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 깡패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10.23 미국의 경제 깡패들

미국의 경제 깡패들

경제 2014. 10. 23. 21:34

 


미국의 경제 깡패들

저자
테드 네이스 지음
출판사
예지 | 2008-11-1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대한민국 최우선 과제, 미국 자본주의 ‘게임의 룰’을 이해하라!...
가격비교

- 19세기가 시작되고 처음 10년간 기업법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신중함은 대중문학에서 가장 강력하고, 반복되고, 과장된 주제 중 하나였음. 이러한 반기업 정서를 반사업 정서와 혼동하지 않아야 함. 대중들이 보기에 기업법인이라는 형태를 이용한다는 것은 모종의 특권을 독점하는 것을 연상케 했음.
- 전형적 침해 사례로 1801년 뉴욕의 부유한 상인들 몇몇이 자영업자 제빵사들을 고용해 부리면서 도시 전체에 빵을 공급하는 독점권을 부여하는 기업법인 설립허가를 취득하려고 했던 일을 들 수 있음. 제빵사들은 자신들을 업계에서 몰아내려는 이 대담한 시도를 알아차리고 제퍼슨의 수사를 총동원해 만약 의회가 그와 같은 설립허가를 내준다면 현재 미국의 장인들에게서 두드러지고 공화국에 참으로 유용한 자영업자들의 정신이 완전히 궤멸될 것이라고 주장.
- 스콧은 개인적 권력 때문이 아니라 국가의 규제로부터 기업을 해방시켜 기업을 실제로 훨씬 더 역동적 존재로 재발명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됨. 남북전쟁 이전의 기업은 기업법인 설립허가를 발급하고 정기적으로 갱신하는 주의회의 확고한 통제를 받는 특정지역에 뿌리박고 있었음. 주 의회 설립허가에 어떤 규제조항을 써 넣든 간에 기업은 받아들여야 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설립허가는 종결되었음. 그러나 톰 스콧이 탈출로를 고안해냄. 그가 펜실베니아 주의회를 설득해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오래된 금지조치를 깨뜨림으로써 그 씨앗이 뿌려진 셈. 스콧은 지주회사를 발명함으로써 기업에 대한 국가통제의 아킬레스 건을 찾아낸 것. 미주리 주의 어느 회사가 설립허가에 포함된 규제조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치자. 미주리 회사는 변호사들을 시켜 뉴저지에 새 기업법인을 세워 회사주식을 뉴저지 회사로 팔아넘김으로써 물리적으로 이전하지 않고도 미주리 주의 사법권에서 사실상 빠져나갈 수 있음. 이런 변화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 영향은 심대했음. 일단 기업이 가장 우호적인 법률적 관할지를 물색하게 되면 여타 규제들을 완화하기 위해 주 의회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
- 스콧은 1881년 사망했기 때문에 주외 지주회사라는 자신의 혁신이 의회에서 기업법의 일상적 특징으로 자리잡는 것을 보진 못함. 1889년 뉴저지주는 기업법령을 수정하기가 무섭게 다른 주의 심한 규제를 탈출하고 싶어하는 기업들의 대안이 됨. 1901년이 되자 자산규모가 2천5백만 달러 이상인 미국기업 71%가 뉴저지주를 근거지로 삼고 있었음. 기업변호사 찰스 보스트윅에 따르면 너무나 많은 트러스트들과 대기업들이 뉴저지에 세금을 내는 바람에 관계기관은 잉여수익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몰라 크게 당황하는 수준이었음. 다른 주들에게는 두가지 선택이 남아있음. 바닥까지 낮추기 경주에서 뉴저지주와 경쟁하든지 아니면 지역기업이 뉴저지 주로 법적 근거지를 옮기는 것을 지켜봐야 했음. 1899년 델라웨어는 뉴저지의 뒤를 따름. 1913년 뉴저지 주지사 우드로 윌슨이 뉴저지 법을 강화하자, 델라웨어주는 기업들의 대안지로 앞서 나갔고 오늘날까자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
- 영구존립은 기업들이 범죄와 잔혹행위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살아남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정치적, 법적 문제에서는 매우 실용적 이익을 주기도 함. 예를 들어 클린턴 정부하에서 미국 법무부가 시작한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반트러스트 소송을 생각해보라. 그런 소송은 대개 최소 10년 혹은 그 이상 지속되기 일쑤여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 다시 빠져나갈 기회를 엿볼 수 있음.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에는 부시 행정부가 제때에 들어서서 그 소송에 대한 관대한 방침을 적용했기 때문에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음.
