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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패키지

etc 2015. 3. 11. 22:12

 


트리플 패키지

저자
에이미 추아, 제드 러벤펠드 지음
출판사
와이즈베리 | 2014-05-20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몇몇 집단들만이 알고 있는 성공의 비밀을 공개한다!예일대 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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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월감과 미진한 느낌, 이 부조화한 조합이 강력한 문화적 원동력의 한 부분을 차지. 이 두가지를 모두 가진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픈 욕구에 불타올라, 미래의 성공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고의적으로 희생하기까지 함. 이런 욕구를 구성원들에게 주입시키는 집단은 미국에서 아주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됨. 왜냐하면 현대 미국문화는 그와 정반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현재를 즐기라고 가르치기 때문
- 우월감에 불안감이 더해지면 성공욕구가, 우월감에 충동조절이 더해지면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 생긴다. 이 세가지 요소가 합쳐지면, 미래를 위해 계획한 일들을 실천할 의지와 능력이 엄청나게 강해져 놀라운 성공을 이루게 된다
- 트리플 패키지
(1) 우월 콤플렉스 : 트리플 패키지에서 정의 내리기가 가장 수월한 요소로서, 집단의 특별함, 비범함, 혹은 우월성에 대한 깊이 내면화된 믿음을 의미. 이런 믿음의 근원은 아주 다양함. 몰몬교도처럼 종교적 이유일수도 있고, 중국인이나 페르시아인의 경우처럼 민족의 장엄한 역사와 문명에서 비롯된 믿음일 수도 있음. 아니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사회적 신분제도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음. 몇몇 인도계 미국인들은 성직자 계급인 브라만 혈통이라서, 수많은 나이지리아 이민자들은 사업수완이 좋기로 유명한 이그보족이라는 이유로 우월감을 느낌. 혹은 이 모든 것들이 혼합된 이유일수도 있음. 유대인 아이들은 그들이 처음으로 맞는 유월절의 밤 축제에서 유대인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이야기를 들음. 나중에는 유대인들이 도덕적인 민족이고, 계율을 잘 지키고 지적인 민족이며, 생존자들의 민족이라는 가르침을 받게 됨. 우월 컴플렉스에 대해 주목해야 할 점은 어떤 개인이나 인생의 우열을 평가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주류의 자유주의 사상에 정반대된다는 점
(2) 불안감 : 불안감은 일종의 불만.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초조함, 자신이나 자신이 한 일이나 가지고 있는 것이 근본적으로 충분치 못하다는 느낌이나 근심이다. 불안감은 멸시당하고 있다는 느낌, 위험하다는 인식, 미진한 느낌, 가진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 여러가지 형태를 띨 수 있음. 누구나 이런저런 불안감을 느끼지만, 유난히 그런 경향이 강한 집단들이 있음. 이민자들은 거의 모두가 불안감을 느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 자녀들을 버젓하게 키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사회적으로 깊은 근심 속에 속을 태울 수 밖에 없음
(3) 충동조절 : 우리가 생각하는 충동조절의 의미는 유혹, 특히 시련이나 어려운 과제 앞에서 포기하고픈 유혹을 이겨내는 능력이다. 충동조절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는 없다. 프로이트의 생각대로, 문명은 성적이고 공격적인 원시본능을 억누르는 것으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비교적 관대한 미국이라는 배경에 맞지 않게 어떤 집단들은 유달리 충동조절을 강조함
- 언뜻 보기에 우월 컴플렉스와 불안감은 상호배타적이고 한 개인 안에 이 두가지 특징이 공존하기는 어려워보임. 바로 그 점이 중요함. 이 둘의 조합은 분명 기묘하고 불안정하다. 하지만 우월감과 불안감의 융합은 모든 트리플 패키지 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능력을 입증하거나 인정받고픈 욕구, 강한 불만을 불러 일으키는 경향이 있음.
