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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철학

IT 2014. 10. 6. 20:53

 


디지털 철학

저자
이종관, 박승억, 김종규, 임형택 지음
출판사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13-12-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디지털 컨버전스와 미래의 철학 ‘디지털 컨버전스’는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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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컨버전스는 부르디외나 피에르 레비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들을 실현시켜 줄 수 있음. 예컨대, 디지털화를 통해 가능해진 새로운 네트워크의 세계는 제한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와 소통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기 때문. 그러나 그러한 욕망의 실현 이면에는 마치 전자적 스파크가 만들어내는 빛이 드리우는 그림자처럼 은폐되는 세계가 있기 마련.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끝없이 네트워크를 이동하는 노마드적 주체는 자신이 향유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유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기도 함. 이 때문에 디지털화에 저항하는 욕망, 즉 균질화된 세계에서 차이에 대한 욕망, 경계에 대한 향수 역시 커짐. 이러한 역설적 상황의 공존은 디지털 컨버전스가 가능하기 위한 불가피한 전제, 즉 세계의 균질화가 사실은 기만적 이념일지도 모른다는 실존적 불안감의 다른 표현임.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재현의 기술을 목격하는 현대인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마저도 다른 무엇에 의해 조작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됨. 네트워크 공간안에서 자신의 정보가 유출되고, 자신 아닌 또 다른 자신들이 버젓이 활동하는 현상들을 목격하기 때문. 이러한 실존적 불안감은 디지털화 하는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 그러한 불안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연적 세계에 존재하는 차이를 소거하는 것과 반대로 다시금 그 차이를 생산해내는 것임. 물론 이러한 차이의 생산 역시 디지털 기술에 의존. 디지털 기술에 의해 생산되는 차이, 그리고 그렇게 풍요로워진 차이로 가득 채워진 세계는 마치 피그말리온 신화와 같음. 그것은 한편으로는 인간보다 더욱 아름다운 인간이지만, 동시에 신의 도움 없이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함. 가장 합리적인 세계관과 신비주의적 세계관이 공존하는 세계, 이것이 총체적인 디지털화에 직면한 자연적 인간의 현주소임
- 디지털 컨버전스를 통해 가속화되는 존재자의 총체적 디지털화는 결국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야기. 이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가 무력화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앞에 마주섬으로써 생겨남. 그 동안 지성사를 통해 관철되어 온 하나의 이념은 인간이 다른 존재자와는 다르다는 것이었음. 그 차이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자기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었음. 그러나 디지털화한 세계, 그리고 디지털 공간속을 부유하는 모든 존재자는 원칙적으로 동질적이며, 그런 한에서 인간조차도 예외일 수 없음. 근대 과학혁명 이래로 진행되어 온 환원주의는 한편으로 이 세계를 조작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실증적 힘을 보여왔지만, 그 이면에서 끊임없이 인간의 차이를 해소시켜 왔음. 예컨대, 진화론을 통해 인간은 더 이상 특별한 신의 창조물이라고 확신할 수 없게 되었고, 유전학을 통해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단백질의 유전정보 조합의 산물로 이해되었음. 이러한 환원주의는 인간의 모든 특권적 지위를 박탈하여,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야기. 세계의 모든 존재자가 비트로 환원되었을 때, 인간고유의 존재론적 지위는 증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 이런 상황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근원적 욕망을 부추김. 그러나 디지털화한 세계는 그런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없음. 디지털화한 세계 속에서 모든 존재자는 근원적으로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원칙적으로 수의 원리로 환원될 수 있는 동질적 존재성을 구현하고 있을 뿐이기에, 차이는 그저 그러한 근원적 동질성의 한계 내에서 배열의 조작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임. 이제 존재자들의 근원적 존재방식의 차이는 동질성 속에서 배열의 자유로운 조작으로부터 발생하는 엄청나게 현란한 차이의 놀이에서 삭제되고 그것으로 대치됨
