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자본의 탄생

경제 2024. 2. 4. 12:02

-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2001년 경 노르웨이 정유업체인 에소(ESSO)사의 부사장이었던 오이슈타인 다힐(Øystein Dahle)은 ESG 경영의 본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산주의는 시장가격이 경제적 진실을 은폐했기 때문에 붕괴했 다. 자본주의는 시장가격이 생태적 진실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붕괴하게 될지 모른다."
여기서 '생태적 진실'이란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생명을 가진 모든 동·식물들이 생태계에서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SG적으로 표현하면, 환경도 살리고 이해관계자들과 공존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잘 유지되고 진화하도록 이른바 '거버넌스(Governance, 지 배구조)'를 제대로 구축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 ESG 개념의 혼선은 'E'를 어떤 품사로 사용할지에서부터 나타난다. 명 사(Environment)와 형용사(Environmental)가 혼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런데 E를 명사로 표기할지, 아니면 형용사로 표기할지에 따라 거버넌스 (Governance)의 판단기준 및 역할(의미)이 달라질 수 있다.
S(사회적 가치 창출)를 'Social(형용사)'로 표현하는 경우 S가 명사 인 G(거버넌스)를 수식하듯이, E도 G를 수식하는 구조로 보아 형용사 (Environmental)로 표현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이 경우 '친환 경적이고(E)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S) 거버넌스(G)'가 됨에 따라, G가 E와 S를 규정(컨트롤)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ESG 용어는 2004년 UNGC(UN Global Compact)에서 발간한 <Who Cares Wins>이라는 책자에서 처음으로 정확히 규정되었다. 보고서에서는 환경적(-al), 사회적(-al), 거버넌스적 이슈를 통합(integration, 명사)하는 게 'ESG 경영'이라고 명시함에 따라, Environmental(형용사)로 분명히 표기하 고 있다. 다시 말해 친환경적 경영, 사회적 가치 창출, 합리적 거버넌스 운영을 통합해서 평가 · 판단 · 투자하는 데 ESG의 핵심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G의 경우 영어식 표현의 발음대로 '거버넌스(Governance)'로 호칭 하는 경우와 아예 우리식으로 '지배구조'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흔치 않지만 '정부(Government)'로 이해하는 슬픈 사례도 있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G를 가리켜 '지배구조'로 부르는데, 이는 IMF 외환위기 당시 우리 기업의 이사회를 비롯한 지배구조가 후진적인 점을 강조한 번역의 영향으로 보 인다.
- 유엔개발계획은, "거버넌스란 한 국가의 여러 업무를 관리하기 위하여 정치, 경제 및 행정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 거버넌스는 또한 시 민들과 여러 집단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밝히고 권리 행사와 의무 이행 을 다하며, 서로 간의 견해 차이를 조정하는 기구나 제도로 구성된다”라 고 정의했다. 즉, 유엔이 밝힌 장문의 개념정의를 포괄하는 단어가 마땅 찮아서 통상 '거버넌스'로 부르게 된 것이다.
- E. S, G를 각각 독립된 이슈로 판단해서 평가할 경우, 평가항목도 독립 적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반면, 형용사 E와 S가 명사 G를 수식하는 것으 로 해석하면 평가항목의 배점이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거버넌스(정부, 기 업 등의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크게 바뀌고, 포괄하는 범위도 확연하게 넓 어진다.

