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공황

경제 2023. 8. 8. 17:12

- 역사적으로 팬데믹은 우리 인간이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세상을 떠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한 세상과 다른 세상 사이에 놓인 문이나 다름없다. (아룬다티 로이 Arundhati Roy, <파이낸셜 타임스> (2020년 4월 3일))
- 바이러스란 무엇일까? 과학자들도 이 질문에 확실하게 답하지 못 한다. 물론 그들은 바이러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 세기에 걸쳐 엄청난 과학적 진보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 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의학계의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존 M. 배리 John M. Barry가 그의 저서 《대 인플루엔자The Great Influenza>에서 설명한 것처럼, 바이러스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바이러스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영양분을 섭취하거나 산소를 연소시키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그 어떤 대사 작용도 하지 않는 다. 노폐물을 배설하거나 교배하지도 않는다. 우연이든 의도적으로든 어떤 부산물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또 독립적으로 증식하지도 못한다. 바이러스는 완전히 살아 있는 생물체와 비활성 화학 물질의 집합체, 즉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형이다.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조차 바이러스가 생물체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한때 더 복 잡한 형태의 생물체였다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진화한 원시 생물체 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또 어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진화가 아 닌 퇴화의 결과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바이러스가 더 고등한 생물체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단순화되거나 퇴화했다는 것이다. 또 세포 유전체 일부가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독특한 특징을 가진 바이러스가 됐지만 완전한 생물체는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인류는 바이러스가 살아 있는 생물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 에서 현미경이 아니면 볼 수도 없는 바이러스와 이제 막 싸움을 시 작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있다면 바이러스는 복제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바이러스는 단독으로는 복제하지 않고, 살아 있는 세포에 침투해 숙주 세포의 에너지와 DNA를 넘겨받아 자신의 유전 정보 (DNA보다 간단한 구조를 가진 RNA에 부호화된 유전 정보)를 저장한 다음, 숙주 세포가 수천 개에 달하는 바이러스를 복제하도록 명령한다. 복제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숙주 세포벽이 파괴되고 복제된 바이러스들이 방출된다. 방출된 바이러스들은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바이러스 개체 수를 크게 늘린다. 그렇게 증식한 바이러스 무리가 세포를 점령하기 시작한다.
- 바이러스는 유전 부호가 담긴 타원형 외피일 뿐이다. 바이러스 복 제의 핵심은 그 외피의 표면에 돋아나 있는 돌기에 있다. 인플루엔 자 바이러스의 경우, 표면에 두 가지 유형의 돌기가 있다. 하나는 창 처럼 생긴 헤마글루티닌 hemagglutinin (H) 돌기고, 다른 하나는 가시나 무같이 생긴 뉴라미니다아제 neuraminidase (N) 돌기다. 헤마글루티닌 돌기는 배리의 말처럼 '해적이 선박에 던지는 쇠갈고리처럼' 숙주 세포에 딱 달라붙어 침입을 시작한다. 뉴라미니다아제는 숙주 세포 표면에 있는 시알릭산sialic acid을 제거하는 파성퇴(적의 배를 파괴하기 위해 뱃머리에 달아 사용하는 뾰족한 쇠붙이를 말한다_옮긴이) 역할을 한 다. 숙주세포 표면에 시알릭산이 남아 있으면 복제된 바이러스들 이 세포 밖으로 방출되면서 표면에 엉겨 붙을 수 있다. 뉴라미니다 아제 덕분에 시알릭산이 제거되고 새로 만들어진 바이러스가 건강 한 세포를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게 된다.
- 장기 불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불황'의 진정한 의미 를 알 수 있다. 불황은 지속적인 생산량 감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불 황은 경제 성장 추세에 비해 침체된 성장을 의미한다. 만약 경제가 3% 성장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동안 2% 성장에 머 문다면, 경제 성장이 침체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호황기에도 생 산량이 감소할 수 있는 것처럼, 불황기에도 경제는 성장할 수 있다. 핵심은 분기별 성장률이 아닌 잠재성장률 대비 장기 성장 추세에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불황을 아 주 잘 정의했다. 케인스는 불황을 "경제가 회복되거나 완전 붕괴로 치닫고 있음을 나타내는 어떤 뚜렷한 추세 없이 침체된 경제 활동이 장기간 지속하는 만성적인 상태"라고 정의했다.
