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급측면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효율성이 극대화되면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더 싼 가격에 더 우수한 품질의 상품이 공급되었다. 수요는 위축되고 공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급 불균 형 혹은 공급과잉의 시대가 되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세계는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애써 감추려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부채를 늘려 부족한 소비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된 후 22년간 세계 전체의 부채는 GDP 대비 191%에서 2022년 말 기준 248%로 늘었다. 부족한 수요를 빚을 내서 소비하다가 코로나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지난 20년간 나는 주로 공급과잉 측면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해 석해왔다. 그러나 사람을 능가하는 기계의 탄생으로 사람들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었다. AI 등 디지털 기술은 더 빠르게 수축사회를 강화시 킬 것이다. 이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철학과 교수인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이번 세기에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것은 자연재해 때문이 아니라 인 간 활동에 의한 것일 확률이 훨씬 크다면서 "인간이 AI에 대항하려 고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면 오히려 AI에게 추월당하는 속도가 빨라진 다는 딜레마가 있다. 우리가 똑똑해질수록 우리보다 더욱 똑똑한 AI 를 만들어내기가 쉬워진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인류가 인공지능 과의 대결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기술이 '특이점'(singularity)을 돌파하는 순간이 지금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대 응해야 할까?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했다.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 한 질문은 '그 모든 잉여 인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일 것이다. 의식 은 없어도 거의 모든 것을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고도로 지능적인 알고리즘이 생긴다면 의식을 지닌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인류와 미래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다.

- 여론조사 기관인 마크로밀 엠브레인은 <트렌드 모니터 2023》에서 젠더 갈등 문제에 대해 흥미있는 조사 결과를 보여줬다.
20대 남성: 
1) 목표에 집중하면서 능력주의 성향이 강하다.
2) 자신의 일은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0대 여성: 
1) 남성에 비해 어떤 사건의 배경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2) 목표 자체보다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3) 사회적 평판 등 나 이외 사회와의 관계를 깊게 생각한다.

- 수축사회에서의 사회적 대응은 과거형이다. 과거의 화려한 성장시절(팽창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집단 심리가 형성된다. 내가 본 시위 현장은 퇴진의 대상이라고 지칭되는 베이비부머가 주축이다. 70대 이 상의 산업화 세대 역시 그들이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틀릴 수 없고, 나의 성공스토리는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방식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켰으니 나와 내 방식을 존중해 달라는 '인정투쟁'은 시위 현장을 넘어 유튜브 등 SNS에서 중장년층 의 심리적 기반이 되고 있다.
- 수축사회의 해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를 떠나 리더 계층이 사회 변화를 얼마나 절실하게 느끼고 새로운 차원의 대안을 제시하는 가에 달려 있다. 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사람들이고 이를 해결하는 것 은 리더다. 리더가 과거형이면 해결은커녕 혼란만 가중된다. 리더 그룹 에서 고령자 비중이 높고, 경제 개발 60년의 성과를 간직한 리더계층 이 길을 잃으면서 계층 갈등과 세대 간의 갈등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세대와 나이 구분 없이 적응하기 정말 어려운 세상이다.
- 사이비 공습경보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것에 비해서 모르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그 차이를 뭔가가 채워줘야 한다. 바로 종교다. 종교는 현 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심리적 안전판이다. 또한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신(神)으로 칭하고 추앙한다.
역사적으로 사회변동이 극심할 때 다양한 종교가 등장했다. 기 독교의 경우 중세 암흑기에서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중국 청나라 말기 기독교 구세주 사상을 기반으로 했던 '태평천국의 난'의 지도자 홍수전은 자신을 구세주인 천왕(王)이라고 칭했다. 또 백련교도 중심의 '의화단의 난'은 수억 년 후에 탄생하는 미륵불에 사회 개조의 염원을 더한 미륵신앙이 바탕이 되었다. 전환기의 새로운 신앙은 기존의 기득권을 해체한다. 현대 경영학으로 설명하면 먼저 과거 질서를 파괴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일어나 는 것인데 이때 신흥종교가 큰 역할을 한다. 종교지도자 개인에 대한 추앙을 넘어 가스라이팅, 세뇌 등의 방식이 사이비 종교에 접목된다. 스스로 신이라 칭하면서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전광훈, JMS 정명석 또한 방법의 차이일 뿐 수축사회의 빈틈을 노리는 사이비들이다. 지금 세계는 사이비 종교의 공습경보가 울리고 있다.
대상만 다를 뿐이지 추앙과 추종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유사한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현대의 또다른 '교 주'로 군림하는 일부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 이들은 '당신은 선택된 사람'이라며 특별하고 인정받는 존재라고 느끼 게 만든다. '우리 대 저들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어 집단 바깥의 세상을 적으로 규정한다. 두려움이나 죄책감, 분노 등을 촉발하는 말로 행동 을 조종하기도 한다.
피라미드 사기를 일삼는 다단계 판매 조직도 비슷하다. 주로 중 산층 전업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단계 조직의 슬로건은 여성주의 를 가장하고 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아 '자기 자신의 보스'가 되어 '독립적인 사업을 시작해 '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풀타임 못지 않게 수익을 올려서 늘 갈망하던 '경제적 독립을 이룩하라'는 것을 지 속적으로 세뇌한다. 
- 파괴적 혁신 이후 새로운 세계로 전진하지 못하면 최근의 뉴트로 열풍 혹은 보수주의의 부상과 같은 복고(復古)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 10년 사이 한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에서 신자유주의 기반의 독재 체제가 재부상하는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수축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더욱 필요하다. 현재 를 이해하기도 어렵고 미래는 더욱 캄캄하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기꺼이 신(神)을 소환해서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모두가 적 때문이야', '당신은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는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 을 겨냥한다.

- 리브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상위 20%의 가구 소득은 1979년에서 2013년 사이에 4조달러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하위 80%의 소득 은 3조달러가 약간 넘게 증가했다. 하위 20퍼센트~중위 20퍼센트 사이 의 격차는 거의 변동이 없었고, 하위 80%에 속하는 사람들 간의 불평 등도 큰 변화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불평등은 상위 20%를 경계로 벌어졌다. 사회학적 용어 중에 중하류층의 상향 이동을 가로막거나 여 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다양한 장벽을 뜻하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 이라는 말이 있다. 이에 비해 리브스는 상위 20%가 중산층 혹은 하류 층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마련한 유리 바닥(The Glass Floor)이 있다 고 주장한다. 이 장치들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을 계급사회 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 리브스의 책에 인용된 미식축구 코치 배리 스위처의 말은 신랄하다. 그는 상류층의 계급 고착화를 야구에 비유했다. 상류층이 '3루에 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고 비꼬았다. 상류층 부 모가 자녀를 위해 하는 많은 활동(책을 읽어주고, 숙제를 도와주고, 영양가 있 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스포츠 등 학과 외 활동을 지원해주는 것 등)은 아이가 세 상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갖추게 해준다. 이는 아이 가 성인이 되어서도 상류층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불공정한 카르텔을 규제하는 반독점법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고성장기에는 수출이 증가할 때 수출 대기업의 성과보상으로 불평 등이 커졌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좋은 불평등'으로 부른다. 개발경제학 자들은 '좋은'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을 구별한다. 좋은 불평등은 사람 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개선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경제성장 을 촉진한다. 반면 나쁜 불평등은 특정 계급(지대 추구자)에게만 이득을 준다.54 좋은 불평등은 경제의 파이를 키우지만, 나쁜 불평등은 계급을 고착화시켜서 사회를 붕괴시킨다.