- 우리나라의 자연조건을 고려하면 그나마 유의미하게 키울 수 있는 재 생에너지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다. 그런데 이 마저도 유럽 등지에 비 하면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 태양광 발전의 '정격용량 대 비 이용률'은 하루 3.6시간(15%)이다. 이탈리아는 무려 20.1%, 프랑스는 20%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풍속은 초당 6.2m인데 독일은 초당 7.6m이다. 유럽에 비해 자연 조건이 뒤처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재생에너지 를 생산하기에 부적합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규제로 인해 땅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재생에너지를 얻으려면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발전소를 건설할 땅이 필요한데 '이격거리'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지자 체 조례에 따라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주민 생활시설과 일정거리를 둬야 한다. 2018년 보성군은 태양광 설치를 위해 주 택과 도로의 이격거리를 500m에서 200m로 완화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 하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실패한 바 있다. 그 해 주민들은 토사 유출, 자연 경관 훼손, 환경 파괴 등을 이유로 인근 야산에 들어설 10MW(메가와트)급 태양광 발전 시설의 설치를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곳곳에서 태양광 발전 설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고흥군은 태양광 설치를 위한 도로와 주택과의 이격거리를 100m에서 500m로 강화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규제나 주민 반대로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짓는 것조 차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발전소를 짓는 데 직접 참여 하는 주민참여형 사업도 일부 있지만 극히 드물어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지었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재생에너지 운영 시스템이 복잡해 민간사업자 입장에서는 수익 을 내기가, 기업과 같은 전기 소비자 입장에서는 경제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발전소를 포함한 대규모 발전사업자에게는 재생에너지 의무량 (RPS)이라는 게 있다. 이를 위해 대규모 발전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재생에 너지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민간이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사들인 다. 이를 '재생에너지인증서'(REC, 1REC=1MWh)라고 하는데(35쪽), 대규모 발전사업자들은 이 REC를 구입해 RPS를 맞춘다.
- 문제는 이 REC가격이 정부에 의해 왜곡돼 있다는 점이다. 2017년 12만 8585원이었던 REC가격은 정부 정책으로 민간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늘어나면서 2021년 11월 기준 3만8846원으로 70% 하락했다. 이에 기존 민간사업자들의 수익이 확 줄어들자, 문재인정부는 RPS 비율을 대폭 상 향해 가격을 급등시켰다.
당시 정부는 2021년 9%이던 RPS 비율을 2022년 12.5%로, 이후 매년 2.5%씩 올려 2026년 26%로 설정했다. 그 결과 2022년 2월 기준 재생에 너지 구입비용(수력 제외)은 4561억 원으로 원자력 (9048억 원)의 절반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 기간 재생에너지 구입량은 2243GWh로 원자력 (1만 3307GWh)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를 KWh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재생에너지는 106.88원, 원자력은 56.28원이다. 가격이 올랐지만 민간 재 생에너지 사업자를 늘리지도 못했다. 민간사업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일 정해야 신규 투자나 재투자를 하는데, 가격이 정부에 의해 왜곡되면서 수 익성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또 대규모 발전사업자의 REC 비용 부담 증가로 이어져 전기요금 인상 압박도 커지게 되었다.
재생에너지 보급과 기업의 RE100을 위한 제도인 전력구매계약(PPA)도 되레 재생에너지 확대의 걸림돌이다. PPA는 재생에너지 사업자와 기업 전기 소비자와의 거래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인데(135쪽), 한국전력이 국 내 전력망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전기 소비자가 한전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구입할 때 한전은 전력망 사용료(KWh당 8~24원) 등을 포함한 부대비용을 받아간다. 이 때문에 전기 소비자가 한 전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구입하면 비용 부담이 일반 전기요금의 두 배 가 까이 된다. 그러다 보니 기업을 위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이 용하는 기업이 없는 것이다(2021년 11월 기준).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자연조건이 열악할수록 기술 개발과 시 장 운영시스템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운영되어온 RPS 및 PPA 제도처럼 현실을 무시한 재생에너지 정책은 탄소중립의 길을 요원하게 만든다. 특 히 RPS, PPA 모두 계약단가가 실시간 전력도매가격(SMP)에 각종 부대비 용이 추가됨에 따라 변동성이 심하고 실제 원가보다 비싸지는 것이다. 결 국 시장참여자들은 경쟁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 보다는 잿밥(제도 이용)에 주목하게 되고, 한전 독점 하에서 모든 비용을 보장해주는 '총괄원가주 의'는 두부(전기요금)값보다 싼 콩(원료)을 구할 동기 부여가 없게 된다.