- 유대인들은 유사이래, 아니 적어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예루살렘의 바르 코크바 반란(예루살렘을 로마의 식민도시로 바꾸려는 시도와 할례를 금한 것에 반항하여 132~135년 바르 코크바의 주도하에 일어난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고 나서 옛 유대교 사원에 커다란 대리석 돼지상을 세운 이후 쭉 그런 불만을 품어왔음. 그들은 주로 20세기 초 미국으로 이주한 수백만명의 가난한 동유럽계 유대인들로 기독교도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독일계 유대인들에게까지 불결하고 타락한 민족으로 취급받음. 어느 작가의 표현대로 그들의 불만은 "집단적 원한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경"이었음. 그 다음 세대도 마찬가지였다. 앨프리드 케이진, 노먼 메일러, 델모어 슈워츠, 솔 벨로, 클레먼트 그린버그, 노먼 포드호리츠 같은 뉴욕의 수많은 유대계 지식인들은 미국사회의 저명한 비평가들이 되었지만 반유대적인 교육과 문화로부터 배척당하며 자랐음. 이런 불만, "내 능력을 보여주고 말겠다'는 심리는 트리플 패키지의 한 특징인 우월 컴플렉스가 그 우월함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와 충돌할 때 격하게 발생. 이런 현상은 이민자 집단들 사이에서 아주 흔하게 발견됨. 엄청난 민족적 자부심으로 무장한 소수민족이 미국에서 갑작스레 멸시받고 거부당하면 분노에 가까운 것이 생기고, 니체가 말했듯 분노는 세계를 움직이는 큰 힘 가운데 하나다.
- 트리플 패키지의 각 구성요소는 저마다 문제점을 가짐. 불안감이 깊은 사람은 신경과민에 걸리는 경우가 많음. 충동조절은 아름다움, 평온함, 즉흥적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훼손시킬 수 있음. 자기집단의 우월함에 대한 믿음은 오만이나 편견, 혹은 그보다 더 나쁜 것을 조장할 수 있어 가장 위험함. 인류 역사의 가장 큰 해악들인 노예제, 아파르트헤이트, 민족 대학살 등은 한 집단의 우월감에서 비롯되었음. 하지만 트리플 패키지는 성공의 동력으로서 비교적 약하게 작용할때조차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 성공을 정의하는 방식 때문. 트리플 패키지 문화는 물질적이고 관습적이며 명성 지향적인 성공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음. 이는 그 문화를 가동시키는 불안감의 영향 때문.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불만,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증명해 보이고픈 욕구 새로운 정착지의 언어를 모르는 이민자로서 최소한의 생계라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트리플 패키지 문화 특유의 이런 불안요소들 때문에 소득이나 상장 같은 외적 증거를 중시하게 됨
- 미국에서 트리플 패키지식 성공을 거두는 집단들은 그들을 돌이킬 수 없는 변화로 이끌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 휘말리게 됨. 미국 자체의 문화적 항체들이 이 집단들을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그들 문화의 전통적 굴레에서 벗어나도로 자극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한 집단이 큰 성공 때문에 오히려 사라져버리기도 함. 한때 엄청난 성공을 맛보았던 미국 위그노교도들이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춰버렸듯이 말이다. 한 집단의 소멸은 잡다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있는 미국의 위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축하할 일일수도 있고, 한 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유산과 정체성이 사라져버린 슬픈 일일수도 있지만, 결론은 변함 없다. 성공한 집단은 바로 그 성공 때문에 미국에 동화되고 타민족이나 타종교인들과 결혼하며 미국화되어버림. 20세기에 이런 현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준 레바논계 미국인들은 다른 아랍계 미국인들과 더불어 타민족과의 결혼비율이 아주 높음. 또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을 겪으며 내리막길로 들어서는 집단도 있음. 트리플 패키지식의 성공은 본질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움. 성공은 의욕을 둔화시키고 불안감을 떨어뜨림. 한편, 현대의 평등이념은 집단의 우월 컴플렉스를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음. 그리고 자유를 사랑하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미국은 충동조절능력도 약화시킴. 한때 미국경제를 호령하던 와스프들은 이 모든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그 힘을 잃어갔음.
