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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의 유언

경제 2014. 10. 18. 07:32

 


엔데의 유언

저자
카와무라 아츠노리, 그룹 현대 지음
출판사
갈라파고스 | 2013-05-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현대사회가 ‘돈’이라는 질병에 걸렸다고 지적했던 엔데의 예언은 ...
가격비교

- 본격적인 경제문제는 지폐의 발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지폐는 물적 가치가 없고 단지 가치를 상징하는 것에 불과. 그런데 문제는 이런 지폐를 내키는 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 금괴는 만들고 싶다고 언제든 만들 수 있는 게 아님 . 금은이 부족한 임금은 금을 지급하지 못해 군대를 유지할 수 없고, 결국 약소국이 되고 맘. 알다시피 로마제국이 멸망한 주된 원인도 그 때문이었음. 금이 모두 페르시아로 흘러들어가 페르시아인은 부자가 된 반면 로마제국은 멸망. 하지만 지폐가 발명되면서 사정은 달라짐.
- 현재 상황에서 큰 이익을 보는 것은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앞서 예로 든 농부처럼 단기적 이윤을 위해 토지를 파괴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얻습니다. 4년에 한번은 밭을 쉬게 하고,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물길을 이용하는 책임감 강한 농부는 경제적으로 불리해집니다. 즉 비양심적 행동이 보상받고 양심적으로 행동하면 경제적으로 파멸하는 것이 지금의 경제시스템. 이 경제시스템은 그 자체가 비윤리적임. 제 생각에는 오늘날의 화폐, 즉 맘껏 찍어낼 수 있는 지폐가 여전히 노동이나 물적가치의 등가대상이라 착각하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화폐는 노동이나 물적가치의 등가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화폐는 독자적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빵을 사는 구입대금으로서의 돈과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자본으로서의 돈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돈이라는 인식임.
- 이 시스템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사태가 뚜렷이 나타나기 전에, 이성과 이해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개혁되리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즉 역사에서 흔히 보듯이 이성이 사람을 움직이지 않을 경우 사건이 그것을 대신하게 됩니다. 인간이 일으킨 사건이 그것을 대신합니다. 그 사건은 우리의 후손이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기 힘들게 만들고 말 겁니다. 그들은 우리를 저주하겠죠.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이에 관련해서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자손들이 우리와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사고하고 관념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 엔데에게 큰 영향을 미친 루돌프 슈타이너, 그는 슈타이너 전집을 곁에 두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해서 읽음. 엔데는 40여년에 걸쳐 슈타이너의 사상을 연구. 사회가 법, 경제, 문화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 평등, 우애, 자유의 정신과 연결된다는 슈타이너의 사상은 엔데에게로 그대로 이어졌으며, 특히 노화하는 화폐에 대한 사상은 게젤의 감가하는 화폐와 더불우 엔데에게 새로운 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
- 오늘날 화폐 경제를 인식하는 데 있어, 우리는 돈이 일종의 연금술과 같다는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음. 돈을 만들어내고 증식시키는 방법면에서 연금술과 너무나 닮아 있음. 연금술은 납에서 금을 만들어내려는 것인데, 흔해빠진 납을 금이라는 가치 있는 것으로 바꿔간다는 사고방식은 현대에도 충분히 통할 것임. 통화를 인쇄하면 이자가 그것을 늘리는 거니까요. 그 돈이 멋대로 활보하면서 자기를 갉아먹듯 자연환경과 정신을 파괴함. 돈을 생각할 때 도덕적 문제를 잊어서는 안됨. 돈에는 분명 윤리적 문제가 존재함. 결국 미래에 발생할 이익을 지금 우리는 가치로 받아들이는데, 미래적 가치 즉 발전도가 낮아지면 현재의 화폐가치, 이른바 주식의 화폐가치는 떨어짐. 물론 그 역동성이 더욱 효과적인 성과를 낳는다는 점, 우리의 월급이 인상되거나 갖고 싶던 것이 모조리 수중에 들어오게 된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 이보다 매력적일수는 없겠죠. 하지만 부가 존재하는 한편에서는 환경이 착취당하고 파괴되는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걸 외면해서는 안됨. 우리는 미래를 수입하여 지금을 살고 있음. 그러기 위해 환경을 소비하고 자원을 까먹고 있음.