- 현대산업들이 특히 섬유업이 큰 건물에서 운영될 경우 교도소, 소년원, 그리고 고아원과 연계되지 않은 지역은 거의 없었음. 사람들은 이 관계를 대체로 과소평가하고 있는데, 특히 새 공장들이 자유노동만을 고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역사가들이 그러함. 그것은 공장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일찍이 성립되었던 영국의 방식이었는데, 19세기 초 미국에서 최초의 공장이 출현했을 당시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을 착취하는 비슷한 방식이 적용되었음. 영국 이민자였던 새뮤얼 슬레이터는 미국에서 최초로 기계화된 섬유공장을 세웠고, 그가 고용한 최초의 피고용인들은 7~11세의 어린아이 아홉명이었음. 역사가 잭 비티에 따르면, 미국 최초의 공장들의 최초의 노동자들로서, 여성과 어린이들은 미국 산업혁명의 개척자였다.
- 72년 GE의 프레드릭 보치와 알코아의 존 하퍼가 선봉에 서서 금융, 공업, 서비스업의 상위 200대 기업 CEO들로만 구성된 단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만듬.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그 회원들의 구성때문에 독특한 특권과 영향력을 지니게 됨. 이 단체는 기업 엘리트들을 위한 일종의 상원의회 역할을 하면서 대기업 전체가 그 이전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원을 배치할 수 있도록 했음.
-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 만들어짐녀서 70년대에는 재단, 씽크탱크, 소송센터, 출판물, 그리고 점점 더 세련되어지는 홍보 및 로비기구 등 기업들의 의제를 지지하는 한 무리의 기관들이 생겨남
- 대부분 부유층이었던 한 무리의 신사들이 밀실에 모여 작성한 미합중국 헌법으 원래 틀을 잡을 때부터 나머지 전체 인구에 대항하여 소수 부유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 것이었음. 심지어 권리장전의 보장들 역시 두가지 상반되는 정치적 목표를 구현한 별개의 두 조로 나누어 볼 수 있음. 한편에서는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 및 결사의 자유와 같은 권리로 강력한 국가기구의 잠재적 권력 남용으로부터 일반시민을 보호함. 다른 한편에서는 수정헌법 5조로 정당한 보상없이 재산을 박탈하는 것을 금하여 다수결을 이용해 엘리트 층의 부를 앗아갈 수 없다는 보장을 해줌. 헌법 내부의 이런 긴장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대법원이 주와 연방의회로부터 기업을 감싸기 위해 만든 일련의 권리들이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헌법조항을 대체로 연장한 것이었음이 이해가 됨. 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표현=돈' 관례들에서 놀라운 점은 바야흐로 수정헌법 1조가 부유층, 재산, 기업권력의 방패막이로 변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러한 결과는 오직 용의주도하게 논리들을 구획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음. 결국 신중하게 법을 따르는 척했던-한편으로 기업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패예방을 위한 법률을 허용하던-대법원 판결들은 사실상 표현의 자유의 속성과 부패의 속성을 둘 다 사용하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방식에 의존하고 있었음. 표현을 통해서 대법원은 정치선거운동에서 거대기업이 쓰는 비용이 인간의 발언과 동등한 보호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개념을 수용. 부패에 대해서는 돈의 특정한 이동이 특정한 정치행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경우를 뜻하는 보상부패 개념에만 국한시킴.
