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예일대학교의 윌리엄 노드하우스 William Nordhaus는 기후 변화의 경제학을 전문 분야로 삼고 있다. 그런 인물이 노벨상을 수상했으니 기후 위기와 직면한 현대 사회 에 바람직한 일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부 환경운동 가들은 노드하우스의 수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왜 그랬을까?
비판하는 이들이 도마 위에 올린 것은 노드하우스가 1991년 발표한 논문이었다. 이 논문은 노드하우스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게 해준 일련의 연구에 발단이 되었다'
- 1991년은 냉전이 막 종결된 시기로, 세계화가 진행되어 이산 화탄소 배출량이 급격히 증가하기 직전이었다. 당시 노드하우스 는 누구보다 먼저 기후 변화 문제를 경제학에 끌어들였다. 그는 경제학자답게 탄소세 도입을 주창했고, 최적의 이산화탄소 삭감 률을 정하기 위한 모델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문제는 그가 이끌어낸 최적의 답이었다. 노드하우스는 말했 다. 너무 높은 삭감률을 목표로 정하면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만 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그런데 노드하우스가 설정한 '균형'이란 너무나 경제 성장 쪽으로 치우친 것이었다.
노드하우스에 따르면 우리는 기후 변화를 지나치게 걱정하기 보다 하던 대로 경제 성장을 계속하는 게 낫다. 경제가 성장하면 세상이 풍요로워지고 새로운 기술도 태어난다. 경제 성장을 계속 해야 미래 세대가 고도의 기술을 이용해서 기후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 경제 성장과 신기술 개발을 계속할 수 있으면 굳이 현재 와 같은 수준의 자연환경을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필요가 없다. 노드하우스는 이렇게 주장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노드하우스가 제창한 이산화탄소 삭감률을 준수하 면, 지구의 평균 기온은 2100년까지 무려 섭씨 3.5도(이후 섭씨 는 생략)나 올라가버린다. 이 말은 경제학이 도출한 최적의 답은 '기후 변화에 실질적으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뜻 이다.
- 노벨상을 받은 만큼, 환경경제학에 미치는 노드하우스의 영향 력은 막대하다. 환경경제학이 강조하는 것은 자연의 한계이자 자 원의 희소성이다. 희소성과 한계를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분배를 계산하는 것이 경제학의 특기이다. 그래서 환경경제학이 도출해 낸 최적의 답은 자연과 사회에 '윈-윈'인 해결책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노드하우스의 해결책은 무척 받아들이기 쉽다. 어떤 경제학자 들은 그 해결책을 국제기관 등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 위한 전략으로 이용하여 효과를 보고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거의 아 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느슨한 기후 변화 대책이 정 당화되고 있다.
-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브란트Ulrich Brand와 마르쿠스 비센 Markus Wissen은 글로벌 사우스에서 자원과 에너지를 수탈함으로 써 성립되는 선진국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국적 생활양식imperiale Lebensweise'이라고 불렀다.
제국적 생활양식이란 간단히 말해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대 량 생산 · 대량 소비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제국적 생활양식은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실현해주기 때 문에 보통 바람직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이 면에는 글로벌 사우스의 사회집단과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탈, 나 아가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생활의 대가를 글로벌 사우스에 떠 넘기는 구조가 존재한다.
- 문제는 수탈과 대가의 전가 없이는 제국적 생활양식이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사우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악화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전제 조건이며, 남북 사이의 지배종속관계는 예외적 사태가 아니라 '평상시 상태'인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패스 트 패션의 옷을 만드는 이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방글라 데시 노동자들이다. 2013년, 5개의 봉제공장이 입주해 있던 방 글라데시의 빌딩 '라나 플라자'가 붕괴되어 1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생산되는 옷들의 원료인 목화를 재배하는 이들은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작업하는 인도의 가난한 농민들 이다. 패션 업계에서 목화 수요가 늘어나며 농장은 유전자 조작 을 한 목화를 대규모로 도입하고 있다. 그 결과 농가에서 자가 채 취하던 종자가 사라졌고, 농민은 매년 유전자 조작을 한 종자, 화 학비료, 제초제를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뭄과 무더위 탓 에 흉작이 들면 적지 않은 농민이 빚에 쫓겨 자살하기도 한다.
비극은 제국적 생활양식의 생산과 소비에 기대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역시 글로벌 자본주의의 구조적 이유 때문에 '평상시 상 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앞서 설명했듯 브라질 사람들도 브루마지뉴의 광산 댐이 무너 질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비슷한 사고가 있었기 때문 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굴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다. 노동자들은 생활을 위해 채굴 현장에서 일하며 그 근처에 거주하기까지 했다.
