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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탄생

경제 2014. 12. 25. 12:35

 


부의 탄생 (보급판 문고본)

저자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출판사
시아출판사 | 2008-09-1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역사적 사실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새롭게 그려낸 부에 관한 ...
가격비교

제1부_ 무엇이 성장을 낳는가
제1장. 번영에 꼭 필요한 4가지 요소
- 기원전 3000년에서 1900년까지 존속한 수메르에서는 보리대부에 대한 통상적 이자율이 33과 1/3퍼센트였음. 반면 은의 대부에 대한 이자는 20퍼센트였음. 두 대부 이자율의 차이는 은보다는 곡물대부가 위험이 더 컸다는 사실을 반영. 은의 경우는 소비되거나 없어지거나 상할리가 염려가 없었고, 은 수확이 부족할리도 없었기 때문. 그러한 높은 이자율에서는 장기 프로젝트가 불가능. 이자율이 연 20퍼센트라면, 차입총액이 4년이 안되어 두배가 됨. 미래의 부담이 그렇게 파멸적 수준이라면 합리적인 사업가와 기업가들은 5~10년 안에 수익을 거두지 못할 프로젝트를 위해 차입을 하려들지 않음. 대부분 대규모의 상업거래의 경우도 마찬가지임.
- 경제사가 리처드 실라에 따르면, 이자율은 사회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함. 실제로 일정한 시간대에 걸친 이자율 그래프는 한나라의 체온곡선임. 불확실한 시기에는 이자율이 상승함. 공공의 안전과 신뢰감이 줄어들기 때문. 역사적으로 모든 주요한 고대문명은 U자형 이자율 패턴을 나타냈음.
- 1500년 이전에 일반인들의 복지는 정체되어 있었음. 그 원인은 첫째, 무엇보다도 부를 창출할 인센티브가 없었음. 재산을 조금 모았다 하더라도 봉건귀족, 국가, 교회, 강도들이 언제든 빼앗아갈 수 있었기 때문. 둘째, 창조적, 과학적 생각 자체가 불가능했음. 독창적 사상을 내놓은 사람들은 종종 그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물론 저세상에서도 흔적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 셋째, 획기적인 발명을 해냈다 해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구할 수 없었음. 넷째, 그러한 발명품이 대량으로 생산된다 하더라도 그 물건들을 광고할수도, 멀리 떨어진 도시들로 값싸게 수송할 수도 없었음.
- 첫번째 경제혁명을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이유가 인간의 주된 활동을 수렵과 채취로부터 정착 농업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혁명적이었던 것은 그 이행이 인류의 압도적 다수에게 유인체계의 변화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그 유인체계의 변화는 두 시스템 사이의 재산권의 차이에 기인한다. 자원에 대한 공유재산권이 존재할 경우에는 더 나은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려는 동기가 적을 수 밖에 없다. (더글러스 노스, 노벨 경제학 수상자)
제2장. 재산권의 등장과 확립
- 메소포타미아 왕들은 즉위 초기에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부채와 세금청구권을 취소시키는 미스하룸을 선포하곤 했음. 이것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높은 이자율을 야기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음. 대부자들은 미스하룸이 선포되면 자신들의 투자분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곡식의 대부에 대해서는 33과 1/3의 이자를 요구했음.
- 17세기 중반 내전기에 영국인의 재산은 인류 역사상 이전 그 어느때보다도 안전했음. 그러나 다른 세가지 요인이 미비했기 때문에 잉글랜드는 번영을 누릴 수 없었음. 다음 2백년에 걸쳐 잉글랜드는 이 다른 세가지 요인을 획득했고, 19세기 증기 엔진과 전신이 발병되면서 번영의 정정에 도달. 그 시점에 잉글랜드와 그 식민지들은 재산권 측면에서의 유리한 점에 기인하여 이전 세대는 전혀 상상도 못해본 번영을 이룸.
