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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저자
에릭 라이너트 지음
출판사
부키 | 2012-01-1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장하준 교수가 "경제학 부문에 인간문화재 제도가 있다면 그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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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 양극단은 저마다 경제적 동력의 부족을 정부나 대기업의 책임으로 돌리며, 유럽과 미국 모두에서 금융부문이 조종간을 쥐고 있음. 서구에서 자유시장에 대한 믿음은 밀항자와 함께, 원치 않는 손님과 함께 왔음. 자유시장에서는 금융부문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돈을 찍어내고, 그 돈을 서브프라임 대부업체 같은 대출받을 자격이 없는 개임과 그리스 같은 국가들에게 빌려줄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또 그런 불이행된 채무를 갚을 의무를 실물경제를 담당하는 납세자들에게 떠넘길수도 있음. 다른 말로 하면 자유시장은 금융부문이 실물경제의 암묵적 보장을 받으면서 폰지사기를 만들어내도록 허용해주는 시스템으로 정의할 수 있음. 금융부문은 보통 실물경제를 버텨주는 중요한 보조장치로 작용하나 여기서는 실물경제의 구매력에 기생하는 기생충이 됨.
- 일반적으로 수확제증은 불완전 경쟁과 짝을 이루는데, 사실 단위비용의 하락은 불완전 경쟁하에서 시장지배력이 생기는 한 요인임. 제품차별화의 어려움(자동차는 모델과 브랜드가 다양한 데 비해 밀은 그냥 밀일뿐)과 결합된 수확체감(어느수준 이상으로는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생산을 확대할 수 없음)이 원자재 상품생산에서 완전경쟁이 이루어지는 핵심요소임. 따라서 부국들의 수출은 좋은 효과(수확체증과 불완전 경쟁)를 얻는 데 비해, 빈국들의 전통적 수출은 그 반대인 나쁜 효과(수확체감과 완전경쟁)를 얻음.
- 수세기 동안 제조업이라는 용어는 기술변화와 수확체증, 불완전 경쟁의 총합과 동의어였음. 이런 제조업을 육성함으로써 여러나라는 경제활동에서 좋은 유형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림. 이것이 헨리7세 치세때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대륙과 미국을 거쳐 최근 한국과 대만이 거둔 성공의 유형임. 그러나 지난 몇십년 동안 서비스 산업은 갈수록 더 급격한 기술변화와 수확체증을 겪으면서 산업과 서비스업 사이의 구별이 불분명해짐. 또 대량생산되는 산업제품들이 과거에는 농업의 특징이었던 여러가지 1차상품의 속성을 지니게 됨.
- 유럽이 한발 앞서나가는데 기여한 요소가 여러가지 있음. 에너지자원(석탄)을 가졌다는 지리적 여건, 나중에는 식민지들로부터 나온 식량, 목재, 시장에 대한 가능성에 더하여 잔인함, 종교적 열정, 조직력, 복식부기와 같은 제도에서의 창의성, 지적 호기심 등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럽의 큰 다양성과 지리적, 기후적, 민족적, 정치적 분화가 낳은 여러 메커니즘임. 거대한 아시아 제국에는 없었던 이런 다양성과 분화는 계획이 필요한 시장에서 대안과 접근법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공동영역을 만들었고, 그것이 여러 나라들 사이에 모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경쟁의 출발점이 됨. 무엇보다도 유럽의 역사는 부로 나아가는 길에 가로놓인 지리적, 기후적, 문화적 장애물들을 경제정책이 어떻게 넘어섰는지에 관한 기록임.
- 유럽이 그처럼 고르게 부유해질 수 있었던 기본 전략은 계몽주의 경제학이 모방이라 부른 것, 그리고 모방을 위해 개발된 광범위한 도구상자였음.
- 현안에 대해 단순한 답을 원하는지 독자들은 마음을 정해야 한다. 다른 경제문제에서도 그렇지만 이점에서 독자들은 양손에 떡을 쥘 수는 없다. (슘페터)
- 1820년대 미국인들의 금언은 "영국인들이 말하는대로 행동하지 말고, 영국인들이 했던대로 행동하라"였는데 이는 현대에 오면 "미국인들이 말하는대로 행동하지 말고 미국인드리 했던대로 하라"라는 말로 바꿀수 있음. 부국들은 자기들은 한번도 따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 따르지 않을 이론을 빈국에게 강요하곤 함. 따라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파악하려면 고매한 이론의 배후를 보아야 함.