방글라데시의 라나 플라자에 있던 봉제공장에서도 사고 전날 노동자들이 벽과 기둥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무시당했다. 인도의 농민들도 제초제가 인체와 자연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갈수록 시장이 확대되는 전 세계 패션 업계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
희생이 늘어날수록 대기업의 수익 역시 늘어난다. 이것이 자본의 논리다.
- 월러스틴의 이론을 확장해보면, 중심부는 주변부의 자원을 약탈하는 동시에 경제 발전의 이면에 숨은 대가와 부담 등을 주변부 에 떠넘겨왔다고 정리할 수 있다.
우리 식생활에서 숨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팜유를 예로 들어보겠다. 팜유는 저렴할 뿐 아니라 쉽사리 산화되지 않기에 가 공식품, 과자, 패스트푸드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런 팜유의 주생산지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다. 팜유의 원료인 기름야자의 재배 면적은 21세기 들어 배 이상 넓어졌는 데, 열대우림을 난개발하면서 밀림이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다. 팜유 생산이 급증하며 미치는 영향은 열대우림의 생태계 파괴에 그치지 않는다. 대규모 개발은 열대우림의 자연에 의존해 생활하던 사람들에게도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열대우림을 기름야자 농장으로 개간한 결과 토양침식이 일어 났고 비료와 농약 등이 하천으로 흘러들어 물고기가 줄어들었다. 하천의 물고기로 단백질을 섭취하던 이 지역 사람들은 물고기가 줄어든 탓에 전보다 돈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돈을 목적으로 야 생동물, 그중에서도 오랑우탄과 호랑이 등 멸종위기종의 불법 거 래에 발을 들이기도 한다.
이처럼 중심부 사람들이 누리는 저렴하고 편리한 생활의 이면에 주변부에서 이뤄지는 노동력 착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부 자원의 약탈과 그에 따른 환경 부하의 전가 역시 빠뜨려서는 안 된다.
바로 그렇기에 환경 위기로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피해 를 입으며 괴로워한다고는 할 수 없다. 식량, 에너지, 원료의 생산 ·소비가 연결된 환경 부하는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다.
'외부화 사회'라는 개념으로 선진국을 규탄한 레세니히에 따르 면, '어딘가 먼 곳의 사람과 자연환경에 부담을 전가하고 그 진 정한 비용은 떼어먹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생활 의 전제 조건이다.
- 네덜란드 같은 선진국의 생활은 지구에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나라들의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은 비교적 심하지 않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대기오염, 수질오염, 쓰레기 처리 등 수많은 환경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람들이 검소한 생활을 하는데도 말이다.
얼핏 보면 모순되는 이런 상황이 어째서 벌어질까? 이러한 의 문에 대한 답으로 기술의 진보를 들기도 한다. 경제 성장이 일궈 낸 발전된 기술 덕에 공해를 일으키는 오염 물질을 제거하거나 아예 배출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환경오염을 줄이면서 경제 성장도 이루었다고 선진 국이 자축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오류'다. 선진국의 환경오염이 개선된 것은 단순히 기술 발전에 의한 결과가 아니며, 자원 채굴 과 쓰레기 처리 등 경제 발전에 따라오게 마련인 부정적 영향의 적지 않은 부분을 글로벌 사우스라는 외부로 떠넘긴 결과에 지나 지 않는다."
국제적인 전가를 무시한 채 선진국이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으 로 환경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는 것이 바로 '네덜란드의 오류'다.
- 마르크스는 토양의 양분이 고갈되어 피폐해지는 농업의 문제를 다룬 바 있다. 당시 마르크스는 동시대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의 '약탈 농업 비판'을 참조했다.
리비히에 따르면 토양의 양분, 그중에서도 칼륨과 인 같은 무기질은 암석이 풍화됨으로써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형태가 된다. 다만 풍화 속도는 무척 느려서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상태의 양분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곡물이 흡수한 만큼 무기질을 토양에 반드시 제대로 돌려주어야 한다.
리비히는 이를 '보충의 법칙 Gesetz des Ersatzes'이라고 불렀다. 간단히 말해 농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토양 양분이 순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도시와 농촌 사이에 분업이 진행되면서, 농촌에서 수확한 곡물이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판매되기 시작했 다. 그렇게 되자 도시에서 소비된 곡물에 흡수되었던 양분은 더 이상 원래의 토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도시 노동자들이 섭취 하고 소화한 다음에는 수세식 화장실을 통해 하천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이뤄지는 농업 경영에도 있었다. 단 기적인 목표만 바라보는 농장 경영자는 지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땅을 묵히기보다 돈벌이를 위해 매년 경작을 하길 원한다. 땅을 기름지게 하는 관개시설에도 최소한만 투자한다. 자본주의에서 는 단기적인 이윤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토양의 양분 순환에 '균열'이 생겨나고, 토양은 양분을 돌려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빼앗기며 피폐해진다.
