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 주식회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5.22 저항 주식회사

저항 주식회사

사회 2015. 5. 22. 20:53

 


저항 주식회사

저자
피터 도베르뉴, 제네비브 르바론 지음
출판사
동녘 | 2015-03-1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왜 자본은 갈수록 날카로워지는데, 저항은 갈수록 무뎌질까?201...
가격비교

 

 

- 대중봉기의 기나긴 역사는 압제자에 맞선 반란과 혁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773년 보스턴만에 차를 투척하여 미국 독립혁명의 불을 당긴 보스턴 차사건처럼 거대한 상징적 저항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에드워드 파머 톰슨이 '18세기 잉글랜드 군중의 도덕경제'라는 논문에서 우리에게 환기시키고 있듯, 사소하게 보이고 잊히기 쉬운 저항들이 결합하면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톰슨은 18세기 자본주의 여명기에 잉글랜드의 공유지에 담장이 둘러쳐지고 토지가 없는 농민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보릿고개가 닥칠 때마다 군중이 어떻게 빵집을 습격하여 빵값 인하를 요구했는지 보여준다. 이런 행동은 치솟는 물가와 굶주림에 대한 반작용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군중은 공동체의 관습과 권리를 옹호하고, 이로써 적법한 행동과 불법적 행동의 경계를 설정했다. 이런 식으로 개인들은 빈민의 도덕경제을 활용하여 자본가들의 이윤에 대한 충동을 억제했다. 오늘날에도 군중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2010년말 시작된 아랍의 봄과 이와는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2011년 월가 점령운동에 뒤이은 세계 곳곳의 저항이 이를 입증한다. 11년 영국과 12~13년 캐나다 퀘벡 지역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저항 역시 상대적으로 부유한 젊은이들조차 얼마나 큰 분노를 품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런 저항에 대해서는 기업의 통제나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가령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기업 운동 조직인 애드버스터가 월가 점거운동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저항이 기업화 되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치실천의 형태로서 대중저항이 사그라들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60년대 서구에 대한 향수에 젖은 일부 저술가들은 정치적 수단으로서 대중 저항이 가장 활성화되었던 시기는 바로 60년대라고 주장. 하지만 저항은 시기에 따라 강도의 차이가 좀 있을 뿐 세대가 달라져도 꾸준히 반복된다. 저항은 오늘날에도 흔하게 일어남. 많은 국가에서 심지어 독일 같은 서구국가에서도 60년대 이후로 저항이 더 늘었으면 늘었지 결코 줄지 않았다.
- 과거에는 심도 있는 변호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정과 연대를 토대로 한 유대가 아주 중요했다. 영국의 노동운동도, 유럽의 여성 운동도, 미국의 민권운동도, 남아공의 인종차별철폐운동도 모두 이런 유대 덕분에 가능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파머 톰슨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노동계급 주거지에서 단단해진 동지애와 단결력이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어떻게 잉글랜드 노동운동의 새로운 정치의식을 지탱했는지를 기록. 노동자들은 작업이 끝난 뒤 함께 집으로 걸어가면서 집합행동의 정치적 힘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깨닫게 된다. 반면 오늘날에는 어떤 집단이든 형성되기 전에 거의 항상 정치가 먼저 존재한다. 정치는 사실상 사람들이 결집하는 이유가 되곤 한다. 하지만 기존의 사회적 유대가 없는 상태에서 정치만으로는 지속적인 혹은 강건한 집합성을 만들어내기 힘들다. 오늘날 많은 운동가들이 토로하듯 강력한 사회적 유대가 없으면 캠페인도 삐걱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많은 운동가들이 대기업과 일하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넓게 보면 운동의 기업화는 분명 운동 조직의 가치와 사회변화에 대한 접근법을 바꿔 놓고 있다. 나오미 클라인은 특정 정책이나 기업 내에서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체제에서 원인과 해법을 찾는 시스템 비판을 주장했지만 요즘에는 이 시스템 비판에서 한발 물러나 이 세상의 질서를 수용하는 운동가들이 늘고 있다. 운동조직의 목표, 성공의 척도, 방법론이 바뀌면서 시스템에 대한 비판에서 멀어지는 흐름이 생겨난 것. 이 장에서 우리는 운동의 세가지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첫재는 대기업과의 동반자 관계가 늘어난 것이고, 둘째는 자본가의 자선활동과 기업형 모금에 의지하는 것이며, 셋째는 시장의 병폐에 대한 해법으로서 국제무역과 대중소비를 포용하는 것이다.
