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도한 부가 사회에 끼치는 단점은 명확하다. 이는 부자에게 사회적 혜택을 줌으로써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위협한다. 미국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에 따르면, “자유의 가치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누군가는 더 많은 권력과 부를 가지며, 그에 따라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다. 사회 속에서 자산이 넓게 퍼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의 한 작은 부분이 경제, 그리고 간접적으로 정치 또한 조종하는 것을 방지할 수 없다. 과도한 부는 사회적 결속을 파괴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 스 디턴은 “만약 부자들이 규칙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과도한 부자들의 수단과 영향 력은 선거운동 지원에서부터 로비와 정당 자금 지원, 문화적 헤게모니를 넘어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다층적 배제 메커니즘에 이른다. 과도한 부는 거대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형태는 오직 과도한 부자들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획득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 인 것은, 이미 1980년대부터 세금체계와 한계세율이 부자들에게 유리 한 방향으로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과도한 부자들의 권력은 의결 민주주의의 가능성들을 제거해 버린다. 부와 민주주의에 대한 합리적 토론은 거의 형성될 수 없다. 셀 수 없이 불의를 경험한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 주지 않고 지식인 엘리트들은 권력의 그림자 안에서 논쟁한다. 이 논쟁의 대부분은 자산분배에 대한 만족스러운 자료 를 제시하지 못한 채 진행된다.
- 상속은 일종의 자산이동으로서, 부모로부터 자식으로 이어진다. 상속재산은 근본적으로 가족 내부의 정체성과 결합되어 있다. 상속된 재 산은 가족 내부에서 연대의 형태로 인식된다. 평등주의적인 입장을 근 본적으로 적용한다면 자신의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부모가 행사하는 모든 종류의 영향력은 기회의 평등원칙에 모순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평등에 대한 좀 더 온건한 시각에 따르면 증 여 및 상속재산 같은 물질적 지원이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실용주 의적 관점에서라도 우리는 진보적인 증여 및 상속세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 상속된 재산은 능력과 상관없이 획득된 자산이다. 자산의 상속은 그것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가 그렇게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주의 사회와 모순된다. 이 경우 상속인 개인의 성질은 아무 관련이 없다. 그가 게으른지 근면한지, 실력자인지 무능력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특정 가족에서 출생한 우연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 민주주의와 자산집중은 서로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자산불평등의 정도가 높아지면 민주주의는 근 본적으로 약화된다. 과도한 부자가 사회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경우에도 이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빈도가 높다.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 에게 이는 명확한 사실이다. “오늘날 미국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거나 스스로 후보가 되기 위한 무제한의 정치적 매수가 횡행하는 과두제 국가이다."
오늘날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간의 사회적 관계는 오래전 플라톤이 묘사한 것과 같이 극단화되었다. “도시는 돈을 깔고 앉아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 과도한 부자들의 집단과 아무것도 없이 서 있는 극빈자로 양분된다.” 과두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미국과 유럽의 정치를 좌지우지하는지의 문제는 여러 사회분석 작업의 출발점이 된다. 1980년대 이래로 자본 이동성이 증가하면서 부유한 시민들의 정치적 입지는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기분 나쁘면 나라를 떠나겠다는 부자들의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세계 곳곳의 조세천국들은 자산가들에게 자산에 부과되는 세금을 절약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 안을 제시하였다. 최근 수십 년간 정치적인 개입과 법적, 그리고 조세 적인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재산관계를 직접 손보는 방식 이외에도 세금 등의 법적 절차를 통해 자산분배에 영향력을 행사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족국가는 자본의 통제를 포기하면서 결정 적인 개입수단을 내던지고 신속한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에 매진하게 되었다.
- 사람들은 자녀의 미래를 더 이상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된 후에야 - 아마도 자신의 후손들에게 혜택을 주려는 일을 그만두게 될지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이 불신하는 국가는 상속세 부과를 위해 정의에 입각한 합리적 근거를 제시한다고 해도 그것을 실현시킬 수 없을 것이 다. 상속세 소득을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일에 사용하는, 정의롭고 상호 연대하는 사회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없다면, 사람들은 가족적인 단결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생활에 대한 국가개입을 거부하는 것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동일하게 가진 성향이다. 여기에는 심지어 평등이라는 논거도 제시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과도한 부자들을 표적으로 하는 세금은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불평등 대우나 차별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 경우 과도한 부자들은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탄압받는 소수자로 포장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국민의 상당수가 언젠가는 스스로 최고수준의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속재산세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2018년 미국에서 상속재산이 과세대상이 된 경우가 겨우 1,700건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할 때 위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은 기이하기까지하다. 카를 마르크스는 상속에 대하여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틀렸다.
