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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2.28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저자
하워드 진 지음
출판사
추수밭 | 2008-03-2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하워드 진이 쉽고 친절하게 다시 쓴 미국사 입문서 ‘영웅’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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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대륙 개척신화에 가려진 진실
2. 흑과백, 그 차별의 실마리
-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노예무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에도 노에제가 존재했던 사실을 거론하기도 함. 아프리카 노예들도 삶이 고단했지만 아메리키로 끌려간 노예들에게는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음. 두가지 측면에서 볼 때 아메리카의 노예제는 역사상 가장 잔혹했음. 첫째, 아메리카 노예들은 끝없는 이익추구의 광기에 의해 혹사됨. 둘째, 인종적 혐오감을 바탕으로 백인은 주인, 흑인은 노예라는 시각이 형성됨.
-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흑인들의 반란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큰 두려움은 딱 한가지 뿐이었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품은 백인들이 흑인들과 규합하여 사회질서를 혼란시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음. 특히 노예제가 시작되었던 초기, 즉 아직 인종차별이 정착되기 전에는 몇몇 백인하인들이 마치 노예처럼 혹독한 대우를 받기도 했음. 그것은 백인하인들과 흑인노예들 두 집단이 힘을 합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 식민지 지배자들은 그런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난한 백인들에게 새로운 권리와 이익을 줌. 1705년 버지니아에서는 백인하인들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을 경우 그들에게 돈과 곡식을 줘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킴. 자유를 얻은 하인들은 토지를 받기도 했음.
3. 보잘것 없는 그들을 통제하라
- 식민지에 관한 전통적인 역사서술은 식민지가 외부의 적 영국에 저항하여 단결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음. 그러나 사실 식민지 내부에는 노예와 자유민, 하인과 주인, 소작인과 지주, 빈자와 부자들로 인한 심한 갈등이 있었음. 이러한 긴장의 연속으로 질서가 붕괴됨.
- 식민지들이 성장할수록 지배계급은 통제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찾게 됨. 최고의 부유층과 극빈층이 존재하는 사이에 백인 중산층이 발전함. 중산층에는 소규모 농장주, 독립적인 자영농, 도시의 기술자들이 포함됨. 중산층 식민지인들이 상인들 및 대농장주들과 세력을 규합한다면 변경의 인디언, 흑인노예, 가난한 백인에 대한 튼튼한 완충장치가 될 수 있었음. 상층계급은 중산층의 충성을 얻는데 성공했는데, 여기에는 분명 중산층에게 대가가 있었음을 의미함. 과연 어떻게 자신들의 재산과 권력의 손실없이 그런일을 가능하게 했던 것일까? 1760년대와 1770년대의 지배계급들은 최적의 방법을 찾아냄. 다름 아닌 자유와 평등에 관한 말이었음. 자유와 평등에 관한 말은 영국에 대한 혁명을 일으킬 때만 필요했고, 노예제나 불평등을 없애는 데에는 전혀 쓸모가 없었음.
4. 폭정은 폭정일뿐
- 독립선언서에 숨어 있는 진실은 식민지의 신흥세력들에게 영국을 격퇴하기 위한 지지가 필요했다는 것. 그와 동시에 그들은 재산과 권력에 관한 기존의 체제가 심하게 붕괴되지 않기를 바랐음. 사실상 독립을 이룬 사람들이 기존의 체제에 속해 있었기 때문.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사람들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식민지 관리로서 영국을 위해 봉사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서 증명됨.
5. 헌법제정의 감춰진 목적
- 건국의 아버지들은 과연 권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던 현명하고 공정한 사람들이었는가? 그들은 균형보다는 현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했음. 그들은 결코 노예와 주인, 부자와 빈자, 인디언과 백인사이의 균형을 원하지 않았음.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건국의 아버지들이 신경도 쓰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음. 그 보이지 않은 시민들은 초창기 미국의 여성들이었음.
6. 여성스러움에 반기를 들다
7. 인디언들과 함께 살수는 없다
- 앤드루 잭슨이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20년대 초중반, 남부의 인디언들과 백인들은 함께 정착하여 평화롭게 지내며 왕래도 빈번히 가졌음. 백인들이 인디언 마을에 방문하는 경우도 있었고, 인디언들이 백인들의 손님이 되기도 했음. 인디언들에게 강제이주를 종용하기 위해 가했던 압박은 철도와 도시를 원했던 정치가, 사업가, 부동산투자가, 그리고 인구성장의 이유로 이루어졌음.
8. 서부개척, 그들만의 승리
9. 노예해방의 날은 오는가
10. 또하나의 내전, 노사갈등
11. 부의 독점은 반란을 부르고
- 19세기 후반의 유력한 사업가들을 일컫는 말 가운데 강도남작이라는 말이 있음. 중세 귀족인 남작들처럼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었으며, 강도처럼 탐욕스럽고 부당한 방법을 이용하여 재물을 축적했기 때문에 불린 명칭임. 상품의 판매가격은 높에, 노동자들의 임금은 낮게 유지함으로써 경쟁자들을 물리쳐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과 세금을 만들어주는 정부의 도움을 받아, 그들은 산업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더 자신들의 제국을 키워갔음. 정부는 타당하게 행동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부자들의 이익을 위한 봉사단체나 마찬가지였음. 정부의 목적은 상층계급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평화롭게 조율하고, 하층계급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며, 경제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음.