- 전통적 방식의 기부는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은 흔히 하는 말처럼 기업의 사고를 흡수하고 시장의 영향력을 이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세상은 가난한 공동체에 투자하는 잘나가는 자본가들을 필요로 한다. 돈을 버는일과 돈을 기부하는 행위는 병행될 필요가 있다. 90년대 들어 자선활동은 이처럼 좀더 전략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기부자들은 더욱 대담해졌다. 갈수록 자신의 기분에 대한 구체적 보상을 원하기 시작한 것. 전략적 자선활동의 목표는 바로 가난한 공동체 내에서 소비재에 대한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다. 비영리 벤처 기금의 최고경영자인 재클린 노보그라츠는 "기업가도, 정책 입안가도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잠재적 고객으로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벤처 자본가들은 세계 경제의 밑바닥에 있는 보물창고에 어떻게든 접근하려고 기를 쓴다. 그리고 비정부기구들은 벤처 자본가와 함께 일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11년 휴먼라이츠워치는 억대의 금융가인 조지 소로스가 대표로 있는 열린 사회재단에서 1억불의 기부금을 받았다. 빈민들에게 자력으로 기아와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게이츠 재단에서 기부금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 단체들도 많다. 어째서 갑자기 기업들이 빈민엑 큰 관심을 갖는 걸까? 나이키의 걸 이펙트 네트워크의 대답은 분명하다. 빈민에 대한 투자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게 아니라 영리한 경제행위다. 간단히 말해 이런 활동은 기업의 권력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장개척을 가능케 한다. 이런 자선활동은 빈민들 덕에 돈을 벌고 있는 이들의 죄를 사해준다. 실제로 수십년간의 어설픈 자선활동과 원조로부터 공동체를 구해내려면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운동조직들은 대기업과 수많은 다양한 방식으로 팀을짜서 사회적, 생태적 목표를 기업의 수익성과 시장의 성장에 결합시키고 있다. 노 로컬의 저자인 그레그 샤르저 같은 비판가들은 공동 브랜드화와 공동광고는 사회 서비스와 환경관리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서 개인으로 떠넘길 뿐만 아니라, 국제무역과 시장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 샤르저가 보기에 소비자들에게 운동가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시스템 실패의 책임을 개인 소비자들에게 떠넘기는 것과 같다. 소외가 존재하고 환경이 처참한 상태가 된다면 잘못된 물건을 산 당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반자 관계, 자본주의적 박애주의, 소비주의에 편승한 운동 모두 비정부기구가 자본주의 제도 내부에서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전략들은 비정부기구가 돈이 많으면 좋을 일을 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이런 전략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시민들이 윤리적 구매를 통해 더 나은 기업에 투표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샤르저의 말처럼 세계 경제를 받치고 있는 것은 착취가 아니라 소비자의 수요라는 것이 이런 전략들의 기본적 가정이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 공동선을 창출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다고 가정하기도 한다.
-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극빈지역에서는 운동가를 대상으로 자행되는 체계적인 경찰폭력으로 기업의 수익성과 국가안보가 유지된다. 예전에 토머스 프리드먼이 탁월하게 지적했듯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주먹 없이는 결코 작동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F15전투기를 만든 맥도넬 더글러스가 없으면 맥도날드는 결코 번창하지 못한다. 남반구의 많은 곳에서 시위대는 고무탄과 곤봉, 최루탄으로 무장한 폭동 진압 경찰 뿐만 아니라 기관총과 장갑차로 무장하고 때로는 암살허락까지 받은 군인과 준군사화한 경찰을 상대한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대중시위를 상대할 때 일반 경찰이 군대처럼 행동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
- 반테러리즘이라는 수사, 감시, 체포는 운동가들을 예의바르고 순종적인 집단과 골칫덩이 집단으로 양분하고 있다. 사회학자인 모나한과 윌비의 말처럼 이런 식으로 반체제 활동을 탄압하는 목적 중 하나는 연대를 어렵게 하고, 운동가들이 급진적인 행동에 나서지 못하게 기를 죽이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범죄화하고, 전술을 다르지만 비슷한 목적을 가진 다양한 집단들 간의 동지애를 파괴하는 것이다. 가령 감시는 운동가들 간의 신뢰관계에 극악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신이 팽배하고 비밀유지가 중요해지면서 사람들이 겁을 먹다보니 이제는 급진적인 집단에서 사람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경찰의 급습은 단 한번만이라도 위협효과가 충분하다. 실제로 급습의 목적은 대중들의 마음에 급진주의와 테러리즘은 같은 것이라는 인식을 심기 위한 것인 경우가 많다.