이처럼 단기 이윤을 위해 지속 가능성을 포기하는 불합리한 농 업 경영을 리비히는 '약탈농업'이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유럽 문 명이 붕괴할 위기라며 경종을 울렸던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를 보면 리비히가 경고한 대로 토양 피폐에 의한 문명의 위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왜일까? 20세기 초반에 '하버· 보슈법'이라는 암모니아 합성법이 개발되면서 화학비료가 저렴 하게 대량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하버• 보슈법'이 개발되었다고 해서 순환의 '균열'이 회 복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전가되었을 뿐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 하버 · 보슈법으로 암모니아(NH3)를 제조하려면 대기 중 질소(N)뿐 아니라 화석연료(주로 천연가스)에서 유래한 수소(H)도 필요하다. 전 세계의 농지만큼 비료를 제조하려면 당연히 막대한 화석연료가 쓰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오늘날 암모니아 제조에 쓰이는 천연가스는 생산량의 3~5퍼센트나 차지한다. 다시 말해 현대 농업은 토양에 본래 있 었던 양분 대신 또 다른 한정된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물 론, 암모니아 제조 과정에서도 이산화탄소가 대량 발생한다. 이 것이 기술적 전가의 본질적인 모순이다.
- 예컨대, 남아메리카의 칠레에서는 유럽과 미국 사람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서, 즉 제국적 생활양식을 위해서 수출용 아보카도를 재배해왔다. '숲의 버터'라 불리는 아보카도 재배에는 무척 많은 물이 필요하다. 또한 아보카도가 토양의 양분을 전부 빨아들이기 때문에 한번 아보카도를 기른 땅에서는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가 어렵다. 칠레는 아보카도를 위해 자신들의 생활용수와 식량 생산을 희생해온 셈이다.
그런 칠레에 최근 몇 년간 최악의 가뭄이 일어나 심각한 물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이 가뭄 역시 기후 변화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앞서 살펴봤듯이 기후 변화는 전가의 결과다. 게다가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른 팬데믹도 연달아 칠레를 덮쳤다. 그런데 칠레에서는 가뭄 탓에 귀해진 물이 코로나 전염 방지를 위한 손 씻기가 아니라 수출용 아보카도 재배에 쓰인다고 한다. 상수도가 민영화되었기 때문이다. 20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팬데믹과 유럽과 미국의 소비주의적 생활방식이 일으킨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에 가장 먼 저 노출되는 것은 주변부다.
- '경제 성장의 함정'을 진지하게 고찰한 록스트룀이 앞서 언급한 논문에서 내린 결론은, 경제 성장을 포기하자는 것이었다. 이유 는 단순하다. 성장을 포기하고 경제 규모를 축소하면 그만큼 이 산화탄소 삭감 목표를 달성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록스트룀의 결론은 지구 환경의 파괴를 막아서 인류가 번영할 조건을 보전하기 위한 일종의 결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본 주의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결단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본주 의에는 또 다른 함정, '생산성의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경비 절감을 위해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키려 한다. 노동 생산성이 올라가면 더욱 적은 인원으로도 같은 양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경제 규모가 커지지 않으면 노동생산성이 올라가는 만큼 실업자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자본주 의사회에서 실업자는 생활할 방법이 없고 정치가도 높은 실업률을 싫어한다. 결국 채용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제 규모가 커지도록 강한 압력이 가해진다.
이처럼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만큼 경제 규모 역시 키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생산성의 함정'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성의 함정'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며, 경제 성 장 또한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경제 성장을 유지하면 기후변 화 대책을 실행해도 자원 소비량이 늘어나는 '경제 성장의 함정' 에 빠져버린다.
이런 함정들 앞에서 과학자들도 자본주의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 더욱 불편한 진실이 있다. 효율화는 디커플링의 필수 요소이지만, 역설적으로 효율화 때문에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가 더욱 어 려워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현재 전 세계에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 소비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의 대체재로 쓰이지 않기 때문 이다. 재생에너지는 경제 성장에 따라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는 식으로, 즉 기존 화석연료에 더해 추가적으로 쓰이고 있다.(표 참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사태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가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다. 19세기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William Stanley Jevons 는 1865년 발표한 「석탄 문제 The Coal Question』라는 소책자에서 이 역설을 제기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석탄을 전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술 진보가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석탄 사용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석탄이 저렴해지면서 전보다 많은 분야에서 석탄이 쓰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석탄 소비량도 증가했다. 즉, 효 율화 덕에 환경 부하가 줄어들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다르게 기술 진보가 환경 부하를 더 가중하고 말았다. 제번스는 일찍이 이런 현실을 지적했다.