- 2022년 한국전력은 약 32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유인즉 국제 연료가 격(LNG) 상승으로 전력 도매가격(SMP)은 급등하는데 소비자가격은 동결되 어 그 갭을 고스란히 한전이 부담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SMP(System Marginal Price, 계통한계가격)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SMP는 한 국전력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사업자로부터 전력을 구입하는 가격으 로, '전력도매가격'이라고도 불린다. 단위는 kWh로 환산한다.
SMP는 전력산업 민영화를 전제로 2001년 도입한 제도이다. 한국전력 의 발전 부문을 6개 사로 분할하고 전력거래소를 개설했다. 전력거래 방 법은 발전원가를 고정비와 변동비로 나눈 다음, 고정비는 사전에 평가한 금액으로 지급하고, 변동비는 발전 하루 전 결정한 시간대별 발전계획에 따라 지급한다. 문제는 변동비가 가장 싼 발전기부터 가동을 하는데, 매시간대별 가장 늦게 가동한 발전기(변동비가 가장 비싼 발전기)의 변동비가 SMP가 된다는 점이다.
2000년 당시 발전연료별 변동비(원/kWh)는 원자력 4원, 석탄 13원, 유류 52원, ING 87원이었다. 어떤 시간에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LNG발전 기를 마지막으로 가동하면 그 전부터 발전한 모든 발전기에도 87원을 준 다. 그러면 원자력은 83원, 석탄은 74원, 유류는 35원의 '횡재(windfall)'를 얻게 된다. 2021년의 경우 가장 비싼 LNG 발전이 SMP의 90.2%를 결정했 다. 이는 횡재가 늘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다.
- 이러한 SMP 제도는 1990년 전력산업을 민영화한 영국에서 도입했는데, 당시 영국은 자국 내에서 원자력, 석탄, 석유, ING가 다 생산되므로 장 기적으로 시장에서 균형가격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SMP를 시행하면서 여러 제도적 결함이 속출하자 결 국 2001년 폐지했다. 그런데 우리는 2001년 이 제도를 도입해 지금까지 도 운영하고 있다. 문제가 많음에도 근본적인 개폐(改)를 못하고 계속 해서 수정·보완만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전 발전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과 석탄 발전사에 횡재 가 몰리다보니 2008년에 이들의 이익을 강제로 빼앗는 '정산조정계수'를 도입했다. 2022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ING가격이 급등하 자 SMP가 290원까지 올라가 발전사 이익을 환수하는 'SMP상한제'를 마 련하기도 했다. 포스코홀딩스의 삼척블루파워 투자와 삼성물산의 에코파 워 투자(강릉)도 이러한 '횡재(!) 시스템'을 보고 결정한 것이다.
- 문제는 또 있다. 발전 하루 전 SMP가 결정되는데, 다음날 실제 발전과 차질이 생겨 보상해준 돈이 2019년의 경우 무려 1조2500억 원이나 되었 다. 이러한 비용은 앞으로 이런저런 명분을 만들어 줄일 계획이다. 시장 을 만들어 놓고 반(反)시장 행위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순수 토종 발전인 재생에너지가격도 SMP와 연동되어 있 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RPS(대규모 전력 생산 자의 재생에너지 의무 생산량)와 PPA(한전을 통한 재생에너지 거래 계약)인데, 두 제도 모두 가격이 SMP에 각종 부대비용을 부가하는 방식으로 결정되고 있다.
RPS 해당 발전사는 직접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전기를 REC(재생에너지 인증서)를 구입해서 충당한다. 1RPS가격은 'SMP+1REC'로 구성된다. 또한 기업은 RE100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PPA를 이용하게 되는데, PPA가격은 '계약단가+망이용료+ 전력산업기반 기금 + 제비용'이 된다. 이때 계약단가는 'SMP+REC'가 기준이 되고, 망 이용료는 한전의 기존 비용보다 2배 가까이 비싸게 부과된다. 이렇게 불 안정한 SMP에 연계되고 다양한 부대비용으로 재생에너지가격은 실제보 다 훨씬 비싸지게 되는 것이다.