- 2차대전 직후 몇십년 간 일어난 변화는 노동계급에 특히 큰 파급력을 미쳤다.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에서 그리는 것처럼 20세기 전반에 산업화가 진행되던 국가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삶은 공적 생활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대개 집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어두침침했다. 아이들은 길에서 놀았고 어른들은 교회와 술집, 극장, 시장, 야외무도장을 찾았다. 전쟁이 끝난 뒤 경제가 급성장하고 텔레비전과 컴퓨터 같은 신기술이 등장하며 개인주의 이데올로기가 확산되면서 갈수록 많은 삶이 사적 공간으로 점차 넘어갔다. 홉스봄은 이 변화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번영과 사유화는 빈곤과 집합성이 공적 공간에서 이어 붙인 것을 다시 부숴 놓았다. 소비주의의 강화와 신분상승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의 증가와 함께 이 같은 사회적 삶의 자유화는 시민들의 참여방식을 뒤바꿔 놓았다. 노조모임, 정치집회, 대중시위는 사회적 어울림과 오락의 장으로 발산하던 매력을 잃었다. 사람들은 점점 시간을 더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또한 소득이 증가하고 가치가 바뀌며 생활조건이 더욱 안락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활동들을 전만큼 필요하거나 긴박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광고에 노출된 사람들은 공동체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찬탈한 시장을 자유와 훌륭한 삶의 원천으로 여기게 되었다. 20세기가 지나는 동안 이런 변화들은 천천히 비경제적 연대와 집단의 유대, 그리고 여기에 동반된 윤리를 잠식해 갔다. "권리와 의무, 상호책임, 죄와 미덕, 희생, 양심, 보답과 처벌 같은 오래된 도덕 용어들은 더 이상 탐나는 희열의 대상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라고 홉스봄은 설명한다. 시장구조가 사회적 교환을 포섭했고, 사람들은 소비를 위해 살아가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이 사유화, 파편화되고 사람들이 운동과 정치에 참여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운동과 정치는 전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동시에 80년 이후로 사람들은 노동과 소비, 휴가 등을 위해 시장에 전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되었다. 통근과 텔레비전 시청, 컴퓨터 게임에 소모되는 시간이 늘면서 친밀한 우애의 강도화 횟수 역시 줄어들었다. 이로써 사회적 네트워크가 훨씬 약화되었고 개인은 자신의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있다.
- 70년 초에는 공장의 질서도 무너지기 시작.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파괴공작, 약물남용, 불법파업이 포드주의 생산체제를 물어뜯어" 생산성과 이윤율을 하락시키기 시작. 임금과 가격통제, 세계 유가 충격으로 북반구의 경제적 혼란이 더욱 격화되었다. 제3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늪은 더욱 깊어만 갔다. 이에 대한 조치가 필요한데다 인플레이션이 워낙에 심하고 경제성장이 둔화되자, 힘있는 정치세력과 기업들은 복지국가정책과 강력한 노조 및 안정적 일자리의 가치에 시비를 걸고 보호주의와 국가의 소유권을 문제삼기 시작했다. 영국 대처수상과 미국 레이건의 사례를 필두로 북반구와 남반구의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노조를 공격하고 역진세를 물리는가 하면 복지개혁을 철회했다. 각국 정부는 국내외에서 규제완화와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 산업의 사유화를 요구했다. 특히 자동차 노조나 철강노조 같은 강성노조들은 정치적 영향력과 협상권을 상실했다. 여기서 비롯된 변화는 운동의 전통적 근간을 심하게 흔들어 놓았다. 80년대 이후로 여성센터 같은 평등권 조직과 인권조직들의 돈줄이 말라버렸다. 대형 소매점과 온라인 서점이 생겨나면서 독립서점들은 문을 닫았다. 온라인상의 활동공간이 늘어나면서 지역사회의 많은 소모임 장소들 역시 줄어들었다. 동시에 경찰은 얼마 안 남은 서점과 운동가들의 문화공간을 꾸준히 감시했다. 80년대 이후로 고용형태가 유연해지면서 노동은 더욱 불안정해짐. 많은 곳에서 실업과 개인부채가 치솟음. 북반구 전역에서 개인당 평균적인 유급노동시간이 줄어들었지만 사실 이는 시간제 노동자의 수가 급증한 것과 관련이 깊다. 동시에 국가가 사회적 지출과 복지지출을 삭감하면서 일상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은 대체로 다시 가족과 시장에 전가되었다. 이사벨라 베커 등의 여성주의 학자들은 이를 사회적 재생산의 재사유화라 일컫는다. 2000년 이후로는 온라인 상의 우정이 공동체를 어느정도 대체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 관리하는 사이트인 페이스북은 1억명 이상의 적극적인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80%이상이 미국 이외의 지역에 거주한다. 이런 사회적 네트워크는 생각지도 못한 속도로 대중시위를 동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가벼운 유대는 한때 반체제 활동의 조직적 근간이었던 지속적인 관계를 대체하지 못한다. 또한 온라인 상의 운동에 대한 국가의 감시가 증가하면서 과연 사회적 미디어가 과거 사회운동의 특징이었던 신뢰와 공동의 기억, 동지애와 연대를 형성하고 유지할 역량을 담보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 극단적인 개인주의 담론은 구조적인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반박한다. 