- 영국의 보통법만큼 시민의 역사적 지혜를 그렇게 잘 구체화하면서 동시에 개인적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법률시스템은 없음. 그 법이 효력을 미치는 곳에서는 국가의 부도 번창함.
- 사실 재산권은 그 어느때보다 오늘날 더욱 중요함. 현대 세게에서 안전한 재산권은 부국과 빈국, 번영을 두고 벌이는 경쟁의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모든 것임. 예를 들어 공산주의 세게에서 번영을 위한 세가지 기초(과학적 합리성, 풍부한 자본, 현대적 수송과 통신)는 튼튼한 편이었음. 전후 동유럽 국가들의 정부들은 무자비한 경제적 실험과정에서 국민들로부터 재산권과 개인적 자유를 빼앗았고, 이것이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했던 것임.
- 한나라가 번영하려면 그 시민 중 상당비율이 재산소유자가 되어 그 나라의 정치과정에 개인적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함. 즉, 이해관계자 효과임. 근대 이전 세계에서는 토지가 고갈되면 이해관계자 층이 엷어졌고, 따라서 그나라의 운명도 얼마 남지 않게 되었음.
제3장. 과학적 합리주의의 등장과 확산
- 혁신의 분출에 자극을 가한 것은 서구인이 자연세계를 관찰하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방식에서 일어난 혁명임. 서구인과 서구문화가 이 과학적 합리주의의 탄생에 의해 정의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이러한 혁명을 위해서는 과학과 교회뿌리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음. 인류가 번영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은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영적인 것을 분리시키고, "성령의 뜻은 우리에게 하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하늘에 도달할 것인지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갈릴레오의 신조를 채택한 때부터임.
-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는 확실히 연구를 자극하지 않았음. 그것은 창조적 사고는 물론 세계에 대한 우리 지식의 실질적 진보도 허용하지 않았고, 궁극적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의 처지개선도 허용하지 않았음. 네덜란드의 위대한 역사가 호이징가는 이렇게 기술했음. "사회의 의도되고 지속적인 개혁과 개선에 관한 사항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도 일반은 잠재적으로 좋을수도 나쁠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에 의해 정해졌기 때문에 그 제도들은 본래 훌륭하지만, 인간의 죄악이 그것들을 더럽히는 것일 뿐이다...."
- 천년동안이나 아무런 실질적인 사회적, 지적, 과학적 진보도 없었다는 것이 16세기의 평범함 유럽인에게는 그리 문제시되지 않았음. 일반적으로 인간의 상태는 고정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 베이컨의 놀라운 천재성은 다음 세가지를 인식했다는 데 있음. 1) 실제로 문제가 존재했고, 중세인의 상태는 결코 자연적이지 않았다는 점. 2) 연역적 체계는 결함이 있다는 것. 3) 자연세계에 대한 지식은 지속적으로 증진될 수 있고, 그와 더불어 인류의 복지도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베이컨은 알았음. 인간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낡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체계를 귀납적 체계, 즉 선입견 없이 사실이 먼저 수집되고 그런 다음 분석되는 체계로 대체할 필요가 있을 것임.
제4장. 자본시장의 활성화
- 18세기 중반에 경제발전이 가속화된 단 한가지 이유를 찾는다면 우리는 낮은 이자율에 주목해야 함. 산업혁명기에 깊에 파고들어간 광산들, 견고하게 지어진 공장들, 잘 건설된 운하와 회사들은 모두 비교적 저렴한 자본의 산물들이었다. (토머스 애쉬턴)
- 1770년 이후 네덜란드의 금융시장은 점차 약해짐. 그 이유는 첫째, 암스테르담은 어떤 종류의 강제력 있는 중앙은행이나 투자자 대중을 보호할 책임을 진 규제기관(나중에 영국과 미국에서 발전됨)도 두지 않았음. 두번째, 북해건너편에서 서서히 부상하던 금융적, 군사적 초강국-아이러니하게도 이 거인이 탄생하는 데에는 네덜란드의 자본이 큰 기여를 했음-의 힘이 네덜란드를 압도했음.
