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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저자
강인규 지음
출판사
오마이북 | 2012-11-1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한국 사회, 그리고 당신에 관한 이야기"나 혼자만 바뀌어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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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뿐임. 싼 임금을 더 싸게, 이미 유연한 고용조건을 더 유연하게, 느슨한 환경기준을 더 느슨하게 풀어주는 것. 현대차와 기아차가 공장을 건설한 곳의 실업률이 모두 평균을 넘어서는 데다 저임금 지역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 그렇다고 기업들이 해외로 떠나는 이유가 한국의 강성노조때문은 아님. 노조 없는 삼성도 LCD공장을 중국에 짓고 있으며, 국내 설비의 상당부분을 중국으로 옮길 계획. 최첨단 낸드플래시 반도체도 13년부터 중국에서 생산함. 03년 하이닉스가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을 때, 삼성은 기술유출 우려가 있다며 반발했음. 이런 삼성조타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고 있음. 물론 기업은 옮기지 않고도 옮긴 효과를 누릴 수 있음. 옮긴다고 협박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면 되기 때문. 하지만 떠나기로 마음먹으면 막을 재주는 없음. 고용주의, 고용주에 의한, 고용주를 위한 시대가 열린 것. 하지만 회사가 인력을 줄이고 저임금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은 불가피한 일도 현명한 일도 아님. 변호사 토모스 게이건이 그의 책 미국에서 태어난게 잘못이야에서 보여주듯, 경쟁력을 구실로 직원을 해고하고, 임금을 줄이고, 더 싼 임금을 찾아 공장을 옮긴 기업은 결국 살아남지 못했음. 제조업체가 임금이 싼 곳으로 공장을 이전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품질저하임. 기업주의 헛된 탐욕이 노동자뿐만 아니라 결국 기업까지 파멸시킴
- FTA가 국익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의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예가 투자자-국가 소송제임. 투자자-국가소송제는 정부의 개입, 즉 국가의 시장조절 기능과 공공서비스를 무력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임. 이 제도에 따르면 하루아침에 급조된 외국기업도 한국정부와 맞먹는 법적 권한을 가짐. 만일 정부가 서민이나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를 취했을 때 이것이 기업의 이익을 침해했다고 판단하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 그것도 실제 발생한 손실만이 아닐 기대이익의 손실에 대한 배상까지 요구할 수 있음.
- 정치세력의 입장에서는 한데 힘과 목소리를 모으는 국민만큼 두려운 것이 없음. 경쟁논리는 공동체를 파괴해 국민을 쉽게 길들이기 이해 권력이 고안한 장치. 나 이외의 타인들을 적으로 돌려 싸우게 만들어야 사람들이 뭉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이제는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나 이외의 사람을 생각해야 함. '나'는 '우리'속에서만 존속할 수 있음.
- 오랫동안 북한은 미국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존재였음. 북한이 터무니 없는 미국의 국방예산을 합리화하는 협박꾼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기 때문. 사실 북한은 아주 작고 가난하고 기술적으로 낙후된 나라지만,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으로 과장되었음. 그 과정이 얼마나 교활했는지, 이 약소국을 핑계로 미 국방부는 지난 15년간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을 위해 쏟아부은 600억 달러의 돈을 합리화할 수 있었음.
- 따뜻한 보수란 부유층 위주의 정책을 펼치되 얼굴표정만 바꾸겠다는 것. 정책을 서민위누로 바꾸는 순간 더 이상 보수가 아님. 따뜻한 보수의 뜻을 가장 잘 풀이한 사람은 클린턴 대통령임. 그는 부시행정부의 따뜻한 보수론을 이렇게 평가. "따뜻한 보수, 듣기는 좋은 말이지요. 뜻은 이런 겁니다. 도와주고 싶어. 진짜로, 하지만 알잖아. 우리가 그렇게 못한다는 거..." 레이건과 부시가 추구한 경제정책을 핵심은 부유층을 위한 세금감면과 기업의 탈규제,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민영화였음. 그러나 두 사람은 하나같이 서민들과 잘 어울려 사진을 찍는 친서민 행보를 즐기곤 했음
- 자본주의는 공공서비스가 민영화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보여줌. 의료나 보험처럼 정상적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서비스마저 이윤추구의 장으로 전락한 것. 그리하여 평균소득 4만불이 넘는 선진국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상처를 꿰매고, 약값을 아끼기 위해 국경을 넘음. 그에 못지 않은 것은 교화시설의 민영화임. 펜실베니아의 한 지역에서는 공공소년원을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기 시작했음. 민간시설의 존립목적은 이윤추구에 있음. 민영교도소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끊임없이 고객이 필요하고 고객이 늘수록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은 늘어남. 펜실베니아의 민영소년원은 판사에게 수고비를 건넸고, 판사는 무려 6500명의 청소년을 부당한 이유로 기소해서 민영교도소에 가뒀음
- 투자와 혁신을 통해 상품을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판매원들이 얼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웃지 않아도 잘만 사간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을 보라. 서비스는 커녕 욕을 바가지로 먹고, 바가지로 얻어맞으면서도 먹는다. 애플도 잘 보여주고 있듯, 최근 부상하는 마케팅은 오히려 "고객이 안달할 때 까지"이다. 고객이 오케이할때까지 전략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고객이 결코 오케이하지 않는다는 데 있음. 잘 알지 않는가. 고객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무례하고, 감정적이고, 탐욕스럽고, 뻔뻔한 존재인지 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안락한 회의실에 앉아 고객제일주의를 기획한 장본인들이 고객의 욕설과 포효를 직접 받아주는 게 아니라는 점. 그 험한 일은 박봉의 직원들에게 돌아가고, 경영진은 이들을 감시하고 처벌할 뿐임.
