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인문 2014. 10. 30. 21:45

 


장인

저자
리처드 세넷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0-08-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장인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우다!2006년 헤겔상,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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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생각에는 요리사든 프로그래머든 훌륭한 장인은 문제를 해결하는데만 열중한다고 짐작하기 쉬움. 즉 주어진 과제의 해결책을 찾아 문제를 마무리하는 게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임.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일에 임한느 장인의 입장에서는 일을 일 자체로 중시하는 태도가 아님. 리눅스 공동체 네트워크에서는 버그 하나가 제거될 때마다, 전에 없던 코드 활용 방법이 새로 등장할 때가 많음. 코드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지, 마무리돼서 고정되는 대상이 아님. 리죽스 세계에서는 문제를 푸는 일과 문제를 찾는 일이 거의 순간적으로 이어짐.
- 사회학자 라이트 밀스가 말한 장인의 특징
(1) 일에 몰입한 작업자는 일의 내용과 목적이 혼연일체를 이룸
(2) 일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만족이 그들이 받는 보상
(3) 하루하루의 갖가지 세부사항들은 매일 그의 머릿속에서 최종 생산물로 그려짐
(4) 작업자는 일할 때의 자기 행동을 직접 통제할 수 있음
(5) 일하는 과정중에 기능이 향상됨
(6) 일 자체를 실험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자유
(7) 가족이나 공동체로 말미암은 문제 또는 정치적인 문제가 생기더라도 실기작업에서 오는 내면의 만족, 일의 일관성과 실험이 모든 판단이 잣대가 됨
- 신문잡지에 나오는 풍자화에서는 일본인이 집단에 순응하며 남들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으로 묘사될 때가 많음.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과는 달리 도요타와 스바루, 소니의 작업현장에서 작업한 일의 내용을 놓고 서로 비판하는 일본인의 태도는 아주 날카로움. 일본의 일터에는 수직적인 위계가 분명하기는 해도, 앞서 언급한 공장들에서는 리눅스의 공동체처럼 솔직한 발언이 일상화되어 있음. 일본의 공장 안에서는 유능한 관리자가 예의와 격식에 신경 쓰지 않고 잘못된 일이나 충분치 못한 작업을 곧바로 경영진에 전달할 수 있었음.
- 어떤 실습이든 한가지 행동을 하고 또 하고 계속 되풀이 할 때 스스로 깨닫는 단계가 찾아옴. 이러한 반복과정에서 문제를 알아보고 스스로 교정하는 자기비판 능력이 생기기 때문. 현대 교육은 지루하고 효과도 없다는 이유로 반복학습을 꺼려함. 현대 교육학으로 무장한 교사는 혹시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항상 새로운 자극에 노출시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오히려 아이들이 자기것으로 체득하는 데 필요한 실습과 실습 내용을 바꿔보는 경험을 박탈하게 됨. 기능이 발달하는 과정은 어떤 방식으로 반복하느냐에 달려 있음. 바로 이 때문에 운동도 그렇지만 음악에서도 한번에 얼마나 연습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함. 예를 들어 한 작품을 반복연주하는 횟수는 그 사람의 기능단계에 따라서 달라지는 주의지속 시간을 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좋음. 기량이 늘면서 반복 연습을 견딜 수 있는 능력도 늘어남. 음악에서는 이를 이삭 스턴 규칙이라고 부르는데,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가인 스턴은 기법이 좋아질수록 반복연주를 지루해하지 않고 오래할 수 있다고 말했음. 연습할 때마다 꽉 잠긴 자물쇠처럼 매번 막히는 대목이 바로 이거야하면서 확 뚫리는 순간이 찾아옴.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반복과정을 통해서만 나타남.
