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식 발전은 인류가 최초로 개발한 능동적인 전력 보관 방식 가운데 하나이며 오늘날에도 세계 잉여 전력의 대부분을 수용하고 있다. 초기에는 모터 펌프를 이용했으나 수력 발전에 쓰는 터빈을 거꾸로 돌려 물을 퍼 올리는 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경제 성과 효율성이 향상되었다. 
청평양수발전소는 두 개의 저수지를 활용하는 양수식 발 전소다. 두 저수지 중 아래쪽에 있는 청평호가 먼저 조성되었다. 청평호는 우리나라 각지에 군수공장과 발전소를 세워 아시아 침략의 발판으로 삼고자 했던 일제가 청평댐을 만들며 조성한 호수다. 일제가 물러가고 난 뒤에는 우리나라에서 요긴하게 사 용하고 있다.
청평호보다 고도가 높은 곳에 자리한 호명호는 청평호의 물을 퍼 올려 저장하는 저수지이고 청평양수발전소는 호명호의 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다. 어느 나라든 국민 대다수가 불을 끄고 잠에 드는 밤 시간이 되면 전력망에 전기가 남아돈다. 청평양수발전소는 이처럼 전력이 남는 시간대에 청평호의 물을 퍼 올려 호명호에 저장했다가 전력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 이 물로 발전을 한다.
- 물을 떨어뜨려 전기를 만들고 다시 전기를 이용해 물을 퍼 올린다고 하니 이 무슨 삽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양수식 발전 시스템은 인류가 엔트로피에 최초로 가한 의미 있고 강렬한 반격이었다. 물을 퍼 올리는 과정에서 엔트로 피에 갈취당하는 분량을 제외하더라도 80퍼센트가량의 전기를 높은 곳에 저장된 물의 형태로 재생할 수 있다.
- 현실에서도 IT 기업의 서버 시설은 충분한 예비 전력을 갖춤으로써 전력 교란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네이버, 구글, 페이스북은 24시간 가동되어야 마땅하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간을 서버에 할애해야 하므로 배터리에 투자할 공간은 많지 않다. 그래서 IT 서버 시설에서는 플라이휠을 전기 저장 장치로 활용하곤 한다.
플라이휠은 공기 저항이 없는 곳에서 최고의 성능을 발휘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진공 공간을 만드는 일은 또 다른 엔트 로피를 발생시키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천연의 진공 상태인 우 주 공간에서 플라이휠 저장 방식은 가장 효율 높은 전기 저장 방 식이 될 수 있다. 가뜩이나 비좁은 우주선에 크고 무거운 배터리 를 실으려면 설계 제작 및 발사 비용 부담도 상승하게 마련이다. 위성과 우주선에 전력 보관 장치를 실어야 하는 기술자들에게 플라이휠은 더없이 매력적인 옵션이다.
-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큰 온도차를 전기로 변환할 수 있다. 이를테면 뜨거운 물질과 차가운 물질을 물에 담그거나 가스에 노출시키면 물과 가스가 대류를 일으키므로 이를 이용해 발전기를 돌릴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돌아가는 엔진을 '열엔진'이라고 부른다. 지열 발전기 등에 활용되는 방식으로 발전 효율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온도차 저장 방식은 양수식 발전소를 세울 수 없는 환경에서 대량의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에 향후 많은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 납산 배터리 안에는 납과 이산화납이라는 두 가지 금속이 황산 용액에 담겨 있다. 이 상태에서 납과 이산화납을 전선으로 연결하면 납은 황산 용액과 반응해 황산납으로 바뀌면서 전자 두 개를 내놓는다. 반면에 이산화납은 납이 전선을 통해 보내주 는 두 개의 전자와 황산 용액의 도움으로 황산납이 된다. 우리는 이러한 전자의 흐름을 이용해 전조등을 켜거나 차의 시동을 걸 수 있다. 이 상태로 계속 전기를 사용하면 배터리 내부에서 전기 를 전혀 만들어 내지 못하는 완전 방전 상태가 된다.