- 디지털화된 놀이로서의 현재 온라인 게임도 종교적 제의와 지속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음. 왜냐하면 종교적 제의 속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들은 일종의 유희적 행위이며, 이러한 까닭에 종교적 제의는 놀이의 기원으로 여겨지기 때문. 이러한 의미에서 밀러는 종교적 제의와 온라인 게임간의 유사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함. "디오니소스 페스티벌이라는 고대의식은 오늘날 아주 인기있는 다중접속 온라인 게임과 비슷한 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현대의 게임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등장인물이 되어 다른 플레이어들과 상호작용하고,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게임에서는 종종 삶과 죽음의 결과가 있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다시 말해 유희성의 측면에서 온라인 게임과 종교적 제의는 그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매우 큰 유사성을 보임. 그렇지만 서사와 유희성의 측면에서 게임과 신화의 결합을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설명에는 여전히 해명되어야 할 것이 남아 있음. 온라인 게임에서 신화적 요소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까닭에 온라인 게임의 세계관 자체가 신화라 간주될 만하기도 함. 그렇지만 이때 온라인 게임의 세계관 그 자체가 신화라고 말할 수 있는 핵심적인 근거는 그 게임이 이야기로서의 신화가 갖고 있는 내용적 요소를 사용한다는 것. 그러나 신화적 요소들을 제 아무리 많이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요소들의 합이 신화 자체가 될 수는 없으며, 더욱이 신화는 단지 오래된 판타지 소설이 아님. 신화를 단순한 허구적 상상력의 생산물쯤으로 보는 것은 신화에 대한 매우 조야한 이해일 뿐이다.
- 신화속에서 영웅은 단지 초월적 힘과 능력을 과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영웅은 신화속에서만 혹은 블록버스터 속에서 허구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 주변에 존재하는 존재자임. 또한 신화속의 영웅은 타인의 목숨을 많이 빼앗는 존재가 아닌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타인의 목숨을 구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캠벨은 다음과 같이 말함. "우리는 이제 영웅이 길에다 깔아놓은 실을 붙들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알게 된다. 무서운 괴물이 있어야 하는 곳에서는 신을 만나게 되고, 남을 죽여야 하는 곳에서는 저 자신을 죽이게 되며, 외계로 나가야 하는 곳에서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되고, 외로워야 할 곳에서는 온 세상과 함께하게 될 것임을..." 신화와 신화적 사고 속에서 인간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파편적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인간은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으며, 늘 이런 연관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 이러한 연관은 공간적 인접성을 의미하지 않음. 어떤 의미에서는 디지털적 공간과도 매우 유사하게도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는 이상, 공간적 멂과 가까움은 의미가 없기 때문. 생명적 유대와 공감적 결속 속에서 언제 어디서건 나의 행위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 어느 것에도 전달될 수 있음. 따라서 신화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낱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 신화와 제의를 통해 인간은 늘 공동체 속에서 모두와 함께 지속적인 연관을 맺고 있음. 이것이 신화의 사회적, 문화적 기능임. 물론 신화가 본래 갖고 있던 우주론은 더이상 문화의 중심일 수는 없음. 그러나 카시러가 말하듯 신화의 우주론이 상실된다고 해서 신화가 갖는 인간학적 가치까지 상실되는 것은 아님. 카시러와 캠벨이 보여주듯이 신화의 인간학적 가치, 즉 그것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기능은 여전히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생생하게 유효하게 이루러지고 있음. 이런 견지에서 본다믄 신화를 박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인간학적 가치를 우리가 보존하고 향유할 때, 우리는 보다 넓은 의미의 지평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임.
-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인류가 현존질서를 유일한 현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이야기 예술을 통해 새로운 자유의 영토를 탐구해 온 노력의 결과물임. 인류는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 보다 정의로우며, 보다 멋있고 사리에 맞는 또 다른 세계를 찾아왔음. 이같은 추구때문에 무수한 이야기꾼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또 다른 세계의 허구적인 구성틀을 만들어 냈음. 서사와 이미지, 동영상과 상호작용성이 통합되어 완벽한 몰입의 허구적 구성틀을 창출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인류가 소망하던 꿈의 이야기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음. 따라서 허구적 공간과 이 공간속에서 특징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에서 핵심요소이며, 바로 이러한 이야기의 소스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신화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에서 주목받는 것임.
