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의 역습

경제 2023. 5. 24. 13:15

-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무 정부주의자 프루동의 혁명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각국 중앙은 행은 금리를 5000년 역사상 유례없는 최저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유 럽과 일본에서는 금리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그러나 결과는 프루 동의 예상과는 달랐다. 오히려 무상 대출에 대한 바스티아의 암울한 예측이 더 진실에 가까웠다.
중앙은행 총재들은 월가가 평온을 되찾았다며 자축했다. 디플레이 션이라는 하찮은 두려움은 무시해버려도 좋은 듯했다. 실업률은 급 격히 떨어졌다. 모두 제로금리의 '눈에 보이는 효과였다. 제로금리의 이차적 결과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도외시되었다. 그러나 정말 보 려고 했다면 충분히 볼 수도 있었다.
2012년 캐나다 경제학자 윌리엄 화이트William White는 <극단적인 이지 머니 정책과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Ultra Easy Monetary Policy and the Law of Unintended Consequences>이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화이트는 급속한 금리 인하로 소비가 증가하고 저축이 감소했다고 진단했다. 미래의 소비를 앞당겨서 하게 만드는 금리 인하의 단점은 이미 정해진 목표액을 달성하기 위해서 저축량을 늘려야 하는 데다, 저금리가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충분한 종잣돈을 모으는 데 시간도 훨씬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당국은 낮은 금리로 기업 투자가 촉진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화이 트는 기업들이 실제로는 투자를 줄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초저금리 대출로 인해 자본의 잘못된 분배misallocation of capital 가 일어났다. 창조적인 파괴는 좌절되었다. 화이트는 “이지 머니라는 조건은 자본을 덜 생산적인 자원에서 더 생산적인 자원으로 재분배 하는 과정을 촉진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과정을 가로막았다"라고 결 론 내렸다.
- 초저금리는 차입 비용을 낮춤으로써 투자자들이 과도한 리스크를 감수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동시에 보험 회사와 연금 제공자들은 저금리 체제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정부는 국가 부 채를 늘리는 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다. 결국 이지 머니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최후의 심판일을 계속 연기해주는 역할을 했다. 화이트 는 "경기 침체기에 적극적인 양적완화 정책은 '공짜 점심'이 아니다. 가장 좋은 경우라도 경제를 재조정할 시간을 벌어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정 기회조차 날려버렸다"라고 말했다. 월가에서는 이미 '깡 통찼다'라는 말이 나온지 오래였다.
- 무상 대출이 노동자들에게 재앙이 되리라던 바스티아의 예측은 터 무니없는 생각이 아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은행들은 신용도 낮은 개인과 소기업의 대출 금리를 인상했다. 반면, 월가의 사 모펀드 포식자와 그 외 연줄이 좋은 사람들은 쥐꼬리만 한 이자로도 대출이 가능했다. 위기 후 10년 동안 소득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지만, 저임금 일자리는 급증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야 했으므로 예금에 대한 실질 수익은 마이너스였다. 반면 부유한 투기꾼과 기업들은 저렴한 대출로 큰 수익을 창출했다.
- 선사시대 사람들은 아마도 옥수수와 가축을 빌려주며 이자를 부과 했을 것이다. 이자와 대출의 연관성은 고대 언어에 숨어 있다. 고대 세 계 전역에서 이자의 어원은 가축의 새끼와 관련 있다. 이자를 뜻하는 수메르어 낱말 mas는 원래 어린 염소(또는 양)를 뜻한다. 고대 이집트 의 이자라는 낱말 ms는 출산이라는 의미다.' 고대 그리스의 이자를 가리키는 낱말은 송아지라는 의미의 tokos다. 이자를 나타내는 히브 리어의 여러 단어 중에는 증가 및 증식을 의미하는 marbit와 tarbit가 있다. 라틴어로 이자를 뜻하는 foenus는 다산을 의미하고, 돈이라는 의미의 pecunia는 가축 떼를 뜻하는 pecus에서 유래했다. 영어 단어 capital은 소머리 caput에서 유래했다. 시드니 호머 Sydney Homer와 리처드 실라Richard Sylla는 이러한 어원을 통해 이자의 기원을 설명한다.
이자는 씨앗과 동물을 빌려주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생산적인 목적 을 위한 대출이었다. 씨앗은 더 많은 수확을 가져왔다. 수확기가 되면 씨앗은 이자와 함께 돌려받았다. 동물의 새끼 일부 혹은 전부도 동물과 함께 반환되었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현대적 의미의 이자 개념은 바 로 그러한 생산적 대출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 뵘바베르크는 한 나라의 금리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반영한다 고 말한 적이 있다. 고대 세계에서 금리는 위대한 문명의 진로를 뒤따 랐다.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에서 금리는 수세기에 걸쳐 U자형 패턴 을 따랐다. 문명이 번창할 때는 떨어졌고, 쇠락하거나 멸망할 때는 급 격히 상승했다." 폭풍전야의 고요일 때는 초저금리도 등장했다. 신바 빌로니아 시대(기원전 700~630년) 초기 은 대출 금리는 최저 8.33%까 지 떨어졌다. 기원전 5세기 초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 함락되자 금리는 40% 이상까지 치솟았다.5" 18세기 네덜란드 공화국이 혁명 이 후 프랑스에 공격당하기 직전에 금리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따라서 21세기 초반 초저금리는 위안이 될 만한 현상은 아니다.
