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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

사회 2014. 10. 3. 15:22

 


안티프래질(Antifragile)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출판사
와이즈베리 | 2013-10-0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안티프래질]의 메시지는 급변하는 이 시대의 교훈이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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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래질리스타는 과학적 지식의 범위를 비과학적으로 과대추정해 소비에트-하버드 환상에 빠짐. 그런 환상 때문에 그들은 어설픈 합리주의자, 또는 합리화하는 사람, 때로는 어떤 대상의 배후에 있는 원인이 저절로 자신에게 다가온다고 믿는다는 의미에서 단순히 합리주의자라고 불림. 여기에서 합리적인 것과 합리화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됨. 이 두가지는 거의 항상 정반대의 의미를 가짐. 일반적으로 물리학을 제외한 복잡한 영역에서 어떤 대상의 배후에 있는 원인은 우리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음. 그리고 프래질리스타에게는 훨씬 더 그러함. 자연적인 것들이 자신을 사용자 매뉴얼의 형태로 알리지 않는다는 특징은 유감스럽게도 프래질리스타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음. 일부 프래질리스타들은 과학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기반으로 사용자 매뉴얼을 스스로 작성하기 위해 모임
- 경주마는 자기와 열등한 경주마와 경쟁하면 지고, 자기보다 우수한 경주마와 경쟁하면 이긴다는 말이 있음. 스트레스 요인이 없을 때(즉 호르메시스의 반대로서 도전정신이 결여된 상태일 때) 나타나는 보상부족은 가장 뛰어난 경주마에게 최선의 결과를 주지 못함.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신천옹이 거대한 날개때문에 걸어다니지 못한다고 했음. 또 많은 학생들이 기본 미적분보다 심화미적분에서 더 좋은 점수를 얻음. 이런 과잉보상 메커니즘은 가장 있을법하지 않은 곳에서 발생하곤 함. 장거리 여행이후 피로를 느낀다면, 휴식을 취하기보다 헬스센터로 감. 또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사무실에서 가장 바쁜사람에게 주는 것도 널리 알려진 방법이다. 시간이 남아돌면 게을러지고 동기를 잃게 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를 많이 봄. 바쁠수록 다른 일도 능동적으로 처리한다. 과잉보상은 바로 이런 경우에 발생한다.
- 정보는 안티프래질적 특성을 지님. 정보는 알리려고 할 때보다 덮으려 할수록 널리 전파됨. 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방어하려 할수록 오히려 명예를 실추시킴. 교활한 베네치아인들은 비밀인 것처럼 위장하면서 그 정보를 널리 전파하려고 했음. 소문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보라. 누군가에게 비밀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 이야기를 해보라. 비밀이라고 하면 더욱 널리 전파된다. 우리는 이미 책과 사상이 안티프래질적 특징을 갖고 있으며, 공격으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스토아학파 철학자 중 한사람이었던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은 장애물을 먹고 자란다. 책이 갖는 안티프래질적 특징은 사람들이 금서에 관심을 갖게 만듬. 어린 시절 내내 내가 처음으로 읽었던 소설은 그레이엄 그린의 권력과 영광이었는데, 나는 단지 이 소설이 로마 교황청이 정한 금서목록에 있다는 이유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10대에는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갔던 헨리 밀러의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의 소설은 23개주에서 금서로 지정되면서 한해에 100만부씩이나 팔렸음. 보바리 부인이나 채털리부인의 사랑도 마찬가지임
- 비난 그 자체도 억누를수록 안티프래질적 특성을 나타낼 수 있음. 비난하는 사람이 자신의 비난에 대한 확인으로서 상대방의 반박을 기대하는 순간에 말이다. 질투심이 넘치는 장 프레롱은 총명한 볼테르를 화나게 하여 자신을 비꼬는 시를 쓰도록 만드는 식으로 유럽 지성사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음. 사실 볼테르 자신도 상대방을 짜증나게 만들고는 그 사람이 보여주는 반응으로부터 재미를 보고 사는 사람인데, 자신이 비난받는 상황에 처하면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음. 아마 볼테르의 매력은 자신의 기지를 절제할 줄 몰랐던 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숨어 있는 안티프래질적 특성은 생각과 인격에 비난을 받을 때 그 모습이 드러난다. 