오늘날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신기술이 개발되어 효율 성이 높아져도, 상품이 그만큼 저렴해지는 바람에 결국은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이를테면 텔레비전은 갈수 록 전력 소모가 적은 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더 큰 텔 레비전을 구입하는 탓에 전체적인 전력 소비량은 외려 증가하고 있다. SUV 같은 대형차 판매가 늘어나서 자동차의 연비 향상이 무의미해지는 것도 같은 역설에 해당한다. 신기술 덕에 효율성이 올라가 '상대적 디커플링'이 일어나는 듯해도 소비량이 증가하여 효율화 효과가 상쇄되고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또한 효율화 덕에 어느 부문에서 '상대적 디커플링'이 일어나 도, 절약된 자본과 수입이 에너지와 자원을 더욱 많이 소비하는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 쓰여서 절약이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가 령 가정용 태양광 패널이 저렴해져서 아낀 돈으로 사람들은 비행 기를 타고 여행을 갈지도 모른다. 기업 역시 잉여금이 생기면 새 롭게 투자할 만한 곳을 찾을 것이다. 새로운 투자처가 친환경적 일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 실은 좋지 않은 일이 더 있다. 선진국에서 이뤄지는 친환경 정책의 효과조차 의심스러운 것이다. 애초에 한 가정이 자동차를 여 러 대 소유한 사회란, 설령 그 차가 전기자동차라고 해도 지속 가 능할 리가 없다. 테슬라와 포드 등은 SUV 전기자동차 판매 계획 을 세우고 있는데, 기존 소비문화를 강화하여 더욱 많은 자원을 낭비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야말로 그린 워시의 전형인 것 이다.
실제로 원료를 채굴하여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석유가 연료로 쓰이며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전기자동차 때문에 증대하는 전력 소비량을 감당하기 위해 더욱 많은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 설비가 필요해질 텐데, 그러기 위한 자원을 채굴하고 발전 장비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당연히 환경도 함께 파괴된다. '제번스의 역설'인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환경 위기가 악화될 것이다.
지금 말한 내용을 확증하는 데이터가 있다. IEA(국제에너지 기구)에 따르면 현재 200만 대인 전기자동차가 2040년에는 2억 8000만 대까지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줄어드는 전 세 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불과 1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애초에 전기자동차로 바꾼다고 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다. 전기자동차의 배터리가 커지면서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고찰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 녹색 기술이라 칭송받 는 것도 생산 공정까지 고려해보면 그다지 친환경적이지 않다." 생산의 실태를 보이지 않게 가린 것인데, 전처럼 한 가지 문제를 다른 문제로 전가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전기자동차와 태양광발 전으로 옮겨 가야 하지만, 미래를 기술 낙관론에 모두 맡기겠다 는 생각은 치명적인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기자동차와 재생에너지로 기존의 것을 100퍼센트 대체하겠다는 기후 케인스주의의 주장이 매력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왜 그럴까? 기후 케인스주의가 우리의 제국적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아도즉, 아무것도 안 해도 미래를 지속가능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기 때문이다. 록스트룀의 말을 빌리 면, 그야말로 '현실도피'다.
- 최근 들어 이뤄지는 마르크스 재해석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커 먼common', 혹은 '공'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커먼'이란 사회적으 로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부를 가리킨다. 20세 기의 마지막 해에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와 마이클 하트 Michael Hardt라는 두 마르크스주의자가 『제국이라는 책에서 제기 하여 단숨에 유명해진 개념이다.'
'커먼'은 미국형 신자유주의와 소련형 국유화 모두와 대치하는 '제3의 길'을 여는 데 중요한 열쇠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시장근본주의처럼 전부 상품화하는 것도 아니고, 소련형 사회주의처럼 전부 국유화하는 것도 아니다. '제3의 길'인 '커먼'은 수도, 전력, 주택, 의료, 교육 등을 공공재로 삼아서 사람들이 스스로 민주주의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한다.