- 코로나19의 웨트 마켓 발원설의 경우, 그 견해를 뒷받침하는 사실 적 근거는 거의 없지만 반박하는 사실적 근거는 많다. 연구소 발원 설의 경우, 그 견해를 반박할 만한 사실적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지 만, 그 견해를 뒷받침하는 사실적 근거는 충분하다. 그러나 현재로 서는 둘 다 합리적인 추정에 불과하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정보 분석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연구소에서 유출되지 않았다면 중국은 왜 증거를 없앴을까? 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된 게 아니라면 중국은 왜 생화학전 전문가인 중국 인민 해방군 소장에게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를 맡겼을까?
박쥐 코로나바이러스의 살아 있는 균주와 열악한 안전 관리 전적을 갖고 있는 연구소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유출 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박쥐를 판매하지도 않고 160km 이내에서는 박쥐를 발견할 수도 없는 우한에 위치한 웨트 마켓이 박쥐 바이러스의 발원지가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중국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19 확진자 4명 중 3명이 발병 전 우한의 웨트 마켓에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할 때, 그 웨트 마켓이 인간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중국이 숨길 게 없다면 미국에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정교한 대외 선전은 왜 펼쳤을까?
- 중국 정부 최고위급 인사와의 만남이나 우한에서의 현장 조사 없이는 위의 질문 중 어떤 질문에도 확실하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현 재 독립적인 수사관들은 중국 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만날 수 없고 우한에서 현장 조사를 벌일 수도 없다. 또 상당히 많은 관련 증거가 이미 폐기됐으며, 핵심 증인들은 실종됐다.
확인된 증거, 추론, 조건부 확률을 바탕으로 답을 찾기 위한 질문 의 틀은 이미 잡혀 있는 상태다. 결론은 각 확률을 곱해 얻을 수 있 다. 이 같은 방법을 활용해 얻은 증거는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출됐다는 결론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정권이 교체되고 수십 년이 지나 중국의 비밀문 서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결코 진실을 확인하지 못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출처가 웨트 마켓이든 연구소든 그 사실 여 부와 상관없이 중국은 전 세계적인 유행병으로 야기된 경제적 피해 와 인명 피해에 대한 자국의 책임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코 로나19 정보 은폐는 설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화난수산물도매시 장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형법상 과실이 될 것이다. 만약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연구소에서 나왔다면, 중국의 정보 은폐는 반인륜적 범죄에 해당한다.
-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4000만 명, 즉 당시 세계 인구의 2%에 해당하 는 인류의 목숨을 앗아갔다. 오늘날로 치면 전 세계에서 1억 500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셈이다. (...) 그렇다면 이 무자비한 팬데믹이 어째서 경제 는 무너뜨리지 못했을까? 그 답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간단하다. 필요에 의해 서든 선택에 의해서든 사람들이 그 상황을 받아들인 채 계속 살아나갔기 때문 이다. (발터 샤이델Walter Scheidel,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2020년 5월 28일))
 시장 붕괴는 보통 미래 세대도 그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날짜를 가지고 있다. 1869년 9월 24일 검은 금요일Black Friday은 제이 굴드Jay Gould와 빅짐 피스크Big Jim Fisk의 금시장 매점 시 도로 시장이 붕괴됐던 날이다. 1929년 10월 28일 검은 월요일 Black Monday은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Dow Jones Industrial Average가 하루 만에 12.82% 하락해 대공황이 촉발된 날이었다. 그 다음날인 29일 다우 지수가 11.73% 더 하락하면서 이틀 만에 총 23%가 하락했다. 1987 년 10월 19일에는 다우지수가 하루 만에 22.6% 폭락해 역사상 일간 최대 하락률을 기록한 또 다른 검은 월요일이 발생했다. 