- 사회에서 자본이 짊어져야 할 역할이란 개인의 능력이 사회에 발현해야 할 역할과 같아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러차례 말했듯이 개인의 재능은 자유로운 정신활동에서만 그 진가를 발휘하고 발달시킬 수 있는데, 그 영역에 정치적 또는 경제적 간섭이 가해지는 사회라고 할지라도 자본활동에서만은 사적활동이 허용되고 있음.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갖는 여러가지 문제점은 자본이 그 모든 것을 사회의 경제영역에 완전히 잠식시켰다는 것에 원인이 있음. 이는 언뜻보면 기묘한 일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자유롭게 정신활동을 해야 자본이 원래의 창조적 기능을 완수할 수 있다는 말임. 미래를 확실하게 전망하고자 한다면 이를 명심해야 할 것임. (루돌프 슈타이너, 사회문제의 핵심)
- 엔데는 과거에 금융시스템을 개혁하려 한 수많은 시도들 중에서 미래를 위한 힌트가 있다고 주장. 그것이 게젤이 주장한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감소하는 화폐 시스템임. 게젤의 사상을 실제로 실천한 독일의 슈바넨키르헨, 오스트리아의 뵈르글 등은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번영을 누림. 케인스는 게젤의 화폐 시스템을 높게 평가하며 미래에는 마르크스보다 게젤의 사상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거라며 극찬
- 화폐공급자가 농민에게 돈을 빌려줄 경우에는 이자를 청구함. 싫다고 할 수가 없음. 그렇게 하여 농민은 자금을 빌릴 때 드는 비용인 이자를 자신이 수확한 곡물을 팔 때 그 가격에 붙여야 함. 그 곡물을 빵집이 사들였다면, 곡물가격에 포함돼 있는 이자만큼의 돈은 당연히 빵집에서 파는 빵 가격으로 옮겨감. 결국 화폐공급자가 얻는 이익을 사회가 부담하는 셈. 화폐공급자는 딱히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이익을 얻는 것. 하지만 그 어떤 기업도 이자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을 수 없음. 이것이 사회에서 부와 권력이 한 곳으로 계속 집중되는 이유. 왜냐하면 이런 플러스 이자의 구조에서는 사업으로 얻는 이익의 대부분을 사회의 극히 일부 사람들만 소유하기 때문.
- 대공황기에 자유경제운동은 독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지지자와 실천을 낳음. 게젤이 주장하는 자연적 경제질서란 자유화폐로 인해 경기순환이 멈춰져서 자유롭고 공정한 그리고 번영하는 경제질서를 가리킴. 일반적으로 호황기에는 투자가 증가하고 더불어 이자율이 낮아짐. 그 결과 어느시점이 되면 저축된 화폐는 더 이상 투자되지 않고 보유만 되다 불현듯 불황이 시작됨. 그렇게 되면 적극적으로 확장주의적 통화정책이 도입됨. 하지만 통화의 양은 증가해도 돈은 돌지 않음. 화폐의 유통속도가 저하되기 때문. 이것을 회피하려 했던 것이 자유화폐임. 게젤은 매주 일정하게 감가되는 비율에 대해 1주당 1퍼센트, 1년당 5%를 제안. 오랜 대출의 역사를 살펴보면 항상 4~5퍼센트의 이자가 성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그것은 화폐가 가치의 보장기능과 그 유동성 측면에서 다른 자산에 비해 우수하다는 특권을 갖고 있기 때문. 게젤이 제시한 이 5%는 그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 화폐를 다른 자산과 동일한 지위에 두기 위해서는, 게젤이 기초이자라고 부르는 4~5%의 화폐이자를 상쇄하는 부담을 줄 필요가 있었음. 화폐를 보유한 사람은 액면가의 감가를 피하기 위해 지권에 스탬프를 붙여야 하는데, 이 스탬프 가격이 보유자가 부담해야할 감가액에 해당. 국가가 발행한 본위화폐, 즉 국민화폐와는 별개의 통화를 발행함으로써 이런 생각을 실행하려는 운동이 대공황을 계기로 발생. 공황은 화폐를 축적하려는 경향을 강화시켰고, 이런 경향이 다시 화폐의 축적을 한층 가속화함. 이렇게 화폐가 회전하기 않게 됨으로써 불황은 더 시각해짐. 그러한 화폐의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보완통화 구조가 시작된 것. 그것은 다른 자산에 비해 뛰어난 이점은 없으며, 거래할 때 교환수단으로만 사용됨. 거래에서 유지되는 돈의 가치는 다른 자산처럼 감가되어야 함. 그런 이유로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산골에 있는 슈바넨키르헨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최초로 개시되었던 자유화폐는 자산으로 담보되는 형태를 취했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감가하는 자산의 감가비율을 반영하여 돈의 초과보유비용에 해당하는 스탬프를 붙이는 시스템이 채용됨.
