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뇌

과학 2014. 12. 25. 10:16

 


스피노자의 뇌

저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 2007-05-07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기쁨, 슬픔, 질투, 두려움 등 우리 곁에 늘 존재하고 있는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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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느낌 속으로
- 스피노자는 "사랑이란 다름 아니라 외부의 원인에 대한 관념에 동반하는 즐거운 상태, 기쁨일 뿐이다"라고 했음. 그는 느낌이라는 절차를 정서의 원인이 되는 대상의 개념을 떠올리는 절차와 명확하게 구분했음. 기쁨과 기쁨을 일으키는 대상은 별개라는 것임. 물론 기쁨과 슬픔은 결국에는 그과 같은 느낌을 일으키는 대상과 함께 우리의 마음에 들어옴. 그러나 이들은 애초에, 우리 몸안에서 서로 분리되어 있는 작업이었음. 스피노자는 현대과학이 입중해낸 기능적 배열을 설명했음. 즉 살아 있는 생물은 서로 다른 사물과 사건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느낌의 패턴이 이 반응을 뒤따르고, 쾌락과 통증 및 그 변이체들이 느낌의 필수요소라는 것임. 스피노자는 또한 감정(affect)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해로운 감정(비합리적 정념)을 극복하는 것은 오로지 이보다 더 강력한 긍정적인 감정, 즉 이성이 촉발한 감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음. 감정은 오직 그보다 더 강력한 상반된 감정으로만 억제되거나 중화될 수 있음. 다시 말해서 스피노자는 부정적 정서와 싸울때 그보다 더욱 강한 정서, 이성과 지적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긍정적 정서를 가지고 맞서 싸우라고 우리에게 권고한 것임. 그의 생각의 핵심은 순수한 이성 자체가 아니라 이성으로 유도된 정서가 동반될 때 열정을 억누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임. 이것은 결코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님. 그러나 스피노자는 쉬운 것에는 별 가치를 두지 않았음.
2. 욕구와 정서
- 수많은 연기자들이 연기를 할 때 이른바 정서적 기억을 이용함. 어떤 경우에는 연기자는 공공연히 기억이 이끄는 대로 연기를 하고, 어떤 경우에는 기억이 그의 연기에 포착하기 어려운 형태로 스며들어서 그로 하여금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함. 무엇이든 세심하게 관찰했던 스피노자는 이점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음. 그는 "사람은 현재의 사물의 이미지만큼이나 과거나 미래의 사물의 이미지를 통해 쾌락과 고통의 감정을 느낀다."라고 에티카에 적고 있음.
- 정서적으로 유효한 자극은 매우 빠르게, 선택적인 주의력이 작용하기 전에 인지될 수 있음. 후두엽과 두정엽의 손상은 시각장애영역(자극이 무시되어 감지되지 않는 시각영역)을 발생시킴. 그런데 정서적으로 유효한 자극(예를 들어 화난 얼굴이나 행복한 얼굴)은 이 시각 장애 또는 무시의 벽을 뚫고 들어가서 인지됨. 정서촉발기구는 정상적인 감각처리통로(정상상태에서는 인지적 평가 절차를 이끌어내지만 시각적 장애 또는 무시현상 때문에 무력화된 통로)를 우회하기 때문에 이 자극을 포착할 수 있는 것임. 이 우회라는 생물학적 배치의 가치는 분명하게 드러남. 개인이 주의를 기울이든 기울이지 않든 간에 정서적으로 유효한 자극은 감지될 수 있음. 그리고 그 다음에 주의 또는 적절한 사고가 그 자극으로 유도될 수 있음.
-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정서가 일어난 후 느낌 및 관련된 생각에 자리를 내주는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기 때문에 이 현상의 적절한 순서를 분석하는 것이 어려움. 보통 정서의 원인이 되는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고, 그것이 정서를 유발하고, 느낌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정서와 관련된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이번에는 그 생각이 정서적 상태를 증폭시킴.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심지어 추가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독립적인 자극으로 작용하기도 함. 그리하여 진행중인 정서적 상태를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것임. 정서가 증폭되면 느낌도 증폭됨. 그리고 주의가 다른 곳으로 전환되거나 이성이 작용할 때까지 이 순환과정은 계속되는 것임. 이러한 일련이 현상들(정서를 유발하는 생각, 정서적 행동, 느낌이라는 마음의 현상, 느낌과 일치하는 생각)이 완전히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우리가 자기 관찰을 통해서 어떤 것이 먼저 나타나는지 알아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임.