오늘날 대 부분 사람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파산 사례인 리먼 브라더스 Brothers 파산이 발표된 2008년 9월 15일을 기억한다. 그날 주식 시장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고, 다우지수는 4.5% 하락했다. 그러나 그날의 하락은 2009년 3월 6일 다우 지수가 바닥을 치기 전까지 추가 로 39% 더 떨어진 계단식 하락의 서막에 불과했다. 이 날짜들이 상 징적이기는 하지만, 그 사건들이 어느 날 갑자기 개별적으로 발생 한 것은 아니었다. 1869년 금 매점 시도로 인한 붕괴는 금을 사재기 하면서 금값이 폭등한 뒤에 발생했다. 1929년 10월 28일 검은 월요 일 폭락은, 개장과 동시에 11% 하락했다가 하락세가 회복하면서 약 2% 하락으로 장을 마감했던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에 이어 발생했 다. 마찬가지로 2008년 3월부터 7월 사이 베어스턴스 Bear Stearns 패 니매 Fannie Mae, 프레디맥Freddie Mac의 순차적 붕괴 소식이 시장에 영향 을 미치면서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증시는 하 락하고 있었다. 엄청난 시장 붕괴는 보통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 각하고 심각한 경고들을 흘려 들은 이후 발생했다.
-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은 경기가 아주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고 주 장하면서 강력한 경기 회복의 증거로 증시를 꼽고 있다. 미국 증시 는 2020년 4월 말부터 9월 초까지 강력한 실적을 내면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손실을 거의 회복할 정도로 상승했다. 그러나 이 런 증시 회복은 경기 회복을 증명해 주지는 못한다. 현 단계에서 주 식 시장과 실물 경제는 따로 움직이고 있다. '떨어질 때 매수'를 하 고 주요 뉴스를 추적하고 주가 모멘텀을 강화하도록 프로그램화된 로봇에 의해 주가가 결정되고 있다. 주가 지수는 대부분의 개인과 기업들이 직면한 어려운 위기 상황에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은 일 부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2020년 4~9월 증시는 기술과 금융에 대 한 전망을 단기적으로나마 말해 주고는 있지만 실업률, 경제 성장 률, 붕괴하고 있는 정부의 현금 흐름, 경기 회복에 대해서는 아무것 도 말해 주지 않는다.
신 대공황이 우리 앞에 닥쳤다. 데이터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당 장은 주식 시장이 그 사실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결국 인정하게 될 것이다. 신 대공황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곧 실감하게 될 것이다. 
- 가장 엄격하고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향후 몇 년간 경제가 저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조차 현 상황을 과소평가한 전망이 되고 만다. 가장 확실한 증거에 기반한 연구 결 과는 앞으로 30년간 저성장이 지속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2020년 3월 캘리포니아 대학의 두 학자가 발표한 연구 논문 <팬데믹이 경 제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 Longer-Run Economic Consequences of Pandemics>에 는 1347년 발생한 흑사병을 포함한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팬 데믹들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다. 13 두 저자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팬데믹의 엄청난 거 시 경제적 파장은 약 40년 동안 지속되고 실질 수익률 역시 크게 하 락한다. (...) 팬데믹이 미치는 영향은 수십 년간 지속된다.(...) 팬데 믹이 만들어 낸 결과들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이해를 돕자면, 논문 에서 연구 검토한 팬데믹 15개 중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 사망자보 다 더 많은 사망자를 낸 팬데믹은 4개뿐이다. 
- MMT 지지자들이 말하는 두 핵심 기관은 바로 연방준비제도와 미 국 재무부다. 연준과 재무부는 따로 만들어졌고 서로 다른 지배 구 조를 갖고 있지만, 두 기관은 다각도로 협력하며 일하고 있다. 재무 부는 연준에 계좌를 갖고 있으며, 연준은 찍어 낸 돈으로 재무부 채 권을 사들이고 수익을 재무부에 송금한다. 그러나 이 두 기관 사이 에는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이 존중하는 경계가 존재한다. 재무 부는 화폐를 발행하지 않는다. 재무부 지출은 의회가 승인하지 않거 나 연준이 낮은 금리와 자산 매입으로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제약을 받게 된다.