- 돈의 유통이 정체되면서 경제위기와 실업이 발생. 그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게젤은 유통을 방해하지 않는 감가하는 화폐 시스템을 16년 자연적 경제질서를 통해 제기. 이어서 루돌프 슈타이너가 그것을 제창하고 미국에서는 어빙 피셔가 33년 스탬프 대용화폐로 발전시킴. 또 영국에서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36년에 고용, 이자, 화폐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그 시스템을 높이 평가. 하지만 이 이념은 곧 금지 당함. 케인즈는 이렇게 말함. "이런 개혁가들은 화폐에 초과보유비용을 부과하는 데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았는데, 이것은 올바른 길이었다. 이 같은 해결책은 법정 지불수단에 정해진 요금을 부담하도록 주기적으로 의무화할 것임. 스탬프화폐의 배후에 있는 이념은 건전하다."
- 불황으로 돈이 없어졌을 때, 사람들은 한때 자신이 사용하였던 모국의 통화와 자기들 민족의 아이덴티티를 투영한 디자인의 긴급통화를 사용하기 시작. 마치 각자의 커뮤니티가 독립된 자치구가 된 것 같았음. 미국에서는 법정통화가 부족하면 지자체나 기업이 약속어음과 유사한 대용화폐를 발행한 역사가 원래부터 있었음.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수집된 이 대체통화는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음. 옛날 스위스의 뵈르글에서 사용되었던 자유화폐의 계보를 이어받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스탬프를 붙여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예컨대 1934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작은 마을에서 발행되었던 지폐의 뒷폄에는 1센트짜리 스탬프가 그것을 사용한 날짜와 함께 붙어 있음. 영락없이 게젤의 자유화폐와 같은 것임. 이것은 그 당시 미국의 긴급통화가 게젤이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임.
- 긴급통화의 확대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이 경제학자 어빙피셔였음. 긴급통화의 특징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수요를 풀뿌리에서부터 창출하고자 하는 것. 피셔는 이에 대해 정부가 한층 더 관여할 것을 요구하고자 당시 재무부 차관인 딘 애치슨과 접촉. 하지만 애치슨은 이런 대책에 전재된 것이 강력한 분권적 의사결정임을 알고 대통령과 협의함. 그리고 루스벨트는 긴급통화 사용을 모두 금지시키기로 결정. 중앙정부는 거액의 중앙집권화된 경제계획을 세우고, 대규모의 건설프로젝트를 실시함으로써 불황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음. 1933년 3월 4일, 풀뿌리 대책은 금지되고 뉴딜정책이 발표됨. 이렇게 미국에서 게젤이론의 실천은 끝남.