- 과거에 제조업 분야를 보호하던 기간은 현재의 부국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음. 이 기간의 교육적 효과는 독일어에서 사용하는 교육관세라는 용어에도 남아 있음. 영어로는 유치산업보호라는 것으로, 그 필요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임. 이 단계를 거친 나라와 거치지 않은 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함.
- 미국 독립전쟁 중에 국부론을 출간한 애덤 스미스는 미국이 제조업을 보호하려 드는 것은 중대한 실수라고 주장. 1776년에 일어난 미국 독립전쟁의 주 원인은 식민지배자가 늘 그랬듯이 영국이 (그들이 필요로 하던 타르와 돛대는 제외하고) 미국 식민지에서의 제조업을 금했기 때문.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바로 같은 책에서 무심결에 국내에 제조업을 가진 나라만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해버림. 미국 초대재무장관 해밀턴은 다행이 애덤 스미스를 읽었고, 아주 현명하게도 자유무역에 관한 그의 이론적 주장이 아니라 경험에 입각한 견해, 즉 제조업을 가지 나라만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미국의 산업과 상업정책을 입안했음.
- 물리학에 기반을 둔 경제학은 우리를 둘러싼 혼돈에 질서가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지만, 이런 피난처가 경제세계의 질적 측면에 대한 이해를 모두 포기하는 대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중요함. 물리학에 기초한 모델이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이 현실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모델임을 잊어버린다면 심각한 착오를 범할 수 있기 때문. 그런 예가 바로 충격요법의 형태로 세계화를 도입한 방식임. 뻔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요소와 가격이 균등화되는 대신에 수많은 나라가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요소가격 양극화를 겪게됨. 그 과정에서 수많은 나라가 더 가난해지는 동안 부국들은 더 부유해짐. 문제는 물리학에 기초한 모델이 발전에 관한 논의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부를 창출하는 요소, 현재의 부국들에게는 있지만 빈국들에게는 없는 바로 그런 요소가 배제된다는 사실임. 다시 말해 불완전 경쟁, 혁신, 경제부분들 간의 시너지, 규모와 범위의 경제학, 이런 요소를 창출하는 경제활동이 배제됨.
- 20세기 경제학 발전이 이룬 결과 하나는 시간(역사)과 공간(지리)이라는 중요한 차원이 사라졌다는 것. 경제학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과 갈등이 없는 동화의 세계, 자동적이고 무시간적인 조화의 세계, 참나무를 베어 넘기는 데 드는 시간과 그 나무가 거목으로 자라는 시간이 똑같다고 상정하는 세계가 되었음. 이런 고도의 추상화가 낳은 결과 중 하나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한 일들이 거듭 일어난다는 것. 그 한 예가 아시아 금융위기이며, 또 하나의 예가 일부 국가가 세계화 속에서 더 가난해지는 현상임.
- 경제학의 정확성은 일체의 분류학이 결여된 상태, 관찰가능한 차이를 관찰하고 분류하려는 체계적 시도가 없는 상태를 토대로 구축되었음. 예를 들어 수확체증과 수확체감같이 일단 하나 이상의 이론이 동시에 도입되고 나면 경제이론은 평등과 조화가 아니라 불평등과 부조화를 만들어냄.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했듯이 수학에는 자시지시적 경향이 있음. 아인슈타인도 수학을 사용하는 것에 관해 똑같이 회의적으로 말한 바 있음. "수학이 현실에 관해 발언할 때는 확실하지 않고, 확실한 언급일 때는 현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수학의 경우 현실과 관련해서는 내면을 바라보는 자폐적 관계를 형성함. 국제무역이론에서는 결론이 가정에서 곧바로 도출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음. 행위자와 투입물이 모두 동질적이고 상황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시스템은 반드시 동일한 결과를 낳게 마련.
- 세계에 대한 양적, 질적 이해는 상호 보완적임. 문제는 빈부로 양극화된 세계를 만들어내는 거의 모든 요인은 질적 차이를 이해해야만 다룰 수 있다는 점. 경제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쓰는 스와힐리어로 온갖 종류의 눈에 관한 논문을 쓰려고 할 때와 같은 식의 장애를 겪고 있음. 눈을 다룰 때에는 북극권에 사는 사미족이나 이누이트 족의 언어가 훨씬 좋은 소통매체가 아니겠는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맞서 싸우던 스콜라 학자들처럼 경제학자들은 비효율적인 언어를 골라 버렸음.
