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사회 2014. 10. 17. 22:11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 최장집 (엮음) 지음
출판사
후마니타스 | 2014-04-2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책최장집 교수가 한국어판 서문을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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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아 벨리는 당시 피렌체의 로마교황청 대사이자 손아래 귀족친구였던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보낸 1513년 12월 10일자 편지로 군주론을 집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서구문학 전통에서 가장 유명한 사신으로 평가되는 이 편지에서 그는 당시 자신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저녁이 되면 귀가해 공부에 들어갑니다. 문앞에서 나는 진흙이 묻어 온통 더러워진 옷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는다오. 옷을 잘 가다듬은 다음 옛 선현들의 궁정으로 들어가면, 그분들은 나를 융숭하게 맞아들이지요. 그리고 오로지 나의 몫으로 주어진 것을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만 먹습니다. 나는 그들과 대화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며, 그들은 또 정중하게 대답해 준답니다. 모든 근심걱정도 잊어버리고, 빈궁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도 나를 놀라게 하지 못합니다. 나는 완전히 그들에게 빠져듭니다."
이 편지는 당시 그가 어떤 궁핍속에 살았고, 얼마나 헌신적이고 경건하게 역사로부터 교훈을 끌어내려 노력했는지, 또 어떤 자세로 군주론과 강론을 집필하고 있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줌. 이 편지의 다른 부분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이지만, 마키아벨리는 새 정부에서 공직을 얻고자 하는 희망으로, 새로 선출된 교황 레오 10세의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에게 군주론을 헌정할 생각이었음. 하지만 나중에 그 대상을 바꾸어 줄리아노의 조카인 우르비노공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했음. 마키아벨리는 군주정 지지자도 아니고 메디치 가문을 좋아하지도 않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메디치가의 수장에게 군주론을 헌정하고자 했던 데는 두가지 목적이 있었음. 하나는 생계유지의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복귀해 피렌체를 강력한 국가로 건설하는 데 헌신하고자 함이었음. 도시국가 내지 도시 공화정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고 당시 유럽은 절대왕정을 통해 새로운 국가체제가 형성되는 방향으로 급변하고 있었음. 마키아벨리 역시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음. 그러나 군주론을 통해 공직을 얻고자 했던 그의 원래 목표는 실패로 돌아감. 그의 여망에 대해 돌아온 대답은 무관심 혹은 무관심으로 표현된 사실상의 거부였음. 한참 뒤에야 교황 클레멘스 7세는 마키아벨리에게 피렌체 역사를 집필하는 프로젝트를 맡김. 그 결과물이 마키아벨리의 마지막 작품이라 할 피렌체사 였지만, 이는 메디치 가문이 보여준, 지나치게 때늦은 반응이었음. 그나마도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마키아벨리를 묶어 두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 마키아벨리는 귀족 엘리트 가문이 아닌 중산층 평민출신으로 비교적 낮은 신분배경을 갖고 있었음. 그는 업무수행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베토리나 귀치아르디니와 같은 명문 귀족가문 출신 외교관이나 민병 조직자로서 마키아벨리의 공직 수행은 현명한 실질적 조언자라는 평가를 받음. 그러면서도 파당적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독립적인 정신과 태도로 공직에 임했음. 그러나 그의 독립적인 정치신조와 낮은 출신배경은 귀족들이 그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요인으로 작용. 그가 업무에서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공적은 늘 다른 사람엑 돌아갔음. 최근 연구들은 1512년 말 소데리니 정부가 붕괴되었을 때 다른 행정관들 대부분이 현직을 유지한 반면 마키아벨리는 즉시 파직되고 그 다음해 체포되고 고문까지 받게 된 이유에 주목함. 그것은 정권교체의 혼란속에어 있을 수 있는 단순한 오해나 사고가 아니라, 공직 기간동안 그가 보여준 정치적 태도와 관점이 귀족들의 반감을 불러오고 그들 사이에서 강력한 적대자들을 만들었음을 의미하기 때문. 그는 파직된 이후 사망할 때까지 불운의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게 살아야 했음. 그의 저술 전체를 통해 흐르는 비관적 정조는 당시의 정치환경뿐 아니라 이런 그의 내면적 체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짐. 사망하기 얼마전 귀치아리디니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자신을 가리켜 역사가, 희극작가, 비극작가라고 표현. 그만큼 자신과 조국 이타릴아의 비극적 운명은 그의 모든 역사적, 정치적 저작의 배면에 흐르는, 드러나지 않는 주제였다고 할 수 있음.
