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의 천재들

사회 2021. 4. 18. 18:47

- “지나치게 자주, 기업들은 생각한 뒤 행동한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 선임연구원 줄스 고더드 Jules Goddard 박사가 한 말이다. 기업은 거들먹거리면서 아이디어를 엄격히 따지지만 정 작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고더드는 그러지 말고 행동 한 뒤 생각하라”고 주장한다. 아이디어를 시험해보고 문제를 재빨리 발견하면 생각이 확장되고 아이디어가 개선된다. 행동부터 한 뒤 생각한다면 기업의 혁신과 발전은 좀 더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다.
- 학계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내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실험을 고안하고 분석하면 비난을 받는다. 이러한 방법을 p- 해킹 - hacking 이라 부르는데, 유의미한 p - -value을 이끄는 특정 패턴을 찾기 위해 데이터를 부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 비즈니스에서 점점 많이 보이는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 이다. 이는 간단히 말하면 민첩하고 역동적인 실험 의 한 절차로, 여러 부서가 혼합된 팀에서 사업을 성장시키는 가 장 효율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다. 로리 서덜랜드가 말했듯이 비즈니스에서는 심리학적 원리를 경험적 증거로 증명하는 것이 중요 하지 않다. 그보다는 상업적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한데, 이를 위해 엄격한 과학적 방법은 필요하지 않다. 학계에서는 어떤 실험의 결과가 한낱 우연에 불과할 확률이 20분의 1일 때에야 만족하는 반면, 비즈니스에서는 조금 더 관대하게 10분의 1일 때에도 만족한다. 이처럼 행동과학을 사업적 맥락에 적용할 때에는 그로스 해킹의 사고방식이 도움이 될 것이다. 가설을 세우고 몇 가지 개입을 고안하여 시행한 다음에는 사업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실험을 늘리는 것이다. 아무 가치 없는 결과만 내기보다는 실용성을 극대화하고 실험의 본질을 바꿔 그동안 투자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라. 결국 상업적자원은 학계의 보조금과 달리 반드시 회수돼야 하는 것이니까.
- 비즈니스에서 그로스 해킹이라 불리는 테스트 앤 런test and learn (지속적 시도와 시행착오를 통해 변화를 꾀하는 방법) 접근법은 실생활에서 긍정적인 행동 변화를 이끄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응용행동과학에서는 이러한 그로스 해킹 접근법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로리가 암시했다시피 수집한 증거의 효용성은 그 증거를 바탕으로 내리는 결정이 얼마나 중요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비즈니스에서는 '올바를 필요가 없다. 그저 적당히 올바르거나 아니면 수익성 좋은 시장을 충분히 점유하고 있으면 된다. 결국은 경쟁자보다 크게 그릇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임의적 숫자를 바탕으로 한 학계 수준의 엄격한 통계적 유의성에 목매지 마라. 그 대신 사업 결정의 맥락에 적절하다고 느끼는 증거 사례 확보를 목표로 삼아라. 그로스 해커들이 그러듯 그때그때 실험을 늘려가면서 바라는 성과를 거둬라.
