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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4.0

경제 2014. 11. 5. 23:11

 


자본주의 4.0

저자
아나톨 칼레츠키 지음
출판사
컬처앤스토리 | 2011-08-2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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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초엽부터 30년대까지 세계를 지배했던 전통적 자유방임주의 자본주의에서 저잋와 경제는 본질적으로 전혀 별개의 영역이었음. 정부와 시장의 상호작용은 대체로 강력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세금을 징수하고 전쟁비용을 조달하고 관세장벽을 세우는 데 한정되었음. 그러다 32년부터 뉴딜과 유럽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의 시대가 시작됨. 이 자본주의의 두번째 버전은 러시아 혁명과 대공황에 대응하여 전지전능하고 재애로운 정부에 대한 거의 낭만적 시장, 특히 금융시장에 대한 본능적 불신을 그 특징으로 했음. 79~80년 대처, 레이건의 정치혁멱으로 탄생한 자본주의의 세번째 버전은 그 반대였음. 이 버전은 시장을 이상화하고 정부를 불신했음. 이 버전의 마직막 단계, 이 책에서 자본주의 3.3이라고 부르는 금융주도의 시장근본주의에 이르자 이런 경향이 극단으로 치달음. 자본주의 3.3은 정부를 불신하기만 한것이 아니라 정부를 악마처럼 여기고 규제를 조롱하고 정부행정을 드러내놓고 업신여김. 정치와 이론경제학의 극단적 반정부 이데올로기가 07~09년 금융위기를 가져옴. 마르크스의 예언처럼 자본주의 3은 자신의 반정부 이데올로기의 모순 때문에 무너짐. 자본부의 3.3의 자기파괴 때문에 정치-경제 진화의 다음 단계가 열림. 바로 자본주의 4의 시대임. 30년대와 70년대처럼 이런 전환을 통해 정치와 경제, 정부와 시장의 관계가 다시 정의될 것임. 80년대부터 07~09년 금융위기까지 지배적이었던 이데올로기에서는 언제나 시장이 옳고 정부는 잘못되었다고 여겨졌음. 3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자본주의 단계에서는 언제나 정부가 옳고 시장은 잘못되었다고 여겨져씀.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런 오류가 거의 치명적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있음
1부. 자본주의와 진화
1.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 다음의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개인의 자발적 동기와 창의력이 사회전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되도록 보이지 않는 손이 도와줄 수있음. 첫번째 조건은 자본주의에 위기가 발생하면 새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자발적 자기조직 과정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두번째는 기업간의 경쟁과 사람들의 창의력을 통해 개개인의 물질적 욕구 충족만이 아니라 사회 공통의 문제도 해결하려고 한다면 이에 대해 적절한 인센티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가 주장하듯이, 민간시장이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사회의 이익과 일치시키려고 노력할 것으로 기대할수는 없으며, 특히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그러함.
2. 정치, 경제와 진화
- 미래의 학생들은 21세기의 역사는 세계 자본주의를 전환시킨 07~09년의 놀라운 금융위기를 겪은 뒤인 2010년에야 진정으로 시작되었다고 배울지도 모름. 마치 지금 우리가 20세기는 1918년 1차대전이 끝난 뒤에야 실질적으로 시작되었고, 19세기 역사는 워털루 전투에서 웨링턴 장군이 나폴레옹에게 승리를 거둔 1815년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임
-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내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은 옳음. 그러나 이런 모순이 자본주의의 치명적 결함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역사와 경제를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됨. 사실 내부 모순을 극복하는 능력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장 큰 강점. 자본주의는 항상 자기파괴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늘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있으며, 이 변화무쌍한 시스템은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하는 생물종처럼 진화가 일어날 때마다 전보다 더 강해짐. 자본주의의 진화적 성격에 초점을 맞추면 경제활동뿐 아니라 정치제도에도 급격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에 주목하게 됨. 이렇게 변화하는 능력은 자본주의가 번성하고 오래 유지될 수 있는 핵심요건임. 그러나 자본주의의 역사적 승리를 위해 가장 노력을 해왔던 우파 정치인과 기업인, 경제학자들 대부분은 자본주의가 성공한 가장 중요한 이유를 모르고 있음. 이들은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과정의 미덕을 극찬함. 여기서 말하는 것은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기술과 관리 시스템으로 사양산업을 대체해야 한다는 것임. 하지만 이들은 시스템 전체를 재건하는 창조적 자기파괴의 과정은 무시함.
