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음모 하

경제 2014. 10. 29. 22:45

 


자원음모(하)

저자
리우쑤샤 지음
출판사
책속의 책 | 2014-04-1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자원고갈에 대한 경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중동,...
가격비교

- 감자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90리터가 필요.
  보리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1300리터가 필요.
  쌀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3400리터가 필요
  치즈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5000리터가 필요
  볶은 커피 원두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21000리터가 필요
  소고기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15000리터가 필요
  젖소에서 우유 1리터를 짜내려면 물 1000리터가 필요
  맥주 500밀리리터를 만들려면 물 150리터가 필요
- 고기와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이라면 매일 소비하는 수자원은 대체로 자신의 몸무게의 100배가 됨. 한사람이 일년동안 먹을 음식으로 제공될 농작물에는 대략 1500~2000톤의 물이 필요함
- 65년 아랍국가는 요르단 강을 차지할 목적으로 시리아에 차단설비를 세움. 하류에 위치한 국가인 이스라엘은 생활용수 40%를 요르단 강에서 얻고 있어 당연히 중요한 수원지안 요르단 강을 잃을 수 없는 입장이었음. 만약 차단된다면 이스라엘은 원래 부족한 물이 더 줄어들고 농공업에도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게 분명. 이스라엘은 즉시 폭격기를 보내 시리아의 하천차단설비를 폭격. 이것은 3차 중동전쟁의 도화선이 됨. 전쟁에서 아랍과 이스라엘은 적에게 타격을 입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용수시설을 파괴. 그들은 수원지 확보를 전쟁의 중요 목표로 삼음.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점령했고, 요르단 강의 수로 전부를 장악. 골란공원은 중동지역에서 물의 탑으로 불리는 곳으로, 요르단 강의 발원지이기도 함. 물이 중동지역에서 갖는 의미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골란고원은 양측이 가장 먼저 확보해야할 전략 요충지였음. 전쟁이 끝난후 골란고원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협상에서 주요의제로 다루어졌음. 물의 분배문제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이스라엘은 그 전략요충지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었음. 또한 이스라엘은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의 지하수층이 이 자역 주민들의 주요 식수원이었음에도 줄곧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새로 우물을 파는 것을 금지. 이스라엘은 지하수 80%를 뽑아 유대인 거주지에 사는 주민들에게 공급했음. 이 지역 일대 이스라엘 주민 5000명은 매일 1만 7000세제곱미터의 물을 쓸수 있었음. 하지만 40만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일 고작 7000세제곱미터의 물을 쓸수 있을 뿐이었음. 게다가 이스라엘 사람보다 두배로 비싼 값을 치르고 이스라엘 상수도 회사에서 사와야 했음. 물의 분배가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더욱 고조되었고, 요르단강 서안지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는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됨
- 90년대 말 동남아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해 급성장을 거듭. 동남아 국가들이 이렇게 도약하고 있을 때 주변 여러나라들의 불만이 쌓여 갔음. 경제가 발전하면서 동남아 국가들이 체질변화를 일으켰기 때문. 과거 동남아 국가들은 대부분 자원수출형 경제구조를 갖고 있었음. 하지만 90년대말, 그들은 점점 자원수입형 국가로 탈바꿈했음. 즉, 과거 동남아 국가는 몇몇 나라들에 먹거리를 제공했는데, 90년대말부터는 그 몇몇 나라로부터 먹거리를 가져오기 시작한 것. 동남아의 이런 변화는 즉각 후진국의 자원을 약탈하는 데 길들여진 선진국의 불만을 불러일으킴. 특히 미국은 동남아 국가의 급성장에 마음이 편치 않았음.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력 향상은 미군의 태평양에서의 전략적 배치에 영향을 미침.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동남아 국가의 경제성장으로 말미암하 새로운 자원소비사장인 아시아가 더 커지고 세계최대의 자원 소비시장인 북미의 자리가 위협받는 것을 두려워했음. 동남아 국가들이 아직 크게 성장하기 전인 90년대초 미국은 아시아에서, 위력은 대단하나 아시아 국민이 잘 알지 못하는 금융자원전을 일으켰음. 일본 부동산 버블붕괴가 그것임. 일본 부동산 버블위기는 바로 금융자원전이었음. 미정부는 일본 정부에게 엔화절상의 압력을 가하는 등의 일련의 수단을 동원해 부동산 버블을 터뜨렸음. 결국 일본경제는 부동산 버블 붕괴후의 20년 동안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함.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경제가 20여년 동안 경기침체에 머물러 있는 사이 미국은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 자리를 공고히 했다는 점. 97년 동남아 국가들은 90년대 초기 몇년 동안의 발전을 거치면서 경제규모가 확대된 상태였음. 그들은 아시아 자원 소비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일본경제가 쇠퇴한 후 아시아 자원 소비시장에 일었던 혼란을 일소했음. 하지만 이때 미국을 비롯한 서방강국은 동남아 경제에 대한 금융자원전을 준비하고 있었음. 이들이 일으킨 금융자원전은 총 3단계로 이루어짐.
