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푸드 한국사

역사 2025. 1. 22. 07:40

- 진짜 위스키는 너무 비쌌다. 또 희석식 소주에 익숙한 한국 주당들에게 위스키의 알콜 농도는 너무 높았다. 폭탄주는 이런 사장으로 탄생한 한국 주당들의 창작물이다. 80년 서울의 봄이 실패로 끝아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한국경제는 급속히 성장. 80년대 초중반 서울 강남지역은 스탠드바와 나이트클럽, 그리고 룸살롱 등 유흥업소의 전성시대였다.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곳에서 폭탄주를 돌리며 값비싼 위스키를 마셨다는 만족감에 도취. 90년 위스키 수입 자유화로 외국 정통 위스키를 맛볼 수 있게 되었지만, 이미 폭탄주에 취한 한국인은 값비싼 수입 위스키조차 맥주를 섞어 폭탄주로 남용하거나 뇌물로 주고받음. 97년 IMF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아시아에서 한국이 새로운 위스키 시장으로 부상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한국 위스키 시장 개방 초기인 91년에는 스탠다드급 위스키가 많이 판매되었지만, 90년 중반부터 프리미엄급 위스키의 판매가 급속도로 상승. 그러다 01년에 들어서면 스탠다드급의 판매가 점차 하향추세를 보이고, 대신 슈퍼 프리리엄급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며 상승추세를 보임.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전반적인 한국 위스키 시장은 와인시장에 밀려 퇴보의 길을 걸음. 알콜농도가 높은 독주가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부정적 인식이 만들어낸 결과. 여기에 기업의 접대방식이 변화한 것도 한몫했다. 더욱이 경제성장이 둔화하며 비싼 위스키는 주당들의 입맛만 당길 뿐이었다. 룸살로에서 수백만원에 달하는, 권력의 상징 같던 위스키 폭탄주 대신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이 대중적 폭탄주로 자리잡음.
2000년대 이후 국내에서 유통되는 위스키 가운데 국내산은 4%에도 미치지 못함. 나머지는 수입산. 그래도 한국의 주당들이 위스키를 즐기는 방식에 변화가 나타남. 2010년대 초반 수도권을 중심으로 위스키바가 생김. 룸사롱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위스키를 진심으로 즐기는 주당들이 위스키바를 찾기 시작. 2020년 코로나 상황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혼술 경향이 생기며 젊은 주당들이 위스키에 주목. 좋은 품질, 독특한 맛의 위시키를 찾는 매니아도 생겨났지만, 좀더 대중적으로 위스키를 즐기게 된 만큼 가성비 좋은 미국의 버번 위스키 수입이 급속하게 늘어남. 또 2020년 이후 한국의 젊은 주당들은 위스키와 탄산을 섞은 하이볼을 즐김다. 91년이 한반도에서 진짜 위스키가 법률적 시민권을 얻은 해라면, 2022년은 위스키의 진정한 맛을 아는 한국인이 탄생한 해로 기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초콜릿은 카카오 나무 열매의 씨를 볶아 분쇄한 가루와 밀크, 버터, 설탕, 향료 등을 섞어 만든 식품. 카카오 나무는 멕시코와 중미 북서부를 포함하는 메소아메리카 열대지역이 원산지. 열매는 긴 타원형으로 길이는 10-30센티. 카카오 열매는 노란색이나 짙은 갈색을 띠면 수확함. 이 딱딱한 열매 속에는 30-50개 정도의 씨앗이 들어 있다. 이 씨앗을 발효시키면, 불그스름한 갈색으로 변하며 향이 난다. 이것을 물로 씻어 건조한 후 가루 낸 것이 바로 초콜릿의 주재료다.
- 1828년 네덜란드 화학자 쿤라트 반 호텐은 카카오 열매 씨앗을 압착해 지방성분인 카카오 버터를 분리해 내는 기계를 발명. 그렇게 하면 초콜릿의 지방함량을 낮추고 가루를 쉽게 얻음으로써 그 가루를 덩어리로 뭉칠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는 알칼리염 처리를 해 초콜릿의 떫은 맛을 줄이고 더 진한 색을 띠게 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에도 유통되는 네덜란드식 초콜릿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식 초콜릿의 상품화는 1847년 영국인 조셉 프라이가 프라이스 앤드 선이라는 회사에서 대량생한하면서 시작됨. 이후 유럽과 북미에서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을 만들어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초콜릿이 세상에 나왔다. 20세기에 들어 초콜릿은 대량생산의 길을 걸었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다국적 기업의 등장으로 지구촌 구석구석 초콜릿이 퍼져나감.
초콜릿의 지구사를 펴낸 사라 모스와 알렉사더 바데녹은 20세기 초콜릿 광고가 여성성, 포르노그라피, 건강과 영양, 어린이, 단란한 가정 등의 이미지를 주로 사용하여 초콜릿을 이상화했다고 보았다. 이 광고들 속에 검은 그림자, 곧 인종, 이국정서, 노예라는 이미지가 판타지로 묘사되었음을 분석. 헨젤과 그레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심슨 가족과 같은 동화, 영화, 드라마에 그려진 초코릿의 이미지는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불공정무역과 노동착취를 숨기는 장치로, 혹은 그러한 그림자에 빛을 던져주는 도구였다. 한국 기업의 초콜릿 광고에도 이런 양상은 적지 않음. 아프리카 카카오 열매 생산지인 가나가 마치 유토피아처럼 느껴지도록 유도하는 광고가 한때 인기를 누린 것처럼 말이다.