3. 자본주의의 네단계
- 1815년 워털루 전투부터는 미국과 영국에서 수립된 진보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이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퍼졌고,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러 전세계로 확산됨. 영국과 미국의 정치-경제 사상의 지지를 받은 이 제국주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약 100년 동안 번성함. 그러나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시작되어 대공황과 2차대전 때 정점에 이른 붕괴의 시대를 끝으로 그 힘을 잃음. 이 시기 자본주의 단계는 금융위기와 전쟁위기에 따라 몇개의 하위국면으로 나눌 수 있음
* 자본주의 1.0 : 1776년 미국 독립선언과 국부론 ~1815년 워털루 전주에서 나폴레옹 패배
* 자본주의 1.1 : 1820~1849년
* 자본주의 1.2 : 1848~1849년 유럽혁명의 해, 곡물법 폐지, 항해조례 ~ 1860년대 후반 미국 남북전쟁, 보불전쟁
* 자본주의 1.3 : 1870년 ~1914년 미국 대호황기 혹은 2차 산업혁명
* 자본주의 1.4 : 1917년 ~1932년 자본주의가 유례없는 몰락의 위기를 맞았던 붕괴의 시대
- 이 시기 전체는 명맥하고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이데올로기를 공통으로 하고 있음. 사유재산과 이윤추구동기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시스템은 세상의 기본동력이며, 허리케인이나 해일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경제철칙이라는 믿음. 이 150년 동안은 자유방임주의 철학, 곧 정치와 경제는 인류의 완전히 다른 두가지 활동이며 정치-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되도록 계속 별개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지배적이었음. 정부는 다양한 무역 관세와 소비세를 통해 상당히 광범위하게 경제에 개입했음. 이런 세금은 정부 세수를 늘리기 위해 걷히기도 했지만, 섬유제조업과 같은 핵심산업이나 자작농들과 같은 이해집단을 보호하려는 보호주의 무역정책의 방편으로도 사용되었음. 그러나 당시의 거의 모든 경제사상가들은 이런 정부의 개입이 자본주의 시대 이전의 봉건주의 시대의 구습이며 앞으로는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음.
-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경제위기로 인해 전환된 새로운 종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2임. 자본주의 2는 31년 9월 21일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음. 이 체제는 32년 11월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힘을 얻음. 이 체제의 지적 상징은 36년 출간된 케인스의 일반이론으로 1776년 국부론이 자본주의 1의 개념들을 구체화했던 것처럼 일반이론은 자본주의 2의 개념들을 구체화. 그리고 자본주의 2는 히틀러가 33년부터 독일경제를 재건하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영국에서는 케인스가 그 이전 5년동안 영국 정부로 하여금 이 정책들을 구현하도록 설득했지만 성과 없이 끝암. 이 새로운 종의 자본주의는 40여년 동안 계속되었고 다음과 같이 네개의 하위국면으로 나눌 수 있음
* 자본주의 2.0 : 31년~38년, 금본위제 포기와 뉴딜정책
* 자본주의 2.1 : 39년~45년, 정부주도의 군국주의
* 자본주의 2.2 : 46년~69년, 케인스식의 황금기
* 자본주의 2.3 : 70년~80년, 인플레이션, 에너지 위기, 전후 금 기반 통화 시스템의 붕괴
- 자본주의 3의 시대는 79년 대처가 영국수상으로, 80년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로 되고, 81~82년 볼커가 통화주의 정책으로 인플레를 관리하면서 시작. 이 대전환에 영향을 끼친 것은 밀턴 프리드먼과 시카고 대학의 통화주의 추종자들이었음. 통화주의는 다른 신고전학파 경제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 정부의 개입으로 자유경쟁시장이 왜곡죄지만 않으면 시장은 경제안정과 완전고용 등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를 낳으며 자본주의 경제의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는 가정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었음.
