 스마트 계약이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체결되는 하나의 플랫폼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즉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을 대체하려는 주장이나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청산되었지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청산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거래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 에 대한 명시적인 인식 차이에 기인합니다.
-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롯한 가상자산은 비록 그들이 처음 등장했 을 때의 목표를 아직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 과 가상자산이 등장했기 때문에 기존 금융시장도 가상자산을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하여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고, 법정화폐 시스템 도 기존의 체제에서 벗어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논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혁신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말한 '창조 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화폐 측면에서 실행해 화폐의 기술적 발전을 이루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경제발전에 있어 창조적 파괴 가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지를 생각해보면, 블록체인 기술과 이를 이 용한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의 가치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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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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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힘

경제 2022. 10. 7. 12:19

- 맬서스가 그리는 세상에서는 오직 금욕 혹은 출생 억제만이 인구 감소를 가져옴으로써 1인당 총생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생산성 향상이 인구 증가라는 요소에 의해 상쇄된다고 본 맬서스의 견해는 산업혁명 이 전 시대 상황에 대해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은 셈이다. 하지만 1820년 이후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가 눈에 띄게, 그리고 동시에 일어났 다는 사실은 맬서스식 접근법의 한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제 궁금한 것 은 왜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국가들이 맬서스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 경제 성장의 이륙이라는 기적은 여러 가지 요소와 관련이 있는데, 그러한 다중적 요소의 결합을 통해 19세기 이후 전례 없는 부의 축적이 가능 해졌다. 하지만 기술과 제도적 요소 사이의 조합이야말로 이러한 이륙이 왜 더 일찍이 아니라 19세기 초에 와서야 발생할 수 있었는지를 더 잘 설 명해준다. 또한 이륙 현상이 다른 지역이 아닌 유럽에서, 요컨대 최초로 영국에서 그리고 이어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발생했는지를 설명해준다. 실제로, 한편으로는 인쇄술처럼 새로운 과학 기술이 생산 및 지식의 전 파를 크게 용이하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혁신가를 보호해주는 새 로운 제도가 등장해 혁신에 대한 투자를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종합해보면, 산업혁명 시대에 이륙이 나타났다는 것은 슘페터식 패러다임의 세 가지 중심 개념을 설명해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심 개념은 첫째 혁신이 축적되어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 둘째 혁신을 통한 이득을 보전하기 위해 또 더 크게는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지식 재산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롭 게 시장에 진입하는 주체가 그들의 기존 이득이나 권력을 뒤흔드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창조적 파괴 과정을 막으려는 기존 기업과 정부가 만들어놓은 시장 진입 장애물에 맞서 싸우기 위한 도구로서 경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패러다임이 이 책에서 논의하는 내용의 지침 역할을 한다. 
- 위에서 언급한 두 종류의 기업이 경쟁에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를 이해 하기 위해 기업이 아니라 학교 내 어떤 학급을 상상해보도록 하자. 그 반의 어떤 학생들은 반에서 상위권에 있고 좋은 성적을 받는다. 여기서 학 생들의 성적을 기업의 이득이라고 가정하자. 또 어떤 학생들은 반에서 하위에 머물며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 그런데 이 반에 한 똑똑한 학생이 새로 전학을 왔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경쟁이 강화되면 학생들 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뛰어난 학생이 전학을 오면 학급 내 최상위 학 생들, 즉 이미 성적이 아주 좋았던 쪽에선 상위권에 남아 자신의 성적 수 준을 보전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반면에 하위권 학생들은 오히려 아예 낙담한다. 그 전보다 학습 수준을 따라가기가 더 어려워졌으니 말이다.