- 영국적 전통인 스미스의 A유형에서는 인간의 두뇌는 수동적 백지상태로서,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극대화하며 쾌락의 정도를 재는 기관을 내장하고 있다고 봄. 이같은 견해는 그에 상응하는 가치체계와 동기부여체계를 가진 쾌락주의적이고 교환에 의거한 경제로 이어짐. 그 경우 경제성장은 자본을 노동에 투여하는 기계적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됨. 대륙의 전통인 링컨의 B유형에서는 인간의 본질은 잠재적으로 능동적인 두뇌를 가진 고귀한 정신과 정해진 구도에 따라 자기 주의의 세계를 끊임없이 기록하고 분류하는 것으로 봄. 그렇게 되면 경제학은 교환보다는 생산에 더 집중하게 되고, 생산에서도 동화와 지식과 혁신의 확산에 치중. 대륙적 유형의 경제학을 움직이는 추진력은 자본 그 자체가 아니라 니체가 '인간 정신과 의지의 자본'이라 부른 것임. 첫번째 인간관은 간결하고 계산가능하며 수량화할 수 있는 정태적 경제이론을 만들어냈음. 두번째 인간관은 훨씬 더 복잡한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또 훨씬 더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이론을 필요로 하며, 그 핵심은 숫자와 기호로 환원될 수 없음. 한 유형의 이론에서는 통념이지만 다른 유형에서는 완전히 다른 각도로 보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함. 제레미 벤담에게 호기심은 나쁜 습관이었지만 베블런에게는 게으른 호기심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사회가 지식을 축적한다고 보는 것처럼 말이다.
- 맬더스와 그의 친구 리카도가 수확체감을 경제학의 핵심특징으로 다시 소개하면서 수확체증과 혁신을 모두 버린 덕분에 부를 시너지, 수확체증, 혁신의 합동산물로 이해하던 예전의 분위기가 사라지는 극적인 결과를 낳음. 수확체감을 강조하다보니 리카도의 경제학에는 우울한 학문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그 무역이론은 지금 이순간까지도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 및 빈국을 계속 빈곤상태에 붙들어두는 메커니즘의 핵심이 되었음. 그와 함께 계몽주의 과학의 중요한 특징도 사라짐. 분류체계나 분류학의 산물을 통해 이해하던 사고방식이 사라진 것임.
- 1485년 이후 영국은 천연자원이 빈약한 유럽 도시국가들이 만들어낸 삼중지대 구조를 모방. 매우 강압적인 경제개입을 통해 영국은 그 자체의 삼중지대 시스템, 즉 제조업, 원거리 무역, 양모를 토대로 하는 원재자라는 삼중지대를 만들어냄. 영국의 성공은 결국 도시국가의 해체와 국민국가의 성장으로 이어짐. 도시국가에서 발휘되었던 시너지는 더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었으며, 이것이 유럽에서 중상주의적 계획의 본질이 됨.
- 애덤 스미스 이전에는 경제발전이 집단적 지대추구를 토대로 하며, 도시에만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진 수확체증과 혁신, 노동분업이 일으키는 시너질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음. 이런 인식은 오늘날 일반적인 경제학 교과서가 주장하는 원리와는 정반대임. 리카도가 글을 쓴 이후 1817년 영국의 산업화가 절정에 이른 다음에도 이런 패턴은 언제나 똑같았음. 부국들은 이렇듯 자국을 부자로 만들어 준 바로 그 요소들이 없다고 가정하는 이론을 토대로 빈국들을 계속 빈곤하게 만들고 있음. 1485년 이후에 부유해진 나라들은 모두 리카도의 경제이론에 저항했기 때문에 부유해진 것임.
- 베네치아와 네덜란드가 따라야 할 모범으로 여겨진 것처럼 16세기의 스페인은 점차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하지 말아야 할 경제정책을 택한 사례이자, 한나라가 반드시 피해야 하는 경제적 영향을 준 사례로 받아들여짐. 식민지에서 나오는 부가 사실상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스페인의 능력을 오히려 피폐하게 만들었기 때문. 1485년 헨리 7세가 즉위한 이후 제조업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권장했던 영국과는 반대로 스페인은 올리브유와 포도주 같은 농업생산을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보호. 이로 인해 16세기가 끝날무렵 한때 상당한 산업생산력을 보유했던 스페인은 심각하게 탈산업화되어 있었음. 당시 관찰자들은 스페인으로 흘러들어간 금은과 같은 엄청난 부가 고스란이 도로 흘러나와서 두군데로 모이는 것을 목격함. 그곳은 바로 베네치아와 네덜란드였음.