- 미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나는 정치 게임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대결이 아니라, 나의 억만장자와 너의 억만장자의 대결로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서로 다른 사회적 계급의 대표자들이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산가들의 각 정파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미 대통령 선거에 서는 부자들의 대표자에게 대항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표자가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이 출마하며, 이들 뒤에는 종종 더 부유한 사람들이 버티고 있다. 억만장자 없이는 정치 게임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돈이 오롯이 선거를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미 대선 게임에 참 여하기 위해서는 판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코크 형제[찰스 코크와 데이비드 코크 형제는 미 공화당의 자금줄로 유명하다는 이미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밋 롬니 후보에게 수억 달러를 베팅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이는 대선 결과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부유한 정치가는 자신을 쉽게 주류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등장시킬 수 있다. 그 자신이 주류에 속해 있으며, 주류의 문화적 코드와 분위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유한 정치가의 열정은 부 자체가 아닌, 사회 적 인정을 추구한다. 물질적 성공에는 그에 걸맞은 감정, 즉 나는 성공할 자격이 있었다'는 느낌이 따라와야 한다. 바른 품성의 문제는 여 기서 부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는 열쇠가 된다. 중간계층은 부자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사회적 기여를 인정한다. 평등주의적 원칙 이 중간계층 스스로의 자산을 위협한다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토크빌 Tocqueville은 1835년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넘치지도 비참하지도 않을 정도로 괜찮게 사는 사 람들은 자신의 재산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한다. 이들은 아직까지 빈곤 에 이웃해 있기 때문에 재산에 강력한 집착을 가진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과 가난한 삶들 사이에는 아주 조그마한 상속재산 정도의 차이밖에는 없다는 사실이 두려운 나머지, 자신의 모든 두려움과 희망을 그 재산에 집중시킨다.
- 2008년의 금융위기는 미국과 유럽 어디에서도 사유재산 규정이나 과도한 부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지 않았다. 정치적 수사의 초점은 부자들을 조금 누그러뜨리려는 데 맞춰졌다. 금융 부문 스스로의 잘못으로 발생한 손해를 전체 국민의 혈세로 메웠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회적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자산세 폐지나 유산세 감면 등의 또 다른 부자친화적 대처들이 가능할 수 있었다. 과도한 부자들의 사회적 지위는 경제위기를 거치며 결정적으로 강화되었다.
- 도덕적 감정은 부에 대한 스토리텔링에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분석에 있어서 특히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부에 도덕적 가치를 매기는 것은 '자산'이라는 용어의 사용에서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부자들을 더 나은 사람들로 이야기하며, 윗사람이라는 말도 일종의 도덕적 위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게오르크 지멜Georg Sinmel이 1900년에 말했듯이 부는 “심지어 일종의 도덕적인 업적으로 ... 존경할 만하다는 개념 이나, 또는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일반적인 표현 속에서 품위 있는, 즉 더 나은 공적 집단'으로 나타난다. 이는 말뿐이 아닌 그것과 상관되는 현상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을 채무자처럼 대하며, 거지를 내쫓으며 화를 내고,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당연히 우월하다고 믿는 것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
-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도 19세기 말 그의 유한계급론』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좋은 인성적 특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경향을 고찰한다. “한때 쓸모 있음의 증거 정도로 여 겨지던 부는 현재 여론에서 스스로 마땅한 것이 되어 버렸다.16 베블 런이 보기에 자산축적의 목표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존경과 영광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첨예화한다. “오직 낭비만이 위신을 가져다준다. 여기서 사회적 위상은 부자들의 목표가 되며, 그에 따라 좋은 부와 나쁜 부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부자가 자수성가 한 백만장자인지, 금수저인지는 그의 부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 부 자체가 부자에게 영광을 부여하며, 그의 탁월한 사회적 신분과 흠잡을 데 없는 명성을 만들어 낸다. “부는 위신의 독립적이며 최종적인 기반이다. 사회적 위상은 특정한 자산의 일부 형태로 과시될 수 있다. 과시에는 특정한 종류의 자산이 다른 것들보다 더 적합하다. 예를 들어 주거지 같은 것은 주식 뭉치보다 훨씬 더 과시하기 좋다. 베블런에 따르면 낭비는 언제나 지배계급의 일이었다.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게으름을 통해 사회적 위상은 더욱 강화된다. 그 목 적이 원초적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의 상승에 있기 때문이다.
- 2012년, 토머스 프랭크Thomas Frank의 책 『가난한 억만장자: 거대한 허풍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부유한 사 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략으로 스스로를 희생자로 내세운다는 가설 을 발전시켰다. 억만장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질투하고 미워한다고 끊임없이 불평한다는 것이다. 전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silvio Berlusconi는 “이 나라는 옳지 않아”라고 투덜거리곤 했다. “국부에 기어 했는데 대접이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90억 유로의 자 산을 보유하여 2010년 포브스 세게 부자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그에 걸맞은 사회적 인정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