* 자본주의 3.0 : 79년~83년, 초기 통화주의와 노동조합의 대립
* 자본주의 3.1 : 84년~92년, 볼커, 그린스펀, 대처-레이건 호황기
* 자본주의 3.2 : 92~00년, 대 안정기
* 자본주의 3.3 : 01~08년, 그린스펀과 부시 대통령 체제의 시장근본주의 시기

2부. 화살과 고리
4. 격동의 해 1989년
-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의 20년 동안 세상을 바꾼 돌이킬 수 없는 다섯가지 중대한 변화가 발생
(1) 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2) 중국이 세계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
(3) 기술혁명 가속화. PC의 보급으로 데이터 처리와 광역 통신에 필요한 시간적, 금전적 비용이 거의 제로로 줄어듬. 항공이나 해운교통 과련 기술도 발전해서 장거리 이동과 운송비용이 50년대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듬
(4) 냉전의 종식으로 평화배당금이 생김
(5) 화폐에 대한 신비감이 사라짐.
- 71년 브레턴우즈 파기에서 비롯된 세계의 순수종이 화폐에 대한 학습경험이 완성되는 데에는 거의 20년이 걸림. 80년대 후반 이 학습과정이 끝날 무렵에 화폐는 자연의 신성한 영역에서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의 구성물이 되었음. 화폐에 관한 이 혁명적 변화가 경제정책에 미친 영향은 프랑스 혁명이 국가, 종교에 미친 영향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음. 화폐가 신이 창조한 자연적 자산에서 인쇄기에서 찍어내는 인간의 피조물로 전환된 것은 몇십년 동안 여진을 남기는 대지진과 같은 사건이었음.
5. 메가트렌드
- 89년 이후의 장기적 메카트렌드
(1) 80년대 후반부터 30억며으이 소비자, 생산자, 저축자들이 새롭게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합류. 그 결과 세계 경제의 잠재규모는 2배로 커졌고, 향후 잠재성장률도 높아졌음
(2) 공산주의가 붕괴된 뒤에 시장경쟁, 민영기업, 자유무역이 어디서나 받아들여지면서 세계화는 전세계 모든 나라의 거의 모든 경제활동을 바꾸어 놓음. 사실상 세계 경제는 유럽방식의 단일성장은 아니더라도 북미자유무역협정 방식의 자유무역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 이런 정책변화가 저비용의 통신과 교통 기술의 발전과 맞물리면서 전통적인 경제원칙인 특화와 경쟁우위 원리가 전 세계적으로 적용되기 시작. 그 결과 생산성과 부의 생산이 증대되었고, 특히 중국과 아시아의 후발 개도국들이 높은 경제성과를 올림
(3) 대 안정기, 곧 인플레이션, 실업, 경기순환이 유례없이 안정적이었던 20년 동안 세계경제는 08~09년 경제불황이 시작되기 전까지 거의 지속적으로 성장. 세계가 70년대의 고질적인 위기에서 회복하기 시작하고 순수종이화폐 체제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자국경제를 운영하고 인플레와 고용을 안정시키는데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자유를 누리게 됨
(4) 시장경제 철학의 도입, 급격히 성장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저축액 증가, 세계화와 성공적인 총수요 관리는 금융혁명으로 이어짐.
6. 대안정기
- 대안정기에 대한 극적인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세가지 방식의 설명이 가능. 간력히 표현하면 구조적 변화, 개선된 거시경제정책, 그리고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음. 복잡한 현상들은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하기 아주 어렵고, 위의 세가지 방식의 설명은 모두 어느정도 적절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음. 하지만 이 세가지 설명 중에 어느것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지는 가려낼 필요가 있음. (버냉키)
- 격동의 89년 이후 모든 주요국가의 정부와 중앙은행은 통화주의에 따라 오직 인플레에만 초점을 맞추던 태도를 점차 바꿈. 이들은 2차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될 때까지 전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장과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해 모든 경제정책을 사용하기 시작. 경제정책의 목표와 방법이 이렇게 변한 것, 곧 순수종이화폐가 불어온 기회나 도전과 함께 전후 케인스식 총수요 관리정책이 사실상 재탄생한 것은 이후 20년간의 놀랄만한 경제성장의 원인이었음. 04년 버냉키는 대 안정기에 대한 연설에서 연준이 물가상승률을 낮은 수준에서 유지했기 때문에 고용안정과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공식적 입장을 되풀이. 그러나 사실은 연준제도와 다른 중앙은행들이 70년대에 폐기되었던 더 포괄적인 경제철학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대안정기는 가능했음. 50년대와 60년대처럼, 이 정책들은 물가안정, 완전고용, 지속적 성장 간의 합리적 균형을 이루는 데 사용됨. 그리고 총수요 관리정책이 다시 도입된 뒤에 20년의 기간동안 중앙은행들은 대부분 인플레와 실업사이의 팽팽한 줄타기에 성공했음. 이런 성공은 08년 가들까지 지속되었지만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이 팽팽한 줄과 안전망, 그리고 이 서커스 천막안에 있던 구경꾼들 대부분을 날려버림.