- 종합해보면, 로비에 들이는 투자는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우선, 성장하는 과정에서 시장에 이미 자리 잡은 기업은 점점 더 혁신에 대한 투자는 줄이고 로비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기업과 정치인의 유착이 시장 진입 비용을 늘리고 창조적 파괴 의욕을 꺾기 때문이다. 정계에 연줄 있는 기업이 특정 산업 분야에 늘어날수록 해당 산업의 역동성은 감소한다. 새로운 기 업의 진출은 줄어들고 기존 기업의 시장 퇴출 또한 줄어들며, 기업의 평 균 연령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기까지 분석한 결과, 주요 결론은 무엇일까? 첫 번째 결론은, 혁신이 '상위권' 불평등의 원천이라 해도 로비 자체나 로비로 인해 발생하는 진입 장벽 같은 다른 불평등의 원인들과는 다르게 혁신에는 여러 가지 미덕이 있다는 점이다. 첫째 혁신은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역동성의 근원이 되는데, 이는 정치적 연줄이 해줄 수 없는 역할이다. 둘째 혁신, 특히 시장에 진입하는 신진 기업에 의한 혁신의 경우에는 사회 이동 가능성과 긍정적 상호 관계를 보여준다. 반면에 로비는 시장 진입을 감소시킨다. 마지막으로, 로비 활동은 전반적인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데 반해, 혁신은 그러한 요소와 상호 관계가 없는 걸로 보인다. 그러니 만약 소득 분포의 최상위권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공략하고자 한다면 모든 개인을 동일한 방식으로 대하지 않는 게 옳다. 특히 정치적 연줄에 기대는 개인 및 기업 과 혁신가를 같은 방식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만약 혁신 의욕을 꺾음으로써 상위권의 불평등을 공략하는 방식을 동원한다. 면, 그와 동시에 사회 이동 가능성 또한 감소해 결과적으로 성장을 둔화 시킬 뿐 아니라 전반적인 불평등까지 악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건 결국 자충수를 두는 셈이다.
두 번째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에게 신경을 써야만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과거 혁신 요소에 힘입어 부를 축적한 이들도 포함 다. 실제로 과거의 혁신가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깊이 뿌리내린 기업으로 변모한 경우가 흔하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이들은 점점 더 로비와 정치권 연줄에 투자 비용을 늘리면서 혁신을 희생시킨다. 그렇다고 치면, 과거 의 혁신가들이 자신의 옛 혁신을 통해 쌓은 부를 이용해 새로운 경쟁자 의 시장 진출을 방해하는 상황을 방지하면서도 새로운 혁신에 대한 보상 을 해줄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새로운 스티브 잡스의 등장을 장려함과 동시에 바로 그런 인물이 나중에 카를로스 슬림으로 돌변해버 릴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도는 무엇인가? 유일한 방법은 조세 제 도에 의존해 자본에 대한 할증세를 부과하는 길뿐일까? 아니면 전반적인 조세 제도를 재고해 뭔가 다른 방도를 활용해야 할까?
- 창조적 파괴는 매우 강력한 변화의 동력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자. 창조적 파괴는 어떤 기술을 신기술로 대체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 라, 생산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일조차 가능케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처한 환경 위기가 얼마나 긴급한지를 보면(특히 특정 영역은 유난히 더 위급하다), 그 같은 극적인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기에 에너지 믹스 (energy mix: 에너지원의 다각화를 의미 - 옮긴이)를 재생 에너지원 위주로 전환 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산업 전체의 모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해야 할 중요한 질문은 이러하다. 즉, 혁신은 과연 자발적으로 환 경 오염을 덜하는 기술의 방향으로, 더 전반적으로 말하면 자연 자원을 아낄 수 있는 기술의 방향으로 향하는가? 아니면 그와 반대로 혁신의 방 향을 바꾸기 위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가? 
- 셰일가스 붐은 재생 에너지 쪽으로 가는 기업의 혁신 방향 전환 과정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경로 의존성으로 인해 아예 그러한 전환 자체를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 셰일가스 붐으로 인해 화석 연료에 관한 전문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업은 장래에도 관 련 기술을 혁신하는 활동을 절대 멈추지 않게 된다. 여기서 '중간 단계 에너지의 함정' 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볼 수 있겠다. 지연을 시키는 아예 방해를 하든 두 경우 모두 셰일가스 추출은 장기적으로는 탄소 배출량의 증가를 가져온다. 또한 셰일가스 붐이 없었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기후 재앙의 개연성을 오히려 가중시키기도 한다.