- 초년에 고통스러운 역경, 냉대와 조롱을 겪으며, 훗날 위대한 일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잔인하리만치 확고한 목적의식과 견고한 지혜를 끌어낼 수 있다. (처칠)
- 사실 미국은 오랫동안 전형적인 트리플 패키지 국가였음. 그 비범한 운명을 확신했고, 청교도로부터 물려받은 노동윤리가 세워져 있었으며, 배타적인 유럽에 대해 집단적 불만을 품고 있었음. 또한 그 국민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불안감, 즉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성공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지 못하면 패배자라는 의식을 심어주었음. 알렉시 드 토크빌은 이 모든 현상을 관찰하고 미국인들의 출세욕을 묘사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은 특히 지난 50년간 크게 변화했음. 고급이든 저급이든, 민주당을 지지하든 공화당을 지지하든, 육체노동이든 상아탑이든 지금의 미국문화는 트리플 패키지가 의미하는 모든 것에 대해 훨씬 더 양면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그 토대를 침식하고 있음. 미국의 공립, 사립학교들은 모든 집단이 우열없이 평등하다고 가르침. 자신의 본모습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의 비결로 여겨짐.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행복은 물론이고 삶 자체를 놓친다고 말함. 이들 명제의 근원에 어떤 진실이 깔려 있든, 중요한 아이러니가 있다. 그 명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미국에서 부와 명성과 권력이라는 보상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미국인들이 옹호하는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은 미국경제가 돌아가는 현실과 맞지 않다. 트리플 패키지 집단들은 그 차이를 유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 몰몬 교회는 델라웨어 주의 면적보다 더 넓은 미국땅을 소유. 몰몬 사회과학 협회 전직 회장에 따르면, 몰몬 교회는 월트 디즈니의 10배에 이르는 플로리다 주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미국 최대규모인 10억불짜리 영리목적 소 농장도 포함되어 있음.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양의 견과류를 생산하고 있고, 최대규모의 감자농장을 운영. 교회 소유의 보험회사인 베너피셜 라이프는 16억불의 자산을 보유. 교회는 또한 25개 이상의 라디오 방송국, 상업용 부동산, 쇼핑센터들도 소유하며, 폴리네시아 촌락들을 복제해 놓은 하와이 테마공원은 해마다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들여 하와이 주의 주요 관광명소 중 하나. 장대한 역사를 지난 영국 국교회 전체 08년 자산은 69억불이었음. 02년 7500만명의 신자를 둔 미국 카톨릭교회는 미국내 모든 교구의 재산을 합한 연간 총수입이 75억불로 추정됨. 이에 비해, 신도 수가 카톨릭 교회의 10분의 1도 안되는 후기성도교회는 97년 자산이 250~300억불 정도였고, 지금은 해마다 50~60억 달러의 연간소득을 올리고 있음. 한 연구의 표현대로 일인당 소득으로는 다른 어던 종교도 그 액수에 근접하지 못함