- 한국대기업은 과거 일본의 재벌을 모델삼아 출발했으나, 그보다 훨씬 집중적이고 위계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냈음. 후쿠야마는 유교적 혈통주의를 그 원인으로 꼽음. 한국기업은 아버지를 수장으로 하는 위계적 가정을 사회적으로 확장한 형태임. 일본은 전제의 합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개인이 조직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움. 반면에 한국은 경영자 개인이 혈통의 권위에 힘입어 조직 전체에 막대한 권력을 행사함. 일본과 달리 한국은 조직이 개인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임
- 한국정부와 보수언론은 미국식을 매우 좋아함. 미국도 한다는 말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변명거리가 됨. 의료민영화도 미국식으로, 신문/방송 겸영도 미국식으로, 기업규제 완화도 미국식으로. 물론 이들이 말하는 미국은 입맛에 맞게 각색된 가상의 나라인 경우가 대부분임.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처벌은 꼭 한국식을 선호함. 기업의 분식회계나 비자금, 탈세 등 중대한 경제사범도 경제발전 치적을 고려해 한국식으로 용서하고, 정치인들의 노물수수나 성추행 협의가 드러나도 관례를 생각해 한국식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함 검찰은 한국식으로도 해결이 안되자 근거도 부족한 미국식을 끌어들여 자신의 발등을 찍었음. 미국에서 언론의 광고주 불매운동이 불법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아주 간단함. 수정헌법 제1조 때문. 이는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헌법조항으로, 의회는 표현의 자유를 금지하거나 제약하는 어떤 법도 제정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음
- 구글은 사실상 2000년대 초부터 검색품질이나 지배력 면에서 적수가 없었음. 차별화나 경쟁력을 과시하기 위해 행운 버튼을 유지할 필요성은 10여년 전에 사라진 셈. 이후 운 좋은 느낌 버튼은 구글 특유의 재치, 창의력, 인간미를 드러내면서, 구글의 정신을 계승하는 상징적 의미로 남게 됨. 구글은 매년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가며 이 의미있는 장난을 계속해온 것. 한두해만 수익이 시원찮아도 사업부 전체를 접는 한국회사들로서는 이런 기업문화가 미친 짓으로 보일 것임. 문화라는 말만 보아도 그러함. 한국에서는 문화란 말 다음에 자연스럽게 콘텐츠나 상품이 따라붙지 않는가. 우리는 돈벌이가 되면 무엇이든 가치있는 것이 됨.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돈 밝히는 사회에서 돈을 벌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음. 여유있게 웃고 즐기는 곳에서 돈이 되는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시대가 된 것임.
- 공감의식이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를 거쳐 얼마나 발달하고, 넓어지고, 깊어지는가는 부모가 초기부터 아이를 어떻게 기르느냐에 달려 있다. 아울러 그 아이가 태어나 습득하게 되는 문화권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제러니 리프킨, 공감의 문명)
- 부모와 사회가 멀쩡하게 태어난 아이들을 불공감증 환자로 만들고 있음.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기는 커녕 그들의 고통을 이용해 제 잇속을 챙기는 존재로 말이다. 그게 정확히 한국 사회가 몰락하고 있는 이유임. 남이 살아야 나도 산다는 본능적 이타심을 지워버린 채, 그 속에 경쟁체제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 탐욕을 채워 넣은 덕분에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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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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