- 진화는 정서와 느낌이라는 뇌기구를 순차적으로 조립한 듯함. 첫번째가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부딪혔을 때 그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반응을 만들어내는 기구, 즉 정서의 기구임. 두번째는 반응에 대한, 또는 반응의 결과인 생명체의 상태에 대한 뇌의 지도, 그리고 뒤를 이어 심상을 생성해 내는 기구, 즉 느낌이라는 기구임. 첫번째 도구인 정서는 생물로 하여금 삶에 이바지하거나 삶을 위협하는 수많은 상황돌(삶에 이로운 또는 삶에 해로운 상황, 그리고 삶에 이로운 또는 해로운 결과)에 대하여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별로 창의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대처하도록 함. 두번째 도구인 느낌은 이롭거나 해로운 상황에 대한 심적 경계를 발하고 주의 및 기억에 지속적인 영향을 줌으로써 정서의 영향을 연장시킴. 과거에 대한 기억, 상상, 추론 등의 풍요로운 조합 덕택에 느낌은 궁극적으로 통찰을 낳고 새롭고 독특한 반응을 만들어 낼 가능성에 도달하도록 함. 새로운 도구가 추가될 때 종종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연은 정서의 기구를 시작점으로 해서 몇몇 새로운 요소들을 땜질해 붙여 나갔음. 시작점은 정서임. 그런데 정서의 시작점은 행위(action)임.
3. 느낌
- 느낌은 신체의 특정 상태에 대한 지각인 동시에 사고의 특정방식, 그리고 특정 주제를 가진 생각에 대한 지각임.
- 느낌을 갖기 위한 조건
(1)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개체는 신체뿐만 아니라 신체 내부를 표상할 수단을 가진 생명체여야 함.
(2) 신경계는 신체 구조 및 신체의 상태를 지도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함. 또한 그 지도에 나타난 신경패턴을 심적 패턴 또는 심상으로 전환시킬 수 있어야 함. 이러한 절차가 없다면 신경계는 느낌의 기질인 신체변화의 지도를 작성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느낌이라고 하는 개념에는 도달할 수 없을 것임
(3) 전통적 의미에서의 느낌이 생겨나려면 느낌의 내용이 주체에게 알려져야 함. 다시 말해서 의식이 필요함
(4) 느낌의 첫번째 기능을 형성하는 뇌의 지도는 바로 이 뇌의 다른 부분의 명령에 따라 실행되는 신체상태의 패턴을 보여주는 것임. 다시 말해 느낌을 가진 생물의 뇌는 정서나 욕구를가지고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 반응하면서 그에 해당되는 느낌을 환기시키는 신체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임. 따라서 느낄 수 있는 생물의 뇌는 이중역할을 하는 셈. 신체지도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확실히 뇌가 필요함. 그런데 그 이전에 특정 정서적 신체상태, 궁극적으로 지도화되어 느낌을 생성할 신체상태를 명령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도 뇌가 필요함
- 진화과정에서 왜 느낌이라는 것이 생성되었을까? 느낌이 생겨난 것은 신체상태를 표상하는 뇌의 지도가 존재했기 때문. 이와 같은 지도가 생길 수 있었던 것은 뇌의 신체조절을 위해 신체상태의 지도가 필요했기 때문임. 신체조절이란 정서적 반응이 전개되기 동안에 신체상태에 수정을 가하는 것을 말함. 이것은 느낌이 단순히 신체, 그리고 신체를 표상할 수 있는 뇌의 존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생명 조절기구의 존재, 정서나 욕구와 같은 반응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의 존재에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 이와 같은 정서를 관장하는 뇌의 장치가 이미 존재하고 있지 않다면, 느낌에는 아무것도 흥미로울 것이 없음. 다시한번 강조하건대, 출발점에는 정서 및 정서를 떠받치고 있는 요소들이 있음. 느낌은 수동적 절차가 아님.