- 그런데, 문제점이 속출하는 SMP 제도가 전력시장의 가격결정 원리로 지속되는 이유는 왜일까? 제도 도입의 전제인 발전 민영화에 대한 미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전기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위원회의 존재 목적은 전력산업 구조 개편과 공정한 경쟁질서 조성에 있다('전기사업법' 제56조). 시장감시자의 부재도 심각한 문제이다. 담당 공무원과 국회 상임위는 2년마다 교체되 니 굳이 나설 필요도 없다. 이런 가운데 복잡한 제도를 오히려 고수익 기 회로 이용하는 시장참가자들은 늘고 있다.
결국 시민단체가 철저하게 분석하고 불합리한 제도를 개혁하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구호'는 '제도'로 완성되어야 의미가 있다. 재생에너지는 반 드시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 국내 철강산업 경쟁력의 50%는 다양한 연료와 원료를 조합해 무쇠를 만드는 과정에서, 30%는 필요로 하는 철강소재의 성분을 만드는 제강에 서, 20%는 나머지 공정에서 나온다. 한국의 철강산업이 세계 최고의 경 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연료 및 원료의 투입부터 최종 제품까지 한 공장에 서 일관되게 생산하면서 공정별로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린수소가 없어 해외에서 HBI를 수입해야 한다면 철강 경쟁력의 50%는 사라지게 된다. 특히 철광석을 그린수소로 환원해 생산하는 초기에 '수소 HBI' 생산기술을 해외에 의존한다면 경쟁력 대부 분을 상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문제는, 자원보유국은 물론이고 자금을 무기로 한 종합상사들이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철광석 산지 인근의 광활한 부지에 서 태양광 전기를 생산하고, 그린수소를 만들어 수소환원제철로 쇳물에 서 슬라브까지 생산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해수담수화 기술이 발 전해 수전해에 필요한 물 확보가 쉽다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더없이 유리 한 조건이다. 반대로 우리나라 철강산업 경쟁력의 80%는 날아가게 된다. 연쇄 작용으로 국내 제철소 종사자의 절반 이상은 일자리를 위협받 게 될 것이다. 후방산업의 위축에 이어 자동차·조선·기계 등 전방산업의 경쟁력 또한 급격히 상실될 것이 뻔하다. 보통 고객사는 철강사와 자 동차 강판의 경우 신차 기획 단계에서부터 조선은 수주를 할 때부터 소 요 철강재 개발을 협의하고 시생산과 테스트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EVI(Early Vendor Involvement) 과정을 통해 고객은 최고의 제품을 가장 저 렴하고 원하는 타이밍에 공급받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강점이 사라 지는 것이다. 국내 기간산업들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 재생에너지 원년이었던 2004년 이후 19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5.8% 수준에 그치고 있다. 태양광은 물론 풍력도 국내 제조 기반과 기술 경쟁력을 대 부분 상실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재생에너지를 판매할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없으니 경쟁이 없고, 경쟁이 없으니 노력 할 필요가 없다. 노력을 안 하니 쇠락할 수밖에 없다.
- 정부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니다. 정부는 매번 전기 판매시장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PPA(전기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 제도) 등 일부 전기 판매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도 있긴 하다. 하지만 PPA마저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있고, 이 경우 한 전이 전기요금과는 별도로 전력망(grid) 이용료를 받고 있어 사실상 실적 이 없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판매시장을 활성화하려면 한전의 송·배전 전력망을 개방 하면 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한전의 민영화라고 주장하는데, 민영화 를 하라는 게 아니라 돈을 받고 민간에 빌려주라는 제안이다. 한전의 망 을 민간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 민간 발전사업자 사이에 판매 경쟁이 벌어질 것이고, 이 경쟁 속에 재생에 너지 발전량이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ESS 관련 기술도 획기적으로 개 선될 것이다. 이를테면 전기차용 배터리만 해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 술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더불어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의 질도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정부는 한전의 전력망 개방을 망 설이고 있다.