7. 금융혁명
- 비관론자들은 80년대 후반의 구조적 변화 때문에 부채와 자산가치에 대해 새로운 태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음. 이들은 그 결과 자산가치가 결정되고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음. 이번은 다르다는 것이 분명해질수록 이들은 세상에 바뀌는 것은 없다고 계속 고집을 부렸음. 따라서 금융계에서 이런 양치기 소년과 같은 비관론자들이 무시당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음. 하지만 불행히도 타이밍이 맞지 않는 경종이 계속 울리자 돈을 빌리는 쪽과 빌려주는 쪽 모두 점점 더 자신감을 갖고 방심하게 됨. 마침내 자기과신에 사로잡혀 금융 호황기가 어떤 시점이 되면 멈춘다는 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로 생각하게 되었음. 은행과 규제당국, 소비자들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시장이 종종 과잉작동할 수 있는데도 시장은 언제나 시장참여자들이 만들어 놓은 리스크를 정치가나 규제당국보다 더 잘 제어한다고 가정한 것임.
- 규제기관은 개인대출의 적정선은 판단할 수 없었음. 그리고 이들은 분명히 사회적, 경제적 혜택이 발생하는 과정을 멈추기를 꺼려했음. 그러나 그렇다고 손쓸 방도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음. 대출규모가 계속 증가하면 거품이 터질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며, 예컨대 대출의 증가속도를 늦추기 위한 조치를 취할수도 있었고, 대출이 늘어나면서 은행들이 자본준비금을 늘리도록 할 수도 있었음. 그러나 시장근본주의 사고가 지배하는 세상은 이런 딜레마를 직시하지 않았음. 그 대신 시장 스스로 적정선을 유지할 것이고, 시장에 더 많은 자유를 주면 시장이 더 잘 작동할 것이라고 가정했음. 바니 프랭크가 나중에 말했듯이 규칙은 "그 규칙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규칙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실패한다. 그린스펀은 ... 서브프라임 대출을 규제할 임무를 맡았을 때 규제의 효과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서브프라임을 규제하지 않았다."
8. 금융고리
- 과거에 발생했던 경제거품 사례들이 실제로 말해주고 있는 것은 금융광란의 최절정에서 벌어진 비이성적이고 터무니 없는 거품들도 종종 장기적 기술이나 정치적 트렌드의 실질적 변화를 반영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 오히려 불황이 한창일 때의 비관적 상황들은 단순히 경제주기성 현상인 경우가 많음. 호황기에 과장된 낙관주의 때문에 발생한 지속불가능한 부채문제를 해결하면서 시작되는 전형적인 불황은 다양한 형태의 어리석음, 타락, 사기 때문에 더 악화됨. 그러나 거품이 터지고 국민들이 큰 대가를 치르면서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호황을 부르는 장기적 트렌드가 다시 작동하고 그 결과 매우 낙관적인 전망보다 상황이 더 좋아지는 경우도 많음.
- 튤립버블이 가라앉은 뒤에도 네덜란드의 금융시스템이 주춤하지 않고 이후 1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듯이, 영국도 1720년 거품의 붕괴이후 재빨리 경제가 회복됨. 사우스사와 미시시피 회사의 몽상이라고 했던 대서양 횡단 무역과 미국경제데 대한 투자는 현혹된 투자자들의 터무니 없는 기대를 능가하는 성장을 보임
9. 호황과 불황은 영원히 되풀이된다
- 행동재무학에서 말하는 비이성적 행동의 원인으로는 무리본능, 지나친 낙관주의, 그리고 앵커링이 있음. 앵커링 신드롬이란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사건에 대해 예측할 때 긍정적 수치나 트렌드를 근거로 삼는 것을 말함. 이런 수치나 트렌드가 사람들이 예측하려고 하는 사건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더라도 말이다. 무리본능과 지나친 낙관주의에서 비롯된 편견을 이용해 호화익의 비이성적인 의기양양함과 불황기의 비이성적인 낙담 모두를 설명할 수 있음. 그러나 금융시장이 볼질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주장하는 다른 경제순환주기 이론과는 달리 행동재무학은 트렌드를 쫓아다니는 행동을 일시적으로 피해야 할 이상행동이라고 생각. 따라서 행동재무학은 시장이 대체로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이고 장기적으로는 언제나 스스로 안정된다고 가저하는 교과서적 경제학과 크게 어긋나지 않음.