- 금융사학자 괴츠만은 '대출을 장려하는 이자의 출현은 금융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신'이라고 했다." 중요한 지적이다. 금융은 사람들이 시간을 초월해 거래할 수 있게 해준다. 농부는 보리를 빌려 밭에 파종하지만, 빚을 갚기 위해서는 수확기를 기다려야 한다. 모든 산업공정에서는 원자재를 완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까지 생산 시간이 필요하다. 기원전 제3000년기 메소포타미아의 한 문서에 따르면 옷 감 준비에만 1년이 넘게 걸렸다. 게다가 외국과의 무역에는 긴 시 간이 소요된다. 자본이 산업이나 무역에 묶여 있을 때, 이자는 생산에 사용된 시간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물론 사유재산이 보장되는 모든 문명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원을 빌려주도록 유도하기 위해 이자가 필요하 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자본을 축적하기만 할 것이다. 고대 바빌 로니아에서 여유 자금을 가진 사람은 땅을 사서 경작하거나 제삼자 가 농장을 얻도록 돈을 빌려주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 렇다면 이자율과 자본의 생산성, 즉 이자율과 농작물의 잉여 생산사 이에는 반드시 어떤 관계가 있어야 한다.
- 이자는 주택과 같은 장기지속 자산에 가치를 매기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고대 수메르와 그 이후 문명들은 최초의 대도시를 건설했다. 기원전 제3000년기부터 민간 주택 시장이 만들어졌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다음 임대할 수 있었으므로 주택담보대출은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에 보물을 쏟아부었을 때 금 리는 떨어지고 집값은 올랐다는 데 주목하라. 그때 이후로 바뀐 것은 거의 없다. 2000년이 지난 다음에도 부동산 시장은 통화 공급과 이자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 계약을 맺고 돈을 빌려준 경우, 돈을 이용하게 해준 보상으로 갚는 돈의 액수는 늘어난다. 이 증가분이 합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자라 부르고, 불법이 라고 생각하는사람들은 고리대금이라 부른다. (윌리엄 블랙스톤 William Blackstone 경, 《영국법 해설 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1765))
- 지나치게 낮은 금리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소비자물가 수준 변화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자산 가 격 거품이 커지고, 대출이 급증하고, 금융이 노력을 밀어내고, 저축이 붕괴하고, 자본이 대규모로 잘못 배분될 때, 시장 금리는 자연 금리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로크는 자연 수준 이하의 이자율이 낳을 수 있는 잠재적 피해를 상 세히 고려한 최초의 저술가였다. 그는 《금리 인하와 화폐 가치 인상 의 결과에 대한 몇 가지 고찰》에서 지나치게 낮은 이자율은 다음과 같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금융업자들은 '미망인과 고아들의 희생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다.
* 부는 저축자로부터 차입자에게 재분배될 것이다.
* 채권자들은 리스크에 대해 충분히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 은행가들은 돈을 빌려주느니 쌓아둘 것이다.
* 화폐 유통 속도가 감소함에 따라 물가는 떨어질 것이다(디플레이션).
* 너무 많은 차입이 일어날 것이다.
*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해외로 돈이 유출될 것이다.
*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은 부자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 것이다.
* 금리 인하는 빈사 상태의 경제를 되살리지 못할 것이다.
- 현대 경제학자들은 로와 그의 체제에 놀라울 정도로 호의적이다. 심지어 1719년 거품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까지 있다. 이들은 로가 비유동적인 정부 부채를 거래 가능한 주식으로 전환했기에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 상승은 정당했다고 말한다. 그중 한 명은 이런저런 전문 가들의 주장을 인용해 "1720년 봄, 로의 체제가 무너지기 전까지 시 장은 효율적으로 흘러갔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720년 투기꾼 들이 미시시피 회사가 추구한 대서양 무역의 성장을 예상해 주식을 사들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투기꾼들은 터 무니없이 낙관적이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미시시피 회사의 거래 수익은 매년 고작 0.5%씩 증가했으니 말이다.
- 로의 정책이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주식 시장 붕괴를 초래했음에도 아이비리그 학자들은 그의 금융 이론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있다.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피터 가버 Peter Garber는 로의 신용이론 이 지난 두 세대에 걸쳐 등장한 대부분의 화폐론 및 거시경제학 교과서의 중심축이며, 불완전고용 문제를 우려하는 경제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만국공용어'라고 주장한다. 가버는 로의 체제가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했다고 믿는다." 예일대학교의 괴츠먼은 너무 적은 돈은 경제 활동에 제약이 된다는 로의 믿음을 '오늘날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 결정에 기반이 되는 본질적인 원칙으로 인정한다."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의 붕괴는 루이 14세의 죽음 직후 프랑 스 경제와 흡사한 상황을 낳았다. 디플레이션, 높은 실업률, 치솟는 정부 부채가 한꺼번에 등장했다. 통화 정책 입안자들은 이러한 상황 에 대응해 로가 했던 대로 금리를 낮추고 돈을 인쇄해 국가부채를 상 당수 사들였다(로만큼은 아니었다). 또 다른 유사점도 있다. 2008년 이 후 연준은 의도적으로 할인율을 낮춰 자산 가치를 끌어올리는 정책 을 시행했다. 로가 미시시피 백만장자를 만들었다면, 그의 21세기 모 방자들은 수많은 억만장자를 만들어냈다.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중앙은행들은 소비자물가 상승 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파격적인 통화 정책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캉 티용의 지적대로 국립은행이 인쇄기를 돌려 정부 부채를 사들일 때, 새로 인쇄된 돈은 처음에는 금융 시스템에 갇혀 금융자산을 잔뜩 부 풀리고 이후 더 넓은 경제로 서서히 스며들며 소비자물가에도 영향 을 미친다. 로의 체제를 '공기와 그림자처럼 상상할 수 없는 종'이라 고 묘사했던 디포의 말은 2008년 이후 중앙은행들이 설계한 경제 회 생계획에도 똑같이 돌려줄 수 있다.