고령자 불평등은 나쁜 불평등이다. 국가는 이미 많은 복지 비용 을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고령자 불평등 문제는 앞으로 사 회갈등의 중심 의제로 떠오를 것이다. 고령자들은 지금 당장이 중요하 다. 그러나 국가는 지금 여기서 이들을 구제할 여유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 수축사회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다. 누군가 빨리 이 갈등을 종결해주기를 바란다.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해진 것이 다. 1930년대 초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독일이 히틀러를 불러 낸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21세기 미국의 첫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 시 대통령은 미국 일방주의를 바탕으로 9.11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 등 에서 강력한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네오콘(neocon)을 대거 등용했다. 네오콘이란 네오 컨서버티브(신보수주의, neo-conservatives)의 줄임말이 다. 힘을 바탕으로 불량국가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해서 적극적으로 미국의 이해를 달성하자는 정치 세력이다. 핵심 인물은 딕 체니 부통 령,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부장관, 폴 울포위츠 등이다.
- 그러나 네오콘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국방과 외교에 있어 절 대적인 힘의 우위에 있었지만, 경제와 사회는 구조적인 문제가 부각되 는 시기였다. IT혁명으로 생산성은 증가했으나 실업률이 높아지고 인종 갈등, 사회적 불평등이 빠르게 증가했다. 미국의 부채 경제도 당시에 출 발했다. 또한 주로 남부 지역에 있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사회 각계 각층으로 파고들어 강성 기독교와 신보수주의가 결합되었다. 위기일수 록 사람들은 정치적 극단주의, 즉 일종의 전체주의를 선호한다. 무질서 를 한방에 그리고 과감하게 해결해줄 구원자가 필요해진다. 수축사회에 대한 정치적 대응은 종교와 독재임을 미국이 먼저 보여준 것이다.
오바마 시대 잠시 물러났던 네오콘은 트럼프 시대에 중국과의 패 권전쟁을 명분으로 다시 소환됐다. 이번에는 백인 소외계층을 대변하 는 우파 독재의 지원 세력으로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녀들을 백악관 중요 보직에 임명했지만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왜 그럴까? 우 파 백인들은 도덕적 지도자보다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강력한 독 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트럼프 개인의 일탈은 중요하지 않 았다.
자국 이익 중심으로 국제 정치가 흐르면서 1930년대 유럽의 민 족주의, 파시즘, 나치즘, 쇼비니즘(Chauvinism) 등과 같은 배타적인 정치 이념이 일반화되고 있다. 21세기 초반은 중국에서 민족주의 성향이 강 해지면서 동시에 미국에서도 애국주의가 부상하던 시기다. 이런 이념 들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적 성향이 강하다.
- 스포츠에 있어서도 국가 대항전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국가 대항전에 관심이 없던 야구, 골프 등의 종목에서까지 국가 대 항전 인기가 높아진 것도 이 시기다. 축구는 전통적으로 월드컵이 열리 는 등 국가 대항전이 활성화된 스포츠였다. 국가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축구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스포츠는 분열하는 수축사회에서 국 민과 지역을 단결시키지만, 다른 국가와의 경쟁을 강화시키는 부작용 도 있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모든 사람들이 수축사회 전투에 참전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경제적 현상이지만 수축사회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각국에서 미국의 네오콘 모델을 응용한 다양 한 형태의 독재자가 출현하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필리핀의 두테르테,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등 전체주의를 지향 하는 정치인이 대거 집권했다. 결론적으로 수축사회는 '배타적 애국주 의사이비 종교=포퓰리즘=독재자'의 공식이 통용된다. 이 결과 민주 주의는 엄청난 속도로 퇴행하고 있다.
-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중 하나였던 토마스 프리드먼이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을 내며 세계화와 신자유주를 옹호하자, 이에 대한 반박으로 데이비드 스믹(David M. Smick)은 프리드만의 신자유주의 찬 양에 제동을 거는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 신자유주의와 미국식 민주주의가 세상의 모든 이념 대결 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의 《역사의 종말>도 결국 후쿠야마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을 정도 로 이미 신자유주의는 오래 전에 생명을 다했다.
지금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중도 우파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느 국가나 불평등이 확대되면 세금을 올려 복지 재원으로 활용한다. 영국의 토러스 총리는 대처 수상의 신자유주의를 언급하며 세금을 깎겠다고 나섰다가 강력한 사회적 저항으로 45일 만에 사퇴했다. 사적 재산권을 제한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 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행되고 있다. 독일은 에너지가격이 급등하자 2021년 9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GDP의 7% 이상을 에너지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국가가 거의 모든 영역에 적극 입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 개인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도와주고 있다. 실질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이미 사라졌 다. 다만 정치인들의 투쟁의 도구일 뿐이다. 수축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생존 이데올로기다.
재미있는(?) 것은 오직 한국만 수명을 다한 신자유주의를 숭배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부활시키겠다고 등장했던 MB 정부는 4대강 사업 등을 통해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했 다. 또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공기업의 임금을 깎기도 했 다. 박근혜 정부 역시 기본소득과 유사한 기초노령연금 지급을 확대했 다. 반면 복지를 핵심정책으로 걸었던 DJ와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와 FTA를 도입하는 등 역설적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2022년 출범한 보수 정부 역시 대외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가장 강하게 밀어 붙이고 있다. 감세, 규제해제, 공기업 민영화, 복지 축 소 등 현 보수 정부의 이념은 신자유주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정책이 다. 보수 정부는 이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퍼주기' '포퓰리즘' 등의 용어로 비난했지만, 정작 취임하자마자 무려 62조원의 긴급재난지원금 을 지급하는 추경을 편성했다. 21세기에 등장한 한국의 정권들은 각각 신자유주의와 복지라는 상충된 이념을 주장했지만, 공통적으로 국가 의 시장 개입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 우리는 자본 즉 금융과 실물경제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금융의 본래 기능은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버드대 교수를 역 임했던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 폴 스위지(Paul Sweezy)는 "금융자본은 실물생산경제의 겸손한 조력자라는 원래 역할에서 벗어나는 순간, 필 연적으로 자기 확장에만 골몰하는 투기자본이 된다"고 주장했다." 금 융을 자본주의의 피, 즉 혈맥으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혈맥이 통제가 안 되면 인체는 작동이 불가능해진다.
