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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철학자들

경제 2015. 1. 25. 10:59

 


세속의 철학자들

저자
로버트 L. 하일브로너 지음
출판사
이마고 | 2008-10-1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애덤 스미스에서 시작하여 슘페터에 이르기까지 250여 년에 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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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흥미로운 모험와 위험한 탐구의 학문
- 산업혁명의 초기에는 그 흐름을 탈 정도로 충분히 재빠르고 영리하며 또한 근면한 사람들이 상당한 재물보따리를 취할 수 있었다.
- 어린이들은 독립생활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에 어른들보다 공장생활의 규율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어린이를 고용하는 일은 박애주의적 제스처로 환영을 받았다
2. 경제혁명 : 새로운 비전의 탄생
- 윌리엄페티(1623-87) : 정치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 사환, 행상인, 재봉사, 내과의사, 음악교수 등의 일을 했으며 정치수학학파의 창시자로 활동
- 안톤푸거(1493-1560) : 15~16세기 유럽의 상업계를 독점하며 자본주의 경제개념을 발전시키고 유럽의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한 푸거가를 이어받은 인물
- 오랜시간동안 인간은 이렇게 전통이나 명령이라는 해결책에 따라 자신의 생존문제를 다루어왔음. 그리고 문제를 이러한 방식으로 다루는 동안에는 경제학이라는 특수한 연구분야가 생겨날 수 없었음. 비록 역사속에는 여러 사회가 경제적으로 아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그 사회가 왕이나 인민위원들의 지위를 높이고 대구포와 잘 마모되지 않는 금속을 화폐로 사용하며 가장 간단한 공산사회의 방식이나 고도의 종교적 양식에 따라 물품을 분배했다 하더라도 경제생활이 관습과 명령에 따라 이루어지는 한 그런 활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줄 경제학자는 필요하지 않았음. 신학자, 정치이론가, 정치가, 철학자, 역사가는 필요했음. 그러나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경제학자는 필요 없었음
- 경제학자의 출현은 생존문제를 해결할 제3의 방법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음. 경제학자들은 사회가 각 개인에게 스스로 보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행동하도록 허용함으로써-핵심적인 규칙을 따른 다는 것을 전제하면-사회의 생존을 확보하는 놀라운 제도적 장치가 개발되고 나서야 나타날 수 있었음. 그 장치는 시장체제로 불렸고 그 규칙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했음. 바로 개인은 자신의 금전적 이득에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음.
- 이익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보편적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익을 사회적으로 용인한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이고, 그것도 점차적으로 이루어져왔음. 중세시대에 교회는 기독교인은 누구나 상인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음.
- 물론 부라는 것은 항상 존재했고 물질에 대한 탐욕은 구약성서만큼이나 오래된 역사를 가짐. 그러나 소수 유력자의 부를 보고 시기심을 느끼는 것과 부를 향한 전반적 투쟁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음.
- 중세의 체계가 시장체제를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하고 충분한 이유에 근거를 두고 있었음. 그 세계가 아직 생산의 추상적 요소를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 이유. 중세에는 토지와 노동과 자본이 없었기 때문에 시장이 없었음. 시장이 없기 때문에-물론 다채로운 시골시장이나 박람회는 있었지만-사회는 지방적 수준의 명령과 관습에 따라 움직였음.
- 대체 어떠한 힘이 안락한 기성세계를 무너뜨리고, 새롭기는 하지만 사람들을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 이러힌 사회를 거뜬히 세울만큼 강력했을까? 첫째는 유럽에서 국민적 정치단위가 점진적으로 대두했으며, 둘째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르네상스의 회의적, 탐구적, 휴머니즘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아 종교적 정신이 서서히 쇠퇴한 것에서 찾을 수 있음.
