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일러 스위프트는 다른 누구도 아닌 테일러 스위프트로서의 특 성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이 말은 명백한 오류라고는 할 순 없지만,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어떤 경우에도 이러한 주장은 올바른 설명이 될 수 없다. 세상에 는 아주 많은 우연이 존재하며 성공과 실패는 그런 우연과 깊은 관련이 있다. H.J. 잭슨(H.J. Jackson)은 명성과 낭만주의 문학을 주제 로 다문 자신의 저서 <불멸을 위해 글을 쓴 사람들 (Thoic Who Wicefor Immortaliy)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워즈워스와 오스틴, 키츠, 블레 이크는 부분적으로, 또는 주로 우발적인 주변 상황으로 오늘날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말하는 우발적인 주변 상황이란 곧 우연을 의미한다. 어떤 제품이 인기를 끄는지, 어떤 경영자가 상징 적인 인물이 되는지, 또는 어떤 인물[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Domald Trump)]이 미국 대통령이 되는지는 수많은 우연한 사건에 달렸다. 성공한 정치인들 역시 워즈워스와 오스틴, 키츠, 블레이크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경영자와 스포츠 선수도 예외가 아니다.
- 우리는 공화당원과 민주당원들이 아마도 자신이 속한 그룹 내에 서 초반에 드러난 지지도가 아니라, 개인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 에 따라 특정 사안을 지지할 것인지 결정할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정치 사안은 노래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원들 로 구성된 그룹 내에서 어떤 제안이 초반에 많은 지지를 얻었다고 해보자. 그러면 다른 공화당원들도 그 제안을 지지하려고 한다. 반 면 민주당원들은 거부하려고 한다. 그리고 점차 공화당원들은 그 제안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민주당원들은 압도적으로 거부하게 된다. 그 이유는 단지 공화당원들이 우연하게도 초반에 그 제안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그룹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 난다. 민주당원들이 초반에 그 똑같은 제안을 지지한 경우, 다른 민주당원들도 몇몇 동료들이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아이디어를 지지하려 든다. 반면 공화당원들은 거부하려 든다 이러한 생각이 억지스럽게 느껴진다면, 오랜 세월에 걸쳐 공화 당원들과 민주당원들이 당의 존재감 있는 리더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여러 사안에 대한 견해를 실제로 바꿔 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예를 들어 최근 몇 년간 공화당원들은 이민에 대해, 그리고 기후 변화를 억제하려는 시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정확하 게 반대 견해를 취했었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현 상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다른 이들의 생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다른 이들의 생각은 유력 지도자가 중요한 순간에 특정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처럼 우연히 형성된 요소다.
-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서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뭔가를 좋아하거나 원하면, 그들도 그것을 좋아하거나 원한다. 이러한 현상은 그들이 다른 이들을 신뢰하지 않거나 그들이 틀렸다 고 판단할 만큼 충분한 근거가 없는 한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러한 정보 폭포는 실제로 성공과 실패에 관해, 그리고 인기와 무명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슬리와 클라인버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패션과 유행, 인기 있는 후보자에 대한 투 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들의 자기 강화적 성공, 소비자와 기 업이 선택한 기술의 확산, 범죄 및 정치적 움직임의 지역적 확산과 같은 사례 모두 무리 짓기(herding) 현상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사람 들은 다른 이들의 앞선 행동에 대한 추론으로 선택한다." 우리는 정보 폭포라는 경제 모형이 일반적으로 합리적 행동을 가정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책이나 영화, 노트북, 노래를 구매하려는데 충분한 정보가 없다면 다른 이들의 선택을 참조하는 것은 아마도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적어도 다른 이들을 신뢰한다 면(또는 불신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같은 견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 으면 많을수록 그들의 생각에 의존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된 다. 바로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군중의 지혜'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현실 세상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 들 역시 대부분 정보폭포 안에 있고 스스로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을 가능성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 책이나 영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때, 그것은 대개 네트워크 효과 때문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훌륭한 가수다. 나도 좋아한다.
