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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종말

경제 2014. 10. 21. 20:43

 


세계화의 종말

저자
자크 사피르 지음
출판사
올벼 | 2012-10-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세계화의 종말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 자크 사피르 교수(파리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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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40여 년간 경험한 세계화는 무역의 세계화와 금융의 세계화가 결합한 것. 금융의 세계화는 브레턴 우즈 협정에 의해 확립된 국제통화체제가 73년 와해되면서 그 기반이 조성되었으며, 무역의 세계화는 자유무역의 확대과정을 통해 구현됨.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가 진행되어 온 각각의 단계에서 폭력과 전쟁의 씨앗이 만들어짐. 오늘날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하고 있음. 바로 경제와 사회의 전면적 퇴행임. 이 퇴행은 부유한 나라들을 먼저 강타했음. 그렇다고 신흥 개도국들을 관대하게 다룬 것도 아님. 더욱이 역사적 퇴보는 자원자원의 무분별한 개발을 초래하여, 무려 15억명이 넘는 지구촌 사람들이 환경재난 속에서 나날이 피폐해져 가고 있음. 사회적 유대마저 파괴되는 나라가 속출하면서 수많은 민중들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현란한 불빛 아래 광적인 개인주의가 주는 충격에 시달리고 있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현실들이 또 다른 퇴행, 최악의 퇴락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
- 7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 세계 GDP는 크게 증가했더라도, 그 시기는 경제활동의 상품화가 빠르게 진행된 시기와 겹치기 때문에 회계적 관행에 따라 무시할 수 업을 정도의 통계적 가공물이 GDP와 GNP에 포함되었을 것임. 그러므로 최근 30여년 간 세계무역의 상승과 GDP증가의 상당부분은 실제적인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함. 이 변화는 국민소득의 산정규범에 의해, 예전에는 고려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이뤄져 온 생산등이 단지 통계에 반영된 것일 뿐임. IMF, 세계은행 등과 같은 세계경제기구들은 개도국들이 수출상품의 생산을 늘릴 것을 권고해 왔는데, 그 근거가 되는 국제무역통계에는 상품화의 진전에 의해 왜곡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함. 특히 70년대 초부터 90년대 말까지 무역량을 비교할 때 통계적 착오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데, 오차가 대략 전체 무역량의 30~5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됨. 따라서 무역의 세계화가 짧았던 20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신화임. 세계화는 1차대전의 발발로 중단되고 오랜 쇠퇴기를 거쳐 70년대부터 부활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하지만, 사실상 세계화의 황금기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음
- 러시아는 세계경제에 통합되어 있으면서도 WTO가 규정하고 있는 세계화 규칙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움.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의 입장은 명확함. 러시아는 주요 국제기구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WTO에 가입하기를 원하지만, WTO가 먼저 보장해야 하는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있음. 러시아는 자국 성장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WTO의 규칙들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이 기구의 외부에 머물기를 원함. 또한 최근 러시아는 WTO의 규정에 비춰볼때 도저히 수용될 수 없는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벨라루스 및 카자흐스탄과 하나의 블록을 형성해서 WTO에 참가하겠다는 것. 러시아가 자신의 조건을 끝내 관철시킨다면 WTO의 일관된 원칙을 흐트리는 데 성공하는 것. 사실 러시아의 경제성장 과정은 무역 세계화의 제도들과 일정정도 단절하는 것이 아주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좋은 사례임. 러시아는 98년 예기치 않은 충격적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그후 9년 연속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음.