엄밀한 의미에서 21세기의 선진국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에 가깝다. 장기간 고성장 과정에서 금융자본이 대규모로 축적되었다. 정 제위기 때마다 화폐를 찍어내서 살포했다. 얼마나 많은 돈을 풀었으면 프린트(Print) 머니, 종이 화폐라는 표현이 나왔을까. 2022년 초반 기준 양적완화(QE)를 통해 미국, 중국, 일본, EU가 풀어댄 돈만 30조달러를 넘었다. 전 세계 GDP가 100조달러이니 전 세계 GDP의 약 30%에 해 당한다. 금리까지 역사상 가장 최저 수준인 만큼 금융자본은 본래 속성대로 탐욕의 본성이 매우 강한 상태가 되었다. 실물경제보다 더 많은 금융자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금융의 본래의 기능인 실물경제의 지 원이 아니라 '금융의 금융에 의한 금융을 위한' 경제 구조로 바뀌게 되었다. 실물경제와의 연계성이 낮아지면서 금융시장은 수익률 게임의 법칙만 통용되는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금융자본의 과속 질주는 앞서 살펴본 신자유주의 제1 원칙과도 깊이 연결된다. 자본이 국경을 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어지게 되었 다. 자본 투자국인 선진국은 투자국의 실물경제(기업, 인프라)가 아니라 금융자산에 투자한다. 투자한 자본은 일정한 투자 수익을 달성하면 빠 르게 회수한다. 이 과정에서 투자 대상 국가는 단지 하나의 상품에 불 과하다. 특히 미국은 과다 축적된 자본으로 세계 각국에 투자하면서 투자 이익과 패권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다. 
- 주주자본주의 확산은 단 한 개의 일자리도 증가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줄 인다. 자본주의 스스로 자본의 파괴를 통해 자본주의의 수명을 단축 시키는 것이 아닐까? 이런 현상에 대해 뉴욕대의 스콧 갤러웨이 교수 는 '주주가치라는 신흥종교'로 금융자본의 과속 질주를 경계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자사주 매입이 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금리는 오르고 있고 수축사회로 기업의 경영위기가 상시화되고 있다. 경제위기가 왔을 때 해당 기업이 과연 생존 가능할지 여부부터 따져봐야 한다. 주주가치 경영이 매우 부족한 한국이지만 미국의 사례를 참조해서 준비해야 한다.

- 미국은 독점시스템에 기반한 패권으로 유지되는 국가다. 패권을 상실하게 되면 미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대통령은 8년이나 머뭇거렸다. 상황이 더욱 나빠진 후 당선된 트럼프는 패권전쟁 참전을 공식화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만의 고립 을 택했다. 반면 바이든은 정교하게 전선을 만들면서 동맹과 함께 연 합군을 만들고 있다. 중국과의 패권전쟁이 일어난 핵심 원인이 미국 내 제조업과 첨단산업 생산 부족에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IRA 법안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원칙을 버리고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생존 이념에 몰입하고 있다. '근린궁핍화정책'은 환율 절하나 국가의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인근 경쟁국에서 부를 뺏어오는 정책이다. 그런데 미국은 인근(neighbor)이 아니라 세계 전체(global)를 대상으로 이 정책을 사용 중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세 가지다.
1)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의 힘으로 이기는 방법
2) 중국이 스스로 무너지는 방법
3) 미국인에게 가장 어렵지만 확실한 방법은 100여 년 이상 패권에 취한 상황에서 깨어나서 미국 독점시스템을 현실에 맞게 고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권과 주류사회는 미국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독점 패권을 고칠 만한 의지나 능력이 없다. 결국 동맹국을 압박해서 중국을 포위하고, 중국이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미국 혼자 할 능력이 없으니 동맹국과 연합해서 간접적이고 입체적인 방법으로 전 투에 나서는 것이다. 미국 스스로의 노력 없이 전투에 참여해서 이기 고자 한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극중지계II: 경제편》에서는 앞으로 중국이 4개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평가했다.
1) 누구나 알고 있는 중진국의 함정(middle income trap)
2) 국가가 강한 리더십을 갖추어도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면 어떤 정책도 먹히지 않는 타키투스의 함정(Tacitus Trap)
3) 하드파워가 강하더라도 소프트파워가 부족하면 여타 국가로부터 신뢰를 상실하는 킨들버거의 함정(Kindleberger Trap)
4)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 등이다. 이 4개의 함정은 서구 특히 미국이 바라는 중국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중국은 과연 4개의 함정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이런 서구의 시각과 달리 중국에 유학한 학자나 중국인들은 중국이 구축한 독자적인 시스템(이하 중국시스템)이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 로 보고 있다. 중국이 만든 이 시스템은 어떤 통치체제보다 견고하다고 신뢰한다. 중국시스템은 전혀 새로운 체제로 기존의 국가 시스템을 대체할 것으로 믿는다.
- 그런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속도를 늦추면 쓰러지는 자전거와 같이 성장률이 하락하면 가려졌던 중국의 모든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날 것이다. 사회의 건강성을 파악하는 지표는 경제성장 률과 일자리다. 최근 한국의 갈등구조 역시 경제성장률 하락과 일자리 감소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느 정도 성장해야 사회가 안정될 까? 중국에서 경제가 1% 성장하면 일자리가 200만 개 생긴다는 분석 이 있다. 중국의 한 해 대학 졸업자는 약 1천1백만명 이상이다. 그걸 기 준으로 삼으면 최소한 5% 이상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반면에 디지털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아가면서 청년 실업률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면 사회의 불안정이 높아지는 것은 동서고 금 공통 현상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3년 6월 청년 실업 률은 무려 21.3%를 기록했다. 그런데 중국 위기에 대한 지적이 많아지 자 중국 국가통계국은 청년 실업률 발표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주당 10시간,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주당 15시간, 20시간을 근무해야 고용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중국은 주 1시 간만 근무해도 고용으로 친다. 중국 기준은 국제 기준이나 서구 국가 들의 기준에 훨씬 못 미친다. 또한 중국의 고용 통계에서는 2억4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농민공 관련 통계를 찾을 수 없다.
고학력 대졸 실업률이 일반 청년 실업률보다 훨씬 높은 것도 위 험하다. 실업문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시진핑 주석이 대학생들에게 농촌에 들어가 '고생'을 경험하도록 독려하기까지 했다. 광둥성 정부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30만명의 젊은이를 농촌으로 보낼 것을 제안했다.