비슷한 개념으로 도쿄대학교 명예교수인 우자와 히로후미 弘文가 1970년대 초에 제시한 '사회적 공통자본'이 있다. 우자와의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며 번영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물과 토양 같은 자연환경, 전력과 교 통기관 같은 사회적 인프라, 교육과 의료 같은 사회제도가 그 조건이다. 이것들을 사회 전체의 공통 재산으로 삼아 국가의 규칙 이나 시장의 기준에 맡기지 말고 사회적으로 관리·운영해가자' 우자와의 발상과 '커먼'은 비슷하다. 단, '사회적 공통자본'과 비교해 '커먼'은 전문가에게 모두 맡기지 않고 시민이 민주적·수 평적인 공동 관리에 참여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리고 '커먼'의 영 역을 점점 확장하여 결국에는 자본주의 극복을 목표한다는 점이 사회적 공통자본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물질대사에 '고칠 수 없는 균열'을 낼 것이라고 『자본』에서 경고했다. 다음은 마르크스가 리비히를 언급하면서 자본주의적 농업 경영의 바탕에 있는 대토지 소유에 대해 분석한 부분이다.
이렇게 대토지 소유는 사회적 물질대사와 토지의 자연 법칙들이 규정한 대로 이뤄지는 자연적 물질대사 사이에 고칠 수 없 는 균열이 생겨나는 조건들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지력이 낭 비되고, 그 낭비는 상업을 통해 자국의 국경을 넘어 멀리까지 퍼져 나간다. (유스투스 폰 리비히)
『자본』은 물질대사의 "교란"과 "균열"이라는 표현을 통해 지속 가능한 생산의 조건을 무너뜨리는 자본주의에 경종을 울렸다. 자 본주의는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가 지속 가능하도록 관리하는 걸 어렵게 하여 결국에는 사회 발전을 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 이다.
이처럼 『자본』에는 근대화에 따른 생산력 증대를 무비판적으 로 칭찬하는 구절이 전혀 없다. 오히려 무한한 자본의 이윤 추구 를 실현해주는 생산력과 기술의 발전이 "약탈하기 위한 기술의 진보에 불과하다고 분명하게 비판한다.
- 왜 자본 집필이 늦어졌는가
『자본』 2권과 3권 집필이 늦어졌다는 사실은 마르크스의 코뮤니 즘이 만년에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엥겔스가 그토록 『자본』의 완성을 고대했지만, 마르크스는 1권이 간행되고 16년 뒤에 『자본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앞서도 이야기했 듯이 그 사이에 마르크스가 매진했던 것은 생태학 연구와 공동체 연구였다. 왜 마르크스는 『자본』 집필을 뒤로 미루고 그 연구들 에 빠져 지냈을까. 표면만 본 이들은 이런저런 병을 앓던 마르크 스가 『자본』 속편 집필이라는 괴로운 작업에서 독서라는 취미로 '도피'한 것이라고 억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물질대사론'을 마르크스의 이론적 축으 로 삼아서 살펴보면 비로소 마르크스가 진보사관을 버리고 새로 운 역사관을 세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던 과정이 눈에 들어 온다. 새로운 비전을 세우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생 태학 연구와 자본주의 이전 비서유럽 사회의 공동체 연구였다.
생태학과 공동체라는 두 연구 주제는 얼핏 보면 동떨어진 것 같지만, 그 바탕을 꿰뚫는 문제의식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선 만년의 마르크스가 왜 공동체 연구에 몰두했는지부터 이야기하겠다. 사실 마르크스가 공동체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1868년 초에 생태학 연구를 위해 읽은 카를 프라스의 저작이었 다. 다시 말해 생태학 연구와 공동체 연구는 시작부터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앞서 고대 문명 붕괴에 대한 프라스의 연구를 마르크스가 읽었 다고 했는데(164면 참조), 프라스는 붕괴하지 않고 살아남은 공 동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 특히 고대 게르만족의 공동체인 '마르크협동체Markgenossenschaft 에 대해서는 지속 가능한 농업을 운영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게 르만족을 '야만스럽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속 가능성이라 는 면에서 게르만족은 대단히 우수했다.
'마르크협동체'는 카이사르 시대부터 타키투스 시대까지 게르 만족 사회를 통틀어 가리키는 호칭으로 쓰였다. 마침 수렵 및 군 사 공동체 역할을 하던 부족 공동체가 정주하여 농경을 하는 공동체로 변화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게르만족은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했고, 생산 방법에 강한 규제를 두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닌 외부인에게 토지를 파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토지 매매뿐 아니라 목재, 돼지, 와인 등도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처럼 강한 공동체적 규제 덕에 토양 양분의 순환이 유지되 었고 지속 가능한 농업이 실현되었다. 그리고 더욱 장기적으로는 지력을 상승시키는 효과까지 일으켰다고 한다. 공동체적 규제가 약화되어 무너진 고대 문명과는 이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토양 의 양분을 빨아들여 길러낸 곡물을 대도시에 판매하여 이윤을 거 두려 하는 자본주의적 농업 경영과도 매우 대조적이다.