- 대안정기 때문에 오랫동안 경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자 민스키가 설명한 것처럼 금융리스크가 줄어듬. 그 결과 미래에 대한 예측이 바뀌면서 무리행동이 생성되고, 소로스가 설명한 것처럼 현실에 대한 재귀적 변화가 발생. 동시에 아시아의 높은 저축률 때문에 오랫동안 저금리가 유지되자 오스트리아학파에서 주장하듯이 소득수준이 낮은 가구에까지 대출이 확장되었고, 민스키가 예언했듯이 공격적인 금융상품들이 만들어졌음. 칼레츠키와 후기케인스주의에서 예견했듯이, 소득불균형이 심화되어 저소득층 소비자들과 주택보유자들의 신용은 계속 떨어졌는데도 대출은 확장되었음. 그러는 동안 금융부문의 호황이 소로스가 예기한 이데올로기적 슈퍼거품과 상호작용하여 재귀적 과정을 통해 시장과 변화된 정치현실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낳음. 극단적 형태의 규제완화가 부시 재임기의 시장근본주의가 지배하는 미국에서 몇년 동안은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임. 그 결과 금융시장이 모든 결제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효율적 해결책을 저절로 생성할 것이라는 믿음은 한층 강화됨.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치인들과 규제책임자들은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음. 게다가 이들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웋에도 시장경쟁과 사리사욕이 자동적으로 다스려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함. 당시 직접적인 정부개입이 전체 시스템 붕괴를 막는 유일한 길이었음. 그러나 정책결정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나중에는 이미 늦어버림.

3부. 시장근본주의의 자멸
- 사람들은 실제로 자시이 어떤 지식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경제학자의 노예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권한을 가진 얼빠진 사람들은 몇 년전에 쓰인 잡문에서 자신들의 광기를 뒷받침할 생각들을 뽑아낸다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들의 생각은 그것이 옳을때나 틀릴 때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한 영향을 미친다. 정말로 이 세상은 얼마 안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인다.(케인스)
10. 헨리폴슨 재무장관의 경제적 귀결
- 29년 월가 폭락이후 미국은행의 약 3분의 1이 파산하도록 만든 결정에 대해 밀턴 프리드먼은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를 겪고 있는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화폐를 발행하는 대신 미국 금융시스템이 파산하도록 만든 의사결정 때문에 공황이 초래되었다고 주장. 이 역사상 최악의 재무장관으로 꼽히는 사람은 앤드류 멜런이었음.
- 70년대와 80년대의 자유시장 혁명이 경제운영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케인스의 통찰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야만인들이 로마를 빼앗은 뒤 수세기 동안 수도설비 기술이 잊혀졌던 것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케인스의 통찰력도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사라짐. 그 결과 많은 성공적인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은 금융시장이 자동적으로 안정되며,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은 항상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진심으로 믿게 됨. 골드만 삭스 회장으로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헨리폴슨은 이런 신드롬의 좋은 예임.
- 자유시장에 대한 순진한 신념에 기초한 이러한 금융오판으로 폴슨 장관은 모든 미국 금융기관들에게서 추가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버림. 이데올로기적 독단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소극성 때문에 폴슨은 유일한 대안이었던 일시적으로 정부가 미국 은행에 대해 무제한으로 지급보증을 하는 안을 배제해 버림.
