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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년의 폭발

역사 2014. 11. 11. 22:00

 


1만년의 폭발

저자
그레고리 코크란, 헨리 하펜딩 지음
출판사
글항아리 | 2010-10-22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4만 년 또는 5만 년 동안 인류는 생물학적 변화를 전혀 겪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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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지와 통념의 불러 일으킨 오류

- 진화적 변화는 본래 매우 느리게 일어나기 때문에 중대한 변화는 수백만년이 걸린다는 것이 일반 통념임. 하지만 화석기록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그것을 현재의 자연선택 사례들에서 나온 증거와 결합하면, 자연선택이 생각보다 꽤 빠르게 일어날 수 있으며, 과거는 정체나 마찬가지(환경에 잘 적응된 집단들의 경우)인 긴 시기들과 이따금씩 일어나는 매우 급격한 변화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음. 짧은 기간 동안의 급격한 변화는 화석기록에 잘 나타나지 않는데, 그것이 화석화 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

- 모든 인간은 꽤 최근에 공통조상에서 갈라졌고(10만년전) 아프리카 밖으로 나온 인간들은 더 최근에 공통조상에서 갈라졌으므로(5만년전), 개체군들 사이에서 관찰되는 차이들은 매우 빨리 진화한 것임에 틀림없고, 이런 급속한 진화는 차이들을 만드는 대립 유전자들(유전자 변종들)이 강력한 선택적 이익을 지녀야만 일어날 수 있었을 것임.

2. 내 안의 네안데르탈인

- 현대인류와 네안데르탈ㅇ니 사이에 짝짓기가 있었느냐 아나냐의 문제는 몇십년을 끌었던 논쟁인 인류의 다지역 진화설 대 아프리카 단일 기원설의 핵심임. 다지역 진화설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쪽은 네안데르탈인이 인류의 직접적 조상이라고 말하는 반면, 아프리카 단일 기원설을 주장하는 쪽은 현대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했다고 주장. 유전자 자료가 나오면서 현대인류가 아프리카 밖으로 나간 극적인 사건이 사실이었음이 곧바로 확인되었지만, 구인류와 신인류 사이의 유전적 교환이 어느정도나 있었는지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음. 네안데르탈인과 현대 유럽인 사이에 해부학적 연속성이 있었는지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는데, 이 논쟁의 기본 가정은 현대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일종의 해부학적 융합이 일어났다는 것임.

- 일반적으로 우리는 혈통이 페인트 색을 섞는것과 같다고 생각. 파란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초록색이 될 것이고, 그 페인트는 초록색으로 계속 남을 것임. 한 개체군이 90%가 노르웨이인이고 10%가 나이지리아인이라고 할때, 직관적으로는 그 집단이 영원히 9대 1의 비율로 섞인 모습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음. 하지만 이 직관은 틀림. 이 섞인 개체군이 아프리카에 있다면 나이지리아인들에게 흔했던 특정 대립유전자들(말라리아를 막는 대립유전자, 피부색을 검게 만들어 피부암에 대한 저항성을 높여주는 유전자)이 아랫세대로 가면서 점점 많아질 것. 결국 그런 유전자들의 경우 그 개체군이 거의 모든 사람이 나이지리아 버전을 갖게 될 것. 정확히 이런 식으로 몇 만년 전에 현대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혼혈아에 유입된 약간의 네안데르탈인 혈통으로부터 많은 사람들, 어쩌면 모든 현대 인류가 몇몇 유전자들에서 유리한 네안데르탈인 버전을 갖고 있게 되었을 수도 있음.

- 자연선택은 똑같은 문제들을 서로 다른 개체군에서 서로 다르게 해결하고, 지금 가장 멋져 보이는 해법이 먼 훗날 가장 잘 작동하는 해법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음. 더 못해 보이는 선택이 막판에는 최고의 선택이 되어 있을수도 있음. 예컨대, 아프리카에서는 열이 많이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큰 뇌가 진화하는데에 한계가 있었지만, 유럽의 기후에서는 열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음. 나중에 진화가 큰 뇌를 생리적으로 미세 조정하면서 열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었고, 따라서 그때부터 새로운 뇌가 아프리카에서도 퍼져나갈 수 있었음.