이는 마오쩌둥 때인 1950년대에 시작해 20년 이어진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을 연상시킨다. 21세기 세계 패권을 겨루는 나라에서 대학졸업생에게 농촌에 가서 고생을 하라는 지시가 실행 가능할까?
- 그러나 계급이 고착화되고 있는 중국에서 정권에 충성해온 상류층에게 부담을 줄 수 있을까? 중국 상류층은 부정부패를 통해 쉽게 자본을 축적한 비중이 높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단맛을 너무도 잘 알 고 있다. 중국 역시 다른 선진국과 같이 세금제도를 통해 불평등을 해 소해야 한다. 그런데 9천5백만, 실제로 1억명에 가까운 공산당원에게 세금을 높일 수 있을까? 소득세, 재산세를 높이면 일부는 해외로 탈출 하거나 사회적으로 불만이 높아질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제대로 통제되 지 못하면 중국은 공산당원과 일반 국민으로 분열될 수 있다. 견고한 지배체제에 균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위협을 감지한 중국은 재정 지출을 빠르게 늘리면서 사회 를 안정시키려고 한다. 2023년 들어서는 공동부유론에 대한 언급도 줄어들고 있다. '공동부유론'이라는 슬로건을 줄이고 각각의 정책을 개별적으로 추진하면서 홍보하고 있다. 또한 사회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위기는 고속 성장에서 중속 성장을 거쳐 저성장이 고착화될 때 표면화될 것이다. 공동부유가 아니라 불평등 사회가 고착화되었을 때 시진핑의 공산당은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동안 중국은 내부의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에 따 른 소득 증가로 버텨왔다. 배금주의 성향이 강한 중국인의 입장에서 공산당은 중국 인민들에게 '돈'을 주고 민주주의를 제한해온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를 거치고 중진국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높은 상태에서 향후 임금 상승률은 과거와 같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도시지역 가처분 소득이 제로(0) 혹은 마이너스(-) 상황이 2~3년 정도 이어지면 중국의 위기는 현실이 될 수 있다.
- 도시에 비해 농촌 지역의 교육 문제는 더 심각하다. 스콧 로젤과 내털리 헬은 중국의 농촌 교육에 집중해서 중국의 미래를 예측했다. 이들의 연구를 요약하면 현대 디지털 시대의 기본적인 교육에 최소 12 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노동자는 디지털 기기의 생 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이기 때문에 고교 수준 이상의 교육이 필요하 다. 로젤과 헬은 고교 취학률이 50%를 넘지 못하면 어떤 국가도 고소 득 국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불편한 진실은 중국 노동력의 70%가 비숙련 상태이고 중학교 이하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30%, 대학 교육을 받은 12.5%는 문제없이 잘 살겠지만 중국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매우 허약해졌다.3"
계층 이동 사다리가 사라지면 범죄율이 올라간다. 중국은 남녀 성비 불균형이 한국만큼이나 심각하다. 2000년 기준 여아 100명당 남자 아이가 120명 정도 태어났는데, 이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오고 있 다. 가장 인구가 많은 농촌 지역의 경우 영양 결핍으로 인해 아이들의 지적 수준이 도시 아이에 비해 낮다고 한다. 교육 차별화에 따른 사회 의 이중 구조가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소황제'로 편안하게 성장한 아 이들도 있지만 과도한 경쟁에 지친 많은 중국 청년 세대는 '자포자기 족' 세대로 변하고 있다. 2021년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평평하게 드 러누워 살자라는 의미의 '탕평(平) 운동', 사회가 썩도록 내버려두겠 다라는 의미의 '바이란(擺爛)'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일본의 극장화 현상, 한국의 냉소적인 청년세대와도 유사하다.
- '잃어버린 20년째가 되는 2010년대부터는 아베가 등장하면서 군국주의화로 길로 들어선다. 일본 전문가 유민호는 《일본 내면 풍경》 에서 일본의 우경화 현상을 단순히 아베 총리 등 몇몇 정치인의 정치 구호가 아니라, 일본어로 '쿠키'(공기, 空氣)라 부르는 사회 분위기 자체 가 전체주의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 야구팀 선수 중 빡빡 머리 학생 비율이 1998년 31%에서 2008년 69%로 늘었다고 한다. 초 등학교 운동회에 2인 3각 경기가 부활하는 등 일본 사회 저변이 개인 보다 전체를 우선하는 전체주의화를 강요했다.
버블이 붕괴된 1990년대에는 버블의 형성과 붕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일단 총리를 바꿔보고, 바뀐 총리는 추경 예산을 편성하는 등 몇 가지 경기 부양책을 내놓는 수준에 그쳤다. 일본은 사회의 근본 적인 전환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단지 돈을 풀기만 하면 경제와 사회 가 고성장기로 회귀할 것으로 생각했다. 30여 년간 일본사회는 선도 적인 혁신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역사에 끌려갔다. 버블 붕괴에 따른 부실 채권 정리가 무려 11년 이상 지난 2001~2006년에 완료된 것을 보면 얼마나 안일하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준다. IMF 위기 당시 한국의 부실채권 정리가 2~3년 만에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과 비교된다.
- 잃어버린 30년 동안 부동산과 주가는 폭락하고 월급도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기간 중 일본 사람들은 불행했을까? 꼭 그렇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물가가 거의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택 소유자 는 손실이 컸지만 신규로 집을 마련하는 사람은 오히려 값싸게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저축도 많았다. 풍부한 예금이 있었기 때문에 임금이 오르지 않더라도 소비만 약간 줄이면 된다. 흥분하거 나 실망하지 않고 최소한의 소비만 하면 표면적으로 안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국민 전체가 초식남(男) 혹은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일본인 의 삶의 패턴이 수축사회 형태로 바뀐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세계화의 피해를 국내 정치에 활용했다. 세계화로 미국에서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세계의 경찰 비용으로 너무 많은 국방 비를 쓰니, 세계화 대신 고립을 택하면 미국이 더 잘살 수 있다는 논리 다. 미국의 지정학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은 이런 트럼프의 정책에 논리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는 미국이 미국인만을 위하는 정책 으로 회귀하면 세계는 암흑세계가 되지만, 미국은 더 잘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6장에서 살펴본 미국 의 독점시스템에 도전할 국가가 나타난 것에 대한 두려움도 영향이 있 었을 것이다. 미국이 뿌린 세계화가 미국을 공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 된 것이다.