- 그렇다면 이러한 중간 단계 에너지원의 존재를 그냥 없었던 셈 쳐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러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최선의 방법이 존재하는 걸까? 장기적으로 혁신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단기적으로 긍정적일 수 있는 활용 방식이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연구 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구성한 모델의 매개 변수가 합리적이라는 가정하 에 이렇게 제안했다. 셰일가스 붐을 동반하되 재생 에너지 관련 혁신에도 여전히 강력한 지원을 하고, 또 2~3퍼센트로 의미 있는 수준이지만 지나 치지는 않은 탄소세 과세 방침을 결합한 정책이 최상의 방안이라고 말이 다. 이들은 이렇게 할 경우 중간 단계 에너지원의 함정을 피하면서도 친 환경 혁신으로 향하는 에너지 전환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 전망했다.
- “혁신이 가져오는 문제는 (......] 슘페터식 창조적 파괴는 창조적일 뿐 아니라 파괴적이라는 점이다. 창조적 파괴는 기존의 일자리를 없애버리므로 건강 보 험 비용에 부담을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노동자들이 점점 더 적대적으로 변하는 노동 시장을 대면하게 만들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 보호망은 적절히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러한 일자리에 기대어 살아가던 개인과 그 가족의 삶은 훨씬 불안정해지는데, 그로 인해 좌절은 심화하고 사망률이 증가한다.”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턴, ‘절망으로 인한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 중에서)
- 제조업 분야의 고용 감소는 또한 고등 교육을 받지 않은 성인층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런 데다 이러한 고용 감소는 비제조업 분 야의 고용 증가로 상쇄되지도 않았다. 산업 분야에서 일자리가 없어지면 서비스업계의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될 거라고 기대했을 수 있지만 말이다. 중국 제품의 수입으로 인해 심화한 경쟁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1990~ 2007년 제조업계의 일자리가 평균 21퍼센트 감소했다. 요컨대 미국 노동 자 150만 명가량의 일자리가 없어진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미국 대선에서 경제 활동을 미국 국내로 재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주요 유 세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 중에는 바로 이러한 노동자 계층이 자리한다.
마지막으로, 중국 제품의 수입으로 인한 타격은 산업 분야에서 고용만 을 감소시킨 게 아니라 임금 또한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역 내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킴과 동시에 유동 노동 인력의 공급은 높이놓았기 때문이다.
- 국외로부터의 경쟁에 대응하는 데는 아주 다른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관세를 인상하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간접적으로 국내 기업의 혁신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특히 연구 개발에 대한 기업 투자에 국고 보조를 하는 방법을 들 수 있다
- 관세 인상 조치에 의존하는 방식은 위험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최종 상품에 이르기까지 중간 구성 요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Flaaen, Hortaçsu et Tintelnot, 근간). 관세를 일괄적으 로 인상하면 중간 부품과 최종 제품에 일제히 타격을 주고 결국 부품 가격이 크게 올라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생산 비용이 매우 커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기업은 이윤 폭을 유지하기 위해 판매 가격을 올리 고, 그로 인해 국내 소비자가 상대적 빈곤을 겪으며, 해당 기업이 활동하 는 시장 규모가 축소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 사례로 미국의 자동차 제조 업체 중 중국 소재 후방 미러 생산 업체의 납품을 받는 기업이 있다고 가 정해보자. 만약 미국 정부가 모든 중국 제품에 대해 무조건적인 관세 인상을 실시하면, 중국산 자동차뿐 아니라 후방 미러 같은 부품에도 관세가 매겨진다.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미국 기업이 생산한 자동차의 판매에 긍정적 영향을 줄지라도, 후방 미러에 대한 관세는 생산 비용을 증가시켜 미국 기업에 오히려 피해를 입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다국적 기업 특유의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다국적 기업은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표적 관세 조치에 손쉽게 대처할 수 있다. 