- 전기요금은 전기 '세가 아니다
전기요금은 1 기본요금, 2 전력량요금, 3 연료비조정요금, 4 기후환경 요금 등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1 기본요금은 전기공급 설비의 고정비 를 회수하기 위한 것으로, 전기를 사용하든 안 하든 내야하는 요금이다. 2 전력량요금은 사용하는 전력량만큼 내는 요금이다. 이는 다시 기준연 료비와 기타비용으로 나뉘는데, 전년도(2021년) 연간 연료비(석탄, 천연가 스, 유류) 증감에 따라 kwh당 5원까지 인상 또는 인하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2022년 3 연료비조정요금은 분기별 연료비 증감에 따라 kwh당 5원까지 인상 또는 인하해야 한다. 4 기후환경요금은 깨끗하고 안전한 전기 제공에 소요되는 비용으로 1년에 한번 조정된다. 2022년에는 kwh 당 7.3원을 부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의무구입비용(RPS), 배출권거래비용(ETS), 미세먼지가 심할 경우 석탄발전 중단 비용으로 이 뤄져 있다.
한편 소비자가 부담하는 전기요금은, 이러한 4가지 요금의 합계금액(A)에 부가가치세(A의 10%) 및 전력산업기반기금(A의 3.7%)을 더해서 책정 된다.
- 전기요금이 결정되는 과정도 중요하다. 한전 전기요금 조정안을 만들어 이사회 승인을 받아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전기위)에 신청을 한다. 이때 전기는 소비자보호전문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물가안정법' 에 의거해 기획재정부와 협의한다.
문제는 관례적으로 여당과도 협의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전기요 금이 이해집단의 요구를 감안하는 등 정치적으로 조정을 받는다. 전기요 금이 '정치요금' 혹은 '전기세(稅)'란 별칭을 갖게 된 이유다. 즉, 전기요 금은 용도에 따라 산업용, 빌딩.상가) 일반용, 교육용, 주택용, 농업용, 가 로등용, 심야요금 등 7가지가 있는데, 국회의원을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 계자들의 민원이 개입되어 한전의 요청대로 전기요금이 결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다시 한전의 재정 악화를 초래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 용한다.
- 전기의 용도별 분류 방식(용도별 요금제)은 거의 모든 나라가 대동소이한 데,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부터 채택해 적용해오고 있다. 이처럼 전기요 금의 용도별 구분이 오랜 세월 이어져온 이유는 왜일까? 한마디로 전기 요금을 정책적 수단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전기요금은 가격 말고 차별화 요소가 없다보니, 정부 입 장에서는 가격으로 정책적 배려를 하게 된다. 즉, 저소득층이나 농.어민 보호 차원으로 주택용 요금과 농업용 요금을 싸게 해주고, 물가안정을 위 해 어느 순간 인상을 억제하기도 한다. 또 에너지소비 절약을 위해 피크 시간대에 누진제를 도입하게 된다.
- 정부는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산업용 요금에도 혜택을 주 었다가, 2003년부터 2013년 동안 지속적으로 인상한 바 있다. 그리고 지 금은 오히려 주택용이나 농업용에 교차보조를 해주고 있다. 좀 더 구체적 으로 살펴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산업용 요금은 총 12회, 누계로 80.6%를 인상했다(같은 기간 주택용 요금은 6회 인상, 3회 인하 누계로 4.2% 인 하했다). 지난 2022년 10월 인상 때도 주택용은 kwh당 2.5원 올린 데 비해 산업용(고압)은 거의 5배인 11.7원을 올린 바 있다.