- 커리의 지구사를 쓴 콜린 테일러 센은 지구촌 곳곳에 존재하는 커리를 단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자고 밝혔다. 그래도 정의를 내린다면, 커리는 '향신료를 넣은 고기, 생선, 또는 채소로 만든 스튜로, 밥과 빵, 옥수숫가루를 비롯한 탄수화물 음식과 함께 먹는다'라고 규정. 이 정의대로라면 향신료가 들어간 모든 음식을 커리라 할 수 있지만, 커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향신료를 쓰느냐가 중요. 센은 커리나무의 잎이나 강황, 커민씨, 코리앤더씨, 고추, 호로파를 섞어 만든 가루로 맛을 낸 모든 음식을 커리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 2000년대 이후 인도를 방문하는 한국인이 증가하며 카레라는 이름도 커리로 바뀌어 감. 21년 3월 한 식품회사에서는 인도의 델리와 마드리스, 타이의 유명한 커리들을 레토르트 제품으로 내놓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전자렌지에 1분만 돌리며녀 바로 먹을 수 있는 이 제품은 국내 카레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음. 그러자 기존 카레시장을 독점해 오다시피한 기업에서도 본고장의 맛에 가까운 커리제품을 시장에 출시. 22년 현재 한국의 커리시장은 어느 업체의 제품이 본고장의 커리맛에 가까운가를 두고 경쟁중이다.
80년대 이후 음식의 역사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가 해체된 후에 오히려 식민지 음식이 제국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있음을 증명하기 시작. 가장 대표적 사례가 커리다. 인도 사람들이 외국으로 나가면서 커리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 영국인이 만들어낸 커리파우더는 북미와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본으로 전해짐.
60년대부터 한국 사회는 일본식 카레를 한국식으로 바꾸어갔다. 이 과정에서 카레국수, 생선카레튀김, 카레참치캔, 카레치킨 프라이드 등이 개발됨. 그려나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인은 인도아대륙과 동남아 본고장 커리 맛에 푹 빠져 있다. 미국 민속학자 루시 M 롱은 국제적 관광이 확장될수록 사람들은 관광지에서 맛보았던 음식을 귀국후에도 먹고 싶어 한다고 보았다. 2010년대 이후 한국 커리시장의 변화는 해외여행을 통한 한국인의 타 문화 경험이 가져온 결과다. 본고장의 커리맛을 알고 즐기는 사이에 한국식 카레의 자취도 엷어지고 있다.

