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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에 담아온 중국

역사 2014. 10. 18. 17:18

 


배낭에 담아 온 중국

저자
우샹후이 지음
출판사
흐름출판 | 2012-06-22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중국은 세계의 새로운 패권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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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나라 옹정황제가 쓴 대의각미록에는 "짐은 중국인이 아니다. 짐은 외국의 군주로서 중국을 다스리는 것이다."라는 말이 버젓이 나와 있음. 어디 그뿐인가. "가장 천한 달단인(타타르족, 과거 몽고족을 부르던 말)들은 한족관리에게 복종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복종한 것이다.", "노예민족에 대한 통치를 실현하면서 대대적인 종족차별이 실되었다.", "태감은 모두 한족이었다. 이는 한족 멸절의 상징성이 뚜렷하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등은 당시 영국 대사 조지 매카트니 백장 1세가 청나하를 방문한 후에 쓴 견문록에 나와있는 증언들임. 당시 대청제국은 중국을 약 150년간 식민통치하고 있었음.
- 낙후는 진보에 의해 통치 받아야 한다는 것은 제국주의의 기본적 인식. 중국은 본토에서 자생된 제국주의와 외래 제국주의를 포함해 최소 2000년에 이르는 가장 오래된 제국주의의 혈통을 보유하고 있음. 공산주의도 제국주의가 더욱 확장된 형태일뿐. 중국은 제국주의에서 단 한번도 떠나 있었던 적이 없음. 중국의 모든 소수민족지구 가운데 제국주의의 확장을 통해 중국의 영토로 편입되지 않은 곳이 있는가.
- 대만 사람이 중국에 가면 자신들의 문명이 발전했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중국인이 대만에 가면 정신적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함. 중국 사회의 낙후성이 민족의 열등성 때문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기 때문. 대만이 해낸 것을 중국은 왜 못하겠느냐 하는 자기 위안임
- 칭다오의 아름다움은 독일에서 온 것. 독일풍 분위기가 없었담녀 칭다오는 이렇게 멋진 도시가 될 수 없었을 것임. 칭다오는 1897년 독일에 강제 점령당해 독일의 조계지가 되었으며 그 후에도 일본군에 의해 두차례나 점령당했음. 일본군은 급하게 왔다가 총총히 떠났지만 칭다오를 조계지로 삼은 독일은 칭다오를 계획도시로 건설했음. 칭다오 사람들이 독일에 느끼는 친근함은 대만인들이 일본에 느끼는 친근함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임
- 장쩌민은 1985년부터 1989년까지 4년동안 상하이 시장, 상하이 시위원회 서기, 중공중앙정치국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총서기를 거쳐 군사위원회 주석에 오름. 덩샤오핑이 낙점한 후계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음. 중국의 임기제가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또 하나의 사례. 중공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중국 최고 정책결정조직으로 9명의 상무위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합의제를 실시해 일상적 업무는 표결에 부치지 않고 대화로서 합의점에 도달. 얼핏 들으면 화합을 중시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상무위원들이 서로 무리지어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음. 장쩌민이 13년 동안 당, 정, 군의 대권을 쥐고 있는 동안 상하이방은 중국 최고권세를 가진 비공식 계파로 떠올랐음.
- 인류문명은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천천히 진보함. 중국은 후발주자의 장점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음. 선진국이 겪은 시행착오를 중국은 대부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임.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가 모두 슈퍼시티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증명된 사실.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중국적 사고는 21세기 인류문명 발전에 역행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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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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