- 마키아벨리가 어떻게 새로운 비전으로 국가를 볼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 1494년 프랑스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공. 이는 피렌체가 위치한 토스카나 지방과 북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로마교황청, 나아가 남부의 나폴리 왕국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혼란에 빠뜨린 역사적 대전환점이었음. 이로써 어느 한 압도적 권력이 부재한 가운데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로마교황청, 나폴리의 5대 지역강국 사이에 유지되고 있던 세력 균형이 와해되고 말았기 때문. 로디의 평화라고 불리었던 이 세력균형 체제는 1454년 체결된 이래 1494년 프랑스와 그 후 에스파냐가 이탈리아를 침공하기 전까지 이 지역에 전례없는 안정적 평화공존을 가능케 함. 군주론 20장에서 마키아벨리가 말한대로, 일정한 세력균형은 강력한 외세의 개입이 존재하지 않는 조건에서 가능한 것이었음. 이탈리아 내부의 주변 도시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두 제국이 등장하면서, 피렌체를 포함한 이탈리아 북부 지역국가들은 외세의 먹잇감으로 전락. 이런 환경에서는 주민들 사이의 불화를 조장하거나 파벌로 분열시키는 것과 같은 전통적 통치방식은 더이상 허용되지 않음. 즉, 강력한 외부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국가 내부의 통합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치가 재구성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했던 것. 군주론은 바로 1494년 토스카나 지방에 대한 프랑스의 침공과 그오 린해 메디치 정부의 붕괴 그리고 뒤이은 피렌체의 정치혁명으로부터 시작해, 1512년 에스파냐군의 침공으로 프라토를 방어하던 2천명의 피렌체 민병대가 살육당하고 도시가 약탈당하는 참극이 벌어진 때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함
- 군주론은 테제와 안티테제, 또는 이율배반적 구분을 통해 두 범주로 대립항을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이분법적 구조로 유명. 제일먼저 공화정과 군주정의 이분법이 등장하고, 군주정은 다시 세습된 것과 새로이 획득된 것으로 나뉘며, 통치의 두 유형으로서 프랑스의 분권형과 투르크의 중앙집권형으로 구분. 6, 7장은 이런 구분의 마지막 단계임. 6장에서 저자는 완전히 새로운 군주국을 다루면서 자신의 무력과 비루트를 통해 획득한 것과 타자의 무력과 포르투나를 통해 획득한 것의 두 유형으로 구분함. 6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비르투와 무장으로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건설한 전설적 통치자들로 모세, 키루스, 로물루스, 테세우스를 꼽음.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능력을 가진 국가 창건자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모델로 할 수는 없다고 말함. 그렇다면, 대안으로 남는 것은 교황(알렉산데르 6세)을 아버지로 뒀다는 행운과 타자의 군사력으로 권좌에 오른 인물인데, 군주론 7장에서 등장하는 패러다임 인물이 바로 체사레 보르자임. 보르자는 기본적으로 행운에 힘입거 군주의 지위에 올랐지만, 동시에 그는 비르투를 현현하는 인물임. 마키아벨리가 오늘날에도 인기있는 작품으로 공연되고 있는 희극 만드라골라의 작가이고 여러 소네트와 수많은 서한들을 통해 문학적 자질과 명문들을 남긴 문장가임을 생각한다면, 군주론의 구성자체가 극적인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함. 즉 그는 평면적으로 논리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류가 진행된 마지막 단계인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을 극적으로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 바꾸어 말하면 주인공을 등장시키기 위해 먼저 분류를 하고, 비르투와 포르투나의 이념형적 인물을 배열시키면서 그 초점을 보르자에게 맞추고 있는 것이다.