(1) 화폐 공매도와 환율이라는 수단으로 대상국에 직접적 타격을 입힘. 97년 7월 2일 태국정부는 그동안 시행해오던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한다고 공포. 태국정부가 환율제도를 개혁한다고 선포한 당일 달러화대비 태국 바트화 환율은 폭등. 그날의 상승폭은 무려 18%에 달함. 외환시장의 동요는 금융시장 전체의 혼란을 야기. 단 며칠 사이에 태국 금융시장은 모두 붕괴됨. 태국 바트하는 대폭 절하되었고 태국 금융자원의 손실은 그야말로 막대했음. 그런데 예상밖의 일이 일어남. 태국의 금융 시스템이 전면적으로 붕괴하자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금융시스템도 크게 동요하기 시작. 월가 투자은행을 비롯한 국제투기꾼들은 태국 바트화를 마음껏 주무르고 난 다음 동남아 다른 나라들도 공격.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필리핀 페소화, 말레이시아 링깃화 등 동남아 국가의 화폐가 국제 투기꾼들이 공매도대상이 됨. 그래서 동남아 국가들의 화폐는 잇달아 대폭 절하되었고 금융자원은 심각한 타격을 입음. 8월이 되자 동남아 국가의 정부는 궁지에 몰림. 말레이시아 정부가 제일먼저 링깃화에 대한 방어를 포기한다고 선언. 그후 줄곧 잘 버티고 있던 싱가포르 달러화도 큰 충격을 받음. 이때 동남아 국가의 금융시스템은 거의 붕되괸 것이나 다름없었고, 국가금융자원은 국제투기꾼의 배후조종자, 즉 서방선진국으로 빠르게 유입됨
(2) 공매도 후 다시 공매수 하는 수법. 금융자원전의 핵심전략은 금융대란을 이용해 금융자원을 빼오는 것. 98년이 되자 일본 엔화와 한국 원화를 공격해 아시아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국제투기꾼들은 예고도 없이 방향을 틀어 홍콩에 치명적 일격을 가함. 이로써 동남아의 소국은 다시한번 대규모 습격을 당함. 98년 초 인도네시아는 또다시 심각한 금융대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음. 국내경제의 성장 둔화 속도는 사상 최고를 기록. 국내 금융을 안정시키기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2월 11일에 루피아하를 달러화환율에 고정하겠다고 선언. 경제 쇠퇴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음. 인도네시아의 이런 조치는 매우 적절하고 효과적인 것이었음. 루피아화의 달러화에 대한 고정환율제 채태으로 국제투기꾼들은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를 마음대로 공매도할 수 없게 됨. 인도네시아 정부의 조치는 국제은행가들의 불만을 야기. 그들의 이익을 크게 침해하는 행위였기 때문. 그리하여 국제통화기금과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나라들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를 달러화 환율에 고정하는 것을 반대. 심지어 국제통화기금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원조를 전면 철회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함. 결국 인도네시아는 경제위기에 빠져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위기도 맞음. 2월 11일 달러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환율은 1대 1만이 되었고, 인도네시아 금융질서는 무너짐. 한편 국제투기꾼들은 태국 바트화, 싱가포르 달러화, 필리핀 페소화 등 동남아 국가화폐를 공격.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일본, 타이완 경제는 또다시 무너짐. 엔화, 원화, 뉴타이완달러화는 모두 대대적 공매도 공세를 당함. 