- 캐드가 처음으로 건축설계 교육에 도입되어 수작업 도면을 대체하게 되었을 때, MIT의 젊은 건축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했음. "건축현장을 그리고, 그 위에 선과 나무를 그려넣으면서 우리 마음속에 이미지를 새기게 됨. 이것은 컴퓨터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대상을 알게 되는 과정이다. 도면에 그리고 다시 그려보면서 그 공간을 알게 되는 것이지, 컴퓨터가 우리 눈앞에 재생해준다고 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지적은 예전 방식에 대한 향수가 아님. 컴퓨터 작업이 도입되서 실제로 도면을 그리는 작업이 사라질 때 사람들 머릿속에서 상실되는 게 무엇인지를 지적해주는 말이다. 여타 시각적 실습과 마찬가지로, 건축도면의 스케치는 윤곽을 그려가면서 가능성을 탐색하는 행위임. 그 과정에서 손으로 윤곽을 좁혀가고 다듬음으로써, 건축설계자는 테니스 선수가 음악가가 연습하듯 작업을 진척시키고, 작업대상에 깊숙이 몰입하며, 그에 대한 생각을 완성해감. 건축현장이 마음속에 새겨지는 것임.
- 장인이 일하는 방식은 생각과 행동을 동시에 하는 것임. 도면을 그려가면서 건물을 만들어감. 도면은 항상 다시 그리게 됨. 이일을 하고, 다시하고, 다시 또하는 것.
- 우리가 불완전하고 어렵다고 느끼는 상태는 이해하는 과정에서 긍정적 사건이어야 함. 다시 말해 컴퓨터 모의실험과 마우스 클릭 하나로 작업을 완전히 마무리할 때는 생길 수 없는 자극을 이런 상태에서 느끼는 게 필요함
- 중세 길드는 도시내 작업장들간의 개별적 차이를 강조하지 않는게 보통이었음. 길드가 집단적으로 통제했던 사항은 식기나 외투 같은 물건의 생산지가 어느 곳이냐는 것이었지, 제작자가 누구이냐가 아니었음. 반면 르네상스기 물질문화에서는 하찮은 물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데 제작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졌음. 첼리니의 소금그릇은 이와 같이 상표를 부각시키는 일반적인 추세에서 나온 물건임.
- 16세기말과 17세기 초에야 비로소 유럽 어린이들은 풍족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 요즘 생각으로는 이상한 일이겠지만, 그 이전에는 어른들도 인형이나 장난감 병정을 비롯해 아이들에게나 어울리는 소품들을 가지고 놀았음. 그런 물건들이 그 시절에는 아주 드물어서 귀한 물건이기도 했음. 그러다가 장난감 생산비용이 떨어져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장난감이 비로소 아이들도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됨. 장난감이 늘어나자 아이들을 망친다는 이야기가 처음으로 나오기 시작. 18세기 기계의 출현으로 풍요에 대한 우려는 커지기만 했음. 해묵은 문제인 가난과 물자부족 현상이 사라졌던 것은 아님. 유럽의 일반대중은 여전히 쪼들린 채 살았음. 이런 와중에도 기계 덕분에 부엌용품, 의류, 벽돌, 유리제품 등의 생산이 늘어나자, 일반대중의 가난과는 동떨어진 차원에서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한 걱정이 증폭됨. 그 걱정거리란 어떻게 하면 이러한 재화를 잘 쓸수 있을 것이며, 무엇을 위한 풍요이고, 또 재물 때문에 사람이 망가지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였음.
- 부모로서 "나를 따라 해"라고 지시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충고는 "나는 이렇게 살았단다"라는 간접적 메시지임. 이런 메시지로 다가서는 부모의 이미지는 아이들이 부모를 사례로 삼아 깊이 생각하도록 유도함. 이러한 충고는 "그러므로 너는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이 아님. 그 빈자리를 채우는 메시지는 "네 스스로 길을 찾아라. 무조건 따라하지 말고 혁신하라"는 것임. (루이즈 데피네)
- 채워놓는 물건이 적을수록 그 하나하나를 더 귀히 여긴다. (존 러스킨)
- 러스킨이 볼 때 장인은 망설이고 실수할 기회가 절실히 필요한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임. 장인은 기계의 등불이 비추는 대로 일하는 것을 초월해야 함. 다시 말해 스스로 궁리하면서 살아움직이는 도구를 넘어서는 존재가 되어야 함
- 애덤 스미스의 뒤를 잇는 몇몇 사람들은 실기작업이 자리를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인식했음. 하지만 한 세대의 현상에만 주목해 육체노동자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게 별로 없다고 이해했음. 즉 육체노동자들은 주어진 절차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알고 있는 대로만 일을 처리할 뿐이라는 것. 존 러스킨의 저술은 이렇게 육체노동자들을 정신이 멍하다고 보는 시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음. 러스킨은 어떤 일이든지 작업에서 생기는 오류와 결함, 변이는 세대를 타고 이어진다고 이해. 이렇게 의심스럽고 개운치 않은 문제가 일으키는 정신적 자극 또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시간이 흘러도 장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그가 보는 전통의 의미임.