- 미국의 유일한 해결책은 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뿐이다. 다행히 미국에서도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제조원가는 공장부지 매입 비용, 세금, 원자재 비용, 인건비, R&D 비용, 운송비 등 으로 구성된다.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해서 미국으로 들여 오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설비투자에 들어가는 기계장치는 선진국에 서 생산되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가격차는 없다. 세금, 공장부지 비용 등은 법률을 바꿔서 중국과 동일하게 하면 된다. 인건비 차이는 로봇 등 기계 사용을 늘리면 절감이 가능하다. 이런 종합적 정책을 리쇼어링(reshoring)이라고 한다. 각종 지원과 규제 완화 등을 동원해서 해외 에 나가 있는 자국 기업이나 해외 기업을 불러들이는 정책이다. 각국 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활발하게 리쇼어링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 미국과 중국 모두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가 필요해졌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은 바로 중국식 세계화를 의미한다. 중국이 중심 에 선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시도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화에서 탈퇴하면 세계화 현상이 자연적으로 붕괴할 것으로 판단 했다. 바이든은 세계화에 다소 제한을 가하는 중립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바이든은 미국만의 홀로서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맹을 공고 히 하면서 중국을 배제한 세계화를 추구하고 있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과 중국은 2개의 세계로 갈라서고 있다. 서로 다른 2개의 세계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오랜 기간 자유민주진영과 헤어질 준비를 해왔다. 미국의 제재에 견디기 위한 준비를 해온 것이다. 중국은 러시 아에서의 원유수입 비중을 빠르게 높여왔다. 2010년경 중국의 원유 수입 중 러시아 비중은 7~8%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3년 상반기에는 18%대까지 상승했다. 전체 수입도 원자재와 식량을 중심으로 라틴아 메리카와 러시아 비중이 높아졌다. 반면 유럽과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은 줄어들었다. 특이한 점은 아세안 국가와의 교역 비중이 높아진 것인 데 향후 아세안이 중국 진영과 미국 진영의 각축장이 될 것임을 암시 한다.
- 에너지뿐 아니라 중국이 2차전지 등 미래 산업에 다양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자, 미국은 2018년 7월 중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대 해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의 IRA 법안에 앞서 중국이 먼저 선방 을 날렸고 이에 미국이 맞대응하면서 패권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중국이 독자적인 세계화를 추진하자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 과 사람들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장기 거주하는 미국인은 2010년 7만1천명에서 2020년 5만5천명으로 23% 감소했다. 프랑스인 은 1만5천명에서 9천명으로 40%나 줄어들었다. 베이징 왕징(望京) 거 리의 한국인은 10년 전만해도 10만명이 거주했는데, 지금은 2만명도 채 안 될 정도라고 한다.' 2020년부터 중국 정부는 미국 반도체 기업 인 마이크론에 대한 구매를 급격히 줄였다. 

- 과거의 전쟁은 총포를 동원한 물리적 전쟁이었다. 여전히 국지전은 군사무기를 동원한 전쟁이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패권전쟁은 입체적인 전면전이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세계의 핵심 국가들이 전부 참여한다. 일찍이 2014년에 전략경제학자인 윌리엄 엥달 (William Engdahl)은 미-중 간의 전쟁은 군사 전쟁뿐 아니라 경제, 환경, 미디어, 통화, 석유, 식량, 보건 등 모든 영역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실은 엥달의 전망보 다 더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이번 패권전쟁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전쟁이 기 때문이다. 어정쩡하게 타협이 되어도 전쟁은 새로운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계속 진 행될 것이다. 영토를 늘리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패권을 차지해야만 생존하고, 반대로 패 권을 빼앗기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같이 무조건 이겨야만 살아남는 전쟁이다.
패권 이행 이론(power transition theory)에 따르면 신흥국가가 기존 패권국을 추월하 려고 위협할 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인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은 비슷한 논리로 이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설명한다. 3 중 국이 미국을 넘기 어렵다면 국력이 최고조인 바로 지금 공격해야 한다는 논리다. '지금 아 니면 기회가 없다'(now-or-never)는 사고방식이다.

- 굳이 핵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상대방을 제압할 많은 수단이 있다. 미국이나 중국의 국민들은 대규모 희생이 불가피한데 과연 전면전이나 핵전쟁을 용납할까? 독점시스템에 익숙해져 이기적이고, 개인주의 성 향이 강하면서, 국민소득 7만달러의 미국인들이 대규모 징집, 경기침체, 주가 폭락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주요 7개국(G7) 이 중국에 가할 경제 제재로 전 세계가 3조달러의 피해를 입을 것이라 는 예측도 있다.''6
중국의 입장도 비슷하다. 중국 인민들은 자본주의의 단맛을 알기 시작했다. 개인주의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만일 중국이 패배하거나 치 명적인 피해를 입게 되면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의 입지는 매우 약화될 것이다. 모든 정치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가 가장 중요한 목표다. 패권전쟁으로 권력 유지가 어려워진다면 굳이 모험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 전쟁은 GDP, 즉 월급(flow)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산(stock)으로 싸우는 것이다. 쌓아놓은 자산이 부족한 중국은 지구전이나 소모전 이 발생하면 불리하다. 자산 관점의 전통적인 전쟁 논리로 보면 중국의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바로 이 논리가 미국이나 한국의 보수파 혹은 국 제정치학자들이 보는 미-중 패권전쟁에 대한 인식이다. 합리적인 예측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과거형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패권전쟁은 3차 세계대전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디지털 전쟁이다. 후방의 모든 국민까지 참여하는 총력전이다. 사람뿐 아니라 기계가 본격적으로 참
전하는 미래 전쟁이고, 적국이 아니라 자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적 전쟁이기도 하다.
- 과거 냉전 시절에는 피아 구분이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기술, 금융 등에서도 전선이 형성되면서 피아 구분이 모호해졌다. 중 간 지대의 많은 국가들은 자국의 입장이 알려지는 것보다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 한다. 그렇다면 미중 사이에 낀 국가 입장에서 가 장 좋은 처신은 '양다리 걸치기'가 아닐까? 미-중은 자신들의 진영을 확대하려 하지만 각 국가들의 속내는 국익에 우선해서 확실한 진영을 거부할 것이다. 한 베트남 고위 당국자는 "미국과 너무 가까워지면 공 산당을 잃고, 중국과 너무 가까워지면 나라를 잃는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중간 지대에 위치한 국가들의 고민은 모두 비슷할 것이다.
- 디커플링은 중국과 완전하게 공급망을 분리하는 정책이다. 반면 디리스킹은 반도체 등 국방과 관련된 안보 분 야를 제외하고 협력하는 정책이다. 이들의 발언이 있은 후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앞다투어 디리스킹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토니 블 링컨 국무장관도 직접 중국을 방문해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 디리스킹 을 얘기했다. 미국에서 기업인의 사회적 위치는 어느 국가보다 강하다. 정치권력도 함부로 하기 어렵다.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 기업인이 반 대하면 실질적 효과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고민이 깊어지는 까닭이다.