3. 애덤스미스의 놀라운 세계
- 애덤스미스(1723-1790) : 사회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 국부론은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한 최초의 경제학 저시이며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의 명제가 이 책에 등장
- 구성원 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하고 행복할 수 없다고 급진적인 말을 할 정도로 저돌적이었으며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사회는 끊임없이 향상된다고 주장. 사회는 싫든 좋은 어떤 긍정적 목표를 향해서 나아감. 사회가 움직여가는 것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원해서가 아니고, 또한 의회가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도 아니며, 영국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도 아님. 거대한 엔진처럼 사회전체를 움직이는 동태적인 힘이 표면에 드러나는 사건들 밑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사회가 움직이는 것임.
- 애덤스미스는 시장기능을 강력히 촉진시켜 생산성이 나선을 그리는 상승곡선을 이루도록 하는 두개의 뿌리깊음 행동법칙을 발견. 축적의 법칙과 인구의 법칙이 그것임.
- 축적을 계속하면 곧 더이상의 축적이 불가능한 상황이 이르게 됨. 왜냐하면 축적은 더 많은 기계를 의미하고, 더 많은 기계는 더 많은 노동자의 수요를의미하기 때문. 그렇게 되면 조만간 임금의 계속적인 상승이 뒤따를 것이고 마침내 이윤(축적의 원천)은 잠식될 것임. 이러한 장애를 인구의 법칙으로 뛰어넘을 수 있다고 주장.
- 스미스는 신흥자본가계급의 야비한 탐욕을 비난하고 도저히 인류의 지도자가 아니며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고 그들에게 혹독한 비난을 퍼부음. 그러나 그들은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시장을 그냥 내버려두라(let the market alone)는 위대한 메시지를 지지한 나머지 그가 퍼부은 모든 비난을 무시함.
- 스미스가 사는 동안 거대기업이 시장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보지 못했고, 자신이 제시한 축적과 인구의 법칙이 50년 뒤의 사회학적 발달에 의해 뒤집히는 것을 보지 못함. 그가 집필하던 시기에는 아직 경기순환이라고 불릴 수 있는 뚜렷한 현상도 없었음. 그가 기술한 세계는 실제로 존재했고, 그는 그것을 체계화함으로써 시장체제가 확장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탁월하게 분석했음. 그러나 스미스의 구상에는 빠진것이 있었음. 그는 사회의 진화는 보았지만, 사회의 혁명, 즉 산업혁명은 보지 못함. 스미스는 추악한 공장제도, 새로 시도되는 회사형태의 기업조직 그리고 권익옹호 조직을 만들려는 직공들의 허약한 시도 등에서 새롭고 강력한 사회적 힘이 서서히 움트고 있음을 미처 알지 못함. 어떤 의미에서 그의 체계는 18세기 영국이 영원히 변하지 않은채로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임.
4. 맬서스와 리카도의 우울한 예감
-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1766-1834) : 경제학자이자 인구통계학자. 인구증가느 식량공급을 앞지르는 경향이 있으며 인류의 운명을 위해 엄격하게 산아제한을 해야한다고 주장
-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 : 경제학자. 노동자의 실질소득을 늘리려는 시도는 모두 무익하며, 임금은 필연적으로 생존수준에 가깝게 유지된다고 주장.
- 사람을 놀라게 하는 지적충격 한방으로 맬서스는 자기만족과 안락한 진보의 전망으로 기울어 있던 당대의 모든 희망을 무너뜨림.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같은 시기에 전혀 다른 부류의 사상가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바의 다른 안락한 가설에 대한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음. 증권업자로 대단한 성공을 이룬 리카도가 경제학 이론의 개요를 발표. 그것은 맬서스가 예언한 인구의 홍수보다는 덜 요란스러웠지만 나름대로 스미스가 주장한 개선의 전망에 찬물을 끼얹는 이론이었음.