- 쿠바계 미국인의 성공을 양적으로 파악하려면, 망명자들과 80년 이후의 이민자들을 구분해야 함. 12만 5000명의 마리엘리토들과 수십만명의 발세로들(즉석에서 만든 배를 타고 145킬로의 바다를 건너간 뗏목 난민)을 비롯한 좀더 최근의 이민자들은 훨씬 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음. 쿠바 망명자 공동체는 대부분 백인인 반면, 마리엘리토들과 90년 이후의 신 쿠바인들은 대다수가 흑인이나 혼혈인이었다. 쿠바계 미국인의 경제적 기적은 주로 망명자들과 그 자녀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 카스트로 이전 쿠바 사회계층이 미국에서도 그대로 반복됨. 마리엘리토들과 신쿠바인들은 망명자들로부터 냉대를 받는 경우가 많았음. 그들은 돈벌이에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마이애미의 핵심권력에 끼지 못하고 있음. 이렇듯 쿠바계 미국인들의 사연은 단순치 않으며 어두운 이면이 있음. 통계적으로 보면 신쿠바인들의 생활수준은 다른 히스패닉계보다 나을 것이 없었음. 아니,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나빴다. 마리엘리토의 13%만이 대학학위를 갖고 있는데, 이는 다른 히스패닉계와 거의 같은 비율. 신쿠바인들의 70~80%가 영어를 그리 잘하지 못함. 그들의 빈곤율(65세 미만 성인의 약 15%, 65세 이상의 약 40%)은 쿠바인 망명자들의 거의 2배에 달하고, 그들의 전체적 중간소득은 다른 히스패닉계보다 낮음. 반면 쿠바인 망명자들은 자기 정체성 인식과 은행계좌 모두에서 미국의 다른 히스패닉계 집단들과 차이를 보임. 이민 1세대의 희생이 그 성과를 얻은 것. 망명자 공동체가 미국의 다른 히스패닉계 집단들만 앞지른 것이 아님. 90년 즈음 망명자들의 미국 태생 자녀들의 약 37%가 5만불 이상의 연간소득을 올린 반면, 영국계 미국인은 18%에 불과. 유색인 마리엘리토들의 대다수는 마이애미 밖에서 재정착하는 길을 택함. 많은 이들이 뉴욕시와 로스앤젤리스에 거주하면서, 그 도시들의 많은 히스패닉계 인구에 합류했음. 반면, 망명자들은 사업번창, 마이애미 상류층 개인클럽,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점점 더 증가하는 아이비리그 진학을 통해 신분상승을 이루고 있음.
- 흑인 이민자들 가운데 나이지리아인들이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성공한 집단임. 2010년 미국에는 약 26만명의 나이지리아계가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흑인인구의 0.7%에 불과. 하지만 2013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흑인학생들 120명 중 대략 25%가 나이지리아계였음. 99년 이미 미국 대부분 명문대학들에 재학중인 흑인 학생들 가운데 나이지리아계가 차지하는 비율은 그들이 흑인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의 10배에 달했음. 이 학교들에서 졸업한 나이지리아계는 예상대로 큰 성공을 거두었음. 그들은 특히 의학계에서 두각을 드러냄. 나이지리아계 미국인들은 미국 전체 흑인 의사들의 약 10%를 차지. 그러나 나이지리아계의 진정한 강점은 다른 분야일지도 모른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2세대 나이지리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다른 흑인들에 비해 나이지리아계가 투자은행계를 휘어잡고 있음.
- 자기민족이 예외적이라는 이런 주장의 아이러니는 그들이 예외적이지 않다는 것.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집단들은 모두 우월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으며, 대부분은 그 사실로 유명세를 타고 있음. 모든 아시아인들은 중국인의 우월 콤플렉스를 알고 있음. 그것은 무척이나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수백년의 국력쇠퇴 속에서도 바위처럼 끄떡없었고, 지금은 중국의 급속한 도약으로 인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음. 중동지역에서는 이란인들의 우월 콤플렉스가 그에 못지 않게 악명 높음
- 고정관념의 위협 및 격려는 사회심리학에서 가장 폭넓게 연구되는 현상 중 하나. 이런 연구들에서 발견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집단의 고정관념을 미묘하게 암시하는 단 한문장에도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그렇다면 태어난 날부터 부모, 조부모, 공동체에게 자기 문화의 우월함을 주입당하며 자라는 사람은 얼마나 사기가 높아질지 상상해보라.