- 군주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도 배워야 함. 군주론 18장은 신의를 지키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한편, 새 군주에게 국가를 유지할 목적으로 악을 권장하는 가장 악명높은 장임. 여기에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국가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의, 자비심, 인간적임과 종교적 경건함에 반하는 행동을취할 필요가 종종 있기 때문. 할수만 있다면 착하게 사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필요할 경우 어떻게 악해질 수 있는지도 알아야만 한다고 말함. 나아가 군주는 국가를 유지할 목적을 위해 부도덕하게 행위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강요된다는 점도 알아야 함. 이 경우 보통의 기준에서는 부도덕한 정치행위가 일상의 도덕적 규범이나 지배적인 종교적, 기독교적 윤리보다 높은 수준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를 남김
- 정치는 인간의 이기적 추구가 빚어내는 권력을 둘러싼 쟁투, 그리고 그것이 동반하는 악, 폭력, 부패, 타락과 같은 부정적 현상과 불가피하게 혼합될 수밖에 없음. 이런 성격들이 정치의 특성을 만들어냄. 정치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된 고대 그리스 이래로 철학자들은 정치를 이상적이고 도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이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했음. 중세 기독교 시대에는 종교적 목적에 부합하는 정치만이 정당화되었음. 그러나 이런 접근은 결과적으로 정치를 부정적으로 이해하게 만들었음. 정치와 윤리, 정치와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됐고, 정치는 윤리의 하위범주 내지 종교의 세속적 실천을 위한 한 하위분야로 자리매김되었음. 앞의 것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따르는 정치철학이라면, 뒤의 것은 기독교적 전통에서 이해되는 정치사상. 그러나 정치를 도적적 규범이나, 종교의 세속적 실천의 규칙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더 멀어지고 정치의 타락은 더 심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음. 마키아벨리가 보았던 것은 이 패러독스임
- 당위적으로 있어야 하는 상상 속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탐구한다는 말은 정치에 대한 도덕론, 형이상학적 접근을 부정한다는 것을 뜻함. 정치를 있는 그대로 탐구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핵심은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실제 정치 행위에 대한 탐구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행위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비르투가 정치적 처방에서 중심요소로 자리잡게 됨. 즉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현실주의에서 행동주의는 그 핵심적 구성요소의 하나임
- 마키아벨리는 "운명의 여신은 우리 행동의 절반에 대해서만 결정권자의 역할을 하며 나머지 절반 혹은 거의 그 정도는 우리가 통제하도록 사실상 허용하고 있다"고 말함. 풀어 말하면 현실정치에서 행위와 결과간 인과관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행위 여하에 따라 열려 있다는 것. 그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와 역량, 또는 이성만의 결과도 아니고, 환경, 행운, 기회를 포함하는 객관적 조건의 결과물만도 아님. 운명은 절반밖에 사태를 지배하지 못함. 나머지는 행위자가 얼마나 비르투를 갖느냐에 달려 있음.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포루투나가 설사 불리하다 하더라도 끝내는 자기가 의도한 방향으로 환경자체를 제압하면서 일정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데, 그것이 비르투라는 것임. 정치적 행동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정치적 비르투아먈로 마키아벨리 역사철학의 중심에 자리잡음
- 17장에서 그는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면서 기만에 능하고, 위험은 감수하려 하지 않으면서 이익에는 밝다"고 말함. 이는 인간 본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표현한 대표적 구절이자, 냉정한 현실주의적 인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용되는 유명한 문장이기도 함. 여기서 인간은 물질적 이익을 획득하고자 하는 제어할 수 없는 욕망과 자기이익의 원리에 의해 추동되는 지극히 이기적인 동물로 인식됨. 그렇기 때문에 외양만으로는 속임을 당하기 쉽고, 따라서 사랑보다 두려움에 기초하지 않는 한 신뢰를 끌어내기 어려우며, 그런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 유지된다고 말함. 두려움이야말로 정치적 권위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군주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인간본성에 대한 인식에 따른 것. 