마르크스는 프라스의 저작들에 몰두했다. 『자본』을 집필할 때 부터 생태학을 연구했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이전 사회 공동체 의 지속 가능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 게르만족은 토지를 공유물로 관리했다. 그들에게 토지는 누구 의 소유물도 아니었다. 그래서 자연의 은혜를 일부 사람들만 입 지 않도록 평등하게 토지를 배정했다. 부의 독점을 방지해서 구 성원 사이에 지배 · 종속 관계가 생겨나지 않도록 조심한 것이다.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었기 때문에 토지는 소유자의 무분별한 남용에서 지켜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토지의 지속 가능성도 유지되었던 것이다.
마르크협동체의 토지 공동 소유에서 보이듯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평등'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공동체가 자본주 의에 저항하여 코뮤니즘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이 밀접한 관계 속에 있지 않을까. 마르크스는 이 가능성을 점점 강하게 의식했다.
- 생태학 연구 덕에 진보사관과 결별한 마르크 스는 서유럽 자본주의가 뛰어나다 했던 기존의 주장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그 결과, 단순히 코뮤니즘으로 향하는 길이 여러 갈래로 늘어난 것에서 나아가 서유럽 자본주의가 목표해야 하는 코뮤니즘 그 자체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무슨 변화가 일어났다는 말일까. 지금부터 설명하겠다.
전통에 근거한 공동체의 생산 원리는 자본주의와 전혀 다르다. 마우러와 프라스가 말했듯이 공동체 내부에 강한 사회적 규제가 있어서 자본주의 체제와 같은 상품 생산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앞서 마르크협동체에서는 토지는커녕 생산물조차 외부로 판매할 수 없다고 했던 걸 떠올려보자.
공동체에서는 전통에 기초하여 비슷한 수준의 생산을 반복한다. 즉, 경제 성장을 하지 않는, 순환형 · 정상형 경제다.
공동체가 '미개하고 '무지'했기 때문에 생산력이 낮고 빈곤에 허덕였던 것이 아니다. 공동체는 더 오래 일하고 더 생산력을 올 릴 여지가 있어도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권력 관계가 생겨나 지배 · 종속 관계로 변화하는 것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생산력 지상주의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열린 기술'과 '닫힌 기술'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고르츠는 말한 다. '열린 기술'이란 '커뮤니케이션, 협업, 타자와 교류를 증진하 는' 기술이다. 그에 비해 '닫힌 기술은 사람들을 분단시키고 '이 용자를 노예화하며' '생산물 및 서비스 공급을 독점하는 기술을 가리킨다."
'닫힌 기술'의 대표적인 예는 원자력발전이다. 오랫동안 원자 력발전은 '깨끗한 에너지'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은 보안상의 이유로 일반 사람들과 격리되었고 그에 관한 정보도 비 밀리에 관리되었다. 그런 특성은 갈수록 불리한 사실을 은폐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중대한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원자력발전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기란 어렵다. '닫힌 기술'은 특성 탓에 민주주의적인 관리와 어울리지 않고, 중앙집권적인 하향식 정치를 필요로 한다. 이처럼 기술과 정치는 결코 무관하 지 않다. 특정한 기술은 특정한 정치 형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 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기후 변화 문제를 살펴보면 지구공학이나 역배출 기술 역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닫힌 기술'일 수밖에 없다.
- 일반적으로 '본원적 축적'이란 주로 16세기와 18세기에 영국에서 이뤄진 '인클로저enclosure'를 가리킨다. 인클로저란 영주와 대 지주 등 자본가들이 그때껏 공동 관리가 되던 농지를 사유지로 삼아 강제로 농민들을 쫓아낸 일을 가리킨다.
왜 자본은 인클로저를 했을까? 이윤 때문이다. 수익률이 높은 양의 방목에 쓰기 위해, 아니면 노퍽 농법Norfolk four-course system 처럼 더욱 자본집약도가 높은 대토지 소유 농업 경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인클로저를 실시한 것이다.
폭력적인 인클로저 탓에 거주지와 생산수단을 잃은 농민들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흘러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인클로저가 자본주의의 이륙을 준비해준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흐름을 고려했기에 그간 마르크스의 '본원 적 축적론'은 종종 피로 얼룩진 자본주의 성립의 '전사'를 묘 사하는 것으로 이해되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해서는 마르 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의 근간이 되는 '본원적 축적론'의 의의를 찾아낼 수가 없다.