우리는 이런 비난을 두려워하고 부정적인 평판을 싫어하지만, 상당히 적극적이면서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면 참기보다는 반박함으로써 비난하는 사람의 기분을 크게 상승시켜주는 결과를 만들어 버림. 한편, 비난을 받아야 하지만 비난할 만한 가치가 별로 없는 수많은 사람들 대신 비난을 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당신에게 비난이 가해지는 현상을 선택편향이라고 함. 이때 당신을 비난하면서 결과적으로 당신을 유명하게 만드는 사람의 에너지는 안티프래질적 특성에서 비롯됨. 저자의 증조부 니콜라스 고든은 정적들이 수없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했던 영리한 정치인이었음. 그의 장남도 정치인의 길을 걸었는데, 증조부가 운명하실 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함. '아들아, 나는 네게 무척 실망했다 나는 너를 두고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너는 질투심을 일으키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생각해보면 유기체 집단이 진화를 위해 손상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음. 박테리아를 손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살아남은 박테리아는 더 강해짐. 암 치료도 마찬가지임. 화학요법가 방사선 요법의 독성에도 살아남은 암세포는 더 빨리 증식해서 정상세포가 약해지며 생긴 빈 자리를 차지해버림
- 회사원에게는 위험이 숨어 있는 반면, 기능을 보유한 사람들은 무작위성 덕분에 일정 수준의 안티프래질을 지니고 있음. 작은 변화는 그들에게 적응을 요구하고, 주변환경으로부터 배워서 끊임없이 변화하라고 압박함. 스트레스는 정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적응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선물을 받거나 놀랄만큼 좋은 소식을 듣거나, 공짜 옵션을 가질 기회도 생긴다.
- 중앙집권적 국민국가는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는 아님. 실제로 고대 이집트의 통치형태와 거의 같음. 그러나 고대 이집트의 통치 형태는 역사에서 단발적 사건이었고, 오랫동안 유지되지도 않았음. 이집트는 킬러앱이라 할 수 있는 공격용 전차를 갖춘 소아시아 지역의 제멋대로인 야만적 침입자들로부터 수시로 괴롭힘을 당하면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됨. 고대 이집트 왕조는 국가를 제국처럼 통치하지 않고 통합된 국가처럼 통치. 이런 통치형태는 크게 다른 유형의 가변성을 낳게 됨. 국민국가는 중앙집권적 관료들에게 의존함. 반면 로마제국이나 오토만 제국과 같은 제국은 지역 엘리트에게 의존하므로 실제로는 도시국가가 번성하고 자치권을 보장해주게 됨. 이런 자치권이 군사부문이 아니라 상업부문에서 주어지기 때문에 평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됨. 실제로 오토만 제국에서는 신하와 영주가 군사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며, 이런 관계는 군사적 유혹을 제거하고 모두가 번창하는데 도움이 되었음. 결국 이런 시스템은 겉으로 보기에 얼마나 부당하게 여겨지는가와는 상관없이, 지역 엘리트들이 전쟁보다 상업에 몰두하도록 만듬. 결과적으로 신하와 영주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셈이었음. 이런 이야기는 데이비느 흄이 자신의 저서 영국사에서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 전쟁의 유혹을 받기 때문에 소규모 국가를 선호하면서 제기했던 주장임. 로마제국이나 오토만 제국이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지역 엘리트에게 자치권을 허용한 것은 아니었음. 단지 편의상 그렇게 했을 뿐임. 제국과 자치권을 갖는 지역간의 결합은 결개의 국민국가와 국경을 가진 중앙집권적 국민국가보다 더 많은 안정을 가져다 주었음. 그러나 국가들이 이집트와 중국처럼 중앙집권적 통치형태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로마제국이나 오토만 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 학자들과 관료들이 중앙에 집중되어 지식을 독접하고 있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당시에는 인터넷 송금 혹은 계좌송급을 감시하는 방식으로 조세징수를 감독할 수 없었음. 그리고 전신, 철도, 전화와 같은 근대의 통신 네트워크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가는 칙서 송달관에게 의지해야 했음. 따라서 지역의 통치자들이 국왕처럼 행동하면서 많은 문제를 처림. 중앙집권적 국가의 경우 최근까지도 경제전체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겨우 5%였음. 그리고 정부는 전쟁문제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경제문제는 기업가들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음.