산업용 전기의 특징은 고압전기를 사용하므로 송·배전 원가가 저렴하 고 전기 수요(부하)가 24시간 일정해서 피크관리를 위한 발전소의 추가 건설을 줄일 수 있다. 반면 주택용은 저압으로 산업용보다 송전 손실이 많고 가가호호까지 전선을 연결해야 한다. 따라서 전봇대, 변압기, 계량기 설치비용과 유지보수비, 관리비, 검침 인건비 등이 추가로 발생하게 된다. 또한 주택용은 전기 수요가 계시별 변화가 심해서 피크에 대비한 예비 전 력발전소 건설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이들 특징을 각각 송·배전 원가에 반영하면, 산업용 원가가 주택용보 다 kwh당 10원 정도 더 낮다. 또한 산업용은 대량 수요(전체 전기사용량의 54.7%)로 인해 단위당 고정비가 주택용보다 역시 kwh당 10원 정도 저렴 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전기요금 원가가 안정 적이던 2018년 자료를 보면, kwh당 주택용은 공급원가 129.21원에 판매 단가 106.87원으로 원가회수율이 82.71%였고, 산업용은 공급원가 109.04 원에 판매단가 106.46원으로 원가회수율이 97.63%였다.
- 정부는 대체로 2010년 전까지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원가보다 싸게 공 급했다. 당시는 산업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정책적 배려로 가능했지만, 이제는 어렵게 되었다. 그럴 경우 보조금으로 간주되어 교역상대국으로 부터 상계관세(CVDs, Countervailing Duties) * 판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주택용 요금 판매단가가 산업용보다 비싸기 때문에 주택용 소비 자가 산업용에 교차보조해 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는 산업용 전기의 공급원가가 주택용보다 kwh당 약 20원 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면적인 단가보다는 원가회수율을 봐야 한다. 농업용의 경우 원가회수율이 47.43%에 불과해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를테면 국 내 건고추 유통량 가운데 40% 이상이 중국산이다. 중국산이 20년 사이 40배 증가한 것이다. 가격은 국산의 절반을 좀 넘는 수준이다. 원래 건고 추는 국내로 수입되기 힘들다. 270% 고관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런데 고관세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 고추를 냉동 상태로 들여와 해동시킨 후, 전기로 작동하는 고추건조기로 말려 건고추를 만드는 것이다. 냉동고 추관세는 27%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 요즘에는 암호화폐 채굴에도 농 업용 전기가 동원된다. 농민을 보호한다고 싸게 해준 전기요금 제도가 오 히려 농민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용도별 요금제는 지금까지 나름 제 역할을 해왔지만, 날로 부작용이 심 각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용도별 요금제를 폐지하고 원가가 제대로 반 영되는 '전압별 요금제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정책적 배려 가 필요한 부분은 전기요금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지원해주면 된다. 예 를 들어 저소득층에게는 에너지바우처 제도를 확대하고, 독일의 사례처 럼 자원재활용 산업에는 전기요금을 다 받되 그 절반 가까이를 별도로 보 조해주는 방식도 있다.

- 인류는 구리, 납(B.C. 6500), 은(B.C, 5000), 금(B.C. 4700), 주석(B.C. 3300), 철(B.C. 2100), 수은(B.C. 1500) 순으로 금속류를 사용해왔다. 이렇게 된 데 에는 원료 산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열을 높이는 기술이 결정 적으로 작용했다. 인류의 기술 진보가 열(熱)처리 기술의 과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다.
- 구리의 녹는점은 1084°C, 철은 1538°C다. 454°C를 높이는데 무려 740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열을 높이는데 석탄을 구운 코크스를 쓰 지만, 산업혁명 이전에는 나무를 가마 속에 넣어서 구워낸 목탄炭)을 사용했다.
한편, 광석에서 금속을 골라내는 야금술을 이용하는 모든 곳에 서는 어김없이 환경 파괴가 일어났다. 연료 소비는 삼림 벌채라는 심각한 문제를 유발했다. 제철소의 입지를 결정한 것은 철광석이 아니라 나무의 존재였는데, 그 이유는 먼 거리에 나무나 목탄을 운송하는 것보다 광석을 운송하는 것이 더 값쌌기 때문이었다.