그리고 국가정책으로 공동의 책임을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를 잠재워 버린다. 또한 불평등과 생태적 파국의 책임을 사회에 맡겨, 기업가와 소비자들이 자기조절능력을 가진 시장에서 해법을 찾도록 하는 국가정책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동시에 사회적 시민성이 위축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등장하면서 노동자와 약자들의 사회적, 정치적 권리가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이들이 공유했던 정체성과 집합행동의 힘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 무엇도 시장을 당해낼 수가 없다. 작업장과 지역사회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와 함께 국가의 억압적 권력이 꾸준히 증가했다. 징세와 이민, 감시와 시민활동에 대한 통제가 더욱 심해진 것이다.
- 소비주의는 2차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70년대에 이르자 지역사회와 작업장의 결사는 꾸준히 쇠락하는 가운데 개인들은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사회학자 볼프강 스트리크가 말한 소비에 의한 사회화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 소비자 권력이 변화를 가능케 하는 정치적 수단이라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고, 사회학자 돈 슬레이터의 말을 빌리자면 80년대가 되자 산업국에서 소비주의는 모든 사회적 관계를 위한 의무적인 양식이자 시민의 역동성과 자유를 위한 본보기가 되었다. 스트리크의 지적처럼 일부 이론가들은 소비자운동의 증가를 새로운 자율성과 해방의 시대의 서막으로 인식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개인은 분명 자신의 소비를 신념과 일치시키기 위해 어느정도 노력할 수 있다. 구매행위나 사회적 미디어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트리크의 말처럼 기업들은 발빠르게 소비주의가 사회적 정체성을 파고드는 지금의 상황을 이용하여, 고객과 상품의 개인화를 상업적인 확장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대중 소비주의의 뿌리는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혁명 초기 직물공업이 산업화되고 있을 때 서유럽과 북미의 중산층 내에서는 특이하면서도 별로 비싸지 않은 옷을 소비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미 1800년대 후반에 이르렀을 때 미국같은 나라의 중산층 소비자들은 새로운 물건을 테스트해보는 한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을 대신할 상품을 사고싶어 하게 되었고, 이때문에 구매의 목적은 더 이상 필요가 아니라 편안함과 재미가 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삶을 규정하는 시장과 상품의 힘이 훨씬 빠른 속도로 강해진 것은 70년대 후반 이후 경제적 세계화와 산업주의가 강화되면서부터였다. 소비주의는 이제 더 이상 산업화의 산물이 아니다. 자아정체성, 도덕성, 경제적 진보, 정치적 자유개념의 핵심에 위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슬레이터의 말처럼 소비주의는 현대 세계의 형성 그 자체의 일부가 되었다. 이같은 소비주의는 날로 증대하는 기업과 자본주의의 권력을 뒷받침해주는 한편, 체제 순응적 운동을 강화하여 급진주의와 사회적 저항을 상업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따. 동시에 소비자운동의 확산은 역설적 효과를 가져온다. 기업에 판매량을 늘리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환경적 대의명분을 찬탈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명상표 회사는 사회운동을 전복하기보다는 거기에 맞게 기꺼이 적응할 의사가 있는 믿음직한 행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해당상표는 체 게바라 티셔츠나 북극곰이 그려진 콜라캔이 그렇듯 급진주의와 자연친화주의의 상징과 이미지를 전유하게 된다. 판매량이 많아지면 이런 상징들의 아이러니도 파묻혀 버린다.
- 서로 얽혀가는 기업과 비정부기구의 이해관계는 전 지구적인 운동의 담론을 바꾸고 있다. 세계 자연기금 같은 조직들은 당당하게 코카콜라 같은 회사와의 동반작 관계를 정당화시킨다. 세계자연기금 캐나다 지부 전임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75개국 정부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코카콜라 사람들이 결정을 할 거고... 전세계 공급사슬이 하룻밤새에 바뀌겠지요. 간단히 말해서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동반자 관계를 체결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동반자 관계에 반대하는 운동가들은 비합리적이고 실행력도 없는 사람들로 치부됨. 오늘날의 정치환경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른느 시대에 뒤떨어진 이상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드볼 게임  (1) 2015.11.24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0) 2015.05.25
팝, 경제를 노래하다  (0) 2015.04.13
실패의 사회학  (0) 2015.04.03
소셜시대 십대는 소통한다  (0) 2015.03.11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