제5장. 수송과 통신의 발달
- 속도와 안락함이 조금씩밖에 개선되지 않았던 증기선과는 달리 철도는 여행자체의 성격을 변화시킴. 날짜와 주간단위로 계산되었던 여행시간은 이제 시간단위로 측정됨. 시간자체는 일상생활의 급속한 가속화를 나타내는 철도시간이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얻음. 이전에는 부자들만 할 수 있었던 장거리 여행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 됨. 1835년 영국인들은 1천만 회의 역마차 여행을 했음. 1845년 그들은 3천만회의 철도여행을 했고, 1870년에는 이 수치가 3억 3천만회로 증가.
- 1825년에서 1875년까지 반세기동안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그 어느때보다 철저히 변함. 오늘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대에 대해 유례 없이 급속한 기술적 변화가 일어난 시대라고 생각함. 그러나 이런 생각은 진실과는 한참 거리가 멈. 두세대 전의 평균적 시민이라면 컴퓨터, 제트비행기, 심지어 인터넷도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임. 이와는 대조적으로 1820년대의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1870년대로 보내졌다면, 단 반세기 만에 생겨난 전 지구적인 순간 통신과 철도여행의 속도에 말문이 막혔을 것임. 1825년 이후 몇십년 동안과 같은 그러한 힘과 속도로 인류가 미래를 향해 내던져진 시기는 결코 없었음.
- 확고한 재산권 보호가 장인들을 혁신케 충돌했고, 과학적 합리주의가 그들에게 도구를 제공했으며, 자본시장이 그들의 놀라운 발명품을 개발하고 생산할 자본을 제공했음. 결여되었던 것은 그들의 공장들에 동력을 공급하고 그들의 재화를 수송하는데 필요한 가공되지 않은 물리적 힘과 전 과정ㅇ르 조정하는 데 필요한 빠른 통신이었음. 증기엔진과 전신의 발명이 그 댐을 깨뜨려, 경제성장의 급류를 이루게 되었음. 이전에는 결코 없었던 그런 일이었음. 그 댐은 결코 재건될 수 없을 것이며, 서구 성장의 급류는 조만간 정지되지 않을 것임.
제6장. 부의 창출을 위한 틀의 완성

제2부_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제7장. 가장 먼저 부를 창출한 국가 -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 1500년 이후 네덜란드 번영의 원천
(1) 잉글랜드를 제외한 모든 나라들보다 비할데 없이 강건한 재산권을 누린 주민들
(2) 종교개혁을 통한, 교회의 도그마로부터의 해방. 네덜란드는 종교적 관용덕택에 초기의 많은 프로테스탄트 국가들, 특히 독일에 깊은 상처를 남긴 최악의 분열을 면할 수 있었음.
(3) 네덜란드 자본시장에서 조성된 풍부한 투자자금, 네덜란드 자본시장이 왕성한 활력을 보인것은 낮은 이자율과 강력한 투자자 보호 때문이었음.
- 네덜란드 쇠퇴 이유
(1) 일인당 기준으로는 큰 부를 가졌지만, 경쟁국의 인구규모는 훨씬 더 컸음. 더 나쁜 것은, 더 큰 경쟁국들에 비해 네덜란드의 인구증가율이 더 낮았음
(2) 국내 및 대외 상업에 대한 모든 논의에는 독점이라는 단어가 붙음.
(3) 네덜란드의 번영은 오늘날 서구에서 부를 낳는 거대한 엔진인 기술진보에 근거하지 않았음
(4) 네덜란드의 금융은 좀 과도하게 성공적이었음. 정부가 너무 쉽게, 너무나 낮은 이자율로 차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18세기에는 나라전체가 부채로 파묻힘. 정부는 물품세로 대부를 보증했기 때문에 세율이 올라감. 물품세율의 인상은 가격과 임금을 상승시켰고, 이로 인해 네덜란드의 재화와 서비스의 경쟁력이 떨어졌음.