- 송정란에 따르면, 오늘날 콘텐츠의 소스로로 신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세가지로 요약됨
(1) 수용과정에서 이미 검증된 이야기이기에 실패할 확률이 적음
(2) 각 민족의 유사신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류의 보편적 욕망이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기에 이야기적 가치가 높다는 점
(3) 신화의 속성이 비합리적이고 허구적이기 때문에 이를 원형으로 삼아 다양한 창조적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
콘텐츠 기획자와 개발자들이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이러한 관심 속에서 신화는 콘텐츠의 소스로서 규정됨. 신화는 심원한 원형적 의미를 다층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스토리 양식이자 콘텐츠 소스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음.
- 근대가 시각중심의 문화로 편향될 수 있었던 것은 활자가 갖고 있는 정확성과 정보의 집적성과 전달의 용이성 때문이었음. 그러나 그런 편향은 불가피하게 우리에게 내재해 있는 어떤 근원적 욕망, 예를 들면 상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픈 욕망들을 왜곡시킬 수밖에 없음. 가령, 어젯밤 꿈을 설명한다고 해보자. 꿈은 스토리를 가진 이미지들이다. 근대적 재현양식은 그 꿈을 문자로 재현해 낼 수밖에 없음. 그러나 오늘날의 재현기술, 특히 다중현실적 기술은 내가 꾸었던 꿈을 단순히 평면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따라서 발전된 기술이 오히려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역설처럼 보이는 구조, 즉 시각중심의 근대문화로부터 디지털 기술에 의지한 공감각적 문화로의 회귀라는 역설은 일종의 착시효과이다. 우리의 본성에는 언제나 그런 재현의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은 유예되었던 욕망으로의 회귀나 부활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있어 더 근원적 성취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표면적 역설 이면에는 또 다른 대립이 있다. 디지털 텍스트에 기반한 문화가 표면적으로는 공감각적이지만 실제로는 근대 활자문화를 지배했던 선형적 합리성의 극단에 있는 이진법적 문화라는 점이다. 달리 말해 맥루언이 말한 전자시대의 공감각적 문화가 사실은 고대 신화적 세계의 문화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그런 문화가 기술적으로 다시한번 재현된, 하이퍼 매개의 상황에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우리의 욕망은 유예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디지털 문화 시대의 삶의 양식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즉, 디지털 기술에서 재현의 기술을 극대화하면서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넘어서는 더욱 강력하고 풍성한 현실 개념을 내놓지만, 그 현실은 여전히 우리에게 갈증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재현기술이 더 강력해질수록 그 갈증은 더욱 심화될지도 모른다. 다만 어떤 경우든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현실이 바뀌고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근원적인 욕망을 상징하는 신화적 공감각의 세계이든, 신화적 세계로 위장된 디지털 세계이든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현실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근대세계가 강조한 무엇이 참된 세계인가에 대한 판단을, 그리고 그런 판단을 지배하는 합리성 개념을 흔들어 놓는다.
- 고도로 복잡해진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는 자연적 생태계에 유비할 수 있음. 근대의 선형적 합리성이 생태계를 단선적으로 환원함으로써 많은 문제들을 양산했듯이, 실제로 복잡한 우리의 현실을 관찰의 편의성을 위해 단순하게 환원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되는 대상의 본질적 성격을 외면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름. 자연적 생태계가 상호작용의 망으로서, 특정 분야에서의 미시적인 변화가 그 체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듯이,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 역시 시스템 구성요소들인 개인들의 미시적인 변화가 사회적 트렌드를 결정해 버릴수도 있음. 