MMT는 이 같은 한계를 부정한다. 실제로 MMT 학자들은 재무부 와 연준을 하나의 단일 개체로 본다. MMT 모델에서 재무부는 지출 을 통해 화폐를 발행하는 주체가 된다. 재무부가 지출을 하면 연준 은행 계좌의 잔액은 줄어들고, 재정 지출의 수혜자인 국민이나 기업 의 민간 은행 계좌의 잔액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재무부가 지출을 하면 민간 부문의 부가 증가하게 된다. 재무 부가 지출을 늘릴수록 민간 부문이 더 부유해지는 것이다. MMT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허풍을 떨듯 묻는다. "재무부가 돈을 쓰지 않으면 돈이 어디서 나옵니까?"
MMT 옹호론자들은 화폐가 재무부 지출을 통해 처음 생겨나고 국 가 권력에 의해 통제된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서, 국가가 지출할 수 있는 돈의 양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그게 사실 이라면, 빈곤에서 인프라, 교육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정부 지출로 해결하지 못할 사회 문제가 없다. 재무부가 돈을 빌리고 지출을 늘려도 나라는 더 가난해지지 않는다. 재무부가 지출한 돈은 곧 수혜자들의 재산이 되므로 그 나라는 더 부유해지는 셈이 된다.
- 현대화폐이론은 1년 안에 정부의 적자 지출을 조지 워싱턴부터 빌 클린턴에 이르는 모든 대통령 임기 동안 누적된 국가 부채보다 더 많은 양으로 늘리기를 바라는 국회의원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이론이었다. 의회는 정부 지출에 개의치 않겠지만, 1년간 재정 적자 가 GDP의 2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지켜 줄 지적 방어 수단이 필요할 것이다. 듣기에 꽤 그럴싸한 현대화폐 이론은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근거로 삼기에 제격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그 이론의 결함이 드러날 때쯤이면, 정부가 푼 돈은 온데 간데없이 다 사라져 버리고 미국 국민들이 그 뒷수습을 하게 될 것 이다.
- 현대화폐이론은 새 병에 담긴 오래된 포도주다. 그 오래된 포도주 는 시민들이 세금을 화폐로 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가 화폐의 가치를 통제할 수 있고 화폐를 무제한으로 발행할 수 있다는 믿음으 로 만들어졌다. 정부가 발행한 화폐가 세금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수 단이라면, 시민들은 탈세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는 것을 피하기 위 해 정부가 공인한 화폐를 얻어야 한다. 즉 다른 선택권이 없는 폐쇄 된 시스템이다. 새로운 병들은 MMT와 접목시킬 수 있는 보편적 의 료 보장 제도, 무상 교육, 무상 보육, 기본 소득 보장 같은 진보적인 프로그램들의 위시 리스트로 만들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이와 같은 정책 제안들은 '재정적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에 의해 쉽게 좌절됐다. 오늘날 MMT 옹호론자들은 이론상으로 꽤 그럴듯한 오래된 경제 이론을 근거로 “그럼요, 우린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 답하고 있다. 난감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은 한때 적자 지출에 한계 가 있다는 인식을 가졌다가 이제 그 한계를 전혀 살피지 않는 국회 의원들(그 한계에 대해서는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일 것이다. 재정 지출을 늘려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 불황으로 인한 문제들을 당장 해결할 수 있다고 하니 그들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 소비자들이 지출을 늘리기보다 빚을 갚고 저축을 늘릴 경우, 연준 이 통화량을 늘리지 않는 한 화폐유통속도와 GDP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연준은 화폐유통속도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명목 GDP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찍어 내고 있다. 연준은 1930년대부터 이 문제를 외면해 왔다. 화폐유통속도가 0에 근접하면 경제 성장 역시 0에 근접할 수밖에 없다. 화폐 발행은 아무런 힘이 없다. 7조 달러 곱하기 0은 0이다. 은행이 대출을 해 주지 않아 통화량 확대 메커니즘이 깨질 경우 소비자 불안으로 인해 화폐유통속도가 떨어지면서 경제 성장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화폐유통속도가 뒷받침되지 않으 면 경제 성장이 불가능하다.