- 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행동과학을 선보일 기회가 단 한 번밖에 없다면 고도의 연출이 필요하다. 쓰는 언어부터 말하는 방법, 말하는 순서까지 사람들 앞에 선보이는 모든 순간을 연습하라. 중요한 순간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 당신의 강점을 활 용해 소통하는 방법 등을 연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을 지나치게 세련되게 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씽커벨Thinkerbell 창시자 애덤 페리어 Adam Ferrier가 말했듯이  데군데 더듬거리는 순간이 있어야 더 신뢰를 얻는다. 행동과학에서 는 이를 실수 효과 pratfall effect 라고 부르는데 사람들이 사소한 실수를 저지를 때 더욱 호감을 얻는 현상을 말한다. 자신만의 결함을 드러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 일본에는 당신을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아무 거리낌 없이 수치심을 건드리는 자명종 시계가 있다. 더 자기 버튼을 누를 때마다 시계는 당신의 트위터 계정에 “나는 자전거를 못 탑니다”, “나는 지금 세일러복을 입고 있어요 같이 일본 문화에서는 난처하기 짝이 없는 메시지를 올린다. 누구든 침대에 몇 분 더 누워 있다가 공개적으로 망신당하고 싶지 않으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오길비 체인지 팀은 트위터를 하는 자명종 시계에서 영감을 받아 터무니없어 보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트위터 하는 주전자를 만들면 어떨까? 영국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차를 끓인다. 이런 습관을 활용하면 부모를 걱정하는 영국 전역의 자녀들은 부모님의 주전자가 보낸 트위터를 확인하며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잘 잤니! 나는 이제 막 차를 한잔 끓여 마시려고 한다.” 트위터 하는 주전자는 오길비 실험팀에서 영국 공중보건국 홍보를 위해 제작했다. 주전자에 부착된 전기 상자에는 여러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확인해볼 것도 없이 겉모습이 그리 매력적이진 않았다. 주전자는 주인이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트위터로 간단 히 확인해주면서 안에 담긴 물의 온도까지 정확히 알렸다. "물 온도는 이제 40도란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올린다. “이제 45도네.”
- 프로젝트 담당 팀은 치약에서 영감을 받아 행동 해법을 고안했다. 튜브에서 짜낸 치약의 색색의 줄무늬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 안에 유효 성분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제조 과정에서 추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건강한 잇몸용은 붉은 선, 튼튼한 치아용은 흰 선, 입 냄새 제거용은 푸른 선 등으로 구분하면 유효 성분이 더욱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력 휴리스틱effort heuristic은 정신적 경험 법칙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 들인 노력의 양을 그 결과물의 품질과 연관 짓는 것이다. 이와 같은 치약은 만들 때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 가치 있고 효과적이라고 인식된다. 이런 식으로 제품에 복잡성을 더하면 소비자에게 더욱 그럴듯하게 비칠 수 있다. 사람들이 컴포트 원 린스를 쓰면서 여전히 빨래를 몇 번씩 헹구는 이유도 노력 휴리스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제품을 쓸 때 노력이 덜 들어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제품의 효과가 더 떨어진다고 인 식한다. 제즈와 팀의 임무는 이 제품을 사용할 때 인지되는 노력의 양을 늘리는 것이었다. 브리핑에서 제시된 엄격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양동이였다. 양동이에 기술을 더하면 세탁 과정 에서 인지되는 노력의 양을 늘릴 수 있을 테고, 따라서 사람들에게 이 제품이 단 한 번의 헹굼만으로도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킬 것이었다. 기술적 양동이와 관련해 눈금 표시와 수도꼭지, 옆면의 물결무늬 등 몇 가지 주요 특징을 담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눈금 표시에 맞춰 양동이에 물을 붓고 넘치는 물은 수도꼭지로 흘려보내 물 양을 정 확히 조절해서 제품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런 정밀성으로 제품의 과학적 세탁 방식을 알리면서 인지되는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물결무늬 기술이라 불리는 양동이 벽면의 무늬는 헹굴 때 옷이 오톨도톨한 옆면에 부딪히게 하여 제품이 더 열심히 작동한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종합해보면 새로운 양동이의 이 세 가지 특징 덕분 에 섬유유연 과정이 단 한 번의 헹굼으로 끝나서 물 사용량과 노동 량은 줄지만 노력은 더 많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낡고 오래된 금속 양동이는 행사 기간에 가져오면 반짝이는 새 양동이로 무료로 바꿔줄 계획이었다. 이렇게 해서 예전 행동을 떠 올리게 하는 환경적 단서인 오래된 양동이를 처분하는 것이다. 새 양동이는 한정판 선물로 인식되어 제품의 희소성과 가치도 높인다. 언제나 그렇듯 기회를 부여잡을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다. 세탁방식을 바꿀 강력한 아이디어를 창안한 뒤 제작 과정에서 장애물을 맞닥뜨렸다는 것은 곧 의뢰인과 일할 몇 달이라는 제한된 기간 안에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워크숍은 성공적이었고 행동 문제에 대한 분석은 통찰력이 있었으며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는 모든 사람의 믿음을 얻었지만 잃어버린 고리가 있었다. 양동이 몇 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현금이 두둑하지 않는 한, 양동이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행동 접근법에서 해결책이란 말하는 것부터 포스터, 작업 방식, 앱, 재설계, 양동이까지 무엇이든 해당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번뜩이 는 해결책이 있다고 해도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인력이 없으면 아 무 소용이 없다. 안타깝지만 결국은 빛을 보지 못한 여느 위대한 아 이디어들이 그랬듯 컴포트 원 린스 양동이 프로젝트는 파워포인트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제즈와 댄의 머릿속에 갇히고 말았다.
