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저자
페르낭 브로델 지음
출판사
갈라파고스 | 2012-03-1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역사학의 거장 브로델이 보여 주는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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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까지는 인구가 거의 근접할 수 없는 원에 갇혀 있는 양상. 만약 인구가 늘어나 그원둘레에 닿기라도 하면, 인구는 거의 즉각적으로 성장을 멈추고 다시 줄어듬. 인구를 다시 균형점으로 돌려놓는 방식과 기회는 아주 많았음. 궁핍과 물자부족에 더하여 기근이 드는가 하면, 하루하루 먹고살기 어려운 마당에 전쟁이 터지기도 했음. 그리고 무엇보다 질병이 오래도록 만연. 질병은 오늘날에도 발생하지만 예전에는 묵시록적 참상과도 같았음. 즉 18세기까지 주기적으로 창궐하는 흑사병이 유럽을 떠나지 않았고, 겨울이면 찾아오는 발진티푸스는 러시아 깊숙이 진격한 나폴레옹 군대를 가로막음. 장티푸스와 천연두도 끊이지 않는 질병이었고, 촌락에서 먼저 나타났던 결핵은 19세기 들어 수많은 연인을 사별하게 하는 애달픈 질병으로 도시를 휩씀. 그리고 성병, 특히 아메리카 대륙발견 이후 다시 고개를 든 매독은 다양한 미생물과 결합하며 폭발적으로 창궐. 이 모든 악조건을 열악한 위생과 불결한 식수가 더욱 부추겼음.
- 밀을 경작하면 땅의 양분이 금세 고갈되어 정기적으로 땅을 쉬게 해주어야 함. 이 때문에 가축을 사육할 여유가 생기고 그와 같은 다른 일이 필요하기도 했음. 소와 말 같은 가축과 가축에 걸어쓰는 쟁기, 멍에, 수레가 없는 유럽의 역사는 상상할 수 없음. 쌀은 정원을 가꾸듯이 종사를 지어야 해서 집중적 노동이 필요. 따라서 쌀을 경작하는 문화에서는 인간이 가축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음. 아마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에는 옥수수가 가장 편리하고 수월한 곡물이었을 것임.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그만큼 여가를 활용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농부들이 부역에 동원되었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처럼 어마어마한 기념물을 건설하게 됐던 것.
- 15세기, 특히 1450년부터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추세를 보임. 이 시기에 농산물 가격은 정체되거나 내려가는 반면, 공산품 가격은 올라가는 덕분에 도시가 농촌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 이 시기 경제회복의 동력이 수공업 장인들의 상점, 좀더 적절히 표현하면 도시권 시장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음. 주도권을 행사하는 곳은 이들 도시권 시장이었음. 즉 경제생활의 밑바닥부터 경제가 회복되었음. 회복세에 돌입한 경제는 16세기 들어서면서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복잡해짐. 우선 예전의 상승속도를 회복한 것 자체가 문제였음. 흑사병 이전의 13~14세기는 경제가 속도를 더해가며 성장하던 시기였는데, 경제가 이때의 성장속도까지 올라섬. 여기에 더하여 대서양 경제가 확대되면서 경제 메커니즘이 복잡해짐.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은 국제 정기시 몇곳이 주도(안트베르펜, 네덜란드 베르헌옵좀, 프랑크푸르트, 스페인의 메디나델캄포, 리옹 등)
- 결론적으로 16세기의 활발한 상승세는 경제의 최상층인 상부구조가 번창한 덕분. 또한 때마침 아메리카에서 귀금속이 유입된 데다가 엄청난 규모의 어음과 신용을 빠르게 회전시키는 어음교환 및 재교환 시스템이 이 상부구조를 더욱 부풀림. 제노바 은행가들의 걸적인 이 금융시스템은 1620년대 수많은 요인들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붕괴됨.
- 17세기로 들어서면 경제생활의 활력이 지중해에서 광활한 대서양으로 이동. 모든 역사가들의 견해가 일치하는 점은 경제활동이 금융거래에서 다시 상품거래, 즉 기초적 교환으로 대거 복귀함으로써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 이러한 흐름에서 덕을 본 측은 네덜란드와 그 선단,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거래소였음. 동시에 정기시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거래소와 상거래 중심지의 영향력이 확대됨. 사실 17세기는 소매상점이 광범하게 번성했던 시기이기도 함. 이것 역시 지속적 흐름이 거둔 승리임. 유럽 곳곳에 생겨난 소매상점들이 촘촘한 유통망을 만들었음.
- 18세기는 경제전반이 가속적으로 팽창하던 세기였음. 그 무렵 암스테르담은 자금을 융자해주는 커다란 국제금융센터로 전문화해가고 있었는데, 런던이 이러한 암스테르담의 기능을 모장하고 따라잡으려고 나섬. 그리고 제노바와 제네바가 이 위험한 게임에 뛰어듬. 파리도 활기를 띠면서 이러한 추세를 따라감. 이러한 상거래 중심지들 사이에 화폐와 신용이 점점 자유롭게 흐르게 됨. 이러한 여건에서 정기시는 위축됨.