- 물건을 두고 인간처럼 정직하다거나 수수하다거나 또는 인간미가 있다는 식으로 윤리적 속성을 부여하는 행위는 설명을 하자는 게 목적이 아님. 그 목적은 물건자체를 보는 우리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이고, 그로써 물건의 가치를 곰곰이 생각하는 데 있음.
- 밥알을 써는 일에는 몸을 움직이는 두가지 규칙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 써야할 힘의 기준을 최소한으로 줄여 잡는 게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놓는(힘을 빼는) 기술을 익히는 것. 이 연결 고리의 기술적 내용이야 동작을 조절하는 것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미도 많음. 요리를 다룬 고대 중국의 책자들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잘 설명돼 있는데 일례로 장자에는 주방에서는 무사처럼 움직이지 말라는 조언이 나옴. 도가 사상은 이로부터 아주 폭넓은 호모 파베르의 도를 이끌어 냄. 즉 자연에서 얻는 재료를 공격적이고 적대적으로 다루어서는 득 될 게 없다는 가릠. 나중에 일본의 선불교는 이 유산을 이어받아 궁도로 구체화된 놓음의 도를 탐구. 활을 다루는 궁도에서 훈련의 초점은 활 시위를 놓는 동장에서 긴장을 푸는 데 있음. 참선 저술가들은 시위를 놓는 바로 그 순간에 물리적 공격 의사가 완전히 증발된 흔들림 없는 마음의 정적을 강조. 이러한 마음 상태라야 표적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다는 것.
- 교육자들은 지능과 정서 양면에서 여러 주제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을 유발해서 집중능력을 키우려고 함. 이러한 교육의 밑바탕에는 실질적 참여가 집중을 유발한다는 이론이 자리잡고 있음. 오랫동안 손기술을 숙달해가는 과정을 보면, 이 이론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남. 다시 말해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먼저이고, 그렇게 집중할 수 있을 때가 돼서아 정서나 지능 면에서 관심이 생긴다는 것. 몸동작을 조절하는 집중능력은 그 자체의 규칙을 따라 숙달됨. 그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연습하는 걸 어떻게 배우느냐, 어떻게 반복하도록 배우느냐, 또 반복경험에서 뭘 익히도록 배우느냐임. 즉 집중에는 그 자체의 내적인 논리가 있고, 여러해 동안이든 아니면 한시간 동안이든 일관되게 작업하는 데 이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음.
- 16세기말에서 17세기에 걸쳐 근대과학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을 때 과학자들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고 새 도구를 쓰기도 했고, 또 옛 도구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기도 했음. 인간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육체를 이해하는 중세적 관점을 흔들어 놓은 세가지 도구가 있었는데 바로 망원경과 현미경, 메스임. 망원경은 오랫동안 인간이 차지하고 있던 우주의 중심에서 인간을 끌어내리는 데 한 몫했음.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한 생명들이 우글거리는 모습이 현미경을 통해 드러났고, 해부학자들은 메스를 이용해서 유기체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됨. 이러한 과학도구들은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주는 그 위력을 통해 과학적 사고를 자극하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들 도구의 결함과 한계가 과학적 사고를 자극하기도 했음.