실은 인클로저 과정을 '풍요'와 '희소성'을 기준으로 재구성한 것이 마르크스의 '본원적 축적론'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본원적 축적'이란 자본이 '커먼'의 풍요로움을 해체하고 인공적인 희 소성을 늘리는 과정을 가리킨다. 즉, 자본주의는 그 발단부터 지 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생활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며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 커먼즈 해체가 자본주의를 이륙시켰다
제4장에서 게르만족과 러시아의 촌락공동체에 대해 살펴봤지만,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공동체는 공유지를 다 함께 관리하며 노동 하고 생활했다. 전쟁을 겪고 시장사회가 발전해 공동체가 해체된 다음에도 입회지나 개방경지처럼 공동으로 이용하는 토지가 한동안 남아 있었다.
토지는 근원적인 생산수단이었고, 개인이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는 사적 소유물이 아니었으며, 사회 전체가 함께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입회지 같은 공유지를 영국에서는 '커먼즈commons'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공유지에서 과실, 장작, 물고기, 들새, 버섯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을 적당량 채집했다. 삼림에서 구한 도토리로 가축을 키웠다고도 한다.
- 그렇지만 공유지는 자본주의와 함께 존재할 수 없었다. 모두가 생활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조달한다면 시장에서 상품이 전혀 팔 리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굳이 상품을 구입할 필요가 없는 것 이다. 그래서 인클로저로 커먼즈를 철저히 해체하고 배타적인 사 적 소유로 전환해야 했다.
결과는 비참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살았던 토지에서 쫓겨나 생활수단을 빼앗겼다. 그리고 결정타를 가하듯이 그때껏 했던 채집 활동은 불법 침입에 절도라는 범죄 행위가 되어버렸다. 공동관리가 없어진 결과 토지는 황폐해졌고, 농경과 목축 모두 쇠퇴했으며, 신선한 채소도 고기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생활수단을 잃은 사람들 대부분은 도시에 들어가 임금 노동자 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적은 임금 탓에 아이들을 학 교에 보낼 수 없었고, 가족 모두가 필사적으로 일해야 했다. 그렇 게 해도 값비싼 고기와 채소는 구할 수 없었다. 입수할 수 있는 식량의 종류가 전보다 줄어든 데다 질도 나빠졌다. 시간도 돈도 모자랐기에 전통적인 레시피는 쓸모없는 것이 되었고, 단순하게 감자를 삶거나 굽는 요리만 하게 되었다. 생활의 질이 명백하게 낮아진 것이다.
- 그렇지만 자본의 관점으로 보면 같은 상황이 전혀 다르게 읽힌다. 자본주의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자유롭게 시장에서 매매하는 사회를 가리킨다. 토지에서 쫓겨나 살아가기 위한 수단을 잃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화폐를 손에 넣고 시장에서 생 활수단을 구입해야 했는데, 그로 인해 상품경제는 단숨에 발전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이륙하기 위한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 본원적 축적 전후를 비교해보면 땅도 물도 '사용가치'(유용성)는 변하지 않았다. 커먼즈에서 사적 소유가 되며 변한 것은 희소 성이다. 희소성의 증대가 상품의 가치'를 키운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이용할 기회를 잃고 점점 곤궁해졌다. 화폐로 계측되는 '가치'는 늘어났지만, 사람들 은 오히려 가난해졌다. 아니, 그보다는 '가치'를 늘리기 위해서 생 활의 질을 의도적으로 희생시킨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파괴와 낭비 같은 행위조차도 희소성을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절호의 기회로 삼기 때문이다. 파괴와 낭비가 풍요로운 것을 점점 희소하게 만들면, 그와 동시에 자본이 가치를 증식할 기회가 생겨나는 것이다.
기후 변화가 비즈니스 찬스인 것도 그 때문이다. 기후 변화는 물, 경작지, 주거지 등에서 희소성을 만들어낸다. 희소성이 늘어 나면 그만큼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지는데, 그런 상황이 자본에는 막대한 이윤을 올릴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재난의 충격에 편승하여 이익을 취하는 '기후 변화 쇼 크 독트린shock doctrine (충격 요법 정치)'이다. 돈벌이만 생각한다 면, 사람들의 생활이 희생되어도 희소성을 유지하는 것이 합리 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역시 재난편승형 자본주의에 속하는 '코로나 쇼크 독트린'을 맞이하여 미국 초부유층의 자산이 2020년 봄에 5650억 달러(약 687조원)나 늘어났다는 사실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사용가치'를 희생시킨 희소성이 개인 재산을 늘린다. 이야말 로 자본주의의 불합리를 뜻하는 '가치와 사용가치의 대립'이다."
- 한때 인간은 하루 중 몇 시간만 일하고 필요한 것을 가지면 나 머지 시간은 느긋하게 보냈다. 낮잠을 자거나 놀거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지금은 화폐를 갖기 위해서 타인의 명령에 따 라 장시간 일해야 한다. 시간은 금이 되었다. 시간은 단 1분 1초 라도 허비해서는 안 되는 희소한 것이 되었다.