- 스미스는 세계를 보고 그 안에서 위대한 협주곡을 찾아낸 반면 리카도는 가차없는 대립을 보았음. 국부론의 저자에게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자비에 동참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 반세기 후에 저술한 탐구적인 증권업자가 보기에 사회는 싸우는 집단으로 갈라져 있을 뿐만 아니라 대립에서 당연히 승리해야 할 사람-근면한 자본가-은 패배할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 같았음. 왜냐하면 리카도는 사회의 진보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은 지주라고 믿었기 때문.
- 서유럽에서 맬서스의 이론을 논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은 한 것은 엄청나게 진행된 도시화였음. 농장에서는 자식이 자산일 수 있지만 도시에서 그들은 부채였음. 이렇게 경제적 배려가 산아제한에 관한 지식과 결합되어 두려운 인구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음.
5.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꿈
- 로버트 오언(1771-1858) : 공상적 사회주의자. 뉴래너크 공장을 비롯한 수많은 실험적 이상적 공동체를 후원, 장려함
- 끌로드 앙리 드 루브루아 생시몽(1760-1825) : 사회개혁가. 그리스도 사회주의의 바탕을 마련한 중심인물 가운데 한사람
- 샤를 푸리에(1772-187) : 사회이론가. 생산자협동조합에 바탕을 둔 이상사회 건설을 주장
- 존 스튜어트 밀(1860-1873) :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분배와 생산을 별개로 봄
- 유토피아 주의자들이 극단적이었던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음. 법칙은 결코 위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이 책임감을 느낀 사회여건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음. 그래서 유토피아주의자들은 두주먹을 움켜쥐고 사실상 사회체제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 자본주의가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다른 세상을 선택하자. 협동마을이나 도덕률 또는 팔랑스테르의 쾌적한 휴양지 분위기 말이다.
- 공산주의자와 는 달리 이들은 상류계급의 사람들에게 사회변혁이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이해에 득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려 한 개혁가들이었음. 공산주의자들은 대중에게 이야기했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폭력을 선동하기도 함. 사회주의자들은 동류-지식인, 프티 브루주아지, 자유사상의 중산계급 시만 혹은 지적으로 개명된 귀족-에게 자신의 계획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 로버트 오언조차 동료공장 소유주들이 자신의 대의에 함께 참여해주길 바랬음.
6. 마르크스의 냉혹한 체계
- 칼 마르크그(1818-1883) :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정치이론가.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로 엥겔스와 공산당 선언, 자본론을 집필
- 모든 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혁명의 궁극적 원인은 사람들의 의식이나 영원한 진리와 정의를 향한 그들의 통찰력 증가가 아니라 생산 및 교환양식의 변화에서 찾아야 함. 즉 철학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해당시대의 경제학에서 찾아야 함.
- 애덤스미스의 경우 자본주의의 상승세는 인간이 전망할 수 있는 한 계속될 것이었음. 리카도의 경우 그 상승세는 인구의 증가가 한정된 규모의 경지에 가하는 압박에 의해 저지됨. 이로 인해 진보는 궁지에 빠지고 운좋은 지주들만 횡재하게 됨. 밀의 경우에는 사회가 경제법칙의 명령과는 상관없이 사회적 가치판단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할 수 있다는 발견덕분에 훨씬 더 밝은 전망을 제시함. 그러나 마르크스의 경우에는 밀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구원의 가능성조차 허용되지 않았음. 역사유물론에 따르면 국가는 경제적 지배자들의 정치적 지배기관에 불과하기 때문. 마르크스에게는 일종의 심판자 자경을 가지 국가가 서로 갈등하는 구성원들의 요구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제3세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전히 소망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을 것임. 자본주의의 내적 논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며, 체제의 변증법적 발전은 자기파멸을 낳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결국 그 계승자를 낳게됨.