- 우리의 생각은 항상 무언가의 틀을 준거로 삼아 흘러감. 흄은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일이나 예상 밖의 일을 어쩌다 만날 때 비로소 생각의 준거가 되는 틀이 확장된다고 주장. 그가 보기에 상상은 우리 스스로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임. 하지만 장인의 생각은 이러한 흄의 짐작과는 다르게 흘러감. 늘 구체적인 작업과 함께 사는 장인은 아무리 우연한 일이라고 해도 어쩌다 만나는 게 아니라, 그가 작업으로 다져가는 터전 위에서 만나기 때문. 아직은 안되지만 될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오는 순간 직관은 시작됨.
- 근대자본주의는 땅을 체계적으로 자기 체제 속으로 복속시키는 일과 함께 시작됨. 광산이 두루 갖추어지면서 증기기관을 돌릴 석탄을 캐냈고, 증기기관은 대량운송과 대량생산을 가져옴. 땅을 뚫는 터널기술 덕분에 근개적인 위생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음. 예를 들어 지하매설배관은 혹독한 전염병의 창궐을 누그러뜨렸는데, 그 덕분에 인구증가에 보탬이 됨. 지금도 도시의 지하공간은 예전 못지 않게 중요함. 터널은 이제 디지털 통신에 활용되는 광섬유 케이블을 매설하는 데 활용되고 있음.
- 좌절을 생산적으로 체험하는 것도 기능으로 숙달할 수 있는 길이 있음
(1) 상상을 통한 도약의 문을 열때 처럼 틀 바꾸기를 활용하는 방법. 발로가 남긴 말을 보면 자신이 템스강을 수영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함. 그러다가 그는 어떤 모양의 물건이 수영하는 자신의 몸과 비슷할지를 상상. 장방형 보다는 원통형이 자신의 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에 스치게 됨. 즉 공사를 가로막는 저항을 다른 틀로 바꿔보지 않고서는 엄격하게 정의된 공학적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가 많음
(2) 인내. 훌륭한 장인들을 보면 인내하는 모습을 보게 됨. 집중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인내는 배워서 숙달하는 기능이고, 시간을 두고 향상시킬 수 있는 기능임
(3) 저항하는 대상처럼 느껴보라는 것, 그 입장이 되어보는 것. 휼륭한 장인이 동일시 하는 대상을 보면, 아주 특수한 대상을 고름. 어려운 상황 중에서 가장 다스리기 쉬운 요소를 찾아냄. 이러한 요소는 커다란 과제에 비해 규모도 작고, 그만큼 덜 중요하게 비칠때가 많음. 먼저 큰 문제부터 달려들고 나서 세세한 것들을 정돈하는 방식은 예술작업에서나 기술작업에서나 잘못된 방식임. 효과적 작업은 이와 정반대로 진행될 때가 많음. 한 예로 피아노에서도 복잡한 화음을 만났을 때는 손가락을 뻗으려고 애쓰기 보다는 손바닥을 적절히 기울여보는 게 좀더 수월한 출발점이 됨
- 모호함과 경제성은 전혀 상관 없는 것 같아도, 이 둘은 아주 광범위한 실기작업에서 같이 가는 관계가 됨. 즉 최소한의 힘을 적용하는 특수한 사례로 모호함을 도입한다는 관점에 서면, 모호함과 경제성은 맥을 같이함
- 계몽사상을 들고나온 우리 선조들은 인간 대다수가 일을 잘할수 있는 지적 능력을 타고난다고 믿었음. 그들은 인간을 유능한 동물로 보았음. 평등을 확대하라는 요구도 바로 이런 확신에서 나옴. 현대 사회는 이런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서 능력의 차이를 강조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음. 기능사회라던가 기능경제라고 하면서 줄기차게 똑똑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을 구분하려 듬. 적어도 장인노동에 관해서는 계몽사상 선조들이 옳았음. 훌륭한 장인이 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고, 대체로 비슷해서 별로 정도차이가 나지 않음. 사람들의 삶을 여러가지 서로 다른 길로 인도하는 것은 타고난 능력보다는 바로 질을 추구하는 동기와 열망임. 이러한 동기와 열망은 사회적 조건에 의해 형성됨
- 훌륭한 장인은 어느 한 문제를 풀어갈 때, 더 손댈 것 없이 완결된 상태가 될 때까지 무작정 파고드는 자세를 피할 필요가 있음.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 끝장을 보려는 욕구는 다른 길로 해소하는 편이 긍정적임. 즉 작업대상에 대해 완전하지 않아도 좋다는 여지를 허용하고, 문제가 풀리지 않은 상태로 놓아두자고 결정하는 것
- 훌륭한 장인은 완벽주의의 함정을 피해야 함. 이것과 씨름하다보면 나 자신을 의식해 일을 해보이려는 꼴이 되고 맘. 이 지경에 이르면 제작자의 정신상태는 지금 만드는 물건이 해야할 일보다도 제작자의 본인의 역량을 보여주겠다는 쪽으로 더 쏠리게 됨.