그러한 관세 조치가 없는 국가로 생산 공정을 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 공정 대부분을 중국으로 이전시킨 미국의 신발 생산 업체를 한 번 예로 들어보자. 산업 시설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가 중국 에 대해 관세 인상을 결정하면 이 미국 기업은 미국의 관세 표적을 피해 다시금 베트남 등지로 공장을 이전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으로 경제 활 동을 재이전하는 효과는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 번째 이유는 관세가 혁신에 끼치는 해로운 영향을 들 수 있다. 이는 앞부분에서 중요하게 다룬 내용이다. 우선 '시장 규모' 효과를 얘기할 수있다. 일부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징벌적 관세 조치는 그 표적이 된 국가들로부터 보복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보복 조치는 국내 기업이 수출할 수 있는 시장의 수와 규모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렇 게 되면 해당 국내 기업의 기업의 혁신 의욕 또한 꺾인다. 아울러 '경쟁' 효과도 기를 수 있다. 관세 장벽을 세우면 수입으로 인한 경쟁 그리고 수출 로 인하 발생하는 경정 모두 약화한다. 그러면 국내 시장으로 이미 수출 하고 있는 하의 기업 또는 해외 수출 시장에 있는 타 국내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잠재력 있는 국내 기업의 혁신 노력이 후퇴하는 결과를 가겨을 수 있다.
- 중국의 WTO 가입과 그에 따른 중국발 수입의 충격은 미국 내 고용과 임금에 전반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1990~2007년에 중국과의 교역이 그렇게 심화되지 않았다고 가정할 경우, 2007년에 미국 제조업계에는 추가 일자리가 150만 개 있었을 거라고 추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화를 포기하고 중국과 무역 전쟁에 돌입해야 할까?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 이유에 기반해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11장에서 논의한 것처럼 필수적인 사회 보장 안전망을 도입해 실직의 위험에 직접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무역이 강화되면 가격 인하로 인해 국내 가구의 구매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과의 교역이 증가하자 미국의 가구당 구매력이 연간 1171달러 높아 졌다(Jaravel et Sager, 2019).28 세 번째 이유는 무역 전쟁이 일어나면 그 표적이 된 국가로부터 보복 조치를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역 보복은 국내 기업의 수출 시장을 축소시키기 때문에 결국 관련 국내 기업의 혁신 의욕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반대로, 국내 기업의 연구 개발에 공공 지원을 해주는 방침에는 장점이 여럿 있다. 이러한 정책은 국내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가치 사슬을 더 잘 제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쟁력 싸움은 무엇보다 투 자를 통해, 그리고 제대로 된 공급 정책을 통해 이길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의 수출입을 기록한 독일이 코로나19 대응 제 품의 대규모 생산 및 수출국이 되는 데 성공한 이유, 또 더 크게 보았을 때 보건 분야 같은 국가 전략 산업에서 가치 사슬을 제어하는 데 성공한 이유는 보호주의 정책 덕분이 아니었다. 독일의 이러한 성공 사례는 오 히려 혁신 정책, 산업 정책 그리고 독일 사회 내에서 대화와 소통이 함께 조화를 이뤄 생산 경쟁력이 높아지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보호주의 접근 방식과 무역 전쟁을 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관세 조치를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관세 정책은 사회적 덤핑 혹은 환경 관련 덤핑 행위에 대응하는 조치로 서 꼭 필요할 수 있다. 특히 9장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는 ‘오염 천국'에 맞서 투쟁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탄소 국경세 도입을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관세 조치를 특정 국가가 일방적으로 실행하는 방 식을 지양하고, WTO나 유럽연합 등과 함께 다자적인 틀 안에서 결정 및 실행에 옮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연구는 도착 국가의 혁신성에 이민이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입증한다. 특히 숙련된 인력의 이민, 그리고 도착 국가의 사회에 잘 통합된 이민자들로 인한 혁신을 살펴보면 그러한 경향이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 행정부의 권력에 한계를 분명히 해두는 것은 혁신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행정 권력의 범주를 확실히 해두면 자사의 이득을 보전하고픈 기존 기업과 정치권력 사이의 결탁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행정부의 영역을 한정 지음으로써 신진 혁신 기 업의 시장 진출을 장려하고, 그 결과 창조적 파괴 과정이 용이해진다는 뜻이다. 