(5) 네덜란드의 정치체는 위험한 대륙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7개의 반(半)자율적인 국가들의 느슨한 정치적 연맹으로 조각나 있었음. 강력한 중앙은행과 활력있는 전국적 특허제도의 부재는 경제적으로 명백히 불리한 점이었음.
- 18세기의 네덜란드 경제는 균형을 잃은 상태였음. 활력있고 수익성이 매우 높은 무역부문은 엄청난 자본을 낳았지만, 국내경제는 기술진보의 상대적 부재와 독점적 제한들에 가로막혀 그 자본을 미쳐 흡수할 수 없었음. 그 결과 투자현금 잉여가 거대한 규모로 축적되고, 이것은 서서히 국내 이자율을 하락시키고 국내물가와 임금을 상승시켜 국내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렸음.
- 18세기 말 네덜란드가 해외부채에서 나오는 소득에 의존했다는 것은 저주스러운 일임. 미국 부채의 상환은 알렉산더 해밀턴의 정력적인 개입에 의해서만 보증되었음 다른 채무국들의 상황은 네덜란드에 더 나빴음. 프랑스와 스페인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가 속속 채무불이행에 빠지면서 네덜란드의 손실은 산더미처럼 증가했음.
- 인클로저에 관해 역사적으로나 문헌상으로나 잡음과 분노에 찬 고발이 많았으며, 또 비록 소수의 농부들이 부당하게 토지를 빼앗겼지만, 지금 대부분의 역사가는 영국의 재산권 존중전통과 적법절차가 대개는 지켜졌다는 점과 그 과정에 전반적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웠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음. 인클로저법이 오랜 세대에 걸쳐 공유지의 작은 땅뙈기를 가족적으로 점유해온 사람들에게 소유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소지주들의 수가 상당히 증가했음.
- 인클로저된 토지는 공유지보다 훨씬 더 많은 식량을 생산했고 에이커당 더 적은 수의 농부들을 필요로 했으며, 따라서 많은 수의 농업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음.
제8장. 두 번째로 부를 창출한 국가 - 프랑스, 스페인, 일본
- 근대이전에 한 나라가 상업을 통해 부와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생각이었음. 수천년 동안 부에 이르는 길은 승리와 약탈에 있었음.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에서 희미한 번영이 나타나고 네덜란드에서 그보다는 좀더 활력 있는 성장이 일어나기 이전에 통치자들은 상업과 산업을 국가적인 우선순위로 정하기는 커녕 그것의 가치를 이해하지도 못했음. 정복만이 부를 낳았음. 전리품이 고갈되자 특징적인 악순환이 모습을 나타냈음. 상실된 세입을 보충하기 위해 통치자는 일차적인 부의 생산자들, 즉 농부들에 대한 세금을 인상했음. 늘어난 세금을 낼 수 없었던 농부들은 자기 땅을 팔거나 아니면 그냥 버리고 도망쳤음. 이는 세수를 더욱 낮추었고 이에 따라 더욱 높은 세율이 부과되었으며 더 많은 농장이 버려졌음. 헬레니즘 시기 그리스로부터 콘스탄티누스 이후 로마를 거쳐 오스만제국 말기에 이르기까지 쇠퇴하는 국가의 대표적인 특징은 농촌의 인구감소였음.
- 번영으로 가는 도정에서 앞선자와 뒤처진 자를 가르는 것은, 언제 어디서 비로소 통치귀족이 국부를 위한 기초 요소들의 중요성을 파악하는지에 달려 있음. 법치, 사유재산보호, 권력의 분립, 활력있는 민간 상업과 무역, 독점지대로부터 물품세제로의 국가세입원의 전환, 공정인 안전과 교육 및 도로의 공여 등임.
- 모든 국가는 세입을 필요로 함. 세입을 확보하는 방식이 종종 그 나라의 삶과 죽음을 결정함. 오늘날에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정부 공직과 독점권 판매가 너무나 손쉬운 정부세입원이 되면서 경쟁과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음. 근대 이전의 프랑스와 스페인은 이 함정에 빠져 있었음.