- 미국 정부의 일련의 정책 오류
(1) 리먼 브라더스 사태 몇년 전에 도입된 시가평가 회계기준과 리스크 가중 자본요건으로 인한 일련의 규제 실책
(2) 08년 봄과 초여름에 석유와 식량가격에 대한 심각한 투기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시장은 항상 옳다는 거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규제책임자들은 석유시장에 개입하여 금융투자자들의 투기를 차단하기를 거부
(3) 신용경색이 시작되었을 때 미국정부가 직접개입하기를 거부
- 규제적용을 보류해주고 천천히 자본을 재구축하며 쇠약한 기관들은 합병이나 폐업을 통해 점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신용경색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으 방법으로 여겨졌음. 서브프라임 위기때에 만약 이렇게 대응했더라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던 은행이나 국책기업들의 주주들은 일시적으로는 큰 손실을 입었을지 모르고, 그리고 만약 자산가격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완전한 손실을 입었을수도 있었겠지만, 주택가격이 마침내 상승하기 시작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본인들의 투자도 회복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었을 것임. 그러나 국책모기지 업체들을 국유화하면서 폴슨은 반대로 대응. 회계기준과 자본요건을 완화해주는 대신 미국 재무부는 금융부담이 매우 큰 상황에서 갑자기 규제를 강화. 주주들에게 참고 기다리면 장기적으로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주는 대신 폴슨은 하루아침에 이들 주주들을 청산해버림
- 일반적으로 정부는 조용히 배후에 머무르면서 재산권을 보호하고 계약을 강제하며 시장의 규칙을 감시하고 자본주의의 혜택이 사회평화를 유지하기에 충분할만큼 확산되도록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함. 그러나 때때로 정부는 경제 시스템의 핵심까지 개입하여 자본주의에서는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금융기관들을 지탱해 주어야 함. 오직 한세대에 한두번 정도 정부가 이런 식으로 개입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대에 오름. 그러나 만약 정부가 이런 의사와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가 무너질수도 있음.
11. 깡통따개가 없는데 어떻게 할까
- 케인스와 초기 추종자들은 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성장했고, 불안정한 상태가 경제의 정상적인 상태이며 균형은 보기 드문 경우라는 것을 알았음. 50년대와 60년대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이와 반대로 생각. 이들은 완전하게 경쟁적인 이상적 경제, 항상 일반 균형상태로 옮아가는 경제가 모든 진지한 학문연구의 근간이자 이론적 표준이라고 생각. 실업과 불황의 어려움을 겪곤 하는 현실세계의 경제는 고장이 난 경제이며 이론적으로는 그다지 흥미 없는 특별한 경우라고 여기게 됨. 경제학자들이 새로운 사고방식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언제나 그렇듯이 정치적 시대정신 때문. 냉전시대 초기에는 자본주의가 거의 완벽하다는 이상을 회복시키는 장점이 분명했음.
- 합리적 기대가설에 기초한 연구는 명백히 실용적이었으면서도 경제학계에 최면적 영향을 끼침. 그렇게 된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이전 세대의 자애로운 관료주의에 대한 신념을 뒤흔들기 시작한 70년대 초기의 보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이데올로기와 완벽히 들어맞았기 때문. 합리적 기대가설이 70년대 중반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반혁명과 결합하기 시작하면서 이 이론의 정치적 매력은 더욱 강해짐.
- 현대 경제 패러다임의 힘은 주로 경제 패러다임의 정치적 함의에서 나옴. 합리저 기대가설은 정책 무용서 명제, 리카도의 등가정리 개념 및 자연실업률과 함께 경제주기와 실업을 조절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모두 소용없으며 비생산적이라는 것을 증명. 일반균형이론은 자본주의 사회는 정부의 개입만 없다면 항상 완전고용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음. 파레토 최적성 원리는 시장경제는 항상 자원을 되도록 가장 생산적인 방식으로 배분한다는 것을 증명했음. 효율적 시장가설은 경제에서 정부의 유일한 생산적 역할이 있다면 규제를 완화하고 민영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증명했음. 이런 것들은 대처와 레이건 개혁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정치인들과 재계 지도자들이 경제학자들에게서 듣고 싶어하던 바로 그 결론들이었음. 더 좋은 것은 합리적, 효율적, 자연적, 그리고 수학적으로 반론의 여지가 없는 시장의 힘이 작용한 결과들이 현재의 정치, 경제 상황에서의 소득과 부, 권력의 배분을 정당화해준다는 것. 자유방임적 이데올로기, 소득격차 심화, 고위 임원진들의 천문학적 연봉, 금융상품 트레이더들이 받는 엄청난 보너스, 이 모든 것들은 정치개혁이 필요한 일시적 상황이 아니라 인간과는 무관한 자연적 힘의 결고로 설명될 수 있었음.