- 자연무통증 : 우리의 뇌가 통증을 느끼도록 하는 신체신호를 걸러낸다는 사실에서 거짓 신체지도의 좋은 예를 찾아볼 수 있음. 뇌는 중심적 신체지도에서 통증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활동패턴을 효과적으로 제거함. 이와 같은 거짓 표상이 진화과정에서 우세하게 된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음. 위험을 마주하고 도망치려고 할 때, 위험의 원인으로부터 비롯된 통증(예를 들어 맹수에게 물린 아픔)이나 도망치는 과정에서 비롯된 통증(예를 들어 격렬한 달리기 또는 장애물 때문에 다쳐서 생긴 아픔)을 느끼지 않는 쪽이 더 도움이 됨.
- 감정이입 : 뇌는 내부적으로 특정 정서적 신체상태를 모방할 수 있음. 공감이라는 정서를 감정이입이라는 느낌으로 전환시키는 절차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음. 예를 들어 누군가가 끔찍한 사고를 당해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해보자. 그 순간 여러분은 어쩌면 쿡쿡 쑤시는 아픔을 느낄지도 모름. 같은 종류의 느낌은 모방신체고리라고 불렀던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생성되는 것으로 추정됨. 이 메커니즘은 진행중인 신체지도의 신속한 변형을 구성하는 뇌의 내부자극과 관련되어 있음. 예를 들어 전전두엽/전운동(premotor) 피질과 같은특정 뇌의 영역이 뇌의 체성감각영역에 직접 신호를 보냄으로써 이와 같은 메커니즘이 이루어짐. 최근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신경세포의 존재와 그 위치가 확인되었음.
- 뇌의 우반구에 위치한 오른쪽 체성감각피질, 즉 뇌섬엽, SII, SI영역은 뇌가 가장 높은 수준의 통합된 신체상태지도를 완성하는 곳임. 이 영역이 없다면 뇌가 다른 신체상태를 효과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불가능함. 그런데 좌반구의 해당영역이 동일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생리학적 의미를 가짐. 왼쪽 체성 감각 복합체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감정이입 과제를 정상적으로 수행했음. 이것은 또한 오른쪽 체성감각 피질이 신체지도를 통합하는데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또하나의 발견임. 또한 이 영역의 손상이 일관적으로 정서 및 느낌의 결핍이나 질병인식 불능증(anosognosia : 신체의 결손을 자각하고 지각하는 능력이 결여된 상태. 일반적으로 뇌 우반구의 손상에 수반되는 증상으로 한쪽의 마비를 수반하지만 다른 뇌 병변에 따라서도 일어날 수 있음.)과 무시증후군(neglect : 기본적인 감각장애나 운동장애가 없는 상태에서 뇌 병변 반대쪽에 의미 있는 자극을 제시했을 때 이 자극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반응을 하지 않는 증상)과 같은 증상을 일으키는 이유임. 우뇌와 좌뇌의 체성감각피질의 기능이 불균형한 것은 왼쪽의 체성감각 피질이 언어기능에 주로 관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임.