불굴의 투지를 가졌던 로는 자신의 체제에 내재한 결점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1729년 그가 사망하기 직전에 베네치아를 방문해 그 를 만난 프랑스 대사 드 제르지de Gergy는 "그의 저주받은 체제에 대 해 그보다 더 완고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로는 그 고집대로 처음부 터 자신의 프로젝트가 잘못될 리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 겼다." 돈을 찍어내는 데 골몰하고, 금리를 조작하고, 자산 가치 거 품을 부채질하는 중앙은행 총재들 역시 로와 비슷하다. 이들은 대규 모 통화 실험에는 긍정적이지만, 고통 없는 출구는 없다는 캉티용의 경고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로의 전기 작가 앙투안 머피 Antoin Murphy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 총재들이 지금 하는 일은 바로 로가 이미 권고했던 것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미시시피 체제는 실패했지만, 로는 벤 버냉키 Ben Bernanke, 재닛 옐런Janet Yellen, 마리오 드라기 Mario Draghi라는 후계자들을 남겼다"라고 썼다. 
- 1720년 영국의 남해 거품은 미시시피 거품의 조잡한 모조품이었다. 로와 마찬가지로 회사의 이사들은 주로 값비싼 연금에 충당되 는 정부 부채 비용을 낮추기 위해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처음부 터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로의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남해 거품 역시 이지머니의 시대에 발생했다. 25 장기 정부 부채 수익률은 1710년 8%에서 1720년대 초 약 4%까지 떨어졌다. 프랑스와 마찬가 지로 정부 채권자들은 금리가 하락하자 1720년 상반기 동안 10배 가 까이 급등한 남해 주식을 연금으로 교환하려 했다. 하지만 그해 말 주가는폭락했고, 거의 모든 버블 회사들이 이 물결에 휩쓸려 사라졌다.
- 1876년 2월, 배젓은 외국 대출 열풍에 대해 숙고해보았다.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국내 금리가 낮은 시기에는 외채의 높은 수 익률이라는 허황한 약속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인간은 15%를 좋아한다. 큰 약속과 큰 이익을 매우 친숙하게 느끼고, 감정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을 좋아한다. '금융 사기 제조업자들은 이를 알고 이용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에게 '15%는 위험하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길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필요하다. 새롭고 화려한 계획은 믿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대중은 그런 계획에 대해 본능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쉬우며, 건전한 정책보다 근사해 보이는 정책을 선 호하는 경향이 있다. 대중은 많은 것을 약속하지 않으면서 딱 그만큼만 지급하는 계획보다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아무것도 지급하지 않는 계획을 더 좋아한다- 미국의 낮은 금리는 기축통화라는 달러의 특수성 때문에 세계 경제 전반을 신용 호황으로 밀어넣었다. 위기 이전에 세 계 금리는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였고, 세계 경제성장률에 훨씬 못 미 쳤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나라들도 외국 자본 유입이 쇄도해 여 유가 없었다. 상황을 모면하는 데 급급한 해명 따윈 필요 없다. 간단 히 말하자. 이지 머니가 호황을 일으켰고, 그 결과 붕괴가 일어났다. 중앙은행가와 통화경제학자로 구성된 폐쇄적인 공동체는 위기의 원인을 금융으로 돌리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그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만들어낸 자신의 경제 모델을 버리기 아까워했다. 그들 의 표준 모델에 따르면 경제는 1973년 석유파동과 같은 무작위적인 외부 충격에 의해서만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다. 그 모델에 돈과 신용의 자리는 없다. 금리는 주어지는 것이고, 통화 정책의 오류는 소비자 물가 불안이 아니라 자산가치로 나타난다. 투기 거품과 비합리적인 과열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의 모델에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행위 자들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델은 월가나 다른 주식 시 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조금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랜트가 '박사 기준PhD standard'이라고 부른 것이나 다루는 경제학자들이 실제 로 일어난 사건에 우왕좌왕하며 곤혹스러워했던 것도 놀랍지 않다. 이러한 인지부조화 상태에는 제도적 요인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다. 연준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금융 분야 박사들의 고용이 며, 통화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경제 저널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 고 있다. 2010년 설문 조사에서 대다수의 경제학자가 저금리를 주택 거품의 주 원인이라고 믿었을 때에도 통화 정책 전공 경제학자 대부분이 연준의 견해를 지지했던 것은 의미심장했다." 연준 총재 버냉 키가 위기는 '경제 과학의 실패가 아니라 경제 관리(규제)의 실패라 고 주장하면, 연준 연구팀도 위대하신 수장님의 생각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기존 신념은 강화하고 불 편한 질문은 무시되는 반향실反響 속에서 살고 있다.
역사학자 폴 미로우스키 Paul Mirowski는 "버냉키의 연준은 위기에서 보여준 지적 무능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라고 결론지었다. 버냉키는 공직에서 쫓겨나는 대신 또 한 번의 대공황에서 세계를 구 했다는 찬사를 받았고, 2009년 《타임> 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 다. 그의 거듭된 부인은 연준이 위기에서 배운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통화 정책 입안자들은 정말 희한한 경우의 조정 말고는, 이미 결함이 많은 모델을 바꿔야 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저금리가 위기의 원인이 아니므로 미래에 금리를 더 낮추더라도 당연히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 앞서 1920년대 연준의 물가 안정 추구가 어떻게 대출 호황과 투기 과잉을 낳았는지 살펴보았다. 같은 정책에 특정 목표를 묶으면 문제 는 악화된다. 고정된 양적 지표만으로는 기관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흔히 정량적 목표는 숫자로 나타내기 쉽 다는 이유로 선택된다. 그러나 이때 쉽게 측정되지 않는 요소들이 간 과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목표 설정은 단기주의, 관료주의로의 자 원 전환, 리스크 회피, 정당하지 못한 보상, 기관 문화의 훼손을 포함 한 다양한 부작용을 낳는다.