- 중국에는 상점과 행상들이 넘쳐날 정도로 많았는데, 시장 메커니즘의 상위에 있는 정기시나 거래소는 거의 없다시피 했음. 몇몇은 있었지만 부수적인 역할에 머물렀고, 몽골과 접한 변방이나 광둥에 위치. 이러한 위치선정은 외국상인들을 배려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들을 감독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음. 어쩌면 중국 정부가 이와 같은 교환의 상위 형태에 적대적이었을수도 있음. 아니면 모세혈관과도 같은 기초적 시장의 유통만으로도 중국경제가 돌아가기에 충분해서 동맥과 정맥이 필요없었으맂도 모름. 이 두가지 요인 중 어느 하나 때문이든 아니면 둘다 때문이든 중국의 시장 교환 메커니즘은 결국 꼭대기 층이 없고 바닥에 평평하게 퍼진 모양이었음. 이것이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됨
- 일상적인 물질생활의 거대한 바탕위에서 시장경제는 자신의 그물망을 펼쳐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유지했음.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러한 본연의 시장경제라는 바탕위에서 자본주의가 번성
- 시장이 발휘하는 경쟁의 효과를 인정하더라도 무엇보다 시장은 생산과 소비를 잇는 불완전한 연결장치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 적어도 시장이 부분적이라는 점에서 그러함. 시장경제가 장점도 있고 중요하지만, 시장경제가 모든 걸 좌우하지는 않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최근까지도 경제학자들의 논리는 시장경제의 도식과 교훈을 유일한 전제로 여기고 있음. 튀르고는 유통을 경제생활의 전부로 보았음. 한참뒤에 리카도 역시 시장경제라는 빠르게 흐르기는 해도 좁다란 물줄기만을 보았음.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경험의 가르침 덕분에 자유방임이 자동적으로 미덕을 행한다는 생각을 버린지 50년이 지났지만, 자유방임이라는 신화는 여론과 정치토론에서 여전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
- 구체제의 경제를 분석한 수치를 보면, 한해동안 노동해서 얻는 생산량과 투입된 자본재 스톡의 비율은 1대 3~4정도 수준. 이 비율은 케인즈가 20세기 사회에 대해 파악한 비율과 거의 같음. 그러니까 사회는 3~4년간 노동한 양에 해당하는 고정자산을 쌓아두고, 이것을 활용하여 생산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는 의미.
- 세계 모든 나라에서 규모가 큰 도매상 집단이 일반상인 집단과 확연히 구분되어 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님. 또 이 집단이 소수에 머무는 한편, 다른 활동도 많이 겸했지만, 언제나 원거리 무역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님. 이러한 현상은 14세기 독일과 13세기 파리에서 나타났고, 이탈리아 도시들의 경우 12세기 혹은 그보다 더 일찍부터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 서구에서 최초의 도매상들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이슬람 세계에서는 수입과 수출을 병행하는 타이르라는 무역상이 존재했으며, 자기 집에서 대리인과 중개상을 지휘.
- 기능이 세분화되는 과정, 그렇게 진행된 근대화 과정은 애초부터 수직적 위계의 밑바닥에서만 나타났음. 각종 기능적 직업이나 소매상은 물론, 심지어 행상들까지도 전문화가 진행되었음. 하지만 수직적 위계의 꼭대기에는 전문화라는 것이 없었음. 왜냐하면 19세기까지 최상위 상인들은 어느하나의 활동에 국한된 적이 없었기 때문. 그들은 상인임과 동시에 상황에 따라서 선주이기도 했고, 보험업자이기도 했으며 돈을 빌려주는 대부업자, 돈을 빌리는 차입자, 여신자와 차입자를 중개하는 금융가, 은행가이기도 했음. 이에 더하여 산업활동에 뛰어드는 기업가이기도 했고, 농장의 경영주이기도 했음.
- 상인이 전문화하지 않은 이유
(1) 그가 손댈 수 있는 분야 중 어느하나도 그의 활동을 전부 소화해줄 만큼 푸짐하지 못했음
(2) 큰 이익이 나는 부문이 계속 변화
(3) 상인들이 이따금 상거래에서 전문화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분야는 금융거래였음. 그러나 금융거래에서 거둔 성공은 오래간적이 없음. 19세기에 들어서야 은행업계가 산업과 상거래 양쪽을 다 장악하게 되고, 경제전반이 금융이라는 구조물을 확실하게 떠받칠 수 있을 만큰 충분한 활력을 획득.
- 근대국가는 자본주의를 만들어낸 모태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물려받았을 뿐. 그래서 자본주의에 우호적일 때도 있었고, 적대적일 때도 있었음. 또 자본주의가 팽창하도록 버려두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했음. 자본주의는 국가와 한몸을 이룰때만, 즉 자본주의가 국가가 될 때에만 승리함.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등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자본주의가 처음으로 크게 성장할 때 권력을 쥔 사람들은 돈 많은 엘리트 층이었음. 잉글랜드도 1688년 명예혁명 후에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상인들의 권력진출이 부분적으로 일어남. 프랑스에서는 이보다 1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1830년 7월혁명에 이르러서야 상인 부르주아지가 정부안에 자리잡음.