- 15세기 무렵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화가들은 캔버스천에 그리는 유화의 개척자였음. 이에 비해 이탈리아 화가들은 석회를 갓 바른 벽에다 수채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 화법을 사용하고 있었음. 이는 네덜란드 화가들이 해군과 승조원들로부터 나무를 가공하고 돛을 만드는데 쓰던 아마씨유와 아마천, 대마 범포천을 얻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음. 1600년대에 들어 델프트는 피렌체를 밀어내고 유럽최고 수준의 과학용 유리를 만드는 도시가 됨. 손으로 드는 확대경은 원래 직물산업에서 쓰기 위한 것이었는데, 렌즈 제조업자들은 다른 용도도 찾아냄. 해군은 쌍안경과 망원경을 필요로 했으며, 일부 렌즈제조업자들은 현미경을 만들기 시작. 이런 현미경 제작자들은 스스로 과학자가 되어 현미경으로 발견한 새로운 세계를 묘사. 델프트의 위대한 현미경 제작자이자 화학자 레벤 후크는 유리렌즈를 중심으로 집결된 직물산업과 현미경제작, 자연과학 간의 시너지를 창출
- 최근에 실제로 벌어졌던 수확체감의 극단적 사례가 르완다와 몽골임. 몽골에서는 90년대 초반에 자유무역의 충격이 가해진 뒤 거의 모든 산업이 사라짐. 비대칭적인 조건의 세계화, 즉 일부국가는 수확체증 활동을 전담하고 다른 국가는 수확체감활동을 맡는 상황에서 수확체감의 경제활동을 하는 국가는 쉽사리 빈곤을 특화하는 상황에 빠짐.
- 멕시코의 미국과의 국경 근처에서 행해지는 마킬라 산업(보세 임가공)이 멕시코의 전통산업을 희생시키면서 성장하고 있지만 마킬라이기때문에 임금수준은 전통산업보다 낮음. 농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마킬라 효과가 있음. 기계화가 가능한(밀과 귀리 수확) 생산공정은 미국이 맡는 반면 멕시코는 (딸기나 시트론, 오이, 토마토 등을 수확하는) 기계화할 수 없는 부분을 전문화. 이로 인해 멕시코는 기술혁신을 할 기회가 줄어들고 기술적으로 막다른 길, 또는 노동집약적 과정에 머무르는 생산활동으로 내몰림.
- 미국의 국가적 스포츠인 야구공을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들은 아이티, 온두라스, 코스타리카에 있음. 야구공은 처음 발명되었을 때나 지금이나 일일이 손으로 꿰매어야 함. 미국의 엔지니어와 자본이 모두 달려들었지만 아직 야구공 제작을 기계화하지 못했음.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야구공 제작자의 임금은 비참한 수준임. 아이티에서는 시간당 30센트 가량의 임금을 받는데, 90년대 중반에는 시간당 14센트인 곳도 있었음.
- 골프공 생산에는 연구와 기술개발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며, 이 지역의 높은 임금수준에도 불구하고 골프공 가격중에서 직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제작 단가의 15%에 불과. 정유공장에서와 같이 직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인건비가 전체 생산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숙련된 노동력과 엔지니어, 전문 공급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골프공 생산은 아이티와 같은 저임금 지역으로 옮겨가지 않음. 이처럼 야구공과 골프공 제조업이라는 두 산업에서 볼 수 있는 임금격차는 불균등한 기술발전에 따른 직접적 결과임. 아이티의 빈곤과 미국의 부는 두 나라 모두에게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원인인 동시에 결과임.
- 80년대 미국에서 판매되는 파자마 한 벌에는 다음과 같은 제품정보가 붙어 있었음. "미국산 직물, 과테말라에서 재단과 봉제" 섬유사업은 고도로 기계화되었으므로 옷감은 미국에서 생산됨. 그에 비해 옷감의 재단은 기계가 하는 일이지만 균일한 크기의 품질을 보장하려면 작업단위가 세분되어야 함. 그래서 재봉틀로 파자마를 박아내는 값싼 노동력이 재단도 담당했던 것. 그러나 90년대 언젠가부터 파자마에 새로운 라벨이 붙기 시작. "미국에서 생산되고 재단된 직물. 과테말라에서 봉재" 새로운 레이저 기술이 개발되어 많은 분랴으이 재단도 기계로 매우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값싼 노동력이 불필요해짐. 따라서 직물을 재단하는 일이 다시 미국으로 갈 수 있게 됨.