그러나 그녀 역시 부분적으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그녀를 알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집단의 일원이 되길 원했기 때문에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국경일도 네트워크 효과에 도움을 준다. 물론 마틴 루서 킹은 자 신을 기리는 기념일이 없었다고 해도 유명했을 것이다. 그래도 마 틴 루서 킹 기념일은 오늘날 그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고 그를 기억 하는 데 기여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마블코믹스(Marvel Comics. 스파이더맨, 헐크, 토르 등)에서 핵심적인 창조적 원천으로 역할을 했던 스탠 리는 네트워크 효과를 일으키는 데 큰 기여를 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 우리는 '스타워즈' 현상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 위대한 영웅 어느 나라에서, 그리고 어느 시대에 누가 관심과 비난, 또는 외면을 받는가? 사람들은 누구를, 또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누가 역사적 영웅인가? 조지 오웰(Gcorge Orwel)은 <1984>에서 다음과 같은 섬득 한 말을 했다. "모든 기록은 파괴되거나 조작되고, 모든 책은 수정 되고, 모든 그림은 다시 그려지고, 모든 동상과 거리, 건물의 이름 은 바뀌고, 모든 데이터는 대체될 것이다." 우리는 소설 속 세상이 아닌 현실에서 여러 세대에 걸친 기억과 영웅에 대해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세대 간 사례). 또한 몇 년이나 몇 달, 또는 몇 주에 걸친 기억과 영웅에 대해 물어볼 수 있다(세대 내 사레). 마틴 루서 킹이 암살당했을 때, 나는 열세 살 소년이었다. 그래도 그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다. 어머니는 그를 존경해 야 할 영웅적 인물이라고 했다. (한번은 저녁을 먹다가 그를 "대중 선동가"라고 하셨지만 말이다. 그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런데 당시에 누가 킹이 정말로 상징적인 인물이 될지 알았겠는가? 그의 이름을 딴 국경 일이 제정될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는 1920년대 기독교가 처한 상황에 관해 놀라운 주장을 제시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알박스는 가령 신성한 장소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대부분은 예수가 살았던 시대에서 비롯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중 많은 것은 추측이나 발명에 서 비롯되었다. 알박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예수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생애, 그리고 마리아의 죽음에 관한 의심스러운 이야기들, 십자가의 미스터리를 둘러싼 신비적 고찰, 중세 시대에 교회에서 상연된 기적극(mystery play, 성서 속 사건이나 기독교 성인들의 삶은 다문 연극-유긴이), 대성당에 걸린 성스러운 초상화. 이들은 모두 순레자들이 다시 발견하고, 위치를 정하고, 놓아두고자 했던 것 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시대마다 기독교의 집단 기억이 그리스도의 삶에 관한 사건,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에 대한 기억을 오늘날 기독교의 상황과 요구, 소망에 따라 수정했디는 사실을 증언 해준다.
- 집단 기억
알박스는 집단 기억에 대한 가장 탁월한 설명을 들려준다. 특히 그는 종교적 기억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역사에 관해 무엇을 기억할까? 알박스는 이렇게 강조했다.
'종교 집단의 기억은 끊임없이 수정된다." 이는 하나의 수수께끼 다. 새로운 종교가 발생한 초창기에는 대부분 기존 종교의 믿음 체 계와 의식(씨x),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다양한 종파가 서로 경쟁을 벌인다. 초기 "기독교는 실제로 그 기원에 아주 가까웠다. 기억, 그리고 현재에 대한 인식을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초창기에 하나의 사건은 아주 다르게 기억된다. "이교와 정교를 구분하는 기준은 이교가 현재나 비교적 가까운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었지만, 정교는 아주 오래된 과거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충분히 가까운 똑같은 과거를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관찰하고 기억하는가다."