- 마르크스의 예언은 대체로 놀라운 예언능력을 보여줌. 하지만 이 모든 변화는 거대하고 불길한 것이었지만 순전히 마르크스가 바라본 세계가 옳았는지 틀렸는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할수는 없음. 왜냐하면 그의 비전에는 어떠한 대표적 인물도, 즉 어떠한 현명한 노동운동 지도자도 어떠한 미래의 혁명영웅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임. 물론 중심배역은 있음. 자기파괴적인 자본가가 있고 궁극적으로 승리를 쟁취할 노동자가 있음. 하지만 이 둘은 결국 한쪽에는 패배를, 다른 한쪽에는 승리를 안겨다주는 연극속의 허수아비에 불과. 마르크스의 시나리오에서 대표적 인물은 사람이 아니라 과정임. 그의 비전에서 핵심은 사물의 변증법적 힘이다.
7. 빅토리아 시대와 경제학의 지하세계
- 프랜시스 이시드로 에지워스(1845-1925) :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 방대한 수학적 지식과 간결한 문체로 경제현상을 규명하고 에지워스식 물가지수를 고안
- 프레데릭 바스티아(1810-1850) :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 저술활동을 통해 자유무역을 주창.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을 지지
- 헨리 조지(1839-1897) : 경제학자. 토지단일세를 주장한 토지개혁가이기도 함
- 존 앳킨스 홉슨(1858-1940) : 사회경제학자.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인해 당대에 이단적 경제학자로 취급됨
- 앨프리드 마셜(1842-1924) : 경제학자. 신고전학파 경제학 창시자 가운데 한사람
- 다국적 기업은 자본의 국제화에 두가지 변화를 가져옴. 첫째, 자본 국제화의 지리적 흐름을 변화시킴. 고전적 제국주의 시대에는 원자재를 확보하고 섬유와 같은 기본상품을 팔기 위한 시장을 확보하는 데 해외진출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음. 그러나 다국적 기업은 이러한 기본상품에서 자신들의 세계적 선도자 역할을 하고 있는 컴퓨터나 의약품 같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산업제품 쪽을 방향을 전환. 그 결과 해외에 투자하는 자본의 지리적 배분에 놀라운 변호가 생김. 1897년에는 미국이 해외에 투자하는 자본 가운데 거의 절반이 철도와 광물생산에 투입되었음. 그러나 오늘날에는 투자액의 대부분의 자본은 제조업 분야로 향하고 있음. 그리고 국제적 투자의 75%는 유럽과 캐나다 및 다른 선진자본부의 국가로 흘러들어가고 있음. 다국적 기업 발흥의 두번째 경제적 결과는 고급기술을 저렴한 미숙련 노동력과 결합시키는 능력이 현저하게 높아졌다는 것임.
- 거대한 경제혁명의 시대에 생산요소가 스스로 전자본주의사회에서 출현했듯이 우리 시대에는 새로운 경제혁명이 종전에는 세계에서 단지 수동적이었을 뿐 능동적 힘을 가지지 못했던 지역에 시장경제를 불러오게 됨. 이렇듯 현대 제국주의는 해외에서 자본주의를 활성화시키는 데 거대한 힘이 되고 있음.
8. 베블런의 눈에 비친 야만사회
- 소스타인 번드 베블런(1857-1929) : 경제학자이자 사회과학자. 부자의 생활상을 묘사할 때 널리 사용되고 있는 과시적 소비, 금전상의 경쟁 등의 말을 처음 만들어냄.
- 미국자본주의의 황금시대에 살었던 금융거물이 강도귀족이었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고 또한 그들에대한 베블런의 묘사는 다소 야만적이기는 하지만 기분 나쁠 정도로 진실에 가까움. 그러나 마르크스처럼 베블런도 영국의 군주제처럼 이 기업체제가 미국이라는 크게 변화된 세계에 얼마나 순응했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하지는 않았음. 더욱 핵심에 근접한다면 그는 생활의 완전한 재배치자 역할을 하는 기계가 노동자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처럼 기업가의 본질을 바꿔놓을 것임을 파악하지 못함. 그리고 기업가 자신의 거대하게 움직이는 기계에 대한 관리자로서의 의무 때문에 더욱 관료적 기질로 변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함.