12. 제국의 취향
13. 사회주의의 바람이 불다
14. 세계대전, 그 피의 대가는
15. 세계를 뒤덮은 대공황의 그림자
- 20년대는 광란의 20년대 또는 재즈시대라고도 함. 번영과 즐거움의 시대라는 뜻으로, 표현속에 진실이 존재하고 있음. 실업률은 감소했고, 일반적 노동자들의 임금수준도 올라갔음. 국민은 자동차나 라디오, 냉장고 같은 물건들도 구입할 수 있게 됨. 수백만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질적으로 향상됨. 그러나 대부분의 부는 사회라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자리한 소수의 수중에 있었음. 한편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는 흑인들, 변경에서 가난하게 사는 백인 소작농들 그리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거나 생필품 살 돈도 벌지 못하는 도시의 이민자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었음.
16. 조작된 냉전
- 전쟁이 끝났을 무렵 많은 사람들은 생활이 향상된 듯 했음. 전쟁으로 거대기업들은 막대한 이윤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익을 배분해 주었음. 농부들은 더 높은 농작물 가격을 일부 노동자들은 임금을 올려 받음. 국민이 반란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부유해졌음. 그야말로 정부에 의해 학습된 낡은 교훈, 즉 전쟁이 국가 통치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는 말이 딱 들어 맞았음. 이에 만족한 GE의 회장은 기업과 군부가 영구적인 전시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함.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음. 국민은 전쟁으로 지쳤지만 새로운 대통령 트루먼은 위기의 분위기를 조정하여 냉전을 구축함. 냉전의 시기동안 미국의 적은 공산주의 국가로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동지였던 소련이었음.
17. 흑인민권운동의 변화
18. 부끄러운 기억, 베트남 전쟁
- 52년도 미국 정부의 비밀문서에는 고무, 주석, 석유 등 동남아 자원의 중요성에 대해 보고되어 있었음. 베트남에 미국을 적대시하는 정부가 들어선다면 미국의 영향력과 이익에 해가 될 것임이 분명했음. 미국 국무부의 54년 문서에는 만에 하나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할 경우 미국은 이 지역의 접수여부에 대해 최대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음.
19. 여성과 인디언 그들이 변했다
20. 정부불신시대
- 대통력이 닉슨이건 포드이건 공화당원이건 민주당원이건 미국의 체제는 항상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방식으로 유지되었음. 백앙관에 대한 기업들의 영향력은 미국 정치체제의 한 단면이었고, 워터게이트 사건 후에도 달라지지 않음.
21.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는 영원하리라
-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는 비슷한 정책을 많이 썼음. 빈민들에 대한 혜택을 줄이고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해 주었으며, 군사예산을 높게 책정했음. 또한 두 행정부는 우파와 기득권 세력에 유리하게 법을 해석하는 보수 성향의 판사들로 연방의 법정을 채움. 예를 들어 레이건-부시 시절의 대법원은 사형제도를 부활시켰고, 공교육을 받는 빈민들에게도 비용을 부담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고 했음.
- 소련의 붕괴는 미국의 정치가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급작스러운 일이었음. 소련의 위험으로부터 미국을 지켜낸다는 명분 아래 전세계에서의 군사력 증강을 위한 예산으로 거두어들인 세금이 몇 조달러에 달하는 상태였음. 그런데 그 위협이 사라진 것임. 그야말로 미국이 새로운 대외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기회였음. 군사예산에 투입되었던 수천억 달러의 비용도 건설적인 일에 쓸 수 있게 되었음. 그러나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음. 미국의 지도층이 오랫동안 막대한 비용을 소비한 군사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면서 일종의 패닉현상이 일어남. 거대한 군사력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해 부시행정부는 4년동안 두차례의 전쟁을 일으킴.
22. 보고되지 않은 저항들
23. 20세기의 끝에서기로
- 다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클린턴 역시 사회를 변화시키기보다 자신의 지지표를 얻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그는 민주당을 더 중립적으로 만들었음. 쉽게 말하면 덜 진보적이고 더 보수적으로 만들었음. 그 과정에서 그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온 흑인,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그들의 지지를 잃지 않을 정도로만 일했음. 반면 복지사업을 감축하고 군대를 강화하는 정책을 택함으로써 보수적인 백인 유권자들의 표를 얻음.
- 빌 클린턴도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한 다른 권력자들과 마찬가지였음.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은 국민의 분노의 화살을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는 집단들에 돌렸음. 범죄자들, 이민자들, 생활보호 대상자들이나 이라크 쿠바처럼 미국에 적대적인 특정 정부들이 그러한 집단이었음. 이처럼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도록 국민들 조장함으로써 정치가들은 미국 체제의 실패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게 했음.
24. 증오는 반드시 되돌아온다
25. 이라크 전쟁과 두 폭풍
- 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미국은 중동지역의 석유를 손에 넣어야 한다고 결정. 대통력이 민주당원이건 공화당원이건 간에 석유는 미국의 중동관련 정책들을 결정짓는 요소였음. 진보적 민주당원이었던 카터 행정부도 카터 독트린을 발표했음. 카터 독트린은 미국에는 군사력을 비롯해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중동의 석유에 관련된 자국의 이익을 지켜낼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었음.
- 부시행정부는 국수주의적 성향을 강화하기 위해 매우 노력함. 우리가 아니면 그들이라는 이분법적인 그 성향은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냄. 이토록 강력한 국수주의적 성향의 한 가지 결과는 수백만 이민자들에 대한 분노의 물결이었음. 그러한 분노는 미국으로 밀입국한 멕시코 출신 사람들에게 집중됨. 그들이 마치 미국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것처럼 간주되었기 때문. 많은 연구결과 그들이 경제에 도움이 되었을 망정 방해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음에도 그들에 대한 편견은 사라지지 않음. 의회는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남부 국경에 750마일의 장벽을 세운다는 계획을 승인. 조국의 빈곤에 지쳐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멕시코인들을 차단하려는 조치였음. 미국 정부는 멕시코인들이 밀입국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장벽을 설치하려는 지역이 과거 1840년대에 멕시코로부터 강탈했던 곳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듯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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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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