-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성공하려면 일정한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함. 사회적 조건이란 사회적 질서가 어느정도 안정적이어야 하고, 국가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어느정도 중립적이거나, 아니면 허약하거나 호의적이어야 함
-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는 밤의 손님임.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을 때 자본주의가 당도함. 수직적 위계라는 문제 자체는 자본주의 너머의 문제이고,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문제이며, 자본주의가 출현하기에 앞서 존재하며 자본주의를 통제했음.
- 1650년경의 유럽 경제계를 보면 여러 성격의 사회가 병존. 이미 자본주의 사회로 진화했던 네덜란드에서부터 맨 밑바닥으로 가면 농노제 혹은 노예제 사회에 이르기까지 이질적인 사회가 공존. 이런 공시성은 우리가 고려하는 모든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함. 사실 자본주의는 이러한 규칙적 위계형성에서 활력을 얻음. 외곽의 주변부가 중간지대를 먹여살리고, 무엇보다 중심부를 먹여살리면서 세계의 불평등을 만들어냄. 또한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국제경제차원의 공모가 필요하며, 자본주의는 매우 드넓은 공간을 권위주의적으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탄생.
- 국민경제는 물질생활의 필요와 혁신을 반영하여 국가가 정치적으로 만들어낸 통일되고 응집된 경제공간임. 그래서 그 공간의 활동이 한꺼번에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됨. 영국만이 일찌감치 이런 위업을 달성. 농업혁명, 정치적 혁명, 금융혁명, 산업혁명 이외에도 국민시장을 만들어낸 혁명이 있었음.
- 자본주의는 언제나 독점적이었음. 그리고 상품과 자본은 늘 같이 돌아다녔고, 자본과 신용은 항상 외부시장을 공략하고 통제하는 가장 확실한 시장이었음. 20세기에 들어서기 오래전부터 자본수출은 일상적 현상이었음. 피렌체에서는 13세기부터, 아우크스부르크와 안트베르펜, 제노바에서는 16세기부터 자본수출이 횡행했으. 18세기에 자본은 유럽과 세계를 휘젓고 다님. 금융의 세계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 술수가 1900년이나 1914년에 이르러서야 출현한 것은 아님.
- 영국의 기술혁명과 최초의 대량생산이 그 옛날 18세기말과 19세기 초에 활발하게 펼쳐질 수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경이로움. 산업혁명의 동력이 어느 구석에서도 멈추어서지 않고, 어느 길목에서도 병목현상이 일어나지 않은채, 나라 전체가 환상적 성장을 연출함. 농촌에서 노동력이 빠져나갔지만, 농촌의 생산력은 그대로 유지되었음. 새로 등장한 산업가들은 노동력을 구했으며, 내수시장은 물가가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 그 뒤를 좇아 기술이 발달하면서 필요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 해외시장이 꼬리를 물고 차례로 열림. 게다가 이익률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특히 면직물 산업의 이익률은 최초 호황에 뒤따라 큰 폭으로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가 유발되지 않음. 경제위기를 피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거대하게 축적된 자본이 영국 밖으로 나갈 곳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점도 있었고, 면직물에 이어 철도 산업이 새로 나타나 성장이 지속되었다는 점도 있음. 결국 산업혁명이 촉발되고 나서 등장하는 산업자본주의라는 것의 실체를 시장경제와 기초적 경제의 힘과 활력이 뒷받침해준 것.
- 최악의 오류는 자본주의를 경제시스템이라고만 여기고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자본주의는 사회질서를 이용해 생존하고, 애초부터 육중한 상대자였던 국가와 거의 대등한 지위에서 맞서기도 하고 공모하기도 하는 존재임. 또 사회구조를 지탱해주는 문화의 역할도 이용함. 왜냐하면 문화란 것이 서로 상충하는 조류로 나뉘고 불평등하게 분포하더라도, 종국적으로는 기존 질서를 떠받치는 것이 그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 자본주의는 또한 여러지배계급과도 결탁함. 지배계급은 자본주의를 방어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게 됨.
- 자본주의는 물질생활과 시장경제를 자신의 존재기반으로 깔고 앉아 독점으로 높은 이익을 추구하는 무언가의 활동. 그러기 위해 기존의 사회질서와 위계, 국가, 문화 등 온갖 영역에 침투하여 무언가의 사회적 구조물을 만들어 그와 결합해 존재하는 실체임. 지금까지 여러 가지 사회적 구조물 혹은 사회시스템을 아무리 살펴봐도 그 구조 자체를 정의해서는 자본주의란 괴물의 실체를 정의하기는 어려움. 더욱이 물질생활과 시장경제가 변해가는 추세에 맞추어 자본주의는 새로운 모습을 드러낼 것임. 또 자본주의가 만들어갈 사회적 구조물도 그에 따라 변할 것임. 그러니 자본주의는 그러한 구조물을 형성하고 지배하는 무언가 사회 최상층의 존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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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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