지표는 혁신과 창의성을 억압한다. 지표는 과학인 척하지만 사실 은 종교와 유사하다. 어떤 기관이 특정한 목표를 향해 가야 할 때, 비 판은 사라진다. 1970년대 미국사회과학자 도널드 캠벨 Donald Campbell 은 "사회의 의사결정에 정량적 사회 지표가 더 많이 사용될수록 더 많은 부패 압력을 받게 되고, 그것이 감시해야 하는 사회 과정을 왜곡하고 부패하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역사학자 제리 멀러Jerry Muller는 캠벨의 법칙에 결론을 보태 "측정되고 보상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게임처럼 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장 유명한 목표 법칙은 금융 경제학 분야에서 수십 년 전에 등장 했다. 1980년대 초, 대서양 양안의 중앙은행 총재들은 통화 공급 성 장을 목표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고 했다. 통화 공급은 모호한 개 이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다(경제학자들은 M0, M1, M2, M3 등이라 부른다). 런던 경제대학의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는 잉글랜드 은행이 특정한 수치의 통화 공급을 목표할 때마다 그 수치 와 인플레이션 사이에 이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관계가 깨진 다고 말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굿하트의 법칙은 통제를 위해 사용하 는 모든 수치는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 초저금리는 부채라는 숙취에 대한 좋은 해장법이 아니었다. 보리 오는 "문제의 근원이 과도한 부채라면, 어떻게 민간과 공공 부문 모 두에 대출을 유도하는 정책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겠는 가?"라고 반문했다." 일단 경제가 '부채 함정'에 빠지면 막대한 피해 없이 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워진다. 보리오는 "과거에 금리가 너무 낮 았던 것이 오늘날 저금리의 한 원인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물론 그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 부채의 상당 부분이 제대로 된 수익을 내 지 못했던 것도 문제였다. 보리오는 이를 가리켜 "문제는 신용의 총량이 아니라 그 질이다”라고 말했다." 신용 호황기에는 자본이 마구잡 이로 뿌려진다. BIS 연구원들에 따르면 부동산 시장이 뜨거울 때 자 원은 부동산 개발에 투입되지만, 건설은 생산성 성장이라는 측면에 서 창출하는 것이 거의 없다. 이는 부동산 거품이 경제성장을 위축시키는 부분적인 이유다.
- 슘페터는 이자가 창조적 파괴의 이익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 는 '이자의 진정한 기능은 경제 활동에 대한 브레이크 혹은 중앙은행 총재의 브레이크'라고 썼다.' 슘페터가 보기에 이는 '없어서는 안 될 브레이크'다. 이자는 시간을 생산 비용으로 바꾼다. 시간은 돈이다. 생산 시간을 절약해 상품을 가장 빨리 시장에 내놓는 기업가가 창조 적 파괴 게임의 승자가 된다. 이자는 자본을 배급한다. 이 관점에서 이자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효율성을 추진하는 힘이고, 투자 실행 여 부를 결정하는 장애물이다. 슘페터는 이자율은 '모든 경제적 숙고에 들어간다'라고 썼다.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투자자인 매튜 클레커Matthew Klecker는 이자 율을 프로농구의 샷 클록에 비유한다. 샷 클록의 목적은 경기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NBA 규정에 따르면 공격팀은 24초 이내에 공격을 마쳐야 한다. 그랜트는 "제로금리는 모든 일상적인 비즈니스와 투자 거래를 늦추게 만들며, 필요한 조정을 연기하는 결과를 낳는다"라고 썼다.' 그랜트는 이자율을 음악가들이 박자를 맞출 때 쓰는 기구인 메트로놈에 비유한다. 그는 “적절하게 조정한 금리는 건전한 성장 속도에 도움이 된다"라고 썼다. 금리가 낮아지면 경제 활동이 둔화된다. 아 다지오(...) 라르게토(...) 렌토(...) 라르고(...) 그레이브(...) 아다지시 모(・・・) 라르기시모로 진행된다. 마지막 템포는 '매우 매우 느리다'다. 제로금리에서 경제는 장송 행진곡의 엄숙한 속도로 진행된다.
- 19세기 프랑스 경제학자 클레망 쥐글라Clément Juglar는 "역설적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한 나라의 부는 그들이 경험하는 위기가 얼마 나 치명적인지를 보면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창조적 파괴를 염두 에 두면, 쥐글라의 말은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경제학 자들은 경기 침체를 일종의 '피트스톱pit-stop(카레이싱에서 정비를 위해 정차하는 시간과 공간-옮긴이)'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중요 한 시기라고 본다." 경기 침체기에 급증하는 기업 도산은 시간이 지 나면서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전직 우 주 비행사이자 항공사 사장인 프랭크 보먼Frank Borman은 말했다. "파 산 없는 자본주의는 지옥이 없는 기독교와 같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통화 정책은 경기 침체의 정화 효과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즉, 금융 안정화가 불안정을 낳고 있을 때, (민스키가 주장했듯이) 지나친 경제 안 정은 경화증을 유발한다.