이는 우리를 문제의 핵심으로 이끈다. 본원통화 같이 연준이 통 제할 수 있는 요인은 경제를 살리고 실업률을 낮출 수 있을 만큼 빠 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연준이 더 박차를 가해 집중해야 할 요 인은 지출 형태의 은행 대출과 화폐유통속도다. 지출은 대출 기관과 소비자의 심리, 즉 기본적으로 행동 현상에 의해 이뤄진다. 연준은 소비자의 행동 양식을 바꾸고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치를 바꾸는 법을 잊어버렸다(한때 그 방법을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인플레이션은 통화주의자와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들의 엉터리 이론과 달리 통화량과는 거의 아무 관계 가 없다.
20세기 이후 미국의 두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소비자의 기 대 심리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두 대통령 모두 같은 기 술을 사용했다. 한 대통령은 계획적으로, 다른 대통령은 우연히 그 기술을 사용했다. 한 대통령은 미국 경제를 살렸고, 다른 대통령은 경제를 거의 망가뜨렸다.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과 같다.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화폐유통속도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증가 없이는 디플레이션의 깊은 구렁과 점점 악화되는 불황을 피할 길이 없다.
- 시간이 지나면서 GDP 대비 부채 비율은 70~80%까지 늘어나 게 된다. 정치적 지지층은 정부 지출에 힘입어 형성되고 발전한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점점 늘어나지만, 정부 지출로 얻는 결실은 점점 작아진다. 더 많은 정부 지출이 각종 재정 지원 혜택, 수당, 수익 을 창출하기 어려운 공공 편의 시설, 지역 사회 기관, 공무원 노동조 합 등에 투입된다. 그러면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용하기 시작 한다. 그러나 적자 지출과 공공재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결코 채워지 지 않는다. 결국 GDP 대비 부채 비율은 90%를 넘어서게 된다.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연구에 따르면, GDP 대비 부채 비율 90% 는 단순히 높은 수치가 아니라 물리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임계 문턱 값critical threshold 이다. 어떤 값을 기준으로 단계적 전환이 일어나 상태 가 달라지는 경우, 그 값을 임계 문턱값이라고 부른다. 임계 문턱값 인 GDP 대비 부채 비율 90%에 다다르면, 일단 먼저 케인스 승수가 1이하로 떨어진다. 부채 1달러를 지출하면 1달러 미만의 GDP가 증 가한다는 의미다. 즉 부채를 늘려도 순 성장net growth이 일어나지 않 고, 부채에 대한 금리가 상승하면서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증가한 다. 현재 코로나19 팬데믹 관련 부채의 경우, 그 규모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게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라인하트-로고프의 90% 임계치를 이미 넘어선 상태에서 급격한 부채 증가가 추가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 채권단은 정책 입안자들의 정책 변경이나 경제 성장을 통해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이라는 헛된 희망으로 더 많 은 국채를 계속 사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한다. 말 그대로 헛 된 희망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는 빚에 중독돼 있고, 빚 중독은 빚 중독자들을 계속 유인한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신용 시장으로 자국에서 발행한 화폐로 필요한 자금을 차입한다. 이런 이 유만으로도 미국은 다른 국가들보다 지속 불가능한 부채 동학 debt dynamic을 더 오랫동안 밀고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언제 나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2010년 논문 <다시 보는 부채와 성장 Debt and Growth Revisited>에 담겨 있다. 두 저자가 내린 결론의 요점은 GDP 대 비 부채 비율이 90%를 넘어서면 “경제 성장률의 중간값median은 1% 감소하고 평균값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감소한다"는 것이었다. 또 라인하트와 로고프는 "부채와 성장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비선형성 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채 비율 debt to equity ratio이 90% 미 만인 경우, "부채와 성장 사이에는 체계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달리 말하면, 부채 비율이 낮을 때에는 부채와 성장 사이의 상관관계가 높지 않다. 세금, 통화, 무역정책을 포함한 모든 요인이 성장을 이끈다. 그러나 그 비율이 90% 임계치를 넘는 순간 부채가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이 90%를 넘어서면, 경제는 부채의 한계 수확marginal returns 체감과 저성장을 거쳐 결국 채무 불이행, 인플레이션, 재협상을 통 해 디폴트에 빠지고 마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국가 신용 등급은 디폴트 단계로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 전에 먼저 저성장 장기화, 임금 상승률 둔화, 소득 불평등 심화, 사회적 분열 등 곳곳에서 불만이 쏟아지지만 해결책은 찾을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널리 인정받고 있는 다른 연구들 역시 라인하트-로고프 연구와 같은 결론을 내놓고 있다. 라인하트와 로 고프는 이 분야에서 선두를 달렸을지 모르지만, 늘 평탄한 길만 걸 어온 것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경제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미 도달했을 수도 있다는 증거는 계속 쌓이고 있다.