행정 권력을 제어하는 첫 번째 수단은 헌법이다. '불완전 계약'이라는 환경에서 헌법은 규범 사이에 위계질서를 정립하고 권력 기관의 관계를 명시한다. 헌법은 또한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권력 분립을 정의하며 사 법부의 독립성을 확보해준다.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선거 제도를 명시하 며 의회의 표결 방식, 수정 권한, 헌법재판소 제소 권한 그리고 임기의 기한 등을 규정하기도 한다. 이 모든 사항은 행정 권력의 범위와 한계를 설정해주는 도구 역할을 한다. 하지만 헌법 차원에서 보장된 이런 내용은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활발히 움직이는 시민 사회 없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에 불과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 체제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 국가 그리고 시민 사회라는 삼각 구도가 꼭 필요하다. 시장은 혁신에 필요한 동기를 부여하며 혁신성 높은 기업들 사이에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국가는 혁신에 대해 재 산권을 보장하며 계약이 존중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투자자로서 그리고 보장의 주체로서 개입한다. 마지막으로 언론, 중개 단체와 민간단체를 아우르는 시민 사회는 행정 권력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헌법 차원의 도구를 생산해내고 또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아울러 시민 사회는 시장의 운영이 더욱 효율적이고 윤리적이며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보증하는 역할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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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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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경제학 공부

경제 2022. 10. 2. 11:29

- 마르크시즘이 자유주의 경제학을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자유를 실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표 면상으로는 평등한 자유 경쟁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주사위는 사기 이며 노동자의 자유가 내실을 기하지 못하고 자본의 사슬에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혁명이 필요한 것은 인간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마르크시즘의 제안이 물리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며, 이것을 가능하다고 강변함으로써 보다 거대한 기만이 생기고, 그것이 인간의 억압으로 귀결되는 데 있다.
- 선택의 자유와 합리적 개인 
앞 장에서 현대 경제학의 '비과학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신앙처럼 추앙받는 시장 이론을 지탱하는 것으로 '자유'에 대한 사람들의 희구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 '자유'라는 것은 요컨대 '선택의 자유'이고, '선택 의 자유'라는 것은 인간이 선택에 직면한 상황에서 가능한 선택지가 모두 제공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그렇게 주어진 모든 선택지 중에서 자유의지에 기초해 합리적으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로 일어난 일은 그 사람이 책임진다는 논리다.
- 누군가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책무로서의 책임 은 이 선택을 통해서 생긴다. 역으로 선택의 여지가 충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선택지가 하나도 없는 극단적인 경우라면 그 사람은 강요당한 것이 므로 그 결과에 책임이 없다. 혹은 어떤 이유로 합리성이 상실된 정신 상태에 있었다면 설령 선택의 여지가 있었더 라도 책임이 없다.  경제학은 선택의 자유를 집행하는 합리적인 개인을 전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서구에서는 이것이 합리적 사고의 일반적인 전제이며 여러 다양한 자유는 궁극적으로 선택의 자유'의 문제로 인식된다.
그런데 이 ‘선택’이라는 발상은 본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그것은 인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 둘째, 그것은 실행이 불가능하다. 즉 ‘선택의 자유'라는 발상은 현실의 인간이 가지는 사고 과정을 반영하지 않고 있고 게다가 실행 불가능한 부조리한 논리다. 이런 가정을 진지 하게 받아들이면 세계가 부조리로 가득한 것처럼 보여서 '자유의 감옥에 갇혀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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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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