인간본성을 이렇게 이해한다는 것은 또한 인간의 정치가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다고 인식함을 의미. 인간성에 대한 이런 비관적 관점은 그로부터 추론되는 특정의 이론적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특히 다음 두가지 점을 말할 수 있음. 첫번째는, 갈등을 인간정치행위의 본질로 이해한 것. 갈등이 필연적인 것은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무한한데 자연자원과 경제적 자원은 희소한 까닭에 인간은 항상적 경쟁과 투쟁상태에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기 때문. 정치행위의 저변에는 강자와 약자를 굴종시키고, 제한된 재화에 우선적으로 접근할 특권을 가지려 투쟁하는 검투장이나 다를 바 없는 권력투쟁이 있을 뿐. 이런 환경에서 모든 욕구를 실현할 능력은 한정되고, 비르투를 획득할 능력 역시 포르투나에 의해 제약됨. 하지만 "인간은 "모든 것을 얻으려고 열망하지만, 모든 것을 얻지는 못한다."는 이 가혹한 진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음. 마키아벨리가 이해하는 정치세계에서 음모, 침략, 전쟁, 모든 형태의 국내적, 국제적 폭력은 안정적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이 아니라 자연적 정치현상으로 나타남. 이 점에서 그는 분명 평화주의자가 아님. 그러나 유념할 것은, 그가 갈등의 존재를 단지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런 갈등을 적절하게 제도화함으로써 정치체제의 안정과 자유의 실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 그는 귀족과 평민간의 강력한 긴장을 바탕으로 위대함을 건설한 로마를 경험적 모델로 삼아 일종의 동태적 균형에 기초한 역동적 체제를 대안으로 제시. 두번째는, 정치에서 선택은 이상주의적 최선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최소주의적 접근 내지는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점. 정치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을 다루면서 그러한 불편과 고통을 경감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지, 그것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 군주론 21장에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말하면서 "어떤 국가든 항상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선택이든 꼭 필요한 것인지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어떤 하나의 불편을 피하려고 하면 반드시 또 다른 불편함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실천적 이성이란 바로 그런 불편함의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고 그 가운데 가장 덜 나쁜 것을 최선인 것으로 간주해 선택하는 것에 있다."라고 권고. 정치에서 선택이란 두개의 선 가운데 차선을 발견하는 것이라기 보다 두개의 악 가운데 차악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임
- 억압하고자 하는 귀족들의 욕구는, 군주론에서 말하듯이 군주정에 대한 근본적인 위험이 되는 것처럼, 강론에서도 공화정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이 된다고 말함. 귀족들이 군주를 도와 민중을 지배한다면 공화정은 언제나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음. 그렇기 때문에 귀족가문의 젊은 세대들은 민중에 반해 군주와 동맹하거나 귀족주의적 공화정을 고수하기보다 민중의 정치참여를 허용하는 것이 그들의 부와 명성을 확대하고 고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음. 요컨대 강론은 참주를 제거하고, 군사적, 정치적 과업에 민중을 포섭하고 참여시키는 것이 귀족들의 이해관계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
- 정치의 이데올로기화는 정치현실과 사회적 갈등을 그 자체로 인식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억제하는 효과를 가짐. 이상적 담론이 현실을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적 담론 역시 현실을 말하지 않거나 왜곡함. 그러므로 정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지배는 정치가 사회의 다원화와 갈등,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현상유지를 도모하려는 기득이익에 의한, 기득이익을 위한 정치 이상일수는 없음. 또는 어떤 다른 종류의 기득 이익에 봉사하는 역할을 할 것임. 그런 정치와 사회는 정태적이고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의 정치는 마키아벨리가 좋은 정부형태의 모델로 삼았던, 소란스럽고 갈등적이지만 역동적인 로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의 한국 정치현실과 관련해볼때, 그 어느측면에서의 구분을 말하던 간에 현실주의가 약한 것은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임. 