- 화학물질이 체성감각 지도의 패턴을 변화시키는 방법에는 세가지 서로 다른 메커니즘이 있는데, 이들은 따로따로 또는 연합해서 효과를 발휘함. 첫째, 신체로부터의 신호전달에 개입. 둘째, 신체지도 내에 특정 활동유형을 만들어냄. 셋째, 신체 상태자체를 변화시킴. 약물의 교묘한 책략은 이 모든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
- 이완, 온기, 마비된 느낌, 마취된 듯한 기분, 통증이 없는 느낌, 오르가즘의 분출, 활력 등의 효과를 나타낸 각각의 약물이 화학적으로 서로 다르고 우리 뇌의 서로 다른 화학작용 시스템에 작용한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때, 각 약물의 효과들이 가장 큰 줄기라고 할 수 있는 핵심적 특징을 서로 공유한다는 사실이 훨씬 더 인상적임. 이 모든 물질은 체내에서 생성된 물질과 마찬가지로 뇌 기관을 점유함으로써 효과를 발휘함. 예를 들어 코카인과 암페타민은 도파민 시스템에 작용. 그런데 현재 유행하는 암페타민의 변종인 엑스터시는 세로토닌 시스템에 작용. 이전에 언급한 것처럼 헤로인과 다른 아편계 물질들은 뮤 및 델타 아편계 수용체에 작용함. 알콜은 GABA-A수용체와 NMDA글루타메이트 수용체를 통해서 작용함.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앞서 다양한 자연적 느낌에 대한 기능적 영상 연구에서 묘사되었던 체성감각 영역이 엑스터시, 헤로인, 코카인, 마리화나 등을 복용했거나 이러한 물질을 갈망할 때 비롯되는 느낌을 경험할 때 역시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임. 즉 대상피질이나 뇌섬엽이 주로 관여함. 이 서로 다른 물질들이 작용하는 수용체의 해부학적 분포 역시 서로 다르고 패턴 역시 각각의 약물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남. 그러나 약물들이 생성하는 느낌에는 서로 공통점이 있음. 아니, 상당히 유사함.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약물의 작용단계 중 어느 한단계에서 서로 다른 분자들이 서로 비슷한 체성감각영역의 활동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으로 보임. 다시 말해 느낌의 효과는 공유된 신경부위의 변화에 기인하며, 그러한 변화는 서로 다른 물질이 야기하는 서로 다른 일련의 시스템 변화 때문에 일어남. 분자와 수용체 수준에서의 이야기만으로는 그 효과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함.
- 느낌은 최적의 운영상태에서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정되는 절차속에 있는 생명상태의 복합적 표상에 기반을 두고 있음. 표상의 범위는 생명체의 수많은 구성요소들로부터 생명체 전체 수준에 이름. 느낌이 일어나는 방식은 다음 요소들과 관련이 있음
(1) 복잡한 뇌를 가진 다세포 생물의 생명절차의 상세한 설계
(2) 생명절차의 운영
(3) 특정 생명상태가 자동적으로 만들어내는 수정반응 및 생명체가 뇌 지도에 특정대상이나 상황이 나타날 경우에 보이는 획득된 반응
(4) 내부 또는 외부의 원인에 따라서 조절반응일 일어날 때 생명절차의 흐름이 더욱 효율적이고 방해받지 않으며, 쉽게 이루어지거나 그 반대의 상태가 된다는 사실
(5) 이와 같은 구조와 절차가 지도화되는 신경매개체의 특성
4. 느낌, 그 이후
- 생물의 내부를 탐색하는 심적 감지기이자 진행중인 생명활동을 증가하는 목격자라고 할 수 있음. 느낌은 또한 우리의 파수꾼이라고도 할 수 있음. 느낌은 덧없고 제한된 우리의 의식적 자아로 하여금 짧은 기간 동안의 우리 생명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도록 해줌. 느낌은 균형과 조화 또는 불균형과 부조화의 심적 현시(manifestation)임. 느낌은 바깥세상의 조화나 부조화를 나타낸다기 보다는 우리 몸 깊은 곳의 조화나 부조화를 나타냄. 기쁨과 슬픔 및 다른 감정들은 우리를 최적의 상태로 생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절차에서 갖게 되는, 우리 신체에 대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음. 약물이나 우울증 때문에 그 충실성이 훼손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기쁨과 슬픔은 생명절차의 상태를 드러내 줌.