이로써 아시아 금융은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고, 아시아 금융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3) 화폐를 공매도하는 것과 동시에 주식시장을 공략하는 것. 협공작전은 금융자원전에서 큰 위력을 발휘. 아시아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국제투기군들은 다시 홍콩에 주목했고, 대대적 물량공세에 나섬. 이번에도 강력한 투기꾼들이 나섬. 조지 소로스가 직접 홍콩 공략에 나선 것. 투입한 자금만 해도 수천억 달러에 달했음. 지난번의 충격은 이번 충격에 비하면 약소한 것에 불과했음. 국제투기꾼들이 맹공을 퍼붓자 홍콩 항셍지수는 1만포인트에서 6600포인트로 급락. 소로스가 이끄는 집단은 지난번의 실패를 교훈삼아 홍콩 달러화의 공매도로 주식시장을 압박해 금융자원을 획득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음. 소로스와 그 집단의 홍콩 주식시장을 집중공략해 우위에 섬. 물론 소로스와 그의 집단은 이번의 금융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뿐만 아니라 홍콩의 금융시스템을 무너뜨려 금융자원 전부를 획득한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음. 아시아의 금융허브 홍콩은 아시아 금융위기 속에서 가장 기름진 먹이였던 것. 소로스와 그의 집단의 기세등등하게 압박해오자 홍콩정부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결연하게 맞섰음. 홍콩 항셍지수가 6600포인트까지 떨어진 불리한 상황에서 홍콩정부는 앞서 환율안정에 기울였던 노력을 주식시장 방어에 쏟음. 대량의 외환보유고를 주식시장과 선물시장에 투입해 국제투기꾼들이 매도한 주식과 선물물량을 받아냄. 일정기간의 힘겨루기를 거치자 홍콩 항셍지수는 하락세를 멈추고 안정화됨. 이때 실패를 인정하기 싫었던 소로스는 공격목표를 홍콩 달러화로 바꿈. 이미 대비를 하고 있던 홍콩정부는 다시 홍콩 달러화를 두고 국제투기꾼들과 각축전을 벌임. 홍콩 정부는 어떠한 대가를 아끼지 않고 국제투기꾼들이 투매한 홍콩 달러화를 사들여 홍콩 달러화와 달러화의 환율을 7.75대 1로 안정시킴. 홍콩 금융자원전은 비로소 홍콩 정부의 승리로 막을 내림. 국제투기꾼들은 홍콩에서 약 700억달러라는 참담한 손실을 기록. 하지만 홍콩 역시 타격을 입음.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서 국제투기꾼을 상대로 방어전을 펼치기 위해 사용한 금액이 98년 한달간 약 1450억 달러에 달했기 때문.
- 세계가 점점 하나가 되는 오늘날, 미국 금융자원손실은 미국채권과 달러화를 보유한 나라로 전가됨.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난 후 미국정부는 즉각 채권을 발행해 월가 금융조직의 부족한 자금을 메워줌. 채권이 발행되자 채권가격은 곧바로 큰 폭의 하락세를 보임. 미국 채권과 달러를 보유한 국가의 금융자원도 동시에 감소. 이밖에 미정부가 금융위기동안 시행한 시장구제계획도 정부의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난 원인으로 작용. 결국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옴. 시장구제계획이 시행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달러화가 다시 평가절하의 길로 들어선 것. 달러화의 평가절하는 다시 국제원유시장을 흔들어 놓았고 동시에 세계 벌크스톡의 가격을 상승시켜 미국채권과 달러를 보유한 국가의 금융자원은 더욱 감소. 미국은 채무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외채권을 통해 자신들의 채무를 다른 나라로 전가하는 방법도 사용.