이런 환경에서 우리 모두는 겉으로 좋은 것만 말하고 속으로는 거짓말하는 숨은 마키아벨리인지 모른다. 현실주의가 약해질 때 도덕적인 것도 타락한다. 정치담론이 이상적이라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실제로는 권력론적이고 수사적일 뿐이다. 도덕담론을 이원론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이상적 규범과 현실세계 가운데 어느 하나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이제 우리는 마키아벨리를 통해 숨은 마키아벨리의 허상을 벗겨 버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마키아벨리는 모든 정치사상가들 중에서 인간의 정치행위에 개입된 다른 여러 요소들은 배제하고 그것의 어두운 측면을 포함해 권력의지와 권력을 본질로 하는 정치자체를 가감없이 사실대로 보고자 했던 가장 정직한 정치철학자이자 이론가임. 혹자는 그의 정치관이 정치현상을 과장하고 극화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가공할만한 잔인함도 서슴지 않는 무/부도덕함을 긍정적으로 설파한다고 비판하기도 함. 그러나 그것은 그가 무도덕하거나 부도덕해서가 아니라, 정치현상, 정치적 행위 그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 그러므로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를 거치지 않을 수 없음. 이 점은 거의 모든 주요 철학자와 이론가들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왜 그에 대해 논평했는지 그 이유를 말해줌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짧은 헌정의 편지로 시작. 그 배경은 다음과 같음. 1512년 9월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짐에 따라 메디치 가문의 통치가 복원되었는데, 그 때문에 같은해 11월 마키아벨리도 14년간 재직했던 제2행정위원회 서기장직(오늘날 외교안보수석 정도)에서 해임됨. 그 이듬해 2월 마키아벨리가 반메디치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어 고문과 재판을 받고 투옥됨. 다행히 그해 3월 메디치가문의 레오 10세 교황이 선출되면서 특사를 받음. 그 뒤에는 피렌체 남쪽에서 7마일 떨어진 산탄드레아 농장에 은둔해 건강을 회복한 다음, 장작을 만들고 새를 잡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빠른 속도로 군주론을 집필함
- 포르투나는 인간의 의지로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의 우연적 힘 내지 불확실성을 가리킴. 신화적 의미에서 운명은 여신으로 상징되는데,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행운의 제물을, 다른 손에는 악운의 칼을 들고 있는 것으로 형상화. 따라서 운명의 여신이 어느 손으로 내려치느냐에 따라, 상서로운 길운을 뜻하기도 하고 정반대로 가혹한 악운에 희생당하는 상황을 뜻하기도 함.
- 이탈리아가 여러 도시와 자치체로 나뉘어 격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라고 불릴만큼 당대 최고의 자유와 번영을 누렸다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 12세기 중반 이래 이탈리아를 휘감은 갈등과 분열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파와 교황을 지지하는 겔프파로 나뉘어 전개됨. 이 갈등 때문에 이탈리아 남쪽에 위치한 나폴리 왕국의 비극이 시작됨. 처음 교황은 황제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 앙주가문에 도움을 청했고, 그 대가로 앙주가문이 나폴리 왕국을 지배하게 됨. 그러나 13세기 말에 들어서 나폴리의 왕권은 에스파냐의 아라곤 가문으로 넘어감. 마키아벨리 시대에 이탈리아로 들어온 프랑스와 에스파냐 권력 모두 이 나폴리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앞세웠는데, 그 원인이 바로 이때만들어짐. 기벨린파와 겔프파 사이의 오랜 갈등에 대해 도시들간의 세력확대 투쟁도 끊이지 않았음. 그 중심에는 북부 이탈리아의 패권을 두고 경쟁했던 밀라노와 베네치아가 있었음.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 에스파냐 등 외세의 관심 역시 이 지역에서 도시국가들 사이의 싸움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쏠려 있었음. 다행히 1454년 북부 이탈리아의 로디에서 밀라노와 베네치아 사이에 평화조약이 맺어졌고, 이를 기초로 일정한 세력균형체제가 형성됨. 11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 이 평화체제는 두 내용으로 이루어짐. 하나는 당대 이탈리아의 5대세력이었던 교황국, 나폴리,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사이에서 어느쪽도 자신들의 세력권을 더 확대하지 않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외세가 이탈리아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처해 막자는 것. 그러나 이 체제는 50년만에 붕괴됨. 마키아벨리 시대란 바로 이 평화적 균형상태가 깨진 이후를 말함. 시기적으로는 1494년이 그 기점임
- 군주론에서 프루덴차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곳은 3장임.