- 알박스의 설명에 따를 때 집단 기억은 형성되는 기간에 아주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확정된 것은 없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특정한 견해가 등장하고 고착화된다. 이러한 견해 속에는 영웅 과 이교도, 죄인과 성인, 승자와 패자에 관한 판단이 모두 포합되어 있다. 알박스는 이렇게 놀라운 주장을 했다.
"10세기, 또는 15세기 후에 복음서에 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이해 수준은 1세기와 2세기 의 이교도와 유대인, 동양인, 로마인보다 더 떨어질 것이다."
알박스의 설명에 따르면, 첫 번째 세대는 아주 중요하다. 그 부분적인 이유는 대단히 창조적이기 때문이다. 첫 세대는 뭔가를 발명 한다. 기독교의 경우 첫 번째 세대는 "변화와 적웅, 그리고 노력으로" 기독교 전통의 근간을 마련했다. 그 시대에 "유대인이자 예언자, 그리고 갈릴리인으로서의 그리스도 이미지는 전 인류의 구원 자로 바뀌었다'. 이러한 사실은 "주변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유대인으로서의 특성이 잊허거나 대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뮤직 랩 사례와 비숫한 구석이 있다. 기독교의 역사가 다르게 흘러갈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독일의 문화학자 알라이다 아스만은 이렇게 답했다. "기억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먼저 망각에서 시작해야 한다." 종교가 부응하고 진화하면서 과거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질 때, 오늘날의 가치와 요구가 더 중요해진다. 마틴 루서 킹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그는 인종 중립(racial ncutrality)을 내세웠던 온건파였을까? 아니면 인종 계급을 철폐하고자 했던 급진파였을까? 이에 대해 알박스는 기독교 신비주의자의 역할이 컸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알려지지 않았거나 외면받은 종교적 문헌"을 복원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에 관한 객관적인 연구 차원이 아니라, "그들이 관심을 기울이기 전부터 이러한 문헌들은 신비주의 내부에 존재했던 의식적인 종교적 열망에 대한 대답을 들려줬기 때문이었다". 좀 더 광범위하게 바라보자면, 교회의 전통 안에는 "특정 시기에 사라졌다가 세월이 흘러 다시 모습을 드러낸 모든 형태의 전통"이 포함되어 있다.
- 뛰어난 문학평론가 휴 케너(Hugh Kenner)는 한동안 다음과 같은 사실에 골몰했었다. "1600년에 살았던 어떤 영국인도 셰익스피어의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다. 1600년에는 셰익스피어의 시대란 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38 케너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1600년에 고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셰익스 피어는 당시 연극계를 제외하고 "대단한 유명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야기하자면 길다. 그 과정에서 존 헤민지스와 헨리 콘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배우였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함께 연극을 했고 그의 친구이기도 했다.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뒤, 두 사람은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하나로 엮어 1623년에 그 유명한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 최초의 셰익스피어 희곡 전집-옮긴이)를 출판했 다. <퍼스트 폴리오>가 없었다면 오늘날 셰익스피어 희곡 중 절반 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템페스트> <맥베스>를 읽어볼 수 없었을 것이다. 두 편집자가 쓴 그 책의 서문을 한번 읽어보자.
고백하건대 저자 자신이 작품을 선택하고 편집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유명을 달리하면서 그 권리를 잃어버렸기에 그의 작품을 한데 모으고 발표했던 그의 친구들과 그들의 역할, 그리고 그 들의 노고를 부디 부러워하지 말길 바란다. (예전에) 부정한 자들이 저 지른 사기와 도둑질로 훼손되고 왜곡되거나 도난당하면서 많은 이들
이 불법 판본으로 피해를 입었다. 이제 그 작품들을 수정하고 완벽하게 다듬어서 내놓게 되었다. 나머지 모든 작품의 구성도 그가 의도했던 그대로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을 모으고 전달할 뿐, 그를 칭 송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일이다.