반대로 배터리를 충전할 때는 양극과 음극을 바꿔서 전류 를 공급한다. 황산납이 되었던 납은 전자를 받아들여 다시 납이 되고, 마찬가지로 황산납이 되었던 이산화납은 전자를 잃고 이 산화납으로 돌아간다. 배터리에서 전기를 꺼내 쓸 때는 두 금속 과 전해질 용액의 화학반응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다가, 자동차 가 연료를 태워 전기를 만들 수 있을 때는 이를 이용해 배터리 내부의 화학적 조성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다.
납-산 배터리가 처음 개발된 것이 19세기 중반의 일인데, 그로부터 백 년이 지나도록 이보다 중요한 배터리 기술은 사실 상 개발되지 않았다. 배터리 기술은 우리 주변의 여러 가지 다른 기술들에 비해 굉장히 느리게 발전해온 셈이다. 납산 배터리의 납 황산 용액 - 이산화납' 조합과 같은 환상의 조합을 찾아낸다. 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랜 기술 정체를 깨부순 것은 1980년대에 개발된 리튬-이온 배터리였다. 납산 배터리보다 훨씬 가볍고 효율이 높고 방전율도 낮은 배터리가 개발되자, 특히 전자제품 회사들이 이를 크게 반겨 다방면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워드프로세서와 노트북, 휴대전화와 스마트폰 그리고 전기 자동차의 배터리로 쓰이며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기여한 존 구디너프, 스탠리 휘팅엄, 요시노 아키라는 2019년에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구성하는 환상의 조합은 '리튬코발트 산화물 리튬 소금 용액 - 흑연' 이다. 리튬코발트산화물과 흑연을 전선으로 연결하면 리튬코발트산화물은 리튬 이온을 소금 용액쪽으로 방출하고 전자를 전선으로 내보내며 코발트산화물이 된 다. 흑연은 전해질을 통해 리튬 이온을, 전선을 통해 전자를 받 아들여 리튬흑연으로 변한다. 반대로 전기를 공급해주면 이 과 정이 거꾸로 진행되며 배터리가 전기를 생산하는 능력을 회복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인간이 지금까지 개발한 전기 보관 장 치 가운데 부피 대비 가장 많은 양의 전기를 보관할 수 있는 장치 다. 최근에는 소금 용액 대신에 고체 세라믹을 전해질로 활용하 는 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배터리 성능이 더 향상되었다. 리튬-이 온 배터리는 국가, 지역사회, 회사, 건물주가 보유해온 전기 보관 능력을 개인의 손안에 쥐여주었다. 우리는 이제 리튬-이온 배터리 없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 연료전지는 앞서 살펴본 전기화학 배터리와 똑같은 원리로 전기를 만들기 때문에 전지(배터리)라고 부른다. 전기화학 배터 리의 경우처럼 납- 이산화납이나 리튬코발트산화물 흑연과 같은 고체 물질을 사용하는 대신에 기체인 수소-산소 조합을 활용한다.
배터리 용기에 수소와 산소를 일정량 담아놓고 그로부터 무한정 전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수소와 산소를 계속 연료로 공급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수소-산소 연료전지는 공해를 발생시키지 않고 높은 효율로 전기를 생산한다. 산소는 공기 중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공기를 빨아들이면 된다. 수소는 전기분해를 비롯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만들 수 있고 암모니아로 액화해 유통할 수도 있다. 