- 멕시코 문화에서는 과일과 채소를 먹는 것을 허약함의 표시로 여긴다. 당신이 샐러드를 먹고 있으면 사람들은 당신이 병에 걸린 뒤에 기력을 되찾으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과 일과 채소가 남자다운 음식으로 느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해서 팔씨름용 과일 주스기가 만들어졌다. 주스기는 멕시 코에서 가장 유명한 WWE 레슬러 선수의 팔을 본떠서 만들었다. 이제 멕시코의 아빠와 삼촌들에게 과일은 아플 때만 먹는 것이 아니 라 멕시코에서 가장 강한 남자와 싸워야 얻을 수 있는 비타민이 됐 다. 이로써 남자들이 건강한 음식을 준비해 먹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새로운 규범이 만들어졌다.
- “하루아침에 성공을 거두려면 20년이 걸린다." (에디 캔터, 20세기 초반 활동한 연예인)
- 때로 사람들은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관리자에게 일방적으로 받으면 교육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들 그보다 중요한 다른 일이 있을뿐더러 교육은 일상적인 업무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지어 스의 이안은 기발한 넛지를 제안했다. 우선 그 사람이 교육 프로그램에 적합한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자신이 왜 프로그램에 선택돼야 하는지 A4 용지 양면에 작성하도록 했다. 이런 과정은 의무 부과 장치로 작용해 운이 좋게 선정된 사람들이 교육에 참석하도록 자극했다. 더욱이 직원들은 자신이 왜 교육에 적합한 후보인지 세세히 밝혔으니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인지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 를 경험하게 되는 셈이었다. 이렇게 해서 선택된 이들은 전원이 교육에 참석해 탁월한 성과를 보였다.
- 1970년에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은 기업이 "사회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면서 최대한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유명한 주장을 했다. 이후 몇십 년 동안 기업 이사회에는 어떤 비 용을 치르더라도, 심지어 거미줄처럼 얽힌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 해를 입힌다 해도 주주 가치를 최대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 다. 넛지 이론이 1995년의 닷컴 열풍과 동시에 인기를 얻었다면 넛 지는 대다수가 최우선시하는 이익 극대화라는 목표 하나만을 위해 설계됐을 테고, 그리하여 넛지 이론의 다른 중요한 용도를 모두 해쳤을 것이다. 그러나 새천년이 시작되면서 기업 가치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 났다. 이 변화는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사태로 더욱 촉진됐다. 이제 조직은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나름의 목적을 등대로 삼기 시작했다. 기업이 주주 가치보다 이해관계자 가 치를 우선시하게 된 이 시기에 넛지 이론은 뜻하지 않게 공적 담론 에 포함됐다. 넛지 이론은 세상이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때, 기업이 중대한 문제를 낮은 비용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을 때 다가왔다. 넛지 이론은 직원들이 올바른 일을 하면서 고객을 위해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고 동시에 주주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함으로써 모든 이해관계자가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도록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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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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