- 배고프고 목마른 당나귀가 음식과 물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면, 결국 배고픔과 목마름에 죽을 수 밖에 없음. 그러나 이 당나귀는 무작위적인 넛지 덕분에 살 수 있음. 이것은 이런 사고실험을 소개한 중세 철학자 장 드 브리당의 이름을 따서 브리당의 당나귀로 회자됨. 어떤 시스템이 위험한 교착상태에 빠져 있을 때에는 오직 무작위적인 행동만이 그 문제를 풀고 시스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의미. 당신도 당나귀와 같은 상태에서 무작위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음. 시스템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무작위적인 잡음을 주입하는 것은 여러 분야에 적용될 수 있음. 확률적 공명은 주변에 무작위적인 소음을 주입시켜 소리를 더욱 정확하게 들을 수 있도록하는 메커니즘. 우리는 앞에서 적당한 소음이 있어야 신호를 더 잘 인식할 수 있다는 과잉보상의 심리적 효과를 살펴본 적이 있음. 하지만 여기서는 심리적 효과가 아니라 시스템의 물리적 특성을 이야기하고 있음. 멀리 떨어져 있는 수신기로는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조난신호도 주변의 소음이나 무작위적인 간섭이 있으면 잘 들을 수 있음. 조난신호에 '쉬'하는 소리를 무작위적으로 주입하면, 가청범위를 훨씬 더 확장시킬수 있음. 이런 상황에서 공짜로 잉용할 수 있는 무작위성보다 더 나은 것은 없음.
- 편도선 절제수술의 경우, 어린이들이 불필요한 치료를 받으면서 입는 손실은 의사들이 수술의 이익을 과다하게 선전하면서 더욱 커짐. 이처럼 치료를 받고 나서 숨어 있거나 나중에 나타나는 이익을 훌쩍 넘는 순손실을 의원성 질환(iatrogenics)이라고 하는데, iatros는 그리스어로 의사를 의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마다 이런 의학적 손실의 리스크에 처하게되고, 결국 다른 트레이드 오프 관계를 분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리스크를 분석해야 함. 다시 말해 확률적 이익에서 확률적 손실을 빼야 함. 의원성 질환의 전형적 사례가 1799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사망임. 당시 표준 치료법에슨 사혈요법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의 주치의가 워싱턴의 죽음에 기여했거나 최소한 재촉했다고 볼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확인할 수 있음. 지금도 이런 의원성 질환의 리스크는 설명하기에 따라 쉽게 간과될 수 있음. 페니실린이 나오기전까지 의술은 대차대조표에 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고, 의사와의 만남은 죽음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었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식의 발달과 함께 의원성 질환은 더욱 증가하여 19세기 후반에 최고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상당히 인상적임. 바로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근대가 초래한 결과임. 과학의 발달과 병원의 등장으로 민간요법을 대체하자 사망률이 급증하게 되었는데, 주로 병원내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발생하는 병원티푸스가 그 원인이었음. 라이프니츠는 병원을 죽음의 온상이라 부름. 사망률이 증가하게 된 증거를 병원의 등장에서 찾을 수 있음. 모든 환자들이 한곳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다른 곳에 있었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 환자들이 병원에서 죽어갔음.