연료전지는 사실 배터리라기보다 직류발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발전기에 공급할 연료, 즉 수소를 만들고 저장하고 유통 하는 과정이 전기를 보관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 휴대용 CD 플레이어에는 한 가지 큰 단점이 있었 다.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가방에 세워 넣은 상태로 걸어가면 진동 때문에 음악이 곧잘 끊기곤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음 악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CD 플레이어를 손바닥 위에 수평으 로 올려놓은 채 걸어 다니는 것은 너무도 불편하고 멋없는, 당시 의 얼리 어댑터들로서는 기피하고 싶은 행동이었다. 곧이어 메 모리를 활용한 진동 방지 기능을 갖춘 CD 플레이어가 등장했지 만 이 역시 사용자가 보행 중일 때에는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 다. 이동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꿔준 워크맨이 CD를 도입함으로써 원래의 장점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이동과 음악의 결합은 MP3로 완성되었다. MP3 플 레이어가 처음 나왔을 무렵 사람들은 MP3의 압축 음질이 형편 없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MP3는 부피, 음원 가격(사 실 MP3의 등장 초기에는 제값을 주고 음원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 았다), 그리고 아무리 뛰고 굴러도 재생이 끊기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순식간에 CD를 대체했다. 초창기의 MP3 플레이어가 고 작 몇십 곡의 음악을 담는 것조차 버거워했다는 사실을 감안하 면, MP3 열풍은 사람들이 음악과 이동을 얼마나 밀접하게 결부 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 우주 공간에는 사람의 체온을 앗아갈 물도 없고 공 기도 없고 죽부인과 쿨매트도 없다. 극미량의 성간물질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진공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 열은 오로지 복 사의 형태로만 발산된다. 태양이 지구를 향해 복사열을 내뿜는 것처럼 사람도 우주 공간에 맨몸으로 노출되면 작고 귀여운 복 사체가 되어 복사열을 발산한다는 뜻이다.
열복사는 매우 더딘 과정이다. 보통 사람이 한 끼 식사를 한 다음 우주 공간에 맨몸으로 나간다면 자신의 몸이 만들어 내는 열량 때문에 더워서 견딜 수가 없게 된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뜨거운지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들이 인간으로 배터리를 만들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우리가 맨몸 으로 우주 공간에 나갔을 때 맞닥뜨리게 될 결과는 동사가 아니라 질식과 더위로 인한 죽음이다.
오늘날의 우주복에는 총 길이 100미터에 이르는 가느다란 관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이 관을 따라 물이 흐르며 우주인의 몸에서 강제로 체온을 빼앗아 간다. 우주 유영 시간은 백팩에 들 어 있는 산소의 양뿐만 아니라 우주복을 흐르는 물의 양과도 관련이 있다. 우주복의 물이 우리가 한 끼 든든히 먹고 내뿜는 열을 흡수해 더 이상 체온을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달궈지면 선외 활동을 중단하고 우주선으로 돌아와야 한다.
맨몸으로는 잠시도 살아 있을 수 없는 우주에서 우주복의 도움으로 유영을 하고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은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우리의 신체 능력을 한 층 더 향상시켜줄 새로운 외골격에 대한 꿈이었다.
- 기관 조직이 약해 기도가 짓눌리는 희귀 질환이 있다.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마는 무서운 병이다. 이 질환을 앓는 아이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필수 조건을 충족하는 기도 부목이 필요하다. 첫째로 아이의 목에 꼭 맞아야 하며, 둘째로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탄력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3D 프린팅은 사용자에게 꼭 맞는 물품을 제작하는 데 특화 된 기술이다. 3D 프린터를 활용하면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아이의 목에 정확히 들어맞는 기도 부목을 만들 수 있다.
- 기도 부목은 손상된 기도를 붙잡고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데, 계속 열려 있어도 문제가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목의 아랫 부분이 열려 기도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폴리카 프로락톤이라는 생소한 소재가 등장한다. 인체에 투입되고 3년 정도가 경과하면 몸 안에서 가수분해되어 사라지는 소재다.
이처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물품을 제작하는 3D 프린팅 기술을 4D 프린팅이라고 부른다. 3차원 물체를 만드는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네 번째 차원인 '시간'까지 고려한다는 뜻이다. 이는 3D 프린팅 기술과 소재 공학을 융합했을 때 비로소 실현 가능한 기술이다. 4D 프린팅이란 결국 3D 프린팅에 사용하는 소재가 시간 경과에 따라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고 통제하는 기술이다. 아이의 목을 3년간 지탱해주다가 자연히 녹아 흡수되는 기도 부목을 만드는 것이 좋은 예다.