- 독일의 한 소비자 데이터 분석기업은 2018년 기준 전 세계 도시 중 바게트, 식빵, 롤빵 같이 반죽을 부풀려 만든 로프르레드 1키로당 값이 가장 비싼 도시로 서울을 꼽츰. 서울의 1키로당 빵값이 15.59달러인 데 비해, 파리는 6.33달ㄹ, 홍콩은 4.16달러였다. 왜 서울 빵값이 세게에서 제일 비쌀까? 빵 재료 대부분을 수입하기 때문. 하지만 밀과 설탕을 수입하는 홍콩도, 심지어 도쿄 현의점에서 판매하는 빵값도 서울보다 훨씬 싸다. 몇몇 대기업이 빵집 프랜차이즈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과 빵은 한국인의 주식이 아니라서 정부의 물가통제 대상에 들지 않는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 수 있음. 
- 밀가루 외에도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효모다. 효모를 넣으면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먹기 좋게 됨. 빵을 부풀리는 방법은 역사상 세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강한 열을 반죽에 가해 반죽에서 나오는 증기로 부풀리는 방법. 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만든 빵이 플랫브레드다. 
다른 하나는 공기중 젖산균을 이용해 자연적으로 발효시키는 사워도 발효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스트 발효법이다. 사워도 발효버과 이스트 발효법을 이용해 만든 것이 로프브레드다.
빵의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고대 이집트에서 보리술을 만들며 생긴 박테리아가 제빵사에게 전해져 사워도 발효빵이 만들어졌다고 추정함. 19세기 후반까지 유럽의 제빵사 대부분은 보리술, 그중 에일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침전물에서 이스트를 구해 밀가루나 곡물가루의 반죽에 넣어 빵을 부풀려 구워냈다.

- 차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전분음식과 비전문음식을 한꺼번에 먹는 식사방식을 가진 한국인에게 식후 짠맛을 상쇄해주는 음료는 본래 숭늉이었다. 70년대 말 이후 전기밥솥이 널리 보급되며 더는 가정에서 숭늉을 만들 수 없게 됨. 그러면서 숭늉의 자리를 커피, 그중 커피믹스가 대신하기 시작. 숭늉에서는 탄수화물에서 나온 포도당의 단맛과 탄맛이 나는데, 커피믹스 역시 단맛과 탄맛이 난다.
이것이 커피믹스가 숭늉을 대신할 수 있었던 이유. 그러나 단맛이 없는 차는 '밥+탕+반찬'의 식사를 하는 한국인에게 식후 음료로 적당하지 않음. 이것이 한국인이 커피와 달리 차를 가까이 하지 않는 이유중 하나다.
2010년대 이후 해외여향을 하거나 해외에 머물며 다양한 차를 마셔본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차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음.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외국차의 소비를 지속하고 있음. 또 그즈음 단맛이 아는 홍차를 비롯해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의 블렌딩티가 한국에 들어옴. 하지만 2020년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차는 한국인들로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잇음. 그 이유 중 하나는 커피에 대한 한국인의 엄청난 열정이다. 차는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글로벌 푸드다. 하지만 한국의 차는 재배지가 좁고, 조선시대 성리학에 밀렸고, 20세기 이후 커피와 산업음료에도 밀리며 여전히 식탁의 가장자리에서 겨우 버티는 중이다.

- 202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은 마라의 맛에 푹 빠져 있다. 마라는 고추, 후추, 천초, 이 세가지를 적절하게 조합. 마라의 매운맛 중 '마'의 맛은 천초와 후추에서, '라'의 맛은 고추에서 나옴. 또 마라탕에는 진피, 초마, 초장, 강즙, 산향, 마장, 개말같은 매운맛 향신료와 조미료도 들어 있음. 2000년대 후반 중국 마라탕은 서울 베이징식 중국음식점과 중국교포가 운용하는 꼬치구이집에서 판매되기 시작. 핫소스와 불닭의 매운맛에 매료되어 있던 한국의 젊은이들은 익숙지 않은 향신료가 가득한 마라탕을 예상보다 쉽게 받아들임. 미국식 핫소스인 스리라차의 매운맛도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음. 