- 훌륭한 장인은 멈추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암. 더 이상 일을 진행하면 오히려 일을 그리치기 쉬운 때 말이다.
- 지금 직업이나 경력이란 뜻의 영어 낱말 커리어는 옛 영어로는 잘 닦아놓은 길이라는 뜻. 반면 지금 일자리나 일거리란 뜻으로 쓰는 잡은 때에 따라 이리저리 나르고 가져다 놓는 석탄덩이나 장작더미를 가리키는 말이었음. 길드에 속한 중세 금세공인은 일을 밟아가는 길로서의 경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임. 그의 작업 자체는 과학적이지 않았으맂 몰라도, 그의 삶이 그려갈 궤적은 시간적 이정표도 분명했고, 발전단계도 명료하게 구분됐음. 그의 삶은 하나의 선을 따라가는 이야기임. 기능사회는 이와 같이 경력을 밟아가는 길을 불도저로 밀듯이 없애버림. 그 대신 수시로 옮겨놓고 쓰는 물건을 가리키는 옛 영어의 잡이 지배적 표현이 됨. 이제 사람들이 일하는 양상은 일하는 역사를 따라서 한가지 능력을 키워가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종목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가 그때그때 꺼내 쓰는 방식임. 이런 식으로 프로젝트나 과제를 이어가다 보면, 누가 어느 한가지 일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관념은 희미해짐. 이런 상황에 놓이면 장인의식은 취약해질 수 밖에 없음. 천천히 배우면서 습관처럼 익히는 게 장인의식의 본바탕이기 때문
- 놀이라는 행위가 현실로부터의 도피로만 비친다면, 일과 놀이가 상반된 관계로 보임. 그렇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놀이는 아이들에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인지능력의 발달을 이끌어주는 통로가 됨. 놀이를 하려면 규칙을 준수해야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규칙 자체를 만들고 실험해보라고 하면 이런 수동적 관계는 쉽게 뒤집어짐. 이렇게 규칙을 지킬줄도 알고 새 규칙을 도입할줄도 하는 능력은 성인으로서 일을 시작한 후에도 한평생을 사는 데 유익하게 쓰임.
- 얄팍함은 현대사회에서 특수한 용도로 활용됨. 오늘날 기업계의 시험체제는 급변하는 세계경제에서 수시로 변하는 기회에 써먹을 수 있는 타고난 잠재적 능력을 식별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음. 근로자 처지에서나 회사 처지에서나 한가지 일을 잘하고 그것을 깊게 이해해봐야 급변하는 환경에서 뒤처지기 십상. 깊이는 제쳐두고 많은 문제를 처리하는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는 검사는 신속한 연구와 얄팍한 지식을 높게 쳐주는 경제체제가 원하는 편리한 방식임. 그와 같이 신속하고 얄팍한 지식은 이 기관에서 저 회사로 몰려다니는 컨설턴트들에게서 자주 눈에 뜨임. 깊이 파고 들어가는 장인의 능력은 이런 유형으로 전개되는 잠재적 능력과는 정반대편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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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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