- 역사적으로 세계의 금융자원 강국은 미국처럼 금융대출을 통해 강국의 꿈을 실현했음. 20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에서 빌린 차관 덕분에 독일은 유럽 최대의 금융자원국이 됨. 20세기 중엽 미국에서 차관을 제공받은 일본은 세계2위의 금융자원국이 되었음. 21세기 초, 미국은 신흥시장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빌려 이라크를 침공했고 시장에는 유동성 과잉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세계금융위기가 촉발됨. 일극화 발전모델은 그야말로 부자나라들에게 너무 많은 혜택을 준다고 할 수 있음. 그들은 자신들에게 상당히 유리한 금융시스템을 통해 가난한 나라들의 금융자원을 마음껏 가로챌 수 있음. 여러가지 복잡한 원인으로 이런 불균형의 일극화 발전 모델은 당분간 지속될 것임. 그 주요원인은 첫재, 현재 세계의 정치, 경제구조가 완벽하지 않고 개도국의 힘을 한데 모으기가 어려워 미국 등 정상급 선진국에 강력하게 맞서 수 없기 때문. 둘째, 미국 등 정상급 선진국 금융자원과 과학기술의 수준이 여전히 선도적 위치에 있어 단기간에 국면을 전환하기는 어렵고, 셋째, 미국 등 정상급 선진국의 군사패권주의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
- 청나라 왕조는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할 당시 돈은 바닥나고 곧 목숨이 끊어질 상황. 그들은 백은이 없었기 때문에 탐욕스런 일본을 만족시킬 수 없었음. 청나라가 돈으로 일본의 환신을 살 수 없자 서구 열강은 흔쾌히 청나라에 배상금으로 쓸 백은을 빌려줌. 서구 열강의 은행단은 청나라에 높은 이자로 차관을 제공했고, 청나라는 상환시에 원금과 이자를 합쳐 백은 6억량을 갚아야 했음. 그 구체적 상황은 다음과 같음. 1895년 7월 청나라는 프랑스, 러시아 두나라 은행단과 4리 차관계약을 체결. 총금액 4억 프랑, 연 이자율 4리, 36년 원리금 분할상환 조건. 1896년 3월 청나라는 영국과 독일 두 나라 은행단과 영독 차관계약을 체결. 차관은 총 1600만 파운드, 연 이자율 5리, 36년 분할상환조건. 1898년 3월 청나라는 다시 영국과 독일 두나라 은행단과 속영독 차관계약을 체결. 총금액은 1600만 파운드, 이자율은 4.5리, 45년 분할상환 조건. 이 계약에 따라 조건은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요구한 배상금인 백은 2억량을 위해 백은 4억량을 더 지불해야 했음. 마지막에는 원금과 이자의 합계가 6억 471량에 이르렀기 대문. 이를 통해 청일전쟁 이후 중국의 부를 가장 많이 약탈해간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서구열강임을 알 수 있음. 사실 표면적으로 백은 2억량을 가져간 일본은 그리 많이 약탈한 것이 아님. 일본이 약탈해간 2억량 대부분이 서구 금융그룹에 외채를 갚고 군수물자를 사들이는 데 쓰였기 때문. 군수물자의 비용은 백은 수천만량에 달했음.