- 시장은 그냥 내버려두면 여러 국가간에 이미 존재하는 임금격차를 없애기보다는 더 넓히는 경향이 있음. 시장의 마법은 부국과 빈국간에 존재하는 비대칭적 경향을 더 심화시키기 때문.
- 과학은 더 엄밀할수록 더 과학적이 됨. 경제학은 사회학과 같은 말랑말랑한 사회과학과 거리를 두면서, 물리학 같은 더 엄밀한 과학을 뜰어들여 더 특권적 학문이 됨.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사용한 것은 물리학이 30년대에 이미 내다버린 균형상태 모델이었음. 경제학자들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론적 모델과 현실세계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일반상식과 명백하게 어듯나는 모델에 대한 수정능력을 상실해 버린 것. 이런 변화의 제물이 된 것은 경제학자들에게 정치적 위협이 되지 못하는 먼 나라와 그곳 주민들이었음.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정치가들이 자국의 이익에 위배되면 그 이론이 채택되지 못하도록 조치하기 때문. 실용주의는 국내용이고 고매한 일은 대외용이었음.
- 동아시아의 경제통합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러기 편대 원리를 따른 반면 미국과 그 남쪽 인접국 간의 경제관계는 대부분 막다른 길 원리를 특징으로 함.
- 우리는 수확체감으로 고통받으면서 농업이외 부문의 고용기회가 부족한 사태와 인종학살간의 관련성 같은 예전에는 아주 명백하던 사실에 대해 더 이상 알아보려 하지 않음. 르완다의 농업은 물론 그다지 효율성이 높지 않지만 국가경제를 다각화하지 않은 채 농업만 더 효율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역사의 교훈을 모두 거스르는 일임. 농업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제조업뿐임. 실제로 실패한 나라들은 모두 식량공급문제를 자주 겪으며 산업이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음. 한때 경제학자들은 그런 구조적 관련성을 알고 있었음. 지금은 실패한 국가와 기근을 경제구조와는 분리된 전혀 상관없는 두 현상인 것처럼 연구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동일한 기본문제들이 초래한 서로 연결된 결과임. 결국 세계 공동체는 세계의 비참한 상황과 빈곤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징후를 치료하는 방법만 찾고 있는 것임.
- 인종학살이 벌어지기 전 르완다에서는 1인당 식량생산량이 감소했음. 생산량 감소는 수확체감과 가뭄, 토양의 남작 때문이며 그것은 또 대규모의 산림벌채로 이어짐. 결국 토지가 없고 굶주린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절도와 폭력의 수위가 급격히 높아짐. 학살결정은 물론 정치가들이 정치적 이유에서 내렸음. 하지만 평범한 농민들이 왜 그토록 철저하게 살인을 자행했는가에 대한 이유 가운데 최소한 일부는 너무 좁은 땅에 인구가 너무 많다는 느낌, 수가 줄어들면 살아남는 자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느낌 때문이었음.
- 남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처럼 페루도 2차대전이 끝난 뒤 야심찬 산업화 프로그램에 착수. 수입되는 공산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통해 수많은 공장을 세웠고, 다양한 일자리가 생겨 임금수준이 점차 상승(도표 14). 본래 그 전략은 1485년 헨리7세가 영국에서 시작한 것이었고, 모든 산업국가가 거쳐온 정책과 다를 바 없음. 그러나 70년대가 끝날무렵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개도국을 대상으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시작. 페루는 강제로 경제를 개방해야 했고 산업체들이 사라짐. 그리고 전국적으로 임금수준은 급격히 떨어짐.
- 임금이 하락하면 금융과 보험 및 부동산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아짐. 그 결과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하락하는 정도는 국내총생산에서 나타나는 수치보다 훨씬 더 심각함.
- 동일한 나라에서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일 때 악명높게 비효율적이던 산업에서도 오늘날 자본주의가 이룬 것보다는 대개는 훨씬 더 높은 생활수준을 달성했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임. 심지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나라로 드는 에스토이나가 05년 유럽연합에 가입했을 때 휴대전화를 만드는 노동자는 시간당 1유로의 임금을 받았는데, 이는 프랑크푸르트와 파리의 거리청소부가 받는 임금의 10%에도 미치지 못함. 세계화 이론과 똑같은 경제이론을 채택한 유럽은 세계경제에 존재하는 것과 비슷하 역내갈등을 유발한 것임.