- 1853년과 1888년 사이에 영국은 가능한 빨리 관세를 낮춘 데 반해, 프랑스는 곡물수입에 대해서는 아홉배, 소 수입에 대해서는 40배로 관세를 인상. 19세기 말에 프랑스의 정치적 담화는 "모은 사람이 모든 사람을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말로 거의 요약되었음. 모르셀망 체제하에서 비효율적인 영농과 보호주의가 함께 작용하여 프랑스 산업에서 필수적인 숙련 노동자의 결핍을 야기했을 뿐만 아나리 식품 가격도 유럽에서 가장 높게 만들었음. 그 두가지는 다시 프랑스 여성들의 지갑을 비웠을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을 굶주리게 했음. 20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프랑스는 중상주의적 과거에서 벗어나 쉴리와 콜베르 시대 이래로 이러저러한 식으로 프랑스를 따라다니던 치명적 관세를 낮추었음.
- 프랑스에 대한 잉글랜드의 경제적 승리는 우연한 사건이었음. 카드를 섞은 것은 행운의 여신이었지만, 카드 자체는 제도적인 것이었음. 17세기에 각자의 제도적 패가 돌려지자, 판돈은 잉글랜드에게로 돌아감.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모든 나라는 국가세입과 힘의 극대화라는 똑같은 목적을 추구했음. 20세기 동안 서구가 소비에트라는 외관상의 경제적 거인앞에서 몸을 떨었듯이, 17세기 동안 네덜란드와 영국은 중상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으로 계획된 프랑스라는 이웃에 바짝 긴장했음.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사람들 중에서 자국 시스템(법 앞에서의 평등, 권력분리, 탈 중앙집권적 상업, 불필요한 규제의 회피) 이 우위를 차지하리라 확신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음. 그의 마음에는 오직 프랑스 최선의 이익만이 있었음. 애덤 스미스라는 큰 게임의 심판이 게임의 결과와 그 이유를 선언하기까지는 1세기가 더 흘러야 했음. 그렇게 진상이 밝혀진 다음에야 비로소 불리한 패를 가진 쪽이 프랑스라는 점이 눈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명백해짐. 그렇게 된 원인은 프랑스의 재산 인센티브 시스템에 결함이 있었고, 과학자와 장인사이의 의사소통이 결여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이 발육부진 상태에 있었고, 국내관세가 상업을 질식시켰기 때문.
- 엄격한 봉건적 규칙이 비교적 느슨했다는 점 외에 농촌은 다른 장점도 있었음. 즉, 수력이 풍부했고, 화폐 경제에 익숙하고 농사와 공장 노동을 번갈아 할 수 있는 기민한 농부들이 있었음. 농촌의 두가지 장점(다면적 노동력과 수력)은 공업화를 위한 핵심적 요건이었음.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가 타도되고 일본의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농촌은 새로운 유럽식 공장기계를 다룰 수 있는 잘 훈련된 노동력을 제공했음.
제9장. 뒤처진 국가들 - 이슬람 세계와 라틴아메리카
- 15세기 경 이슬람 학자들은 코란해석을 동결시켰음. 타클리드(의심의 여지가 없는 종교적 공리)라는 이 가르침은 코란에 대한 이전이 해석을 글자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규정하고 장래에 있을 수 있는 어떤 해석도 차단했음. 이 조용한 재앙은 역동적인 사회적, 경제적 힘이 되어 이슬람을 불구화 시킴. 그것은 흑인은 시민권을 주장할 수 없고 의회는 노예제를 금지시킬 수 없다는 드레스 스코트 판결 이후 1857년 미 연방대법원이 헌법에 대한 모든 재해석을 중단시킨 것과 똑같은 일이었음. 타클리드 속에 내재된 자유로운 지적 연구에 대한 금지는 경제적 번영에 필요한 두번째 요인, 즉 과학적 합리주의에 관해 말해줌. 본래부터 외부세계에 대해 어떤 호기심도 없고 그 자신의 가정에 대해 도전할 의지도 없는 사회는 혁신하지 않는 사회임. 혁신하지 않는 사회는 진보하거나 번영할 수 없음.