-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모든 집단들은 뿌리깊은 우월 컴플렉스를 갖고 있음. 그 근원은 종교, 역사 혹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모르는 사회계급일 수도 있음. 우월 컴플렉스 없이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집단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트리플 패키지의 명제를 잘라버리는 반증이 될 것임. 그러나 우월 컴플렉스가 계속 유지되기는 어렵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 집단의 정체성과 민족적 긍지는 공격을 받음. 모든 것을 균질화하는 미국 문화의 힘을 비롯하여, 동화라는 강력한 세력이 총공세를 해온다. 소수민족들은 거기에 더해 편견과 차별까지 당해야 할 것임. 미국의 고매한 평등이념 역시 우월감을 좀 먹을 것임. 2,3 세대 미국인들은 부모들의 우월 컴플렉스를 편견이나 인종차별로 여기고 거부하기 시작할지도 모름. 자연이 진공상태를 싫어하듯, 미국은 우월 컴플렉스를 싫어함. 단, 미국 자신의 우월 컴플렉스만은 예외임. 그래도 압박감속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계속 믿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집단들이 미국서 크게 성공함. 그러나 우월감만 가지고 있어서는 그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음.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작위가 있는 귀족들은 우월감이 높았지만, 그리 근면하지는 않았음. 경제적으로 궁핍할 때에도 그들은 직업을 갖고 일하는 것을 경멸했음. 이런 이유 때문에, 집단 우월감과 열등감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하는지의 여부만을 밝혀내는 고정관념의 위협 및 격려 실험들은 중요하긴 하지만 트리플 패키지 역학을 전체적으로 포착하지는 못함. 우월 컴플렉스가 트리플 패키지의 나머지 다른 요소들과 합쳐질 때에야 비로소 성공욕구, 근성, 그리고 조직적이고 파격적인 집단적 성공이 발생한다
- 레바논인들은 현대 레바논인들과 마찬가지로 어디에서든 뛰어난 돈벌이 수완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셈족 즉 고대 페니키아인들의 후손들임.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우수한 지능, 장사 재간, 뛰어난 항해술을 가진 페니키아인들을 발탁하여 특별대우를 해줌. 오디세이아에서 페니키아인들은 거대한 검은 배를 몰고 다니는 탐욕스러운 악당들로 묘사되며, 키케로는 페니키아인들이 아주 교묘하게 탐욕과 사치,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을 처음으로 그리스에 전래시켰다고 말함. 팔방미인이 분명한 페니키아인들은 알파벳, 산술, 유리의 발명자로도 알려졌음.
- 현대 미국문화는 자존감을 높이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가장 성공한 집단들은 후손들에게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너희는 우수한 집단에 속하지만, 너희들 각자는 그리 훌륭하지 않다. 자제하고 유혹을 이겨내고 너의 능력을 증명해라.
- 치쿠라는 중국말이 있다. 10억 중국인들이 알고, 미국의 모든 중국계 이민자들이 알고 있으며, 아마도 그들의 자녀들 모두 아주 친숙하게 느낄 용어이다. 직역하면 괴로움을 먹는다는 의미로 시련을 견디는 능력을 말함. 이런 능력은 인내, 근면과 더불어 유고에서 말하는 배움의 미덕을 이뤄낸다. 불평하거나 주색에 빠지거나 포기하고픈 유혹에 저항하는 절제를 포함한 이런 미덕들은 천년 동안 중국과 유교 영향권 사회들에서 자녀 양육과 교육의 기본적인 요소들이었음.