- 프랑스 자동차회사 시트로엥사는 DS-19/21/23모델을 20여년 동안 약 150만대를 생산했음. 그런데 오늘날 이 모델의 경우 연간 생산량 150만대가 최소 손익분기점임. 이와 같은 대량생산을 가능케 하려면 판매시장이 넓고 많아야 함. 다국적 기업들은 국제무역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해 옴. 무역자유화의 초기에 주요 생산거점들은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생산공정의 한 부문을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간 경우는 아주 많았음. 생산공장의 해외이전은 국제무역의 확장 초기에 큰 기여를 함. 그런데 국제무역이 대폭 발전한 것은 분명하지만, 리카르도가 19세기 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모직물과 포르투갈 와인 경우와 같이 공업과 농업부문간 교역이 아니라, 같은 산업부문 내의 교역이 증가한 것임. 하나의 생산공정을 구성하는 여러 단계간에 이뤄지는 무역형태는 국제무역이 비교우위에 따른 전문화가 아니라 공장들 간의 기술적 특화에 의해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줌. 따라서 무역의 세계화는 무엇보다도 기업의 세계화임. 하지만 세계화가 초국가적인 글로벌한 기업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님. 여러 사람들이 동일한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각 개인이 속한 민족적 특성은 작업의 구상 과정에서도 뚜렷이 나타남. 한 부품을 설계할 때 프랑스 기술자는 열역학적 관점에서 모델을 개념화하는 데 반해, 일본 기술자는 부품을 시각화하고 형태변화를 꾀하는 방식을 택함. 미국과 러시아, 영국의 기술자는 또 다르게 작업할 것임.
- 지난 40년간 진행된 세계화가 알려준 교훈 중 하나는 나라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고유한 기술문화가 있기 때문에 동일한 기술이라도 나라마다 적용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나며, 이에 따라 경영문화도 국가별로 고유한 특성을 띤다는 점. 그리고 이런 차이점은 19세기 말 이후 기업의 역사적 발전과정이나 국가의 전통적 경제개입 방식에도 반영되어 있음. 그 외 다른 차이점은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데, 예를 들면 알파벳과 표의문자의 차이나, 열린 국경을 가진 나라들(브라질, 러시아, 미국 등)과 이른바 자연적 국경으로 둘러싸인 나라들(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처럼 대조적인 생활공간에 따른 차이점을 들 수 있음.
- 유럽연합의 확대과정이 유럽의 전통적 핵심국가의 국민들뿐만 아니라 동유럽 국가들의 국민에게도 유익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음. 따라서 해외직접투자를 이타적 선택이라고 정당화할 수 없음. 결국 유럽연합의 확대가 갖는 의미는 서유럽 국가를 동유럽 신규가입 국가들과의 경쟁으로 몰아넣어 서유럽의 사회모델을 와해시키겠다는 엘리트들의 의지가 실현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뿐임. 게다가 몇몇 산업영역에서 노동자들의 처지가 개선되기도 했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혜택을 누린 것은 아님. 유럽 차원에서 세계화는 사실상 전통적 핵심국가의 노동자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었음. 이런 까닭에 유럽연합과 유럽연합의 각종 제도들이 세계화 과정에서 야기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할 수 있음. 유럽연합은 서유럽 국가의 노동자들을 보호해주지 못했으며, 신규가입 국가의 사회적 수준을 서유럽 수준으로 빠르게 수렴시킨 것도 아님. 오히려 산업부문의 사회적 환경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한편, 대기업에게는 막대한 이윤을 보장해줌.
- 무역의 세계화는 개도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심각한 사회적 퇴행을 낳고 있음.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계화는 부국의 빈곤층을 더욱 가난하게 하고 빈국의 뷰유층을 더 부유하게 하는 정책일 뿐임. 실제로 세계화는 지배층들이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노동계층에 양보했던 것을 모두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가장 위력적인 무기로 활용되었음. 그러나 세계화는 또한 정치적 한계에 직면했음. 도하 어젠다의 협상실패가 그 증거임. 우리는 분명 패러다임의 전환과 마주치고 있음. 아직 그 전환이 언제 어떻게 구체화될지 알 수 없지만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함.
- 대공황이란 비극적 시기는 국제적 통화, 무역체제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케인즈의 성찰이 무르익는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 케인즈가 이 시기로부터 이끌어낸 교훈은 세가지 방향으로 정리됨. 먼저 30년대 초반의 경험으로부터 국제통화체제에서 유동성 공급능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교훈을 이끌어냄. 케인즈는 모든 형태의 금본위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더욱 확고히 했음. 그 다음으로 자유무역에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애초의 입장을 버리고 기본적 체제로서 보호주의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위급한 시기에는 자급자족에 가까운 보호정책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 케인즈가 도출한 두번째 교훈은 자유무역이 20세기에 긍정적 내용을 모두 소진했다는 점. 가장 중요한 세번째 교훈은, 국가간 조율이 필수적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국가정책들의 운용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점. 모든 협력의 체제는 행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임.