- 부와 자연적 부존자원 사이에는 역의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듯함. 합스부르크 제국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나이지리아, 사우디, 자이르에 눈길을 돌려보라. 풍부한 천연자원이 저주라는 결론을 쉽게 끌어낼 수 있을 것임. 상업적 기업활동을 통해 위험을 감수하고 땀을 흘림으로써 이루어지는 부의 생산은 건전한 제도를 촉진하고 더 많은 부를 낳음.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제한된 수의 구멍을 원천으로 한 부의 생산은 지대추구와 부패를 낳음.

제3부_ 번영의 결과와 부의 흐름
제10장. 국가의 번영과 개인의 행복
- 민주주의가 기능하는 곳에서는 기근이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언론과 야망 있는 정치가들이 기근을 드러내고 교정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때문이다. 이는 의심할 나위 없는 진실이지만,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곳에서는 기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번영이 민주주의를 고양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아에 대한 멋진 해결책을 제공해준다는 사실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아마티아 센)
- 선민주주의와 후경제성장과 상관되기 보다는 선경제성장이 후민주주의와 더 잘 상관됨. 번영은 민주주의를 낳는 경향이 있지만, 민주주의 자체는 번영에는 별로 도움이 안됨.(민주주의는 망하는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향이 있음. 특히 유럽과 일본에서 자주 볼 수 있음. 민주적 제도들은 또한 해방된 시민들에게 사회적으로는 유용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비생산적인 광범위한 자선적, 지적, 정치적 배추구를 제공하는 경향이 있음.)
제11장. 부를 둘러싼 거대한 상충관계
- 경제성장의 큰 역설은 커다란 부를 창출하는 바로 그 메커니즘이 부의 큰 불평도 야기한다는 점. 사유재산은 그 소유자에게는 부를 생산하려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는 똑같은 부가 돌아가지 못하도록 함. 부는 나머지 인구에게로 조금씩 흘러가지만, 종종 이 흘러가는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못해 정치적 분쟁이나 그보다 더 나쁜 사태가 일어나기도 함. 활발한 경제성장과 소득 불평등 사이의 상충관계는 재산권과 법치를 강조할 경우 나타나는 불가피한 결과임.
제12장. 부와 세계 헤게모니의 장악
제13장. 성장이 이대로 지속될 수 있을까
제14장. 언제, 어디서, 어디로
- 서구인의 정신은 그리스-로마적 뿌리에서 움튼 위대한 문학, 예술, 건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확고한 믿음도 엄격한 경험적 조사를 받게 하겠다는 단순한 의지에 있었음. 오늘날 이것이 서구와 세계의 여타 곳들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 있음
- 1500년 경 수백개의 국가와 공국으로 이루어진 유럽은 부지불식간에 상쟁하는 제도와 이데올로기의 온상이 됨. 이 요인들의 가장 유리한 조합을 가진 두나라, 즉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가 근대 번영의 탄생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님. 16세기 네덜란드에서 재산권, 과학적 합리주의, 자본시장, 수송과 통신의 발전이 거의 2세기 동안 미숙하나마 느리지만 확고한 성장을 지속케 했음. 증기엔진과 수송이 아직 네덜란드 경제에는 도입되지 않았지만, 네덜란드는 의심할 여지 없이 경제적 편익을 준 자연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음. 항해 가능한 수로를 가진 평탄한 지형이 그것임.
- 1800년이나 1900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에서도 네가지 요인이 발전된 곳에서 번영이 존재. 공히 영국 보통법의 유산을 상속받고 서구적 합리주의를 받아들였으며, 자본시장이 활성화되어 있고 수송 시스템이 발전된 홍콩과 싱가포르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음. 두 나라는 지리적 행운도 타고 났음. 두 나라 모두 작은 섬나라로서, 탁월하고 전략적인 지점에 위치한 천연항구를 가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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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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