- 개인에 양심의 자유에 관한 판결들을 기업까지 확장하는 것은 그 판결들의 논리적 한계를 넘어 지나치게 곡해하는 것임. 양심의 자유를 목적으로 그러한 인공적인 존재들에게 지성이나 영혼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은유를 현실과 혼동하는 것임
- 50년대와 60년대에는 CEO도 경영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았음. 안정성이 중요했기 때문에 기업가적 기풍보다는 관료적 기풍이 강했음. 현재의 기준으로보면 급여가 놀랄만큼 적었음. 예를 들어 50년에 미국에서 쵝 보수를 받언 GM의 찰스 윌슨의 세전수입은 62만 6300달러(03년 기준 480만 달러)였는데, 이는 오늘날 기준으로 본다면 많지 않은 급여임. 더욱이 고소득자들에게 적용되는 세율은 매우 높았음. 윌슨이 보수전체에 대한 연방세를 냈다면 세후수입은 16만 4300달러 였을것임.
- 이전세대에서는 급여가 회사의 성장률이 아닌 규모와 연관되어 있었고, 보수의 상대적 평등을 모범으로 강요한 뉴딜정책 시기 사회풍조의 영향이 남아 급여가 상대적으로 억제되어 있었음. 80년대 들어 CEO의 자제하는 팀플레이어 이미지는 폐기되고 새로운 이미지가 나타남. 돌격대장형임. 아이아코가 같은 유명 CEO들은 경영자의 전통적 역할에 슈퍼 세일즈맨, 공식 대변인, 베스트셀러 작가에 이르는 부가적 역할들을 추가시킴. 아이아코카 같은 CEO들에게는 분명히 어마어마한 연봉을 줄만한 가치가 있음. 스타 CEO의 또 다른 형태는 빌 게이츠로 대변되는 활동적인 20대 공부벌레 기업가라는 실존하지 않을 법한 인물형에서 등장. 비록 아이아코카 같은 판매능력이나 빌게이츠 같은 천재성을 지닌 CEO는 별로 없지만 그러한 유명 기업지도자들은 파월 비망록에 묘사된 것처럼 관료적이고 사회적 왕따 같은 이미지를 떨쳐버리려고 무척 애씀. 정말이지 그들은 새로운 세대의 록스타와 같은 존재로 변해가고 있었음.
- 6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사이 전세계적으로 본국 밖에서 사업을 하는 회사수는 세배이상 증가. 90년대에는 모든 민간부문 자본의 3분의 1가량을 초국적 자본이 차지. 미국회사들은 가장 공격적으로 해외제조업 자산을 사들여 미국내 제조시설을 해외로 이전. 90년대 후반 미국 기업들이 해외생산량은 유럽과 일본의 다국적 기업을 합친 것이 두배가 됨. 그러나 소유권의 국제화는 미국 국내에도 영향을 끼쳐 미국 제조업 자산 중 외국인 소유지분은 70년 3%에서 90년 19%로 증가. 기업들은 여러나라에 다리를 걸쳐놓은 상태였으므로 복수의 규제체계와 맞부딪침. 어떻게 해야할까? 미국은 이미 1세기 전에 상업조항을 창조적으로 해결하고 기업권리에 대한 새로운 원칙을 개발함으로써 유사한 문제를 해결한 바 있음. 같은 일을 세계적 규모로 시도해보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달갑지 않은 규제를 쫓아버릴 새로운 카드패였음. 전체적 목표에 따라 두가지 채널이 개발됨, 하나는 GATT과정으로 110개국 이상이 참가해 일련의 다자간 협상을 계속하는 것이었음. 그러나 GATT참가국이 워낙 많다보니 진행이 지지부진해짐. 1987년 미국-캐나다 자유무역협정을 필두로 한 역내조약이 더 빠른 채널로 판명됨. 94년 멕시코가 역내조약에 참가하면서부터 FTA는 북미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됨.
- 기업의 비상한 재주는 단순성, 유연성, 그리고 그 설계의 모듈성임. 그것은 어떤 규모에도 맞추어 변할 수 있고, 사실상 모든 기능을 하며, 어떤 문화에나 적응할 수 있으며, 그리고 강건함. 최소한 원칙적으로는 영원히 작동할 수 있음. 그것은 살아남고, 구조 및 기능적 완결성을 유지하고, 성장하고, 위험을 피하고, 피해를 복구하며, 적응하고, 외부세계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음. 기업이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에는 어떤 악의도 심지어 자각도 없음. 그것은 느리고 점증하는 과정임. 세계가 조금씩 걸음을 옮기는 것임.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처럼 작은 행위들이 결국 대대적 사회변화를 일으킴.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창조계급  (0) 2014.10.23
선악의 경제학  (0) 2014.10.23
테크놀로지의 종말  (0) 2014.10.22
당신이 속고있는 가격의 비밀...가격은 없다  (0) 2014.10.22
부채 그 첫 5000년  (0) 2014.10.22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