- 쑨원이 1925년 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장제스가 왕징웨이와 함께 국민정부를 이끌어 나감. 하지만 장제스는 미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했음. 왕징웨이도 중국을 침범한 일본 제국주의의 대변인이 됨. 장제스와 왕징웨이의 도움에 힘입어 열강들은 중국 금융화폐자원 약탈에 박차를 가함. 왕징웨이는 특히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는 동안 일본에 투항해 일본이 점령한 지역에 세운 정권의 수장이 됨. 장제스는 국민정부 최고 권력자가 된 후 북양정권의 방법을 그대로 이어받아 거액을 차관했음. 차관은 열강이 중국 금융화폐자원을 약탈하는 중요한 방식이었음. 미국을 비롯한 서구열강은 장제스와 국민정부의 부정한 축재를 도우며 중국의 금융화폐자워을 약탈하기 시작. 열강의 고문들은 장제스 정부가 고금리 이자를 주는 공채를 발행할 수 있게 도움. 이때부터 중국의 공채 시장은 팽창하기 시작. 나아가 중국 금융자본이 급속히 성장. 나중에는 열강들의 이익집단인 장, 쑹, 쿵, 천 사대가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국면이 됨. 결국 사대가문은 중국 금융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농업은행, 우정 저축환업국, 중앙은행, 중앙신탁국, 중국은행, 교통은행을 완전히 통제해 관료가 독점하는 시스템을 구축. 이로써 열강들이 중국 금융화폐자원을 더 쉽게, 더 많이 약탈할 수 있었음. 중일전쟁 기간, 2차대전을 치르던 열강들은 그 와중에도 중국약탈을 멈추지 않음. 열강들은 사대가문을 조종해 채권을 발행하게 했고, 장제스 정부에도 더 많은 차관을 제공. 더욱이 해방전쟁기간에 미국 등이 장제스 정부에 빌려준 자금과 군수물자대금은 1000억 달러가 넘었음. 이로 이해 중국 경제는 심각한 인플레를 겪음. 당시 국민정부가 발행한 지폐는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음. 결국 사대가문과 국민정부는 분노한 국민에 의해 무너짐. 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고 공산당이 이끄는 새로운 시대의 인민민주정권이 탄생. 신중국 수립후 금융자원을 약탈하던 세력과 대리인은 사라지고, 열강이 중국 화폐금융자원을 약탈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함.
- 08년 11월 미국을 공황상태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 금융위기가 일어난 것. 그러자 전 세계의 거의 모든 투자자들이 앞다투어 가치보전도가 높은 금을 사들이기 시작. 결국 금값은 폭등했고 달러가치는 폭락. 과거 미정부는 월가 금융거물을 시켜 금값을 잡을 수 있었음. 하지만 금융위기가 일어나 월가 거물들이 연이어 파사하자 미정부는 달러의 하락세를 막을 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 이때 미정부는 어떻게 했을까? 이번에 미정부는 과거처럼 황금을 팔아 달러화 가치를 억누르지 않음. 이때의 시장상황은 천문학적인 양의 황금을 퍼부어도 모두 깨끗이 삼켜버릴 수 있었기 때문. 그래서 미정부는 당시 금융위기로 크게 타격을 입지 않은 월가 거물 골드만삭스에게 홍콩상하이은행과 함께 금시장에 들어갈 것을 지시. 골드만삭스와 HSBC가 금시장에 들어갈 때 많은 투자자들은 직감적으로 골드만삭스와 HSBC가 황금을 매도해 달러가치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판단. 하지만 투자자들은 골드만삭스와 HSBC가 금시장에 들어온 후 금값을 떨어드리지 않고 오히려 금값을 폭등시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함. 결국 몇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금값은 천달러 관문을 돌파. 이때 월스트리트의 각 기관들은 금값이 얼마 지나지 않아 2천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 이렇게 되자 금시장은 큰 자극을 받아 금값은 연일 신기록을 갱신. 하지만 예전과 달리 금값이 오르자 달러가치도 덩달아 빠르게 상승. 뿐만 아니라 달러는 금세 강력한 위치를 회복함. 그 원인은 무엇일까? 금을 구매하는 유일한 화폐가 달러였기 때문. 금값이 올라 다른 나라 투자자들이 황금을 사려고 할 경우 그들은 본국 화폐를 달러로 바꾸어야 함. 그러고 나서 달러로 황금을 사야 하는 것. 결국 금융위기 기간에 세계 각국의 화폐가치는 떨어졌지만 달러화만은 그 가치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남. 미정부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했고 달러화의 강력한 지위를 지켜냄. 그후 미정부는 달러화의 강력한 지위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졌음. 달러화 위기는 달러화의 강력한 지위를 약화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달러화의 가치보존성을 크게 높이는 역할을 함. 이로 인해 세계 투자자들은 달러화가 가치보전도가 가장 높은 화폐라고 인식. 세계 금융위기 동안 달러화만이 절하되지 않았고, 현재 달러화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화폐였기 때문.