- 2010년 터진 유로존의 국채 위기는 흔히 경쟁력 차원에서 설명된 다. 2000년대에 EU 주변 국가들의 노동비용은 독일보다 훨씬 더 빠 르게 상승했다. 게다가 빚도 너무 많이 졌으니 어떻게 부채를 갚을 것인가? 하지만 이 책이 보기에 위기는 어긋난 금리 처방의 결과물이 다. 금리에만 초점을 좁혀 말하자면 유로존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 의 처방을 모든 나라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1999년 단일 통화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유로존의 11개 창립 회원 국(그리스는 2001년 가입)에는 저마다의 금리가 있었다. 이 금리들은 유 럽 대륙 전체에 걸친 다양한 경제 상황과 신용리스크를 반영하고 있 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미래의 유로존 회원국들의 금리는 계속해서 독일 기준으로 수렴되었다. 아일랜드에서는 금리가 떨어지며 부동산 시장이 급성장했다. 21세기 초, 유럽중앙은행은 경제가 부 진했던 독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통화 정책을 시행했는데, 아일랜 드와 그리스에 호황을 일으키기에는 금리가 너무 낮았다. 이와 동시 에 리스크는 압축되어 유로존 전체로 퍼져나갔다. 대체로 은폐되긴 했지만, 그리스는 금리 하락을 이용하여 막대한 규모의 재정 적자를 냈다. 유로 지역 내 국경을 넘나드는 대출은 스페인의 엄청난 부동산 호황과 인프라 붐에 자금줄이 되었다.
파티가 끝나면서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유로화 창설 이후 금리 하락으로 인해 남 유럽 경제는 건설 쪽으로 기울었다. BIS의 경제학자들은 건설 호황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버드학자이자 미래의 세계통화기금 수석 경제학자인 기타 고피나스Gita Gopinath 역시 건설업 전환이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 는 "유로화 채택은 금리를 낮추고 자본 유입을 장려함으로써 자본의 잘못된 배분과 (유럽) 남부에서 관찰된 낮은 생산성의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초저금리가 원인이 된 어리석은 투자의 결과는 좀비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지 머니는 수익을 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프로젝트에 투자를 장려한다." 주택 자산은 장기 자산이고 저금리가 촉진하는 건설 호황은 가장 흔한 '어리석은 투자malinvestment (하이에크의 용어-옮 긴이)'다. 2006년 미국 부동산 거품이 내파 implode(외부 요인이 아니라 내부 요인으로 인한 터짐옮긴이)한 후, 주택 건설 시장은 몇 년간 침체를 겪었 다. 한편 금리가 그 어느 때보다 낮아지면서 투자자들은 다른 유형의 장기 투자를 찾아 나섰다. 실리콘밸리는 그 요구를 충족시키며 대단히 즐거워했다.
- 2013년 벤처 투자가 에일린 리Aileen Lee는 10억 달러 이상 가치가 있는 신생 기업을 가리켜 '유니콘'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런 용어를 쓴 이유에 대해 리는 "대단히 희귀하고 마법 같은 것을 의미하기 때 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가치 평가는 마법처럼 대단했을 수 있지만, 유니콘은 생각보다 희귀하지 않았다. 2015년 이 정도 규모의 기업은 150개나 되었고, 이들의 총 시장 평가액은 약 5조 달러에 달했다." 그 랜트는 "사람들이 유니콘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은 그들이 금리를 먹 고산다는 것이다. 그들은 저금리를 좋아한다. 낮을수록 좋다"라고 말 했다." 저금리는 투자자들에게 '성장'을 선택하도록 유도해 먼 미래 에나 이익이 발생할 회사들에 재산과 운을 걸게 만들었다. 저금리 덕분에 수년간의 손실 따윈 쉽게 견딜 수 있었다. 저금리가 유니콘의 황당한 가치 평가를 정당화한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기꺼이 모든 이지 머니를 빨아들였다. 금융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한 유니콘 기업 대표는 2015년 《이코노미스트》에 “고대 이집트 이래 역사상 돈을 모으기 가장 좋은 시기일 수 있다"라고 말 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이지 머니는 멍청한 돈이었다. 벤처 투자자들 은 스타트업 기업들의 말과 장부를 꼼꼼히 살피기보다는 '무차별 난 사 spray and pray '(전투에서 엄폐물 뒤에 숨어 아무나 맞기를 바라며 무작정 총질 하는 상황. 여기에서는 '일단 투자금을 뿌리고 잘되기를 기도한다'는 의미다옮 긴이) 방식으로 투자했다. 벤처 투자자들은 더 큰 자금을 대출받아 훨 씬 더 의심스러운 개념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IT 업계 내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연준은 돈을 찍어낸다. 그 많은 돈이 벤처 자금으로, 다 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타트업을 만드는 꼬맹이들의 주머니로 들어 가고 있다. 연준이 계속 돈을 찍어내고 주식 시장이 상승하는 한 파티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생산성 붕괴의 이면에 좀비가 있다는 연구들이 날이 갈수록 쏟아지고 있다. 빚을 상환할 수 없는 기업은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좀비가 다른 기업의 투자마저 막는다는 점이 다." 좀비는 새로운 기업의 탄생을 저지한다. 좀비가 돌아다닌다는 것은 생산과잉과 비참한 수익으로 고통받는다는 말이고, 기업가들로 서는 그런 분야에 진출할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좀비는 새로운 기술 과 기업 관행이 채택되는 것을 늦추기도 한다. 필 멀런Phil Mullan은《창조적 파괴 Creative Destruction》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너무도 많은 자원이 생산성이 낮은 영역과 좀비 기업-기본 운영에 투 자하기에는 너무도 취약하지만 다른곳으로부터 생존할 정도는 되는 수 익을 얻고 있는 기업에 갇혀 있을 때, 특정한 혁신적 기업 투자가 긍 정적 영향을 광범위하게 미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은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21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부채비용은 자본비용보다 낮게 유지되었다. 이러한 '펀딩 갭funding gap'이 자사주 재매입을 부추겼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펀딩 갭은 더욱 커졌다. 월가의 한 전략가는 "자본비용이 부채비용보다 여전히 높기에 기업들이 저금리 대출을 이용해 자사 주식을 되사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다"라고 말했다.3 통화 당국은 기업들이 저금리를 이용해 투자를 활성화하기를 바랐 다. 그러나 초저금리와 자본보다 부채를 선호하는 세금 구조는 '장기 투자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주가 연동 인센티브라는 부담을 진 상장기업 경영진은 미래 투자 를 통한 의심스러운 수익보다 현재의 이익 레버리징으로 확실하고 즉각적인 보상을 받길 원했다. 
