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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 사회

사회 2014. 10. 12. 20:54

 


팔꿈치 사회

저자
강수돌 지음
출판사
갈라파고스 | 2013-04-09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경쟁이 어떻게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최고의 가치가 되었나? 끊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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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드소프 등의 연구에서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태도를 크게 세가지로 구분했는데, 첫째는 성취지향성, 둘째는 연대적 지향성, 셋째는 도구지향성임. 첫째는 노동자들이 기업 위계 등 일정한 질서 속에서의 인정과 성취를 통해 상층부로 상승하는 것을 통해 의미를 찾으려 한 경우고, 둘째는 조직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과 정서적, 감정적 유대감을 갖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경우. 전자가 승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경우라면 후자는 친밀한 인간관계(신뢰, 충성)를 우선시하는 경우. 끝으로 도구적 지향성은 노동을 다른 무엇보다도 생활수준 향상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경향. 첫째와 둘째가 노동안에서 내재적 만족을 지향한다면, 셋째는 노동 밖에서 외재적 만족을 지향. 골드소프 등의 실증 연구는 60년대 말 영국의 한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노동에 대한 태도를 분석한 것으로, 당시 대부분의 응답자는 노동에 대해 도구적 입장을 보여줌. 즉 노동자들은 노동에서 내재적 의미(자아실현, 성취감, 도전감, 유대감)를 찾기보다는 단지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소득과 고용에 주로 관심을 갖는 것으로 나타남. 특히 위계질서의 하층부, 즉 하층 노동자 집단으로 갈수록 도구적 지향성이 강했음. 이 연구결과는 서양에서 프로테스탄트(특히 칼뱅주의) 노동윤리 이래 형성된 근대적 노동관에 일정한 변화가 있음을 암시. 원래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란 주어진 과업을 신이 내린 소명이라 여기고 근면과 성실로 부를 축적함으로써 구원을 얻으려는 태도임. 따라서 노동은 구원의 길이요, 자아실현의 길이었음. 이것이 약화한 것은 한편으론 임금과 소비에 의한 구심력이, 다른 한편으론 무의미한 노동에 의한 원심력이 동시에 작동한 탓
- 어릴적부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채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 충족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부모와 잘 소통하지 못하고 따뜻한 지지도 받지 못하면서 자란 경우, 특히 좋은 학교 성적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성과주의식 삶의 태도를 반복하며 자란 경우, 요컨대 성장과정에서 조건없는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 한국과 같이 전형적인 일중독적 특성이나 일과 삶의 불균형이 상대적으로 극심하게 나타날 수 있음. 그것은 하이데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어린 시절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을수록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면서 사람들은 생존의 두려움을 특히 강하게 느끼기 때문. 그럴 때 대개 생존전략으로서 강자와 동일시를 하게 되고 이것이 곧 성과주의적 삶의 지향이나 강방적 노동관념으로 연결되기 쉬움. 그렇게 자란 어른들은 어린 시절의 좌절감을 보상받기 위해, 또는 그러한 내면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은폐하기 위해, 일이라는 일종의 중독물에 빠져듦으로써 견디기 어려운 심적 고통을 피해가고자 함
- 우리는 대개의 경우 내가 일하는 기업이, 내가 만드는 상품이, 내가 사는 나라가 세계에서 최고가 되기를 원함. 그래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불철주야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국민의 자세라 배움. 강자만이 살아남는다고 하는 다윈의 진화론을 편협하게 해석한 적자생존 및 약육강식 논리를 인간사회에 기계적으로 편협하게 적용한 결과, 사회적 다윈주의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거의 지배하게 되었음. 그리하여 우리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참된 느낌을 억압하고 기업과 국가가 요구하는 경쟁력 논리를 그 빈자리에 채워놓음. 앞서 말한 정서적 프롤레타리아화가 전개되는 방식.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강자와 동일시를 하게 되는 사회적 조건이고, 또한 이것은 자연스럽게 경쟁을 내면화하는 심리적 토대가 됨. 그렇게 되면 이제 경쟁을 벗어나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체념적 토대가 됨. 나아가 경쟁이야말로 인간 및 사회발전의 효과적 방법이라는 지배자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여 경쟁을 합리화함
- 문제는 이런 강자와 동일시 및 경쟁의 내면화와 더불어 우리는 자신의 참된 내면과 점점 더 멀어짐. 그리하여 겉으로는 살아있으되 속으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또한 겉으로는 부와 권력과 명예, 외모와 건강을 과시하되, 속으로는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과 불만족에 시달리는 표리부동한 삶을 살게 됨. 그렇게 되면 한마디로 우리는 제아무리 보약을 먹고 오래 살아봐야 헛살기 쉬움.
- 경쟁이란 자본의 지배를 위한 수단. 그래서 경쟁과 지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음. 경쟁과 지배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명제, 즉 생존경쟁은 자본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라는 명제는 박수치기 게임의 비요나 선착순달리기의 비유 또는 자상한 남편의 비유(중국 영화 홍등에 나오는, 서로 질투하며 경쟁하는 부인들을 여럿 거느린 남편이 극도의 자상함을 통해 효과적으로 여러 여성들을 동시에 관리하는 모습)를 통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음.