- 실험결과에 따르면 시스템에 대한 제어를 중단하면(과잉보상을 제거하면) 경계심이 약화된다고 함. 운전자에게는 자동화 장치보다 주의력과 사고에 대한 경계심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와 긴장이 필요. 보행자들은 교통신호에 따라 길을 건널때보다 무단횡단할 때 사망사고를 덜 당함. 어떤 자유주의자들은 네덜란드 드라흐텐 시가 보여준 역발상의 사례를 자주 언급함. 드라흐텐 시 당국은 모든 표지판을 철거하기로 결정. 이런 탈규제는 안전을 증진시켰고, 리스크에 대한 경계심과 책임감에서 비롯되는 집중력에 내재된 안티프래질을 확인시켜줌. 결과적으로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도로 표지판이 눈에 띄게 많지 않음.
- 라틴어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음. 로마인들만 자발적 태만을 존중했던 것이 아니었음. 중국의 노자는 수동적 성취의 의미를 담고 있는 무위의 정신을 설파. 꾸물거림이 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보살피도록 내버려두면서 자신의 안티프래질을 행사하도록 하는 자연적 방어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음. 꾸물거림은 생태학적 혹은 자연주의적 지혜로서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님. 실존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 몸은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저항함. 우리 정신도 근대가 전해준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맞서서 저항함. 물론 근대 사회에서 소득신고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님. 그러나 의사와의 중요하지 않은 만남을 미루거나 내 몸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할때까지 글쓰기를 뒤로 미루면, 자연이 전해준 아주 유용한 필터를 활용하는 셈
- 정보의 공급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제한하는 것이 개입을 완화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 하지만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 이런 방법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움. 그리고 사람들에게 데이터를 많이 확보할수록 상황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의원성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하기란 쉽지 않음.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은 더 많은 데이터를 의미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음.
- 성공은 비대칭성을 야기함. 당신은 이제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훨씬 많음. 따라서 프래질하다. 다모클레서의 칼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좋은 소식은 없고 나쁜 소식들만 대기중이다. 부자가 되는 순간, 재산을 잃어었을 때의 고통은 재산을 늘렸을 때의 기쁨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리게 됨. 부자들은 잠을 제대로 못자고,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혈당이 증가하고, 유머감각은 줄어들고, 머리카락은 코끝까지 내려 오는 등 다양한 형태의 고통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재산으로 인해 궁지에 빠진다. 세네카는 재산이 우리에게 하강국면을 걱정하게 만들면서 우리가 의존할수록 형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간파. 재산은 항상 더 많아져야 하고 줄어들어서는 안된다. 심지어 상황(정확히 말해서, 상황에서 비롯되는 심적상태)에 의존하면서 일종의 노예상태로 만든다. 고대 사람들은 좋은 상태와 나쁜 상태, 이익과 손실간의 이런 비대칭성에 익숙해져 있었음. 이와 관련해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는 세네카보다 반 세대 앞서서 "사람들은 나쁜 것을 좋은 것보다 더 강렬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 적이 있음. 고대 사람들은 주로 세네카 덕분에 지금의 심리학자와 리스크 기피를 연구하는 트리파트 교수와 같은 의사결정 이론가보다 훨씬 더 앞서 있었음. 그들은 통속적 처방을 능가하는 더욱 깊이 있고 실용적 마인드를 지녔음.
- 프래질은 얻는 것보다 읽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상승국면보다 하강국면에 더 많이 있으며, 바람직하지 않은 비대칭성을 띠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안티프래질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하강국면보다 상승국면에 더 많이 있으며, 바람직한 비대칭성을 띠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에게 잠재된 이익이 잠재된 손실을 능가한다면 당신은 무작위성에 대해 안티프래질하다. 또 당신이 하강국면보다 상승국면에 더 많이 있다면, 무작위성과 스트레스가 부족할 때 피해를 볼 수 있다.
