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교환의 세계(상)

저자
페르낭 브로델 지음
출판사
까치 | 1996-03-0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페르낭 브로델의 자본론으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하여 살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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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노동으로의 전환은 그 경제적 동기나 이득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일정한 사회적 타락을 동반했음. 18세기에는 수많은 파억이 일어났고, 노동자들이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는 데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음. 장 자크 루소는 이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음. "만을 그들을 화나게 하면 그들은 곧 짐을 싼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 가버린다." 이런 민감성, 이런 사회의식은 대산업의 전제조건이 성숙되고 나서야 비로소 탄생한 것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 행상이란 대단히 적응력 있는 체제임. 상품 배분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행상이 거듭 살아나곤 하는 것임. 밀수, 절도, 장물 취득과 같은 암거래 활동이 늘어나거나, 혹은 경쟁과 감시가 느슨해지고 일반적 상업형태가 취약해 질때면 행상이 살아나는 기회가 됨.

- 최근에도 40~45년 동안 굶주림에 시달리던 프랑스에서는 암시장과 함께 비정상적 행상들이 다시 폭증. 러시아에서도 힘들고 분쟁이 많고 소통이 불완전했던 1917~22년의 시기에는 이전 시기처럼 떠돌이 중간상인이 다시 등장했음

- 언제나 행상이란 성스러운 기존 시장질서를 우회함으로써 현재 탄탄히 자리잡고 있는 권위를 비웃는 것이기 때문.

-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상업활동의 중심지가 피아첸차 정기시였다가 그 다음에 곧 암스테르담 거래소가 새로운 중심지가 됨. 정기시에 대한 거래소의 대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거래소는 거대한 자본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상품의 움직임 또한 아주 높은 곳으로부터 지배했음.(아시아의 후추와 향신로, 발틱해 연안 지역의 곡물과 기타 산물 등) 정기시는 어느시대에나 존재했고, 18세기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상품이 집중하는 중심지로 남아 있었음. 상품은 그곳에서 저장됨.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이미 파국적 양태를 보이던 도시가 한층 더 커지고, 소비 수준이 서서히 개선되면서, 도매상업은 더 발전하게 되었고 그래서 정기시의 경로를 벗어나서 독자적 방식으로 조직되기에 이름. 이런 독자적 조직은 저장고, 곡물창고, 창고, 보세창고 등의 중개를 통해서 마치 상점과 유사한 규칙성을 가지게 됨으로써 점차 쇠퇴해가던 정기시의 활동을 대체

- 서양 발전의 핵심을 두가지 들라면 첫째, 상부에서 여러 교환도구가 발달한 것이고, 둘째 18세기에 여러 수단과 방법이 증가한 것.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어땠을까? 유럽과 가장 거리가 먼 경우는 중국으로서 이곳에서는 제국의 행정이 경제의 계서화를 가로막았음. 단지 효율성 있게 돌아가는 것은 하층의 읍 및 도시의 상점과 시장 뿐이었음.

- 상업순환을 완수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며, 상품대 상품, 나아가서 상품대 금속화폐와 교환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님. 이 때문에 환어음을 쓸 수밖에 없고 또 실제로 그것이 정규적으로 쓰이게 되었음. 원래 환어음은 결제수단이었으나, 교회가 화폐 이자를 금지하는 기독교권에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신용수단이 되었음. 결과적으로 이렇게 해서 결제와 신용이 긴밀히 연결되었음.

- 가장 진보해 있고 가장 산업화되어 있는 직물 분야에서는 유행과 사치가 수요를 지배했음. 15세기 말에 부자들은 금과 은을 넣은 직물을 버리고 비단을 선택. 비단이 보급되어 어느 정도 대중화되자 사회적 상승을 나타내는 표시로 작용하게 됨. 그리고 나중에 유럽 전역에서 견직업이 발달하기 전에 100년 이상이나 이탈리아의 견직업이 크게 번성했음. 그후 17세기말 수십년간 영국식 직포가 유행하면서 다시 모든 것이 변화했음. 다음 세기에는 염색한 직물, 즉 나염 면직물이 폭발적 인기를 누림. 이것은 처음에는 인도로부터 수입하다가 유럽 스스로 모방해서 만들게 되었음.

- 오늘날 영국의 역사가들은 산업혁명의 시작을 1750년이나 심지어 그보다도 한세기 전까지 소급함.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시대의 시작을 16세기로 잡았음.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첫번째 희미한 윤곽은 일찍이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음. 탄생중인 어떤 체제는 그 체제가 앞으로 가지게 될 모든 특징들을 다 발전시키지는 못했다고 해도 그 안에 잠재적 발현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 체제의 이름은 이미 이때에도 합당한 것임.

- 15세기에 제노바의 사업가들이 시칠리아에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제조용 물레방아를 설치한 것도, 16세기 툴루즈 대상인들이 자기 고장에 파스텔 염료의 산업적 재배를 시작한 것도, 그 다음 세기에 보르도 지역이나 부르고뉴 지역에서 포도재배가 크게 신장되고 그 수익 중 큰 몫이 보르도나 디종의 고등법원 의장 및 자문위원들에게 돌아간 것 등이 모두 수익성 좋은 외부 시장의 수요를 겨냥한 것들임. 그 결과 업무와 역할의 분업이 이루어지고 자본주의적 경영망이 생기게 됨.

- 선대제의 망은 수공업 생산을 변형시키지는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그것을 지배하려고 하는 상업자본주의의 부인할 수 없는 첫번째 특징임. 상인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관심을 가졌던 것은 판매였음. 그렇게 파악해보면 선대제는 상인이 생산을 자기에게 예속시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영역에 확대될 수 있음. 이 시스템이 번성하는데에는 기술의 일반적 발전, 수송의 가속화, 전문업자에 의해서 조종되는 자본의 축적 그리고 마지막으로 1470년대 이후 독일 광업의 비약적 발전 등 모든 요소들이 유리하게 작용했음.

- 몇가지 예외는 있지만 자본가들 (다시 말해서 다양한 활동을 무차별적으로 행하던 대상인들) 은 생산에 전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님. 그들은 결코 대지에 두 발을 굳건히 박은 지주가 아니었음. 그들이 간혹 지대수취인인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진짜 이익을 얻고 신경을 쓰는 곳은 다른 곳임. 이들은 또 자기 일에 갇혀 있는 수공업 작업장의 주인이나 수송업 경영자 같은 사람이 아니었음. 이러한 사업가들 중에 누군가가 배를 한 척 소유하든가 혹은 배의 일부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또 선대제를 가까이에서 통제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참된 그의 모습과 관련을 가질 때에 한정되어서의 일임. 그의 참된 모습이란 시장, 거래소, 상업망 긴 효관의 연결망 등에서 찾을 수 있음. 다시 말해 분배야 말로 이익을 내는 참된 분야인 것임.

- 간단히 말해 자기 영역(교환의 영역) 이 아닌 곳에 자본주의가 침투한 것은 그 자체로는 정당화가 안됨. 단지 상업의 필요성이나 이익에 따라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생산에 손을 댔음. 자본주의가 생산영역에 침입하는 것은 기계 사용이 생산의 조건들을 변화시켜서 산업도 이윤의 확대가 가능해진 영역이 된 산업혁명기에 가서야 일어남. 이때 자본주의는 그런 것에 의해서 크게 변형되고 나아가서 확대됨.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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