- 베블런은 변화의 핵심과정을 잘 지적했음. 그의 시대에 무엇보다도 크게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경제학자의 모든 연구에서 이상하게 간과되었던 과정을 지적. 그 과정은 현대세계의 사회적 변화의 주된 동인은 기술과 과학의 출현이었음, 제도적 힘으로서의 기술과 과학의 등장은 현대를 규정하는 요소였음. 베블런은 기술시재의 분수령이 역사속의 어떤 것보다도 위대하다고 생각했고, 기계가 가장 작은 틈과 생활의 아주 넓은 영역에가지 도입되는 것은 인간이 짐승을 길들이는 법을 배우거나 도시에서 사는 법을 배우던 것과 비교될 정도의 혁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
9. 케인스의 이단론
-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 : 경제학자이자 언론인이며 금융인. 만성적 실업의 원인에 대한 혁신적 경제이론을 제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의 영향으로 케인즈학파가 성립.
- 마르크스는 모질과 궁지에 몰리고, 무겁고 좌절에 빠진 사람이었음.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멸망하는 자본주의를 그린 인물이었음. 그러나 케인즈는 인생을 사랑했고, 명랑하게 지냈으며, 매사에 느긋했고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음. 그는 생존하는 자본주의의 설계자가 되었음. 자본주의의 멸망을 예언한 마르크스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는 그가 실생활에서 무수히 겪었던 실패의 노이로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임. 마찬가지로 케인즈의 설득력있고 세일즈맨다운 기질도 그가 겪은 희열과 성취에서 비롯되었을 것.
- 경제란 언제나 스스로 균형을 잡아가는 시소이기보다는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닮음. 경제는 계속 오르내릴 수 있지만 완전히 멈춰버릴수도 있음. 맨 위층에서 멈출 수 있는 것처럼 1층에서 멈출수도 있음. 달리 말해 불경기는 저절로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음. 바람이 없어 멈춘 배처럼 경제는 끝없이 침체될 수도 있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불경기의 바닥에서 저축이 홍수처럼 불어나면 금리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고, 금리가 떨어지면 기업들은 제조시설을 확장하기 위해 싼 돈을 이용하려 할 것이 아닌가? 케인즈는 이런 논법이 가진 오류를 가장 간단하고 명백한 저축생활의 어떤 사실 속에서 찾았음. 불황의 밑바닥에는 저축의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임. 경제가 침체하면 소득이 감소하고 소득이 감소하면 저축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 모두가 쪼들릴 때 어떻게 번창할 때만큼 저축할 것을 사회에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고 케인즈는 물었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 경기침체의 결과는 넘쳐나는 저축이 아니라 저축의 고갈을 부럴올 것임.
- 경제학을연구하는 데는 전문화된 고도의 재능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지적인 측면에서 볼때 경제학은 철학이나 순수과학 등의 고등학문 분야에 비해 매우 쉬운 과목이 아닌가? 참 쉬운 분야인데도 잘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정말 역설인데 훌륭한 경제학자는 여러가지 재능을 남다르게 겸비해야 한다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할 수 있다 경제학자는 어느 정도는 수학자, 역사가, 정치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상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 보편적인 것에 비추어 특수한 것을 생각해야 하고, 추상과 구체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다루어야 한다. 미래에 지향할 목적을 위해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연구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이나 인간의 제도 그 어떤 것도 경제학자의 관심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없다. 경제학자는 목적의식과 초연함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 예술가처럼 초연하고 부패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정치가처럼 세속에 접근해야 한다.
10. 슘페터의 모순
- 조지프 알로이스 슘페터(1883-1950): 경제학자. 사회학자. 자본주의는 자체의 성공때문에 붕괴하고 특정한 형태의 공적 통제 또는 사회주의가 그것을 대체하괴 될 것이라고 주장.
