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의 멸종'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12.25 제6의 멸종

제6의 멸종

과학 2014. 12. 25. 14:35

 


제6의 멸종

저자
리처드 리키 지음
출판사
세종서적 | 1996-11-01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오리진의 저자들이 쓴 교양과학서. 매년 3만종씩 멸종해가는 지구...
가격비교

- 최근 진화생물학이 발달하면서 이와는 다른 의견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대량 멸종의 와중에서는 우월성이 아닌 '행운'이 나중에 어떤 생물이 생존할 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 인류는 과거의 우월성이 현대적으로 표명된 존재가 아니라 지구 역사의 천재지변에서 살아남은 극히 운좋은 생존자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 경쟁은 자연 선택의 한 구성 요소로서 진화의 흐름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점은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서 가장 훌륭한 예는 포식자와 먹이 사이의 상호 작용이다. 예컨대 게의 집게발이 강해지면 연체동물을 포함한 게의 먹이들도 껍데기를 한층 두껍게 강화시켜 이에 대항한다. 곤충과 그들이 즐겨 먹는 잎 사이에 벌어지는 화학전, 갈아대는 힘이 더 강해진 방목 동물의 이빨과 식물의 방어 기작(풀이 개발한 실리카 결정 함유물과 같은) 등 이와 같은 예는 흔히 찾아낼 수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들이 끊임없는 생존 경쟁을 벌인다. 나아가 그것이 땅 속의 영양분이든 혹은 살아 있는 고기이든 간에 같은 자원(먹이)을 얻기 위해서 비슷한 종끼리도 부단히 서로 경쟁한다.
-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의 생성이 생태계에 끼친 영향은 사람과의 진화에도 적잖이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현대의 침팬지와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으며, 약 5백만년 전에 따로 갈라져 나왔다. 숲이 울창한 계곡의 서쪽 땅에서 유인원은 이전에 적응했던 방식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었다. 이곳은 오늘날 침팬지와 고릴라가 살고 있는 지역이다. 반면, 계곡의 동쪽 땅에서는 강수량이 감소하면서 숲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따라서 유인원이 더 이상 살 장소가 없어졌다.
사람과를 특징짓는 이족 보행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 중, 널리 흩어져 있는 먹이를 찾아서 보다 효율적으로 이동하기 위한 '적응'이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높다. 다른 이론들도 몇 가지 있지만, 당시의 서식지 변화를 고려하면 이 이론의 생물학적으로 가장 잘 들어맞는다.
- 약 2백50 만년 전 사람과에서 또 다른 진화의 파동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비슷한 환경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적응 형태가 생겨났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원래의 적응형이 훨씬 커진 것으로, 건조한 환경에서 살며 질긴 식물을 먹었던 이족 유인원의 생김새를 닮았다. 두 번째 적응 형태는 강건한 체격과 보다 큰 두뇌의 발달, 그리고 육식의 시작 등 여러 가지 중대한 변화를 포함하고 있었다. 육식의 시작은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최초로 석기를 제작하고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로 이들이 호모속이었으며, 이미 그 이전부터 여러 종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양쪽 형태 모두 진화의 방향은 건조한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 진화의 원동력이 외부의 힘-이를테면 변덕스러운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 환경-에 크게 좌우되는 한, 진화 역사에서 필연적인 것이란 있을 수 없다. 각각의 종은 역사에 나타난 우연한 사실일 뿐이다. 역사적 사건이 설명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종의 진화를 이끌었던 사건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곧 그러한 사건들이 꼭 그런 식으로만 전개되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우연히 그랬을 뿐이고, 또한 그것이 전부이다.
- 1만년 전 사람들은 식량 생산, 즉 농업을 발달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엇을 재배하고 사육할 수 있는지의 경험이 차곡차곡 축적된 결과였다. 인위적인 교배-처음에는 우연히 이루어졌으나, 나중에는 의도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일부 동식물의 식량 가치를 높여주었다. 그 결과 점점 더 적은 종이 사람의 식단에서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책임지게 외었다. 오늘날 약 20종의 식물이 전세계 사람의 위에 들어가는 식물성 음식물의 90%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단 3종-옥수수, 벼, 밀-이 농작물 수확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다지 많지 않은 식물 종에서 얻어지고 있는 이 놀라운 생산력. 이것은 얼핏 현대 농업의 승리로 보일지 모르며 실제로 자주 그렇게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단지 몇 종-본질적으로 단종 재배-에 집중된 식량 생산은 질병으로 인한 대규모 파괴에 더 쉽게 공격받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병원균이 잘 현재의 잡종이 방어하지 못하는 돌연변이를 거쳐 악성으로 변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엄청난 피해-다종 재배라면 쉽게 막을 수도 있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 찰스 다윈이 이미 언급했듯이 아프리카는 인류의 요람이다. 