- 91년 12월 반세기가 다 되도록 조용히 숨죽이고 인내해 온 유럽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 당시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유엔 안보리를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세계적인 비난을 샀음. 미국이 걸프전쟁에 집중하고 있는 기회를 이용해 유럽은 배후에서 미국을 공격해 세계 경제와 정치의 중심이라는 전략적 지위를 탈환하려 했음. 미국이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 유럽 각국의 정부 수뇌들은 마스트리히트 정상회담에서 유럽연합조약을 통과시킴. 유럽연합조약의 체결은 유럽국가들이 연합해 하나의 단일한 조직을 만들려는 꿈이 실질적으로 한걸음 내디딘 것. 이후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93년 11월 1일 유럽연합조약이 정식 발효되었고, 유럽연합이 출범. 유럽연합의 탄생은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고, 사람들은 한가지 의구심을 갖게 됨. 이제 막 탄생한 유럽연합이 미국의 수중에 있는 패권을 가져올 수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줌. 유럽연합은 미국이 보유한 패권을 가져올 수 없었음. 유럽연합이 수립된 후 미국은 유럽의 경제발전에 연속적으로 압박을 가함. 관련 통계에 따르면, 유럽연합 출범후 유럽연합이 수출하는 상품에 대해 미국의 반덤핑 제소가 12.7% 늘어남. 게다가 미국은 유럽연합이 화폐맹주인 자신에게 도전하는 조직이 되는 걸 용인할 수 없었음. 겉으로는 무척 사이가 좋은 동맹국 관계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미국이 예상치 못한 것이 있음. 세계경영의 바통을 넘겨받으려는 유럽의 열망이 예전보다 훨씬 강렬했던 것. 02년 1월 유로화는 유로존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화폐가 되었고, 정식으로 유통됨. 유로화가 나타난 달러자리를 넘겨 받으려 할 때가 되서야 미국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많은 나라들과 IMF는 유로화가 중요한 비축통화가 될 것이라 생각. 유로화가 시장에서 유통되기 전에 전세계의 국제비축통화는 오직 달러밖에 없었음. 유로화의 등장 자체만으로도 이미 달러의 화폐맹주 지위를 위협했다고 할 수 있음. 그럼 미국은 달러를 위협하는 유로화를 어떻게 제거하려 했을까? 미국은 유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금융자원을 약탈해가는 방법을 채택. 화폐의 강세는 그 배후에 금융자원을 얼마나 비축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 얼마후 미국은 유로화에 타격을 가함. 하지만 유로화는 다른 화폐와는 달랐음. 그 자체가 지역화폐가 통합된 일체화의 산물이었고, 뒤에선 금융자원이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 이것이 바로 유로화가 시장에서 유통될 때 일부 국가와 IMF가 유로화를 국제비축통화로 사들인 이유이기도 했음. 그러나 미국은 결코 유로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음. 당시 유로화가 미국을 위협하기는 했지만 달러화의 강력한 지위에 도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 게다가 미국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음. 공격하기에 가장 유리한 시기를 기다렸던 것. 미국은 당시 유럽연합이 매우 단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럽연합에서 내란이 일어날 때 다시 공격하면 단숨에 유로화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판단. 더 중요한 점은 그때가 되면 금융자원도 대량획득할 수 있다는 것. 사실 단결은 유럽귀족의 피에 가장 필요한 요소였음. 휘황찬란한 로마제국시대든, 게르만의 전차가 유럽을 도살장으로 바꾼 시대든, 단결은 유럽국가의 이슈가 아니었음. 그들의 피에는 교활함, 적의, 서로간의 약탈이란 정서만이 흐를 뿐이었음. 그래서 유럽이 화폐단이로하로 달러에 맞섰을 때 미국은 유럽연합이 다시 내란에 휩싸일때 유로화로 지탱되는 금융자원을 약탈하기로 결정. 미국은 행동에 나서지 않고 노련한 사냥꾼처럼 조용히 기회를 노리고 있었음. 하지만 유럽연합은 미국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발전을 이루었음. 07년 유럽연합 경제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체가 됨. 