- 충동조절은 체력과 비슷. 몇 달 동안 며칠마다 한번씩 5마일을 뛴다면 체력이 쌓여서 더 먼거리를 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도처럼 전혀 상관없는 운동들도 전보다 저 잘할 수 있음. 수많은 연구들이 증명해주듯, 충동조절도 마찬가지임. 단 몇주 동안만이라도 충동조절을 요하는 과제(바른 자세로 앉기 같은 단순한 일이라도 좋다)를 규칙적으로 수행하다 보면, 의지력이 전체적으로 상승함. 집중력, 끈기, 굳은 결의가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 더 잘할 수 있게 됨.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더 엄격한 자녀 교육이 수학공부나 성적올리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충동조절을 강조할 때조차 그토록 큰 성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 트리플 패키지는 우울과 불안, 만족을 모르는 성공욕구를 낳음. 어느 분야에서든 항상 누군가는 나보다 앞서 있으며, 용케 정상을 차지한다 해도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짓눌림. 트리플 패키지를 가진 사람들은 소박한 행복을 누리기 어려움
- 현대 미국인들이 보기에 몰몬교의 성 불평등은 시대를 역행한 퇴보로 보이겠지만, 미국에서 성공한 거의 모든 집단들이 그런 불평등과 심지어는 불관용까지 특징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됨. 모든 우월 컴플렉스에는 다른 집단과 다른 생활방식을 참지 못하는 불관용, 편협성, 배타성, 고립성이라는 어두운 이면이 있음. 사실, 많은 경우 그런 불관용은 집단의 생존에 꼭 필요한 조건이 됨. 민족, 종교집단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가장 현실적으로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타민족, 타종교인과의 결혼을 비난하는 것임.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유대인등른 타민족과의 결혼비율이 아주 높은 만큼 그들 민족이 혹시나 세상에서 잊힐까봐 염려함. 동아시아와 인도문화는 전통적으로 다른 집단과의 결혼을 강하게 금기시했지만, 미국에서 그런 전통을 유지하기는 어려움. 가치관, 신념, 자아상, 결혼문제에 있어서 이들 집단들은 인류의 완전한 평등을 부정하는 편협함을 통해 생존하며, 그래서 우월 컴플렉스가 강한 집단일수록 생존가능성이 높아짐
- 사회체제가 믿음직스럽지 않다면, 절제하고 열심히 일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거라는 사회의 선전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 나 같은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미래의 경제적 성공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하면서까지 충동을 절제할 이유가 없음. 이는 애팔래치아 시골뿐만 아니라 미국 도심 빈민가에도 해당되는 이야기. 가난과 학대를 비롯하여 유년기에 겪는 불행은 충동조절 능력에 장기간의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음. 미국사회는 한 집단의 우월감뿐만 아니라 충동조절 능력도 짓밟을 수 있다. 이렇듯 가난을 유발하는 바로 그 조건들이 한 문화에서 트리플 패키지를 빨아내 버리기도 함.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상황은 악화되고 가난은 더욱 고착화됨
- 청교도들과 초기 칼뱅파에 대한 베버의 고전적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한 집단의 이례적 성공을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의 사회학 연구서임. 그 책은 우선 놀아운 사실부터 알렸다.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개신교도들이 카톨릭 교도들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 베버가 이 현상을 설명하면서 밝힌 초기 개신교의 색다른 특징들은, 물론 사용된 용어는 다르지만,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트리플 패키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 베버에 따르면, 청교도들처럼 칼뱅주의에 큰 영향을 받은 개신교 분파들은 자신들이 신에게 구원받기 위해 선택된 얼마 안되는 신민들이며 그들을 제외한 인간들은 어둠과 죄악에 빠져 있다고 믿었음. 하지만 그들은 엄청나게 큰 불안감 또한 느끼고 있었음. 칼뱅주의는 누가 구원받고 누가 구원받지 못하는지 인간은 알 수 없다고 가르쳤음. 신이 이미 우리의 운명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어떤 선행도, 어떤 회개도, 어떤 마법같은 성찬식도 신의 계획을 바꿀 수 없다. "머지 않아 모든 신자들은 '나는 과연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일까?'하고 자문하며, 다른 모든 관심사를 뒤로 미루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는 것은 불완전한 믿음의 증거이며, 따라서 지옥에 떨어질 거라는 징후였다. 이런 개인적이고 신학적이며 인식론적인 불안감은 세속적 성공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신조로 이어짐. 물질적 부의 목적은 사치를 누리는 것이 아니었다. 초기 개신교도들은 사람의 직업이란 신이 인간에게 정해주신 지상의 일, 즉 소명이며 또 그래야 한다고 믿었음. 따라서 근면함, 검소한 생활, 절제, 그리고 궁극적으로 금전적 수익을 통해 자신의 믿음이 독실함을, 자심이 선민임을 증명할 수 있었음. 베버는 개신교도 사업가가 '특히 일에서 거두는 성공을 통해 인간들뿐만 아니라 신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었다.'고 말했음. 즉, 베버에 따르면 미국에서 개신교도들이 거둔 성공은 트리플 패키지를 통한 성공이었다. 청교도들이 고생스럽게 일하고 절약한(충동조절) 이유는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이며(우월감) 삶의 매순간 무언가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불안감) 믿었기 때문. 그들은 카톨릭 교도들, 다른 개신교 분파들, 동료 신도들, 그들 자신 등등 모든 이들에게 그들이 진정한 신의 선민임을 보여주어야 했고, 그 방법으로 부의 축적을 택했다.