- 결국 마지막 종착지는 미국 국채와 달러에 대한 신용의 급격한 붕괴가 될 것이다. 이는 정부가 계속 투자자의 달러를 끌어들여 자금 을 조달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금리가 인상되면 적자가 더 늘어나면서 부채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다. 아 니면 MMT 신봉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연준이 부채를 화폐화할 수 도 있지만, 이는 국가 신용도를 떨어뜨리는 또 다른 방법에 불과하 다. 부채 함정에서 벗어나겠다고 빚을 내고, 유동성 함정에서 빠져 나오겠다고 돈을 찍어 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20년은 더 저성장, 긴축 재정, 금융 억압(financial repression, 정부가 부채 상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펴는 등 금융 시장에 적극 개입해 시장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것을 말한다_옮긴이),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 격차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향후 20년간 우리가 마주할 미국의 경제 성장은 지난 30년간 일본 이 보여 준 경제 성장과 비슷할 것이다. 경제 붕괴까지는 아니더라도 장기간 경기가 침체되면서 저성장이 이어지는 상태, 즉 장기 불 황을 겪게 될 것이다.
- 독일 기업가 휴고 스티네스Hugo Stinnes는 1920년대 초 바이마르 초 인플레이션 Weimar hyperinflation이 극에 달했을 때 많은 엄청난 부를 축 적했다. 스티네스는 라이히스마르크(reichsmark, 1924년부터 1948년 6 월 10일까지 독일에서 사용한 통화다_옮긴이)를 빌려 실물자산을 사들였 다. 라이히스마르크 가치가 폭락하는 동안 실물자산의 가치는 급등 했다. 그는 그 가치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라이히스마르크 은행 대 출금을 상환했고, 실물 자산은 그대로 유지했다. 그의 별명은 독일 어로 Inflationskönig, 즉 '인플레이션의 왕'이었다.
1920년대 후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친 조지프 P. 케네디 Joseph P. Kennedy는 월스트리트에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먼저 버블 시기에 주식을 늘린 다음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 때 공매도를 했다. 당 시 투자자 대부분이 전멸했지만, 케네디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부유한 사람이 됐다.
-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사회 질서라고 말하는 그 평범한 습관들이 사회 질서를 고꾸라뜨리는 일련의 사건이 시작되는 데에도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이었다. (H. G. 웰스H. G. Wells, 《우주 전쟁 The War of the Worlds》 (1898))
-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다. 시장은 문제가 생길 조짐만 보여도 얼어 붙는다. 계속 일정한 가격 범위를 오가며 움직이지도 않는다. 주가 가 큰 폭으로 상승하거나 하락하며 널뛰기를 하기도 한다. 이때 전 략적으로 주식을 매수하거나 매도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 이게 바 로 시장이다.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눈 가리고 아 웅 하지 마라.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적 시장 가설이 투자 자들을 인덱스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그리고 '시장은 이길 수 없 다'는 신념 아래 시장의 효율성을 믿고 그대로 따라가는 패시브 투 자로 몰아가는 데 이용됐다는 사실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은 계좌 잔고와 신규 금융 상품 판매를 기준으로 수수료를 챙기는 월스트리트 자산 관리사들에게는 꽤 유용한 가설이다. 거의 매 10년마다 30% 혹은 그 이상의 손실을 감수하며 잃어버린 자산을 다시 복구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이로울 게 없는 가설이다. 여러분은 합리적 예측, 마켓 타이밍, 합법적인 내부 정보를 활용해 시장을 이길 수 있다. 프로는 그렇게 투자를 하고, 로봇 도 마찬가지다. 일반 투자자 역시 시장을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투자할 수 있다.