"로마인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현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즉 시간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을 즐겨라(사태를 관망하면서 시간을 벌어라)라는 격언을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보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르투와 실천적 이성에서 비롯되는 이로움을 몹시 좋아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가져오는데, 선한 것과 함께 악한 것을, 악한것과 함께 선한것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어 prudenzia에 가장 가까운 영어표현은 prudence임. 아무튼 마키아벨리에게서 푸르덴차란 실제의 정치에 실효적인 유익함을 줄 수 있는 실천적 인식능력 내지 이성과 지식을 포함해 경험에서 얻은 지혜와 현명함 등 여러 요소를 행동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모두를 가리키는데, 네체시타의 개념과 연관해 생각해 본다면 바로 그런 네테시타를 이해하고 알아채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 스키너와 프라이스는 군주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념가운데 마키아벨리 스스로가 정의를 내린 유일한 것이 프루덴차라고 하면서, 21장의 표현을 든다.
"실천적 이성이란 바로 그런 불편함의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고 그 가운데 가장 덜 나쁜 것을 최선인 것으로 간주해 선택하는 것에 있다."
- 현명한 사람이라면 현명한 궁수처럼 해야 한다. 자신이 맞추고자 하는 목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궁수가 있다고 치자. 그는 자신의 활이 갖고 있는 비르투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목표지점보다 훨씬 높게 겨냥한다. 목표와 같은 높이가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이 조준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신생군주가 장악하고 있는 신생군주국의 경우 그 군주국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부딪치는 어려움의 많고 적음은 그 군주국을 획득한 군주가 가진 비르투의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고자 한다.
- 로마제국 멸망의 주된 원인을 살펴보면, 누구나 그것이 고트족을 용병으로 고용한데서 시작되었다는 알게 될 것이다. 그 시작에서 고트군은 로마제국의 군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기 때문. 그리고 제국군대에서 빠져나간 모든 비르투는 고트 군대로 옮겨갔음. 따라서 나는, 어떤 군주국이든 자국군대 없이는 안전하지 못하다고 결론짓겠다. 안전하기는 커녕 그런 군주국은 운명의 힘에 완전히 종속되게 마련이다. 역경에 처했을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비르투가 없기 때문이다. 현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자 판단은, "자신의 무력에 기초하지 않은 권력의 명성보다 더 허술하고 불안정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 신민들의 단결과 충성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군주는 잔인하다는 오명에 개의치 않아야 함. 지나차게 많은 자비심 때문에 무질서가 지속되는 것을 방치함으로써 살인과 약탈이 만연하게 하는 군주보다 본보기로 극소수를 처벌하는 군주가 훨씬 자비로운 군주일 것이기 때문. 본보기로 극소수를 처벌하는 군주는 특정한 개인을 해치는 데 비해, 과도한 자비심을 갖는 군주는 대개의 경우 공동체 전체를 해치기 십상
- 군주가 신의를 지키며 교활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칭송받을 만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의 경험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오늘날 위업을 이룬 군주들이란, 신의에 대해서는 많이 고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간교함으로써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으며, 결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정직성에 기초를 둔 사람들을 능가해 왔다는 사실임. 따라서 당신께서는 두종류의 싸움, 즉 하나는 법을 통한 싸움과 다른 하나는 힘으로 하는 싸움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 첫번째 방법은 인간에게 합당한 것이고, 두번째는 짐승에게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첫번째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두번째 방법에 의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따라서 모름지기 군주는 짐승의 방법과 인간의 방법, 두가지 모두를 잘 알아야 한다.