날로 커져만 가는 유럽연합의 경제를 지켜보면서 미국은 바짝 긴장. 이 시점이 되자 미국은 더이상 기다릴 수 없었음. 그랬다간 유로화가 달러를 대체하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 미국이 유럽연합에 화폐전쟁을 일으키려고 실질적 준비에 돌입했을 때 미국은 자기집에 불이 난 것을 발견. 즉, 부동산 거품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불러온 것.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났을 때 미국은 그야말로 어쩔 줄 몰라 허둥댐. 그러나 사태가 점점 세계금융위기로 번져감에 따라 미국은 큰 불에 화상을 입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을 안절부절못하게 했던 적수 유럽연합도 중화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됨. 미국은 한시름을 덜 수 있었음. 자기 몸에 붙은 불을 먼저끄고 다시 생각할 시간을 번 것. 그러나 미국은 자신이 화상치료를 끝내기도 전에 중화상을 입은 유럽이 자신의 불을 끄는 건 물론 빠른 회복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됨. 09년 하반기에 유럽연합은 강력한 회복기에 들어섬. 이때 미국은 다시한번 당황했음. 먼저 불을 끄고 난 다음 유럽을 공격한다는 전략을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자신의 불이 다 꺼질 때면 유럽은 이미 세계 최대의 재력가가 되고, 유로화 역시 달러의 강력한 지위를 무너뜨릴 것이 분명. 그래서 미국은 오랫동안 유럽에 묻어두었던 시한폭탄인 그리스 채무위기를 터뜨림. 그리스 채무위기는 달러와 유로화의 화폐전쟁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
- 10년 3월 이후 유로화는 그리스 위기의 영향으로 약세로 돌아섬. 이때 달러화는 유로화와 화폐전쟁을 시작. 전쟁 초기 유럽연합은 자본등록 방식으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유로존 경제를 안정화시켜 달러화와 맞서게 함으로써 유로화가 어느정도 우위를 점하게 한다는 계산. 하지만 미국은 유럽에게 숨쉴틈조차 주지 않음. 월가 투자은행들은 과거의 화폐전쟁 때처럼 신속하게 움직임. 유로화를 대량으로 사들인 것. 유로화의 절하는 불가피했고 그때가 유로화를 모두 팔아버리기에 가장 좋은 시기였음. 월가 투자은행들이 유로화를 대거 매도하기 전, 유럽연합 정부는 유로화의 화폐가치를 계속 유지해 유로화 환율을 안정시키기로 결정.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거액이 자금이 필요했음. 그리스 채무위기로 타격을 입은 후 원래부터 단결되지 못했던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 일부국가는 거액의 자금을 투입해 그리스 등의 국가를 구제하고 유로화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 하지만 몇몇 국가들은 그리스 등의 국가를 구제하는 걸 포기하고 미국과 협상해 유로화를 안정시키자고 주장. 결국 두 진영의 국가들이 계속 다투는 사이 월가 투자은행들은 천문학적인 양의 유로화를 팔아치움. 유로화의 매도세는 피할 수 없었음. 유로화는 달러와의 첫 싸움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심. 유로화의 절하로 유럽연합은 약 2000억 유로에 달하는 화폐자원을 상실. 세계경제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내에 유로화는 달러에 다시금 공격을 가할 힘을 갖지 못할 것.
- 일찍이 진시황 때 외국국적 인사인 이사는 진나라 재상이 됨. 이사는 진시황에게 간축객서를 바치고 새로운 인재강국 전략을 세움. 이는 진시황이 여섯나라를 통일하는 데 밑거름이 됨. 당나라 때 태종은 수나라의 과거제도를 계승하고 한편으론 빈공과를 신설. 빈공과란 외국 국적의 유학생과 조공을 바치러 온 사람을 귀빈으로 예우하고 그들에게 당나라 왕조의 과거시험에 응시하도록 허락하는 것을 말함.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는 관직을 하사하기도 함. 당시 유명 인물로는 최언위, 최치원, 최승우가 있었음. 특히 최언위는 한림원 대학사가 되어 당나라 고위관리가 됨. 태자의 스승을 역임하기도 함. 당나라 왕조가 중국 역사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수용하는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많은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였기 때문.