- 그런데 <판타스틱 4>가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정확한 이유는 뭘까? 사실 우리는 정답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에너지 넘치고 참신한 캐릭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슈퍼히어로들 모두 재미있고 인간적이었으며 종종 말다톱도 했다. 그 새로운 형태의 만화는 뚜렷한 존재감과 함께 뭔가 달랐다. 그리고 훌륭했 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엄청난 판 매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주변 상황이 도움을 쥐야 한다. 초기 다운 로드와 같은 요인이 있어야 한다. <판타스틱 4>를 구매한 독자들 은 자신이 산 것을 좋아해야 했다. 여기서 8~18세의 주 독자층이 클럽에 가입했다고 느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판타스틱 4>는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집단의 일원이 되고, 또한 누구보다 유행에 밝은 사람이 되려는 독자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줬다.
- 랜드는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적 사고에 많은 영향을 미쳤 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이념을 통해서라기보다 <파운틴혜드>와 <아틀라스>에서 영웅적으로 그려낸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자들에 대한 초상을 통해서였다. 랜드는 이들 영웅을 패자와 거지, 세금과 규제를 통해 빼앗으려 하는 "남에게 의존해서 먹고사는 이들"과 대조적으로 그려냈다. 그녀는 부의 재분배, 그리고 재산권과 시장 질서에 대한 개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고 그러한 주장을 독려했다. 이러한 태도에 경제계와 공화당은 격하게 환영했다. 한편으로 랜드는 시대정신을 포착했다. 그리고 파도를 탔고 그 파도를 더 크게 키웠다. 그렇다면 랜드는 진지한 사상가였던가? 그렇다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 랜드는 자신의 이념을 놓고 논쟁을 벌일 정도로 자기주장 을 강하게 피력하지는 않았다. ((파운틴혜드>)에서 자유를 이렇게 정의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랜드는 자신의 객관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엄격한 철학적 차원에서 많은 글을 발표했다. 영향력 강한 자유주의 철학자인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그녀의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미국 철학 학회(American Philosophical Socicty)와 교류가 있던 에인 랜드 소사이어티(Ayn Rand Society, 랜드의 객관주의 철학을 연구하고 홍보하기 위해 설립된 학술 기관-옮긴이)는 그녀의 작품들을 다룬 논문과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자유 시장과 계약의 자유, 사유재산의 중요성 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차라리 프리드리히 하이예크(Fricdrich Hayck)나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또는 노직의 책을 읽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랜드의 명성과 지속적인 영향력은 그녀의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숭배적 반웅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개인의 도전과 인간의 독 립성, 그리고 모든 형태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향한 뜨거운 열 정을 전하는 랜드의 탁월한 역량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큰 역할 을 했다. 랜드는 폭포 효과를 일으켰고 특별한 형태의 집단 양극화로부터 도움을 얻었다. 그 결과 랜드는 주류 우파적 사고의 심리적 근간을 자극하고 뒷받침했다.
- 랜드에게는 굴하지 않는 영웅과 로맨스, 그리고 섹스에 관한 이 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정치적 신념을 바꾸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 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그녀의 작품들을 "욕망이라는 연료로 작 동하는 전향 기계" 라고 말할 수 있겠다. 랜드가 세상을 떠나고 수십 년이 흐른 뒤에 너새니얼은 이렇게 인정했다. "랜드와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열광의 중독자였다. 누구도 그런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바로 핵심이었다. "
- 폴 매카트니의 최고 전기 작가가 했던 의미심장한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비틀스는 분명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팝 밴드였다. 동시에 가장 운 좋은 팝 밴드이기도 했다." 실제로 비 틀스는 행운의 벼락을 적어도 두 번 맞았고, 그게 없었다면 성공하 지 못했을 것이다. 첫 번째 벼락은 브라이언 웹스타인을 매니저로 맞이한 것이었다. 두 번째 벼락은 웹스타인이 결국 비틀스의 프로 듀서를 맡게 된 조지 마틴(Gcorge Martin)을 우연히 만났다는 것이다. 이 둘은 가장 중요한 행운이었다. 그러나 비틀스를 상징적인 밴드로 만들어준 크고 작은 우연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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