- 금융자유화는 지지자들이 약속했던 혜택을 가져다 주지 않았음. 개도국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연구작업들은 자본계정의 개방이 성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줌. 이보다 앞서 이루어진 연구들은 외국자본에 대한 개방이 실제로는 내수의 변동성을 높였다는 점을 증명해 보였는데, 이 문제는 확실히 단기자본의 경기자극적 성격에 기인. 또 다른 연구는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국가들이 바로 이러한 단기자본에 가장 덜 의존했던 나라들임을 입증했음. 자본 자유화를 옹호하는 논리적 추론은 다음과 같음.
* 개도국들은 투자를 위해 자본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사실임)
* 투자자본은 외부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 (이 문제는 나라의 사정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음)
* 따라서 필요한 자본을 유치하고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자본이동에 대해 문을 열어야 한다. (이것은 투자와 투기의 차이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오류임)
- 한국 등 동아시아와 러시아 등을 파국으로 몰아넣엇던 97~99년의 금융위기는 73년 이래 미국과 IMF의 정책이 함께 만들어낸 통화의 무질서가 낳은 결과이며 세계금융질서의 중대한 파열을 의미. 사실 이 위기를 계기로 금융의 세계화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판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음. 금융자유화에서 비롯된 위기는 그 영향력이 실로 파괴적이었으며, 특히 미국과 IMF는 위기의 통제에 있어서 완전한 무능력을 드러냈음. 이 사실은 세가지 중대한 결과를 초래. 첫째, 세계경제의 금융화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림으로써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음. 세계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금융위기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인 전제가 되었음. 이미 98년부터 미국이 이제껏 강요해온 세계 금융, 통화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기 시작. 두번째는 위기를 경험한 국가들이 새로운 대외경제전략을 수립하게 만들었다는 점. 사실 이렇게 수립된 전략은 현재의 위기를 초래하는 데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음. 97~99년 위기가 낳은 긴박감은 세계겨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도록 하기에는 부족했음. 대부분의 나라들은 세계겨제를 구조적으롤 개혁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보다는 자국경제의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고를 비축하는 데 주력했음. 케인즈가 제안했던 국제통화체제가 정착되어 있다면 하등 필요없을 외환보유고를 축적하기 위해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제무역에서 공격적 수출전략을 전개. 이 전략들은 선진국의 임금정체를 야기함으로써 선진국들의 불균형을 심화시켰음. 현 금융위기의 출발점인 미국, 영국, 스페인 등의 가계부채의 위기는 다른 나라들이 외환보유고의 축적을 위해 추진한 공격적 수출전략에 기인하는 바 큼. 여기서 국제통화 무질서에서 비롯된 악순환의 전체상을 확인할 수 있음. 이 악순환 속에서 보호주의 정책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이 등장하게 됨. 이 나라들은 무역적자와 가계부채의 증가로 인해 경제적 불안정이 위험수위에 있기 때문. 하지만 보호주의 정책을 시행하게 되면 무질서를 더욱 심화시키고 수출국들의 안정성이 위협받게 됨. 이 상황은 정확히 케인즈가 피하고자 했던 유형의 악순환임. 케인즈가 통화동맹의 원칙들과 조정가능한 고정환율제, 방코르의 역할, 무역규칙과 자본통제를 결합한 체계를 제안한 이유는 모든 나라들이 이웃나라의 안정을 해치지 않으면서 경제정책의 진정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음. 세번째 결과는 러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외환통제정책을 부활시킨 것임. 중국이 위안의 태환성을 확대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거부한 것은 확실히 현명한 선택이었으며, 러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정책에서 시사바든 바 큼. 이처럼 케인즈의 생각은 유효성을 인정받고 있음. 자본과 환율에 대한 통제는 대내적으로 자유로운 경제정책을 추진할 공간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자국 경제의 안정적 발전경로를 찾아가는 데 필수적임. 하지만 환율과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를 확립하는 것은 미국과 직접적 갈등을 낳는 민감한 사안임. 현재로서는 미국의 정책목표는 다른 나라들의 경제적 주권의 수호와 양립할 수 없음. 아시아 국가들의 산업화 전략에서 대한 최고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인 로버트 웨이드는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문제의 본질은 미국과 정치경제적 주권을 수호하기를 원하는 다른 나라들 간의 갈등에 있다고 규정함.