- 콜럼버스를 비롯해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산물 대부분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유럽을 비롯한 아프맄, 아시아에까지 전파됨. 아메리카 대륙의 산물은 어느 특정한 시기에 어느 특정한 산물이 전파되었다고 보아서는 안됨. 곧 다양한 전파경로와 과정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짐. 이런 점에서 한국고추를 비롯호 전 세계의 각종 칠리페퍼에 관한 식물학적 연구가 이 논쟁에 앞서 제시되어야 함. 칠리페퍼의 야생종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널리 발견됨. 한국고추의 한반도 자생설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한국고추의 야생종이 한반도에서 발견되어야 함. 그리고 유전학적 연구를 통해 칠리페퍼의 식물학적 계통을 밝히고, 한국고추가 아메리카 대륙의 칠리페퍼와 서로 다른 유전학적 계통임이 검증되어야 할 것임.
- 청양고추는 83년 중앙종묘에서 개발함 품종. 중앙종묘는 커리 제조에 필요한 캡사이신 추출용으로 타이 재래종과 제주도 재래종을 잡종교배하여 신품종을 개발했는데, 예상보다 캡사이신 추출률이 높지 않아 경제성이 떨어졌ㄷ. 중앙종묘는 이 품종을 버리기 아까워 시험재배에 참여한 경북 청송과 영양 농민들에게 무료로 씨앗을 주었다.
농가에서 재배한 청양고추의 풋고추를 인근 횟집에 제공했는데, 횟집에서 매운탕에 넣었더니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다. 이 사실이 중앙종표에 알려져 신품종 고추는 청송과 영양에서 따온 청양고추라는 이름을 판매되기 시작. 그러나 중앙종묘는 97년 IMF로 이듬해 멕시코 종자회사 세미니스에 인수됨. 세미니스는 다시 미국 몬산토에 넘어감. 오늘날 청양고추의 재산권은 몬산토에 있다.

- 20세기 100년 동안 한국인의 식탁은 고추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그 품종도 다양해졌으며, 매운 정도도 그 전에 비해 훨씬 강해짐.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식재료의 신선도와 다양한 조리법을 매운맛의 고춧가루로 덮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더욱이 70년대 외식업의 성장은 한국음식의 매운맛을 더욱 강화. 심지어 멕시코의 핫소스를 응용한 새로운 외식업이 소비자의 입맛을 자극하면서 20세기 말에는 새로운 매운맛의 시대가 열림. 돌이켜보면 식민지기 의학자들이 제기했던 고추의 다량식용문제는 오늘날 한국음식에서 크게 개선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 고추와 달리 후추, 정향, 육두가, 석란육계는 수입에 의존. 이 가운데 석란육계는 여성 냉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수요가 늘어났지만, 수입이 쉽지 않았다. 60-70년대에는 석란육계를 비롯해 후추까지 정부가 나서서 수입을 금지. 외화유출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시나몬커피가 유행하며 석란육계 수입이 증가. 이런 현상은 수입상과 다국적기업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임. 
2000년대 들어서도 외국향신료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남. 한 식품업쳬 관계자는 소비유형의 서구화와 퓨전화가 가속화되며 국내 향신료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리라 예측했는데, 그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 백화점과 마트의 향신료 전문매장에서는 외국의 향신료뿐 아니라, 직접 제조한 다양한 향신료를 판매하고 있음. 이는 2000년대 이후 매년 국내 향신료 시장이 20-30% 성장한 결과임.
한국의 식품시장에서 향신료가 중요상품으로 잡았다. 90년대 이후 해외여행이나 해외거주경험이 있는 한국인이 많아지며 세계 향신료 시장에 한국인의 식탁이 포섭되기 시작한 결과. 조선시대 약재로 여겨졌던 후추, 정향, 육두구, 석란육계 등의 다양한 향신료를 이제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향신료의 지구사의 저자 프레드 차라는 '이제 집과 슈퍼에 있는 향신료를 비롯한 다른 식품의 포장용기를 확인해 보라. 음식점에서 식사할 때는 향신료 재료를 물어보고 인터넷에서 향신료 산지가 어디인지, 각각 고유한 역사를 지닌 이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검색해 보라'고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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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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