- 고대의 저술가들은 아킬레우스와 다른 많은 고대군주들이 반인반수인 키론에게 맡겨져 그의 가르침으로 양육되었다고 말함으로써, 이를 비유적으로 가르쳤음. 반인반수의 스승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군주는 두 본성 모두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 어느 한쪽이 없이는 다른 한쪽은 오래 지속될 수 없음.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알아야 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여우와 사자를 선택적으로 따라야 함. 사자는 함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는 어렵고 여우는 늑대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기 때문. 따라서 함정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여우가 될 필요가 있고 늑대를 혼내주기 위해서는 사자가 될 필요가 있음. 단순히 사자의 방법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다. 따라서 현명한 통치라자면, 신의를 지키는 일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자신이 약속한 이유가 소멸할 경우,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지켜서도 안됨. 만일 인간이 모두 선하다면 이런 계율은 유효하지 않을 것임. 그러나 사람들은 비열하고 당신과의 신의를 잘 지키지 않음. 그렇기에 마찬가지로 당신 역시 그들과의 선의를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님. 또한 군주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그럴듯하게 둘러댈 정당한 이유를 항상 갖고 있음. 이점에 대한 근래의 예는 무한히 들 수 있으며, 얼마나 많은 평화조약과 얼마나 많은 약속들이 군주들의 배신행위로 완전히 파기되고 무효화되었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음. 여우의 방법을 더 잘알았던 사람들이 더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이미 판명된 사실. 그러나 이 같은 여우의 본성을 잘 숨길줄 알아야만 한다. 즉 능숙한 기만자이자 위선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 의심의 여지없이 군주는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과 자신이 직면한 반대를 극복할 때 위대해짐. 이런 이유로 운명의 여신은, 다른 경우에도 그렇지만 특히나 세습군주보다 더 큰 명성을 필요로 하는 신생군주를 위대하게 만들고자 할 때, 그를 위해 적을 만들어내고 이들로 하여금 신생군주를 공격하게 함. 그렇게 해서 그 신생군주가 적대세력을 극복할 기회를 만드러주고, 그 적대세력을 사다리 삼아 더 높이 올라가게 해줌.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현명한 군주라면 그런 기회가 주어질 경우, 자신을 향한 적대감을 교모하게 조장하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성취한다.
- 인간이란 자시 자신의 문제에만 몰두해 있고 그러면서 자기기만에 쉽게 빠지기 때문에 이 아첨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가 어려움. 더욱이 아첨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고 할 때는 경멸의 대상이 될 위험에 처하게 됨. 당신 자신을 아첨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에게 진실을 말해도 당신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나 당신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되면 당신은 존경심을 잃게 된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라면 제3의 방도를 따라야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국가안에 있는 지혜로운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다. 군주는 이들에게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다만 오직 군주가 요구한 사안에 대해서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경우는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군주는 모든 일에 대해 물어야 하고 이들의 의견을 청취한다음 스스로 자신의 방식대로 숙고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이들 조언자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그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더욱더 잘 받아들여진다고 믿을 수 있도록 처신해야 함. 이들 선발된 조언자를 제외하고 다른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여서는 안됨.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따라야 하고 그가 내린 결정을 둘러싸고 동요해서는 안됨. 이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은 아첨꾼에 둘러싸여 재난을 당하던지 아니면 변덕스러운 의견들에 휘둘려 자주 입장을 바꾸게 된다. 그 결과 그는 형편없는 사람으로 평가받게 됨
- 운명은 가변적인데 인간은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인간의 처신방법이 운명과 조화를 이루면 행복해지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불행해짐. 그럼에도 나는 저돌적인 것이 조심스러운 것보다 낫다고 판단한다. 운명의 신은 여자이고 그녀를 당신의 통제하에 두고자 한다면 때려눕힐 듯이 달려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냉담하게 행동하는 남자보다 이렇게 행동하는 남자가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여성으로서 운명의 여신은 항상 젊은 남자들에게 끌린다. 그들은 조심스럽기 보다는 맹렬하게 달려들고 그래서 그녀를 좀더 대담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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