4D 프린팅의 핵심은 다양한 외부 환경에 반응해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키는 각종 소재를 확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폴리 우레탄 계열의 TPU라는 소재는 일정 온도에 이르면 형상이 변 화하는 특성을 가졌다. 이처럼 온도뿐만 아니라 빛, 소리, 습도에 따른 소재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물을 잘 흡수해 쉽게 팽창하는 하이드로겔 소재 와 물을 잘 흡수하지 않는 고분자 화합물을 이용해 물체를 만들 수도 있다. 이 물체를 물에 집어넣으면 하이드로겔 소재 부분은 팽창하고 고분자 화합물 부분은 팽창하지 않기 때문에 물체의 모양이 변화한다. 이런 원리를 이용하면 평면 형태의 물체가 물이나 빛에 노출됐을 때 스스로 정육면체로 접히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전기 자극에 반응해서 크기가 커지거나 형태가 변하 는 물건을 만들 수도 있다.
- 1950년대에 레이저 이론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할 무렵 사람들은 이것이 미래의 야만인과 문명인을 가를 기술이 라고 생각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비롯한 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에서 앞다투어 레이저 무기와 병기를 다루었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레이저 기술로 문명과 야만을 나누 려는 정치 캠페인이 전개되기도 했다. 스타워즈 계획'이라는 이 름으로도 잘 알려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했던 전략방위구상이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은 반공을 모토로 정치 활동을 이어온 인물이었다. 그는 반전 평화 운동과 동서 냉전 완화의 흐름이 이어졌던 1970년대의 분위기를 뒤집어서 소련과의 대결 구도를 확고히 하고자 했다. 연일 소련의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발사 능력을 강조하며 미국이 이에 대항하는 방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레이 건은 대중의 마음을 설레게 할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소련에서 ICBM을 발사하면 정지궤도에 떠 있는 미국 인공위성에서 레이저 무기를 쏘아 이를 격추한다는 것이었다. 
이 환상적인 계획에 사람들은 마음을 빼앗겼다. 새로운 병기, 우주에서 내리꽂히는 죽음의 빛, 레이저가 적들의 미사일을 
무력화하고 세계가 미국의 놀라운 무기 앞에 입을 다물지 못할 터였다. 많은 이들이 정부가 발표한 스타워즈 계획을 통해 새로 운 구분 기준을 발견했다. 레이저를 가진 자가 문명인이고 미사 일을 쏘는 자는 야만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건의 전략방위구상은 미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허황된 정치 캠페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 다. 이런 구상을 발표하려면 적어도 기초가 되는 기술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하지만 1980년대 미국은 인공위성에서 미사일 요격 레이저를 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기는커녕 가까운 시일 내에 이를 개발할 가능성도 전무했다.
스타워즈 계획을 뒷받침할 기술 발전에 이렇다 할 진척을 보이지 않은 채로 1990년대에 동서 냉전이 종식됨에 따라 마침내 해당 계획 자체가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레이건은 스타워즈 계획을 전면에 내세워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고, 1970년대를 거쳐오며 침식된 미국의 자존심을 되살릴 수 있었다. 미국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을 구분하는 뚜렷한 기준선이었다.
- 항암 치료에서 중요시하는 방법은 화학 치료다. 화학 치료는 암세포에 잘 작용하는 화학물질을 환자의 몸속에 순환시켜 암세포를 격퇴하는 치료법이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물질은 대 부분 암세포뿐만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정상 세포 들 또한 무자비하게 학살하곤 한다. 화학물질을 아무리 잘 만든 다 해도 암세포 외의 세포들까지 손상시키고 마는 화학 치료의 부작용을 백 퍼센트 극복하기는 어렵다.