- 리넨이나 모직을 짜는 일, 양모빗질이나 실잣기, 무쇠나 쇠막대기를 만드는 단계 이상의 제철 작업장에서는 흑인이 일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또 모자, 스토킹, 가죽류 등을 만드는 작업장에서도 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흑인들이 정말로 공장을 세운 뒤에는 정부가 발전을 저지해야 할 일이 생길 터인데, 지금처럼 손쉽게 금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조슈아 지, 대영제국의 무역과 항해에 대해, 1729)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인용문은 슬프지만 몇 백년 동안 시행된 경제정책의 단면을 보여주는 말임. 그러나 이는 특정한 경제정책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유럽이 근대초기 경제적으로 급성장할 때 추구한 정책 그 자체를 드러낸 말임
- 바넥 라이너트 효과. 이는 자유무역을 곧바로 시행하면 그로 인해 가장 뒤처진 국가의 가장 선진적인 경제부문이 가장 먼저 사라지는 현상을 가리킴. 수확체증을 토대로 한 선순환이 역방향으로 돌아가면 세계의 주변부는 탈산업화와 농업의 피폐, 인구감소를 연속적으로 겪음. 이는 오늘날 남부 멕시코와 몰도바 등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임. 이런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수확체증에 속한 경제활동이 지배하는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뿐임.
- 91년 개혁이 일어나기 전 50년 동안 몽골은 다양한 산업을 느리지만 성공적으로 구축해 오고 있었음. 국가총생산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40년 60%에서 80년대 중반 16%로 낮아짐. 하지만 사실상 모겐소 플랜과 다를 바 없는 경제개혁은 몽골을 매우 성공적으로 탈산업화해버림. 반세기에 걸쳐 건설된 몽골의 산업은 91년에서 95년까지 고작 4년만에 사실상 전멸. 91년에 이 나라가 세계에 개방된 뒤 하룻밤 사이에 거의 모든 산업에서 생산물량의 90%가 감소함. 탈산업화와 국가해체가 합쳐지자 몽골에서는 대규모 실업이 발생함. 수많은 사람들이 선조들의 생활방식인 유목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음.
- 아웃소싱을 통해 국제적 가치사슬이 끊어지면 최선진국은 자본집약적, 혁신집약적 제품생산을 특화하는데, 그런 부문에서는 규모와 수확체증이 결정적 요소임. 후진국은 조립단계에서 규모효과를 박탈당하여 열등한 기술로도 가능한 마킬라 제품생산에 특화하게 됨. 이 때문에 자유무역은 국부라는 기준에서 볼 때 흔히 기여보다는 피해를 더 많이 끼침. 예를 들어 멕시코에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 합의로 전통적인 완제품 산업이 초토화되고 단순조립 생산만 늘어나면서 실질임금이 급격히 낮아짐.
- 아시아와 유럽에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막는 방어선을 구축할 필요가 대두되었을 때 미국은 부를 창출하는 길은 공산주의와 접경에 있는 노르웨이, 독일, 한국, 일본 같은 나라들을 산업화하고 이들을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힘껏 지원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음. 그러나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라지자 선진국들은 빈국들에게 서둘러 지금까지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정책, 즉 영국의 옛 식민주의 정책 중에서도 최악이라 할 만한 것과 유사한 정책을 시행. 미국이 산업화된 것도, 또 2차대전 중 루즈벨트가 도덕적 권위를 등에 없고 처칠과 그의 식민정책에 맞섰던 것도 바로 이런 미성숙한 자유무역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서임.
- 국제무역이론의 도구상자에는 경제활동들 사이의 질적 차이를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음. 구두닦이와 주식거래인 사이의 소득격차가 두 직업의 내적 차이에서 생긴 직접적 결과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금지당했으니 경제학자들은 주원인에서 파생되는 부차적 결과르 설명하게 됨. 빈곤층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거나(구두닦이나 접시닦이가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교육에 효과적으로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무시), 저축을 별로 하지 못했다거나(낮은 소득 탓에 저축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무시), 도는 빈곤층의 혁신이 부족하다는(구두닦이에서는 혁신할 여지가 다른 분야보다 적다는 사실을 무시)식임. 개인도 마찬가지이지만 한 국가는 직업을 바꾸지 않고서는 그런 악순환을 끊을수 없는데, 1820년경 미국 경제학자들에게 이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었음. 국가의 경우 그것은 한세기 동안 미국 제조업 시스템이라 일컬어져 온 산업화 프로젝트를 뜻함. 그러나 과거의 성공전략에 대해 무지한 경제학 전문가들은 현재 빈곤의 근본원인 보다는 그 징후만 집중 공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줌.