- 한직에 종사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마음이 상당히 편하다. 그들은 금전적으로 독립한 사람과 마찬가지거나, 어쩌면 그런 사람보다 훨씨너 더 낫다. 예를 들어, 프랑스 시인 폴 클로델, 생존페르스, 그리고 소설가 스탕달은 외교관이었음. 영국 작가들 상당수는 공무원이었음. 앤서니 트롤럽은 우체국 직원, 카프카는 국영 보험회사 직원이었음. 가장 바람직한 예로, 렌즈제조업에 종사한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을 학문적으로 타락시키지 않을 수 있었음.
- 자연의 가장 놀라운 특서은 진화와 연관된 시험과정에서 옵션을 활용하여 스스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합리성이다. 자연은 다른 무엇인가를 하기를 두려워하는 연구자와 달리 옵션, 즉 비대칭성을 확인한다. 따라서 자연은 단계적으로 발전한다. 경로의존성에서 설명했듯이, 생물학적 시스템은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에 도달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합리성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이전보다 더 나은 것을 거부하지 않는데 있다.
- 지식의 두가지 유형을 생각해보자. 첫번째 유형의 지식은 정확하게 말해서 지식이 아니다. 이 모호한 특징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엄밀한 정의의 지식과 연관시키지 못한다. 이것은 우리가 정확하고도 분명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한다.(이것을 때로는 apophatic이라 부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표현하려고 하고 실제로도 잘 표현한다. 두번째 유형의 지식은 우리가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에 더 가까움. 이것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고, 성적을 얻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고, 규칙을 따르게 할 수 있고, 합리화할 수 있고, 공식화할 수 있고, 이론화할 수 있고, 소비에트의 지배하에 둘 수도 있고, 관료화할 수 있고, 하버드 브랜드를 찍어줄 수도있고, 증명할 수도 있다. 어설픈 합리주의가 갖는 오류는 인간사에서 두번째 유형의 지식, 즉 학문적 지식의 역할과 필요성을 과대평가하도록 만들고 체계화할 수 없는것, 더욱 복잡한 것, 직관적인 것, 경헝메 바탕을 둔 것을 과소평가하게 만듬
- 이론적으로는 이론과 실행간의 차이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있다. (요기 베라)
- 행동가는 글을 쓰지 않는다. 행동할 뿐이다. 새들은 날아가고, 새들에게 날아가느느 법을 가르쳤던 사람들이 새들의 이야기를 쓴다. 따라서 역사는 시간이 있고 학자로서 보호받는 자리에 있는 패자들이 기록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 기업들은 전략계획에 나오는 아이디어를 좋아함. 기업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계획이 유용하다는 증거는 없음. 오히려 그 반대의 증거는 있음. 예를 들어, 경영학자 윌리엄 스타벅은 전략계획이 유용하지 않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주로 전략계획이 편의주의적 요소를 제거해 기업이 옵션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주장이었음.
- 제도권 학자와 이론가들은 책을 쓰는 경향이 있음. 이에 반해,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실행가가 되어 실행으로부터 기쁨을 얻고, 돈을 벌거나 잃고 술집에서 담화를 나누는 경향이 있음. 때로는 그들의 경험이 학계의 승인을 받기도 함. 그러나 실제로 역사는 지식의 생산에서 이론가가 독점권 혹은 독점에 가까운 권리를 갖는 것으로 믿는 사람에 의해 기록되어 왔음
- 사상가로서 니체의 위력은 나를 계속 놀라게 만들었다. 그는 안티프래질을 생각해냈다. 많은 사람들이 창조적 파괴의 개념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창안한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이처럼 통찰력 있는 깊은 개념이 경제학에서 나온 것에 대해 놀라워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이 개념의 학문적 원천을 마르크스에게서 찾으려고 하지만, 사실은 니체가 디오니소스를 언급하면서 이 말을 처음 만들었음. 니체는 디오니소으에 대해서 창조적으로 파괴적(creatively destructice) 그리고 파괴적으로 창조적(destructively creative)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결국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안티프래질을 생각해냈던 것임
-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낸다. 계속 찍어 내더라도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조치가 안전하다고 주장할 수 있음. 그런데 어느 순간이 지나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남. 돈을 찍어내고 나니 물가가 오르게 됨. 경제적 효과는 볼록성 효과에 의해 완전히 제거되고, 그나마 우리가 그 이유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정책 담당자들의 사고방식은 지나치게 선형모델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숨은 효과를 무시해 버린다.