- 슘페터는 경제생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케인즈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 최초의 인물일 것. 두사람은 많은 사회적 견해를 공유했음. 무엇보다 교양있는 부르주아 생활에 대한 동경과 자본부의의 전반적 가치에 대한 신념등이 그러함. 그러나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 앞에서 본대로 케인즈에게 있어서 자본부의는 불황의 가능성 때문에 내재적으로 위협을 받는 존재였음. 우리 자손들을 위한 낙관적 전망은 실제로 정부의 적절한 지원에 달려 있었음. 반면 슘페터에게 있어서 자본주의는 내재적으로 다이내믹하고 성장지향적인 것이었음. 그는 불황이 발생했을 때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 정부지출이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했지만 항구적인 부차적 엔진으로서 정부지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았음.
- 슘페터는 이윤이란 노동의 착취나 자본의 이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 그것은 다른 과정의 산물로, 이윤은 정채적 경제속에서 순환적 흐름이 판에 박힌 코스를 따르는 데 실패할 때 나타남. 이제 우리는 왜 대단히 비현실적인 순환적 흐름이 빛나는 출발점인가를 알 수 있음. 관성을 교란으로 이끄는 모든 힘 가운데 하나가 두드러짐. 기술적 혹은 조직적 혁신을 순환적 흐름 속을 도입하는 것임. 이러한 혁신의 결과 노동이니 자원소유자의 기여로 돌릴 수 없는 소득의 흐름이 생겨남.
- 기업가들은 왜 불확실하면서 감사를 받지도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일까? 슘페터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보통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거기에는 개인의 왕국이나 명문가를 건설하려는 꿈과 의지가 있다. 다음으로 거기에는 정복에 대한 의지가 있다. 투쟁에 대한 충동, 남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충동, 성공의 열매가 아니라 성공자체를 얻기 위해 성공하려는 충동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거기에는 일을 성공시켰다거나 자신의 에너지와 상상력을 행사했다는 창조의 기쁨이 있다.
- 자본주의는 경제적 성공일 수 있지만 사회학적 성공은 아님. 자본주의의 경제적 기초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낭만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영웅적이기보다는 비판적인, 갑옷이 아니라 사교복을 입은 사람을 위해 설계된 상부구조-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결국 체제를 쓰러뜨리는 것은 이 자본주의적 정신구조, 자본주의적 정신상태다.
11. 세속철학의 끝?
-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새로운 수단 즉 경제학을 위한 무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중세적 관습과 봉건적 명령이 정말로 새로운 분류방식을 요구하는 사회질서로 천천히 대체되어가는 과정에서 그것은 마련되었음. 이러한 사회질서는 곧 자본주의로 불리게 되며, 물질적 생활을 조직하는 수단은 경제로, 새로운 설명체계는 경제학으로 불리게 됨.
- 과학이라는 개념이 경제학자의 비전에서 점점 더 두드러지는 부분을 이루게 된다고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경제의 작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자연의 작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처럼 과학의 가장 중요한 업적인 법칙의 발견의 첫번째 핵심으로 행위의 규칙성을 추구한다는 것.
- 우리가 경제학을 과학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 것에 환호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경제학은 정확한 물리학과 비교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묘한 인간본성의 힘을 다루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의 사회생활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회는 일단 수렵과 채취 수준을 넘어서 명력의 수준으로 나아가면 귀족으로부터 노예까지, 계급으로부터 카스트까지 그리고 재산권으로부터 빈궁의 불이익까지 다양한 특권과 차별의 범주를 만들어 낸다.
- 재탄생하는 세속철학이 가장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자본주의의 사회적 측면과 관련 있다. 경제분석은 그 자체로 우리 미래의 길을 밝힐 횃불을 제시해주지는 못함. 그러나 경제적 비전은 자본주의 구조가 그 동기를 확대하고 유연성을 높이며, 사회적 책임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원천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시련을 내다볼 수 있는 이 시대에 세속철학의 의미심장한 목표는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성공적인 자본주의가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도록 일깨우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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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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