그런 와중에 나노 운반물질이 암세포를 포착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암세포 내부로 침투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 인한 연구자들은 환호했다. 나노 운반물질을 활용해 다른 세포에 해를 끼치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 박멸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나노 운반물질로 많이 쓰이는 것 가운데 나노 세라믹이 있다. 레이저를 이용해 세라믹을 가루로 만들면 나노 세라믹을 얻 을 수 있다. 나노 세라믹은 어지간해서는 구조가 무너지지 않고 의약물질 폭탄을 암세포 내부에 배달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우리 몸의 이상 세포를 찾아내는 나노 물질의 능력을 MRI 이미징에 응용하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MRI 영상기기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노 물질을 인체에 주입했다고 생각해보자. 이 상태에서 MRI를 찍으면 몸속 곳곳을 더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 막 싹을 틔우는 단계에 놓인 암세포들도 낱낱이 찾아낼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나노 물질의 착색 기능을 응용해 레이저로 암 을 치료할 수도 있다. 암세포 착색 능력이 뛰어난 금 등을 나노 입자로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다. 나노 물질을 몸 안에서 몇 시간 정도 순환시키고 나면 이들 나노 입자가 암세포를 찾아내 “요놈 이 암세포” 라는 컬러 그래피티를 남긴다. 이후 착색된 세포에만 작용하는 특정 파장의 레이저를 발사해 암세포를 박멸한다. 이와 같은 방식의 암 치료는 이미 임상 실험 단계에 올라 있다.
- 나노 물질은 아주 작고 반응성이 뛰어나 우리 몸의 세포와 다양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의약 물질로서 커다란 가능성을 갖는다. 하지만 우리 몸의 세포들과 활발히 반응한다는 바로 그 특성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나노 물질은 세포와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우리 몸속의 세포를 산화시킨다. 항산화로 노화와 질병을 막겠다며 온갖 식품과 영양 보 충제를 먹어봤자, 독성 연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나노 화 장품을 바르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나노 물질은 우리 몸의 세포들, 심지어 DNA에까지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물질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나노 물질이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부작용 중에는 섬유증이 있다. 섬유증은 폐나 심장근육에 섬유조직이 형성되는 질환으로 심근 경색과 폐부종, 골수섬유증 등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장기에 괴사를 일으킬 수도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의료 분야를 포함한 다른 여러 분야에서 나노 물질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나노 물질의 부작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내고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미 2000년대 중반에 나노 의약 물질이 개발되었음에도 불 구하고 우리가 아직까지 암을 포함한 모든 질병을 나노 물질로 치료하려 들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2016년에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박테리아가 발견되어 화제가된 바 있다.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라는 이름이 붙은 이 박테리아는 오직 페트병, 즉 PET 성분만을 먹고 산다. 2020년 우리나라에서는 이 박테리아에서 추출한 효소를 바탕으로 식물성 플랑크톤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를 바다에 방사하면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해양오염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우리는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와 똑같은 기능을 하는 나노 로봇을 만들 수도 있다. 이는 현재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분야다. 박테리아 기반의 분해 과정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처리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박테리아 로봇이 박테리아보다 더 효율적으로 플라스틱 쓰 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플라스틱을 먹어치우면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는 박테리아 로봇이든 먹은 만큼 칼로리를 만들어 낸다. 아무리 플라스틱이라 해도 먹은 건 먹은 거니까 말이다. 그런데 박테리아는 생명체이므로 이 칼로리로 생명 활동도 해야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죽게 마련이다. 하지 만 박테리아 로봇은 생존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오로지 인간 이 부여한 임무에만 종사하는 존재다. 
박테리아 로봇은 플라스틱을 먹고 만들어 낸 열량을 다시 플라스틱을 먹는 일에 쓴다. 오직 플라스틱을 분해하기 위해서 플라스틱을 먹는 플라스틱 킬러다. 맹목적으로 플라스틱을 먹어치우는 박테리아 로봇을 동원하면 폐수에 섞인 플라스틱도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고 바다를 오염시키는 플라스틱 쓰레기도 제거할 수 있다.
- 바람이 물체를 만나면 물체를 따라 흐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물체에서 떨어져 나가 제멋대로 흐르기도 한다. 이를 유동 박리라고 부른다. 선풍기를 돌릴 때 유동 박리를 최소화하면, 즉 바람이 선풍기 팬에 딱 붙어서 흐르도록 한다면 선풍기가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게 만들 수 있다. 바람과 물을 가르며 하늘과 바닷속을 나아가는 여러 동물들은 이런 유동 박리를 방지하는 고유한 기관들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동물이 바로 혹등고래다.