약 5백만년 전 사람과의 첫 일원이 그곳으로부터 진화했다. 그러나 이들 초기 사람 종의 생존 양식은 유인원과 매우 흡사했다. 우리가 진화 경력상 이주 초창기부터 사냥꾼이었던 것은 아니다. 고고학적 증거를 추적해 보면 3백만년 전에서 2백만년 전 사이의 어느 시기에 대뇌의 학장과 더불어 육식이 중요해졌음을 알 수 있다. 약 2백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진화하면서 수렵 채취라는 생존 양식이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최근까지, 그러니까 1 만년 전쯤 농경 방식이 고안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호모 에렉투스가 오늘날의 원주민들처럼 탁월한 사냥꾼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스탠퍼드대학의 고생물학자 리처드 클라인은 약 10 만년 전 현대인이 진화하면서 사냥 기술이 상당 수준으로 발달했음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보다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유순하고 잡기 쉬운 먹이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 뒤 점점 아프리카물소와 같은 위험스런 동물에도 손을 댔고 이것은 나중에 흔한 사냥감이 되었다. 호모속의 일원은 탁월한 사냥꾼으로서 2백만년 이상이나 잠재적인 사냥감과 더불어 진화했다. 폴 마틴은 "이처럼 긴 공존 기간 동안 동물은 사람의 약탈 습성을 피하는 수단을 진화시켰다."고 주장했다.
- 이제 생물학자들은 다른 종이 번성할 수 있는 모자이크 서식처를 창조하는 주인공이 바로 코끼리임을 깨닫고 있다. 새로 형성된 관목 지대에는 연한 잎을 먹는 동물들이, 새로 형성된 초원에는 풀을 뜯는 동물 종이 살아가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역할을 하는 종을 '쐐기돌 초식 동물'이라 부른다. 쐐기돌이 빠지면 아치가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쐐기돌 초식 동물이 멸종하면 생태계 역시 붕괴할 것이다.
- 코끼리가 사라지면 풀이나 연한 잎을 뜯어먹는 동물들의 서식처는 풍부함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훨씬 적은 종만을 지탱할 수 있게 된다. 그 뚜렷한 예로 암보셀리의 북부 지역을 들 수 있다. 울창한 관목이 그 일대에 똑같이 펼쳐져 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만일 끔찍하게도 통찰력의 부족이나 의지의 결여로 코끼리가 멸종한다면 더 많은 종이 그 뒤를 따라 진화의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쐐기돌 초식 동물로서 코끼리가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그동안 상아 교역의 장래나 추려내기의 지혜 등등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에서 간과되어 왔다.
- 생존자들은 타고난 우월함으로 멸종을 모면했다. 따라서 우리는 승리자의 후손이며 여기에서 위안을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초기 대량 멸종에서는 생존자의 우월함도 희생자의 열등함도 없었다. 분명히 없었다. 최근 굴드가 말했던 그대로 '지상 최대의 제비뽑기'가 행해졌으며 우리는 우연히 그 운좋은 승리자들 가운데 하나의 후손이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운좋은 승리자의 후손들과 이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 제비뽑기가 다시 행해진다면 승리자들이 또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면 현대 생물의 기초가 된 몸의 설계도 역시 달라질 것이다. 초기 멸종에서 사라졌던 기이한 생물 형태로 미루어 보아 이들 중 많은 수는 아주 색다른 유형일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생물 세계-우리 역시 그 일부를 차지하는-가 필연적이며 유일한 것이 아니라 무수히 있을 수 있는 세계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존 세계는 단지 역사의 우연한 사실에 불과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지적 혁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멸종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기억해 보라. 다윈은 대량 멸종설 이론을 수상쩍게 여겼다. 그래서 화석 기록에 나타난 대량 죽음의 뚜렷한 증거를 불완전한 기록으로 인한 인위적인 결과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대량 멸종은 격변설의 기미를 풍겼고 그것은 그에게 저주나 다름없었다. 결국 간헐적인 대량 멸종의 실체는 반박할 수 없는 기정 사실이 되었다.
- 대량 멸종이 지구 역사를 구체화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은 진화론의 발달에서 상당히 중요했다. 또한 이 사건들이 지구 외적인 충격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견해는 참으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일상적인 경험으로 이해하고 확인할 수 있는 '힘'에 의해 구체화되는 다윈의 세계를 떠나야 한다. '생물의 흐름이란 지극히 순조롭고 예측 가능하다'는 기존의 인식은 그 필연적인 정점이 인간이라는 생각과 함께 사라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이며 현재 우리의 위치는 커다란 행운에 의해 우연히 획득된 것이다. 격변설은 부활하여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고 이제 그것은 현실이다.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놀라운 발견들  (0) 2014.12.25
에덴의 강  (0) 2014.12.25
조상 이야기  (0) 2014.12.25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0) 2014.12.25
통섭  (2) 2014.12.25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