다만 자연적 생태계와 디지털 생태계 사이의 차이는 자연적 생태계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데 반해, 디지털 생태계는 매우 즉각적이라는 데 있음. 디지털 기술이 시간과 공간을 압축해 버렸기 때문. 따라서 디지털 생태계는 시스템의 하부를 이루는 개별 에이전트, 즉 개인과 그런 개인들이 무리를 이루는 집단으로서 메타 에이전트들의 변화 양상을 거의 실시간적으로 반영할 가능성이 높음. 즉, 각각의 에이전트들이 시스템의 노드로서 고유의 경로를 가지는 한, 그들의 행위 경향을 결정짓는 다양한 매개변수들에 따라 시스템 자체의 유동성도 높아지고, 시스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피드백 역시 신속하고 민감해질 것임. 결과적으로 디지털 컨버전스 사회는 개인과 집단, 혹은 더 큰 시스템 사이의 관계가 마치 자연적인 생태계가 그렇듯이 공진화할 가능성이 높음
- 인쇄활자 문화에 기초한 근대문화는 민족과 국가의 문화였음. 반면 디지털 텍스트 문화는 근대 이전의 부족문화를 부활시킬 가능성이 높음. 현장성을 중시하는 구어적 문화는 의사소통 조건의 동질성을 확보한 사람들끼리 새로운 부족문화가 트렌드화할 가능성이 높음. 예를 들어 애플사의 제품을 선호하는 그룹들 혹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새로운 SNS 서비스를 공유하는 집단들이 그러함. 그들은 모종의 가치체계를 공유하는 동질적 집단들임. 이러한 메타 에이전트들의 등장은 주로 의사소통 양식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것을 집단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준으로 활용함으로써, 고유의 부족문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음. 만약 이러한 문화가 하나의 트렌트처럼 작동한다면, 그 의사소통 양식의 다양성은 곧 삶의 양식의 차별성으로 드러날 것이고, 그들의 의사소통 양식에 적합한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합리성이 그들의 행위를 결정짓는 표준적 가치체계가 될 수도 있음. 예컨대 하이퍼텍스트와 같은 네트워크적 디지털 텍스트, 그리고 트위터의 텍스트 같은 모바일 텍스트들은 대체로 길이가 짧음. 이는 속도가 생명인 디지털 사회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회 속에서 성장한 에이전트들이 함께 공진화한 결과이기도 함 반면, 이러한 문화와는 다른 메타 에이전트들은 그와 같은 속도에 현기증을 내고 정반대의 올드 텍스트들을 선호할 수도 있음. 이렇게 다양한 부족화는 디지털 기반 콘텐츠 산업이 겨냥해야 할 소비자층이 고도로 분화된다는 것을 의미.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분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일 것임. 이미 애플의 어플리케이션 마켓이 보여준 것처럼, 생태계적 아이디어를 차용할 수 있을 것임. 즉 개인을 균질화시켜 획일성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개성이 살아있으며, 그 개성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야 함. 바꿔 말하자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소유하기만 하는 것임.
- 디지털 컨버전스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디지털로 환원될 수 있다는 형이상학에 기초하고 있음. 디지털 컨버전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컨버전스의 대상은 그것이 어떤 것이건 모두 디지털화되어야 함.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의 디지털화가 전제된다면, 디지털화의 대상은 무차별적임. 온라인 게임에 있어 게임과 신화가 결합될 수 있었던 것도 신화가 컨텐츠로서 디지털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디지털 미디어의 경우도 마찬가지. 디지털 미디어가 디지털 컨버전스를 토대로 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컨버전스의 대상이 되는 미디어들의 디지털화가 전제됨. 미디어들의 디지털화 속에서 비로소 디지털 미디어는 다매체성을 함축할 수 있게 됨. 바로 이런 까닭에서 디지털 미디어는 다매체성을 함축하는 융합 미디어로서의 특성을 갖게 됨
- 디지털 미디어의 핵심은 소통임. 전화의 경우도 소통이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소통은 전화와 같이 지명적으로(person to person) 국한되지 않음. 디지털 미디어에서 소통은 지명적 차원을 넘어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이루어짐. 개인과 개인들,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의 소통도 디지털 미디어에서는 가능함. 이러한 소통방식의 변화는 네트워크의 디지털화 속에서 배태됨. 네트워크의 디지털화는 실재하는 것으로서의 현실과 같은 제약조건을 무력화함으로써 소통의 가능성을 확대시키며, 이러한 확대속에서 소통은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형태를 갖출 수 있게 되었음. 또한 디지털화된 네트워크는 디지털 미디어의 한 모듈로 융합됨으로써, 이동서과 즉시성의 성격도 갖게 됨