- 벤트 플리비에크는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면 실적이 나빠지고 총 비용에서 지연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는 현상을 보여주었음. 그러나 미묘한 차이를 잘 살펴보아야 함. 중요한 것은 단위 프로젝트의 규모지, 전체 프로젝트의 규모가 아님. 여러 단위로 나눌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도 있음. 예를 들어, 교량 건설공사, 터널 건설공사는 단일 프로젝트로서 작은 단위의 프로젝트로 나누어질 수가 없음. 규모가 커지면서 추가되는 비용도 엄청나게 커짐. 댐 건설공사도 마찬가지. 이에 반해, 도로공사는 작은 단위로 나눌 수 있음. 프로젝트 관리자가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쉽게 수습할 수 있기 때문에 규모에 따른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음. 즉 프로젝트를 작은 단위로 나누면 실수를 하더라도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짜내기에 따른 문제도 심각하지 않음
- 우리 조상들은 지금과 다르게 행동했음. 복잡계 연구자 제니퍼 던은 북미 대륙의 원주민인 알레우트족의 생활상에 관한 5000년에 걸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들의 채집과 사냥활동의 증거를 살펴봄. 그들의 식생활 증거를 살펴보면, 사냥감을 계속 바꾸려고 했기 때문에 집중현상이 관찰되지 않았음. 그들의 식습관은 오늘날의 식습관과 달리 몇 안되는 음식에 고착되거나 경직적이지 않았음. 자원이 부족할 때마다 그들은 마치 생태계를 보존하려는 듯이 다른 자원으로 교체하려고 했음. 그들과 그들의 습관은 볼록성 효과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
- 물리학처럼 믿음이 가는 분야는 통계적 방법을 많이 사용하지 않음. 반면 정치학이나 경제학처럼 주목할만한 것들을 결코 만들어낸 적이 없는 분야는 정교한 통계적 방법과 증거로 가득 차 있음. 그리고 그런 연기를 걷어내고 나면, 그들이 제시하는 증거는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됨. 과학에서 이런 상황은 가장 많은 알리바이를 가진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탐정소설과 비슷함. 그리고 우리는 경제학에서 통계학을 사용한 수많은 논문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 데이터로 가득 찬 수백장의 종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블랙스완과 꼬리에 해당하는 사건이 사회와 경제를 지배하며, 이런 사건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통계분석이 무효임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음.
- 잠재적으로 의원성 질환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예들을 살펴보자. 나중에 심장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항염증약 바이옥스를 복용할 경우, 필요한 상황이 아닌데도 항우울제를 복용할 경우, 과체중의 당뇨환자들이 단식 대신 비만 치료를 위한 수술을 하는 경우, 관절염에 효과가 있는 코르티손을 복용할 경우, 자가면역 질환을 일으키게 될 청소용 소독약을 사용하는 경우, 호르몬 대체요법을 사용하는 경우, 자궁절제술을 시행하는 경우,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데도 제왕절개 분만을 하는 경우, 귓병을 앓고 있는 아기에게 이어튜브를 사용하는 경우, 대뇌 전두엽 백질을 제거하는 경우, 철분 강장제를 복용하는 경우, 쌀과 밀을 표백하는 경우, 피부에 피해를 줄 것으로 의심되는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경우, 위생관념이 지나칠 경우(일정 정도를 넘게 되면 호르메시스적 반응이 사라져 당신을 프래질하게 만듬), 다른 제품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바이오유 제품만 섭취할 경우, 리졸과 같은 살균제를 사용할 경우(병원균을 지나치게 많이 죽여서 어린아이들의 면역체계 발달을 저해하거나 몸에 좋은 세균과 기생충을 제거함
- 대자연을 구성하는 요소간의 상호작용은 항상 시스템 전체를 살리기 위한 방향으로 조정되었음. 대자연이 지난 수백만년 동안 보여준 것은 견고함, 안티프래질, 국지적 프래질, 그리고 특정 분야에서 대자연이 자신이 더 잘 작동하기 위한 희생의 환상적 결합이었음. 인간은 유전자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함. 이렇게 하여 인간이 프래질해지면서 유전자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해줌. 우리는 늙어가지만 유전자는 우리를 떠나 젊음과 건강을 유지함. 사물은 항상 대규모로 펼쳐질지도 모르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작은 규모로 사라짐.