- 미국에서 이민자들이 이뤄내는 성공신화는 거의 항상 두세대에게만 해당됨. 아시아계, 아프리카계, 히스패닉계, 카리브해 아프리카계를 비롯한 대부분의 이민자 집단들은 3세대부터 하락세로 들어서기 시작. 성공한 아시아계 이민자 집단들의 경우에도 "1~2세대 아시아계 학생들은 백인보다 성적이 좋은 반면, 3세대 아시아계와 백인 학생들 간에는 차이가 없다." 이는 트리플 패키지 이론을 예측가능한 사실임. 동화와 성공으로 인해 1~2세대의 출세욕을 부추겼던 불안감과 다른 문화적 힘들이 약화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대다수는 3,4,5 세대 미국인들임. 대부분은 변호사, 의사, 은행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의 자녀들로서,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비교적 확고한 편. 유대인다운 목소리로 말하는 유대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유대계 미국' 문학을 집필한 벨로와 로스의 시대에서 드라마 '매드 맨'을 만든 매튜 와이너의 시대로 넘어갔다. 이민자 선조들과 달리 이젠 이방인이라 할 수 없는 오늘날 부유한 미국 유대인들은 금방이라도 트리플 패키지의 내리막 궤도를 따라가야 할 것처럼 보인다. 매드 맨이 묘사하는 50년대 후반의 와스프들과 다르지 않게 말이다. 그러나 독특한 역사 때문에 유대인들의 트리플 패키지는 이민자라는 신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부유한 생활 속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름. 그들만큼 우월 컴플렉스와 불안감의 결합이 역사적 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집단도 없다. 오늘날 미국의 유대인들은 경제계와 문화계를 주름잡는 엘리트층의 일부를 이루고 있지만, 바이마르 독일에서 못지 않게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사회에 동화되었던 유대인들에 대한 기억을 좀처럼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제 미국에서 탄압을 걱정하는 유대인은 없지만, 미국 유대인들이 거의 민족적 고향으로 느끼는 이스라엘은 그 존재권리를 부정하고 그 전멸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2.2억의 중동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 수학점수나 과학경시대회를 유대인 하락세의 증거로 삼는 것은 잘못된 일. 20세기 대부분 동안 미국 유대인들이 과학과 수학에 집중한 것은 필연적 결과였음. 영어에 아직 능숙하지 않아서, 법조계, 언론계, 정계, 출판계 같은 분야에서 성공하기 어려웠기 때문. 미국 유대인들이 가계 소득이나 순자산, 혹은 노벨상 같은 표준적 기준에서만 정상에 서 있는 것은 아님. 미국의 유력한 시민들, 법학자들, 영화감독들, 저널리스트들, 코미디언들, 만화가들, 좌파/우파 여론 주도자들 가운데서도, 그 낮은 인구비율을 감안하면 충격적일 정도로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포함되어 있음. 다시 말해,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그 어떤 집단들보다 유대인들의 트리플 패키지 궤도는 더 멀리 나아가 있음. 유대인들은 미국의 여타 트리플 패키지 집단들과 다른 방식으로 성공과 동화의 문제들에 직면했음. 미국 유대인들과 아시아계 미국인들간의 근본적 차이점은 유대인들이 아시아계보다 3세대 앞서 있다는 점. 미국의 성공한 트리플 패키지 집단들에게 닥칠 수 있는 몇가지 운명이 있다. 그중 하나는 타민족과의 결혼과 동화를 통한 소멸이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가능성은 이 집단이 트리플 패키지의 능력과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 집단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예전에 없던 형태의 성공을 이루는 것이다. 이 모든 가능성이 오늘날 미국 유대인들에게 열려 있으며, 어느 정도는 실현되고 있음. 몰몬교도도 이미 같은 문제에 맞닥뜨리기 시작. 점점 더 많은 신자들, 특히 젊은 세대가 후기성도 이미지가 되어버린 순응문화에 제동을 걸고 있음. 중국계 미국인 실업계 리더들은 아시아계가 "자기 의견을 대범하게 밝히고 튀는 행동을 하고 풍파를 일으키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기업간부로 승진할 기회를 잘 잡지 못한다고 지적. 인도계 미국인들은 이미 경제계의 성공 너머를 바라보고 있음. 미국 경제계라는 제한된 분야를 벗어나 사회참여 지식인, 판사 혹은 작가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음. 이렇듯 전형에서 벗어나는 방식을 통해 트리플 패키지 집단들이 3세대부터 하락세로 접어드는 일반적 궤도를 피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더 두고 볼 일이다.