3. 농경사회의 진화폭발

4. 문명이 펼쳐놓은 유전자 신세계

- 강력한 국가가 있을 때 개인이 갖는 이익은 더 작아지는 한면, 법과 질서는 자기방어를 위한 전투적 태도를 덜 필요하게 만들었음. 북적이는 환경 그 자체만으로도 과거에 선호되었던 몇몇 성격 형질들이 냉대 받게 되었을 것임. 농부들이 소를 사육하듯이 엘리트 계급이 실질적으로 농부들을 사육하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평균보다 공격적인 사람을 솎아냈음에 틀림없고, 그 결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러한 공격성을 유발한 대립유전자들의 빈도가 변했을 것임.

- 동물의 가축화 과정과 충적세에 인간에게 일어난 변화들 사이에는 유사한 점들이 있음. 인간과 가축에서 모두, 뇌 크기가 줄고 두개골이 더 넓적해지고 머리카락 색깔이나 털색이 변화하고 이빨이 더 작아졌음.

- 문명은 선천적 지능의 몇가지 측면을 꾸준히 촉진하고 있는 듯함. 예컨대 상업활동은 구세계 문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부분이고, 상업활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마음의 모델을 필요로 함. 하지만 차이가 있는데, 상업활동에서는 군사작전에 비해 신중함에 더 큰 방점이 찍히고 대담함에는 적은 비중이 실힘. 문명은 상업활동을 위한 마음의 모델에 필요한 지능을 꾸준히 선사했을 것임. (윌리엄 해밀턴, 이론생물학자) 농업은 거래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킬 수 있는 형질들을 선택했을 것임. 자신의 밀을 다른 농사꾼들보다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는 농부, 혹은 더 이익이 되는 거래를 할 수 있는 농부가 더 성공했을 것이고, 큰 가족을 더 잘 건사할 수 있었을 것임. 상인, 사업가, 금융업자는 이렇게 탄생했음.

- 아르메니아 사람, 유대인, 레바논 사람, 파시교도, 동아프리카 인디언, 동남아 중국인 같은 유명한 중간상인 소수민족들은 모두 오랫동안 농업을 해온 집단들의 후손임.

5. 유전자들의 대이동 - 결혼에서 해적까지

6. 콜롬버스적 폭발

- 일반적으로 승리하는 자의 이점은 문화적인 것, 즉 학습되는 것으로 여기짐. 무기, 전술, 조직, 농경방식 등은 모두 학습됨. 현대 인류의 팽창은 이 법칙에서 예외임. 현대인류의 팽창은 이 법칙에서 예외임. 대부분의 관측자들은 생물학적 차이가 현대인류가 팽창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이었다고 생각함. 생물학적 이점이 특히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것이 지속적이기 때문.

- 유럽인의 아메리카 정복과 정착에서 생물학적 차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다윈주의 진화를 부인하고 있는 것임. 수천년 동안 많은 질병을 안고 살아왔던 유라시아 농격인들은 높은 질병 저항성에 대한 선택을 받았음에 틀림없음.

- 1800년대 퀴닌(말라리아 특효약)이 널리 이용되었고, 그 덕분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들어가는데 어느정도 성공을 거둠. 열대열 말라리아가 아프리카 질환들 중 가장 치명적이었기 때문. 나중에 과학의 발전으로 황열과 수면병을 포함한 다른 수많은 아프리카 질병들을 잡거나 뿌리뽑을 수 있었음. 이것은 아프리카 쟁탈전을 가능하게 만듬. 하지만 아프리카는 또 다른 아메리카가 되지 않음. 아프리카 인들은 유럽인으로 대체되지 않음. 제한된 수의 정복자들이 우세한 집단이 되려면 지역 주민들이 반드시 죽어야 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은 죽지 않았음. 막강한 열대성 질환들이 지역적인 생물학적 방어와 함께 아프리카의 아프리카인들을 지켰음. 콜럼버스의 팽창에서처럼, 최근의 인간진화는 승자를 결정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음.