- 정상적인 의사결정 잘차는 두가지 상호보완적 경로를 이용. 반응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한 경로는 상황자체, 선택가능한 행동, 그 행동이 가져올 미래의 결과와 관련된 이미지를 촉발함. 그러면 추론전략이 그 지식을 기반으로 해서 의사결정을 만들어냄. 다른 경로 역시 동시에 작동되면서 이전의 유사한 상황에서의 정서적 경험을 촉발시킴. 그러면 정서적으로 관련된 사실들이 은밀하게 또는 공개적으로 환기되고 이것은 표상되는 미래의 결과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거나 추론전략에 개입함으로써 의사결정 절차에 영향을 미침. 이따금씩 이 경로가 직접 결론에 이르도록 하기도 함. 직감 또는 육감이 즉각적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임. 각각의 경로가 따로따로 사용되거나 함께 사용되는 정도는 개인의 발달, 상황의 본질, 기타 여건에 따라 달라짐. 대니얼 카네먼과 아모스 트베스키가 70년대에 내놓은 흥미로운 의사결정 패턴은 아마 이 경로가 관여한 것으로 보임.
- 인간 이외의 종의 경우에도 역시 집단 내에서 협력하는 동물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동물도 있음. 이것은 정의로운 행동이 단지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반갑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름. 코페르니쿠스가 우리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윈이 실은 인간의 기원이 보잘것 없다고 말하고, 프로이트가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완전한 주인이 아니라고 말한 것으로 모자라다는 듯, 윤리의 세계에서마저도 우리의 선임자가 있어서 그들에게 물려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임. 그러나 인간의 윤리적 행동에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시켜 줄 복잡하고 정교한 특성이 있음. 윤리적 규칙은 그 규칙을 알고 있는 정상적인 개인들에게 적용되는 독특한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창조해 냈음. 규율을 성문화하는 것오 오로지 인간의 특성이고, 상황에 대한 맥락을 구성하는 것 역시 인간의 특성임. 우리는 인간조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우리에게 독특한 존엄성을 부여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우리 인간의 생물학적, 심리학적 구성의 일부는 인간 이전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깨달음을 받아들일 수 있음.
- 사회적 관습이나 윤리적 규칙은 부분적으로는 기본적인 항상성 기구가 사회 및 문화의 수준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음. 규칙의 적용으로 얻어지는 결과는 대사조절이나 욕구와 같은 기본적인 항상성 도구의 실행 결과와 같은 것, 즉 생존과 안녕을 보능하는 삶의 균형임. 그런데 확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음. 그것은 사회적 집단을 포함하는 더욱 광범위한 조직적 수준으로 확대됨. 민주국가를 통치하는 헌법, 그 헌법과 조화를 이루는 법률, 법률을 적용하는 사법체계 등이 모두 항상성 도구임. 이들은 이들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층의 항상성 조절 메커니즘, 즉 욕구/욕망, 정서/감정, 이 둘의 의식적 조절과 마치 탯줄로 연결되듯이 연결되어 있음. 20세기에 새로 만들어진, 아직 초보단계의 국제기구들, 예컨대 세계 보건기구, 유네스코, 욕을 먹고 있는 국제연합도 마찬가지임. 이 모든 제도와 기관들은 거시차원에서 항상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의 일부임. 그런데 이러한 수단은 때로는 좋은 결과를 성취하기도 하지만 이 국제기구들은 수많은 문제점에 봉착했음. 또한 각 기구의 정책은 새로 나타나는 과학적 증거를 도외시하면서 불완전한 인간관에 근거를 두고 있음. 그러나 비록 불완전하고 나약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존재는 진보의 표시이고 희망의 등불임.
5. 몸과 뇌, 마음
- 심신문제의 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하다못해 부분적이 해답이나마 얻기 위해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함. 그 답에 다가가기 위해서 마음이 협의의 몸 안에 존재하는 뇌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마음과 몸은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 이와 더불어 뇌의 매개로 마음은 뇌를 제외한 몸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진화과정에서 마음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이 그 몸의 유지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 그리고 마음은 몸의 다른 부분을 구성하는 살아 있는 조직과 같은 특성을 공유하는 생물학적 조직(신경세포)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함. 관점의 변화 그 자체가 문제의 해답을 가져다주지는 않음. 그러나 관점의 변화 없이는 결코 해답에 접근할 수 없을 것임.