12. 새 경제학을 향하여

4부. 대전환
13. 적응성 혼합경제
- 자본주의 4.0에서는 시장이 때때로 비합리적이며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시장을 더 효율적이고 더 완전하게 만들려는 노력들이 때로는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할 것임. 모든 시장을 더 경쟁적이고 투명하며 빠르게 움직이도록 만들려는 개혁이 바람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더 완전한 시장이 세상에 더 해로운 사례는 많이 있음. 핵무기나 생물학 무기, 노예, 인간장기, 총기 등을 거래하는 시장이 명백한 사례임. 금융시장을 더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피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숨기고 진정한 비용을 감추거나 이 비용을 납세자의 어깨에 지우면서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없어졌다는 착시현상을 만들 수 있음
14. 무엇인든 움직이는 힘과 결코 움직이지 않는 물체
15. 뭐, 내가 걱정한다고
- 일반가계가 저추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려고 결심하면 이것은 국가의 경제성장이 느려진다는 관점은 금유우이기 이후의 통념이었지만 경제의 역사를 돌아보면 저축이 증가하면 장기 경제성장은 오히려 촉진되었음. 사실 국가 저축률을 증가시키려고 계획된 정책들은 일본, 중국, 독일과 같은 나라들이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미국을 따라잡은 주요한 수단이었음. 어쨌든 저축한 돈은 투자로 흘러가고 한 나라의 경제가 노동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새로운 기계류와 기술의 규모는 그 나라의 생산성과 장기 성장률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
- 일반가계들이 더 저축하려고 하는 만큼 기업들이 더 투자하려고 한다면 소비재에 대한 수요감소는 기계, 컴퓨터, 공장 등에 대한 지출증가로 상쇄됨. 그리고 이러한 새 공장이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경제는 더 나아지고 사람들은 더 저축하면서도 동시에 더 소비할 여력도 생김.
- 한 통화는 다른 어떤 통화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상승해야 가치가 하락할 수 있음. 그리고 앞으로 몇 년안에 달러에 대비해 30~50%나 가치가 오를 만한 주요 통화를 찾아보면 달러 폭락에 대한 생각이 터무니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됨. 다른 어떤 주요국도 그만한 통화가치의 상승을 받아들이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움. 유럽도, 영국도, 스위스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중국과 일본은 더더욱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
- 언론이나 금융 분석가들은 통화 선택을 종종 미인대회로 표현함. 그러나 못난이 대회로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함. 투자자들 눈에 모든 주요 통화가 매력이 없어 보여도 이들은 어쨌든 어떤 통화든 보유해야 하므로 가장 덜 매력없는 통화를 선택. 리먼사태이후 달러는 분명히 매력이 없었음. 그러나 엔과 유로도 달러만큼이나 매력이 없기 때문에 연준과 오바마 정부는 미국에서의 자본이탈을 걱정하지 않고 통화와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었음. 그래서 미국 정부는 경제회복을 보장하고 10년 이후의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계속할 수 있었음.

5부. 자본주의 4.0과 미래
16. 자본주의 4.0의 경제정책
- 미국과 영국 정부가 결코 파산하지 않는 이유는 이 두나라가 거의 대부분 자국통화로 돈을 빌렸기 때문. 다시 말해 이들은 중앙은행의 조폐기를 돌리기만 해도 무제한으로 부채를 상환할 수 있음. 각각 달러, 유로, 엔화로 돈을 빌렸던 아르헨티나, 그리스, 태국정부는 이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파산위험을 겪었음. 역사에서 정부의 채무불이행 사태가 그렇게 많고, 그 경우 대규모 경제혼란이 야기되는 이유는 해당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통화로 돈을 빌렸을 경우, 금, 은과 같은 현물원자재와 연결된 유형의 화폐를 빌렸을 경우, 혹은 외국에게서 돈을 빌렸을 경우에 발생했음.
- 80년대에 사실상 지불불능상태인 은행을 연명시킨 결정은 일본식 경제마비화 신용경색을 야기하기는 커녕 신속한 경제회복을 촉진하고 세계 금융시스템의 재편을 순조롭게 진행시켰음. 금융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취약한 은행을 성급하게 파산시키는 대신에 지원해주고, 장부에서 대출을 시장가치 이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해주면 경제에 더 폭넓게 이익이 될 수 있음.