- 조상들이 살던 환경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식품들을 없애버리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얻을 수 있음. 이런 식품들로 설탕, 인공적 형태의 탄수화물, 밀가루식품, 우유와 기타 유제품, 소다수, 와인, 비타민 정제, 영양보조식품. 의사가 처방해준 약, 두통약, 진통제 등이 있음. 진통제에 의지하면 수면부족, 목 근육의 긴장 혹은 스트레스와 같은 두통의 원인을 시행착오를 통해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됨. 따라서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자신의 몸을 맞추는 삶을 살면서 서서히 몸을 파괴시킴
- 진정한 부는 아무런 걱정없이 잠을 충분히 자고 깨끗한 양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질투심을 갖지 않고, 왕성한 식욕, 강인한 근육, 신체적 에너지를 갖고, 수시로 웃고, 혼자 식사를 하지 않고, 헬스센터에는 가지 말고, 육체노동을 적당히 하고, 장운동이 제대로 되고, 회의실에 들어가지 않고, 주기적으로 경이로움을 느끼는 데 있음. 그러면 제거적 전략을 충분히 구사해 의원성 질환을 없앨 수 있음.
- 인간은 가능한 한 오래 살것이라는 근대가 주는 환상을 갖고 있음. 마치 우리들 각자가 최종 생산물이라는 생각을 갖고서 말이다. 이런 나 자신을 단위로 보는 생각은 계몽주의시대로 거슬러 올라감. 그리고 이와 함께 프래질이 등장했다. 계몽주의 시대 이전에 인간은 자신을 현재의 집단과 미래의 후손의 한 구성원으로 생각했다. 현재와 미래의 부족들은 개인의 프래질을 이용해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희생과 순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집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음으로써 자부심을 가졌다. 그들은 미래 세대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슬프게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경제 시스템은 미래세대에게 정부의 부채를 떠넘기고 자원을 고갈시키며 주식 애널리스트와 은행업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 지금으로부터 약 3800년 전에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은 프래질의 대칭성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확인시켜줌. 건축업자가 집을 짓고 그 집이 무너져 집 주인이 사망했다면, 건축업자를 사형에 처한다. 집주인의 아들이 사망했다면, 건축업자의 아들을 사형에 처한다. 집주인의 노예가 사망했다면, 건축업자는 사망한 노예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노예를 집주인에게 지급해야 한다.
- 옛날에는 후원자나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소수의 지식인 집단을 제외하고 권위는 의무와 함께 했음. 당신이 봉건영주가 되기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죽는다는 각오를 해야 함. 그리고 전쟁을 원한다면 전쟁터에서 맨 앞에 서야 함. 미국 헌법에는 최고사령관이 대통령이란 말이 나온다. 카이사르, 알렉산더, 한니발은 모두 전쟁터에 있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한니발은 전쟁터에서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나중에 퇴각했다. 조지 워싱턴도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면서 비디오 게임을 지켜본 레이건, 조지 부시 대통령과 달리 전쟁터로 갔다. 나폴레옹도 몸소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음. 전쟁터에서 그의 등장은 2만 5000명에 달하는 병력이 더해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지녔다. 처칠도 대단한 신체적 용기를 과시했다. 그들은 전쟁에 직접 참여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위는 신체적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했다. 전통사회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다 실패하는 이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은 이들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올랐다.