- 구글이 나온뒤 기존에 일하던 방식과 성공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이라고 본다. 하지만 모든 곳을 자유로이 항해하고자 하는 구글에 있어 최대위협은 애플이나 페이스북처럼 이용자를 자신만의 세계에 묶어두려는 서비스가 커나간다는 사실이다. 켄 올레타의 발언은 변경된 상황에 대한 과거방식의 접근이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음.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최근 일고 있는 스마트폰의 닫힌 소프트웨어 논란과 연장선상에 놓여 있음. 그러한 까닭은 닫힌 소프트웨어 논란이 발생하는 것은, 구글, 애플,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각기 다른 운영체제를 탑재함으로써 사용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 이러한 선택권의 제한은 이미 익스플로러를 윈도우에 기본탑재하여 이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해 온 마이크로소프트의 정책에 있어서도 제기되어 왔던 문제임. 동일한 문제가 반복된다는 점은 스마트폰의 닫힌 소프트웨어 논란이 현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이전의 익스플로러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성 속에서 영토성의 문제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줌
- 부족시대의 미디어는 말 그대로 자연적인 면대면 접촉이었으며, 이 시기의 사회적인 의사소통은 주로 구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청각이 지배적인 감각이었음. 비록, 청각이 지배적이긴 했지만, 면대면 상호작용은 상대의 표정과 몸짓, 신체적 접촉, 냄새 등, 다양한 감각이 동시에 동원되었으며, 그러므로 감각들 간의 균형이 뒤틀리지는 않았음. 그러나 문어시대로 오면서 표음문자가 발명되고, 시각이 지배적인 감각으로 변함. 문어는 비록 인간의 시각을 2차원적인 평면에 가두었지만, 그럼에도 필체 같은 촉감의 참여를 거부하지는 않았음. 맥루언에 따르면, 감각비율이 철저하게 뒤틀린 시대는 인쇄시대이며, 활자의 발명으로 인해서 다른 감각들이 2차원적인 평면의 시각에 종속되고 함몰되었음. 인쇄는 말 가운데 시각적인 요소를 지상의 것으로 삼고, 구어의 모든 감각적 성격을 이 글자의 형태로 축소해 버렸으며, 우리의 정신생활 속에서 인쇄된 말이 갖는 세분화의 힘과 분석의 힘은 우리에게 감각의 분열을 가져왔던 것임. 인쇄된 활자는 문자 외의 그 어떤 정보다 담고 있지 않으며, 구어나 필체가 가졌던 시각 이외의 감각적인 성격들을 추상화시켰음. 2차원의 평면에 인쇄된 활자는 오직 시각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정보가 제공하는 다른 감각적 요소들은 그 활자안에 추상화되어서 저장됨. 그러므로 우리는 시각적 활자정보를 통해서 청각이나 촉각, 입체적인 공간감각 등의 요소를 추상화시키거나 혹은 제거함. 인쇄시대의 감각비율은 평면적인 시각을 중심으로 하며, 더 나아가 다른 감각들을 이 시각정보로 축소시키고 추상화시켰음. 전자시대는 이런 인쇄시대의 뒤틀린 감각비율을 회복시킴. 라디오의 등장으로 청각이 부활했으며, TV는 시각과 청각정보를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시각과 청각의 비율에 균형을 가져왔음. 전자시대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시각화된 문자뿐 아니라, 전화나 라디오를 통한 청각정보, 궁극적으로 멀티미디어를 통해 시각과 청각정보를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부족시대의 면대면 소통을 부활시킴. 이는 시각에 억눌려 최면상태에 빠져 있던 여타의 감각들을 되살아나게 하고, 뒤틀렸던 감각비율이 다시금 균형을 되찾도록 만듬. 컴퓨터의 등장은 전자시대로의 이행을 가속화시켰고, 결국 인터넷을 통해서 지구촌 시대를 열었음. 컴퓨터는 기존의 매체가 제공할 수 없었던 3차원적인 공감각 정보를 제공하면서, 미디어가 3차원적인 현실을 재현할 수 있게 만들었음. TV나 영화가 가지고 있었던 멀티미디어의 성격은 컴퓨터에 그대로 전이되었으며, 심지어 그 조합이 더욱 다양해지고, 개인의 능동적 참여가 가능해졌음. 오늘날, 스마트 미디어의 등장은 출력방식뿐만 아니라 입력방식 또한 다양한 감각정보를 활용하고, 일상의 매 순간마다 미디어와의 접촉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이런 전자시대의 공감각적인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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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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