- 2016년 나는 TV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 영국 유권자들이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했다(당시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할 것이고 영국은 유럽 연합에서 탈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 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두 경우 모두 여론 조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 레이하운드(미국의 버스 회사다_옮긴이) 버스에 붙은 외부 광고 수를 세고, 복음주의가 널리 퍼져 있는 오자크 산지를 방문하고(미국 복음 주의 기독교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이다_옮긴이), 택시 기사, 호텔 직원, 런던의 바텐더들과 매일 대화를 나누며 얻은 경험적 정 보를 활용했다. 월스트리트 분석가들에게 책상에 앉아 컴퓨터 스크 린만 보지 말고 사무실 밖으로 좀 나가 보라고 충고하곤 하지만, 그 충고를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 학계 경제학자들과 월스트리트 분석가들 은 역사를 경멸하거나 그냥 무시해 버린다. 역사는 수량화할 수 없 고 방정식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 손해다. 역사보다 더 나은 스승은 없다. 각 사건은 반복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패턴은 반 복된다. 역사를 그대로 수량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인지 지도 cognitive map를 통해 요인들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교점을 만들어 활용 할 수 있다. 서로 연결되는 교점의 상호 작용 강도를 수량화하면 된 다. 복잡성 이론은 그 인지 지도를 그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베 이즈 정리는 교점으로 만들어진 결과에 수적 강도를 부여하는 데 사 용될 수 있다. 이는 여러 학문 분야가 서로 어떻게 연계될 수 있는지 를 보여 준다.
- 1933년 미국은 뱅크런(은행 고객들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말한다_ 옮긴이)에 시달리고 있었고 미국 역사상 가장 극심한 디플레이션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1933년 3월 플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가 대통 령이 됐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 시민들이 부를 지키기 위해 금 을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금을 사들이느라 소비는 뒷전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는 것 과 비슷하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금괴가 달러로 바뀌었을 뿐 이다. 루스벨트는 소유한 모든 금을 온스당 20.67달러로 미국 재무부에 가져다 팔 것을 요구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오늘날 연준 이 채권을 사들여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루스벨트는 금을 사들여 유동성을 공급했다. 그는 행정 명령만 내린 게 아니라 금 공개 시장에서 금을 계속해서 사들였다. 미국에서 매입할 금을 찾기 어려워지자 루스벨트는 외국의 금 딜러들을 통해 금을 매입했 다. 그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금을 사들여 경제에 달러를 투입했다. 루스벨트는 또 금값을 서서히 올렸다. 루스벨트는 1933년 10월에서 12월 사이 미국 정부의 금 매입에 속도가 붙자 금 가격을 조금씩 올 렸다. 애미티 슬래이스Amity Shlaes는 자신의 책 《포가튼 맨The Forgotten Man》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느 날 아침, 루스벨트는 금값을 21센트 인상할 생각이라고 참 모진에 말했다. 어째서 21센트죠? 참모진이 물었다. 루스벨트는 "행운의 숫자거든요. 3 곱하기 7은 21이죠.”라고 답했다. 모겐소 는 훗날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행운의 숫자 조합 같은 것으로 금값을 정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다면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