- 오스트리아 뵈르글에서 사용된 노동증명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음. "제군, 축적되어 순환하지 않는 화폐는 세계를 크나큰 위기에, 그리고 인류를 빈곤에 빠트린다. 완만하게만 순환하는 돈이 그 노동의 교환을 대부분 방해하고, 몇 백만에 이르는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경제생활 공간을 빼앗아가고 있다. " 감가하는 화폐시스템 내에서 사람들은 가치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것들에 투자했음. 그러나 현재의 금융시스템 내에서는 단기적으로 이익을 보기 위해 대량생산, 대량폐기를 반복하고 있음. 우리는 후손이 보기에 아깝지 않을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까?
- 애당초 돈은 물물교환의 난점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짐. 그랬던 것이 단순한 교환을 위한 수단에서 사람들의 갈망의 대상으로 바뀐 것. 돈은 누구나 교환을 통해 받는 것이므로 교환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음. 그런데도 그 자체가 목적이나 되는 양 여겨지고 있음. 그렇게 되면 돈을 가진 사람에게 권력이 생김. 그것은 돈의 권력이기도 함. 돈 덕분에 자립적일 수 있지만 사람들은 구체적 신용을 추상화한 돈에 종속되어 버림. 사람들은 돈 때문에 가늘고 좁은 관계밖에 가질 수 없게 됨. 돈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지, 돈 만능주의가 지배적이 되어버림. 천엔짜리를 머리에 올려두면 천엔만큼 똑똑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대신 돈이 자신의 목적이 되고 만다. 또한 돈의 도입은 거래에서 드는 비용을 대폭 절약함. 거래상대가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이나 아니냐를 조사할 필요도 없음. 돈 자체가 신용이 되기 때문에, 게다가 물물교환의 번잡함으로 발생하는 거래비용도 피할 수 있음. 즉 돈은 거래를 신속하게 하고 익명성을 유지해주는 경제적 윤활유와 같은 존재가 됨. 그리고 물물교환과 달리 거래를 개개의 소규모 거래로 분할할 수 있게 해줌. 역사를 보면 돈이 도입되면서 사회에 분업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음. 그 이유는 거래할 때 물물교환에 비해 훨씬 적은 정보로 거래하게 되었기 때문. 이 때문에 사람들의 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데, 사회 전체에서 보면 돈을 가진 누군가가 거래를 방해할 수도 있게 됨. 교환의 중개자로서 돈이 회전하는 것은 좋지만 여유 있는 화폐보유자가 출현하여 돈을 저축하게 되면 그 사회에 돈이 부족해짐. 그들은 돈을 대출해주고 대신 이자를 받기 시작. 한차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다보면 화폐보유자는 앞으로 더더욱 돈을 긁어 모으려고 할 것임. 이것은 경제의 기능을 저해하는 일임.
- 은행업은 부정하다는 비판과 죄를 업고 태어났다. 이 세상은 은행가의 것이다. 그들이 소유한 것을 모조리 빼앗아도 그들에게 신용을 창조할 힘을 남겨둔다면, 그들은 펜으로 가볍게 긁적여서 빼앗긴 전부를 되찾기에 충분한 화폐를 만들어내고 말 것이다. 그들에게서 이런 힘을 빼앗는다면 그 어떤 고귀한 재산도 사라지고 그들 자신도 사라지고 말 것임. 그렇게 되면 세상은 인간이 살기에 더 행복하고 더 좋은 곳이 될 것임. 하지만 당신이 은행가의 노예이기를 원하고 당신 자신이 노예제도의 비용을 부담하고 싶다면 은행가에게 화폐와 신용을 통제하게 하라 (조사이어 스탬프, 잉글랜드 은행 총재)
- 이자는 이자가 붙는 대차안에서 확정된 것이자 자본비용이므로 반드시 생산비용안에 포함됨. 자본가는 이런 비용을 감수하고 화폐를 빌려서 투자함. 사업이 추진되고 생산물이 판매됨 사업이 잘 풀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때도 있음. 후자의 경우는 이윤이 나오지 않음. 즉 이윤은 항상 비용과 연관됨. 하지만 이자는 생산액과 아무 상관없는 프리미엄임. 반면 이윤은 시장에 생산물을 판매할 목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때 발생하는 리스크와 기업활동의 생산액과 관련된 프리미엄임. 여기에 바로 크나큰 차이가 있음. 이자의 경우 우리가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할 때 반드시 이자를 내도록 되어 있기 때문. 