-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려면 경쟁이 둔화되고 다양한 종류의 카르텔에 의해 과잉설비 상태가 해소되지 않아야 함.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는 경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적어도 네가지가 존재했으며 이 장애물은 점점 더 켜졌음. 노조는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임금경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았음. 무역장벽 때문에 기업들은 국외의 경쟁기업들에게서 보호를 받았고 제품가격을 올릴 수 있었음. 전 세계가 과잉설비 상태인데도 OPEC와 같은 1차 상품 카르텔은 원자재 가격을 인상했음. 그리고 정부의 역할이 급격히 커지면서 경제의 많은 부분이 시장경쟁에서 격리되었음.
- 공공부문이 계속 확장되면 그 기저의 정치논리가 무엇이든, 세계가 경제불황에서 급속히 회복되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인플레 위험이 커짐. 큰 정부야말로 대규모 실업과 과잉생산설비 상태에서도 심각한 인플레를 일으킬 수 있는 다시 말해 악몽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원인임. 스태그플레이션은 매우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현상이기 때문에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정부의 건설적 역할에 대한 이해의 폭을 점차 넓혀온 최근의 발전을 모두 역행하는 또 다른 보수적인 반혁명이 일어날 것이 거의 확실함. 자본주의 4.0의 가장 큰 역설, 그리고 자본주의 4.0의 미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정부의 중요성이 인식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철학에 의해 정부의 규모가 커지는 것임. 정부의 규모를 키울는 시도는 특히 심각한 경제불황과 금융위기로 재정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새 자본주의 모델이 자멸하는 길이 될 것임.
17. 자본주의 4.0의 정치
18. 자본주의 4.0의 금융과 은행업
19. 자본주의 4.0의 세계
- 미국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더욱 개방되고 스스로의 결함을 인정할수록 미국 모델이 개도국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갈수 있음. 미국과 유럽식 사고의 융합이 중국의 권위주의적 방법에 대항하여 서구식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산시키게 되리라는 몇몇 구체적 증거가 있음.
(1) 경제회복이 진행된다면 민주적 자본주의의 회복력은 다시 주목을 받게 될 것임. 과거 금융위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동유럽의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졌던 경험과 비교해서 민주적 자본주의가 놀라운 생존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되면 개도국들의 정치인과 국민들은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에 더 호감을 가지게 될 것임.
(2) 정부와 시장 사이의 상호작용이 더 건설적이고 유연한 적응성 혼합경제로 바뀌게 되면 미국의 논리는 국제사상의 논리에 더 가까워질 것임. 이러한 글로벌 표준화 덕분에 미국은 더 매력적 모델이 될 것이며, 시간이 갈수록 국제제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도 점차 커질 것
(3) 유럽이 미국과 사상적으로 융합하려면 정책결정자와 유권자들은 유럽의 사회, 경제 시스쳄의 역기능적 특징을 인식해야 함. 이런 역기능들 때문에 농업로비단체나 노조와 같은 특수 이익집단들이 실제로는 착취적인 지대추구에 지나지 않는 경제행위를 유럽 모델의 고유한 문학적 특징인 양 가장할 수 있었음. 금융위기의 여파로 유럽은 무역, 노동, 농업에 대해 더 시장지향적 정책을 선택하게 될 것임.
(4) 금융위기로 극단적 무역 불균형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 중국의 수출주도 경제모델은 다른 개도국들에게 더 위험하고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될 것임.
(5) 중국과 무역, 금융, 민주주의 원칙을 놓고 경쟁이 심화되면 미국, 유럽, 일보은 정치-경제적 전통이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규범과 비슷한 개도국들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임.
- 74년 오일쇼크 당시 사우디 석유장관 샤이크 야마니는 OPEC 국가들에게 만약 석유생산국들이 너무 탐욕을 부리면 세계는 석유를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경고했음. "석기시대가 끝난 것은 지구상의 돌이 떨어져서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성과중심의 현재세계에서는 우리가 측정하는 것이 우리가 행하는 것에 영향을 미침. 만약 우리가 잘못된 측정법을 악화시키게 될지도 모름. 또한 우리는 실제로는 생산과 환경보호 사이의 이율배반적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이 두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음. 하지만 경제성과를 더 정확하게 측정하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 경제에도 이롭다는 것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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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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