- 산업혁명 이전 영국의 용광로 1기(당시 약 200m2. 현재는 5500m2 규모)가 1년 동안 소비하는 목재는 약 100만m2의 숲에 해당했다. 축구장 면적이 8,250m2이니, 1년 내내 용광로 1기를 달구는 데 축구장 121개 면적의 울 창한 숲이 훼손되었다. 결국 1574년경 51기였던 용광로가 1717년에는 14 기로 줄어들고 말았다. 계속된 삼림 벌채로 용광로에 사용할 목재를 충당 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은 서유럽, 스웨덴, 미국, 러시아에서 제련한 철을 수입하게 되었다.
금속제련으로 인한 심각한 산림 훼손은 영국 등 몇몇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8세기 중국 청나라의 왕태악(王太岳)이란 시인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노래했다.
"베어 쓸 나무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니, 죄수의 머리마냥 숲은 대머 리가 되었네. 벌거숭이가 되었네. 이제야 비로소 후회하네. 이젠 장작조차 구할길이 없어졌네."
세계적인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는 우리 시대의 고전 「총, 균, 쇠에서 숲으로 덮여 있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자멸하는 과정을 가리켜 '생태학적 자살'이라 표현했다.
"농업을 위해 개간하고, 건축을 위해 벌목을 하며, (고대의 시멘트라고 할 수 있는) 회반죽을 만들기 위해 태우는 바람에 그들 자원의 기반을 스스로 파괴하는 생태학적 자살을 저질렀다. 나무가 자라는 속도가 파괴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 코크스(C)는 구울 때 산소(O)를 얻어 일산화탄소(CO)가 되고 철과 산 소의 화합물인 철광석(Fe2O3)을 고로 내에서 녹이는 훌륭한 열원(源)인 동시에 철분(Fe)을 철광석에서 분리시키는 환원제(산소를 잃는 반응) 역할 을 한다. 즉, 코크스의 일산화탄소(CO)가 철광석(Fe2O3)의 산소(O3)를 가 져와 철(Fe)을 남기고 이산화탄소(CO2)를 발생시킨다. 이때 불안정 상태 의 일산화탄소가 안정된 이산화탄소로 전환되기 때문에 반응열이 매우 크고, 전체 산화철의 환원반응이 쉽게 일어나서 코크스가 훌륭한 열원 역 할을 하는 것이다.
목탄(C)도 공기 중에서 연소하면 이산화탄소(CO2)를 발생시킨다. 하지 만 나무는 공급이 제한적인 반면, 석탄(코크스)은 무궁무진한데다 목탄보 다 열을 더 오래 유지시켜 쇳물의 이용도를 높여준다.
다비의 성공은 쇳물 생산지를 삼림에서 석탄 지대로 이동시켜서 쇳물 생산을 획기적으로 용이하게 해주었는데, 유레카! 무엇보다도 코크스는 증기 사용을 보편화하는데 필요한 연료를 제공해주었다.
- 철강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용광로 공법의 원료이자 환원제인 코크스를 수소로 전환하는 '수소환 원제철 공법'이다(129쪽). 그러나 상용화까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당장 은 용광로에 고철 투입량을 늘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는 이미 용광로에 고철 투입 비중을 15%에서 20%까 지 올려 조업을 하고 있고, 2025년까지 30%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제철 또한 고철 사용량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용광로 공법 생산량 4900만 톤에는 고철이 735만 톤(15%) 포함되어 있 는데, 10%를 증가시키면 연 490만 톤의 고철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렇게 될 경우 철근과 형강을 생산하는 전기로에 필요한 고철은 또 어떻게 확보 할 것인가? 이래저래 고철가격이 급등할 것이 뻔하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20년 7월 말 기준 톤당 25만 원이던 고철가격은 2021 년 7월 말 기준 60만 원으로 140%나 폭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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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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