- 당시 루스벨트는 다른 이들과 달리 금의 달러 가격을 인상해 달 러화를 평가 절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금의 달러 가격 을 올리면 경제적 변화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달러화를 평가절하 하면 금값이 상승하고 다른 모든 것도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루스 벨트는 바로 그 점을 노렸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디플레이션 고비를 넘겨야 했다. 인플레이션을 유도하기 위한 방법으로 금의 달 러 가격을 올린 것이다. 루스벨트의 정책은 사실 금이 아닌 달러화 를 겨냥한 정책이었다. 1933년 10월 22일 루스벨트는 국민과 소통 하는 라디오 담화인 노변담화 Fireside Chat를 통해 달러화를 계속 조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청취자들은 루스벨트 의금 몰수 정책이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당시 그 노 변담화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밀Wheat 선물 가격은 40%나 상승했다. 루스벨트의 정책은 효과가 있었다. 물가가 상승하고 증시가 회복되 면서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다(1938년 연준에 의해 다시 경기 회복이 좌절됐다). 루스벨트에게 디플레이션은 적이었고 인플레이션은 동지 였다. 루스벨트는 은행과 연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금의 달러 가격 을 인상해 인플레이션을 달성했다. 그는 1934년 1월 금의 달러 가격 을 온스당 35달러로 고정시키면서 통화정책에 대한 그의 실험을 성 공적으로 마무리했고, 그 고정 환율은 1971년까지 유지됐다. 1933 년 3월에서 12월 사이 금의 달러 가격은 69.3%가 올랐다. 금의 무게 로 값이 매겨지는 달러는 같은 기간 41%나 평가 절하됐다. 불과 9개 월 만에 강력한 인플레이션 발생했다.
 1971년 리처드 닉슨도 달러화를 평가절하하기 위한 정책에 돌입 했지만, 그가 퇴임하고 6년 후인 1980년까지 그 과정은 제대로 마 무리되지 못했다. 닉슨은 루스벨트 때와는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1971년에는 디플레이션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미국 달 러화를 불신하게 된 교역 상대국들이 달러를 금으로 바꾸려는 움직 임이 거세지면서 포트녹스(Fort Knox, 미국 정부의 금을 보관하는 금고가 있는 미 육군 기지다_옮긴이)에서 금이 대량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1971년 8월 15일 닉슨은 각국이 가지고 있는 달러를 미국 자산에 투 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달러를 금으로 바꾸는 태환 제도는 '일시 적으로' 중단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루스벨트가 했던 것처럼 달러화 를 평가절하하고 새로운 금 고정 환율을 채택하려던 닉슨의 계획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교역 상대국들은 변동환율제로 이행했고, 금태환 제도는 재개되지 않았다. 1974년 미국인들은 1933년 이후 처음으로 다시 금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부의 금본위제가 아닌 개인의 금본위제 시대가 열렸다. 루스벨트는 자신이 목표한 인 플레이션을 달성한 후 새로운 금본위제로 돌아왔고, 사실상 그 인플레이션 지니(genie,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을 말한다_옮긴이)를 다시 병속 에 집어넣었다. 1971년 이후, 금본위제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인 플레이션 지니는 제멋대로 날뛰었다. 1979년 인플레이션은 13.3% 를 기록했다. 19080년 1월 금 가격은 온스당 800달러에 달했다. 금 리를 18%로 인상하고 1981~1982년의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고 나 서야 비로소 인플레이션 지니를 다시 병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인플레이션 지니는 그 이후로 보이지 않았다.
금을 이용한 루스벨트의 정책은 세심하게 통제되면서 성공작이 됐고, 닉슨의 정책은 임기응변식 대응이 되면서 엄청난 실패작이 됐다. 루스벨트는 경제 성장을 활성화해 미국이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 닉슨은 초인플레이션 직전의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1973년부터 1981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발생한 경기 침체로 미국 경제에 혼란을 야기했다. 이러한 역사는 달러와 금의 관계에 개입하 는 일이 마치 원자로의 제어봉을 작동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보 여 준다. 제어봉을 실수 없이 올바르게 작동하면, 원자로는 유용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제어봉을 잘못 작동했다가는 원자로 의 노심이 녹아내리는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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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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