- 리먼 파산 이후 바이백은 중단됐지만, 위기가 지나자 다시 사나운 기세로 되돌아왔다. 10년이 지난 후, S&P500 기업들이 주식 환매에 들이는 연간 지출은 위기 이전의 거의 절반 수준인 720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지난 10년에 걸쳐 미국의 가장 큰 상장기업들은 총이익 의 절반 이상을 바이백에 지출했다. 그리고 주식 환매는 대부분 현 금 흐름을 이용하기보다는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다. 수조 달러 규 모의 환매는 '전체 (주식) 시장의 슬로모션 레버리지 환매'를 낳았다." 금융공학이라는 놀라운 기적 덕분에 S&P500 기업의 주당 이익은 보고된 이익이나 매출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했다." 이익이 줄어드는 기업마저도 주당 이익은 증가되었다." 엑손과 IBM을 포함한 몇몇 기업은 벌어들인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바이백과 배당금에 분배하는, 사실상 폰지 사기 Ponzi scheme (아무런 이윤 창출 없이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으 로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의 사기. 앞에서 언급된 폰지라는 사람에게서 유래한 용어-옮긴이)를 치고 있었다."
- 골치 아픈 거대 합병기업이 미국 경제를 지배하던 1980년대,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주장에는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구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30년 이상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된 이후 주주 가치란 결 국 금융공학을 위한 빌미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이것은 월 가가 이익을 창출하는 과정으로 실제 세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의미다. JP모건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은행 대출 대부분은 생산적인 투자에 사용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존 담보물에 대해 제공된 것뿐 이었다. 얀 토포로브스키 Jan Toporowski의 그럴듯한 경구를 인용하자면 "금융의 시대에, 금융은 대부분 금융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in era of finance, finance mostly finances finance
- 하지만 골드만삭스에 좋다고 해서 미국에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 었다. '네덜란드 병'은 경제가 상품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었을 때 경제가 받는 피해를 말한다. '금융 자원의 저주' 역시 마찬가지로 경 제에 해를 끼친다." 미국과 영국처럼 값싼 외채를 이용해 경상수지 적자를 모면했던 국가들은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들의 경제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특히 은행업)으로 전환하며 생산성 증가가 둔화 되었다. 스페인은 몇 년간 금융의 저주에 시달리다 결국은 금융위기 를 맞았다. 수 세기 전 남아메리카 금이 대량 수입되면서 자국 무역이 부패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 GE의 흥망성쇠는 금융화 위험 사례의 연구감이다. 금융공학이 창 출한 이익과 그 이익에 적용되는 가치 평가는 허황할 정도로 엄청나 지만, 장기적으로 비용은 명확해진다. 주가 극대화만을 목표로 하는 회사 운영은 대체로 잘못된 결정으로 이어진다. 웰치조차도 은퇴하 며 주주 가치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아이디어'일 것이라고 인정했다."
- 비트코인 광풍에는 기술 발전만큼이나 금전적인 조건도 중요했다. 컴퓨터가 없었다면 블록체인이나 디지털 암호화도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암호화폐 열기가 들불처럼 번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디지털 금' 애호가들이 주장했듯이 중앙은행의 정책적 인 통화 가치 절하가 없었더라면 새로운 유형의 돈도 필요 없었다. 암 호화폐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이들이 기술을 잘 알 고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전통적 투자에서 낮은 예상 수익률로 인 한 파산 위기에 직면해 대체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금융 측면에서 비트코인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영구채 perpetual note (만기가 없는 채권 옮긴이)의 제로 쿠폰 zero coupon (이자가 없는 채 권-옮긴이) 같아 보인다. 초저금리 시대에 금, 빈티지 자동차, 현대미 술, 암호화폐 등 어떤 소득도 보장하지 않는 다양한 자산이 미친 듯이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할인율이 거의 없고 현금 흐름이 없어 합리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
- 생산적인 그리고 그리 생산적이지 않은) 자산의 가치를 부풀리는 가 장 간단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은 금리를 낮추는 것이었다. 2008년 이 후 연준이 선택했던 길이다. 버냉키 의장은 2010년 11월 <워싱턴 포 스트》 기고문에서 초저금리의 이론적 근거를 밝혔다. 그는 "회사채 금리가 낮아지면 투자가 촉진될 것이다. 그리고 주가 상승은 소비자 의 부를 증대하고 신뢰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결과적으 로 소비자 지출을 촉진할 수 있다. 지출 증가는 더 높은 소득과 이익 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러한 선순환이 경제 확장을 더욱 단단하게 뒷 받침할 것이다"라고 썼다." 사실상 연준은 통화 정책을 '새로운 부의 기계의 동력원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 미국 중앙은행이 이 경로를 채택한 최초의 통화 당국은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에 일본은 이미 내수 진작을 위해 금리를 내린 바 있 다. 익명의 일본 은행 고위 관계자는 자신들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설 명했다.
우리는 (저금리로) 먼저 주식과 부동산시장 모두를 부양할 생각이었다. (...) 그리고 이 조치는 모든 경제 부문에 걸쳐 막대한 자산을 늘리리라 생각했다. 이 부의 효과는 개인 소비와 부동산 투자를 유도하고, 이어서 설비 투자도 증가하게 할 것이다. 결국 금융완화 정책이 실질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다.