-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미국은 정반대로 보이는 두가지 충동을 잘 융합해 냈음. 즉, 욕구 충족을 훗날로 미루면서 현재를 사는 것. 여기에는 아메리칸 드림의 마력이 어느정도 통했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평일 동안 열심히 일하면, 주말에는 신나게 놀 수 있다. 몇년 간 열심히 일하면, 꿈꾸던 집, 차, 가족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생산적 융합을 통해 미국은 세게에서 가장 근면한 나라인 동시에, 방탕하게 순간을 즐기는 나라, 코카콜라, 맥주파티, 휴양지의 나라가 됨. 미국인은 일주일에 5일은 트리플 패키지식의 생활을 하지만, 토요일 오후에는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음. 두가지 생활방식을 이토록 조화롭게 융합한 사회는 없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어떤 일이 벌어졌다. 미국이 불안감과 충동조절 모두를 버린 것이다. 트리플 패키지의 두가지 요소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우월감과 현재를 살고픈 욕망뿐이었고, 이는 성공욕구, 근성, 혁신이 아닌 순간적인 만족을 얻고자 하는 욕심만을 낳았다.
- 자존감 운동은 미국인들의 자기만족을 더욱 높여 주었지만, 그들의 심리적, 교육적, 사회적 문제들을 치료해주지는 못했다. 그 주장이 완전히 틀렸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러나 그 운동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그 신봉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은 트리플 패키지를 잃고 말았음. 자존감은 트리플 패키지식 불안감의 정반대를 장려함. 자신이 부족하다거나 더 잘해서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느껴서는 안된다. 자기 인정이 성공의 첫 법칙이다. 폭발적으로 출간된 자기계발서들, 엄청난인기를 끈 자기개선 세미나들, 그리고 수많은 심리치료들이 바로 그런 메시지를 전파했음. 무엇보다 아이들이 무슨일에 실패했다거나 2등이라고 느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모든 이들에게 상을 주고, 부모들은 교소에게 종이에 빨간색이 많이 칠해져 있으면 아이들이 심란해 하니까 빨간 펜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교사들은 참 잘했어요를 남발함. 자존감 운동은 동시에 충동조절능력도 갉아먹음.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신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리석거나 파괴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있음. 자존감을 중시하는 학교와 가정에서 교육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시련을 견뎌야 한다거나 실패해도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받지 않음. 헌신적이고 부지런한 부모들은 자녀들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자녀들이 자신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도록, 실망하고 거부당하는 일이 없도록 필사적으로 애를 쓴다. 그런 부모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믿게 되고,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좌절하고 만다. 충동조절능력의 저하는 비단 자녀 교육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으로 침범. 하고 싶은 일을 참지 말고 현재를 즐기자는 풍조가 만연했던 1960년대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름. 그러나 좀더 중요한 요인은 역시 부의 상승이었다.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면 굳이 자기절제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고급 승용차 두대를 가진 부유한 집에서 자란 사람이 대공황 시대에 있는 것처럼 살기는 어렵다. 줄어드는 불안감과 넘쳐나는 돈에 충동조절의 실종까지 더해지면, 사회는 점점 더 찰나의 쾌락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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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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