자본주의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해 마르크스는 종종 '노예제' 라는 표현을 썼다." 의지와 상관없이, 여유도 없이, 끝없이 일한 다는 점에서는 노동자나 노예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사실 현대 의 노동자가 노예보다 참혹한 경우도 있다.
고대의 노예에게는 생존이 보장되었다. 대체할 노예를 찾기 어려웠기에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에 비해 자본주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얼마든 대체할 수 있다. 해고된 노동자가 다음 일자리 를 찾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굶어 죽고 만다.
마르크스는 이런 불안정함을 '절대적 빈곤'이라고 불렀다."
- 핵심은 원자력이나 화력과 달리 태양광과 풍력은 배타적 소유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태양광과 풍력에는 근본적 풍 요가 있다. 실제로 둘 모두 무한하고 무상이다. 그렇기에 석유나 우라늄과 달리 태양광과 풍력은 누구나 어디서든 비교적 저가에 발전을 시작하고 관리할 수 있다. 제5장에서 소개한 앙드레 고르 츠의 분류에 따르면 재생에너지는 '열린 기술'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이 자본에는 치명적이다. 태양광처럼 에너 지원이 분산되어 독점할 수 없는 경우에는 희소성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화폐로 바꾸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이렇게 자본주의 입장에서 딜레마가 생겨난다. 희소성을 만들 어내기 어려운 것으로는 돈벌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가 시장경제에서 기업들이 늑장을 부리며 좀처럼 재생에너지 개발에 뛰어들지 않는 원인이 되고 있다. '자본의 희소성'과 '커먼 의 풍요'가 대립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보급에는 '시민영화'가 필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다는 특성을 역으로 이용하면, 소규모의 민주적 관리에 적합한 비영리 전력 네트워크 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시민영화'가 지금껏 덴마크와 독일에서 시도되었 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일본에서도 비영리적인 시민전 력회사가 확산되고 있다. 시민이 시의회에 손을 써서 사모채권이 나 녹색채권으로 자금을 모으고 방치된 경작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등 자급자족형 발전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해 지역에서 소비한다면, 그간 전기요금으로 나가던 돈이 그 지역으로 돌아간다. 애초에 영리가 목적이 아니기에 수익은 지역사회 활성화 등을 위해 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개선해주는 '커먼'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이와 같은 순환이 일어나면 지역의 환경 · 경제 · 사회가 상승 효과에 힘입어 함께 활성화된다. 바로 '커먼'에 의해 지속 가능한 경제로 이행하는 것이다.
- 궁핍한 생활을 참고 견디길 강요하는 긴축 시스템이란, 외려 인공적 희소성에 근거한 자본주의에 해당한다. 우리는 충분히 생산하지 못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희소성이 자본주의의 본질이기에 가난한 것이다. 앞서 설명한 '가치와 사용가치의 대립'을 떠올려보자.
그간 신자유주의에서 이뤄진 긴축 정책은 인공적 희소성을 늘 리고 강화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정확히 부합하는 정책이었다. 그에 반해 풍요를 추구하려면 경제 성장의 패러다임과 결별 해야 한다.
- '근본적 풍요'를 내세운 경제인류학자 제이슨 히켈 Jason Hickel도 다음처럼 말했다. “긴축은 성장을 일으키기 위해 희소성을 추구하지만, 탈성장은 성장을 필요 없게 하기 위해 풍요를 추구한 다. "
이제 신자유주의에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반 긴축'이다. 하지만 단순히 화폐를 흩뿌리기만 해서는 신자유주의 에 대항할 수 있을지언정 자본주의에 종지부를 찍을 수 없다.
자본주의의 인공적 희소성에 맞서기 위한 대항책이란, '커먼' 을 복권시켜 '근본적 풍요'를 재건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탈성장 코뮤니즘이 목표하는 '반'이다.
- 마르크스는 '가치'와 '사용가치'라는 상품의 속성을 구별했다. 제6장에서 살펴봤듯이 자본 축적과 경제 성장이 목적인 자본주 의에서는 상품의 '가치'가 중요하다. 자본주의의 첫 번째 목적인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팔리기만 하면 뭐든 상관없다. 즉, '사용가치'(유용성)와 상품의 질, 환경 부하 등은 어찌 되어도 상 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단 상품을 팔면 그걸 곧장 버려도 상관 하지 않는다.
폭넓게 바라보았을 때, 가치 증식만 목적하는 생산력 증대는 여러 모순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기계화를 해서 경비를 절감하면 수요가 자극되어 대량의 상품을 팔 수 있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는 극심한 환경 파괴도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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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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