-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이미 1960년대에 소련과의 전쟁이 우주전쟁이 아닌 과학 경쟁이고, 본질적으로 교육 경쟁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케네디는 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기꺼이 희생하면 서 몰두할 수 있도록 한 가지 중요한 선택을 했다. 모스크바에 미사일 을 발사하는 대신 바로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었다. 35 돌이켜 생각해보면 세계적 차원의 대규모 전쟁은 과학기술 패 권을 둘러싼 경쟁이 핵심이었다. 과학기술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가지면 기술에서 파생하는 독점적 이익이 가능하고 전쟁에 수반되는 인적, 물적 희생이 필요 없게 되기 때문이다.

- 중국은 그동안 반도체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2022년 중국의 연간 반도체 기업 창업 수는 6만 개가 넘는다. 최근 5년간으로 기간을 늘리면 15만2천 개의 반도체 기업이 창업했고 1만3천 개 기업이 폐업했다. 폐업율이 8.6%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 반도체 생태계가 엄청나게 활성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중국의 반도체 실력은 메모리 분야 에서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추격 속도가 빠른 낸드메모리 기술 격차는 한국 대비 개발 기준으로는 1년, 대규모 양산에 있어서 차이는 2년에 불 과하다. 2022년 하반기부터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공급과잉으로 감 산을 하고 있고 자금 상황도 좋지 않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으로 자금 문제에서 자유롭다.
미국의 제재로 중국에서 장비와 소재 조달에 문제가 생긴다면 기 술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달에 우주선을 보낼 수 있 는 기술력이 있는 국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미국의 규제는 16 나노 이하 공정 로직 반도체, 18나노 이하 공정 DRAM, 128단 이상 NAND 정도에 적용되고 있다. 레거시(legacy) 제품이라고 하는 16나노 이하 제품에서 중국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산화하고 있다.
- 반도체는 첨단 제품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전이나 자동차 등에도 필요하다. TSMC는 저성능의 자동차용 반도체 기술로 2020년 공 급망 위기 시 큰 수익을 얻은 바 있다. 중국은 반도체 생태계의 하단을 받치면서 기능은 좀 떨어지지만 꼭 필요한 저성능의 반도체를 생산하 고 있다. 2022년 중국의 반도체 수출은 1,552억달러였다. 한국은 중국 에 첨단 반도체를 520억달러 수출했지만 수입도 265억달러나 된다. 우 리가 수입한 것은 범용 반도체다. 중국제 반도체 없이 한국이나 베트남 등 아세안의 생산 공장은 가동되기 어렵다. 레거시 반도체 분야는 제조 업 강국들을 상호의존적으로 엮어 놓고 있는데 그 중심에 중국이 있다.
- 2027년 무렵 반도체 산업에서는 7가지 중요한 변수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의 견해와 나의 판단을 결합해서 반도체 전쟁의 미래를 예상해보자.
1) 미국에 짓기 시작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공장은 대략 2025~2026 년 경에 완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설비가 완공되어도 생산 인력을 선 발하고, 소재 조달 공급망 구축, 제품 판매망 구축 등 반도체 생태계 가 제대로 가동되려면 2027~2028년 이후가 될 듯하다.
2) 그 사이 AI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첨단 반도체에 대한 수요 또한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극강의 기술로 평가되는 2나노 기술 제품이 나오면 상황은 다시 가속 변화할 것이다.
3) 파운더리에 대한 삼성의 추격 여부다. 삼성은 D램으로 대표되는 메 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최강이다. 그러나 미래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 점유율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15% 점 유율도 계열사 매출이 많기 때문이다. 인텔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만일 2027년경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삼성의 파운더리 생산 비 중이 급상승하게 되면 한국 중심의 새로운 반도체 전쟁이 예상된다. 
4) 미국과 한국, 대만 등 반도체 연합군이 중국에 대해 벌이는 첨단 반도체 고사작전이 향후 3~4년 지속될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미국의 전략이 성공할 경우 중국은 미래의 핵심 산업에서 크게 뒤처질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6개월 혹은 1년의 차이가 승패를 좌우 하기 때문에 3년 이상 개발과 투자가 뒤처지게 되면 경쟁력을 상실 하게 된다. 화웨이와 같은 세계적 통신회사의 기술적 우위도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중진국 수준의 범용 제조업 제품을 생산 하는 국가로 추락할 것이다. 특히 AI 분야는 지금부터 본격적인 경 쟁에 돌입하는데 최첨단 반도체가 필요한 이 분야에서 밀리게 되면 거의 모든 산업에서 뒤로 밀려나게 될 수 있다. 어쩌면 현재의 베트 남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국으로서는 받 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5) 반도체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결국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상품 은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하락하기 마련이다. 2027년경 미국의 반 도체 생산설비가 완성되고 뒤이어 한국의 용인·이천 반도체 설비, 또 TSMC의 설비가 완성되기 시작하면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 특히 한국 반도체 회사는 민간기업이기 때문에 늘 투자비용과 손익 을 고려해야 한다. 2023년 반도체 기업들이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자 생산량을 줄이면서 가격 조절에 나선 것을 참고해야 한다.
또한 미국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만일 2024 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반도체 지원을 계속할지 여부도 미지수다. 미국 인텔에 현재의 지원금이 상당 금액 지원된 이후인 2025년 무렵은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이 한창 지어지고 있을 때 다. 이때 새로 출범한 정부의 태도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미국 의 새로운 행정부 출범과 반도체 가격 급락이 맞물릴 경우 미국 중 심 반도체 진영의 결속력이 약화될 수 있다.
6) 그 이전에 상황이 끝날 수도 있다. 2024년 1월 대만에서 총통 선거 가 있다. 이 선거에서 친미 반중 성향의 민진당 후보가 당선되면 반 도체 전쟁은 지금보다 더 격화될 수 있다. 반대로 대 중국 화해를 주장하는 국민당이 재집권하면 상황은 다시 복잡해진다. 중국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일 것이다. 무력 충돌 없이 점진적으로 대만과 반도 체를 접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대만의 반도체 설비를 초토화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감안 하지 않아도 된다.
7) 중국도 반격이 가능한 분야가 있다. 중국은 2023년 7월초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당시 중국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미국 진영을 위협했다. 이 발표는 미국 재무장 관인 옐런의 중국 방문을 3일 앞둔 시점이었다. EU의 핵심 원자재 (Critical Raw Materials)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희토류 15종을 포함한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중국이 세계시장 1위 (2016~2020년 기준)인 광 물은 3분의 2에 가까운 33종에 달한다. 희토류 중에서 원자 번호가 높고 무거우며 비싼 중(重) 희토류인 테르븀·디스프로슘·에르븀·루테 튬 등 10종은 중국이 100% 장악하고 있다. 네오디뮴을 비롯해 란타 늄, 세륨 등 경(輕) 희토류 5종도 세계 시장의 85%가 중국 몫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 필요한 소재 공급을 제한하 면 새로운 소재 개발 국가를 찾을 때까지 사실상 대안이 없다. 40 중 국은 반도체의 독자 개발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미국 진영은 원 재료 공급망을 재구축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한계 때문에 미-중 반도체 전쟁은 암암리에 속도 조절 국면에 진입할 수도 있다.