- 어느 누구도 자신의 중심이 탄탄하게 서 있고 주변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면 별로 경쟁할 필요도 느끼지 않고 경쟁을 하더라도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음. 재미삼아 경쟁을 하는 경우라도, 만약 그 사람의 내면에 열등감이나 공허감이 크다면 꼭 내가 이겨야 한다는 강박 또는 집착에 시달리기 쉬움. 손상된 자아존중감. 즉 자존감을 되찾고 싶기 때문. 그래서 경쟁에 반대한다라는 책을 쓴 알피 콘 선생은 이렇게 말함.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기 때문에 경쟁을 하며, 결국 낮은 자존감에 대한 보상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경쟁에서 승리하여 자기존재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
- 치열한 경쟁사회라는 시스템 조차 영원한 자연법치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감. 현재의 자본주의 역시 수억년 인간의 역사중 불과 500년 내외의 특수한 현상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의미. 경쟁사회를 만들고 소장하는 세력은 따로 있음. 한마디로 기득권 세력임. 자본주의 경쟁사회가 탄생한 데에는 이미 봉건주의 사회를 깨면서 급부상한 자산가들, 상공인 계급들이 단결하고 혁명을 일으킨 과정이 있었음. 그 이후 수백년간 기득권의 아성을 확고히 쌓으면서 경쟁 이데올로기를 중간층이나 기층 민중이 스스로 내면화 했다는 점. 경쟁질서가 만들고 강화하는 사다리 질서 자체를 문제삼기 보다는 그 질서를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가 더 많이 차지할 것인가, 하는 기득권 경쟁의 덫에 빠져버린 것. 일부 성공한 강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적 과정도 숨어 있음. 그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 위신과 외양에 좌절한 결과 선망하고 집착하게 되는 것임. 기득권 층은 기득권에 중독되어 변하지 못하고 비기득권층은 기득권을 동경하고 강박적으로 집착하기에 변하지 못함. 이 모든 현상은 개인적 차원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우리 모두가 병들어감을 암시. 경쟁의 승자가 겉보기에는 폼 나는 승리에 도취될지 모르나 그것은 일시적이며, 진정한 내면의 평화나 행복의 관점에서는 결코 인생성공이 아닐 수 있음. 남들을 다 누르고 자신이 최종 승자가 되려는 과정에서 남들을 울리고 자신을 억압할 수밖에 없기 때문.
-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회의 압박이 증가한다고 해서 기업들이 진정성을 갖고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님. 그들은 대개 세가지 전략으로 대처. Deny, Delay, Dominate 전략임. 먼저 부정전략이란 기업이 책임질 직접적 대상이나 상황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 상황자체가 존재한다고 해도 대개 인과관계를 부정하거나 책임을 다른데로 돌림. 다음으로 지연전략은 책임을 져야할 대상이나 상황자체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경우 그 해결에 대해 시기상조론을 펼치는 것. 아직 문제 자체가 심각한 상황이아니라거나 그 해결을 위한 역량이 미처 구비되지 않았다는 식. 오랜 시간을 끌면서 저항세력이 지치게 되거나 세력관계가 뒤바뀌면 포장만 달리하여 자기들의 의도를 관철함. 끝으로 지배전략이란 어차피 부정도 못하고 지연도 못할 조건이라면 문제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기업이 장악하려는 것. 문제 상황의 규정 자체를 기업에 덜 불리하게 한다거나, 우호적인 학자나 전문가를 초청해서 토론회를 열어 해결방식을 기업에 유리하게 끌고가는 식. 그리하여 전화위복을 꾀함. 대단한 위기에 휘말린 기업이 오히려 그 위기를 딛고 더욱 번창하게 되는 것은 이 지배전략이 효과를 낸 결과. 지금까지의 결험과 판단으로 앞에서 이야기한 3D저략에 두가지를 부가해 5D전략이라 명명. 하나는 왜곡(distort)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기만(deceive)전략임. 왜곡전략이란 문제상황을 비틀어 더이상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보상적 문제로 치환하는 것. 특히 건설이나 개발과 관련된 사례에서 두드러지듯, 처음에는 사업 그 자체를 할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가부문제로 시작하지만 대개 끝은 보상문제로 귀착. 다음으로 기만전략이란 전문가회의 등을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를 준수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뇌물, 감투, 암약 등을 통해 대 사회적 사기를 치는 것. 서류조작, 자료조작, 통계조작, 수치조작이 기본임
- 자본과 권력은 경기가 좋으면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겁을 주고, 경기가 나쁘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겁을 준다. 사람들은 경기가 좋아도 힘들고 나빠도 힘들다. 이에 우리의 과제는 위기감이나 두려움에 기초한 선전선동의 허상을 낱낱이 벗겨내는 것이다.
- 우리들의 모든 삶의 과정이 상품화한 것이 바로 오늘날 서비스 경제라 불리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사람 사이에서 친밀함과 우정, 환대, 사랑의 관계를 만들고 확인하고 나누던 행위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 서비스 경제라는 이름으로 돈벌이 수단이 됨. 예컨대 아이를 잉태하거나 낳는 행위, 아이를 키우는 행위, 의식주 등 살림살이 행위, 어려울때 돕기, 문화향유, 여가, 소통, 그리고 심지어 사랑행위까지도 온통 서비스 경제 속으로 편입되고 있음. 그 결과 서비스는 있되 참된 봉사는 없고, 학교는 있되 참교육은 없음. 또 고급 아파트는 있되 참살림은 없고, 레스토랑은 있되 참 먹을거리는 없음. 사실이 이럼에도 오늘날 주류경제학에서는 서비스경제, 즉 3차산업이 발전할수록 선진국이라는 잘못된 관념이 지배하여 현실 삶을 피폐하게 함.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이런 환상에서 탈피하여 삶의 자율성, 삶의 친밀성, 삶의 직접성을 복원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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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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