- 뇌는 빈서판으로 출발하지 않음. 우리 존재가 탄생하는 그날부터 뇌에는 우리의 몸이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지, 즉 생명작용은 어떻게 운영되고 외부환경의 다양한 사건들은 어떻게 처리되어야 할지에 대한 지식이 스며들어 있음. 탄생시점부터 수많은 지도화가 일어나는 장소와 신경의 연결부위가 존재함. 예를 드어 우리는 갓 태어난 원숭이의 대뇌피질에 특정배열의 선들을 감지할 수 있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 간단히 말해 뇌는 처음부터 선천적인 지식과 자동화된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몸에 대한 수많은 관념이 미리 결정되어 있음. 그 결과로 몸에서 들어오는 많은 신호들이 과념이 되며, 그것이 뇌에 의해 매개되는 것임. 뇌는 몸이 어떤 상태를 취하고 어떤 방식으로 행동할지 명령을 내리고, 몸에 대한 관념은 그러한 몸의 상태나 행동방식에 기초를 두고 있음.
- 관념에 대한 관념이라는 개념은 여로모로 매우 중요함. 예를 들어 이 개념은 관계를 나타내고 기호를 창조할 수 있게 해 줌. 뿐만 아니라 자아에 대한 관념이 탄생할 길을 열어줌. 나는 가장 기본적인 종류의 자아는 바로 관념, 이차적 관념이라고 주장해 왔음. 왜 이차적 관념일까? 왜냐하면 이차적 관념은 두가지 일차적 관념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 그 두가지 일차적 관념중 하나는 우리가 지각하는 대상에 대한 관념이고, 또 하나는 그 대상에 대한 지각을 통해 변용되는 우리의 몸에 대한 관념임. 자아라는 이차적 관념은 이 두가지 다른 관념들, 즉 지각된 대상과 그 지각을 통해 변용된 몸간의 관계에 대한 관념임.
6. 스피노자를 방문하다
7. 거기 누구인가
- 스피노자의 시스템에도 신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 신은 인간의 형상을 한 선견지명을 가진 신이 아님. 스피노자의 신은 우리의 감각이 지각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며 스스로 존재하며 영원하고 무한한 실체임. 쉽게 말해서 그 신은 바로 자연이며 살아 있는 생물에 가장 명확하게 구현되어 있음. 이러한 개념은 종종 인용되는 스피노자의 경구 '신은 즉 자연'이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음. 스피노자의 신은 성경에 묘사된 방식으로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음. 또한 우리는 스피노자의 신에게 기도를 드릴 수 없음. 한편 우리는 스피노자의 신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음. 이 신은 결코 우리에게 벌을 내려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 또한 이 신에게 보상을 바라고 애를 쓸 필요도 없음. 아무것도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행동임. 만일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그것으로써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분이 여러분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셈이며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성취할 기회를 부정하는 셈임. 한편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그 순간 여러분은 내면의 평화와 행복에 도달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임. 따라서 우리는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신의 본성에 맞도록 행동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임. 우리가 신의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 결과로 일종의 행복을 얻을 것이며, 또한 일종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임. 자 이제 스피노자의 구원이라 다름 아니라 바로 그러한 행복이 쌓여서 이루어낸 건강한 마음의 상태임.
- 스피노자의 철학은 비록 그 시대에는 용인되지 못했지만 20세기에 들어서 다시 발견되고 다시 제기되었음.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은 인도신과 종교에 대해서 스피노자와 같은 생각을 품었음. 그는 순진한 사람들의 신은 사람들이 그의 보살피을 갈구하고 그의 벌을 두려워하는 존재라고 묘사했음. "신에 대한 감정은 아이가 아버지에게 갖는 것과 같은 느낌이 승화된 형태로서 비록 경외가 곁들여져 있다고 하나 어느정도 사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종교적 느낌(즉, 좀더 심오한 과학적 정신을 지닌 사람들의 종교적 느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함. "그러한 느낌은 탁월한 지성을 드러내는 자연법칙의 조화에 대한 환희에 찬 놀라움이라는 형태로 나타남. 그에 비하여 인간의 체계적 사고와 활동은 그저 자연법칙에 대한 보잘것 없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음."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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