- 미국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생태계 구성이 성공할 경우 배터리는 2025년경, 반도체는 2027년 이후 미국에서 생산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이 상대적 우위를 점유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배터리 분야에서는 중국이 압도적인 영향력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서로 다른 무기를 가지고 상대를 겨누고 있는 형국이다. 그 무기는 양측이 모두 독점적으로 보유하기를 원한다. 중국은 반도체가 끊기면 성장이 불가능하다. 미국은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을 중국 이외 최대 생산국인 한국과 함께 구축해야 한다.
새로운 공급망 구축에는 공해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 하다. 그러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 입장에서 배터리 원재료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려면 적어도 2030년은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 에 또 한 가지 변수가 있다. 배터리는 재활용이 가능하다. 전기차 보급 이 빨라져서 배터리 보급이 늘어나면 그만큼 재활용 비중이 높아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미국이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 생태계를 구성 하는 시점에서 배터리의 재활용이 증가하면 새로운 국면도 예상된다. 다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국 반도체의 안정적인 미국 내 생산이 2027년, 배터리는 새로 운 원재료 공급망 구축까지 2030년 정도를 예상할 경우 그 사이 동안 미국과 중국은 계속 으르렁대겠지만 일정 부분 타협하거나 혹은 협상 을 통해 시간을 끌어갈 개연성이 충분하다. 바로 이런 상황이 디리스킹 (derisking)에 해당할 것이다.

- 2030년 최악의 시나리오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전쟁의 당사자다. 팽팽한 패권전쟁에서 중심 잡기가 만만치 않다. 미국은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가 필요하다. 2030년경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 미국이 세운 계획이 성공하 면 2030년경 미국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생태계가 구축된다. 최첨단 반 도체가 생산되고,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도 구축했다고 가정할 때, 마찬 가지로 중국도 각고의 노력으로 한국, 대만, 미국에 근접한 기술을 확 보할 것이다.
- 미국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생산시설이 원활히 가동되고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생태계가 완성될 경우 한국의 가치는 일본을 방어하는 군사적 역할 정도로 위상이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중국으로 기울면 안보 문제가 발생하고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을 놓치게 된다. 중국 역시 한국의 반도체를 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웬만한 범용 제품은 자체 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다. 한국 반도체 없이도 중국의 독자 생존이 가능한 상황이 되면 한국은 지정학적 중요성만 남게 된다. 한국이 크게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 상황은 나쁘지만 서둘러 미국 진영에 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는 미중 양국에서 모두 필요하다. 2030년이 되 어도 미국의 전략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아직 없다. 실익을 얻으려 노력 도 해보기 전에 군사·안보적 차원에서만 결단을 내려선 안 된다. 대만 이 파운더리 반도체의 '고슴도치듯이 한국은 메모리와 차세대 반도 체 기술의 고슴도치를 지양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의 내부 사정을 깊게 이해한다면 현재와 같은 일방 적 대미 추종은 한국의 미래에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실익을 찾을 수 있다. 앞으로 경쟁은 생산보 다는 제품을 팔 수 있는 시장 확보가 중요하다. 한국 스스로 중국을 버 리려는 행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 인 한국금융연구원의 지만수 박사는 지금 한국 기업들 앞에는 "미국 기업 없는 중국 시장, 중국 기업 없는 미국 시장이 펼쳐져 있다"면서 균 형적인 시각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 우크라이나 전쟁 중 국제 금융계가 크게 놀란 것은 국제지급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 망에서 러시아를 신속하게 축출한 것이다. 스위프트는 전 세계 200개국 1만 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매일 1,500만 개의 거래 메시지를 전송하는 글로벌 결제지원 시스템이다. 국가 간, 은행 간 거래에서 필수적이라서 스위프트에서 축출되면 해외와의 금융거래가 실 질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런 이유로 스위프트는 이미 오래전부터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다. 2012년 미국은 이란을 스위프트에서 배제해서 이란의 원유 수 출 대금 결제를 차단한 바 있으며, 2017년에는 북한 은행도 축출시켰다. 
미국의 금융제재를 예상했던 러시아는 2014년부터 자체적인 지불결제시스템을 마련해 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서방이 이란을 제재한 지 1년 후 중국은 자체 국제결제시스템 (CIPS)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 달러 가치가 유지되는 비결
게임 이론의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을 달러 가치에 적용해보자. 내 쉬 균형은 한번 균형점에 도달하면 외부로부터 아주 큰 충격이 작용하 지 않는 한 계속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모든 국가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아 무역 등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특별한 상황변화가 없는 한 달러 이외 통화로 상거래를 하지 않는다. 달 러로 결제하는 것이 비용을 절감하고, 안전하고, 편리하기 때문에 현재 달러를 대체할 통화는 없다고 봐야 한다.
달러의 내쉬 균형에는 2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재정적자가 작아야 한다. 미국 정부의 안정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품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무역적자를 막아야 한다. 재정적자로 대규모 국채가 발행되고, 또 무역적자를 메꾸기 위해 해외로 달러가 무제한 공 급되면 언젠가 달러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은 금태 환 정책을 포기한 1970년대 초반부터 재정적자가 계속되었고, 품질 좋 은 상품도 만들지 못했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 유럽과 일본 재무 담 당자들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달러는 우리 미국의 돈이지만, 당신 들의 문제입니다(The dollar is our currency, but your problem)." 무서운 얘 기다. 내쉬 균형이 붕괴되면 미국보다 미국 이외 국가가 더 어려워진다 는 위협이었다.
1970년대부터 일본과 독일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자의반 타의반 으로 달러 가치가 유지되도록 미국과 협력해왔다. G7이라는 경제 선진 국들의 정상회담, 1985년의 플라자합의 등은 달러 가치를 안정시켜 내쉬 균형을 유지하려는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달러 가치가 안정되면 미국 경제도 안정된다. 달러 패권의 진정한 의미는 달러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미국 경제를 보호한다는 점이다. 달 대안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달러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다. 미국 입장에서는 너무 편리한(?) 시스템이다.