- 혹등고래는 등에 혹이 많이 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느러미 에도 혹이 나 있다. 이 혹들이 혹등고래가 수영할 때 지느러미 표면에서 발생하는 유동 박리를 막아주기에 그 거대한 몸집으 로도 효율적으로 바다를 누빌 수 있다. 1월에 남극에서 시작해 장장 3개월간 5000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지는 혹등고래의 계절 성 이주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류의 이주 가운데 최장 거리 를 자랑한다. 
서울대학교 최해천 교수 연구실에서는 혹등고래의 혹이 유동 박리를 막아준다는 점에 착안한 팬을 개발했다. 팬의 표면에 우둘투둘한 혹을 만들어 넣고 한 발 더 나아가 가리비 껍질 모양의 홈까지 새겨 넣음으로써 전기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 는 팬을 제작한 것이다. 상업용 건물뿐만 아니라 가정집에서도 에어컨과 선풍기를 돌릴 때 이런 팬을 사용한다면 엔트로피와 의 싸움에 일조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시의 숨통을 틔울 수 있다.
- 바위에 붙은 홍합을 자세히 관찰하면 바위와 접촉한 면적이 그리 넓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홍합은 바위에 달라붙기 전에 먼저 발로 바위 표면을 청소하고 약간의 진공 공간을 만든 다음 그 공간 내에 족사를 설치한다. 족사는 끄트머리에 생체 접착제를 분비하는 부위가 달린 일종의 실이다. 특수한 수산화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이 생체 접착 성분에 홍합의 접착력의 비밀이 숨어 있다.
- 물속에서도 강력한 접착력을 유지하는 특성 때문에 홍합의 생체 접착 성분은 수분이 많은 인체 곳곳에 다양하게 활용될 여지가 있다. 이를테면 망막박리 현상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접착제는 다음의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물속에서 접착력을 유지해야 하고, 접착력이 강해야 하며, 안구 내 독성 문제가 없어야 한다. 홍합의 생체 접착 성분은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만 족시킨다.
또한 홍합의 생체 접착 성분으로 수술 환부를 봉합하면 실 로 꿰매 봉합한 것에 비해 회복 속도가 빠르다. 접착제 자체가 생체 성분이기 때문에 환부를 봉합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인 체의 일부로 녹아들어 상처 부위의 자연 재생을 방해하지 않는 다. 게다가 혈소판을 뭉치게 해주는 역할도 수행하므로 지혈에도 효과적이다. 
거미 실크를 얻기 위해 염소의 유전자를 조작해야 했던 것 처럼 홍합의 생체 접착제를 얻는 일도 수월하지는 않다. 홍합에서 바로 추출할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와 같은 방식으로는 얻을 수 있는 양이 너무 적다. 홍합 접착 단백질 1그램을 얻으려면 홍합 1만 마리가 필요한데 그마저도 충분치 않다.
이에 포항공과대학교의 차형준 교수 팀은 미생물 배양 기 법을 통한 홍합 단백질 대량생산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홍합 접 착 단백질 유전자를 재설계한 뒤 미생물에 투입하면 미생물이 부역하면서 수많은 홍합 접착 단백질을 생성해 내는 방식이다.
- 미생물 배양 기법으로 생산한 홍합 접착제는 고농축 액상 형태를 취하고 있기에 물속에서도 안정적이다. 동일한 상처 부 위에 적용했을 때 수술용 봉합사보다 홍합 접착제를 사용한 쪽 의 회복이 더 빠르다. 겔 상태의 접착제에 빛을 쬐어주면 단백질 의 활동이 더욱 왕성해져서 보다 빠른 속도로 접합이 진행된다.
홍합 접착 단백질의 용도는 수술 시 봉합에 사용하는 것 외 에도 다양하다. 신경 손상을 치유하는 도관으로 쓰는 방법도 개 발되고 있다. 단백질을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실로 방사해 나노 섬유를 만들어 활용하는 것인데, 신경세포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면서 재생하면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만 자라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한편 혈액의 응고를 담당하는 혈소판과 혈장 단백질 용액에 홍합 접착 단백질을 떨어뜨리면 이내 서로 뭉친다는 점을 이용해 지혈제로도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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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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