그것은 이자가 갖는 재분배 효과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돈을 빌렸을 때에만 이자를 부담한다고 오해하기 쉬움. 사실 물건 가격에는 거의 25%의 이자가 포함되어 있음. 이는 엄청난 숫자인데, 그렇게 되는 이유는 자금을 빌릴 때의 비용이 소비자가 구입하는 최종생산물뿐만 아니라 그때까지의 모든 중간생산물 가격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 게다가 기업이 생산활동을 할 때 부담하는 토지나 빌딩 등의 임대료가 추가됨녀 이자는 무려 가격의 33%를 차지함. 단지 자금을 소유했다는 것 때문에 이자액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함. 이는 근로나 사업활동에 명확하게 부담을 줌
- 고대 이집트에서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시스템과 다른 시스템을 수천년에 걸쳐 사용. 그것은 감가하는 돈의 시스템이었음. 당시 농민은 곡물을 수확하면 그것을 곡물비축창고로 가지고 가서 그곳에 보관. 그 대신 납입한 곡물의 양과 날짜가 찍힌 사기조각을 받음. 이 사기조각은 곡물을 수령했음을 증명하는데 동시에 돈으로도 사용되었음. 이것은 창고에 저장해둔 곡물을 담보로 하는 돈이었음. 당연히 곡물은 쥐 등에 의해 손실되고 관리비용이 든다. 다라서 담보물의 감가비율은 그 돈에도 반영시켜야만 했고 당연히 마이너스의 돈이 될 수 밖에 없었음. 그렇게 되면 농부들은 이 돈을 저축해봤자 손해이기 때문에 다른 사물의 형태로 자신의 부를 유지하고자 함. 당시의 농민은 자신의 부를 관개시설을 정비하거나 토지를 개량하는 데 쏟아부음. 부를 돈의 형태로 소유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장기적인 이익을 줄 것에 투자한 것. 따라서 나일강 유역은 풍요로운 곡창지대가 될 수 밖에 없었음. 이것은 로마인이 이집트를 지배하고 자신들의 돈의 구조, 플러스 이자가 붙는 화폐시스템을 강요할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함. 하지만 원래 시스템이 종식되었을 때 이집트의 번영도 끝나고 말았음.
- 유럽에서는 1150년부터 1350년에 걸쳐 비즈니스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던 시대가 존재했음. 이 시기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유럽으로 관광여행을 갈 때 반드시 구경하는 카테드랄(대성당)이 하나둘 건설됨. 오늘날의 관광객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순례자들임. 각 지방들은 앞다투어 대성당을 건설하여 순례자들을 유치하려 했음. 이 시대는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구가했던 시대인 것. 왜 그랬을까? 이 역시 돈의 시스템에 원인이 있었음. 여기에도 감가하는 돈의 구조가 있었는데, 브라크테아트라 불리는 화폐개주 시스템이 그것임. 당시 금과 은이 돈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원격지 무역에 한해서였음. 영주들이 지배하는 각 지역에서는 영주가 돈을 발행. 얇은 은판에 모양을 새긴 화폐가 사용되었고, 영주는 이것을 6개월이나 8개월 등 일정 시간이 지나면 회수하였음. 그리고 2~3% 감가시킨 후 재발행. 이 구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부의 형태로 소유하기 보다 가치가 영구히 유지될 것이라 생각되는 것에 투자. 지역 사람들은 연대하여 신앙의 대상이면서 경제적 의미에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인 대성당을 건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만일 돈이 마이너스 이자 시스템하에 놓인다면, 사회가 이룩해낸 부는 가능한 한 장기적으로 가치가 유지될 수 있는 것에 투자된다는 점. 이와 대조적으로 플러스이자의 경우에는 보다 단기기익을 올릴 수 있는 것에 대한 투자가 우세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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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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