환율은 상대가치로 평가된다. 자국 상황도 중요하지만 반대편의 상대국도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 이외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미국보다 나빴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안정된 측면이 있다. 달러 다음으 로 많이 거래되는 유로화는 출범 후 1유로당 1.4달러 수준까지 강세를 보이다가 최근에는 1유로당 1달러까지 하락했다. 유로화가 약화된 것은 미국 경제와 달러가 강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로화가 약해진 것일 까? 나는 후자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체질이 아주 강한 중국이 등장하고 있다.

-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
러-우 전쟁에서 러시아의 실질적 패배를 가정할 경우 단기적으 로 미-중 패권전쟁에서 미국이 유리해진다.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천연 가스 수출이 재개되면서 유럽도 한숨 돌리게 된다. 미국의 파워를 재차 확인했기 때문에 중동 산유국이나 튀르키예 등은 당분간 친중국 행보 를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지 만 시간이 필요하다. 군사적으로 중국 서쪽 지역까지 NATO가 관할 권 확대를 추진할 것이다. 미-중 대결은 지정학적 전선이 아시아로 압 축되면서 중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생 존을 위해서 중국에 더 밀착하거나 굴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우 크라이나 재건을 통해 흑해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 할 것이다.
러우 전쟁이 2023년 하반기에 방향성을 결정해도 미국은 2024년 대선과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기는 어려울 듯하다. 현재와 같은 교착 상태가 당분간 이어지면서 지정학적 큰 변화를 향해 갈 것이다. 일본은 군사적으로 공격성이 증가할 것이다. 러시아에게 북 방영토 문제를 다시 제기하면서 동해에서 캄차카반도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긴장을 높이려 할 것이다. 이때 블라디보스톡을 통해 동해로 진 출한 중국과 일본은 지근거리에서 마주하게 된다. 북한도 중국 의존도 를 높일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새로운 재편의 바람이 불겠지만 여전히 핵심은 미-중 패권전쟁이다.
결국 지정학적으로 새로운 재편은 미-중 패권전쟁 추이와 연결되 어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에 반도체와 배터리 생태계가 완성되기 시작 하는 2027년~30년 사이에 러우 전쟁의 후폭풍이 동시에 발생할 가능 성이 높아 보인다.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확인되듯이 변화는 예기치 못 한 상황에서 긴박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러우 전쟁 이후가 더 위 험한 이유이기도 하다.
- 이 전쟁에서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이 모든 상황이 한국에는 난감하다. 한국은 지역적으로 미국과 중 국의 사이에 위치한다. 그러나 중국이 훨씬 가깝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 하고 있다. 이마저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보수 진영은 한국, 미국, 일 본의 3각 군사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전에 확실히 미국 진영에 편입하자는 전략이다. 너무 성급하고 위험한 생각 이다. 한국은 북한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있다. 대만에서 전쟁이 발발 하면 가장 난처한 국가가 한국이다. 주한미군의 대만 참전이 불가피할 텐데 한국 안보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 2023년 8월, 한·미·일 정상회담 을 앞두고 미국은 대만 유사시에 주한미군 여단급 부대(약 5천명)를 파견 하겠다고 우리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주한미군이 대만 전선에 투입되면 북한은 분명 중국 편에 서서 안보적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미묘한 '쓰리쿠션'의 상황이 돌발적으로 일어날지 모른다.
한국의 보수 정부는 시각이 너무 좁다. 특히 외교·안보 라인은 미 국이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완전하게 승리할 것으로 확신하는 듯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을 완전히 패배시키는 어렵다. 중국은 패 권전쟁의 승패와 무관하게 핵무장을 유지한 상태로 서해 혹은 동해를 통해 우리와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원자재의 상당 부분 은 중국 앞바다를 거쳐서 수입된다. 중국 정책 당국자들은 한국에 대해 늘 '이사 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강조한다. 중국의 운명과 한국의 운 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경고처럼 들리는 말이다. 설령 미국이 중국에 승리해서 중국이 무질서 상태에 빠지면 또 다른 위협이 될 수 있다. 중국내부의 혼란이 한국으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은 어떻게 행동할까? 이는 세계 여타 국가들과 다른 우리 한국만의 특 수한 위험요소다. 결론적으로 패권전쟁 이후에도 한반도 주변에는 늘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존재할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 내부의 정치적 안정성이 낮아질 때를 대비 해서라도 중국 인민과 직접 소통할 필요가 있다. 지금 중국 내 반한 정 서는 무려 80%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안미화중(和中), 안보는 미국 을 우선하되 중국과는 화목·화평하게 지내는 정책을 장기적으로 추진 해야 한다. 정권과 무관하게 중국 인민과 한국 국민이 서로 화목하게 지 내는 장기 전략이 절실하다.
- 선진국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풀어서(정부 부채를 늘려서) 코로나에 대응했다. 반면 한국은 가계와 기업,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 자가 부채를 늘리면서 코로나에 대응했다. 코로나 위기에서 한국은 세 계에서 유일하게 정부가 아닌 민간이 빚을 내 소비하면서 탈출했다. 민 간 중심의 부채 확대로 코로나 위기에서 탈출한 것은 향후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낮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 경제위기 때마다 한국은 가 장 먼저 위기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민간 부채가 많아지면서 지금부터 한국의 회복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려질 것이다. 신(新)코리아 디스카운 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큰 가치를 갖고 있다는 판단하에 형성된 투기 바람, 혹은 불가능한 목표를 위한 노력을 '검은 튤립'(black tulip) 이라고 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당시 큰돈을 벌 수 있는 수 단으로 튤립의 품종 개량이 성행하였고, 이는 자연에서는 불가능하다 고 여겨진 검은 튤립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검은색은 모든 가시광선의 파장을 흡수하기 때문에 자연에서는 검은 튤립이 존 재할 수 없다. 저금리와 부채를 기반으로 한 무제한의 자산 가격 상승은 검은 튤립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검은 튤립이 없다는 경고 였지만, 세계는 이를 무시하고 검은 튤립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 다. 탐욕의 노예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지난 20년을 빨리 잊어야 한다. 우리가 부채 돌려막기와 같은 폰지게임에 열광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검은 튤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 미래산업에 투자한다는 구호 뒤에는 검은 튤립을 갈망하는 거대한 탐욕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오스 카 와일드는 "속물이란 모든 것의 가격을 알되 그 가치는 모르는 사람" 이라고 했다. 자산이 가진 가치보다 가격에만 관심을 가진 세태를 풍자 한 말로 지금도 절실하게 유효하다. 이런 식으로 초저금리는 자원 배분 을 왜곡시켜서 통제 불능의 상황을 만들었다. 미국의 좌파 경제학자이 자 경제평론가인 폴 스위지는 "금융자본은 인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 한 실물생산경제의 겸손한 조력자라는 원래 역할에서 벗어나는 순간, 필연적으로 자기 확장에만 골몰하는 투기자본이 된다."고 경고한 바 있 다. 지금은 그 경고를 곱씹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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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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