- 세계은행이 제공하는 통계에 따르면, 08년 말까지 졸업 후 다른 나라에서 발전의 기회를 잡은 영국 대학생이 170만명에 이른다고 함. 대학 졸업생 중에서 17.4%를 차지하는 수치. 영국 대학 졸업생이 선호하는 국가는 주로 미국과 캐나다. 이 밖에 호주를 선택한 졸업생도 상당수. 자료에 의하면, 170만명 가운데 약 130만명이 미국과 캐나다로 향함. 그 가운데 캐나다로 간 사람은 60만명에 달해 미국보다 조금 적었음. 그러나 02년 이후로는 매년 영국에서 캐나다로 가는 대학 졸업생의 수가 미국으로 가는 수보다 더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음. 대량의 인적자원이 북미로 향하자 영국인들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움에 쌓임. 영국이 자랑으로 여기던 과학연구와 첨단기술 인재양성이 한층 퇴보했고, 심지어 영국의 현행 교육제도에 대해 의문과 불만이 제기됨. 영국 외에도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강국의 인적자원도 캐나다로 대량 유입되고 있음. 이들 국가의 과학자와 기업가는 인적자원의 외부유출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정부의 각성을 여러차례 촉구했음. 그래서 이들 국가는 캐나다의 인재정책에 맞서 여러가지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 캐나다의 강력한 인재흡수력은 각국 정부의 경계대상이 됨. 하지만 캐나다의 독특한 지리적 우세와 미국이라는 든든한 배경 덕에 많은 인재들이 캐나다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는 쉽지 않음. 게다가 개도국은 문제가 더 심각. 일례로, 인도정부도 인적자원 유실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지만, 경제, 정치 등의 열세한 조건으로 인해 우수한 인재가 캐나다로 가는 걸 막지 못하고 있음.
- 미국은 전략적 광산자원의 통제를 일찌감치 시작. 50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국방생산법은 희귀금속을 군수물자 생산과 비축분야에 포함시켜 관리하도록 규정. 80년대 레이건 정부는 국가물자와 광물방안 정책을 펼침. 그 정책은 정부가 반드시 핵심물질과 광물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도록 규정. 전쟁이 발발해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각종 전투부대를 파견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핵심원료의 부족으로 부대의 전투력이 저하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정책의 골자임
- 희토류를 충분히 비축하고 중국의 경계를 방지하기 위해 일본은 기존의 구매전략에 변화를 주었음. 공개적으로 집중해서 대량의 희토류를 사들이는 방식에서 분산해서 소량씩 사들이는 방식으로 전환. 일본기업은 중국의 홍콩, 타이완, 동남아 등지에 공장을 세우고 중국과 제3국에서 희토류를 수입해 희토류 구입처를 분산하고 있음. 그들은 광시, 윈난성 등에서 희토류 완성품이나 반제품 밀수를 통해 대량 사들임. 또한 홍통, 태국 등에서 항구무역을 통해 희토류를 수입하기도 함. 이렇게 하면 다른 나라들의 주목을 끌지 않을 수 있고, 구매의 시간차와 1최구매량을 줄임으로써 큰 폭의 가격상승을 피할 수 있음. 결국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희토류 자원을 확보. 관련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희토류 자원의 약 90%를 중국에서 수입했으며, 일본의 현재 희토류 비축량은 앞으로 20년 동안 사용할 수 있음. 하지만 일본이 중국에서 희토류를 수입하는 데 사용한 비용은 매우 작음.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한 희토류 금속은 일본 첨단산업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임. 일본기업은 저렴하게 수입한 희토류 원료를 첨단기술을 통해 부가가치를 크게 높여 첨단제품을 제작. 그리고 이를 중국에 수출해 엄청난 이윤을 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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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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