- 락토오즈 내성에 관한 이야기는 그것이 소의 가축화라는 문화적 혁신의 결과임. 이 혁신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락타아제를 생산하게 만드는 새로운 돌연변이에 대한 선택을 야기했음. 하지만 이게 이야기의 전부는 아님. 처음에 선택은 락토오즈 내성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개개인을 선호했지만, 그 돌연변이는 드물었기 때문에 사회적 영향을 별로 미치지 못했음. 소는 밭을 갈고 수레를 끄는데 이용되었고, 소고기를 이용되었으며, 가죽과 우지 같은 2차산물의 원천으로 이용됨. 하지만 락타아제를 계속 생산하는 유전자가 흔해졌을 때, 대다수의 성인이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되었을 때, 새로운 종류의 목축이 가능해짐. 즉 사람들은 소의 살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의 젖을 위해 소를 기름. 이 변화가 매우 중요한 것은, 낙농업이 도축을 위해 소를 기르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 낙농업은 에이커당 약 5배 많은 칼로리를 생산. 낙농인들은 비낙농 목축인들보다 같은 양의 땅에서 더 높은 질의 식량을 생산하기 때문에, 인도유럽계 사이에 더 높아진 락토오즈 내성의 빈도는 땅의 수용력을 증가시켰을 것임. 표준적 생태이론에 따르면, 비슷한 두 집단이 같은 자원을 이용할 때, 수용력이 더 큰 집단이 항상 승리. 이 사례에 적용시켜 말하면 원-인도유럽계는 같은 양의 땅에서 더 많은 전사들을 기르고 먹일 수 있었음.

- 원-인도유럽계는 낙농인이 되면서 소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고 곡물농사에 점점 덜 의존하게 됨. 그런일이 일어남에 따라 그들은 기동성을 갖게 됨. 이것은 군사적 이점임. 특히 농경인들과 싸울 때 그랬음. 농부들은 방어해야 할 집과 마을을 갖고 있는 반면 목축인들은 그들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싸울 수 있었음.

7. 중세의 진화 :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어떻게 똑똑해졌는가

- 900년대 초쯤 프랑스 북부에 자리잡은 아슈케나지 유대인 개체군들은 번영을 누리며 팽창. 이들은 라인란트에 정착했고, 노르만 정복이후 잉글랜드에 정착. 처음에 이들은 이슬람 세계를 상대로 중개인 역할을 하는 국제상인이었음. 이슬람 교도와 기독교도, 특히 이탈리아인들이 직접 교역의 가능성을 발견함에 따라 아슈케나지 유대인 상인들은 점점 더 지역적 거래로 옮겨갔음. 박해가 큰 문제가 되고 원거리 여행에 필수적인 안전이 더는 보장되지 않게 되자,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금융업이라는 한 직업을 전문적으로 개척. 기독교가 고리대금업을 금지한 탓에 이 분야는 아직 그들에게 기회가 열려 있었음. 1100년 경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대다수가 고리대금업자였던 것 같고, 이 패턴은 몇백년 동안 계속됨. 그러한 직업들(무역, 금융)에는 높은 아이큐가 필요했으며, 우리가 알기로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직종에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많이 종사한 개체군은 이들밖에는 없었음.

- 서유럽은 10세기와 11세기의 많은 기간동안 실질적 기근에 시달림. 하지만 이 시기 그 지역의 유대인 자료에는 그러한 단서나 흔적이 나타나지 않음. 이 도시 거주자들은 국제상인, 명예로운 지역 금융업자에게 걸맞은 귀족수준으로 살았음. 그들의 생활수준은 하급귀족 수준이었음.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따라서 영양실조와 이따금씩 찾아오는 기아에서 면제됨. 이것은 박해로 인한 유대인 집단의 감소를 벌충해주었고, 또한 선택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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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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