-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정책 입안자 대부분은 '거품 경제'와 실물 경제는 별개로 존재하는 두 개의 실체이며, 후자에 전혀 손상을 입히 지 않고 전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1990년 닛케이 주가지 수가 하락하자 한 고위 관계자는 《워싱턴 포스트>에 "거품이 꺼질 때 가 됐다. (...) 실물 경제, 생산 경제는 진정한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 다. 땅과 사람은 사라지지 않고, 가짜 재산만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 다"라고 말했다." 망상이었다. 주식과 부동산에 레버리지 베팅을 하 며 재테크(금융공학)에 열심이었던 일본 기업들은 부동산 시장이 붕 괴하자 큰 손실을 입었다. 지나치게 많은 '실물 경제 활동이 버블 경 제가 만들어낸 '가짜부'에 의존하고 있었다.
- 금융위기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신용이 지나쳐 대출과 지출이 크게 늘어 금융위기가 닥치는데도 해결 방법 또한 신용과 대출과 지출 증가뿐이라는 점이다. (래리 서머스)
- 은행이 대출하지 않으면 돈도 만들지 못한다. 양적완화는 자산 가격을 키웠고 신용 스프레드를 수축시켜 돈을 만들어냈지만 이렇게 찍어낸 돈은 소비자나 기업으로 가지 않고 연준 은행에 쌓였다. 2008 년 연준이 초과지급준비금(중앙은행에 비축된 돈)에 이자를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은행은 대출할 이유가 더 없어져버렸다. 경제 전반에 걸 쳐 돈의 유통이 둔화되었다. 요컨대 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유지하 는 연준 정책은 물가 상승을 초래하지 않았지만 디플레이션을 연장 하는 결과를 낳았다. 초저금리가 경제의 공급 측면에 역효과를 낸다 는 사실은 이미 10장에서 살펴보았다. 11장에서는 저렴한 외상매입으로 인해 기업들이 더 긴 공급망을 만들고, 이것이 거래 물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좀비기업 확산은 디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가중시켰다. 많은 기업이 만성적인 과잉설비 문제에 봉착했다. 2008년 이후 미국 내 기업 부채는 치솟았지만, 대출의 대부분은 (자사 주 매입이건 레버리지 매수건) 금융이 목적이었다(11장 참조). 저금리는 인 수합병 붐을 부채질했고, 결국 경쟁 압력이 줄어들어 독과점을 키우 는 결과를 낳았다. 좀비기업과 독점기업과 금융화를 거친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는 경향이 있기에, 결국 이들은 경제의 잠재적인 성장 역량을 낮췄다. 초저금리는 수요 측면에서도 경제 건전성을 잠식했다.
- 소비자 지출을 미래에서 현재로 끌고 오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장기 적으로 부채가 많고 저축이 불충분한 가구들은 미래에 쓸 돈이 줄어 들 수밖에 없다. 2008년 이후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당시 미국과 영국의 가구들은 신용 팽창기 동안 체결했던 과잉부채 일부를 갚기 시작했다.** 가계 재정 악화는 치솟는 주식 시장과 다른 자산 가격 거 품으로 어느 정도 은폐된 면이 있다. 그러나 13장에서 논했듯, 저금리 체제는 은퇴채무 비용을 상승시켰고, 저축 의지를 꺾고, 연금 투자 수 익을 낮춤으로써 미래 소비를 위축시켰다.
- 2007년과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손실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더 정확히는 '거대한 규모의 캐리트레이드가 망한 결과'로 벌어진 사태였다. 리먼 파산 이후 미국 담보증권을 사려고 달러를 빌렸던 외국 은행들은 국제 통화 시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연준은 유럽과 아시아 중앙은행에 대규모로 달러를 대출 해주며 이들을 구제했다. 당시 연준 의장 버냉키가 신속하게 대응해 1930년대 초와 같은 세계 통화 체제의 붕괴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세계 금융 체제 핵심부의 제로금리 조치와 결합돼 국제 캐리트레이드를 부활시켰다. BIS 경제고문 신현송은 '글로벌 유동성의 두 번째 국면'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2008년 이후 벌어 진 국제적 자본 흐름의 부활을 묘사했다. 글로벌 유동성의 두 국면 모 두 미국의 비정상적으로 낮은 금리, (16장에서 보았듯이) 낮은 수준의 시장 변동성, 그리고 광범위한 해외 대출이 특징이었다." 글로벌 유 동성의 첫 번째 국면에서 국제 자본 흐름은 유럽 주변부에서 대출 호 황과 부동산 거품에 자금을 조달했다. 두 번째 국면에서는 해외 자본 의 대부분이 신흥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첫 번째 국면에서는 유 럽 주변부 금융 체제가 리스크에 크게 노출되었다. 두 번째 국면에서 는 이것이 개발도상국에까지 확산되었다.
- 중국에서 금융 억압은 다음과 같이 실행되었다. 자본은 국내에 묶 인 저금을 통제한다. 가계로서는 저축한 돈을 대형 은행 중 한 곳에 예치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빅4' 은행은 대부분 국가 소유이며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었다. 중앙은행은 예금 금리를 중국 의 경제성장률보다 낮게, 심지어 물가상승률보다 낮게 책정했다. 은 행은 국영기업에 시장금리보다 낮은 이자로 대출을 제공했다. 예금 금 리는 훨씬 더 낮았기 때문에 은행은 막대한 이익을 보장받았다. 정부가 통제하는 기업은 투자를 위해 낮은 이율로 대출을 받았으며, 베이징 당 국경제 기획자들이 선정한 부문을 선호했다. 은행과 국영기업은 금융 억압의 주요 수혜자였고 가계 저축자들은 큰 피해자였다.