- 로마인들은 십분형을 활용해 군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겁쟁이가 되려는 인센티브를 제거할 수 있었음. 어떤 부대에 겁쟁이가 많아서 싸움에서 졌다는 정황이 드러나면, 무작위적인 추첨에 의해 군인과 지휘관의 10%를 사형에 처한다. 10분의 1을 제거한다는 의미의 십분형은 근대의 언어에 의해 그 의미가 타락했다. 마법의 수는 10분의 1이다. 이보다 더 큰 비율로 사형에 처하면 군대의 힘은 약해짐. 더 작은 비율이라면 겁쟁이가 되는 것이 최선의 전략임. 그리고 이런 방법은 자주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인들 중에서 겁쟁이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영국인들도 십분형의 또 다른 버전을 생각해냄 그들은 1757년 군법회의를 열어 존 빙 제독이 미노르카 해전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아 결국 미노르카를 프랑스에게 넘겨주게 된 책임을 물어 그를 사형에 처함
- 자본주의가 갖는 문제의 핵심은 집단의 이해관계와 개인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다는 것. 기업은 자연적 윤리를 갖고 있지 않음. 그저 대차대조표만 들여다 볼 뿐. 결국 기업이 하는 일은 주식 애널리스트가 부과한 기준을 만족시켜주면서 스스로 사기꾼이 되는 것. 상장기업은 수치심을 느끼지 않음. 반면 우리 인간은 육체적, 자연적 제지를 받음. 기업은 동정심을 느끼지 않음. 기업은 명예를 생각하지 않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마케팅 자료에서는 프라이드를 언급함. 기업은 관대한 행위를 하지 않음. 오직 이기적으로 움직일뿐. 기업이 왜 매출채권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는지 생각해보라. 그저 그 결정이 적절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때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 간에 무작위적으로 행해지는 관대한 행위 덕분에 굴러감. 문화적이든 생물학적이든 이 모든 문제들이 승부의 책임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들임. 즉 자신의 이익을 챙겨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비대칭성 때문에 나타남. 이제 이런 시스템이 붕괴하려고 한다. 마치 더이상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속일 수는 없다고 말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경영자들에게는 이런 붕괴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로 대리인문제 때문에 그들의 관심은 기업이 아니라 자신의 현금흐름에 가 있다. 그들은 나중에 실패하더라고 피해를 보지 않는다. 마이너스 보너스와 같은 것이 없는 덕분에 자신이 이전에 가져갔던 보너스를 계속 유지하게 될 것이다. 결국 기업은 프래질하므로 장기적으로는 대리인 문제가 주는 압박으로 붕괴하게 될 것이다. 반면 경영자들은 보너스를 위해 기업을 등쳐먹고 나서는 남은 뼈를 납세자에게 던져줄 것이다. 로비스트가 없다면 그들은 곧 망한다. 그들은 국가가 당신의 목구멍에 설탕물을 주입하는 일을 돕도로 강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기업이 국회의원까지 통제하고 있다. 이 모든 움직임은 앞으로 우리들의 돈으로 치르게 될 기업의 장례식을 지연시킬 뿐이다.
- 몽테뉴는 세네카의 저서 자선에 관하여에 나오는 주장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모든 전문 직업인들을 규탄해야 한다고 주장. 그에 따르면, 상인들은 젊은이들이 방탕해야 번성하고, 농부들은 곡물이 귀해져야 유리하고, 건설업자들은 건물이 파괴되어야 돈을 벌고, 법조인들은 사람들간에 분쟁이 생겨 소송이 늘어나야 돈을 번다. 의사입장에서는 친구도 건강하지 말아야 한다. 군인들은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최악은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잡은 생각과 동기를 파고들면 그들의 소망은 거의 변함없이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댓가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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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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