- 건전성 규제가 위험을 예방하지 못하고, 다가올 미래에서도 무기력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면, 무질서가 초래할 결과로부터 자국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전략들이 강구되어야 함. 여러 신흥경제국가들은 외환보유고를 대규모로 축적하는 전략을 선택했음.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전략은 세계적 차원의 금융조절이 현재로는 불가능하다는 자각의 직접적 결과임. 특히 앞서 일어난 위기에서 IMF의 실패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에 상당한 활력을 다시 불어넣었음. 01년 IMF는 위기관리에 대한 무능력을 자인하면서 신흥국의 전략을 지지하기로 결정했음. 하지만 이 정책에 수반되는 비용은 막대했음. 이것은 금융비용이기도 하고 예산비용이기도 함. 왜냐하면 축적된 경상수지 흑자는 투자를 위해 사용될 수 있기 때문. 이 관점에서 보면 금융자원의 기회비용과 투자에 할애할 수 있었던 재정자원의 불태화로 인해 초래된 성장지연은 바로 금융개방과 세계화에 의해 초래된 것임. 하지만 개도국에게는 외환보유고를 축적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음. 개도국은 내수를 강력하게 억제하면서 공격적 수출전략을 추진해야만 했음. 중국은 이 전략을 추진한 대표적 나라임. 우리는 중국인의 전략을 약탈적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지만, 냉정하게는 97년고 99년 사이 국제 금융환경의 불안정성에 의해 야기된 혼란에 대한 중국의 선택으로 이해해야 함.
- 화폐는 거울 또는 확대경과 같은 역할을 함. 실물세계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하고 더욱 증폭시키기도 함. 이 결과는 경직적 정보모델의 결론과 완벽하게 일치. 사회경제체제의 개별성 자체는 사회경제체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국가의 역사적 산물이며, 이 개별성은 모든 통화정책의 연구에서 핵심적인 분석대상임. 각 국민경제에는 생산적, 금융적, 사회적 구조에 조응하는 인플레이션율이 존재. 이보다 낮은 인플레이션율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경제와 사회는 지속적으로 손상을 입을 수 밖에 없음. 따라서 국민경제 간에는 인플레이션율이 차별화되는 현상이 계속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함. 그런데 단일 통화는 상이한 속성을 갖는 국가경제들에게 공통의 틀을 부여하며, 이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국가들 간의 경쟁력격차가 커졌음. 물론 국가간 재정이전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면 부조화와 이질성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유로존이 당장 재정통합에 성공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음. 유로는 오랜 준비끝에 출범했지만 이론적으롤 고루한 것이었음.
- 유로는 달러가 누리는 것과 같은 정치적 힘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음. 유로를 채택하지 않은 나라들이 유럽대국의 건설이라는 해법을 수용하지 않는한, 그리고 유로가 유로존 회원국 간의 경제논리의 차이로 인해 내부적인 침식이 진행되는 한, 결코 미국과 같은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없음. 위기가 시작된 이후 유로존의 이질화 현상은 계속 진행되었음. 유로존 차원에서 소득을 균등화하는 기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향후 몇 년 안에 이질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임. 하나의 통화가 국제적인 대외준비금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경제라는 조건 외에 다른 조건들이 필요함. 달러의힘은 사실상 미국이 지리, 전략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특별한 위상에서 비롯된 것임. 이 부분에서 유로와 유로존은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지 않음. 미국을 대체하려는 계획을 추진한다손 치더라도 그에 필요한 수단이 없음. 또한 유로존이 현재의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명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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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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