돈과 이자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국가가 특정 대상에게 낮은 이율로 대출을 제공하는 것은 중국의 유서 깊은 전통이다. 하지만 덩샤오핑 개혁 시대, 베이징 당국은 아시아 이웃 나라의 정책을 그대로 베끼기로 했다. 수출과 대규모 투자에 의지하는 아시아 경제개발 모델을 기반으로 낙후된 아시아 경제가 서구 경쟁국들을 따라잡은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박정희가 이끄는 한국 정부는 국가 소 유은행을 통해 수출 기업과 독재자 마음에 드는 산업 분야에 마이너 스 실질금리로 대출을 제공했다. 중국은 이를 따르기로 했다.
금융 억압은 1990년대 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초인 민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 중국의 통 화는 1994년 초 평가절하된 이후 미국 달러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된 수준으로 고정되었다. 중국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위안화 절상을 막기 위해 인민은행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위안화를 팔고 달러를 사 들였다. 이런 식으로 매입한 달러 증권은 국가의 외환고에 추가되었 다. 결국 중국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중국 수출품을 팔기 위해 자국 산 업에 간접 대출을 해주고 있는 꼴이었다. 중국의 미국 증권 대량 매입 은 미국의 장기금리에 하방 압력을 가했다.
중국의 달러 블록Dollar Bloc 합류는 베이징 당국의 중상주의적 성향과 잘 어울렸다. 2001년 12월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이하 WTO 회원국이 되었다. 중국의 WTO 가입은 그린스펀 이 금융완화 정책을 시작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인민은행은 달러 고 정환율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금리를 낮게 유지했다. 금융 억압은 '정 부의 환율 평가절하 유지 정책의 결과'로 등장했다." 수출과 수출주 도형 투자가 중국 경제 기적의 주역이었다. WTO 가입 후 6년 동안 수출은 연간 무려 30%씩 증가했다. 믿기 어려운 숫자였다. 2007년 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수출국이 되었다." 위안화 절상 기대감 으로 외국 자본이 중국에 쏟아져 들어왔다. 중국이 저금리 기조를 유 지한 의도에는 이러한 핫머니 hot money (국제금융 시장을 이동하는 단기성 자금-옮긴이) 유입 억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 중국 당국이 신용 문제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자본 통제로 중국의 국내 저축을 가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 억압은 이 저축이 더 나은 수익을 찾아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결과를 낳았다. 미 연준이 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유지하고 화폐를 계속 찍어내는 한, 중국 자본 계정에 대한 압박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리먼 도산 이후 5년 동안 연준이 긴축 통화 정책을 시행하려는 움직 임을 보이자 중국에서 막대한 자금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자본 통제를 피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마카오 카지노에서는 위안화를 받아 홍콩 달러로 결제하는 '세탁 서비스'를 제공했다. 돈 밀수꾼들은 중국 기업에 가짜 수입 송장을 작성하게 했다.' 관광업은 또 다른 통로였다. 부유한 중국인들은 친구를 고용해 국외로 돈을 빼돌렸다. 바로 '스머핑Smurfing'이라는 관행이었다. 2015년 당국은 자본 유출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수백 명에 달 하는 밀수업자를 체포했다.' 은행도 외환 거래 심사를 강화하도록 지시받았다. 그러면서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은 본국으로 수익을 송금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업상 해외 출장을 가는 사람들도 미국 달러를 확보하기 힘들었다.'2"
중국 기업의 해외 인수는 중국에서 자본을 빼내는 또 다른 수단이 었다. 2014년 10월 중국 보험회사 안방보험은 뉴욕의 월도프 애스토 리아를 20억 달러에 인수했다. 미국 호텔 매입가로는 기록적인 액수 였던 이 인수는 약 30년 전 유행하던 일본의 해외 자산 매입 행태와 유사했다. 안방보험은 전통적인 생명보험사라기보다는 그림자 은행 에 가까웠다. 베스트셀러 상품인 '안방인수온라 1호 보험'은 넉넉한 수익을 보장하면서 2년 뒤에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돌려주겠다고 약 속했다. 안방보험은 이 상품 판매 수익을 해외의 호텔, 양로원, 보험 사, 기타사업체를 인수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자 베이징 당국이 외국 기업 인수를 막아섰다. 그림자 은행이었던 안방보험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안방보험은 외국 투자를 처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덩샤오핑의 손녀사위로 넓은 인맥을 자랑하 는 사업가였던 이 기업의 회장 우샤오후이小는 '경제범죄' 혐의 로 체포되어 18년형을 선고받았다. 회사 자산은 몰수되었다. 국경도 외국법도 자본도피를 막겠다는 베이징 당국의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2017년 1월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된 중국계 캐나다인 재벌 샤 오젠화建華는 홍콩의 포시즌스 호텔 스위트룸에서 사복경찰에게 납치된 후 본토로 압송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22 '악어'(사업 을 무리하게 벌이는 경영자에게 붙이는 별명)는 말 그대로 멸종위기에 처한 종이 되어가고 있었다.
- <노예의 길>이 출간되고 30년 후 하이에크는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지적 가식 The Pretence of Knowledge〉이라는 제목의 수상 연설에서 이 베테랑 경제학자는 인간 삶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경제학자들의 무능을 질타했다. 하 이에크는 강연을 마치면서 아래와 같은 경고를 남겼다.
(경제학자가) 자신의 지식에 내재한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인식한다면, 사회연구자들에게 겸허함이라는 교훈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겸허히 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인간 사회를 통제하려는 치명적인 노력의 공모자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다잡아야 합니다. 사회 통제 노력에 공모 하는 학자는 자신과 같은 동포 위에 군림하는 폭군이 될 뿐 아니라 수백 만명의 자유로운 노력으로 발전한 문명의 파괴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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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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