- 다른 여러나라에서도 그랬지만 페루와 몽골에서는 비효율적이나마 수입대체산업이 있던 시절에 실지임금이 가장 높았음. 주류경제학이 보지 못했던 것은 이런 비효율적 산업이 실제로 항구, 공항, 도로, 발전소, 학교, 병원, 서비스 산업을 만들어냈으며, 이런 산업에서 비롯된 노동력과 기간시설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실질임금이 높았다는사실. 이것은 대체로 1485년 이후의 영국이,1650년 이후의 독일이, 1820년 이후의 미국이, 1960년 이후의 한국이 만들어낸 것과 다르지 않음. 이런 나라들은 모두 당시에는 비효율적인 국가적 산업을 창출하여 부를 쌓기 시작. 이처럼 국가적 효율성이 달성되기 까지는 예비단계가 필요한데, 편협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면 이를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이라 여길수도 있음. 하지만 이것은 현재의 모든 부국이 꼭 거쳐야 했던 통과의례였고, 지금은 워싱턴 기관들에 의해 불법이 된 전략임.
- 케인즈는 예전에 "상황이 악화될수록 자유방임은 할 일이 줄어든다"라고 했음. 완전경쟁을 포기하면 일부 연고자들을 더 살찌울 것이라는 이유로 산업정책을 쓰지 말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자본주의의 본성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임. 자본주의는 결국에는 완전경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기 때문. 좋은 비즈니스 스쿨에서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학자들이 흔히 가정하는 완전경쟁의 상황을 모면하는 방법임
- 경제발전은 지대를 창출하여 균형을 깨뜨리는 구조변화 때문에 일어남. 지대가 없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고정적이고 정지된 상태를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임. 링컨은 철강산업의 연줄을 보호했음. 철강가격을 조금 더 높게 지불함으로써 미국은 거대한 철강산업을 구축했고, 그 산업은 고임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정부의 과세기반을 넓힘
- 1613년 나온 저작에서 세라는 한 장 전체를 경제정책에 할애하면서 상이한 산업에 상이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 정책수립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시적으로 묘사. "마치 태양이 진흙은 굳히지만 밀납은 녹이는 것처럼, 똑같은 호루라기로 말은 안정시킬 수 있지만 개는 날뛰게 만드는 것처럼" 중립적인 정책이란 없음.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기술정책을 인정할수는 있음. 하지만 그런 정책은 연구개발을 통해 혁신을 이룩한 나라의 제약업에는 보탬이 되겠지만, 자체적인 연구개발을 하지 못하고 기계 제작자들의 연구개발과 제휴하여 새 기계를 구매함으로써 혁신을 달성한 인쇄업에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음.
- 오늘날 제3세계의 문제는 30년대 미국과 유럽이 직면했던 상황과 매우 비슷. 대량실업과 불완전 고용 및 저소비에 따라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중단되어 버린 기술경제 패러다임이 그것임. 슘페터는 30년대의 문제를 시의적절한 혁신의 클러스터를 토대로 하여 설명할 수 있었고, 케인스는 적자소비라는 해결책을 제시. 그에 비해 오늘날 우리는 밀레니엄 목표를 통해 30년대 매우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노숙자 쉼터와 공짜 식사제공 같은) 해결책을 제3세계 문제에 대한 영구적 해법으로 삼고 있음. 제3세계 문제의 영구적 해결책은 지금도 슘페터와 케인스의 이론안에 있음. 중앙아메리카의 마킬라 기업에서 아프리카 성장 기회법에 따라 고용된 우간다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제3세계는 기술적으로 막다른 제품생산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국가의 생산시스템에 슘페터식 경쟁을 도입해야 함. 슘페터식 효과를 국경너머로 퍼뜨리려면 세계화가 없애버린 과거의 정책을 되살려 내야 함. 빈국들이 오직 소비자로소만 기술발전에 참여한다면 그들의 임금수준과 구매력은 높아질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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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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